J-Hyun2024-12-19 11:39:41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영화 '모아나 2' 리뷰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We will find away. We always have)"
영화 '인터스텔라'의 명대사가 떠오르는 한 편이었다. 1편에 이어 이번 편에서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찾아 나선다. 8년 만에 후속편으로 돌아온 '모아나 2' 또한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스스로 찾아내 무쇠처럼 앞으로 나아간다.
'모아나 2'는 선조들로부터 예기치 못한 부름을 받은 모아나(아우이 크라발호)가 부족의 파괴를 막기 위해 반인반신 영웅 마우이(드웨인 존슨)와 새로운 선원들과 함께 숨겨진 고대 섬의 저주를 깨러 떠나는 위험천만한 모험을 그린다.
이번 편 또한 메인 키워드가 '길'이다. 1편이 주인공 모아나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면, 이번 편에선 부족의 미래를 짊어진 그녀가 아무도 모르는 모투페투로 향하는 길을 찾아 나서는 내용이 주된 스토리다.
속편으로 컴백한 만큼, 세계관을 확장시키면서 공동체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담아낸다. 스케일이 커지면서 인물이 많아졌다. 모아나는 고전 영웅 설화에서 접할 법한 여성 영웅으로서 남다른 사명감을 지닌 채 수많은 역경을 헤쳐 나가고, 특유의 모아나적 사고를 바탕으로 자신의 과업을 성취한다. 다만, 전작을 답습하는 듯 이야기 전개 구조가 유사하다. 2편 만의 새로움을 기대했다면 아쉬운 지점이다.

스토리 전개의 아쉬움을 시각적인 부분이 채워준다. '모아나' 시리즈가 바다와의 공존이 곧 삶인 폴리네시아 지역의 역사와 전설 등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기에 영화 속 주요 무대인 '바다'가 인상적이다. 투명하고 청량감 넘치는 태평양 바다를 표현하기 위해 색채설계와 시각효과는 1편보다 진화했고,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시각적 감성을 전달한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물의 길'에서 느꼈던 황홀함과 비슷하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답게 '모아나 2'도 'Get Lost', 'Finding The Way', 'We Know The Way' 등의 곡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뮤지컬 형식을 갖췄다. 이번 편에선 'Beyond'가 1편의 주제곡 'How Far I'll Go'의 뒤를 잇는다. 가슴에 와닿는 꾸밈없는 가사와 원초적이고 웅장한 폴리네시아풍 사운드로 감동을 전한다.
'모아나' 1편에서 목소리로 호흡 맞췄던 아우이 크라발호, 드웨인 존슨의 합은 한층 더 끈끈하다. 때로는 웃음을 유발하는 티키타카 토킹을 하다가도, 때로는 더욱 애특한 동료애를 선보이며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 이들의 케미를 보고 있자니, 이후 총괄 프로듀서-배우로 참여할 동명 실사영화까지 기대하게 만든다.
한편, '모아나 2'는 3편으로 이어질 이야기의 확장을 염두에 두고 제작됐다. 그렇기에 3편을 예고하는 쿠키 영상을 보고 나면, 어떻게 마무리하게 될지 궁금증을 자극한다.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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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끝장리뷰 | 개구리들의 연대 | 적색 vs 청색, 숲속 vs 도시 | 부성애의 세계 | 결말해석 | 술래, 숲속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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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개구리들의 연대
Chapter 2 부성애의 세계, 숲속 vs 도심, 적색 vs 청색
00:00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00:52 아쉬운 지점들
02:16 개구리들
05:16 술래 의미
06:04 부성애의 왕국
06:46 숲속 의미
09:22 적색 vs 청색
10:29 별점 및 한 줄 평
10:49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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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손 - 가부장제? 맞다이로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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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영상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써 9월 11일 개봉하는 작품 [장손]의 개봉전 시사회를 다녀온뒤 제작된 영상입니다.
3대 대가족이 모두 모인 제삿날 일가의 명줄이 달린 가업 두부공장 운영 문제로 가족들이 다투는 와중, 장손 ‘성진’은 그 은혜로운 밥줄을 잇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설상가상 갑작스레 맞닥뜨린 예기치 못한 이별로 가족 간의 갈등은 극에 달하는데… 핏줄과 밥줄로 얽힌 대가족의 70년 묵은 비밀이 서서히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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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TV+ <슬로 호시스> 공식 예고편
밑바닥 요원들 손에 떨어진 일급비밀. 4월 1일 Apple TV+에서 '슬로 호시스' - Slow Horses를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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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쇼미더고스트> 메인 예고편
영혼까지 끌어모아 마련한 돈으로 드림 하우스에 입성한 20년 절친 예지와 호두.
완벽한 줄 알았던 집에 귀신이 들자, 돈도 갈 곳도 없는 둘은 귀신을 내쫓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귀신보다 무서운 서울 물가 때문에 지쳐버린 두 사람은
값비싼 전문 퇴마사 대신 특별할인 이벤트 중인 꽃도령 퇴마사 기두와 셀프 퇴마에 나서는데…
"귀신님, 아직... 안 나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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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곳에 뿌리내리려는 한 가족의 이야기
먼 이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해외 이민의 길을 떠난다. 고국에서의 미래가 보이지 않거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이민의 길은 사실 쉽지 않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가면서 조건이 좋지 않은 일부터 시작해야 새로움의 삶을 천천히 익숙한 삶으로 바꿀 수 있다. 그렇게 일을 해나가면서 조금씩 나은 일을 찾고 가족들과 삶을 이어나간다. 새로운 시작을 선택한 가족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그 힘든 이민의 삶을 받아들이고 점점 그곳의 일부분이 되어간다. 어떤 나라에서든 이민자들의 삶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여전히 그런 과정을 거친다.
사실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것이 꼭 이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살면서 전혀 새로운 곳에 이사 가게 되어 살게 되거나 다른 환경으로 가게 될 때 우리는 그런 경험들을 한 번쯤은 겪게 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찾아 다시 삶을 만들어 나가는 장면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서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할 때, 그 쉽지 않은 현실을 앞에 두고 가족들은 때론 서로 의견 대립을 하고 싸운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손을 잡고 서로를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새로운 곳에 온전히 뿌리내리기 위해 의지할 곳은 바로바로 옆에 있는 가족뿐이다.
영화 <미나리>는 새로운 환경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려고 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제이콥(스티븐 연), 모니카(한예리), 딸 앤(노엘 케이트 조), 아들 데이빗(앨런 김) 가족이 알칸소의 새 집에 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미국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는 제이콥과 모니카의 가족이 다시 새로운 지역 알칸소로 이주해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제이콥은 바퀴가 달린 집과 그 주변의 땅에 농장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나가려고 한다. 모니카는 병아리 감별하는 일을 하며 같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미국 대도시의 삶에 잘 적응하지 못한 듯한 이들은 새로운 곳으로 옮겨 좀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거주 환경과 주변을 본 모니카가 실망감을 토로하지만 여기서 새롭게 시작하자는 남편 제이콥의 말에 일단 그곳에서의 삶을 준비한다.
제이콥이 준비하는 농장은 그의 가족이 좀 더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제이콥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 주변의 땅에서 물을 찾는 일이다. 물길을 찾는 외부인을 불러와 살펴보거나 자신이 직접 땅을 파서 땅속의 물을 찾아 농사에 활용한다. 제이콥이 늘 물에 신경 쓰는 것처럼, 영화 속에서 물은 꽤 중요하다. 물만 잘 공급된다면 농사를 짓기 수월하고 이들 가족이 큰 불편함 없이 뿌리내려 사는데 도움이 된다. 물이 원활하게 공급되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물이 끊겼을 때 가족을 압박하는 것은 생활의 불편함 뿐 아니라 경제적인 압박도 포함된다. 그들이 목이 타는 것과 같이 마음속도 타들어가고 부부는 의견 대립으로 충돌한다.
제이콥은 자신의 농장에서 작물을 성공적으로 수확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자신의 가족들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믿고 부단히 매달린다. 반면 모니카는 실패할 수도 있는 농장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병아리 감별을 지속적으로 하길 원한다. 그리고 조금은 더 큰 도시로 이주하여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가족과 함께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기를 원한다. 두 사람 모두 가족을 위하지만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조금 다르다. 제이콥은 농장의 성공이 가족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부단히 매달린다. 당장은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자신이 그리는 안정적인 상황이 그의 눈앞에 보인다. 그래서 그는 그 농장을 포기할 수 없다. 그 농장의 성공이 바로 가족의 안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모니카는 적은 돈을 벌더라도 바로 지금 안정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을 원한다. 그래서 당장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농장일에 매달리는 제이콥과 의견 대립을 하게 된다.
그런 작은 대립에도 불구하고 모니카와 제이콥은 서로의 그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모니카는 제이콥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은연중에 만들어준다. 비록 제이콥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가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다. 또한 자신의 엄마인 순자(윤여정)를 미국으로 불러와 자신과 남편이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볼 수 있게 한다. 순자는 이 가족이 좀 더 안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윤활유이자 물 같은 존재다.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미국으로 올 때 가져온 고춧가루, 멸치 등은 밥상에 올라올 음식이 되어 가족들에게 고국의 맛을 선사하고, 그가 가져온 화투는 아이들에게 한국의 놀이가 가진 재미를 알려준다. 비록 아이들은 처음 만나는 외할머니와 데면데면해 하지만 아이들은 곧 그것에 익숙해진다. 그렇게 조금씩 외할머니는 이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어간다.
그 익숙해진다는 것이 곧 친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완전히 마음을 열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린다. 이 영화 속 데이빗과 앤 도 마찬가지다. 대화조차 잘 통하지 않는 외할머니에게 그들이 친숙함을 금방 느끼기는 어렵다. 처음 외할머니를 만난 데이빗은 연신 할머니 같지 않다며 혼자 중얼거리는데, 한국의 할머니를 처음 만났고 기대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이 일하러 간 시간, 어쩔 수 없이 외할머니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데이빗과 앤은 외할머니와 함께 집에서 조금 떨어진 냇가에 산책을 나간다. 특히 데이빗은 그 산책의 시간을 보내며 순자와 교감하고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질병도 서서히 회복해나간다. 그렇게 모든 가족의 마음속에 익숙함이 자리해나갈 때 비로소 그들이 그곳에 정착할 수 있는 기운이 만들어진다.
<미나리> 속 특별한 장면들은 대부분 외할머니 순자와 데이빗이 만들어낸다.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은 짧은 한국어와 영어를 통해 이야기하는데 냇가 옆에서 데이빗과 부르는 원더풀 미나리 송에서도 정감이 느껴지고 티격태격 장난치는 듯한 두 사람의 행동도 웃음을 짓게 한다. 또한 순자는 데이빗이 눈에 보이는 위험을 보이는 곳에 놓고 관리하게 만드는데 이것은 심장병이 있어 늘 뛰기를 두려워하는 데이빗에게 그 위험을 직면하며 관리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데이빗은 마음도 몸도 서서히 치유가 되어간다 이 영화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면 외할머니와 손주가 만들어낸 이런 앙상블 때문일 것이다.
순자는 고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를 냇가에 뿌려 미나리를 키운다. 물만 있으면 잘 자라는 미나리는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니카와 데이빗 가족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가족에게 물만 있으면 농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큰 문제없이 정착할 기회가 만들어진다. 영화 후반 군집을 이루어 아주 잘 자라는 미나리의 모습은 어쩌면 이 가족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는 이들 가족이 잘 정착하여 살게 되는지, 농장 운영은 성공하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그곳에 정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어떤 마음인지는 잘 보여준다. 결국 다섯 명의 가족이 결코 떨어질 수는 없고 앞으로도 같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존재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타오르는 농장에 뛰어든 제이콥과 모니카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들은 싸운 직후였고, 이별의 결심까지 한 후였다. 하지만 남편이 노력하여 얻은 결과물이 타오르자 그것의 일부라도 구하고자 이리저리 물건을 불 밖으로 빼는 모니카의 모습에서 남편의 노력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지고 그들이 결국 같이 그것을 해결해 나갈 것임을 보여준다.
가족의 고난사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영화 <미나리>는 긍정적인 영화다. 잠깐씩 모습을 비추는 알칸소의 이웃과 교회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그들에게 호의적이다. 유일한 동양인이라는 점 때문에 다르게 받아들여지지만 조금은 신기하게 바라보고 친해지려 다가선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폴(윌 패튼)은 특이한 행동을 하는 이웃으로 등장하지만 결코 나쁜 인물이 아니다. 이해 못할 행동을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제이콥의 농사가 잘되길 빌면서 일손을 돕는다. 악의 없이 이 가족이 그 땅에 정착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어쩌면 영화 속 그의 주술이 실제로 가족의 마음이 안정되도록 심리적인 도움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덕분에 농작물 수확도 잘할 수 있었고, 집안에 나쁜 일들도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가 되었으니까. 이민자들 주변에 있었던 좋은 이웃들의 모습을 폴이라는 인물이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폴이 이민자인 그들을 이상하게 취급하지 않은 것처럼 가족도 폴을 하나의 이웃으로 대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각기 다른 포인트에서 공감하며 관람할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부부의 이야기, 어떤 사람은 외할머니와 손주들의 이야기 그리고 본인이 이민자라면 이민자 자체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분명 이민자들의 경험이 담겨 있지만 아주 보편적인 가족의 정서를 담고 있어 널리 공감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미나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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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하게 빠져드네… 134개국에 판권 선판매한 K-좀비물
6★/10★
한국에서 나온 것이 세계적 관심을 끌 때 우리는 그 앞에 ‘K’자를 붙인다. K팝, K콘텐츠, K방역, K뷰티, K콘텐츠 등등. 그중 ‘K좀비’라는 표현도 있다. 탄탄한 각본, 박진감 넘치는 액션에 자본을 곁들인 〈부산행〉, 〈킹덤〉,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이 국제적 성공을 거둔 후 등장한 말이다. 그리고 여기, ‘K좀비’의 계보를 잇겠다고 나선 영화가 있다. ‘B급 코믹 좀비 액션’을 표방하는 〈강남좀비〉다.
〈강남좀비〉는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대형 건물에 좀비가 등장하며 생기는 일을 담은 영화다. 현석은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이었으나 지금은 직원 월급과 사무실 월세조차 밀리는 조그만 영상 콘텐츠 기획 회사에서 일한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민정은 제법 능력 있는 영상 편집자지만 아직 별다른 경력이 없어 경험을 쌓고자 한다. 남몰래 민정을 좋아하는 현석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민정에게 데이트를 신청하지만 거절당해 조금은 침울한 상태다. 그 와중에 회사 사장이 민정에게 은근슬쩍 성추행을 일삼아 분통이 터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좀비가 등장했으니 줄거리를 예측하는 게 그리 어렵진 않다. 현석은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답게 고군분투하면서도 좀비 떼들로부터 회사 직원, 특히 민정을 멋지게 구하고 민정 역시 그런 현석에게 조금씩 의지하며 마음을 연다. 영화의 중심이 되어야 할 좀비 액션도 기대 이상이다. 저예산으로 만든 좀비 영화이 액션과 블록버스터 좀비 영화‧좀비 드라마의 액션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최초의 좀비 감염자를 연기한 조경훈 배우의 열연, 흰자를 보이지 않게 한 좀비 분장, 배우들의 노력으로 채운 좀비 액션은 분명 적당히 즐길 만한 정도다.
영화가 표방하는 B급 정서도 포인트다. 흥미로운 건 영화가 웃음을 주고자 의도한 장면에서는 헛웃음이 나고, 영화가 진지해지고자 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난다는 점이다. 즉 〈강남좀비〉가 의식적으로 표방한 B급 연출은 다 빗나간다. 그러나 진지한 감정선을 만들려 할 때는 오히려 B급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억지로 세태를 욱여넣은 장면과 장르 영화의 클리셰가 뒤섞인 장면을 보기가 조금 민망했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이 저예산 영화의 공백을 기묘한 방식으로 채워내 의도치 않은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내는 데서는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오프닝 액션을 보며 나온 ‘아……’ 하는 탄식이 ‘이 영화, 왜 재밌지…?’라는 당혹스러운 물음으로 전환될 때쯤부터, 나는 〈강남좀비〉를 기꺼이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134개국 판권 선판매가 그에 상응하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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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IFF 데일리] 개별성을 뭉뚱그리지 않는 가족 모델
귀환/Homecoming
카트린 코르시니/프랑스/2023/108min/'새로운 물결' 세션
케이디자는 부유한 파리지엥 가족의 아이들의 보모로 여름 동안 코르시카섬에 머물게 된다. 10대인 두 딸 제시카와 파라를 데리고, 케이디자는 15년 전 비극을 피해 도망쳐 나온 그 섬으로 돌아간다. 2023년 제76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서울국제여성영화제)
어린이 한 명은 손에 잡고 갓난아이 하나는 품에 안은 흑인 여성 케디자. 그녀는 긴장된 표정으로 자동차를 타고 이동 중이다. 차가 선착장에 도착한다. 그때 전화가 온다. 케디자는 무너져 내린다. 눈물을 흘리며 두 아이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유람선에 오른 케디자의 옆에는 그새 성장한 두 딸 제시카, 파라가 있다. 파리에서 보모로 일하는 케디자의 고용인이 코르시카 섬으로 휴가를 떠나며 케디자와 그녀 가족에게도 동행을 권했기 때문이다. 케디자에게는 출장과 휴가를 겸한 여정이다. 15년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코르시카섬을 떠났던 케디자와 마냥 들뜬 두 딸. 15년 전 그들이 떠나온 장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관한 호기심을 촉발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셋은 코르시카에서 나름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흑인을 모욕하는 현지의 백인 남성, 고용인의 별장에 초대받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다가도 케디자가 보모 일을 해야 하는 순간으로 인해 긴장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가난한 흑인 가족인 세 모녀에게 이 정도는 그냥 넘길 수 있을 만한 일이다. 꽤나 즐길 만한 휴가가 이어진다. 제시카와 파라 역시 나름의 방식으로 휴가를 즐긴다. 제시카 고용인의 딸과 연인이 되고, 파라는 자신에게 못되게 굴었던 백인 남자와 미움과 애정이 뒤섞인 기묘한 관계를 형성하는 중이다.
그러던 중 사건이 생긴다. 첫째는 엄마가 죽었다고 말한 친할머니가 실은 코르시카섬에서 멀쩡히 살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파리의 좋은 대학에 들어간 제시카가 엄마와 동생을 부끄러워하며 그들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내용을 적은 일기를 파라가 발견한 일이다.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세 모녀는 갈가리 찢기고 각자에게 위안을 주는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엄마의 비밀과 문화/계급 상승 욕망이 단란하고 단단했던 세 모녀 사이의 틈을 파고들어 헤쳐 놓는다.
그리고 위기 끝에 세 모녀는 다시 한 자리에 모인다. 케디자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으나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견딜 수 없었고, 이를 딸에게 물려주기 싫어 코르시카를 떠났다. 제시카는 자신이 동경하던 세계가 그리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엄마의 진심을 확인한 후 다시 돌아온다. 파라 역시 말썽을 부리고 멋대로 굴면서도 자신이 엄마, 언니와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023년 제76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귀환〉은 세 모녀의 개별 서사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이들을 뭉뚱그리지 않고 관계성으로 다시 엮어낸다. 즉, 개별성과 관계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서의 여성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다. 누구의 서사도 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존중되기에 그들이 엮였을 때의 감동도 배가 된다. 〈귀환〉은 강요된 희생과 역할이 아닌 이타적 욕망과 서로 다른 존재의 결을 품는 가족 모델을 상상하는 데 훌륭한 밑절미가 되어주는 영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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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우리의 망각 속에서 계속되는 다음의 피해자
[BIFF 데일리] 우리의 망각 속에서 계속되는 다음의 피해자
영화 다음, 소희 리뷰
감독] 정주리
출연] 김시은, 배두나
시놉시스] 소희(김시은)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인터넷 회사 콜센터에 현장실습생으로 취직한다. 소녀는 대기업에 취직했다며 들뜨지만, 실상은 기대와 다르다. 노동 착취가 예사로 일어나는 콜센터는 그야말로 노동 지옥이다. 그곳의 잔인한 현실은 암울한 사고로 이어지고, 형사 유진(배두나)은 악착같이 진실을 좇는다. 그러나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 앞에서 그녀는 무력함을 절감한다.
특성화고 고교생들의 현장실습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올해만 해도 현장 실습 도중 사망하는 사건이 여럿 발생했지만 이에 대한 조치가 명확히 이뤄졌는지에 대한 후속기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면서 다시 망각의 길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 특성화고 고교생들의 현실이 아닐까 싶다.
다음이라는 묵직한 말
영화 <다음, 소희>는 영화 제목이 주는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소희의 죽음을 통해서 특성화고의 현장실습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경찰 유진은 깨닫지만, 자신의 손으로 바로잡기에는 이미 작동하고 있는 사회 시스템을 멈출 수가 없기에 좌절한다. 이 문제를 여기서 바로잡지 않는다면 소희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소희와 같은 아이들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지만, 정량적 평가라는 교육부의 사회적 시스템으로 인해 이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개인이 현장실습을 나가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진은 죽어버린 소희의 유품, 핸드폰에 유일하게 있었던 춤연습 동영상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어른으로서 아직 꽃도 피지 못한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었을까. 경찰이라는 공무원이었지만 유진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남아있는 현장실습생들을 챙기는 것이었다. 유진은 그렇게 소희가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소희와 함께 춤동아리에서 춤을 추었던 1년 선배를 찾아간다. 같은 현장실습생으로 공장에서 일했지만 사고를 쳐서 택배 물류 작업을 하고 있었던 그에게 유진은 힘든 게 있느면 털어놔도 된다며 누구에게든 말하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자 고맙다며 눈물을 흘린다. 현장실습생이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사내에서 힘들다는 말을 하지도 못했던 이들이기에 당장의 시스템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따뜻한 이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큰 위로와 안식처로 다가왔을 것이다.
아직 이 문제들을 양산하는 사회적 시스템은 그대로 작동 중이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이와 같은 일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아이들은 점점 더 사지로 몰릴 수밖에 없음을 ‘다음’이라는 지목을 통해서 완강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정량적 평가가 만든 악의 굴레
우리가 실적을 평가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정성적인 방법과 정량적인 방법이 있다. 하지만 정성적인 평가의 경우에는 객관적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은 정량적인 평가를 한다. 영화 <다음, 소희>에서는 꾸준히 객관적인 수치에 대한 질문과 그 속에서 배제되고 있는 정성적인 부분이 부각되어 등장한다. 특성화고 특성상 그 해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실적으로 이어지기에 학생들을 공장, 콜센터 등 다양한 곳으로 현장 실습을 내보낸다. 이 아이들의 성격이나 적성, 장래희망을 고려한 것이 아닌 비료공장, 사료공장 등 인력이 필요한 곳이면 내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를 보고 유진은 이게 어떻게 학교냐며 인력사무소 아니냐고 따지지만 취업률을 보고 지원금을 받는 특성화고 특성상 학생들을 유치하고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취업률에 목을 멜 수밖에 없다고 되려 한탄한다.
이에 유진은 교육청으로 향한다. 하지만 교육청에서도 마찬가지다. 장학사는 지방 교육청의 경우 교육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데 다른 지방과의 경쟁에서 밀릴 경우 그 지원금이 낮아지고, 그 경쟁은 특성화고는 취업률, 일반고는 대학진학률로 지표가 설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지원금을 못받으면 당장 문을 닫아야 하는 학교가 생기는 마당에 어떻게 아이들의 성격과 적성을 다 반영하고, 모든 것을 다 갖춘 곳으로만 취업을 보낼 수 있냐며 반문하면서 이것이 현실이라 유진에게 말한다.
유진은 그 앞에 좌절한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정성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 시스템과 싸워보고자 노력했지만 저 위에 있는 교육부까지 가서 따져봤자 이 정량적인 평가의 기준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량적인 평가는 굉장히 객관적이다. 누구나 보면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된다. 하지만 그 정량적인 평가만을 강조하다보면 목적과 수단의 전치현상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이런 정량적인 평가 속에 갇힌 우리 사회의 모습을 학생과 사회인 이 중간 지점에서 모두에게 외면받은 현장실습생을 통해 다시 한 번 꼬집어주고 있었다.
영화 <다음, 소희>는 우리의 망각 속에서 어떤 이들은 계속해서 사지에 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다음이 계속된다는 것을 묵직하게 잘 풀어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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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루엘라 (2021)
* 이 리뷰는 영화 <크루엘라>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크루엘라 (2021) 정보
감독: 크레이그 길레스피 (아이, 토냐 연출)
출연: 엠마 스톤, 엠마 톰슨, 마크 스트롱 등
개봉: 5/26
장르: 범죄, 코미디
러닝타임: 134분
디즈니가 재해석한 빌런, 크루엘라
대중적으로 '크루엘라'는 디즈니의 <101마리 달마시안> 시리즈에 나오는 사악한 악녀라고 알려져 있다. '글렌 클로즈'가 '크루엘라'를 연기한 실사화 버전이 1996년에 개봉된 적이 있기는 하지만, 25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다시 '크루엘라'라는 인물에 스포트라이트를 준 디즈니의 선택은 살짝 의외였다. 지금까지 누구도 그녀의 서사에 관심을 주지 않았기 때문. 하지만 디즈니는 이미 <잠자는 숲속의 공주> 애니메이션 속 빌런 '말레피센트' 실사화를 통해 선함과 악함이 공존하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성공적인 재해석을 한 전적이 있어 2021년 버전으로 새롭게 그려질 '크루엘라'의 모습도 기대해볼만 했다. 더군다나 크루엘라를 연기하는 배우가 '엠마 스톤'이라니!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역할이라 캐스팅만으로도 흥분을 주었다.
도둑들 →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크루엘라
'크루엘라'의 러닝타임은 2시간 14분으로 제법 긴 편인데, 주인공의 서사를 꽤나 장엄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흑백 반반 머리로 남달리 태어나 사나운 성질과 남다른 재능으로 매사 트러블을 일으켰던 '크루엘라/에스텔라(엠마 스톤)'는 학교 생활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한다. 결국 퇴학을 당해 집을 떠나 엄마와 런던으로 향하던 도중 자신의 치명적인 실수로 엄마가 목숨을 잃게 되면서 한 순간에 고아가 된다. 엄마와 함께 가기로 약속했던 리젠트 공원에 홀로 가게 된 그는 도둑질을 하는 친구 '호레이스(폴 윌터 하우저)'와 '재스퍼(조엘 프라이)'를 만나게 되고, 이들과 절친이 되어 능숙한 강도로 성장한다.
크루엘라는 어려서부터 패션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는데, 그의 디자인 실력은 도둑질에만 쓰이기 무척 아까웠다. 크루엘라의 재능을 높이 산 친구 재스퍼의 도움으로 리버티 백화점에 취직하지만, 그에게 주어지는 일은 청소 및 잡무 뿐이다. 우연히 예술성을 뽐낼 기회를 만든 크루엘라는 런던 최고의 패션 브랜드를 가진 '남작 부인(엠마 톰슨)'에게 디자이너로 발탁되고 본격적인 에술 혼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남작부인의 능숙한 직원이 되어 꿈을 펼쳐나가기 시작할 때 즈음, 예상치 못한 진실과 마주하며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패션에 대한 광기, 화려한 미장센
'크루엘라'의 빌런으로서의 성향을 패션에 대한 광기로 해석한 시각은 상당히 신선한 접근이다. 충분한 서사가 부여되었기 때문이지 패션에 대한 집착을 통해 악행을 저지르는 크루엘라의 행동들은 왠지 모르게 악해 보이지 않고, 이해가 된다. 과격하고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지만, 명분 있는 그녀의 행동에 우리는 악하다는 비난을 가하기 보다는 공감을 할수밖에 없다. <말레피센트>처럼 실사화를 하면서 빌런이었던 캐릭터를 선역에 가까울 정도로 묘사하지 않고, 캐릭터 본래의 성격을 끝까지 잃지 않는다는 캐릭터에 대한 해석 방식도 맘에 들었다.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크루엘라'의 모습을 다룬 작품인만큼 극에 등장하는 수많은 의상의 퀄리티가 매우 높고 남작부인을 도발하는 크루엘라의 파격적이고 아티스틱한 의상들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렇게까지 주인공이 패션에 진심인 영화가 이전에 있었던가. 패션과 광기, 일에 대한 열정과 욕망을 표현함에 있어 절제 따위 하지 않고 감각적인 미장센과 함께 극한으로 표출하려 했다는 것이 가장 좋았던 부분이다. 카메라 무빙 역시 일반적인 기법을 따르지 않고, 현란한 방식들을 사용하며 런웨이를 보는 듯한 기분, 패션쇼를 관람하는 듯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에스텔라와 크루엘라 사이, 엠마 스톤의 아수라 백작 같은 연기
'엠마 스톤'이 '크루엘라' 역할로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원작의 캐릭터만을 생각했다면 충분히 납득이 가는 견해였고, '에바 그린'과 같은 배우들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에도 공감이 갔다.
하지만, '엠마 스톤'이 연기한 '크루엘라'는 원작의 캐릭터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인물이고, 그만의 색깔로 악녀로만 여겨졌던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극중 '에스텔라'와 '크루엘라' 두 명의 인격을 연기하는 엠마 스톤의 연기력을 가히 압도적이다. 미세한 표정 연기와 목소리의 떨림, 걸음걸이마저 차이를 두며 인물 스스로가 부여한 2명의 인격체를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표현한다. 특히 크루엘라를 연기할 때의 끈적한 악센트와 광기 어린 눈빛, 시선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가히 압도적이다. 자아도취적 인물로 그려진 캐릭터의 막장성은 부자연스러운 과장성을 자아낼 수도 있지만, 엠마 스톤의 크루엘라는 전혀 그렇지 않다.
크루엘라의 강렬함 때문에 인물의 본캐인 '에스텔라'의 존재감이 묻히는가? 이 또한 긍정할 수 없는 질문이다. 자극적인 크루엘라의 인격 때문에 인간미가 담긴 에스텔라의 성정이 상대적으로 무난해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광기와 분노 이외의 감정을 표출하는 에스텔라의 모습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특히 부모의 원수에게 모든 것을 잃은 채 분수 앞에서 눈물과 함께 쏟아내는 독백씬은 연기력의 절정을 보여준다. 꿈에 부푼 붉은 머리에 안경을 쓴 모습에서는 '이지 에이'에서의 매력적인 풋풋함이 느껴지고, 엄마의 죽음에 대한 사실에 직면하고 분노하며 빌런을 쓰러뜨리기 위해 모략을 세우는 과정에서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에서의 똘끼가 비춰진다. 그동안 차근차근 좋은 작품들로 출중한 연기력을 쌓아온 엠마 스톤이었기에 '크루엘라/에스텔라'라는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던 것이다.
엠마 VS 엠마, 불꽃 튀는 연기 혈전
'크루엘라'에는 '엠마 스톤'이 아닌 또 한 명의 엠마, '엠마 톰슨'이 빌런으로 등장한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 같은 서늘함과 잔혹함을 가졌지만 패션에 대한 욕망만은 누구보다 큰 '남작부인'을 연기하며 크루엘라와 날선 대립각을 세운다. 이 캐릭터는 주인공의 각성을 불러내는 빌런으로서의 역할이 주된 포인트지만, 극 초반까지는 크루엘라의 재능을 알아봐주고 꿈을 실현시켜주는 멘토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양가적인 의미를 지닌다. 화려한 미장센과 서스펜스가 덜한 장면들이라 할지라도, '남작부인'과 '에스텔라'가 형성하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관계 또한 상당한 재미를 준다.
크루엘라의 카리스마가 광기와 저돌적인 태도에서 나온다면, 남작부인의 카리스마는 냉혹함에서 비롯된다. 타인의 죽음 앞에 눈 한 번 깜빡이지 않는 잔혹성을 지닌 인물을 '엠마 톰슨'이 훌륭하게 연기하며 뒷받침해주었기에 '크루엘라'의 캐릭터가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두 캐릭터의 존재감이 워낙 세다 보니 나름 괜찮은 캐릭터임에도 조연들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엠마 스톤'과 '엠마 톰슨'이 함께 나오는 장면들이 가장 재밌고, 투샷이 잡힐 때의 몰입도가 굉장하다.
캐릭터의 완벽함만으로 채우지 못한 빈틈
의상, 연기력, 미장센, 비주얼, 캐릭터까지 모두 완벽하지만 스토리의 정교한 짜임새 면에서는 부족하다. 캐릭터의 서사에 지나칠 정도의 완벽함을 부여하다 보니 범죄를 다루는 장면들의 현실감과 스릴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애초에 '서스펜스'를 보여주기 위한 탄탄한 각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아닌 디즈니 원작의 캐릭터를 재해석하는데만 힘을 쓰다보니 나타나게 된 약점이라고 본다. 동일한 인물들이 계속해서 허술한 작전을 펼치는데, 경찰은 이들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계속 당하는데도 알아채는 사람은 없다. 비주얼적으로 보여줄 장면들이 많다 보니 세세한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게 퍽 느껴진다. 12세 관람가이다보니 인물들의 잔혹성이나 빌런으로서의 악행 역시 수위가 낮고, 잔혹동화로서의 성격이 강하게 부각되지 않는다. 차라리 제대로 된 수위로 <조커>이상의 빌런 서사를 꾸렸으면 좋았을 듯 한데, 디즈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던 방안인 듯.
처음부터 끝까지 휘몰아치는 현란한 삽입곡의 향연도 피로감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분명 연출의 긴박감과 스타일리쉬함을 강조하는 효과는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산만하고 정신없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캐릭터의 연기는 과하게 다가오지 않았으나 연출적인 부분에서 과하다는 느낌이 조금씩 있었다. 물론, 감상을 해칠 정도로 심각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러한 흠이 있기는 하지만 <크루엘라>의 캐릭터 구성은 완벽했고, 배우들의 연기력과 화려한 비주얼, 그리고 감각적인 연출로 디즈니 실사화의 성공작을 새로 쓰게 됐다. 흥행 하게 된다면, 속편을 기대해봐도 좋을 듯.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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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4주 차 개봉작, 공개 예정작 추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개봉 전부터 반응이 뜨거운 <탑건: 매버릭>의 개봉과 독특한 감성을 가진 독립영화까지!!
그럼 6월 넷째 주에는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을지!
더 자세히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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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개봉 영화
탑건: 매버릭
ⓒ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130분
감독: 조셉 코신스키
출연: 톰 크루즈, 마일즈 텔러, 제니퍼 코넬리 등
개봉: 2022.06.22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줄거리
교관으로 컴백한 최고의 파일럿 매버릭(톰 크루즈)과 함께 생사를 넘나드는 미션에 투입되는 새로운 팀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항공 액션 블록버스터
관전 포인트
19일 기준, <탑건: 매버릭>의 전 세계 총 수익 8억 8500만 달러(한화 약 1조 1400억 원)을 돌파하며,
올해 최고 흥행작으로 꼽히고 있다. 또한, 최고의 음악 감독이라 불리우는 한스 짐머가 음악 감독을 맡으며
기대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룸 쉐어링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93분
감독: 이순성
출연: 나문희, 최우성 등
개봉: 2022.06.22
배급: (주)엔픽플
줄거리
까다롭고 별난 할머니 ‘금분’과 흙수저 대학생 ‘지웅’의 한집살이 프로젝트를 담은 영화.
관전 포인트
데뷔 62년차 배우 나문희와 신예 최우성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룸 쉐어링>.
동시녹음을 해오던 이순성 감독의 첫 감독 데뷔작이다.
감동주의보
ⓒ 네이버 영화
개요: 로맨스 | 한국 | 98분
감독: 김우석
출연: 홍수아, 최웅, 기주봉 등
개봉: 2022.06.22
배급: (주)스튜디오보난자
줄거리
큰 감동을 받으면 생명이 위험해지는 감동병을 앓고 있는 보영이 착한 시골청년 철기를 만나 꿈과 사랑을
이루어 내는 로맨스 코미디 영화.
관전 포인트
감동병이라는 참신한 소재를 사용하며 독특한 매력을 가진 영화.
그동안 드라마에서 자주 보았던 배우 최웅의 첫 스크린 주연작이다.
니얼굴
ⓒ 네이버 영화
개요: 다큐멘터리 | 한국 | 86분
감독: 서동일
출연: 정은혜, 장차현실 등
개봉: 2022.06.23
배급: 영화사 진진
줄거리
예쁜 얼굴을 안 예쁘게 그려주는 캐리커처 작가 은혜씨의 특별한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관전 포인트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해 웃음과 감동을 주었던 배우 정은혜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영화를 보고 나면 솔직하고 통통 튀는 정은혜 아티스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모어
ⓒ 네이버 영화
개요: 다큐멘터리 | 한국 | 81분
감독: 이일하
출연: 모지민, 존 카메론 미첼 등
개봉: 2022.06.23
배급: (주)엣나인필름
줄거리
남모를 애환을 딛고 세상 앞에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튀어 오른 독보적인 드래그 아티스트 모어(MORE 毛漁)의
삶과 예술을 감각적인 음악과 영상으로 스토리텔링한 작품.
관전 포인트
제 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기러기상(특별상)을 받았으며, 이외에도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고,
초청을 받으며 작품성이 입증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스타일리쉬한 연출과 감감적인 편집으로 보는 내내 눈이 즐거울 것이다.
우스운게 딱! 좋아!
ⓒ 네이버 영화
개요: 드라마 | 한국 | 101분
감독: 김현, 정혜연
출연: 이민구, 김휘규, 이태희 등
개봉: 2022.06.23
배급: 필름다빈
줄거리
눈치 없는 성구 때문에 울화통이 치미는 현, 전 남자친구에게 청첩장을 받은 소연,
서로 자기 말만 하는 가족들과 하루종일 지지고 볶는 민정, 죽은 친구의 은밀한 물건을 숨겨야 하는 소연.각각의 이야기를 담은 청춘 코미디 옴니버스이다.
관전 포인트
우리 인생의 가장 발칙한 순간을 담아낸 네 편의 옴니버스를 관람할 수 있는 영화.
유수의 영화제에서 경쟁작 후보에 선정되었습니다.
OTT 공개 예정작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 네이버 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126분
감독: 샘 레이미
출연: 베네딕트 컴버배치, 엘리자베스 올슨 등
공개: 2022.06.22
스트리밍: 디즈니+
줄거리
모든 상상을 초월하는 광기의 멀티버스 속, MCU 사상 최초로 끝없이 펼쳐지는 차원의 균열과 뒤엉킨 시공간을
그린 수퍼내추럴 스릴러 블록버스터.
관전 포인트
누적 관객 수 588만명을 돌파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드디어 집에서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1인 다역 연기와, 엘리자베스 올슨의 선과 악을 넘나드는 연기가 화제를 모았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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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끝장리뷰 | 개구리들의 연대 | 적색 vs 청색, 숲속 vs 도시 | 부성애의 세계 | 결말해석 | 술래, 숲속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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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개구리들의 연대
Chapter 2 부성애의 세계, 숲속 vs 도심, 적색 vs 청색
00:00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00:52 아쉬운 지점들
02:16 개구리들
05:16 술래 의미
06:04 부성애의 왕국
06:46 숲속 의미
09:22 적색 vs 청색
10:29 별점 및 한 줄 평
10:49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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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손 - 가부장제? 맞다이로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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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영상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써 9월 11일 개봉하는 작품 [장손]의 개봉전 시사회를 다녀온뒤 제작된 영상입니다.
3대 대가족이 모두 모인 제삿날 일가의 명줄이 달린 가업 두부공장 운영 문제로 가족들이 다투는 와중, 장손 ‘성진’은 그 은혜로운 밥줄을 잇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설상가상 갑작스레 맞닥뜨린 예기치 못한 이별로 가족 간의 갈등은 극에 달하는데… 핏줄과 밥줄로 얽힌 대가족의 70년 묵은 비밀이 서서히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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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TV+ <슬로 호시스> 공식 예고편
밑바닥 요원들 손에 떨어진 일급비밀. 4월 1일 Apple TV+에서 '슬로 호시스' - Slow Horses를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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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쇼미더고스트> 메인 예고편
영혼까지 끌어모아 마련한 돈으로 드림 하우스에 입성한 20년 절친 예지와 호두.
완벽한 줄 알았던 집에 귀신이 들자, 돈도 갈 곳도 없는 둘은 귀신을 내쫓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귀신보다 무서운 서울 물가 때문에 지쳐버린 두 사람은
값비싼 전문 퇴마사 대신 특별할인 이벤트 중인 꽃도령 퇴마사 기두와 셀프 퇴마에 나서는데…
"귀신님, 아직... 안 나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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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곳에 뿌리내리려는 한 가족의 이야기
먼 이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해외 이민의 길을 떠난다. 고국에서의 미래가 보이지 않거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이민의 길은 사실 쉽지 않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가면서 조건이 좋지 않은 일부터 시작해야 새로움의 삶을 천천히 익숙한 삶으로 바꿀 수 있다. 그렇게 일을 해나가면서 조금씩 나은 일을 찾고 가족들과 삶을 이어나간다. 새로운 시작을 선택한 가족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그 힘든 이민의 삶을 받아들이고 점점 그곳의 일부분이 되어간다. 어떤 나라에서든 이민자들의 삶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여전히 그런 과정을 거친다.
사실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것이 꼭 이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살면서 전혀 새로운 곳에 이사 가게 되어 살게 되거나 다른 환경으로 가게 될 때 우리는 그런 경험들을 한 번쯤은 겪게 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찾아 다시 삶을 만들어 나가는 장면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서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할 때, 그 쉽지 않은 현실을 앞에 두고 가족들은 때론 서로 의견 대립을 하고 싸운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손을 잡고 서로를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새로운 곳에 온전히 뿌리내리기 위해 의지할 곳은 바로바로 옆에 있는 가족뿐이다.
영화 <미나리>는 새로운 환경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려고 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제이콥(스티븐 연), 모니카(한예리), 딸 앤(노엘 케이트 조), 아들 데이빗(앨런 김) 가족이 알칸소의 새 집에 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미국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는 제이콥과 모니카의 가족이 다시 새로운 지역 알칸소로 이주해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제이콥은 바퀴가 달린 집과 그 주변의 땅에 농장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나가려고 한다. 모니카는 병아리 감별하는 일을 하며 같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미국 대도시의 삶에 잘 적응하지 못한 듯한 이들은 새로운 곳으로 옮겨 좀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거주 환경과 주변을 본 모니카가 실망감을 토로하지만 여기서 새롭게 시작하자는 남편 제이콥의 말에 일단 그곳에서의 삶을 준비한다.
제이콥이 준비하는 농장은 그의 가족이 좀 더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제이콥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 주변의 땅에서 물을 찾는 일이다. 물길을 찾는 외부인을 불러와 살펴보거나 자신이 직접 땅을 파서 땅속의 물을 찾아 농사에 활용한다. 제이콥이 늘 물에 신경 쓰는 것처럼, 영화 속에서 물은 꽤 중요하다. 물만 잘 공급된다면 농사를 짓기 수월하고 이들 가족이 큰 불편함 없이 뿌리내려 사는데 도움이 된다. 물이 원활하게 공급되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물이 끊겼을 때 가족을 압박하는 것은 생활의 불편함 뿐 아니라 경제적인 압박도 포함된다. 그들이 목이 타는 것과 같이 마음속도 타들어가고 부부는 의견 대립으로 충돌한다.
제이콥은 자신의 농장에서 작물을 성공적으로 수확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자신의 가족들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믿고 부단히 매달린다. 반면 모니카는 실패할 수도 있는 농장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병아리 감별을 지속적으로 하길 원한다. 그리고 조금은 더 큰 도시로 이주하여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가족과 함께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기를 원한다. 두 사람 모두 가족을 위하지만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조금 다르다. 제이콥은 농장의 성공이 가족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부단히 매달린다. 당장은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자신이 그리는 안정적인 상황이 그의 눈앞에 보인다. 그래서 그는 그 농장을 포기할 수 없다. 그 농장의 성공이 바로 가족의 안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모니카는 적은 돈을 벌더라도 바로 지금 안정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을 원한다. 그래서 당장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농장일에 매달리는 제이콥과 의견 대립을 하게 된다.
그런 작은 대립에도 불구하고 모니카와 제이콥은 서로의 그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모니카는 제이콥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은연중에 만들어준다. 비록 제이콥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가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다. 또한 자신의 엄마인 순자(윤여정)를 미국으로 불러와 자신과 남편이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볼 수 있게 한다. 순자는 이 가족이 좀 더 안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윤활유이자 물 같은 존재다.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미국으로 올 때 가져온 고춧가루, 멸치 등은 밥상에 올라올 음식이 되어 가족들에게 고국의 맛을 선사하고, 그가 가져온 화투는 아이들에게 한국의 놀이가 가진 재미를 알려준다. 비록 아이들은 처음 만나는 외할머니와 데면데면해 하지만 아이들은 곧 그것에 익숙해진다. 그렇게 조금씩 외할머니는 이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어간다.
그 익숙해진다는 것이 곧 친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완전히 마음을 열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린다. 이 영화 속 데이빗과 앤 도 마찬가지다. 대화조차 잘 통하지 않는 외할머니에게 그들이 친숙함을 금방 느끼기는 어렵다. 처음 외할머니를 만난 데이빗은 연신 할머니 같지 않다며 혼자 중얼거리는데, 한국의 할머니를 처음 만났고 기대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이 일하러 간 시간, 어쩔 수 없이 외할머니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데이빗과 앤은 외할머니와 함께 집에서 조금 떨어진 냇가에 산책을 나간다. 특히 데이빗은 그 산책의 시간을 보내며 순자와 교감하고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질병도 서서히 회복해나간다. 그렇게 모든 가족의 마음속에 익숙함이 자리해나갈 때 비로소 그들이 그곳에 정착할 수 있는 기운이 만들어진다.
<미나리> 속 특별한 장면들은 대부분 외할머니 순자와 데이빗이 만들어낸다.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은 짧은 한국어와 영어를 통해 이야기하는데 냇가 옆에서 데이빗과 부르는 원더풀 미나리 송에서도 정감이 느껴지고 티격태격 장난치는 듯한 두 사람의 행동도 웃음을 짓게 한다. 또한 순자는 데이빗이 눈에 보이는 위험을 보이는 곳에 놓고 관리하게 만드는데 이것은 심장병이 있어 늘 뛰기를 두려워하는 데이빗에게 그 위험을 직면하며 관리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데이빗은 마음도 몸도 서서히 치유가 되어간다 이 영화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면 외할머니와 손주가 만들어낸 이런 앙상블 때문일 것이다.
순자는 고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를 냇가에 뿌려 미나리를 키운다. 물만 있으면 잘 자라는 미나리는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니카와 데이빗 가족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가족에게 물만 있으면 농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큰 문제없이 정착할 기회가 만들어진다. 영화 후반 군집을 이루어 아주 잘 자라는 미나리의 모습은 어쩌면 이 가족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는 이들 가족이 잘 정착하여 살게 되는지, 농장 운영은 성공하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그곳에 정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어떤 마음인지는 잘 보여준다. 결국 다섯 명의 가족이 결코 떨어질 수는 없고 앞으로도 같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존재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타오르는 농장에 뛰어든 제이콥과 모니카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들은 싸운 직후였고, 이별의 결심까지 한 후였다. 하지만 남편이 노력하여 얻은 결과물이 타오르자 그것의 일부라도 구하고자 이리저리 물건을 불 밖으로 빼는 모니카의 모습에서 남편의 노력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지고 그들이 결국 같이 그것을 해결해 나갈 것임을 보여준다.
가족의 고난사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영화 <미나리>는 긍정적인 영화다. 잠깐씩 모습을 비추는 알칸소의 이웃과 교회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그들에게 호의적이다. 유일한 동양인이라는 점 때문에 다르게 받아들여지지만 조금은 신기하게 바라보고 친해지려 다가선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폴(윌 패튼)은 특이한 행동을 하는 이웃으로 등장하지만 결코 나쁜 인물이 아니다. 이해 못할 행동을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제이콥의 농사가 잘되길 빌면서 일손을 돕는다. 악의 없이 이 가족이 그 땅에 정착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어쩌면 영화 속 그의 주술이 실제로 가족의 마음이 안정되도록 심리적인 도움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덕분에 농작물 수확도 잘할 수 있었고, 집안에 나쁜 일들도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가 되었으니까. 이민자들 주변에 있었던 좋은 이웃들의 모습을 폴이라는 인물이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폴이 이민자인 그들을 이상하게 취급하지 않은 것처럼 가족도 폴을 하나의 이웃으로 대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각기 다른 포인트에서 공감하며 관람할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부부의 이야기, 어떤 사람은 외할머니와 손주들의 이야기 그리고 본인이 이민자라면 이민자 자체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분명 이민자들의 경험이 담겨 있지만 아주 보편적인 가족의 정서를 담고 있어 널리 공감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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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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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하게 빠져드네… 134개국에 판권 선판매한 K-좀비물
6★/10★
한국에서 나온 것이 세계적 관심을 끌 때 우리는 그 앞에 ‘K’자를 붙인다. K팝, K콘텐츠, K방역, K뷰티, K콘텐츠 등등. 그중 ‘K좀비’라는 표현도 있다. 탄탄한 각본, 박진감 넘치는 액션에 자본을 곁들인 〈부산행〉, 〈킹덤〉,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이 국제적 성공을 거둔 후 등장한 말이다. 그리고 여기, ‘K좀비’의 계보를 잇겠다고 나선 영화가 있다. ‘B급 코믹 좀비 액션’을 표방하는 〈강남좀비〉다.
〈강남좀비〉는 강남 한복판에 자리한 대형 건물에 좀비가 등장하며 생기는 일을 담은 영화다. 현석은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이었으나 지금은 직원 월급과 사무실 월세조차 밀리는 조그만 영상 콘텐츠 기획 회사에서 일한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민정은 제법 능력 있는 영상 편집자지만 아직 별다른 경력이 없어 경험을 쌓고자 한다. 남몰래 민정을 좋아하는 현석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민정에게 데이트를 신청하지만 거절당해 조금은 침울한 상태다. 그 와중에 회사 사장이 민정에게 은근슬쩍 성추행을 일삼아 분통이 터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좀비가 등장했으니 줄거리를 예측하는 게 그리 어렵진 않다. 현석은 태권도 국가대표 상비군답게 고군분투하면서도 좀비 떼들로부터 회사 직원, 특히 민정을 멋지게 구하고 민정 역시 그런 현석에게 조금씩 의지하며 마음을 연다. 영화의 중심이 되어야 할 좀비 액션도 기대 이상이다. 저예산으로 만든 좀비 영화이 액션과 블록버스터 좀비 영화‧좀비 드라마의 액션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 최초의 좀비 감염자를 연기한 조경훈 배우의 열연, 흰자를 보이지 않게 한 좀비 분장, 배우들의 노력으로 채운 좀비 액션은 분명 적당히 즐길 만한 정도다.
영화가 표방하는 B급 정서도 포인트다. 흥미로운 건 영화가 웃음을 주고자 의도한 장면에서는 헛웃음이 나고, 영화가 진지해지고자 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난다는 점이다. 즉 〈강남좀비〉가 의식적으로 표방한 B급 연출은 다 빗나간다. 그러나 진지한 감정선을 만들려 할 때는 오히려 B급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억지로 세태를 욱여넣은 장면과 장르 영화의 클리셰가 뒤섞인 장면을 보기가 조금 민망했다. 하지만 그런 장면들이 저예산 영화의 공백을 기묘한 방식으로 채워내 의도치 않은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내는 데서는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오프닝 액션을 보며 나온 ‘아……’ 하는 탄식이 ‘이 영화, 왜 재밌지…?’라는 당혹스러운 물음으로 전환될 때쯤부터, 나는 〈강남좀비〉를 기꺼이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134개국 판권 선판매가 그에 상응하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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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WIFF 데일리] 개별성을 뭉뚱그리지 않는 가족 모델
귀환/Homecoming
카트린 코르시니/프랑스/2023/108min/'새로운 물결' 세션
케이디자는 부유한 파리지엥 가족의 아이들의 보모로 여름 동안 코르시카섬에 머물게 된다. 10대인 두 딸 제시카와 파라를 데리고, 케이디자는 15년 전 비극을 피해 도망쳐 나온 그 섬으로 돌아간다. 2023년 제76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서울국제여성영화제)
어린이 한 명은 손에 잡고 갓난아이 하나는 품에 안은 흑인 여성 케디자. 그녀는 긴장된 표정으로 자동차를 타고 이동 중이다. 차가 선착장에 도착한다. 그때 전화가 온다. 케디자는 무너져 내린다. 눈물을 흘리며 두 아이를 끌어안는다. 그리고 15년이 흘렀다. 유람선에 오른 케디자의 옆에는 그새 성장한 두 딸 제시카, 파라가 있다. 파리에서 보모로 일하는 케디자의 고용인이 코르시카 섬으로 휴가를 떠나며 케디자와 그녀 가족에게도 동행을 권했기 때문이다. 케디자에게는 출장과 휴가를 겸한 여정이다. 15년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코르시카섬을 떠났던 케디자와 마냥 들뜬 두 딸. 15년 전 그들이 떠나온 장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관한 호기심을 촉발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셋은 코르시카에서 나름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흑인을 모욕하는 현지의 백인 남성, 고용인의 별장에 초대받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다가도 케디자가 보모 일을 해야 하는 순간으로 인해 긴장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가난한 흑인 가족인 세 모녀에게 이 정도는 그냥 넘길 수 있을 만한 일이다. 꽤나 즐길 만한 휴가가 이어진다. 제시카와 파라 역시 나름의 방식으로 휴가를 즐긴다. 제시카 고용인의 딸과 연인이 되고, 파라는 자신에게 못되게 굴었던 백인 남자와 미움과 애정이 뒤섞인 기묘한 관계를 형성하는 중이다.
그러던 중 사건이 생긴다. 첫째는 엄마가 죽었다고 말한 친할머니가 실은 코르시카섬에서 멀쩡히 살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파리의 좋은 대학에 들어간 제시카가 엄마와 동생을 부끄러워하며 그들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내용을 적은 일기를 파라가 발견한 일이다. 즐거운 한때를 보내던 세 모녀는 갈가리 찢기고 각자에게 위안을 주는 사람들에게로 향한다. 엄마의 비밀과 문화/계급 상승 욕망이 단란하고 단단했던 세 모녀 사이의 틈을 파고들어 헤쳐 놓는다.
그리고 위기 끝에 세 모녀는 다시 한 자리에 모인다. 케디자는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으나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견딜 수 없었고, 이를 딸에게 물려주기 싫어 코르시카를 떠났다. 제시카는 자신이 동경하던 세계가 그리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엄마의 진심을 확인한 후 다시 돌아온다. 파라 역시 말썽을 부리고 멋대로 굴면서도 자신이 엄마, 언니와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2023년 제76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귀환〉은 세 모녀의 개별 서사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이들을 뭉뚱그리지 않고 관계성으로 다시 엮어낸다. 즉, 개별성과 관계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로서의 여성 가족의 모습을 그려낸다. 누구의 서사도 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고 존중되기에 그들이 엮였을 때의 감동도 배가 된다. 〈귀환〉은 강요된 희생과 역할이 아닌 이타적 욕망과 서로 다른 존재의 결을 품는 가족 모델을 상상하는 데 훌륭한 밑절미가 되어주는 영화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5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8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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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우리의 망각 속에서 계속되는 다음의 피해자
[BIFF 데일리] 우리의 망각 속에서 계속되는 다음의 피해자
영화 다음, 소희 리뷰
감독] 정주리
출연] 김시은, 배두나
시놉시스] 소희(김시은)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인터넷 회사 콜센터에 현장실습생으로 취직한다. 소녀는 대기업에 취직했다며 들뜨지만, 실상은 기대와 다르다. 노동 착취가 예사로 일어나는 콜센터는 그야말로 노동 지옥이다. 그곳의 잔인한 현실은 암울한 사고로 이어지고, 형사 유진(배두나)은 악착같이 진실을 좇는다. 그러나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 앞에서 그녀는 무력함을 절감한다.
특성화고 고교생들의 현장실습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올해만 해도 현장 실습 도중 사망하는 사건이 여럿 발생했지만 이에 대한 조치가 명확히 이뤄졌는지에 대한 후속기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면서 다시 망각의 길로 걸어가고 있는 것이 특성화고 고교생들의 현실이 아닐까 싶다.
다음이라는 묵직한 말
영화 <다음, 소희>는 영화 제목이 주는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이 작품에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소희의 죽음을 통해서 특성화고의 현장실습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경찰 유진은 깨닫지만, 자신의 손으로 바로잡기에는 이미 작동하고 있는 사회 시스템을 멈출 수가 없기에 좌절한다. 이 문제를 여기서 바로잡지 않는다면 소희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소희와 같은 아이들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지만, 정량적 평가라는 교육부의 사회적 시스템으로 인해 이 체제가 무너지지 않는 이상 개인이 현장실습을 나가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진은 죽어버린 소희의 유품, 핸드폰에 유일하게 있었던 춤연습 동영상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어른으로서 아직 꽃도 피지 못한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었을까. 경찰이라는 공무원이었지만 유진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남아있는 현장실습생들을 챙기는 것이었다. 유진은 그렇게 소희가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소희와 함께 춤동아리에서 춤을 추었던 1년 선배를 찾아간다. 같은 현장실습생으로 공장에서 일했지만 사고를 쳐서 택배 물류 작업을 하고 있었던 그에게 유진은 힘든 게 있느면 털어놔도 된다며 누구에게든 말하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자 고맙다며 눈물을 흘린다. 현장실습생이라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사내에서 힘들다는 말을 하지도 못했던 이들이기에 당장의 시스템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따뜻한 이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큰 위로와 안식처로 다가왔을 것이다.
아직 이 문제들을 양산하는 사회적 시스템은 그대로 작동 중이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으면 이와 같은 일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아이들은 점점 더 사지로 몰릴 수밖에 없음을 ‘다음’이라는 지목을 통해서 완강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정량적 평가가 만든 악의 굴레
우리가 실적을 평가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정성적인 방법과 정량적인 방법이 있다. 하지만 정성적인 평가의 경우에는 객관적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은 정량적인 평가를 한다. 영화 <다음, 소희>에서는 꾸준히 객관적인 수치에 대한 질문과 그 속에서 배제되고 있는 정성적인 부분이 부각되어 등장한다. 특성화고 특성상 그 해 졸업생들의 취업률이 실적으로 이어지기에 학생들을 공장, 콜센터 등 다양한 곳으로 현장 실습을 내보낸다. 이 아이들의 성격이나 적성, 장래희망을 고려한 것이 아닌 비료공장, 사료공장 등 인력이 필요한 곳이면 내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를 보고 유진은 이게 어떻게 학교냐며 인력사무소 아니냐고 따지지만 취업률을 보고 지원금을 받는 특성화고 특성상 학생들을 유치하고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취업률에 목을 멜 수밖에 없다고 되려 한탄한다.
이에 유진은 교육청으로 향한다. 하지만 교육청에서도 마찬가지다. 장학사는 지방 교육청의 경우 교육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데 다른 지방과의 경쟁에서 밀릴 경우 그 지원금이 낮아지고, 그 경쟁은 특성화고는 취업률, 일반고는 대학진학률로 지표가 설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지원금을 못받으면 당장 문을 닫아야 하는 학교가 생기는 마당에 어떻게 아이들의 성격과 적성을 다 반영하고, 모든 것을 다 갖춘 곳으로만 취업을 보낼 수 있냐며 반문하면서 이것이 현실이라 유진에게 말한다.
유진은 그 앞에 좌절한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정성적인 부분을 강조하면서 시스템과 싸워보고자 노력했지만 저 위에 있는 교육부까지 가서 따져봤자 이 정량적인 평가의 기준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정량적인 평가는 굉장히 객관적이다. 누구나 보면 이해가 되고 납득이 된다. 하지만 그 정량적인 평가만을 강조하다보면 목적과 수단의 전치현상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이런 정량적인 평가 속에 갇힌 우리 사회의 모습을 학생과 사회인 이 중간 지점에서 모두에게 외면받은 현장실습생을 통해 다시 한 번 꼬집어주고 있었다.
영화 <다음, 소희>는 우리의 망각 속에서 어떤 이들은 계속해서 사지에 몰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다음이 계속된다는 것을 묵직하게 잘 풀어낸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