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tto2024-12-12 01:33:55
사소하지 않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 리뷰
스크린 밖의 상황과 안의 상황이 겹쳐 보이면서 영화가 성큼 다가올 때가 있다.
간밤에 아주 짧은 잠을 자고 모인 극장에서도,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공감하고 용기를 준다.
‘사소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려 주지 않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미 ‘사소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개인을 지탱하는 과거와 기억, 읽은 책, 받았던 선물, 충격과 후회가 바로 그것이다. 정의롭고 용기있는 행동은 어떤 대의나 대단한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이런 것들이 모여서 가능하다는 것을, 목격하고 나서 모른 척 하지 않고 행동하게 되는 이유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 주변 사람들은 행동을 만류한다. 소동을 일으키지 말고, 현재의 평화를 유지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개인을 구성하는 ‘사소한 것들’ 중 하나인, 밤에 잠 못들게 하는 질문 사이에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고통이 끼어든다. 그리고 나서 내린 결정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한 사람의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만큼 커다란 정의로 거듭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결코 사소하지 않은 용기를 다룬 작품이라는 안내는 관객들을 기꺼이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클레어 키건이 써내려간 강력한 이야기, 주인공의 충돌하는 내면과 혼란을 스크린 위에서 보는 경험은 그녀의 글을 두번, 세번 읽는 것 만큼이나 큰 울림을 준다. 관객을 붙들어 두는 이런 힘은 문학과 영화가 연결될 때 발생하는 신비한 효과이기도 하다. 극장을 나서며 더 많은 사람들이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 용기를 전해 받기를 원하게 된다.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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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는 본분을 지켜야만 챙길 수 있는 명예
원작이 있다는 건 불안정한 흥행에 있어 고정적인 수요층을 보증하지만, "게임"이라면 달라진다.
2023년 기준. "게임"으로 제작된 영화들 중에서 <수퍼 소닉 2>만이 유일하게 북미 2억 달러를 넘겼을 정도로 흥행에 어려움을 겪는 장르인데, 완성도마저 크게 다르지 않다. - <던전 드래곤, 2000>의 악역으로 등장한 "제레미 아이언스"의 출연 배경에 "돈"이라는 대답이 나왔으니...
그렇기에 이번 프로젝트를 맡은 "조나단 골드스타인 - 존 프란시스 데일리" 감독에게 거는 기대감은 다르다! - <베케이션, 2015>과 <게임 나이트, 2018>의 연출 외에도 <스파이더맨: 홈커밍, 2017>의 각본까지 맡았던 사람들이다!아꼈던 동료들에게 배신을 당해 감옥에 있는 "에드긴"과 "홀가"는 탈옥에 성공한다.
바로, 복수를 꿈꾸지만 계획을 이루는 데에 있어 동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새로운 팀을 꾸리는데...1. 떠오를 듯 말 듯 한 장면들의 피날레
앞서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를 "원작"이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지만, 알지 못해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캐릭터 구성과 이야기의 구조까지 모든 것들이 어디선가 봤던 기시감을 주니 말이다!
원작이 되는 게임 "던전 드래곤"의 출시 연도(1974년)를 보면, "원조"라고 볼 수 있지만 영화로는 가장 후발 주자가 아닌가? -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클리셰"와 "짜깁기"로 보이겠지만 오히려 좋은 말이다!먼저, 영화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케이퍼 무비"의 공식을 따라간다.
이런 영화들이 그렇듯이 "팀업"을 목적으로 많은 캐릭터들을 등장시키는데, 각 캐릭터들에 단면적인 부분만을 제시한다. - 예를 들면, 두뇌 담당과 행동대장 같은...
그리고, 다음으로 선택한 "판타지"는 그 작품만의 설정을 관객들에게 소개하고 설명하는 데에 큰 분량을 할애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클리셰"와 "짜깁기"는 진부하게 해당 작품을 진부하게 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하지만, 영화는 이런 "기시감"을 즐기는 느낌이다?
극 중. "젠크"의 모습은 <토르: 라그나로크, 2017> 이전의 "토르"를 연상케하며 마지막 악당의 최후는 <어벤져스, 2012>에서 "로키"와 "헐크"의 장면을 떠오르게 만든다.
물론, 모든 장면들을 다른 영화들에서 가져오는 건 아닌 게 날렵한 드래곤을 통통하게 만들어 날아다니는 모습보다 굴러다니게 만든다.
이는 설명으로 늘어질 것만 같은 이야기에 유머를 가미해 재밌어야 하는 영화의 본분을 지켜내는 것으로 보인다.2. 재밌어야 챙길 수 있는 명예
이외에도 "판타지"라면, 응당 나와야 하는 크리처와 마법까지 기대하는 그림들을 보여줘 <던전 앤 드래곤: 도적들의 명예>는 그 이상을 노리기는 힘들어도 제 역할을 하는 영화이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을 찾아본다면 메인 빌런으로 등장하는 "소피나"와 "포지"의 합이 아닐까?
극 중.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는 "소피나"와 능글거리는 "포지"의 모습이 똑같다고 볼 수 없지만 두 악당 캐릭터들의 최후는 비슷했다.그럼에도, "소피나"보다 "포지"가 기억에 남는 이유에는 단순 설명의 부족을 떠나 '얼마나, 망가지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아무튼, 메시지 전달에 심취한 영화들 사이에서 오락 영화의 본분을 지켜낸 이 영화야말로 명예로운 작품이라 생각한다!· tmi. 1 - 쿠키 영상은 1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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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토록 찾고 헤매던 퍼즐 한 조각
이 글은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시사회에 씨네랩크리에이터로서 참석 및 관람 후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원작을 읽고 감상하시면 좀 더 재밌게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사진제공:씨네랩
연말에는 힘이 있다.
생각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어느덧 흘러버린 시간 앞에서 허탈함을 안겨주는 힘. 한 해를, 혹은 인생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힘.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앞에서 꿇은 무릎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힘.
심장이 뛰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오는 이 손님은 두리번거리다 손아귀를 뻗어 이번엔 빌 펄롱(킬리안 머피)을 잡아당겼다. 하릴없이 공허한 눈으로 굽이굽이 걸어온 열두 장의 달력을 톺아보는 내내. 그의 숨소리는 마치 그를, 그리고 그의 인생을 대변하는 듯했다. 작고 유약했으며, 필사적이었다. 비록 미미할지언정 이렇게 삶의 증거를 뿜어내고 있건만. 그는 어쩐지 자신이 그저 살아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수녀원에서의 그 일 이후 더 강해졌다. 석탄 창고에 물건을 채우는 내내 그는 자신의 눈앞에서 새겨지고 있는 일을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곁눈질조차 눈치가 보이는 것처럼. 그는 시선을 내리깐 채로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자신이 숨소리가 거슬린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은.
사진제공:씨네랩
새벽이야.
석탄 창고에 갇혀있는 세라의 물음에. 펄롱은 그렇게 대답했다.
석탄 가루를 뒤집어쓴 채 떨고 있는 아이에게서, 문득 펄롱은 자신의 어머니를 보았다. 그리고 어머니를 떠나보내던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약했던 자신도 보았다. 소녀를 바라보는 그때만큼은, 펄롱의 시선이 아래로 가라앉지 않았다.
펄롱은 어머니와 어린 자신의 모습을 만나는 동안, 숨죽여 가만히 다가온 윌슨 부인의 기억을 마주했다. 비록 그는 아이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서 그 어떤 비난도 들은 적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말이 윌슨 부인을 비롯한 어머니와 자신에게 눈총이 쏟아지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리라. 그저 그 손가락질들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윌슨 부인이.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가 보호해 준 것임을 펄롱은 세라라는 거울을 본 순간 깨달았다.
세라에게는 펄롱의 등장이 새벽의 신호가 되었으리라. 해가 뜨기 전 가장 어둡지만. 이제 밝아지는 것 외에는 남지 않은 상태. 감히 희망이라 불러도 될까. 자신의 어둠이 다 물러갈 수 있을지 점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세라가 펄롱을 보며 큰 숨 한 번은 쉬게 할 시간을 벌어주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펄롱은. 자기 자신에게 그 순간이 새벽이 될지. 아니면 또 다른 밤의 시작이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번. 목소리 가득 용기를 실어 내뱉었다. 마치 자신에게 다가올 모든 먹구름들도 사라지기를 바라는 듯한 마음으로.
새벽이야.
사진 제공:씨네랩
펄롱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직소 퍼즐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받은 것은 보온 물주머니였다. 왜 그런 것 하나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인지. 어린 펄롱은 이해할 수 없어 억울하고 분한 눈물을 흘려야 했다.
제대로 걸을 수 조차 없이 지친 소녀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이 길목에서, 펄롱은 깨달았다. 자신은 인생이라는 퍼즐을 이미 선물로 받았음을. 삶의 그 모든 여정마다 숨어 있는 조각조각들을 자신의 손으로 다 찾아 퍼즐을 채웠음을. 그리고 지금 자신이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마지막 조각이 자신의 품 안에서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음을.
새벽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가는 두 사람에게 꽂히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겨울 추위만큼이나 날카로웠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이 되어서야 펄롱은 자신이 내쉬는 숨이 자신의 인생과도. 마음의 울림과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의지대로 살아쉬는 순간을 어쩌면 처음으로 맞이했을 펄롱은 그 시선들에게서 눈을 돌리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펄롱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마지막 조각으로 인해 퍼즐이 맞춰지고 나면. 다음 퍼즐판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임을. 또다시 산산조각 난 채 쌓여있는 조각들을 맞추느라 자신의 인생을 담보로 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때가 되어 또 한 번 연약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이제는 내리깔던 턱을 조금은 더 당당하게 치켜들 수 있을 것이며. 그 작은 것들이 모여 결국은 또 지긋지긋한 인생의 퍼즐을 완성할 것임을.
펄롱은 투박하지만 진실된 손을 세라에게 내밀었다. 파들파들 떨던 퍼즐의 손을 잡으며 느낀 온기는. 다시 한번 그의 숨소리가 그의 마음과 동일한 색임을 알게 해 주었다. 그토록 황망하게 찾던 것을 손에 쥔 채. 펄롱은 그제야 웃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마음처럼. 따스하고. 온화하게.
마치면서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고. 용기는 한 번에 생기지 않는다. 언제나 그것을 생각하고 실천하려는 자에게만 찾아온다. 영화에서 이런 사소함이 쌓이는 장면은 펄롱이 손을 씻는 행위로 표현된다.
석탄회사에 종사하기 때문에 더러움을 씻어낸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사회적인 모습을 벗은 자신의 본모습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렇기에 펄롱은 그토록 정성 들여 손 씻는 도구들을 관리하고 공들여 손을 씻는 것이겠지.
분명히 영화 뒤편의 모습이 해피엔딩은 아닐 것이다. 또한 펄롱이 세라를 제외한 나머지 소녀들을 (불타는) 수녀원에서 탈출시키는 일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펄롱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세라의 인생 전체를 바꾸었다. 한 사람의 세상을 바꾸는 것만큼이나 큰일이 과연 있을까.
[이 글의 TMI]
1. 킬리언 머피의 연기가 너무 섬세해서 좋았음.
2. 내복 입으면 덥고. 벗으면 춥고. 어쩌란 말이냐. 날씨야.
3. 푸바오 아프지 마.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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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끔한 액션의 교본, 마무리를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타이머
📽️ 언젠틀 오퍼레이션 (2025)
감독: 가이 리치
출연: 헨리 카빌, 앨런 리치슨, 알렉스 페티퍼 외
서부극은 미국의 역사 중 서부 개척사를 소재로 한 영화나 극을 말한다. 그런데 미국도 아닌 영국, 그것도 땅 위가 아닌 바다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서부극의 향기가 난다면 어떨까. 서부극이 하나의 장르로 떠오른 것은 서부개척시대라는 배경 때문도 있겠지만, 한 시대를 바탕으로 둔 시원한 액션과 야성미, 의리와 배신이 절묘하게 섞여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틀 오퍼레이션>에서 서부극의 향기를 느꼈던 것 역시 그러한 요소 때문일 것이라 추측한다.1940년대, 세계 2차 대전. 나치를 앞세운 독일은 유럽 전반을 집어삼키려고 하고 있었고, 영국의 함락 역시 머지않은 상황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미국군을 자국군에 합류시켜야 했던 영국은 하나의 비책을 낸다. 비밀 특수 부대를 보내 독일의 비밀 병기인 U 보트를 무력화시킬 것! 이 모든 일은 실제 사건에 기반하고 있다.비밀 특수 부대는 '거스 마치'를 필두로 만들어진다. 통제 불능의 미친개, 지옥에서 돌아온 근육질 군인, 냉철한 폭발물 전문가, 암살이 주특기인 미인계 특수 요원.... 뭐 하나 불필요한 캐릭터가 없다. 그들은 그들의 자리에서 묵묵히 제 몫을 해낸다. 제목에 붙은 '언젠틀(Ungentle)'의 의미처럼 그들은 다소 무자비하지만, 시원하고 깔끔하게 표현된 액션 덕분에 크게 잔인하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속도가 붙은 액션에 통쾌함을 느낄 뿐이다.실제 사건에 기반한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어떤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가"보다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가"에 더 초점을 맞춰 보아야 한다. 작전 중에 발생한 돌발 상황이나 통제 불가한 변수들을 돌파해 나가는 주인공들을 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팀워크를 확인할 수 있고, 우리는 그런 원팀을 눈으로 지켜보며 우리 역시 그들에게 동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제리 브룩하이머의 원팀 전략은 이미 <캐리비안의 해적>과 <탑건>을 통해서도 증명된 바 있다. 관객은 점차 그들에게 동화되다가, 어느 순간 그들과 하나됨을 경험한다. 화면 안과 밖을 유대감으로 단단히 연결해 관객을 이탈하지 못하게 하고, 새로운 연출로 오감을 즐겁게 하면 관객은 만족하며 극장을 나갈 수 있다. 이러한 제리 브룩하이머의 전략에 <알라딘>, <셜록 홈즈>를 만든 가이 리치 감독의 깔끔한 연출이 붙어 탄생한 영화가 바로 <언젠틀 오퍼레이션>이다.세계 최초의 블랙 미션, 역사를 뒤집은 녀석들이 보고싶다면 바로 이곳이다.*해당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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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심받고 고통받은 고라니에게 심심한 사과를-1
<부산행>은 한국 영화가 '좀비 영화'도 잘 만들 수 있구나 칭찬받은 영화이다. 사실 그동안 보았던 한국형 좀비 영화는 많지도 않았지만 예전에 봤던 <좀비 스쿨>이 너무 실망스러워서 다시는 좀비 영화를 보고 싶지 않은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이 아닌가.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연상호 감독의 작품은 영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이었다. 스토리보드, 각본, 감독 등등등을 맡았던 <돼지의 왕>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기도 했고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이 이제 다시 괜찮아지려나 기대한 작품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 개봉하기는 했지만 <부산행>의 프리퀄이 애니메이션 <서울역>이라는 것에도 흥미가 있었다.
영화 자체는 좀비로 세상이 망해가는 아포칼립스 영화이기 때문에 한국형 신파가 들어가는 것 외에는 다른 좀비 영화들과 큰 차이는 없다. 공유가 잘생기고 마동석의 방어력과 공격력이 만랩인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방역 중이라는 안내가 있고 동물을 운반하는 것 같은 차량이 소독을 받는다. 뉴스에서 많이 본 장면이다. 아마 구제역 방역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운전자는 또 돼지들 잡아다가 싹 파묻는 거냐고 물었고, 담당자는 구제역이 아니라 바이오단지에서 뭐가 쬐금 새어 나왔다고 한다.
공무원을 불신하는 운전자이자 농장주는 전화를 받으려다가 무언가를 친다. 고라니다. 크고 예쁜 눈망울을 지닌 고라니. 누구나 그렇듯 로드킬 당한 고라니를 그냥 두고 '재수 없다'면서 가버리고 죽은 줄 알았던 고라니가 요상한 눈빛을 띠며 깨어난다. 좀비 고라니의 탄생이다. 영화마다 다르겠지만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에서 동물은 좀비로 변하지 않는다.
영화가 이렇게 시작하다 보니 바이오단지에서 쬐금 세어 나왔다는 것에는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다. 고라니가 좀비가 된 것은 아마도 그곳에서 새어 나온 어떤 물질 때문이었을 텐데 이상하게도 '퍼뜨린 것은 고라니'라는 인식이 더 강하게 남게 되는 것이다. 이 모습은 지금의 온갖 동물 질병과 연결되어 있다.
앞서 이야기한 구제역도 바이러스에 의한 동물 질병이다. 공기를 통해서 호흡기로 감염되는 전염성이 매우 강한 바이러스다. 사람도 독감에 걸릴 수 있는 것처럼 동물도 병에 걸릴 수 있다. 하지만 동물은 말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질병에 걸리고 병세가 나타나야만 병에 걸린 것을 알 수 있게 되고, 이를 인간이 꼼꼼하게 보지 못하면 그 역시도 알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구제역이 발병하고 강한 전파력으로 퍼져나간 것에 대해서는 인간의 잘못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축산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우리나라의 축산 방식은 '공장식 축산'이라고 불릴 만큼 좁은 공간에 여러 마리의 동물을 넣고, 비 청결한 상태이다. 사실 돼지는 엄청나게 깔끔을 떠는 동물인데, 사람들이 더럽게 키우다 보니 더럽다는 편견이 생긴 것이기도 하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공기로 전염되고 전염력도 높은데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집단으로 발병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요즘은 동물복지를 시행하는 농장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어서 동물들이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운영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변호에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도 한몫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발병한 돼지들을 모두 살처분하였다.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살아있는 돼지를 그냥 땅에 묻어버린 것이다. 방법이 없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 잔인하게 굴었어야만 했던 것일까? 이렇게 묻힌 돼지는 죽고 부패하면서 피와 고름, 분비물 등을 내뿜는다. 이를 침출수라고 부른다. 땅에 묻기 전에 바닥에 방수포 등 침출수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처리한다고는 하지만 살아있는 돼지가 그냥 가만히 죽기만 할까. 살려고 몸부림치면서 방수포가 찢어져서 유출되는 사례는 구제역 이후에 꼭 발생하는 일이다.
이렇게 흘러나온 침출수가 지하수 같은 식수원으로 흘러들고, 병에 걸린 동물의 사체를 다른 야생동물이 먹는 상황들도 발생한다. 이런 상황은 인간이나 동물들에 다른 질병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발생지역보다 먼 곳으로 질병을 옮기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바이러스는 자연재해라고 볼 수 있어도 이후에 발생하는 일들은 인재다.
앞서 정말 싫었다는 영화 <좀비 스쿨>에서도 좀비의 원인을 구제역으로 인해 파묻힌 돼지에서 발생한 침출수인 것처럼 그렸다. 물론 돼지가 인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같은 이상한 전개였지만 그래도 바이러스의 원인을 동물에게서 본 것이다.
최근에 발생한 바이러스들도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조류독감이라고 불리는 AI, 아프리카돼지열병, 코로나 모두 매개체는 야생동물로 알려져 있다. 야생동물은 병에 걸리고 싶어서 걸렸을까?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는 알지 못해서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인간의 생활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하다 보니 병에 걸린 야생동물들이 역적이 되어버리고 있는 상황이다. 철새가 날아오는 시기에는 양계농장에 조류독감이 오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해야만 하고, 아프리카돼지열병 때문에 먹이를 구하러 민가로 내려온 멧돼지는 모두 사살당하고 있다. 코로나가 창궐하자 박쥐는 혐오스러운 동물이 되었고, 천산갑은 보호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물론 개인적으로 천산갑을 중간숙주로 이야기한 것은 워낙 밀렵이 많이 되다 보니까 못 다가가게 하려고 일부러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말이다.
야생동물이 가지고 있는 병이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인간에게 전염성이 있는지 모두 알 수 없다. 아마 끝까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의 시기에 이렇게 많은 질병이 나타나게 된 것인지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하다. 인간들이 야생동물들의 영역을 침범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야생동물들의 질병이 인간들에게 다가온 것이 아니고 인간들이 질병에게 다가간 것이다. 이런 질병은 인간 세계에, 인간들의 축산시스템에는 치명적이었던 것이고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준비가 되지 않은 인간들은 '탓'해야 할 것이 필요했고, 이 화살은 야생동물에게 향했다.
그들은 잘못이 없다. 그들은 병에 걸렸을 뿐이고, 사람처럼 고쳐주는 의사가 없었을 뿐이고, 배가 고파서, 다만 길을 건너고 싶어서 인간의 삶으로 들어왔을 뿐이다.
부산행의 야생동물 이야기는 조금 더 할 예정이다. 바이러스에 의해 좀비가 된 상황에서조차 로드킬을 당하고 수습조차 되지 못한 억울한 고라니의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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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범인류적인 문제를 다룬 코미디
영화 좋아한다고 하니 어떤 분이 내게 이 영화를 추천해 주셨다. 다만, 뇌를 빼고 봐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이 영화는 코미디영화인데 내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나만 이상해지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좋은 인상은 아니었지만 끝까지 보게 되었던 이유는 여성 주연 4명의 개성이 각기 달랐고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들에 대한 생각, 또한 그들 자신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으로서의 자각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도 인종적 비주류로 살아본 적 없어서 영화에서 그들을 묘사한 지점이 정확했는지는 알길이 없지만 말이다.
1. 핫한 키워드들의 집합
이 영화는 핫한 키워드들은 다모아놓았다. 인종차별, 특히 아시아인 차별, 바디 포지티브 운동, 미국 사회 속에서 받아들여지는 k-pop 등등. 그런데 모든 키워드에 깊이가 느껴지진 않는다. 뭔가 대단한 혁신적인 내용인 척 하는데, 사실 모든 내용이 클리셰이다. 백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동양인에 대한 클리셰가 가득 담겨 있다. 그리고 미국 사회에서 핫하게 떠올랐던 바 있는 '내 몸을 사랑하자' 운동에 심취한 롤로는 내 몸을 사랑하다 못해 욕망에 과도하게 솔직하다. 욕망에 솔직한 것은 좋지만 모든 대사가 그런 쪽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캐릭터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모든 캐릭터가 다 가볍게 그려지지만 그 와중에 범생이로 나오는 오드리 마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아닌 척하지만 사실은 남자에 관심도 많고, 성공에 욕심도 많고, 뭐 하나 제대로 버리지도 못하면서 다 가지고 싶어하는 약간은 위선적인 캐릭터로 보인다. 이기적인 행동을 해도 이해가 되는 캐릭터들도 분명 있는데, 오드리는 표면적으로는 선해 보이지만 크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엄마를 찾고 싶으면서 솔직하게 표현하지도 않고, 마치 롤로 때문에 엄마를 찾아야만 한다면서 남탓하는 모습에서, 그 솔직하지 못한 모습 때문에 오드리에게 이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시아 여성 주연 4명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면서,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야 하는 그녀들의 캐릭터를 코믹 그 이상의 어떤 매력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지점이 이 영화의 인종차별적인 시선이 아닐까 싶었다. K팝을 사랑하는 한 캐릭터는 미국 사회에서 일종의 찐따로 분류되며 주류 문화에 편승하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다.
2. 차별은 의도보다는 무지가 아닐지
성공한 변호사가 된 오드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배려의 말을 듣는다. 생김새는 아시안이지만 미국인의 사고방식을 가진 그녀에게 회사 사람들은 같은 미국인으로서 대우하지만은 않는 느낌이다. 오히려 차별하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낙인찍고 겉으로 티내지 않으면서도 은연 중에 더욱 심한 인종차별을 남발한다. 미국이 그녀에게 고향일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채 중국에 가게 된 그녀에게 모국에 가게 되어 기쁘겠다는 둥 소위 친절한 개소리를 시전한다.
뭔가 묘하게 기분 나쁜데 상대의 표면적 의도가 나름의 친절이라서 앞에서 쌍욕도 박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뭐랄까 나는 중국 음식 좋아한다고 외치면서도 그 중에서 덴뿌라를 제일 좋아한다고 하는 격인데 그걸 듣고 있는 나는 어떤 대처를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분명 의도가 있는 차별도 있겠지만 그냥 몰라서 하는 소리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종차별을 하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난 비주류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는 인격자'라는 자부심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 영화는 비단 백인들의 차별만 그리지 않는다. 아시안들 사이의 편견도 있음을 보여준다. 저기 시끄럽고 똑같이 생긴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라는 둥 말하는 롤로를 보면 인종차별은 백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단일민족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인들 조차 한 사람을 바라볼 때 더이상 인종적 잣대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여전히 우리나라 방송가에서는 외양은 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오래 살아 한국인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그리고 진행자는 그들에게 '한국인 다 됐네' 이런 멘트를 날리곤 한다. 이제 이런 멘트도 한국에서도 더 이상 칭찬이 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국제 결혼이 많아진 한국에서 정체성이 외모가 아닌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체감하는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은연 중에 대한외국인들에게 '김치 잘 먹네요'라고 칭찬하는 것이 의도치 않은 무지이자 차별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상대는 무슨 말은 할 수 있겠냐고 되묻겠지만 오랜기간 폐쇄적인 단일민족으로 살아왔기에 의도가 좋은 말을일지언정 그 말이 배려가 될지는 알 수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차별의 반은 열등감이고, 그 남은 반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라는데 열등감은 개인이 알아서 극복할 일이지만 무지는 가르치면 조금 나아지기 때문이기에 국제 결혼이 늘어나는 현 시점에서 한국인들도 외양이 다르면 무조건 외국인으로 분류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건 나도 실천해야 하는 지점이니 사실은 이것은 내가 하는 반성이다.
영화에 대한 감상보다 사족이 더 길었던 거 같은데, 하나의 영화를 보고 이런 생각을 들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한 번정도는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든다. 그저 잡생각을 날리고 싶다거나 나는 웃기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가볍게 볼 코미디 영화를 찾고 있다면, 킬링타임용으로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한 번만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예상하건대 두 번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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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하필 인간이라서, <팟 제너레이션>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자세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팟 제너레이션 The Pod Generation, 2023
영국 / 109분
감독: 소피 바르트우리가 하필 인간이라서, <팟 제너레이션>
적당한 공포와 적절하게 배합된 연민과 침묵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장치로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이 순뱡향이든 역방향이든 상관없이, '멈춰 있는 순간'에만 발동한다. 절대 피할 수 없으며, 강제적으로 작동해 기어이 멈춰 선 이의 발을 지면에서 떼게 한다. 인간에게 '정지' 행위는 죽음이 다가오는 걸 알면서도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겠다는 어리석은 결정이기 때문이다. 내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이 필수조건은 철저한 계획하에 만들어진 거창한 방책이 아니다. 직접 경험으로 얻은 교훈과 지식을 축적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게 된 이른바 생존 본능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인간을 위해 비극을 적극적으로 생산하며 사는 일이 자연의 순리와 같다는 점에서 우린 매 순간 죽음을 향해 가지만 절대 죽지 않기 위해 애쓰는 존재다.
인간은 단순하다. 생존을 우선시하는 본능이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하고, 우린 각자 자기만의 방법을 정립하며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여러 방식이 존재하지만, 그중 세 가지 방식이 공통적으로 포함되어있다. '나와의 분리', '조건 없는 수용', '맹목적인 믿음'. 앞서 언급한 공포와 연민, 침묵이 인간의 내면에 박힌 생존용 고정핀이라면 분리와 수용, 믿음은 생을 향한 원초적인 욕구가 실행되는 길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 덕분에 인간인 우린 계속 길을 걷는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소멸을 부정하기 위해 시작된 인간의 생존 본능은,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개인의 가치관, 신념, 취향,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단순히 숨이 끊어지는 순간만이 아니라 현재 내가 누리고 바라고 원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때도 죽음은 물론이고, 죽음이 주는 극단적인 감정까지 느끼게 됐다. '어떻게 죽음을 피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해졌고, '앞으로 있을 죽음'보다 '지금 당장 없는 무언가'를 더 갈망하게 됐다. 흥미로운 건, 삶의 태도와 관점이 변화되었어도 고정핀은 여전히 박혀있으며 공통 방식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떠한 위협 속에서도 온전히 '나'를 따로 분리해 보호하고,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적응하며, 그 선택을 진실하다 믿는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린 어떠한 상황에도 머뭇거리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스릴 있게 투쟁하는, '격렬하게 애쓰는 존재'가 됐다.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다. 인간은 더 이상 살고 죽는 간단한 문제에 속한 동물이 아니니까. 자연의 순환 속에서 경계 없이 자기 세상을 확장하면서 그에 따른 온갖 난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활용까지 하며 살고 있으니까. 그렇게 보면, 우린 참 뭐라 설명하기 힘든 존재다. 예측불허하면서 충분히 예측할 수 있고 정말 단순하면서 그만큼 복잡한 인간. 죽음과 생존을 같다고 여기며 끊임없이 삶을 욕망하는 인간. <팟 제너레이션>은 이 모든 걸 담고 있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레이첼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회사에서 똑똑하고 능력이 뛰어난 여성 임원이다. 아침에 눈을 떠 저녁에 눈을 감기까지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의 힘을 사용하며 합리적으로 편하게 산다. 하지만 앨비는 다르다. 그는 자연을 사랑하는 식물학자다. 인간이라면, 인간이 만든 과학 기술적 세계가 아닌 자연 속에서, 자연과 상호작용하며 진정한 인간다움을 가꾸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두 사람은 다르다. 인공지능이 실시간으로 체크해 주는 행복 지수가 말해준다. 앨비는 늘 낮거나 측정 불가이지만 자기만의 자연(섬에 있는 집)을 갖고 있어 진짜 미소를 지으며 산다. 레이첼은 인공지능의 행복 지수 관리를 신뢰한다. 적당한 지수를 유지하면서 간혹 높지 않은 날엔 거짓 미소를 짓기도 하지만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 아침마다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바다가 보고 싶으면 대중교통으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할 필요 없이 공원에 설치된 '네이처팟'에 들어가면 된다. 굳이 자연을 현장 체험으로 가지 않아도 되는 현재, 레이첼이 사는 곳은 쓸모보다 편리함이 더 귀한 가치로 여겨지는 아주 좋은 세상이다.
레이첼에겐 '이 환경'이, 앨비에겐 이 환경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생존한 자연'이 존재하기에, 부부의 삶은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레이첼이 인지능력이 더 높은 인공지능 '마샤'를 성공적으로 출시하면서부터 상황은 달라진다. 회사가 그녀에게 승진 혜택으로 인공 자궁(팟)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부부에게 인기몰이 중인 페가수스의 자궁 센터는 팟이란 플라스틱 알 모양의 기기로 임신과 출산을 가능하게 하는 서비스를 운영 중이고, 사실 레이첼도 아기를 갖고 싶은 마음에 남편 몰래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놨었다. 예상대로 자연 임신을 원했던 앨비는 아내에게 논의 없이 아기가 알에서 나오게 하는 대가를 지불했다며 화를 낸다. 그러나, 결국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선택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한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선택. 앨비와 레이첼이 함께 쌓아온 규칙이 다시 재정립되는 순간인데, 그 공은 두 사람이 아니라 레이첼의 심리치료사 일라이저, '인공지능'에 있다. 거대한 눈, 일라이저는 훌륭한 아이를 갖는 것뿐이라며 레이첼이 내면 깊숙이 원했던 말을 대신해 줬고, 인공지능이기에 인간의 영혼을 못한다고 믿는 앨비에겐 최고 등급의 사생활 보호 서비스를 제공했다. 남편의 반대와 자연을 반하는 행위를 한다는 죄책감에서 해방된 레이첼과 자연만을 믿고 살면서도 혼자 남모를 속앓이를 했던 앨비는 일라이저의 한 마디 처방에 그동안의 문제를 '나'에게서 분리하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생각을 전환한다. 이제 두 사람의 목적은 혼란스럽고 낯설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는 우리의 팟을 잘 돌보는 일이다.
팟은 정말 엄마 배 속에 있는 것처럼 그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영양분을 달라며 알람을 울려대고, 자기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이며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앨비와 레이첼은 각자의 속도로 팟을 받아들인다. 팟을 먼저 품기 시작한 건 예상과 달리 식물학자 앨비다. 팟 캐리어(유모차 같은)를 메던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는 어느새 캐리어 달인이 되어 팟을 자기가 일하는 온실에 동행한다. 나아가 집 밖에서도, 집 안에서도 끊임없이 팟과 교감한다. 팟은 자연을 사랑하는 그의 예외적 선택으로 자연이 됐다. 임신과 출산에서 자유로워진 후 계속 똑똑하고 능력 있는 여성으로 살던 레이첼은 백팔십도 달라진 남편의 모습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빠가 어떻게 엄마보다 더 아기와 가까워질 수 있지? 그도 그럴 것이 자연대로라면 태아와의 강력한 교감은 엄마만이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엄마만이 체감할 수 있는 감정들을 인공 자궁을 선택한 레이첼이 무슨 수로 경험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레이첼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임산부의 배에 손을 올리고 태동을 느끼며 자신도 임신 중이라고, 당신처럼 아기를 품고 있다고, 아무리 되뇌어도 '나'의 임신과 '그녀'의 임신은 절대 같을 수 없다는 진실을 말이다.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레이첼은 팟과 남편을 데리고 다시 일라이저를 찾아간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레이첼은 팟 서비스를 이용하기 전부터 볼록하게 나온 자기 배를 만지며 평화로운 모래사장을 걷는 꿈을 꿨었다. 팟이 생긴 이후엔 조그만 알을 출산하는 섬뜩한 꿈을 꿨었는데, 일라이저는 꿈은 자의적이며 구시대적인 산물일 뿐이라며 더 이상 인간은 꿈을 해석하거나 이해하지 않는다고 그녀를 안심시켰었다. (자궁 센터 원장도 인간은 꿈을 꾸지 않는 게 정상이라고 당당히 말했고, 한술 더 떠서 아기에게 부모가 원하는 꿈도 꾸게 할 수 있다며 신제품 드림팟을 선전한 바 있다) 즉, 자연과 여자의 자궁, 이젠 인간의 꿈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세상에서, 엄마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다며 걱정하는 레이첼의 우려는 불필요한 고민이었다. 그런데도 쉽사리 고민을 떨쳐내지 못하는 그녀에, 일라이저는 팟 안에 든 태아와 자신을 연결해 달라고 말한다. 그 순간 레이첼과 앨비는 처음으로 멈칫하며 거대한 눈에게서 빠르게 도망친다.
그동안 그들은 숱하게 합리화를 해왔다. 여성의 자궁 대신 팟에서 태아가 자라는 것뿐이며, 자연임신으로 부모가 된 부부와 똑같은 경험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레이첼의 말처럼, 중요한 건 플라스틱 알이 아니라 태어날 '우리 아기'니까. 분명 자연의 선물로 받은 축복이라 생각했는데, 인간의 기술로 태어나 조작으로 만들어지는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무언가' 같은, 이 불쾌감과 거북스러움이 그들을 덮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동안 해왔던 분리와 수용, 믿음 방식을 계속 유지한다. 레이첼은 남편처럼 회사에 팟을 들고 다니면서, 아기와 유대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오로지 자신에게 올 '아기'만을 생각하면서.
팟의 대기 명단이 길어지자, 자궁 센터는 부부에게 유도분만을 제안한다. 광고할 때만 해도, 아기가 스스로 나오고 싶은 순간에 신호를 주면 출산 과정을 돕는다며, '자연이 결정'한다고 온갖 위대한 척은 다 하더니 결국 자본의 흐름에 아기를 다루고 있던 것이다. 레이첼과 앨비는 거부한다. 팟은 페가수스의 자산이지만, 그 안에 든 아기는 우리 전부니까. 앨비는 곧바로 팟을 몰래 집으로 데려오고, 아기를 백화점에서 골라 사는 꿈을 꾼 레이첼은 섬에서 가정 분만을 하자고 선언한다. 부부는 진짜 자연 속에서 진짜가 된 팟을 품고 자연과 온전히 동화된 시간을 보낸다. 원격으로 팟의 기능을 꺼버린 페가수스의 저급한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아기를 믿고 기다린다. 드디어 온 아기의 신호. 앨비는 플라스틱 알을 강제로 개봉해 아기를 꺼내 품에 안는다. 감격스러워하는 앨비와 레이첼 그리고 그들의 축복, 팟 제너레이션의 탄생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팟 제너레이션> 스틸컷(다음)
분리, 수용, 믿음. 두 사람은 부단히 노력해 아기를 얻었다. 그럼 된 것일까? 해피엔딩인가? 태어난 아기는 부부의 사랑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레이첼은 내가 정말 듣고 싶은 말을 듣기 위해, 더 편한 선택을 하기 위해, 자신의 복제품(일라이저)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라이저를 통해 팟 서비스가 좋은 선택임을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확인받았다. 그러나 부부가 사는 세상이 오직 지금, '현재에 사는 이들만'을 위해 만들어진 세계인 것처럼, 그들의 선택 역시도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아기를 욕망하던 오늘의 나만'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 결과 꿈꾸지 않는 팟 제너레이션을, 아니 '꿈꿀 수 없는 인간'을 탄생시켰다. 꿈은 영화 속에서 인간이 인간임을 확인시켜 주는 유일한 장치였다. 꿈이 인간다움이라면, 팟 제너레이션 이후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들의 아이는 정말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 그 아이들이 계속 태어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미래엔 무엇이 살아남을까.
<팟 제너레이션>은 우리가 얼마나 변덕을 부리면서도, 카멜레온처럼 나란 존재를 끊임없이 긍정하며 사는지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나아가 이를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부부의 새로운 도전을 평범한 일상 안에 평이하게 녹여내는 데 집중한다. 인간의 생존 본능과 변화무쌍한 능력들도 악인의 횡포처럼 풀지 않는다. 단지 잔잔하게 흘러가는 부부의 개인사가 끝을 향해 갈수록 우리가 스스로 알아차리게 되는 것뿐이다. 점점 더 무겁게 짓누르는 위기감과 섬뜩함에 생존 본능이 발동되는 순간, 페가수스 사장이 쿠키 영상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궁 센터의 고객은 부모가 아닌 아기임을 확인시키며 언젠가는 아기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올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부디, 그들이 현명한 부모를 선택하길 바란다며 인터뷰를 마친다.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분명 팟으로 합리적으로, 더 안전하게 아기를 얻으려는 부부의 이야기가 전부일뿐인데, 물음 하나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역시 어쩔 수 없겠지? 우리가 하필 인간이라서."
참신하고 흥미롭지만, 여러모로 행복 지수를 높이는 영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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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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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오브데드" 리뷰(*스포없음) - 예고편만 보는 게 제일 좋은 것 같네요
-영화 정보
장르: 액션, 공포, 범죄
감독: 잭 스나이더
각본: 잭 스나이더, 조비 해롤드, 셰이 해튼
제작: 웨슬리 콜러, 데보라 스나이더, 잭 스나이더
출연: 데이브 바티스타, 엘라 퍼넬 외
촬영: 잭 스나이더
음악: 정키 XL
촬영 기간: 2019년 7월 15일 ~ 2019년 10월 20일
제작사: 미국 국기 스톤 쿼리
배급사: 넷플릭스
공개일: 넷플릭스 2021년 5월 21일
화면비: 1.85:1
상영 시간: 2시간 11분
제작비: 9,000만 달러
독점 스트리밍: 넷플릭스 N아이콘 (넷플릭스)- 잭 스나이더의 첫 장편 영화 촬영 감독 데뷔작
#아미오브데드리뷰 #아미오브데드 #아미오브데드_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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