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1-26 00:48:40
사악한 마녀의 이미지가 허물어진 자리
영화 <위키드> 리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사악한 마녀의 이미지가 허물어진 자리. 새롭게 시작되는 이야기
- 진실을 짓누르는 거짓을 깨는 엘파바
- 글린다가 엘파바에게 준 모자와 망토의 의미
- 엔딩 결말 해석
위키드 (Wicked, 2024)
사악한 마녀의 이미지가 허물어진 자리
개봉일 : 2024.11.20.
관람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판타지,뮤지컬
러닝타임 : 160분
감독 : 존 추
출연 : 신시아 에리보, 아리아나 그란데, 조나단 베일리, 에단 슬레이터, 양자경, 제프 골드브럼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소설 [위키드]는 고전 명작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악당 서쪽 마녀의 어린 시절을 담은 이야기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영화, 뮤지컬, 연극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리메이크 되었다. 그리고 2024년. 몸집을 제대로 부풀린 실사 뮤지컬 영화 <위키드>가 세상에 나왔다.
6,00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 뮤지컬 원작, 1억 4,500만 달러의 제작비, <스텝 업>, <나우 유 씨미> 등의 영화로 환상적인 영상미를 보여준 존 추 감독의 신작, 아리아나 그란데, 양자경, 신시아 에리보 등 호화로운 오리지널 캐스트와 박혜나, 정선아, 고은성, 정승원 등 탄탄한 국내 더빙 캐스트까지.
말 그대로 소문난 잔칫집이었던 영화 <위키드>는 맛있는 음식을 한가득 차려놓고 뮤지컬 팬과 영화 팬 모두의 배를 든든히 불려주는 작품이었다. 물론 16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의 모든 순간, 모든 조건들이 만족스러웠다고 하긴 어렵지만 최대한 다양한 관객들의 기대에 응답하려는 마음이 한가득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사악함을 상징하는 초록색. 그 초록색의 피부를 타고난 엘파바와 누가 봐도 호감을 느낄 외모를 가진 핑크 공주 글린다. 양극에 위치한 두 사람은 얼떨결에 룸메이트가 된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서로를 밥맛이라 생각하며 시도 때도 없이 다투지만, 그런 시간이 늘어갈수록 남들은 보지 못하는 상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꿈꿔온 마법사 오즈의 도시, 에메랄드 시티로 가는 기차에 함께 몸을 싣는다. 그리고 환상적인 그 도시에서 새로운 운명을 맞이한다.
사악한 마녀의 이미지가 허물어진 자리. 새롭게 시작되는 이야기
자신이 사악하다고 외치는 사람도 물론 위험하지만 자신의 선함을 필요 이상으로 어필하는 사람 또한 완전히 믿을만한 이는 아니다. <위키드>는 나도 모르게 믿기 쉬운 완연한 선과 악의 경계에 숨겨져 있던 것들을 꺼내 보인다.
영화는 서쪽 마녀가 한 소녀(오즈)가 끼얹은 물에 녹았다는 뉴스와 함께 시작된다. 오즈민들은 “우리가 믿는 선이 악을 이겨냈다”라며 사악한 마녀의 죽음을 기뻐한다. 오즈의 조수인 착한 마녀 글린다는 오즈민들이 부르는 승리의 노래에 동참하면서도 사악한 이의 고독을 생각하는 가사를 흥얼거린다.
마녀의 죽음을 축하하는 의식과 노래가 끝나고 오즈민들은 글린다에게 묻는다. “사악함은 왜 생겨나는 걸까요?", “서쪽 마녀와 정말 친구였어요?". 글린다는 “좀 아는 사이였어요.”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과 함께 엘파바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쪽 마녀의 그림이 땅으로 떨어지고 그를 따라 만든 거대한 인형이 불태워지는 등, 많은 오즈민들이 믿고 있던 ‘사악한 마녀’라는 이미지가 모두 소멸된 후 그 이미지 뒤에 가려져있던 엘파바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진실을 짓누르는 거짓을 깨는 엘파바
입학식 날 엘파바가 광장을 어지럽히는 장면의 의미
엘파바는 피부 때문에 이상한 오해들을 받으면서도 착하고 단단한 심성을 가진 어른으로 자란다. 동생 네사의 대학교 입학 날, 수많은 학생들의 시선을 받게 된 엘파바는 자신의 피부를 두고 온갖 생각을 하고 있을 그들 사이에서 "그래. 원래부터 난 초록색이었어.”라고 말한다. 엘파바는 ‘초록색 피부’라는 이미지에 주눅 들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을 믿으며 학교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엘파바는 여전히 학생들 사이에서 조롱과 폭탄 취급을 받고 그와 방을 나눠쓰는 글린다는 순교자로 취급받으며 더 큰 인기를 얻는다.
엘파바, 글린다, 피예르와 몇 인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보이고 들리는 것을 모두 그대로 믿고 그것을 기준 삼아 상대방을 정의한다. 엘파바의 초록색 피부, 네사의 불편한 몸, 보크의 작은 몸집, 글린다의 아름다운 외모 같은 일차원적인 이미지부터 시작해 사실 무능력하지만 전능하게 포장된 오즈의 모험기, 엘파바가 사악한 마녀고 그의 초록 피부가 사악함의 증거라는 오즈의 말, 학교 광장에 있던 오즈의 석판과 얼굴 동상, 위압감을 주는 오즈의 가면까지. 에메랄드 시티는 이런 수많은 이미지와 가면들로 가득 차 있다. 통치자인 오즈는 이러한 가면 뒤에 숨어 몰래 악한 일을 행하지만 오즈민들은 진실엔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그저 누군가의 외면을 평가하고 따돌리기 바쁘다.
엘파바는 다수와 다르게 어떤 가면과 외면이 아닌 진실과 내면을 보는 사람이다. 입학식 날, 네사를 마음대로 데려가려는 기숙사 사감을 말리려던 엘파바가 마법을 쓰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는 장면. 의자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여러 구조물들을 부수는데, 그중엔 오즈의 모습이 새겨진 석판도 있다. 석판이 부서지자 원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동물들이 새겨진 석판이 드러난다. 엘파바는 진짜 석판을 짓누르고 있던 오즈의 석판을, 진실을 짓누르고 있던 오즈의 거짓말을 부수고 그에 대항한다.
또한 엘파바는 네사의 불편한 신체라는 외면에 집중하고 그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것 대신, 네사가 혼자서도 잘할 거라는 그의 내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보내는 선택을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네사의 외면만 보는 어른들은 엘파바에게 무조건 네사를 도와주라 말하거나 허락 없이 네사의 휠체어에 손을 얹는다.)
서로를 채워준 엘파바와 글린다
글린다가 엘파바에게 준 모자와 망토의 의미. 엔딩 결말 해석
하지만 이런 엘파바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내면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자신의 내면이다. 주변인들은 엘파바를 ‘남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을 그렇지 않다. 엘파바도 상처를 받고 흔들리기도 한다. 특히 엄마의 죽음에 얽힌 상처와 죄책감은 그가 어른이 될 때까지 마음에 짙게 남아있었는데 이 상처를 보듬고 엘파바에게 용기를 준 건 바로 글린다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처음엔 상징색인 연두색과 분홍색처럼 서로를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보색인 두 색은 (색상환에서) 거리 상으론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가장 평행한 관계이기도 하다. 거리를 좁히기만 하면 그 어떤 색보다 맞닿기 쉬운 관계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서로에게 한 걸음 나아간 두 사람은 엘파바를 무시하는 동급생들 사이에서 마주 선 채 춤을 춘다. 이후 엘파바와 글린다는 각별한 친구가 되어 서로의 꿈을 이루도록 도움을 주는 사이가 된다.
엘파바는 에메랄드 시티행 기차가 떠날 때 글린다에게 손을 내밀어 글린다가 에메랄드 시티를 여행하고 오즈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글린다는 엘파바의 아픔을 위로하고 그가 새로운 세상에 나갈 용기를 준다. 글린다가 엘파바에게 준 모자는 엘파바가 ‘첫 파티’라는 새로운 경험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엘파바가 창문 너머로 떠나기 전에 둘러준 망토는 통치자에게 대항하는 험한 길을 선택한 그에게 전하는 용기와 온기를 선물한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진한 우정을 등에 업고 착한 마녀와 나쁜 마녀, 명성을 가진 위대한 마법사와 동물들을 돕는 마법사라는 각자의 길로 날아오른다.
숨겨져 있던 두 마녀의 이야기는 새로운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쳐준다. 기세 좋게 시작된 이 환상의 나라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Part1의 성적표는 얼마큼의 상승 곡선을 그릴지 벌써부터 궁금하고 기대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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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하고 거침없는 네 남녀의 이야기, <파리, 13구>
-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과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 감독인 '자크 오디아르' 신작이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쁘띠 마망>의 감독인 셀린 시아마 감독이 각본을 맡아 기대를 높이고 있는 영화!
바로 <파리, 13구>입니다.
흑백영화로 배우들의 표정에 집중하며, 그들의 감정에 이입할 수 있었는데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영화 <파리, 13구>를 더 자세히 톺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출연하나요?
에밀리 | 루시 장
FILMOGRAPHY
파리, 13구 (2021)
Happy Night (2021)
Desire (2020)
AWARDS
세비아유럽영화제, 2021
카미유 |마키타 삼바
FILMOGRAPHY
파리, 13구 (2021)
Angelo (2018)
A moi seule (2012)
노라 | 노에미 메를랑
FILMOGRAPHY
파리, 13구 (2021)
점보 (2020)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19)
AWARDS
씬유포리아 어워즈, 2021
뤼미에르어워즈, 2020
올덴부르크 국제영화제, 2016
앰버 스위트 | 제니 베스
FILMOGRAPHY
파리, 13구 (2021)
임파서블 러브 (2018)
어떤 내용인가요?
에밀리는 비싼 생활비 때문에 최근에 룸메이트를 구하게 됩니다. 여자인 줄 알았던 '카미유'가 남자라는 사실에
룸메이트로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얼떨결에 그와 동거를 하게 됩니다. 그와 잠만 자는 관계를 넘어서
에밀리는 그의 마음까지 얻고 싶어지게 됩니다.
카미유는 출근하기 딱 좋은 위치에 있는 집에서 룸메이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가게 됩니다.
'에밀리'에게 거절을 당하지만, 결국 동거를 시작하게 됩니다.
자유로운 연애를 추구하던 카미유. 직장 동료인 '노라'를 향한 마음이 점점 더 커져 버리고 맙니다.
노라는 봄방학 파티에 쓰고 간 '가발' 하나 때문에 온라인 핫스타 '앰버 스위트'라는 오해를 받게 됩니다.
억울한 사이버 불링으로 대학교를 그만두고, 취업을 하게 됩니다.
이후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게 됐고, 그들에게 호감과 호기심이 생기게 됩니다.
앰버 스위트는 온라인 핫스타로 활동 중인 인물입니다. '노라'가 그녀를 찾아 가면서 둘은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됩니다.
사랑을 원하는 에밀리, 사랑이 두려운 노라, 사랑이 값비싼 앰버 스위트, 사랑을 몰랐던 카미유.
파리 속 이들의 사랑은 과연 어떤 식으로 남게 될까?
TMI
첫 번째,
<파리, 13구>는 그래픽 노블 작가 에이드리언 토미네의 '킬링 앤 다잉 (Killing and Dying)', '앰버 스위트 (Amber Sweet)',
'하와이안 겟어웨이 (Hawaiian Getawa)'까지 총 세 가지 단편 만화를 각색한 영화입니다.
두 번째,
루시 장(에밀리)과 카미유(마키타 삼바)는 함께 춤을 배우며 서로의 움직임에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후 조감독, 촬영 감독 등까지 합류해 함께 춤을 배우기까지 했습니다.
세 번째,
<톰보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등에서 캐스팅 디렉터를 했던 크리스텔 바라스가 이번 <파리, 13구>에도 참여했습니다.
크리스텔 바라스는 직접 배우들을 만나 꼼꼼하게 인터뷰를 하며, 신중하게 캐스팅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파리, 13구>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는데요.
어떠셨나요?
<파리, 13구>가 궁금하시다면 5월 12일 극장으로 당장 고고!!
그럼 우리 모두 안전하게 극장에서 만납시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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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웬디는 왜 네버랜드를 떠났을까, 영화 <웬디>
웬디 (Wendy, 2020)
제작 : 미국, 드라마·판타지 │ 감독 : 벤 자이틀린
출연 : 데빈 프랑스(웬디), 야슈아 막(피터) 외
등급 : 12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11분‘피터팬의 눈부신 재창조’ - New York Post
피터팬 탄생 110주년 기념, ‘피터팬’ 진짜 주인공 ‘웬디’의 시점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모험
네버랜드. 그곳은 영원히 늙지 않는 섬이다. 어릴 적 디즈니 만화영화로 본 <피터팬>은 피터팬과 친구들이 네버랜드에 가서 경험하는 재미난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하늘을 날아 환상의 섬에 도착하고, 공동의 적 후크를 물리치고, 팅커벨은 웬디를 질투하고.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보았던 그때의 <피터팬>에는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감정을 느낄 새가 없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하면 벤 자이틀린 감독의 <웬디>는 조금 더 어른들을 위한 버전의 피터팬이 아닐까 싶다. 어느 날 창가로 날라든 피터팬을 따라 소녀 웬디와 쌍둥이 형제가 네버랜드에 간다는 것까지는 같은 설정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포커스는 아이들이 얼마나 그곳에서 재미난 경험을 하는가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후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지루한 집을 떠나 어른들의 잔소리가 없는 아름다운 섬에 온 아이들은 처음에는 신이 나서 섬을 휘젓고 다닌다. 하지만 영원히 집에 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웬디는 어쩐지 두고 온 것들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 영원히 늙지 않는다는 네버랜드 섬 밖의 것들 말이다.
섬 밖에는 사라진 아이들을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있고, 걱정과 근심을 동반하지만 자신의 시간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나이 듦’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의 대장 피터팬은 끝까지 늙는 것은 안 좋은 것이라고만 외친다. 처음엔 함께 아름다운 섬을 활보하던 웬디는, 시종일관 늙는 것을 거부하는 피터를 보면서 점점 대항하기 시작하는데.
이 영화의 제목이 ‘웬디’이고, 그러므로 웬디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은, 기존의 피터팬과 이 영화가 다른 정수를 지니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가장 큰 요소였다. 디즈니 영화에서 보았던 것과 달리 웬디는 수동적인 조연의 역할에 머물지 않는다. 거침없고 주체적이며, 피터가 꿰뚫어 볼 수 없는 것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바로 웬디였다.
“늙는 게 꼭 나쁜 건 아니야”
웬디가 피터에게 건넨 이 한 마디가 이 영화를 대변하는 가장 큰 울림이 아니었을까.
동심을 지키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딱딱해지지 않고 아이처럼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 보다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른으로서 잃지 말아야 할 좋은 자세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을 채워 마땅한 것들이 과연 그런 순수함과 투명함 뿐일까.
웬디는 영원히 늙지 않을 수 있는 섬으로부터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대학을 가고, 아이를 낳고, 결국엔 늙어가면서 현실의 어른이 되기를 선택했다. 그 삶에는 피터팬은 끝내 알지 못했던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부딪치고 울고 실패하고 보다 냉정해지면서, 결국엔 세상을 통찰하게 되는 힘 말이다. 그 깨달음과 통찰을 통해서 영혼의 반쪽을 완벽히 채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간의 삶이라는 걸, 웬디는 알았던 것이다.
어른의 삶에 대한 풍부한 통찰로 마무리되던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엔딩이었다. 영화의 말미에 어른이 된 웬디의 모습은, 어쩐지 나의 바람과는 달리 ‘타성에 젖은’ 어른의 모습이다. 찌들고 피곤한 어른의 삶. 동심도 즐거움도 없이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어른의 삶. 그런 웬디의 앞에 어느 날 피터가 다시 찾아온다. 영원히 늙지 않는 소년 피터는, 웬디의 아이들을 데리고 네버랜드로 떠나면서 웬디에게 이렇게 외친다.
“웬디는 (같이 가기엔) 너무 늙었어!”
그 엔딩에서 다시금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과연 어른이 되고 늙는다는 것은, 값진 선물인 동시에 끊임없이 돌아보고 경계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일러주는 것만 같아서.
이 영화는 어린아이다운 순수함과 어른의 고리타분함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조율을 이루며 살아야 할지를 너무도 강력하게 시사한다. 유연함과 투명함을 잃지 않되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나이 들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우리의 영혼을 가다듬고 정비해야만 한다고.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가. 희망보단 절망을 학습하고 있진 않은가. 가능성보다는 불확실함에 초점을 두는 어른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겁고 활기차게 남은 내 삶을 바라보는 건강한 어른이 되려면, 내 안의 웬디 그리고 피터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이 영화를 보고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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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총을 든 남자의 비밀
* 이 글은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읽을 때 참고해 주세요 : )
나쁜 감정엔 바닥이 없다.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두렵고 불안한 마음은 점점 커지고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하지만 감정을 원하는 대로 해결하기란 몹시 까다롭다.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나쁜 감정에 휩쓸리는 순간,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비극이 탄생한다.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에도 나쁜 감정에 고통받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그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자고 있는 아내에게 총을 겨눈다. 그에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가정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데이빗(클레인 크레포드)'에게 일어나는 사건과 감정을 담았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아 제36회 선댄스 영화제 공식 초정작으로 선정되었다.영화는 앞서 말했듯 '데이빗'이 아내 '니키(세피데 모아피)'에게 총을 겨누며 시작한다. 그들은 어린 나이에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세월이 지나 결혼생활의 권태로 인해 잠시 떨어져 지내기로 결정했다. 별거 중인 어느 날 '데이빗'은 자신이 살던 집에서 벌거벗은 채 자고 있는 아내와 남자 '데릭(크리스 코이)'을 보게 된다. 부부 사이에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도 된다는 약속을 했었지만, 화가 난 '데이빗'은 아내에게 총을 겨눈다.
숨이 멎을 듯 멈췄던 시간은 거실에서 떠드는 아이들 목소리에 의해 깨진다. 창문을 통해 집을 빠져나온 남자는 무작정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고 카메라는 그의 뒷모습을 따라간다. 동시에 금속과 살이 부딪히는 듯한 기괴한 소리가 들린다. 듣는 사람마저 불쾌한 감정을 전염시키는 특유의 효과음은 '데이빗'이 나쁜 감정에 사로잡힐 때마다 들린다. 음향을 담당한 '피터 알브레히첸(Peter Albrechtsen)'은 '데이빗'의 삶과 연관된 소리를 찾아내려 노력한 끝에 상영 시간 84분 동안 자동차 문이 84번 열고 닫히는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효과음을 만들었다.연출의 특징도 눈 여겨볼만하다. <킬링 오브 투 러버스>는 화면 비율을 4:3 정도로 줄인다. 화면은 크면 클수록 좋고 IMAX가 대세인 요즘 영상과 확연히 다른 선택이다. 좁은 화면은 인적 드문 공터나 도로처럼 영화 속 배경이 주는 여백과 대비되어 훨씬 답답한 느낌을 준다. 게다가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소화해서 한 장면을 길게 촬영하는 단조로운 구도를 사용했다. 그중 인물의 전신이 보이도록 촬영된 장면이 많은데 관객은 그들의 동선과 대화만 확인할 수 있고 자세한 표정은 알 수 없다. 영화의 감독 '로버트 매코이언(Robert Machoian)'의 인터뷰에 따르면 '카메라에 담긴 특정 인물에게만 집중하기보다 등장인물 누구나 공평한 가치를 지니길 원했다'라고 설명했다. 감독의 의도대로 주인공 '데이빗'을 담는 카메라조차 철저히 방관자에 입장에서 그의 고통을 관찰한다.
Q. 나쁜 감정을 숨기며 지내나요?
'데이빗'은 좋은 남편이자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나쁜 감정을 숨긴다. 그는 '니키'가 다른 남자와 잔 걸 모르는 듯 태연하게 행동하거나 소원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저녁 데이트 코스를 준비한다. 그리고 다정한 아빠 역할을 충실히 해내려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거나 신중하게 장난감을 고른다.아무리 덤덤한 얼굴로 괜찮은 척 해도 '데이빗'은 어느 하나 숨길 수 없다. 영화의 배경인 미국 유타주 카노시는 사람이 적은 한적한 동네여서 동네 사람들은 그가 처한 상황을 자연스레 알게 된다. 마트에서 아내의 남자 친구를 마주치고 이웃과 안부 인사를 건네며 가출한 딸을 잡는다. 심지어 딸에게 '니키'를 둘러싼 삼각관계를 들키며 딸은 방황하고 부녀 사이는 갈수록 나빠진다.
꾸역꾸역 감추던 감정은 폭력으로 표출된다. 그는 아이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없게 되자 '니키'와 큰소리로 다투는 일이 잦아지고 비아냥거리며 거친 말을 내뱉는다. 급기야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사람 모양의 샌드백에 마구잡이로 주먹질을 하고 총을 쏜다.
글에서 설명한 장면을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 예고편에서 만나보세요▼
그의 분노를 한 꺼풀 벗기면 나쁜 감정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데이빗'은 애쓸수록 망가지는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몰라서 혼란스럽다. 만약 '데릭'으로 인해 아내와의 관계가 끝난다면 가족에게 영원히 돌아갈 수 없을까 봐 두려움을 느낀다. 감독은 영화 속 그의 처지를 노숙자에 비유하는데, 별거로 인해 가족과 한 집에서 지낼 수 없으며 아버지 댁에서도 임시로 머무는 손님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나마 집이라고 할 만한 장소는 자신의 낡은 트럭뿐이기에 좌절과 외로움을 홀로 견뎌야 한다.
나쁜 감정엔 바닥이 없다. 그러나 시작된 이유는 분명히 있다. 이유를 알아내는 첫 단계로 감정을 숨기는 대신 솔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영화 <킬링 오브 투 러버스>의 절정은 아내에게 총을 겨누는 장면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주저앉아 우는 장면이다. 결국 그는 약한 모습을 드러내고 두려움을 인정했다.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면 '데이빗' 주변에 나쁜 감정의 찌꺼기가 남은 듯 불안감이 감돌지만, 그가 바라던 대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감정을 숨기는 게 익숙한 사람이라면 영화 속 '데이빗'의 슬픔이 긴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비극이길 바라는 주인공은 없으니까.
영화 리뷰를 꾸준히 쓰고 있지만, 장면마다 숨겨둔 감독의 의도가 이 정도로 궁금한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참고한 감독의 인터뷰와 다른 리뷰는 아래 링크로 남깁니다.
https://www.abc.net.au/news/2021-09-16/the-killing-of-two-lovers-review/100463886
https://www.slashfilm.com/581177/the-killing-of-two-lovers-director-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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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2020)> 리뷰
고백한다. 뉴욕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도(어쩌면 그렇기 때문일지도) 나는 이 도시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품고 있다. 우뚝 솟은 마천루에 온갖 신경을 빼앗기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어쩐지 내 안의 허영심을 충족시켜줄 것만 같은 세계적인 도시. 괜히 맥북이나 고풍스러운 책 한 권을 들고 센트럴 파크에 앉아 있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곳.
온갖 정보가 발달해 사실 뉴욕 지하철은 한국의 것보다 못하고, 뉴욕이든 서울이든 결국 서양화된 도시이기에 생각보다 ‘그럴싸한 건’ 없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음에도 미디어가 만들어낸 환상적 이미지는 내게서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영화 속 주인공 조안나(마가렛 퀄리)는 어떨까.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가 개봉한 시점에서 고작 몇 년 지나지 않았던 시절의 미국에서 자란 조안나는, 더군다나 작가 지망생이기까지 하다. 좁은 플랫에서 원고와 싸우고, 카페에서 글을 쓰는 친구들과 예술적 교감을 나누며 청춘을 개척하고픈 열망을 지닌 청춘. 그에게 뉴욕이 어떤 의미였을지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나 역시 일정 부분 그런 꿈이 있기에, 더욱더.
조안나가 뉴욕에 있게 된 건 우연과 운명의 합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안나가 이토록 오래 머물게 될 줄은, 조안나도 그의 친구 제니(세아나 커스레이크)도 짐작하지 못했으므로. 잠시 머물고자 했던 뉴욕이었으나 조안나는 안정적이되 심심하기만 한 버클리에서 뉴욕으로 아예 거처를 옮긴다. 충동적인 결정이었던 듯 보이나 그는 빠르게 적응한다. 다만, 많은 이들이 오가는 대도시는 이방인에게 열린 공간이지만, 열려있다는 것이 늘 환대의 의미와 동일하진 않다는 것을 조안나가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렇듯 마이 뉴욕 다이어리(원제: My Salinger Year)는 주인공 조안나의 여정을 따라가는 성장 드라마다. 평범한 건 싫고, 특별해지고 싶다는 치기 어린 소망을 품은 주인공이 마주한 뉴욕이라는 흥미로운 공간. 그는 새로운 사랑을 찾기도 하고, 일자리를 구하기도 하지만, 그의 이름으로 렌트를 구한 집은 어딘가 어설프고, 작가를 꿈꾸는 그가 하는 일은 팬레터에 기계적으로 답장을 보내는 일에 불과하다. 이윽고 조안나는 결심한다. 진심이 담긴 팬레터에 'JD 샐린저 씨는 팬레터를 받지 않습니다, ' 따위의 무의미한 대답을 타이핑하는 일을 지속할 수 없다고. 그러자 언뜻 잔잔해 보였던 일상에 파문이 일기 시작한다.※ 이하 스포일러 주의
조안나가 일하게 된 곳은 마가렛(시고니 위버)의 작가 에이전시다. 마가렛은 조안나를 고용하는 순간부터 단호하게 말한다. 작가(지망생)는 자신의 비서로 고용하지 않는다고. 조안나는 김이 샐 법도 한데, 복도에 걸린 애거서 크리스티나 스콧 피츠제럴드의 사진에 전율을 느낀다. 실망도 하지만, 조안나는 꿈을 버리지 않는다. 마가렛이 자신을 알아봐 주고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아주 하지 않았던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조안나는 자신이 읽어본 적도 없는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 매혹된 이들에게 경직된 답장을 쓰던 중 그들의 진심에 성심성의껏 답하기 시작한다. '홀든'이라는 주인공의 이름도 적극적으로 인용하며 제법 그럴싸하게 쓰기도 하고, 절박해 보이는 학생에겐 교훈적인 답장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답장을 받은 이가 뉴욕 사무실까지 찾아와 되묻는다. 내 진심이 담긴 편지를 멋대로 읽어본 당신의 답장이 규격화된 답장보다 더 나을 이유가 무엇이냐고.
조안나 래코프라는 이름이 소녀의 입술 밖으로 튀어나온다. 우스꽝스러운 이름이라고 했다. 빈정거림이 분명한데도 조안나는 그 말에 반박하지 않는다. 자신은 허락되지 않은 대화에 끼어든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가 사라지고 조안나는 복도를 걷는다. 조안나의 소망 중 하나가 '특별해지는 것'이었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그는 뉴욕이라는 메트로폴리탄에서 작가라는 단독자가 되고자 버클리의 삶을 버렸고 버클리에서 만났던 남자 친구와는 연락을 줄였다. 그러나 조안나의 손에 남은 건 무엇인가? 그는 등단한 시인이라는 것을 감췄고 영혼에 반하는 일을 주 업무로 삼았다. J.D. 샐린저가 그에게 당신은 작가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시인이라고 얼떨결에 대답했던 조안나는 하루에 15분씩 자신만의 글을 쓰긴커녕 타인의 삶을 흉내 내어 답장하는 일만 지속하고 있었으며, 상사인 마가렛에겐 조안나라는 유능한 비서로 인식되기보단 '샐린저에게 익숙한 환경'으로 인식될 뿐이었다.
조안나가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뉴욕에 와서조차 오래도록 읽지 않았다는 건 적지 않게 흥미롭다. 업무를 진행하며 왜 샐린저의 팬들이 이 책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궁금했을 법도 한데 말이다. 그러나 이 지점이야말로 지금껏 조안나의 성장이 지연된 이유일 것이다. 그는 많은 일을 겪으면서도, 그 심장부로 파고들지 않았다. 워싱턴으로의 짧은 귀향과 돈(더글라스 부스)의 부재를 경험한 후에야 조안나는 자신이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대니얼(콤 피오레)의 죽음을 통해서야 조안나는 인간 마가렛을 알게 된다. 작가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것과, 뉴욕에서 일상을 이어가는 것은 허영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을 진 모르겠으나 작가라는 꿈을 이뤄주진 못한다. 꿈은 외면을 모방하는 것만으로 성취할 수 없는 것이므로.
타인의 마음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 깊은 곳까지 살펴본 조안나는 우울을 떨치고 나아갈 동력을 얻었다. 친구 제니가 뉴욕을 떠나는 것을 배웅하며 연인이었던 돈과 동거한 공간을 떠나지만, 그것이 버클리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한 후임자가 나타날 때까진 맡은 업무를 모두 하겠다고 말한 만큼, 조안나의 출근은 순식간에 중단되지 않는다. 하지만 카메라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원고를 소중히 든 조안나를 똑똑히 비춘다. 뉴요커 건물에 도착한 조안나의 원고가 어떤 미래를 맞이할지 우리는 모르지만, 감독은 스크린을 통해 조안나를 작가로 호명했다. 그렇기에 관객은 알 수 있다. 샐린저가 말했듯 조안나는 이제 매일같이 자신만의 글을 쓸 것이라는 걸. 꿈에 그리던 모습으로 거듭났다는 사실을.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자전적 에세이를 바탕으로 하기에, 영화의 마지막은 너무나 당연한 결말이었다. 그럼에도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까닭은 영화 곳곳에 녹아 있는 인간적인 유머와, 90년대의 뉴욕을 겪어본 적 없는 나까지 향수에 젖게 만드는 따뜻한 스크린의 색감 때문이 아닐지. 무시무시하고 악랄한 악역이나,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의 끔찍한 사건 없이도 인간은 성장할 수 있다. 그저 조금만, 조금만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한다면, 우리 역시 조안나처럼 20대를 따스하고 애틋하면서 한편으론 엉뚱하고 우습기도 한 시절이었다고 회고할 수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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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 리뷰
켄 로치가 영화를 통해 전하는 미덕을 하나 꼽자면 바로 정직이 아닐까. 영화란 결국 각본에 의거한 허구이니 본디 있던 사건이라 할지라도 '살짝 비틀어' 손쉽게 관객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거나, 멜로드라마에 가까운 말랑한 요소를 가득 첨가하여 온갖 인기를 누려도 될 터인데 그는 언제나 각본의 기틀을 현실 위에 튼튼히 쌓는다. 그리고선 허상을 예리하게 벼려 관객의 마음을 후벼 판다. 그의 영화에는 대단한 시네마틱 수사가 가미되지 않곤 하지만, 나는 그가 일생을 던져 전하는 메시지가 여전히 푸르며, 흔들린 적이 없다는 사실에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그런 의미에서든 아니든, 잉글랜드인인 켄 로치의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은 한국인인 내게 더더욱 특별하고도 놀랍다. 우리나라로 간단히 치환해 이야기하자면(굳이 ‘간단히’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의 역사적 갈등은 1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인 감독이 한국 독립운동 역사를 그려낸 것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므로. 그래서일까. 켄 로치 역시 영국 내에서 반영주의자가 아니냐는 말을 꽤나(어쩌면 이골이 날 만큼일지도) 들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감독의 대답은 그의 신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왜 내가 조국을 싫어한다고 말하는가?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내 고향과 영국인들과 정부를 싫어해야 한다는 말인가? 정부를 비판하는 건 민주주의의 의무다" (최을영, 2013).이런 외골수 감독이 그려낸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감상하고 나면 심경이 절로 복잡해진다. 그 까닭은 침묵하는 아름다운 대지와 피 흘리는 전쟁의 괴리에서도 일부 빚어지며, 아일랜드에 주둔하는 영국군의 야만적인 지배를 통해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인 데이미언과 테디(패드레익 딜레이니) 형제의 우애와 인생이 역사적 질곡에 빠지며 어떻게 변모하였는지를 목격하는 것, 외부적 조건으로 인해 치닫는 형제간의 파국을 통해 비극은 더욱 처절하고 절절해진다. 데이미언은 런던에서 의사로 지낼 수 있었던 삶을 접고 형과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혁명가로 변모하며 형의 사살명령에 삶을 마감했고, 테디는 IRA (Irish Republican Army 아일랜드 공화군)을 이끄는 아일랜드의 영웅으로 시작하여, 자유국 육군 장교로 입지를 굳히나 동생을 자신의 손으로 처형해야만 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우리는 끝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투쟁인데, 왜 가족이, 연인이, 민족이 와해되어야 하나? 정녕 우리는 희생 없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영화 도입부에선 적이 너무도 명확하다. 다름 아닌 영국군이다. 헐링을 하던 데이미언&테드 형제와 친구들의 인권은 순식간에 짓밟히고, 급작스레 수색당하며, 함께 게임을 즐긴 열일곱 살 미하일(로렌스 베리)은 자신의 이름을 게일어로 댔다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초반의 데이미언은 그럼에도 영국 런던으로 향하고자 하는데, 아마 미하일이 영국군의 요구대로 이름을 게일어가 아니라 영어로 발음했다면 살 방편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데이미언은 곧 그러한 생生의 연장은 결국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차역에서 목격한다. 무기를 소지한 잉글랜드 군인은 기차에 탈 수 없다는 규칙을 말하는 무고한 기관사가 끔찍하게 구타당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인이 원하는 것은 생존이 아니라 삶이라는 깨달음은 의사 데이미언의 발걸음을 돌려놓는다.
그러하므로 데이미언이 지향하는 아일랜드는 처음부터 사람을 살리기 위한 장소여야 했다. 영국군을 몰아내는 것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네이드(올라 피츠제럴드)가 외쳤듯 내 삶을 살 수 있는 터전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데이미언의 지향점이 더욱 명확하게 피어나는 장면은 그가 오랜 친구인 크리스(존 크린)를 밀고자라는 이유로 사살해야 했던 씬이다. 지금은 전쟁 중이라는 말에 따라 데이미언은 크리스를 쏜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배운 지식으로 동포를, 그것도 피를 나눈 형제처럼 친했던 이를 죽여야만 한다. 데이미언이 지닌 의사라는 속성과 상극인 이 선택은 짙은 그림자가 되어 그를 끝까지 따라다닌다. 지금은 전쟁 중이라는 거대한 대전제가 짓밟은 친구의 대안적 인생을 떠올리는 행위는 데이미언이 테드와 달리 태생적으로 군인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고민이자 질문이다. 잠시 발을 헛디뎠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를 죽여야 하는 상황은 과연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세계일까? 데이미언은 동의하지 않는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에게, 아일랜드는 이제 크리스를 희생했을 만큼 가치 있는 곳이 되어야만 한다.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IRA는 부당한 고리대금업자에게 투자를 받지 않으면 이길 방법이 없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기아상태다. 아일랜드는 전쟁을 이어갈 체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기실,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영국에게도 1920년대의 상황은 그야말로 치킨게임이었다. 양국 모두에게 휴전이 절실했다. 양측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전 협정이 체결되는데, 문제는 협정 내용에서 비롯된다. 무수한 희생이 뒤따랐건만 아일랜드는 여전히 영국령으로 남아야 했고 분단이 이뤄져야만 한다니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가. 이 내용은 납득하기 어렵기만 하다.
테디와 데이미언의 행보는 여기에서 갈라진다. 어쨌든 영국군이 머물지 않게 된 자유령을 수호하며 차근차근 완전한 독립을 이뤄낼 것인가, 혹은 협정을 인정하지 않고 완전한 독립을 이뤄낼 때까지 투쟁을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각기 달랐던 탓이다. 형인 테디는 전자를, 동생인 데이미언은 후자를 선택한다. 영화가 데이미언의 시각을 주로 쫓아가기에 언뜻 테디의 선택이 그른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실질적으로 전쟁을 이어가기엔 아일랜드 역시 너무도 지쳐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테디가 데이미언을 이상주의자라 비난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다만, 테디의 편에 서지 않은 데이미언이 현실적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어떤 면에선 옳을지도 모른다. 일단 자유를 얻는다면 지쳐있는 사람들은 일시적인 평화에 젖어, 추구해야 하는 이상과 혁명을 잊기 쉽다. 또한 실질적인 독립이 아닌 만큼 언제 영국이 돌변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부분을 외면하고 어쨌든 완전한 독립이 훗날 분명 가능하리라 말하는 테디의 꿈이 과연 데이미언의 것보다 곱절은 더 현실적인가(2021 현재 북아일랜드가 여전히 영국의 구성국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더더욱)?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1920년대 아일랜드 내전은 이미 지나간 역사다. 또한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식민지배와 저항, 내전의 비극이 동일하게 반복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를 그저 픽션으로만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다기엔 다시는 당신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한 시네이드의 목소리가 사무치게 남는다. 우리는 알고 있다. 이념이라는 이름 하에 지구 상에서 자행되는 여러 종류의 집단적 폭력이 개인의 상상력을 어처구니없을 만큼 쉽게 넘어서는 경우가 잦다는 것을. 그러하므로 아일랜드 내전과 동일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지언정 유사한 사건은 무수히 많을 것이고, 영화의 메시지는 시대를 뛰어넘어 유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소한 관객인 우리만큼은 앞으로 이러한 형제의 비극을 반복해선 안된다는 울림, 이러한 비극이 시작되지 않도록 처음부터 정의로운 평화를 수호하고 추구해야 한다는 담담한 목소리 말이다.
그렇기에 켄 로치의 힘은 영화 후에 더욱 극적으로 발휘되는 것만 같다. 아마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감상한 관객이라면 형제의 비극을 멈출 수 있었을 법한 지점을 찾기 위해 저도 모르게 영화를 거슬러 올라갈 테니까. 상대방에게 이분법적인 꼬리표를 붙이고 배격하는 장소가 아니라, 궁극적인 지향점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장소와 충분한 시간이 있었더라면 형제의 반목(확장하여 아일랜드 민족 간의 내전)은 최소화할 수 있었으리라는 가정을 한 번쯤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깨달을 것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을 내가 얼마나 납작하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어쩌면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암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시절, 독립을 위해 투쟁한 열사들이 이 정도의 대한민국에 과연 만족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의 말마따나 태어나려는 자는 언제나 (기존의) 세계를 깨뜨려야 하고, 이러한 부류의 투쟁은 언제나 지난하고 고단하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대한 청사진을 거듭 그려야 한다. 온 세상의 비극을 막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나 우리 주위의 비극을 최소화하는 데에 일조할 순 있을 테니.지치는가? 항상은 아니어도 좋으니 쉬엄쉬엄 힘을 내어 걸어가자. 도움은 되지 않겠다만 나는 내가 대단히 낙관적인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장기적 관점으론 언제나 긍정적이었다는 말을 덧붙여본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뤄온 많은 발전도 이미 믿을 수 없는 성과가 아니었는가? 예술이 우리를 응원하는 한, 우리의 꿈은 언제나 무한할 것이고, 우리를 추동하는 동력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발굴해낼 것이다. 결국엔.
★★★★★
* 참고문헌
최을영 (2013). 켄 로치 :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싸우는 사회주의 영화 작가. 인물과사상, 6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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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쇄살인범보다 무서운 병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집중치료실 간호사로 일하며 고된 업무와 야간 근무를 감당하는 싱글맘 '에이미(제시카 차스테인)'. 그녀는 심장병을 앓는 와중에도 치료비를 감당하고 의료 보험에 들기 위해 매일같이 병원으로 향한다. 어느 날 육체적, 정신적 한계에 다다른 그녀 앞에 '찰스 컬린(에디 레드메인)'이 등장한다. 사려 깊고 공감력 높은 찰스와 병동에서 함께 일하며 우정을 쌓아가기 시작한 에이미. 그녀는 찰스의 도움을 받아 그간 잊고 지내던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병원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환자들이 연이어 사망하고, 형사들이 찰스를 살인 용의자로 지목하자 에이미는 다시 혼란에 빠져든다. 이에 그녀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찰스 그래버의 동명 소설을 영상화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미국의 간호사 연쇄살인범 찰스 컬린의 이야기를 다룬다. 찰스 컬린은 뉴저지주와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10개의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40명에 달하는 환자를 약물로 투여해 살해했다. 그는 397년 형에 처해 복역 중이며, 그가 시인하지 않은 범죄들까지 합하면 피해자는 4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영화는 이 섬찟한 사건을 소름 돋게 그려낸다. 보다 보면 살인범의 행적이 무서운 건지, 그의 범죄 행각을 묘사하는 영화의 방식이 무서운 건지 헷갈릴 정도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스릴러의 진수가 느껴지는 대목은 컬린의 범죄 수법이 드러나는 순간도, 그가 마침내 범죄를 인정하는 순간도 아니다. 영화를 끝내는 자막이 보이는 때다. "병원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는.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제목에 충실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우선 좋은 간호사인 찰스를 비춘다. 수많은 병원에서 근무했던 경력이 헛되지는 않은 듯, 처음 출근한 병원에서도 찰스는 일을 곧잘 해낸다. 시스템을 알려주면 바로 적응한다. 돌발상황이 생겨도 에이미가 나서기 전에 수습해낸다. 붙임성이 좋아 환자들의 고충도 순식간에 해결한다.
동료도 놓치지 않는다. 그는 근무 중 과호흡 때문에 괴로워하는 에이미를 발견한다. 그에게 자신의 병과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사정을 설명하는 에이미. 그러자 찰스는 자신이 도와줄 테니 걱정할 것 없고, 넉 달만 버티자며 에이미를 독려한다. 자신이 옆에 있으니 혹시 쓰러지거나 병원에서 그녀의 병력을 눈치챌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안심시킨다. 아무도 모르게 필요한 약을 가져다주며 그녀를 도와준다.
심지어 찰스 컬린은 병원 밖에서도 좋은 남자다. 그의 따뜻함 덕분에 에이미의 일상은 자연스럽게 찰스를 받아들인다. 일 때문에 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못해 딸과 불화가 생긴 에이미는 찰스 덕분에 딸과의 관계를 조금씩 회복한다. 첫째 딸의 연극 대본 암기를 도와주고, 집안일도 함께 하고, 휴무인 시간을 함께 보낸다. 에이미가 응급 상황에 대비해 큰딸에게 병과 증상을 털어놓을 때도 옆에서 대화의 물꼬를 튼다. 충격이 덜할 수 있도록. 그렇게 에이미는 찰스에게 점점 더 의지한다.하지만 에이미가 아는 찰스와 시청자가 아는 찰스는 영화 오프닝 시점부터 다르다. 그 덕분에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긴 호흡으로 서스펜스를 유지할 수 있다. 에이미가 등장하기도 전에 영화는 중환자실에 있는 찰스를 보여준다. 환자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자 찰스는 곧바로 CPR을 실시한다. 코드블루를 들은 다른 의료진이 하나둘 모이자 그는 자리를 교대하고 한쪽 구석으로 빠진다. 다른 이들이 정신없이 움직이는 가운데 그는 숨을 돌리며 조용히 죽어가는 환자를 주시한다. 마치 환자가 확실히 죽는 건지 관찰하는 것처럼. 카메라도 그의 시선을 차분히 담아낸다.
그 결과 실제 인물 찰스 컬린이 살인범이었던 걸 몰랐다 하더라도 이 순간부터 앞으로 2시간 동안 찰스의 모든 행동은 묘하게 의뭉스럽고, 서늘하고, 거리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에이미에게 친절하고 아이들에게 다정해도 무용지물이다. 환자들과 교감하며 즐겁게 병원에 다녀도, 이혼한 전처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토로한다고 해도 진정성을 느낄 수 없다. 시청자는 따스함과 불쌍함으로 가득한 가면 뒤에 숨어 있을 찰스의 본모습을 찾아 그의 표정, 제스처, 목소리 하나하나를 관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꺼질 줄 모르던 의심의 불씨는 에이미가 찰스의 살인 수법을 발견한 순간 마침내 활활 타오른다. 찰스가 체포되고 범죄를 시인하는 순간까지 에이미와 한마음 한뜻이 되어 마음 졸이는 시간이 이어진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범행 동기와 정당화 기제가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불은 꺼지지도 않는다. 그 결과 <그 남자, 좋은 간호사>에게는 모범적인 스릴러라는 평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그 남자, 좋은 간호사>의 서스펜스에는 찰스와 에이미의 관계 변화가 자아내는 스산함과는 결이 다른 긴장감도 깃들어 있다. 그 중심에는 병원이 있다. 작중 에이미와 찰스의 직장인 병원은 새삼 서늘하다. 시종일관 채도와 명도가 낮은 색들로 가득하다. 코드블루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는 불안함을 증폭시킨다. 병원 측 관계자들의 대처도 미심쩍다. 의문사가 발생한 지 7주가 지나도록 내사를 진행할 뿐 경찰에게는 신고하지 않는다. 뒤늦게 신고받고 온 형사에게는 극도로 비협조적이다. 직원 면담은 관리자 동석 하에만 허용하고, 수많은 내사 자료 중 A4 몇 장만 넘겨줄 뿐이다. 경찰이 찰스를 의심하자 계약서에 날짜를 잘못 기재했다는 이유로 그를 해고한다. 다른 병원들도 다르지 않다. 형사들이 찰스의 근속기간과 평판, 근무 태도 등을 묻자 한 병원 관계자는 전화기를 변호사에게 넘긴다.
한 섬뜩한 장면은 이 모든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카메라는 복도 유리창에 비치는 찰스의 모습을 포착한다. 그는 복도와 유리창 위에 둘로 나뉘어 있다가 중환자실 문 앞에 도착하자 하나 된다. 마치 겉으로는 좋은 간호사일지 몰라도 그 속은 살인범이라고 고발하듯이. 하지만 이미 찰스는 아무런 제지 없이 병원 내부를 조용히, 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그는 환자를 합법적으로 진찰하고 그들에게 투약할 수 있다. 그가 중환자실에 들어가기까지, 수액들이 보관된 창고에 들어가기까지, 불법적으로 인슐린을 인출하고 그 증거를 인멸하기까지 그를 제지하는 사람도,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복도를 홀로 걷는 찰스의 모습은 유달리 소름이 끼친다.
영화는 병원들의 태도가 찰스의 살인 범죄를 가능케 한 또 다른 이유라고 지적한다. 의문사 사건에 냉담하고, 적극적인 문제 해결 의지가 없으며, 찰스라는 폭탄을 떠넘기기에 바쁜 병원도 최소 방관자, 최대 공범이라는 것이다. 닭과 달걀 중 무엇이 먼저인지 알 수 없듯이, 무책임한 병원의 책임을 묻지 않은 채 비인간적인 간호사 개인에게 책임을 씌우는 것은 온전한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병원이 연쇄살인범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무서운 이유다.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모범적인 스릴러 영화일지는 몰라도, 자칫 특별하지 않은 작품일 수 있었다. 물론 뚝심 있게 서스펜스를 자아내는 기법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사실 속도감도 강하지 않고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장면도 많지 않다. 찰스가 범인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는 시청자의 관점에서는 올곧은 스릴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선정적인 연쇄 살인 사건에서 살짝 거리를 둔 채 사건을 더 넓고 입체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보려는 시도만 아니었더라면. 바로 그 시도 덕분에 <그 남자, 좋은 간호사>는 실제 사건이 주는 무게감과 부담감에 눌리지 않는, 품격 있는 스릴러 영화로 끝을 맺는다.
A(Acceptable, 무난함)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병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무거워 보이는 그의 징역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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