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1-26 00:48:40
사악한 마녀의 이미지가 허물어진 자리
영화 <위키드> 리뷰
주요 내용
- 영화 소개, 줄거리
- 사악한 마녀의 이미지가 허물어진 자리. 새롭게 시작되는 이야기
- 진실을 짓누르는 거짓을 깨는 엘파바
- 글린다가 엘파바에게 준 모자와 망토의 의미
- 엔딩 결말 해석
위키드 (Wicked, 2024)
사악한 마녀의 이미지가 허물어진 자리
개봉일 : 2024.11.20.
관람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판타지,뮤지컬
러닝타임 : 160분
감독 : 존 추
출연 : 신시아 에리보, 아리아나 그란데, 조나단 베일리, 에단 슬레이터, 양자경, 제프 골드브럼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소설 [위키드]는 고전 명작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악당 서쪽 마녀의 어린 시절을 담은 이야기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영화, 뮤지컬, 연극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리메이크 되었다. 그리고 2024년. 몸집을 제대로 부풀린 실사 뮤지컬 영화 <위키드>가 세상에 나왔다.
6,000만 관객을 동원한 흥행 뮤지컬 원작, 1억 4,500만 달러의 제작비, <스텝 업>, <나우 유 씨미> 등의 영화로 환상적인 영상미를 보여준 존 추 감독의 신작, 아리아나 그란데, 양자경, 신시아 에리보 등 호화로운 오리지널 캐스트와 박혜나, 정선아, 고은성, 정승원 등 탄탄한 국내 더빙 캐스트까지.
말 그대로 소문난 잔칫집이었던 영화 <위키드>는 맛있는 음식을 한가득 차려놓고 뮤지컬 팬과 영화 팬 모두의 배를 든든히 불려주는 작품이었다. 물론 16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의 모든 순간, 모든 조건들이 만족스러웠다고 하긴 어렵지만 최대한 다양한 관객들의 기대에 응답하려는 마음이 한가득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사악함을 상징하는 초록색. 그 초록색의 피부를 타고난 엘파바와 누가 봐도 호감을 느낄 외모를 가진 핑크 공주 글린다. 양극에 위치한 두 사람은 얼떨결에 룸메이트가 된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서로를 밥맛이라 생각하며 시도 때도 없이 다투지만, 그런 시간이 늘어갈수록 남들은 보지 못하는 상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꿈꿔온 마법사 오즈의 도시, 에메랄드 시티로 가는 기차에 함께 몸을 싣는다. 그리고 환상적인 그 도시에서 새로운 운명을 맞이한다.
사악한 마녀의 이미지가 허물어진 자리. 새롭게 시작되는 이야기
자신이 사악하다고 외치는 사람도 물론 위험하지만 자신의 선함을 필요 이상으로 어필하는 사람 또한 완전히 믿을만한 이는 아니다. <위키드>는 나도 모르게 믿기 쉬운 완연한 선과 악의 경계에 숨겨져 있던 것들을 꺼내 보인다.
영화는 서쪽 마녀가 한 소녀(오즈)가 끼얹은 물에 녹았다는 뉴스와 함께 시작된다. 오즈민들은 “우리가 믿는 선이 악을 이겨냈다”라며 사악한 마녀의 죽음을 기뻐한다. 오즈의 조수인 착한 마녀 글린다는 오즈민들이 부르는 승리의 노래에 동참하면서도 사악한 이의 고독을 생각하는 가사를 흥얼거린다.
마녀의 죽음을 축하하는 의식과 노래가 끝나고 오즈민들은 글린다에게 묻는다. “사악함은 왜 생겨나는 걸까요?", “서쪽 마녀와 정말 친구였어요?". 글린다는 “좀 아는 사이였어요.”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과 함께 엘파바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쪽 마녀의 그림이 땅으로 떨어지고 그를 따라 만든 거대한 인형이 불태워지는 등, 많은 오즈민들이 믿고 있던 ‘사악한 마녀’라는 이미지가 모두 소멸된 후 그 이미지 뒤에 가려져있던 엘파바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진실을 짓누르는 거짓을 깨는 엘파바
입학식 날 엘파바가 광장을 어지럽히는 장면의 의미
엘파바는 피부 때문에 이상한 오해들을 받으면서도 착하고 단단한 심성을 가진 어른으로 자란다. 동생 네사의 대학교 입학 날, 수많은 학생들의 시선을 받게 된 엘파바는 자신의 피부를 두고 온갖 생각을 하고 있을 그들 사이에서 "그래. 원래부터 난 초록색이었어.”라고 말한다. 엘파바는 ‘초록색 피부’라는 이미지에 주눅 들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을 믿으며 학교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엘파바는 여전히 학생들 사이에서 조롱과 폭탄 취급을 받고 그와 방을 나눠쓰는 글린다는 순교자로 취급받으며 더 큰 인기를 얻는다.
엘파바, 글린다, 피예르와 몇 인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보이고 들리는 것을 모두 그대로 믿고 그것을 기준 삼아 상대방을 정의한다. 엘파바의 초록색 피부, 네사의 불편한 몸, 보크의 작은 몸집, 글린다의 아름다운 외모 같은 일차원적인 이미지부터 시작해 사실 무능력하지만 전능하게 포장된 오즈의 모험기, 엘파바가 사악한 마녀고 그의 초록 피부가 사악함의 증거라는 오즈의 말, 학교 광장에 있던 오즈의 석판과 얼굴 동상, 위압감을 주는 오즈의 가면까지. 에메랄드 시티는 이런 수많은 이미지와 가면들로 가득 차 있다. 통치자인 오즈는 이러한 가면 뒤에 숨어 몰래 악한 일을 행하지만 오즈민들은 진실엔 크게 관심을 갖지 않고 그저 누군가의 외면을 평가하고 따돌리기 바쁘다.
엘파바는 다수와 다르게 어떤 가면과 외면이 아닌 진실과 내면을 보는 사람이다. 입학식 날, 네사를 마음대로 데려가려는 기숙사 사감을 말리려던 엘파바가 마법을 쓰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는 장면. 의자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여러 구조물들을 부수는데, 그중엔 오즈의 모습이 새겨진 석판도 있다. 석판이 부서지자 원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동물들이 새겨진 석판이 드러난다. 엘파바는 진짜 석판을 짓누르고 있던 오즈의 석판을, 진실을 짓누르고 있던 오즈의 거짓말을 부수고 그에 대항한다.
또한 엘파바는 네사의 불편한 신체라는 외면에 집중하고 그의 휠체어를 밀어주는 것 대신, 네사가 혼자서도 잘할 거라는 그의 내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보내는 선택을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네사의 외면만 보는 어른들은 엘파바에게 무조건 네사를 도와주라 말하거나 허락 없이 네사의 휠체어에 손을 얹는다.)
서로를 채워준 엘파바와 글린다
글린다가 엘파바에게 준 모자와 망토의 의미. 엔딩 결말 해석
하지만 이런 엘파바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내면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자신의 내면이다. 주변인들은 엘파바를 ‘남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을 그렇지 않다. 엘파바도 상처를 받고 흔들리기도 한다. 특히 엄마의 죽음에 얽힌 상처와 죄책감은 그가 어른이 될 때까지 마음에 짙게 남아있었는데 이 상처를 보듬고 엘파바에게 용기를 준 건 바로 글린다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처음엔 상징색인 연두색과 분홍색처럼 서로를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보색인 두 색은 (색상환에서) 거리 상으론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가장 평행한 관계이기도 하다. 거리를 좁히기만 하면 그 어떤 색보다 맞닿기 쉬운 관계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서로에게 한 걸음 나아간 두 사람은 엘파바를 무시하는 동급생들 사이에서 마주 선 채 춤을 춘다. 이후 엘파바와 글린다는 각별한 친구가 되어 서로의 꿈을 이루도록 도움을 주는 사이가 된다.
엘파바는 에메랄드 시티행 기차가 떠날 때 글린다에게 손을 내밀어 글린다가 에메랄드 시티를 여행하고 오즈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글린다는 엘파바의 아픔을 위로하고 그가 새로운 세상에 나갈 용기를 준다. 글린다가 엘파바에게 준 모자는 엘파바가 ‘첫 파티’라는 새로운 경험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엘파바가 창문 너머로 떠나기 전에 둘러준 망토는 통치자에게 대항하는 험한 길을 선택한 그에게 전하는 용기와 온기를 선물한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진한 우정을 등에 업고 착한 마녀와 나쁜 마녀, 명성을 가진 위대한 마법사와 동물들을 돕는 마법사라는 각자의 길로 날아오른다.
숨겨져 있던 두 마녀의 이야기는 새로운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쳐준다. 기세 좋게 시작된 이 환상의 나라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Part1의 성적표는 얼마큼의 상승 곡선을 그릴지 벌써부터 궁금하고 기대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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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사랑에는 정해진 모양이 없답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
사랑에는 정해진 모양이 없답니다
안녕하세요. 할리우드 영화의 숲, 할리포레스트입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영화를 누가 만들었는지 감독을 보지 않고 그냥 봤을 때 '아, 이거 이 사람이 만든 영화구나!'하고 떠오르는 영화는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할리우드에는 유독 그런 감독이 몇 명 있죠.
자신만의 영화 성향을 확립한 감독, 예를 들면 '팀 버튼', '리처드 링클레이터'같은 분들이 이런 케이스입니다.
▲ '기예르모 델 토로'의 주요 연출작 <판의 미로>(2006), <퍼시픽 림>(2013), <크림슨 피크>(2015)
하지만 그중 최고로 성향이 확실한 사람은 다름 아닌 '기예르모 델 토로'감독이 아닐까 싶습니다.
<판의 미로>(2006), <퍼시픽 림>(2013), <크림슨 피크>(2015) 등 그가 연출을 맡은 수많은 영화들을 보면 언제나 '만화 같은 기괴함'을 살펴볼 수 있죠.
이런 '기예르모 델 토로'는 제가 언제나 주목하는 감독이었으며, <크림슨 피크>(2015) 이후 3년 만에 엄청난 걸작으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전 '또, 어떤 그로테스크한 영화를 만들려나?'싶었습니다.
그러다 CGV에서 '2018 아카데미 기획전'을 하는 소식을 접하고 2월 10일, 그러니까 개봉일(2월 22일)보다 12일이나 먼저 보고 왔습니다.
▲ '기예르모 델 토로'감독은 3년 만에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돌아왔습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시놉시스
1960년대 미국, 미 항공 우주센터에서 일하는 언어장애인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그러던 어느 날 남미에서 왔다는 괴물이 기계에 감금된 채 끌려온다. 그 후 엘라이자는 기묘한 그에게 조금씩 이끌리게 된다. 그들은 음악을 같이 들으며 교감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 이종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주제와 특징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 시상식은 무엇일까요? 네, 바로 '아카데미 시상식'입니다.
▲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 시상식 '아카데미 시상식’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시상 식는 매년 2월 말쯤에 열리며, 시상식 전년도에 개봉한 영화들을 후보로 하죠. 그래서 일부러 배급사들은 '아카데미상 탈거 같은 영화'들을 일부러 12월 개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의 국내 개봉은 매년 2월~3월에 몰려있으며,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바로 이렇게 노린 영화였습니다. 아예 대놓고 '나 상 타려고 나온 영화예요'라고 외치는 상황이었죠.
▲ 대놓고 '아카데미 시상식'을 노리고 나온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무려 아카데미 시상식의 13개 부문에 최종 후보를 올렸습니다. 단 1개만 후보에 올라도 대단한 건데 정말 엄청나죠?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이런 13개 부문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의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부문
1. 작품상
2. 여우주연상
3. 여우조연상
4. 남우조연상
5. 감독상
6. 각본상
7. 편집상
8. 촬영상
9. 의상상
10. 미술상
11. 음악상
12. 음악믹싱상
13. 음악편집상
여기서 전 과연 이 영화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건지 나름대로 심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세세한 것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 굉장히 집중해서 봤죠. 그중 이 13개 부문에 대해서는 더더욱요.
▲ 과연 아카데미 시상 받을 가치가 있는지 확인하고자, 눈을 부릅뜨고 모든 영화 속 요소를 지켜보았습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는 기본적으로 종의 장벽을 뛰어넘는 사랑, 즉 '괴물과 인간의 사랑'을 전개의 기반으로 합니다. 평범한 인간X인간같은 로맨스물이 아니죠.
보통 <스플라이스>(2010)나 <엑스 마키나>(2015)같이 이종족과 사랑을 하는 영화들을 보면, 이종족의 겉모습은 인간과 비슷해 보이나 그 내면은 인간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왕왕 존재합니다.
그런데 남미에서 왔다는 이 괴물(작중에서는 어떠한 명칭으로도 언급되지 않음)은 기괴하기보단 어딘가 친근해 보이게 생겼죠. 그리고 보면 볼수록 위와는 정반대로 주인공 엘라이자와 내면이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 보면 볼수록 공통점이 많은 엘라이자와 괴물
들을 수는 있지만 말할 수는 없는 존재인 이 둘의 사랑은 영화 내내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됩니다.
봉숭아 물을 들이듯 서서히 깊게 물드는 사랑은, 누가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아니랄까 봐 굉장히 매혹적인 색감과 1960년대 미국의 풍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노래와 음악으로 그 표현력이 극대화되죠.
▲ '샐리 호킨스'... 이분이 연기 잘하는 걸 왜 이제야 알게 됐을까요?
그중 백미는 주인공 엘라이자를 맡은 '샐리 호킨스'의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엄청난 연기력이었습니다. 특히 수화로 분노를 표현하는 장면에선 '이 배우가 이렇게 연기를 잘했나?'싶을 정도로 적잖이 놀랄 정도였죠.
작년 <내 사랑>(2017)과 최근 <패딩턴 2>(2018)에서 보던 모습만 생각하면, 그저 좀 마른 동네 아주머니 같은 모습이었는데, 섬세한 손동작에 과감한 노출까지... 역시 배우들의 변신은 무죄입니다.
▲ 안정감을 더하기 위해 시대적 약자들로 조연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재치가 돋보입니다.
또,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는 주된 이야기인 로맨스를 떠받치는 몇 가지 부가적인 시대적 약자들로 조연을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안정감을 더했습니다.
취급이 안 좋은 흑인 여성 청소부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성 정체성을 숨기며 살고 있는 동성애자 '자일스'(리차드 젠킨스), 미국-소련 간의 갈등의 상징 '리차드'(마이클 새넌)-'호프스테틀러'(마이클 스털버그)...
오늘날에도 흑인 여성과 동성애자는 대우가 그다지 좋지만은 못한데, 하물며 러시아 스파이가 판치는 50년 전 1960년대에는 어땠을까요? 이는 조연을 훌륭히 사용함으로써 관객이 쉽게 유추할 수 있게 유도하더군요.
'옥타비아 스펜서'는 작년 <히든 피겨스>(2017)에 이어 비슷한 포지션을 또 훌륭히 소화했고, '마이클 섀넌'은 <맨 오브 스틸>(2013)에서 보여준 강렬한 악역 연기 그리고 그 이상을 선보였습니다.
▲ 이런 부드럽고 깔끔한 편집도 참 오랜만에 보네요.
그리고 제가 제일 칭찬하고 싶은 부분은 다름 아닌 '편집'입니다.
영화를 다양하게 보다 보면 전개가 커터 칼처럼 뚝뚝 끊기는 경우도 있고, 럭비공처럼 사방팔방 튀어 다니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마치 워터파크에서 슬라이드 타고 쭉~ 내려오는 듯한 느낌이네요. 정말 막힘없이 흘러갑니다.
단 한 번도 뭔가 어색하다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흘러가다 보니, 시계 한번 안 보고 스크린만 보다 보니 어느덧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있더군요. 이렇게 부드럽고 깔끔한 편집은 참 오랜만에 보네요.
▲ 간간이 들어간 코미디 요소와 복선은 지루해지는 상황을 방지합니다.
덤으로 적절히 들어간 코미디 요소와 몇 번 정도 있었던 복선은 영화가 살짝 늘어질뻔하면 바로 팽팽하게 잡아당기죠.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해질 수 있던 구멍을 그야말로 완전히 봉쇄합니다.
특히 마지막 결말에 엘라이자와 괴물의 공통점에 대한 초반 복선을 회수하던데, 사실 엄청 간단한 걸 그제서야 눈치채서 뒤통수가 얼얼했네요. 전 아직 눈치가 많이 약한가 봅니다... ㅠㅠ
▲ 도저히 파고들 틈새가 없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는 종합적으로 빈틈을 찾기 어려운 영화입니다. 제가 흠집을 찾아보려고 돋보기를 들이댔으나 현미경을 요구하는 영화죠.
같은 멕시코 감독 출신의 <그래비티>(2013)-'알폰소 쿠아론', <버드맨>(2015)-'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에 이어, 이제는 '기예르모 델 토로'도 드디어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 미리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의 아카데미 시상식 다관왕을 축하합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을 보고...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는 높았던 제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줬습니다.
아직 안본 다른 아카데미 후보작품들이 많아서 확답은 절대 못하지만 13개 부문 중 '감독상', '여우주연상', '편집상', '미술상', '음향편집' 이렇게 5개 정도는 충분히 수상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소한 다관왕을 할 테지요.
▲ 괴물도 저런 사랑을 하는데 난 왜 이렇게 외롭게 살고 있는지... 하...
추가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영화의 깊이가 심해처럼 깊다 보니 며칠 동안 여러 번 생각을 했지만 아직도 곳곳에 숨겨진 의미가 계속해서 해석되네요. 제 영화력은 한 번에 이해하기엔 아직 부족한 거 같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물은 정해진 모양이 없듯이 바로 사랑에도 정해진 모양이 없다는 거죠.
추신: 그러고 보니 이 리뷰 쓰는 날이 발렌타인데이군요.
괴물도 저런 사랑을 하는데 난 왜 이렇게 외롭게 살고 있는지... 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
사랑에는 정해진 모양이 없답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할리포레스트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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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정수
줄거리
'라이프(Life)' 잡지사에서 필름 원화 관리자로 근무하는 월터 마티는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을 다이내믹한 공상으로 이겨내는 습관이 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공상을 하며 출근하는데,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그는 동료에게서 회사가 팔리는 바람에 인터넷 잡지사로 구조조정이 이뤄질 거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핸드릭스라는 구조조정 담당자에게 최악의 첫인상을 선사하고 원판 관리실로 출근한 월터.
마지막 라이프 잡지의 표지를 장식할 사진작가 숀 오코넬이 필름과 선물을 보냈다. 선물은 다름아닌 회사의 모토를 새겨놓은 지갑. 감동에 젖은 것도 잠시, 필름을 인화하는데 중요한 25번 필름이 없다. 설상가상 숀이 25번 필름을 꼭 표지로 써달라고 간부에게 전보까지 보낸 상황. 사진을 꼭 찾아야만 한다. 월터는 직접 숀을 만나러 가기로 한다.
떠돌이처럼 세상을 누비는 숀은 어디에 있을까? 월터는 그를 찾을 수 있을까?
감상 포인트
1. 파워 N이라면 한 번쯤은 해봤을 상상들이 펼쳐진다.
2. 사진 속 장소와 사람들을 찾아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추리형 전개라서 지루하지 않고 재밌다.
3. 반전이라면 반전인 마지막 장면은 '라이프'라는 잡지사의 이름을 곱씹게 만든다.
감상평
그린란드에서 아이슬란드, 상어와의 싸움부터 화산 폭발까지. 결코 현실이라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인생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영화 같다고 했던가. 어쩌면 말도 안 된다고 코웃음 치는 그런 일들이야말로 인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예측 불허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당장 뒤를 돌아봤을 때,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을 거라고 1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있었나.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이 영화도 인셉션처럼 소설에 참고하려고 본 영화인데 인생 영화로 등극했다. 마지막 장면은 반쯤 예상하고 있었는데도, 그 뻔하디 뻔한 장면에 왈칵 눈물이 차올랐다. 돌려서 다시 보고 다시 볼 만큼 짙은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그렇다고 미련을 갖게 하는 결말이 아니라, 용기를 얻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반복되는 삶에 지쳤을 때,
자신이 한심해 보일 때 보면 좋은 영화.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월터의 가족이 피아노를 버리지 못했던 이유는, 어머니가 아닌 월터가 애지중지하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핑계를 대며 이사를 다닐 때마다 피아노를 가지고 다녔지만, 막상 어머니는 피아노 뚜껑도 열어보지 않는다. 다만 그 상처 난 피아노의 사진을 찍을 뿐이다.
피아노는 월터의 미련을 뜻한다. 이리저리 떠돌다가 생긴 피아노의 상처는 월터가 아버지를 잃고 아파했던 것에 대한 상징이다. 어머니는 아버지 대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 시달리는 아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늘 말없이 믿고 바라보는 편을 택한다. 이미 옆에 없는 남편이 선물해 준 피아노를 치는 대신, 언젠가는 유럽 여행을 떠날 아들을 위해 '월터 박스' 속에 차곡차곡 옛 물건들을 보관한다.
월터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그리워하면서도 막상 모히칸 머리를 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그 시절처럼 과감하게 살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심하게 여긴다. 그가 현실의 늪에 더 깊게 빠져들어 삶에 소극적이게 될수록 그의 공상도 심해진다. 그가 그린란드로 떠나는 순간부터, 그는 단 한 번도 공상을 하지 않는다. 오직 그를 응원하고 힘을 주는 셰릴의 모습만을 발견할 뿐이다.
"언제 찍을 거예요?"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을 보면 난 개인적으론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순간 속에 머문다고요?"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숀은 월터만큼 자신의 사진을 가장 잘 이해하고 그 의미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을 줄곧 한다. 정작 월터가 숀의 사진을 그토록 섬세하고 정성스럽게 담아냈던 이유는 그의 사진을 통해 자신이 가보지 못했던 곳들, 이루지 못한 꿈들을 찍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숀의 사진을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숀이 말하는 '인생의 정수'는 월터의 지갑 속에 있었다. 뒷주머니에 손을 쑥 넣기만 하면 잡을 수 있었던 인생의 소중한 순간들을 월터는 종종 과거에 대한 미련 때문에 공상을 하느라 놓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고 월터는 사진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담당자에게 넘겨준다. 그 사진 속에 무엇이 담겼든, 더 이상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 앞으로는 자신의 인생을 공상하느라 허비하지 않고 직접 발로 뛰고 움직이며 경험할 것이니까.
To see the world, Things dangerous to come to,
To see behind walls, To draw closer, To find each other and To feel.
That is the purpose of LIFE.
세상을 보고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마지막 '라이프' 잡지의 표지는 사진을 검토하고 있는 필름 원화 관리자, 즉 월터 자신의 모습이었다. 인생의 본질은 주변 사람들과 함께 치열한 삶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매 순간순간을 살아내는 것. 그 아름다운 결과물이 바로 '라이프' 잡지라는 것을 증명해낸 것이다.
숀은 단순히 사진기 버튼을 눌러 사진기 속에 담아낸다고 해서 사진 속에 우리의 삶의 온전히 담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순간들을 잡을 수는 없기에, 신중에 신중을 가해서 방해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셔터를 누르는 것이다. 그는 월터를 두고 '유령 표범처럼 아름다운 것'이라고 표현한다. 과연 숀은 월터의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몇 날 며칠 동안 그와 함께 출근하고 퇴근했을까.
우리는 때로 너무나 쉽게 현재를 잊어버린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들과 소망들에 얽매여 과거에 집착하거나, 자신의 모습이 불만족스러워 가혹하게 미래로 내달린다. 하지만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나다. 사진기의 셔터를 누를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들은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공기 속에 담겨 있는 현재를 느끼는 행복이야말로, '인생의 정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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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 선택했지만 ‘의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줄평 : 인간이 만든 도덕적 기준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신의 선택
▷영화 : 콘클라베(Conclave), 2025.3월
‘하나님의 선택’,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 ‘열쇠로 걸어 잠글 수 있는 방’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주1는 그렇게 불린다.
신적 대리인으로서 최고 권위를 가지는 교황을 뽑는 성스러운 과정으로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된다.
콘클라베에 참여하기 모여든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묵는 '성 마르타의 집'과 선거 장소로 사용되는 '시스티나 성당'은 외부와의 통신조차도 차단된다.
외부에서 이곳의 투표 결과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성당 굴뚝에 피어오르는 연기의 색깔뿐이다. 하얀 연기는 교황이 선출되었다는 표시이다.
교황 선출 결과를 보기 위해 모여든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의 수많은 군중과 전 세계 TV들은 이 굴뚝만을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다.
종교 권력은 그렇게 철저히 성(聖)과 속(俗)을 구분해낸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콘클라베 장면(2013.3.12~13, 이틀에 걸쳐 총 5회 투표로 선출) / 출처 : 가톨릭평화신문(cpbc)
그러나 영화 <콘클라베>는 교황 선출 과정의 숨겨진 이면을 드러내며,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거침없이 허문다.
유명 여행지를 찾은 관광객처럼 캐리어를 끌며 숙소로 모여드는 107명의 추기경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다 흩어진 자리에 남겨진 담배꽁초들,
그리고 손에 아이폰을 쥔 채 대화를 나누는 모습까지 - 이 모든 장면은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 캐리어를 끌고 숙소로 향하는 추기경들과 바닥에 나뒹구는 담배꽁초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결국 사람을 통해 성취된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교황 선출을 위한 투표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정치 행위다. 이 과정에서 교황이 되고자 하는 이는 자신이 적임자임을 설득해야 하고, 지지 세력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최고 권력을 향한 욕망이든, 세상을 자신의 신념대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종교적 이상이든, 가톨릭교회의 정점에 도달하고 싶은 열망이 없을 리 없다.
오랜 세월 추기경으로서 교회 정치에 깊이 관여해 온 이들에게 이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욕구일 것이다. 이를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로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이곳에 모인 추기경들은 가톨릭 교회의 최고 지도자로서 적합한 인물이 누구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뿐이다.
그런 베일에 싸인 콘클라베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선택은 어떤 결말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
갑작스러운 교황의 선종으로 이번 콘클라베를 주관하게 된 토머스 로런스 추기경(레이프 파인스)의 첫날 연설은 이 영화의 핵심 주제를 담아낸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다양성이고,
제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죄는 바로 확신입니다.
의심 없는 확신은 관용의 가장 치명적인 적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는 것은 의심과 함께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도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믿음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영화 <콘클라베> / 토머스 로런스(레이프 파인스)어쩌면 주인공 토머스 로런스(Thomas Lawrence)는 예수의 부활을 의심했던 열두제자 중 한 사람인 도마(Thomas)를 모티브로 삼았을지도 모른다.
(요한복음 20장) [27절]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절]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좌)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 이번 콘클라베를 주관하는 토머스(Thomas) 로런스 추기경, (우) 카라바조(1573년~1610년)의 <의심하는 도마(Thomas)>
무엇을 믿는다는 것은 맹목적인 ‘확신’이 아니다. 오히려 믿음은 의심에서 비롯된다.
도마가 예수의 옆구리 상처에 손을 넣어본 뒤에야 부활을 믿게 되었듯이,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믿음은 내가 본 것이 틀릴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한 것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의심’으로부터 출발한다.
모든 인간은 스스로가 무오(無誤)한 존재가 아님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심’은 나를 변화로 이끄는 출발점이며, ‘확신’은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영화 <콘클라베>는 신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한 본질을 탐구하며, ‘의심’으로 가득 채운다.
과연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교황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 말이다.
이 의심의 실체를 확인하고, 확신으로 바꿔야 할 책임이 토머스 로런스 추기경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감춰져 있던 아픈 과거도 드러나고, 세속적인 정치적 모략과 술수가 난무해진다.
교황청이라는 신성한 공간에서조차 세상 정치판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걱정은 이르다. 세상의 모든 조직이 그러하듯, 스스로 정화할 수 있는 내적 역량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폐쇄된 공간에서 72명, 즉 투표인원의 3분의 2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엄격한 규칙 아래, ‘의심’은 반드시 ‘진실’로 귀결될 것이라는 당위성만은 변함이 없다.
이 제한된 시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선택의 과정은, 결국 하나님의 섭리가 깜짝 놀랄 방식으로 드러나는 무대가 될 것이다.
***이후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 이번 콘클라베를 주관하는 토마스 로런스 추기경
영화 <콘클라베>는 토마스 로런스의 시선을 따라 끊임없이 ‘의심’의 과정을 추적해 간다.
선거는 최선을 뽑는 것이 아니라 차악을 뽑는 것이라는 경구는 교황 선출 과정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이런 선거에서는 예의 보수, 중도, 진보 성향의 진영 다툼과 각 진영을 대변하는 후보를 승리하도록 돕는 세 결집을 위한 노력도 치열하다.
네 명의 유력 후보가 앞서거니 뒤서기니 경합을 벌인다.
사회적 보수주의자인 나이지리아의 조슈아 아데예미(루시언 음사마티), 온건주의자인 캐나다의 조지프 트랑블레(존 리스고),
진보주의자인 미국의 알도 벨리니(스탠리 투치), 확고한 전통주의자인 이탈리아의 고프레도 테데스코(세르조 카스텔리토)이다.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 콘클라베 투표 특성상 참석한 추기경 중 한 명은 교황으로 선출되어야 한다
우선 초반 제3세계 국가의 추기경들로부터 지지를 받아 유력한 1순위로 치고 나가던 나이지리아 출신의 조슈아 아데예미 추기경이
30년전 저질렀던 수녀와의 성 추문이 드러나면서 자연스럽게 순위에서 밀리게 된다.
또 한 명의 유력 후보였던 조지프 트랑블레 추기경은 성직매매 비리가 드러나면서 교황 자리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유력한 두 후보가 가시권에서 멀어지면서 이제 남은 것은 진보진영의 알도 벨리니 추기경과 강경 보수파인 고프레도 테데스코 추기경.
내심 진보 성향인 토머스 로런스는 강경보수파인 고프레도 테데스코 추기경이 교황 자리를 차지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같은 진보진영의 알도 벨리니 후보가 있지만 세 결집이 미약하다.
이런 연유로 기도의 어려움을 겪으며 자신은 결코 교황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주인공 토마스 로런스는 어느새 교황의 자리를 욕망하게 된다.
‘의심’의 조정자 역할을 자임하던 주인공이 그 '의심'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격이다.
그 순간 성 베드로 광장에서 발생한 이슬람 세력의 폭탄 테러는 이 모든 상황을 반전시킨다.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 테러와 종교전쟁에 대한 토론은 추기경들의 가치관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강경 보수파인 고프레도 테데스코는 이때다 싶어 이런 이슬람 테러가 '상대주의 교리의 결과물’이라고 전임 교황의 정책을 비판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 전쟁과 저 짐승들과 싸울 전쟁을 이끌 지도자다'라고 극단적인 발언을 퍼붓는다.
이에 대해 그동안 조용히 투표에 참여해 오던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멕시코인 추기경인 빈센트 베니테스(카를로스 디에스)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방금 전쟁이라 하셨는데, 여러분이 전쟁에 대해 무엇을 알고 계신지 궁금하다. 카불에서 선교를 하면서 수많은 크리스천과 무슬림들의 시신을 보았다.
방금 우리가 싸워야만 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진정 싸워야만 하는 것은 오늘 아침 이 사건을 일으킨 것처럼 그런 망상에 빠진 사람들이 아닌, 우리 각자의 마음속이다.
우리는 지금 증오에 굴복하고 편을 가를 것이 아니라 모든 여성과 남성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영화 <콘클라베> / 빈센트 베니테스(카를로스 디에스)
급격히 합리적 평화주의자로 보이는 빈센트 베니테스 추기경으로 표가 쏠리고, 최종 투표 결과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다.
이제 토머스 로런스의 ‘의심’은 해소되었고, 바라던 교황이 선출되었다.
흡족해하며 토머스 로런스는 빈센트 베니테스를 향하여 교황 수락을 공식적으로 요청한다.
‘당신을 교황으로 선출하는 것을 받아들이십니까?’ 영화 <콘클라베>/ 토머스 로런스(레이프 파인스)
이제 마지막으로 대중에게 공표를 앞둔 시점, 토머스 로런스는 빈센트 베니테스 추기경에게 과거 제네바의 한 의료원을 방문했던 이유를 묻는다.
그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의심’을 완전히 지우고 싶었던 것이다.
충격적이게도 그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인터섹스(간성)’임을 고백한다.
신학교 시절에도 그는 다른 남성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맹장수술을 위한 건강검진에서 자신의 몸에 자궁과 난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임 교황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의심’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영화는 신임 교황 인노첸시우스(‘순수한’ 또는 ‘정결한’이라는 뜻)의 선출에 환호하는 성베드로 광장의 함성소리와
성 마르타 집의 평화로운 창문 밖 풍경을 보여주며 황급히 막을 내린다.
비로소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음을 선언해 버린 것이다. 신은 그를 교황으로 선택한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스크린을 보고 있노라니 슬며시 화가 났다. 마음을 추스를 시간은 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시간이 해결할 문제는 아니었다. 여전히 지금까지도 그 ‘의심’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의심을 거둬들일지는 온전히 관객들의 몫으로 남았다.
과연 ‘우리는 그/그녀를 교황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 영화 곳곳에 ‘소수자’의 그림자를 남겨 놓았다. 이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 참조자료(YouTube)
1. [cpbcTV가톨릭콘텐트의모든것] 하느님의 선택, 콘클라베
https://youtu.be/DXdxzv4ayz8?si=4vkhBO5R9QRTtBEL
202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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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불법체류자의 현실을 다루다.
시놉시스
토리와 로키타 남매는 아프리카 난민으로 프랑스에서 불법 체류자로 살아간다. 이 남매가 할 수 있는 건 요리사의 허드렛일을 하는 것과 마약을 파는 일이다. 하필 로키타는 체류증을 받지 못하고 토리만 주술사에 의한 아동학대로 인해 체류증을 받았다. 로키타는 과연 자신이 체류증을 얻고 가사도우미가 되어 살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토리를 학교에 무사히 다니게 할 수 있을까?
토리와 로키타 남매는 보육원에서 복지사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밀입국 브로커에게 강제적으로 번 돈을 빼앗긴다. 그래서 힘들게 살아가지만 안타깝게도 할 수 있는 일은 마약 판매를 하는 일이다. 아니면 요리사의 밑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그런 일을 하게 된다.
힘들게 번 200유로를 로키타는 밀입국 브로커들에게 빼앗긴다. 그것도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말이다. 옷 속에다 손을 넣고 성기와 가슴까지 만지며 신발까지 숨겨놓은 돈을 찾아내 폭력과 협박까지 당한다. 그리고 로키타에겐 600유로의 빛이 있었고 그것을 갚느라 불공평한 짓을 당하면서까지 돈을 번다.
스마트폰도 사용하지 못하고 전화까지도 일체 금지 당하는 신세를 로키타는 겪는다. 바로 돈을 더 벌어 아프리카에 있는 부모님에게 보내고 싶기 때문에 마약 제조 시설에서도 일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고 싶었을 뿐인데 그게 잘 안됐고 불법 체류자의 삶이란 게 쉽지가 않은지 홀대를 받으며 살아간다.
또한 공황 발작이 있는 로키타에게 비인간적인 대우를 함으로서 프랑스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드러낸다. 토리도 어린 나이에 누나인 로키타를 따라 불법적인 일을 하기 시작했고 인격적으로 대우를 받지 못한다.
결국엔 로키타는 토리의 도움으로 마약 제조 시설에서 빠져나오지만 마약 제조자에게 걸려 총에 맞아 숨지고 만다. 끝부분에 토리는 누나인 로키타가 체류증을 받지 못해 벨기에에 오지 못했다고 하며 누나인 로키타가 즐겨부르던 아프리카 노래를 부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결국 살아남은 건 토리뿐이었고 아마 누나를 잊지 못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 영화에서 프랑스의 불법 체류자에 대한 프랑스 사람들의 좋지 못하다는 인식은 그렇다 치고 로키타에게 옷을 벗겨 사진을 찍고 협박하며 체류증을 권유하는 마약 제조자와 요리사에게 50유로를 받으려고 구강성교를 하는 행위까지 하는 로키타의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불법 체류자의 비극적인 결말을 보여주는 영화!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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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성 없는 음악 영화
필자가 개인적으로도 TVA 연계 애니메이션도 관람하는 편이다.
다만 대부분이 TVA를 열람했다는 전제하에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본 작을 관람하고 관람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실망이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본 작품은 그 중에서도 정말 크게 실망한 애니메이션이기에 관련해서 글을 적어본다.
줄거리부터가 정말 성의없는데, 시작부터 대체 뭘 했는지도 모르는데 "공연 마쳤네" 이러면서 자기들끼리 서로 웃으며 얘기한다.
그래서 관객 입장에서는 "아니 얘네가 누군데 뭘 했다는건가" 이 생각부터 들고 시작한다.
또한 자칭 밴드 애니메이션이면은 음악을 작곡하는 과정,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과 갈등 같은 것을 심도 깊게 담아내야 하는데 깊이가 정말 얕다.
작중에서 중후반부부터 다루는 위기 상황도 다른 작품들에서 흔히 봤던 클리셰라 어떻게 될 지 예상가는 정도이다.
음악을 다루면서 음악에 대한 심도깊은 고찰은 정말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하고, 계속 처음보는 여자 캐릭터들의 노는거랑 농담 위주로 전개가 된다.
그러면 음악이라도 좋은가하면, 적어도 전파계 같이 극소수층이 좋아하는 음악은 아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지만, 작중에서 나오는 세 밴드 중에 RAISE A SUILEN 파트 빼면 개인적으로 취향에 맞지 않았다.
나머지 두 밴드는 전부 J POP 도 아니고 흔하디 흔한 애니메이션 주제가 정도의 퀄리티 밖에 안돼서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노래 파트의 연출도 그냥 카메라 움직이고, 자기들끼리 대단해 좋아 이러면서 자화자찬하고, 외국인들이 감탄사 내뱉는 정도의 연출이라 깊이도 없었다.
그나마 RAISE A SUILEN 파트 곡들은 BABYMATAL 같이 하드한 느낌을 잘 살려서 매력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단점은. 바로 캐릭터들이 전부 3D라는 것이다.
초반에는 일부 장면에서만 그런건가 했지만 보다보면 모든 캐릭터가 중간중간 아예 멈추는 씬이 아니면 전부 3D로 이루어 진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예 캐릭터의 형태가 일그러지는 흔히 작붕은 없지만, 중간중간 캐릭터 얼굴이 불쾌한 골짜기를 일으킨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이라이트인 공연씬도 디테일들이 정말 성의 없었다.
2006년의 TVA 애니메이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의 God knows... 장면과 비교해봐도, 어떻게된게 10년도 더 지난 애니메이션보다 손 묘사, 표정 묘사가 한참 뒤떨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 파트가 당시 업계 관계자들에게도 컬쳐쇼크였을 정도로 고퀄이긴 했지만, 지금 기준으로 봐도 뱅드림 극장판에서의 공연 장면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비슷한 장르로 작년에 본 유아사 마사아키의 견왕은 캐릭터들에 하나하나 움직임 그 자체의 미가 담겨있고, 음악도 독창성 있으며 씬들도 창의력 넘치는 연출들로 가득차있어 더욱 대조된다.
같은 음악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극과 극이라 할 수 있다.
뮤지컬 영화들처럼 음악이 좋은 것도 아니고, 대다수의 유럽쪽 애니메이션이나 유아사 마사아키 작품 같이 애니메이션만의 움직임의 미가 담겨있는 것도 아니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처럼 풍광이 아름답지도 않은, 장점을 찾을 수 없었던 애니메이션이었다.
*이 글은 원글 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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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 - ‘같은 곳을 바라봤던 소중한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
친구
개봉일 : 2001.03.31.
감독 : 곽경택
출연 : 유오성, 장동건, 서태화, 정운택, 김보경, 기주봉
"같은 곳을 바라봤던 소중한 이들에게 바치는 헌사"
한없이 막역하고, 언젠가는 힘에 부칠만큼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는 단어 ‘친구’. 아주 진하고 가까우며, 그렇기에 한순간에 허물어져 버릴 수도 있는 관계를 담은 이 영화는 어쩌면 흔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친구’라는 단어를 영화 이름으로 선택했다. 눈에 잘 띄지 않을법한 이 평범한 제목의 영화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고유명사처럼 남아 마음 한편 어딘가에 구겨져있던 친구에 대한 수많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나는 이 영화를 아주 최근에 처음 접했다. 너무도 유명해 항간에 떠돌던 여러 명대사들과 사진들로 인해 이미 영화를 다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항상 뒷전으로 미뤄뒀던 영화였다. ‘누아르’ 느낌이 섞인 장르를 크게 선호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고 말이다. 언젠간 봐야지~하고 있던 찰나에 아직도 그 영화를 보지 않았냐는 지인의 잔소리에 떠밀려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예상외로 마음이 찡해지는 영화였다.
<친구>는 폭력과 영역싸움, 분노와 욕설 같은 것들로 채운 일차원적인 영화가 아니었다. 이 영화는 아버지의 직업과 집안 환경, 물질적인 가치를 따지지 않고 스스럼없이 어울려 ‘친구’가 된 소년들의 유년시절부터 시작된다. 네 명의 소년은 친구의 조건을 재거나 따지지 않는다. 그저 함께할 때 즐겁고, 웃음이 나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렇게 소년들은 한곳에 모여 하나의 우정을 맹세한다.
개인적으로 중학교 때까진 잘 몰랐다. 친구관계라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고 유치하지만, 보통 중학생이 될 때쯤이면 친구들 사이에도 ‘서열’이라는 것이 생기게 된다. 대놓고 누가 1등, 2등이라 명하지 않아도 그 무리를 유지하는 중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친구>에서는 조폭 아버지를 둔 타고난 싸움꾼 준석이 이 무리의 1등, 동수는 2등이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보였던 어린 시절을 지나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만난 네 명의 소년들은 각자 갈 길이 달랐다. 더 이상 한곳을 바라볼 수 없었던 우정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는데, 이미 생겨버린 틈을 메우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걸까. 아니면 애초에 우정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푸른 바다의 품에 안겨 물장구를 치던 소년들이 차가운 길바닥에 내려앉는 순간을 함께하며 나의 어린 시절을 채워주었던 인연들을 떠올려보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지금까지 함께했다면 우리는 친구였던 사람이 아닌 친구로 남아있을까?
친구 시놉시스
추억은 마치 바다 위에 흩어진 섬들처럼 내 머릿속을 떠다닌다. 나는 이제부터 기억의 노를 저어 차례차례 그 섬들을 찾아가기로 한다. ‘이 영화를 추억의 섬들에 살고 있는 나의 친구들과 그 가족들에게 바칩니다.’}
1976년 13살, 호기심 많던 폭력조직의 두목을 아버지로 둔 준석(유오성), 가난한 장의사의 아들 동수(장동건), 화목한 가정에서 티 없이 자란 상택(서태화), 밀수업자를 부모님으로 둔 귀여운 감초 중호(정운택). 넷은 어딜 가든 함께 했다. 훔친 플레이보이 지를 보며 함께 낄낄거렸고, 이소룡의 브로마이드를 보며 경쟁하듯 흉내 냈고, 조오련과 바다거북이 중 누가 더 빠를까 하며 입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때는 세상이 온통 푸르게만 보였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동네에서 싸움을 가장 잘하는 준석, 이소룡을 좋아하는 중호, 3학년 때 전학 온 동수, 공부를 잘하는 상택. 비슷한 구석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넷은 가장 친한 친구 사이다. 어린 소년들은 바다에 함께 놀러 가 뜨거운 햇살 아래 ‘조오련과 바다거북이 중 누가 더 빠르게 헤엄칠까’와 같은 사소한 주제로 아웅다웅하며 시간을 보낸다. 특별할 일 없던 보통의 시간도 네 명이 함께 모이면 즐거운 시간으로 변한다. 이런 관계가 바로 ‘친구’다.
“친구 아이가."
네 명의 친구들은 잠시 각자의 인생을 살다가 고등학생이 되어 다시 한자리에 모인다. 상택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갔고, 중호는 여전히 까불거리며 친구들 사이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준석과 동수의 모습이다. 건달 아버지 밑에서 자란 준석은 예전부터 ‘싸움꾼’으로 통하는 학생이었고, 동수는 준석의 곁에서 함께 싸움에 뛰어드는 학생이었다. 선생님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준석의 뒤를 따르는 동수를 보며 “쟤는 부하냐?”고 묻는다. 같은 반 학생은 그 질문에 준석은 학교 통, 동수는 학교 부통이라고 답한다.
준석과 동수는 친한 친구지만 학교라는 사회 안에서 1등과 2등이라는 서열을 갖고 있다. 준석은 여전히 “친구 아이가?”라는 말을 던지며 동수와 상택, 중호에게 우정을 강조하지만 동수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보인다. 동수는 준석에게 “내는 니 시다바리가?”라고 물으며 열등감을 보인다.
동수가 열등감을 갖게 된 이유는 아버지의 직업과 관련이 있다. 동수의 아버지는 장의사다. 3학년 때 이사 온 동수는 5학년이 될 때까지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아버지의 직업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동수는 아버지의 직업을 이해하거나 존중하기보단 부정적으로 바라봤고, 그에 대한 열등감을 갖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수의 마음속엔 분노와 열등감이 가득 차게 되고, 동수가 학교의 유리창을 깨부수던 날부터 4명의 우정도 함께 깨지기 시작한다.
준석, 동수, 상택, 중호는 각자 다른 길을 선택한다. 사실 선택했다기보단 애초에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달랐다. 상택과 중호는 대학에 진학했고, 동수는 감옥에, 준석은 마약에 빠지게 된다. 상택과 중호는 연락이 끊긴 준석과 동수에게 다시 찾아가는데,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이유로 망가져있는 상태였다.
모두가 연말 분위기에 들떠있는 크리스마스 길거리. 상택은 준석을 들러업고 함께 크리스마스 카드를 사러 간다.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 약 후유증으로 몸을 벌벌 떨고 있는 준석의 뒤 어딘가에서 이런 외침이 들린다. 상택은 누가 봐도 처참히 망가진 준석의 모습을 외면하지 않는다. 언젠가 불리한 싸움에 말려들던 날, 그리고 준석을 통해 좋아하는 진숙을 소개받던 날에 대한 보답을 하려는 듯 상택은 준석과의 의리를 지키려 노력한다.
“우리 넷 중 삶의 색깔이 비슷했던 녀석 둘마저도 또다시 각자의 색깔로 쪼개지고 말았다.”
그에 반해 동수는 의리보단 자신의 길을 택한다. 동수는 돈을 내밀며 의리에 대해 말하는 눈칼자국의 손을 잡는다. 새로운 조직의 행동대장이 된 그는 준석의 반대편에 서게 된다. 동수는 준석의 조직에 쳐들어가 부하들을 살해하고, 준석은 부하들의 뼈를 찧는 소리를 들으며 분노를 삭힌다. 친할 친, 옛 구를 써 오래 두고 가깝게 사귄 사이를 뜻하는 ‘친구’. 의리로 가득한 사이라 설명되는 관계 ‘친구’. 준석과 동수는 언제부턴가 친구의 범주를 벗어난다.
준석은 ‘친구로서 마지막 부탁’을 하기 위해 동수를 찾아간다. 동수는 준석의 제안을 거절하고 준석을 내보낸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꾼 듯 상택을 보기 위해 공항으로 출발하려는 순간, 준석의 부하들에 의해 살해된다. 마지막 부탁을 통해 어떻게든 친구 관계를 잡아보려다 실패한 준석은 그 관계가 끝났음을 인지하고 빠르게 행동에 들어간 것이다. 그에게 동수는 친구 동수가 아닌 자신을 죽이려 한 새로운 조직의 행동대장이 되었으니 말이다.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상택과 중호는 준석이라도 살리겠다며 재판에 도움을 주려 안간힘을 쓰지만 준석은 그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동수가 칼에 찔리던 날, 우정을 다짐했던 친구 준석의 존재도 함께 사라졌으니, 준석은 중호와 상택의 ‘친구로서 주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사라진 것이다. 동수의 친구였던 준석은 동수와 함께 세상에서 사라진다.영화의 마지막, 다시 소년들의 모습이 나온다. 출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긴 작은 소년들은 튜브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 ‘조오련과 바다거북의 시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소년들은 “너무 멀리 온 것 같다.”는 말과 함께 발맞춰 육지를 향해 헤엄을 친다. 우정과 친구라는 단어로 뭉친 네 사람은 같은 목표를 위해 한 방향을 바라보며 발을 구른다. 하지만 현실 속 그들은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준석은 동수 편을 들었던 것도 같다는 말과 함께 준석, 동수, 상택, 중호의 찬란한 우정은 막을 내린다.
영화를 보기 전까진 <친구>가 우정의 대상들에게 바치는 영화라는 누군가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보는 순간 확실히 알게 됐다. 이 영화가 맑은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며 함께 달렸던 소중한 그들을 기리는 영화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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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액션과 스토리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습니다. [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로드하우스 이 영화는 원 저작권자(배급사)의 사용 허가를 받은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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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메리칸 히트맨> 예고편
피눈물 없는 암살자 딘. 죄책감도 망설임도 없이 피로 얼룩진 그에게 콜걸인 벨벳이 다가온다. 처음 느끼는 감정에 힘들어 하는 딘에게 벨벳의 살인 명령이 떨어진다. 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조직과 처절한 사투를 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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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 굿 맨> 메인 예고편
조용한 섬마을에서 함께 살고 있는 ‘벤자민’과 ‘오드’는
서로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6년 차 연인이다.
가정을 꾸리고 싶은 두 사람은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지만,
‘오드’가 임신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벤자민’은 그런 ‘오드’를 대신해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는데…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맞서는
용기 있는 사랑과 연대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