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1-25 14:59:13
11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위키드> 개봉 첫 주만에 누적 수익 1억 달러 돌파

2024년 하반기 최고 기대작 중 하나였던 <위키드>가 개봉 첫 주 만에 누적 수익 1억 1,400만 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이는 2024년 개봉작 중 세 번째로 높은 첫 주말 흥행 기록이라고 합니다. <위키드>는 현재 로튼 토마토 90%을 기록하며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현재의 성공과는 다르게 <위키드>의 영화화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당초 2016년 개봉을 목표로 했으나, 2019년으로 미뤄졌습니다. 그러나 그 개봉일은 유니버설의 <캣츠>에게 넘어갔고, 다시 2021년으로 연기되면서 <씽2게더>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감독 역시 <빌리 엘리어트>를 연출한 '스티븐 달드리' 감독에서 <인 더 하이츠>의 '존 추' 감독으로 한 차례 교체된 바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총 2부작으로 구성된 <위키드>는 투입된 제작비만 3억 5천만 달러 이상에 달하며, 유니버설 스튜디오 역사상 가장 비싼 영화로 기록되었습니다. 후속작인 <위키드: 파트2>는 내년 하반기 북미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국내보다 한 주 늦게 북미에서 개봉한 <글래디에이터 Ⅱ>는 누적 수익 약 5,500만 달러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보였습니다. 제작비가 약 2억 1천만 달러로 추정되는 만큼, 국제 시장에서의 성과가 흥행 성공의 핵심이 될 전망입니다. 현재까지 해외에서 1억 6,500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해서는 약 4억 달러에 가까운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중국 시장에서 고작 300만 달러를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이 목표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한편, <위키드>는 북미에서의 성공에 비해 국내에서는 누적 관객 수 65만 명을 불러들이며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며 침체된 극장 상황을 짐작케 했습니다. <위키드>와 함께 개봉한 <히든페이스>가 누적 관객 수 35만 명으로 2위를, <글래디에이터 Ⅱ>가 누적 관객 수 72만 명으로 1위에서 3위로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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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보이스 피싱, 당신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 감독 : 라우 첸 Law CHEN출연 : Jerry HSU시놉시스 : 대만에서 온 이민자 제리는 은퇴 후 미국 휴양도시 올랜도에서 살고 있는 평범한 남성이다. 어느 날 중국 본토에 있는 비밀경찰에게 전화가 걸려 오고, 제리가 대규모 돈세탁 사건의 용의선상에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된다. 이번 사건으로 중국으로 송환되어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제리. 가족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기가 거래하는 은행의 사진을 몰래 찍어 보내는 등 전화상으로 중국 비밀경찰의 지시를 따르기 시작하는데…이 작품은 주인공이자 프로듀서인 제리가 실제로 겪은 사건을 토대로 다큐와 픽션, 과거(의 재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여기에 첩보와 스릴러, 휴먼드라마 등의 장르적 외피를 바꿔가는 구성을 더해 관객들로 하여금 지루할 틈 없는 흥미로운 영화적 체험을 이끌어 낸다. 자칫 무겁고 어두워질 수 있는 비극적 소재를 다루면서도 관객들이 영화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한 연출적 고민들이 영화 곳곳에 자리해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영화는 물론 이번 영화제 GV를 통해 영화를 ‘함께’ 만들며 ‘함께’ 성장한 그들의 끈끈한 우정과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감독은 GV에 앞서 이 영화의 장르가 완전한 실화에 기반한 ‘다큐멘터리’라고 했다. 극의 재미를 위해 다큐와 픽션(재연)을 오가고 첩보나 스릴러, 휴먼드라마’처럼’ 장르의 옷을 갈아입지만 궁극적으로 제리가 실제로 겪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반영한 재연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관객에게 직시했다. 그리하여 관객들이, 관객 너머의 모든 사람들이 보이스피싱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제리가 겪은 비극적인 피해를 입지 않도록 마음을 전했다.개인적으로는 ‘전 재산을 잃고 3일만 슬퍼했다, 아들의 커리어를 위해 작품에 임했고 촬영하는 3일 동안은 음식 배달을 할 수 없었다’는 제리의 소회를 들으며 마음 한 구석이 먹먹했고 그가 건강하기를, 더욱 행복하기를 바랐다. 아마 GV 현장에 있던 다른 이들 또한 같은 마음, 바람이지 않았을까. 그러니 이 글을 보는 당신! 당신은 물론 당신의 부모님 또한 보이스피싱에서 예외일 수 없으니 자주 연락하시라.상영 일정 : 10-05 14: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 10-06 16:30 CGV 센텀시티 5관 / 10-11 13:30 영화의전당 중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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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얼굴 앞에서, 2021 홍상수 감독작품
평온한 일요일의 오후 햇살. 한껏 아픈 다음 느끼는 안온함과 미열. 이제는 폭우가 지나갔다는 안도감. 그런 것들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한참을 달리고 있을 때는 모른다. 한참을 울음을 삼키며 질주해야 할 때는 알 수가 없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들이 그냥 그대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고, 주변에 있는 이들이 살아가는 데 충분한 위안이 된다는 걸. 멈춰 서려고 할 때 발 밑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문득 보일 것 같은 순간에 대한 영화를 보았다.
이곳에도 국제 영화제가 있었다. 작년에는 개최하지 못했을 영화제가 올해는 열렸다는 소식을 얼핏 들었다. 32회 차나 되는 줄은 몰랐고, 홍상수 감독의 ‘당신 얼굴 앞에서 (in front of your face)가’ 초청되었다는 소식은 알았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모 여배우와의 불륜 스캔들로 시끄러웠지만, 홍상수 감독의 초기작들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무렵에 무척 유명했다. 필자는 전문 평론가가 아니라서 감히 이 감독의 영화에 대해서는 뭐라고 못하겠지만, 뭐랄까. ‘오! 수정’에서 보여준 흑백의 강렬함, 원색적인 소재를 놓고 양자의 입장에서 들어보는 서로 다른 이야기의 아귀 맞춤이 절묘했다. 고 이은주 배우의 쇳소리 나는 신음소리를 스크린에서 접했을 때의 충격이란. 그 후에 봤던 ‘극장전’의 엄지원 배우의 애드리브 ‘이제 그만 뚝!’, 그리고 ‘생활의 발견’에서 추상미 배우의 능청스럽고 현실감 있는 연기들. 처마 밑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처연히 서 있던 남주인공의 그 눈빛이 선한 영화였다. 그 영화들이 홍상수 감독에 대한 나의 기억들이다. 아주 일상적이고 남사스러운 이야기를 소재로 아주 가까이에서 렌즈를 들이대고는, ‘저것 봐, 당신 인생이 이거랑 조금은 다른 거 같아? 한 번 봐’라는 자세로 관객의 눈과 귀를 희롱했던. 사실 나는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2013)을 마지막으로 그의 영화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정은채 배우는 연기력 논란이 늘 있어온 것도 같은데, 그 영화 속 해원이랑은 잘 어울렸다. 그 해에 나는 여기에 건너왔다. 그렇게 자주 위안삼아 찾아가던 종로 시네 코아와, 흥국 생명 건물에 있던 하이퍼텍 나다와, 아트선재 센터를 뒤로 하고. 그곳들이 밀집한 곳에 있던 직장에 다닌 게 신의 한 수였다.
영화관에 대한 추억은 참으로 많다. 다행히 이 곳에도 좋은 곳들이 여럿 있다. 코로나로 어려웠겠지만,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간 위의 영화관들이 아쉽지 않게, 이곳에서도 자주 한국 영화랑 외국 영화들을 본다. 홍상수 감독은 언제부터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을까? 언제부터 영화들에 남자 주인공보다는 여자 주인공이 화자가 되고 주인공으로 부각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을까? 그리고 2021년에 발표된 ‘당신 얼굴 앞에서’에서는, 그전의 감독에게서 보지 못했던 시각들을 볼 수 있다. 관객도 감독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는 경험들로 인한 것이었을까? 영화 속 주인공인 ‘상옥’은 이혜영 배우가 맡아 관록의 연기를 보여준다. 연기라고 하기에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특별한 상옥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상옥은 과거 한 때 연기를 한 적 있는 영화배우다. 그녀는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주류 소매점을 운영했다. 자신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영화감독 (권해효 배우)이 있어서 그것을 계기로, 한국에 있는 동생 집에 묶으며 한국을 다녀가고 있는 중이다. 영화는 소파 위에서 잠들고 일어나는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독백으로 시작된다. 초반에 그녀의 대사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영화 중간중간 그녀의 독백은 기도가 된다. 오늘 하루도 평안함에 감사하고 있다. 잠든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다보며, 그녀가 깨서 함께 간 브런치 카페에서의 대화는 그냥 상황만 있고 대본은 없는,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셈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자매의 감정이 격해지고,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 감독은 아주 명확히 카메라 렌즈를 줌인한다. 살면서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감정선을 읽으라는 듯, 아주 친절한 교과서처럼, 알려준다.
바다 대신 산과, 고층 아파트와, 공원이 등장한다. 예전 같지 않게 홍상수 감독 영화의 주인공들은 많이 현실에 밝아졌고, 집값 시세도 너무 잘 안다. 상옥은 조카도 만나고, 그녀가 오래전에 살던 집에도 가 본다. 집안 구석구석을 보다가 만난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는 장면은, 과거의 어느 장면에서 멈춰있는 그녀 자신의 기억과 마주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들은 뜻하지 않게 친절하고, 감독과의 대화는 길고 재미있다. 한껏 취기가 올라 영화 이야기를 하든 그들. 뭐 이제는 자타공인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가 되어버린 권해효 배우는 상옥에게, 그녀의 과거 영화들에서 보여준 얼굴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웠는지에 대해 말하며, 그녀와 함께 영화를 찍고 싶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한참 망설인 상옥은 자신에겐 살 날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며, 영화 출연을 고사한다. 감독은 단편 영화라도 찍자며, 다음 날 자신이 상옥을 데리러 가겠다고 한다. 그렇게 둘은 여행을 약속한다. 상옥이 그제야 감독에게 묻는다.
‘결혼했어요?’
‘아들이 벌써 다 컸죠’
몇 병의 연태고량주와, 담배와, 기타 연주가 오가고 둘은 빗속에서 헤어지고, 그 다음 날의 상옥은 감독의 음성 문자 메시지에 눈이 떠진다. 거기에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독백하는 듯한, 감독의 대사가 있다. 이전에는 미처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치기 어린 하룻밤을 계획했던 수치스러움과 후회를, 감독은 권해효 배우를 통해 말한다. 신변잡기적인 대화들 속에서, 감독이 바라보는 그 어떤 삶에 대한 ‘진실’ 하나를 가늘고 긴 냉면처럼 뽑아내던 그의 날카로움은, 등이 가냘픈 여배우를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숙취 뒤의 사과문으로 뭉뚝하고 둔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글쎄, 우리네 삶 속에 렌즈를 대고 들여다본다면 우리도, 그런 순간들을 살아내고 있지는 않은가? 술, 마시고 하는 의미 없는 듯한 대화들. 하지만 그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사람들과 하는 말이라면 그런 ‘낭비’되는 시간 또한 곧 행복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상옥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삶의 뒤안길에서 하루하루의 평안함에 감사하며, 모두의 얼굴 앞에 놓인,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지만 미처 보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는, ‘천국’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녀처럼 죽음이 눈앞에 있거나, 삶의 찬란한 순간들을 뒤돌아봐야 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 상옥처럼 내 시선과 마음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시네코아에서 극장전을 보던 대학생인 나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보던 하이퍼텍 나다에서의 나와, 해외 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마주 보고 있는 지금의 나. 내 인생을 관통하고 있는 진실, 혹은 수치심, 혹은 신념은 무엇일까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지나치게 과거를 돌아보고, 어쩌면 아주 오래 그 안에서 살았는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각에 잠겨 있지 않을 때는 또 영화 속 상옥처럼, 열심히 일을 하며 지냈다. 일을 하지 않는 나는 한 번도,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불륜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범인은 아닐 홍상수 감독도, 배우들의 입을 통해 전하는 대사들로 인해 어딘가 많이 변했다는 걸 깨달으며, 영화제에 초대해 주신 고마운 분과 참 많이 웃었던 즐거운 밤이었다. 과거가 아닌 현재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내일도 어제도 아닌 오늘 안에서 살자고 내게 속삭이던 영화였다. 두 자매의 이야기 속에서 비치는 한 사람의 일생이 저렇게 짧고도 길고, 처연하기도, 강렬하기도 한 소설 (short story. 단편영화. 영화 속 감독과 상옥이 이야기를 나누던 인사동의 카페 이름이 ‘소설’이다) 같기도 하다 싶었다. 나중에 40년쯤 더 지나서 나도 내 인생을 돌이켜 본다면, 축약하면 단편 영화나 소설 정도는 나오지 않을까. 누구나 가지고 있을 그 찬란한 개개인의 역사가 다 영화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다면 나도 선물 (present)처럼 주어진 오늘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요즘은 일이 버거워 자주 몸이 안 좋았는데, 몸살이 나서 아픈 것도 코로나인줄 알고 덜컥 겁이 났었다. 하지만 고열이 미열로 바뀔 즈음 또 영화관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영화 속 상옥을 깨우던 햇살과 깨달음처럼, 오늘의 나는 포근함을 느낀다. 참 다행이다. 앞으로 해외 영화제에서 더 많은 한국 영화가 초청되고, 상영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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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돈과 비극으로 넘쳐나는 세상을 품은 낯선 뮤지컬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 한 마디로 카오스다. 장르도, 이야기, 형식도 하나로 규정짓기 힘들다. 마치 각 요소를 특성만을 가져와 한데 섞은 혼돈의 모양새다. 성을 바꾸는 마약왕의 설정이나, 스페인어 기반의 뮤지컬 형식, 멕시코의 척박한 현실 속 핍박 받는 여성들의 이야기 등 보기만 해도 잘 붙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단점보다는 장점으로 발휘되었다. 작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여우주연상 수상,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다 후보작(13개 부문 노미네이트)만 봐도 그렇다. 영화가 담은 혼돈의 세상이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느껴져서일까? 평가야 어떻든 <에밀리아 페레즈>는 흥미로운 작품인 것만은 확실하다.
멕시코에 사는 리타(조 샐다나)는 정의로운 법조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변호사가 되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돈과 권력의 논리에 살인자를 변호하는 처지.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찾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송신자는 마약왕 마니타스(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그는 리타를 향해 자신이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여자가 된 이후의 삶을 만들어주면 거액의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리타는 고민 없이 이를 수락하고, 마니타스를 에밀리아라는 여성으로 만든다. 마니타스의 아내 제시(셀레나 고메즈)와 아이들을 챙긴다. 몇 년 후, 리타 앞에 에밀리아가 나타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부탁을 한다. 과거 자기 가족과 함께 살게 해달라고.
<에밀리아 페레즈>는 마약왕에서 성녀가 되는 구 마니타스 현 에밀리아의 삶을 중심으로 이어간다. 진정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었던 트랜스젠더의 삶은 그 자체로 우여곡절이 많다. 새로운 인생을 갖기 위해서 그만큼 과거의 인생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써야 했던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얼굴로 살아가는 걸 선택한다. 물론, 그로 인해 생기는 일들은 기쁨보단 슬픔이 가득 차 있다.
영화는 이런 에밀리아의 선택을 통해 한 사람이 정반대로 변한다고 해도 그가 과연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겠느냐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작금의 시대에서 사회적 가면을 벗고 자신의 본모습을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처럼도 들린다.
극중 에밀리아는 성만 바꾼 게 아니다. 범죄 집단 내 지위, 가장의 지위를 내려 놓는다. 수술로 인해 180도 바뀐 삶을 즐기는 듯 하지만, 이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한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 멕시코로 가고 마니타스의 친척으로 위장해 가족과 함께 산다. 그로 인해 복잡한 문제들이 생긴다. 몸은 에밀리아지만, 마음은 마니타스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감독은 이 캐릭터를 통해 아무리 자신의 본모습으로 살려고 해도 한 번 쓴 사회적 가면은 벗기 힘들다는 걸 보여준다. 이는 인간 본성과 사회적 역할의 첨예한 대립으로 읽히며, 인간에게 정해진 운명을 쉬이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도 확장 해석할 수 있다.
리타와 제시도 마찬가지다. 에밀리아를 도와준 후 거액을 받고 유럽에서 새로운 삶을 살았지만, 결국 멕시코로 돌아오고, 제시 또한 새로운 연인과 사랑을 불태우고 떠나려 하지만, 에밀리아와의 연을 끊어내지 못한다. 영화 초반 “정말로 수술한다 해도 ‘여자’의 몸을 가진 내면의 ‘남자’가 될 수 있다”는 성전환수술 담당 의사의 대사는 이 비극을 예견한 듯하다.
이는 힘든 여성의 삶으로 전이된다. 남성 권위주의적인 세상에서 여성들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목소리도 낼 수 없다. 결국 사회가 지정한 성 역할에 갇혀 살아간다. 마치 새장 속 새처럼. 리타와 제시, 그리고 범죄 조직에 가족을 빼앗긴 멕시코 여성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에밀리아도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자신의 자아를 새장에 넣어 놓았으니 앞서 소개한 여성들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서사의 맥락과 상관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뮤지컬 장면은 가슴속에 응어리진 이들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극 초반. 살인자를 변호해야 하는 리타의 삶을 한탄하는 'El Alegato', 리타와 에밀리아가 만연한 부정부패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El Mal', 진정한 사랑을 찾아 자유로운 삶을 살고픈 제시의 마음을 담은 'Mi Camino' 그 자체로 멋진 곡이면서도 한풀이 같은 성격이 짙다. 참고로 'El Mal'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을 받았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다양한 장르와 요소를 통해 자유를 갈망한 한 인간의 선택이 저지른 실수가 업보로 돌아와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순간순간 우리나라 드라마보다 더 센 막장극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결국 극 중 뼈저린 반성과 구원의 메시지는 마음을 동하게 만든다. 큰 범주 안에서 인간의 삶을 그린 자크 오디아르의 연출력, 진부한 표현일지 몰라도 온 힘을 다해 이 영화에 자신의 모든 재능을 쏟아부은 조 샐다나의 연기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영화를 얼룩지게 만든 건 영화 안이 아닌 밖에서 벌어진 이슈다. 에밀리아 역을 맡은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의 과거 SNS에 남긴 문제적 발언, 유럽의 시선으로 너무나 가볍게 담은 멕시코의 암울한 현실(강제 납치와 실종 사건)과 문화적 표현, 멕시코가 아닌 대부분 프랑스에서 대부분 촬영했다는 점 등은 영화가 가진 메시지와 상충하면서 감상을 저해한다. 이는 13개 부문에 올랐음에도 단 2개에 그친 오스카 수상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인다.
극 중 이야기처럼 <에밀리아 페레즈> 또한 업보가 작품의 족쇄가 되어 돌아온 셈.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말할 것도 없고) 현실 속에서 비로소 영화가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현실의 부정 이슈까지 끌어안은 이 혼돈의 영화는 과연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사진 제공: 그린나래미디어
평점: 3.5/ 5.0
한줄평: 혼돈과 비극으로 넘쳐나는 세상을 품은 낯선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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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 베이비 2 / The Boss Baby: Family Business, 2021
<슈렉>을 대표하는 "드림웍스"는 알다시피, "디즈니"를 위협할 만큼 잘 나갔던 회사입니다.
물론, 이후에는 <마다가스카 - 쿵푸팬더 - 드래곤 길들이기>와 같은 프랜차이즈로 명맥을 이어나갔지만 <캡틴 언더 팬츠 - 스노우 몬스터>는 극장이 아닌 "VOD"로 선회한 만큼 예전과 같은 위상을 찾아보기 힘든데요.
그런 점에서 최근 국내에서 개봉한 <크루즈 패밀리: 뉴에이지>는 국내 박스오피스 1위와 21년 첫 일일 관객수 10만 명을 넘겼다는 것만으로도 아직 국내 팬들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보스 베이비 2>의 반응이 기대되었습니다.17년 국내에서 개봉 경쟁작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와 <보안관>이 있었음에도 245만 명이라는 준수한 흥행 성적을 거두었는데요.
특히, 귀여움만을 어필하는 영화가 아니라 특유의 시니컬한 드림웍스 유머가 되돌아왔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었습니다.
늘어나는 애견 인구와 달리 줄어드는 출산 인구의 사회문제를 동생의 출생으로 받는 맏이의 질투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섞어내었으니 "드림웍스"의 유머가 '왜, 아이들보다 성인들이 더 좋아하는지?', 아시겠죠?
이런 기대에 반응하듯이 영화 <보스 베이비 2>는 국내 박스오피스 2위와 함께 누적 관객수 144,274명(07.23 기준)으로 잘나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 지표들이 말해주듯이 이번 속편도 재밌었는지? - 영화 <보스 베이비 2>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전편에서 형제가 된 "팀"과 "테드"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각자 가정을 꾸리고 삶을 이어나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의 딸이자 "테드"의 조카 "티나"가 "베이비 주식화사"에서 일하는 것을 알게 되고 이들에게 하나의 임무를 맡기게 됩니다.
하지만 서로 힘을 합치기는커녕, 사사건건 부딪히기 일쑤인데...보스, 기획안입니다!
1. 애니메이션이니까, 귀엽게 봐주세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영화 <보스 베이비>는 '늘어나는 애견 인구와 달리 줄어드는 출산 인구의 사회문제를 동생의 출생으로 받는 맏이의 질투'라는 드림웍스 그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가 있는 작품입니다.
여기에 걸걸한 목소리를 내는 귀여운 아기라는 "언밸런스"는 이미, 수많은 영화들에서 써왔지만 재밌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기대를 했음에도 걱정스러운 건 이미, 전작의 마지막 장면에서 이들이 다 컸다는 것입니다.
결국 속편에서 세대교체를 해야만 하는데, 이들이 아닌 <보스 베이비>를 상상이 가능할지가 첫 번째 문제로 다가왔습니다.애니메이션이잖아!
그런 점에서 영화 <보스 베이비 2>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점을 잘 활용합니다.
보통 "애니메이션"의 주 시청층들이 어린이들이라는 점에서 "다시 아기가 되는 분유"라는 판타지적인 요소는 흥미로운 부분으로 보이거든요.
그렇게, 걱정스러웠던 세대교체도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라는 또 하나의 문제에 직면합니다.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면, 결국 동어반복으로 관객들에게 피로함을 안겨줄 것이 뻔하니까요.2. 속편인데도 시간이 늘어났잖아!
이에 이번 <보스 베이비 2>는 사회문제를 건드렸던 전작과 다르게, "성장"이라는 어느 가족들이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려냅니다.
특히, 앞서 언급한 "다시 아기가 되는 분유"라는 판타지적인 요소와 자연스럽게 연결해 관객들의 흥미를 더하는데요.
극 중 큰 딸 "타비타"의 성장과 함께 사이가 멀어짐을 느끼는 아빠 "팀"과 어느새 바빠진 직장 생활로 형과 사이가 멀어진 "테드"를 통해서 영화는 전작과는 다른 차별화와 깊어진 공감대를 형성합니다.늘어난 10분은 어디에?
영화 <보스 베이비 2>는 이번에 들어오면서, 전작과 비교하여 10분이 늘어났습니다.
대개, 속편은 전작과 등장인물이 같아 이야기의 분량이 줄어들거나 유지하는 것을 생각하면 늘어난 분량에는 어떤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이는 "티나"를 비롯한 "타비타"와 같은 새로운 캐릭터들의 등장으로 보입니다.
"팀"과 "테드"가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캐릭터들이지만, 이들과의 관계로 이번 속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캐릭터들이라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준 모습들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활약상입니다.3. 박힌 돌을 빼내지 못한다.
먼저, 이번 영화에서 나오는 "티나"는 전작에서의 "테드"와 많이 겹칩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활약을 기대해보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다시 아기가 되는 분유"를 통해서 "테드 - 팀"이 다시 어려지며 그녀의 입지는 사라지고 맙니다.
그녀의 등장이 "테드"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인데, "테드"가 나타났으니 나와야 할 이유가 사라진 것이죠.
그에 비해서, "타비타"는 그래도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는데 성공합니다.
애당초 "타비타"의 경우. "테드"와의 관계를 구축해야만 이야기가 나오는 캐릭터로 "티나"보다는 그래도 이야기가 많습니다.엄마랑 아빠 중에서 누가 좋아?
전작의 악당으로 나오는 "프란시스"는 자신이 쫓겨난 회사를 무너뜨리기 위한 동기였다면, 이번 "닥터 암스트롱"은 부모 세대와의 갈등을 소재로 합니다.
극 중 규칙에 얽매여하는 것이 싫고, 어른들의 행동으로 "전쟁 -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를 일으켜 '그 반대로 이어나가겠다'라는 동기는 그럴듯하게 보입니다.
다만 영화의 장르가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여러 다발로 풀어내기보다는 가볍게 간단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성인이 보는 영화는 아쉬움이 존재하더군요.4. 아이들만 이걸 본다고!
그럼에도, 영화 <보스 베이비 2>는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것도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 말이죠.
이런 이유에는 영화가 건드리는 감성인데, 극 중 큰 딸 "타비타"의 성장과 함께 사이가 멀어짐을 느끼는 아빠 "팀"과 어느새 바빠진 직장 생활로 형과 사이가 멀어진 "테드"의 장면들은 사회에 던져진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는데요.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가 왠지 남 일 같지가 더 마음에 갔습니다.
이외에도 2002년에 개봉했던 <스피릿>을 사용해 "3D"를 떠나 "4DX"까지 선보이는 액션신도 성인이 된다면, 더 재밌게 바라볼 수 있었으니 이번 <보스 베이비 2>만큼은 아이들에게 양보하면 안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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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수유천이 도망친 레베카에게 뭐라고 하니
<그 자연>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스크린 뒤쪽의 힘이다. 이 영화에서 동화의 아버지와 오령의 어머니는 대화 속에서 언급되기만 할 뿐 등장하지 않는다. 동화는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살고 있으며 그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기 싫어한다. 동화가 화를 내는 부분도 능희가 ‘뒤에 아버지가 있다’는 말을 반복해서 할 때이다. 오령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다. 하지만 오령은 동화와 달리 공간을 통해 어머니를 계속해서 기억하고자 한다. 그는 집 뒤편에 어머니의 무덤도 만들어두었고 직접 가꾼 흙길을 걸으며 매일 어머니 생각을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특히 오령의 어머니는 영화 전반에 걸쳐 흥미로운 방식으로 영향을 끼치는데, 그 방식은 히치콕의 <레베카>나 PTA의 <팬텀 스레드>와 같은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말하자면 오령의 집은 죽은 어머니의 기운이 서려있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러한 <레베카>적 설정을 떠올렸을 때 이 영화에서 어머니의 힘이 주인공에게 작용되는 방식은 조금 특이하다. <레베카>적 설정이 적용된 영화들에서 통상적인 경우라면 주인공은 집에 서린 죽은 어머니의 기운에 불안함을 느낄 것이지만, 이 영화에서 동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동화는 어머니에 대한 오령의 효심에 감복하며 무덤에 절을 올리기까지 한다. 대신 그 불안은 집안의 다른 인물들로부터 발현된다. 우선 능희. 영화 초반 준희가 쭈뼛거리며 제공하는 그녀에 대한 설명, 멀리서 들리는 가야금 소리와 같은 정보들은 어딘가 께름칙한 분위기를 풍긴다. 능희가 등장한 뒤에도 그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대화들은 언젠가 터질 듯 위태롭고, 결국 실제로 능희는 후반부 저녁 식사 장면에서 갈등을 촉발하기도 하다. 다음으로, 영화의 첫 숏에 등장하는 선희는 이후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저녁 식사 장면이 되어서야 비로소 다시 얼굴을 비추는 인물이다. 그동안 오령은 전화를 통해 꾸준히 그녀의 복귀를 예고하는데, 말하자면 어머니의 복귀 불가능함을 선희가 대신 채우게끔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사실 선희로부터 야기되는 불안은 더 은밀하다. 동화를 자극하는 말을 뱉으면서도 그것은 악의가 아니라 어느 정도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기인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능희와 달리, 저녁 술자리에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지만 이후 오령과의 대화를 통해 동화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직접적으로 뱉는 인물은 바로 선희이다. <레베카>의 집에 없는 어머니로부터 오는 불안은 이 영화에서 집에 상주하나 늦게 도착하곤 하는 다른 여자들로부터의 불안으로 분산, 변주되는 양상이다. 홍상수의 자연에 대한 매혹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홍상수가 자연의 아득함에 매혹되는 순간들은 이전에 비해 소박해지고 감성적으로 변한 2020년대 영화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빈번하게 등장하고(특히 영화의 마지막에서), 사실 2008년작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도 마지막 장면을 주인공이 아득히 바라보는 바다를 비추며 마무리했다(<도망친 여자>의 마지막에서 감희가 보는 영화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자연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언급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인상을 풍기는 이 영화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주인공이 자연에 매혹되는 순간들이 자주 등장하곤 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자연을 담아내는 데에 있어서 특이한 점은 자연에 매혹되는 주체가 영화 자체가 아니라 철저하게 주인공 동화라는 점이다. 영화는 종종 아웃포커싱된 저화질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밝은 녹음, 보여주지 않을 줄 알았던 붉게 저무는 노을까지 카메라에 정말 아름답게 담아내지만 그 자연을 철저하게 매혹의 피사체가 아니라 배경으로서만 다룬다(이를테면 <인트로덕션>과 <물안에서>의 마지막 장면과 같은 순간이 이 영화에는 없다. 또 이 영화에서는 나무나 풀, 혹은 풍경에 줌인을 가하는 순간이 없다). 그런데 이 자연은 단지 배경으로서만 치부하기엔 비중이 꽤 커서, 혹은 그 자연에 대한 동화의 반응이 너무나도 커서 종종 장면 전체를 장악하곤 한다. 배경의 위치에 있으나 그 힘이 튀어나와 스크린을 지배하는 이 영화의 자연은 자연스럽게 지금 이곳에 없으나 공간과 상황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상들, 즉 오령의 어머니와 동화의 아버지의 존재를 환기한다. 그렇다면 <그 자연>의 뒤쪽에서 감지되는 불안의 근원은 무엇인가? 위에서 이 영화는 스크린 뒤쪽에서 작용하는 힘의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이 힘의 근원을 프레임 안의 후경이나 서사의 뒤편을 넘어서 말 그대로 스크린 너머에서 찾아보자면, 홍상수의 다른 영화들, 그중 특히 <도망친 여자>를 떠올려 볼 수 있다. <그 자연>은 산을 배경으로 찍었다. 평화롭고 목가적인 이 산에서 오령은 산길을 가꾸고 닭도 키운다.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보면 이 영화는 마치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도망친 여자>의 저편에서 일어난 영화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영화는 극중에서도, 엔딩크레딧에서도 경기도 여주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도망친 여자>의 각 챕터가 시작할 때 느린 줌아웃으로 비춰지는 창밖의 산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리고 서울 북촌과 여주 산속에서 벌어지는 두 이야기는 닭으로 매개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 서울 북촌에서 창문 너머 여주 산속으로까지 힘을 뻗치고 있는 존재는 무엇인가? <도망친 여자>에는 있고 <그 자연>에는 없는 것, 바로 김민희다. 김민희는 서울 북촌의 어딘가를 떠돌고 있으므로 여주 산속에 있을 수 없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부터 이번 영화까지 세면 홍상수는 총 17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중 12편의 영화에 김민희가 주연으로든 조연으로든 등장한다. 김민희가 영화에 어떤 방식으로든 등장하지 않은 영화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 <당신얼굴 앞에서>, <탑>, <여행자의 필요>,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까지 총 5편으로 생각보다 꽤 있는 편이고, 그러므로 김민희 없는 홍상수 영화를 보는 것이 사실 그리 낯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그 자연>에서는 유독 김민희의 부재가 크게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김민희의 부재가 드러나는 지점들은 특수하고도 흥미로운데, 우선 첫 번째로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에서는 김민희가 있었더라면 맡았을 배역이 꽤 명확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 박미소가 연기한 능희는 평소 홍상수 영화에서 김민희가 맡던 역할의 이미지를 상기시킨다. 시종일관 은은한 불안감을 풍기는 이 능희라는 인물은 술자리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히스테리와 약간의 표독스러움으로 영화 전체에 지속되던 평화를 깨는 인물이다. <풀잎들>이나 <밤의 해변에서 혼자>같은 영화들에서 김민희가 연기한 인물을 떠올려보면 <그 자연>에서 이 점은 꽤 분명하게 보인다. 다음으로 김민희의 부재가 드러나는 지점은 결말인데, 결말은 이 영화에서 가장 특이한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 자연’은 동화에게 상처만 남길 뿐 뭐라고도 하지 않는다. 고장나버린 낡은 차 안에서 쓸쓸히 담배연기를 뿜는 동화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난다. 자의식에 가득찬 채 낡은 차를 마냥 찬미하는 동화의 태도는 말하자면 자연에 대한 태도와 동일시되므로 거창해보이는 이 영화의 제목은 사실 자조 섞인 맥거핀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인트로덕션>, <물안에서> 같은 영화들의 결말과는 확실히 이질적이다. 이 점에서 <그 자연>은 최근작인 <수유천>과 궤를 같이 한다. <수유천>의 마지막에서 전임은 수유천의 발원을 찾겠다며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프레임에서 사라지지만 곧이어 환한 미소를 띤 채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며 프레임 안으로 복귀한다. 그리고 전임의, 혹은 김민희의 그 해맑은 미소에서 일시정지하며 영화는 끝난다. <그 자연>의 결말을 <수유천>의 결말과 비교해보면 이 영화에 감도는 불안감의 근원이 사실은 후경으로서의 자연, 혹은 극중에서 부재한 인물을 넘어 영화 자체의 바깥에 있다는 것과 그것의 정체가 김민희의 부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유천>의 개봉 이후 홍상수 영화 속 김민희의 존재에 대해서 흥미로운 담론들이 오갔다. 그의 영화에서 김민희는 점점 정물화되어가고 있고 <수유천>은 그 흐름에서 정점을 찍었다는 것이다. <그 자연>은 홍상수 필모그래피 안에서 <도망친 여자>, <수유천>과 이을 수 있는데, 자연에 대한 태도와 김민희의 존재 여부라는 두 축을 세 영화를 동시에 관통하며 또 각 영화들이 갈라지는 지점으로 삼아볼 수 있다. <도망친 여자>는 자연을 긍정하면서 영화 표면에 항상 존재하는 김민희에 의해 작동되었고, <수유천>은 자연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면서도 정물로서의 김민희는 무한 긍정했다. 이번 <그 자연>은 자연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고 김민희마저도 없는 상태를 찍은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는 텅 빈 자연, 분산된 불안, 한숨 쉬는 남자라는 증상으로 발현된다. 그래서 <도망친 여자>와 <수유천> 이후 <그 자연>은 정물화에서 블랙코미디로의 회귀, 몇몇 부분은 탈속에서 세속으로의 회귀이고, 역설적으로 김민희 없는 김민희에 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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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릿마리 여기 있다(Britt-Marie Was Here/2019/스웨덴)
- (이미지 출처: 네이버이미지)<카오스와의 조우>63세의 여성 브릿마리. 영화는 그녀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뒷모습에서 시작한다. 그녀의 뒷모습은 마치 정지된 듯 활기가 없다. 어쩐지 행복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이다.빨래, 청소, 장보기, 요리... 브릿마리의 일상은 단순하고 규칙적이다. 그녀는 정리와 정돈, 요리를 즐기며 주변이 그녀가 정한대로 되어 있지 않거나 흐트러져 있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남편과 둘만 살고 있고 남편은 아직도 일을 하고 있어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 집에서 지내는 브릿마리를 방해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녀는 그럭저럭 불만이 없어 보인다.그런데 어느날, 한 통의 전화가 그녀의 질서정연했던 삶을 혼돈의 세계로 몰아넣고 만다. 남편 켄트가 심장마비로 병원에 입원했다며 보호자를 찾는 전화를 받고 달려간 병실에는 카밀라라는 여성이 먼저 와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셔츠를 빨며 맡았던 향수 냄새가 그녀의 냄새였음을 직접 확인한 순간 부부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며 질서있게 함께 지내던 집은 그녀에게 혼란을 일으키는 곳이 되어 버린다. 그녀는 그것을 견딜 수 없어 모아둔 비상금을 챙겨 가방 하나에 짐을 꾸려넣고 그날로 집을 떠난다.다음날, 그녀가 찾은 고용센터에서 추천한 유일한 직업은 '보르그'라는마을에 위치한 청소년센터의 청소년 지도사 겸 유소년 축구팀 코치.장거리 버스를 한참 타고 저녁 늦게 도착한 '보르그'라는 작은 마을의 청소년센터는 관리가 안 되어 폐가 같았다. 그녀가 그토록 싫어하던 카오스의 공간이었지만 달리 갈 곳이 없는 브릿마리는 그녀 인생만큼이나 엉망진창인 센터의 소파에서 지친 몸과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이튿날 아침, 창문을 깨고 날아들어온 축구공 때문에 잠에서 깬 브릿마리는 축구팀원들과 대면한다. 그녀나 아이들이나 낯설고 한심하기는 마찬가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축구를 가르쳐야 할 브릿마리는 맞닥뜨린 생생한 현실이 두렵고 새로 온 코치가 평범한 할머니라는 것을 안 아이들은 그만 힘이 빠진다.거처로 삼았던 청소년센터에 쥐가 출몰하자 브릿마리는 그녀에게 호감을 보이는 동네 경찰관 스벤의 도움으로 뱅크라는 여성의 집에 방을 얻는다. 뱅크는 한때 유망한 프로 축구선수였고 갑자기 사망한 전임 축구코치 팝스의 딸인데 지금은 시력을 잃어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같이 지내게 된 브릿마리에게도 퉁명스럽게 대할 뿐.브릿마리는 뱅크의 집에서 발견한 축구 지도서로 공부를 하며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이끈다. 아이들도 다른 방법이 없자 차츰 마음을 열고 그녀를 따른다.축구팀원 중 소녀 베가는 왜 축구를 하느냐는 브릿마리의 질문에 우리도 축구팀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며 축구는 베가의 전부라고 덧붙인다.제대로 된 놀이 시설도, 일자리도 별로 없는 작은 마을에서 축구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간절함을 알게 된 브릿마리는 아이들을 도우며 웃음을 찾게된다.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복지센터 공무원이 나타나 청소년센터를 닫을 계획이며 코치에게 자격증이 없으면 팀은 대회에 참가할 수 없다고 통보를 한 것이다.브릿마리 인생도, 축구대회에서 뛰고 싶은 아이들의 꿈도 장애물에 꽉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이웃들이 나선다.축구를 좋아하지만 어려운 환경 때문에 지금은 축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그러나 언젠가 다시 시작할 꿈을 지닌 청년 사미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며 힘을 실어준다. 아버지는 가출하고 어머니는 사망하여 사미가 돌보아 주고 있는 형편이지만 축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베가는 브릿마리에게도 꿈이 있을 것이 아니냐며 그 꿈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힘주어 이야기한다. 결정적으로 축구코치 자격증이 있는 뱅크가 부코치를 자처하며 나섬에따라 축구팀은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된다.깨진 창문을 수리하려 해도 칼투나라는 큰 도시에 유리 주문을 하고 오래 기다려야 하는 보르그 마을의 어린이 축구팀이 드디어 그 칼투나의 축구팀과 경기하는 날. 두 시즌 내내 칼투나 어린이 축구팀에 한 점도 내지 못했던 보르그 축구팀은 14대0으로 패하다가 후반전에 베가가 상대편 골문을 열어 기록을 깬다. 비록 14대1로 경기에는 졌지만 골을 넣어 당당하게 축구팀임을 증명함으로써 베가는 그녀의 꿈을 이루었다.브릿마리의 꿈은 무엇이냐는 베가의 질문을 곰곰 생각하다가 그녀의 꿈이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는 것이었음을 깨달은 그녀는 파리로 떠나 50년만에 꿈을 성취하고 보르그 청소년 축구팀들에게 드디어 축구장이 생겼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녀의 미소짓는 얼굴이 행복해 보인다.<브릿마리 여기 있다>는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지만 안정적으로 지내던 40년의 결혼생활에 던져진 문제를 통해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예측 불가능한 일들을 겪으며 비로소 주체적인 삶으로 한 걸음 내딛는 한 여성의 성장 영화이다.별로 변화가 없어 예측 가능했고 질서정연했던 환경을 떠나자마자 브릿마리에게 연속적으로 다가온 상황은 혼돈 그 자체였다. 청소년센터는 청소와 정돈이 되어 있지 않아 끔찍했고 어린이들은 제멋대로였다. 브릿마리는 그녀가 그토록 싫어했던 카오스를 이겨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매일 '그저 오늘을 살자, 브릿마리.'라고 주문처럼 외워야 용기를 낼 수 있었다.그리고 그녀는 그 어려움 가운데 성장하게 된다. 익숙하고 편했던 집에서는 습관처럼 하루하루를 보내느라 생각하지 않고 지냈던 그녀의 꿈과 그녀 삶의 문제가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들 가운데에서 하나씩 깨달아진 것이다.절대로 원하지 않았고 의도하지 않았던 불편하고 낯선 상황에 떨어지면 우리는 그것을 '시련'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어쩌면 예측할 수 없어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상태인 '카오스'도 '시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둘의 공통점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하여 통제할 수 없는 것에서 인간이라면 보통 공포를 느끼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지지 않는다면, 브릿마리처럼 매일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용감하게 앞으로 조금씩 전진한다면, 그리고 상냥하고 진실한 이웃들이 함께 해 준다면 우리도 그녀처럼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63세의 평범한 여성 브릿마리의 성장이 부럽고 기쁘다. 그녀가 난관에 부닥쳤을 때 두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가 생긴다. 이 영화의 미덕은 이것이다(©2020.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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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락 - 전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코인 대폭락사태,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해당 리뷰영상은 영화 제작 및 배급사 무암을 통해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어 제작된 영상이며
작품 [폭락]은 1월 15일 개봉합니다! 예매는 아래 사이트를 이용해주세요 :)
“기대에 부응해야지?” 엄마 옥자의 열성과 본인의 타고난 욕심으로 교육 1번지 서울 대치동으로 위장 전입한 도현. 벤츠타고 다니는 부자이면서 장애 혜택을 받아먹던 친구에게 교환학생의 기회마저 뺏기고, 그 친구가 진짜 장애인이 아니었단 걸 알게 된 그 때부터 정부 지원금의 맹점에 눈을 뜬다. 대학교 창업동아리에서 만난 동기 지우와 함께 청년·여성·장애 등의 가산점을 악용해 청년 창업 지원금을 수급하고, “창업 지원금은 나랏돈으로 망해 보라고 주는 눈 먼 돈”임을 간파해 의도적으로 고의부도와 폐업을 전전한다. 투자자 케빈에게 억대 후원을 받는 암호화폐 벤처를 창업한 도현은 야망에 이끌려 ‘MOMMY’ 코인을 개발해 역대 최고치의 실적을 내지만, 알고리즘과 불완전 이자 수익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모니터가 들어오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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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웡카> 1차 예고편
초콜릿보다 달콤한 이야기의 시작 윌리 웡카의 이야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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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1일, 왓챠 공개]
‘그들은 왜 인류를 몰살했을까’
H. G. 웰스 소설 〈우주전쟁〉 원작!무자비한 외계 생명체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인류의 고군분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