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4-11-15 12:12:52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
- <청설> (2024)








2009년에 만들어진 대만영화 <청설>은 파란 이미지가 돋보이는 영화다. 파란 수영장의 물, 파란 여름 하늘, 그리고 두 주인공의 맑은 마음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아우른다. 이 영화는 진정으로 상대를 생각하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지, 서로를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따뜻함을 전한다. 말이 아닌 수화로 표현된 사랑의 모습은 무척이나 특별하고 조용한 사랑 이야기로 다가온다.
<청설>은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이 영화는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며 하나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소통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사랑이라는 것은 단지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과 그를 위해 기울이는 작은 노력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임을 이 영화는 잔잔하게 이야기한다. 이런 맑은 느낌의 원작을 다시 한국 상황에 맞게 리메이크한 영화 <청설>도 원작의 맑음을 무척 잘 담았다.
[첫 번째 감정] 용준의 배려

용준(홍경)은 어느 날 음식 배달 중 수영장에서 여름(노윤서)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여름과 동생 가을(김민주)이 말을 하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예전에 배웠던 수화를 떠올려 친해지려 노력한다. 서툴게 시작했지만, 여름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에 수화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용준은 점차 여름과 가까워진다. 두 사람이 수화로 대화할 때마다, 그들의 손짓과 배려 가득한 순간들이 조용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용준은 여름과 가까워지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고, 그녀의 세상으로 들어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 그는 여름과 가을을 클럽에 데려가 음악을 독특한 방식으로 느끼게 하는데, 그가 보여주는 배려는 단순한 호의가 아니다. 그가 여름과 가을을 위해 마련한 이 특별한 경험은 청각장애인도 음악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결과이며,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섬세한 접근 방식이다. 아마도 리메이크된 이번 영화에서 용준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용준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상대방과 같이 즐기고 대화한다.
영화 내내 용준은 여름을 위해 수화를 하며 자신의 말을 전하고, 여름의 말을 듣는다. 그는 수화할 때 한 번도 입으로 말을 내뱉지 않고, 오직 상대방을 위한 배려와 집중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용준의 모습은 단순한 사랑의 표현을 넘어, 상대방을 이해하고자 하는 진정한 마음을 보여준다. 그 배려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진정한 소통의 방식이다.
[두 번째 감정] 여름의 희생

여름은 수영선수인 동생 가을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그녀의 수영 연습과 대회 준비에 헌신한다. 자신의 인생보다 동생의 목표가 우선인 여름은 알바를 하며 수영비와 강습비를 벌고, 자기 자신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그래서 용준이 여름에게 "뭘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녀는 동생의 목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름의 삶은 늘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었다. 그 속에 자신의 미래는 없었다.
여름의 이러한 모습은 순수하지만 동시에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는 스스로를 억제하고, 한계를 두며 가족을 위해 살아간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고, 자신을 위한 삶을 꿈꿔본 적도 없다. 그러나 용준을 만나면서 여름은 조금씩 자기 자신을 위한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용준과의 관계를 통해 여름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고, 비로소 자기 자신을 위해 살 용기를 얻게 된다.
여름의 변화는 영화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다. 그녀는 더 이상 가족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꿈과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변화는 용준과의 사랑을 통해 더욱 두드러지며, 여름이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이는 단순한 로맨스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세 번째 감정] 용준과 여름의 사랑

용준과 여름이 서로 마주 보며 웃을 때, 두 사람의 사랑은 화면을 가득 채운다. 특히 수화를 통해 빠르게 움직이는 그들의 손짓,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그들의 사랑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두 사람이 거리를 함께 걷고 서로의 미소를 주고받는 순간들은 말없이도 진심이 오가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들의 사랑은 조용하지만 그 어떤 사랑보다 강렬하다. 그들은 서로에게 맞춰가며 상대방을 이해하고, 서로의 세상에 들어가려 노력한다. 용준과 여름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사랑이란 단순히 기쁨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아픔과 고민을 함께 나누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들의 사랑은 단순한 청춘 로맨스를 넘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는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
중반부에 희생이 사랑을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랑은 그 희생까지도 나누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들의 사랑은 서로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게 만들며, 희생조차 사랑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한다. 비록 이들의 사랑이 약간의 판타지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맑고 투명한 사랑은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오래도록 맑은 여운을 남긴다.
맑고 투명한 느낌의 리메이크
영화 <청설>은 그야말로 맑고 투명한 영화다. 원작에 비해 채도가 줄어든 파란색이 하늘색에 가까워지며 맑은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킨다. 현재 한국의 여름 이미지를 아름답게 담아낸 리메이크작은 특히 두 주인공, 홍경과 노윤서의 캐스팅이 눈부시다. 두 사람은 각자에게 딱 맞는 배역을 맡아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이 영화에는 청각장애인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을 특별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저 다른 일반인들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훈련하고, 사랑하고, 수다를 떠는 이들의 모습은 이 영화가 그들을 얼마나 평범하게 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특별하게 바라보지 않는 태도는 이 영화의 큰 미덕이다.
또한, 이 영화는 사랑과 소통의 본질에 대해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상대방을 이해하려 노력하는가, 얼마나 진심으로 다가가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든다. 용준과 여름의 관계는 단순한 사랑 이상의 깊이를 가지며, 그들이 서로를 위해 기울이는 노력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이들의 맑고 투명한 관계는 우리가 잊고 있던 사랑의 순수함을 떠올리게 만든다.
오랜만에 등장한 한국 로맨스 영화로서, 원작의 맑고 투명한 특성을 그대로 살려내며 두 배우의 사랑스러운 케미를 빛내고 있다. 두 사람의 감정 변화와 그들이 만들어가는 사랑의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따뜻한 감동과 여운을 느낄 수 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아름다운 여름날의 로맨스를 꼭 한 번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mGhUIExGY4Y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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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곤과 주거 문제 사이의 청년들
지난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CGV 아트하우스상을 수상했으며 서울독립영화제 등 국내 주요 영화제에 초청된 작품으로, 전 세계 독립영화인들의 축제로 불리는 제 50회로테르담국제영화제의 한국 극영화로는 유일하게 하버 부문에 초청되어 화제를 모은 영화 홈리스 리뷰입니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임승현 감독과 전봉석, 박정연 주연 배우가 참석한 언론 배급 시사회로 미리 만날 수 있었는데, 어떻게 작품을 구상했고 어떤 식으로 작품 속 캐릭터를 이해하고 접근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현실과의 차이가 눈에 띄었지만, 꽤 묵직한 주제를 보여줘서 몰입감 있게 감상했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영화 홈리스 정보
그 돈 없으면 저희 진짜 죽어요
전셋집 보증금 사기를 당한 한결과 고운은 매일 찜질방이나 모텔을 전전하며 힘겹게 살아갑니다. 아기 우림을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싶은 욕심은 당연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죠. 그러던 중 찜질방에서 난 사고로 아기가 다치고 한결은 자신에게 잘해줬던 할머니가 미국에 가서 1달간 집을 봐달라 부탁했다며 갑자기 어느 집으로 데려갑니다. 고운은 의문이 들긴 했지만, 현재 상황에 이보다 좋은 선택은 없으니 별말 없이 살게 되고 점점 시간이 흐르는데...
예고편│ Trailer
영제: Homeless│감독·각본: 임승현
출연진: 전봉석, 박정연, 신현서, 송광자, 장준휘│장르: 드라마, 가족
상영 시간: 83분│국가: 한국│등급: 12세 관람가
평점: 기자·평론가 6.0
수상 내역: 21회 전주국제영화제(한국경쟁 - CGV 아트 하우스상)
제작: ㈜타이거시네마, DGC
제공·배급: 그린나래미디어㈜
개봉일: 2022년 9월 15일
시청 가능 서비스: 극장 개봉 예정
# 영화 홈리스 후기
진짜 이 집 맡긴 거 맞아?
빈곤한 삶을 벗어나고 싶은 어린 부부의 삶을 중심에 두고 청년 빈곤과 주거 이슈를 내세우지만, 노인 고독사 등의 현대 사회 문제를 전반적으로 풀어나가며 사회적 관심의 결핍을 이야기합니다.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소외된 이들의 현실과 사회의 무관심이 전달하는 무거운 분위기는 많은 생각을 이끌죠. 그렇기에 아기와 자신들을 위해 보금자리를 소망하는 젊은 부부인 한결과 고은의 선택을 응원하기도 비난하기도 어렵습니다. 완전히 다른 문제일 것이라 생각한 청년 빈곤에 따른 주거 문제와 점차 늘어나는 노인 고독사의 연출은 참혹한 현실을 더 참혹하게 만들어 이상한 공포감마저 들게 합니다.
상영 이후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서울역 인근에 있는 쪽방촌을 답사하며 생활 방식을 참고하고 관찰하며 극영화로서의 현실성에 더 많은 노력을 했다는 임승현 감독과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캐릭터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할까 고민했다는 박정연, 전봉석 배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거 빈곤이나 청년 문제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전 설명이 필요 없지만, 표현하기에는 쉽지 않은 부분이라 제작진 모두가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았죠. 그만큼 눈빛이나 전개되는 과정에서의 인물간 변화되는 감정이 표출되는 장면들은 인상적이고 흡인력이 있었습니다.
물론, 픽션과 논픽션 사이에 괴리가 개인적 차이에 따라 존재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의 선택을 비난하기에도, 응원하기에도 어렵다는 특이점이 있습니다. 처음엔 난리 법석을 떨던 고운이 사실을 알고 나서 한결을 몰아붙이고 서로의 입장이 반대가 되는 장면들이 그러한 이유 때문이겠죠. 조금은 과하게 극한으로 내몰지만, 관객의 입장에 따라 와닿는 현실이 많을 듯해 흥미로우실 듯 하네요. :)
한 줄 평 : 가난의 절망을 벗어나려는 최선의 몸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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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함으로써 탄생하는 예술과 투쟁
'Nan One Month after Being Battered', Nan Goldin, 1984, Tate
대학 교양 수업에서 낸 골딘(Nan Goldin)의 작품을 처음 보았다. 곱슬머리와 80년대 유행 그대로 얇게 다듬은 눈썹, 진주 목걸이, 드롭 귀걸이를 한 여자가 카메라 렌즈를 응시하고 있다. 그러나 의연한 표정, 붉은 립스틱을 깔끔하게 바른 입술과는 달리 그녀의 눈은 격투라도 하고 난 사람처럼 혈관이 터져 붉어졌고, 눈가에 멍이 잔뜩 들었다. 모델임과 동시에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인 자신의 모습을 담은 이 사진 한 장, ‘Nan one month after being battered’(1984)은 그녀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카메라로 이런 대상을 담는다. 교외에 장만한 집, 푹신한 카펫과 잘 정돈된 잔디, 백인 가족으로 대표되는 안정적이고 바람직한 가족상이 아니라 그곳에 속하지 않는 젊은이들, 그들의 문화를 찍고 또 사진을 통해 권력관계를 가시화한다. 제도와 언론, ‘주류’ 미술계가 모른 척 하는 것들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낮은 웅성임을 찢고 전시관 입구에 떡하니 걸린 이름을 규탄하는 외침이 들려 온다. 펜타닐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오피오이드계 약물로 인한 수많은 죽음에 책임이 있는 이름을 박물관에서 내리라며, 시위대는 목소리를 높인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그녀의 이러한 시도에 주목한다. 어느 날 화이트 큐브에 도발적인 작품을 걸어 놓은 용감한 작가일 뿐만 아니라, 견고한 벽을 넘어뜨릴 수도 있을 만한 작가로서의 그녀를 보여줌으로써 관객과 연결되는 것이다. 80년대부터 사진 작업으로 경력을 쌓아 온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리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난데없는 시위 현장을 담은 도입부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과 그 영감의 원천은 주류에 반하는 이런 힘과 멀리 있지 않다.
그녀의 이야기는 ‘숨 막히는 교외’ 지역에서 시작된다. 이 백인 중산층 가족은 자아를 키워 나가는 딸을 고아원과 정신병원으로 내몰았다. 언니인 바바라가 그렇게 쫓겨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본 낸 골딘은 역시 자라며 집 바깥으로 내몰리고, 위탁 가정과 기관을 전전한다. 그렇게 그녀는 뉴욕의 하위 문화 한 가운데로 흘러 들어갔고, 그곳에서 예술가로 자라났다. 사진이라는 예술 형식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속한 문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한 그녀는 마치다가오는 시대가 예술가를 알아보듯, 상자 안에 담겨 온 사진을 눈여겨 본 미술관의 관심을 끌어 작가로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만큼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은 바로 ‘행동(act-up)’하는 모습이다. 낸 골딘은 60~80년대 하위예술, 자유롭고 낭만적으로 보이기만 하는 젊은이들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역사에 머물며 전설적인 아티스트로 남는 것이 아니라 직접 거리로 나서는 운동가, 자신의 영향력을 올바르게 발휘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인물로 거듭났다. 그녀는 80-90년대의 에이즈 공포의 한복판에 서 있으면서 친구들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했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도와 언론이 그것을 모른 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맥락 속에서 그녀가 찍은 사진은 단순한 기록, 미학적인 가치에 더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죽음을 세상에 드러내는 창이 되기도 했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그녀의 삶과 맞닿아 있는 작품 활동을 서술하지만, 사진을 한 장씩 살피면서 촬영 비화를 듣는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대신 도입부의 메트로폴리탄 시위에서 시작해 영화는 그녀가 주력하고 있는 오피오이드 약물과 관련된 활동과 집회 프로젝트를 조명한다. 이전에는 캐주얼하게 즐기던 약물은 점점 용량이 늘고, 실수로 단 한 번 들이킨 펜타닐에 곧바로 중독되어 재활한 경험이 있는 낸 골딘은 이번에도 보이지 않는 죽음을 알리고자 한다. 그리고 메트로폴리탄, 구겐하임, 국립 초상화 박물관 등 여러 장소에서 시위를 하여 점점 심각해지는 이 오피오이드계 약물 중독에 대한 인식과 논의를 확장하려 한다. 과거에는 제국주의를 발판 삼아 아시아 등지의 유믈을 수집하고 이후 제약 산업으로 쌓은 막대한 부를 유지해 온 새클러 가문의 이름을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내리는 시도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자신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기관에 가서 시위를 벌이는, 어쩌면 예술가로서의 경력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시도를 그녀는 어떤 죽음들은 두고만 볼 수 없다는 신념을 위하여 감행한다. 그래서 영화를 통해 이 동시대 예술가의 행보를 지켜보는 동안 어떤 문제에 대해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의 가치, 선한 영향력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라는 제목은 자신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 예술을 하기 위한 시발점이 되어 주었다는 그녀의 언니 바바라와 관련된 문구이다. 신기하게도 낸 골딘의 삶과 연결되는 이 말은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예술가로서의 그녀, ‘유혈사태’를 지나치지 않는 인물로서의 그녀를 절묘히 가리킨다. 그리고 관객 역시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유혈사태, 즉 오피오이드계 약물(펜타닐) 중독 문제의 이면에는 거대 제약회사와 그들의 로비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동시대 관객에게 낸 골딘이라는 예술가를 각인시킴과 동시에 개인이 가진 영향력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복합적이고도 매력적인 작품으로서 막을 내린다.
*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아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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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가 로리를 사랑할 수 없었던 이유
작은아씨들(2019), 조가 로리를 사랑할 수 없었던 이유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작은 아씨들」은 일곱 번이나 영화화가 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소설이다. 그 중 가장 최근에 나온 2019년 「작은아씨들」의 네 자매들은 현대시대에 맞게 더욱 입체적인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다. 동시에 로맨스적인 부분들이 눈에 띄는 부분들이 많았다. 특히나 로리가 조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여러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리라 생각된다. 조가 로리를 거절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조는 로리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조는 원래 결혼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결혼을 하는 결말로 끝맺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상대는 로리가 아니었다. 젊고, 잘생기고, 돈 많은 로리와 정반대인 프리드리히를 선택한 것은 차선책이고 조가 얼마나 자신의 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로리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이유는 조가 사랑보다는 꿈을 중요시여겼고, 끊임없는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사실 로리와 조는 모두 고집이 세고 자유를 추구하며 감정적이라는 면에서 조와 비슷한 면이 많으며 가장 친한 친구로 지낼만큼 잘 통하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로리의 집안 부잣집이며, 로리의 할아버지는 아들과 딸을 모두 잃어 이제는 손자, 즉 로리 하나뿐이다. 만약 조가 로리의 고백을 받아들였다면 그 시대에 조가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며 자신이 하고 싶던 꿈을 온전히 펼칠 수 없었을 것이며 이미 재산이 쌓여있는 집안에서 굳이 스스로 돈을 벌 필요조차 없어진다. 또한 로리는 할아버지가 시키는 일, 조가 시키는 일만 하는 수동적인 사람이다. 가문의 보호 아래에서 자란 로리는 자신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인물이 되지 못한다.
반면에 프리드리히는 로리와 완전히 정반대의 인물이다. 프리드리히는 나이가 많았고 가난했으며 심지어 조의 글이 별로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조가 프리드리히를 사랑한 것은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사람이었다. 프리드리히는 조에게 독일어를 가르쳐 주다 한계에 다다랐을 때도 끝까지 조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조의 글에 대한 평가로 인해 화가 난 조에게도 먼저 다가갔다. 프리드리히는 심지어 자신의 옷을 스스로 기워 입는 사람이었다. 조의 인생에 그런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내 몫은 내가 들게요, 프리드리히. 그리고 생계를 꾸리는 것도 도울게요. 그렇게 하기로 해요. 안 그럼 나 절대 안 갈 테니까.” 영화에서 떠나는 프리드리히를 잡고 그의 집을 나누어 들며 하는 말이다. 자기 몫은 자기가 들겠다는 조의 말은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프리드리히와 조는 동등한 위치에서 부족한 점을 보완해나가며 서로의 꿈을 이뤄나가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대가 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조가 왜 로리를 사랑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 길게 설명했지만 한 마디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여성은 꿈과 사랑을 동시에 이루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러한 여성의 처지는 나아졌다고 할 수 없다. 아직도 여성들은 꿈과 사랑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를 선택하고 노력하는 우리 사회의 ‘조’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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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가감정이 들긴 하지만 다시 보고픈 아름다운 영화 <신데렐라>
신데렐라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지만 동화 속 이야기를 어떻게 실사화 했을지 궁금해서, 그리고 디즈니는 워낙 좋아하다보니 얼마나 화려할까 라는 기대감에 보기 시작한 영화 <신데렐라>. 그런데 정말 예뻤다. 현대 여성상에 대한 생각은 잠시 잊을 만큼 영상미가 굉장히 아름다웠던 작품이었다.
영화 <신데렐라> 시놉시스
“착한 마음과 용기를 가지렴. 꿈꾸던 일이 이루어질 거야.”
어렸을 적 어머니를 여읜 엘라는 아버지가 재혼한 미모의 새엄마와 그녀의 두 딸과 함께 살게 된다. 무역상인 엘라의 아버지마저 타지에서 돌아가시자 새엄마와 의붓언니들은 엘라에게 재투성이라는 뜻의 신데렐라라고 부르며 온갖 구박을 일삼는다.
착한 마음씨와 용기를 가지라는 엄마의 유언을 지켜나가던 엘라는 숲 속에서 왕궁의 견습생이라는 키트(왕자)를 만나 마침내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았다고 느끼게 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신데렐라>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원작을 충실히 따르다
영화 <신데렐라>를 지금에야 봤을까? 후회가 됐던 순간이었다. 영화가 원작을 너무나도 잘 따라서 이렇게 불편해도 되나 싶으면서도 너무 예쁜 영상미에 넋을 놓고 보게 되는 이 모순된 양가감정이 영화를 보는 내내 들어서 굉장히 오묘했다.
차라리 이걸 개봉했던 2015년에 봤더라면, 아니 기술이 발전을 해서 초등학생 때 이 영화가 개봉했더라면 이 작품을 볼 때 불편한 감정이 없지 않았을까,, 그때까지만 해도 신데렐라 이야기가 먹었던 장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재는 2021년이고 신데렐라의 컨셉은 잘못 다뤘다가가는 욕먹기 쉬상인 장르이기 때문에 이게 너무 예쁜데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현실에 안타까웠다.
다른 작품들은 원작을 충실히 따르지 않았다 해서 욕을 먹는데 신데렐라는 왜 하필 이런 때 실사화를 해서 원작을 충실히 따라도 답답한 감정을 들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정말 잘 만들었다. 이 양가감정 속에서도 신데렐라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영화 자체는 정말 잘 만든 것이 틀림없다.
화려함으로 모든 것을 무마시키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영화 <신데렐라>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읽으면서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 오히려 그것을 뛰어넘을 정도로 구현을 너무나도 잘했기 때문이다. 디즈니가 작정이라도 한 듯이 2015년에 개봉을 하면서 원작을 충실히 따랐기에 현대 여성상과 너무나도 불합치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는지 그 지점들이 최대한 부각이 되지 않도록 화려함으로 관객들을 홀려놓았다.
사람이라면 저 신데렐라 드레스 한번쯤은 입어보고 싶다. 입혀주고 싶다 이 감정이 들게끔 표현을 해서 디즈니가 정말 똑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면에 방점을 찍다
답답한 부분이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현대 사회에도 유효한 신데렐라의 감성이 있었다. 바로 내면을 가꿔야 한다는 것이다. 계모와 새언니, 신데렐라의 이항대립 구조 중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부분은 바로 외면과 내면 중 어디에 공을 들이느냐다. 아버지가 일을 하러 떠날 때 그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계모와 새언니들은 자신의 외모를 치장할 소품들을 사와달라 부탁하지만 신데렐라는 첫 여행지에서 스치는 나뭇가지를 가져와달라 부탁한다. 그 나뭇가지를 들고 다니며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자신을 생각해달라 말한다.
이러한 신데렐라의 내면 가꾸기에 방점을 찍다보니 원작 신데렐라의 한계점이었던 백마 탄 왕자만을 기다리는 여성이라는 캐릭터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원작에서 도대체 왜 백마 탄 왕자는 많고 많은 여성 중에서 신데렐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라는 질문에 명확히 답할 개연성이 부재했다면 영화 <신데렐라>에서는 내면 가꾸기에 포기를 하지 않았던 신데렐라의 심성을 보고 왕자가 그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 가능했으니 말이다. 사람은 내면이 중요하다는 것, 내면이 건강한 사람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영화 <신데렐라>가 수동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진 못했지만 원작을 유지하면서도 현재에 시의성이 있는 주제로 방점을 찍으려 한 디즈니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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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을 악용한 모순
온라인 세상
정보화 사회와 적합한 영화이다. 21세기의 세상에서 정보력만큼 중요한 것은 또 없을 것이다. 더불어 관련된 응용의 이야기도 말이다. 영화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주인공이 뉴스 헤드라인에 나오는 영상에 대한 매료로 점차 심화해가고, 냉철해지는 스토리와 주인공의 성격이 반비례해져가는 구도가 나타난다.
자극
이 영화는 잔인한 면이 많고 범죄 사건들과 연관된 영상을 만들다보니 R등급 판정을 받은 영화다. 점층적으로 사건이 자극적이게 되고 주인공과 영화를 보는 사람은 더욱 무리수를 보게되는 쓴맛을 느끼게 해준다. 이러한 자극을 피하고 싶어서일까 주인공은 낮이든 밤이든 항상 선글라스를 착용하며 세상과의 단절을 취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은 낡은 차에서 SUV차로 바꾸는데 색상을 빨강으로 잡는다. 이에 대한 생각은 피와 총소리,재난으로 인한 피해 등의 자극적인 요소를 찾아다니는 주인공을 대변하는 색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피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처럼
Irony
영화의 아이러니는 진실의 모순이라는 것이다. 기자라는 직업은 신속성과 정확성 그리고 사실성을 기반으로 둔 직업이지만, 주인공은 단지 돈을 버는 것과 자신의 명예를 드높히기 위한 탐욕스러운 목적을 가지고 취재를 다룬다는 점이 기자의 이상향과 전혀 다른 아이러니이다. 이러한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보이는 소시오패스 성격을 연기한 제이크 질렌한 연기는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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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자가 산 자를 또 살릴 때.
이 글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긴 한데 이것도 재개봉이니까 봐줍시다. 글을 퍼가실 때는 출처를 반드시 밝혀주세요.
사진출처:다음 영화
단 5분이다.
무려 대학 졸업 작품으로 [쉰들러 리스트]를 제출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이 감독의 작품을, 수십 년이 지나고 난 뒤에 감상해도 전율로 몸서리치게 만들기 충분한 시간. 그러나 이 시간은 영화의 화려함을 강조하는 허세의 시간이 아니다. 자신의 죽음을 담보로 행하는 작전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병사들의 얼굴. 들리지도 않게 입 안에서 쉽게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기도. 지휘관조차 손을 떨며 맞이해야 하는 불과 몇 분 후의 두려움들을 비춘다. 군인들의 어깨에 고요하게 내려앉은 공포를 전쟁의 참혹함이라는 실체로 바꾸어 보여주는 이 5분은 폭발적이다 못해 폭력적이기까지 하며. 이를 그저 지켜봐야 하는 관객인 나마저도 그 처절함과 처참함에 온몸이 떨려온다.
그렇다. 이 작품은 이미 초반 5분 만에 영화 역사 길이 남을 만큼 기강을 확실히 잡긴 했다. 그러나 전쟁영화라는 장르에 속하는 것 치고는 사실 전투씬 자체가 차지하는 시간적인 비중은 그다지 크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왕좌에 앉아 영원히 군림할 제왕이 되어버린 데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나는 감독의 그 탁월한 선택에 경이와 감사를 함께 표한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그는 전쟁이 가진 비참함을 전시하지 않았다. 그가 해석한 전쟁에서는 죽음이나 승리, 비장함 등을 과대포장하지 않았다. 상부의 명령은 언제나 부조리하거나 모순적이고. 그로 인해 전쟁의 실질적인 피해자는 언제나 병사들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최후는 해변에서 널브러져 죽어가는 생선만큼이나 하찮게 그려진다. 심지어 밀러(톰 행크스)의 죽음마저도 전쟁 속 오고 가는 수많은 총알 한 발로만 그려질 뿐. 소위 말하는 “가오”를 단 한 순간도 느낄 수가 없다.
감독이 해석한 전쟁 속에는 사람이 있지만 동시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을 담백하다 못해 냉정하고 덤덤해 보이게 연출할 수 있었던 데는 배우 톰 행크스의 역할이 크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전쟁은 종전되기 전 까지는 모든 것이 과정일 뿐이고, 그 속의 개인은 그저 부품일 뿐이라는 것을. 밀러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은 표현 해 낸다. 이 무미건조함에 매몰된 관객들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 한채, 세 시간짜리 전쟁이 주는 두려움으로 벌벌 떨어야만 한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몇십 년 전 영화를 보면서 이토록 촌스럽지 않다고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동시대를 살면서 이 작품을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게 해 준 감독에게, 그리고 모든 배우들과 참가자들에게 빚을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뉘우침(?) 뒤에야 밀러가 라이언(맷 데이먼)에게 건넨 마지막 말도 이해할 수 있었다.
밀러는 100명에 가까운 자신의 부하들을 잃고 나서 스스로의 삶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수많은 영혼들의 넋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을 것이다. 이 빚을 갚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자신의 삶이 증명됨과 동시에 그들의 죽음도 가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을.
밀러는 주인공 버프 하나 없이 창백하고 초라하게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밀러의 표정은 아주 조금은 홀가분해 보였다. 마치 죽은 부하들이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을 살린 것처럼. 자신 또한 이제 죽은 자가 되어 라이언을 비롯한 수많은 국민들을 살려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라이언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그토록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자, 자신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 달라는 소원을 마지막 숨결에 실어서.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렸으니.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라고.
마치면서
사진 출처:다음 영화
사실 잭슨(배리 페퍼)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스나이퍼들의 순위를 매길 때마다 매번 상위권에 랭크되곤 한다. 실력은 말할 것도 없고 매 순간의 위기를 해결해 내는 담대함이 늘 그를 멋있는 존재로 포장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그가 지닌 두려움이 명확하게 보였다. 잭슨은 한 발 한 발 장전하고 쏠 때마다 마치 주문처럼 성경구절을 읊었다. 그리고 그 말들은 마치 스스로에게 긴장하지 말라고 말하는 듯 들렸기에. 그가 마주한 두려움의 크기에 측은함 마저 느껴졌다.
비록 작품 속이지만. 잭슨의 기도가 공허하게 울려펴지기만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의 TMI]
1. 내가 진짜 아무리 다시 봐도 업햄은 용서가 안 된다. 너어는... 진짜..
2. 커피랑 프로틴 바 들고 들어갔는데 하나도 못 먹음
3. 드디어 재개봉 영화 관람 끝났다.ㅜ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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