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1-13 19:36:22
11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고레에다 히로카즈 연출, 넷플릭스 시리즈 <아수라처럼> 포스터 공개

국내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이 제작 참여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넷플릭스 시리즈 <아수라처럼>의 포스터와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본 시리즈는 2025년 1월 9일에 공개 예정이며, 7부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수라처럼>은 이전에 방영되었던 일본 공영방송 NHK에서 1979년에 방영된 가족 드라마 시리즈의 현대판으로, 무코다 구니코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해당 소설은 지난 2003년 장편 영화로 각색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수라처럼>에는 미야자와 리에, 오노 마치고, 아오이 유우, 히로세 스즈가 출연하며 19979년 도쿄, 서로 다른 삶을 사는 네 자매가 노년인 아버지의 불륜을 알게 된 후 겪게 되는 사건들을 그립니다.
데이지 리들리, <스타워즈> 시리즈 복귀 예정

데이지 리들리가 새로운 스타워즈 시리즈에 복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향후 제작될 스타워즈 시리즈 중, 에피소드 X, XI, XII로 구성 예정인 사이먼 킨버그의 3부작과 샤민 오바이드 차노이가 연출하는 프로젝트에 핵심적인 역할로 등장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THR은 루카스필름이 레이를 “프랜차이즈의 다음 단계를 위한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사이먼 킨버그와 샤르민 오바이드-치노이의 프로젝트 외에도, 루카스필름은 제임스 맨골드, 데이브 필로니, 도널드 글로버, 타이카 와이티티, 라이언 존슨, 션 레비, 패티 젠킨스 감독이 참여하는 최소 7편의 스타워즈 영화를 개발 중입니다.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 상영 시간표 공개

제50회 서울독립영화제가 상영 시간표 공개 일정을 알렸습니다.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에서 오는 15일 금요일 18시에 상영 시간표가 공개됩니다.
올해 50주년을 맞은 서울독립영화제는 풍성한 라인업을 자랑합니다. 부산국제영화상 4관왕을 휩쓴 이란희 감독의 <3학년 2학기>, 다큐멘터리 관객상을 차지한 조세영 감독의 <K-Number> 등 현재 주목받는 감독의 영화들이 상영됩니다. 또한 16mm 프린트가 유실되어 필름 디지털화 포맷으로 상영하지 못하고 있던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가 디지털화 버전으로 최초 공개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홍경, 오경화, 노재원 등 이제는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들이 거쳐 간 ‘배우프로젝트’, 독립영화 감독과 배급사를 연결해 주는 ‘넥스트 링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미션 임파서블 8> 첫 예고편 공개
미션 임파서블 8의 첫 번째 예고편이 공개되었습니다. 이번 신작의 제목은 <Mission: Impossible — The Final Reckoning>으로 2025년 5월 23일에 북미 개봉 예정입니다.
18개월간의 긴 제작 기간과 여러 차례 지연되어 제작비가 4억 달러에 가까워졌다는 소식으로 시리즈의 위기가 거론되었던 가운데, 마지막 ‘무비 스타’라고 불리는 톰 크루즈가 과연 이번에도 큰 성공을 거둘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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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
코엔 형제 영화. 오래 전,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내용이 조금 황당해서 코엔 형제의 영화로는 조금 실망스러운걸,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내가 본 수 많은 영화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취향의 영화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코엔 형제'를 든다. 좋아하는 감독도 많고, 훌륭하고 뛰어난 작품도 많지만, '내 취향'은 '코엔 영화'다. 코엔 형제의 영화는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 볼수록 매료되는 특이한 영화다. 그래서 영화를 한번만 보고 그만두지 않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고, 또 얼마의 시간이 흘러 다시 보면, 같은 영화임에도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든다.
모든 훌륭한 영화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데,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이 그렇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도 그렇다. 관객은 영화를 처음 볼 때 주로 이야기(서사)를 따라가게 된다. 이야기만 따라가는 것도 벅찰 때가 많아서, 영화의 여러 요소들 - 미장셴, 음악, 배우, 미술, 의상, 배경, 촬영, 음향 등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것 - 을 꼼꼼히 살필 여유가 없다.
훌륭한 작품은 이야기도 훌륭하지만, 앞에서 말한 영화 요소들을 하나씩 세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영화 마니아들은 한 영화를 열 번, 스무 번 이상도 보는데, 나는 코엔 형제 영화를 모두 여러 번 봤지만, 특히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를 몇 번씩 보면서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이 영화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도 처음 봤을 때와 지금 다시 본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코엔의 영화는 역시 훌륭했다. 다만 내가 이 영화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것 뿐이었다. 주인공 에베레트 율리시즈 맥길의 이름은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이의 희랍어 이름이다.
영화 타이틀에서도 밝혔듯이 이 영화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기본 모티프를 가져왔다. 즉, 주인공 오디세이아가 트로이 전쟁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고 험난한 과정을 1937년 미국 남부 미시시피를 배경으로 새롭게 해석해 만든 코미디 영화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서양 문학의 원형이며, 영웅 서사의 시작이고, 서양의 모든 문학 작품에 영향을 준 중요한 작품이다. 오디세이아는 영웅이며, 그가 고향(집)으로 귀향하는 과정은 '영웅 서사'의 모델이다. 즉 영웅은 수많은 고난과 비극을 겪으며 시간과 공간을 뚫고 귀향하는데, 이때 영웅이 겪는 고난은 모험이 되고, 영웅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만들며, 비극은 영웅의 내면을 단련하는 과정이 된다.
영웅은 불사조가 아니기 때문에,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지만, 그때마다 도와주는 인물이 등장하고, 영웅은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이런 기본 틀을 가지고 분석하게 되면, 기독교의 중요한 인물인 '예수'도 오디세이아적 영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는 탄생부터 특이하다.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는데, 그것도 마굿간이다. 그는 자라면서 아버지를 쫓아 목수가 되지만, 곧 집(고향)을 떠나 사막에서 신을 만난다. 영웅의 고난이 시작되는 것이다. 예수는 고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쫓겨나 여기저기 떠돌며 자신의 신념을 설파한다. 그를 따르는 사람도 있지만, 가는 곳마다 예수를 비난하고 비웃으며 돌멩이를 던지는 사람들이 더 많다.
결국 예수는 유다의 배신으로 로마군에게 잡혀 골고다 언덕에서 죽는데, 사흘만에 부활한다. 예수가 죽을 줄 알았던 가족들은 살아온 예수를 보고 놀라고, 예수는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사라진다. 고난과 비극을 겪으며 성장하는 영웅의 서사와 매우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율리시즈는 죄를 짓고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다. 그는 함께 쇠사슬로 묶인 두 명의 동료-피트, 델마-와 함께 탈출한다. 이들은 달리는 기차를 타려다 실패하고, 기차 선로를 고치는 수레를 발견하고 올라탄다. 수레를 끄는 사람은 흑인 노인인데, 맹인이다. 이 노인은 세 사람을 향해 이상한 말을 하는데, 노인은 영웅의 앞길을 예언하는 예언자라는 걸 알 수 있다. 세 사람은 자신의 운명이 어떨지 모르는 상태에서, 예언자의 말을 알아들을 리 없다.
셋은 숲속을 헤매다 우연히 피트의 사촌 워시를 만난다. 그곳에서 쇠사슬을 끊고, 밥을 얻어 먹으며 하룻밤을 보내는데, 워시가 현상금이 탐나서 추격대에게 이들의 위치를 알린다. 고난이 시작된 것이다. 헛간 건물을 포위하고 항복하라는 추격대를 피해 달아날 때, 워시의 어린 아들이 도와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영웅을 돕는 것이다.
이들이 다시 숲속을 지날 때, 흰옷을 입은 마을 주민들이 수십 명 강물 있는 곳으로 걸어오더니 강에서 세례식을 시작했다. 세 명 가운데 두 명 - 피트, 델마 -은 그 장면을 보고는 목사에게 달려가 세례를 받는다. 그러면서, 자기들은 이제 신에게 용서를 받았으므로 결백하다고 외친다.
세 명은 다시 시내 가게에 들렀다가 다른 사람 자동차를 훔쳐 타고 가는데, 중간에 흑인 토미 존스를 태운다. 토미 존스는 기타 가방을 들고 있었고, 자기가 지난 밤,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대신 기타 연주를 배웠노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악마는 백인이며, 눈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는 명백한 메타포다. 흑인은 영혼을 팔아야만 살 수 있는 미국 사회현실을 비꼬고 있는 것이다.
토미 존스는 티샤맹고에 가면 깡통에다 대고 노래하고 기타를 치면 돈을 준다는 말을 들었노라고, 그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한다. 세 사람도 토미 존스의 말을 듣고 함께 가기로 한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허허벌판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 WEZY였다. 이 방송국은 미시시피주 밸리 파크에 세트로 지었고, 1930년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율리시즈와 세 명은 방송국으로 들어가 대놓고 말한다. 여기가 깡통에다 대고 노래하면 돈 주는 곳이냐고. 방송국이라야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사장 혼자 운영하는 곳이었고, 싱글 레코딩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비가 있는 곳이었다. 사장은 눈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이들이 백인인지, 흑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옛날 노래를 불러달라고 주문한다. 그렇게 나오는 노래가 '슬픔에 잠긴 남자(I Am A Man Of Constant Sorrow)' 다. 이 노래는 남부에서 오래 불리운 전통 음악으로 음악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알고 있고, 좋아한다는 건 분명하다.
이 음악이 처음 방송을 통해 알려진 건 1913년이었고, 처음 노래를 부른 사람은 딕 버넷(Dick Burnett)이었다. 최초의 노래 제목은 'Farewell Song'으로 발표되었고, 나중에 Man of Constant Sorrow 로 바뀌었다가 이 영화에서처럼 I Am A Man Of Constant Sorrow 라는 제목이 되었다. 1928년에 Emry Arthur가 녹음을 했고, 이후 이 노래는 The Stanley Brothers, 밥 딜런, 주디 콜린스, 피터 폴 앤 메리 같은 유명한 가수들이 불렀으며, 빌보드 차트 85위까지 오른 기록이 있다.
그러니까, 영화의 배경인 1937년이라면 이 노래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최초의 가수였던 딕 버넷이나 스탠리 브러더스의 노래는 창법이 옛날 방식이어서 흥겹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 율리시즈와 친구들이 부른 - 이들은 노래하는 팀 이름을 급조했는데, '밑바닥 아이들'이라고 했다 - 노래는 슬픈 가사이면서 리듬은 흥겹다. 메인 보컬인 율리시즈(조지 클루니)가 부른 목소리는 조지 클루니 본인이 아니고, 포크 가수인 Dan Tyminski의 목소리다.
이들이 부른 노래에 기분이 좋아진 방송국 사장은 각각 10달러씩을 주면서 계약했고, 이들은 거액 10달러를 받아 몹시 기분이 좋았다. 방송국에서 나오는 길에 건물 앞에서 우연히 잘 차려 입은 백인들을 만나는데, 이들은 미시시피 현 주지사 페피 오데니얼 일행이었다. 주지사 선거를 앞두고 라디오 유세를 하려고 방송국에 들른 것이다.
세 명은 토미 존스와 헤어저 다시 길을 떠나고, 중간에 혼자 은행강도를 하다 도망치는 조지 넬슨을 만난다. 조지 넬슨과 읍내에서 은행을 털고, 조지 넬슨은 밤에 갑자기 훔친 돈을 세 명에게 모두 주고 숲속으로 사라진다.
세 명은 차를 훔쳐 길을 떠나다 피트가 계곡물이 흐르는 곳에서 목욕을 하는 세 명의 여인을 발견하고 달려간다. 세 명의 여인은 고혹적인 모습으로 세 남자를 유혹하고, 이들은 정신을 잃는다. 여기서 세 명의 여성이 '인간'인지, 요정인지, 악마인지 확실하지 않다. 나중에 율리시즈는 이 여성들을 두고 '바빌론의 창녀들'이라고 비난한다. 이들이 깨어났을 때, 피트만 사라졌고, 피트가 입었던 옷에서 개구리가 나오자 피트가 개구리로 변한 것이라고 델마가 말하며, 개구리를 소중하게 데리고 다닌다.
율리시즈와 델마는 식당에서 우연히 사기꾼 대니얼 티그를 만난다. 성경을 판매하는 사업을 한다는 이 사기꾼은 두 사람을 때려눕히고 돈을 빼앗아 달아난다. 이 시간, 피트는 추격자들에게 잡혀 고문당하고 다시 감옥으로 끌려간다. 사기꾼에게 강도를 당해 돈을 다 뺐긴 율리시즈와 델마는 트럭을 얻어 타고 길을 가다 우연히 죄수들과 노역을 하고 있던 피트를 발견하고 놀란다.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온 율리시즈는 아내와 딸들을 만난다. 아내는 내일 약혼자와 결혼식을 한다고 말하고, 율리시즈는 아내의 약혼자 버논 월드립과 싸우다 얻어 맞기만 하고 쫓겨난다. 율리시즈와 델마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 단체관람을 하러 온 죄수들 사이에서 피트를 발견한다. 그날 새벽, 피트를 구한 두 사람. 율리시즈는 피트와 델마에게 보물은 없었고, 자기가 거짓말을 했다고 자백한다. 탈옥한 이유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세 사람은 보물보다 값진 우정을 확인한다.
그리고 다시 숲속에서 우연히 KKK단 집회를 발견하고, 그 집회에 잡혀온 토미 존스를 구출한다. 이들이 읍내 마을회관에서 분장을 하고 노래하는데, 여기서 다시 I Am A Man Of Constant Sorrow 가 흘러나온다. 사람들의 열광적이고 폭발적인 반응에 놀라는 세 사람. 이들이 방송국에서 녹음한 노래가 그 사이 엄청난 히트를 한 것이다.
이때 KKK 집회에서 돌아온 주지사 후보 호머 스톡스가 노래하는 네 명을 지목하며, 그들은 백인이 아니고, 유색인종이며 없애야 하는 것들이라고 소리지른다. 호머 스톡스는 개혁적 인물로 알려졌지만, 알고보면 인종주의자에 백인우월주의자였던 것이다.
반면, 현 미시시피 주지사이면서, 선거에서 매우 불리했던 페피 오데니얼은 '밑바닥 아이들'의 인기에 편승해 시민들의 환심을 사고, 즉석에서 네 명의 죄를 사면한다. 이들이 마을회관에서 나오자 은행강도 조지 넬슨이 체포되어 거리를 지나가는데, 자기가 전기의자에 앉아 죽을 거라고 떠든다.
율리시즈는 아내와 다시 사이가 좋아졌지만, 다시 결혼식을 하려면 집에서 반지를 가져와야 한다고 말한다. 율리시즈는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고향집으로 가는데, 그곳에서 추격자들에게 다시 체포된다. 율리시즈와 동료들이 주지사에게 사면을 받았다고 말하지만, 추격자들은 이들을 교수형으로 죽이려고 밧줄을 묶는다. 이때 계곡을 따라 급류가 쏟아져 내리고, 율리시즈의 고향집은 물에 잠긴다. 이곳에 댐이 생긴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렇게 다시 구사일생한 율리시즈와 친구들은 도시에 있는 율리시즈의 아내를 만나고, 처음 탈옥했을 때 만났던 기차 선로 수레를 끄는 흑인 노인이 다시 등장해 서서히 멀어지는 장면으로 끝난다.
등장하는 배우들은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데, 조지 클루니는 나무랄 데 없는 미남이지만, 존 터투러(피트), 팀 블레이크 넬슨(델마)의 표정 연기는 압권이다. 여기에 시작 부분에 잠깐 나온 흑인 노인, 은행강도 조지 넬슨, 방송국 사장, 아내의 약혼자 버논 월드립, 성경 사기꾼 존 굿맨 등 배우들 각자 개성 있는 연기로 영화가 다채롭게 채워지는 걸 알 수 있다.
영화에 나오는 음악들은 포크송, 컨트리송들인데, 특히 남부 미시시피가 흑인들이 많이 살던 지역이고, 과거에는 목화 농장이 많던 지역이라 흑인들의 노동요가 발달한 지역답게 흑인 음악과 블루스에서 파생하는 컨트리 음악, 포크 음악이 낯설지 않고 우리의 정서와도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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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희망이 더 무서웠던 두 남자
희망사항
이 영화의 주인공은 가상의 주인공 명안에 사는 소년 연규다. 어디론가 가는 연규. 손에는 돌 하나가 있다. 도착한 곳에 연규의 여동생 하얀이가 있다. 그리고 하얀이 옆에는 남자 일진 무리들이 있다. 이상한 일에 엮인 하얀. 하얀이가 위기에 몰렸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연규. 연규는 손에 있던 돌로 일진 무리 중 하나의 뒤통수를 때린다. 하얀이를 위기에서 꺼내는 데에는 성공한 연규. 하지만 감정적인 판단에 따른 뒤처리가 필요했다. 합의금이 필요한 연규.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것으로는 무리가 있었다.
연규는 지옥 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 18살의 어린 나이엔 세상이 더럽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항상 돈이 필요한 연규. 엄마는 새로운 아버지와 재혼했다. 아버지는 무능력한 사람이라 돈을 벌지도 않고 맨날 술만 먹었다. 심지어 새아들인 자신(연규)을 때리기도 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연규의 일상에 도움이 되는 편은 아니다. 남편의 가정폭력에 무기력한 엄마. 연규의 일상에 즐거운 일이라곤 별로 없는 듯하다. 지옥 같은 하루. 300만 원이라는 돈을 다 갚기엔 솟아날 구멍이 없었다. 그렇게 다 정리하고 화란(네덜란드)으로 떠날 꿈을 꾸고 있을 때, 누군가가 연규를 찾아왔다. “형님이 300만 원 주라 신다. 그리고 나 찾아오지 말래.”
익숙한 것 안에 색다른 맛
영화 <화란>에는 익숙한 향이 첨가되어 있다. 이 영화에 삽입된 몇몇 설정은 기존의 한국 누아르물을 연상시킨다. 우선 첫째로 <똥파리>다. <똥파리>의 주인공 상훈은 아버지에게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영화 안에서 여러 상황이 일어난다. 상훈은 기본적으로 입에 욕을 달고 산다. 이렇다 할 친구도 몇 없다. 그나마 친하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은 일수업체 사장은 만식이다. 이 만식에게도, 심지어 유일한 피붙이인 누나에게도 욕설이 입에 딱 달라붙었다.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서투른 상훈. 그걸 센 척으로 버틴다. 억지로 버티는 상훈의 일상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몰라 위태롭다. 위태로움은 결국 상훈에게 그대로 돌아와 인물의 발목을 잡는다. <똥파리>의 후반부에 벌어지는 사건 역시 이 상훈의 사회성 때문에 일어났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이 <똥파리>는 영화의 분위기와 주인공의 내면이 딱 달라붙는 것이다.
<화란>과 <똥파리>는 영화의 분위기에 공통점이 있다. 일단 주인공 연규는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같이 사는 아버지는 가정폭력을 일삼으며 매일 술만 먹는 인간이다. 어머니는 무기력하다. 네 명의 가족을 부양하기에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들다. 하지만 명안시의 사람들은 연규를 괴롭힌다. 연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할 것들이 몇 있다. 이 ‘희생해야 할 것’의 딜레마가 영화의 분위기와 직결된다. 여러 인물의 상황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이야기의 박력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몇몇 소재도 공통점이 있다. <똥파리>의 연희가 사는 집과 <화란>의 연규/하얀 가족이 사는 집이 비슷하다. 아버지가 무기력한 존재라는 점도 두 영화의 공통점이다. 어린 여학생과의 연대도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소재의 공통점은 글쓴이가 보기엔 무의미한 감이 있다. 중반부의 분기점이 지나는 부분에서 두 영화의 이야기 전개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의 분위기가 유사하기 때문에 글쓴이는 영화 중반부까지 ‘이게 <똥파리>랑 어떤 차이점이 있지?’라고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두 영화의 차이점은 중후반부 전개에 있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한 이미지가 있다. 이 이미지는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여러 상황을 연결시켜서 반복을 통해 보여주는데, 구체적으로(스포일러가 없는 선에서) 써보자면 인물이 각자의 자유의지로 둔 수는 예상외의 방식으로 각각 캐릭터에게 돌아온다. <똥파리>가 후반부 강렬한 여운을 전달하려고 했단 점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똥파리>가 전해주려고 했던 것이 정서라고 한다면 <화란>은 인간사를 조명한 것이다.
끈적끈적한 피냄새
이 영화는 묘하게 끈적이는 분위기를 갖고 있다. 영화가 지옥도를 시각화 한 방식 때문이다. 영화는 공간에다가 특성을 부여해서 인물의 위치를 드러낸다. 우선 연규는 공간적으로 세 군데에 있다. 하나는 엄마, 하얀과 함께 살고 있는 집/연규가 일하는 곳(치건의 사무실, 중국집), 마지막으로 이동 중인 거리다. 연규가 살고 있는 집은 특별하다. 일단 공간이 좁다. 공간이 좁기 때문에 방과 방 사이는 밀착되어 있다. 특히 거실과 부엌이 하나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연규의 방은 이 두 공간에 비해 넓다. 이 두 특성은 영화에서 연규의 입장을 암시하는 듯하다. 연규 혼자서만 끊임없이 겉도는 인물의 내면 상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연규의 내면보다 중요한 것은 ‘집 안 동선이 가깝기 때문에 벌어졌던 비극’이다. 이 영화가 밀도 높은 플롯으로 보는 사람의 입술을 마르게 하는 이유는 각본을 잘 썼기 때문이다. 각본이 장소에 부여하는 사실감은 이야기의 밀도를 높여 입술이 턱턱 마르게끔 한다.
영화가 지옥도를 구현한 두 번째 방식은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치건이라는 인물은 영화의 두 번째 지옥을 맡고 있다. 치건이라는 인물은 그 누구보다 든든한 연규의 직장 상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인물의 서사가 공개될 때 안타까운 한숨이 나온다. 이유는 이 치건 서사가 영화에서 사실상 두 번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건 서사가 전달되는 방식도 ‘이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비극을 맞는 게 당연하다’는 형태를 따른다. 이는 이 영화 안에서 인물들이 맞이하는 비극이 당연한 운명처럼 느껴지게 하는 장치다. 이미 이 영화의 핵심과 비슷한 사례가 있어 ‘이 인물이 새로운 무언가를 꿈꾼다’는게 잘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정재광 배우가 맡은 승무와 김형서 배우가 맡은 하얀 이는 치건과는 반대로 역할한다. 사실 승무, 하얀의 역할이 러닝타임 내의 물리적 비중만큼 중요하지는 않아 보인다. 승무는 영화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소모적으로 쓰이고 있고, 하얀 이는 수동적이다. 둘 다 어느 정도는 기능적인 측면이 있는 셈이다. 정재광, 김형서 배우가 아니면 심심하게 느껴질 이야기에 탄력이 붙은 건 배우 고유의 에너지가 가진 힘이 크다. 이 에너지를 바탕으로 두 인물은 후반부에서 각자 역할을 다한다. 두 인물이 가진 개성이 영화 후반부에 어떤 반향을 일으키는지를 주의 깊게 본다면 역시 흥미롭다.
매력적인 이야기
이 영화가 가진 단점은 인물들이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이 영화에서 연규가 주체적으로 오롯이 서 있는 장면이 부족하다. 이 이유로 인물이 처해있는 상황이나 절박함은 느껴질지라도 그 이상의 무언가는 다가오지 않는다. 이야기’만’ 재미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등장인물 중 택시기사 아저씨와 관련된 부분이 그렇다. 이 인물과 관련된 연규의 서사는 영화의 핵심을 뒷받침하기 위해 생략된 곳이 많다. 연규가 좀 더 고민하는 장면이 있던가, 아니면 중간에 뭘 더 넣거나 바꿔서 주인공만의 판단을 내리는 과정이 있었다면 영화의 엔딩에 동의하기 쉬웠을 것이다. 안 그래도 강력한 송중기의 존재감 때문이 아니라 캐릭터의 서사에 생략된 곳이 많다.
이 영화의 다른 단점은 기존 누아르물과의 기시감이다. 이 영화에는 고유한 개성이 있다. 바로 사실적인 각본을 통한 끈적끈적한 감정선, 그리고 하나의 딜레마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이는 작품의 충분한 장점이다. 반대로 이 개성을 위해 인물들이 틀에 박힌 것처럼 행동한다. 앞에서도 썼듯 영화에서 하얀이가 깔끔한 동선 하에 움직인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순히 폭력에 물들었다기엔 인물의 태도가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영화에서 몇 인물은 기존 한국 느와르물에서 등장했던 캐릭터가 겹쳐보인다. 대표적으로 송중기 배우가 맡은 치건 캐릭터가 그렇다. <똥파리>에서 변화구를 던지며 중후반부를 덮기 위해 이 인물은 사실상의 결말이 다 정해진 것처럼 행동한다(이 영화가 무엇인지를 적는다면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에 적기는 어렵다). 신선함을 기대하고 들어간 관객이라면 영화가 와닿지는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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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인터뷰] 영화에 녹아든 시선
*국문 인터뷰 하단에 영문 인터뷰 번역도 함께 준비되어 있습니다:)
There is also an English interview translation at the bottom of the Korean interview:)
▶Date: 5 /5
▶Interviewee : Adam Wong (A)
▶Editor/ Interviewer : 윤채원 chaewon Yoon (Y)
in 북눅 전주(Booknook Jeonju)
Y: 제일 처음 , <우리가 이야기하는 방법 (원제: The way we talk) > 이라는 제목만 보고 영화를 접했을 때는 ‘인물들이 이야기 하는 다양한 방식, 방법을 보여주는 이야기인가?’ 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인물이 이야기하는 방식보다는 오히려 인물들이 자신의 가치랑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에 이야기가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혹시 감독님께서 이 작품을 통해 가장 보여주고 싶었던 것, 이야기 하고 싶었던 점은 어떤 것일까요?
A: 이 영화가 가지는 핵심 가치는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예요. 사실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생각해 봤더니 지금까지 저의 모든 영화들은 항상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더라구요. 그렇지만, 특히나 이번 영화는 굉장히 사전 조사도 많이 했고, 실제 사례들에 많은 기반을 두었고, 우리 사회에서 아직까지 잘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아까 주제로 소통하는 방식에 대해 언급 해주셨는데, 소통도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사실 진정한 나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소통을 하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과 얼마나 다르고, 또 비슷한지 알아야 하고, 그것은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에요.
영화 속 세 등장인물은 모두 소통 방식이 다릅니다. 한 명은 수어만을 사용하고(Wolf), 한 명은 인공 와우와 수어를 함께 사용하고(Alan), 한 명은 인공와우(CI)를 사용하여 수어를 사용하지 못합니다(Sophie). 저는 이들을 통해 '인공 와우를 착용했을 경우 더 잘 말할 수 있다' 이런 것들에 집중 했다기보다는 그들의 정체성이 가진 가치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왜 그는 수화를 지금까지 계속해 왔는지, 인공 와우를 왜 거부하는 지에 집중했던 거죠. 울프는 태어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했고, 가족들도 모두 수화를 사용하기에 어릴 적부터 그 언어에 익숙했던 반면, 소피는 후천적으로 청력을 잃게 된 케이스에다가 부모님은 모두 들을 수 있는 청인이잖아요. 그러니 그녀의 부모님은 아이가 아프다고 생각하고 이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도록 치료 되길 바라는 거죠. 수어를 배우는 대신 인공 와우 이식 수술을 받고요, 그러나 인공 와우의 문제는 안경처럼 맞춘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좋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사람들에게는 실패 가능성이 되게 높아요. 인공 와우를 착용한다고 해도 근거리에서 들리는 소리와 원거리에서 들리는 소리를 잘 구분하지 못하고, 사회생활에 적응이 어려울 수도 있죠. 앨런의 경우에는 수화와 말이 모두 가능하잖아요, 그는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데 ,사람들이 흔히 청각 장애인이라고 하면 수화만 한다고 생각을 하죠. 그렇지만 사실 스펙트럼이 되게 광범위하고,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그들이 가진 생각들이 서로 대치하기도 해요. 이것과 관련해 그들이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어떤 탐구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회와 같이 협력하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Y: 방금 이야기해주셨던 것처럼 <우리가 이야기하는 방법>에서도 그렇고, 이전 작품들에서도 계속해서 감독님께서는 청춘이나 정체성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다루셨는데, 그런 주제들에 관심을 갖고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사실 뭐라 딱 떨어지게 설명을 할 순 없지만, 주제가 먼저 저에게 다가오고 그다음 그로부터 어떤 동기 부여가 되는 순간이 딱 찾아오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10년 전에 제가 <댄스 스트리트 The way we dance >를 만들기 시작했을 땐, 제가 가르치던 학교 앞에 있는 편의점 앞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고 ‘왜 춤을 추지?’라는 생각에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진정한 나를 찾는(True self) 것이 저에게 너무 중요한 문제가 된 것 같아요. 저, 그리고 홍콩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세계에서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를 찾는 것이 동시대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의 경우, 5년 전 우연히 한 단편 영화 대본을 받았는데, 그 중, 물에서 수어를 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전까지는 제가 청인이다 보니 말하지 못하는 것은 불리한 것이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장면을 통해 사람들이 물 안에서 말을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수화로 물속에서 훨씬 더 자유자재로 소통을 잘하는 것을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죠. 그 영화는 아직 실제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그 한 장면이 저를 사로잡았어요. 우리는 흔히 그들을 청각 장애인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것은 장애가 아니라 그들만의 문화인 거예요. 그래서 deaf가 아닌 대문자 D를 사용해 Deaf (고유명사)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느 날 친구, 그리고 농인분들과 같이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 식사 시간에 농인 친구들에게 만약에 나중에 기술이 엄청 발달해서 하루 만에 들을 수 있게 된다고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지금 그대로 사는 걸 선택하겠다고 하는 거예요. 이미 그들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 거죠. 그때 뭔가 허를 찔린 기분이었고, 마침 그 자리에 프로듀서가 함께 있었는데 이걸 장편 영화로 만들어 봐야겠다고 함께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Y: 영화 속 인물의 대화나, 아이가 그리는 그림, 앨런이 찍은 사진 등 문어가 많이 등장했던 것이 인상 깊었는데, 혹시 특별히 문어를 언급하신 이유가 있는지, 혹시 문어의 움직임이 수화와 관련이 있어서는 아닌지 궁금했었어요. 저는 보면서 문어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표정도 다양하게 사용하고 손 마디마디 유연하게 활용하는 수어가 유사하다고 느껴졌거든요.
A: 문어가 영화를 봤을 때 인상 깊게 다가왔나요?
Y: 네. 사실은 며칠 전에 한 영상에서 문어는 뉴런이 다리에도 있어서 다리 8개를 다 각각 독립적으로 유연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인지 그런 문어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표정부터 손 마디까지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수화랑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상 깊게 다가오더라고요.
A: 흥미로운데요. 사실 특별한 뜻이 있던 건 아니에요.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를 비롯한 농인에 대한 많은 영화들에서 바다도 많이 등장하는데, 바다 또한 저는 의도한 건 아니었거든요. 그림을 그리는 장면 같은 경우엔, 소피가 아이들에게 바다를 주제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도록 한 것이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문어가 해양 생물 중 그리기 가장 단순한 느낌이 아니었나 싶어요 (웃음).
Y: 그렇군요(웃음) 아, 아까 영화 속에 세 가지 서로 다른 소통 방식이 등장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영화의 도입부터 사운드 디자인이 다양하게 구성됐다는 것이 느껴졌어요. 혹시 이것도 관객이 그들의 소통을 경험해보길 원했던 마음에서 기획하신 걸까요?
A: 맞아요.그냥 글로써 읽었을 때는 인물의 심리가 이해가 잘되었는데, 영화로 만들고, 혹은 대본으로 쓰고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사람들이 인물들을 이해하기 어려워 하더라고요. 이 기계가 왜 필요한 건지, 소피의 말에 울프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지. 글을 총 4명이 함께 썼는데, 우리가 쓰면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던 것들이 막상 대본화가 되니까 관객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더라고요.
자신만의 개성이나 성격을 구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건 어렸을 때부터 자라온 성장의 경험이에요. 예를 들면 처음부터 듣지 못했다던가, 아주 조금만 들렸다거나, 그러한 경험들인데, 이런 것이 단순히 이미지나 글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니까 사운드 디자인에 신경을 써서 관객이 그들과 유사한 히어링 포인트를 포착하고 경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Y: 사운드 디자인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해주셨는데, 사운드 디자인 외에도 이 영화를 연출하며 특별히 더 신경을 많이 쓰신 부분이 있으실까요? 물론 영화의 모든 부분은 중요하지만요. (웃음)
A: 농인의 문화가 어떤 다양한 측면에 침투해있는지 보여주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대본 구성부터 후반 작업, 촬영 등 모든 과정에서 이 Deaf 문화를 어떻게 투영할 것인가, 청인과 농인을 가리지 않고 영화를 봤을 때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자막 작업을 해야 할까 하는 지점들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그 중에서도 영화 작업을 위해 조사를 하다 보니 발견한 건데, 인공 와우를 사용해도 무조건 잘 들리는 건 아니고, 그것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의 문제도 많더라고요. 조사를 하며 그런 점들을 깨닫게 되고,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사운드 디자인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던 것 같아요.
Y: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벌써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되었네요.. 슬슬 마무리를 해야할 것 같은데 동시대 사회에서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영화의 역할은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A: 너무 거대한 질문인걸요 (웃음) 음...사람들에게는 스토리가 필요하고, 특히 요즘 같이 복잡한 사회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스토리의 중요성이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생각해요. 세상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해졌고,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그 사이에서 우리는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살아가야 되는지 의미를 찾아야 하고, 그러한 의미들이 더욱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스토리텔링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엔 극장 말고도 숏폼이나 틱톡, 유튜브와 같이 영상을 볼 수 있는 플랫폼이 많아졌어요. 비록 이렇게 영화를, 스토리를 보여주는 방식은 많이 바뀌었지만 영화가 가진 스토리텔링의 힘은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엔 주말에 가족끼리 영화를 많이 보러 갔었는데 요즘은 극장을 찾는 사람이 많이 줄었잖아요, 그런 측면에서는 한편으로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이 이전보다 더 특별한 의미가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Y: 공감이 가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다음 작품에서 그리고 싶은 인물이 있으신가요?
A: 아직 다음 계획은 없지만, 이 영화를 준비하며 오랜 시간 농인 문화에 대해 조사를 했고, 또 그 과정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서 다음 작품에서도 이 주제를 조금 더 이어가 보고 싶긴 해요. 한번만 촬영하기엔 자료들이 너무 아깝고 영화를 준비하며 농인에 대한 관심이나 영감이 더욱 많아져서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만 이번에는 수어 자체 뿐 아니라 수어 통역사에 대해서 조금 더 집중을 해보고 싶은데, 이번 영화보다는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작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입니다. (웃음)
Deaf culture은 한 가지로 특정할 수 없는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단순히 말로 분명히 표현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일까, Gv와 인터뷰를 통해 만난 그는 주어진 시간 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풍부한 이야기를 모두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짧은 시간에 아쉬워하는 사람이었고, 그러한 모습은 그가 누구보다 이 이야기에 애정과 관심을 가진 사람이란 걸 느끼게 해주었다.
그가 영화를 설명할 때 항상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는 ‘스펙트럼’ 이다. 우리의 고정관념과 달리 농인의 세계와 인생에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여러 가지 측면과 다양한 생활 방식이 존재하고, 그는 이런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들을 영화에 담음으로써 단순히 그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 세상과 협력을 해 나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을지',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어떻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 지' 보여준다.
그는 5/7일 열린 GV에서 울프와 소피, 앨런의 아역을 맡았던 배우를 제외하고는 전부 농인 배우였으며 ,수어 담당 조감독과 함께 작업했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 약 5년 간 그들의 문화에 대해 공부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이 그토록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 우리에게 와 닿았던 것은, 어쩌면 농인, 그리고 사회를 향한 감독님의 세심하고 따뜻한 시선과 소통방식 덕분이 아니었을까?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애정을 가득 품은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리고 영화 <우리가 이야기하는 방법>을 통해 나는 작은 일상의 가치들과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돌아보며 나는 어떠한 따뜻한 시선과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고 느낄 수 있을 지, 나는 어떤 존재로 타인과 소통하고 이 사회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지 고민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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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The first thing I’d like to ask is about the title, The Way We Talk. When I first watched the film, I thought it might be about different ways of communication. But after watching it, I felt that it was more focused on how the characters explore their own identities and values. What did you want to convey through this film?
A: The central theme of this film is identity, the searching of true self After making the film, I realized that all of my past works have always been about the same topic. But this time, the film (The Way We Talk) is based it on real-life cases, and I thought it’s a good chance to me to talk about this topic that are still rarely shown in our society.
And I think communication can also be seen as a main theme because communication is very important to construct true-self, and I think true self be defined by “others’. To understand who we truly are, we need to research how we are different and similar to others—and that happens through communication.
The three main characters in the film all communicate differently. One uses only sign language to communicate other people(Wolf), another uses both sign language and a cochlear implant (CI) (Alan) , and the third uses a CI and doesn’t sign at all(Sophie). I wasn’t focused on whether someone with a CI could speak better—I wanted to highlight the value of identity. For instance, why did one character continue using sign language? Why did they refuse a CI?
Wolf was born deaf and his whole family uses sign language, so he grew up with it as his first language. Sophie, on the other hand, lost her hearing later, and her parents are hearing people. So they viewed her as “sick” and wanted her to be “restored” to her original state. That’s why she had cochlear implant surgery instead of learning sign language. But 'CI' doesn’t work the same way for everyone. They’re not like glasses that simply correct a problem—they often don’t work, or make it hard to distinguish between near and far sounds, making social adaptation difficult. Many people assume that deaf people only sign, but in reality, they have a wide spectrum. People make different choices depending on the situation, and their perspectives can even conflict with one another. I wanted to show how these characters explore their identity, and how they collaborate and communicate with society.
Y: This film, and your previous works have often deal with 'youth' and 'identity'. Did you have any special reason that you to tell these stories?
A: It’s hard to explain in a very structured way, but I think, always the topic comes to me first—and then later, some story that inspired me to develop the story. I have a moment of motivation that sparks everything. For example, when I made <The Way We Dance> ten years ago, it started with me watching some people dancing in front of a convenience store near the school where I was teaching. I thought, “Why are they dancing?” and that was the beginning.
More recently, finding one's true self has become very important. I think It’s not just about me or Hong Kong, but about the whole world. I feel that discovering our true selves is a value that we all need to reflect on today. As for this film, it started about five years ago when I happened to read a short film script. There was a scene where someone was signing underwater. As I'm a hearing person, I used to think of being unable to speak as a disadvantage, but that scene changed my perspective. Underwater, people can’t talk—but signers can still communicate freely. That struck me. That film hasn’t been made yet, but that scene stayed with me. We often refer to them as “hearing-impaired,” but it’s not really a disability—it’s a culture. That’s why I want to use a capital “D” in 'Deaf' to highlight their identity. One night, I had dinner with some Deaf friends, and I asked them: “If technology advanced and you could hear again in just one day, would you choose that?” They said no—they’d rather live as they are. That moment really struck me. My producer was there too, and we decided to make a feature film on this topic.
Y: I was really struck by how often octopuses appeared in the film—whether in the characters’ conversations, in the child’s drawings, or in the photos Alan took. I was wondering if there was a particular reason you chose to include octopuses. Was it perhaps related to sign language? While watching, I felt that the octopus’s fluid movements and expressive nature were quite similar to sign language, which also uses a wide range of expressions and the flexible movement of each finger.
A: Oh, the octopus made a strong impression on you?
Y: Yes. I recently learned that octopuses have neurons in their legs, so each arm moves independently and flexibly. And when I watched a movie, I thought moving of octopus looks like sign language, in freedom and flexibility. Especially, I thought it is similar with flexible finger moments and using facial experiences of sign language.
A: Interesting.. But actually, I didn’t include them with that intention. In the scene where Sophie teaches children, she asks them to draw the sea freely. I think the octopus is just the simplest marine creature to draw. (laughs) Also, many films about Deaf people—like those by Takeshi Kitano—often feature the sea, but actually, I'm not that intention and that's not my inspired. I was inspired this film by that earlier short film script, the one scene in that script, I felt that the ocean was a space where Deaf identities were fully expressed, a place where only they could communicate freely.
Y: I see (laughs). Earlier, you mentioned that the film features three different communication styles, and from the very beginning of the movie, I could feel that the sound design was quite diverse. Did you plan this with the intention of allowing the audience to experience their ways of communication?
A: Yes, exactly. When we wrote the script, everything made sense to us, but when we turned it into a screenplay and showed it to others, they had a hard time understanding, for example, Sophie needed the device or why Wolf was so angry at her. Four of us co-wrote the script, and what felt natural to us didn’t always translate well on screen.
We realized that each character’s upbringing—whether they were born deaf or lost their hearing later—shaped their personalities and ways of interacting. But I think just writing or showing that isn’t enough. So I paid attention to the sound design—to help the audience experience what hearing might be like for each character and to better understand them.
Y: Aside from sound design, what aspect of the film did you pay the attention to?
A: I focused on showing how Deaf culture permeates many aspects of life. From scriptwriting to post-production and shooting, I constantly thought about how to reflect Deaf culture and make it understandable to both hearing and Deaf audiences. Subtitling also was important. During our research, I learned that even with 'CI's, hearing is not guaranteed. There are many issues when the device doesn’t work properly, So that's why I put so much effort into the sound design—to show these realities clearly.
Y: As our conversation comes to a close, time has flown by so quickly. Before we wrap up, I’d love to ask—what do you think is the role of cinema in today’s society?
A: That’s a huge question! (laughs)
Umm.. I think people need stories—especially now, when the world feels more complex and unpredictable. There are more problems, more confusion. So people need meaning in their lives, and stories help with that. Cinema is one of the most powerful ways to tell those stories. Fewer people go to the theater these days. We now have short-form videos, TikTok, YouTube. Though the platforms have changed, I don’t think the storytelling power of cinema has diminished. And nowdays, watching a film in the theater has decreased, so watching a film in a theater become more special than before—maybe even more meaningful.
Y: Oh..Time's up. Last, do you have any specific characters you’d like to explore in your next film?
A: I don’t have any set plans yet, but after all the research I’ve done on Deaf culture, I feel like I want to continue exploring this topic. It feels like a waste to stop now—I’ve gained so many insights into the Deaf community. But this time, I’m interested in focusing more on sign language interpreters. And I also want to work at a slightly faster pace than with this film.
Deaf culture has various aspects that cannot be defined in one word, so it is difficult to express it clearly in words. Perhaps that is why, when I met him through an interview with GV, he was someone who regretted not being able to express or explain all the rich stories that could not be expressed in words in a given time, and this made me feel that he is a person who has more affection and interest in this story than anyone else.
One of the words he always uses when describing movies is ‘spectrum.’ Contrary to our stereotypes, there are many aspects and lifestyles that we have not thought of in the world and life of deaf people, and by including characters with such a diverse spectrum in the movie, he goes beyond simply showing their daily lives and shows us ‘how we can cooperate with this world,’ ‘how we can find our true selves,’ and ‘how we can communicate with the world while maintaining our individuality and identity.’
He said that, except for the actors who played the younger roles of Wolf, Sophie, and Alan at the GV held on May 7, all of them were deaf actors, and he worked with an assistant director, who in charge of sign language and studied their culture for about 5 years to make the film. The reason the characters in the film were able to communicate so freely, and their warm hearts touched us, was perhaps because of the director’s meticulous and warm gaze and communication style toward the deaf and society?
Thanks to Adam, through conversations with him, who was full of affection for what he wanted to say, and through the film <The Way We Talk>, I looked back on the values of small daily lives and the world around us, and thought about what kind of warm gaze and method I could use to look at and feel our society, and what kind of being I am to communicate with others and exist in this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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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다 - <신의 소녀들>
알리나는 사랑하는 친구인 보이치타와 함께 떠나기 위해서 그녀가 있는 수도원으로 향한다. 알리나는 바로 독일로 떠나길 원했지만
알리나와 떨어져 있었던 시간 동안 수도원에 머물렀던 보이치타는 계속 수도원에 있기를 원한다. 알리나는 신을 맹목적으로 믿는 보이치타를 이해하지 못하고 수도원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이치타도 신을 믿지 않는 알리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수도원에서 알리나는 철저한 이방인일 뿐이다. 신을 믿지 않는 알리나의 말과 행동으로 수도원에 있는 사람들은 알리나의 몸속에 악마가 있다며 퇴마의식을 시작한다. 그들은 알리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구원이 아니라 마녀사냥이고 학대일 뿐이다. 퇴마의식 전에 알리나는 사랑하는 보이치타를 위해서 잠시 떠났던 수도원에 다시 돌아온다. 알리나는 신을 믿으려고 노력했지만 의문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의문을 제기하는 게 죄인가.
영화 속에서 수도원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들의 신을 향한 맹목적인 사랑은 타인을 죄인으로 만들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들게 만든다.
이 영화는 종교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의 대립을 보여준다. 종교를 믿는 수도원의 사람들은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을 구원한다고 말하지만 전혀 아니다. 철저하게 이방으로 대우하며 악마라고 취급한다. 당신들이 말하는 구원이 신념이 다른 사람을 마녀사냥하는 것인지 어쩌면 맹목적인 믿음은 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퇴마의식을 진행하면서 알리나를 걱정하지 않는 수도원 사람들의 모습은 이질적이었고 광기를 느꼈다.
고아원에서 함께 있었던 알리나와 보이치타는 서로를 사랑했다. 어쩌면 보이치타는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신을 믿기 시작한 게 아닐까. 영화는 알리나가 수도원에서 왔다는 이유로 무심했던 병원과 신의 힘으로 알리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사람들의 오만함을 조롱한다.
신을 믿는다면서 가치관과 신념이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집단을 비판하는 영화 퇴마의식이 구원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나의 신념은 다른 사람과 다를 수 있다. 그 신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니라고 영화는 어쩌면 가장 기본이지만 중요한 답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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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도 '젠틀'했던 '언젠틀 오퍼레이션'
들어가며
*스포일러 주의
*본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를 바탕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가이 리치 감독의 신작이다. <셜록홈즈>, <더 커버넌트>를 통해 블록버스터 영화(일명 팝콘 무비)의 흥행을 성공시킨 감독이다. 여기에 <맨 오브 스틸>로 유명한 '헨리 카빌'과 드라마 <삼체>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에이사 곤살레스', 압도적인 피지컬로 시원한 액션을 보여줄 '앨런 리치슨'까지 그 기대를 한 몸에 안고 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제2차 세계대전, 영국 정보부는 독일의 유보트(U-boat)를 무력화하기 위해 극비 작전을 개시한다. 윈스턴 처칠의 지휘 아래 창설된 영국 최초의 특수부대. '거스 마치필립스(헨리 카빌)'가 이끄는 작전팀은 저마다 개성 넘치는 실력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독일군 점령지인 페르난도 포 섬에 잠입, 먼저 스파이로 섬에 정착해 있던 '마조리 스튜어트(아이사 곤잘레스)'와 '헤론(뱁스 올루산모쿤)'과 협력해 유보트를 폭파하여 무력화하는 미션을 수행한다. 하지만 전쟁이란 결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 U보트의 설계가 강화되어 '폭파'로는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게 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기지로 나치군을 무너뜨리고 임무를 완수해 나가는 실화 바탕의 이야기이다.
실화 바탕의 유쾌한 전쟁, 액션, 스파이 영화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가 그렇듯 특유의 '유쾌함'으로 극을 이끌어나간다. 이러한 '유쾌함'은 암울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함에도 빛나게 된다. 감독은 '나치를 한방에 처리하는' 액션의 유쾌함을 선보인다. 이 영화는 주인공, 혹은 주변 인물이 관객을 답답하게 하지 않는다. 적들을 '딸깍' 한 번에 쓸어버리는 통쾌함은 그 적들이 '나치군'이라는 점에 기인해 유쾌함을 선사한다. 감독이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함에도 유쾌함을 줄 수 있는 일종의 전략인 셈이다. 이러한 유머는 긴장감 있는 상황 속에서도 관객들이 그 텐션에 지치지 않게 윤활유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영화를 더 몰입하고 더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는 것이다.
액션, 전쟁, 스파이 영화 장르의 결합도 흥미로웠다. 물론 그 장르들의 결합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느낌을 준다기보다는 기존에 영화가 흥행했던 '고전적'인 방식에서의 결합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장르의 결합으로 관객은 낯섦보다는 익숙함을, 그리고 그 익숙함으로부터 오는 완전한 몰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각각의 장르가 훌륭하게 융합되었다기보다는 여러 장르의 혼합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각 장르의 특징을 희석시키게 되는 것은 있었다. 스파이 영화지만 기존 007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긴장감보다는 텐션이 약하고, 기존 전쟁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비장함과 처참함'도 찾기 힘들다. 액션의 경우도 아쉬운 것이 소위 '딸깍' 액션이라는, 다시 말해 주인공이 총만 잡으면 일격필살로 적을 무찌르는 것에 초반에는 신선했을지 몰라도 극의 후반부에서까지 이러한 동일한 액션의 반복이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액션 씬이 지루해지는 것은 있다.
각양각색의 매력적인 캐릭터
<언젠틀 오퍼레이션>의 임무는 '팀미션'인 만큼 팀원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다. 마치 '어벤저스'가 그러하듯 각자가 지닌 특기(특수한 능력)가 있고 그 능력을 때에 맞게 잘 활용한다. 주인공 '거스 마치 필립스 (헨리 카빌)'는 팀원의 리더로서 뛰어난 사격 실력과 리더십을 보여준다. 작중의 시간대로 봤을 때 그의 첫 등장 장면은 수갑에 묶인 채 군 교도소에서 불려 나온 장면일 것이다. 대체 이 인물이 얼마나 '막 나갔길래' 2차 대전 도중 군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해가 가는데, 그는 상관의 명령보다 자신의 소신대로 움직이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또한 앞뒤 생각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소위 말해 어느 정도 '똘끼'가 있는 인물이다. 마치 '내 편일 때 가장 든든한' 미친놈처럼 그는 나치들의 공격과 지략 속에서도 그의 '똘끼'로 위기를 시원하게 극복해 낸다. '앤더스 라센 (앨런 리치슨)'은 어떠한가, 작중 나치군을 정말 '썰어버리 듯' 살육하고 다니는 근육질의 '힘캐'이다. '도끼', '활', '총' 등등 그가 못 다루는 무기는 없으며 그 무기들로 정말 시원하게 적들을 처리하고 다닌다. 그것도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관객은 이러한 캐릭터에 쉽사리 감정이입하지 못할 것 같지만 적군이 '나치'임을, 나치군이 그에게 했던 끔찍한 짓들을 떠올리다 보면 금세 그를 응원하게 된다. 유일한 두뇌 캐릭터로서 전략을 주도하는 '제프리 애플야드 (알렉스 페티퍼)'와 폭파 전문가 '프레디 알바레즈(헨리 골딩)', '헨리 헤이즈(히어로 파인스 티핀)'도 등장한다.
나아가 유일한 여성 캐릭터인 '마조리 스튜어트 (에이사 곤살레스)'는 전형적인 미인계형 스파이다. 적진의 한가운데 고위급 나치 장교의 최측근이 되어 폭파 임무 팀이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정보를 캐내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녀의 임기응변 능력과 뛰어난 미모로 '하인리히 뤼르(틸 슈바이거)'를 꾀어내어 U보트에 관한 핵심 정보를 캐낸다. 그녀는 독일계 유대인 출신이다. 뿐만 아니라 유일한 흑인 캐릭터인 '헤론(뱁스 올루산모쿤)'도 뛰어난 정보력을 바탕으로 주인공 일행들을 끝까지 돕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렇듯 이 영화에서는 실존 인물이지만 당시 시대상을 봤을 때 '묻혔을' 법한 인물들을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어 관객들에게 이러한 인물도 전쟁 종식에 큰 기여를 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인물들이 다양하게 제 역할을 해내는 일종의 '하이스트 무비'로서의 특징도 갖고 있다. 다만, 이렇게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구축했지만 정작 디테일한 부분에서의 설명은 많이 생략되어 인물이 갖고 있는 입체성을 무시한 채 너무 평면적으로 그려낸 점은 아쉽다. 극의 초반부 노년의 나치 해군은 망설임 없이 처리하면서 후반부 어린 나치 군인을 살게 보내준 '거스'의 모습은 크게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또한 나치의 소굴에서 같은 흑인 인종이 고문받고 있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헤론'의 모습이나, 고전적인 미인계형 스파이의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마조리'도 그렇다. '거스'의 팀원들도 나치 군인들에 의해 고통을 받았던 인물들로 그려지는데 영화의 유쾌함을 위해서인지 그들의 아픔은 그리 자세히 그려내지 않고 그저 적들을 처리하는 데 집중한다. 그것이 득이 된 경우도 있지만, 인물에 매력은 느끼나 그 인물을 '나와 같다'라고 느끼지 못하는 공감을 방해하는 요소로서 작용하게 된 경우도 있다. 인물 각각은 매력적이지만 그 인물에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관객들이 정말 편안하게 킬링타임 용으로 볼 수 있는 최고의 액션 영화라 할 수 있다. 인물의 매력도 뚜렷해 인물의 합을 보는 재미도 있고, 시원시원한 액션과, 스파이 장르 특유의 긴장감 또한 맛볼 수 있다. 다만, 너무 '친절'했다. 우리의 생각이 들어갈 틈이 없이 이 영화는 관객보다 앞서 '정답'을 제시한다. 분명 재미있게 영화관을 나오지만, 그 이상은 없는 느낌인 것이다. 친절한 설명과 알기 쉬운 플롯, 어디서 많이 본듯한 '클리셰'의 활용으로 익숙함은 있지만 '낯섦'은 없다. 비슷하게 2차 대전의 상황을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는 타이카 와이티티의 <조조래빗>의 유머는 유쾌해 보여도 사실은 깊다. '나치를 때려잡는 통쾌함'을 앞세운 나머지 고통받았던 피해자들에 대한 조명은 약하다. 그저 킬링타임 용으로 즐기기에는 생각보다 그 시대상은 어둡고 무겁다. 그것을 유쾌하게 그려내려면 적어도 <조조래빗> 만큼의 '영리함'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관객들에게 '재밌고 신나는' 경험을 선사했지만 가장 큰 단점은 단지 '재밌고 신나는 경험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아마 관객들을 지나치게 배려한 나머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영화를 만든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이 영화는 '정말 재미있다'.
한줄평 : 너무나도 '젠틀'했던 '언젠틀 오퍼레이션'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3월 19일 개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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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위도우> - '히어로, 딸, 언니, 친구였던 나타샤의 삶'
블랙 위도우 (Black Widow)
개봉일 : 2021.07.07 (한국 기준)
감독 : 케이트 쇼트랜드
출연 : 스칼렛 요한슨, 플로렌스 퓨, 레이첼 와이즈, 데이빗 하버, 레이 윈스턴, 윌리엄 허트
‘히어로, 딸, 언니, 친구였던 나타샤의 삶’
어벤져스가 처음 개봉한지 근 10년. 어벤져스의 원년 멤버로 긴 시간을 함께하고 엔드 게임을 마지막으로 어벤져스를 떠나는 블랙 위도우, 나타샤를 위한 마지막 배웅 같은 영화 <블랙 위도우>가 드디어 개봉했다. 개봉한지 근 3주가 지나가고 있는.. 아주 늦은 시점이지만 나타샤를 보내는 마음으로 늦은 글을 써본다.
코로나로 인해 개봉이 1년 넘게 늦춰지는 바람에 그동안 얼마나 애간장을 태웠는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무사히 <블랙 위도우>가 개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말 큰 감동이었다.
<블랙 위도우>는 시빌 워와 같은 타임라인을 공유하며 어벤져스 내부의 갈등이 일어나고 로저스(캡틴 아메리카)가 잠적한 후, 남겨진 나타샤의 이야기다. 그동안에 깊이 언급되지 않았던 나타샤의 어린 시절과 ‘레드룸’에 대한 비밀이 드디어 실체를 드러내는데, 지나치게 어둡거나 무겁게 다뤄지진 않는다.
이전 영화들에서는 나타샤가 레드룸에서의 기억과 그 안에서 잃어버린 것(어린 시절이나 가족, 여성으로서의 삶 등..)을 떠올리며 씁쓸해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는데, 어벤져스라는 새로운 동료이자 가족들을 만나며 그 부분들을 조금씩 채워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항상 ‘난 가족이 없다.’고 말하던 그녀가 어벤져스를 ‘가족’으로 받아들였을 때, 갑자기 일어난 어벤져스의 내부 분열은 나타샤를 다시 한번 고민에 빠트린다.
<블랙 위도우>는 레드룸에 얽힌 음모와 그것을 전부 깨부수기 위한 여정이자 나타샤가 완벽하게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던 어린 시절의 아픔과 죄책감을 덜어내는 과정, 지금껏 아팠던 만큼의 성장을 한 번에 이뤄내는 순간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잠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가족 영화이기도 하다.
나타샤는 아이언맨처럼 강철 슈트를 입은 것도, 캡틴 아메리카처럼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실험을 받은 것도, 토르처럼 신도 아니다. <블랙 위도우>는 인간의 몸으로 몇 가지 무기를 들고 싸우면서도 전혀 ‘나약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던 그녀가 숨기고 있던 상처와 감정들을 밖으로 내놓으면서 더욱 단단해지는 과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슈퍼 히어로 블랙 위도우이기 전에 인간 나타샤로서의 그녀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영화를 보고 나서 어쩌면 나타샤가 어벤져스 내에서 신체적으론 가장 약할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마음과 정신은 다른 히어로들보다 훨씬 강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의 타임라인 이후에 인피니티 워, 엔드 게임에서 보여준 결단력과 용기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더 그런 확신이 든다.)
나타샤가 인피니티 워에서 짧은 금발머리를 하고 다시 등장했을 때, “그 사이에 뭔가 변화가 있었구나” 하고 짐작하긴 했으나, 그때는 그저 그녀의 외적 변신에 더욱 크게 환호했던 기억이 있다. 항상 아프고 씁쓸해 보였던 그녀가 새로운 머리, 새로운 옷을 입고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갈라섰던 동료들에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 킬러로서 살아온 세월을 속죄하며 세상을 위해 싸우던 그녀가 더욱 강한 사명감을 갖게 된 이유가 이 영화 <블랙 위도우>에 담겨있다. 모든 게 가짜라고 생각했던 나타샤의 삶에 ‘진짜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그녀가 마지막으로 몸을 내던져 지키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나는 이제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블랙 위도우 시놉시스
어벤져스의 히어로 블랙 위도우, ‘나타샤 로마노프’ (스칼렛 요한슨)는 자신의 과거와 연결된 레드룸의 거대한 음모와 실체를 깨닫게 된다. 상대의 능력을 복제하는 빌런 ‘태스크마스터’와 새로운 위도우들의 위협에 맞서 목숨을 건 반격을 시작하는 ‘나타샤’는 스파이로 활약했던 자신의 과거 뿐 아니라, 어벤져스가 되기 전 함께했던 동료들을 마주해야만 하는데… 폭발하는 리얼 액션 카타르시스! MCU의 새로운 시대를 시작할 첫 액션 블록버스터를 만끽하라!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나타샤는 오하이오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확히는 3년간 러시아 스파이인 가짜 엄마 아빠와 피를 나누지 않은 동생 엘레나와 함께 ‘위장 가족’으로 살았다. 나타샤는 자신에게 진짜 가족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에게 보호받는 어린아이가 아닌 ‘킬러’라는 물건이 되어 살아남기 위해 죽을힘을 다한 레드룸에서의 어린 날들과, 킬러가 되어 살아온 시간들을 지나, 모든 과오를 청산하기 위해 어벤져스가 되어 세상을 위해 싸우던 나타샤는 ‘이제 진짜 가족이 생겼나’싶었지만 어벤져스가 와해되고 다시 혼자가 된다.
“이제 떠날 거예요.”라고 말하며 수트를 놓고 추적을 피해 달아난 나타샤는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아픈 어린 시절의 흔적을 마주한다. 그건 바로 아직도 건재하게 남아있는 ‘레드룸’과 여전히 소녀들을 세뇌시켜 위도우로 키우고 있는 드레이코프. 끝났을 거라 생각했던 드레이코프의 악행은 계속되고 있었고 지켜주는 어른이 없었던 소녀들의 고통도 계속되고 있었다.
“그들을 해방시켜줘.”
나타샤가 레드룸을 벗어난 후 남겨졌던 동생 엘레나는 다른 위도우의 도움으로 해독제를 맞고 탈출에 성공해 나타샤에게로 향한다. 나타샤는 레드룸이 아직 파괴되지 않았음을 알고 엘레나와 함께 해독제를 들고 가짜 엄마 아빠였던 멜리나와 알렉세이를 찾아간다.
“내게도 진짜 가족이었어.”
나타샤, 엘레나, 멜리나와 알렉세이가 한 식탁에 모이고, 그들은 서로를 ‘가족’이라 칭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3년의 시간 동안 쌓아왔던 습관과 작은 추억들을 나눈다. 레드룸의 계획으로 이뤄진 ‘위장 가족’이었다는 비밀을 모두가 알게 되었기에 ‘가족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어느 순간 서로를 ‘가족’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3년이란 시간 동안 쌓아온 정과 사랑은 끝내 외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타샤는 멜리나가 건넨 “절대 너 자신을 잃지마.” 라는 한마디로 자신을 붙잡고 살아왔고, 멜리나는 나타샤, 엘레나와 함께 찍은 사진첩을 간직하고 있었고, 알렉세이는 엘레나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타샤에 등에 들어있던 멍과 이들의 행동을 보며 슈트를 입은 히어로나 킬러, 대단한 작전을 행한 스파이이기 이전에 이들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널 두고 갈 순 없었어.”
“그 안에 너 있는 거 알아. 널 두곤 안 갈게.”
나타샤는 다시 한번 드레이코프와 레드룸에 맞서며 지금껏 자신을 심하게도 아프게 했던 시절들을 털어낸다. 그리고 그만큼 강해진다.
힘없는 여자아이들을 세뇌시키며 차고 넘치는 자원이자 재활용품이라고 칭하는 드레이코프. 그의 앞에 선 나타샤는 스스로 자신의 후각 신경을 손상시키며 드레이코프가 남겨둔 마지막 세뇌의 흔적을 제거한다. 그녀는 자신의 신경을 끊으면 드레이코프를 공격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끝까지 기다려 그의 계획을 캐내는데 성공한다. 나타샤는 먼저 레드룸을 탈출하며 구하지 못했던 위도우들을 구하기 위해, 이번엔 혼자가 아닌 모두가 함께 탈출하기 위해 무너지는 레드룸에서 늦게까지 머물며 해독제와 정보를 챙긴다. 이번엔 ‘구하지 못했다’는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레드룸이 내려앉을 때, 대부분의 위도우들은 해독제를 맞고 탈출에 성공한다. 위도우 네트워크 정보를 들고 탈출하던 나타샤는 감옥에 갇혀있던 안토니오를 꺼내고 지상에서 다시 한번 격돌한다. 안토니오는 드레이코프의 딸이자 그가 세뇌를 통해 만들어낸 ‘새로운 1급 무기’다. 안토니오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읽어 마치 거울과 싸우는 것처럼 느껴지는 적이자 나타샤의 오랜 죄책감의 중심이다. 나타샤는 자신의 거울처럼 움직이는 안토니오에게 해독제를 투여하는데 성공하고 그녀가 정신이 들었을 때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한다. 나타샤의 진심 어린 사과는 자신이 탈출한 후에도 갇혀있었던 여러 위도우들과 지금도 고통받고 있을 전 세계에 퍼져있는 세뇌당한 위도우들, 그리고 괴로웠다며 무조건 부정하려 했던 위도우 시절의 나, 자신의 과오에 희생된 이들에게 건네는 말일 것이다. 자신과 같은 운명을 겪고 있는, 거울 속 나와 같은 소녀들, 그리고 과오를 저지르던 그때의 나. 나타샤는 안토니오의 해독을 마지막으로 오래 묵은 고통에서 벗어난다.
“이젠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해.”
“절대 너 자신을 잃지 마.”
레드룸의 파괴와 나타샤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가족들과의 만남은 나타샤가 자신도 행복한 순간을 보낼 수 있는, 소중한 존재가 있는 사람임을 알게 해준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타샤를 지배했던 세뇌의 흔적들은 사라졌고, 마음의 짐으로 남아있던 위도우들도 해독제를 통해 자유를 되찾았다. 가짜라고 생각했던 가족은 ‘가장 행복한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이었고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엘레나는 여전히 지켜주고 싶은 소중한 동생이었다.
“난 가족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둘이나 있더라고.”
모든 게 가짜고 없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마음을 조금 더 뻗어보니 그들의 손이 있었고, 손을 내밀자 그들은 나타샤의 손을 잡아줬다. 위도우들도 알렉세이도. 그리고 어벤져스도.
“난 선물상자가 빈 통인걸 알면서도 다 열어보고 싶었어.
그 기분을 맛보고 싶어서.”
가짜인 걸 알면서도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어린아이’의 기분을 궁금해하며 빈 상자를 열었던 어린아이는 무사히 자신을 잃지 않고 어른이 되어 세상과 다시 만난 소중한 사람들을 지킨다. <인피니티 워>에서 만난 나타샤가 입고 있던 엘레나의 조끼와 어린 그녀의 모습과 같은 짧은 금발머리는 그녀가 가장 큰 결핍이라 느꼈던 어린 시절과 가족을 새롭게 정의했음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을까.
<엔드게임>에서 나타샤가 내렸던 결정은 과거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 그에 대한 사죄와 사명감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닌, 지켜내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합쳐져 만들어진 결과물일 것이다.
나를 위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가 된 나타샤가 내린 가장 큰 결정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리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슬픔과 함께 그녀의 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나타샤는 해독제를 맞은 위도우들에게 마지막까지 미안하다고 말하고, 항상 자신이 행한 과오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레드룸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던 나타샤에겐 선택권이 없었다는걸, 그녀 또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빼앗긴 한 명의 위도우였다는 걸, 그녀의 희생은 거짓이 아니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나타샤가 멜리나에게 ‘선택권이 없었던 것’이라고 위로했던 것처럼, 나도 그렇게 그녀를 위로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아쉬운 만큼 더 그녀를 사랑하게 된 느낌이다. 그렇기에 그 뜻을 이해하며 이제 나타샤를 보내주고 새로운 세대를, 엘레나의 등장을 반겨줄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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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모비우스> 안티 히어로 예고편
비행?, 음파 감지 ?, 엄청난 힘과 스피드까지 ? 보는 순간 #모비우스 의 능력에 압도 당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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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황비홍: 무신임세영> 예고편
진정한 영웅이 깨어난다!
실력을 숨긴 채 평범한 상인으로 살아가던 ‘임세영’은
일본인들이 시장 이웃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더욱 강해지려는
‘임세영’ 앞에 전설적인 무림 고수 ‘황비홍’이 나타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