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11-11 07:42:57
삶과 죽음이 중첩된 곳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파동
영화 〈룸 넥스트 도어〉
종군기자로 일한 마사가 과거를 회고한다. 그녀는 전쟁터에서 한 가톨릭 수사를 만나 취재했다. 그 수사는 위험천만한 전쟁터를 떠나기를 거부했고, 동료 한 명과 그곳에 남기를 택했다. 수사의 또 다른 친구에게서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은 마사는 추측한다. 아마 그와 함께 전쟁터에 남아 있기로 한 동료는 수사의 연인일 것이며, 두 사람은 섹스의 환희로 일상에 깃든 죽음의 공포를 이겨낼 것이라고.
여기서 전쟁과 섹스는 각각 죽음과 삶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들은 늘 함께다. 비단 전쟁터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마사는 현재 말기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다. 암 선고는 또 다른 전쟁이다. 즉 마사는 죽음에 밀접해 있다. 그런 그녀에게 ‘섹스’, 즉 죽음의 공포를 상쇄해주는 삶의 순간은 무엇일까? 원하는 때에 삶을 끝낼 수 있는 약이다. 다크웹으로 존엄사 약을 구한 마사는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해줄 친구를 찾는다.
잉그리드는 유명한 작가다. 최근 그녀는 자신이 죽음에 느끼는 두려움을 주제로 책을 냈다. 우연히 옛 친구 마사의 소식을 들은 잉그리드는 병문안을 가고 묵혀둔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마사에게 부탁을 받는다. 비밀을 지킨 채 자기 삶의 마지막을 함께해달라는 제안이다. 공포와 혼란 속에서도, 잉그리드는 마지못해 그 제안을 수락한다. 잉그리드에게는 마사에 대한 우정과 작가로서의 호기심이 죽음의 공포를 상쇄시켜주는 ‘섹스’ 역할을 한다.
〈룸 넥스트 도어〉에는 삶과 죽음이 병치되어 있다. 마사에게 딸을 주었으나 베트남전 후유증으로 사망한 남자, 마사 커리어의 원천이었던 수많은 전쟁터, 삶의 마지막 순간을 결정할 수단을 확보한 후 마사가 누리는 평온함, 개인 잉그리드의 두려움과 작가 잉그리드의 호기심, 한때는 섹스에 열정적으로 탐닉했으나 지금은 비관적 기후 위기론자가 된 두 사람의 옛 연인……. 마사와 잉그리드가 나누는 이야기와 공유하는 일상에는 늘 죽음과 삶이 달라붙어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마사 사후 잉그리드가 이를 미리 알고 있었으리라 추궁하는 기독교 신자 경찰과 마사가 자신에게도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경찰에게 폭로한 또 다른 친구가 그렇다. 이들은 마사, 잉그리드와 달리 지극히 단조롭고 따분하게 재현된다. 짜증이 날 정도다. 삶에 대한 애착만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 짝을 이루는 죽음을 품지 못할 때 우리 삶이 얼마나 밋밋하고 멍청해지는지를 보여준다.
최근 북미에서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차기 시민권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계급과 인종, 장애, ‘존엄함’의 정의 등 명쾌히 답변되지 않은 지점이 많기는 하지만(이 영화에서도 존엄사/안락사는 두 상류층 백인 여성의 이야기다), 어쨌든 많은 사람이 ‘죽을 권리’를 갈망한다. 마사는 분노에 차 왜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보장되지 않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핵심은 죽을 권리가 필요하다는 외침이라기보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죽을 권리를 획득한 사람이 누리는 삶/죽음의 환희다. 마사는 불법으로 약물을 구할 수밖에 없었고**, 마사 사후 ‘상식’을 대변하는 경찰은 잉그리드를 심문하려 든다. 하지만 영화 속 카메라는 두 사람이 마지막을 스스로 정하기로 한 후 발생하는 미묘한 떨림을 포착하는 데 훨씬 더 큰 중점을 둔다. 마사의 마지막 선택을 암시하는 신호, 그 신호를 오인한 잉그리드의 감정,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삶을 마감한 마사가 확보한 ‘존엄’의 내용 등 삶과 죽음이 중첩된 곳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파동을 담아내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정서가 ‘잔잔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밀도 높은 드라마에 긴장과 스릴이 더해졌다는 인상이다. 우리의 일상적 사고 습관이 삶에 달라붙은 죽음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죽음의 가능성을 환기하는 것만으로도 종종 서늘한 긴장감이 발생하는 것은. 〈룸 넥스트 도어〉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죽을 권리’에 대한 사유를 촉발하는 영화다.
*다이앤 렘, 《나의 때가 오면》, 성원 옮김, 문예출판사, 2024.
**미국에서는 일부 주에서만 약물을 활용한 존엄사가 합법이고, 이 경우에도 승인받기 위한 몇몇 절차가 필요하다. 앞의 책 참조.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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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러드 레드 스카이 / Blood Red Sky, 2021
요즘 영화를 보려고 해도 러닝타임이 2시간이 훌쩍 넘으니 이래저래 부담만 느끼는데요. 그럼에도 해당 영화를 선택한다는 건 그만큼 영화가 재밌거나 혹은 예고편을 기깔나게 찍었다는 의미일 거고요.
영화 <블러드 레드 스카이>는 전자보다 후자에 속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납치범들이 비행기를 탈취했는데 하필이면, 그곳의 승객 하나가 "흡혈귀"로 역으로 당하는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대개, 이런 영화들이 90분 내외의 오락 영화로 진행되는 반면에 <블러드 레드 스카이>는 121분인 만큼 그 이상의 재미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과연, 어떤 영화이었는지?' - <블러드 레드 스카이>의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의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여자는 아들과 함께 비행기에 올라섭니다.
그리고 별 탈 없이 비행기는 도착지를 향해 날아가지만, 납치범들에게 의해 점령되고 아들에게 위협을 가하는데요.
이에 여자는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본 모습을 테러리스트들에게 드러내는데...기대했던 것만 보여주면 안 될까요?
1. 안 어울리지만, 괜찮은 조합?
앞서 말했듯이 영화 <블러드 레드 스카이>는 시놉만 본다면, B급 영화의 느낌이 나는데요.
그래서 예상하기로는 90분 내외의 짧고 굵은 임팩트를 기대하겠지만, <블러드 레드 스카이>는 121분으로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라고 관객들에게 어필합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가 설정한 "흡혈귀"와 "엄마"라는 상충된 설정은 흥미로운 부분으로 보였습니다.사랑했지만?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인용하듯이 '흔히, 연인들은 서로의 살을 부대낌으로 애정을 확인하고 신뢰를 쌓아나가는데 이는 아기가 엄마와의 관계를 쌓아나가는 과정과 똑같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맞이한 사람들에게 최고의 예절은 '비대면'과 '비접촉'입니다. 좀비 영화에서도 깨무는 것을 비롯해 침과 피와 같은 타액으로 감염되는 것을 생각하면, 사랑과 감염도 한 끗 차이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에서 사랑과 감염의 차이는 한 끗 차이로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블러드 레드 스카이>에서의 "흡혈귀"와 "엄마"라는 설정이 맞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이와 같이 일맥상통하게 바라볼 수 있거든요.2. 행동에 앞서 말이 너무 많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려는 관객들에게는 저런 의미보다는 앞서 언급한 납치범들이 역으로 당하는 이야기일겁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블러드 레드 스카이>는 빠르게 이야기에 들어가야 하지만, 관객들이 원하는 속도와 다르게 느리게 진입합니다.
대다수의 오락 영화라면, 납치범들에게 아이을 빠르게 위협하는 단계로 넘어가겠지만 해당 영화는 "왜, 흡혈귀가 되었는지?", "남편은 어떻게 죽었는지? 등의 설명을 해주는데요.
보여주니 보면서도 드는 생각은 '납치범들이 역으로 당하는데, 꼭 필요한가?'라는 물음표가 생기더군요.물론, 이해는 합니다만...
물론, 이런 장면들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는 충분히 압니다.
"괴수"가 출연하는 영화들에는 "어떻게 변하는지?"와 "무엇에 약한지?" 등의 일종의 규칙들을 세우고 이를 지켜야만 합니다.
이는 해당 영화의 이야기를 긴장감 있게 보여주는 장치로 만약에 '귀에 걸면, 귀걸이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로 자꾸만 번복된다면 이야기는 더 이상 궁금하지 않겠죠.
그런 점에서 해당 규칙을 설명하는 목적에서 보는 과거 에피소드는 맞지만, 이를 굳이 시간을 더 내어주고 해야 하는 필요성에는 의문이 생깁니다.3. 제발, 이렇게 애원합니다...
애당초 관객들이 바라는 <블러드 레드 스카이>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요?
대개, 90분 내외의 오락 영화는 다소 전개에 있어 일부 개연성에 문제가 생김에도 정선 없이 몰아붙이며 관객들을 압도하는데요.
야구로 예시를 들면, 투구를 하는데 빠른 퀵모션으로 타석에 서있는 관객들은 자세도 갖추기에 앞서 헛돌기만 하는 것이죠.
하지만 영화는 121분으로 콘셉트에 비해서 넉넉하다 보니 관객들이 예상했던 위력이 나와주지 않는데요.
이에 대한 원인으로 "플래시백"인데, 자연스레 설명이 많아져 정작 관객들이 바라는 것에는 가장 늦게 도착하니 예상했던 장면에 대한 피로감은 더 느껴질 겁니다.하지 말라는 건 다하네.
그리고 무엇보다 피곤함을 느끼는 이유에는 캐릭터들의 행동에도 있습니다.
영화 <스크림>이 공포 영화에서 하지 말라는 행동들을 비꽜던 것처럼 영화 <블러드 레드 스카이>의 캐릭터들은 이런 행동들을 빠짐없이 해냅니다.
특히, 아들내미가 문젠데 엄마랑 어른들 말 안 듣고 뛰쳐나가는 모습처럼 "발암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데요.(물론,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 진행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외에도 주식 중개인의 격리실 공개 등 121분임에도 이런 행동을 해야 하는 정당성을 입증해 주지 못한 영화의 많은 분량이 더더욱 아쉬움으로 남습니다.4. 그렇게 했는데도 못하면...
앞서 말했듯이 영화 <블러드 레드 스카이>가 바라는 목표는 사랑과 감염의 차이가 한 끗 차이임을 말해주려 했을 겁니다.
과연, 영화가 그 목적에 맞게 설명했는지를 관찰해해보면 실패로 보입니다.
결국, "모성"과 "본능"에 망설이는 엄마와 이를 바라보는 아들의 심리 묘사에 그 성과가 달려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마지막 장면은 가차없다고 느껴졌거든요.
이처럼 연출자가 의도한 목표가 실패했다면, 다음 목표로 잡은 오락 영화로서의 목적은 제대로 수행했을까요? - 그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앞부분만 잘 읽으셨다면 다들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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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바다,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스르고 접붙여
6★/10★
87년 동안 물질을 해온 현순직 해녀와 이제 막 해녀 일을 시작한 30대의 채지애 해녀. 〈물꽃의 전설〉은 두 해녀 사이에 놓인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스르고, 접붙인다. 해녀 일에 대한 현순직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녀는 물질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았고, 그곳에서 항상 능력을 인정받았다. 현순직은 아흔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종종 바다로 나가 지난날을 회상한다. 이미 중년이 된 막내아들은 혹시나 어머니가 또 바닷속에 들어갈까 걱정되어 전화로 신신당부하고, 현순직은 속내를 들켰다는 듯 웃는다. 현순직에게 바다는 삶 그 자체다.
채지애 해녀는 사회생활을 해녀 일로 시작하지는 않았다. 채지애의 어머니는 대학을 나오고 직장에 다니던 딸이 해녀 일을 하겠다는 게 영 마뜩잖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해녀 일은 “낭만적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고된 노동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채지애의 어머니는 아기 우윳값이라도 벌겠다는 절박함으로 수십 년간 물질을 해왔다. 제주의 해녀라면 눈 내리는 바다에서 물질한 후 외로이 숨비 소리를 낼 때의 고독함과 친해져야만 한다. 그러나 동시에, 딸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그녀 물질의 목표였던 딸과 같은 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의 지난 삶에 대한 딸의 이해와 공감이라는 형태로 돌아왔음에 대한, 즉 그녀의 노동이 소외되지 않았음에 대한 떳떳함의 발로일 것이다.
해녀가 경력이 쌓이고 능력을 인정받으면 ‘상군 해녀’라 불린다. 현순직은 상군 중의 상군인 ‘대상군 해녀’였다. 대상군 해녀는 구전되어 내려오는 바닷속 지도와 지형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해녀에게만 허락된 이름이다. 현순직은 지금도 그 풍경이 눈에 훤하다는 듯 바다별 특징과 그곳에서 잡을 수 있는 해양 생물을 줄줄이 읊는다. 그리고 자신이 기억하는 가장 황홀한 바닷속 ‘들물여’로 채지애와 함께 향한다.
그러나 현순직의 기억과 지금 제주 바닷속 정경은 일치하지 않는다. 채지애는 현순직이 일러준 곳에 들어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물꽃을 찾아 헤매지만 끝내 실패한다. 바다가 예전 같지 않다는 채지애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내 들물여에 가면 물꽃을 볼 수 있다고 고집스레 자신만만해하던 현순직은 아쉬움에 탄식한다. 들물여뿐만이 아니다. 제주의 해녀들이 자주 물질을 나가는 바다도 공장에서 배출된 폐수로 시야가 뿌예지는 일이 잦다. 제주 바다는 해녀들에게 이전만큼 많은 것을 내줄 수 없다. 그만큼 병들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는 두 여성이 목격하고 기억하는 일터의 모습이 이토록 다르다. 이는 현순직과 채지애의 언어도 마찬가지다. 현순직은 짙은 제주 사투리를 구사한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영화에서 자막과 함께 나온다. 섬이라는 제주의 지역성과 그녀가 일터에서 습득한 언어의 특성상 표준어를 쓰는 일반 대중이 매끄럽게 듣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채지애는 현순직의 말을 자막 없이도 알아듣고, 현순직과 능통하게 소통한다. 그런 그녀조차 현순직의 기억과 경험을 온전히 따라갈 수 없다는 데서, 영화는 아릿함을 자아낸다. 그렇다면 대체 해녀도, 제주도민도 아닌 사람들에게 현순직이 목격한 것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단 말인가!
〈물꽃의 전설〉이 두 해녀를 함께 들물여로 보낸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두 해녀의 관계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들을 들물여로 보낸다. 현순직이 가진 것이 채지애를 경유함으로써만, 즉 ‘번역’을 거쳐야만 전달할 수 있다고 판단해 다큐멘터리의 장르 특성을 고려했을 때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는 장면을 삽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언급했듯, 〈물꽃의 전설〉은, 채지애는 끝내 현순직의 기억 속 풍광에 접속하지 못한다. 제주 바다는 이 모든 실패에 별 관심이 없다는 듯, 혹은 실패의 아픔마저 보듬겠다는 듯 처연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리고 이 아름다움이 영화가 자아내는 아릿함을 더한층 부각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현순직과 채지애 사이의 시간을 곱씹게 한다. 점점 오염되가는 제주 바다에서, 들물여의 뭋꽃은 현순직과 그 운명을 함께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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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개봉 기대작.zip
안녕하세요!
목요일 잘 보내고 계신가요?
어제는 3월 다섯째 주 개봉 예정 영화를 다뤘었죠.
오늘은 아직 개봉일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올해 개봉이 예상되는, 그리고 그중 기대가 되는 작품을 모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٩( ᐛ )و
파리, 13구
출처: 네이버 영화
SYNOPSIS
화려함 속에 가려진 외로운 도시, 파리 13구. 낭만을 잃었다 생각한 그곳에서 불현듯 사랑을 만났다.
CINE PICK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과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감독 '자크 오디아르'의 신작이다.
또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감독 셀린 시아마의 각본 참여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주연을 맡은 노에미 메를랑의 출연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비상선언
출처: 네이버 영화
SYNOPSIS
사상 초유의 재난상황에 직면해 무조건적인 착륙을 선포한 비행기를 두고 벌어지는 리얼리티 항공 재난 영화
CINE PICK
'캐스팅만으로도 천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화려한 배우진이 한자리에 모였다.
제74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 초청작으로 '비상선언'이 선정되면서 해외에서 먼저 공개가 됐는데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외계+인
출처: 네이버 영화
SYNOPSIS
고려 말 소문 속의 신검을 차지하려는 도사들과 외계인이 출몰하는 2021년 현재 사이에
시간의 문이 열리며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
CINE PICK
<전우치> <도둑들> <암살> 등 여러 영화의 흥행을 성공시킨 최동훈 감독의 신작이다.
한국 영화에서 흔하지 않은 '외계인'을 주제로 삼은 영화이다.
배우 김우빈의 영화 복귀작이자, <리틀 포레스트>의 배우 김태리, 류준열이 다시 만나는 작품이라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드림
출처: 네이버 영화
SYNOPSIS
선수생활 최대 위기에 놓인 축구선수 ‘홍대’와 생전 처음 공을 잡아본 특별(?)한
국가대표 선수들의 홈리스 월드컵 도전을 그린 유쾌한 드라마
CINE PICK
탄탄한 팬층을 보유한 드라마 <멜로가 체질>, 1600만 관객 영화 <극한직업>의 감독인 이병헌 감독의 신작이다.
코미디 영화로는 워낙 유명한 감독이기에 이번 <드림>에서 어떠한 재미를 관객에게 선사할지 이목이 집중된다.
오노다, 정글에서 보낸 10 000일
출처: 네이버 영화
CINE PICK
<오노다, 정글에서 보낸 10 000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군인 중 한 명인
오노다에 대한 실화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16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흡입력이 강한 영화라는 평이 많아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바타 2
출처: Rotten Tomatoes
CINE PICK
2009년, 엄청난 흥행을 일으킨 <아바타>. 6번이나 개봉이 연기되며, 뜻하지 않게 팬들의 기다림이 길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신선한 주제를 관객들에게 선사할지 궁금하다.
또 한번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2
출처: Rotten Tomatoes
CINE PICK
개봉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왔던 소니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본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는 말을 깰 수 있는 속편이 되기를 기대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출처: 네이버 영화
SYNOPSIS
내일 모레면 서른이 되는 줄리는 옷을 갈아입듯이 직업과 애인을 바꾼다. 연애의 고충에 대해 쓴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를 얻자 작가에 도전해 볼까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줄리는 점점 초조해지고 임박한 선택의 기로에서 갈등한다.
CINE PICK
배우 르나트 라인제브의 첫 주연작이자,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오슬로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이다.
지금까지 총 84번 노미네이트가 되며 뜨거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현재 로튼 토마토의 신선도는 94%로 매우 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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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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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트 블란쳇의 괴물 같은 지휘에 내내 압도당하다
성공이란 이런 것
성공이란 이런 것이다. 인터뷰 대기 중인 타르.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청중 앞에 섰다. 인터뷰의 취지는 새로운 책을 홍보하는 것이다. 서로 인사를 나눈다. 대화가 시작된다. 첫 번째 주제는 성별에 관한 이야기다. 남/녀 지휘자를 나누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에 관한 질문이다. “아니요. 큰 차이점은 없는 것 같아요. 우주 비행사를 예로 들어봅시다.” 영어 발음을 들려주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를 설명한다. 다른 소재는 타르의 파트너다. 특별한 성 정체성이 타르의 마에스트로 생활에 지장이 갔냐는 질문이다. 딱히 없다. 다른 주제는 지휘자에 역할에 관한 이야기다. ‘요즘 지휘자들이 인간 메트로놈이 된다는 것에 동의하나’는 질문이다. 다음 주제는 객원 지휘자와 메인 지휘자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다. 의견을 설파하는 타르.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베를린의 마에스트로답게 답변에 머뭇거림이 없다.
누가 봐도 타르는 성공한 인물이다. 물론 클래식계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팬데믹의 영향이 있긴 하지만 그녀는 업계 최고의 입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타격까지는 오지 않는다.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리디아. 오늘도 여지없이 일을 하고 있다. 리디아의 수행비서로는 프란체스카가 있다. 일정을 공유하는 프란체스카. 그런데 이유가 무엇인지 프란체스카에게 뭔가 이상이 있는 듯하다. 관객들만 아는 찜찜함은 일단 뒤로 무시한다. 대학교 교수직을 겸임하고 있는 리디아. 어떤 남학생이 수업에 들어왔다. 리디아는 그때까지만 해도 잘 몰랐다. 교수로서 존경도 받고. 성공한 마에스트로로서 명예와 권위를 쓸어 담고 있었다. 이제, 그 높은 위치에서 조금씩 비틀대기 시작한다.
곡선으로 휘기
이 <타르>는 불친절한 영화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명확한 서사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보통 a라는 일이 있으면 b가 그 결과로 따라온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영화 문법 중 하나다. 당연하다. 우리가 아는 세상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화법은 그런 쪽이 아니다. 리디아가 처하는 수많은 상황이 있다. 이 갈등의 배경은 명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실제 이 사람이 이런 행동을 했는가? 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리디아와 다른 사람들이 대화하는 선배 마에스트로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이 연출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할 것 같은 리디아의 마에스트로 활동과도 관련이 있다. 이 장면들이 어떤 식으로 연출됐는가? 는 후반부 리디아가 어떤 인물들과 회의를 진행하는 신에서도 알 수 있다(물론 이 장면 아니어도 이런 연출은 자주 보인다). 영화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있어 핵심이 될 수 있는 것들을 과감하게 삭제해서 더 거리감이 있는 시각으로 주인공을 바라보게끔 도와준다.
이렇게 전형성을 탈피한 연출 방식은 영화의 가장 처음, 두 번째 시퀀스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살짝 ‘이거 이런 영화야’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볼 때 극장에 살짝 늦게 들어갔다. 영화관에 들어가니 상영관에 가서 지켜야 할 것들에 대해 알려주는 영상이 나왔다. 그리고 직후에 영화 첫 장면이 나왔다. 첫 장면이 뭐였을까? 바로 엔딩 크레디트이다. 엔딩 크레디트는 보통 ‘엔딩’에서 나오니까 이 장면은 그렇게 부르기에는 좀 모순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프닝을 시작하는 영화는 적지 않다. 하지만 이 장면이 굉장히 길다는 점, 바로 직후의 인터뷰 신이 사실상 영화의 핵심으로 작동하는 세 가지 소재였다는 점, 극후반부에 대한 묘한 수미상관이 그에 대한 근거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순서를 뒤엎고 시작한 셈이다. 또 앞 문단에도 썼던, 리디아와의 인터뷰는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동한다. 보통 이런 연출 방식을 가졌던 영화는 차고 넘쳤다. 이번 달 개봉작에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리디아의 행보를 전반부에서 어떻게 수거했는지를 생각하고 보니 <타르 TAR>의 성과가 눈에 들어왔다.
운동과 방향
영화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 중 하나는 방향이다. 영화는 많은 방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에서 타르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신이 몇 번 나온다. 그런데 그 와중에 쿵쿵쿵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귀찮은 것이 스크린을 타고 관객에게 까지 전달된다. 이 소음 연출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흥미롭다. 어쩔 때는 등 뒤 스피커에서 들린다. 또 어떤 때는 오른쪽 뒤에서 들린다. 이 소리의 방향은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운동 에너지와 관련이 있다. 영화는 한 장소에 또각또각 걸어가는 인물들의 동선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 리디아 타르라는 인물이 영화에서 어떤 일에 처하는가? 와도 관련이 있다. 리디아가 이런 일들을 맞이하는 이유, 자아가 약해서는 무조건 아니다. 오히려 리디아는 자기만의 세계와 예술세계를 확실하게 정립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리디아가 여러 일들에 직면하는 이유는 이렇게 뚜렷한 자기 주관 때문인 걸로 묘사된다. 영화가 이 예술세계로 인해 무너지는 내면을 묘사하지 않았다는 점은 영화에서 가장 큰 신선 함이자 강점으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강박과 불안이라고 하는 것의 속성을 탐구한 것이다. 글쓴이가 이 글을 쓰는 지금 잘 생각해 보면, 아예 고민 없이 사는 사람을 나이가 들수록 못 봤던 것 같다. 다들 마음속에 불안 하나쯤은 품고 산다. 이렇게 일상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감은 늘 일상 속에 있다. 그리고 어디서든 갑자기 튀어나온다. 이는 영화에서 제시되는 음악 중 하나인 존 케이지의 <4분 33초>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다. 인간의 결함을 어디에서 찾는가?라는 영화의 발상이 <4분 33초>의 접근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매번 생각 외의 어떤 것으로 예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어떤 것은 빼고 줄이면서 지독한 예술과 삶의 불완전성을 그린다. 처음 느꼈다. 없어지게 함으로써 이 모든 인생사의 일들이 자연재해처럼 느껴지게 하는 표현방식도 있다는 것을.
그냥 어려운 영화가 아니야
이렇게 어려운 영화지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연출하지 않았다. 이런 연출 방식과 신선한 인물서사를 그리는 데 있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다. 이번 아카데미 수상이 유력하다고 알고 있다. 이 값을 한다. 영화 전체적으로 러닝타임에서 휘몰아치는 광기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잔잔한 것이 있다. 이렇게 모순적인 설정을 보여주기 위해 이 리디아라는 인물은 내면에서 단단한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이 단단한 내면이 점점 약점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는 영화 후반부에 드러나는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인물은 두 개의 큰 에피소드를 마주하게 된다. 하나의 에피소드는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혹시?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런 인물의 내면을 그렇게 놀랍지 않다. 이 글을 쓰는 글쓴이나 읽는 여러분도 다 이런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이 봐 왔다. 이건 사실 말이 쉽지 실제로 캐릭터를 구현하고 표현하기는 굉장히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입체적인 캐릭터뿐만 아니라 영화에서 타르가 담당하는 대사가 굉장히 많다. 우선 타르가 등장하는 인터뷰 신은 긴 롱테이크 몇 개로 이루어져 있다. 그 말 많은 인터뷰를 롱테이크로 했다? 안 그래도 많아 보일 것 같은 장면을 어떻게 외웠는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이 롱테이크의 장면만 덩그러니 있는 것은 또 아니다. 리디아가 처한 입장이 영화에서 다양하게 제시됐기 때문에 표현해야 하는 감정의 폭이 넓어야 한다. 분노, 좌절, 우울함, 즐거움, 행복 같은 감정 이면에 돌아버릴 것 같은 인물의 내면을 품고 있어야 한다.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이 끌고 가는 영화 서사를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이렇게 구구절절 영화의 특성을 썼다. 이 영화에 설명하고 싶은 것들이 굉장히 많다. 신선했기 때문이다. 이러나저러나 이 영화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불규칙적인 사건 제시로, 위치를 뒤엎어 만든 인물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직선적으로는 달리지만 좀 특별한 방식으로 서사를 전복하고 있다. 영화는 전형적인 것을 아예 허락하지 않는다. 어떤 장면에서 집에 쫓아 들어가는 부분이 있다. 여기서 집에 쫓아간다고 하면 보통 누군가가 사는 공간을 생각하기 쉽다. 여기서 뒤집어진다. 이 어떻게? 의 방식이 영화에서 사건을 보여주는 방식 중 하나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인물을 낙하시켜 떨어트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모호하게 표현해서 인물에게 더 집중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집중시키거나 그렇지 못하게 영화를 촬영을 설정한 부분도 흥미롭다. 이는 오케스트라에 대한 비유나 리다아가 안고 있는 묘한 어설픔, 약간의 섹슈얼한 몇 인물들의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다.
또 좀 특이한 제목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영화 제목은 좀 이상하다. ‘타르’와 ‘TAR’가 두 번 들어간 것이다. 타르 타르? 뭔가 과거의 영화 제목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TAR가 총 두 번 반복된다. 이 부분은 흥미롭다. 영화 내적으로 리디아가 작곡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와도 관련이 있다. 예술과 인생의 상관관계를, 또 둘 중 하나를 취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를 묘사한 인물 설정이 탁월하다고 느껴진다.
이 외에 아쉬웠던 점은 동양인에 대한 묘사다. 뭐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상대적인 걸 보여주고 싶어 이런 연출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런데 얼핏 보면 이 나라 사는 분들이 살짝 기분 나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또한 영화의 엔딩 역시 이런 맥락에서 좀 ‘아니다’라고 느낄 분들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글쓴이는 이 장면을 지켜보는 입장이 어떤 사람들과 오버랩되는지를 생각해 보니 영화의 모호한 부분이 좀 깔끔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호불호가 갈릴 엔딩이라은 것은 부정하기 어려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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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빈의 부모에 대하여
이 글은 영화 [매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배우자를 먼저 잃은 자에 대한 단어는 있어도. 자식을 잃은 부모를 뜻하는 단어는 없다고 했다.
자식을 먼저 잃은 슬픔은 마치 창자가 끊어진 슬픔과 같아서 단장지애. 라고 부른다고 하지만. 이마저도 간접적으로나마 마음을 표현할 뿐 그들의 마음을 정형화할 단어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영화 [매스]는 겉으로 봤을 때는 총기 사고 사건으로 아들을 잃은 피해자의 부모와. 사건의 가해자 부모가 만난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결국 모두 피해자들이 만나 서로를 위로하는 과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절대 돌아오지 않을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는 순간도. 한 사건을 통해 용서에 다다르는 이야기도 담담하게 그리고 있는 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오히려 끊어진 창자가 다시 이어지는 것이 쉽지 않을까. 하고 느낄 정도다.
피할 수 없는 문제 같았던 방, 그리고 제목의 이유;갑갑하고도 현실적이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의 주 무대( 혹은 거의 모든 무대)는 교회에 있는 한 방이다.
초반 부분을 꽤 집요하게 그 방에서 일어날 대화와 방의 "적합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 봐도 이 방이 가지는 의미가 꽤 클 것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방은 그 어떤 상담 장소보다도 좁고. 답답해 보인다. 물리적인 환기를 위한 창문도. 심리적인 환기를 위한 피아노도 놓여있지만. 실제로는 눈물을 닦을 티슈마저도 사치(혹은 사족)처럼 보이는 공간이다. 덕분에 불안함과 함께 신중함이 공존한다.
이 공간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담은 영화의 제목이 왜 매스(Mass)여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이 단어는 어떤 것의 물리학적인 무게(1)를 뜻하긴 하지만, 미사(2)도 상징한다. 또한 스펠링은 다르지만 엉망진창(Mess)을 의미하는 단어(3)와도 발음이 비슷하다는 점은 재미있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건. 자신의 아들이 일으킨 실질적인 사건으로 인해 생긴 마음의 무게(1)는 살아남은 자들의 남은 삶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3). 피할 수 없는 책임과 동시에 죄의 승화를 이뤄야 하는 곳은 뜬구름을 잡는 천국이나 화려한 장소가 아니어야 함은 당연했고, 그곳에서 이뤄지는 네 사람의 대화(2)야말로 스스로에 대한 구원도 함께 이룰 수 있는 공간이어야 했을 것이다.
영화의 제목과 장소, 그리고 실질적인 주제까지도 맞아떨어지게 하기 위해 고심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답답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장소가 얼마나 제대로 된 선택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반지의 유무로 알 수 있는 부부의 뒷날들;상실을 견뎌내는 힘.
사진 출처:다음 영화
가해자와 피해자 측으로 분류되는 두 부부는 외적인 모습에서부터 많은 것을 달리한다. 아니, 반대의 성향을 보인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옷차림도, 금전적인 여유도. 혹은 오고 가는 단어나 말투도.
그러나 그 들을 가장 다르게 만드는 점은, 가해자 측의 부부는 반지를 끼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린다와 리처드는 묘하게 시선이 제대로 맞부딪치지 못하고. 상대방의 반응을 기대하며 던진 문장들이 이어지지 않고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쩌면 방어막을 한껏 두른 말만을 내뱉는 리처드에 대한 원망의 시선조차도 리처드는 받아주지 않는다.
이는 게일과 제이가 그 "사고"이후의 삶을 서로에게 의지해 살아왔지만. 린다와 리처드는 어쩌면 상처를 잊기 위해 현실적인 문제에 더 매달렸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하게 한다.
그 어떤 방법을 썼다 해도 상처를 잊을 수 있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을 수 있기에 무엇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단지 그들 모두 잊기 위해. 혹은 극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음에는 이견이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과로는 용서를 얻을 수 없다;용서를 구하는 방법.
사진 출처:다음 영화
최근 많은 공인들의 사건 사고가 일어났다.
그들이 일으킨 죄는 음주 운전일 때도 있고. 때론 학교폭력일 때도 있다. 뭐 더 심하게는 성범죄이기도 했고. 그 죄가 무엇이건 간에 우리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은 그들이 사과하는 방식임과 동시에 용서를 구하는 태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가끔 보면 내가 사과했으니 된 거 아니냐.라는 말을 돌리고 돌려 성명문, 혹은 입장문이라는 종이 쪼가리 하나로 "퉁치려는"성향을 보일 때가 있는데. 사과는 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속 편한 그들에 비하면 이 영화는 참 답답해 보인다.
가해자의 부모는 우리도 어쩌면 피해자라며 용서를 구걸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사과를 윽박지르며 협박처럼 쓰지도 않는다. 그저 피해자의 부모가 달랠 수 없는 마음을 토해내고 용서로 이르는 길에 묵묵히 함께 따라간다.
비록 이 사건의 당사자들은 죽음으로 인해 시시비비를 직접 가릴 수는 없고. 린다와 리처드 역시 피해자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타인과 함께 자신을 용서하는 여정이 얼마나 길고 힘든지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또한 용서는 가해자 측에서 원할 때 꺼내주는 "맡겨놓은"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이 영화는 잊지 않았다.
이런 균형을 잃지 않은 덕에 영화는 양쪽의 입장 모두를 이해하게 한다.
마치면서
우리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부모의 잘못된 훈육과 어쩌고가 아이를 어떻게 망치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쩌면 가해자와 부모 모두 똑같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것에서는 또 다른 영화인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가 겹치기도 하지만. 영화는 교묘하게 언급한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점들을 피해 간다. 그와 동시에 다루지 않은 점들을 잘 다루고 있다.
영화의 무대가 되는 방은 너무도 간결하다. 덕분에 배우들의 연기에 푹 빠져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손을 떨기도 하고 눈물을 훔치기도 하며 영화를 보게 한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느꼈던 아쉬움이 많이 풀리는 순간.
그 어떤 부모도 자신의 부모가 잘못되기를 바란 적이 없으며.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의 책임은 과연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알 수 있어서 많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영화였다.
[이 글의 TMI]
1. 영화 보는 내내 눈물이 좔좔
2.네 분의 연기 진짜 진땀이 줄줄 날 정도였음.
3.아니 복숭아 언제 나오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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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꽃은 크리스마스 눈처럼 자유의 씨앗을 흩뿌렸다, <전장의 크리스마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 기반하여 작성된 글입니다.
출처 : CGV
우리는 서로 적이었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이었다!제2차 세계대전, 인도네시아 자바섬.무사도 정신을 맹신하는 일본군 대위 요노이는포로수용소에서 영국군 소령 잭 셀리어스와 마주하게 된다.사형 직전의 잭을 자신의 수용소로 데려온 요노이는알 수 없는 매력에 끌리면서도 그의 자유분방한 태도에 끊임없이 갈등한다.한편, 유일하게 일본어를 구사하는 영국군 중령 존 로렌스는영국군과 일본군, 양측 사이에서 중재를 시도하지만,수용소의 분위기는 점점 격화된다.전쟁의 포로이자 인간으로서의 모습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들.과연 전쟁터 한가운데에서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일어날 수 있을까?/
우선, 이 영화를 있게 한 제목과 대표곡에 드러나 있는 '크리스마스'라는 키워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작품의 중심 메타포가 아니다. 물론 크리스마스 자체의 상징성에 기대어 주요한 메시지가 더욱 강조되는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다. 나는 이 영화를 알기 전부터 대표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수도 없이 반복해 재생한 기억이 있었고, 어린 시절임에도 곡의 멜로디를 들으면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오고는 했다. 그리움, 슬픔? 그렇다면 무엇이 그립고 왜 슬픈 것일까? 지금에 와서는 쉽게 떠오르는 질문도 만들어내지 못할 정도로 미성숙했던 그때의 나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이 곡이 지닌 수많은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출처 : CGV
국내 첫 정식 개봉인만큼, 리뉴얼된 포스터는 심하게 아름다웠다. 색상의 혼합을 활용한 것도, 약간은 빛바랜듯한 배경의 질감도, 철조망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특정된 두 장면이 가지는 의미도. 작품을 직접 감상하기 전부터 직관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려 취향이 아닌 '전쟁'이라는 소재에 매력을 느낄 정도였는데, 감상한 후에는 그 마음이 더 커져 서울에서 파주까지 보위의 개인 포스터를 얻으러 가기도 했다. '전쟁', 나는 전쟁이라는 특수성 짙은 배경으로 소재를 갖는 영화는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인간성이 보장되지 않는 극단적인 상황이기에 잔인한 장면이 동반되고 근본적인 불쾌감을 일으키는 부분을 굳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포스터 디자인에 홀려 보러 갔을까? 아니다. 83년도에 제작된 영화가 지금까지 회자되고 정식 개봉을 이루어낼 만큼 부정할 수 없는 어떠한 이유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감상하고 배우는 입장에서, 긴 시간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그 이유를 직접 알아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때마침, 아트나인에서 GV를 진행하는 회차가 있어 전문가들의 설명을 통해 더욱 확실하게 납득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리고, 영화는 기대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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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장센
필름 특유의 빛바랜, 알록달록한 색감이 전반적으로 깔려 있어 눈이 즐거웠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몇 있는데,
사형 선고를 받기 전 셀리어스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외출 준비를 하고, 누군가와 단조로운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연기를 하는 장면이다. 비인도적인 대우를 받는 숱한 상황들 가운데에서 굳건하게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기억하고 지키는 듯해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의미심장한 노래도, 능청스러운 연기도 매력적이지만 특히 위 사진처럼 담배를 피우는 척하고, 담뱃재를 털고, 바닥에 던져 발로 짓이기는 행동이 바닥에 묻은 흰색 자국(마치 담뱃재처럼 생긴)으로서 한 씬을 완성시키는 흐름이 매우 취향이었다. 정갈한 발걸음으로 프레임 아웃하며 액팅이 마무리되는 일련의 행위들은 예술 그 자체였다.
출처 : CGV
그 직후, 사형 집행을 받는 보위가 결박되고 일본군이 안대를 씌우는 장면이 나온다. 셀리어스는 당당한 눈빛으로 이런 것 씌우지 않아도 된다며 저항한다. 손이 묶여 있는 바람에 고갯짓만으로 그들의 행동을 저지해야 하는데, 그 몸짓과 눈빛이 겹쳐져 보는 이로 하여금 오묘한 감정을 갖게 한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잭 셀리어스'라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그 자긍심이 매력적이다. 셀리어스의 뒷모습이 보이며 사격 개시의 정렬을 맞추는 일본군들의 무빙도 굉장히 정갈하다. 기계의 움직임처럼 군더더기 없는 액팅과 여백을 적당히 활용한 인물의 배치가 심각하게 아름다워 실제로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2. 캐릭터
드용&가네모토(맨처음의 두 군인) / 로렌스&하라 / 셀리어스&요노이
극 초반 씬들에서 세 가지 주요 관계성이 모두 제시된다. 두 군인이 지닌 의미는 초반에, 하라와 로렌스는 중반에 드러나며, 셀리어스와 요노이는 후반부에 드러나면서 극의 진행이 마무리되는데, 관계성이 지닌 의의를 제외하고서도 각 캐릭터들의 특성이 굉장히 촘촘하게 짜여 있어 2시간 가량의 스토리가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각자의 서사가 완벽하게 묘사된다.
출처 : 미디어캐슬
우선, 데이비드 보위로서 표현된 '잭 셀리어스'가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너무 미학적이다. 위 사진은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다. 군사재판이 열리면서 공간과 인물의 정보를 동시에 제공해야 하는 복잡한 씬이기 때문에 첫 장면을 롱샷으로 잡았으리라 판단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각 인물에 대해 집중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정보값을 판단하고 앞으로 흘러갈 씬을 파악하게 되기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중심에 위치하여 뒷모습만 보이고 있는 보위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눈을 뗄 수가 없다.
출처 : CGV
GV에서 듣기로는 셀리어스 역에 유력했던 배우가 한 명 더 있었는데, 너무 여지 없이 잘생긴 외모라서 캐스팅이 불발되었다고 한다. 이후 감독은 보위와의 캐스팅 여부를 결정하고자 하는 미팅 직전, 그의 연극을 먼저 관람하며 그가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 속으로 캐스팅을 확정 지었다고 한다. 영화 이전부터 보위가 쌓아 온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그의 외모가 지닌 오묘한 매력을 증폭시켰다고 생각한다.
'요노이'의 첫 등장은 군사재판이 아닌 드용과 가네모토가 일본군에게 잡혀 존엄성을 짓밟히는 장면에서 나온다. 문제에 대해 제대로된 전후상황도 살피지 않고 하라의 독단적인 판단으로 가네모토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요노이는 마치 '해결사'의 위치처럼 여겨진다. "폭력적인 하라와 달리 요노이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자연스럽게 그렇다,는 답변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요노이의 긍정적인 이미지는 군사재판에서 더욱 굳어진다. 말 안 통하는 극우주의자들과 달리, ‘군사재판’이라는 성격이 뚜렷한 장소에서 차분하고 논리적인 질의응답을 통해 셀리어스를 옹호해주는 씬으로 캐릭터 설명을 대신한다. 그러나 점점 드러나는 그의 실체는 일본의 역겹고 비상식적인 습성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보수적인 아집의 상징인물이었다는 사실에 빗대어, 요노이는 셀리어스에게 특별한 감정을 지니고 있었음을 감독은 꽤나 명확하게 드러내고 강조했다고 본다.
출처 : CGV
셀리어스가 드용의 죽음을 기리는 꽃과 일본군에 저항하는 만두를 배부하고 독방에 수감되면서, 요노이는 매일같이 순찰이라는 명분으로 그를 찾아갔다. 값이 꽤 나갈 것 같은 카펫을 들고. 매일밤 둘은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갑작스레 찾아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로렌스와 함께 탈출한 셀리어스는 요노이를 마주하고 왜 물리적인 충돌을 감행하지 않았을까? 불의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언제나 당당함으로 무장한 그가. "나만 이기면 자유인데 왜? 왜 싸우지 않지?" 절망하는 듯한 요노이의 대사에 이어 즐거운듯 미소를 보이고 칼을 내려놓는 셀리어스의 감정이 과연 어떤 형태였을지는 미지수일 것이다.
출처 : CGV
윈체스터 학교 출신의 '로렌스'는 포로로 잡힌 영국군 중 유일하게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 때문에 일본군 주요 인사인 요노이와 하라에게 자주 대화 상대로 불려가고는 한다. 중요한 결정에 있어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영국군의 리더는 로렌스에게 어느 학교 출신인지 물어보고, '윈체스터'라는 대답을 듣고는 비웃음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당시의 '윈체스터'는 귀족으로서 세상 물정 모르고 어딜 가나 아부하는 일종의 기회주의자와 같은 특성을 시사했다고 한다. 따라서 로렌스는 스스로의 신념을 중시하고 굳건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덕목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전장에서 정반대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인물로 설정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극중 결정적인 상황에서 옳은 목소리를 내는 건 로렌스 뿐이다. 일본의 악습을 향해 '아닌 건 아니다' 명확하게 반대의사를 펼치는 것도, 셀리어스의 독단적인 행동(그러나 옳은)에 대해 옹호하는 것도, 부당한 대우의 개선을 바라고 행동하는 것도 전부 로렌스이다.
왜 제목도, 극의 플롯도 로렌스를 대상으로 했을까? 보통은 주연 캐릭터와 연관된 장면으로 엔딩 시퀀스를 구성하기 마련인데 그저 조력자인, 혹은 그들만의 개별적인 서사가 뚜렷하게 존재하는 캐릭터로 시작과 끝을 맺었는데도 의미 전달이 확실하고 주연 캐릭터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점이 매우 감탄스럽다.
3. 상징
'상징'은 영화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에서도 가장 선호하는 파트이다. 특정 사물과 상황으로 비유하여 극의 깊이감과 레이어를 더하는 방식은 나에게 보다 강력한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집중할 상징은 당연하게도 '크리스마스'이다. 산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나아가 현대에서는 서로의 마음이 담긴 선물을 주고 받는, 누구나 행복감을 느꼈으면 하고 또 그만큼 상대에게 무언가를 베풀게 되는 그러한 날이다. 그렇다면 '전쟁 속 크리스마스'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출처 : CGV
권력을 가장 폭력적으로 휘두르는 하라는 억울하게 독방에 갇힌 셀리어스와 로렌스를 본인의 임의로 풀어준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불러 술에 취해 살짝 들뜬 말투로 'Father Christmas(파더 크리스마스)'를 언급한다. 말그대로 '산타'이다. 박애주의와 인류애의 상징, 산타가 되고자 했던 하라. 전쟁 속에 존재하는 크리스마스는 어떤 형태인가? 이 질문은 무조건적인 호의와 애정을 담고 있는 크리스마스는 그 정반대의 대척점에 서 있는 반인륜적인 전쟁에서는 누명을 쓴 누군가를 도와주는 정도,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지만 그럼에도 상황적 제약으로 인해 쉽게 실천할 수 없었던 정의로운 '선행'을 베푼 하라의 모습으로 대답을 대신할 수 있을 거 같다. 인간성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정상성으로 일컬어지는 행위를 감히 '실현'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전쟁 속 크리스마스가 발현되는 한계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출처 : CGV
“셀리어스가 요노이에게 씨를 뿌렸고, 우리는 그 곡식을 거두는 거 같다”
위 문장은 종전 후 전범국의 주요 인사들이 사형 당하고, 그중 하나인 하라 또한 사형을 목전에 앞둔 어느날 밤 로렌스가 면회온 씬에서 나오는 대사이다. 셀리어스가 요노이에게 자유의 씨앗을 심은 것은 각자의 속에 어떤 것이 뿌리내린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꼴을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을 것이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일본군을 토대로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일본 사람들은 적에게 잡히면 절대 내 이름을 얘기하지 않아' '우리 일본 사람들은 절대 패배하지 않아' '이미 일본을 위해 영혼을 바쳤고 죽음을 각오한 목숨이야' '우리 일본 사람들은...' 전체성에 잡아먹혀 거짓된 자긍심을 고수하고 할복자살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하라와 요노이, 그리고 이를 따르는 수많은 일본군들. 이러한 메시지는 비단 과거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지금의 우리는 체제에 순응하려고 태어났는가? 정녕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파고들고 사유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4. 노래, 사운드
현대에 와서 리마스터된 ‘Merry Christmas Mr.Lawrence’는 부드러운 음율이 돋보이는 반면,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처음 세상에 나온 ‘Merry Christmas Mr.Lawrence’는 투박한 음질이 오히려 더 감정을 증폭시킨다. 특히 오리지널 버전만이 지닌 강하게 내려찍는 느낌이 작품의 오프닝 시퀀스와 조합되며 더욱 그 느낌이 좋았다. 이와 견줄 정도로 귀를 사로잡았던 OST가 또 있는데, 바로 'Sowing the Seed'이다. 일반적인 극영화에 사용될 만한 느낌이 아닌, 오히려 애니메이션처럼 극적인 장면들에 쓰일 법한 구성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보편적인 음악이 아니었기에 전혀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크리스마스'의 고유한 이미지를 몽환적으로 잘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영화 자체도 잘 만들어졌지만 음악을 통해 완벽한 결과물이 되었다고 느꼈다.
출처 : CGV
OST 외에도 음향 자체에 집중할 만한 장면들이 꽤 있었는데, 그중 스스로 죽음을 택한 일본군의 장례를 빌어주는 장면을 언급하고 싶다. 일본군의 반복적인 구타로 인해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로렌스가 일본식 정좌를 애써 해내려는 모습, 비논리와 비상식을 자백하는 거나 다름 없는 요노이와의 대화, 격앙되는 감정 속 장례지도를 끊임없이 진행하는 하라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배경으로 깔리고, 그 모든 요소가 조화롭지 않아서 오히려 매력적이었다.
5. 일본
사실, 나는 작품을 감상하기 전에 감독이 누구인지, 전작은 무엇인지, 제작 비화가 따로 있는지 등 관련 정보를 전혀 찾아보지 않고 극장에 들어선다. <전장의 크리스마스> 또한 감독이 일본인인줄 모르고 봤을 정도이니 가늠이 되실 거라 생각한다. 워낙 유명한 데이비드 보위와 사카모토 류이치가 만난 작품이니 그저 동양과 서양의 합작이겠거니 싶었는데, 로케이션과 배우, 제작들이 여러 인종으로 섞여 있을 뿐 감독 자체는 일본인이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일방적인 침략을 일으키고, 지금에 와서도 충격적으로 느껴지는 만행들을 자행했으며, 현대까지도 그 잘못된 방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마냥 평범한 관점으로 감독과 작품을 바라볼 수 없었다.
극이 진행되는 내내 눈에 불을 켜고 옳지 않은 대사나 장면이 나오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웠음에도 잘못되었다고 느껴지는 부분들이 거의 없었다. 후반부의 로렌스 대사 중 하나가 일본인을 옹호하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잘못된 것을 옳다고 말하는 식의 비약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감독이 회피하지 않고 일본의 고질적인 악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씬들이 여럿 있었다. 극 자체가 조선인 가네모토와 네덜란드인 드용의 떳떳하게 말할 수 없는 애정으로 구성되는 시퀀스로 시작하는 만큼, '동성애' 즉 기본적인 인권이 짓밟히고 일본인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양상을 스스럼 없이 보여주며 강조하고 싶었던 의도로 보인다.
그 시대인 걸 감안하고 요즘 시대를 기준으로 생각해봐도 여러 의미에서 앞서 나간 작품인 건 맞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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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피로 얻은 산 자들의 자유를 빼앗길 뻔한 날, 12월 3일, 이 작품을 감상하게 되었다. 인간성이 말살되는 공간인 전쟁에서, 크리스마스의 눈처럼 자유와 평등을 흩뿌리고자 했던 영화. 감독 오시마 나기사는 전쟁의 상황적 배경에서 어떤 포인트에 집중하고 싶었는지 확실하게 드러냈고, 그 제작자의 의도는 동성애를 첫 대목에 위치함으로써 사람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와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의 잔혹함을 극대화한다.
고전영화의 특징일까?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기교가 없고 모든 장면과 시퀀스가 매우 깔끔하고 정확하다. 담고자 하는 의미가 그대로 보이며, 컷과 컷의 연결점 또한 의도가 명확하다. 그러나 보위의 이미지와 류이치의 음악의 조합이 요즘 영화들의 화려한 스타일을 넘어서서 기교를 부리는듯 착각을 일게 한다.
다만, 모든 요소가 수려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신의 창작 방향성을 잡아나가려고 하는, 말 그대로 발아하기 직전에 모여 만들어진 작품인만큼 작품이 담아내고자 하는 메시지에, 투박하지만 보다 순수한 열정이 깃들어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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