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롬2021-04-11 16:07:42
무언가에 미쳐있다는 건
<위플래쉬> ⭐⭐⭐⭐⭐
오랜만에 메가박스에서 <위플래쉬>를 재개봉한다는 소식에 얼른 영화를 봤다. 돌비 시네마 영화관에서 봤는데 일반 영화관에서와 집 안에서 봤던 느낌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봤다. 4~5번 본 영화라도 정신을 차렸을 때 <카라반>과 <위플래쉬> 드럼 비트에 나도 모르게 고개와 발을 들썩거리는 모습을 알아차린 해프닝.. 언제 봐도 몰입감 하나는 인정해줘야 한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절실함
<위플래쉬>를 보면 앤드류(마일즈 텔러)가 얼마나 드럼을 치고 싶은지 느껴진다. 그 원인은 바로 플레쳐(J.K 시몬스) 교수와 앤드류 아버지(폴 레이저)에게 있다. 앤드류 아버지는 앤드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척 행동한다. 말로는 사랑한다고 표현하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영화를 강제로 보게 하고, 팝콘에 들어간 초콜릿을 싫어하는 앤드류를 이상하게 여기는 모습, 대학교 1군 밴드 메인 드러머를 얻은 앤드류에게 빗발치는 잔소리 폭격 등을 봤을 때 앤드류 아버지는 자신이 원하는 아들의 모습으로 성장하길 바랬을 것이고 어렸을 적부터 앤드류를 어머니의 사랑까지 더하며 앤드류를 챙겨주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메마른 사랑으로 인해 앤드류 역시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런 앤드류를 구원해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플레쳐 교수이다.
플레쳐 교수는 앤드류가 하고 싶어 하는 드럼을 격려하고 다독이는 말로 앤드류에게 동기부여를 해준다. 그동안 친구도 없고 특별히 누구한테 칭찬받지 못한 그에게는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로 칭찬이 적용한다. 하지만. 이 칭찬은 플레쳐 교수 마음에 들었을 때만 그렇다. 템포가 맞지 않는 앤드류에게 뺨을 때리며 몰아붙이는 장면과 힘겹게 얻은 1군 드러머 자격을 새로 들어온 드러머에게 바로 빼앗겨 버리는 등 플레쳐 교수의 잔인하고 가혹한 교육 방식은 앤드류를 더 독하고 드럼에 대해 더 절실하게 만들어준다. 한계를 뛰어넘어 훌륭한 음악가로 만들고 싶은 플레쳐 교수의 마음은 그저 자신이 다루는 무언가에 절실히 미친다면 가능한 일이다. 교통사고를 당해도 드럼 연주를 하기 위해 뛰어가는 앤드류는 이미 플레쳐 교수의 당근과 채찍으로 독을 품은 한 마리의 야생마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야생마는 마지막 <카라반>과 <위플래쉬> 들판 위에 모든 것을 쏟아붓으며 달린다.
촬영
드럼 박자에 맞게 역동적으로 변하는 카메라의 이동은 영화를 즐기는데 일조한다. 밴드들의 모습을 악기 연주에 맞춰 샷을 다르게 취해 공연을 체험하게 만든다. 심벌즈의 익스트림 클로즈업 샷이나 트럼펫의 클로즈업 샷 등 다양한 악기의 샷은 연주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후반 앤드류와 플레쳐 교수의 연주와 지휘가 티키 타카하는 촬영 장면은 역동적이라는 표현을 제대로 설명해 줄 만큼 백미 장면이다.
<위플래쉬>는 인물의 성격 또한 촬영에 담아냈다. 플레쳐 교수가 등장하는 장면은 대부분 로우 앵글로 나온다. 이것은 단순히 앤드류가 드럼 연주로 의자에 앉았기 때문에 그를 쳐다봤을 때 나타난 시선일 수 있지만, 플레쳐라는 사람의 권위적이고 무서운 인물이라는 거 설명할 수 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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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린 자유롭구나 오늘 같은 날이 와도,<키리에의 노래>
* 본 리뷰에는 영화의 자세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키리에의 노래 KYRIE, 2023
일본 / 드라마 / 119분
감독: 이와이 슌지
우리는 자유롭구나 오늘 같은 날이 와도, <키리에의 노래>
여기, 이름을 버린 두 소녀가 있다. 그들은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으나 실패했다. 이미 벌어진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로 살기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따라서 두 사람은 이름을 잊기로 했다. 이름은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 부여되는 명칭으로, 우린 이름을 갖게 된 순간부터 대체 불가한 단 한 명으로 살다 죽는다. 이름, 고작 한 단어지만 삶을 지칭하는 동시에 지탱한다는 점에서 어마어마한 힘이 깃들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름값'은 그 이름을 가진 자의 '인생값'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두 소녀가 버린 건 이름이 아니라 자기 삶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살아온 시간과 그만큼 쌓인 기억, 그리고 앞으로 있을 나 자신이다. 그렇게 대학교에 다니고 싶었던 마오리는 형형색색 가발과 선글라스 없인 살 수 없는 잇코가 됐고, 발레를 배우고 노래를 부르던 어린 루카는 노래가 아니면 말을 할 수 없는 싱어송라이터 키리에가 됐다. 마오리와 루카, 잇코와 키리에. <키리에의 노래>는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발버둥 치지만, 끝내 본래의 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래를 맞이하는 이들을 담아낸다. 그 과정은 자연의 순리처럼 필연적이라, 익숙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출처: 영화<키리에의 노래> 스틸컷(다음)
어느 날, 거리를 걷던 잇코는 노상에서 버스킹 중인 루카를 한눈에 알아본다. 루카는 가발과 선글라스를 벗은 잇코를 보고 나서야 그녀가 마오리임을 알아차린다. 이미 과거 한 시절을 함께 보냈던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에게 자신을 다시 소개한다. 대학생을 꿈꾸던 마오리가 왜 자신을 감추고 살게 됐는지, 루카가 어쩌다 노래할 때만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 그들이 싱어송라이터 키리에와 그녀의 매니저 잇코로 만났다는 게 더 중요하다. 두 사람은 삶의 기준을 가수와 매니저로 잡고 함께 나아가려 한다. 마치 당연히 그렇게 됐어야만 했던 것처럼, 운명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바람과 달리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 주기적으로 과거 조각들을 끼워 넣는다.
시련과 고통의 집합체인 조각의 역할은 단순하다. 가수와 매니저로,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려는 두 사람의 노력을 무의미하게 만들 의도는 없다. 단지,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거라 믿는 소녀들의 단편적인 모습을 다각적으로 보이도록 노출할 뿐이다. 목적은 보여주는 것에서 끝난다.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겼으나, 이미 영화는 결정했다. 나아가 그 결정은, 이야기 내내 진득하게 깔린 키리에의 노래처럼 끈질기게 목소리를 내며 자리한다. (참고로, 그녀의 노래는 영화가 끝나도 끝나지 않는다)
출처: 영화<키리에의 노래> 스틸컷(다음)
싱어송라이터 키리에의 이름은, 과거 루카의 언니 이름에서 왔다. 루카의 언니, 키리에에겐 약혼자(나츠히코)가 있었다. 의대 진학을 꿈꾸던 나츠히코는 고심 끝에 임신한 키리에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지만, 쓰나미로 인해 약혼자를 잃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키리에의 동생이 살아있단 소식에 루카만큼은 꼭 지키겠다 다짐하지만, 그마저도 꺾이고 만다. 자연재해만큼이나 단호하고 냉혹한, 법 때문이었다. 혈연관계가 아닌 자는 어린 루카의 삶에 관여할 수 없었다. 이후 루카가 나츠히코를 찾아오면서, 다시 그에게 루카를 돌볼 기회가 주어지지만, 또다시 현실 앞에 무릎 꿇는다. 그렇게 루카는 혼자가 됐고 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키리에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다 마침내 잇코와 재회하게 된다. 키리에의 공연은 잇코의 뛰어난 매니저 활동으로 많은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다. 점차 키리에는 거리의 가수들이 찾는 아티스트로 소문나고 각자 따로 노래하던 이들과 동료가 되어 함께 공연하기 시작한다.
출처: 영화<키리에의 노래> 스틸컷(다음)
영화는 <키리에의 노래>란 제목처럼 키리에(루카), 단 한 사람만 중심에 세운다. 키리에가 만나는 사람들의 서사는 주인공 성장 서사를 위해 적절하게 사용될 뿐이다. 특히 잇코와 나츠히코의 과거와 현재는 키리에의 '과거가 된 오늘'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며 제 몫을 다하는데, 여기서 분명히 할 점은 영향을 적지도 과하지도 않게, 딱 '적절하게' 준다는 점이다. 키리에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모두 따뜻하다. 그들은 키리에에게 선뜻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고, 함께 울어주고 같이 아파하며 삶을 긍정한다. 악심을 품은 사람은 소녀의 곁에 다가오지도, 쫓아오지도 않는다. 그 힘으로 키리에는 내일이 아닌 오늘을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된다. 슈퍼스타가 되는 것보다, 오늘 같은 하루를 내일도 똑같이 보내고 싶어 하며 작은 것에 감사하고, 사소한 일에 기쁨과 즐거움을 느낀다.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규칙은 서로 주고받는 일, 그렇다면 그들은 환대에 대한 보답을 받았을까? 글쎄, 아무도 알 수 없으니 영영 모르는 일로 남는다. (영화가 의도한 각자의 몫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키리에는 바다 위에 뜬 부표 같은 존재다. 거센 물결에 이리저리 치여도 절대 뒤집히지 않는 불굴의 신념을 품고 있는 자. 나츠히코가 그동안의 일에 대해 루카에게 간절히 용서를 구할 때도, 사기 결혼으로 수억 원의 피해액을 낸 잇코가 한 피해자의 칼에 맞고 쓰러질 때도, 경찰의 강제 해산으로 축제가 아수라장이 되어도 키리에는 중심을 잃지 않는다. 물론 키리에가 자기 역할을 알고 의식적으로 행동한 건 아니다. 그럴 정신도, 마음도 가질 수 없는 친구니까. 하지만 그녀는 성공적으로 모두의 부표가 된다. 오직 주인공에게만 한정된 '적절하게'의 효과다. 노골적인 따뜻함과 노골적인 치유과정‥ 전부 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지만, 코가 시큰해지는 걸 막을 순 없을 거란 감독의 자신감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출처: 영화<키리에의 노래> 스틸컷(다음)
잇코의 생사가 오리무중인 상태에서 키리에는 여전히 한 곳에 정착하지 않은 채, 홀로 버스킹을 한다.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노래하며 다시 매니저가 찾아오길 기다린다. 이젠 그녀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 굳이 않아도 된다. 뒤집히지 않은 부표의 비밀은 쓰나미가 무서웠냐는 잇코의 물음에 답한 키리에의 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모르겠어요.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왠지 바다는 그리운 느낌이에요. 모두가 바다에 있을 것만 같아요. 아빠도, 엄마도, 언니도‥."
쓰나미를 용서할 수는 없다. 마치 내 이름을, 내 삶을 버릴 수 없고, 손이 닿지 않은 곳에 지문을 남길 수 없는 것처럼. 키리에는 모르겠단 표정과 그립다는 노래로 받아들였다. 마오리가 잇코로 살기 위해 몸부림칠 때, 루카는 본능적으로 키리에를 품었다. 앞서 말한 익숙한 외로움과 두려움과 함께 필연적인 과정을 걷기로 했다. 깊은 트라우마가 자신을 삼키는 것을 용인했다.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출처: 영화<키리에의 노래> 스틸컷(다음)
인간의 힘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극에서 살아남은 어린아이가 자신을 치유하고, 각자의 슬픔을 버티며 사는 이들에게 치유의 매개체가 되는 이야기. 마침내 키리에가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게 된 이야기. 흘러가는 강물만큼이나 잔잔하고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텁텁한 뒷맛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별개로, 완벽한 결말이란 외피 안에 숨긴 의도적인 결말이, 너무나 공개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 그렇다. 키리에의 노래만으로도 충분한 공감과 이해를 잡았을 거다.
키리에는 노래한다. 언젠가 오늘 같은 날이 올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오늘 같은 날을 맞닥뜨릴 거라고, 그런데도 우린 자유로울 것이라고. 그녀의 울부짖음이 계속 귓가에 맴도는 건, 작은 신사 앞에 서서 기도했던 그녀의 기도 내용을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오리의 말처럼, "그래 기도는 기도지. 더는 묻지 않을게." 가 <키리에의 노래>를 유일하게 대변한다는 점에서 설원을 걷는 루카와 마오리의 모습이 아름다운 이름값을 남겼음을 밝힌다.
우리는 자유롭구나 오늘 같은 날이 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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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 명의 외로운 사람'에게 바치는 따뜻한 편지
돼지의 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일본 어느 동네에 살고 있는 사오리(안도 사쿠라)와 미나토(쿠로카와 소야)다.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 근처에 대형 화재사고가 일어났다. 모자는 타오르는 불길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 “근데. 돼지의 뇌를 이식한 인간은 돼지일까, 사람일까?” 아들이 엄마에게 묻는다. 무슨 말이 그래? “누가 그런 말을 해?” 되묻는 사오리. 아들은 학교 담임 선생님인 ‘호리 선생님(나가야마 에이타)’이 그랬다고 답한다. 아들이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의아한 사오리. 이후부터 아들에게 이상한 우연이 겹친다. 아들이 갑자기 머리를 자른다.”왜 머리를 잘라?”라는 질문에 어물쩡 대답하는 미나토. 이뿐만이 아니다. 텀블러에서 흙이 나오거나 귀에 상처가 났던 일도 있다. 불안한 사오리. 미나토가 다니던 학교에 방문한다. 사오리에게 대응하는 학교 교직원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영혼 없이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교장과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호리 선생님은 사오리를 화를 돋우기만 했다. “호리 선생님에게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있나요?”라고 묻는 사오리. 분명 아들 미나토의 학교생활에 뭔가 문제가 일어났다. 하지만 이 학교에 있는 그 누구도 사건의 정확한 경과를 알지 못했다.
재미있는 미스터리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미스터리다. 이 영화를 중반부까지 이끄는 힘은 ‘괴물이 누구야?’다. 이 괴물의 근원지를 좇는 각본의 힘이 탁월하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여러 사람의 관점을 엇갈리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원래 사람들끼리 갈등이 있었다고 하면(내지는 여러 사람 사이에서 안 좋은 일을 만든 ‘괴물’을 찾는다고 하면) 양 쪽의 입장을 듣는 게 당연지사다. 이 영화는 이 형식의 플롯을 차용한다. ‘괴물 찾기’에 최적화된 이야기 방식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다. 1차원적으로 특정 누군가의 입장에서 원인-결과의 해결방식만 나열한다면 이야기가 지루해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인 이상 모든 일을 완벽하게 마무리짓기도 불가능하다. <괴물>은 이를 탈피하는 각본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A의 관점을 쭉 전개하다 새로운 의문점을 만든다. 그걸 B의 관점에서 해결해 준다. 그런데 B의 입장을 보여줄 때 A의 시점에서 보여준 상황을 바탕으로 새로운 궁금증을 만든다. 그걸 C 서사에서 해결한다. 이렇게 물리고 물리는 플롯은 해소되지 않는 물음표를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가 좋은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아, 이렇게 쌓아 올린 미스터리가 엔딩에서 어떻게 치환되는지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 엔딩은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선생님
영화의 두 번째 장점은 윤리의식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이 수많은 소재들을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데에 있다. 이것은 이 영화가 악인을 어떻게 설정했는지와도 관련이 있다. 보통 세상이 만든 괴물을 설명하는데 악인은 필수적이다. '이 인간이 나쁘다'로 영화의 많은 부분을 편의적으로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많은 분들이 ‘이 <괴물>에는 악인이 없다’라고 하실 수도 있다. 실제로 이 영화의 핵심 인물들을 영화가 그리는 방식을 보면 양면적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영화에 악인은 분명히 있다고 보는 쪽이다. 하지만 다른 영화들과 다르게 특별하다. 이 악인들은 인물의 형태(?)로 등장하긴 하지만 특정한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왜 이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하는가’를 주인공의 시점에서 설명한다. 이 주인공(들)이 어떤 것을 바라보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보시길 바란다.
아역 명가
그리고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배우들의 연기다.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을 맡은 쿠로카와 소야와 히이라기 히나타는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가진 장점 중 하나를 그대로 승계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전 세계에서 아역의 연기를 가장 잘 이끌어내는 감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톡톡히 수행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나토가 화를 내는 장면이 있다. 또 극후반부에 어떤 인물과 독대하는 장면이 있다. 이 두 장면에서 느껴지는 진한 울림은 많은 분들의 관객들의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글쓴이가 요리의 명장면으로 뽑은 것은 어떤 일을 겪고 씩씩하게 일어서는 장면이다. 이 사소한 장면 하나가 요리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장치인데, 미묘한 표정 차이를 이끌어낸 감독의 역량이 돋보였다.
어른 캐릭터 중 미나토의 어머니 사오리 역을 맡은 안도 사쿠라도 아주 뛰어났다. 글쓴이는 그녀가 등장한 모든 장면이 다 기억에 남는다. 대표적인 장면 중 하나는 미나토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신이다. 여기서 미나토를 격려하는 장면은 아들을 홀로 키우는 어머니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을 한 번에 다 축약한 듯한 애처로움이 있다. 그리고 이 인물은 서슬 퍼런 연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교장 선생님 역을 맡은 타나카 유코와 대면하는 모든 순간이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영화의 질문을 다채롭게 만드는 좋은 연기였다. 또 호리 선생님을 맡은 나가야마 에이타는 감정적으로 진폭이 가장 큰 인물이다. 왜 감정적으로 진폭이 클까? 역시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중요한 질문 중 하나다. 어쩔 땐 웃으면서 분노를 삭이고 있고, 다른 때는 굉장히 불쾌해하지만 표정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이 양면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배우의 역량이 극에 이입하게 만든다.
사카모토 류이치
이 영화의 음악은 아름답다는 점에서 작품과 잘 어울린다. 이 영화가 입체적으로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마냥 스트레스만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이 와중에도 아름다움과 추함을 오고 가는 교묘한 연출방식을 감독이 구사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영화가 인물들의 밝고 어두운 내면을 모두 상징한다는 점에서 극에 윤활유가 되는 요소다. 특히 예고편에도 삽입된 ‘Monster 2’라는 트랙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엔딩에 삽입되는 음악은 이 영화의 아름다움에 방점을 찍는 곡이었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디스코그래피에서 느낄 수 있었던 처연한 아름다움을 이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는 셈이다.
단 한 명의 외로운 사람에게
글쓴이는 이 영화가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봤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 이 영화를 바라보는 건 쉬울 수도 있다. 영화가 시점을 확 넘기는 것도, 인물들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도 관객 입장에서 바라보면 판단이 용이하다. 하지만 이 판단이 쉽다는 것에 근거해서 답해보자. 우리 역시 이 영화의 인물들과 별 차이점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글쓴이는 다르지 않다고 본다. 우리 모두 다 이렇게 모난 부분이 하나쯤은 있고, 그래서 세상이 함부로 들 대한다. 근데 또 우리는 모났기 때문에 세상을 함부로 대한다. <괴물>은 이 아이러니에 다룬 영화다. 왜 내가 세상을 함부로 대하는지. 그 대하는 이유가 내가 괴물이기 때문은 아닌지. 그런 우리가 정말 괴물이라고 볼 수 있는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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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인터뷰] 노래는 한밤의 불빛처럼 달려, <마이 웨이> 티에리 테스톤 감독 인터뷰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송’에서 빠지지 않는 노래,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My Way)’가 클로드 프랑수아라는 프랑스 가수의 ‘습관처럼(Comme d’habitude)’라는 샹송이었다는 사실은 알음알음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자신감을 투영해 ‘마이 웨이’를 불렀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노래 한 곡의 여정을 따라간 동명의 이 영화는 단순히 노래를 넘어 더 넓은 의미와 시대를 우리에게 전해왔다. 리자 아주엘로스 감독과 공동 연출하여, 이 풍성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가져다 준 티에리 테스톤 감독을 만나 보았다.
<마이 웨이>가 이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아시아 최초로 상영되는데요. 지금 기분이 어떠신지요?
한국에 꼭 와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처음 오게 되었어요. 그것도 영화를 소개하러 온 자리라니 너무 감동적이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더욱 기쁜 기회 같습니다.
어떻게 이 영화를 작업하게 되셨는지 들려주세요.
프로듀서가 <마이 웨이> 노래 이야기를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사실 저는 이 노래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이 노래에 관한 이야기에 끌렸습니다. 특히나 흥미로운 지점은, 누가 리메이크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노래가 된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프랭크 시나트라가 불렀을 때에는 백인 남성이 은퇴를 고민하는 순간의 매력적이고 감상적인 노랫말인데, 니나 시몬이 부르면 70년대 미국에서 흑인 여성 아티스트로서 그가 해온 투쟁이 가사에서 느껴집니다. 심지어 음악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현장이나 블라디미르 푸틴의 정적이 장례식 때 이 곡을 연주해 달라고 요청한 것처럼 이 노래는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누구의 소유도 되지 않고, 리메이크될 때마다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노래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마치 노래가 사람인 것처럼, 이 영화를 <마이 웨이>라는 노래의 전기 영화로 만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내레이션은 노래의 시점에서 쓴 것입니다. 노래가 화자 역할을 하는 거죠.
노래의 관점에서 쓴 내레이션을 미국 배우 제인 폰다가 맡았습니다. 어떻게 제인 폰다를 캐스팅하게 되셨는지, 캐스팅 과정의 에피소드는 없는지 궁금합니다.
제인 폰다의 인생 또한 사회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측면이 강하죠. 제인 폰다의 목소리가 실리면서 이 영화에 페미니즘적 가치가 부여되었습니다. 사실 이 노래는 그동안 남성 위주 리메이크 역사를 갖고 있었거든요. 스트롱맨으로 평가받는 정치인들이 즐겨 부른 곡으로 유명해지기도 했고요. 이 작품을 통해 여성 특히 제인 폰다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되살려냄으로써, 이 노래의 소유를 뒤집는 의미가 있습니다.
노래 역할로 어떤 목소리가 어울릴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어요. 프랑스어 버전에서는 노래 역할을 맡은 배우가 일찍 정해져 그 목소리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영어 버전에서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미국 쪽 제작자가 전화를 해서, “지금 우리 사무실 옆방에 제인 폰다가 와 있는데, 제인 폰다는 내레이터로 어떨 것 같냐”고 물어 왔습니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제안을 듣는 순간 너무나 완벽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작자가 단박에 옆 사무실로 가서 제인 폰다에게 부탁을 했죠. 제인 폰다는 전설적인 대배우지만 마음이 매우 열려 있는 사람입니다. 즉각 승낙을 받고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 다음 월요일에 바로 녹음을 했습니다. 6-7시간씩 녹음하는 강행군이었는데, 힘들다는 기색 하나도 없이 말끔하게 진행해 주었습니다. 제인 폰다라는 대배우와 함께할 수 있어 무척 행복한 기억입니다.
영화 속에 <마이 웨이>에 관한 이야기가 정말 많이 담겼는데요. 최근 프랑스 올림픽 폐막식에서도 이 노래가 불렸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에서도 이 노래가 주요 소재로 등장합니다. 혹시 이 영화에 실리지 않은 이야기 중, 편집 과정에 담지 못했지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저희가 찾아보니 녹음된 앨범으로 남아있는 <마이 웨이>만 4,500개 버전이 있었습니다. 그것만 170시간 정도의 분량이 되더라고요. 전 세계의 영상인데 저작권 문제도 있고 여러 이유로 사용이 어려운 것도 있었어요. 그리고 똑 같은 노래를 여러 언어 버전으로 이어 붙이면 관객 입장에서는 같은 노래를 너무 많이 듣게 되다 보니 그 중 일부를 골라내야 했습니다. 또 이 영화의 다른 편집 버전도 준비하고 있는데, 거기 들어갈 이야기들도 흥미롭지만 아직 말씀드리기 어렵겠네요. 그리고 올림픽 폐막식에 이 노래가 불린 일은 저희 영화 소개를 앞두고 너무 좋은 타이밍이라 꼭 선물처럼 느껴졌어요. 파리 올림픽이 끝나고 다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으로 넘어가는 상황이니, 실제로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이 노래만큼 적합한 선택이 없었죠. 사실 옛날 노래다 보니 1년 전까지만 해도 “이 영화가 되겠어?”라고 묻는 사람이 많았는데, 올림픽 덕분에 화제성을 얻게 된 거죠.
이 영화에는 굉장히 많은 아티스트가 등장하고, 부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노래가 되는 것 같아요. 감독님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시는 건 어떤 버전인가요?
프랭크 시나트라 버전을 제일 좋아해요. 시나트라가 이 노래를 선택한 당시 그의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마피아에 연루되었다는 루머가 들끓고,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가 등장하면서 프랭크 시나트라 같은 가수들의 노래는 한물 간 장르 취급을 받았죠. 결정적으로 배우 아바 가드너와의 사랑이 끝나 깊은 슬픔과 실패감에 빠집니다. 사실 이 영화를 만든 이유 중에서는 아바 가드너의 이야기를 꼭 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어요. 프랭크 시나트라와 아바 가드너의 사랑 이야기가 제 마음에 그만큼 오래 남았습니다. 물론 니나 시몬, 섹스 피스톨즈처럼 전형적이지 않은 느낌으로 부르는 것도 좋고, 이 영화에 나온 벤 하퍼(Ben Harper)와 클라라 루시아니(Clara Luciani)의 노래도 제 눈앞에서 펼쳐져 유난히 좋았습니다. 결국 다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되겠네요.
벤 하퍼와 클라라 루시아니 두 아티스트가 <마이 웨이>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영화에서 다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매우 아름답고 흡입력 있었습니다. 수많은 뮤지션 중 이 두 사람을 선택한 이유가 있으실까요?
클라라 루시아니는 프랑스에서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아티스트입니다. 그런데 11살에 이미 키가 176cm까지 자라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해, 슬프고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지금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모습과 힘들었던 성장기를 생각할 때, 그가 <마이 웨이>를 부르는 자체가 너무나 아름다운 일이죠. 치열하게 싸워 왔고 지금은 충분히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클라라의 삶 자체가 노래와 많이 닮았습니다.
벤 하퍼는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프랭크 시나트라의 열성 팬입니다. 모르는 노래가 없고, 시나트라와 똑 같은 반지를 끼고 다니기도 해요. <마이 웨이>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는 소문을 듣고 저희한테 연락을 먼저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본인의 의지로 참여하게 된 경우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마이 웨이>라는 노래에 대해 또 하나의 기억을 가져가실 관객 분들을 위해 한 말씀 남겨 주세요.
2년 반 전에 이 영화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 노래 얘기를 지금 하는 게 맞아?” 하는 우려의 시선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미 사라지기 시작한 노래를 되살려내려 애쓴다고 보는 사람이 많았죠. 다시 말해 젊은 사람들이 더 이상 듣지 않는 옛날 노래가 되어 간다는 거겠죠. 사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프랭크 시나트라도 잘 모르죠. 프랭크 시나트라를 비롯한 훌륭한 아티스트에 대해서도 보여주고, 이 노래와, 이 노래가 담긴 한 세대의 문화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시고 나면, <마이 웨이> 노래를 검색해 보시고, 전세계에서 이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악기를 가지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노래할 만큼 많이 공유된 음악이라는 걸 함께 알아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노래 한 곡의 풍성한 이야기를 들으며 시작한 자리였는데, 한 세대의 문화가 다음 세대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까지 받았다. 페퍼톤스의 노래 가사처럼 “노래는 한밤의 불빛처럼 달려” 또 여기에 이른다. “수많은 날들이 흘러도 잊을 수가 없던 뒷모습” 같은 <마이 웨이>를, “서툰 첫 인사로 다시 만나기를 또 빛나기를 눈부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들어 본다. 이 마음이야말로 음악의 힘, 영화의 힘일 것이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정유선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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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헤어질 결심(2021)> 리뷰
이름은 언제나 존재 다음에 온다. 마찬가지로 관계에 있어 마음이란 최초에 발생하는 무엇이고, 행위는 눈 먼 채 마음을 따라가며, 이성은 한참 후 자신의 행동을 해부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명명한다(설령 그것이 그릇된 이름이라 할지라도). 그런데 이 영화, 제목이 이상하다. ‘헤어질 결심’이라니. 어떠한 감정을 사그라뜨리기 위해 헤어지는 것이라면 그저 갈라서면 될 일인데, 물리적으로 멀어진 후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받아들이면 될 터인데, 이 영화는 헤어지는 행위에조차 ‘결심’이 필요하다고 한다. 감정과 행동이 진행되는 순서를 역행하겠다는 선언 이면에 가득한 건 망설임이다. 그러하니 영화 속 주인공의 이별이 쉬울 리가 없다.
<헤어질 결심>을 바라보는 데에는 참으로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쟝센에 집중할 수도 있을 테고, 그의 전작에서부터 이번 작품에서까지 이어지는 인물들의 모호하고도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터다. 또한 21세기 한국 사회만이 담아낼 수 있는 현상을 파고들 수도 있을 것이며 히치콕의 영화를 끌어오는 방법도, 탕웨이와 박해일이라는 배우에 대해 집중해 보는 방법 또한 있겠다. 하지만 난 송서래(탕웨이)와 장해준(박해일)의 관계에 집중해 보고 싶다. 오랜만에 영화로 찾아온 박찬욱 감독이 꺼내든 ‘멜로’라는 장르를 아끼고 싶진 않으니까.
서래와 해준
<헤어질 결심>은 담당 형사와 피의자로 만난 남녀에게서 출발한다. 특별하지 않은 설정이지만, 이 이야기는두 사람이 품은 믿음으로 인해 레이어가 여럿 추가되며 현실만큼 복잡해진다. 나는 다른 이들과 다르다는 데에서 오는 자부심. 누가 뭐라 해도 꺾이지 않는 신념을 지닌 사람의 품위. 서래와 해준에겐 환경이 그들을 공격하더라도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세상의 모진 풍파를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다.
서래는 어느 여름 해골 같은 몰골로 불법 입국한 중국인으로, 한국에서 녹록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삶에 풍파가 더해지는 데에 크게 일조한 사람은 서래의 한국인 남편 기도수다. 이 남자는 서래를 학대하고,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것처럼 그의 몸에 이니셜(KDS)을 새겨두기까지 했다. 하지만 서래는 자신의 처지가 곤란하기 그지없어 그를 떠날 수 없는 신세다. 이렇듯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래는 간병 업체에서 ‘에이스’로 통하고, 자신보다 상황이 여의치 않은 동물들까지 살뜰히 보살피며, 무엇보다도 언제나 단정한 차림새를 유지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서래가 보여주는 특유의 기품은 그의 과거에서 비롯되는 듯하다. 독립군 참전자인 송서래의 외조부가 일러주었다는 가문의 땅, 호미산으로부터.
해준 역시 서래와 비슷하다. 고지식할만큼 깔끔하게 정장을 차려 입는 그는 어떤 피의자를 만날 때에도 무죄추정원칙을 고수한다. 미결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책상 앞에 붙여두고 사건에 관련된 사소한 숫자마저 머릿속에 오래오래 보관하는 이 남자는 원리원칙에 충실하고 정중한 형사로, 서래의 말마따나 ‘현대인’ 치고 품위가 넘친다. 이러한 평가는 동료들 사이에서도 유효한데, 후배 수완(고경표)은 다른 형사들과 다르게 끝까지 사건을 물고 늘어지는 해준을 존경해 부산으로 전근을 왔을 정도이다. 그가 불의 앞에서 늘 달려나갈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의 원칙에 있다. 그런데 이것이 무너진다.
사랑과 미련과 그 밖의 모든 것들
멜로 영화이니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을 먼저 해 보자. 두 사람은 언제 사랑에 빠졌을까? 영화는 답하지 않는다. <헤어질 결심>은 서래와 해준이 서로를 사랑하게 된 시점에 대해, 감독과 배우와 관객의 해석이 모두 다를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해준의 말마따나 서로가 같은 부류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에 마음이 서서히 물들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사소한 단서조차 놓치지 않는 형사 해준이 ‘중국인이라 한국어가 서툰’ 서래의 의도가 변질되지 않도록 더욱 애써 유심히 살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꾸만 시선을 주어야만 했던 정황 속에서 자연스레 자라난 것일 수도 있다. 두 사람의 사랑은 한 걸음 뒤의 시선과 녹음을 통해 상대방에게 몇 박자씩 늦게 도착하곤 했으므로. 정확한 것은 없다. 늘 그렇지만,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서 분명한 것은 없으니. 어느 순간 돌이켜보니 사랑에 빠진 자신만 남는다는 그 단일한 결과만 제외한다면.
그런데 신기한 건, 둘 사이에서 주도권이 서래에게 있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계층의 최약자인 서래 말이다. 서래는 당장의 생존이 절실한 사람이었고, 덕택에 그는 사랑을 온전히 감각할 여유가 부족했다. 이는 서래보다 해준이 먼저 사랑을 자각한 계기가 됐다. 사랑 앞에서는 형사와 피의자라는 권력 관계가 순식간에 허물어진다. 기실, 형사인 해준은 본질적으로 사건이 발생한 후 뒤쫓아 가는 쪽이지, 먼저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그에겐 대단히 비겁한 측면도 있다. 아내 정안(이정현)에게 기도수 사건을 다르게 바꿔 전달하는 것처럼. 사실은 일찌감치 끝난 관계에 무의미한 인공호흡기만 달 뿐 해준은 적극적인 행위를 하지 않는다. 해파리처럼 모든 일을 밀어낼 줄 모른다. 그는 모든 것을 떠맡는다. 공평하게 모든 것을 신경쓰고자 한다는 건, 사실 그 무엇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뜻이라는 걸 모른다는 듯.
해준이 이런 남자라는 사실은 서래에게 독이었을까, 약이었을까?
서래는 자신을 걱정하는 다정한 남자에게 묻는다. 자신은 왜 당신 같이 품위있는 남자를 만날 수 없을지에 대해. 답은 자명하다. 그에겐 양지바른 한국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미산은 그의 핏줄이 가진 땅이라는데 서래는 어떤 소유권도 주장할 수 없다. 정당성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 심지어 서래는 고소공포증까지 있는 외국인이자, 저 자신의 고국에 돌아가면 무기징역수가 되는 젊은 여성이다. 전문직에 해당하는 간호사 자격증을 가졌음에도 하루하루 독거노인을 돌보는 불안정한 일을 할 수밖에 없고,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제 뜻을 명확히 전달할 길이 없다. 서래는 상황을 깨뜨리고자, 운명을 거스르고자 노력하나 도돌이표처럼 돌아온다. 남편에겐 가축취급을 당하는 트로피 와이프로, 거듭하여.
그러나, 두 사람은 사랑 앞에서 변화한다.
회피하던 해준은 행동한다. 서래가 부탁하지 않아도 요리하고, 중국어를 몰래 공부하고, 우산을 씌워주며, 무엇보다도 서래를 고스란히 눈에 담는다. 죽음보다도 더 끔찍하게 여기는 감옥생활을 각오할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살인을 저지른 홍산오 사건처럼, 해준은 서래 앞에서 몇 번이고 자신의 원칙을 깨뜨린다. 해준 자신이 죽음보다도 더 치욕적으로 여기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렇기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고백을 전했느냐고 따지는 해준의 말은 공허하다. 사건 수사를 위한 결정적 증거를 깊은 바다에 버리라는 말은 너무나도 명백한 고백이었으니까.
반면 해준을 만나기 위해 이포에 간 서래는 그와 헤어지겠다고 결심한다. 부산에서처럼 사건의 주동자가 되지 않고 한 발짝 뒤에서 해준을 바라본다. 언젠가 그에게 닿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스마트 워치에 자신의 말을 녹음한다. 그런데 서래는 먼 발치에서 깨닫는다. 자신이 사랑한 남자가 원칙을 잃어 더 이상 올곧게 달려나갈 수 없다는 것을. 결국 서래는 해준과 같은 방식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되었다’는 말을 녹음할 수 없는 환경에서 중국어로 말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아무도 찾을 수 없도록 한다. 모든 사건을 품고 있는 스스로를 깊은 물 아래에 묻음으로써 사건을 무마한다. 서래는 그 누구보다도 세상의 우스꽝스러운 단면을 아는 사람이다. 어떤 이도 기억하지 못하고 입증할 수 없다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과 같다는 것을 안다. 서래 그 자신이 살아있는 증거이기도 했다. 한국은 서래에게 외조부의 땅을 돌려주지 않았으며, 중국에서의 서래를 기억하지 못했고, 기도수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 않았나. 그렇기에 그는 거침없이 해변에 스스로를 가두는, 무자비한 선택을 한다.
서래의 선택으로 인해 해준이라는 인간에겐 그저 긴긴 미련만이 남는다. 사랑한다는 직접적인 말을 한 번도 한 적 없는 이 남자는 앞으로 영원히 서래를 헤아리며 살아야 한다. 서래와 헤어진 후 셈했던 402일. 그가 없어 편히 잠들지 못했던 402일은 이제 수도없이 많아질 것이다.
어지러이 얽힌 산과 바다
자, 이젠 시놉시스에서 눈을 돌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상징을 이야기 해 보자. 영화에선 자연물인 산과 바다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을지로에서 태어났으면서 바다가 좋다고 하는 해준, 산을 가슴에 품고 바다를 건너온, 저가 돌보는 노인들에게 산해경을 읽어주는 서래. 두 사람에게 부여된 속성은 정안의 원전과 맞지 않는 힘이다.
서래와 해준 두 사람은 모두 산보다 바다를 선택하고, 공자의 말(智者樂水 仁者樂山)을 인용하며 스스로를 어진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공자의 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논어는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그러하므로 더더욱, 나는 해준이 산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바다에 이끌리는 산이었고, 붕괴될지언정 침몰하지 않는 남자다.
다만 이러한 두 사람의 속성이 대단히 중요한 것은 아니다. 서래가 읽는 산해경 신화 속 이정표가 무의미하듯, 산과 바다의 경계는 영화 속에서 자주 흐려진다. 마치 산과 바다의 뿌리가 같기라도 한 것 마냥. 뚜렷한 상징으로 환원되는 장면은 차라리 해준의 집에서 서래가 샛노란 옷을 입고 있었던 씬과, 호미산에서 서래가 산에서 광원 자체가 된다는 점이지 않을까. 서래에게 해준의 존재가 잠시나마 구원이었듯, 해준의 삶에 있어 서래는 단 한 순간일지라도 분명한 빛이었다. 하지만 그런 서래가 바다에 잠긴다. 모래산이 무너지고, 바다의 깊은 구멍을 메운다. 서래의 소망은 충족되었다. 그는 해준의 미결 사건이 된다. 해준은 이제 떠오르는 태양 없는 바다, 안개만이 자욱한 해변을 영원히 걸어야 한다. 헤매는 자는 목소리를 높여 운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붕괴 이전으로의 회귀는 불가능하다. 어쩌면 서래가 바랐던 것은 이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벽에 내 사진 붙여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영원히 결핍된 상태로 살아줘요, 당신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조각이 언제나 나이길 바라요.
서래와 해준의 관계에만 집중하여 후기를 적었지만, <헤어질 결심>엔 현대 한국인이기에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나는 이 영화가 오로지 2022년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현재성'이라는 시간적 속성이 어쩔 수 없이 희미해지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이 영화를 개봉한 해에, 이 나라에서 감상할 수 있었음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
이토록 끊임없이 지각하고, 미끄러지고, 실패하는 사랑을 매끄럽게 스크린에 담아낸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획득하기 전 상실되는 사랑이란 파란색도, 초록색도 아닌 푸른색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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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l New 피터팬의 시작! 영화 <웬디> 피터팬 110주년 기념 개봉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들의 세상 네버랜드, 기억하시나요?
'피터팬' 탄생 110주년을 맞아 새로운 주인공, 새로운 시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영화 <웬디>가 6월 30일 개봉을 확정지으며 메인 포스터와 예고편을 공개했습니다.
<웬디>는 첫 장편 데뷔작 <비스트>로 제 65회 칸영화제 황금 카메라상과 제 28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고, 제 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되며 영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벤 자이틀린 감독이 무려 9년만에 선보인 신작입니다. <웬디>는 전 세계 독자들이 사랑하는 명작으로 끊임없이 명성을 떨치고 있는 '피터팬'을 '웬디'의 시선으로 새롭게 각색한 작품으로, 호기심 많고 모험심 강한 소녀 '웬디'가 자라지 않는 소년 '피터'를 만나 신비로운 섬에 표류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모험과 성장담을 다루고 있습니다.
<웬디> 메인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공개된 메인 포스터에는 익숙하게 떠올리던 '피터팬'과는 전혀 다른 낯선 세계가 펼쳐지며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기차 위를 거침없이 누비는 아이들의 모습이 원작 속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이들의 모습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기찻길 아래로 흐르는 강물과 주위로 늘어선 나무들은 동화 속 판타지 세계보다 현실에 가까워, 이 모든 것이 원작 '피터팬'의 이미지를 새로운 방식으로 지워내고 있는데요. 벤 자이틀린 감독과 <노매드랜드>제작진이 새롭게 재창조한 '피터팬' 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습입니다.
<웬디> 메인 예고편
이 같은 <웬디> 속 '피터팬'의 새로운 세계관은 함께 공개된 메인 예고편을 통해 보다 자세히 확인할 수 있는데요. 호기심 넘치고, 모험심 강한 '웬디'가 검은 피부에 레게 머리를 한 작은 소년 '피터'의 부름에 따라 쌍둥이 형제 '더글라스', '제임스'와 함께 기차 위로 몸을 싣게 되면서 예고편은 시작됩니다. 이들은 화산이 살아 숨 쉬는 신비로운 섬에 도착하게 되고, 그곳에는 자신의 의지로 영원히 늙지 않는 아이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매일 자유를 만끽하던 '웬디'는 '더글라스'가 사라진 후, 늙어가는 '제임스'를 다시 되돌리기 위해 진정한 모험을 시작하고, "우리 인생은 그 무엇보다 더 멋진 이야기가 될 거야"라는 대사를 통해 영화 속에서 펼쳐질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하며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벤 자이틀린 감독은 원작 '피터팬'을 "네버랜드를 경험했지만, 그것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웬디'의 이야기"로 각색하며, "성장하며 세상의 한계를 받아들이게 된" 현실을 돌아보고, 이를 통해 "삶이 우리에게서 빼앗아가려는 것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줄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웬디>는 해외 개봉 당시 '어른들을 위한 감동적이고 파워풀한 버전의 피터팬(Newsday)', '<비스트>에 이어 벤 자이틀린 감독의 천재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New York Post)' 등 평단의 극찬을 이끌어내며 국내에서 역시 2021년 가장 주목해야 할 웰메이드 무비로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현실이 판타지보다 더욱 가슴 설레고 또 위로로 다가올 때가 있는데요. 아마도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과 닮아있는 무대 속에서 애정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조명하는 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찬란하게 빛날 올 여름, 어른들을 위해 가슴 뭉클한 동화를 들려줄 영화 <웬디>와 함께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보시는 건 어떨까요?
씨네랩 에디터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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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8일의 밤> - '악과 운명의 족쇄를 끊어내다.'
제8일의 밤 (The 8th Night)
개봉일 : 2021.07.02 (넷플릭스 공개)
감독 : 김태형
출연 : 이성민, 박해준, 김유정, 남다름, 김동영, 이얼
악과 운명의 족쇄를 끊어내다.
번민하는 검은 악마의 눈과 번뇌하는 붉은 악마의 눈이 만나는 순간, 세상은 지옥이 된다. 각기 다른 사리함에 봉인된 두 눈은 지옥의 문을 열 순간만을 기다린다.
<제8일의 밤>은 끝없이 이어지는 문을 지키는 자의 운명과 문을 열려는 악의 욕망, 그리고 문을 열기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7개의 징검다리가 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7월 2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후 반응은 꽤 호불호가 갈리고 있는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내에서 통용되는 소재 자체는 좋았으나, 제대로 풀어내지 못해 결국 불필요해진 감정들이 아쉬웠다.
결국 악을 물리칠 수 있는 건 대가없는 희생과 선함뿐인 건가. 악에 잠식당한 사람들에게 남는 커다란 구멍과 그 틈을 넘나드는 붉은 눈의 괴기함이 나에겐 완전한 공포보다는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악이 원하는 지옥은 무엇이기에 무력한 사람들을 이토록 끈덕지게 괴롭히려 하는 걸까. 개인적으론 공포영화를 잘 못 보는 편이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진 못하는데, 걱정보단 덜 공포스러웠기 때문일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솔직히 표현하자면 식은땀이 날 만큼의 공포는 아니다. 보는 이를 놀라게 하거나 악몽을 걱정할 만큼 잔혹한 공포 같은 것에 집중했다기보단 선과 악의 대립, 악마와 지옥문을 지키는 선한 자의 대립. 그리고 어리석은 사랑에 묶인 운명과 그 또한 감싸 안는 선한 자가 내미는 손과 주어진 숙명. 이런 주제들에 더 집중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죽죽한 장마철을 내쫓을 서늘해질 만큼의 공포 영화를 찾고 있다면 아쉽게 느껴질만한 공포랄까. 그래도 전하려고 한 메시지와 의도, 배우진들의 연기가 좋아 한 번쯤은 감상해보시기를 추천한다.
제8일의 밤 시놉시스
붉은 달이 뜨는 밤, 봉인에서 풀려난 ‘붉은 눈’이 7개의 징검다리를 밟고 자신의 반쪽, ‘검은 눈’을 찾아간다. 그리고 마지막 제8일의 밤, 그 둘이 만나 하나가 되면 고통과 어둠만이 존재하는 지옥의 세상이 될 것이다.
북산 암자의 ‘하정 스님’(이얼)은 2년째 묵언수행 중인 제자 ‘청석’(남다름)에게 ‘깨어나서는 안 될 것’의 봉인에 관한 전설을 들려주며, ‘선화’를 찾으라고 유언을 남긴다. ‘청석’은 주소지만 적힌 종이를 들고 길을 떠나던 중 사리함을 잃어버리고 그곳에서 정체모를 소녀 ‘애란’(김유정)을 만나게 된다. 한편, 괴이한 모습으로 죽은 시체들이 발견되고, 강력계 형사 ‘김호태’(박해준)와 후배 ‘박동진’(김동영)은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괴시체들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수사를 이어간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때가 되었구나. 전해라… 놈이 왔다”
사리함이 박준철 교수에 의해 발견된 2005년. 정밀 감식 결과 사리함은 최근에 합성된 ‘가짜’라는 결론이 나고 교수는 고고학을 50년쯤 퇴보시킨 사기꾼으로 전락하고 만다. 사기꾼. 교수의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그는 의심이 아닌 인정을 받고 싶었고 자신의 말이 진짜임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에 가득 차 번뇌의 붉은 눈 사리함에 제물들의 피를 붓는다. ‘번뇌’ 근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갈등. 박준철 교수의 현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욕망이다. 악마는 그의 욕망과 제물들의 피를 받아 세상에 깨어나고 지옥문을 열기 위해 징검다리를 밟는다.
지옥의 문을 열려는 악마. 그리고 징검다리 마지막에 서있는 문을 지키는 자. 하정 스님이 타계하고 그의 운명을 내려받은 진수(선화 스님)과 청석. 징검다리를 두고 악마와 지키는 자는 대립한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 사람들이 주고받는 ‘운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녀 보살은 자신의 마지막 징검다리가 될 운명을 사주가 같은 동진에게 넘기고, 북산에 있는 지키는 자들(스님)은 자신의 명이 다할 때쯤 다음 사람에게 지키는 자의 운명을 넘겨준다.
진수와 청석은 청석의 어머니가 낸 사고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다. 청석의 어머니가 낸 교통사고로 진수는 아내와 딸을 잃는다. 그리고 청석의 어머니는 죗값을 갚겠다며 자살을 택한다. 하정 스님과 진수는 홀로 남겨진 어린 청석을 북산으로 데려온다. 그 순간부터 청석은 ‘지키는 자’의 운명을 내려받을 인물이 된다. 청석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한 적이 없지만 사고를 내고 자살한 어머니, 스님들에 의해 운명을 부여받는다. 2년이 넘도록 묵언 수행을 하고 있는 청석의 목에 걸린 ‘묵언’ 목걸이를 걸어준 하정 스님. 그 목걸이를 끊어내고 새로운 신발을 신겨준 진수. 두 사람은 청석의 운명을 결정하고, 다시 바꾸는 인물이다. 하정 스님이 타계하고 청석의 묵언수행이 끝이 나고 새로운 신발을 신게 된 건 청석이 새로운 운명, 지키는 자의 운명을 받게 되는 순간임을 암시한다.
호태는 물에 빠져 죽었어야 할 동진의 운명을 바꾼 인물이다. 호태와 동진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동진이 일을 하던 중 어떠한 사고로 인해 다리와 눈을 다쳤고, 호태는 그로 인해 깊은 죄책감을 갖고 있다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된다. 모두가 호태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호태는 동진에 대한 죄책감으로 어떻게든 동진을 돕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가 살려낸 동진은 결국 악마의 마지막 징검다리가 되고, 호태는 동진의 몸에 들어간 악마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등장인물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주어진 운명이란 것은 변하지 않고 이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을 뿐이다.
<제8일의 밤>에서는 끊어내지 못한 운명과 숙명을 발목에 묶인 족쇄로 표현한다. 애란은 학대받던 자신을 구해준 새아빠 준철을 위해 악마를 소환하는 제물이 된다.
“그리고 항상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어리석어도 그냥 믿고 싶어져.”
준철은 악마를 불러내겠다며 어리석은 꿈을 꾸지만 애란은 자신의 전부인 아빠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그렇게 애란의 발목엔 무거운 족쇄가 채워지고 애란은 그것을 끊지 못한다.
진수는 악마를 유인하기 위해 덫을 치며 자신의 발목에 단단히 끈을 묶는다. 이미 사리함을 열 운명이 청석에게 내려졌음을 모르는 그는 자신이 마지막 징검다리이며 청석이 나를 죽이면 악마도, 지키는 자의 운명도 끝이 날것이라 예상하고 발목에 끈을 묶는다. 그가 희생을 감수하고 발목에 끈을 묶은 건 지금껏 외면해왔던 ‘귀신을 천도해야 한다’는 숙명을 이제야 단단히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북산을 떠난 순간 청석에게 지키는 자의 운명이 돌아갔음을 알게 된 진수는 발목에 묶인 끈을 힘껏 내리쳐 덫을 벗어나 청석을 따라간 악마의 뒤를 쫓는다. 발목에 묶인 끈을 끊어낸 진수는 결국 자신을 희생해 ‘마지막 징검다리인 청석을 통해 악마가 부활할 것’이라는 운명을 바꿔놓는다.
내 아내와 딸을 죽인 가해자의 아들. 진수는 모두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그 존재를 용서한다. 진수는 청석의 목을 조르려 했지만 포기하고 북산을 떠난다. 그리고 번뇌와 번민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던 진수는 오래도록 마음속에 품어왔던 죄책감을 털어내고 청석을 용서한다. 사실 아이에게 죄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 아이를 용서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는 사고 날부터 제8일의 밤까지, 자신을 괴롭히던 모든 운명의 족쇄를 끊어내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다시 봉인된 사리함과 남게 된 지키는 자 청석. 청석에게 지키는 자의 운명을 내려준 스님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그에겐 새로운 숙명이 생겼다. 애란의 서글픈 눈을 바라보며 먼저 손을 내밀던 그의 선함이 오래도록 지옥의 문을 단단히 누르고, 덮어주길. 누군가는 지옥의 문을 지켜야 하는 운명. 그것은 이 세상의 악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무한히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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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 리뷰 - 아버지 부조금으로 장례식장을 노름판으로 만든 불효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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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전성기는 반드시 온다!
한때는 잘나가던 큰형님 `호성`(손현주).
8년 만에 출소해 보니 남보다 못한 동생 `종성`(박혁권)은 애물단지 취급이고,
결혼을 앞둔 맏딸 `은옥`(박소진)과 오랜만에 만난 아들 `동혁`(정지환)은
`호성`이 부끄럽기만 하다.
아는 인맥 다 끌어 모은 아버지 장례식에서
부조금을 밑천삼아 기상천외한 비즈니스를 계획하며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데…
그런데…! 하필이면 세력 다툼을 하는 두 조직이 이곳에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때마침 눈치라고는 1도 없는 `호성`의 친구 `양희`(정석용)가
술에 취해 오지랖을 부리는데...
일촉즉발! 수습불가!
과연 X버릇 남 못 준 `호성`에게 봄날이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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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교사 안은영」리뷰ㅣ넷플릭스가 넷플릭스 했습니다ㅣ스포없음ㅣ드라마 리뷰
?'보건교사 안은영' 넷플릭스 드라마 리뷰(*스포없음)
한줄평: 2화 중간까지는 엄청난 띵작이었지만
그 이후는... 음... 글쎄요ㅎㅎㅎ 샛별이 10화까지가 그립네요
#보건교사안은영 #보건교사 #안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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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더욱 즐길 수 있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스페셜 예고편 공개 [Spinning Globe - 요네즈 켄시]를 풍부한 극장 사운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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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나의 첫사랑, 마지막 사랑 올겨울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물들일 [#캐롤] 메인 예고편 대공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