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2024-10-18 01:24:53
폭력을 받아들인 자에게 열리는 다음 라운드
영화 <클라우드> 리뷰
클라우드 (Cloud, 2024)
폭력을 받아들인 자에게 열리는 다음 라운드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스릴러, 액션
러닝타임 : 124분
감독 : 구로사와 기요시
출연 : 스다 마사키, 후루카와 코토네, 오구다이라 다이켄, 오카야마 아마네, 쿠보타 마사타카
개인적인 평점 : 3/ 5
쿠키 영상 : 없음
“하여간 특이해”, “이상한 애네”
한국인들의 사랑이 시작되는 대표적인 시그널로 통하는 말이다. 나도 이렇게 사랑에 빠졌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불분명하고 의아하고 이상하다. 그런데 그래서 다시 찾게 된다. 잠시 헛웃음이 나게 하다가도 금세 진지함을 보이는 그의 영화엔 미묘한 매력이 있다.
<클라우드>는 특히 이런 미묘함과 혼탁함이 빛나는 영화다. 주인공 요시이를 맡은 배우 스다 마사키는 혼탁함과 의아함이라는 애매한 요소들을 매력으로 바꾸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는 몇 수 앞의 감정을 꿰뚫어 보는 듯한 신묘한 연기를 펼치며 영화 곳곳에 느껴지는 결핍을 메꿔내고 마치 솜사탕을 만들 듯 영화의 몸집을 몇 배로 불려내는 저력을 보여준다.
솔직히 말하자면 <클라우드>는 아무에게나 추천할 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스다 마사키를 좋아하는 관객에겐 큰 고민 없이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주인공 요시이는 리셀러다. 그는 낮에는 옷을 깔끔히 세탁하고 다림질하는 세탁 공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엔 구김살이 가득한 불법 리셀러 라텔로 활동한다. 그는 오직 감에 의지해 물건을 사재기하고 웃돈을 얹어 재판매하며 돈을 번다. 요시이의 물건이 비싸게 팔리는 요행이 반복될 때마다 그의 통장엔 숫자가 늘어나고 동시에 라텔을 향한 증오도 늘어난다.
세탁 공장 일과 리셀러를 병행하던 요시이는 최근에 사재기한 치료기로 크게 돈을 벌고 공장을 그만둔다. 그리고 한적한 호수 근처 저택을 임대한 후 그곳을 사무실 겸 연인 아키코와의 보금자리로 꾸민다. 요시이는 지금보다 더 큰돈을 벌길 바라며 사노라는 직원 한 명을 고용하고 더욱 본격적으로 리셀러 활동을 이어간다.
그 사이 온라인에선 리셀러, 사기꾼 라텔을 혼내주자는 피해자 모임이 생겨나고 누군가는 라텔을 향한 분노를, 누군가는 목적지가 없는 분노를 쏟아내며 하나의 팀을 조직한다. 이들은 라텔을 잡는 게임에 참가한 파티원이 되어 상식을 웃도는 폭력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요시이는 살아남기 위해 이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었던 결단을 내리게 된다.
<클라우드>는 ‘액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감독의 생각에서부터 시작된 액션 스릴러 장르의 영화로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몽롱한 꿈같은 작품이다. 이게 말이 되나 싶다가도 왜인지 말이 되는 것 같고 이런 놈들이 존재할까 싶은데 또 비슷한 놈들을 어디선가 본 것만 같다. 무지향성의 분노와 폭력, 집착이 범람하는 이 이상한 세계가 어쩐지 낯설지 않아 더 찝찝하고 흥미롭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요시이, 아키코는 돈과 물건에 대한 집착, 사노는 고용주 요시이와 그의 변화에 대한 집착, 괴한 무리는 자신의 분노를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다는 착각과 집착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이런 집착을 충족하기 위해 엉망으로 벌려둔 상황을 대략 ‘보상이 걸린 한 판의 게임’ 정도로 정의하고 합리화하며 곧 죽어도 자신의 폭력과 실수엔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요시이는 이 사달의 시작점인 리셀러 일을 그저 ‘아무리 말이 안 되는 물건이라도 살 사람이 있으면 팔리는 것, 그냥 도둑잡기 게임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괴한들을 자신의 업보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을 비난하고 경멸한다.
다른 곳에서 뺨 맞고 요시이를 잡으러 온 괴한들은 정확한 이유 없이(이 무리에서 요시이에게 제대로 된 사기를 당한 사람은 없다) 요시이를 죽이려는 이 상황을 그냥 모르는 사람들과 벌이는 게릴라 게임 또는 피해자들을 위해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 여기며 자신들의 폭력을 합리화한다.
이 상황에 끼어든 사노와 아키코는 사심을 채우기 위해 요시이를 새로운 측면으로 이끌거나 그를 이용할 계획을 세우며 함께 게임의 엔딩을 향해 달려간다.
평화로운 숲속과 어울리지 않는 총성이 이어지는 상황. 총을 든 괴한들과 사노는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눈다. 그런데 사노의 옆에 딱 붙은 요시이는 총을 쏘지 못하고 그저 사노의 뒤를 어색하게 따라다닌다.
요시이는 라텔로 활동하며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긴 했지만 신체적으로 누군가를 해한 적은 없었고 실제로 누굴 죽일 마음도 없었다 요시이는 이 상황에서도 누굴 죽이겠단 마음보다 물건을 챙기는 게 먼저다. 요시이가 1라운드에서 나무 막대기를 깔짝이며 상대를 기절시키고 있는 초보라면 요시이를 제외한 사람들은 다음 라운드에서 칼을 들고 상대를 죽이는 고수라고 할 수 있다. 타카모토는 가족을 죽인 살인범이고 다른 괴한들은 요시이가 숨었던 오두막의 관리인을 죽이고 유기한 동조자다. 사노는 과거를 알 수 없지만 총기를 다루는 어두운 일을 했음이 분명하고 아키코는 돈을 위해 요시이를 죽일 마음이 있다.
사노가 묶여있던 요시이를 풀어주는 순간, 요시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순간 사노의 팔을 의지하지만 바로 손을 떼고 “원래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라고 말하며 사노와 한발자국 정도 떨어진다. 그리고 괴한들을 설명할 땐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인생의 패배자라고 말한다. 요시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이유 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괴한, 사노와는 다른 사람임을 의식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자 요시이도 1라운드를 넘어 사노와 다른 이들이 머물고 있는 다음 라운드로 이동한다.
요시이는 사노를 겨누고 있는 토도야마 (이온전자 치료기 사장)를 발견하고 사노를 구하기 위해 총을 쏜다. 사노는 요시이에게 총 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냐며 가벼운 농담을 던지고 요시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 대신 타카모토를 잡기 위해 밖으로 달려나갈 때 사노의 속도에 맞춰 함께 달려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요시이는 결국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폭력을 받아들였고 그는 이제 사노와 같은 선상에 서있다.
마지막까지 함께 상황을 정리한 요시이와 사노는 비현실적인 하늘의 입구로 달려간다. 사노와 함께 새로운 라운드에 진입한 요시이는 이제 자신이 원했던 원래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 폭력에 물든 사람과 폭력에 물들지 않은 사람의 삶은 같을 수 없으니까.
비정상적인 폭력성을 쏟아내는 괴한들, 폭력을 부추기던 사노, 결국 그것을 받아들이고 변한 요시이. 이 들의 모습이 그다지 놀랍고 낯설지 않다는 점이 이 영화가 남기는 가장 큰 찝찝함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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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원의 밤> - ‘공허함을 털어내는 낙원의 밤’
낙원의 밤 (Night in Paradise)
감독 : 박훈정
출연 : 엄태구, 전여빈, 차승원
‘공허함을 털어내는 낙원의 밤’
<신세계>, <마녀>, <브이아이피>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박훈정 감독과 거친 연기와 다르게 의외의 수줍음을 뽐내며 인기를 얻은 엄태구 배우, <로맨스가 체질>, <빈센조>를 통해 떠오르고 있는 오묘한 분위기를 지닌 전여빈 배우, 그리고 예능과 영화를 넘나들며 끝이 없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차승원 배우까지. 이름만 들어도 기대감을 한껏 높이는 이들의 조합과 베니스 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통해 공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끌어낸 작품 <낙원의 밤>.
<낙원의 밤>은 박훈정 감독의 감성으로 짜낸 약간의 낭만이 가미된 누아르물이다. 누아르라는 장르 특성상 잔인한 장면이 있다 보니 개인적으론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신세계>에 비하면 나름 견딜만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론 누아르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선혈이 낭자한 화면을 보는 것을 기피하는 편이었고, 보고 난 후 특유의 찝찝함이 가시지 않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큰 화제를 부른 작품 또는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이 올라간 작품이 아니면 굳이 찾아보지 않았을 만큼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장르인데.. <낙원의 밤>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이런 취향이 아니구나., ‘별로다’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짜여진 이야기의 틀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바람에 멋있으려다가 뻔해진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로 아쉬운 부분들을 커버해내는데 성공한 영화 같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신세계>를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것이고, 후루룩 볼만한 새로운 한국형 누아르 영화를 찾는다면 괜찮을지도..
조직 간의 세력 싸움, 믿음과 배신, 믿었던 이의 배신으로 인해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게 된 남자, 그리고 정말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 배신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남자, 명확한 이유도 모른 채 하나뿐인 피붙이를 잃은 여자. <낙원의 밤>의 주인공인 태구와 재연에게 남은 건 ‘나’ 하나뿐이다. 나만 남아버린 삶. 두 사람은 낙원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제주도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한다. 얼른 사라져버렸으면 싶은, 절대 얽히기 싫은 사람이 어느새 유일한 친구가 되고, 나의 안부를 물어봐 주는 마지막 사람이 된다.
완벽한 낙원에서 보내는 밤이라기보단 낙원이었던 곳에서의 밤, 그리고 진짜 낙원으로 떠나기 위한 밤. 그러한 의미를 지닌듯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질러댄 악이 가득했던 낙원의 그날 밤을 들여다본다.
낙원의 밤 시놉시스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이 영화 속에 낙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조폭 세계에 몸담고 있는 주인공 태구, 총기 거래를 하는 삼촌 쿠토와 함께 살고 있는 재연. 그리고 비열한 양 사장과 사람 사이에 앙금을 두고 보지 못하는 마 이사. 서로에게 살벌한 눈빛을 뿜어대고 있는 이들이 만났는데, 이들 사이에 낙원이라는 환상적인 장소가 존재할 리가 없다.
태구와 재연은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제주도에서 만나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태구는 양 사장의 계략으로 인해 마지막 남은 피붙이인 이복누나와 조카를 잃는다. 재연의 부모님은 삼촌 쿠토와 연루되어 있다는 이유로 살해당했고, 쿠토 또한 배신으로 목숨을 잃는다. 재연은 쿠토가 차라리 죽었다면, 없어졌다면, 부모님과 엮이지 않았다면 하고 원망하기도 했지만, 유일하게 남아있던 피붙이인 그를 의지하며 살아왔다.
태구와 재연은 피를 나누거나 함께 자란 사이는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낀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사람의 외로움. 모든 걸 잃은 사람의 분노, 복수심.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삶에 대한 허망함. 이러한 감정들은 두 사람의 거리를 좁혀주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공감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감정은 흔치 않으니 말이다. 마치 재연이 태구에게 도움을 청하던 것처럼, 재연이 쓰러지며 자동차의 클랙슨이 세차게 울리던 순간부터,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아무리 높아도 20%인 생존율,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생. 양 사장의 배신으로 눈앞에 성큼 다가온 죽음. 삶의 끝에 서 있던 두 사람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지붕 아래서 함께 잠이 든다. 누나와 함께 먹고 싶었던 어머니와의 추억을 담은 물회, 죽어서도 생각날 것 같은 물회. 위험을 직감했지만 잠시나마 포근한 침대에서 눈을 붙일 수 있었던 펜션. 온갖 걱정과 슬픔을 말아 함께 피던 담배. 두 사람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어떤 내일을 꿈꿨을까? 아니, 어떤 죽음을 생각했을까.
배신, 승리, 패배 뒤에는 복수가 따라붙는다. 당했으니 그만큼 갚아줘야 한다. 계산은 확실해야 하니까. 재연은 자신의 삼촌이 했던 것처럼 소중한 사람을 앗아간 사람들에게 복수를 한다. 재연의 부모님이 살해당한 후, 쿠토는 그들에게 복수를 한다. 꽤 많은 수의 러시아 조폭들을 한 번에 처리했다는 쿠토의 이야기는 조폭 세계에서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삼촌을 통해 배운 것인지, 정확한 사격실력을 뽐내던 재연은 자신의 머리 가까이 대고 있던 총구를 돌려 마 이사와 그의 부하들에게 겨눈다. 그리고 삼촌이 했던 것처럼, 오랜 시간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릴 완벽한 복수에 성공한다.
나의 상태를 걱정해 주던 사람, 빈말일지 몰라도 “괜찮냐”라고 물어주던 사람, 비슷한 처지가 되어버린, 나처럼 홀로 남겨진 사람. 관자놀이 옆에 위치한 총을 치워준 사람. 그와 엮이고 싶지 않다고 느꼈지만 어느 순간 지독하게 엮여버린 마음. 그리고 그것을 끊어낸 배신과 죽음. 재연과 태구는 견디기 힘든 현실을 뒤로하고 새로운 낙원으로 향한다.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와 20%의 수술 성공 확률을 보장받는 미국이 아닌, 수평선 너머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을 이승이 아닌 그곳으로 말이다. 연이어 지옥 같은 현실을 떠난 태구와 재연은 함께 먹었던 물회 맛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완벽하게 냉혈 하다기보단, 조금은 인간적이었기에 더욱 찝찝한 마음이 남는다. 누아르물 특유의 하드함과 마음껏 비난하고 싶었던 배신과 잔혹함, 그리고 기대엔 조금 미치지 못했던 이야기가 내 마음을 들쑤셔놓은 영화였다. 아쉬움으로 끌어내릴 정도의 영화는 아니었지만, <신세계>를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수도 있는 정도. 딱 그 정도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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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우마와 싸우는 두 사람의 이야기
누군가가 눈 앞에서 죽음을 목격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이런 죽음을 목격하는 것 자체가 보통의 삶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장면은 아니다. 꼭 죽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사고를 목격하는 것도 그것을 목격한 개인에게는 큰 타격을 준다. 개인의 머릿속에 남아서 계속 그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리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생성된 트라우마는 꽤 오랜 기간 당사자를 괴롭힌다. 옆에 있는 사람들의 위로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만큼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것은 개인에게는 큰 싸움이자 전투와도 같다.
특히 누군가의 사고를 보고 경험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그런 끔찍한 일들을 종종 목격한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들도 있고, 특히나 재난 상황에서 누군가를 구해야 하는 소방관들은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 자주 놓인다. 큰 불 속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며 불을 끄다가도 미처 구하지 못한 인원들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그런 과정에서 소방관 동료가 죽거나 여러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소방관도 생겨난다. 여러 가지 심리 상담 등에도 불구하고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소방관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두 인물의 이야기
영화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그런 사고의 트라우마 속에 갇혀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공수 소방대원 한나(안젤리나 졸리)는 과거 큰 산불 진화 작업에서 산불에 갇힌 세 소년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주변 동료들 앞에서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혼자 있을 때는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하고 눈물을 흘린다. 영화는 그 앞에 또 다른 트라우마를 가진 소년 코너(핀 리틀)를 등장시킨다. 코너는 눈 앞에서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걸 목격하고 킬러들을 피해 도망치고 있는 인물이다. 회계사였던 코너의 아버지는 누군가의 비리를 알게 되었고, 그 증거를 죽기 전 코너에게 넘긴다. 그래서 코너는 숲으로 도망치고 숲에서 산불감시를 하던 한나를 만나게 된다.
영화는 한나가 가진 트라우마와 코너가 가진 트라우마가 만나 같이 그 트라우마를 희석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전혀 모르는 사이였던 두 사람이지만 첫 만남 이후 왠지 두 사람은 상대방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는 코너의 눈을 한나는 한눈에 파악하고 그를 안심시키는데 사실 여기에 특별한 방법은 없다. 그저 조용히 손을 내밀어 도움을 주고, 천천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의 이야기도 하게 된다. 영화 중반 이후 그들은 서로가 가진 트라우마를 바라보고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그 상황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애쓴다.
한나와 코너 이외에도 지역 보안관 에단(존 번탈)이 등장한다. 코너와 친척관계에 있는 그는 한나와 같은 지역에 거주하고, 과거에 연인관계였던 인물이다. 그는 한나의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인물로 한나가 하는 여러 가지 기행들을 막으면서 도움을 주려 하는 인물이다. 배우 존 번탈이 연기하는 에단은 무심해 보이지만 주변 사람을 아끼고 챙기려 하는 착한 인물이다. 존 번탈이 가장 잘하는 연기 패턴이기도 해서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의 주변부에서 보이지 않게 챙겨주는 인물을 잘 묘사하고 있다.
흩뿌려진 이야기가 합쳐지며 만들어지는 긴장감
사실 영화의 초반부에는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흩뿌려져 있다. 한나의 이야기와 코너의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전개되지만, 에단과 그의 아내 이야기 그리고 두 킬러의 이야기가 각각 보이면서 각 인물들에 대한 소개를 함과 동시에 각 캐릭터들의 과거와 성향들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영화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이 인물들을 한 지역의 장소로 서서히 모이게 한다. 마치 산불이 조금씩 나무들을 태워 나가서 산불이 없는 곳을 포위해가는 것처럼 각 인물들은 자연스럽게 숲으로 들어오고 서로 서서히 가까워진다. 그 과정에서 긴장감은 서서히 달아오르고 이들이 한 자리에 모인 순간부터 추격전이 시작된다. 그 추격전은 두 킬러로 인해 발생한 것이지만 이들이 일부러 만든 산불도 각 인물들을 조여들며 긴장을 만들어낸다.
감독 타일러 쉐리던은 <시카리오:암살자들의 도시>(2015)와 <시카리오:데이 오브 솔다도>(2018)의 각본을 썼다. 액션을 아무 의미 없이 나열하기보다는 각 캐릭터의 특성을 이용해 보는 관객을 옥죄어 스릴을 유발하는 이야기를 잘 쓰는 각본가였다. 그는 2016년 영화 <윈드리버>를 연출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아주 건조한 듯 보이지만 울분으로 가득 차 있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일종의 복수극을 보여줬다. 역시 긴장감을 서서히 높여 폭발하듯 벌어지는 액션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이번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은 감독의 스타일대로 서서히 긴장을 끌어올려 폭발하듯 벌어지는 액션 장면이 그대로 포함되어 있고 전작들에 대비해서 스케일을 키워 좀 더 대중적으로 접근한 영화라는 느낌이 든다.
트라우마와 대결하는 듯한 클라이맥스 추격 장면
무엇보다 <윈드리버>의 주인공들 역시 어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그것으로 인한 심리적인 고통을 보여줬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트라우마를 가진 두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들이 서로 힘을 합해 그 트라우마에 대항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한나와 코너가 한 킬러와 대결하는 장면은 마치 이 둘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와 대결을 벌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한나는 구하지 못했던 산불 속 소년들의 모습을 코너에게서 보고, 코너는 미처 구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한나에게서 본다. 그런 부분들이 더욱 그 둘이 상대방을 구하려고 애쓰게 만든다.
한나 역할을 맡은 안젤라나 졸리는 감성적인 연기와 액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배우다.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로 인해 눈물 흘리던 한나의 모습을 보여주던 그는 부모를 잃고 겁에 질려있는 소년 코너를 보고 그를 지키려는 액션을 훌륭하게 보여준다. 그가 흘리는 눈물과 진심으로 코너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은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끌어안는듯한 느낌을 준다. 완전히 겁에 질린 소년 코너를 연기하는 핀 리틀의 연기도 인상적이다. 완전한 상실감과 공포심에 사로 잡힌 코너의 모습을 움츠러든 몸과 불안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두 킬러 잭(에이단 길런)과 패트릭(니콜라스 홀트)이 등장한다. 이 둘이 영화 초반 보여주는 행동에는 인정사정이 없다. 목격자는 과감히 처리하고, 증거를 남기지 않는 완벽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악역의 총명함이 사라지고 점점 바보 같은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물론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지지는 않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실소를 자아내게 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이 두 킬러가 보여주는 후반부의 모습이다. 오히려 갑자기 바보가 된 두 킬러보다 산불이 더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어쨌든 영화는 스릴러 영화로서 기본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데는 성공한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가진 두 인물을 등장시켜 그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비록 두 인물의 트라우마가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렵겠지만 영화의 말미 한나의 대사처럼 어떤 후련함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것을 보는 인물 또한 약간의 시원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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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더> - ‘아주 평범한 기적이 깃든 우주’
원더 (Wonder)
개봉일 : 2017.12.27
감독 : 스티븐 크보스키
출연 : 제이콥 트렘블레이, 줄리아 로버츠, 오웬 윌슨, 이자벨라 비도빅, 노아 주프, 브라이스 게이사르
‘아주 평범한 기적이 깃든 우주’
“나는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없을 거다.” 이제 5학년이 되는 작은 덩치의 남자아이 ‘어기’가 말한다. 어기에 대해 말해주자면 이런저런 할 말이 많다. 남들과 조금 다르게 태어나 첫 숨을 내뱉고, 건강히 자라기 위해 27번의 수술을 거친 아이. 다른 이의 시선이 불편해 집안에서 쉽게 나가지 못하는 아이. 커다란 우주 헬멧을 쓰고 우주비행사가 되는 걸 꿈꾸는 아이. 누구보다 총명하지만 자만하지 않는 아이. 하지만 아직 많은 이가 알아주지 못한, 숨어서 빛나고 있는 아이. <원더>를 보면서 내내 마음속으로 외쳤다. “사랑스러운 우리 어기. 사랑스러운 아이들. 너무 예쁘다.” 어기를 포함해 등장하는 여러 아이들의 모습 또한 정말 사랑스러워서 중간중간 절로 웃음이 났다.
태어나자마자 갖게 된 상처들은 어기의 얼굴에 흔적을 남겼고, 어기는 그 흔적들을 가리고 싶어 한다.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라기보단, 남들의 시선이 부끄러워서. 가족들은 밖으로 나가길 꺼리는 어기를 위해 많은 걸 배려한다. 엄마 이자벨은 석사학위를 잠시 내려놓고 어기를 위해 홈스쿨링을 했으며 누나인 비아는 어릴 적부터 어기를 챙기며 엄마 아빠를 걱정시키지 않는 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어기의 가족들은 태양처럼 빛나는 어기를 중심으로 도는 하나의 우주다.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생각, 나의 단점으로 비칠 수 있는 시간의 흔적을 가려야 한다는 부담감, 남들의 시선 앞에서 선뜻 용기를 낼 수 없었던 상황을 마주하고, 그것에 좌절해본 적이 한 번쯤은 있지 않은가? 나는 평범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그 무엇도 아니라는 우울한 마음이 들 때 <원더>를 추천한다. 당신이 굉장한 우주를 갖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도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
각자의 고민과 아픔 앞에서 좌절하고 무릎 꿇는것이 아닌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끝없이 날갯짓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예뻤다. 그리고 아이들의 힘의 원천인 가족애와 우정이 눈부시게 빛나는 영화였다.
원더 시놉시스
누구보다 위트 있고 호기심 많은 매력 부자 ‘어기'. 하지만 남들과 다른 외모로 태어난 ‘어기'는 모두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대신 얼굴을 감출 수 있는 할로윈을 더 좋아한다. 10살이 된 아들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엄마 ‘이사벨’과 아빠 ‘네이트’는 ‘어기'를 학교에 보낼 준비를 하고, 동생에게 모든 것을 양보해왔지만 누구보다 그를 사랑하는 누나 ‘비아'도 ‘어기'의 첫걸음을 응원해준다.
그렇게 가족이 세상의 전부였던 ‘어기'는 처음으로 헬멧을 벗고 낯선 세상에 용감하게 첫발을 내딛지만 첫날부터 ‘남다른 외모'로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 사람들의 시선에 큰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어기'는 27번의 성형(?)수술을 견뎌낸 긍정적인 성격으로 다시 한번 용기를 내고,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 변하기 시작하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이륙 준비 완료”
5학년이 될 때까지 또래 친구를 사귀거나 학교를 다녀본 적 없는 어기를 위해 엄마 이자벨과 아빠 네이트는 큰마음을 먹고 어기를 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한다. 집안에서 아빠와 광선검으로 칼싸움을 하고, 엄마와 함께 공부를 하고, 자신만의 우주인 작은 방 안에서 뛰놀기만 했던 어기에게 또래 친구들이 가득한 학교에 간다는 건 또 다른 행성에 착륙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릴 적부터 자신의 외모가 눈에 띈다는 걸 인지하고 있던 어기에게 다양한 눈빛으로 쳐다볼 불특정 다수 사이로 들어간다는 건 두렵고, 겁나는 일이었다.
어기는 얼굴에 난 상처들을 가리고 싶을 때, 혼자 있거나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헬멧을 쓴다. 또래보다 조금 왜소한 어기의 어깨를 꽉 채운 채 얹혀있는 헬멧은 어기를 잠시나마 우주로 보내준다. 어기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우주에서 자유를 만끽한다. 하지만 이젠 얼굴을 가리고 있던 헬멧을 내려놓고 우주가 아닌 지구로 돌아올 시간이 되었다.
이미 서로 아는 아이들, 끼리끼리 모여 자연스레 어울리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 쭈뼛쭈뼛 등장한 어기에게 아이들은 여러 의미를 담은 시선을 보낸다. 어기는 자신을 지구에 내려온 츄바카 같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얼굴에 흔적이 있어.”
신발을 물려신는 집안의 아들 잭, 잘 사는 집안의 아들 줄리안, 이상한 애 샬롯. 어기는 처음 본 친구들의 눈빛과 신발을 보며 그들에 대해 추측해본다. 어기가 여느 아이들에 비해 눈치와 상황 판단이 빠른 건 어기가 총명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자랐다는 반증 같아서 마음 한편이 아렸다. 첫 등교 날 줄리안과 몇몇 친구들에 의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어기는 소중히 길러온 머리를 자르고 헬멧을 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 평소답지 않게 말없이 헬멧을 벗지 않는 어기를 걱정하던 이자벨은 어기의 옆에 앉아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누구나 얼굴에 흔적이 있어. 얼굴은 우리가 갈 길을 보여주는 지도이자 우리가 지나온 길을 보여주는 지도야.”
어기의 얼굴에 생긴 흔적들은 흉한 흉터가 아닌 수많은 위기와 아픔을 견뎌낸 어기의 용기와 인내심, 그리고 가족들의 사랑이 담긴 지도다. 이 지도는 어기가 기적과도 같은 아이임을 말해주는 가장 큰 증거이자, 앞으로 어기가 걸어갈 수많은 길을 안내한다. 어기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사랑을 통해 우주가 아닌 지구로 돌아가는 길을 무사히 찾게 된다.
“한 번만 그 눈으로 날 봐주길 바랄 뿐이다.”
어기가 엄마 아빠의 사랑을 잔뜩 받으며 침대에서 잠들 때, 어기의 누나 비아는 다정한 세 사람을 바라보다가 홀로 방으로 들어간다. 동생을 갖고 싶다는 소원을 빈 끝에 얻은 소중한 동생 어기는 어릴 때부터 자주 아파 매일같이 엄마 아빠를 걱정시켰다. 비아는 엄마 아빠만큼 동생을 사랑하기에 엄마 아빠가 아픈 동생을 더 신경쓰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다. 이 집의 주인공이 동생이어도 괜찮았고, 엄마 아빠의 문제를 하나 더 늘리지 않도록 노력해 야했다. 아무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한 적은 없지만 비아는 첫재로서, 아픈 동생의 누나로서 책임감을 갖고 부정적인 말 한번 하지 않고 묵묵히 어기를 챙긴다.
어기가 처음으로 학교에 간 날, 비아도 새로운 학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새 학기 첫날이 이렇게 엉망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엄마 아빠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도 털어놓을 수 있었던 절친 미란다가 자신을 모르는척하기 시작했고, 드넓은 우주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든다. 터덜터덜 걸어가던 비아에게 친절한 말씨를 뽐내는 저스틴이 다가오고, 비아는 새로운 친구 앞에서 공통점을 어필하기 위해 얼떨결에 외동이라는 거짓말을 한다.
항상 어른스럽게, 괜찮은 척 지내왔지만 어기의 누나이기 전에 비아도 이자벨과 네이트의 어린 딸이다. 비아도 어리광 부리고 싶을 때가 있었을 것이고, 엄마 아빠의 우주에 중심에 있고 싶었을것이다. 비아는 아픈 동생을 위해 어기의 누나 역할을 집어 들고, 어린 딸의 역할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어기라는 우주를 따라 돌거나 그 뒤로 숨는 위성이 되어 살아간다.
저스틴은 비아의 말에 진심으로 집중해 주는 친구다. 저스틴은 자기 얘기하기에 바쁜 연극부 아이들과는 달리 남들의 이야기를 듣고 무대 앞이 아닌 무대 뒤가 좋다고 말하는 비아를 신기해하며 만일 비아가 무대에 오른다면 혼자라도 박수를 쳐주겠다고 약속한다. 비아는 저스틴의 말에 용기를 내 무대 위에 오르기 위해 오디션을 치르고, 미란다의 양보 덕분에 주인공으로서 무대에 서게 된다. 엄마, 아빠, 동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첫 무대를 마친 비아는 벅찬 표정으로 가족의 품에 안긴다.
“넌 너무 신비로워서 아무도 못 알아보는 거야.”
비아가 연기했던 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충분히 아름답고 대견한 자신에게, 그리고 비아의 연극과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비아가 전하는 마음처럼 느껴진 대사였다. 만일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당장 그 생각을 저 멀리 우주로 날려버리길 바란다. 당신이 너무 빛나고, 신비롭기에 남들이 당신의 진정한 가치를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니까 절대 실망하지 말라고, 낙담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진정한 친구가 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기는 5학년의 나이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학교에 간다. 그전까지는 또래 친구들을 한 번도 사귀어본 적 없었기에 어기에게 친구는 비아와 강아지 데이지가 전부였다. 잭을 만나며 드디어 나에게도 친구가 생기나-싶었지만, 줄리안과 함께 뒷얘기를 하고 있는 잭을 보고 어기는 크게 실망한다. 우주복을 입고 달 위를 뛰어다니는듯했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고, 어기는 다시 헬멧 속에 숨어버린다.
잭은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계속해서 어기를 놀리는 줄리안과 한판 싸움을 한다. 잭도 처음엔 그저 선생님, 엄마의 부탁으로 인해 어기와 함께 어울렸지만, 어기의 친절함과 재치 넘치는 모습에 반해 진심으로 어기와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잭은 선생님에게 사과 편지를 쓰고 근신 처분을 받지만, 다시 용기를 내 어기에게 다가간다.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땐 친절함을 선택해라.”
초등학교 고학년쯤부터 많은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는다.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은 가족보다는 친구들과의 소속감을 중요시하게 된다. 나와 다른 것이 있다면 틀린 것이고, 친구가 맞다고 하면 쉽게 휩쓸리기도 하는 것이 그때의 아이들이다. 소위 잘 사는 집안의 아들이자 선생님들의 총애를 받고 있는 줄리안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아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 교실의 실세랄까. 아이들은 낯선 모습의 어기를 쉽게 받아주지 않았고, 어기를 괴롭히는 줄리안의 행동을 저지하지 못한다. 교실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줄리안처럼 어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건 ‘옳은 일’축에 끼는 분위기였으니까.
브라운 선생님은 매주 아이들에게 새로운 격언을 가르친다. 가장 먼저 가르친 격언은 “옳음과 친절함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땐 친절함을 선택해라.”였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이 알려준 격언을 따라 행동한다. 잭과 썸머는 다수의 시선이 만든 ‘옳은 배척’이 아닌 친절함을 베풀었고, 나는 그 아이들의 용기가 정말 대단한 것이라 칭찬하고 싶다.
“이겼니?”
수학여행에서 싸움을 했다는 어기의 말에 걱정하던 네이트가 뒤이어 묻는다. 그 싸움에서 이겼느냐고. 네이트는 어기의 첫 등교 날, 아는 것이 있어도 한 번만 손을 들고 과학시간엔 모두 밟아버리라고 말하며 어기에게 힘을 실어준다. 어기는 아빠의 말대로 과학시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수업을 들으며 즐거움을 찾는다.
어기가 처음 학교를 구경하던 날, 줄리안은 어기를 한껏 내려다보며 과학은 선택과목이라 어려울 것이라고 무시했지만 어기는 과학경진 대회에서는 줄리안의 팀을 가볍게 재끼고 당당히 1등을 차지한다.
“넌 기적 같은 아이야.”
어기는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도 평범한 사람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사람은 없다. 모두가 각자의 특별함으로 빛나고 있으니 우리는 평범하기보단 각자 다른 형태의 특별함을 가진 사람들이다. 나는 내 우주의 중심이다. 난 하나의 태양을 두고 돌고 있는 가려진 위성이 아닌 다른 우주의 옆에 머물고 있는 또 다른 하나의 우주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리고 다른 이의 우주도 나의 우주만큼 특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함을 잊지 말자.
상대의 외적인 형태가 아닌 그의 눈과 그의 얼굴에 남아있는 흔적들을 바라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지? 그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말을 하며 살아왔는지 또 어떤 흔적을 남기며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는지. 그의 우주엔 어떤 것들이 가득 차있는지.. 그리고 나의 우주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어떤 이야기를 남들에게 말해주고 싶은지에 대해 천천히 살펴본 게 언제였는지.. 부끄럽지만 너무 멀어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나는 언제나 내가 부끄러웠고, 평범함이라는 단어조차 뚫고 내려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원더>는 이런 나의 부끄러운 우주에 대해,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에 대해, 우리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선물한 영화였다.
나는 여전히 어기처럼 커다란 헬멧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꺼내 쓰고 있다. 생각 한번, 다짐 한 번으로 마음을 바꿀 수 있을 만큼의 긍정적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여전히 용기 내는 것이 어렵지만, 언젠가는 이 헬멧을 벗어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만일 처음 학교에 가던 날의 어기와 나처럼 무거운 헬멧을 쓰고 있는 사람이 이 글을, 이 영화를 보고 있다면 당신도 충분히 특별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더 마음껏 사랑하고 믿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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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드라마] 내 어깨위 고양이 밥2
<영화정보>
개 봉 : 2020.12.24.
등 급 : 전체 관람가
장 르 : 가족, 드라마
국 가 : 영국
러닝타임 : 92분
배 급 : ㈜영화특별시SMC
<영화소개>
기적 같은 만남 이후 여전히 런던에서 버스킹을 하며 빅이슈 판매원으로 지내는 제임스와 그의 소울메이트 어깨냥 밥. 누구보다 밥을 아끼는 제임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에 밥과 헤어질 위기에 처하는데…
<영화내용>
연례 크리스마스 작가의 밤 행사에 초대된 밥과 제임스
그리고 출판사쪽에서 새로운 책을 쓰고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하지만 단 한단어도 쓰지 못한걸 재클린에게 들키고만다
행사장을 빠져나온 제임스와 밥은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던 제임스는 버스킹중에 잡힌 노숙인을 도와준다
그 노숙인을 체포해 경찰에 넘긴 사람은 자신을 신고하고 다신 밥을 만사지 못하게 하려했던 사람이었다
노숙인의 버스킹이 불법이 아니었음을 알려주고 풀려난 노숙인에게 밥을 사주며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해준다
제임스의 집 근처 가게의 주인 무스는 제임스에게 친절하고
제임스를 도와주는 친구 베아는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 위해 제임스 집을 꾸며준다.
제임스는 버스킹을 하며 잡지를 팔러 나갈 때 다연하다는 듯 따라나서는 밥을 어쩔수없이 데려간다.
크리스마스였지만 제임스를 경계하는 훼방꾼들로 인해 잡지도 팔지 못하게 되고 버스킹도 못한채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집을 가던 중 넘어질뻔한 여성을 도와준다.
버스킹중 옆에 앉아있던 밥은 개에게 공격당하고, 이 모습을 지켜보던 동물보안관 루스와 함께있던 남자는 제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고양이가 불쌍해 보인다며 보안관 루스를 설득하지만 루스는 밥을 공격한 개의 주인에게 간다.
집에 돌아간 제임스는 밥에게 저녁을 주지만 밥은 먹지 않으려하고, 제임스는 밥의 몸에 난 상처를 확인하게 된다
다음날 제임스는 친구 베아가 추천한 친구의 무료 동물검진에 간다.
어딜가나 밥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밥의 팬인 아이린은 밥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다.
그리고 아이린이 준 밥의 선물을 입고 제임스는 버스킹에서 밥캐롤송을 부르고
이틀뒤 관광객들을 위해 버스킹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동물보호보안관 루스는 제임스를 찾아와 밥에 대해 물어보고 진술서를 써달라고하며 제임스가 밥을 키울수있을지 조사를 한다.
보증인으로 자선단체에서 일하던 베아의 연락처를 알려주는 중 제임스를 마음어ㅣ 안들어하던 조사관은 밥을 제임스가 키우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자신이 밥을 데려갈수도있다고 말하면서 제임스를 도발한다. 화가 난 제임스는 보안관과 싸우게 되고 그 모습을 누군가가 찍는다.
놀란 제임스는 베아를 찾아가지만 자선단체에 도둑이 들었고 베아는 제임스의 얘기를 들을 여유가 없다.
제임스는 관광객 버스킹을 하기로 한 날 약속 장소로 가던 중 공원에서 마약판매상을 만나 몸싸움을 하다가 기타가 부서진다.
그리고 동물보호협회에 제임스와 조사관의 싸움장면이 담긴 영상이 메일로 오게되고, 그들은 자신들이 언론에 거론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임스에 대해 더 조사하고 영상을 찍은 목격자를 찾도록한다. 그리고 밥이 정상행동패턴을 보이는지 관찰하라그한다
마약판매상과의 몸싸움으로 약속 시간에 늦어버렸고, 제임스가 관광객 버스킹 공연장소에 갔을때 관광객들은 이미 돌아가는중이었다. 집에 돌아온 제임스는 외출전 히터를 끄고 가지 않아 충전한 전기를 다 써버려 실내가 너무 추웠고 냉장고도 꺼져 음식이 다 상했다.
제임스가 전기를 충전하러 무스의 가게에 간 사이 밥은 쓰레기통을 뒤져서 음식을 먹고 있었고, 집에 돌아온 제임스는 놀라서 밥을 말린다.
동물보호협회에선 TV에 나와 밥과 제임스를 아는 사람을 찾는다는 얘기를 한다.
베아를 찾아간 루스는 제임스가 약물치료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리고 베아는 제임스가 밥을 잘 돌보고 있으며, 매일 아침 나서기 전 밥에게 항상 함께 나갈것인지 물어 보고 밥의 동의에 의해 함께 동행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버스킹을 위해 제임스가 집을 나설때 밥은 쇼파에 가만히 누워있었고,
밥이 나가기싫어한다고 생각한 제임스는 밥을 두고 버스킹하러 나간다.
집으로 돌아가던 제잉스는 함께 잡지를 파는 사람들을 만나 맥주를 마시게 되고 늦게 귀가한다.
집에 돌아와 밥에게 밥을 챙겨주려던 제임스는 토해 놓은것을 보고 밥이 아픈것을 알게된다.
베아의 친구 수의사에게 급하게 연락을 하지만 연락이 닿지 않고
제임스는 무스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제임스를 도와주러 온 무스는 아들을 잃은 이야기를 하며 제임스를 위로 한다.
제임스는 아픈 밥을 보며 추운날씨에 밥을 데려가는게 아니었다고 후회하고 동물보호단체가 데려가는게 맞는걸까라고 생각한다.
밤새 제임스는 밥을 돌보고
다음날 밥은 기운을 차려간다.
다음날 수의사가 왔고 밥은 배탈이 난거라고 했다.
크리스마스날 버스킹을 하러간 제임스는 사람들로 부터 많은 축하와 선물 카드를 받는다.
다가오는 동물보안관 루스를 보며 제임스는 밥이 더 나은 곳에서 생활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밥을 보내려했지만 루스는 둘은 떨어져지낼수 없다고 말한다.
동물보호협회에 많은 사람들이 제임스와 밥에 대한 알고 있다는 소식을 많이 전해지고 있었다며 제임스와 밥으로 인해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한 편지를 읽어준다. 그리고 무디로 인해 밥과 제임스에 대한 청원이 시작되었고, 하루만에 800명의 서명이 이루어졌다.
'영감을 주는 동물들'이라는 동물들과 함께 환자들의 마음을 치료해주는 자선단체에서 제임스와 밥을 홍보대사로 임명하고 싶어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제임스에 길에서 도와주었던 여성은 크리스마스선물을 가지고나타난다
그녀른 유명한 셰프였고 여왕의 사촌이라고 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한다.
현재의 크리스마스
제임스가 도와주었던 노숙자 벤과 베어와 함께 크리스마스식사를 하고
제임스를 책을 다시 쓰게 된다.
"밥은 나에게 친구 이상이었다
내 곁에서 내가 잊고 있던 삶의 방향과 목표를 찾아줬다
언제까지나 그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 밥의 집사, 제임스 보웬의 부고문 중 -
<영화속 대사>
"네가 얼마를 버는지는 관심 없어.
만난게 행운이라고.
누군가를 돌보게 되면
삶의 의미가 생기거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거지"
"
과거가 미래의 발목을 잡게 해선 안돼
그럼 가야할 곳으로 갈 수 있어"
<리뷰>
작년 #내어깨위고양이밥2 개봉 소식을 듣고 여러가지 뉴스들을 검색하던 중 밥이 고양이별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제임스가 쓴 밥의 부고문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밥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었고, 자신의 역할을 직접 연기를 한 것 또한 너무 똑똑하고 영리한 고양이였다.
영화 촬영을 하고 고양이별로 갔다니 그 기사를 보는 순간에도 너무 슬펐다.
직접 본 적도 없고 영화로만 만난 나도 이렇게 슬픈데 제임스는 얼마나 슬펐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밥으로 인해 제임스의 인생은 영화같았고, 변할 수 있었다.
물론 제임스의 마음과 노력도 컸다.
그런 마음을 먹기 까지, 그런 노력을 하기까지 밥의 도움이 컸다.
유튜브에 보면 제임스의 버스킹 현장에 함께 있는 밥의 모습과 하이파이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국에 동물보안관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누구보다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을 잘 아는 사람.
오직 동물들의 복지만을 위하는 일을 하는 직업이 있다는게 놀랍기도 하고 부러웠다
우리나라도 동물들을 위한 제도가 더 많아지고 동물들을 보호 할 수 있는 법의 테두리가 더 강화되고 새로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겠됐다.
밥을 다시 볼 순 없겠지만 동물들에게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누군가에겐 은인이 될 수 있다는 것.
많은 것을 느끼게 된 영화였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exceptional ruby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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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밀러가 들려주는 스펙터클한 옛날이야기
7★/10★
*글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연구하는 서사학자 알리테아. 그는 여느 때처럼 세계 곳곳의 서사를 연구하기 위해 이스탄불로 떠나 학회에 참여한다. 그런데 학회에서 환영 같은 것을 보고 쓰러지는 일을 겪는다. 과학이 이야기를 대체하리라는 발표를 하던 중 성난 표정의 환영을 마주해 졸도한 것이다. 몸을 추스른 알리테아는 동료와 함께 런던으로 떠나기 전 기념품 가게에 가고, 볼품없지만 왜인지 마음이 가는 조그마한 램프를 구매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램프는 소원을 들어주는 정령 지니가 들어 있는 특별한 물건이었다. 알리테아가 램프에 묻은 그을음을 닦아내자 200년간 램프에 갇혀 있던 지니가 나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알리테아는 서사학자다. 그녀는 섣부른 소원이 얼마나 심각한 파멸로 이어지는지에 관한 수많은 예를 알고 있다. 때문에 지니의 제안을 거부하고 소원을 말하지 않겠다고 한다. 자신을 램프에서 꺼내준 사람의 소원을 들어줘야 정령들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는 지니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그러나 노련한 서사학자 알리테아는 오히려 지니에게 지금껏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캐묻는다. ‘직업 본능’이 발동한 것. 이제부터 수천 년을 걸쳐 지니가 알리테아에게 오기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첫 번째는 지니가 관능적 사랑에 한껏 몰입한 여인 시바와의 이야기다. 두 번째는 노예였으나 오스만 제국 술탄에 오를 남자의 사랑을 받게 된 여인 갈텐의 이야기다. 세 번째는 전쟁광이었던 왕 무라드와 그의 동생, 그리고 왕국의 흥망성쇠에 관여한 이야기다. 마지막은 늙은 남자에게 팔려가듯 시집 간 천재적인 두뇌를 지닌 여인 제피르와 사랑을 나눈 이야기다(이 네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독특한 비주얼과 결합해 흡인력을 한껏 높인다. 지니의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면…!)
이 네 번의 기회에서 지니는 매번 인간의 세 가지 소원을 온전히 들어주고 정령의 세계로 돌아가는 데 실패했다. 인간이 자기 욕심에 눈이 멀어 이루어질 수 없는 소원을 빌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니 역시 그 인간의 욕망에 엮여 자신의 목적을 잃었기 때문이다. 지니가 수천 년에 걸친 상승과 파국의 이야기를 알리테아에게 상세히 들려주는 이유는 뭘까? 섣부른 욕심과 감당할 수 없는 욕망으로 ‘실패’한 역사를 들려주어 알리테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참고할 만한 사례를 충분히 들려주어 소원을 빌기를 두려워하는 알리테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지니의 계획은 성공했다. 전 남편과 이혼 후 감정적으로 메마른 삶을 살던 알리테아는 지니가 들려준 모든 이야기의 공통적인 특징, 즉 ‘갈망’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느끼기 시작한다. 지니의 이야기가 알리테아의 갈망을 일깨운 것이다. 알리테아의 숨은 갈망은 사랑이었다. 그녀의 사랑은 사라진 갈망을 되찾아준 지니를 향했다. 따라서 그녀의 첫 번째 소원은 지니의 사랑을 약속받는 것이다. 알리테아는 지니가 이전에 만났던 사람들처럼 거대한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처럼 몰락할 일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알리테아는 곧 소원의 형태로 지속되는 사랑이 속박의 다른 이름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런던에 있는 알리테아와 함께 사는 지니는 빠른 속도로 변화한 세상의 소음을 다소 버거워한다. 하지만 알리테아의 소원에 묶여 그 고통을 홀로 감내하려 한다. 알리테아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지니가 다시 일깨워준 갈망을, 그리고 지니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지니를 정령의 세계로 보내줘야 한다는 것도 깨닫는다. 알리테아와 지니가 모두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랑하는 것만이 둘 모두를 위한 행복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요컨대, 〈3000년의 기다림〉은 이야기에 대한 지식은 해박하나 정작 이야기가 품은 갈망은 잊은 알리테아를 이야기의 힘으로 다시 일깨우는 이야기다. 이것이 〈매드맥스〉로 전 세계를 홀린 노장 조지 밀러가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야기의 얼개만 봤을 때, 혼자서도 행복한 여성이 사실은 결핍에 빠진 상태였다는 설정에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에 천착하여 이야기의 가치를 설파하는 감독의 집념이 돋보이는 것 역시 사실이다. 3000년의 기다림 끝에 마침내 자유를 얻은 지니와 그런 지니에게서 삶의 활력을 찾은 알리테아.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바로 이야기가 품은 지극히 인간적인 갈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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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프링 블라썸> 사랑이 피어나고, 소녀는 성인이 된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스프링 블라썸>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싫증이 난 '수잔(수잔 랭동)'. 맘껏 재잘거리는 친구들 사이에 있음에도 그녀의 세상은 조용하고 무료하다. 어느 날 그런 그녀에게 우연한 만남이 찾아오고, 수잔은 극장 앞에서 연극배우 '라파엘(아르노 발로아)'을 만난다. 수잔은 라파엘도 자신 못지 않게 권태로운 삶에 지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라파엘 역시 수잔의 고요한 일상에 깃든 공허함을 눈치 챈다. 서로를 엮어주는 공통점은 동질감으로, 더 나아가 호감과 사랑으로 이어지며 수잔과 라파엘은 연인이 된다. 그러나 우연히 찾아왔던 사랑은 이내 위기를 맞이하며 강한 애착으로 엮였던 두 사람의 관계는 시험대에 오른다.
수잔 랭동 감독의 데뷔작인 <스프링 블라썸>은 16살의 수잔이 35살의 라파엘을 만나 사랑의 싹을 틔우는 과정을 담은 영화로, ‘16살의 봄’이라는 뜻의 원제인 ‘Seize Printemps’에 충실한 작품이다. 사실 작중 수잔과 라파엘의 관계처럼 나이 차이가 큰 연애와 사랑은 편견 가득한 시선을 받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연인 중 한 명은 성인이고 다른 한 명이 미성년자라면, 순수한 사랑의 감정보다는 그 이면에 있을지도 모를 추악한 흑심이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스프링 블라썸> 속 사랑이 관객에게 소구력이 있으려면 영화는 불편한 사회적 시선이라는 장애물을 영리하게 피해 갈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수잔 랭동은 사랑의 시작과 그 감정선을 영리한 기교로 풀어내며 미션을 훌륭히 완수해낸다.
우선 영화는 수잔과 라파엘의 공통점을 부각하며 그들의 관계를 철저히 순수하고 낭만적인 사랑의 영역에 국한시키는 데 성공한다. 수잔과 라파엘은 권태에 빠진 이들이다. 수잔은 여자 친구들, 남자 친구들, 선생님, 자기 자신에게도 어떠한 흥미를 느끼지 못한 채 지쳐있고, 무료하고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라파엘도 마찬가지다. 오랜 기간 같은 연극을 반복해서 하고 있고, 나무 역할을 연기해야 되는 날도 있는 그도 일상에 지쳐 있다. 당장 연극이 행복한지, 연극을 즐기고 있는지 묻는 수잔에게 연기하는 법을 잊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고 말할 정도로.
또한 수잔과 라파엘은 신이 속해있는 곳에서 소속감에 들려고 하지 않는 아웃사이더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수잔은 남자애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파티에서 춤추자고 권유하는 친구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한다. 친구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도 그 손을 뿌리치기 일수이며, 그러다 보니 그녀는 자신이 속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한다. 라파엘도 마찬가지다. 그는 연극 후 회식 자리에서 도망치기 바쁘고,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도 대화에 쉽게 끼지 못한 채 묘하게 겉을 맴돈다. 무대가 끝난 뒤 커튼콜을 할 때도, 인사를 하거나 퇴장하는 타이밍을 한 박자씩 맞추지 못한 채 따로 행동한다. 이렇게 라파엘 역시 자신이 속한 곳에서 잎을 피우지 못한다.
이처럼 수잔과 라파엘이 각자 자신의 나이대에 맞는 사람이나 주변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두 주인공의 사랑을 순수한 감정의 영역에서 접근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스무 살가량 차이 나는 이들의 로맨스에서 현실적인 맥락을 제거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두 인물의 공통으로 갖는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부각하면서 그들을 여성과 남성, 미성년자와 성인 이전에 한 명 한 명의 개인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공통의 공허함은 빨간 석류 에이드를 함께 나눠 마시고, 아침을 같이 먹으며, 좋아하는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감으로 이어진다. 이는 동질감에서 비롯된 연대감으로 나아가고, 두 개인 사이에서 피어난 연대감은 마침내 사랑이라는 방점을 찍는다. 이렇게 영화는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오직 '나' 같은 '너'와 '너' 같은 '나'가 만나는 그 순간에만 주목하도록 유도하고, 뿌리내릴 곳 없던 두 사람이 함께 뿌리내리고 사랑의 꽃잎을 피우는 과정만 스크린 위에 띄우는 데 성공한다.
실제로 영화는 공감과 동질감이 낳은 연대가 사랑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묘사함에 있어서 그들을 둘러싼 여러 구체적이고 자질구레한 이야기들을 펼쳐놓지 않는다. 사랑이 위험에 빠지고 두 사람이 이별하더라도 그 이유나 사연을 설명하기보다는 과감하게 생략한다. 그저 그 사랑의 궤적을 쫓으며 그 순간순간마다 두 연인이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표현하는 데에 집중한다.
이러한 의도는 여러 기술적인 요소에서 엿보인다. 음악과 댄스가 대표적이다. <스프링 블라썸>은 두 연인이 춤추는 장면을 거듭 보여준다. 이때 평범한 서사에서 춤 장면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상당히 어색하다. 두 사람의 감정이 깊어지고 있고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하며 교감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려는 찰나에 직접적인 스킨십이나 대사 대신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들은 춤을 춘다. 그래서 카페 테이블에 앉아서, 연극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두 사람의 춤은 서로가 깊게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상상 속 교감에 가까워 보인다. 또 그렇기에 이 댄스신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합을 잘 맞춘 몸짓은 아니지만, 그 약간의 빗겨나감에서는 역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단단해지고 깊어지고 있는지가 자연스레 묻어난다. 수잔 랭동이 무용에 연극적인 요소를 결합한 ‘탄츠 테아트르’(Tanztheater, Dance Theatre) 형식의 퍼포먼스를 주로 선보이는 세계적 무용가 ‘피나 바우쉬’(Pina Baush)의 열렬한 팬이었다는 사실이 새감 실감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스프링 블라썸>에서 특히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이제 거의 몸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스마트폰이나 소셜 미디어가 일절 등장하지 않으며, 그렇기에 작중 시대적 배경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 빈자리는 종이 책과 휴대용 CD 플레이어가 대신하며, 이는 영화 전반적으로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불어넣는다. 달리 말하자면 시대를 막론하고 10대 시절을 겪었다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이 77분의 러닝타임 안에 가득한 것이며, 수잔을 보다 보면 <라붐>(1980)과 <귀여운 반항아>가 떠오르는 이유다. 이 역시 두 사람을 둘러싼 다양한 맥락 대신 그들의 감정 자체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사랑의 판타지 속으로 마냥 젖어드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수잔과 라파엘의 차이점, 성인과 그렇지 않은 이의 간극도 분명하게 또 반복해서 잡아주고 있다. 두 사람이 상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사는 장면만 보더라도, 라파엘은 자신의 담배를 사면서 동시에 수잔에게는 사탕을 선물해준다. 10대와 30대의 사랑과 그 간극이 동시에 느껴지는 순간인 것이다. 사탕과 담배 외에도 10대와 30대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소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석류 에이드와 맥주다. 맥주는 아직 수잔이 먹기에는 어린 나이에 해당되고 보통 어른들이 주로 마시므로 성인에 해당되고, 석류 에이드는 그에 반대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 같아 10대와 30대 간의 간극이 잘 보이는 순간이다. 또한 자연스럽게 스쿠터를 타고 수잔 집 앞에 간 라파엘과 그런 그에게 스쿠터가 무섭다며 타지 않겠다고 말하는 수잔의 모습에서도 석류 에이드와 맥주의 차이점이 엿보인다.
그리고 이 간극 덕분에 <스프링 블라썸>은 단순히 사랑이 시작되는 간질거림을 간직하는 데서 그치는 대신, 10대가 바라본 사랑의 경험과 그로부터의 성장, 곧 성인으로의 발돋움을 그려내는 듯 보인다. 식음료의 차이는 수잔과 라파엘의 권태가 겉으로는 비슷해 보일지언정 속사정이 꽤 다름을 보여주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수잔이 겪는 일상의 무료함은 평균적인 또래 집단과 수잔 본인의 수준이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그는 여자 친구들과의 대화에 집중하지 못하고, 파티에서 어울리지 못하며, 수업 시간 중 수준 낮은 질문을 하는 친구에게 큰 애정을 베풀지 않는다. 반면에 라파엘이 겪는 권태로움은 보다 인생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같은 배역이 반복됨으로써 작품을 계속하고픈 열정이 희미해진 시간만이 지속되고 있다. 그는 약간의 번아웃 속에서도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하는 오페라 아리아 곡과 같은 작은 요소에 기대어 일상을 이어나간다.
이러한 차이에 주목하면, 수잔과 라파엘의 동질감에 주목할 때 보였던 로맨스는 수잔의 성장영화로 바뀌어 보인다. 후반부에 들어서 수잔은 라파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또 그에 대한 관심이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이별을 고한다. 사실 구체적인 설명을 곁들이지 않은 이 대목의 전개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듯 느껴지기도 하며, 의문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러나 수잔의 권태로움이 라파엘의 그것과 미묘하게 달랐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소녀가 여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또래들이 시시해 어른스러운 고뇌에 가득 찬 남자에 끌리는 수잔이 그려낸 사랑과 이별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템포 더 어른이 된 그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스프링 블라썸>은 한 편의 성인식 같기도 하다. 오프닝 장면에서 친구들의 수다가 지겨운 수잔은 자신이 마시던 빨간 레모네이드를 빨대로 휴지에 뱉으며 하얀 휴지를 빨갛게 물들이는데, 이 장면이 마치 여성들의 초경을 암시하는 듯 보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영화 내내 빨간색의 색감이 두드러지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수잔이 늘 가지고 다니는 프랑스 작가 ‘보리스 비앙’(Boris Vian)의 소설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의 표지, ‘라파엘’이 타고 다니는 스쿠터와 카페에 가면 늘 먹는 딸기잼이 발라진 빵 등 <스프링 블라썸>에는 빨간색이 포인트 색상으로 꾸준히 등장한다. 이는 사랑을 통해 성인이 되는 한 소녀의 성인식을 시각적으로 비유한 것과 같은 인상을 준다.
사실 <스프링 블라썸>은 앞서 보았듯이 초점이 두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므로, 시작 지점부터 빠져드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호불호가 강하게 나뉠 수밖에 없다. 또 뭔가를 설명하기보다는 그저 두 남녀의 일상과 그 일상의 찰나가 어떻게 특별해질 수 있는지를 따라가야 하므로 더욱 그렇기도 하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이 지닌 힘에 기대 지적될 수 있는 난점들을 가리려는 듯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우연을 가장한 운명적인, 혹은 그 반대인 사랑을 꽃피우고, 하나 되는 경험을 하고, 그 결과 그 사랑의 끝이 어찌 되든 한 단계 성장하는 경험을 누구나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수잔 랭동의 초대를 받아 넘실거리는 감정선에 한 껏 빠지는 경험은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A(Acceptable, 무난함)
막 시작되는 사랑의 순간순간을 담아낸 장면들의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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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7월 4주 신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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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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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보면 후회하는 몰입도 최강의 공포영화 입니다.[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 트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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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취한다 채널에서 결말까지 볼 수 있는 영화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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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스토어웨이>
[2021년 4월 22일 넷플릭스 공개]
3인의 승무원을 싣고 화성을 향해 떠난 우주선.
우연히 그곳에 탑승한 불청객 때문에 생명 유지 장치가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
자원은 점점 떨어져 가고, 이제 치명적인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다.
힘겨운 선택 앞에, 그들은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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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씽 : 사라진 딸> 메인 예고편
작지만 이웃 간의 정이 깊은 마을로 이사 온 '클레어'와 딸 '사라'. 마을을 대표하는 농구팀에 입단한 '사라'는 팀원들이 주최하는 파티에 참석했다 실종된다. ;클레어'는 실종 당일 함께 있던 팀원들을 수사할 것을 요청하지만 주민들은 되레 그녀가 결백한 아이들을 의심한다며 등을 돌린다. 외로운 수사를 이어가던 '클레어'에게 발신자 불명의 영상이 도착하고 그 안에는 충격적인 진실이 담겨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