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0-11 16:56:53
비로소 만나게 될 수많은 '이균'
디아스포라 영화 7선

최근 방영된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 요리사>에 출연한 '에드워드 리' 셰프가 화제였죠.
"나에게는 한국 이름도 있어요.
우리 부모가 지어준 이름, 나의 한국 이름은 '균'입니다.
그래서 이 요리는 이 균이 만들었어요"
에드워드 리 그리고 이균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미쳐 몰랐던 수많은 '이 균'을 이제는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디아스포라'는 특정 민족이나 문화적 집단이 원래의 고향을 떠나 흩어져 사는 현상을 말합니다.
과거 전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도, 자신의 문화를 지켜온 유대인의 삶을 지칭하였으나,
현재는 다양한 이유로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집단을 지칭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한 디아스포라 영화로는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있습니다.
그럼 또 다른 '이 균'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볼까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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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이미 지구는 종말하고 있는 걸 알고 있는 너희들을 위해
스포일러 있습니다!
감독 : 라두 주데
출연진 : 일린카 마놀라케. 니나 호스 외
내 속에는 내가 너무도 많아
이 영화의 주인공 안젤라는 루마니아의 다국적 기업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다. 오늘도 취재에 여념이 없는 안젤라. 여기저기서 오는 전화에 정신이 없다. 시내 밤낮을 누비는 안젤라. 직장 상사가 전화로 쪼아대고 있다. 누구는 열심히 일 안 하나? 일상의 대부분을 운전하는데 쓰고 있다. 안젤라가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유는 직장에서 산업 안전 영상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구는 손가락이 없고 또 어디를 다쳤고 하는 사연이 안젤라의 귀에 들어온다.
사실 안젤라는 이런저런 일들에 관심이 없다. 모름지기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함이다. 손가락 다친 남자에게 ‘안전모는 똑바로 썼냐’라는 질문만 할 뿐이다. 쌓이는 스트레스들. 안젤라가 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은 ‘부캐’를 만드는 것이다. 안젤라는 며칠 전부터 틱톡에서 조회수를 꽤나 끄는 소셜 미디어 스타였다. 닉네임은 보비타. 안젤라는 머리가 대머리가 되고 눈썹이 진해지는 필터를 사용해서 우악스럽고 혐오스러운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영화는 안젤라/보비타를 설명한다. 그리고 안젤라가 직접 에세이를 쓴 것처럼 그녀의 일상을 조명한다.
유려하지 않은 수필을 쓰듯
이 영화를 만든 감독 라두 주데는 전작 <배드 럭 뱅잉>부터 에세이 같은 시네마를 고수했다. 수필 같은 시네마라는 뜻은 일반적인 스토리텔링을 거부한다는 의미이다. 이 일반적인 이라고 함은 1,2,3막으로 구성되거나 기-승-전-결로 짜인 이야기를 뜻한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해선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는 주인공이 있어야 한다. 그럼 인물에게 투영된 욕망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영화들은 이 문제에 부지런했다. <헤어질 결심>에서 서래와 해준의 욕망은 분명하다. 서래는 살인 용의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해준은 권태로운 일상이 지겨웠다. 하다못해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드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도 주인공의 욕망은 분명하다. <물안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고 있는 청춘들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우리의 하루>에서 시인 의주는 건강하게 살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은 욕심이 많은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쓰는 이야기 구조를 쓰지 않는 홍상수 감독마저도 이 ‘욕망’이라고 한 것에 집중한 것이다.
<배드 럭 뱅잉>과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는 주인공의 욕망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주인공의 욕망은 인물들이 자기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 <배드 럭 뱅잉>에는 부부끼리 찍은 포르노가 인터넷에 유출되고 난 다음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후자는 일이 너무 많아 스트레스 심한 직장인 안젤라가 중심이다. 이런 기본적인 설정을 생각해 보면 감독이 주인공의 욕망을 안일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영화에서 포르노사이트를 고발하거나 직장상사에게 응징하거나 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당연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상 감독의 분신으로서 제작자의 욕망을 보여주기 위해 설정됐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라두 주데의 영화와 에세이가 공통점을 가진다. 에세이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담는 방식은 각기 다르다. 어떤 경우에는 주인공이 ‘나’가 아닌 작가의 지인일 수도 있다. 라두 주데는 이 접근법을 사용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위해 이야기의 흐름을 자유롭게 풀어쓰는 것이다. 이 감독의 영화에서 주인공은 상황을 구현하기 위해 활용된다. <배드 럭 뱅잉>의 형식이 그랬고, 이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상황을 보여주고 이 세계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전개하는 것이다.
실제로 두 영화의 형식이 흥미롭다. <배드 럭 뱅잉>에서 1부는 주인공의 일상만 보여주고 대단한 문제해결 과정을 묘사하지 않는다. 2부는 이야기의 흐름만 본다면 1,3부와 관련이 없다(하지만 영화 내적으로는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3부는 영화의 엔딩을 연이어 보여준다. 직선적인 이야기로 볼 수 있을까? 아니다.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는 주인공 안젤라가 처한 상황을 미디어의 병폐를 묘사하기 위한 준비물로 사용한다. 가령 안젤라 서사에서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인물이 있다. 1부에서 주인공 안젤라는 흑백처리되어 있다. 반대로 1970년대로 돌아가 안젤라와 입장이 비슷했던 택시기사가 등장한다. 여기서 이 택시기사가 굳이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다. 이 택시기사가 등장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단지 감독이 루마니아의 노동 실태를 꼬집으며 ‘과연 50여 년이 지난 지금 어떤 것이 변했는가?’를 비판하는 것이다.
이렇게 라두 주데는 영화 안에 넣고 싶은 것들을 최대치로 욱여넣었다. 현상을 꼬집기 위해 인과관계가 확실한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대신 곁가지를 중심에다 붙였다. 이 곁가지가 문제 원인을 얼마나 통렬하게 조롱하고 있느냐가 영화 형식의 핵심이다. 이에 대한 또 다른 예를 들어 니나 호스가 맡은 마케팅 디렉터 역할이 후반부에 등장한다. 줌(zoom) 비대면 화상회의를 진행한다. 이 화상회의는 매끄럽지 못했다. 화면이 일그러진다. 이 인물은 심지어 중요하지도 않다. 단순히 웃기려고 이 인물을 넣은 것일까? 아닐 것이다. 또 영화 포스터에 등장하는 보비라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 안젤라는 필터를 통해서 보비라로 변신한다. 이 변신한다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혐오 발언을 굳이 반복해서 넣은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보비라가 혐오 발언을 분출하는 플랫폼은 또 어디인가? 틱톡이다. 이런 요소들이 이야기의 문제해결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설정은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또 차 운전하는 모습은 수도 없이 나온다. 하이라이트로 기능하는 엔딩신도 이와 비슷하다. 심지어 중반부에 들어가는 십자가라는 소재도 글쓴이는 개연성을 뭉개버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와 이게 여기서 들어가네' 싶어서 감탄했다. 온갖 요소들이 들어가되 그것들이 이야기에서 소모적이지 않은 것이다.
안전모는 끼셨나요
영화가 담고 있는 두 가지 현실이 흥미롭다. 첫 번째로 틱톡이다. 보비라가 왜 틱톡커인가라는 점에서 더 자세한 걸 살펴보면 깊게 알 수 있다. 이 카메라는 안젤라가 여성인 걸 숨기는 도구로 사용된다. 이 숨기는 과정이 절대 정교하지 않다. 필터가 풀렸다가 적용됐다가 번갈아가며 묘사한다. 사회문제에 대해 저열한 메시지를 뿜어대는 인물이더라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현대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보비라가 하는 여성 혐오적 메시지도 틱톡에 최적화되어 있다. 만약 보비라의 멘트가 120분짜리 장편영화로 만들어진다고 가정하면, 100명쯤 봐도 많은 축에 속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자세한 것을 따지기 이전에 기본적인 인과관계만 봐도 영화의 핵심을 알 수 있다. 보비라가 왜 틱톡커일까? 안젤라가 일하다가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으니까 분출하고 싶어서다. 이 인과관계만 봐도 틱톡커라고 설정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불에 기름 뿌리듯 커지는 일상생활의 스트레스가 자극적인 메신저와 이어진다는 걸 보여준다. 사회 구조가 서로 이어져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 '틱톡커'라는 비유는 안젤라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방식에서도 적용된다. 하이라이트 신에서 안젤라는 피해자 가족의 이야기를 자기 마음대로 편집하고 조종한다. 우리가 아는 정보마저도 어떤 이의 이해관계를 위해 곡해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 안젤라가 '나 보비라야!' 하면서 지나간다. 영화에서 보비라가 저열한 메시지를 드러낸다는 점을 본다면 전문가의 손을 거친 뉴스마저도 맹신할 수 없는 지점이 있다는 걸 암시한다. 영화에서 십자가가 등장하는 이유나 뤼미에르의 영화가 삽입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여과 없는 순수한 자료처럼 보이지만 현대사회의 많은 것들은 이해관계에 의해 편집됐다는 관점이다.
영화가 담고 있는 다음 현실은 '안전모는 끼셨나요?'다. 영화가 기묘하게 품고 있는 남 탓이 있다. 이 영화가 지적하는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노동자들의 착취 문제다. 실제로 안젤라가 취재하는 첫 번째 가족은 추가근무 동안 손가락을 다친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답으로 '안전모는 끼셨나요?'라고 답한다. 손가락을 다쳤는데 안전모를 꼈나 묻는 것도 웃기지만, 아무도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영화의 핵심이다. 문제의 원인과 잘못된 해결이 영화에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16시간 동안 일만 하는 안젤라에게 '커피나 마셔라'라고 답하는, 현재 노동시장에서 벌어질만한 일들을 빠짐없이 묘사한다. 이 모티브를 염두하고 영화를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모티브는 이야기의 동력으로서 난잡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난잡할 수밖에 없는 극의 분위기가 산만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세부적인 걸 찾아본다면 집착에 가깝게 감독이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4k/휴대폰 액정/카메라/방송국/소셜 미디어 가릴 것 없이 '문제의식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거나 '모두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망가지고 있다'는 조롱이 영화를 만든 것이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지만 영화의 색다른 측면에서의 연출력이 뛰어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글쓴이는 이 영화의 형식만으로도 작품의 가치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웃긴 건 덤이었다.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는 10월 11일 오후 4시 30분에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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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과 매국 사이 애매한 줄타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국 군벌, 마적, 일본군과 일본 경관, 조선인과 독립군이 엉켜 살아가는 1920년대 간도. 그곳에 한 남자가 도착한다. 일본 군복을 벗고 죽기 위해 간도로 향한 '이윤'(김남길). 10여 년 전 남한 대토벌 작전에 참전했던 그는 작전 당시 자기 때문에 가족을 잃어야 했던 의병장 '최충수'(유재명)를 만나 목숨으로 사죄하려 한다. 유일한 사랑 '남희신(서현)'도, 친구이자 한때 주인님 '이광일'(이현욱)과의 인연도 뒤로 한 채.
하지만 이윤은 조금씩 생각을 고쳐 먹는다. 경성에서 볼 때는 기회의 땅이었던 간도가 무법천지의 땅이었기 때문. 자기를 죽이러 온 총잡이 '언년이'(이호정)를 만나고, 마적 떼의 습격을 받아 무기력하게 죽어 나가는 조선인을 보면서 그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생겼음을 깨닫는다. 독립군도, 마적도 아닌 도적이 되어 어떻게든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만주 웨스턴의 부활?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웨스턴은 할리우드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돼 관객과 만났기 때문.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이른바 스파게티 웨스턴은 미국 정통 서부극을 대신할 정도로 인기였다. 원주민과 개척지라는 조건이 미국과 같은 호주에서는 '미트파이 웨스턴'이 제작됐다. 심지어 소련에서도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레드 웨스턴'이 냉전 동안 인기를 모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일제강점기 만주를 배경으로 중국군, 일본군, 독립군, 마적, 그리고 조선인이 얽힌 만주 웨스턴이 있다. 물론 본고장 미국에서도 서부극 인기가 시든만큼 만주 웨스턴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장르로 보기는 어렵다. 김지운 감독의 <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하 <놈놈놈>) 이후 흥행한 사례도 많지 않다. 그나마 윤종빈 감독의 <군도: 민란의 시대>가 사극과 스파게티 웨스턴의 퓨전을 선보인 정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도적: 칼의 소리>는 이처럼 보기 드문 만주 웨스턴의 명맥을 잇겠다고 선포한 작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적: 칼의 소리>가 만주 웨스턴의 부흥을 이끌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장르의 근본적인 한계를 깨부수는 데 실패한 나머지,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본분에 충실한 액션
<도적: 칼의 소리>는 분명 반갑다. 본분에 충실하다. 만주 웨스턴은 철저히 오락적인 이유로 등장한 장르다. 국내에서 서부극에서 볼 수 있는 총격전과 기마 추격전을 맛보고 싶은 욕구가 낳은 장르이기 때문. 즉, 황량한 배경에서 화끈한 액션과 볼거리만 보여주면 만주 웨스턴은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다. <놈놈놈>만 해도 일제 강점기 간도라는 시공간을 빌려 주인공 3명의 캐릭터쇼로 승부를 보는 액션 활극이었다.
<도적: 칼의 소리>는 좋은 선례를 착실히 따라간다. 우선 각 인물별로 확실한 캐릭터를 부여하면서 서부극에서 기대하는 볼거리를 충실히 보여준다. 일본군 출신 총잡이, 궁수, 호랑이 잡던 포수, 도끼 든 광대, 괴력의 거한, 암살자까지. 특징이 확실한 이들이 팀을 이뤄 싸우는 액션은 꽤 인상적이다. 물론 캐릭터 설정이 신선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수위가 높고 각자의 역할이 잘 살아있다 보니 액션 보는 맛은 확실하다.
이에 더해 웨스턴 영화로서 갖출 것도 다 갖췄다. 총격전, 기마 추격전은 당연히 등장한다. 말 탄 도적이 기차를 쫓거나 총잡이들끼리 일 대 일로 총을 겨누는 클리셰도 빼먹지 않는다. 일본군과 독립군, 도적과 일본군, 도적과 마적 등 믿을 사람 없이 서로 싸우는 장면도 만주 웨스턴답다. 만주 웨스턴은 기본적으로 군상극인 스파게티 웨스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액션 활극이기 때문.
나라가 아닌 사람을 지키다
시공간적 배경을 적극 활용한 스토리텔링도 눈길을 끈다. 사실 1920년대 간도는 피카레스크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최적화된 혼돈의 공간이자 시대다. 1920년대에 일제는 문화 통치를 통해 일본과 조선의 물지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을 추구했다. 자연히 해방 대신 자치를 요구하는 조선인이 늘었다. 간도라는 공간도 혼란스럽다. 중국 군벌, 일본군, 조선인과 독립군까지. 누구 하나 실질적인 행정력과 통제력을 지닌 주체가 없었다.
<도적: 칼의 소리>는 변절자가 늘고 선악 구분이 무의미한 시공간적 배경에 걸맞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역사적 당위성에 회의감을 표한다. 한국인이라면 일제의 침탈을 막고, 일제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명제를 거절할 수 없다. 하지만 상상은 할 수 있다. 노비나 백정이었던 사람이 조선과 독립운동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진 초이나 구동매가 그러했듯이.
그래서 <도적: 칼의 소리>는 나라를 구한다는 추상적인 대의 대신 눈앞의 목표에 일신을 던진 이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대한 독립 대신 개인, 가족, 친구의 생존이 우선순위인 이들을 비춘다. 이윤이 대표적이다. 그는 시대적 대의와 개인의 욕망 중 항상 후자를 고른다. 그가 희신을 돕는 이유도 그저 사랑 때문이다. 남한 대토벌 작전에 참여한 후 일본군에서 전역한 것도 민족 감정이 아닌 개인적인 죄책감이 주된 원인이었다.
이는 의병장이었던 최충수가 독립군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 언년이가 시니컬한 암살자가 된 이유, 더 나아가 그들이 도적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독립군 대신 '도적(刀嚁)', 칼 휘두르는 소리로서 지켜야 할 사람들만 보호하자는 것. 또 이광일이 메인 빌런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 영달을 위해 숙부도, 약혼자도, 오랜 친구도 일제에 팔아넘기거나 죽일 각오가 된 인물이니까. 이윤과는 정반대로.
장르와 역사의 충돌
하지만 <도적: 칼의 소리>의 스토리텔링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만주 웨스턴의 기본적인 한계를 깨려는 시도가 없기 때문이다. 대의 대신 생존을 택한 도적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만주 웨스턴의 묘미에 부합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만주 웨스턴의 선조 격인 스파게티 웨스턴은 선악 구분이 확실한 정통 서부극과 달리 군상극에 가깝기 때문이다.
선택지도 많았다. 도적을 독립군과 차별화하고, 난세에서 살아남는 민초로 그리고 싶었다면 굳이 독립군이 완벽한 선일 필요도 없었다. 독립군이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인을 탄압한 '빈주 사건'처럼 독립군과 도적 간의 갈등을 강조할 수도 있었다. 마적과의 갈등, 이윤과 이광일의 개인적인 갈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방법이었다.
<도적: 칼의 소리>는 상상력을 펼칠 기회를 포기한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타란티노가 보여준 배짱과 비슷한 용기는 없다. 독립군 대 일본군의 전형적인 구도를 답습한다. '십오만원탈취 사건', '간도참변', '훈춘 사건', '미쓰야 협정', '길회 철도 부설 반대 투쟁' 등 실제 사건을 변용한 대목은 선악구도를 강화한다. 마치 <봉오동 전투>를 보는 듯하다. 생존을 위한 사투도 알게 모르게 독립군 정신과 합쳐진다. 극이 진행될수록 도적들이 독립군보다 더 독립군스럽고, 일본군에게도 더 많은 피해를 준다.
그렇게 웨스턴 장르의 매력은 급감한다. 피카레스크적인 요소가 곁들여진 장르적 쾌감도,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서사의 매력과 개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스토리는 다른 길로 흘러 버린다. 이윤-이광일-남희신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이윤과 희신의 사랑이 싹피는 멜로드라마가 메인 요리가 된다. 액션도 쾌감을 잃는다. 시퀀스만 떼어 놓고 보면 즐기기 충분하지만, 전체 맥락에서는 미묘하게 어색함이 느껴진다.
틈으로 새어 나오는 완성도
장르와 스토리의 지향점이 충돌하는 사이로 부족한 짜임새도 노출된다. 우선 전반적으로 루즈하다. 액션 시퀀스와 대본에 문제가 있다. 액션씬의 경우 과하게 분량을 차지한다는 인상이 짙다. 장르 특성상 이해할 수 있지만, 흐름을 끊는 것은 사실이다. 대본의 경우 동어반복인 대사가 많다. 조금 더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풀어냈다면 1시간에 육박하는 각 에피소드 분량을 줄여서 긴장감을 더 끌어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도적: 칼의 소리>는 많은 넷플릭스 작품처럼 도전 그 자체에 박수를 보내는 데서 만족해야 할 작품처럼 보인다. <고요의 바다>, <택배기사>, <승리호>처럼 과감한 장르 영화가 많아지는 가운데, 시도라는 의의를 넘어서서 어떻게 열매까지 딸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Poor 형편없음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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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권 당첨자의 추락으로 인한 부서진 삶의 파편들을 주워담다
시놉시스
싱글 맘인 레슬리는 펍에서 산 복권에 당첨되어 19만 달러를 받는다. 레슬리가 복권에 당첨되어 하고 싶은 일은 집을 사는 것과 락스타가 꿈인 자신의 아들 제임스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후 레슬리는 복권 당첨금을 다 잃고 방세도 못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집주인에게 쫓겨난 레슬리는 아들인 제임스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는 제임스의 집에서 머물지만 알코올 의존증으로 인한 술 마시는 버릇 때문에 아들인 제임스에게도 쫓겨나게 되고 더치와 낸시의 집에서 신세를 진다. 결국 그곳에서도 쫓겨나게 되고 어느 모텔 바깥에서 노숙을 한다. 그 광경을 본 모텔 관리인 스위니는 레슬리에게 일자리를 주는데... 과연 앞으로의 레슬리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레슬리에게 복권이 당첨되는 커다란 행운이 있었지만 술과 마약으로 모두 날려버렸다. 그렇기에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해서 아들인 제임스가 13살일 때 혼자 두고 떠나게 됐다. 제임스는 웨일런과 같은 락스타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자신의 엄마인 레슬리 때문에 그 꿈을 접고 공사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레슬리를 보고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권한다.
그런데도 레슬리가 하는 건 제임스의 방에서 숨겨진 돈을 훔쳐서 술을 마시는 것과 담배를 피우는 것 밖에 없었다. 레슬리에게는 도벽 행위도 있었고 노숙 생활은 기본이었다. 그렇지만 자신의 고향으로 가게 되어 굴러들어 온 복을 얻게 되는데 그건 바로 모텔 관리인 스위니와 로열을 만난 것이다.
그런 레슬리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낀 스위니는 모텔 청소를 하면 1시간에 7달러를 준다고 하지만 처음에는 일을 열심히 안 하나 자신의 여행 가방에 있는 어린 제임스의 사진을 보고 전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된다.
인생의 목표가 없었던 레슬리는 복권에 당첨되어도 막 살았지만 모텔 관리인 스위니를 만나고 점차 변하면서 부서진 식당을 복원하고 10개월 후 식당을 차리게 된다. 그리고 앙금의 사이였던 낸시에게도 사과를 받고 제임스를 만나게 된다. 아들인 제임스가 원했던 건 알코올 의존증으로 아무렇게 살았던 자신의 엄마인 레슬리가 새 인생을 사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에는 아들과 엄마의 만남으로 영화는 감동적인 엔딩으로 끝나게 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제2의 레슬리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도 실수로 인해 망가졌어도 다시 복구할 수 있다는 메세지이다. 아무리 망가진 인생이라도 차근차근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면 100% 원상복구는 안되어도 어느 정도는 복구가 될 수 있다.
알코올 의존증이었던 레슬리도 해냈듯이 과거의 실수로 인해 많은 걸 포기하지 말라는 게 아닐까? 그래서 필자는 이 영화를 보고 실패를 한다 해도 다시 일어나는 꺾이지 않는 정신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삶을 포기했던 레슬리에게도
한 줄기 희망은 있었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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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타쿠 콜렉션] 이제 정말로 살아갈 이유가 없다면요?
나는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었다.
아니 떨어지고 있었다.
한없이
한없이
한없이
...............
......
...
아 썅 ! (왜 안 떨어지지?)
꿈꿀 수 없는 날의 답답함 - 최승자
제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학부 시절 제가 참 좋아했던 모 교수님께서는 동화창작 수업 시간에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소설과 동화의 차이점이 뭔지 아세요?”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답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동화는 소설과 달리 주인공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동화에선 주인공이 궁지에 몰리더라도, 반드시 그 위기를 타개할 기회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홀로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커다란 어려움 속에 있더라도 그의 곁에는 반드시 그를 돕는 조력자가 있으며, 결국엔 주인공이 다시 딛고 삶을 이어갈 용기와 힘을 준다는 것이 교수님의 설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다가 종종 상처 입고, 주저앉기도 합니다. 대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일어나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죠. 하지만 언젠간,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불쑥 그 때가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는 무엇도 이어갈 수 없을 때, 모든 불행이 든 상자의 뚜껑이 열려버렸지만 신화 속 이야기완 달리 밑바닥에 한 톨의 희망도 남아있지 않을 때 우린 도대체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오늘 소개할 영화는 <더 폴: 디렉터스 컷>입니다. 1920년대 할리우드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바빌론>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수많은 사람들이 화려한 스크린 뒤에서 그야말로 “갈려나가는” 구조였습니다. 주인공 로이는 이 시대의 스턴트맨으로,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스턴트 씬을 촬영하다 하반신이 마비된 청년입니다. 직업을, 건강을,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한순간에 잃어버린 로이는 병원에서 한 아이를 만납니다. 바로 과수원에서 오렌지를 따다 떨어져 쇄골이 부러진 알렉산드리아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5살 남짓의 소녀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에게 모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약국에서 모르핀을 가져오게 할 계획을 세웁니다. 로이는 당장 그것 말곤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로이는 알렉산드리아를 앉혀두고 모르핀을 위한 대서사시, 죽음을 위한 천일야화를 지어냅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야기가 이어지며 병원에서 만난 두 인물은 점차 이야기 속 인물과 동화됩니다.
※ 영화 <더 폴: 오디어스와 비밀의 문>, <더 폴: 디렉터스 컷>의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질게 말하자면, 로이는 형편없는 어른입니다. 그가 새파랗게 어린 청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다섯 살 남짓의 어린 아이를 끌어들여 약국에서 모르핀을 훔쳐오게 하고, 결국 큰 부상을 당하게 만든 데다가, 이야기에 몰입한 아이 앞에서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을 가차 없이 해하기도 하니까요. 그는 여지없이 나쁜 어른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에게 손가락질할 수 없습니다. 그가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절망 가운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로이에겐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나갈 의지도, 이유도 없습니다. 모르핀을 삼킨 후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아이에게 ‘내가 잠들면 나가고, 내일은 오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그가 다친 마음을 짜내어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친절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가 비추는 로이의 상황은 마치 주인공의 비극적인 죽음만을 앞둔 소설의 결말부 같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삶과 닮은 이야기의 결말부를 빚어냅니다. 힘을 합쳐 악에 맞서려던 무법자들에게 군대를 보내 차례로 죽입니다. 이야기 속의 무법자들은 도망칠 기력도 잃은 채 무참히 하나둘씩 최후를 맞이합니다. 그들의 죽음에는 다른 개연성이 없습니다. 평온한 죽음조차 성취하지 못한 로이 자신이 그저 한없이 떨어지고 싶기 때문입니다. 아니, 로이는 이미 떨어지고 있죠. 이처럼 충격적인 비극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듣던 알렉산드리아가 울부짖으며 왜 등장인물들을 전부 죽이는 거냐고 물을 때, 로이는 마침내 대답합니다. “이건 내 이야기니까.”
이에 알렉산드리아는 지지 않고 대답합니다. “내 이야기이기도 해요.” 그리고 말을 이어갑니다. “죽이지 말아요.” 아무 것도 모를 줄 알았던 어린 아이가 로이를 붙들고 말합니다. 마치 로이의 모든 생각을 다 안다는 듯이요.
로이는 결국 죽이지 않기로, 죽지 않기로 약속합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살아가기로 합니다. 타셈 싱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후 로이가 마음을 바꾸어 다시 자살을 시도했을지, 재활 후 마침내 다시 영화를 찍을 수 있게 되었을지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에 달려 있다’고 말했지만, 죽음을 결심했던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의 간절한 호소에 마음이 흔들린 것은 사실이었죠. 그리고 관객 중 한 사람인 저는, 로이가 살아갈 의지를 되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그의 이야기는 비극적인 결말이 예정된 소설이었지만, 이 소설을 동화로 읽어내는 눈을 가진 청자가 있었습니다. 로이에게 별이 총총한 밤, 나비를 닮은 섬, 헤엄치는 코끼리, 끝도 없는 사막에 대해 듣자마자 선명히 그려낼 수 있는 청자였죠. 로이가 도움을 청할 사람 하나 없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불쑥 손을 내밀어 그의 이야기를 동화로 바꿔준 건 다름 아닌 5살 꼬마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물 한 모금 찾아보기 힘든 사막에서 적에게 둘러싸여 조롱당할 때 이야기를 뚫고 나타나 손을 묶고 있던 밧줄을 풀어주고 적을 물리칠 총을 쥐어주기도 했죠. 알렉산드리아는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끊임없이 로이의 영혼을 구원하는 시도를 합니다. 성당에서 가져온 성체를 건네고, 부상을 딛고 살아가는 로이를 그려 선물하는 등, 허공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로이를 계속해서 평지로 밀어냅니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 어떠한 희망도 볼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우리와 가까운 사람이 이러한 절망 속에 빠져 있다면 우린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모든 비극을 동화로 보는 눈을 가지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잘 살펴보면 우리의 손 닿는 곳에는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조력자가 있고, 그 손을 잡으면 다시 힘을 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살아갈 이유도, 여력도 동나버린 최악의 순간도 동화의 한 구간일 수 있으니까요. 우리 곁에 남아있는 기적은 아주 작고 힘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요. 우리가 이 연약한 손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조력자는 우리를 단숨에 들어올려 살아나가게 할지도 모릅니다.
영화를 제작한 타셈 싱 감독은 한국에서의 예상치 못한 흥행에 힘입어 지난 2월 내한했는데요. "이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는 아무도 원하지 않아서 자비를 들여 개봉했다"며 2006년 최초 개봉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아기를 낳았는데 모두가 그 아기를 보고 못생겼다고 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의 여러분이 내 아기에게 예쁘다고 해주었고, 아이가 날아다닐 수 있게 해주었죠.”라고 감격하여 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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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그럴 것이, <더 폴>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험란하다 못해 다소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모티브가 된 불가리아 영화 <요호호> (YO HO HO, 1981)의 판권을 구매하는 데에 15년, 장소 섭외에 17년, 주인공을 찾기까지 7년, 실 촬영 기간 4년 반이 소요되었으며, 제작 비용 6,500만 달러의 상당 부분은 타셈 싱 감독의 사비였습니다..CF와 뮤직비디오 연출로 유명했던 타셈 싱 감독은 그간 벌어둔 돈을 모두 영화 제작에 쏟아 부었으며, 본인의 결혼자금까지 털어 투자했다고 전해집니다. 감독의 모든 것을 걸고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작품은 개봉 당시엔 크게 주목 받지 못했으며, 평론가들에게 혹평을 받기도 했는데요. 디렉터스 컷 개봉 이후 한국 관객들 사이의 입소문으로 인해 높은 예매율을 기록하며 인정 받기 시작했습니다. 전세계 28개국의 로케이션을 돌며 어떠한 특수효과도 없이 완성해낸 이 경이로운 영화는, 제작 과정의 수고를 다 알지 못하더라도 이루 말할 수 없는 경탄의 감정을 줍니다. 어떠한 경지를 넘어선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상처 입은 영혼을 구하는 서사의 감동이 뇌를 찌르는 영화, <더 폴>이 여러분에게도 소중한 기억이 되기를 바라며 마치겠습니다!
사진:
네이버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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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회사는 손해보지 않는다.
이 글은 영화 [더 배트맨]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난은 늘 낯설고 새로운 것의 그림자 역할을 자처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처음 007이 되었을 때만 해도 모든 사람들이 여태까지 이런 007은 본 적이 없다며 비난과 험담의 벽을 쌓아 올렸으니까.
그러나 첫 작품이었던 [카지노 로열]은 사람들이 쌓아놓은 미움의 벽을 시원하게 밀어버렸다. 덕분에 다니엘은 시리즈 사상 가장 마초적이면서 인간적인 요원으로 자리 잡았고. 15년 동안의 임무를 완수하고 기꺼이 우리에게 안녕을 고했다. (참고 1)
DC에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다고 과언이 아닐 배트맨 시리즈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기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손에서 가장 완벽한 3부작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희대의 악역인 조커를 낳았다.
이런 시리즈에 아직 물음표가 가득한 배우인 로버트 패틴슨을 앞세운 새 배트맨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매우 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영화 [더 배트맨]의 시작은 새로운 것들로 가득했고. 덕분에 그림자인 비난 역시 짙게 깔려있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 [더 배트맨]은 이런 비난의 색을 가득 담았다. 어둡고 또 무겁다. 로버트 패틴슨은 우울하고도 생각으로 가득한 배트맨 역할을 여태 해 온 역할들과는 다른 분위기로 풀어내 영화의 깊이를 더했다.
제작진이 비난에 대처한 방식은 영화의 색깔과 같았고. 비난은 슬그머니 배트맨이 가진 고뇌의 무게에 합쳐져 긴 러닝타임 내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9회 말 2아웃 상황의 DC가 드디어 해냈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이면 가벼운 마음만큼이나 영화 속 배트맨의 마음도 조금은 밝아졌음을 느낄 수 있다.
3,6,9는 진리다.;배트맨도 피할 수 없는 3년 차 성적표
사진 출처:다음 영화
3년 차.
일반 회사로 친다면 이제 슬슬 대리 달아야지?라는 덕담 같은 압박이 귓가에 쌓이기 시작할 때다. 불가능할 것만 같던 업무 짬도 차기 시작하고 전체적인 일의 그림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익숙해져 버린 자리 덕에 슬슬 회사 전체에 대한 불만도, 그리고 이직을 했을 경우의 "조건"들에 대해 점치기도 시작한다. 또한 근원적으로 내가 과연 이 일을 계속해도 될 것인가에 대한 의심과 물음도 하나둘씩 마음을 채운다.
올해 3년 차에 들어선 고담 시 (명예) 공무원인 배트맨의 위치가 정확히 이 지점에 있다. 이제 고담 시 전체도 제법 눈에 익었고. 모든 범죄에 출동할 수 없으니 Priority를 세워 선택적으로 야근할(?) 줄도 안다. 그럼에도 고담 시의 경찰들에게는 가면을 쓴 자경단들 중 하나 정도라는 생각에 그칠 뿐이지만.
그럼에도 경찰들이 이 혼돈의 배트맨을 잡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에게 기대하는 "능력"이 (연차 대비) 출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뛰지 않는다.
날아다니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현란하게 움직이지도 않는다. 배트맨은 자신의 정체가 그들의 코앞에 다가갈 때까지 천천히,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밤이 만들어 낸 안개가 걷히면서 배트맨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에. 범죄자들은 그제서야 허공을 향해 빛나고 있는 박쥐 모양의 경광등을 떠올리며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어진다. 물론 그 마른침이 다 넘어가기도 전에 얻어맞고 바닥에 뻗어 있겠지만.
영화는 배트맨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위압감을 매우 잘 묘사하고 있다. 분명 다른 히어로들보다 휘황 찬란하다거나, 빠르지도 않지만. 배트맨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에서 오는 압박감만은 매우 대단하다. 저벅저벅 걸어오는 그 발걸음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집념을 느낀 악당들에게 배트맨은 훌륭하고도 끔찍한 악몽이며.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만나보고 싶기도 한 빌런이다.
세례 받은 배트맨;자신 스스로도 구원해 내기.
사진출처:다음 영화
영화 속 배트맨은. 마치 자신의 진정한 MBTI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질문들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행하던 것이 복수였는지. 혹은 정의였는지에 대해 생각하듯이.(참고 2)
리들러의 공격은 너무도 현실에 착 붙어 있어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점을 파고들었다. 덕분에 외면하고 싶은 연좌제에 대한 이슈를 똑바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 또한 뒷골목의 사람과 다를 바가 없을 것만 같아서.
셀리나는 자신이 드러낼 수 없는 마음속 분노의 모습과 닮아있어 더 이상의 고아가 탄생하는 것도. 고아가 저지르는 잘못도 없기를 바라는 배트맨의 입장에서는 그녀가 어둠 속에서 사는 사람이 되는 것 또한 막아야 했다.
여기까지면 좋으련만. 브루스 웨인으로서의 삶은 일찌감치 박살 난 지 오래라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는 상황이기까지 했다.
이렇게 모든 것이 엉망인데. 배트맨은 자신의 앞에 놓인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고 정확하게. 게다가 늦지 않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고담 시 사람들이 사상을 입을 수도 있는 그 순간에. 배트맨은 마지막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기꺼이 물속으로 뛰어든다.
마치 영화의 진행 내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던 복수와 정의 중 후자를 선택하기로 마음먹은 순간임과 동시에. 여태까지 지니고 있던 모든 고뇌를 세례를 통해 씻어내린 것처럼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그의 MBTI는 결정되었고. 동시에 새로운 배트맨이 되었다. 그리고 배트맨은 망설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좀 더 가까이서 직접 돕는 것을 가장 먼저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그는 이 역할에 당위성을 고쳐 붙였다. 스스로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구하겠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그가 건져올린 것들에 자신도 있음을 알아주는 날이 오기를 빈다.
과연 이직에 성공할 수 있을까?;일단 야근부터 좀 어떻게 해보자.
사진 출처:다음 영화
영화의 말미에. 배트맨은 아주 잠깐이지만 그 지독한 어둠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도우는 일에 합류한다. 마치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가리기라도 하려는 듯 그 모습마저도 먼지 구덩이에서 한 번은 구르고 나온 것 같은 모습이지만. 배트맨의 눈길과 몸짓은 경직되어 있던 영화의 초반과는 조금은 달라 보이기까지 한다.
그전까지 자신에게는 어둠만 허락된다고 생각했다. 어둠을 먹고 사는 자들을 처리하는 것이 자신의 복수이자 고담 시의 질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밤의 지배자들에게는 두려움이라는 바이러스를 뿌려댈 수 있지만. 낮의 주인들에게는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낮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 희망이 전염될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이제 배트맨은 고담 시를 떠날 수 없다.
3년 차가 갖고 있던 고민도 사라졌고, 자신의 MBTI도 명확해졌다. 그리고 야근만 하던 삶을 주간 근무로 바꿀 수 있는 희망도 이젠 갖게 되었다.물론 이런 각오가 무색하게 6년 차의 헛바람은 찾아올 것이고. 이 도시는 여전히 자신을 배신하겠지만. 게다가 잊고 있었던 야근도 종종 하게 될 테지만. 이제 배트맨의 눈은 바뀌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는 매일 다른 것을 하며 자극을 찾는 것이 아닌. 똑같은 일상을 견뎌내는 힘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눈으로.이 초보 공무원이 고담에서 보낼 영원한 시간들 중 딱 오늘 하루만이라도 부디 평온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야근도 안 하면 더 좋고.
마치면서;+좋아한 장면
호불호가 매우 강할 영화다. 액션이나 최첨단 무기, 혹은 브루스 웨인의 어마 무시한 부(Richness)를 기대한다면 한없이 지루할 것이고. 지울 수 없는 이름인 히스 레저를 떠올린다면 더더욱 실망할 영화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들을 지우고 새로운 배트맨에 집중한 것이 좋았다. 배트맨의 탄생이나 고담 시 7급 공무원 정도의 짬을 가진 타이밍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 겨우 병아리 티를 벗고 뭔가 해보려고 하는 의욕은 많지만 처음 접해보는 문제들에 부딪쳐 시무룩해지기 쉬운 딱 3년 차의 모습이라서. 그냥 응원해 주고 싶었다.
최근 영화가 길어지는 추세에 대한 큰 반감이 있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닝타임이 길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다못해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까 같은 쓸데없는 잡생각 없이 그저 이 야근만 하는 공무원의 고군분투 일처리를 보다 영화관을 나왔다. 그가 아주 조금은 행복.. 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이 가벼워진 게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다.
[좋아한 장면]
중간에 나오는 자동차 추격전 장면과 천장을 박살 내면서 떨어져내리는 장면은 뭐 말할 것도 없지만. 글에도 쓴 홍수 난 광장으로 떨어지는 장면에서 그냥 자꾸 눈물이 났음. 기꺼이 고난으로 뛰어드는 자 만이 얻을 수 있는 재탄생을 잘 살린 것 같았음.
참고 1
007시리즈 말고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한 007에 대해 쓰다가 저장해둔 글이 있었는데 거기서 조금 갖고 옴. 개인적으로 크리스찬 베일의 엄청난 팬이기 때문에 로버트 패틴슨이 배트맨을 한다고 했을 때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했던 사람이었으나. 이 영화 보고 나서 영원히 입다물기로 함.
참고 2
내 MBTI도 제대로 못 외우는 주제에 리뷰 쓰겠다고 찾아봄. 실제로 배트맨의 MBTI는 INTJ이며. 나는 INFJ임. 문제는 그게 무슨 뜻인지를 아직도 잘 모름.
[이 글의 TMI]
1. 영화는 (너무 무거워서) 내 취향이지만. 리뷰는 좀 가볍게 쓰고 싶었음.
2. 어두운 영화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내 OTT 서비스 보고 싶어요 한 목록 보니까 이건 뭐. 아포칼립스던데.
3. 샐러드 먹고 16시간 금식은 내가 봐도 너무 힘들다. 근데 그걸 두 달째 하고 있지.
#더배트맨 #맷리브스 #로버트패틴슨 #앤디서키스 #조크라비츠 #폴다노 #DC #영화추천 #최신영화 #영화인플루언서 #네이버인플루언서 #브런치작가 #내일은파란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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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보다 수월해진 공조!
2017년 설연휴에 맞춰 개봉한 영화 <공조>는 당시. 경쟁작 "한재림" 감독의 <더 킹>에 밀린채 박스오피스 2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이내 가족 관객들의 뜨거운 지지와 함께 국내 박스오피스 1위와 함께 누적 관객 수 781만명으로 <더 킹, 531만명>을 눌러버렸다.
영화 <공조2: 인터내셔날>은 전작의 주인공 남한의 "강진태(유해진 분)"와 북한의 "림철령(현빈 분)"이 다시 공조 수사를 한다는 내용으로 이번 속편에서 미국 FBI 요원의 "다니엘 헤니"와 악당 "진선규"가 새로이, 이름을 올렸다.1. 캐릭터들의 역할이 달라졌다!
이전 게시글들에서도 말했듯이 속편 가운데, 2편은 비교적 쉬운 숫자이다. - 장점은 계승하되, 단점은 개선시키기만 하면 되니까!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늘어난 제작비만큼이나 새로운 캐릭터들과 함께 펑펑! 터지는 볼거리 등은 전작에 비해, 커진 규모를 가늠케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조2: 인터내셔날>도 이런 "속편의 법칙"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 아니, 충실하게 이행한다고 봐야겠지!
뻔하다면, 뻔한데 어째서 전편보다 재밌는걸까?일단, '캐릭터들의 변화'에 있다.
전작의 경우. "강진태(유해진 분)"와 "림철령(현빈 분)"의 역할은 웃음과 액션으로 구분되었다.
그에 비해서, 이번 속편에서는 영화의 시직과 함께 차에 메달리는 액션을 선보이는 "강진태(유해진 분)"처럼 다른 남자에게 한 눈 파는 "민영(윤아 분)"을 향해 질투하는 "림철령(현빈 분)"의 장면으로 '멀티 포지션'으로 변경된다.2. 동일해도 상황은 달라요.
물론, 이에 대한 걱정은 있다!
서로 잘 하는 것을 넘어 딴길로 샐 수 있지만, 영화는 "코미디"쪽에 좀 더 진화된 게 보인다.
앞서 말했듯이 웃음과 액션으로 각 역할이 구분되었던 캐릭터들에 비해, 좀 더 세세한 상황들을 제시해 역할이 겹쳐도 각 캐릭터들만의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가령, 어설픈 러시아어로 심문하는 "잭(다니엘 헤니 분)"과 "림철령(현빈 분)"를 사이에 둔 "민영(윤아 분)"의 모습으로 재미까지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다만, 아쉬운 점은 이런 서사들에 비해 악당 "장명준(진선규 분)"의 인상은 옅다.
긴 머리에 콧수염으로 외견을 달리했지만, 쓰이는 어투가 북한말이기에 자꾸만 <범죄도시>의 "위성락"이 겹친다.
이런 이유에는 해당 배우분의 연기가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마지막에 다다르면서 동기들을 말하지만 이를 납득하기엔 너무 급한 감이 없지 않나?2. 잦은 슬로모션에 액션이 늘어진다.
이외에도 아쉬운 점을 꼽자면, 역시 액션이다.
이번 <공조2: 인터내셔날>에서 잦은 "슬로 모션"이 나오는데, 이게 영화를 촌스럽게 만든다.
분명히, 멋있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코미디"에 활용하려드니 어색하게만 보여져 전작의 "두루마기 휴지"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아쉬운 점이 아닐까?
그럼에도, <공조2: 인터내셔날>는 즐기는 데에 문제 없는 작품이다. - 무엇보다 펑펑! 터지는 볼거리까지 있으니까!특히, 이번 "잭"의 등장으로 여러 국가 기관들을 활용한 "시리즈"의 청사진과 달라진 "철령(현빈 분)"과 "민영(윤아 분)"의 모습은 더 큰 기대치를 품게 만든다.
· tmi. 1 - 고증이라면, 해당 영화의 'FBI'는 미국내 사건을 전담 부서이다. 해외 전담은 'CIA'인데? (아시는 분들은 알려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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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불호는 있어도 실패는 없다
#날씨의_아이 #스포일러_없는 #리뷰
최신 일본 영화를 리뷰하고 추천합니다
영화 '날씨의 아이'를 소개합니다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는
제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작가 슈라 원칙
1.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2. 어그로를 끌지 않는다
3. 수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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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b.writer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Job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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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당신이 몰랐던 6가지 사실들ㅣ이정재 황정민 박정민ㅣ예고편 영화리뷰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예고편 영화리뷰
'신세계' 이후 7년 만의 만남! 신세계 2편 아닙니다!!
이정재 그리고 황정민
추가로 박정민'추격자' '황해' '내가 살인범이다' 각색
칸영화제 진출작 '오피스' 연출 홍원찬 감독'기생충' '곡성' 홍경표 촬영감독
조화성 미술감독#다만악에서구하소서 #다만악에서 #다만악에서구하소서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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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린 나이트> 런칭 예고편
”녹색 기사의 목을 잘라 명예를 지켜라”
크리스마스 이브,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앞에 나타난 녹색 기사,
“가장 용맹한 자, 나의 목을 내리치면 명예와 재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단, 1년 후 녹색 예배당에 찾아와 똑같이 자신의 도끼날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이 도전에 응하고
마침내 1년 후, 5가지 고난의 관문을 거치는 여정을 시작하는데…
전설이 될 새로운 모험, 너의 목에 명예를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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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메인 예고편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은 세무당국의 조사에 시달리던 어느 날
남편의 이혼 요구와 삐딱하게 구는 딸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다.
그 순간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모든 능력을 빌려와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