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10-09 08:46:10
충격적인 강렬함으로 광증과 윤리를 잇다
영화 〈레드 룸스〉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한 재판장. 배심원단과 판사가 차례로 입장한다. 경륜이 있어 보이는 흰머리의 판사는 배심원단에게 분명하게 경고한다. 재판에서 증거로 상영될 영상의 잔혹성이 상당하다는 점을 이미 수차례 강조했지만, 이를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으며 불편한 사람은 말해달라는 당부다. 피고는 슈발리에. 그는 세 명의 소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장면을 촬영한 스너프 필름을 다크웹에 유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세 명 중 두 명의 소녀가 살해된 영상은 증거로 확보된 상태다. 검사는 영상 속 살인자가 슈발리에라는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변호인은 영상 속 복면을 쓴 남자가 슈발리에라고 확정할 수 없다고 맞선다.
그러나 〈레드 룸스〉는 법정 영화가 아니다. 재판의 개요와 논점을 제시한 카메라는 곧바로 방향을 틀어 방청석에 앉은 두 여자를 향한다. 켈리앤과 클레망틴이다. 두 사람은 방청석에 앉기 위해 재판 전날 법원 앞에서 잠을 잘 정도로 이 재판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동기는 다르다. 클레망틴은 슈발리에가 무죄라고 확신한다. 사람들이 그를 여론재판하고 있다고 믿는다. ‘무죄’인 그를 사랑하는 듯도 보인다.
한편 켈리앤이 재판에 참석한 동기는 명확하지 않다. 모델 겸 해커인 그녀는 이미 다크웹을 통해 재판의 증거인 두 편의 스너프 필름을 확보한 상태다. 재판정에서 만난 켈리앤과 클레망틴이 안면을 트고 가까워지는 동안 재판에 참석하는 켈리앤의 동기에 대한 미스터리는 점점 커져만 간다. 영화가 켈리앤의 정체에 관한 수수께끼의 무게감을 쌓아 올리는 과정의 긴장감이 대단하다. 특히 켈리앤의 여러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중에서도 정점인 장면, 즉 그녀가 자신을 희생자처럼 꾸미고 슈발리에와 인사를 나누다 제지받고 끌려 나가는 장면의 강렬함이 압권이다. 이 장면이 뿜어내는 미스터리의 힘은 온몸을 찌르는 듯 섬뜩한 사운드트랙과 어우러져 슈발리에와 켈리앤의 정체와 관계에 대한 모든 추론과 해석을 중단시킬 정도로 격렬하다.
관객을 절대적 미스터리의 미로로 몰아넣는 켈리앤의 비밀은 영화가 끝날 때쯤에야 드러난다. 그녀가 지난한 재판을 한 번에 뒤집을 마지막 희생자 살해 영상을 다크웹에서 경매로 구입한 후 이를 익명으로 제보했다는 것이 뉴스 화면을 통해 보도된다. 슈발리에의 얼굴이 논쟁의 여지 없이 분명하게 찍힌 영상이었다. 재판정에서의 기행으로 모델 일자리까지 잃은 그녀가 진범을 밝힌 익명의 영웅이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결말이 ‘반전’처럼 보이는 이유는 영화가 내내 켈리앤을 께름칙한 인물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클레망틴의 집착이 왜곡된 애정 때문이었다고 분명하게 제시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의문이 든다. 켈리앤은 왜 피해자 소녀 분장을 해 유족에게 상처를 주고 재판을 방해했을까? 슈발리에 앞에서 죽은 소녀의 모습으로 나타남으로써 그에게 반성과 자백을 촉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슈발리에는 되레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켈리앤에게 손을 흔든다. 그가 내내 보였던 무기력하고 따분한 모습과는 정반대다. 그에게는 갱생의 여지가 없다. 다른 한편, 켈리앤은 희생자 ‘되기’를 통해 길 잃은 재판에서 자기 자신의 중심을 잡고자 시도한 것일 수도 있다. 슈발리에 변호사의 논거는 설득력이 있고, 다크웹은 공고하며, 수사 기관은 켈리앤과 같은 집요함이 없다. 이대로라면 재판은 슈발리에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오롯이 혼자서 이 모든 걸 뒤집어야 하는 켈리앤은 재판정에서의 분장으로 희생자가 ‘되는’ 그녀만의 의식을 치른다. 이제 켈리앤은 이 사건에 분노하는 시민이자 희생자 그 자신이다. 이것으로 슈발리에를 처벌하는 데 따르는 위험을 감수할 다짐이 다시 한번 확고해진다. 충격적일 정도로 인상적인 법정 조우 장면에는 이런 의지가 담겼다. 공포에 잠식당하지 않는 분노와 용기의 기괴한 표출 말이다. 이 장면이 관객을 붙잡고 뒤흔든다면, 광증에 가까운 켈리앤의 윤리도 그러할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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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들은 벗으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이후 2년간 "청소년 관람불가"를 달고서, 100만명을 넘긴 영화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가 유일하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방자전, 2010 - 인간중독, 2014>을 마지막으로 명맥이 끊겼던 "한국 성인 로맨스"이다.
당연히, 노출에 대한 마케팅도 있었지만 극장에서 거둔 결과는 7만명에 불과했다.
700만명을 넘겼던 <은밀하게 위대하게, 2013> 이후 9년 만에 나온 신작임을 생각하면, 아쉬운 성적이나 VOD 공개 1달 만에 8만건의 이용 횟수가 확인되었다.1. 야해서 보는게 아닌가?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는 공간은 어딜까? - 당연한 소리이겠지만, 영화관이 이에 충족하는 공간이다.
핸드폰과 태블릿, 컴퓨터, 혹은 TV와는 비교가 안 되는 크기와 화질, 음향과 조명까지 비교가 될까? (최근 "공연 실황"에 "스포츠 경기"까지 그 범주가 넓어지고 있다만...)
그런 점에서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성인 로맨스"이다. - 아무리 <365일>가 재밌다고 한들,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으니...근데, 본 작품에 오가는 말들이 살벌하다.
'"색, 계'라니요, '화양연화'라니요, 대체."로 분노를 꾹꾹 눌러낸 "이동진 평론가"를 비롯해 관객들 역시,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물론,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라는 속 편한 소리도 있겠지만 '왜, <화양연화, 2000 - 색, 계, 2007>가 지금까지 관객들의 기억에 남는지?'를 아는가? - 설마, 자 영화들이 관객들의 눈요기만을 잘 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2. 걷잡을 수없이 커진다고?
그저, '야함'만을 선보였다고 하기엔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분량은 146분으로 2시간을 훌쩍 넘긴다.
이는 그만큼 이야기에도 공을 들였다는 소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 '무광 - 수련'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시작으로 급격하게 무너지는 것까지의 묘사가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특히, 이 과정이 나쁘지 않았기에 관객들이 기대를 걸었던 '그렇고 그런 장면(?)'들도 좋았던 것이고...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 데에는 무엇일까?
일단, "수련"이 "무광"에게 관심을 보이는 원인을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이건, 필자가 '솔로'임을 유의하길...)
그저, 계급을 이용한 "역할 놀이"로 보일 만큼 그들의 '그렇고 그런 장면(?)'들은 '아이 캔디'에 그친다.
무엇보다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수련"의 남편 "사단장"의 성불구로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한 여성 개인의 불만은 "이혼"이라는 상호 신뢰 간의 문제, 즉 한 국가의 신뢰로 이야기를 넓혀나간다.3. 자꾸만 아니라고 하네요...
이후 넋이 나간 "무광"이 당의 말씀이 적힌 팻말에 집중하는 장면까지 그저, 야한 영화를 큰 스크린으로 보고자 했을 관객들의 기대치와는 한참이나 다른 야심에 당황스러운 건 나뿐만이 아닐 거다.
이런 이유에는 본 국 '중국'에서 검열로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고, 이후에는 이마저도 회수시켜 '금서'가 되어 영상으로도 제작되지 못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원작에 대한 소개말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이를 모르더라도, 사진이 있는 액자가 각 가정에 붙어있고 일부 군인들이 농사를 하는 방식이며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등의 실제 사건 등은 단번에 윗동네를 연상시킨다.
다만,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으며 쓰이는 언어도 다양하게 섞여있다.
이런 모호함은 많은 분들이 지적하고 있는 여주인공 "수련"의 연기에 적지 않는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직접, 확인하시는 편이 빠르고 정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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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영화 여배우들의 명과 암
최근 고전 영화에 심취하는 바람에 예전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고전 로맨스 영화들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영화들을 고르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아무래도 전설적인 여배우들의 출연 여부였다. 보다보니, 영화 내용과는 상관없이 궁금한 점이 생겼다. 요즘은 영화를 이끄는 남성 캐릭터가 많다고들 하고, 이런 현상은 여성 캐릭터들은 남성 캐릭터의 그늘 아래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드문드문 여성 서사의 영화들이 나오고 있고, 개인적으로 이런 흐름에 대해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뒤늦게 고전 영화들을 보니, 고전 영화들은 여성 캐릭터들을 오히려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주연 남자 배우들의 존재가 무색할 만큼 영화의 초점은 여자 캐릭터에 집중되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 때의 여배우들이 받았던 스포트라이트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야만 하는 걸까.
티파니에서 아침을, Funny face,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등의 전설적인 여배우들의 히트작에서 공통적으로 그 시대의 보통의 여자는 태생적으로 보석을 좋아하고, 부자 남자를 낚아 인생 피는 것이 목표이며, 그런 여자들은 일정 부분 멍청한 데가 있을 수도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물론, Funny face에 나오는 오드리 헵번의 캐릭터는 여자의 치장과는 거리가 먼, 책벌레 여자로 등장하지만 그런 여자는 흔치 않기 때문에 별난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다. 그 시대의 여성들의 캐릭터는 그렇게 똑똑하지 않아도 되지만 자신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가꾸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성 캐릭터들의 패션이 정말 화려하다. 아마 고전 영화에 대한 선호도는 현대의 사람들이 봐도 촌스럽지 않은, 클래식한 세련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롯될 것이다. 필자도 영화의 비주얼적인 면에서는 정말 감탄하면서 보게 된다. 하지만 관객의 만족스러운 눈요기 이면에는 여성에 대한 뿌리박힌 고정관념도 함께 보이기 때문에 화려함 이면의 숨겨진 상품적 시선에 대해 고려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마릴린 먼로를 봐도, 그 상품적 시선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은데, 대중이 원하는 여성성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명성은 얻었지만 진짜 그녀의 모습을 보려는 사람은 없었던 시대에서 그녀의 몸부림은 눈에 띄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당시만 해도 배우의 역할과 실제 성격이 동일시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과거의 영화들을 보면, 정말 완벽한 스타일링, 고급스러운 느낌이 정말 눈길을 사로잡지만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일종의 광고, 화보에 등장하는 모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당연한 여성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현대를 살고 있는 필자는 왜 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현대의 영화 속 여성들은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사실 여성 중심 영화라고는 했지만 주인공이 여자일 뿐이지 그저 사회 속에서 어떤 사건에 휘말리는 한 인간의 이야기일 뿐이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 관념에서 탈피하여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고전 영화들의 캐릭터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여성을 사람이기 전에 여성미가 필수적으로 가미되어야 하는 사람에서 여성미 같은 거 없어도 되는 사회로 오는 데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 요구받았던 가이드라인에서 자유로워지기까지 영화 속 캐릭터도 그만큼 다양해졌다는 점에서 정말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느낀다. 다만, 그 시간에는 많은 이들의 거침없는 표현이 필요했음은 잊지 않아야 하지만 말이다.
뜬금없지만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다분히 주관적인 이유 때문이다. 나는 너무 현재와 미래에만 집중하는 삶을 살다 보니, 과거의 어른들이 너무 당연하게 요구하는 여성적인 모습에 불만을 가진 적이 많았었다. 장녀이니 남동생의 끼니를 책임져야 한다느니, 뭐 여자애니까 이런 행동 거지를 해야 된다는 둥 은근히 느껴지는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그러려니 하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적이 많았었고, 지금도 그 스트레스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예전의 나는 그런 어른들의 사고방식의 편협함을 깨려고 했었고, 내 문제보다는 어른들의 문제에 꽂혀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오만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옛날 영화를 보았을 때에 느껴지는 화려함 이면의 불편한 느낌은 내가 기성 세대에게서 느꼈던 기시감과 맥을 같이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다.과거를 살아온 그들에게는 여자에게서 여성성은 당연한 것이었을 테니까. 내가 어른들이 살아온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대의 잣대로 그들의 과거를 재단하려고 했기 때문임을 알았고, 그 부분은 어른들을 탓하고자 했던 나의 문제도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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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의 뒷모습
*영화 <안녕 미누>에 들어간 미누 씨의 삶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네팔에 사는 미노드 목탄 씨의 침실 벽에는 목장갑이 액자에 걸려 있다. 그 모습은 여러 의미로 생경하다. 지극히 한국적인 아이템이기도 하거니와, 소중하게 액자에 끼워놓을 일은 더더욱 없는 일상의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미노드 목탄 씨의 인생을 고스란히 담은 풍경이기도 하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20대 초반 어린 나이였던 1992년 한국으로 일하러 떠났다. "미누"라는 이름으로, "1세대 이주 노동자"라 불리던 그는 2009년 어느 날 갑작스럽게 추방을 당했다. 이 영화는 그 미누 씨의 삶을 담았다.
미누 씨는 네팔에서 성실하게 살고 있다. 한국 어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강의를 수료한 후 자격을 갖춘 청년들이 한국으로 일하러 떠날 때 다정한 말로 격려한다. 카페를 열고, 인형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고, 판로까지 터 주면서 청년들이 네팔을 떠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도 열심히 찾는다. 그가 처음 한국에 온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함이었을 테니, 이만큼 든든하게 섰다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그의 등에서는 이방인의 뒷모습이 어른거린다. 그는 자기가 나고 자랐을 네팔 시장을 걸으며 "남대문 시장 생각난다"며 웃는다. 네팔 사람이라고 다 히말라야 가본 건 아니라며, 자기 히말라야는 안 가봤다고 웃지만 <목포의 눈물>을 구성지게 부를 줄 안다. 한국에서 일하던 시절, 고향을 떠나 일을 한다는 점에서 동병상련이었던 아주머니들이 밥도 챙겨주고 건강도 걱정해주고 그러면서 가르쳐 주었던 노래란다.
그의 웃음은 어쩐지 씁쓸하고 외롭다. 분명 활짝 웃는데 눈물 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 긴 시간 동안 살았던 나라에서 추방당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네팔 사람으로 태어나 네팔에서 자랐어도 그를 이루는 것들의 상당수는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일 텐데. 한국에서 찾아온 손님들에게 한국식 밥상을 차려주는 솜씨를 봐도, 나이를 물으면 "한국 나이로"를 접두어처럼 붙여 대답하는 모습을 봐도, 놀라면 "깜짝이야"가 먼저 나온다는 걸 봐도, 그의 어딘가에서 분명 한국 DNA가 느껴진다. 네팔 사람들과 네팔어로 대화하고 네팔의 명절을 챙기고 있어도 그는 네팔에서 오래 산 한국 사람처럼 보였다. 어떻게 보면 한국인보다 더 지독하고 치열하게 한국의 모든 것과 부딪고 얽힌 사람이어서 그런 걸까.
네팔에서 늘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있듯 그는 한국에서도 그런 사람이었다. 식당에서도 일하고 봉제공장에서도 일했지만, 밴드도 결성했다. 신나고 경쾌한 멜로디인데 "오늘은 나의 월급날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로 시작한 가사가 "오 사장님 이러지 마세요 그동안 밀린 내 월급을 주세요 날 욕한 건 참을 수 있어요 내 월급만은 돌려주세요"로 흘러가는 <월급날>이나 박노해 시인이 쓴 동명의 시를 모티프로 쓴 <손무덤> 같은 노래들. 이주 노동자들이 줄줄이 자살로 죽어나가던 시절, 밴드 스탑크랙다운("단속을 멈춰라')은 현장의 분위기를 만들고 이주 노동자들과 사회의 중간다리가 되어 주었다. 미누는 자연히 이들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러나 밴드 공연이 잡혀있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추방을 당한다. 불법 체류자를 추방하는 게 무엇이 나쁘냐 할 수도 있겠지만, 며칠씩 미누를 따라다니다가 집 앞에 있는 그를 잡아간, 말하자면 '표적 수사'였다. 당시에도 게다가 추방 이후 미누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은 "이게 법치국가냐"라고 되묻는 스탑크랙다운 멤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법치국가면 법대로 해야지, 왜 미누는 예외가 되는가. 한국 사는 동안에도 그저 노동을 했고 노동에 당연히 따르는 권리를 말했을 뿐인 그가, 이제는 버젓이 사업가가 되어 한국에 들어오려는 그가 얼마나 체제에 반동적인 인물이라고 법에 예외까지 두는 것일까.
불법 체류와 이주 노동자 문제는 언제나 첨예한 사회 갈등 소재가 되었고, 담론은 나뉠 수밖에 없다. 법은 잘 지키라고 있는 거고 그러니까 지키면 되잖아,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애초에 법을 지킬 만한 여건이 주어지지 않은 이들에게 불법은 선택이 아니었다. 또한 법치국가가 법을 형평성 없이 적용했다는 것은 누구든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는 별도의 문제다.
게다가 미누 씨의 인생을 보고 나면 법과 국적을 다 떠나서 숙연해지는 것을 느낀다. 추방과 격리로 응답한 한국 사회에게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가진 나눔과 연대, 따뜻한 애정만을 주고 떠났다. 이 영화는 그가 남기고 간 마지막 선물이다.
인도로 떠나던 20대 초반의 내게 누군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한 사람이 어떤 사회의 일원으로 완전히 흡수되기까지 2년이 걸린대."로 시작된 그 말은 "그러니까 너 돌아오면 많이 힘들 거야.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덜 힘들 거고. 나중 되면 무슨 말인지 알 거야."로 끝났다. 그리고 그 말은 정말 꼭 맞았다.
인도 산 지 1년 반쯤 되었을 때,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인도 루피화를 꺼내어 계산을 치르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인도 내의 한국 식당은 거의 안 가봤으니까 그건 현실 반영이라기보단 내 상태를 고스란히 비추는 꿈이었을 거다. 더 시간이 지나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더욱 당황스러웠다. 나고 자란 땅에서, 평생을 살아온 내 방에서 나는 남처럼 서성거렸다. 내 자신이 낯설고, 낯설다는 것이 당혹스러웠다. 예방주사처럼 내게 누군가 넣어준 몇 마디 말을 동아줄 삼아 그 시간을 보냈다.
하물며 1992년에서 2009년, 아이 하나가 장성할 만큼의 시간이 지나도록 한국에 산 그가 그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어떤 친구는 내게 "너 3년 있었지? 그럼 딱 그만큼 힘들 거야."라고 말했고, 실제로 귀국한 지 3년쯤 지나니 인도는 내게 추억이 되었다. 미누 씨에게 한국은 아직 추억이 될 수 없는, 자기 안에서 너무 팔팔하게 날뛰는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네팔 거리를 걷는 그의 뒷모습, 여권 가진 자기의 모국을 걸어다니면서도 이방인의 냄새를 풍기는 그 뒷모습이 너무 슬펐다. "고향에 고향에 이르러도 그리던 고향이 아니러뇨"라는 지용의 시구가 과연 우리만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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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사이의 공기
나에겐 청각장애인 사촌언니가 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낼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아빠와 큰아버지는 꽤 나이차이가 큰 편인데다가, 아빠가 당시로써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한 편이라, 나의 큰아버지의 자녀들(세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 과 아빠의 자녀인 우리 남매 또한 나이차이가 많이 났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막내 언니가 이미 대학생이었으니까. 아빠와 큰아버지는 애틋한 형제지간은 아니었던지, 사촌형제들은 명절에나 겨우 만났다. 차례를 준비하느라 부산했지만, 집 안의 막내였던 어린 나는 언니들의 방에 숨어들어 대학생들이 보는 멋진 책을 펼쳐 놓고 구경했다. 그러면 세상과 동떨어진 듯, 아무말 없이 구석에서 책을 보던 큰 언니가 초등학생도 볼 만한 이런 저런 책을 꺼내 내 옆에 놓아주곤 했다.
유달리 말이 없고, 방에서 책만 보던 큰언니가 청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유치원 때 쯤이었다. 어쩌면 더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줬을 수도 있지만, ‘들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내가 정확히 인지한 게 그 즈음일 지도 모르겠다. 후천적인 장애라고 했다. 열병이라고 했던가… 일년에 한 두번 가는 큰 집은, 현실과 다른 공간처럼 느껴지곤 했다. 적막과 무거운 공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어린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어떤 감정들이 공기 속에 쌓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막연히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청력을 잃은 딸을 둔 큰 어머니는 아이들의 작은 일에도 예민한 것 같았고, 상실을 겪은 큰 언니는 슬퍼 보였다. 어쩌면 장애를 가진 사람은 불행할 것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장애를 가진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금기된 것 처럼 입 밖으로 꺼내지 않던 분위기였다. 어느날 막내 언니와 큰 언니가 수화로 격렬하게 (아무 말이 없는데도, 저렇게 격렬할 수 있구나. 하고 엄청 놀랐던 기억이 선명하다) 대화하며 낄낄거리며 웃던 모습을 보고,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같이 웃었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다음 명절엔 큰언니와 얼굴을 맞대고, 나도 낄낄 웃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음 만남은 오지 않았다. 언니는 그 사이 같은 장애를 가진 형부와 이른 결혼을 했고, 자신의 가정을 이루게 된 것이다. 언니가 큰 집으로 오는 날 나도 외갓댁으로 가니, 언니의 결혼 이 후엔 거의 보지 못하였다. 그러다 몇년 후 큰언니네 가족이야기가 친척들 사이에 화두에 오르게 되었다. 언니는 결혼하고 바로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청각 장애가 없었던 이유였다. 둘이서만 아이를 돌보던 때였는데, 이 아기의 말을 어떻게 배우게 할지 온 가족이 모여 고민했다고 한다. 지금 처럼 어린이집이나, 놀이방 같은 기관에 마음껏 보낼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고, 언니네 가족은 많은 시간을 농인들 커뮤니티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큰어머니는 자주 언니네 집에 머물렀고, 가끔 막내 언니가 다니러 갔고, 친가의 가족들이 함께 아이를 돌보았다. 조카는 여러 가족의 도움으로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아이는 영재 판정을 받게 되었다. 아니 거의 천재에 가깝다고 했다. 주변에서 들썩이기 시작했다. 아이를 농인 부모와 계속 살게 하는게 맞나? 더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지만, 아이와 부모를 떼놓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쩌면 언니도…조금 고민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이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누구네가 맡아서 키우면 어떠냐.’ ‘그래도 할머니가 그냥 같이 사는게 낫지 않나?’ 백 가지 경우의 수들이 가족들 간에 논의 되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초등학교를 입학한 어린 그 아이는 그냥 엄마아빠와 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가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되어줄거라고.’
영화 <코다>를 보며, 나는 조카를 생각했다. CODA는 농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한다. (Children of deaf adult) 이영화는 베로니카 폴랭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농인인 부모와 역시 농인인 오빠 사이에 유일한 청인인 영화 주인공 루비 로시는 새벽 3시에 아빠와 오빠와 함께 배에 올라타 귀가 들리지 않는 그들의 귀와 입이 되어주며 물고기를 잡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느 날 루비는 짝사랑 하던 마일스를 따라 자기도 모르게 합창단에 지원한다. 루비가 합창단에 가입 한 후, 음악 선생님은 루비의 재능을 알아보고, 버클리 음대를 목표로 도움을 주지만, 루비는 자신의 부재로 힘들어질 가족때문에 고민한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 노래를 듣는다는 것의 행복과 기쁨을 모르는 가족. 그리고 가족이 이해 하지 못하는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루비. 아빠를 위해 간절히 노래하는 루비의 목을 손으로 감싸고 노래를 듣는 아빠는 목청의 진동과 떨림으로 , 루비의 노래를 느낀다. 들리는 사람들과 들리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공기와 이해, 그리고 사랑에 대한 이 영화를 보며, 각자 나름의 행복을 찾아 살아 가고 있을 나의 먼 가족을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누구나 청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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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맘대로 시상식! 나는 여기까지 봤다!
오랜만에 하는 결산,,
2024년도 버전입니다.
올해는 총 63편의 새 영화와 기타등등 봤던 영화 또 보기로..
총 100편 이상은 본 것 같네요.
하지만 영화 결산에는 새 영화들만 포함하도록 하겠습니다.
2024 내맘대로 영화 결산 시상식!
1.올해의 동심파괴 부문
곰돌이 푸: 피와 꿀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우리들의 꿈과 희망, 곰돌이 푸를 이렇게 엉망진창 싸이코 살인마로 만들어버리다니. 이런 동심파괴적 연출에 발바닥 박수를 드립니다.
'피와 꿀'도 검열할까?
2.올해의 '추억보정 실패' 부문
프레디의 피자가게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어린이들의 추억을 되살리려 노력했지만..
실패!
3.올해의 충격 부문
그을린 사랑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제가 본 가장 충격적이고 거북한 반전 영화!
극의 연출과 계연성도 잡고 간 명작.
4.올해의 실망 부문
다빈치 코드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여기저기 칭찬을 많이 받은 과대평과 작품.
말하고자 하는 바도 명확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힘도 딸린다.
원작의 이야기를 우겨담아 넘친 느낌이다.
점점 장황해지는 분위기와 다르게 관객은 계속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5.올해의 다큐멘터리 부문
거리의 소년 사니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거리에서 만난 소년 사니의 인생을 보여줍니다.
가정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한 청소년이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어떻게 자라나고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다큐로, 현실의 잔혹함이 여실하게 들어나는 작품입니다.
6. 올해의 애니메이션 부문
가필드 더 무비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가족이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답을 명확히 해주는 영화입니다.
피가 섞여야지만 가족일까요?
나를 버리고 간 아빠를 용서해야할까요?
우린 가족이니까요?
가필드의 성장통을 그린 영화!
(참고로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울었습니다.)
7.올해의 가장 옛날 영화 부문
안개에 싸인 고슴도치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사실 애니메이션 부문에 공동 수상을 넣을까 했지만, 둘이 각각 따로 수상하면 좋을 것 같아서.. 옛날 영화 부문으로..!
고슴도치씨가 곰친구와 티타임을 가지기위해 떠난 여정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그 여정에서 과연.. 고슴도치씨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8.올해의 드라마 부문
밀양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방인의 새로운 마을 정착.
마을 사람들의 차가운 눈초리.
아이의 실종과 죽음.
극복.
한 사람의 인생 희노애락이 다 담겨있는 작품.
가장 인상깊은 씬은 역시..
자식을 살해한 범인을 용서하기 위해 교도소를 찾아간 씬..
니가 뭔데 니 자신을 구원해 이 쓰레기 새끼야!!!!
9. 올해의 뇌절 부문
서브스턴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진짜 뇌절의 뇌절의 뇌절을 하는 영화!
감독님이 하버드 뇌절학과 박사학위를 수료하신 것 같달까?
그래도 독특한 카메라와 화려한 색감덕분에 환상적인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네요!
몬스트로 엘리자수 나올 때 진짜 어이없어서 웃은 기억이..
마가렛 퀄리의 미모에 홀렸던 기억이..
10.올해의 신선한 영화 부문
불의 딸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 영화를 보는내내 정말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한 것만 같았습니다.
이 9분짜리 짧은 영화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시다면..
이 링크 참조해주세요!
11.올해의 '이야기가 산으로 가' 부문
다운사이징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돈에 쪼들려서 몸을 작게 만들었는데, 사실 그게 우리 아픈 지구를 구하기 위해서였고, 살다보니 우리네 이웃들이 너무 불쌍하고 그래서 내가 이 세상을 구하는 짱짱 슈퍼맨이 되겠어! 하는 그레타 툰베리 빙의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
이렇게 이야기가 산으로 가기 쉽지 않은데! 대단합니다!
수상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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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최고의 영화 부문만 남았는데요!
여러분의 2024 최고의 영화는 무엇이었나요?
저의 2024 최고의 영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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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구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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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올해 최고의 영화 부문
카지노 !!!!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화려한 연출과 스토리텔링..
역시 가히 스콜세지 영화다웠던 영화입니다.
사실 아이리시맨과 카지노 중 고민을 했는데,
둘 다 너무 좋은 영화이지만,
카지노의 연출과 카메라가 더 인상깊어서 카지노를 선택했답니다.
(스콜세지팬 림림)
카지노 정말 강력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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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2024 내맘대로 영화 결산 시상식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시상식에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꾸벅
2025에 또 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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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을 깨워라
카세트와 함께 시작된 스텝 그리고 기타 연주. 밴드 토킹 헤즈의 명곡 Psycho Killer 가 시작된다. 오로지 기타와 데이비드 번의 목소리로만 첫 무대가 장식된다. 화려한 폭죽 현란한 백사운드 없이도 꽉 찬 리듬은 관중을 압도한다. 무대 위 그를 스크린 너머로, 한 겹의 프레임 너머로 보는 관객 역시 숨 죽이게 되는 이유는 무얼까. 공사를 덜 마친듯 꾸며진 스테이지 위에서 데이비드 번은 그렇게 기타를 매고 표류한다. 이 영화가 다름 아닌 단순 실황으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엔 그가 확실히 카메러 뒤 관객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에서 느낄 수 있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 시공간이 어그러지고 관객은 어느새 무수한 박수를 보내는, 하지만 어쩐지 꿈곽 같은 시선으로 그의 무대를 바라보게 된다. 바로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 의 도입이다. 데이비드 번의 시선 그리고 너무나 날 것이기에 더욱 의도적으로 느껴지는 빈 무대. 이 요소들은 심지어 데이빗 린치의 영화와도 같은 컬트적인 바이브를 풍기기도 한다. 즉 관객은 타이틀을 포함해 <사이코 킬러> 곡이 끝난 채 10분이 안되는 시간에서 한 가지를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 는 단순 토킹 헤즈의 공연 실황이 아닌 하나의 연출된 작품이며 일순 꿈 속에서 펼쳐지는 듯한 나만의 콘서트를 표류한다는 감각을 말이다.
Thank You for Sending Me an Angel 이 시작되면서야 드러머의 자리가 생긴다. 다음 곡을 준비 할 동안 자리를 준비하는 스탭들이 전부 노출되는 것으로 보아 첫 곡은 의도적으로 무대가 비어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덜 만들어진 세트장 같은 무대에서 기타와 카세트 하나에 의지해 노래를 부르는 데이비드 번. 그리고 곡이 하나씩 시작될 때 마다 무대로 모이는 토킹 헤즈의 멤버들. 이는 마치 영화 속 크루 생성의 구성과도 비슷하다. 이에 호응하듯 카메라 역시 당연히 추가된 멤버들을 집중적으로 비춰준다. 하지만 이때 아주 재미난 사실은 무대 너머로 스탭들이 계속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된다는 것이다. 계속 자리를 만들어주고 라인을 정리하는 그들은 무대의 일부이다. 음악의 일부인 것이다. 실시간으로 무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완성된 무대를 관객은 그저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지고 있는 그 과정, 시간 속에 참여하는 것이다. 사실상 매우 기묘한 경험이다. 요즘처럼 이미 완성된 무대를 보며 실시간으로 새로운 컨텐츠를 제공하는 요즘의 콘서트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토킹 헤즈가 노래를 하는 동안 스탭들은 여전히 무대를 만든다. 구성한다. 오로지 카세트와 데이비드 번만 존재했던 세트를 채워나간다. Slippery People 정도 왔을 땐 더 이상 틈을 보기가 어렵다. 어느새 무대는 꽉 차 모두가 리듬 속에서 여전히 연주를 이어나가는 데이비드 번과 화합한다.
사실 콘서트 영상에 거창한 수식어를 덧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명확하게 무대가 조립되는 과정을 바라보며 이 무대의 끝이 과연 어떨까 기대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으레 영화를 관람하며 느껴지는 감각이다. 결말에 궁금증을 갖고 그 끝까지 함께하는 것. 단순 컨텐츠에서 컨텐츠로 이어지는 무대에선 찾아보기 힘든 감각이다. 끝나가는 콘서트는 나를 아쉽게 하니 말이다. 하지만 조립의 과정은 결과물을 기대하게 한다. 이 콘서트의 막은 어떤 것을 창조하리라 믿는 것이다.
<스탑 메이킹 센스> 속 무대에서는 한 가지 더 눈여겨 볼 지점이 있는데, 바로 무대 위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연출된 행동보다는 리듬 그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마음대로 뛰고 몸을 움직이며 연주를 하고 그 과정에서 카메라는 굳이 호응하는 관객을 비추지 않는다. 영화도 굳이 해당 영화를 관람하는 관람객의 얼굴을 비추지 않기 때문이다. Burning Down the House 정도가 되어서야 무대의 세트는 암전되어 오로지 무대 위 멤버들에 집중 할 수 있게 한다. 관객이 앞으로 할 것은 그렇게 조립된 무대 위의 리듬을 즐기기만 하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은 락의 계절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온도에 도무지 페스티벌을 즐길 여력이 안된다면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현장으로 돌아가보는 것이 어떨까.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는 단순 콘서트의 영역을 뛰어넘어 영화적 체험과 컬트적 경험을 충족시켜주는 작품이다. 밴드 토킹 헤즈를 모른다 한들 그저 마치 꿈 속에서 목격하는 이름 모를 밴드의 음악을 즐긴다는 생각을 해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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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28] 복제인간이 묻는 삶과 죽음의 의미-영화 서복
공유와 박보검 배우가 주연한 영화 서복이 지난 주 개봉했습니다.
불신지옥, 건축학개론을 연출했던 이용주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인데요.
이번에도 드라마적인 이야기가 강한 영화입니다.
복제인간이 등장하기 때문에 SF장르의 표피를 두르고 있고 액션도 가미되어 있는데요.
이 영화는 볼거리 보다는 두 주인공 기헌과 서복의 관계를 통해 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하는데 더 집중하고 있어요.
그래서 다양하고 박진감 넘치는 볼거리를 원하시는 분들이라면 실망하실 거에요.
그래도 공유와 박보검의 연기가 좋은데, 특히 박보검 배우는 서복과 너무 잘 맞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샹을 참고하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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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TUDUM: 글로벌 팬 이벤트> 공식 예고편
9월 25일, 전 세계 넷플릭스 최고 스타들과 크리에이터들이 가상의 공간에서 모입니다. ? 사상 최초로 열리는 글로벌 TUDUM 이벤트! 세계 곳곳의 넷플릭스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감사의 뜻을 전하는 시간입니다. 3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이번 이벤트에서는 《지옥》 《마이 네임》과 같은 신작부터, 《기묘한 이야기》 《브리저튼》 등 인기 시리즈의 후속 시즌, 《레드 노티스》 《돈 룩 업》 같은 영화까지 70여 편에 이르는 콘텐츠의 최신 정보를 만나볼 수 있어요. 넷플릭스 최초 공개 및 독점 영상 대거 등장 예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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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위쳐: 늑대의 악몽> 티저 예고편
[2021년 8월 23일, 넷플릭스 공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타고난 운명을 거부하려 했다.
스스로 위쳐의 길을 택한 베스미어, 돈을 위해 괴물을 사냥하는 사내.
하지만 알 수 없는 위협과 더불어 과거의 어둠이 그를 덮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