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4-09-05 09:01:57
[JIMFF 데일리] 〈라라랜드〉만큼 매혹적인, 어쩌면 더 진득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치코와 리타〉

치코와 리타/Chico & Rita
Spain, UK | 2011 | 93min | DCP | Color | Animation
'제천 리와인드' 섹션
1948년 쿠바 아바나. 재능과 야심을 가진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치코는 어느 클럽에서 노래하는 리타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치코의 적극적 구애로 팀을 이룬 두 사람은 차차 명성을 얻고, 리타가 뉴욕의 연예기획사 사장의 눈에 들어 미국에까지 진출한다. 리타가 점점 스타가 되어가면서 두 사람은 종종 어긋나지만 끝내 노년이 되어 재회한 후 못다 한 사랑을 나눈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서로를 향한 사랑이 끈적하게 얽혀 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엇갈리고야 마는 순간의 안타까움을 탁월하게 포착한다는 점에서, 〈치코와 리타〉는 자신보다 4년 늦게 개봉한 〈라라랜드〉와 닮은 데가 있다. 그러나 개인적 취향을 전제로 하자면, 내게는 〈치코와 리타〉가 더 매력적이었다.
먼저 영화의 시공간이다. 1948년 리타를 처음 만난 후, 우여곡절 끝에 치코가 다시 쿠바로 돌아오는 건 1959년 이후로 보인다. 쿠바 혁명(1959)에 들뜬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즉 치코와 리타의 사랑과 음악은 1950년대 쿠바 아바나와 뉴욕을 오가며 연속되고 단절된다. 혁명을 앞둔 쿠바와 인종차별이 횡행하지만 아메리칸드림 역시 가능하던 시절의 뉴욕, 두 공간이 만들어내는 역동적 긴장은 두 사람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긴장감과 몰입감을 증폭시킨다. 재즈를 비롯해 쿠바의 음악인 맘보와 콩가가 대세인 1950년대 뉴욕에서, 검은 피부를 가진 두 남녀가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설정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낭만적이다. 눅진한 OST 목록과 두 사람의 진득한 사랑 이야기는 이 낭만적 기대를 채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무턱대고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사랑과 음악을 한껏 부풀린 영화의 시공간은 동시에 비극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 피어오른다. 치코와 리타가 뉴욕으로 떠난 이후부터, 아니 어쩌면 아바나에서부터, 두 사람은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인 적이 없었다. 사랑과 음악의 중요한 순간마다 늘 외력이 개입해 두 사람을 흩어놓았기 때문이다. 치코를 두고 리타만 뉴욕에 데려가는 기획사 사장, 치코와 리타가 각각 라틴계 남성과 여성으로서 겪은 무시와 착취, 사업적 성공을 위해 두 사람을 어떻게든 떨어뜨려 놓으려는 주변인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체념한 채 돌아간 혁명 이후의 쿠바에서조차 재즈가 ‘제국주의 음악’이라는 이유로 연주하지 못하는 치코……. 치코와 리타의 음악과 사랑이 꺾이고 흔들리는 이유가 그들 자신의 문제가 아닌 두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의 개입 때문이라는 점은 이들의 엇갈림에 대한 안타까움을 배가한다. “미래 같은 건 의미 없어. 내가 바라는 건 다 과거에 있거든.” 리타의 이 말은 자기 삶의 주인이기를 부정당한 두 사람의 비애를 대변한다. 꿈 말고는 가진 것 없던 과거는 빈곤하지만 풍요로웠고, 이 풍요로움을 원천으로 치코와 리타는 사랑과 음악의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풍요로움이 소진되었을 때, 두 사람은 스러졌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린 영화 속 시공간처럼.
치코와 리타가 50여 년 만에 재회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영화의 결말은 다소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차라리 두 사람이 간절히 추구했으나 실현되지 못한 낭만을 ‘실패’한 상태로 남겨두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 실패의 아련함이 두 사람의 이야기가 품은 아름다움을 거듭 곱씹을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러나 이런 결말은 치코와 리타, 두 사람에게는 조금 가혹할지도 모른다. 더 이상 음악을 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구두를 닦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치코와 원치 않는 방식으로 은퇴한 후 허름한 모텔에서 청소 일을 하며 살아가는 리타에게 두 사람이 함께했던 과거는 어떤 식으로든 완결될 필요성이 있다. ‘비현실’적이라도, 두 사람에게는 기나긴 슬픔 끝의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다.
〈치코와 리타〉는 24회 유럽영화상을 비롯해 스페인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고야상(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고, 제7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주년을 맞이하는 이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는 이전 영화제에서 사랑받은 작품을 다시 한번 선보이는 ‘제천 리와인드’ 세션에 선정되었다. 진득한 쿠바 음악과 남미 특유의 생기 넘치는 문화, 1950년대의 아바나와 뉴욕이라는 매력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두 연인이자 음악가의 상승과 하강을 낭만적으로 버무린 이 영화를, 부디 많은 관객이 다시금 큰 스크린에서 만끽하기를 바란다. 낭만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아주 깊은 곳부터 적셔줄 영화다.
*〈치코와 리타〉 상영 정보 및 예매 페이지
-9월 7일(토)/9:00~20:33/제천의림지자동차극장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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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UFO/죽은 삼촌/노란 조끼 운동
미확인/Unidentified
Korea/2022/80min/한국경쟁
1993년. 하늘 위에 갑자기 거대한 미확인 비행 물체가 나타난다. 그리고 현재. 영화는 사람들이 UFO와 살아가는 법을 천태만상으로 보여준다. 선형적, 인과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짧은 이야기가 독특한 유머와 리듬감으로 이어진다. 심각하게 볼 필요는 없다. 감독의 말을 들어보자. “일반적인 내러티브 영화에 익숙한 관객은 조금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스토리를 이해하려고 보는 것보다 음악 듣듯이 (또는 시를 읽듯이) 감정을 흡수하는 느낌으로 보면 더 재밌을 것 같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외계인인가? ‘같은’ 인간이라도 그 생활과 내면은 얼마나 복잡다단한가? 다시 한번 감독의 말. “UFO처럼 이 세상에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을 때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이야기와 의미를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모든 캐릭터도 영화를 만드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 이야기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이야기. 관객도 본인의 삶에서 자신의 이야기와 의미를 만들기 바란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UFO와 외계인은 맥거핀일 뿐. 우리는 그저 꾸역꾸역 고군분투하며 나아갈 뿐.
H
카를로스 파르도 로스/Spain/2022/67min/국제경쟁
스페인의 산페르민 축제. 이 축제의 백미는 좁은 골목으로 소를 몰아 투우장으로 이동시키는 행사다. 1969년, 이 행사에서 한 남자가 사망했다. 드레스 코드인 흰색이 아닌 파란색 옷을 입은 남자였다. 신분증은 없었고, 소지품은 약간의 돈과 담배 그리고 ‘H’가 적힌 열쇠고리가 전부. 조사 과정에서 남자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수백 명에 대한 심문이 이어진 후에야 그의 신원이 밝혀진다. 죽은 남자는 카를로스 파르도 로스 감독의 삼촌이었다. 50여 년이 훌쩍 지난 후, 감독은 그날로 돌아가 삼촌이 죽기 전 새벽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따라가 보기로 한다. 영화는 내내 떠들썩한 행사 전날의 거리를 배회하는 장면의 연속이다. 삼촌의 혼잣말과 시선, 그가 들었을 법한 소리, 곧 있을 죽음과 대비되는 거리의 흥분, 그리고 현실과 죽음 사이에서 삼촌이 생각하고 대화한 것들 등등. 다른 장면은 없다. 1시간여 동안 내내 거리를 배회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흐릿하고 불분명하게 전개되는 시청각 요소들은 이 감각의 주인이 죽기 전의 삼촌인지, 삼촌의 유령인지를 헷갈리게 만든다. 5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남자/유렁의 감각에 이입하는 꽤나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영화다.
노랑 조끼의 프랑스/A French Revolution
엠마뉴엘 그라스/France/2021/105min/프론트라인
2018년 10월 시작된 프랑스의 노란 조끼 운동의 시작은 유류세 인상이었다. 그러나 유류세만으로는 온 프랑스를 들썩이게 한 이 운동을 설명할 수 없다. 파리 남서쪽의 소도시 샤르트르에서 노란 조끼 운동 간사를 맡은 한 남자는 자신이 처음에 노란 조끼 운동을 하찮게 봤다고 고백한다. 빈곤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고작’ 유류세 정도의 문제로 운동을 전개하는 데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내 깨달았다. 유류세 인상은 퍽퍽한 삶을 견디던 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는 하나의 계기, 즉 발화점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이다. 운동의 불씨는 이내 빈곤, 자본주의, 마크롱 정권 등에 대한 대중들의 광범위한 분노 전반으로 옮겨 붙었다. 요컨대 노란 조끼 운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단절된 채 존재하던 소외된 자들의 삶 경험이 접속하는 계기였다.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는 개별일 때는 들리지 ‘않는다’. 여럿이 모여야만 청취 가능한 목소리가 된다. 그러나 어렵게 모인 이들의 목소리는 이내 온갖 비난에 직면한다. 기존 사회‧체제의 ‘상식’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손가락질은 곧 운동 참여자들의 내면을 잠식한다. 과격파와 온건파의 대립, 교통 체계 등을 ‘방해’한다는 비난, 운동 조직화의 방향성, 활동가들의 내분과 헌신 경쟁, 소진 등등. 이들은 모두 처음 운동을 촉발한 분노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하는 내용물들이다. 활동가, 참가자들은 이내 수치심과 공포에 사로잡히고 패배주의적 정서에 젖어든다.
어딘가 익숙한, 노란 조끼 운동에 한정되지 않는 이야기다. 모든 사회운동, 대중운동이 이러한 순간을 마주한다. 그러나 패배를 기억하되,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노란 조끼 운동은 흐지부지되고 마크롱은 재선에 선공했지만, 노란 조끼 운동의 문제의식은 연금 개혁 이슈에서 다시 한번 불타올랐다. 매번 꺾이는 듯 보이는 약자들의 목소리는 이렇게 불연속적으로 계승되며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패배주의에 잠식당하지 말고 다음 계기를 치열하게 모색하면 된다. 누군가를 착취‧소진시키는 체제가 존재하는 이상, 이에 반하는 목소리도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 목소리는 분명 어느 순간에 하나로 모여 변화를 촉구하기 마련이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 초청으로 제24회전주국제영화제에 기자로 참석해 작성한 글입니다.
★각 영화의 상영 시간은 제 24회 전주국제영화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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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로소 진짜 자신의 운전대를 잡게 된 모든 이들에게.
*스포일러가 포함된 리뷰이니 원치 않으시거나 관람 전이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 주세요
하마구치 류스케가 돌아왔다. 이번 12월은 그의 달이라고 해도 될 만큼, 두 작품이 국내 관객들에게 무사히 안착했다. 바로 <해피 아워>와 <드라이브 마이 카>이다. 먼저 개봉한 <해피 아워>는 사실 2015년에 현지에서 개봉했지만, 한국에는 무려 6년이나 흐른 지금 개봉을 한 것이다. <해피 아워>가 개봉 후 몇 주 뒤 바로 <드라이브 마이 카>가 개봉을 하는데, 이렇게 같은 감독의 작품 더군다나 해외 감독의 작품이 연달아 개봉하는 것은 국내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또한 러닝 타임도 어마어마하다. <해피 아워>는 328분, 무려 5시간 반 그리고 <드라이브 마이 카>는 179분, 약 3시간이다. 그만큼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을 찾는 국내 관객들이 많아졌다는 뜻도 되겠지만, 동시에 두 작품을 만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도 되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국내에는 지난 2019년 개봉한 <아사코>로 이름을 날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생긴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멜로 영화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영화를 본격적으로 파헤쳐보면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의 흔적 속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목소리가 숨겨져 있었다. 장르와 플롯의 틀 속에서 완전한 류스케의 해석을 한 번에 읽어내기는 어렵지만, 개봉 당시 국내 씨네필들에게서 아주 열렬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나 또한 <아사코>를 관람하고 난 후의 나의 주관적인 감상과 다른 관객들의 깊이 있는 해석을 비교하는 재미가 아주 컸었는데 이번 <드라이브 마이 카> 또한 어떤 매력이 있을지 매우 기대가 되었다. 지난 제 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단숨에 매진을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제 74회 칸 영화제 각본상 그리고 최근 LA 비평가 협회 최우수 작품상까지 수상하면서 전 세계가 주목을 한 번에 받고 있는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를 개봉 전 프리미어 상영으로 미리 만나볼 수 있었다.
영화는 겉보기에는 정말 아름다운 부부 가후쿠와 오토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남편 가후쿠는 아내 오토의 외도를 목격하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 오토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게 된다. 2년 후, 히로시마의 연극제에 초청을 받아 작품의 연출을 맡게 된 가후쿠가 그곳에서 자신의 전속 운전사 ‘미사키’를 만나게 되고, <드라이브 마이 카>는 그저 건조했던 둘 사이에 깊은 공감의 연대가 피어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줄거리가 명확하게 한 줄로 요약되지 않는 영화다. 그만큼 러닝타임이 길기도 하고 (약 179분) 한번에 영화적인 재미를 찾는 작품이기보다 천천히 그리고 묵묵하게 영화가 제시하는 텍스트를 해석해야 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단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차’ 그리고 ‘연극’ 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 시피, 영화의 주요 소재는 바로 ‘차’이다. 그리고 당연히 가후쿠와 미사키 두 사람은 차에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후쿠는 우선 ‘차’라는 공간이 그의 최적의 연극 연습 공간이었다. 가후쿠는 상대 배우의 대사를 녹음해 준 아내 오토의 테이프를 매일 틀며 대사를 외운다. 그에게 있어 ‘차’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자 누구에게로부터 방해 받지 않는 사적인 공간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집에서 아내 오토의 외도를 목격한 뒤로부터는 이런 성질이 더욱 강해진다. 어떻게 보면 그 이후에는 ‘연극 연습’이라는 틀 안에 그의 상처를 애써 외면하는 공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미사키에게 ‘차’란 상처가 가득한 공간이다. 미사키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에게 학대를 받고 자랐으며, 새벽에 일찍 출근하는 어머니를 차에 태우면서 아주 섬세한 운전을 강요받았다. 그 덕에 운전 실력이 아주 뛰어난 미사키는 운전사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어릴 적 그녀의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이렇게 ‘차’라는 공간에서 각자 나름의 상처와 좌절감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다뤄왔던 가후쿠와 미사키. 매일 운전을 하면서 목적지를 향해 달려도 마음속에서 그들은 수없이 방황하고 멈춤을 반복한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달려 왔던 이 둘이 마침내 만났을 때, 그들은 진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갈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키워드는 바로 ‘연극’이다. 영화의 8할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러시아의 유명 극작가 안톤 체홉의 「바냐 아저씨」라는 연극이 영화에서 대단한 지분을 가지고 있다. 가후쿠가 수도 없이 연습했던 연극 그리고 연출자로서 연극제에 출품하는 연극이 「바냐 아저씨」이고, 영화에서 자주 가후쿠와 배우들이 이 「바냐 아저씨」 대본 연습을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영화 초반에는 이 극본의 대사가 무작정 흘러나오기 때문에 무슨 의미이지하고 의문이 들 수 있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대사들의 의미가 또렷해진다. 「바냐 아저씨」의 설명을 가져 오자면, ‘개인의 고립과 소통의 단절 속에서 반복되는 절망과 후회를 보여주며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고 나와 있다. 영화를 다 본 후, 이 연극의 설명을 읽었을 때 정말 소름이 돋았다. 저 설명이 바로 <드라이브 마이 카>가 시사하는 바와 정확히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 수도 없이 연습해온 대사들과 연기, 아주 가까이 있었지만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익숙해져버린 모든 것이 다 자신을 향해 있었던 것이다. 배우들이 읊기도 하고 본인이 읊기도 했었던 대사들 하나하나가 결국 자신을 향하는 메시지였다. 단순히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화법보다, 모든 것이 ‘연극’으로 통하는 전체적인 구성을 통해 인물들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이 매우 고급스럽고 아릅답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감정을 끌어올려주는 류스케의 화법은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에서 다루는 연극 <바냐 아저씨>에는 매우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다. 바로 배우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동안 뒤편 스크린에서는 모든 대사가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자막이 나온다. 영화 전반적으로 이 연극의 대본 연습을 하는 과정들이 나온다. 배우들은 각자 맡은 역할의 대사가 끝나면 책상을 가볍게 노크한다. 각 배역의 대사가 모두 다른 언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차례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어떻게 보면 심오해 보일 수도 있고 긴 러닝 타임을 생각하면 다소 친절한 설정은 아니다. 개인적인 감상과는 별개로 영화를 보고난 뒤 왜 류스케 감독이 이런 설정을 넣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직관적으로 바라봤을 때, 배우들은 언어를 초월한 연대 속에서 연기한다. ‘언어’는 비록 다르지만 모두 같은 감정과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이 점이 핵심이다. 「바냐 아저씨」는 물론 주인공 가후쿠와 미사키를 향한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에 ‘살아 가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어떤 위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언어를 초월한 연대에서 외치는 ‘살아가야 한다.’라는 말은 어떠한 위로의 방식보다도 강력하다. 살면서 다른 언어로 위로 받아 본 경험이 있는가.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없었지만, 각자 다른 언어의 형태로 와닿는 이 메시지는 같은 언어 열 마디보다 훨씬 압도적이고 생생했다. 류스케가 만들어낸 섬세하고 정교한 이 위로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도 못할 것이고, 그리고 앞으로도 따라하지도 못할 것이다.
두 가지 특징을 모두 다 훑어 봤을 때, 영화가 정확하고 깔끔하게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해석과 리뷰들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바는 이렇다. 결국,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차’란 가후쿠와 미사키의 주체성을 나타낸다. 매일 똑같은 길을 반복해서 돌고 있는 가후쿠와 미사키. 동시에 그들 내면의 깊은 상처도 오랜 시간 쳇바퀴 도는 듯 반복된다. 종이와 펜을 생각해보자. 펜을 들고 종이에 원을 그린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린다. 그 원들이 반복되면, 점점 원 안이 채워지면서 진해지고 이내 점이 된다. 그리고 이내 그 농도를 버티지 못한 종이에 구멍이 생긴다. 그 구멍을 통해 그 원은 비로소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가후쿠와 미사키도 마찬가지다. 같은 곳을 수도 없이 빙빙 맴돌다 비로소 만나게 된 서로는 앞으로 나아가게 할 원동력이 된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린 운전처럼, 매일 같은 곳을 덤덤히 맴돌았던 서로는 마침내 진짜 자신의 ‘차’를 운전할 수 있게 된다. 즉, 자신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또렷하게 들여다보게 된 그들 사이로 새하얀 눈이 내린다. 새카맣게 타버린 그들의 마음을 새롭게 녹여주듯이. 비로소 진짜 자신의 운전대를 잡게 된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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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화와 불화하며
살아서도 죽어서도 파파라치와 가십의 대상이었던 프린세스 다이애나를 다룬 영화에서, 마찬가지로 수많은 파파라치와 가십에 둘러싸여 여기까지 온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연기한다. 자연히 이 영화를 기대하는 눈길은 많았지만, 과연 지금은 그 눈길에 파파라치의 시선이 없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도, '사건'을 보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없었다고는 못하겠다.
그만큼 사건이 많은 삶이었다.
사진 속 프린세스 다이애나의 미소는 지금 보아도 산뜻하다. 지금 보아도 한 컷 한 컷이 화보처럼 보일 만큼 당대 최고의 패션 아이콘이었고, 왕세자의 불륜과 영국 왕실의 '지엄한 법도'에 눌리면서도 누구보다 선명한 존재감을 보인 사람이었으며, 봉사활동을 다니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면에서는 단단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전 세계의 열광을 받은 사람. 삶의 어느 조각을 잘라내어도 극적인 사건을 찾을 수 있을 듯한 사람.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는 점에서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도 다르지 않다. 판타지를 결합한 하이틴 로맨스 <트와일라잇>으로 로버트 패틴슨과 나란히 인기를 끌었고, 두 사람은 반짝 스타처럼 보였다. 연기력이나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고, 둘의 연애사는 지구 반대편까지 알려지는 걸로도 모자라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트위터에 친히 (그것도 몇 번이나) 언급되었다.
그러나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세간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반짝 스타처럼 보였던 이들은 (공교롭게도 둘 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끝까지 끌고 가면서도, 동시에 결이 전혀 다른 작품을 파고들며 자기 자리를 직접 만들어 간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최근작만 살펴보아도 <트와일라잇> 때와는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나 <퍼스널 쇼퍼>, 가장 최근에는 <세버그> 등 다양한 작품을 해온 (사이에 트럼프의 트위터를 방송에서 읽기도 하면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마침내 <스펜서>에 다다른다.
가십과 파파라치에 둘러싸인 두 존재의 만남이었다. 불화와 불화하며 걸어온 존재의 만남.
그 자리, 영화 <스펜서>는 프린세스 다이애나 삶의 어느 특정한 사건보다는, 그를 둘러싼 분위기와 감정을 공 들여 재현했다. 영화는 크리스마스 휴가 기간 별장에서 왕실 식구들이 머무르는 3일을 배경으로 한다. 그 3일 동안 다이애나는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보여야 하고, 가려야 한다. 시놉시스는 그게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실존 인물의 삶에 대해 알려진 바에 비하면 기승전결의 낙폭이 큰 영화는 아니다. 대신 촘촘하게 나아가 감정에 사람을 가둔다.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 무엇을 보이고 무엇을 가릴지 엄격하게 정해진 세상에서 다이애나를, 뒤이어 관객을.
다이애나는 그 3일의 휴가를 시작하러 들어가는 길부터 규정을 깬다. 누구의 엄호도 받지 않고 직접 차를 운전해, 길가의 식당에서 여기가 어딘지 묻는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여기는 그 감정의 내부. 습도 90%의 무더운 날씨처럼 답답한. 여기에는 다이애나가 처한 상황 못지않게, 3일이라고 시간 배경을 딱 잘랐음에도 시간이 선형적이라 느껴지지 않는 전개 탓도 크다. 영화의 많은 장면은 현실과 다이애나의 상상을 오락가락하여,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인지 즉각 파악이 어렵다. 그 여부가 관객에게는 조금 지나고야 도달하게 된다. 진주 목걸이를 힘껏 뜯어버리는 상상, 고풍스러운 복도를 헐떡거리며 걸어가는 모습,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변기 앞에 고개를 숙인 마른 등뼈, 스펜서 저택에서 계단을 밟는 모습.
그런 사람들이 있다. 과거를 덧입고 현재를 사뿐 뛰어넘어 미래로 날아가 버리려는 사람. 그의 고향은 미래가 아니었을까 묻게 만드는 사람. 현재에 들어맞지 않아 불화하지만, 물리적으로 현재를 벗어날 수 없으니 미래에 속할 수도 없다. 현재에 같이 있는 이들의 눈에는 더없이 불안해 보인다. 점멸될 듯 깜빡깜빡 현재를 산다.
대신 그가 죽은 후, 그에게 미래라 불렸을 시간이 도래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먼 훗날, 그의 미래를 현재라 부르는 이들이 돌이켜보면, 그는 과거의 사람임에도 자신이 존재했던 시절에 매이지 않고 현재에까지 유령처럼 남아 부유하고 있다. 그가 날아든 미래가 바로 여기였던 것이다.
다이애나는 그런 사람이다. 잊히지 않고 미래에서도 계속 언급되는 사람이다. 영화 <아멜리에>의 등장인물들이 계속 다이애나 이야기를 하듯이. 사후에도 그의 일부가 살아 있지만, 살아생전에도 그의 어떤 면은 유령처럼 부유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스펜서>는 프린세스 다이애나를 둘러싼 사건과 가십들을 걷어내고, 그의 유령을 옷과 목걸이 아래 재생해 놓은 영화다.
그러니 다이애나가 끊임없이 유령을 인식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는 앤 불린에게서 자꾸 자신을 본다. 오래된 방의 먼지에서는 과거의 여왕에게서 탈각된 신체 일부를 느낀다. 훗날 유령이 되는 이들만이 유령을 볼 수 있다. 과거의 유령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것도 이들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물리적으로 매인 몸이 시간을 유영하는 마법은 오직 마음으로만, 연민으로만 이루어진다.
다이애나가 영화 속에서 계속 거부하는 행위들은 철저하게 몸에만 속한 행위들이다. 먹기와 입기. 엄밀히 말해, 정해진 대로만 먹고 정해진 대로 입기. 대신 그는 계속해서 어디론가 움직인다. 걷고 뛰고 운전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옆에 놓인 패스트푸드 봉지는, 그가 먹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그가 자유롭게 움직여 구입한 물건이기도 하다. 그가 운전한 자동차처럼, 그가 뛸 때 흩날리는 모자처럼, 몸 이전에 마음에 속한 행위의 결과물인 셈이다.
유령을 보다가 유령이 되다가 하는 느낌으로, 상상과 현재를 뒤섞어서, 다이애나라는 인물은 어딘가에 갇힌다. 음습한 공기마저 담아내는 클레르 마통의 카메라, 그 습도에서도 팽팽하게 목을 옥죄는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이, 갇힌 자리에 자물쇠를 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다이애나에 가려졌다가, 보였다가, 반복하면서 그 자물쇠를 걸어 잠근다.
갇힌 그 자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우리는 유령을 기다린다. 다이애나의 영혼을, 미래에서 기다린 이들과 조우하게 만든다. 사실 다이애나 생전에도 정직한 애정만으로 그를 바라본 이들은 있었을 것이다. 황색 언론 너머에서 호의 어린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이다. 샐리 호킨스가 연기한 캐릭터 매기처럼, 너무 다정해서 오히려 환상 같고 미래 같은 그런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허수아비가 입고 있던 아버지의 옷을 수선해 준 매기의 손길처럼, 어떤 애정이 다이애나의 어깨에 걸쳐진다.
다이애나가 책을 통해 앤 불린의 영혼을 소환했듯이, 관객이 갇힌 자리에 다이애나의 유령이 현재로-즉 다이애나의 미래로- 소환된다. 이것은 일종의 위령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앤 불린이 다이애나에게 한 것 같은 위로로 누군가에게 다가갈 것이다. 당대와 불화하며, 선대의 유령과 먼지에 자신을 비춰보는 존재들에게. 당신을 환대하는 마음이 미래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당신은 사라져도 아주 사라지지 않는다고.
불화와 불화하며 현재를 사는, 미래에서 다시 만날 누군가를 생각하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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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계+인 1부 (2022)
* <외계+인 1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외계+인 1부 (2022)
감독: 최동훈
출연: 류준열, 김우빈, 김태리, 소지섭, 염정아, 조우진, 김의성, 이하늬, 신정근 등
장르: SF, 액션, 판타지
러닝타임: 142분
개봉일: 2022.07.20
한국판 어벤져스를 향한 최동훈의 염원
<외계+인>은 2022년 현재와 1391년 과거의 시간대를 오가며 외계인 죄수들에 맞서는 주인공들을 중심으로이야기가 펼쳐진다. 우주의 다른 행성에서 온 ‘가드(김우빈)’와 ‘썬더(김대명)’는 인간의 몸 안에 갇힌 외계인 죄수들의 탈옥을 막는 관리자로서 지구에서 살고 있다. 하루는 과거의 시간대에서 탈옥범을 잡다가 버려진 아이를 구하게 되고, 아이와 함께 계획에 없던 가족의 형태를 이루게 된다. 한편, 630년 전 고려의 시간대에서는 얼치기 도사 ‘무륵(류준열)’, 천둥을 쏘는 처자 ‘이안(김태리)’이 각자의 이유로 신검을 손에 넣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삼각사의 신선 ‘흑설(염정아)’와 ‘청운(조우진)’, 그리고 가면을 쓴 도사집단의 수장인 ‘자장(김의성)’도 쟁탈전에 가세하면서 큰 싸움으로 번진다. 모두가 노리는 신검이 사실 외계인의 비밀과 연관되어 있음이 조금씩 밝혀지게 되고, 이안과 무륵의 오래 전 서사가 풀리면서 2부에 대한 궁금증을 안긴 채 1부는 마무리된다.
최동훈 감독에게 걸었던 부푼 기대
<외계+인>은 <타짜>, <도둑들>, <암살> 등으로 이어져 온 대중오락영화의 거장 ‘최동훈’이 7년만에 공개하는 신작이자 아직까지 한국에서 많이 시도된 적 없는 400억의 제작비가 투입된 SF 판타지 장르의 영화, 그리고 내로라 하는 주연급 배우들을 내세운 멀티캐스팅 작품이라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한국형 어벤져스’를 꿈꾸었다던 최동훈 감독의 상상력에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현재와 과거의 시간대를 오가는 외계인을 소재로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했으며 2부에 걸쳐서 공개해야 할 정도로 방대한 서사를 갖고 있어 기술력 자랑에만 그쳤던 실패한 한국 SF 영화들과 분명한 차이를 형성한다. 비교를 하자면, 그래픽 한정으로는 ‘조성희’ 감독의 <승리호>와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수준이지만 내러티브와 캐릭터성 면에서는 <외계+인>이 월등히 낫다.
커진 규모 속 장기를 잃다
하지만 이를 재미나 높은 완성도와 직결시키기는 어렵다. 본작은 과거를 무대로 한 무협 활극과 2022년을 배경으로 한 SF 액션물 두 가지 플롯으로 이뤄진 작품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도 많고, 중심 사건은 끊이지 않으며 이야깃거리도 풍성하다. <전우치>나 주성치의 작품들이 떠오르는 고려 시대 부분은 전반적으로 코믹하고 가벼운 톤을 유지하는 반면 외계인의 우주선과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현재 신은 상대적으로 무겁고 전투의 스케일이 크다. 이렇듯 두 개의 플롯이 풍기는 분위기가 지나치게 상반되다 보니 하나의 작품에서 매끄럽게 어우러지는 느낌을 주지 않고 어느 장단에 맞춰야 될지 모르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된다. <승리호>, <쿵푸 허슬>, <전우치>, 그리고 MCU 영화의 요소를 모두 찾을 수 있는 작품일 정도이니 끔찍한 혼종이라고 느끼기 십상이다.
러닝타임은 한정적인데, 풀어나가야 할 이야기는 많아 인물들이나 배경 설정에 대한 설명을 생략하고 넘어가는 부분들이 많다. 물론 스토리가 어려운 것은 아니라 이해에 불편을 주지는 않지만 장면들이 휙휙 넘어가는 식이라 전환이 어수선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불친절한 전개를 보여주는 와중에 정작 이야기의 속을 채운 알맹이는 꽉 차 있지 않다. 굳이 1-2부를 나눠야 했을까 싶을 정도로 질질 끄는 부분들이 많고 관객은 이미 20-30분 전에 알아챘을 법한 내용을 등장인물은 한참 뒤에 깨닫는 식이라 지루한 구간도 있다. 한마디로 배경이나 인물 서사에 대한 설명은 부족한데, 사건들에 과도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편집을 루즈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시도해 보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감독의 의도는 알겠으나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보니 감독 특유의 리듬감 넘치는 전개와 센스마저 자취를 감췄다.
최동훈의 매직도 안 통하는 캐릭터들
‘최동훈’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 구축에 굉장한 강점을 가진 감독이다. 이미 <타짜>, <도둑들>, <암살> 같은 대표작들을 통해 수많은 인물들을 등장시키면서도 주연과 조연, 하물며 특별출연까지도 관객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캐릭터성을 부여할 정도로 다채로운 인물 표현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외계+인>에서만큼은 그의 이러한 역량이 전부 발휘되지 않은 느낌이다. 이번에도 역시 조연과 특별출연까지 인지도가 높은 배우들을 기용했지만 톡톡 튀는 매력을 보이는 배역은 의외로 많지 않다. 1부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가져간 ‘김우빈’, 그리고 <미스터 션샤인>에 이어 또 한 번 사격 액션으로 카리스마를 뽐낸 ‘김태리’는 개성이 부족한 캐릭터를 배우들이 가진 힘으로 끌고 가는 듯하며 빌런으로 분한 ‘소지섭’과 ‘김의성’은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기에 존재감이 부족하다. 극중 최강의 개그 콤비로 활약한 ‘염정아-조우진’만이 빛을 발할 뿐이며 허술하지만 능글 맞은 도사 캐릭터로 액션 활극을 이끈 ‘류준열’ 정도가 제몫을 다한다. 특히 현대 파트에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서사가 크게 아쉽고 어린 ‘이안(최유리)’과 ‘가드(김우빈)’의 관계는 지나치게 한국적이라 식상했다.
나쁘진 않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기술력
매번 국내에서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SF 영화가 나올 때마다 ‘한국에서 이 정도 기술력을 구현했다는 게 대단하다’, ‘시도에 의의가 있다’라는 식으로 부족한 완성도를 감싸며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외계+인>의 CG 기술력은 대체로 호평하는 분위기고 개인적으로도 나쁘지는 않았다. 특히 ‘가드(김우빈)’의 전투용 슈트는 초기 ‘아이언맨’의 수트를 떠오르게 했는데, 매번 외화에서 레퍼런스를 삼아 왔던 감독의 특징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서울 도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공중 액션신은 이제껏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화려하고 거대한 스케일의 전투 장면이었으며 MCU의 멀티버스와 닮은 차원 이동도 유치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다만 빌런으로 등장한 외계인들의 조악한 비주얼은 참신함이 부족해 보였고, 가드와 전투를 벌이는 로봇도 여전히 깡통 로봇 수준의 디자인이라 한숨이 나왔다. 물론 국내 영화에서 MCU 수준의 멋스러운 캐릭터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류의 영화가 제작될 때마다 로봇이나 빌런을 시각화 하는데 왜 매번 안일한 기획력을 보여주는지 의문이다.
후속작으로의 불안한 진입
<외계+인> 1부는 끝이 났지만, 사실 1부는 2부를 위한 빌드업일 뿐이며 본편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마치 <듄>이 1편에서 세계관과 등장 인물들의 초기 서사만을 설명하며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만 남긴 채 끝났던 것과 유사하다. 스토리의 부족한 재미, 난잡한 구성, 초중반까지의 지루한 전개 때문에 2편에 대한 기대감을 만드는데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모든 인물들이 한데 모이는 후반부에 극의 텐션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면서 속편에 대한 궁금증을 미약하게나마 남겼다. 소재가 ‘외계인’인 영화인데, 아직 외계인과 주인공의 대립은 출발선에 그대로 놓여 있으니 이후의 내용이 어떻게 흘러갈지 안 궁금해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부에 크게 실망을 했지만, 그래도 나는 2부를 보러 갈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2편으로 이어지는 선로를 워낙 부실하게 건설한 터라 1부를 감상한 관객들 다수가 2부가 개봉할 때도 극장으로 향할 지는 의문이다. ‘한국형 어벤져스’를 만들겠다는 드높은 야심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이지만 현재로서는 최동훈 감독 커리어 사상 최악의 패착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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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삶으로부터 또 다른 삶으로, 감각으로부터 또 다른 감각으로
기억 샤워 바다 (Memories Showers Seas), Korea, 2025, 82min, Documentary, World Premiere
▶Director
임흥순 IM Heung-soon
▶Synopsis
제주 4·3 이후 일본으로 밀항해 재일조선인의 삶을 산 고(故) 김동일이 남긴 2,000여 점의 뜨개와 옷들은 그녀의 기억과 정체성을 지켜온 작은 역사이다. 김동일의 유품을 정리하고 나누는 과정 속에서, 그녀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다양한 재일조선인의 여전히 아물지 않은 삶을 조명하고 서로 얽혀 있는 기억을 나누고 연결한다.
<기억 샤워 바다>, 삶으로부터 또 다른 삶으로, 감각으로부터 또 다른 감각으로
<기억 샤워 바다>는 여유로운 템포로 담은 어느 공원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 도입부의 장면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화면 속 그들이 역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줄로만 알았던 그들은 자세히 보니 앞이 아닌 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고, 이것은 편집을 통한 감독의 의도적 연출인 듯하다. 감독은 우리가 지나온 발걸음을 따라가고 싶었던 것일까? 해당 장면에 대해 함부로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도입부는 곧이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제주 이야기와 연결되며 나를 과거 그곳으로 데려가는 가교의 역할을 해주었다. 그들의 역행하는 걸음처럼 나도 시간을 거슬러 감독이 방문했던 그때의 제주로 돌아갔다.
<기억 샤워 바다>는 2023년 같은 이름으로 제주 4.3 평화기념관에서 열렸던 전시에 근간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과거 전시했던 옷들을 감독이 보관하고 있었다는 진행자의 말과 함께 다양한 옷들과 뜨개의 흔적들이 등장하는데, 영화 속에 등장하는 2,000여 점의 뜨개와 옷들은 제주 4·3 이후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의 삶을 살아온 고(故) 김동일 어르신의 삶의 흔적이자, 자신의 기억과 재일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온 역사적 기록이다. 뜨개는 그녀에게 끊임없는 자가 치유의 과정이었을 것이며, 영화는 거울과 비어있는 마네킹, 흩날리는 옷의 이미지들을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거울에 비어있는 마네킹이 등장할 때, 그녀의 대한 후 세대의 말과 함께 거울의 이미지가 등장할 때, 관람자들은 그 공허한 공간 속에 몰입해 그녀의 지나온 걸음을 상상해보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그녀의 삶의 흔적이 곳곳이 묻은 옷이 후 세대에게로 와 닿는 과정을 담는다. 재일조선인의 정체성과 후 세대의 기억에 관한 담론은 <되살아나는 목소리>,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 그리고 이번 영화제에 함께한 <이방인의 텃밭> 등 다양한 영화에서 다뤄지고 있다. 해당 영화들은 각각 ‘필름’이라는 손으로 감각이 가능한 사물, 예술과 연대, 식물 등을 통해 그 정체성과 기억을 찾아가는데, <기억 샤워 바다>는 ‘옷’이라는 피부에 닿는 어떤 것, 인물의 신체와 행위를 함께하는, 무엇보다 사람의 숨결 가까이 감각 되는 물체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또 다시 감각하고, 감각 되는 모습을 통해 과거의 기억과 그녀의 삶을 전한다.
영화의 마지막, 고요한 항구는 이내 도입부에서 등장했던 공원을 처음과 반대로 ’순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의 이미지와 겹쳐진다. 차곡히 겹쳐진 레이어는 쌓여온 시간들을 보여주며 항구와 겹쳐진 사람들의 모습은 사람들의 정취가 묻어나던 과거의 터를 연상하게 하며 여운을 남긴다.
‘누군가의 염원, 소망, 바램을 상상하며 보면 풍경이 달리 보인다’는 말처럼 <기억 샤워 바다>는 평범한 사람들을 누군가의 삶으로, 염원으로, 소망으로 채우며 관객을 끌어들이는 듯 하다. 그들의 여정을 지켜보며 따라가던 관람자들은 그 끝에서 결국 우리네 삶과 염원을 마주하게 된다.
▶제 26회 전주국제영화제
2025.4.30.(수) ~2025.5.9.(금)
▶상영 일정
5/2(금) 13:30분
5/3(토) 14:00 메가박스 전주객사 7관
5/4(일) 13:30 메가박스 전주객사 6관 (GV)
5/7(수) 21:00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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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빛 청춘에게 스민, 아픈 사랑 이야기
매년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대만표 청춘 영화들이 있다.
올래는 어떤 작품이 국내에 들어올까 궁금하던 차에, 〈나의 아픈, 사랑이야기(Love sick)〉를 만났다.
우연히 보게 된 포스터 속 태그라인이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 끌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좋겠어, 영원히
이 문구가 과연 무슨 의미일까. 머릿속에 작은 물음표를 띄운 채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시놉시스
꾀병이 사랑병이 되었다…
오진으로 암 선고를 받은 남쯔제.
퇴학을 피하기 위해 계속 연기하면서 반장 여쯔제의 특별 케어를 받게 되고,
식단부터 공부까지 관심과 감시가 시작된다.
그땐 몰랐다. 티격태격 꾀병이 가장 아픈 사랑병이 될 줄은.
본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동명이인으로 시작된 인연
같은 반, 같은 이름. 하지만 성격은 정반대인 두 사람이 있다.
사고를 몰고 다니는 문제아 남쯔제와, 원칙과 규율을 중시하는 모범생 스타일의 반장 예쯔제.
서로의 세계에 발을 들일 이유가 없던 두 사람은, 남쯔제가 교장 차를 들이받는 황당한 사고를 계기로 얽히게 된다.
그 사고로 병원행이었던 남쯔제는 병원에서 '위암'이라는 오진을 받는다.
그 오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퇴학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몸을 챙기지 않는 위암 환자. 도시락 대신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여전히 천덕꾸러기처럼 구는 그가 못내 신경 쓰였던 걸까.
담임의 권유로 예쯔제는 남쯔제의 케어를 맡게 된다.
그날 이후 매일 같은 자리에서 먹는 도시락이 두 사람 사이의 작은 다리가 됐다.
예쯔제가 가져다 주는 도시락은 늘 밍밍하고 소박한 음식이었지만, 그 속에는 환자를 향한 정성과 원칙이 담겨 있었다.
처음엔 맛없고 귀찮기만 여겨지던 도시락이, 기다려지는 점심이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병원에서 시작된 또 다른 인연, 천리
오고 가는 도시락 풍경을 묵묵히 바라보던 또 한 사람, 천리.
그는 예쯔제의 오랜 도시락 메이트이자, 남쯔제보다 먼저 그녀를 좋아했던 인물이었다.
단정한 겉모습과 달리 뇌전증을 앓았던 그는, 병원에서 예쯔제를 처음 만났다.
천리와 예쯔제의 첫 만남, 위암 오진으로 환자가 된 남쯔제, 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는 그의 이모, 그리고 함께한 봉사활동.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병원이라는 장소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병원은 세 사람을 이어주는 장소임과 동시에 잔잔한 불길함을 피어오르게 만드는 공간이기도 하다.왜 이들의 서사 속에 병원이 반드시 있어야 했을까.
순간, 영화를 보기 전 포스터에서 읽었던 한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그 문구는 이야기의 끝을 어렴풋이 예감하게 만들었다.
작열하는 햇빛 아래, 초록빛 풍경 속에서 반짝이던 청춘들. 그 빛이 너무 찬란해, 내 예감이 틀리길 바랐다.
천리는 언젠가 ‘해저 우체통’ 이야기를 꺼냈다. 바다 속 깊이 잠긴, 외딴섬 아래의 우체통.
뇌전증이 완치되면 꼭 그곳에 편지를 넣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연한 접촉사고가 치명타가 되어, 천리는 세상을 떠났다.병원에서 시작된 인연은 그렇게 병원과 가장 가까운 비극으로 끝이 났다.
그들에게 병원은 함께 웃었던 기억과 깊은 슬픔이 동시에 스민 장소로 남았다.거짓말과 진심 사이
천리가 남쯔제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간단했다.
예쯔제를 좋아한다면, 거짓말 하지 마.
남쯔제는 그제야 마음속 무거운 비밀을 털어놓는다. 자신은 위암 환자가 아니었고, 퇴학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예쯔제는 자신을 속여왔던 남쯔제에게 분노했고, 대학생이 된 후에는 그와 단호히 연락을 끊었다. 하지만 남쯔제는 포기하지 않았다.
연락이 닿지 않으면 친구를 통해 영상 편지를 전했고, 그의 진심은 흘러 흘러 예쯔제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다시 가까워진 그들에게 행복해질 일만 남은 듯 보였다.
순간은 영원이 되었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예쯔제의 병세는 급격히 악화됐다. 그녀가 늘 밍밍한 도시락을 싸오고, 결벽증에 가깝게 손 소독을 반복하던 이유가 문득 선명해졌다.백혈병 환자였던 그녀는 아픈 티를 내기 싫었고, 병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남쯔제 곁에서 끝까지 단단히 살아가고 싶었을 것이다.하지만 결국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남쯔제는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가족, 친구, 사랑 소중한 것들이 바스라지며 그의 곁에서 사라져 갔다.
그럼에도 그는 상실을 홀로 견디지 않았다.
예쯔제의 부모를 찾아가 아들처럼 그들의 곁을 지켰고, 그녀와 함께한 시간을 마음 깊숙이 간직했다.
그리고, 천리가 말했던 그 해저 우체통을 찾아간다. 예쯔제에게 전할 편지를 들고.
도시락을 건네던 손길, 함께했던 병원 봉사, 스쿠터를 타고 달리던 오후, 아쿠아리움 데이트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그의 가슴 속 깊이 잠겼다.
그리고 그가 잊지 않는 한, 그녀는 영원히 그의 청춘 속에서 반짝일 것이다.그리하여, 그들의 순간은 영원이 되었다.
추천 한마디
올여름, 대만표 청춘 영화가 다시 한 번 스크린 위에서 반짝인다.
윤슬처럼 반짝이는 청춘들을 놓치지 않길 바라며,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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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과 - 연상연하 킬러 선후배의 애증섞인 서열정리
지킬 게 생긴 킬러 VS 잃을 게 없는 킬러. 40여 년간 감정 없이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방역해온 60대 킬러 ‘조각’(이혜영). ‘대모님’이라 불리며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받지만 오랜 시간 몸담은 회사 ‘신성방역’에서도 점차 한물간 취급을 받는다. 한편, 평생 ‘조각’을 쫓은 젊고 혈기 왕성한 킬러 ‘투우’(김성철)는 ‘신성방역’의 새로운 일원이 되고 ‘조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스승 ‘류’(김무열)와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고 약속했던 ‘조각’은 예기치 않게 상처를 입은 그날 밤, 자신을 치료해 준 수의사 ‘강선생’(연우진)과 그의 딸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낀다. ‘투우’는 그런 낯선 ‘조각’의 모습에 분노가 폭발하는데… 삶의 끝자락에서, 가장 강렬한 대결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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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수퍼 소닉3> 2차 예고편
소닉VS섀도우의 역대급 라이벌 빅매치! 시리즈 사상 레전드 스케일 체험 준비 완료🔥 [수퍼 소닉3] 2차 예고편 공개⚡ 1월, 극장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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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애플> 메인 예고편
당신을 사로잡을 가장 특별한 여운
원인 모를 단기 기억상실증 유행병에 걸린 ‘알리스’에게 유일하게 남은 기억은 이름도 집 주소도 아닌 한 입 베어 문 사과의 맛. 며칠이 지나도 그를 찾아오는 가족이 나타나지 않자 무연고 환자로 분류된 ‘알리스’에게 병원에서는 새로운 경험들로 기억을 만들어내는 ‘인생 배우기’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알리스’는 자신처럼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안나’를 만난다.
괜찮아요, 다들 잊고 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