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크렁2024-07-02 23:16:29
잃어버린 인연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영화 <1초 앞, 1초 뒤, 2024> 리뷰
"안녕, 혹시 나 기억해?"
얼마 전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받았다.
기억이 안 날 리가 없다. 우리는 쉬는 시간이면 매점도 함께 가고, 체육 시간이면 함께 배드민턴 짝꿍을 할 정도로 친한 사이였으니까. 당시 우리는 둘 다 싸이월드와 페이스북을 잘 하지 않았던 탓에, 고등학교를 각자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그녀와 내가 친했던 기간은 딱 1년.
그리고 연락을 하지 않았던 그 이후의 시간은 20년.
나는 잃어버렸던 친구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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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초 앞, 1초 뒤, 2024>는 대만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 2021>을 리메이크한 일본 작품으로, 다른 사람보다 1초 빠르게 살아가고 있는 하지메(오카다 마사키)와 남들보다 1초 느린 레이카(키요하라 카야)가 함께 보내게 되는 하루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남들과 속도가 다를 때
하지메(오카다 마사키)는 남들보다 빠른 템포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진을 찍히기 1초 전에 웃고, 달리기 출발 신호를 외치기 1초 전에 출발하며, 알람이 울리기 1초 전에 일어난다. 연애를 할 때에도 상당히 빠른 템포로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자 친구를 사랑한다며 라디오에 사연을 제보하기도 하고, 그녀가 돈이 필요하다고 하자 덜컥 돈을 빌려주려고까지 한다.
반면에 레이카(키요하라 카야)는 1초 느린 삶을 살고 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만 피사체가 움직이고 난 후에야 셔터를 누르고, 남들이 묻는 질문에 항상 조금씩 늦게 대답하며, 시험 문제지 뒷장은 풀지도 못한다.


하지메를 보면 왜 이렇게 급한가 싶고, 레이카를 보고 있자면 느려서 답답함이 올라온다. 모든 사람이 속도를 맞추면서 살아가지는 않는데도, 모두가 공유하는 일상의 템포란 그 자체로 존재한다. 가끔 그 속도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말이 정말 빠르다던가 혹은 행동이 정말 느리다던가.
물론 물리적인 속도 이외에 사회적인 템포도 존재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에 따른 정상 속도라는 것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다. 20살이 되면 대학을 가고, 20대 중반에는 취업을 하고, 30대에는 결혼을 하고, 뭐 그런 것들. 그런 속도가 빠르거나, 느리다면 남들보다는 사회생활의 난이도가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원작이 대만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런 사회적인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2. 마이 미씽 발렌타인
<1초 앞, 1초 뒤>는 상당히 로컬라이징이 잘 되어있다. 대만 원작 <마이 미씽 발렌타인>과의 차이점을 꼽자면 가장 먼저 주인공 남녀의 성별 반전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 하나만으로도 두 가지 영화를 모두 볼만한 가치가 생긴다. 다른 영화들도 리메이크를 한다면 성별 반전을 해주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원작에 없던 버스 기사와 동생 커플 캐릭터가 추가되었고, 썸을 타는 상대 캐릭터도 살짝 변형되었다. 개인적으로 <1초 앞, 1초 뒤>에서 가수 지망생으로 나온 사쿠라코(후쿠무로 리온)의 목소리와 노래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빠져들었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잃어버린 하루가 발렌타인 데이였다는 설정이지만, <1초 앞, 1초 뒤>에서는 지역 축젯날로 바뀌었다. 영화의 배경은 '천년의 도시'라고 불리는 교토인데, 지역적인 특성을 살리면서 판타지 장르와도 더욱 어울리기도 한다. 전통이 깊은 도시의 지역 축젯날에는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영화는 화자를 바꾸어서 동일한 이야기를 두 번 전개하는데, 화자의 시점에 따라 동일한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 템포 빠른 하지메는 로맨틱한 하루를 보내지만, 한 템포 느린 레이카가 지켜본 하지메의 하루는 그냥 사기꾼에게 돈을 뜯기는 과정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1초 만에 지나버린 하지메의 하루와는 달리 레이카는 24시간을 알차게 보내게 되는데, 이 부분은 사실 원작보다는 살짝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원작에서는 조금 더 추억을 찾아가는 아련한 느낌이 강했다면, <1초 앞, 1초 뒤>에서는 저렇게까지? 싶을 정도로 레이카의 고군분투가 조금은 소름 끼치게 느껴지기도 한다. 로맨스 영화라는 점을 계속 상기하면서 봐야한다.
#3. 궤도 이탈자
개인적으로는 가출했던 하지메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 하지메의 아버지는 레이카와 비슷하게 남들보다 느린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국수에 넣을 생강을 사러 간다고 나가서는 집에 돌아오지 않은 실종자다.
그는 자신의 속도로는 세상을 따라갈 수 없기에, 자신만의 템포로 살아가기 위해서 집을 떠났다고 고백한다. 앞에 언급했듯 이 영화는 사회적인 속도에 관한 이야기를 깔고 있는데, 그는 사회 궤도 밖으로 아예 벗어나 버리는 것을 선택한 사람을 의미한다.

정속으로 살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삶은 녹록치가 않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다른 사람들은 저 앞에 나가 있고, 나는 이제야 마음먹었고 시작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은 수월하고 능숙하게 해내기만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답답해하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결국 궤도를 이탈하는 선택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이들에게 영화 <1초 앞, 1초 뒤>는 물리적인 하루를 선물한다.
만약 시간이 나를 위해 잠시 멈춰준다면, 다른 사람과 발을 맞춰서 갈 수 있을까?
#4. 잃어버린 인연을 다시 찾는다면
레이카는 멈춘 하루 동안 하지메를 추억의 장소로 데리고 간다. 함께 사진을 찍고, 못 봤던 얼굴을 실컷 마주보기도 한다.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조금 의문이 드는 부분이지만, 항상 그보다 두 발짝 느린 그녀는 그와 보내고 싶었던 시간을 마음껏 보내고 즐거운 얼굴이다.

하지메는 사라진 하루의 행방을 쫓다가 결국 그녀가 누군지 알아낸다. 그녀는 그를 잊은 적 없다. 어릴 적 자신을 살게 해주었던 친구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보내고 있었고, 그가 일하는 우체국에 가서 매일 우표를 사서 자신을 잊은 그에게 편지를 부친다.

하지메는 약속을 잊어버리는 것도 빨랐고, 레이카는 약속을 잊기에도 너무 느릴 뿐이다. 하루를 잃어버린 대가로 하지메는 잃어버린지도 몰랐던 인연을 다시 찾게 된다. 하지메는 빠르게 레이카를 만날 수 있는 지점으로 전근하고, 사고를 당했던 레이카는 한발 늦게 우표를 사러 온다. 다른 속도로 살아가도 기억은 그 자리에 모두 남아있었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인연을 잃어버린다. 시절 인연이라고, 스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을 내 속도로 잡아놓을 수는 없기 마련이다.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 인연을 찾을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 영화는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결국 속도보다 마음과 방향성이 중요한 것이 아닐까.
#5. 생강을 넣을까 말까
하지메는 엄마와 국수를 먹다가 아버지가 사러 나갔던 생강 이야기를 나눈다. 국수에는 생강을 넣으면 전체의 맛이 변해버린다고, 넣지 않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
그런데도 하지메의 아버지는 멈춘 하루를 이용해 집에 들러서 아내의 손에 생강을 쥐여준다. 하지메에게는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겠다고 했기에, 레이카에게 100엔을 남긴다. 매우 늦었지만 나름 이전 가족들에게 남기는 마무리 인사다.
어떤 사소한 것들은 우리 삶 전체를 흔들어버리곤 한다.
생강, 깁스 위의 낙서, 그리고 사진 한 장처럼.
*본 리뷰는 씨네랩의 크리에이터 시사회에 참석하여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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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 넷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시사회에서 호평을 받은 해양 범죄 활극 <밀수>외 개봉을 앞둔 영화 총 4편을 소개합니다.
같이 시작해볼까요~?
밀수
Smugglers
ⓒ 네이버영화
개요: 범죄 | 한국 | 129분
감독: 류승완
출연: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 등
개봉: 2023.07.26.
배급: ㈜NEW
시놉시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평화롭던 바닷가 마을 군천에 화학 공장이 들어서면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해녀들. 먹고 살기 위한 방법을 찾던 승부사 '춘자'(김혜수)는 바다 속에 던진 물건을 건져 올리기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밀수의 세계를 알게 되고 해녀들의 리더 '진숙'(염정아)에게 솔깃한 제안을 한다. 위험한 일임을 알면서도 생계를 위해 과감히 결단을 내린 해녀 '진숙'은 전국구 밀수왕 '권 상사'를 만나게 되면서 확 커진 밀수판에 본격적으로 빠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일확천금을 얻을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오고 사람들은 서로를 속고 속이며 거대한 밀수판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기 시작하는데... 물길을 아는 자가 돈길의 주인이 된다!
CINE PICK!
7월 18일 진행된 시사회에서 호평을 받은 <밀수>는 한국의 최고의 액션영화를 만들어낸 류승완 감독의 수중액션 영화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단순하지만 뚝심있는 스토리와 찰진 대사, 재치있고 촘촘한 연출, 뛰어난 영상미 등 ‘충무로 액션 키드’라고 불리는 류승완 감독의 2년만의 복귀작입니다!
헌티드 맨션
Haunted Mansion
ⓒ 네이버영화
개요: 공포, 판타지, 코미디 | 미국 | 123분
감독: 저스틴 시미엔
출연: 킨스 스탠필드, 티파니 해디쉬, 오웬윌슨 등
개봉: 2023.07.26.
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시놉시스
뉴올리언스의 대저택으로 이사 온 ‘개비’와 아들 ‘트래비스’. 겉모습부터 심상치 않은 이곳엔 알고 보니 999명의 유령이 살고 있다. 유령들을 내쫓아 달라는 ‘개비’의 요청에 저택으로 모여든 겁 없는 유령 전문가들. 하지만 호기로움도 잠시,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일들에 사투를 펼치게 되는데… 과연, 이들은 유령들을 쫓고 집을 되찾을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집에 함께하시겠습니까? 출구는 없습니다!
CINE PICK!
<헌티드 맨션>은 999명의 유령이 살고 있는 뉴올리언스 대저택으로 이사 온 개비와 아들 트래비스, 그리고 이들을 내쫓기 위해 저택으로 모여든 겁 없는 유령 전문가들의 기상천외한 사투에 대해 다룬 공포 코미디 영화입니다. 디즈니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영화 <헌티드 맨션>은 디즈니 테마파크에 있는 동명의 어트랙션을 새롭게 각색한 영화이며 이미 지난 2003년 동명의 제목으로 제작된 이력이 있습니다.
비닐하우스
Greenhouse
ⓒ 네이버영화
개요: 번죄 | 한국 | 100분
감독: 이솔희
출연: 김서형, 양재성, 안소요 등
개봉: 2023.07.26.
배급: ㈜트리플픽쳐스
시놉시스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는 ‘문정’은 아들과 함께 살 제대로 된 집을 구하기 위해 간병인 일을 한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 ‘화옥’을 돌보다가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나게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충격적인 상황에서도 병원에 연락을 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울리는 한 통의 전화로 모든 것이 변하게 된다. ‘문정’은 아내의 시체를 앞에 두고도 아무것도 모르는 시각 장애인 ‘태강’을 속이며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되는데…
CINE PICK!
단편영화 제작후 연출부를 거쳐 <비닐하우스> 장편영화 데뷔를 한 이솔희 감독은 부산국제 영화제에서 왓챠상 cgv상, 오로라미디어상을 차지하였는데요 출연하기만 하면 열연을 보여주는 김서형 배우가 요양보호사 ‘문정’역을, 최근 <더 글로리>에서 피해자 역할로 존재감을 보여주었던 안소요 배우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순남’역을 맡게되었다고 합니다. 김서형 배우는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뉴스에 나오는 안타까워했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맞닥뜨리고 싶지 않고 회피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밝혔습니다.
붉은사막
Red Desert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이탈리아, 프랑스 | 117분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출연: 모니카 비티, 리처드 해리스 등
재개봉: 2023.07.26.
배급: 일미디어
시놉시스
이탈리아 북부의 공업도시인 페라라에서 남편과 아들과 평범하게 살아가던 줄리아나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한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 알 수 없는 이유로 감정이 불안해진 줄리아나는 주위 사람들과의 소통에 문제를 느낀다. 그리고 남편의 직장 동료인 코라도를 만나 육체적 관계에 빠져드는데…
CINE PICK!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첫 컬러 영화로 의도적으로 선명도를 떨어트리고 현대 문명의 낯선 풍경을 드러내며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상태와 환경 오염문제를 드러낸 작품입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영화 <정사>로 이름을 알렸으며 현대 영화 최우의 거장이라고도 불립니다.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칸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에서 모두 최고상을 거머쥔 감독이며 <붉은 사막>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영화사에서 중요한 작품을 26일 재개봉으로 만나볼 수 있다고 합니다. .
메타모르포제의 툇마루
BL Metamorphosis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일본 | 118분
감독: 카리야마 슌스케
출연: 아시다 마나, 미야모토 노부코 등
개봉: 2023.07.26.
배급: 홀리가든
시놉시스
인간관계에 서툰 17세 여고생 ‘우라라’. 방과 후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바로 BL만화를 보는 것이다. 남편을 떠나보낸 후 혼자가 된 75세 할머니 ‘유키’. 어느 날,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예쁜 그림체에 홀려 집어 든 만화책은 다름 아닌 BL만화였다. 마음을 적시는 ‘좋아한다’는 감정 하나로 58세의 나이 차이를 극복! 급속도로 친구가 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고, 은밀한 덕질 라이프와 함께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게 되는데… 덕심으로 대동단결! 덕톡으로 꽃 피어난 세대초월 영혼의 덕질 메이트가 찾아온다
CINE PICK!
우연히 BL 만화책을 구입한 할머니와 서점 직원의 따뜻하고 순수한 우정을 엿볼 수 있는 영화로 남편의 죽음뒤 외롭게 살고 있는 75세 여성 유키와 수줍은 많은 17살 고등학생 우라의 묘한 우정을 쌓아가는 영화입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다섯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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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자본 순일까?
백 투 더 퓨처 2
줄거리미래에서 돌아와서 제니퍼와 감격의 포옹을 하는 순간, 갑작스레 마티를 찾아온 브라운 박사.
박사는 그들의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다며 빨리 미래로 가자고 한다.
왁자지껄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더니, 마티가 살던 세상이 변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1985년을 바로잡기 위해, 마티는 다시 위험한 모험을 시작하는데...
행복은 자본 순일까?
숨은 의미 찾기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고 있는 마티를 보고 있노라면
혈압이오른다. 하지만 어쩌겠어, 주인공이니 참아야지. 네가 그렇게 사고를 쳐야 영화가 진행이 되는 거지, 그렇지? 활발히 사고를 치고 다니는 마티 덕분에(?) 영화는 예측불허로 흘러간다.1편이 타임머신으로 역사의 흐름을 유지해서 ‘미래의 존재를 보존’하는데 주력했다면, 2편은 타임머신이 만들어낸 오류를 잡아 ‘미래의 상황을 보존’하는데 주력한다. 어쨌든 꼬여버릴 뻔한 과거를 바로잡는다는 점에서는 맥락을 같이 하긴 하지만 말이다.
특히 2편은 1편의 빌런이기도 했던 ‘비프’의 활약으로 뒤죽박죽이 된 미래를 보여준다. 악인의 손아귀에 들어간 타임머신은 어떻게 악용되는지, 브라운 박사가 우려했던 점을 제대로 짚어낸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방영된 ‘대탈출 4’에서도 타임머신 이야기가 나왔었다. 과학자의 탐구심과 호기심의 산물이 개인 이득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것은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도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1980년대의 이야기가 2020년대에도 똑같이 활용된다는 것은, 어쩌면 ‘타임머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타임머신으로 인류문명의 발전에 힘쓴다는 이야기는 재미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당신이라면 타임머신이 눈앞에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로또 번호를 외운다느니, 테슬라 주식을 산다느니, 비트코인을 넣는다느니 하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내가 작품 속 악인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왕 살 거 부자로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당연한 것일 테니까.
그럼에도 그런 생각이 든다. 돈과 행복은 비례한 것인가.
물론 부유함이 빈곤함보다 낫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어쨌든 가난에 찌들어 사는 것보단 적당한 부가 사람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은 맞으니까. 때로 너무 많은 부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례를 보긴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에겐 그런 이야기조차 사치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유하지 않음이 곧 불행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먹고 살만큼의 돈으로도 인생의 가치를 찾고 최선을 다해 행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 이 말은 부자면 불행하고 가난해야 행복하다, 가난하면 불행하고 부자면 행복하다는 식의 극단적 비유가 아니다.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든, 내가 행복하고자 하면 얼마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는 소리다.
1편에서 느꼈던 아쉬움은 바로 이것이었다. 마티가 과거로 가기 전, 마티의 가족은 가난했다. 가난한 가족은 화목함과 거리가 멀었다. 서로를 돌보지 않으며 각자의 비전조차 없는 마티의 가족은 암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마티가 과거에 다녀와서 다시 구성된 가족은 조금 달랐다. 화목하기 그지없었고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게 돈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부유함이 꽤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부자인 가족만이 완벽하고 완성된 형태인 것일까.
이전 리뷰에도 말했지만 마티는 가난했던 자신의 가족도 사랑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굳이 자신이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애써 자신의 부모가 다시 만나도록 노력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이런 가족, 처음부터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2편 역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지만, 1편에서 느꼈던 씁쓸함을 더 크게 느끼도록 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나라고 비프의 상황에서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타임머신을 악용하는 것은, 부자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지금의 나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나쁜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자가 아닌 당신을 부정해가면서 부자가 되려 하지는 마라.
그것이 백 투 더 퓨처가 우리에게 던지는 말은 아닐까?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상상하던 2015년
감상평전에 한 번 보고 리뷰 직전에 또 봐도 여전히 질리지가 않는 영화.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볼만한 점은 그 시대에 상상했던 ‘2015년’의 모습. 하늘을 떠다니는 자동차와 바퀴 없는 스케이트보드, 말 한 마디면 척척 알아서 움직이는 가전제품,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커지는 음식, 버튼만 누르면 젖은 옷을 말려주는 기능까지.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과학 상상화 대회 같은 게 열리면 꼭 이런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옛날 옛적 생각이 나면서 묘하게 그 시절의 향수를 느꼈달까. 우리가 상상하고 열광하고 설레며 미래를 기다리던 그 시절의 향수 말이다. 물론 2015년은커녕 2021년에도 이렇게나 불편하게 살 거라는 걸 과거의 인간들이 알면 어떨까 궁금하다. 당신들은 인간의 과학문명을 너무 과대평가했어.
아,그리고그런패션은영원히유행하지않아,유행해선안돼.따지고 보면 뻔하고 유치한 내용이다. 하지만 과거에 말했던 미래가 현재로 닥쳐오고 나니, 우리는 더 먼 미래를 꿈꾸고 상상한다. 2050년의 모습은 어떨까, 미래의 내가 과거에 써 두었던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는 것은 유치하거나 나쁜 게 아니다. 인간의 본능이자, 어쩔 수 없는 욕구다.
그래서 이 영화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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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여인의 향기 / Scent of a Woman: 복기와 맞수 그리고 빛
/ 원본 출처 블로그로 가시면 제가 걸어둔 링크 영상들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
[리뷰] 여인의 향기 / Scent of a Woman: 복기와 맞수 그리고 빛
크리스마스에 고향에 가기 위해 부활절 연휴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고등학생 찰리(크리스 오도넬 분)은 교내 아르바이트 게시판을 보고 찾아간 집에서 퇴역한 장교 프랭크 슬레이드(알 파치노 분) 중령과 만나게 된다.
/ 네이버 소개 /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한 가지의 능력을 잃으면 다른 한 가지의 능력을 얻는다.
여섯번째 감각이라고 할까.
극 중의 슬레이드도 여섯번째 감각을 가지고 있다.
'여인의 향기'라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후각은 물론, 청각이며 미각이며 그 어느하나 특출나지 않은 감각이 없다.
이 특출난 감각들이 모여 슬레이드만의 '여섯번째 감각'이 만들어진다.
이를 통해, 그는 맹인임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들여다 본다.
사람들을 꿰뚫어보고 파악할 수 있는 슬레이드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절대 볼 수 없는 한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프랭크 슬레이드'가 누구인지 전혀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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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고의 남자였다.
여러번의 군 경험과 중령이라는 타이틀은 그를 더욱 빛나게 했다.
불의의 사고로, 화려한 타이틀을 갖고 있던 그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시력마저도.
이제 프랭크 슬레이드는 누구인가?
타이틀빼고는 그가 누구인지 그 자신조차 설명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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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의 '여섯번째 감각'을 활용하여 추억을 회상하고 기억을 복기한다.
그는 뉴욕으로 돌아가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다시금 밟아본다.
어떤 결말이 있을지 알고 있는채로.
그러나 그가 예상하지 못한 수가 있다.
바로 '찰리'이다.
찰리는 그의 복기를 흐트려놓기 시작한다.
예상대로 흘러가지 못하게 방해를 한다.
마지막 한 수만 두면 결과가 완성되는데도, 찰리는 그 마지막 한 수를 안간힘을 써서 막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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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in the dark! I'm in the dark here!"
어둠 속에 있는, 그리고 어둠 속에 있어야만 하는 흑돌 슬레이드의 마지막 한 수를 방해하는 백돌 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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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는 그가 예상하지 못한 수를 뒀다.
죽일거라고 협박하면 포기할 줄 알았는데 이 녀석은 포기할 줄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똑같은 처지였을지도.
똑같이 죽기살기로 허우적대고 있었기에 맞수가 붙은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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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는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다.
잃을게 없기에 그만큼 줏대있을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줏대가 있기에 잃을게 없듯 행동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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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서로를 구원했다.
서로의 눈동자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
구원 이후의 삶,
이보다 향기로운 것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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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에는 틀린게 없다.
틀린 것 마저 탱고이다.
삶도 마찬가지.
삶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그러니까 틀린 것 같아보여도 그저 지나가보자.
그것마저 삶이니.
저 장면은 내가 꼽는 꽤나 슬픈 장면이다.
모든 의욕을 상실한채 살던 슬레이드가 자랑스럽게 뽑내는 탱고가,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이, 삶을 향한 처절한 울음소리 같았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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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알 파치노를 좋아해서 그가 출연한 영화들을 꽤나 봤는데, 이 영화에서의 연기가 단연 1등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눈동자 초점 하나 흔들리지 않는 시각장애인 연기가 정말로 대단하다. 그리고 앞서 올린 첫번째 클립 속 연기도 감탄만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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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있으니 꼭 다들 봐주셨으면 하는 영화.
"여인의 향기"
5점 만점에 5점 드립니다.
올 해 첫 '못 일어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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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원의 밤> - ‘공허함을 털어내는 낙원의 밤’
낙원의 밤 (Night in Paradise)
감독 : 박훈정
출연 : 엄태구, 전여빈, 차승원
‘공허함을 털어내는 낙원의 밤’
<신세계>, <마녀>, <브이아이피>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박훈정 감독과 거친 연기와 다르게 의외의 수줍음을 뽐내며 인기를 얻은 엄태구 배우, <로맨스가 체질>, <빈센조>를 통해 떠오르고 있는 오묘한 분위기를 지닌 전여빈 배우, 그리고 예능과 영화를 넘나들며 끝이 없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차승원 배우까지. 이름만 들어도 기대감을 한껏 높이는 이들의 조합과 베니스 국제영화제 초청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통해 공개 전부터 많은 관심을 끌어낸 작품 <낙원의 밤>.
<낙원의 밤>은 박훈정 감독의 감성으로 짜낸 약간의 낭만이 가미된 누아르물이다. 누아르라는 장르 특성상 잔인한 장면이 있다 보니 개인적으론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신세계>에 비하면 나름 견딜만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론 누아르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선혈이 낭자한 화면을 보는 것을 기피하는 편이었고, 보고 난 후 특유의 찝찝함이 가시지 않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큰 화제를 부른 작품 또는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이 올라간 작품이 아니면 굳이 찾아보지 않았을 만큼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장르인데.. <낙원의 밤>을 보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이런 취향이 아니구나., ‘별로다’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짜여진 이야기의 틀을 그대로 밀고 나가는 바람에 멋있으려다가 뻔해진 느낌이었달까.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로 아쉬운 부분들을 커버해내는데 성공한 영화 같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신세계>를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것이고, 후루룩 볼만한 새로운 한국형 누아르 영화를 찾는다면 괜찮을지도..
조직 간의 세력 싸움, 믿음과 배신, 믿었던 이의 배신으로 인해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게 된 남자, 그리고 정말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 배신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남자, 명확한 이유도 모른 채 하나뿐인 피붙이를 잃은 여자. <낙원의 밤>의 주인공인 태구와 재연에게 남은 건 ‘나’ 하나뿐이다. 나만 남아버린 삶. 두 사람은 낙원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제주도에서 서로의 눈을 마주한다. 얼른 사라져버렸으면 싶은, 절대 얽히기 싫은 사람이 어느새 유일한 친구가 되고, 나의 안부를 물어봐 주는 마지막 사람이 된다.
완벽한 낙원에서 보내는 밤이라기보단 낙원이었던 곳에서의 밤, 그리고 진짜 낙원으로 떠나기 위한 밤. 그러한 의미를 지닌듯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질러댄 악이 가득했던 낙원의 그날 밤을 들여다본다.
낙원의 밤 시놉시스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이 영화 속에 낙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조폭 세계에 몸담고 있는 주인공 태구, 총기 거래를 하는 삼촌 쿠토와 함께 살고 있는 재연. 그리고 비열한 양 사장과 사람 사이에 앙금을 두고 보지 못하는 마 이사. 서로에게 살벌한 눈빛을 뿜어대고 있는 이들이 만났는데, 이들 사이에 낙원이라는 환상적인 장소가 존재할 리가 없다.
태구와 재연은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제주도에서 만나 서로를 의지하게 된다. 태구는 양 사장의 계략으로 인해 마지막 남은 피붙이인 이복누나와 조카를 잃는다. 재연의 부모님은 삼촌 쿠토와 연루되어 있다는 이유로 살해당했고, 쿠토 또한 배신으로 목숨을 잃는다. 재연은 쿠토가 차라리 죽었다면, 없어졌다면, 부모님과 엮이지 않았다면 하고 원망하기도 했지만, 유일하게 남아있던 피붙이인 그를 의지하며 살아왔다.
태구와 재연은 피를 나누거나 함께 자란 사이는 아니었지만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낀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사람의 외로움. 모든 걸 잃은 사람의 분노, 복수심. 더 이상 잃을 것 없는 삶에 대한 허망함. 이러한 감정들은 두 사람의 거리를 좁혀주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공감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감정은 흔치 않으니 말이다. 마치 재연이 태구에게 도움을 청하던 것처럼, 재연이 쓰러지며 자동차의 클랙슨이 세차게 울리던 순간부터, 두 사람은 서로에게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된다.
아무리 높아도 20%인 생존율,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생. 양 사장의 배신으로 눈앞에 성큼 다가온 죽음. 삶의 끝에 서 있던 두 사람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지붕 아래서 함께 잠이 든다. 누나와 함께 먹고 싶었던 어머니와의 추억을 담은 물회, 죽어서도 생각날 것 같은 물회. 위험을 직감했지만 잠시나마 포근한 침대에서 눈을 붙일 수 있었던 펜션. 온갖 걱정과 슬픔을 말아 함께 피던 담배. 두 사람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어떤 내일을 꿈꿨을까? 아니, 어떤 죽음을 생각했을까.
배신, 승리, 패배 뒤에는 복수가 따라붙는다. 당했으니 그만큼 갚아줘야 한다. 계산은 확실해야 하니까. 재연은 자신의 삼촌이 했던 것처럼 소중한 사람을 앗아간 사람들에게 복수를 한다. 재연의 부모님이 살해당한 후, 쿠토는 그들에게 복수를 한다. 꽤 많은 수의 러시아 조폭들을 한 번에 처리했다는 쿠토의 이야기는 조폭 세계에서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왔다고 한다. 삼촌을 통해 배운 것인지, 정확한 사격실력을 뽐내던 재연은 자신의 머리 가까이 대고 있던 총구를 돌려 마 이사와 그의 부하들에게 겨눈다. 그리고 삼촌이 했던 것처럼, 오랜 시간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릴 완벽한 복수에 성공한다.
나의 상태를 걱정해 주던 사람, 빈말일지 몰라도 “괜찮냐”라고 물어주던 사람, 비슷한 처지가 되어버린, 나처럼 홀로 남겨진 사람. 관자놀이 옆에 위치한 총을 치워준 사람. 그와 엮이고 싶지 않다고 느꼈지만 어느 순간 지독하게 엮여버린 마음. 그리고 그것을 끊어낸 배신과 죽음. 재연과 태구는 견디기 힘든 현실을 뒤로하고 새로운 낙원으로 향한다.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와 20%의 수술 성공 확률을 보장받는 미국이 아닌, 수평선 너머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을 이승이 아닌 그곳으로 말이다. 연이어 지옥 같은 현실을 떠난 태구와 재연은 함께 먹었던 물회 맛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완벽하게 냉혈 하다기보단, 조금은 인간적이었기에 더욱 찝찝한 마음이 남는다. 누아르물 특유의 하드함과 마음껏 비난하고 싶었던 배신과 잔혹함, 그리고 기대엔 조금 미치지 못했던 이야기가 내 마음을 들쑤셔놓은 영화였다. 아쉬움으로 끌어내릴 정도의 영화는 아니었지만, <신세계>를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수도 있는 정도. 딱 그 정도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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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이 누구냐에 따라 그의 여정은 매우 쉬울수도, 고난이 될 수도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사회는 모두에게 평등하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같은 세상이라도 누군가에게는 다른 세상이며 미지에 가까울 수 있다.
이 영화는 난치병으로 시력과 기동성을 잃은 한 남자를 통해 그런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본 영화는 실제로 다발성 경화증을 가진 배우가 연기를 했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에서 보여주는 연기가 정말 본인이 겪어온 경험들과 섞이는 듯 해서 정말 훌륭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화면은 계속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을 빼면 초점이 안 맞춰져 있다.
이것은 실제로 본 질병 중 거의 앞이 안 보이는 것을 관객도 직접 느낄 수 있게 의도한 연출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관객에게 단순히 작중 상황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러닝타임이 짧은 만큼 작중 줄거리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장소도 그리 많지 않다.
사실 생각해보면 작중에서 주인공 야코가 언급한거 처럼, 주인공의 여정은 생각보다 안 어렵게 느껴진다.
'좋은 타인' 몇명을 만나 몇번의 도움만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기차를 탈 때나, 택시를 탈 때 정도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단순하게 끝나지 않는 이유는, 그 '타인'을 잘못 만나서 고난이 되버리기 때문이다.
기차역에서 지갑을 뺏기고, 그 사람이 계속 쫓아와 공장으로 데리고 가는 등, 상황은 더 이상 관객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처음에 그가 말한 좋은 타인을 만나, 시르파의 집 앞까지 도달한다.
어떻게보면 문제가 정말 쉽게 해결된건데, 단순히 내용을 편의적으로 전개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타인이 누구냐에 따라 이렇게까지 야코의 여정이 달라진다는 게 정말 현실적이면서도 슬프게 느껴진다.
만약 처음에 좋은 타인을 만났다면 애초에 일이 이렇게까지 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 드디어 시르파를 현실에서 만나고, 처음으로 주인공의 얼굴을 빼고 타인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온다.
영화에서는 마지막의 시르파를 빼면 단 한번도 다른 사람의 얼굴을 선명하게 보여주지 않는데, 마지막에야 드디어 다른 사람의 얼굴이 선명하게 나오고, 그 사람이 오랜 시간 동안 전화만 했던 시르파라는 사실이, 그 장면의 힘이 정말 강력하게 느껴지게 한다.
이 영화는 장애인을 이용해 가난 포르노 같은 걸 찍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를 이러이러하게 바꿔나가야 한다 같이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아주 현실적으로, 담담하게 응시한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들이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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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마이 네임 (2021)
* 본 리뷰는 <마이 네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이 네임 (2021)
감독: 김진민 (<인간수업> 연출)
출연: 한소희, 박희순, 안보현, 이학주, 장률 등
장르: 범죄, 액션, 느와르
방영 횟수: 8부작
공개일: 2021.10.16
복수를 위해 기꺼이 괴물이 된 한 여자
약쟁이 깡패 자식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학교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지우(한소희)'.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춘 아빠 '동훈(윤경호)'를 원망하던 찰나 눈앞에서 의문의 남성에게 죽임을 당한 아빠를 목격한다. 지우는 아빠가 몸담았던 마약 조직 동천파의 보스 '최무진(박희순)'을 찾아가고, 그에게서 조직을 위해 싸우는 냉혈한 킬러로 길러진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는 굳은 일념 하에 그는 '오혜진'이라는 이름을 갖고 경찰에 잠입하여 원수의 그림자를 좇는다. 하지만 누군가를 죽이고 해치며 살아가는 인생 앞에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감을 느끼고, 그동안 잘못 알고 있던 인생의 목적을 다시 깨닫게 된다.
넷플릭스의 새로운 기대작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시작하면서 최근 들어 유독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가 빈번하게 공개되고 있다. <D.P.>, <오징어 게임>이 연일 흥행에 성공하며 한국 콘텐츠의 글로벌 흥행이 가속화 되고 있는 가운데, 어제 공개된 <마이 네임>도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하며 다음 흥행작으로 미리 점찍어둔 듯한 행보를 보였다. <마이 네임>은 최근 흥행한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들처럼 어두운 분위기를 지닌 데다가 폭력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과거 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국의 로맨틱코미디물들이 큰 인기를 끌었던 시기가 있는데, 최근 들어서는 다크하고 잔혹한 폭력의 온상을 다루는 작품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는 듯하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무해하고 따뜻한 감성의 콘텐츠들이 힘을 못 펴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클리셰 범벅, 하지만 여성 서사
<마이 네임>은 시놉시스만 읽어도, 도입부터 결말까지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지 충분히 예상이 가는 작품이다. 액션 느와르 영화는 한국에서 한때 질리도록 성행했던 장르이고,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데 한계가 있어 독특한 소재로 신선함을 확보했던 <D.P.>, <오징어 게임>과는 분명 결이 다르다. 예상했던 대로, <마이 네임>은 온갖 불행 서사를 입힌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각성하고, 조직의 스파이로 발탁되었다가 진정으로 복수를 해야할 대상을 찾게 된다는 식의 굉장히 뻔한 전개를 보여준다.
하지만, <마이 네임>은 액션 느와르물에 등장할 법한 클리셰를 잔뜩 더했음에도 양산형 조폭 드라마로 치부될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숱한 액션 느와르 영화들이 지금껏 남성 서사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면, 본작은 철저하게 여성서사로만 이뤄진다. 물론 <아토믹 블론드>, <악녀>와 같은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느와르물도 있지만 한국 콘텐츠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범죄/액션물에서 여성서사를 메인 스토리로 택한 작품은 극히 드물다. 따라서 여성서사를 내세운 느와르 영화의 스토리가 비록 뻔할지라도, 이러한 작품이 제작되는 게 이상하거나 튀어보이지 않도록 많은 시도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소희, 한소희, 한소희
2시간 분량의 영화로 다룰 법한 내용을 8부작 드라마로 만들어 내용을 질질 끌고, 전개도 느린 편이다. 굉장히 플롯이 단순한데도, 횟수를 채우기 위해 억지로 장면들을 우겨 넣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영화라면 온전히 주인공의 서사에만 집중을 가했겠지만, 드라마인 터라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도 제법 비중 있게 등장하는데 주인공 '한소희'의 존재감이 워낙 커서 다른 배우들에게 눈길이 가지는 않는다.
'한소희'가 맡은 '윤지우' 캐릭터는 작중 고생과 역경을 수없이 겪는 인물이다. 학교에서 당한 괴롭힘부터 동천파 체육관에서의 강간 미수 사건 및 폭행, 그리고 경찰과 조직원 사이를 오가며 겪게 되는 온갖 폭력 사건들과 칼부림 현장. 거의 8회 내내 피칠갑을 하고 등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액션의 비중이 큰 작품인데, '한소희' 혼자 이끌고 나가는 액션 연기의 임팩트가 상당하다. 사실상 그의 액션 장면 빼고는 영화에서 건질 게 없을 정도로 액션 시퀀스들은 훌륭했다. 확실히 '한소희'란 배우는 악역이나 어두운 사연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할 때 매력이 극대화되는 것 같다. 특유의 연기 스타일이 있어 습관적으로 등장하는 어투나 표정들이 거슬리기도 하지만, <알고있지만,> 같은 현실 로맨스물 같은 장면보다 연기력이 훨씬 자연스럽다.
굳이 드라마로 만들어져야 했을까
여성 서사의 액션 느와르물이 탄생한 것은 분명 좋은 현상이나 스토리와 연출 등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이 없다. 20년 전에 본 한국 조폭영화를 그대로 답습하는 느낌이랄까. 주인공 혼자서 수십 명의 조직원들을 상대로 무쌍을 찍는 장면들의 비현실성은 한국 느와르 작품의 고질적인 문제이니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다. (주인공이 남자이건 여자이건 관계없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장면들이다.) 예상의 한치 앞을 벗어나지 않는 스토리의 전개는 끝까지 단 하나의 반전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고난을 말도 안되게 헤쳐 나가는 주인공 버프가 큰 작품이라 그런지 총칼이 오가는 장면들에서도 긴장감이 덜하다. 다시 말해, '한소희' 배우 말고는 볼 만한 요소가 없는 작품. 시놉시스를 보고 떠오른 줄거리가 있다면, 절대 그 머릿 속 상상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굳이 드라마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킬링 타임의 목적 달성도 실패했고, 감독의 전작인 <인간수업>만큼의 완성도를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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