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6-19 13:43:48
WGA 선정 21세기 최고의 각본
미국작가조합 선정
Writers Guild of America (미국작가조합)에서는 1949년부터 우수한 영화나 텔레비전, 라디오 등의
각본가들에게 상을 수여하고 있는데요.
미국작가조합상의 영화 부문 각본상과 각색상은 아카데미상쪽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아 아카데미상 수상 예측에 활용되기도 합니다.
WGA에서 선정한 최고의 각본101편중 top 25 영화를 가져왔습니다.
저는 19편 봤네요. 여러분들은 몇편을 보셨나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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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도를 희생해 시리즈의 초석을 두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판도라 행성의 자원을 개발하려던 RDA의 공격을 물리친 '제이크 설리(샘 워딩턴)'와 '네이티리(조 샐다나)'. 그들은 '네테이얌(제이미 플래터스)', '로아크(브리튼 달튼)', '투크티리(트리니티 블리스)'를 낳고 '그레이스 박사(시고니 위버)'의 딸 '키리(시고니 위버)'와 인간 아이 '스파이더(잭 챔피언)'를 입양해 행복한 가족을 꾸려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크는 밤하늘에 낯선 불빛을 발견하고 RDA와 인간들이 판도라에 귀환했음을 깨닫는다. 그는 가진 무기와 자원을 총동원해 인간들을 공격하나, 도리어 아바타로 되살아난 '쿼리치 (스티븐 랭)' 대령의 기습에 가족을 잃을 뻔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한다. 이에 제이크와 네이티리는 위기를 피하고자 '로날(케이트 윈슬레)'과 '토노와리(클리프 커티스)'의 도움을 받아 온 가족을 데리고 바닷가에 사는 멧카이나 부족 사이로 피신한다. 그러나 포기를 모른 채 복수심에 불타는 쿼리치의 추격은 제이크의 가족에 새로운 시련을 선사한다.
<아바타: 물의 길>은 올해 개봉한 작품 중 가장 많은 기대를 받은 작품이었다. 이유는 많았다. 역대 월드와이드 흥행 1위 영화이자 3D 혁명을 일으킨 <아바타>의 속편이라는 점, 개봉일이 숱하게 연기되어 13년 만에 공개된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라는 점, 제임스 카메론 감독 본인이 가장 비경제적인 영화일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자된 작품이라는 점 빼놓을 수 없다. 전편의 주역인 샘 워딩턴과 조 샐다나는 물론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시고니 위버와 스티븐 랭이 복귀했고, 케이트 윈슬렛 등이 새로이 합류한 배우들의 면면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아바타: 물의 길>은 감독의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에이리언 2>와 <터미네이터 2>로 속편의 대가임을 증명한 바 있는 제임스 카메론도 이번에는 자기 장기를 온전히 발휘하는 데 실패했다. 13년간의 준비 기간 때문이다. 카메론 감독은 5편까지 이어질 시리즈를 모두 계획하기 위해 13년이 필요했다고 밝힌 바 있다. 각본을 모두 완성하고, 모든 캐릭터와 생물을 미리 만들며, 제작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을 사전에 구축할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이번 속편이 큰 그림의 일부라는 의미이며, 바로 이 대목이 양날의 검이다. 앞으로의 로드맵이 확실하다 보니 <아바타: 물의 길>이 암시하는 향후 시리즈의 내용이나 전편으로부터 더욱 발전한 주제 의식과 메시지는 화려한 영상미 못지않게 흥미롭다. 반면에 한 편의 독립된 영화로서 완성도는 현저히 떨어진다. 시리즈의 초석을 놓는 데 열중한 나머지 무엇 하나 온전히 완결 짓지 못한 듯 보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캐릭터 '로아크' & '키리'가 암시하는 시리즈의 길
우선 <아바타: 물의 길>은 새로운 캐릭터들을 차례대로 소개하면서 앞으로 <아바타> 시리즈가 나아갈 방향성을 설정하는 데 주력한다. 이는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로맨스가 가족 드라마로 확장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인물을 자연스럽게 극의 흐름에 끼워 넣고 동시에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 제격이므로. 실제로 영화의 내용은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 양육 방향을 둔 아버지와 어머니의 충돌, 형제자매 간의 다툼 등으로 가득하다. 특히 둘째 아들 로아크과 양녀 키리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들의 서사에 담긴 비유와 클리셰는 시리즈의 지향점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일단 로아크는 신약 성경 속 '돌아온 탕자'의 판도라 버전으로 보인다. 로아크는 나비족의 영웅이자 위대한 전사인 아버지처럼 되고 싶은 욕망에 들끓지만, 동시에 아바타의 특징이 강한 외모 때문에 소외감을 느낀다. 아버지처럼 강한 전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완벽한 아들이자 형인 네테이얌처럼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는 자격지심이 공존한다. 그 때문에 그는 아버지에게 자신 몫만큼의 유산을 받아 집을 나선 '탕자'가 된다. 그는 만용을 부리다가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해 가족과 동료들을 위기에 빠뜨리기도 하고, 좀처럼 가족들과 융화되지 못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떠나 자신만의 여정을 겪는다.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한 단계 성숙해진다. 자신처럼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툴쿤 파야칸을 만나 안정을 찾고, 형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아버지를 위험으로부터 구해내면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온다'. 결국 <아바타: 물의 길>은 로아크가 물속은 물론 인생의 길까지 찾는 이야기인 셈이다.
미스터리로 가득한 신비한 캐릭터 키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아바타에서 태어난 아기이자, 그 누구도 아버지의 정체를 모르는 존재인 그녀는 등장부터 범상치 않다. 유달리 에이와와 강하게 교감할 뿐만 아니라, 따로 훈련하지 않고도 물속에서 능숙하게 잠수할 줄 안다. 또 온갖 동식물과 소통하고 그들을 뜻대로 조종하기도 한다. 이러한 묘사는 그녀가 마치 판도라 버전의 예수와 다르지 않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인간과 나비족의 대립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구세주 메시아로 거듭날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케 한다. 본래 '아바타(avatar)'라는 단어가 지상에 내려온 신의 분신을 의미하는 만큼, 키리가 에이와의 아바타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로아크와 키리의 서사가 중심이 될 <아바타> 시리즈는 제임스 카메론이 써 내려가는 신약 성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시점 알려진 시리즈의 4편과 5편의 부제가 각각 <툴쿤의 기수(The Tulkun Rider)>와 <에이와를 찾아서(The Quest for Eywa)>이기에 더욱 그렇다.
전편으로부터 진일보한 생태학적 메시지
무분별한 환경 파괴와 개발에 반대하며 자연을 보호하자는 메시지도 더욱 깊어졌다. <아바타>는 인간과 다른 존재들의 관계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판도라의 모든 생명체는 에이와의 자식으로서 동등한 존재다. 따라서 그들을 소유하고 이용하는 대신 그들과 소통하며 허락을 구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는 제이크가 이크란을 탈 때 그들과 진정으로 교감할 수 있어야 했던 이유였고, 또 사냥할 때마다 "당신을 봅니다(I see you)"라고 말하며 명복을 빌었던 이유였다. 판도라의 모든 나무가 마치 하나의 네트워크 안에서 인간처럼 의사소통할 줄 안다는 언급도 같은 맥락에서 등장한 설정이었다. 다만 이러한 묘사에도 한계는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설정과 설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판도라의 신기한 생태계와 삶의 방식을 관찰할 뿐, 다른 생명과 존재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는 없었다.
<아바타: 물의 길>은 한발 더 나아간다. 지구의 고래를 닮은 생명체, 툴쿤의 등장이 대표적이다. 작중 툴쿤은 멧카이나 부족의 형제자매, 외관만 다른 부족의 일원으로 여겨진다. 멧카이나 부족과 툴쿤들이 재회하는 장면은 오랜 기간 보지 못했던 가족이나 친척들이 추석이나 설날에 만나 수다 꽃을 피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특히 단지 멧카이나 부족이 일방적으로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툴쿤들도 대화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영화는 로아크와 파야칸이 처음 만난 순간부터 툴쿤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파야칸의 시점에서 로아크가 말을 걸고, 대화를 시도하고, 도움을 주고, 친분을 맺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 결과 동등한 두 주체가 진정으로 우정을 쌓아나가는 과정에는 설득력이 더해진다. 또 인간과 멧카이나 부족이 결국 전투를 벌이는 결정적인 계기도 직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체험할 수 있는 주제 의식
즉, 전편이 인간도 자연계의 구성원 중 하나로서 선순환하는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속편은 인간 이외의 주체를 강조하여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정동(affect)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자연과 물질도 인간처럼 세계의 변화에 반응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주체이며, 인간처럼 의지와 목적을 가진 채 행동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그들도 툴쿤 사냥선을 급습하는 파야칸처럼 인간 행위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다. 인간이 자연을 통제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자연의 능동적인 반응에 따라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특히 영화 초반부에 RDA의 목적이 망가진 지구를 대신해 판도라를 개척하고 이주를 도모하는 것으로 드러난 만큼, 이는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자연과의 공존을 더 적극적으로 강조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한층 깊어진 주제 의식은 <아바타: 물의 길>이 선보이는 화려한 영상미가 빛을 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이 작품의 CG 효과는 전편 수준의 충격적인 영상미를 재현하지 못한다. 3D 효과도 익숙해졌고, 판도라 행성의 경관도 한 차례 맛을 봤기에 13년 전만큼 놀랍지는 않다. 하지만 여전히 판도라를 체험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마치 지구의 바다를 촬영하듯이 다른 세상에 있을법한 바다의 상세한 모습을 그래픽과 상상력으로 표현한 결과, 주인공들과 함께 판도라의 바다를 진짜로 경험하고 경이로움을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해양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일본의 고래잡이를 비판하는 듯 보이는 툴쿤 사냥 시퀀스도 마냥 교조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관객들은 해당 장면에 심정적으로 몰입하고, 영화의 메시지도 자연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한 편의 영화가 아닌 시리즈의 부속품에 가까워진 결과물
그러나 한 편의 독립된 영화로서 <아바타: 물의 길>은 전편에 비하기 어려운 완성도를 보여준다. 전반적인 스토리의 구성과 흐름, 캐릭터의 구축과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전편과 달리 몰입도가 떨어진다. 1편은 인간과 아바타(나비족) 중 한 정체성을 골라야 하는 제이크의 고뇌를 그려냈다. 이러한 존재론적인 내적 갈등은 누구나 자신의 성장 경험과 사회적 위치를 떠올리며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반면에 이번 작품은 내적 갈등을 사회적인 이야기로 다양하게 확장한다. 일례로 제이크와 네이티리의 아이들은 혼혈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심적으로도 괴로워하고 멧카니아 부족의 아이들과도 충돌한다. 이는 현실 속 인종 차별이나 다문화 청소년들이 겪는 집단 따돌림 등에 대한 비유처럼 보인다. 이는 수용자의 경험과 태도에 따라 공감의 수준이 달라질 수 있는 화제이고, 결국 그 때문에 직관적인 몰입도도 덜할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수많은 캐릭터의 활용법도 최선은 아닌 듯 보인다. 다음 세 편을 위한 준비 단계에 불과하다 보니 캐릭터들의 이야기도 간신히 시작될 뿐 진행되는 내용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제이크의 서사만 해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사전 작업에 머무르고 있다. 줄곧 인간을 피해 도망치던 그가 인간과의 전면전을 각오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 것만으로 3시간이 흐르기 때문이다. 스파이더의 활용도 애매하다. 인간과 나비 양쪽을 오가면서 비극적인 개인사와 가족사를 지닌 인물인 만큼 그는 분명히 향후 시리즈에서 중대한 역할을 맡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정작 이 중요한 캐릭터가 활약할 수 있는 공간을 주지 않는다. 그는 나비족의 습관과 정서를 이해하고 깊이 사랑하는 캐릭터에서, 말 몇 마디에 쿼리치의 제이크 추적을 돕는 등 소극적으로 협력하는 캐릭터로 변해 버린다. 이렇게 일관성 없이 플롯의 필요에 따라 캐릭터성이 달라지다 보니 그는 자연히 극의 흐름에 녹아들지 못한다.
갈등의 규모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얼핏 보기에는 전편보다 더욱 커진 전쟁을 그려내는 듯하다. RDA가 아예 실거주 목적으로 판도라 행성에 귀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또한 다음 편을 위한 복선에 불과하다. 정작 종족의 생존을 두고 벌어지는 인간과 나비족의 결전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제이크, 네이티리, 그리고 쿼리치 대령 간의 오래된 악연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쿼리치 대령은 개인적인 복수심을 이유로 제이크와 네이티리를 추격하며, 그저 도망치기에 급급하던 제이크와 네이티리 역시 아들의 복수를 하기 위해 쿼리치의 도발에 응수하기로 한다. 그 결과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전편에 비해 다소 맥 빠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액션의 스케일이나 전투 시퀀스의 규모도 줄어들었고, 싸움에 임하는 비장함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바타: 물의 길>을 보다 보면 생각나는 두 작품이 있다. 바로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와 <호빗: 뜻밖의 여정>다. <아바타>를 일종의 프롤로그였다고 친다면, <아바타: 물의 길>의 목표는 <반지 원정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시리즈의 세계관을 전반적으로 설명하고, 거대한 전쟁에 앞서 선악을 대표하는 인물들 간의 추격전을 그려낸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각각의 인물이 어느 정도 마음을 정리하고 편을 정한 후 본격적인 전쟁에 나서기로 하는 흐름도 유사하다.
그러나 목표와 달리 <아바타: 물의 길>은 정작 <호빗> 1편을 보는 듯한 인상을 남기고 만다. 시리즈의 진행에 필요한 복선을 깔아 두는 데 지나치게 열중할 뿐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는 않으며, 많은 캐릭터가 새롭게 등장했지만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 인물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유사한 문제점을 공유하는 까닭이다. 내용의 부실함을 전편에 비해 화려해진 시각 효과로 벌충하는 것 역시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아바타: 물의 길>은 장단점이 명확히 갈리는 가운데 향후 시리즈의 향방에 따라 재평가의 여지를 남겨두는 작품인 셈이다. 대서사시를 위한 완벽한 가교이거나, 시리즈의 진행을 위해 소비되어 버린 평범한 속편이거나. 2년 내지는 3년 안에 나올 것이라 공언한 <아바타 3>의 모습이 더욱 궁금해지는 이유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재평가는 속편들의 몫으로 남겨둔, 흠잡을 데 없는 시리즈의 디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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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자성의 50가지 그림자
이 글은 영화 [헌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가거나 인용 시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주세요.
바람 잘 날 없는 한 달이었다.
앞다투어 개봉하는 대작들의 풍년으로. 그리고 그 영화들을 속 시끄럽게 하는 잡음과 이슈들 로도 말이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 속에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세 영화에 이어. 마지막 기대작인 영화 [헌트]도 자신의 경로를 확인하기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이미 배우로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는 입장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도. 자신의 한계선을 저만치 밀어내고 싶은 마음을 꾹꾹 담은 작품으로, 이정재는 배우이자 신인 감독의 이름으로 꾸벅 인사를 건넨다.
어쩌면 이중고가 될지도 모르는 이 무거움을 기어코 어깨 위에 얹고 걷는 영화 뒤로. 이 영화의 운명을 결정할 주사위가 던져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영화 [공작]에 이은 또 다른 호평을 이끌어 낼 첩보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인지는 이 영화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함께 걸으며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자성의 50가지 그림자;거울에 갇힌 자신을 꺼내려는 시도
사진출처:다음 영화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은 만나는 첫 순간부터 서로를 향한 반감을 숨기지 않는다. 분명 같은 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도 협력은커녕 뒤꽁무니를 캐느라 눈이 벌게진 모습이 긴장감으로 승화되어 영화를 지배한다.
누군가를 의심해야만 하는 시대적인 특성도 있었겠지만. 더 크게 보면 두 사람 모두 품 속에 자신의 이념이라는 거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당시의 신념은 목숨만큼이나 중요했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드러냈다가는 스스로의 한 치 앞도 장담할 수 없기에, 가진 거울 위에 일부러 먼지를 소복이 쌓은 채 시치미를 뚝 떼고 살아야만 했다.
김정도(정우성)에게는 이 거울의 정체가 매우 명확하다. 자신이 군인이던 시절 보고 겪은 참상이 그것이 되어 꼿꼿하게 마음에 뿌리내린 채 흔들릴 겨를이 없었다. 이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들은 단호하게 쳐내며 거울의 존재를 지키려 애쓴다.
그러나 박평호(이정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방주경(전혜진)은 자신이 뒤집어쓴 먼지 같은 삶을 그 어떤 왜곡 없이 너무도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 어떤 생각도 없이 상부의 명령에 오롯이 자신을 던지고. 자신의 일에 심지어 신이 나 보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불만은커녕 이 일이 즐겁다는 것처럼.
다른 거울이자 박평호의 크립토나이트(약점)인 유정은 자꾸 평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현재의 그 부조리를 과연 참으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파문을 던져댄다. 생각해야 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지금 대답을 하고 바로 행동에 옮기라며 채근한다.
두 개의 거울 사이에 낀 박평호는 자신의 모습이 무한대로 반사되어 분열하는 것을 보며 하나의 자신만이 남기를 바랐을 것이다. 어쩌면 혼란에 빠져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리려고 하는 모습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면서도 자신이 아닌 무한대의 박평호의 모습에서 알 수 없는 두려움마저 느꼈을 그는 결국 방주경의 목을 조르는 것으로 이 혼돈이 마무리되기를 바랐다.
오월동주에서 동상이몽으로;결국은 숨길 수 없었던 본질에 대하여.
사진 출처:다음 영화
박평호와 김정도가 공동의 목표를 종착지로 하는 배에 승선하려고 채비하는 과정은 참으로 험난했다. 숨통 같은 거울을 잠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물론, 각자 가장 아끼는 장수 하나씩을 제 손으로 바다에 밀어 넣어야만 했다.
눈물 뿌릴 새도 없이 매정하게 등을 돌려 돌아오다 눈을 들었을 때. 그제야 서로는 자신만을 비추는 거울을 오랜 세월 들여다본 다른 사내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게 되었다.
어딘가 낯설고. 또 어딘가는 조금 닮아 있고. 이념과 함께 한 세월만큼이나 고집스러운 입매를 가진 것 같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속을 보일 수 없어 고독했을 것이며, 아주 가끔은 자신의 이념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도 몇 번은 던졌을 것 같은 얼굴.
그 연민을 닮은 것만 같은 마음이 자신을 향한 것인지, 혹은 상대방을 향한 감정인지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본능에 가까운 불안감이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결국 숨길 수 없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희생으로 배의 방향키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려보려 애썼지만. 본질적으로 달랐던 그들의 이념은 결국 사람마저도 양립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체제 앞에선 한없이 약한 두 사람의 모습은 그들이 지닌 거울의 본질에 상관없이 똑같이 안쓰럽고 안타깝다.
오월동주라도 되길 바랐지만. 결국은 동상이몽이 되어버린 배 안의 소란도 알지 못한다는 듯. 시대의 파도는 배를 그저 앞으로만 나아가게 할 뿐이었다. 조용히.
결국 닿지 못한 신세계;이자성 수난시대
사진 출처:다음 영화
이정재 배우가 출연한 스파이 영화에서는 유달리 최종 목적지에 대해 묻는 장면들이 많다고 느낀다.
신세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자성이 골드문에 들어갈 때만 해도. 이 일이 끝나면.이라는 가정문은 희망이 되어 오랜 세월 동안 그를 버티게 했고. 자신의 배역은 아니었지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인남(황정민)의 최종 목적지 역시 딸과 함께 살 수 있는 행복이 가득한 곳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가정문이 주던 희망은 결국 희망 고문이 되어 자신을 포박했고, 행복이 가득한 곳으로 가려면 자신의 희생이 있어야 딸이 밟고 지나가는 길목을 훤히 터줄 수가 있었다.
이번 영화에서도 다르지 않다.
숨진 유정(고윤정)의 아버지(이성민)가 몇 년 전에 물었을 때도. 김정도가 일이 끝나면 가고 싶은 곳으로 보내 주겠다고 약속을 했을 때도. 박평호는 자신이 절대 그곳에 닿지 못할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으리라.
“그곳”에 닿지 못하는 것이 스파이의 숙명이고, 모든 작전이 쉬쉬 했지만 목적지는 이념의 승리일 뿐 그런 곳은 없다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자신은 이미 이념에 잠식 당해 개인을 잃어버려 그 질문을 들었을 때마다 허를 찔린 기분이기도 했을 것이다.
목적 하나만 믿고 살아왔고. 한 곳에 뿌리내리지 않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그에게 허락된 종착역은 변절자라는 오명뿐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자성도 인남도, 그리고 박형호 마저도. 원하던 종착역에 내리지 못했다.
마치면서
영화를 보며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최근처럼 강하게 든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낮은 목소리의 웅얼거림은 첩보 영화의 복잡성을 조금 더 배가 시키는 약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또한 많은 카메오들이 나오는 것은 좋았으나 중요한 장면에서 필요 이상의 “아는 얼굴”들은 영화에 쏟아야 하는 몰입을 약간 흩어지게 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하지만 일본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총격전 장면에서. 박평호가 자신이 몰던 차의 엑셀을 발로 비벼 밟는 장면을 보며 생각이 조금 누그러졌다.
이미 개봉 전부터 많은 매체에서 이야기했기에 다시 언급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 겹의 말을 그 위에 얹자면.
무엇이. 그리고 어디까지가 감독이라는 역할을 가진 사람이 해야 하는지는 나 같은 문외한이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영화를 위해 초보 감독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를 그 한 장면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고, 낯설기도 한 환경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많은 감정을 닮은 간절한 발짓처럼 보였을 정도니까. 이 초보 감독의 곁에서 메인 배우이자 친구의 역할도 진심으로 해 냈을 정우성 배우와의 호흡도 두 말할 것 없다. 이토록 처절하게 미워하지만 결국은 서로를 딱하게 생각하는 스파이들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애써서 만든 영화임에는 틀림없고. 눈치챌 정도의 엉성함도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 성공적인 첩보 영화의 한 예인 [공작]과는 대척점에 들어있는 또 다른 스파이 영화의 예로 남게 될 듯하다. 물론 좋은 쪽에 속하는 예시로.
열정을 실력으로 바꾸는 사람들의 행보는 언제 보아도 아름답고 대단하다.
차용하고 있는 거울의 모티브는 불식 경설화와 이규보의 경설에서 따왔음.
[불식경 설화]는 한 번도 거울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남편이 사 온 거울을 본 아내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 남편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왔다고 생각했고. 화난 아내에게서 거울을 받아 든 남편은 외간 남자가 비치는 것에 놀라 화를 냈다는 이야기임.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는 이념의 거울을 처음 본 두 남자가 서로의 이념에 화를 낼 수밖에 없음을 빗대 차용함.
이규보의 [경설]은 거울에 먼지가 쌓여 흐릿해진다 해도 무언가를 비춘다는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음. 어차피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거울이 있을 테니 그 본질이 결국 두 사람을 오월동주가 아닌 동상이몽의 파멸로 이끌게 했음을 설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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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미란 코미디 원맨쇼
* <정직한 후보>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정직한 후보 (2020)
감독: 장유정
출연: 라미란, 김무열, 나문희, 윤경호 등
장르: 코미디
상영시간: 105분
개봉일: 2020.02.12
진실의 주둥이가 불러온 기상천외 선거전
입만 열면 거짓말이 술술 튀어나오는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 그녀는 살아계신 할머니의 목숨까지 팔아 선거에 이용할 정도로 뻔뻔한 철면피다. 할머니의 이름을 팔아 설립한 재단을 앞세워 4선 도전도 무리 없이 진행되려던 찰나 손녀의 버릇을 고쳐놓고자 할머니 '옥희(나문희)'가 기도를 하면서 '상숙'은 하루아침에 거짓말을 못하는 신세가 된다. 그동안 거짓으로 포장했던 속마음들이 마치 생리 현상처럼 입에서 주체없이 튀어나오게 되고, '상숙'의 선거전에 크나큰 차질이 생긴다. 보좌관 '희철(김무열)'이 물심양면으로 그녀의 곁을 지키며 어떻게든 리스크를 막아 보려 하지만 거짓말이라는 최고의 무기를 잃은 '상숙'의 상황은 갈수록 악화된다. 이대로 4선의 목표가 좌절되려는 순간, 과감하게 정면돌파를 택하며 자신에게 닥친 문제를 유쾌하게 풀어 나간다.
뻔하지만 코믹한, 유쾌함에 충실
<정직한 후보>는 '짐 캐리'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라이어 라이어>를 표절한 의혹이 있는 브라질 영화 <O Candidato Honesto>의 판권을 구매해 리메이크한 작품. 원작의 '변호사'를 '정치인'으로 바꾼 것만 빼면 내용상의 차이는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위선과 거짓으로 똘똘 뭉친 유력 정치인이 하루아침에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소재로 써 내려갈 스토리가 워낙 뻔하다보니 작품의 줄거리를 쉽게 예측할 수 있고, 실제 전개 역시 예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정직한 후보>는 코미디 영화이고, 개인적으로 코미디 장르는 관객을 웃겨야 한다는 본질에만 충실해도 기본은 해냈다고 생각한다. 비현실적인 설정, 식상한 스토리라인을 차치하고서라도 혼을 빼놓도록 웃기면 그만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작은 적어도 가볍고 유쾌한 유머를 날리는데 충실하다. 작품을 이끄는 '라미란'의 역동적인 코믹 연기는 SNL '라미란' 편 혹은 그의 코미디 원맨쇼라 할 정도로 평범한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원톱 주연인 '라미란'을 서포트 하는 두 남자, '김무열'과 '윤경호'의 연기도 함께 돋보인다. '김무열'은 중후한 카리스마 혹은 냉혈한 빌런의 모습으로 더 익숙한 배우이지만 극중 열정 넘치는 해결사, 어딘가 부족한 허당, 어리광을 피우는 남동생 등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캐릭터로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다. 특히 '라미란'과 '김무열'의 케미스트리는 작품의 두 번째 시즌이 탄생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식 전개로 갉아먹은 장점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코미디의 색채는 옅어지고 신파극의 특징을 보인다는 점에서 뒷심이 부족했다. 중반부까지는 스토리가 엉성하더라도 '주상숙'이라는 캐릭터가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상황을 해결하려는 방식들이 웃음을 주고, 작품에 속도감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상숙'이 개과천선을 하고,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썩은 정치인들을 징악한다는 결말은 정치에 관한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한국영화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즉, 뻔한 줄거리의 코미디 영화에 고리타분한 한국식 결말까지 더해져 인물의 톡톡 튀는 캐릭터성마저 희미하게 만들어버렸다. 오히려 초반부의 B급 감성을 끝까지 밀고 나갔더라면 코미디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나선 배우들의 힘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스토리 상의 비판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 본다.
라미란에 의한, 라미란을 위한
<정직한 후보>의 가장 큰 가치는 원톱 주연으로서 코미디 작품을 성공적으로 이끈 '라미란'의 역량과 내공이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여성 원톱 주연 영화는 활발하게 제작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고, 제작되더라도 흥행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김혜수'가 원톱 주연으로 출연해 200만 관객을 돌파했던 <굿바이 싱글> 정도가 떠오른다.) 그런데 <정직한 후보>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힘든 시국에도 150만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고, 시즌2 제작도 안정적으로 착수했다. 이는 전적으로 수많은 코미디 작품에 조·단역으로 출연하며 자신만의 유머 코드를 개척한 '라미란'의 기량이 발휘된 결과이며 그녀가 괜히 '청룡영화제'에서 코미디 원톱 주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게 아니라는 것 역시님 증명했다. 그동안 남성 원톱 주연 코미디 영화는 수없이 제작되었고 흥행한 사례도 많지만 여성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정직한 후보>가 작품성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여성 원톱 주연 코미디 영화도 충분히 흥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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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전락하더라도 놓을 수 없는 것
박찬욱 감독의 최고작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인 박쥐를 다시 봤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 영화를 봤는지 셀 수도 없다. 볼 때마다 새로운 영화는 아니지만 내용과 대사를 다 알아도 항상 소름이 돋은 상태로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영화이다 보니 소모임 멤버들에게 하도 호들갑을 떨어 놔서 다들 많은 기대를 하고 봤을 것 같은데, 개봉 당시에도 평가가 엇갈렸듯이 보는 사람마다 반응이 다 다른 것 같아서 신기했다. 그 와중에도 불쾌하고 찝찝하다는 평은 모두의 입에서 나왔던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은 자신이 배우를 캐스팅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외모라고 했다. 배역에 어울리는 외모와 분위기가 1순위라는 감독의 말을 증명하듯이, 이 영화는 송강호 김옥빈이 아니었으면 만들어질 수 없었던 영화인 것 같다. (이후 스포일러)
출처: 유튜브 영화
본작의 주인공인 현상현은 정말 숭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신부이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릴 수 없음에 허무함을 느끼고 '사람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신부로서의 자신에 만족하지 않고 항상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직접적인 구원자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그의 마음 또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신이 아닌 사람이기에 기적을 만들어낼 수 없었고, 결국 불치병 바이러스의 치료약을 개발하는 연구소에 실험 대상으로 자원하게 된다. 치사율이 100%인 바이러스를 몸에 집어넣은 뒤 행하는 그의 기도문 독백은 이 신부가 얼마나 희생적인 사람인지를 초반에 확실히 설명해주는 역할과 이후의 장면들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출처: 유튜브 영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허락하소서. 살이 썩어가는 나환자처럼 모두가 저를 피하게 하시고, 사지가 절단된 환자와 같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하시고, 두 뺨을 떼어내어 그 위로 눈물이 흐를 수 없도록 하시고, 어깨와 등뼈가 굽어져 어떠한 짐도 질 수 없게 하소서. 머리에 종양이 든 환자처럼 올바른 지력을 갖지 못하게 하시고, 영원히 순결에 바쳐진 부분을 능욕하여 어떤 자부심도 갖지 못하게 하시며, 저를 치욕 속에 있게 하소서. 아무도 저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만이 저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소서.
결국 현상현 신부는 바이러스에 의해 사망 직전에 이르게 되어 피를 쏟으며 쓰러진다. 이후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받고 사망 판정을 받지만, 기적적으로 회생해 한국으로 살아 돌아오게 된다.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를 이겨내고 혼자 살아 돌아온 현상현 신부의 앞에는 그를 메시아로 칭하며 치유받기를 원하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기도를 요청하고 있다. 아버지와도 같은 신부님에게 '치유되었다는 분들도 있습니다만..'이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면 구원자가 되고자 했던 자신이 약간이라도 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출처: 유튜브 영화
그렇게 일상을 보내던 와중 부산에서 친구로 지냈던 강우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어머니인 라 여사에게 듣게 되고, 그를 위해 기도를 하게 되면서 영화 속 또 다른 주인공인 태주와 처음으로 대면하게 된다. 어렸을 때 강우의 집에 놀러 가기도 했던 상현은 '집에 놀러 가면 여동생이 부끄럽다고 숨고 그랬었는데..'라고 회상한다. 이 말을 들은 태주의 표정이 일그러지는데, 이는 태주라는 인물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첫 장면임과 동시에 이후 어떤 장면에서 태주의 대사에 영향을 미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여하튼 이 때의 인연으로 현상현은 라 여사의 집에서 이루어지는 마작 모임에 초대받게 되고, 태주와는 두 번째로 대면하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해당 장면에서도 느껴지는 박찬욱 영화의 특징은 현실에서 흔하게 쓰이지 않을 것 같은 소품과 장소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올드보이의 사설 감옥 벽지가 그러했고 헤어질 결심 속 서래의 집 벽지가 그러했듯이, 이 영화 속 중심이 되는 장소인 한복집 건물 역시 여러 나라의 특징이 결합된 특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안에서 마작을 하고 있다는 설정도 특이하게 느껴진다. 모두에게 보이는 1층에는 한복집이 위치하고 있으나, 그 위 층에서 다양한 인물이 모여 도박인 마작을 즐기고 있다는 것은 반복적인 삶 속에 갇혀 있지만 누구보다 자유롭고자 하는 태주의 심리 상태를 비유하고 있는 것 같다. 개성 있는 소재들이 충돌하고 있는 이 공간은 편안한 집이 아니라 음침한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출처: 유튜브 영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속에는 팜므파탈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여성 등장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영화 속 태주는 그러한 면모를 극한까지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태주는 자신이 원치 않는 반복적인 삶 속에서 자기를 드러내지 못하고 죽어가는 인물이며 이를 약간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몽유병을 핑계로 밤마다 맨발로 거리를 뛰어다니는 인물이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억압받은 그녀는 집에서 완전히 도망치지는 못하고 동네 골목까지 뛰어갔다가 돌아올 수밖에 없다. 작중 묘사에 따르면 태주의 가족은 라 여사의 집 작은 방에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태주가 어렸을 때 그녀를 두고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아서 혼자 남겨진 태주를 라 여사가 거두어 딸처럼, 강아지처럼 키웠다고 한다. 이 대사를 딱 들으면 때 단순히 태주를 아끼고 귀여워하며 키웠다는 말인 듯싶지만, 이 집안 속에서 태주의 취급을 보았을 때 '개처럼 키웠다'라는 싸한 느낌이 들었다. 중반에 밤마다 달리러 나가는 태주를 막기 위해 라여사가 문에 자물쇠를 거는 것만 봐도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이는 것 같다. 라 여사는 태주를 강우의 간병인처럼 기능적으로 대하고 있는 인물이며, 다른 마작 멤버들 역시 외국인인 이블린을 제외하고는 도덕적으로 해이한 인물들로 묘사가 되고 있다. 태주는 원래 이 마작 멤버에 포함될 수가 없는, 즉 자신의 욕구를 펼칠 수가 없는 인물이지만 현상현이라는 인물이 등장함으로써 그녀를 묶고 있던 속박의 끈이 끊어지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한편 현상현 신부는 오감이 극도로 예민해지고 피를 갈구하게 되면서 자신이 뱀파이어의 피를 수혈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을 희생해 남을 구하고자 했던 현 신부는 의도치 않게 타인의 피로 연명할 수밖에 없는 흡혈귀가 되어 육체적 쾌락에까지 이끌리게 된다. 자해를 하면서까지 자신의 욕망을 잠재우려고 했던 상현은 결국 자기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태주에게 끌리게 된다.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태주 역시 상현에게 호감을 느끼고 상현을 통해 한복집의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상현이 맨발로 뛰고 있는 태주를 번쩍 들어 자신의 신발을 신겨주는 것은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설렘을 이끌어내는 박찬욱 감독만의 독특한 멜로 연출이라고 볼 수 있겠다.
출처: 유튜브 영화
결국 두 사람은 육체관계를 가지게 되고, 태주를 사랑하게 된 현 신부는 자신의 몸 상태를 태주에게 고백한다. 남의 피를 마시는 현 신부의 모습을 본 태주는 경악하며 자신의 집으로 도망친다. 현 신부는 태주를 쫓아가 자신은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며 자신이 마신 피의 주인은 원래 다른 사람들 먹이는 것을 좋아했던 분이라 이해해주실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뱀파이어가 되어 타인의 피를 마시게 된 1차 전락, 신부로서 금기인 육체관계를 가지게 된 2차 전락을 겪은 상현은 끝없는 자기 합리화를 통해 신부로서의 자신과 흡혈귀로서의 욕망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고자 한다. 처음에 두려움을 느꼈던 태주는 뱀파이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 자신의 지루한 일상과 정 반대에 있다고 느끼며, 밤의 골목을 뛰어다니는 행위를 중단함과 동시에 밤의 존재인 뱀파이어를 자신의 삶 속에 집어넣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상현은 사랑하는 태주를 안고 마치 놀이기구를 태워주는 것처럼 높은 건물 위에서 쉽게 뛰어내리지만 건물을 다시 올라갈 때는 태주를 안고 계단을 오른다. 이 장면을 건물을 뛰어내리는 태주의 표정과 연결 지어 생각해봤을 때 뛰어내리는 것, 즉 전락하는 것은 정말 즐겁고 쉬운 일이지만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비유하고 있는 것 같다.
출처: 유튜브 영화
헤어질 결심 속 해준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속아 자신의 직업윤리와 가치관 버리게 된 상현은 결국 물에 가라앉은 집 속 옷장에 강우를 가둬 살해하게 된다. 그래도 자신은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며 자기 합리화를 했던 상현은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살해하는 3차 전락에까지 이르게 되며, 인간도 짐승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게 된다. 아버지처럼 생각했던 신부까지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힌 모습을 목격한 상현은 더 이상 신부로서 존재하기를 포기하게 되고, 더욱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내 얼굴은 비록 냉담하고 둔감할 것이나 내 심장은 항상 당신을, 오직 당신만을 위해 뛰겠나이다.
모두를 구원하고자 했던 상현은 결국 끝없는 전락의 과정 속에서 태주 한 사람만을 구하기를 소망하게 된다. 태주의 손을 잡고 기도하듯이 말하는 위 대사를 영화 초반부의 기도문과 비교해봤을 때 상현의 정체성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강우를 제거하면 거칠 것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은 살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 정상적으로 생활하지 못하게 된다. 태주 자신이 그리했던 것처럼 강우의 환영이 자신의 입에 쪽가위를 집어넣는 상태를 경험하기도 하고 몸이 물속에 잠기는 체험을 하기도 하며 육체관계 중 두 사람 사이에 강우가 끼어있다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하는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멀어져 다른 마작 멤버와 잠자리를 가지기도 하는 등 강우를 죽이기 전보다도 못한 생활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 영화의 내용을 사랑의 과정으로만 생각했을 때, 상대를 사랑함에 있어서 여러 긴장과 제약이 많았던 연애 시작의 설렘을 잃어버린 두 사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출처: 유튜브 영화
태주의 욕망에 의해 자신이 이용당했음을 알게 된 상현은 태주를 다그치지만, 태주는 오히려 '내가 아니었어도 당신은 강우를 죽였을 것'이라며 상현의 합리화를 비웃고 그를 병균이라고까지 표현한다. 강우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태주의 말에 이성을 잃은 상현은 결국 그녀까지 살해함으로써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4차 전락에 이르게 된다. 이 장면의 구도와 음악이 모두 압도적이라 가장 좋아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직접 죽여 놓고도 슬퍼하기 이전에 흡혈 본능에 이끌려 그녀의 피를 마시는 상현의 모습은 소름 끼치기 가지 한다.
출처: 유튜브 영화정신없이 피를 마시던 상현은 라 여사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에 놀라 그제야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파악하게 된다. 영화 최후 반부까지 태주와 상현이 라 여사만은 죽이지 않는다는 점과 두 사람의 모든 죄를 지켜보거나 폭로하는 사람이 라 여사라는 점을 생각해봤을 때, 라 여사는 태주와 상현의 최후의 양심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상현은 태주를 소생시키기 위해 자신의 피를 먹이고, 뱀파이어로 다시 태어난 태주에게 '해피 버스데이 태주 씨'라고 말한다. 이 대사 역시 그녀를 우발적으로 살해해 놓고, 마치 그녀에게 뱀파이어로서의 새 삶을 선물하려고 의도했던 것처럼 합리화를 하는 것 같다.
출처: 유튜브 영화
뱀파이어가 된 태주는 상현과 다르게 적극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며 흡혈을 하고 다닌다. 자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며 자신이 도와주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더 편하게 죽는 것 같다고 또다시 합리화하는 상현에게 태주는 '인간도 아니면서 인간처럼 생각하지 마라', '여우가 닭 잡아먹는 게 죄냐?'라는 대사를 통해 상현의 이중성을 꼬집는다. 폭주하는 태주의 모습을 보며 상현은 자신의 선택이 전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더 이상 태주를 막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태주는 '당신을 살린 걸 후회하지 않게 해 줘'라는 상현에게 '당신은 나를 죽여도 후회, 살려도 후회야'라며 일갈한다.
출처: 유튜브 영화
태주는 라 여사의 폭로로 인해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마작 멤버들을 죽이고, 상현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이를 돕는다. 마작을 하지 않았던 이블린만이 상현의 도움으로 살아남게 되는데, 이 영화 속에서 마작이 인간의 욕망이나 악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면 작중 유일하게 도덕적 해이를 보이지 않는 인물인 이블린만이 살아남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박찬욱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서 선한 인물들이 이유 없이 죽지 않는다는 점을 보면 감독의 뚜렷한 가치관이 보이는 장면이기도 한 것 같다. 실제로 박찬욱 감독은 죽을 필요 없는 인물이 죽는 것에서 나오는 감정 소모를 자신도 잘 견디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출처: 유튜브 영화
악의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다짐한 상현은 자신을 메시아로 생각하고 있는 신도들의 캠프에 찾아가 부정을 저지르는 모습을 일부러 들킴으로써 그들을 헛된 희망으로부터 구원한다. 이후 상현은 새벽이 되기 직전 시간에 태주와 라 여사를 데리고 허허벌판 끝의 절벽에 도달한다. 처음에는 죽기를 거부하고 그늘 속에 숨던 태주였으나, 상현의 진심을 깨닫고 그와 함께 죽는 것을 선택한다. 이 장면에서 태주가 상현이 신겨줬던 구두를 신는 것은 죽는 순간에 자신이 살면서 느낀 가장 행복한 감정을 되새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서야 관객들은 태주도 상현을 사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구원자가 되고자 했던 상현은 전락의 끝에 도달해서야 자기 자신을 희생해 타인을 구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합리화가 아닌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상현은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태주, 앞으로 희생될지 모를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게 되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라 여사가 웃으며 영화는 끝나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그동안 즐거웠어요, 신부님
출처: 유튜브 영화
극단적인 이야기 속에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박찬욱 감독의 능력이 이 영화에서도 통했던 것 같다. 자의와 타의로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면서 살아왔던 두 사람이 만나 그 극한까지 달려간 뒤 허무하게 재가 되는 것은 굳이 뱀파이어나 재와 같은 소재가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한 번은 상상하는 일이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보이는데, 대표적으로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인내할 수 있을 것인가?'를 꼽을 수 있겠다. 또한 전락의 끝에 가서야 구원의 길을 깨닫게 되는 결말 역시 흥미롭다. 결국 현상현은 인간의 상식이나 양심이 적용되지 않는 '사람 먹는 짐승'이 되었음에도 스스로 인간으로서 죽기를 선택해 숭고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겠다.
영화를 다시 보며 느꼈던 것은 박찬욱 감독 영화 속에서는 역시 여성 캐릭터들이 빛나 보인다는 것이다. 박쥐의 태주와 헤어질 결심의 서래를 비교해 보면 파란색 원피스를 입은 팜므파탈처럼 보이는 공통점이 있으나, 감독 자신의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테주보다는 훨씬 더 감성적이 된 서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영화가 던지는 주제의식을 무시하고서 보더라도 다른 영화들에서 볼 수 없는 훌륭한 장면들에 압도되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물론 장면마다의 의미를 곱씹으며 보면 두 배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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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추어 | 프로답지 않다는 개성 혹은 실망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CIA에서 데이터 분석관 겸 해커로 근무하는 '찰리'(라미 말레). 어느 날, 그에게 정보원 '인퀴린'(카이트리오나 발페)가 보낸 첩보 하나가 도착한다. CIA의 '무어'(홀트 맬컬러니) 본부장이 잘못된 작전의 경우 투입된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인명피해도 축소하는 식으로 작전 보고서를 조작해 오고 있었다는 것. 이에 더해 일부 테러리스트들과 손잡고 있었다는 의심까지도. 찰리는 이 첩보를 상부에 보고할지 말 지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다음 날 찰리는 마음을 굳힌다. 런던 출장 중이던 아내 '사라'(레이첼 브로스나한)가 4명의 테러범에 의해 살해당한 가운데, 정작 CIA는 테러리스트를 추적하거나 사살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 이에 찰리는 기밀 정보를 무기 삼아 무어 본부장을 협박하고, 아내의 복수를 직접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설령 컴퓨터나 두들기고 사람 한 번 죽여 본 적 없는 ‘아마추어’라고 무시당하더라도.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
아마추어와 프로를 나누는 가장 결정적인 기준. 돈이다. 프로는 돈을 받고 일한다. 아마추어는 업이 아니라 좋아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아마추어(amateur)'라는 단어의 어원만 봐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어휘 'amator'다. 그 연장선상에서 아마추어는 실력을 평가하는 어휘로도 활용된다. 프로 축구 선수에게 아마추어 선수보다 능력이 없다는 혹평은 돈값을 하지 못한다는 모욕이다.
그런데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는 어떤 일을 하는 태도에 따라 갈리기도 한다. 프로 같다는 표현은 기계처럼 일하는 사람에게 붙는 경우가 많다. 냉철하게, 능률적으로 과업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 반면에 일하는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자주 동요하는 사람에게는 아마추어 같다는 표현이 활용된다. 돈이라는 대가와 목적보다 사랑과 열정이라는 동기에 충실한 사람이 아마추어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아마추어와 프로를 가르는 세 번째 기준은 흥미롭게도 첩보 영화에서 클리셰로 자주 활용된다. 처음 임무에 나서거나, 임무를 받는 요원에게는 꼭 사람이나 동물 등 생명을 죽이는 과제가 주어진다. 살인이라는 행위가 유발하는 혼란, 두려움, 망설임 같은 온갖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지, 즉 프로인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절차인 셈이다. 이는 <제이슨 본> 시리즈에서도, <킹스맨> 시리즈에서도 스파이가 되는 마지막 단계였다.
<아마추어>도 마찬가지다. 보다 정확하게는 그 어떤 첩보 영화보다도 아마추어 첩보원과 프로 스파이를 가르는 심리적 경계선에 주목한다. CIA 사무직인 찰리가 아내를 죽인 테러범에게 복수할 때 직접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지, 그의 심경 변화를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달리 말해 그가 아마추어로 남을지, 프로가 될지를 지켜보는 재미가 <아마추어>를 차별화한다. 아마추어스러운 완성도가 그 묘미를 묻어 버리는 게 문제일 뿐이다.
복수에 성공한 아마추어 첩보원
<아마추어>는 본격적인 찰리의 복수극을 시작하기에 앞서 프로 스파이와 아마추어 첩보원의 차이를 명확히 짚는다. 무어 본부장을 협박해서 현장 요원 훈련을 받게 된 찰리. 그의 훈련이 끝날 때쯤 '헨더슨'(로렌스 피시번) 대령은 그에게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을 알려준다. 밤중에 찰리를 깨운 그는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라고 윽박지르고, 끝내 방아쇠를 못 당긴 찰리에게 결코 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일갈한다.
프로 첩보원은 사람을 죽여야 하는 순간에 아무 고뇌 없이, 기계처럼, 그저 훈련받은 대로 방아쇠를 당길 수 있어야 임무도 완수하고, 생존할 수 있으니까. 그의 평가는 틀리지 않았다. 현장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는 여전히 아마추어다. 테러범 4인 중 처음으로 찾아낸 여성 테러리스트가 무방비로 등 뒤를 내주었는데도 찰리는 그녀에게 총을 쏘지 못한다.
하지만 찰리는 아마추어라는 한계를 깨지 못하면서도 목적을 착실히 달성한다. 상대방에게 직접 총알을 박아 넣지는 못하더라도 아마추어스럽게 아내의 복수를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꽃가루 알레르기를 이용해서 질식시키거나, 옥상 수영장을 붕괴시켜서 사고사로 가장하는 식이다. 테러범들을 하나씩 찾아 죽이면서 찰리는 아내를 직접 죽인 네 번째 테러범의 은신처에 대한 정보도 직접 찾아내는 데 성공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찰리의 복수는 아마추어스럽다. 그는 마지막 테러범을 직접 죽이지 않는다. 경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한 불가피한 살인이었다고 프로답게 자신을 변호하는 그를 해커다운 방식으로 인터폴과 경찰에게 넘겨 버린다. 이처럼 아마추어의 경계선을 넘지 않는 찰리의 복수극은 특히 순정적으로 느껴진다. 아마추어 첩보원이기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아내의 복수를 하겠다는 진심이 유달리 강조되기 때문이다.
찰리의 내면을 열어볼 두 열쇠
<아마추어>는 찰리의 진심과 순정에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문을 두 가지 열쇠로써 열어준다. 우선 찰리의 내적 서사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와 환경을 조성한다. 일례로 초반부는 부부 관계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지 않은 찰리를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런던 출장 겸 여행을 같이 가자는 사라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일하느라 바쁘다면서 마지막 통화도 그냥 끊어버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찰리의 소극성은 그의 죄책감을 극대화한다. 사라의 갑작스러운 사망 소식은 아내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말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회한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강조하기 때문. 이는 아마추어 첩보원으로서 찰리의 정체성을 부각한다. 테러범 체포, 사살에 적극적이지 않은 조직에 환멸을 느낀 그의 첩보 활동은 누구보다도 아마추어적이다. 복수심도 열정의 일종이라면, 아내를 향한 사랑에서 비롯된 열정만이 그의 원동력이 되어주니까.
또 다른 열쇠는 찰리의 주변 인물이다. 이스탄불에서 찰리에게 기밀 첩보를 제공하던 정보원 인퀴린 그가 아마추어라서 돕기로 결심한다. 그녀 역시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프로 스파이였던 남편과 사별한 후에 그를 잊지 못한 나머지 그의 코드네임을 이어받아서 첩보원으로서 활동한 그녀는 찰리에게서 자신을 본다. 돈이나 업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첩보원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으니까.
반대로 중요한 역할처럼 보이던 현장요원 '곰'(존 번설)은 끝내 맥거핀으로 활용된다. 일반적인 첩보물이라면 성공적인 작전 수행 후에 그가 찰리를 어떻게 비밀리에 지원했는지를 플래시백으로 보여줬을지도 모른다. 찰리가 그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으니 자연스러운 전개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추어>는 그 길을 가지 않는다. 찰리의 아마추어스러운 복수극에 끼어들기에는 그는 너무나도 프로페셔널한 스파이이기 때문이다.
구시대적 배경에 의존하다
문제는 이처럼 '아마추어'의 미덕에 충실한 첩보물을 너무나도 아마추어스럽게 구성했다는 것. 주인공이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로 남은 이유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와는 별개로 영화의 완성도는 프로다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세 가지 부재가 문제다. 바로 신선함, 역경, 짜임새의 부재다. 우선 <아마추어>는 구시대적인 소재를 답습한 나머지 찰리의 서사를 더 깊이 느끼거나 들여다볼 유인을 제공하지 못한다.
정보기관이 일반 시민 개개인을 모두 감시하고 있고, 그 정보를 독점한 뒤 국익을 위한다는 미명 하에 위법적인 작전과 활동을 벌이면서 시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소재는 이미 여러 첩보 영화가 활용한 바 있다. 또 엇나가는 첩보 요원을 잡기 위해서 서로 다른 첩보 기관이 제각기 그를 쫓아 나서는 것. 그 안에서 벌어지는 권력 투쟁과 암투. 이 부분 역시 뭐 새로운 것은 없다.
특히 <제이슨 본> 시리즈의 흥행과 스노든의 NSA 기밀자료 폭로사건 이후로는 위와 같은 소재를 반영하지 않은 첩보물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애초에 로버트 리텔의 소설 <아마추어>가 원작인데, 원작부터가 1981년작이라는 점이 반영된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더 이상 새롭거나 신선한 소재나 주제, 호기심이 아니라는 것. 극 중 활용되는 최첨단 감시 및 경비 장비들 덕분에 식상함이 더 두드러지기도 한다.
고난이 없는 아마추어
역경의 부재도 문제다. <아마추어>는 액션이 아닌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조성하려고 애쓴다. 천재적인 기술자라는 찰리의 두뇌 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상술했듯이 다양한 작전으로 테러범들에게 복수를 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찰리가 어떤 작전을 활용할지 지켜보는 재미만으로는 120분을 끌어가지 못한다. 그가 작전을 너무 잘 짜고 복수를 너무 잘해버리는 나머지 긴장감이 없기 때문이다.
찰리는 두 적과 싸워야 한다. 그가 죽이려는 테러범은 물론 그를 쫓는 CIA와도 맞서야 한다. 그런데 처음으로 현장에서 작전을 직접 입안하고 실행하는 찰리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테러리스트와 CIA 요원들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움직인다. 자연히 영화가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전개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찰리의 기발한 아이디어보다는 영화의 허술함, 편의적인 전개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셈이다.
이는 '아마추어'라는 제목에 담긴 함의가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아마추어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데, 극 중 찰리는 총을 잘 못 쏜다는 것만 빼면 너무 프로페셔널하게 할 일을 잘 해낸다. 그러다 보니 아마추어라는 어휘에 내포된 사랑과 열정이라는 의미를 먼저 떠올리지 않는 이상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아마추어'인지는 물음표로 남을 수밖에 없다.
라미 말렉만 돋보인다
더 나아가 전체적인 구성과 서순도 적절하지는 않은 듯하다. 영화는 부패한 CIA를 먼저 제시하면서 찰리 대 CIA, 개인 대 조직의 대립을 보여주려고 한다. 하지만 찰리가 너무 일방적으로 조직을 농락하다 보니 조직에게 배신당하고 쫓기는 압박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테러범과 CIA의 접점을 마지막까지 숨기면서 알 수 없는 적과 싸우는 서스펜스를 강화했다면 첩보 영화의 장르적 쾌감이 극대화되지 않았을까 싶다.
빌런 활용법도 아쉽다. 빌런과 찰리의 대립각이 날카로울수록 그의 복수가 남기는 쾌감은 더 커질 수 있다. 그런데 마지막 빌런을 제외하면 게임 미션처럼 한 번 밟고 넘어가야 할 대상처럼 몰개성 하게 묘사되다 보니 복수의 끝은 다소 싱거운 감이 있다. 초반부에 찰리가 느낀 고통과 자책감에 비하면 빌런을 제거했을 때의 시원함이 부족한 것. 결과적으로 영화가 잘 짜여있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결국 <아마추어>는 평범한 할리우드 첩보물 클리셰를 벗어나지 못한다. 일정 수준의 재미는 갖췄지만, 그 이상의 특별함을 뽐내지는 못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을 활용한 스토리텔링도 온전히 꽃을 피우지는 못한 채로 흐지부지 끝난다. 구시대적인 주제의식은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볼거리와 상충한다. 그저 아내를 잃은 남편이자 살인의 무게감을 견뎌내는 요원으로 변신한 라미 말렉의 연기력이 인상적일 따름이다.
Poor 형편없음
아무리 그래도 완성도는 프로페셔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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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를 이어준 글자들의 이야기
독일의 영화감독이자 저명한 각본가 볼프강 콜하세의 실화 기반 단편을 원작으로 하는 <페르시아어 수업>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책 한 권으로 페르시아인 인척 거짓말을 시작한 ‘질'이 페르시아어를 배우려던 독일군 장교 ‘코흐'에게 가짜 페르시아어를 가르치며 일어나는 일을 담은 영화이다.
우연히 얻게 된 책의 주인 ‘레자 준'이라는 이름으로 페르시아인 행세를 하게 된 ‘질'은 목표가 그곳에서 살아남기인지 도망치기인지도 모를 정도로 하루하루 절박하고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런 주인공을 중심으로 문자(또는 언어)를 통해 만들어지는 관계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 보겠다.
(레자와 질은 동일 인물이지만 그 경우가 표면적인 경우 레자, 심층적일 경우 질로 표기)
첫 번째, 언어를 가르치는 레자와 코흐의 관계(표면적)
이 관계는 가장 표면적이며 모든 관계의 계기가 되는 경우이다. 코흐는 레자에게 매일매일 페르시아어를 조금씩 알려달라고 하고 레자는 그로 인해 매일 주방 일을 마치고 코흐의 업무실로 찾아간다.
두 번째, 둘만의 언어를 갖게된 레자(질)과 코흐의 관계(심층적)
이 경우 위와 같은 것 같지만 조금 더 심층적인 형태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코흐의 입장에서는 언어를 가르쳐주는 이가 동일한 페르시아인 ‘레자'처럼 보이지만 ‘레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질'과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위에서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데에만 국한되었다면, 이 경우인 질과 코흐의 관계는 둘만의 주고받는 언어가 생겼을 때 생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도망가는 유대인들 틈에서 코흐가 레자에게 배운 언어로 외칠 때,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 아니라 레자와 코흐 둘만 존재하는 공간이 된다. 둘만의 언어를 갖는다는 것은 단순히 보편적인(안면있는) 관계 이상으로 특수한 관계를 구축했다는 의미다. 질이 만든 언어가 문화를 가지고 사고(思考)하는 방식까지 구현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둘만의 언어로 소통할 때 서로로 인해 변화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질은 상황으로 인해 코흐와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언어를 만들어낸다. 코흐 또한 초반에 무뚝뚝하고 자비가 없으며 정석을 고집하는 성격으로 보여진다.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에게는 잘대해주는 것이 코흐의 자신만의 룰이었을수도 있고, 유대인이 아닌 페르시아인이기에 룰을 어기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많이 사람들의 의심이 들리는 순간에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레자에게 가는 것은 이전의 모습과 조금 다르게 보여진다.
다시 말해, 코흐와 레자는 하나의 관계를 맺는 듯하지만 실은 언어를 가르치는 레자와 질이라는 사람과 관계를 생성했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 수감자들과 질의 관계
수감자들의 이름을 알 수 있게 된 질은 수감자들의 이름에 빗대어 가짜 페르시아어를 만들어낸다. 수감자과 질의 관계에서 이름들을 소통의 도구로 이용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직접 이름을 부르고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되며 하나의 관계로 볼 수 있다. 주방과 명단 정리 일을 맡게 된 레자는 배식을 할 때 마주하는 수감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본인을 위해 읊지만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셈이 된다. 그리고 질은 그들 한 명 한 명의 이름 덕분에 끝까지 페르시아인 행세를 할 수 있었고 그들은 질이 이름을 외운 덕분에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 된다. 3천 개의 이름은 3천 개의 거짓말이 되고 단어가 되어 역할을 다한 뒤 다시 3천 개의 이름으로 돌아간다.
질이 수용소 생활을 버티기에 조력자처럼 보일 수 있는 가해자인 코흐에게 자세한 서사를 부여하지 않은 것은 동의하나 페르시아어를 배우기 위한 이유로 동생이 나오지만 그 관계가 설득력을 가지기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딱히 추측이 필요한 부분도 아니었고 알려준다고 크게 달라질 부분도 없었겠다는 의견이다. 두려움으로 둘러싸인 긴장감 속에 피어나는 유머와 관객이 보고싶어하는 걸 잘 알고 보여주는 감독에게 실화 기반의 묵직하게 잘 짜여진 스토리텔링은 이 전설 같은 이야기를 영화로써 전달하기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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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종, 기대보다 실망스러운 공포영화
랑종이 개봉했습니다.
나홍진 감독이 원안을 쓰고 제작에 참여한 영화라서 기대가 많았던 영화였는데요.
전작인 곡성과 주제가 통하는 측면도 있어 뭔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어요.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무당을 전면에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러닝타임이 꽤 긴데 초중반에 꽤 많은 공을 들이고 있어요.
그런데 후반부 공포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연달아 등장하면서 공포가 반감되는 단점이 보입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믿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부분도 많이 옅어져 버렸어요.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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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트 블란쳇] <캐롤> 메인 예고편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은 나의 첫사랑, 마지막 사랑 올겨울을 아름다운 사랑으로 물들일 [#캐롤] 메인 예고편 대공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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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플래시> 파이널 예고편
준비 됐지? 6월 14일 #플래시 와 함께 전력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