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2024-06-13 08:50:25
오묘하게 맛난 영화
영화 <프렌치 수프> 리뷰
* 대략적인 줄거리 포함.
영화 <프렌치 수프>는 만화 원작을 바탕으로 미식의 세계를 그린 영화다. 연출은 베트남계 프랑스 영화감독 트란 안 홍이 맡았다. 트란 안 홍은 장편 데뷔작 <그린 파파야 향기>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씨클로>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영화 <프렌치 수프>로 감독상을 받아 칸영화제에서 다시 한번 선택을 받았다.
영화는 사계절의 자연 속에서 음식을 만드는 <리틀 포레스트>처럼 음식이 만들어지는 주변 환경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채소가 가득한 정원, 요리에 쓰일 재료를 솜씨 좋게 채취하는 장면, 보랏빛으로 무성한 들꽃과 녹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숲, 넘실대는 물살에 햇빛을 반사하며 흐르는 강물......
줄리엣 비노쉬(외제니 역)와 브누아 마지멜(도댕 역)은 각각 당대 최고의 요리사와 미식 연구가로 출연한다. “맛있고 좋은 요리를 발견하는 일은 새로운 별을 발견하는 일보다 인류에게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음식을 향한 도댕의 자부심. 급이 다른 창의적인 음식을 만들기 위해 재료 준비부터 요리 과정까지 모든 절차를 섬세히 다루며 두 인물의 심리와 미묘한 관계를 영화는 세심하게 담아낸다.
20년간 최고의 요리를 함께 탄생시킨 외제니와 도댕. 그들은 함께 요리를 만들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키워나갔다. 인생의 가을에 다다른 두 사람. 도댕은 기어이 외제니에게 청혼을 한다. “결혼은 코스 요리 중 디저트를 먼저 먹는 거와 같다.”라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자유를 누리며 온전히 두 사람의 사랑이 깃든 요리를 만드는 과정을 즐기기 위해 외제니는 요리사가 아닌 아내가 되기를 거절한다.
그녀가 쓰러져 눕게 되자, 도댕은 오직 그녀만을 위한 요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도댕은 모든 정성으로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외제니에게 맛보게 하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고민하여 만든 최상의 음식은 지극한 사랑의 풀코스 선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하는 행위는 달콤한 사랑의 언어보다 더 강렬한 시적 표현이었다.
실제 부부였고 칸 영화제에서 각각 남녀 주연상을 받은 두 사람의 연기 호흡과 존재감은 화면에 빨려 들어가게 했다. 다만, 대화 중에 나오는 19세기 후반의 갖가지 프랑스 요리나 다양한 와인 브랜드만으로 맛이나 향취를 상상하기 어려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책이나 원작인 만화로 보았으면 구글을 검색했으리라.
극장을 나서면서 영화의 원제가 ‘The Taste of Things’라는 게 가슴에 와닿았다. 사물, 혹은 인생의 맛이 달콤(sweet)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쓰라린(bitter) 고통을 주기도 하지 않는가. 두 남녀 주인공의 운명이 그랬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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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스한 봄이 담긴 영화 모음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이번 봄은 102년 만에 가장 일찍 벚꽃이 필 정도로 유난히 따뜻한 봄 날씨가 이어졌습니다.
너무나 빨리 지나간 봄, 벌써 찾아온 여름 날씨, 아쉬운 마음에 씨네랩에서
봄 풍경이 담긴 따스한 영화를 모아서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따스한 봄이 담긴 영화로 빠르게 지나간 봄에 대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 보면 어떨까요?
그럼, 봄이 담긴 영화들을 지금 바로 만나보실까요?
빅 피쉬 (2004)
Big Fish
ⓒ 네이버 영화
감독: 팀 버튼
출연: 이완 맥그리거, 알버트 피니, 빌리 크루덥, 제시카 랭 등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25분
팀 버튼 감독의 환상 동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고향을 찾은 윌.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다 큰 아들에게 허풍 가득한 무용담을 늘어놓는 아버지.
그의 레퍼토리는 언제나 기상천외한 모험과 단 하나의 로맨스로 이어진다.
이제, 믿기 힘든 이야기 속에 가려진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는데…
ⓒ 네이버 영화
인생의 사랑을 만나게 되면 시간이 멈춘다는 말은 진실이야.
그러다 다시 흘러가기 시작하면 못 잡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지.
ⓒ 네이버 영화
물고기나 반지 같은 걸로 꾸며진 얘기와 그냥 진실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라도 더 환상적인 쪽을 택했을 거야.
내 생각은 그래.
4월 이야기 (2000)
April Story
ⓒ 네이버 영화
감독: 이와이 슌지
출연: 마츠 다카코, 다나베 세이치 등
장르: 로맨스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67분
4월에 생각나는 화이트 이와이 작품
도쿄 근교에 위치한 대학에 진학을 결심한 우즈키는 훗카이도에 있는 가족과 작별인사를 마친 뒤 도쿄로 향하는 기차에 오른다.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무사시노라는 한적한 동네에 거처를 정한 후 그녀는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대학생활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많고 작은 모험과 경험들을 하게 하고 동시에 시련을 겪게 한다. 비현실적인 낚시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고, 이웃집 여자와 이상한 만남을 갖는 등 생소한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우즈키는 동네에 있는 서점에 자주 들리게 되는데.. 마침내 동네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이 그녀가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된 결정적인 이유라는 것이 점차 밝혀진다.
ⓒ 네이버 영화
성적이 안 좋은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기적'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어차피 '기적'이라고 부를 거라면, 난 그걸 '사랑의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다.
ⓒ 네이버 영화
아름다운 벚꽃보다 당신이 더 빛난다.
계춘할망 (2016)
Canola
ⓒ 네이버 영화
감독: 창감독
출연: 윤여정, 김고은 등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16분
나의 할머니, 나의 어머니, 나의 소중한 사람
12년 만에 잃어버린 손녀를 기적적으로 찾은 해녀 계춘. 손녀 혜지와 예전처럼 단둘이 제주도 집에서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적응해간다. 그러나, 아침부터 밤까지 오로지 손녀 생각만 가득한 계춘과 달리 도통 그 속을 알 수 없는 다 커버린 손녀 혜지. 어딘가 수상한 혜지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의심이 커져가는 가운데 혜지는 서울로 미술경연대회를 갔다가 사라진다.
ⓒ 네이버 영화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 편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내가 네 편 해줄 테니 너는 네 원대로 살라.
ⓒ 네이버 영화
하늘이 넓어요, 바다가 넓어요?
하늘이 더 넓지
에이 바다가 더 넓죠. 바다가 하늘을 품고 있잖아요.
하나와 앨리스 (2004)
Hana & Alice
ⓒ 네이버 영화
감독: 이와이 슌지
출연: 아오이 유우, 스즈키 안, 카쿠 토모히로 등
장르: 로맨스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35분
예기치 못한 삼각관계
하나는 어릴 때부터 단짝 친구인 앨리스가 점찍은 남자애를 보여준다며 끌고 간 곳에서 마음을 콩닥 뛰게 만드는 꽃미남 소년 미야모토를 발견한다. 몰래 뒷조사를 통해 확인한 바로 미야모토는 한 학년 선배이자 만담동호회 회원. 하나는 만담동호회에 가입해서 미야모토의 관심을 얻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본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는 마침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게 된다. (이런!) 머리 다친 선배에게 기억 상실이라 뻥친 것도 모자라 '나한테 사랑 고백했잖아!'라고 외치는 귀여운 스토커 하나. 그리고 친구의 애정사기극(?)에 거침없이 동참한 앨리스. 그러나 그들의 우정은 미야모토로 인해 예기치 않은 삼각관계로 발전하는데...
ⓒ 네이버 영화
서랍 속 가장 안쪽에 넣어 둬.
언젠가 우연히 발견하면 그땐 나를 생각해.
ⓒ 네이버 영화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지 않아?
지금이 행복하다면.
오즈의 마법사 (2012)
The Wizard of Oz
ⓒ 네이버 영화
감독: 빅터 플레밍
출연: 주디 갈랜드, 프랭크 모건, 레이 볼거 등
장르: 가족
등급: 전체 관람가
러닝타임: 112분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환상적인 연출
회오리 바람에 휩쓸려 오즈의 나라로 내던져진 도로시는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위대한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는 것임을 알고 그를 찾아 긴 여정이 시작된다. 도로시는 애견 토토와 함께 노란 길을 따라 오즈의 마법사가 사는 에메랄드 시티로 향한다. 도중에 만난 세 명의 친구들, 지능을 얻고자 하는 허수아비와 심장을 원하는 양철 나뭇꾼, 용기를 가지고 싶어하는 겁장이 사자와 함께 오즈의 마법사에게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부탁하기 위해 도로시와 함께 경쾌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나 도로시 일행을 방해하기 위해 뒤쫓아오는 서쪽 나라 마녀의 검은 그림자.
ⓒ IMDB
집이 최고야.
ⓒ IMDB
뇌가 없는데 어떻게 말을 해요?
모르겠네. 하지만 사람들도 생각 없이 말을 많이 하지 않나?
플립 (2017)
Flipped
ⓒ 네이버 영화
감독: 로브 라이너
출연: 매들린 캐롤, 캘런 맥오리피 등
장르: 로맨스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90분
싱그럽고 설레는 첫사랑 로맨스
새로 이사 온 미소년 브라이스를 보고 첫눈에 사랑을 직감한 7살 소녀 줄리. 솔직하고 용감한 줄리는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지만 브라이스는 그런 줄리가 마냥 부담스럽다. 줄리의 러브빔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기를 6년! 브라이스는 줄리에게 받은 달걀을 쓰레기통에 버리다 들키고, 화가 난 줄리는 그날부터 브라이스를 피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성가신 그녀가 사라지자 브라이스는 오히려 전 같지 않게 줄리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는데…
ⓒ 네이버 영화
정직은 처음엔 불편할지 몰라도
뒤따르는 많은 고통을 줄일 수 있단다.
ⓒ 네이버 영화
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동자를 잠시나마 독점할 수 있었다.
괜찮은 거래였다.
이렇게 총 6편의 봄이 담긴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이번 주말은 씨네랩이 추천드린 영화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HIZ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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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 싫어서 | 모험은 위험할수록 좋으니까
계나는 한국을 떠난다.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 더는 못 살 것 같아서.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의 졸업장, 안정적인 직장, 오래 사귄 금수저 남자친구, 그와의 결혼, 조금만 버티면 다가올지 모르는 약간 더 나은 미래. 이런 것들은 계나에게 행복이 되어주지 못한다. 계나는 불확실한 내일을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당장 행복하고 싶다. OECD국가 중 자살율 1위인 이곳에서 계속 살다간 ‘자살하거나 암 걸려 죽거나 둘 중 하나‘라는 비관적 결론에 이른 계나는 떠난다. 영하의 날씨에 어깨를 움츠리지 않아도 되는 따뜻한 나라로. 지구 반대편의 뉴질랜드로.
뉴질랜드로 떠난 계나의 삶은 순탄치 않다. 행인에게 영어 실력을 지적당하고, 인종차별을 일삼는 직장 동료도 있다. 한순간의 치기로 재판에 회부되기도 한다. 영화는 외부인으로서의 계나의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도망친 곳이 낙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계나는 여러 인물들의 죽음에 함께 있다. 이번이 마지막 겨울이기를 바랐던 고시생 친구 경윤의 죽음, 돈 대신 행복을 모으라던 희망 전도사의 죽음, 겉으로는 완전해 보였던 하준이 가족의 죽음까지. 계나는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디로 도망쳐도 나름의 추위와 슬픔은 존재한다는 것을.
계나의 행복은 소박하다. ‘춥고 배고프지만 않으면’ 행복한 계나에게 한국에서의 매일은 시리고 굶주리다. 겨울이 아닐 때에도 발걸음은 종종거리고 어깨는 한없이 움츠러든다. 모든 것에 계급이 존재하고, 자신의 위치에 집착하고, 타인의 인정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한국에서 계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자꾸만 매년 더 추워지는 겨울이다. 뉴질랜드가 계나의 낙원이 아닐지라도, 추울수록 가난이 드러나는 얇은 코트를 걸치고 한없이 초라해지지 않아도 되기에 계나는 그곳에서 자유롭다.
이 영화는 번잡하게 시점을 넘나들고, 감정이 넘치고, 결론이 모호한 불친절한 영화이다. 엔딩에서 계나가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영화를 관통하는 한 문장을 추출해 보자면 포기는 결코 뒷걸음질이 아니라는 말이 되겠다. ‘공기 좋고 햇빛 잘 드는 것’이 행복이라던 경윤은 마지막 기회를 포기하지 못해 시들었으나, 한 학기 남은 졸업을 포기하고 다른 꿈을 찾은 재인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뉴질랜드로 온 계나는 뉴질랜드에서의 학위 또한 내던진 채 또다른 따뜻한 나라로 떠난다.
사실 행복은 과대평가된 개념일지도 모른다. 거창해 보이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사소하고 주관적이며 모두가 원하는 것이 행복일 것이다. 지나온 길을 포기하지 못해 잔혹한 현실에 기대어 행복을 향유하지 못하는 청춘들에게 영화는 새로운 마음을 먹었다면 포기는 뒷걸음질이 아니라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된다고 말한다.
영화 속 재인의 삶이 ‘희망편‘이라고 한다면, 계나의 삶은 지독하게도 ’현실편‘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뉴질랜드에 정착해서 살게 된 재인과는 달리, 계나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시행착오 속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또다시 한국을 떠나는 계나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어떠한 다짐이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시는 춥지 않겠다고, 더 따뜻한 곳을 찾고야 말겠다고. 이 시험에 붙지 않더라도 어딘가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있겠지? 라고 묻던 경윤의 질문에 새로이 가방을 싼 계나는 이번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어때. 그걸 찾느라 좀 헤매면 어때. 그게 한국이 아니면 어때.
영화는 명확한 끝맺음을 주기보다는 그저 이야깃거리를 던진다. 자꾸만 한국을 떠나려는 계나에게 어디로 가나 힘든 것은 똑같다고,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사는 것이 옳다며 참견하고 싶어진다면 그것은 당신의 자유다. 계나가 한국을 떠나 행복할 자유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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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만 성장하는 성장영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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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잘 짓는 것은 정말 어렵다. 어찌 보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내용은 잊혀도 제목만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져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셀링 포인트가 될 것이다.
서두에 밝히자면, 이 영화는 제목만 좋았다.
<태어나길 잘했어>는 다한증이 있는 박춘희의 성장 이야기다. 박춘희를 위한, 박춘희에 의한, 박춘희만의 이야기. 박춘희의 주변인물과 배경과 사건들은 파편처럼 흩어져 저 멀리로 사라지고, 광활한 우주에 박춘희 혼자 남겨진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너무 많은 어려움들
춘희는 중학생 때 부모가 죽는 바람에 외삼촌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게 된다. 왜 죽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데, 아무튼 부모가 죽어 혼자 남겨진 춘희는 외삼촌 부부와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그 누구도 춘희를 환영하지 않고, 여분의 방이 있는데도 굳이 다락방을 내어준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지만 방금 부모상을 치른 아이에게 참으로 불친절한 외삼촌네 가족이다.
설상가상으로 춘희에게는 다한증까지 있다. 다한증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다. 하필이면 학교에서 폴카댄스를 춰야 하는 상황인데, 손을 잡고 춤을 출 파트너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선생조차 불쾌해 한다. 명상센터에서 '저는 쩔어 있어요, 땀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춘희. 땀은 인생의 모든 고난과 역경에 쩔어있는 춘희의 메타포이자 상징이다.
춘희는 어른이 된 이후 외삼촌네 식구들과 함께 살던 집에서 혼자 산다. 외삼촌네 식구들은 고등학생이 된 춘희만 내버려두고 새 아파트로 이사가버렸기 때문이다. 춘희는 혼자 살아도 조그만 다락방에서 지내고, 다한증을 수술할 돈을 모으기 위해 매일 마늘을 깐다. 끼니도 오직 컵라면뿐이다.
중학생 정도의 아이에게 조실부모도 엄청난 충격일 테니 이후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사실 조실부모와 눈칫밥 먹는 것, 이후 버려진 집에서 버려진 채로 살아가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왜 굳이 다한증까지 설정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혹은 다한증 하나로도 충분하다. 부모를 잃거나 잃지 않거나, 평범한 가정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다한증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풀어나갈 만한 이야기이다. 달리 말하면 주인공의 캐릭터가 그렇게까지 입체적이지 않다. 춘희는 그저 딱한 아이이다.
우리나라는 국가보장시스템이 있는 나라이고, 생활고로 힘들 때는 각 동 주민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 핍진한 이야기는 차치하자. 이 영화는 불쌍한 춘희 이야기이니까.
춘희와 NPC들
외삼촌네 딸, 춘희의 외사촌 유라는 춘희를 너무 싫어한다. 유라는 충분히 춘희를 싫어할 만하다. 그러지 않아도 예민한 사춘기에 갑자기 사촌이 우리집에서 살게 된다니. 더군다나 같은 학교이기까지. 영화에서 보여지는 유라는 성질머리가 보통이 아니다. 여자들은 원수의 자식에게도 생리대는 빌려준다는데, 생리대를 가져가는 춘희를 도둑년이라고 욕하는 개인적인 악행에서 나아가 수학여행에 술을 챙겨가고 담배를 피우는 불량학생이기까지. 춘희를 선량한 희생자로 만들기 위해 유라가 꼭 못되처먹은 아이가 되어야 했나?
유라의 오빠이자 춘희의 사촌오빠는 식당을 운영한다. 춘희는 그 식당에서 쓸 마늘을 까주고 3만 원씩 받는다. 그 오빠란 사람은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했다. "혁명에도 실패하고 사랑에도 실패"했다며 술 마시고 징징거린다. 도대체 왜 학생운동을 했는지 이유도 명분도 없고, 왜 하필 춘희에게 마늘까는 일을 주는지 모를 일이며(홀서빙직을 제안하기는 하지만), 왜 이혼위기에 처했는지 모를 일이다. 오빠를 설명하는 일련의 사실들은 그의 캐릭터를 형성하지 못한다. 혹시 춘희가 마늘을 까는 알바를 하기 위해 오빠가 있어야 했나?
춘희와 잠깐 사랑에 빠지는 주황이라는 캐릭터를 보자. 스토리상 남자주인공에 가깝다. 주황은 말을 더듬는데, 어릴 때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말을 더듬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까진 좋다.
그런데 주황의 역할은 춘희를 갑자기 사랑하고, 춘희가 돈이 없으니 돈 주겠다고 말하고, 춘희에게 차이는 것뿐이다. 춘희에게 잠깐의 행복을 맛보게 하기 위해 굳이 말을 더듬는 남자가 있어야 했나?
가장 골때리는 인물은 노숙자이다. 단순한 도식으로 보았을 때 집이 없다는 점에서 노숙자는 춘희보다 불쌍하다. 춘희는 집에 가는 길에 여자 노숙자를 발견하고, 노숙자가 맨발인 걸 보고 사촌오빠에게 받은 마사이족 신발을 준다.
이 노숙자는 총 세 번 등장한다. 춘희가 신발기부를 하기 위해 등장, 번개맞은 춘희를 살려주기 위해 등장, 춘희에게 마사이족 명언도 아닌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을 해주기 위해 등장. 춘희에게 자기보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경험을 하게 만들기 위해 노숙자가 나와야 했나? 굳이 마사이족 신발이었어야 했나?
그 외 외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기타 등등 모든 영화 속 인물들은 춘희의 성장을 돕기 위한 NPC에 불과하다. 심지어 춘희에게 꽤 중요한 인물이었던 외할머니의 죽음도 외숙모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진다. 그때 춘희가 문상을 갔는지, 울었는지, 절망에 빠졌는지, 무감정했는지 궁금하다. 외할머니는 유일한 춘희 편이었으니까.
갑자기 들이닥친 이방인에게 부모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유라의 불안, 혁명도, 사랑도, 이도저도 해내지 못한 사촌오빠의 좌절감, 비록 말을 더듬지만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기를 좋아해주는 것을 경험하고,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될 주황의 성장, 춘희가 선물해준 신발을 신고 새로운 삶을 향해 걸어나가게 될 노숙자의 변화는 춘희에게 하등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이 영화는 오직 춘희의 성장만을 위해 전개된다. 반대로 말하자면 춘희 외에는 그 누구도 성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계는 전혀 넓어지지 않고 오직 춘희의 자아만 부풀어오른다.
내면의 상처받은 아이 만나기
다시 말하지만 춘희는 '불쌍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 조실부모와 천대와 왕따 등등을 모조리 경험했다. 작은 다락방에 갇혀 살았던 춘희는 어른이 되어도 전혀 성장하지 못하고 다락방 같은 안전기지에 갇힌다.
그런 춘희가 우연히 책을 기부하려다 명상센터를 알게 되고 거기에서 주황을 만나 타인과 관계를 맺어보고, 사기도 당해보고, 자기보다 불쌍한 사람을 도움으로써 춘희는 조금씩 성장한다.
이야기 초반에 춘희는 번개를 맞고 쓰러진다. 우리는 번개를 맞은 춘희의 앞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날 것을 예상하게 되는데, 그 변화란 어린 춘희의 등장이다.
1.조실부모한 고아 / 2.다한증 / 3.눈칫밥 먹는 더부살이 / 4.매일 컵라면 먹기 / 5.평생 마늘까기 / 이 정도의 설정도 너무 많은데, 6.번개맞기 / 7.어린 춘희 만나기가 추가된다.
어린 춘희를 등장시키기 위해 번개를 때리는 게 뜬금없지만, 아무튼간 어린 춘희를 만난다는 것은 위로받지 못했던 내면의 어린아이와 마주하는 일이다. 차마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던 그 시절의 불쌍하고 어린 나를 어른인 내가 안아주는 것, 그렇게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앞으로 나가가는 것. 그러므로 너는 쓸모없는 아이가 아니라 태어나길 잘한 아이라는 것. 그것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이다.
결국 춘희는 그 집을 떠난다. 자발적으로 떠났으면 좋았으련만, 사촌오빠가 투룸 정도 얻을 수 있는 돈이라며 봉투를 내밀고, 사촌오빠에게 갑자기 왜 그랬냐고 화를 내며, 라면이 아닌 고기를 사먹고 나서 이사간다. 이사를 가도 여전히 마늘을 깐다.
어른 춘희가 몇 살이나 되었는지는 불명확하다. 다만 춘희는 이제 다락방이라는 안전기지와 상처받은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영화에서는 보여주지도, 다루지도 않더라도 외삼촌네 식구나 주황, 노숙자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곳에서 성장하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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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다 보려고 한다. 다른 작품들이 좋더라도 이 작품을 좋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의 영화들 중에서도 절망적인 영화들이 한두 편씩은 있으니까.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직면하고 과거와 화해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분명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똑바로 바라보는 건 너무 무섭고,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상처받을 것 같다. 상처받은 어린이는 마음 속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다 별안간 툭 튀어나온다. 우리에게 번개가 떨어질 일은 극히 드무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처투성이 불쌍한 어린이를 잘 위로하고 달래주어서 마음 속 감옥에서 풀어주는 수밖에.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춘희에게 떨어진 번개처럼, 커다란 위로가 될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모두 태어나길 잘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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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죽었다 | SNS 사이로 진짜 범인을 찾아줘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고객이 맡긴 열쇠로 남의 집을 훔쳐보는 취미를 지닌 공인중개사 ‘구정태’(변요한). 그는 우연히 편의점에서 인플루언서 '한소라'(신혜선)를 만난 후 그녀의 삶을 지켜본다. 소시지 핫바를 사 먹으면서 비건 샐러드 사진을 포스팅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본능적으로 흥미를 느꼈기 때문. 때마침 이사를 결심한 한소라는 구정태에게 집 키를 맡기고, 구정태는 자유로이 그녀 집을 드나든다.
그러던 어느 날, 구정태는 소파에 죽은 채 늘어진 한소라를 발견한다. 그는 의심스러운 자기 행적을 지우기 위해 애쓰지만, 약점을 쥔 범인이 자기를 협박해 오자 그는 패닉에 빠진다. 설상가상으로 강력반 형사 ‘오영주’(이엘)의 수사망도 그를 향해 좁혀진다. 이에 구정태는 억울함을 밝힐 증거를 찾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한소라의 SNS 속을 떠돌기 시작한다.
바뀐 시대와 인간을 담은 스릴러
스릴러는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장르다.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부터 <추격자>와 <끝까지 간다>, 그리고 <잠>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관객을 사로잡았다. 다만 높은 인기만큼 스릴러는 정확히 정의하기 어려운 장르이기도 하다. 서스펜스가 중심인 플롯만 있으면 스릴러의 자격이 있으니까. 그나마 도망자 대 추적자의 구도가 한 기준점이 될 뿐이다.
이처럼 구분이 애매하다는 말은 곧 범용성이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러 사건과 이야기를 자유롭게 결합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스릴러는 신선함을 유지하기 어렵다. 다루지 않은 사건, 인물, 구도와 전개가 없으므로. 그래서 가장 쉽게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임시완과 천우희 주연의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나 손석구의 <댓글부대>처럼.
<그녀가 죽었다>는 그 연장선상에 위치한 작품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같은 SNS의 영향력을 활용한 범죄 사건을 중심에 둔 스릴러다. 특히 단순히 범죄 수단이나 도구의 변화뿐만 아니라 시대에 발맞춰 달라진 사람들의 심리와 내면까지 통찰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 덕분에 <그녀가 죽었다>는 기시감과 개연성 부족 등 적지 않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힘 있게 달리는 데 성공했다.
내가 만든 '나'를 지키는 싸움
SNS의 파급력이 커지면서 우리는 이제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주는 내 모습대로 '가상의 나'를 꾸며낸다. 때로는 '현실의 나'보다 '가상의 나'를 가꾸고 유지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허상은 내 본모습을 대신하기도 한다. 현실의 내가 어떻게 살고, 어떤 사람인지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진다.
<그녀가 죽었다> 속 두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몸을 팔아 하루하루 살던 한소라는 선행으로 가득한 SNS 피드가 관심을 끌고,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에 유기견과 길고양이 입양, 보육원과 요양원 봉사로 피드를 가득 채운다. 실상은 후원금을 빼먹는 사기꾼이지만, 그녀는 점점 그 허상 속에 빠져든다. 마지막 순간까지 세상이 자기를 버렸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는 피해자라고 굳게 믿으면서.
구정태 역시 방패막이를 앞세워 본모습을 숨긴다. 그는 대한민국 최대의 부동산 카페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강사로서 받은 관심을 먹고 산다. 공인중개사로서 뛰어난 평판은 그가 범죄를 행하는 데 도움이 된다. 키를 맡기는 집주인이 많아질수록 집에 침입하기 쉬워지니까. 그래서 그는 평판과 겉모습을 유지하는 데만 애쓸 뿐, 자기 취미가 어디서부터 잘못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녀가 죽었다>는 각자가 꾸며낸 세계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의 관심을 받기 위해 활짝 열어둔 문은 자기 인생을 파괴할 지름길이 되니까. 남을 향한 관심은 자기를 찌르는 칼이 되어 돌아오고. 구정태와 한소라 둘 다 결국에는 자기가 판 자기 무덤에 빠지지 않으려 발버둥 칠 뿐이다.
붕 떠버린 캐릭터
다만 <그녀가 죽었다>가 이면에 숨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힘은 충분하지 않다. 이 이야기는 캐릭터가 핵심이다. 그들이 돋보일수록 갈등도 분명해진다. 각 인물의 세계에 관객이 공감을 많이 할수록, 그들에게 SNS와 타인의 관심이 갖는 의미나 그 세계가 무너질 때 닥쳐오는 위기감이 명확히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그런데 영화는 정작 캐릭터에게 그리 공을 들이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콘셉트만 있을 뿐, 콘셉트를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은 부족하다. 자연히 주연을 포함한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생동감이 없다. 그나마 개인사가 일부 밝혀진 한소라의 행적은 따라갈 수 있다. 피해망상이 섞인 사이코패스라고 본다면 큰 문제가 없다.
반면에 구정태라는 캐릭터는 최소한의 설명도 없다.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관음증 환자, 스토커를 한 인물에게 몰아준 설정만 있는 격이다. 그가 자기 기질을 깨닫게 된 계기나, 악취미를 갖게 된 동기 등은 조금도 설명되지 않는다. 결국 구정태라는 인물은 그가 소유한 거대한 창고만큼이나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그가 마지막에 얻은 깨달음이 큰 임팩트를 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러닝타임 내내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이 의도와는 달리 몰입을 방해하는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내레이션은 두 주인공이 자기가 만든 세계와 현실 간의 괴리를 합리화하는 기제를 보여준다. 구성태와 달리 한소라가 자기 문제를 끝내 깨닫지 못하는 모습도 내레이션의 온도 차이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런데 캐릭터가 설득력이 없다 보니, 특히 구정태의 내레이션은 붕 뜬 채 영화 분위기와 좀처럼 융화되지 않는다.
미처 지우지 못한 기시감
몰입감이 떨어지는 대목에서는 애써 감추려던 기시감도 흘러나온다. 예를 들어 <그녀가 죽었다>는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나를 찾아줘>와 매우 흡사하게 전개된다. 두 주인공의 관계나 직업만 다를 뿐, 피해자가 사실 가해자라는 플롯은 다를 게 없다. 자연히 <그녀가 죽었다>가 서스펜스를 유지하는 데 필연적으로 한계가 따른다. 스릴러를 좋아할수록, 예상이 쉽기 때문이다.
경찰을 활용해 한계선을 늘리려는 시도는 엿보인다. 영화는 피해자 한소라까지 의심하는 오영주와 기존 수사 관행에 의지하는 다른 경찰 간의 갈등을 은연중에 거듭 암시한다. 가리키는 방향이 충돌하는 가설과 증거를 보여주면서 관객을 조금이라도 더 현혹하고, 반전의 충격을 키워보려는 노력인 셈이다. 다만 경찰에게 주어진 분량이 절대적으로 적다 보니 큰 효과는 없다.
반면에 예측가능한 전개 덕분에 오히려 세밀하고 현실적인 아이디어가 힘을 발휘하는 대목도 있다. 공인중개사에게 도어록 비밀번호를 알려주거나 열쇠를 맡기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할 일이지만, 범죄에 활용될 수 있다며 신뢰를 잃는 순간 이는 예상 못한 스릴로 전환된다. 딥페이크와 유사한 범죄가 스쳐 지나가는 대목 역시 같은 맥락에서 꽤 흥미롭다.
배우의 힘
또 신혜선과 변요한, 두 주연 배우의 힘을 빌려 단점을 순간적으로 감추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소라가 피해자 행세를 하며 광기를 발산하거나, 어머니 유골함에서 범인이 숨긴 증거를 꺼내며 구정태가 오열하는 순간이 대표적이다.
이는 두 캐릭터의 시점으로 나뉜 편집에도 힘을 불어넣는다. 각 파트를 책임진 배우들의 열연 덕분에 두 이야기가 하나로 겹쳐지는 지점에서의 폭발력만큼은 결코 부족하지 않다. 그 덕분에 <그녀가 죽었다>는 숱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SNS 시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스릴러로서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Acceptable 무난함
인생샷과 댓글 사이로 '나를 찾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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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곳에 뿌리내리려는 한 가족의 이야기
먼 이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해외 이민의 길을 떠난다. 고국에서의 미래가 보이지 않거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선택한 이민의 길은 사실 쉽지 않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가면서 조건이 좋지 않은 일부터 시작해야 새로움의 삶을 천천히 익숙한 삶으로 바꿀 수 있다. 그렇게 일을 해나가면서 조금씩 나은 일을 찾고 가족들과 삶을 이어나간다. 새로운 시작을 선택한 가족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 그 힘든 이민의 삶을 받아들이고 점점 그곳의 일부분이 되어간다. 어떤 나라에서든 이민자들의 삶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여전히 그런 과정을 거친다.
사실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것이 꼭 이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살면서 전혀 새로운 곳에 이사 가게 되어 살게 되거나 다른 환경으로 가게 될 때 우리는 그런 경험들을 한 번쯤은 겪게 된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을 찾아 다시 삶을 만들어 나가는 장면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서 앞으로 나아가려 노력할 때, 그 쉽지 않은 현실을 앞에 두고 가족들은 때론 서로 의견 대립을 하고 싸운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손을 잡고 서로를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새로운 곳에 온전히 뿌리내리기 위해 의지할 곳은 바로바로 옆에 있는 가족뿐이다.
영화 <미나리>는 새로운 환경에서 삶의 뿌리를 내리려고 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제이콥(스티븐 연), 모니카(한예리), 딸 앤(노엘 케이트 조), 아들 데이빗(앨런 김) 가족이 알칸소의 새 집에 오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미국 이민자의 삶을 살고 있는 제이콥과 모니카의 가족이 다시 새로운 지역 알칸소로 이주해 새로운 삶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제이콥은 바퀴가 달린 집과 그 주변의 땅에 농장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나가려고 한다. 모니카는 병아리 감별하는 일을 하며 같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미국 대도시의 삶에 잘 적응하지 못한 듯한 이들은 새로운 곳으로 옮겨 좀 더 나은 삶을 꿈꾼다. 거주 환경과 주변을 본 모니카가 실망감을 토로하지만 여기서 새롭게 시작하자는 남편 제이콥의 말에 일단 그곳에서의 삶을 준비한다.
제이콥이 준비하는 농장은 그의 가족이 좀 더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제이콥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집 주변의 땅에서 물을 찾는 일이다. 물길을 찾는 외부인을 불러와 살펴보거나 자신이 직접 땅을 파서 땅속의 물을 찾아 농사에 활용한다. 제이콥이 늘 물에 신경 쓰는 것처럼, 영화 속에서 물은 꽤 중요하다. 물만 잘 공급된다면 농사를 짓기 수월하고 이들 가족이 큰 불편함 없이 뿌리내려 사는데 도움이 된다. 물이 원활하게 공급되었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물이 끊겼을 때 가족을 압박하는 것은 생활의 불편함 뿐 아니라 경제적인 압박도 포함된다. 그들이 목이 타는 것과 같이 마음속도 타들어가고 부부는 의견 대립으로 충돌한다.
제이콥은 자신의 농장에서 작물을 성공적으로 수확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자신의 가족들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믿고 부단히 매달린다. 반면 모니카는 실패할 수도 있는 농장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좀 더 안정적인 병아리 감별을 지속적으로 하길 원한다. 그리고 조금은 더 큰 도시로 이주하여 경제적으로 어렵더라도 가족과 함께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기를 원한다. 두 사람 모두 가족을 위하지만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조금 다르다. 제이콥은 농장의 성공이 가족에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부단히 매달린다. 당장은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환경이 좋지 않더라도 자신이 그리는 안정적인 상황이 그의 눈앞에 보인다. 그래서 그는 그 농장을 포기할 수 없다. 그 농장의 성공이 바로 가족의 안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모니카는 적은 돈을 벌더라도 바로 지금 안정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을 원한다. 그래서 당장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농장일에 매달리는 제이콥과 의견 대립을 하게 된다.
그런 작은 대립에도 불구하고 모니카와 제이콥은 서로의 그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모니카는 제이콥이 할 수 있는 환경을 은연중에 만들어준다. 비록 제이콥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가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다. 또한 자신의 엄마인 순자(윤여정)를 미국으로 불러와 자신과 남편이 일하는 동안 아이를 돌볼 수 있게 한다. 순자는 이 가족이 좀 더 안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윤활유이자 물 같은 존재다. 그리고 가장 한국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미국으로 올 때 가져온 고춧가루, 멸치 등은 밥상에 올라올 음식이 되어 가족들에게 고국의 맛을 선사하고, 그가 가져온 화투는 아이들에게 한국의 놀이가 가진 재미를 알려준다. 비록 아이들은 처음 만나는 외할머니와 데면데면해 하지만 아이들은 곧 그것에 익숙해진다. 그렇게 조금씩 외할머니는 이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어간다.
그 익숙해진다는 것이 곧 친숙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완전히 마음을 열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린다. 이 영화 속 데이빗과 앤 도 마찬가지다. 대화조차 잘 통하지 않는 외할머니에게 그들이 친숙함을 금방 느끼기는 어렵다. 처음 외할머니를 만난 데이빗은 연신 할머니 같지 않다며 혼자 중얼거리는데, 한국의 할머니를 처음 만났고 기대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모님이 일하러 간 시간, 어쩔 수 없이 외할머니와 같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데이빗과 앤은 외할머니와 함께 집에서 조금 떨어진 냇가에 산책을 나간다. 특히 데이빗은 그 산책의 시간을 보내며 순자와 교감하고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질병도 서서히 회복해나간다. 그렇게 모든 가족의 마음속에 익숙함이 자리해나갈 때 비로소 그들이 그곳에 정착할 수 있는 기운이 만들어진다.
<미나리> 속 특별한 장면들은 대부분 외할머니 순자와 데이빗이 만들어낸다. 서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은 짧은 한국어와 영어를 통해 이야기하는데 냇가 옆에서 데이빗과 부르는 원더풀 미나리 송에서도 정감이 느껴지고 티격태격 장난치는 듯한 두 사람의 행동도 웃음을 짓게 한다. 또한 순자는 데이빗이 눈에 보이는 위험을 보이는 곳에 놓고 관리하게 만드는데 이것은 심장병이 있어 늘 뛰기를 두려워하는 데이빗에게 그 위험을 직면하며 관리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데이빗은 마음도 몸도 서서히 치유가 되어간다 이 영화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면 외할머니와 손주가 만들어낸 이런 앙상블 때문일 것이다.
순자는 고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를 냇가에 뿌려 미나리를 키운다. 물만 있으면 잘 자라는 미나리는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니카와 데이빗 가족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가족에게 물만 있으면 농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큰 문제없이 정착할 기회가 만들어진다. 영화 후반 군집을 이루어 아주 잘 자라는 미나리의 모습은 어쩌면 이 가족의 미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는 이들 가족이 잘 정착하여 살게 되는지, 농장 운영은 성공하는지에 대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그곳에 정착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어떤 마음인지는 잘 보여준다. 결국 다섯 명의 가족이 결코 떨어질 수는 없고 앞으로도 같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존재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타오르는 농장에 뛰어든 제이콥과 모니카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그들은 싸운 직후였고, 이별의 결심까지 한 후였다. 하지만 남편이 노력하여 얻은 결과물이 타오르자 그것의 일부라도 구하고자 이리저리 물건을 불 밖으로 빼는 모니카의 모습에서 남편의 노력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지고 그들이 결국 같이 그것을 해결해 나갈 것임을 보여준다.
가족의 고난사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전반적으로 영화 <미나리>는 긍정적인 영화다. 잠깐씩 모습을 비추는 알칸소의 이웃과 교회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그들에게 호의적이다. 유일한 동양인이라는 점 때문에 다르게 받아들여지지만 조금은 신기하게 바라보고 친해지려 다가선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폴(윌 패튼)은 특이한 행동을 하는 이웃으로 등장하지만 결코 나쁜 인물이 아니다. 이해 못할 행동을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제이콥의 농사가 잘되길 빌면서 일손을 돕는다. 악의 없이 이 가족이 그 땅에 정착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어쩌면 영화 속 그의 주술이 실제로 가족의 마음이 안정되도록 심리적인 도움을 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덕분에 농작물 수확도 잘할 수 있었고, 집안에 나쁜 일들도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가 되었으니까. 이민자들 주변에 있었던 좋은 이웃들의 모습을 폴이라는 인물이 대표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폴이 이민자인 그들을 이상하게 취급하지 않은 것처럼 가족도 폴을 하나의 이웃으로 대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각기 다른 포인트에서 공감하며 관람할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부부의 이야기, 어떤 사람은 외할머니와 손주들의 이야기 그리고 본인이 이민자라면 이민자 자체의 이야기에 더욱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분명 이민자들의 경험이 담겨 있지만 아주 보편적인 가족의 정서를 담고 있어 널리 공감될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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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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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글이 보기엔 나쁘지 않은
나는 공식적인 머글이다. 영화를 좋아해서 이렇게 끼적거리긴 하지만 연예인을 덕질한다거나 특정 장르를 덕질하진 않는 그저 잡식 인간이다. 그런데 삶이 무료하던 시점에 한 애니메이션를 실사화한 영화를 보았다. 당연히 애니에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애니는 보지 않았는데, 찾아보니 이게 그렇게 설레는 애니였나 보던데 뭐 그런가보다 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판단하는 나의 기준은 오글거림의 유무이기 때문에 이 영화 오글거리지 않았다는 지점에서 큰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보아하니, 애니에는 남주 여주 뿐만이 아니라 남주의 누나도 등장하는 것 같던데 이번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더라. 이후에 시즌 2를 제작하려는 걸지, 그냥 분량상 잘라낸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영화의 장점은 로맨스가 주된 주제인 영화인데, 모든 장면들이 과하지 않다. 감정 표현도 과하지 않고, 오히려 절제되어 있다. 군인이라는 남주의 캐릭터에 맞게 모든 표현이 절제되어 있다. 그리고 여주 또한 대단히 오버를 떨지 않는 캐릭터이다. 일본 영화는 가끔 연극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고, 인물들의 리액션이 한국인이 느끼기엔 과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지점들이 있는데, 이 영화는 그런 류의 로맨스는 아닌, 아련함이 가미된 로맨스라서 볼만 했던 것 같다. 약간 애니 실사화라고 하면 으레 그런 오버스러운 리액션이 떠올랐는데, 이 애니는 애초에 그런 소재가 아니었던 것 같더라.
오히려 이 영화가 일본 영화같다고 느꼈던 지점은 이능력자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때문인데, 시대를 불문하고, 불이나 바람을 다룰 줄 안다는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것이, 일본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기 때문에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가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백하게 넣어놔서 그런지 초능력자들의 결투로 이어지는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보는데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
뭐, 대단한 칭찬을 한 것 같지만 사실은 킬링영화용으로는 나쁘지 않다는 의견을 적고 싶었던 것 뿐이다. 대단한 잘 만든 영화라고까지는 평가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름 설레는 잔잔한 로맨스 영화를 보고 싶으신 분들이나 '나는 머글인데 일본 실사화 영화에 도전해보고 싶다'하시는 분들이 입문용으로 도전해보면 좋을 만한 영화인 것 같다. 뭐, 내 주변 오타쿠를 자처하는 친구들은 실사화를 굳이 왜 보려고 하는 친구들도 많긴 하지만 말이다. 간편하게, 크게 자극적인 영화를 보고 싶지 않을 때 흘러가듯이 보면 나쁘지 않은 영화인 것 같아서 괜시리 한 번 넣어봤다. 요 근래 너무 심각한 영상물들만 소개한 것 같아서 말이지......
뭐, 지금까지 칭찬만 이어갔으니 아쉬운 점을 말해본다면, 물론 로맨스 장르라는 지점에서는 크게 결격 사유는 없지만 수많은 장르 중의 하나인 영화라고 봤을때는 뭐 그렇게 자주 볼 것 같진 않다는 점 정도? 크게 별로는 아닌데 대단히 추켜세워줄 만한 장점도 없는 그래서 더 특이하게 느껴졌는 지도 모르겠다. 약간 평양냉면 처음 먹는 느낌이었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 분명히 나쁘지는 않은데, 아 뭔가 박수까지는 안나오지? 라고 생각하며 의아했던 기억이 있는데, 혹시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피드백 주실 분 있으면 주시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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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도그로 잃어버린 몸찾는 액션 스릴러!
윤계상 배우가 주연을 맡은 유체이탈자가 개봉했습니다.
12시간 마다 유체가 이탈하여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간다는 신기한 설정인데요.
게다가 다른 사람을 옮겨다니는 사람이 기억을 잃은 상태라 더욱 긴장감을 높이죠.
한정된 공간과 한정된 인물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긴장감은 높습니다.
핫도그와 노숙자를 통해 실마리를 찾아가게 되는데요.
근접액션, 차량 액션, 총기 액션 등 다양한 액션이 포함되어 있어 볼거리도 많습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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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walke starring actor Yoon Kye-sang has been released.
It's a strange setting that the fluid escapes every 12 hours and enters another person's body.
In addition, it raises tension even more because he who move around people have lost his memories.
The movie lead the story with limited space and limited characters, but the tension is high.
the main character track clues through hot dogs and homeless people.
There are many things to see as it includes various actions such as close action, vehicle action, and gun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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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더 배트맨> 2차 예고편
로버트 패틴슨의 새로운 배트맨, 더 배트맨 2차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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