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류산2024-06-12 15:08:49
영화 <퀸 엘리자베스> 리뷰
<퀸 엘리자베스>는 영국의 왕실과 국민통합을 표상하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영화다.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왕좌에 머문 엘리자베스 2세 여왕. 1952년 즉위하여 2022년 9월 8일까지 70년간 재위한 군주다. 처칠을 시작으로 총 16명의 총리와 함께 했다.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노팅 힐〉을 연출한 로저 미첼 감독이 연출했다. 미첼 감독은 로맨스 영화의 대가일 뿐만 아니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TV부문에서 최우수 단편 드라마와 최우수 미니시리즈까지 수상하여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연출력을 인정받은 감독이다.
“내 삶이 길건 짧건 내 평생을 국민들을 섬기는 데 바칠 것을 여러분 앞에서 맹세합니다.” 퀸 에리자베스가 왕세녀 시절 21세 생일을 맞이하여 연설한 내용이다. 실제로 그녀는 사망하기 이틀 전에도 신임 총리를 임명하고 접견하는 등 죽는 순간까지도 국왕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세상을 떠났다.
영화는 우리 가족이 영국에서 가진 추억들을 조각조각 떠오르게 했다. 아내와 우리 가족은 8년의 영국 생활을 하면서 영국 여왕과도 친근해졌다. 여왕의 생일 등 왕실의 공식 행사 때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서 손을 흔드는 모습. 매년 성탄일 오후 BBC에서 전 국민에게 보내는 그녀의 크리스마스 메시지. 영국여왕 재위 50주년을 기념하는 골드 주빌리(Golden Jubilee) 행사. 부군인 필립공이 총장으로 있는 캠브릿지대학을 방문하여 가까이서 여왕을 볼 기회도 가졌다.
96년을 산 인생이 늘 영광스러운 일만 있을 수 있겠는가. 감독은 왕관의 무게만큼이나 그녀의 가슴을 무겁게 했을 아픈 가족사도 적절히 드러내었다. 지난 100년의 현대사에 가장 주목할 만한 삶을 살은 여왕의 생을 담아낸 가치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러닝타임은 90분이다. 여왕은 2년 전 별세하였다. 그런데 여왕의 일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에 장례식 장면이 없다. 왜일까? 그건 로저 미첼 감독이 여왕 보다 1년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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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의 밤하늘은 가장 짙은 블루>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The Tokyo Night Sky Is Always the Densest Shade of Blue)
개봉일 : 2019.02.14. (한국 기준)
감독 : 이시이 유야
출연 : 이케마츠 소스케, 이시바시 시즈카, 마츠다 류헤이, 이치카와 미카코, 사토 료
‘억지로 밝힌 밤하늘에서 몇 개의 별을 찾다’
“달이 원래 저렇게 푸르렀던가? 도쿄에서만 그런가?”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 없이 매일을 살아가던 청년이 아주 오랜만에 달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온색보다는 한색이 잘 어울리는 도시, 천만 명이 모여 살지만 그만큼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도시. 도시 속 삶을 어떻게 생각하냐 묻는다면. 가장 먼저 ‘팍팍함’, ‘차가움’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를 것이다.
도시에도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날, 따뜻한 햇볕이 빨래를 보송하게 말려주는 날, 온기에 땀이 후끈 솟아오르는 날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도시는 ‘차갑다’는 이미지를 갖는다. 우리가 ‘서울’을 떠올리면 화려한 빛과 그 이면에 있는 쓸쓸함을 떠올리듯, 일본 청년들에게 비치는 ‘도쿄’라는 대도시의 이미지도 비슷한가 보다.
월세를 내고, 가벼운 청구서들 속에 적혀있는 무거운 돈들을 전부 납부하고, 미래를 위해 조금 아껴놓고 나면 수중엔 남는 게 하나도 없다. 내가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무엇을 위해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걸까. 현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고민한다.
나 혼자 살아남기에도 벅찬, 누군가와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 신지와 미카. 두 사람의 내뱉지 못한 한숨은 턱밑까지 차올라있다. “진짜 사랑은 없어”라고 말하며 차가운 현실을 두 눈으로 직시하고 있는 미카와 거의 보이지 않는 왼쪽 눈의 시선에, 어쩌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희망적인 삶을 꿈꾸는 신지. 억지로 밝힌 도시의 차가운 하늘 아래서 두 사람은 새로운 빛을 찾는다.
가장 짙은 파란색으로 물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둡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하늘은 가장 밝은 밤하늘일 수도, 그곳엔 진짜로 반짝이는 별 몇 개쯤이 떠있을 수도 있다. 어찌 됐든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어줄 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시놉시스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낮에는 간호사, 밤에는 술집에서 일하는 ‘미카’. 일용 노동직으로 일하며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지만 막연한 희망을 꿈꾸는 ‘신지’. 이들은 화려함과 고독함이 한 데 섞인 도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서로를 이해하는 진정한 사랑은 없을 것 같던 도쿄의 밤하늘 아래, 방황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며 삶에 대한 희망을 함께 품기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세상을 미워해도 돼.”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열심히 날고 있는 비행선처럼 열심히 달려보지만 특별할 것이 없는 나날이다. 줄지어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낀 나라는 존재는 널따란 자전거 주차장에 세워진 자전거 한 대와 다를 것이 없다. 사람들을 향해 따뜻한 숨결을 불어주기보단 사람들의 한숨을 먹으며 더욱 차갑게 반짝이고 있는 도시. 미카는 도시에 발을 들이고, 그 차가움과 무게에 익숙해진다는 건 나 자신을 죽이는 거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검은색 밤하늘을 억지로 밝힌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파란색이고, 차가운 도시 속에서 미카의 손톱에 칠해진 핑크색은 찾아볼 수가 없다. 곧 자라서 사라질 손톱 위 외엔 그 어디에도 부드러운 색은 없다. 홀로 살아남기에도 벅찬 생활, 누군가 나를 사랑해 주거나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함부로 꿈꾸지 못할 일이다. 미카에게 진짜 연애란 없는 것이다.
“청구서 보는 게 소름 끼쳐.”
신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 왼쪽 눈의 시야 대신 선명한 오른쪽 눈의 시야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세상의 절반만을 보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입을 쉬지 않는다. 동료들은 그런 신지를 ‘이상한 애’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금세 웃으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던지는 신지를 미워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좋아한다. 연봉은 200만 엔이 될까 말까 한 직업, 월세 6만 5천엔, 수도세, 전기세, 통신 비용. 테이블 위에 쌓인 얇은 종이들은 바람에 휙-날아갈 만큼 가볍지만, 종이에 적힌 현실의 무게는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
어항 같은 도시 속에서 만난 나와 같은 이상한 애
천만 명이 사는 도쿄에서 한 사람을 여러 번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항상 기온이 유지되는 어항처럼 항상 차가움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에 살고 있는 작은 거북이 같은 두 사람. 푸르지만 예쁜 달이 빛나는 도쿄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가장 잘 아는 사이가 된다. 미카는 눈이 잘 안 보인다는 걸 숨기기 위해 쉼 없이 떠들어대는 신지의 아픔을, 신지는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미카의 상처를 알게 된다.
사람은 언뜻 보면 강해 보이지만, 말 한마디면 쉽게 고독을 얻을 수 있고, 작은 흉터 하나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연약한 존재다. 신지와 함께 일하는 청년들이 매일같이 신나는 노래를 틀고, 술을 마시며 춤을 추는 건 젊음의 혈기를 뽐내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건 어두운 밤에 밀려올 슬픔을 힘껏 털어내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언젠가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예고 없이 차오르는 차가운 슬픔이 가득한 도시에서 다른 이에게 위로를 받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와 비슷한 이상한 애를 만나는 것도, 이상한 애에게 나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도.
“사랑은 많은 사람을 죽였어”
미카는 사랑도, 사랑한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 언젠간 버려질 것이니. 신지는 사랑했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시작조차 하지 않았던 그 감정을 이제 와서 말하는 것도,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의미가 없으니.
매일을 쪼들리며 살아가는 삶에 사랑이란 것이 필요할까? 아니, 어울리기나 할까 고민해 본다. 사랑을 하면 돈이 들고,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을 쪼개 사랑에 마음을 써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사랑이 내 삶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멋지진 않아도 이렇게라도 살고 있으니, 이렇게라도 살아있으니 내 앞에 반짝이고 있는 감정 하나쯤은 손에 꽉 쥐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가장 짙은 파란색을 한 하늘 아래지만, 반짝이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진 말자. 내가 세상을 반도 못 보고 있다고 하여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조차 못 보는 사람도 많은걸.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하여 그 무슨 일이 모두 나쁜 일일 거라는 보장도 없으며, 아무 일 없는 아침을 맞이할 확률도 생각보다 높다.
우리는 행복의 의미를 몰라도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 지갑에 여유가 없다고 해도 진짜 위로를, 사랑을 만난다면 마음껏 사랑하고 위로받을 자격이 있다. 미카와 신지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된다. 마음껏 마음을 표현하고 서로의 어깨를 맞대거나 기댈 수 있는 존재. 사랑했다거나 여전히 사랑한다는 말이 아닌 지금 너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미카와 신지를 붙잡던 과거의 푸르름이 허물어지고 분홍색의 꽃이 피는 아침이 찾아온다.
완전한 검정이 없는, 어둠을 억지로 밝혀놓은 화려한 도시에서 진짜 반짝이는 것을 품기 위해 노력하는 청춘들에게 <도쿄의 밤하늘은 가장 짙은 블루>는 위로와 또 다른 색을 가진 눈물이 될 것이다. 이 감정을 천천히 아주 깊게 들이마셔보라. 어쩌면 이 어두운 하늘에 나를 위한 별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이 생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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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영화/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셨나요?
오늘은 5월 첫째 주 주말 동안의 박스오피스 분석 결과를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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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4월 넷째 주에 주말 관객 수 약 151만 5천 명으로 기록하며 관객 수 상승세를 보였던 극장가! 화제작이 많은 5월 첫째 주 역시 주말 관객 수 284만 6천 명을 기록하며 높은 주말 관객 수를 기록하였습니다. 두터운 팬층을 가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r 3>가 1위를 차지하였고, 이에 따라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2위로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3주째 상위권을 유지했던 <존 윅4>가 아쉽게도 주말 관객 수 TOP 5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옥수역 귀신> 역시 7위로 하락하였습니다.
1.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Volume 3> (NEW)
가.오.갤 시리즈의 완벽한 피날레를 알리는 작품으로 언론부터 실관람객까지 폭발적인 호평이 쏟아지고 있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가 주말 관객 수 126만 5천 명을 기록하며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역대급 스케일, 압도적 액션, 탄탄한 스토리로 CGV 골든에그지수 98% 기록한 것을 비롯하여 지난 5월 2일(화) 이후 전체 예매율 1위를 꾸준히 유지하며 앞으로의 흥행에 더욱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2.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1)
<가.오.갤> 시리즈의 개봉으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순위가 한 단계 낮아졌지만,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극장가를 찾은 관객들이 많아 주말 관객 수 자체는 4월 넷째 주보다 높아졌습니다. 또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는 기존에 어린이날 최대 관객 수를 동원한 애니메이션 영화 <보스 베이비>의 관객 수를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3.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동물소환 닌자 배꼽수비대>(NEW)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동물소환 닌자 배꼽수비대>가 개봉 첫 주말 누적 관객수 34만 명을 동원하며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 사상 가장 빠른 흥행 속도를 보였습니다. 또한, 입소문에 힘입어 전체 좌석판매율 1위를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4. <드림> (⬇︎2)
개성 넘치는 캐릭터 군단의 활약, 꿈을 향한 멈추지 않는 도전을 담은 유쾌한 스토리로 뜨거운 호평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화 <드림>은 약 20만 관객을 기록하였습니다. 가족과 보기 좋은 영화로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순위권을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5. <스즈메의 문단속>(⬇︎1)
<스즈메의 문단속>이 관객들의 압도적인 호평을 얻으며, 2023년 개봉작 흥행 1위에 올라섰습니다. 3월에 개봉했던 <스즈메의 문단속>은 여전히 뜨거운 인기를 끌며 나날이 새로운 기록을 경신 중입니다.
(2)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5월 첫째 주 북미 박스오피스 역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가 개봉 첫 주에 1위를 차지하며 4월 넷째 주 박스오피스에서 모두 한 단계씩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재개봉을 하며 TOP 5에 올라섰던 <스타워즈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가 순위권 밖으로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의 개봉 첫 주 주말 매출액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개봉 첫 주 주말 매출액보다 낮게 나타났지만, 두터운 팬층이 있는 만큼 장기흥행이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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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4월 넷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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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심은 죽지 않는다
이 영화의 혹평이 있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혹평의 주류는 각자의 동심 속 웡카가 아니라는 지적이었던 듯하다. 그 말도 일리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첫 번째 시리즈를 안 봤던 나에게, 팀버튼이 원작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니, 원작을 따라하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까지 미치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모티프만 따왔다고 생각하고 별개의 영화로 인식하고 보니 이 영화는 그저 동심을 잃은 어른들을 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1. 팀 버튼의 웡카와는 다르지만 같은 메시지를 가진
웡카의 성격과는 별개로 웡카가 등장하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가 있다면 동심이란 건 나이와는 상관없는 클래식이라는 것이다. 웡카가 그로테스크하든 해맑든 그 존재만으로도 동심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이가 가진 꿈은 그 어떤 이유로든 짓밟혀서는 안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달까.
나의 동심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되는 영화였다. 나는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면 안좋았던 기억을 훑고 좋은 기억들을 그 뒤에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서 왠만하면 과거에 집착하지 않으려다가도 살다보면 하게 되는 선택에 과거의 기억이 발목을 붙잡을 때가 있다. 한 때 나도 웡카와 같은 하고 싶은대로 사는 존재에 설레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현실을 고려하고 난 뒤에 하고싶은 걸 찾는달까. 무턱대고 꿈꾸기만 하는 시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 팀 버튼의 웡카를 보든 이 해맑은 버전의 웡카를 보든 나는 여전히 웡카의 자유로움, 신비로움에 설레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동심을 꺼내어 좋았던 기억들을 회고하니, 꿈같은 2시간이었다.
2. 현실이 쓰더라도, 초콜릿만 있다면
웡카에 대한 환상은 초콜릿에 대한 진심에서 비롯된다. 힘든 삶을 살아내는 누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웡카는 초콜릿을 권한다. 마치 잊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듯이. 나는 초콜릿 하나를 먹어도 어차피 먹을 거면서 칼로리부터 확인하고 먹을만큼 현실 파악부터 하는 편인데, 가끔은 내 기분을 위해 무모하게 살아봐도 되겠다고 생각한다.
너무 현실만 바라보면 인생이 재미없으니, 삶이란 현실 60, 꿈 30, 실행력 10으로 꾸려나가면 꿈만 좆느라 다치지도 않고, 현실에 질리지도 않을 것 같다. 다만, 꿈만 꾸지 말고 실행하자. 현실이 힘들다 싶으면 단 거 먹고 힘내자. 내가 느낀 영화의 메시지는 이거였다.
총평
최근 본 영화 중 뻔한 전개였는데 이렇게 힘이 된 적이 없었다. 나에게는 실행력이 조금 부족한데, 그냥 초콜릿을 가득 들고다니며 막막할 때 하나씩 꺼내먹어야겠다. 영화 속에서 초콜릿이 가지는 의미는 곧 꿈과 환상이자 위로를 건네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호텔 잘못골라 세탁소 시궁창에 빠져버린 웡카와 친구들에게도 초콜릿이 절망적인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는 소재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ost가 잔잔하게 맴돈다. 티모시 샬라메가 폭발적인 가창력을 가지진 않았는데도 노래들이 조용한 임팩트가 있다. 역시 가창력보다 중요한 것은 전달력인 걸까. 전달력과 가창력이 비례하진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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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벽 끝에서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며
몇 년 전, 친구와 미국 서부 자동차 여행을 했다. 샌프란에서 출발해 LA를 찍고 샌디에이고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LA로 올라오는, 나름의 모험이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몇 번을 왕복할 정도의 거리를 달리면서 온갖 신변잡기적인 이야기를 했고, 미국이란 땅이 낯선 나를 위해 유학 중인 친구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소개해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흔한 미국 사람이 홈리스가 되는 시나리오'가 기억에 남는다. 친구에 따르면 미국 서민들의 경우 차를 한번 수리하는 비용과 인건비가 원체 비싸기 때문에 차 유리창이 깨져도 신문지로 붙이고 다니기도 한다. 도심 외곽에서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 어느 날 차가 완전히 고장 나기라도 하면, 수중에 단돈 몇 천 달러가 없어서 수리비를 변통하지 못한다.(렌트와 보험비를 포함한 기본 생활비가 비싸기 때문에 수중에 현금이 많이 없다고 한다. 저축이란 개념도 약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차를 타고 직장에 가지 못 하여 직장에 잘린다. 직장에서 잘리면 렌트와 보험을 내지 못하고, 그러다 어처구니없게도 홈리스로 전락한다.
샌프란 도심 거리에 보이는 홈리스들은 거리에서 스마트폰을 충전하고 있었는데 실은 파트타임 일을 몇 개씩 뛴다고 한다. 이들은 차가 없기 때문에 다운타운을 떠나지 못하고 슬럼을 형성한다. 미국인에게는 마치 신발과도 같은 자동차가 없다는 것은 일자리의 선택 범위를 확연히 좁히면서, 삶의 방식까지도 제한한다. <노매드랜드>를 보았다면, 주인공 펀(프랜시스 맥도먼드)과 위와 같은 홈리스들이 질적으로 어떤 다른 삶을 살고 있는지 물을 수 있다. 펀이 자처한 유목민 생활은 도심의 홈리스의 삶보다도 더 척박하고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그녀는 의도치 않게 동정 어린 눈길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함과 동시에 마주친 옛 학생 앞에서 펀은 자신이 홈리스(homeless)가 아니라 엄연한 하우스리스(houseless)라고 선포한다. 홈은 곧 하우스라는 공식에 들어맞지 않을 뿐, 그녀는 홈리스와 다르게 기동력과 안식처를 동시에 쟁취했다고 청중을 설득하고자 한다. 후반부에 카센터에서 구제불능이 된 고물 밴을 집이자 안식처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진심을 엿볼 수 있다. 그녀의 주장에 진정으로 동조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펀은 마치 60년대 히피 라이프를 시대착오적으로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며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 유아적이라는 인상마저 주기에 이른다. 이러한 세간의 오해를 뒤로하고 그녀의 여정은 계속된다.
현대인의 끝나지 않는 노동이 궁극적으로 다다르고자 하는 욕망의 종착점은 어디인가?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고들 한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중산층에게는 소박하게는 집 한 채 마련, 궁극적으론 경제적 자유가 최종 목표라고도 한다. 그러나 2008년 서브프라임이 촉발한 금융위기부터 지금의 Covid-19까지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그 10년 간 경제적으로 낙오한 이탈자들 뿐 아니라 이제 막 노동시장에 진입한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이 '소박했던' 바람은 신기루 같은 꿈이 되어가고 있다. 현실 앞에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떠도는 주체로 남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한 삶을 실제로 실천하고 사투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존재하고 있음을 영화는 증명한다.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생활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이 마치 구석기시대로 회귀한 듯한 생활 풍경을 묘사한다. 이들은 수렵과 채집을 하듯 아마존 물류센터, 캠핑장, 고속도로 식당에서 단기 일자리를 구하며 동굴에 몸을 누이듯 밴 안에 몸을 누인다. 특히 영화는 실제 노매드인 린다 메이, 스웽키, 데이브와의 우정을 통해 이들의 다공성(porous)이면서도 쉽게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노매드 식의 연대에 주목한다. 구석기인들처럼 이들은 서로 평등하고 계급을 의식하지 않으며 식량과 불을 나눈다. 또한 필요 없는 물건은 서로 교환하거나 나누고, 노동의 품앗이를 한다. 불을 지피는 모습, 공룡, 화석, 먼 별빛 등 태곳적을 상징하는 고고학적인 소재들이 도처에 등장한다.
방법론에 대하여
본 영화는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 저, <노매드랜드 : 21세기에 미국에서 살아남기>라는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하였으며 주인공 펀과 데이브를 제외한 일군의 조연 역으로 실제 노매드의 삶을 살고 있는 인물들이 자신의 삶을 연기하도록 하였다. 어딘가 익숙한 이 작법은 다름 아닌 TV 다큐멘터리의 DNA를 가진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법과 닮아있다고도 할 수 있다. 마침 최근에 그의 20년간의 영화 자서전을 읽을 기회가 있어서 이 감독의 작업 방식과, 영화에 대한 생각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데뷔작 <환상의 빛>에서 본래 의도와는 달리 이국적이고 동양적 가치관을 읽어내는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서 그는 적잖이 당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부러 무관한 정서의 작품을 찍고자 하였으며 마치 재즈에 비유할 수 있는 TV의 즉흥적인 성격을 가진 비연극적인 작품을 찍고자 한 것이 바로 <원더풀 라이프>이다. 그는 <원더풀 라이프>의 방법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 다시 말해 다큐멘터리나 픽션이라는 식으로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해석하며, 눈앞에 있는 사람이 배우든 일반인이든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자는 규칙을 정한 것입니다.
다큐와 픽션의 경계를 허문 장르 안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직접 연기하는 인물들의 자기표현 욕구가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것이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놀라운 화학작용을 발견한다. 이로써 인터뷰는 기억의 재현이 아니라 표현의 생성 과정이 된다.
<노매드랜드> 역시 픽션과 다큐가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지점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이를 두고 '픽션에 다큐멘터리식 터치가 들어갔다'거나, '페이크 다큐'라고 단순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역시 그의 영화에 다큐식 터치가 가미되었다는 평가에 억울하다고 반응한다. 그는 자신의 영화들을 다큐식 촬영을 단순 차용하여 만든 영화가 아니라고 여긴다). 그 이유는 아마 다음과 같은 자오의 섬세한 연출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카메라는 광활한 대자연과 그 안에서 늙고 풍화되어 가는 인물들을 자연주의적이면서도 애정 어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말하자면 극적이거나 작위적인 연출을 지양하는 대신, 대상이 스스로를 자연스레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을 애정과 시간을 들여 지켜보고자 한다. 특히 현실 고발의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여 한 생태계를 파괴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감독은 노매드의 삶에 미묘하고도 아주 깊숙이 그러나 그들의 존엄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침투하고자 한다. 결과적으로, 카메라의 존재와 배우의 존재는, 노매드들이 스스로의 삶을 인식하는 태도에도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노매드인 출연진들도 이제 카메라 앞의 배우처럼 자기 삶에 대한 표현 욕구를 드러낸다. 그때 우리는 이들만이 가진 긍지, 강인함, 존재론적 고독을 발견한다.
펀 역을 맡은 프랜시스 맥도먼드 또한 본인이 연기를 한다는 사실, 스스로가 배우라는 사실조차 잊고 5개월의 긴 여정 동안 순전히 펀이라는 인물로 살아간다. 맥도먼드는 실제로 아마존에 이력서를 내고 취업도 하고, 밥 웰스가 설립한 RTR(Rubber Tramp Rendezvous)에 머무는 노매드들과 교류를 하며 함께 생활한다. 그동안 누구도 그녀를 유명 여배우라고 의심해본 적 없을 만큼, 맥도먼드는 생활 연기에 녹아들어 완벽하게 한 캐릭터를 체화할 수 있었다. 이 성실하기 그지없는 배우는 나중에 펀이라는 인물의 핵심 코어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인터뷰한다(링크). RTR에 처음 입성했을 때 펀은 처음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 그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조용히 듣는 역할만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밥 웰스와 일대일로 대면할 때 자신의 이야기(실은 픽션의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두 사람의 독대 장면은 후반부에 한번 더 반복되는데, 맥도먼드 배우는 자신의 이야기를 순수한 진실로 받아들이는 밥 웰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그 장면이 끝나고 배우라는 사실을 털어놓고 말았다고 한다. 바로 이 지점이 이 영화가 타인의 삶을 대하는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는 완전히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일 수 없으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감독이나 제작자의 생각을 투영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감독은 배우 양쪽에게 정보의 불균형을 주고 돌발적인 지시를 내린다든가 하는 '조작'과 테크닉을 통해 즉흥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밥 웰스가 그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상실에 대해 고백하는 장면은, 펀이라는 같은 처지의 청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토로이자 고백이었다. 이 장면은 밥 웰스를 외부인으로서 관찰하면서 얻어내기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가 사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배우였고 그녀의 남편도 멀쩡히 살아있다 한들, 그가 드러낸 진실된 감정은 결코 훼손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영화은 이런 진귀한 장면을 포착, 발굴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맥도먼드가 자신의 정체를 공개해버리고 용서를 구한다. 그 순간 아주 밀도 있게 형성된 특별한 관계는 다음 국면을 맞이한다. 이 영화는 배우와 카메라를 통해 실존하는 인물들의 삶의 가장 내밀한 곳까지 다가가려고 하지만, 그들의 순수한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성숙한 태도를 취한다.
애도를 마치고 나면
이제 비로소 펀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2008년 경기침체로 미국 엠파이어의 석고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마을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마을은 폐허가 되고 만다. 사랑하는 남편 '보'마저 병으로 떠나보내자, 펀은 집을 청산하고 밴 한대를 몰고서 노매드의 생활을 시작한다(영어로는 hit the road라고 표현하는데 모든걸 박차고 길 위로 떠나는 이미지가 상기된다). 이 유랑길은 1) 생존을 위한, 2) 도피를 위한, 그리고 3) 애도를 위한 유랑이다. 먼저 1) 생존이란, 삶의 터전을 잃은 이가 때때로 자신에게 떨어지는 파트타임 일자리를 수렵/채집하는 과정이다. 초반에 비치는 아마존 물류 시스템의 부감은 왠지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주인공이 저 18세기의 낭만적인 방랑객이 아니라 21세기 자본주의 시스템의 변방을 떠날 수 없는 취약계층 노동자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장면이다. 다음으로 2) 도피는, 상실로부터의 도피이다. 펀은 늘 새로운 시도나 친구들의 초대를 거절하는 습성이 있다. 펀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모든 옛 기억들을 자신의 밴에 차곡차곡 쌓아서 들고 다닌다. 그리고 데이브가 이를 훼손했을 때 노여워하고 심지어 다시 접착제로 붙이기도 한다.
이런 회피형 인물이, 의도치 않게 다른 노매드들과 스치고 대자연의 존재를 마주하며 하나둘씩 상처를 씻어내려가게 된다. 그녀는 한시적인 일을 하면서 유독 오물을 치우거나 얼룩을 닦는 일을 많이 한다. 샤워를 하는 뒷모습에서 검은 물이 씻겨내리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다. 즉, 펀은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씻고 정화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주어진 애도의 과업을 완수해가게 되는데, 이런 점에서 우리는 이 영화를 노년의 성장 영화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서사는, 무언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떠났다가 깨닫고 돌아오는 서사인가?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돌아오기 위한 떠남이 아니라 떠남을 위한 떠남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해보인다. 첫번째에는 도망치고 잊기 위해, 두번째에는 기억하고 되찾기 위한 떠남이다. 예컨대 펀에게는 몇번 정착할 기회가 주어진다. 사실 주변에는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안전망이 있다. 데이브와 언니 부부의 존재가 그러한데, 이들은 펀이 도피와 애도의 순례를 끝마쳤을 때 노매드의 삶을 버리고 정착하게 될 것인지를 다시한번 자문하도록 하는 역할이다. 로드무비의 여정이 반지처럼 한 번의 원을 그렸을 때, 그녀를 추동하는 힘은 생존을 위한 갈구도, 과거로부터의 도피도, 상실한 자의 애도도 아닌 태생적인 자유로움과 독립심, 강인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서야 비로소 그녀는 프레임 바깥으로 사라지며, 망자의 시선으로부터 끝내 자유로워진다.
스웽키가 마침내 알래스카에 도착하여 보내온 영상에서 제비들은 알을 깨고 나온 껍질을 물가에 떨구고 어디론가 한없이 떠돈다. 겉으로 보기에 목적이 없는 어지러운 비행일 지라도 자연의 순리 안에서 이들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비상하고 있는 것일 테다. 이처럼 스스로의 방랑에서 각자 그 목적을 찾아내는 것이 노매드들이 거쳐야 할 통과 의례이자 숙명일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해석을 차치하더라도, 거대한 자연의 풍광과 목격한 자의 내면의 풍경을 2.39:1의 웅장한 시네마스코프 안에 담아내는 데 성공하였는데, 과연 테렌스 멀릭 스쿨이라고 자처할만하였다. 또 한편으로 감독은 노매드의 삶을 무조건적으로 추종하지 않는 균형을 잡기 위하여, 평범한 가정의 일상 안에서도 생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려 한다. 펀이 데이브의 집에 초대받아서 데이브 손자를 어색하게 안고 있다가 잠든 아기의 손을 쥐어보는 장면은, 거대한 나무와 자라나는 여린 잎을 보듯이 자연을 바라볼 때와 같은 순일한 감정을 자아낸다.
마치며
이 글의 서두는 홈리스가 되는 취약계층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길 위를 달리고 대자연의 풍경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우리들의 시선은 점차 미국 사회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부터 대자연 그 자체, 자연 앞의 나의 미약한 존재에 대한 감각으로 옮겨갔다. (<노매드랜드>도 이러한 순차를 따르고 있다) 우리가 샌디에이고에 도착했을 때 꽤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위험해보이는 절벽임에도 어떠한 보호막도 쳐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안내 간판에는 <접근하지 마시오, 바다사자 어미가 갓 낳은 새끼들을 떠날 수 있음>이라고 적혀있었다. 인간에게 추락할 수 있다, 위험하다고 경고하기는 커녕, 너의 위험은 내 알 바 아니고 생태 환경을 위해 접근하지 말라는 말이 미국 특유의 자유주의적인 사고라고 생각되었다. 노매드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이를 닮아있다. 야생에 맨몸으로 뛰어든 사람들은 앞으로 닥칠 상황이 얼마나 위험할지를 스스로 가늠하고 판단하면서 더듬거리며 길을 나아간다. 스페어타이어도 없이 서부를 횡단하는 펀에게 선배 스웽키가 조언해주듯이, 이들은 사회적 보호막에 의지하는 대신 절벽에 떨어지지 않도록 서로의 외침과 손길을 의지한다.
우리의 자동차 여행은 사실 험난했다. 하루 50불짜리 에어비앤비 숙소는 형편없었고 위험한 다운타운 동네의 안 좋은 집을 예약하여 숙소를 옮긴 적도 있었다. 그때 든 생각은 자동차로 미 서부를 횡단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절대 못하겠단 생각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늘 떠나기를 고대하고 있지만, 그만큼 정주하는 삶에 익숙해져 있고 제대로 잘 정착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살기도 했던 것 같다. 영화 전반부에 노매드들이 무모하고 고집스럽단 인상마저 받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 판단을 진정으로 거둘 수 있었다. 제비들이 알을 깨고 날아다니는 데에는 어떤 말과 해석도 필요 없듯이, 자연에서 태어나 다시 자연으로 풍화하는 삶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그동안 나름 여러 대륙의 대자연들을 찾아다니면서 눈물이 흐를 만큼 위엄있는 그 풍경들이 여행자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장면들은 강하게 뇌리에 박혀 때때로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지금 내 삶에 작용하고 있다. 어쩌면 <노매드랜드>도 그런 영화가 될 것만 같다.
2018년 겨울, 몬테레이 베이의 석양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자서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이지수 옮김 pp. 32-45
이미지 출처
https://www.vogue.com/article/oscar-predictions-2021https://tonebenderspodcast.com/159-nomadland-with-sergio-diaz-and-zach-seivers/
https://edition.cnn.com/style/article/nomadland-film-making-of-spc-intl/index.html
https://i.pinimg.com/originals/1c/77/90/1c779035984fbca2c3080c4e93fb8490.jpg
https://www.imdb.com/title/tt9770150/mediaindex/?ref_=tt_mv_sm2021년 4월 26일 감상 / 2021년 4월 28일 씀
* 본 콘텐츠는 브런치 karenine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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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아'들의 조우, 사랑, 일탈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리뷰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으니 관람하지 않으신 분은 읽으실 때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포스터]
[감독]
니콜레트 크레비츠
[출연]
소피 로이스, 우도 키어, 밀란 헤름스
[시놉시스]
한동안 연기 활동을 하지 않은 배우 아나, 골칫덩이로 여겨지는 고아 아드리안. 서로를 만나게 된 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고, 거리를 거닐며 담배를 나눠 피우는 사이로 발전한다. <와일드 Wild>(2016)로 사랑의 범위를 확장하는 시도를 했던 니콜레트 크레비츠 감독의 신작이다.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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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때로 일탈을 꿈꾼다. 삶이 메마를 때, 더 이상 흐르지 않을 때. 그 옛날 세차게 흐르던 강이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아에이오우: 사랑의 빠른 철자법>의 주인공 '아나' 역시 그러한 일탈을 꿈꾼다. 남편과 사별한 그에게 삶의 낙이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직장에서는 '나이에 비해서는 매력적이나 그럼에도 한물 간 퇴물'로 취급 받고 사회는 그를 도움이 필요한 노부인으로 바라본다. 그의 젊음은 시들었고 그는 더더욱 위축되어 간다.
아나의 꿈은 한 어린 소매치기, '아드리안'과의 조우에서부터 실제가 되었다. 어수룩하게 가방을 훔쳐 달아나던 아드리안을 처음 보았을 때, 아나는 무언가 형용키 어려운 싱그러움을 느낀다. 그는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운명은 지독하게도 그 두 사람을 이어주었고, 두 사람은 어느 복지국 재활 프로그램에서 재회했다.
'아'로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떠한 동질감을 느낀다. 과잉행동장애로 말을 더듬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그는 아나와 마찬가지로 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다. 부모 자식뻘의 나이 차가 나면서도 두 사람이 서로에게 강렬하게 이끌리게 된 것은 어쩌면 이러한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드리안은 온몸으로 아나를 원하노라 표현한다. 매일 같이 그를 찾아가고, 남의 물건을 훔쳐서라도 그를 위한 선물을 마련한다. 그리고 아나는 소외된 소년인 아드리안에게 어른으로서가 아니라, 동등한 사람으로서, 같은 눈높이에서 조언한다. 그는 말한다. 잘 안되면 어떠냐고, 네가 잘하는 다른 걸 해보라고. 각자의 방식으로 고여만 있던 서로의 삶을 흐르게 한 것이다. 새로운 세계로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영화에서는 '아'는 막을 수 없는 소리, 항상 뻗어나가는 소리이다.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르던 것을 깨달을 때, 감탄할 때, 오르가슴을 느낄 때... ... 그 모든 순간, 가장 먼저 내뱉는 소리가 바로 '아'라는 것이다. 아나와 아드리안, '아'로 이름이 시작하는 두 사람은 어쩌면 서로에게 이러한 '처음' 혹은 '깨달음'을 선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비록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만한 방식일지언정, 서로에게는 각별하다. 그들은 그토록 꿈꾸던 일탈이라는 과업을 완수했으므로.
사회적 관습에 익숙해진 우리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나이든 여자와 도벽이 있는 소년의 결합은 그다지 도덕적이지 않아 보인다. 그들은 숱하게 위법을 저지르고, 그로 말미암아 형사에게 쫒기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 나름대로의 해피엔딩을 맞이하면서.
소위 말하는 '유교걸(유교 사상에 찌든 여자)'인 필자로서는 이들의 일탈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모든 부도덕함을 기꺼이 무릅쓰고 마침내 서로에게로 가 닿는다. 어째서일까?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기존의 고루하고 메마른 일상에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혹은 우리가 꿈꾸는 어떤 판타지를 스크린 너머에서 재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 영화의 해석은 관객이 생각하기에 달려있겠지만.
'아에이오우-사랑의 빠른 철자법', 22.08.26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08/25(목) - 09/01(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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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나리
미나리
미국 영화계는 왜 '미나리'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걸까. '미나리'는 이미 수십 개의 영화상을 받았고,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다. '미나리 현상'은 미국 영화계는 물론, 한국에서 미국의 한인 이민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잘 드러낸다. 말하자면, 낯익은 서사를 신선한 영화언어로 만들었기 때문에 미국 영화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들어 있는 영화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젊은 부부는 병아리 감별사 자격증을 갖고 미국으로 이민 온다. 캘리포니아에서 살던 가족은 중남부에 있는 아칸소주로 이주한다. 남편 제이콥이 이끈 땅은 비옥하고, 땅값이 싼 곳이어서 넓은 땅을 매입할 수 있었다. 아내 모니카는 이주가 달갑지 않지만, 아들 데이빗의 건강을 위해 동의한다.
캘리포니아의 대도시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던 두 사람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제이콥이 농장을 일굴 수 있는 아칸소로 이주하는데, 가까운 마을을 가려해도 자동차로 한 시간이 걸리는 외진 곳이다. 아칸소주는 중남부에서 약간 동쪽에 있는 지역으로 바로 옆에 오클라호마주가 있다. 신기하게도, 아칸소주가 있는 경계로 남북으로 길게 왼쪽은 사막지역이고, 오른쪽은 비옥한 땅이 있는 지역이다.
부부에게는 딸 앤(지영)이 있고, 아들 데이빗이 있다. 두 아이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만, 엄마, 아빠와 대화할 때는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하고, 한국말을 비교적 잘 알아듣는다. 남매끼리 대화할 때는 주로 영어로 대화한다. 이민 2세는 자연스럽게 미국 사회에 적응하는데, 그 첫 번째 현상이 언어의 사용이다.
부부가 함께 일하기 때문에 아이를 보살펴 줄 사람을 찾을 수 없자, 부부는 한국에 계신 모니카의 어머니를 초청한다. 한국에서 할머니가 도착하고, 할머니와 함께 도착한 짐에는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음식 재료들이 바리바리 들어 있다. 고향을 떠난 것은 젊은 부부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나, 이 시기 한국 상황은 전두환 군부독재가 지배하던 독재국가였고, 민주화 투쟁의 불길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었다.
젊은 부부의 이민이 이런 한국 정치상황과 직접 관련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개인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동물의 보편적 속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당시 한국의 숨막히는 독재 상황이 이들의 이민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할 수 있다.
네 식구의 가정에 할머니 - 한국 할머니 - 의 등장은 잔잔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데이빗은 외할머니를 낯설어 하고 '할머니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할머니에게서 나는 냄새는 '한국' 냄새이며, 미국에서 태어난 데이빗은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조국'인 '한국'의 낯선 냄새이기도 하다.
하지만 할머니는 손녀와 손자에게 스스럼 없는 '한국 할머니'로 말하고 행동한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영어로 말하고, 할머니의 말은 알아 듣지만 한국어로 답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할머니를 불편하게 여기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다.
할머니는 데이빗과 함께 집 근처를 산책하다 작은 개울을 발견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를 그 개울 옆에 뿌린다. 할머니는 미나리가 어디에서든 잘 자라는 식물이라고 말한다.
제이콥이 아칸소주로 이사한 것은 농장을 꾸리기 위한 꿈이 있기 때문이다. 제이콥은 한국에서도 시골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모가 농사 짓는 모습을 보며 자랐던 것이 부부의 대화에서 아주 잠깐 드러난다. 반면 모니카는 서울 또는 대도시에서 태어나 미국에 이민와서도 캘리포니아에 살았던 것을 좋아했고, 아칸소의 시골로 이주한 것이 달갑지 않은 상태였다. 모니카가 아칸소로 이주한 것에 동의한 이유는 데이빗이 갖고 있는 선천성 심장병에 자연 환경이 도움이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 때문이었다.
제이콥은 낯선 곳에서 농사를 지으려 준비하면서 이웃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는 미국인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다. 그 선입견은 이방인이 갖는 공통의 심리이기도 하다. 낯선 곳,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되면 우선 경계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태도는 자기와 가족을 지키려는 자연스러운 심리 상태이며, 생존을 위한 기본 심리이기도 하다.
제이콥은 농사를 짓기 위한 우물을 파야 하는데, 200달러를 달라는 업자의 요구를 거절하고 자기가 직접 우물을 판다. 중고 농기계를 구입하는 것도 마을 주민에게 싼 값으로 사는데, 그렇게 우연히 폴을 만난다. 폴은 백인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백인은 아니다. 그 역시 시골 촌놈이며,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인물이고, 아마도 혼자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며, 이상한 주문과 주술을 하는, 조금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하지만 제이콥은 폴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는다. 폴 역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기꺼이 제이콥을 돕는다. 폴은 일요일이면 십자가를 메고 도로를 걷는 고행을 하는데, 폴의 인생도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어쩌면 폴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후 PTSD로 고통받는 사람인지 모른다. 폴이 제이콥에게 친절한 것도 우연이지만 제이콥이 한국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폴은 외로운 사람이고, 누구든 가까이 지낼 사람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농사를 짓던 제이콥은 판매를 할 만큼의 농산물을 수확하고, 판로를 개척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갑자기 할머니가 뇌졸증이 발병하면서 병원에 입원하고 모니카는 미래가 확실하지 않은 농장, 어머니의 발병으로 인한 간병과 경제적 문제, 아들 데이빗의 심장병 등 자신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로 힘겨워한다.
모니카는 이웃에 사는 폴을 초대해 식사하면서 뇌졸증으로 쓰러진 어머니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퇴마 의식을 치른다. 한국식으로 보면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것인데, 모니카 역시 이런 상황이 좋은 건 아니지만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한 자기 위로라고 본다. 제이콥은 모니카가 주도하는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고, 할머니는 딸과 사위, 손자들에게 짐이 되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제이콥과 모니카는 데이빗을 데리고 도시의 병원으로 간다.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 선천성 심장병 진단을 받았고, 숨차게 뛰는 것도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시골로 이주한 뒤에도 데이빗이 뛰어다니지 못하도록 단속하고 있었다. 데이빗을 진단한 의사는 심장이 많이 좋아졌다고, 운이 좋은 경우라고 말한다.
시내 나온 김에 제이콥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마트에 들러 자기가 재배한 채소를 납품할 수 있는지 상담하고 긍정적인 답을 얻는다. 제이콥은 아칸소 뿐 아니라 가까운 오클라호마에도 채소를 납품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는다.
가족이 모두 외출한 사이, 할머니는 혼자 쓰레기를 태운다. 몸이 자유롭지 않지만,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고 애쓰는 할머니의 모습이 안타깝다. 그러다 쓰레기에서 떨어진 불이 농작물 보관 창고에 옮겨 붙으면서 가족들이 도착할 때쯤 창고는 불길에 휩싸이고, 모두들 망연자실한다.
할머니는 자기의 잘못으로 제이콥의 농사를 망쳐서 절망하고 집을 떠난다. 이때 데이빗이 달려가 할머니를 가로 막고, 가족은 다시 트레일러로 돌아와 쓰러져 잠에 든다. 할머니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지만, 사실 채소 저장소는 다시 지으면 되고, 채소는 계속 자라는 것이니 그것이 죽을 만큼 큰 절망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 다행인 것은 데이빗의 심장이 거의 정상에 가깝게 좋아졌다는 것이고, 제이콥이 시내의 마트와 납품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에서 이민오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어 한국 채소의 요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이다.
채소 저장고의 화재는 제이콥 가족에게 한순간 절망스러운 사건이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제이콥과 모니카가 화해하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제이콥은 데이빗과 함께 할머니가 심어 놓은 미나리밭을 찾아간다. 싱싱한 미나리를 뜯으며, 어디서나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낯설고 물선 미국에서 힘겹지만 조금씩 뿌리 내리는 한국인 이민자의 삶이 희망적이라는 메시지를 보이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의 시간과 정서는 1980년대를 나타낸다. 우리는 2020년에 이 영화를 보면서, 마치 한국의 1970년대를 떠올리는 기시감을 갖는다. 따뜻하고 살가운 할머니의 모습과 무한한 애정, 고생하면서 가족을 먹여살리고 가정을 지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은 가난했던 우리 부모 세대의 모습이며, 미국의 초기 이민자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미국의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들 대부분이 이민자들이기 때문이며, 이민자들이 갖는 보편적 감성을 영화가 매우 잘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국을 떠날 때의 낯설고 두려운 심정, 낯선 땅에서 먹고 살려고 발버둥을 쳐야 했던 자신들의 과거가 이 영화에 과정 없이 그려지고 있는 것이 반갑고, 무엇보다 과장하지 않고, 감상적이지 않으면서도 담담한 영화 언어로 이민자의 삶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
자연이 드러내는 풍경, 바람소리, 물소리, 빗소리, 풀잎이 스치는 소리, 여기에 잔잔하게 흐르는 배경음악까지, 영화는 미국의 농촌 풍경을 낯설지 않게 보여준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나 비슷하다는 것, 초보 이민자가 만나는 이웃들 역시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에나 대부분의 사람은 친절하고, 다정하다는 걸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제이콥과 모니카의 이웃들이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이라는 건 실제로도 그렇겠지만, 영화에 필요 이상의 감정을 넣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도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나쁜 인물이 등장하면 그 인물과의 갈등으로 촉발하는 시선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약간의 희망을 보이면서 끝난다. 하지만 할머니는 뇌졸증으로 쓰러졌고, 제이콥이 하는 농사는 항상 수익이 난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아칸소만 해도 한여름의 태풍이 엄청나서 태풍 피해를 입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결말을 말하지 않는다. 이 가족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만 확실하다. 사람은 힘들게든, 고통스럽게든 그렇게 한발 한발 땅을 디디며 살아갈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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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 드세요 연상호씨, 당신 아직 죄인 아닙니다
** 스포일러에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고 감상해주세요!
** 영화에 대한 비난이나 비하의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영화 '염력'을 개봉하자마자 관람했습니다.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신선한 시도였기에, 많은 호불호가 갈릴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염력의 장단점과 캐릭터 특징을, 2분 안에 주관적으로 압축하여 빠르게 정리해봤습니다. (이 때문에 영상 편집 퀄은 다소 떨어질 수 있습니다)영상 속에 아기자기하게 많은 재미요소가 들어가있으니 재밌게 감상해주세요 :)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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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력 #연상호 #류승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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