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6-10 17:09:41
6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호불호 크게 갈리는 <원더랜드>. 그럼에도 불구하고 1위
호불호 크게 갈리는 <원더랜드>.
6월 개봉작들이 아쉬운 성적을 내고 있습니다.
6월 둘째 주 박스오피스 순위 알아볼까요?
국내 박스오피스 ✍
개봉 첫 주 누적관객 수 40만 명을 넘긴 <원더랜드>가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화려한 배우들의 라인업과 감독의 명성으로 기대를 모았던 <원더랜드>의 화제성이 무색하게 아쉬운 성적과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위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3위가 <그녀가 죽었다>가 차지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
마이애미의 형사 마이크와 마커스가 마약 범죄에 연루된 하워드 반장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사상 최악의 범죄 사건을 수사하던 중 오히려 유력한 용의자가 되는 이야기를 그린 <나쁜 녀석들: 라이드 오어 다이>가 개봉 첫 주에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엄청난 흥행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가필드 더 무비>와 <이프>가 한 단계씩 내려오며
각각 2,3위를 차지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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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화한 강형욱
"개의 가장 큰 단점은 인간을 믿는다는 거죠"
개는 늑대와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하지만, 유전적으로 가장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다. 개는 태어날 때부터 인간을 사랑하는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다. 야생동물을 가축화하는 과정에서 그런 방식으로 인간을 잘 따르는 개체를 선별하고 키우고, 인간과 동일한 탄수화물 식단을 먹게 되면서 그렇게 바뀌었다고 보고 있다. 절대 길들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여우도 그런 방식으로 개처럼 사람을 잘 따르게 만든 사례가 방송에 나온 적도 있다.
뤽 베송의 영화 <도그맨>은 인간에게서 철저히 외면받고 개에게서 위로를 받는 한 인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뤽 베송의 귀환이라고 해서 <존 윅>같이 개와 함께하는 엄청난 액션을 기대한다거나, 영화 초반의 모습으로 인해 <크루엘라> 혹은 <조커>와 비교하게 되기도 하는데, 사실 이 영화는 예상과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떤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받는 한 백인 남성이 경찰에게 잡힌다. 그런데 그는 백여 마리의 개를 트럭에 싣고서, 피를 흘리며 여장을 하고 있는 기괴한 모습이다. 무언가 섬뜩한 느낌을 감지한 경찰은 총을 겨누며 내리라 하지만, 그는 태연하게 담배를 꺼내 피운다. 여장을 한 더글라스(케이럽 랜드리 존스)는 그렇게 유치장에 갇혀, 흑인 여성 의사인 에블린(조조 T. 깁스)과 심리 면담을 시작한다.
범죄자와의 면담을 통해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영화는 <데드맨 워킹>이나 <양들의 침묵>을 떠올리게 한다. 이 사람이 범죄자라면, 그 범죄에 서사를 씌우게 되는 영화인가? 범죄자가 미화되는 영화인가? 혹은 광기의 탄생을 그린 영화인가? 하고 관객은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글라스는 꽤나 흥미로운 사람이다. 아주 신사적이고 당당하다. 그가 두 다리에 보호대를 차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대체 어떤 범죄를 저질렀으며 왜 이렇게나 자신만만한 모습인지 궁금해진다. 에블린은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하 스포일러 포함]
폭력과 혐오의 신과 사도
더글라스는 투견을 하기 위해 개를 기르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따르는 형, 아버지에게 맞고 사는 어머니에게서 자랐다. 아버지의 폭력이 지배하는 가정 분위기는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돈다. 특히 아버지는 투견에게 먹이나 정을 주는 걸 극도로 꺼린다. 아버지는 개에게 먹이를 주고 정을 주는 더글라스를 개 우리에 가둔다. 형이 일러바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폭력을 이기지 못한 어느 날 어머니는 도망간다.
이 집안에서 아버지가 가장 나빠보일 수 있지만, 더글라스가 가장 안 좋게, 위협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의 형이다. 아버지가 폭력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자식을 개 우리에 몇 년이나 가두고 학대하는 인간 같지 않은 아버지지만, 그래도 그것은 어떻게 보면 아버지 나름의 정당성은 있었다. 하지만 그의 형은 폭력을 즐기는 인간이었고, 동생과 어머니에 대한 일말의 애정도 없었으며 아버지의 폭력성을 존경했다. 아버지는 삐뚤어지긴 했어도 아들을 우리에 가두는 것을 나름 교육이라 여긴 반면 형은 그저 동생이 고통받는 것을 좋아했으니까. 거기에 어떤 이유에서든 아들을 총으로 쐈다는 생각에 멘탈이 붕괴된다. 그런 모습을 본 형은 아버지를 감싸고 또 동생에게 잘못을 돌린다. 이후 감옥에 가자마자 자살까지 한 아버지를 생각하며, 더글라스는 '그는 그냥 그런 사람이었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버지가 그 집에서 폭력의 신이라면 형은 폭력의 사도인 셈이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신을 자처하는 숭배의 대상 그 자체가 자신을 신격화한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이 종교를 만들고 제자들이 해당 존재를 신격화시켜 자신들의 세력과 종교를 만든 경우가 많다. 소크라테스를 신격화하고 그의 철학을 정립한 것은 플라톤이었다. 예수를 신격화하고 행적이나 말을 기록한 것은 12사도였으며, 사실상 그리스도교를 정립한 것은 예수를 생전에 본 적이 없는 바울이다. 아버지라는 신은 폭력이라는 교리를 자신만의 합리성으로 행했지만, 형이라는 사도는 폭력이라는 힘에 취한 사도-추종자일 뿐이다. 더글라스가 갇힌 철창에 'In the name of God'이라는 문구를 붙인 것이 그가 폭력의 신인 아버지의 사도역할을 한다는 걸 여실히 드러낸다.
성경에서 개는 하등하거나 나쁜 것으로 종종 묘사된다. 'In the name of God'이라는 문구가, 개 철창 안에서 더글라스가 본 시선으로는 뒤집히고 가려져 'DOG MAN'으로 보인다. 아버지와 형에게 개와 친한 더글라스는 교화해야 할 대상이며 형에겐 단죄해야 할 대상으로까지 변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에게 총맞은 일로 경찰에게 구조되고, 형은 감옥에 갔다. 감옥에 간 형이 출소하면 아버지의 죽음까지 몰아 동생을 죽이려 할 것이 자명했다. 더글라스가 형을 죽인 것은 복수였을 뿐 아니라, 혐오와 폭력에 대항하는 정당방위처럼 그려진다. 이 세상은 폭력과 혐오의 세상이고, 아버지는 폭력의 신이며 형은 폭력의 사도다. 더글라스 역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신을 신에게 대항하는 적그리스도인 도그맨으로 다시 태어난다.
차별에 대항하는 법
아버지가 자살하고 형도 감옥에 가 있는 가정폭력의 희생자인 더글라스는 이후 청소년 보호소에서 자라게 된다. 애매하게 하반신이 마비된 채, 그곳에서도 폭력과 혐오에 노출되어 있다. 그런 더글라스에게 교사인 샐마(그레이스 팔마)와 연극은 한줄기 빛이었다. 연극 속 세상은 자신을 무엇으로든 만들어줄 수 있었고, 그곳엔 폭력과 혐오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차별이 가득했다. 장애인이자 보호소 출신인 더글라스는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개를 돌보는 것이 가장 적성에 맞는 듯했지만 이마저도 국가에 의해 쫓겨난다. 현실은 약자에게 가혹하다. 결국 샐마에게 가졌던 연정마저 짓밟히고 나자, 자신도 자신을 혐오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더글라스가 자신을 차별하고 혐오했던 이들을 단죄하기 시작했다면 다른 영화 속 범죄자와 다름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차별하고 혐오하던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갖지 않는다. 그에겐 그를 위로하는 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이 있는 곳마다, 신은 개를 보낸다"라는 말은 더글라스에게 딱 맞는 말이다. 그는 백여 마리의 개들이 함께하고 있다.
그리고 더글라스가 불행에서 벗어나 자신을 긍정하게 된 계기는 드랙퀸으로서 무대에 서게 된 후다. 드랙퀸은 화려하게 여장을 하고, 립싱크로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추며 무대를 만드는 크로스 드레서들을 말한다. 드랙퀸이 겉보기에는 트랜스젠더나 게이처럼 보일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하기도 하지만, 그냥 이성애자들이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하기도 한다. 드랙퀸으로 유명한 공연은 <헤드윅>이 있고, 유명한 사람은 인어공주의 우르술라의 모티브였던 '디바인'이 있다. 연극을 하면서 남녀역할을 바꾸는 것에 거부감이 없던 더글라스는 드랙퀸의 무대에 푹 빠지게 된다. 그리고 드랙퀸들도 사회에서 차별받는 존재라, 더글라스의 마음을 잘 이해해 줬다. 결국 그는 무대에 서며 불행에서 치유된다.
여기까지 오면, 더글라스 - 도그맨은 크루엘라나 조커와 뭔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크루엘라나 조커는 자신의 극악한 범죄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범죄자의 서사가 들어가 있다. 물론 상처 입은 영혼이라는 점은 비슷하나, 도그맨은 자신의 상처를 너무도 훌륭한 방법으로 극복하고 있지 않은가? 이쯤 되면 도그맨은 대체 어떤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이길래, 기괴한 모습으로 피를 흘린 채 잡히고 정신감정을 받고 있는 걸까.
도그맨은 누구인가
누군가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개를 도그맨에게 데려온다. 도그맨은 그 유기견을 받아들이고, 그의 말을 듣는다. 이 지역의 악질적인 조직이 세탁소 아줌마를 못살게 군다는 것이었다. 도그맨은 마치 늘 이런 일이 있던 것처럼, 개들을 이용해 약자들을 보호해 준다. 그 모습이 꽤나 능숙하다. 그리고 부의 재분배라는 명목아래, 부잣집에서 개들을 이용해 몇 보석을 훔쳐낸다. 부의 재분배를 외치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보석을 빨리 팔아치운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도그맨 자신을 죽음으로 위협하는 사람들을 정당방위로 죽였다.
그리고 세탁소 아줌마를 보호하려고 폭력조직을 개로 위협한 일로, 조직이 도그맨을 죽이려고 찾아온다. 도그맨과 개들이 총을 든 조직과 상대하는 모습은 철저하게 준비되었다기 보단, 어설프고 처절하다. 도그맨은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세탁소아줌마를 위해 이런 위험한 짓을 했었단 말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더글라스의 말을 빌리자면, 더글라스 - 도그맨은 빌런도 안티히어로도 아니다. 그저 차별의 사회에서 살려고 몸부림치는 한 장애인이었고, 자기를 따르는 개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도둑질을 좀 하거나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을 개로 보호해 주는 일이 전부였다. 도그맨은 자신이 형과 보험조사원을 살해한 것을 담담하게 고백하고 인정한다. 비록 정당방위라고 할지라도. 도그맨의 트럭이 쫓기며 경찰에게 잡히게 된 그 사건도, 사실은 조직이 총을 들고 쳐들어와서 대항한 것뿐이었다. 도그맨은 빌런이라기엔 너무 착하고, 안티히어로라기엔 너무 소박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도그맨을 크루엘라나 조커와 같다고 생각했을까? 영화 첫 장면에서 보여준 그 무시무시한 기운, 경찰도 뭔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총을 겨누게 된 그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도그맨에게서 느껴지는 그 기괴함은, 사실 편견과 차별로 관객이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현실에서 우리가 가지는 편부 편모가정이나 가정폭력에 노출된 사람에 대한 편견, 장애인에 대한 편견, 성소수자나 크로스 드레서, 드랙퀸에 대한 편견 등 말이다. 특히 그가 잡힌 사건은 그가 무시무시한 가해자라서가 아니라, 사실 피해자에 가까웠다. 경찰도 그걸 알고 그에게 안쓰러운 마음으로 담배를 준다. 엄청나고 기괴한 무서운 범죄잔줄 알았지?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야! 라고 감독은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차별받는 소수자가 발버둥 치는 휴먼드라마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 전반에 흐르는 신-개-더글라스로 연결되는 기묘한 연출로 인해, 이것이 무언가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개통령 혹은 개의 신
앞서 말했듯 개는 인간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정을 주면 금방 사람을 따른다. 사람을 따르고 애정을 가진 개는 굶주린 야생개보다 살의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에 나오진 않았지만 더글라스의 아버지는 투견을 하기 위해 개들을 따로 훈련시키기도 했을 것이다. 방식은 달랐지만, 더글라스는 애정으로 개들과 소통했고 별다른 훈련이 없이도 원하는 행동을 개에게 부탁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이런 일이 실제로 가능할까?
10년 전, 동물농장에서 <천재견 호야>의 사연이 나온 적이 있다. 주인 아저씨가 별다른 훈련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사람처럼 부탁하는 것을 척척 잘 알아듣고 하는 것이다. 수도꼭지를 틀고 닫고, 냉장고에서 음료를 가져오고, 말하지 않아도 일 끝나면 수건과 물을 가져오는 등, 일일이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천재견 테스트도 최상위권 점수를 받았다. 영화 <도그맨>에서 더글라스가 설탕이나 밀가루를 가져오라고 할 때 개들이 알아서 잘 가져오거나, 눈빛만으로 명령을 내리는 모습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호야도 주인아저씨와의 교감과 사랑으로 그런 일이 가능했고, 더글라스도 개들을 사랑으로 대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가능했을지 모른다.
아버지가 개들을 함부로 다루는 집에서 자라, 개들을 사랑으로 대하게 된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개통령, 훈련사 강형욱이다. 강형욱은 개공장을 하는 집에서 자랐고,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아버지와 싸우기도 했으며 결국 개를 제대로 행복하게 키우는 일을 하며 살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더글라스는 흑화한 강형욱이며, 흑화한 천재견 호야의 주인이다. 더글라스가 흑화했다고는 해도 소소한 동네 로빈훗 느낌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도그맨>은 단순히 상냥한 훈련사, 혹은 애정 어린 개주인을 넘어선다. 이미 자신이 개 철창에 갇혔을 때, 형이 'In the name of God'이라는 문구를 달아주고 그것이 뒤집혀서 DOGMAN이 된 시점부터, 그는 적그리스도가 되기로 작정한 듯하다. 그가 개를 얼마나 사랑으로 대하는지는 사실 그렇게 많이 나오진 않는다. <도그맨>에서 의아한 지점은 이 부분이다. 영화에서 개들이 묘사된 모습이 철저하게 훈련받은 군대처럼 보인다. CG가 아니라 진짜 개들을 훈련시켜 그런 장면들을 찍었다곤 하지만, 교감보단 명령으로 느껴진다.
기독교에서는 신에게 의문을 가지면 안 된다. 신과 인간은 대등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관계가 아니라, 신에게 순종하고 신이 하는 행동은 그것이 인간을 위한 큰 그림이라는 것을 믿고 따라야 한다. 그래서 도그맨은 훈련사나 주인이 아니라, 개의 신인 것이다. 이렇게 신의 자유와 사랑을 순종으로 덧씌우는 것이 서양의 기독교서사에 자주 등장한다. 영화 중간중간, 더글라스는 스스로를 예수에 비유하는 행동을 하거나 행동을 하게 된다.
개 철창에서 손에 아버지가 쏜 총을 맞은 채 십자가 모양으로 쓰러진 더글라스는 그 일로 걷지 못하게 되었지만 아버지에게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신에게 버림받은 것인지 구원받은 것인지 혼란스럽다. 그가 세상의 차별로부터 구원받아 드랙퀸으로 구원받는 모습은 앉은뱅이가 일어서는 기적을 연상시킨다. 가난한 더글라스는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을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도둑질로 일으킨다. 또 조직이 기관총을 들고 쳐들어와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그는 굳이 걸어가서 포도주를 마시며 최후의 만찬을 한다. 그저 동네 로빈훗에 불과한 사람이 이런 사건을 거치며, 더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로 여기게 변해간다고 느끼는 것은 나의 기우일까?
그는 결국 개들을 이용해서 유치장을 탈출한다. 그러나 그는 멀리 도망가지 않고, 하나의 의식을 치르기 위해 걸어간다. 마치 십자가를 진 예수가 힘겹게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 골고다 언덕을 오르듯, 바로 옆 성당의 십자가 그림자가 비치는 곳으로 간다. 그리고 그 십자가에 정확하게 자신을 맞추려고 발걸음을 조금씩 조절하며 신에게 외친다. 십자가의 그림자는 더글라스에게 드리운다.
기독교의 4대 복음서 중 하나인 <루가의 복음서>와 외경인 <야고보 복음서>에 따르면,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는 장면을 '성령이 내려오셔서 너에게 그림자를 덮을 것이다(한국번역: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라고 천사가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한국 성경에는 잘못 번역되었지만, 원문에는 성령이 임한다는 것을 그림자가 드리운 것으로 표현했다. 이 장면은 '그림자 수태'라는 모티브가 되어, 마리아의 수태고지 장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장면의 그림으로 많이 묘사된다.
더글라스는 세상을 지배하는 폭력의 신에게 대항하는 적그리스도로써 더 완전히 새로 태어나려고 한다. 그가 그림자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는 것처럼 보이려는 자기 연출은, 그림자로 드리워진 성령의 힘을 받아 더욱더 강한 도그맨이 되려는 의식이다. 단순히 오래 서있다가 쓰러졌다고 해서 더글라스가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더욱 강인하게, 동네 로빈 훗에서 진정한 개의 신 도그맨으로 태어났다. 그러기에 불행이 있는 곳, 자신을 상담해 준 에블린에게 개를 보내지 않았던가. 왜냐하면 바로 자신이 신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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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그맨>은 <크루엘라>나 <조커>, 혹은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같은 빌런 서사 혹은 안티히어로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잔인하고 섬뜩한 장면이나 액션도 없고, 그의 수족이 된 개들은 CG가 아닌 실제 훈련받은 개들이라 살기가 느껴지지 않아 전혀 무섭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귀엽기까지 하다. 개를 죽이는 장면은 나오지 않고, 귀여운 개들은 천하무적이다. 끔찍한 인물인 줄 알았던 더글라스는 사실 불쌍하고 착한 사람이다. 그런 것들이 영화의 좋은 메시지를 조금 흐린다고 생각한다. 과연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라면서. 오히려 마케팅에서 크루엘라나 조커 언급을 하지 않는 게 좋지 않았을까?
그렇더라도 날것으로 드러내는 뤽 베송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감각, 케일럽 랜드리 존스가 만들어낸 더글라스의 캐릭터는 살아있다. 별것 아닌 것들을 별것으로 만들어내는 힘, 그리고 그 별것은 사실 우리가 만들어 낸 차별과 혐오에서 나왔다고 귀에 대고 소리치는 힘 말이다.
*여담으로, 주인과 그렇게 사랑으로 교감했던 천재견 호야의 주인아저씨는 4년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작년 <단짝>이라는 방송에서 주인아저씨의 아들이 호야를 아직도 키우고 있는 모습, 아저씨의 생전 목소리를 듣고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나와 많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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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법칙 첫 번째,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생의 법칙 첫 번째,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근 한국에서 대만영화 리메이크작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가 개봉했다. 대만원작이 워낙 팬층이 탄탄하기 때문에 예고편이 공개된 이후, 원작팬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두 영화 모두 보지 않아 비교할 수 없었지만 원작을 뛰어넘는 리메이크작은 드물뿐더러 평이 좋은 작품이었기 때문에 원작을 먼저 보기로 결정했다. 원작영화를 본 현재 시점에서 ‘과연 한국판이 원작의 흥행 포인트를 잘 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로맨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혹은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로 나뉜다. 물론 아름다운 외적 요건을 갖춘 주인공은 로맨스의 필수 요건이다.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결국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야기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대만판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잘 만든 로맨스 영화다. 영화라는 장르가 비주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환상적 이미지를 잘 활용하면서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를 적절히 배치했다는 말이다.
영화는 제목에 충실하다. 감독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대만의 배경을 그대로 반영한다. 원작 소설의 작가이자 영화의 감독인 구파도는 실제 1994년 ‘그 시절’의 대만과 ‘우리’들을 그대로 소환한다. ‘늑대 7’을 오마주한 영화의 첫 장면, 션자이와 커징턴이 2년 만에 전화를 하는 계기가 된 ‘921 대지진’뿐 아니라, 극 중 인물들이 즐기는 음식과 놀이, 음악은 세대적 공감을 이끌어낸다. 이 영화가 한국에 처음 개봉했을 때는 중화권에서만큼의 큰 흥행을 하지 못했다. 국가 간 시대배경적 차이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 관객이 사소한 디테일을 이해할 수 없더라도 같은 아시아권인 만큼 문화적 차이가 서구권만큼 크지 않다. 따라서 개봉 이후,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14년이 지난 후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영화는 국경을 넘더라도 변하지 않는 인생의 법칙을 전한다.
인생의 법칙 첫 번째,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겁이 나는 걸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솔직해지기 어려운 이유는 그만큼 그 사람이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가 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인간을 비롯한 세상의 만물은 모두 미추를 동시에 가지고 있지만, 멀리서 보았을 때는 하나의 형태가 뚜렷해 보이는 법이다. 션자이는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시작하기 전 설레는 감정이라고. 정말 사귀고 나서는 좋았던 감정이 많이 사라져 버린’다고. 아직 맞닿지 못한 마음은 포장지를 풀지 않은 물건과도 같다. 아름답게 포장된 마음을 두고 션자이와 커징턴은 서로에게 다가갈 용기를 내지 못한다.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결국 포장을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법칙 두 번째, 인생은 타이밍이다. 다른 말로 하면 운명의 흐름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운명을 이겨내려면 유일하게 션자이와 사귄 아허처럼 용기를 내거나 만화가로 성공한 후지웨이처럼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운명은 언제나 주인을 앞서간다. 션자이는 자신의 마음이 적힌 풍등을 커징턴에게 전하지 못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서로를 먼저 떠올리지만 션자이는 이미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있다. 결국 운명의 흐름에 따라간 션자이와 커징턴은 서로가 함께할 평행세계를 상상으로만 남겨둔다.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은 아름답지만 씁쓸하다. 어른이라는 무게는 시간이 흐를수록 용기를 내기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완전한 아름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포장을 뜯지 않은 물건은 먼지만 쌓이다 언젠가 버려질 뿐이다. 아허의 말처럼 ‘유치하다’라고 말하며 커징턴을 보고 웃는 션자이는 분명 아름답다. 하지만 격투대회가 끝나고 커징턴과의 싸움으로 눈물을 흘리는 션자이 또한, 아름답다. 상처가 난다고 해도 용기를 낼 수 없을까? 다시 뒤돌아 눈물을 닦아주고 용서를 빌며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을까? 언젠가 다 닳아버린대도 시작하지 못한 사랑은 후회로 남기에 당신은 용기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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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회] 세련된 음악과 깔끔한 영상, 가이 리치의 쿨한 액션. 역사영화보단 오락영화에 가까운.
안녕하세요! 지난 3월 11일 씨네랩 크리에이터로 가이 리치 감독의 신작, <언젠틀 오퍼레이션>의 시사회에 참석하게 되어 후기를 작성해보려 합니다. 개인적으로 제 인생 첫 시사회였던지라 기대가 컸는데요. 액션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가이 리치 감독의 영화인 만큼 믿고 영화관에 입장했습니다.
시사회 기념 무대인사 시간이 있었습니다. 강철부대 W 출연진 분들이 오셨는데요. 군인의 입장에서 어떤 부분에 몰입이 되었는지, 어떤 부분이 흥미로웠는지에 대한 코멘트도 있었습니다. 작전 수행에 있어 폭발물을 다루는 장면처럼, 복무 당시에 수행했던 임무와 관련된 장면에서 더 집중이 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언젠틀 오퍼레이션>을 관람하는 대부분의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지점은 아마 해당 작품이 실제 작전을 배경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일 겁니다. 사실 저는 역사에 그리 조예가 깊지 않아 해당 작전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요, 해당 작전의 실제 이름은 “오퍼레이션 포스트마스터”였다고 합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실제 임무를 수행했던 요원들의 사진과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제 배경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보니 더욱 놀랍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나치군에 맞서는 유쾌한 액션 영화 중에서는 이미 수작으로 꼽히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죠. 유대인 출신의 미군인 주인공이 동료들을 모아 나치군을 상대로 복수를 펼치는 내용입니다. 특유의 유머 코드, 시원한 액션으로 유명한 영화인 만큼 <언젠틀 오퍼레이션>의 시놉시스를 읽은 후부터 해당 작품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가이 리치 감독이 풀어낸 ‘나치에 맞서는 최정예요원들’ 이야기는 어떨까요?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이야기를 풀어갈 때에 어떤 지점에 차별점을 두었다고 느꼈는지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음악입니다. 센스 있는 음악이 영화 전반에서 분위기를 더합니다. 영화가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 보니 설명적인 구간이 없다고 할 순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고 스타일리시하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는 깔끔한 촬영과 음악 덕분인 것 같다고 느꼈어요. 영화에 사용된 개성 넘치는 음악은 목숨을 건 작전을 수행하는 중에도 충분히 즐기는 것이 중요한, 비범하다 못해 미친 것 같은 주인공들과도 잘 어울립니다.
또한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막힘 없는 액션을 보여줍니다. ‘스토리상 정예요원이라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많은 군인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많은 나치군이 등장하는데요. 이렇게 가졌던 의문이 무색하리만큼 가차없는 액션을 선보입니다. 박진감보단 후련함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나치군들을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액션 장면을 원 없이 보고 싶으셨던 분들은 반가워할 작품일 것 같습니다.
더불어, 눈을 뗄 수 없는 주인공들의 비주얼이 만족감을 더합니다. 개봉 후엔 이 지점이 입소문을 타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ㅎㅎ…
출중한 비주얼의 배우들이 가이 리치 감독 특유의 분위기와 만나 시너지를 낸다고 느꼈습니다. 배우들의 다른 필모가 궁금해질 만큼 러닝타임 동안 각각의 매력이 잘 드러났습니다.
특히, 라센 역할을 맡은 앨런 리치슨은 오프닝 시퀀스부터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영화를 본 분들이라면 모두 공감하실 거예요.
다가오는 봄, 가까운 사람들과 시간을 보낼 때에 즐거움을 더해줄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스타일리시한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전쟁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 드리고 싶은 영화 <언젠틀 오퍼레이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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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봐서는 안될 욕심을 눈에 담다.
기가 막히는 코믹 연기로 늘 웃음을 주었던 유해진 배우가 '왕'이 되어 돌아왔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다. 특히 유해진 배우의 인터뷰 중에 첫 등장부터 웃으면 어쩌나 라는 말에 약간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가 말했던 것처럼 기존의 친숙한 이미지와 왕의 이미지가 매치가 되지 않아 이질감이 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체 줄거리와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기대되는 가운데, 좋은 기회를 얻어 미리 시사회를 볼 수 있었다. 소현 세자의 미스터리한 죽음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영화 ‘올빼미는 11월 23일 개봉 예정이다.
뛰어난 침술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경수, 그는 동생의 병을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형익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아 어의가 되어 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궁에 들어가며 꽤 오랜 시간 동안 동생과 떨어져야 했던 경수는 그럼에도 동생의 약값을 벌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매사에 입조심을 해야 하는 궁중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반면 8년 동안 청나라에 갇혀있던 소현세자가 돌아오며 굴욕적인 역사를 마주한다. 아들이 돌아왔다는 기쁨도 잠시 인조의 불안감은 극도로 고조되며 전반적인 분위기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눈에 띄지 말아야 할 올곧은 시선과 알 수 없는 시선이 교차하지만 좁혀지지 않는다. 조선의 존폐보다는 그때의 치욕이 앞서는 모습이 그가 가지고 있는 욕망의 형태를 비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권력이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인조는 변화라는 낯선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조선의 존폐가 달린 문제에 서로 다른 욕망이 비치며 갈등이 극대화된다. 한편 보이지 않는 탓에 소리에 집중되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밤이 되며 스산한 분위기로 변한다. 그날 밤, 보지 말아야 할 핏빛 욕망을 눈에 담게 되며 그의 운명 또한 많은 변화를 맞이 한다.
욕심에 눈이 먼 자, 진실에 눈을 뜬 자의 영화의 갈래가 나뉘기 시작한다. 살기 위해 진실을 감출 것인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본 것을 말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저울질이 시작된다. "안 보는 게 좋다고 눈을 감고 살면 되겠는가. 그럴수록 더 눈을 크게 뜨고 살아야지."라는 말과 자신을 믿어주던 두 눈이 보려 하지 않았던 것을 선명하게 만든다. 그 선명함에 온 힘을 다하여 진실을 지키지만 자신의 지키려 했던 진실이 권력의 힘에 짓눌린 모습을 마주한다. 무모함을 이길 정도로 그가 믿었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모습보다는 권력에 눈이 먼 한 왕의 탐욕적인 모습을 그려 기존의 왕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왕으로서 느낄 수 있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끊임없이 손에 쥐기 위해 어떤 수단이든 이용하면서도 내내 불안한 감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난다. 다만 근엄함과 중후함은 사라진 열등감과 욕망으로 점철된 광기 어린 왕만이 남아있어 조금 아쉬웠다. 그런 아쉬움에도 사실에 픽션을 가미한 미스터리 스릴러는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펼쳐 그 단점을 감춘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틈 없는 연기가 영화에 잘 녹아들었기에 극의 몰입을 높였다. 특히 경수와 소현세자가 어둠 속에서 눈을 마주치는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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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등을 밀며 성장하는 우리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해당영화는 씨네랩 크리에이터 활동의 일환으로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된 글입니다
홋카이도를 누비는 빨간 차. 그 안은 어쩐지 수상한 한 남자와 젊은 남녀의 조합으로 심상치 않은 여정임을 예고한다. 낯선 이의 차에 올라 목적지 없는 여행을 떠난다는 것, 그야말로 과거의 소재이기에 낭만이 확보된다. 어쩐지 어색함 만이 감돌 것 같은 이 조합은 예상외로 시끌벅적하고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한 여정으로 향한다. 고전 로드 무비의 정석과도 형태를 보여주며 영화는 단순하고도 확실한 방법으로 홋카이도 길 위를 누비는 빨간 차 안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사실 빨간 차가 나오는 일본 영화는 그닥 낯설지 않다. 여러 화제를 모았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를 쉽게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해당 작품에서 역시 차는 중요한 소재다. 내가 오롯이 소유하는 재산이자 동시에 날 어디론가 이끌어 줄 수 있는 이동 수단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목적지는 내가 정해야 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 주는 것은 차이나 결국 조종간은 내가 잡고 있기에 차에 탄 나는 매 순간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 그것에 대한 부담감도 자유도 여정도 영화는 이야기한다. 4월 2일자로 개봉을 앞둔 <행복의 노란 손수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껄렁대는 청년 긴야가 모든 것을 털어 산 이 빨간 차는 뜻밖의 사람들을 태우고 홋카이도를 누비며 갖가지 사건들을 겪게된다. 그 무엇도 예정되어 있지 않다. 젊은이의 차답게 목적지도 없이 그저 기분에 따라, 도로를 따라 달릴 뿐이다. 하지만 그런 차엔 갖가지 이야기를 담은 세 사람이 타고 있다. 이들은 저마다 하나 씩 잃은 상태로 이 차에 오르게 됐다. 그렇기에 당장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과연 나는 하룻밤 상대만을 원하나? 그저 기분전환 만을 원하나? 일자리만을 원하나? 이 빨간 차도 그 답을 알려주진 못한다. 다만 장시간 달려야 하는 좁은 평수의 차 안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점점 차가 밟는 도로의 색이 짙어질 뿐이다. 영화는 그렇게 다양한 구도로 인물과 차, 도로를 번갈아 조명하며 한치 앞도 모르겠는 여정에 메세지를 뚜렷이 한다.
물론 과거의 작품임을 감안해야 하는 장면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를 감안한다면 긴야와 아케미가 각각 어떤 성장을 겪게 되는지 이미 성장을 마친 어른인 유사쿠가 무엇을 되찾는지 더욱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첫 등장부터 실연의 아픔을 겪은 긴야는 그야말로 날라리, 양아치란 말이 어울리는 청년이다. 모든 것을 털어 '마쓰다 파밀리아'를 살 때마저 문에 걸려 넘어지는 젊은 긴야는 매 순간 가볍게 몸을 던지며 넘어지기 일쑤다. 이러한 긴야의 모습은 영화 러닝 타임 동안 확실히 관람객의 웃음을 책임지지만 어쩐지 덜 자란 아이처럼 그 무엇에도 조심성 있게 해내지 못하는 모습으로도 역시 그려진다. 이런 미성숙의 모습은 아케미를 대할 때도 드러난다. 아케미와의 만남이 우연이었던 것처럼 그는 중반부까지도 아케미를 그저 하룻밤 잠자리 상대로 생각한다. 그녀가 보이는 거부 표시를 곧이 곧대로 받아 들이지 못하며 그저 관계에 있어 우격다짐으로 나올 뿐이다. 두 번째 숙소에 들어갈 때 역시 유사쿠의 훈계를 어리둥절하게 이해했던 그는 자꾸만 여정에 유사쿠를 끼워넣으려는 아케미의 행동에 삐치기도 한다. 하지만 유사쿠의 이야기에 점점 가까워질 수록 그는 보다 적극적으로 유사쿠의 여정을 응원하고 그의 선택에 눈물 흘린다. 아케미가 재차 유사쿠와 여정을 이어나가자는 긴야의 선택에 정말이냐 되묻는 대사가 있는 만큼 영화도 역시 그의 변화를 분명히 보여주려 한다. 영화가 후반부로 나아갈 수록, 긴야가 사람이 되어갈수록 더 이상 넘어지지 않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더 이상 넘어지지 않게 된 청년의 의미를 그 차에 오른 관객 역시 알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아케미에게 역시 나타난다. 남자친구의 바람으로 도쿄에서 실연을 겪은 아케미는 숫기 많은 청년으로 자신에게 돌진하는 긴야에 부담스러움을 표하지만 그와 내내 여정을 함께 할 정도로 호감이 있음을 보인다. 긴야의 성장 포인트가 미성숙함에 있다면 아케미의 경우 자신감이 없다는 것에 있다. 다른 여자를 찾아보라는 대사나 기껏 용기를 내 차를 몰았을 때도 긴야의 마쓰다를 건초더미에 처박아 혼나는 등 성장에 기회에 있어 여러 차례 좌절의 순간이 찾아오나 그는 어쩌면 유사쿠보다도 더 큰 목소리로 집으로 돌아가보자 외치는 인물로써 성장한다. 러닝타임 중 유사쿠가 물리친 깡패에 행태에 가장 목소리를 높이는 것 역시 아케미이다. 숫기가 없어서 긴야의 질문에 대답조차 제대로 못하던 아케미는 그렇게 점점 밝은 목소리를 되찾아가고, 긴야가 눈물 흘리는 순간에 기꺼이 달래주는 인물이 되어간다. 이렇게 두 젊은이는 자신조차 몰랐던 스스로를 발견하며 성장해나간다. 그리고 이렇게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유사쿠의 어쩌면 가장 익숙하고도 뻔한 이별의 이야기이다. 이제 막 출소 한 낯선 아저씨와의 여정 그리고 순탄치 않은 홋카이도 길은 그들에게 확실한 시간을 제공해 준 셈이다.
유사쿠와 아케미 일행은 분명하게도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로 나뉜다. 서서히 밝혀지는 유사쿠의 과거는 일본의 종전 시절과도 맞닿아있으나 아케미 일행의 삶은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자신의 삶을 보다 멋대로 결정할 수 있으나 무엇에 가로 막힌 젊은 세대들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차이를 강조하기 보다는 그런 유사쿠의 등을 젊음의 패기로 힘껏 밀어주는 연대의 모습으로 나타낸다. 그야 세대를 막론하고 '사랑' 이라는 개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마침 홋카이도로 모이게 된 두 젊은 남녀는 도쿄에서 각각 실연을 겪고 떠나온 여행이라는 것에서 타인의 사랑을 위한 여정에 기꺼이 참여하며 자신들에게 결여되어있던 부분들을 성장시키고 끝내 사랑이라는 것을 찾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유사쿠의 재회를 보기도 전에 출발하는 차는 완전한 재회를 위해 빠져주는 것일 수 있으나 그 나름대로의 결말을 지어냈다는 점에 있어서는 유사쿠의 사랑을 보고 성장한 두 젊은이가 나름대로의 사랑을 또 해나간다고 역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한 차례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 어쩌면 홋카이도를 누비던 빨간 차의 이야기는 다름 아닌 영화와 관람객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여전히 유바리 어느 집에는 노란 손수건이 펄럭인다. 바람 따라 누군가의 목적지임을 보여주는 이 손수건은 한 연인에게는 이정표이자 또 누군가에게는 그 자체로 집이 되어주기도 한다. 타인의 이야기로 성장했다면 이제는 관객의 차례이다. 우린 어떤 손수건을 매달 것이며 어떤 이정표를 지나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을 것인가. 은은하게 번지는 주인공들의 웃음 위로 나 역시 웃음 지으며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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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지구를 지켜라가 비운의 명작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나는 그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그렇게 다양한 장르의 느낌을 한 영화에 집약시키기 어려운데 그걸 굉장히 잘 해냈다"라고 팬심을 밝힌 <미드소마> <보 이즈 어프레이드>의 감독 아리에스터가 할리우드 리메이크작품의 제작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오늘의 씨네뉴스 같이 살펴보아요!<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북미 1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북미 공개 첫 주에 1위는 물론 매출액 1000만 달러를 넘겼습니다. 일본에선 지난 7월 공개되면서 83억의 매출액을 기록했고, 국내에선 지난 10월에
개봉해 지금까지 199만명을 기록했습니다.
<거미집> 김지운 감독춘사 영화제 감독상, <올빼미> 4관왕
김지운 감독이 제 28회 춘사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습니다. 여우주연상은 <밀수> 김혜수,
남우주연상은 <올빼미> 류준열이 가져갔습니다. 특히 <올빼미>는 남우주연상과 함께 신인남우상,
신인감독상, 각본상도 거머쥐며 4관왕을 안았습니다.
<서울의 봄> 천만 고지
<서울의 봄>이 누적관객수 700만을 넘어서면서 올해 국내 개봉영화 중 3위를 기록했습니다. 올해 국내에
공개된 영화 중 700만명이상 본 작품은 <범죄도시3>, <엘리멘탈>외에는 없으며 이 기세라면 천만영화를
기록할 전망으로 보입니다.
권은비 일본 영화배우 데뷔<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8일 소속사 울림엔터테인먼트는 "권은비가 내년 가을 개봉 예정인일본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파이널 해킹 게임')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고 밝혔습니다. 권은비는 이 작품으로 연기에 처음 도전하며,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흑발의 미녀 수민 역을 맡았습니다.
<미드소마> 아리에스터 감독<지구를 지켜라> 제작 참여
2003년 개봉한 '지구를 지켜라!'는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 청년 병구가 한 화학품 회사 사장을 외계인으로
의심하고, 납치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장준환 감독의 데뷔작으로 놀라운 상상력과 흡입력 있는
연출, 배우들의 명연기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아리에스터 감독이 제작에 참여하고, 연출은 영화의 원작자인
장준환 감독이 맡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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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데드 다루는 법 - 죽음을 거스른 내 사랑, 그대는 구원인가
살아있는 시체로 돌아온 나의 사랑이여! 그대는 축복인가, 재앙인가? 손자이자 아들 '엘리아스'를 잃고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할아버지 '말러'와 엄마 '안나', 아내 '에바'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소식을 듣고 슬픔에 오열하는 남편 '데이빗', 반려자 '엘리자베트'의 장례식을 마치고 텅 빈 집에 돌아온 노부인 '토라'. 원인불명의 정전이 오슬로 전역을 덮친 이후, 죽은 이들이 다시 깨어나 사랑하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무덤에 묻혔던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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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여자와 사랑에 빠진 파키스탄 남자
* 약간의 스포일러에도 민감하신 분들은 영화를 관람하고 시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재밌게 본 로맨틱 코미디 영화 '빅 식'입니다.
코미디언이자 배우, 쿠마일 난지아니가 자신을 연기한 실화 바탕의 영화인데요. 아카데미가 주목한 로맨틱 코미디, 함께 봐요 :)영화는 7월 18일 개봉입니다!
** 왓챠에 '진상명'을 검색하시면 빠른 단평을 볼 수 있습니다.
#빅식 #쿠마일난지아니 #영화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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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이스 로드> 티저 예고편
캐나다 매니토바주,
다이아몬드 광산 폭발 사고로 갱도에 매립된 26명의 광부들.
이들을 구출할 유일한 방법은 제한시간 내
해빙에 접어든 아이스 로드를 횡단해 구조용 파이프를 운반하는 것뿐.
영하 50도에 달하는 극한의 추위와 눈 폭풍이 도사린 ‘하얀 지옥’ 위니펙 호수 위
불가능한 미션의 수행자로 선택된 전문 트러커 ‘마이크’는
대형 트레일러 3대와 구조팀을 이끌고
예측불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는 아이스 로드를 달리기 시작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단 30시간,
살기 위해 멈추지 말고 질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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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웨이크> 티저 예고편
의문의 공간, 기억을 잃은 채 갇힌 세 남녀! 오직 타인의 목소리에만 의존해 탈출해야 한다? 미스터리 밀실 스릴러 [어웨이크] 티저 예고편 대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