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6-03 11:23:25
6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설계자> 제치고 1위한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100만 돌파!!
국내 박스오피스 ✍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2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습니다. 누적 관객 수 100만 명을 넘어서며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한편 강동원 주연의 <설계자>는 29일 1위에 올라섰으나 주말 박스오피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정상을 탈환하며 2위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죽었다>는 100만 돌파를 목전에 두고 3위를 기록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
<가필드 더 무비>가 흥행 신드롬을 일으키며 1위에 올랐습니다. 존 크래 신스키 감독의 애니메이션 <이프>도 덩달아 2위에 올랐는데요. 한편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가 주말 관객 수가 대폭 감소하며 3위로 내려앉게 되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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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석이 떨어졌던 그곳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Asteroid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애스터로이드는 영화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도시다. 주민이라곤 87명밖에 없는 작은 마을 애스터로이드. 미국 남서부의 한가운데 자그맣게 위치해 있다. 이 동네 가운데에는 차가 지나갈 수 있는 도로가 있고 음식점이 있다. 차를 정비하는 정비소가 근처엔 주유소까지 있다. 이 외에는 다른 숙박시설이 몇 군데 있다. 하지만 이 도시의 명물은 행성이 충돌한 흔적이다. 우주과학이 발달한 도시 애스터로이드. 이 도시에는 이 크레이터를 연구하는 몇 과학자들이 함께 살고 있기도 했다.
애스터로이드는 한적하다면 한적하다고 볼 수 있는 도시다. 이 도시에 방문객이 왔다. 아이들이 내린다. 이 아이들이 온 이유는 도시에 행사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는 영재들을 모아 장학금을 여는 일정이 있었던 것이다. 어느 음식점에 두 가정이 도착했다. 한 가정은 어머니와 딸이 함께 온 밋지와 디아나 모녀, 또 다른 사람들은 오기와 우드로 부자다. 난데없이 아버지 오기가 밋지와 디아나 모녀를 향해 사진을 찍는다. "왜 허락 없이 사진을 찍는 거죠?" 밋지가 묻는다. 오기의 답은 간단했다. "전 사진작가거든요." 대신 일반적인 사진작가는 아니고, 주로 전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찍는 사람이었다. "좋아요. 사진을 인쇄한 결과를 보고 싶군요. 그 대신 사진이 예쁘게 나오면 다 괜찮아요." 밋지는 유명 배우였기 때문에 여기저기 찍히는 사진이 많이 피곤했다. 이 만남을 시작으로 밋지와 오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또 동시에 디아나와 우드로의 이야기 역시 펼쳐진다.
액자 안에 액자
영화는 전체적으로 극 중 극형식을 취하고 있다. 감독의 전작 중 하나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공통점을 취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다만 전작과 갖는 차이점은 배경으로 어떤 것을 기저에 깔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우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카메라는 1985년으로 향한다. 한 소녀가 공동묘지 안으로 들어간다. 어떤 동상 앞에 선다. 주섬주섬 책을 꺼내는 소녀. 책을 쓴 작가는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무슈'라는 호텔 컨시어저다. 그러니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구성은 '들었던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쪽이 되는 셈이다. 다른 작품인 <프렌치 디스패치>는 기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기자는 어떤 이야기를 무슨 관점에서 담는가가 핵심인 직업이다. 심지어 이야기의 전제조건 자체가 한 언론사의 발행인이 죽어가며 남긴 유언이다. 그러니까 들었던 이야기를 관점에 따라 풀어냈다는 것이 작품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본작인 <애스터로이드 시티> 역시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영화 전체적으로 깔려있는 전제조건은 영화의 이야기 배경에 연극이 깔려있다는 점이다. <프랜치 디스패치>가 언론을 소재로 했다는 점과 공통점, 차이점을 동시에 갖는다. 직업인으로서의 특성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 된 것이다. 우선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는 언론인으로서의 특성인 ‘어떤 걸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것이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동한다. 이번에는 <애스터로이드 시티>에 나오는 영화와 예술의 관계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극후반부에 반복돼서 나오는 어떤 문장이다. 이 문장이 직접적으로 나오는 것과는 별개로 영화는 한 이미지를 반복하고 있다. 초반부에 제시되는 특정한 사건, 영화에서 인물들이 대화하는 방식, 웨스 앤더슨 특유의 강박적인 미장센, 이상한 유머감각이 그 근거다. 이는 예술과 현실의 관계라는 영화의 핵심 키워드와도 관련이 있다. 다시 영화의 구조로 돌아온다. 창작자가 어떻게 연극을 만들었는가? 가 영화의 핵심으로 들어갔다는 점은 역시 직업인으로서의 특징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차이점이다. 사실 1차적으로 드러나는 차이점은 ‘구체적인 시기를 설정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하지만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 역시 같은 지점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본작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1955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이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가상의 도시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물론 <애스터로이드 시티>도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 구체적인 시점이 들어갔다는 점은 분명한 특이점처럼 느껴진다. 무슨 말이냐? 당시 브로드웨이, 미국의 연극판은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고 한다. 또 있다. 또 흔히 1950년대 중반의 할리우드라고 하면 걸작이 쏟아지던 때였다. 흔히 고전 할리우드라고도 한다. <현기증>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 여러분들도 흔히 한 번 들어봤을 법한 작품들이 나왔다. 이런 영화들이 개봉하던 때에 이 작품들을 만드는 과정을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것은 이 시기의 예술가들이 갖고 있는 관점을 영화에서 다루고 싶어서였겠지? 즉 1950년대의 미국을 영화가 그리워한다는 점이 핵심이 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는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도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다. ‘무언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에 고정적으로 깔려 있는 대전제가 뭘까? 바로 과거의 사건은 기억 속에서 마모되지 않다면 가만히 있다는 점이다. 이를 왜 그리워할까?를 스스로에게 반문한다면 그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 그 핵심이 저널리스트와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공통점은 결국 예술가의 이면에 깔려있다는 점, 현실에서 벗어나 예술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 와도 닿아있는 셈이다.
흑백과 컬러
이 영화는 전작 <프렌치 디스패치>와 유사하게 흑백/컬러 두 설정을 이어가고 있다. 본작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 흑백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부분은 극에서 현실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반대로 컬러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극 중 극에 관한 부분이다. 이 컬러와 흑백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가도 영화의 소소한 재미거리가 된다. 그러나 단순히 소소한 것으로 영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큰 줄기로서 연출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이 흑백으로 표현한 부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이 흑백 시퀀스 전부가 컬러 시퀀스를 이해하는 거의 모든 가이드라인이다. 대표적으로 초반부에 연극 작가와 배우가 대화하는 신이 있다. 이 부분이 대표적인데, 예술이 현실로 끌고 들어왔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이 반복은 영화 중 연극에서, 다시 후반부의 흑백 시퀀스에서, 초반-후반의 수미상관 구조에서 반복된다고도 할 수 있다. 현실과 가상의 대비? 당연히 경계선을 흐려서 영화의 하이라이트 신까지 끌고 가기 위함이다. 전체적으로 난해한 작품이지만 이 색채대비를 서사로 끌고 온 방식을 주의 깊게 본다면 여러분도 이해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영화에서 사용되는 큰 아이러니 중 하나는 '직접 드러나진 않지만 간접적으로는 엄청 중요하게 밑줄 쳐져 있다'라는 점이다. 작품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두 사람이다. 바로 레오 까락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다. 후자는 <파벨만스> 때문이다. 현실이 어떻게 영화화되는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레오 까락스의 <홀리 모터스>와 <아네트>가 갖고 있는 아이러니가 생각이 났다. 전자 <홀리 모터스>는 얼굴을 바꾸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왜 역할을 바꿀까? 바로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함이다. 역할을 바꾼다는 점을 반복함으로써 영화를 만들고 보는 일이 현실과 얼마나 유사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반대로 <아네트>에서 쓰인 아이러니는 주인공 부부의 딸과 관련한 부분이다. 딸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지만 목각인형으로 묘사가 됐었다. 뭐 이외에도 영화 대사가 매번 노래인 거나 바다를 묘사하는 방식이 누가 봐도 연극적인 것도 작품 자체의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는 초반부에 제시되는 한 에피소드와도 관련이 있었다. 이 사건이 품고 있는 거대한 아이러니가 있고, 또 이 일이 갖고 있는 세팅이 있다. 후자의 성격 상 이 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영화의 제목이 왜 '애스터로이드'인가 와도 관련이 있다.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인물들이 이 일을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공간 설명에서 이미 다 깔려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중요했다고 볼 수 있는 아이러니는 대사에서 나온다. 영화는 <고도를 기다리며>와 비슷한 지점이 있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고독은 상실이다. 캐릭터들은 각자의 사정에 의해 무언가를 잃어버려 외로워하고 있다. 이를 위해 초반부의 한 사건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연극을 만들기도 하며 연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또한 극 중 극에서 이상한 행동을 벌이는 경우도 몇 있다. 이 상실에 대한 리액션은 인물들이 어떻게 대화하는가? 와 관련이 있다. 영화의 난이도를 직접적으로 가장 크게 올리는 요소가 된다. 어느 장면에서는 이게 코미디로 작동한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건 이 사람들이 초반부의 사건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글쓴이는 이것이 <고도를 기다리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인생은 이런 장면들로 가득 차있다. 시간이 약은 아니다. 정말 모든 걸 다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런 건 없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아이러니는 이런 것들이다. 과연 뭐가 현실이고 뭐가 예술일까? 하지만 무엇이든 지금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현실을 위해 예술이 있다. 반대로 예술 덕에 현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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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겐 익숙한데, 걔네들에겐 낯선가 보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성적을 살펴보자!
$411,331,607의 북미 수익과 해외 수익까지 합친 총 수익 $955,775,804은 현재(22년 9월 7일 기준), 전 세계 박스오피스 3위이다. - 북미 수익은 2위이다!
그렇다면, 영화 <블랙폰>은 어떨까?
$89,610,100의 북미 수익과 합친 총 수익 $158,206,100으로 현재(22년 9월 7일 기준), 전 세계 박스오피스 21위이다.
근데, 이 두 영화를 왜, 연결 지었을까? - 그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감독에서 하차하고서 만든 작품이 <블랙폰>이기 때문이다.흥행만 본다면, 진한 아쉬움이 남겠지만 반응은 오히려, <블랙폰>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보다 더 좋았다. -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전문가 74%와 관객 86%, <블랙폰>은 전문가 84%와 관객 90%로 더 높다.
영화는 "그래버"에게 납치된 "피니"가 방 안에 전화기를 통해, 희생당한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이곳을 탈출하는 내용이다.1. 우리에겐 익숙한데, 걔네들에겐 낯선가 보네
근데, 북미 호평과 다르게 국내에서 관람하는 <블랙폰>은 김이 빠질 수도 있다.
이런 이유에는 해당 작품에서 보여주는 "피니"의 조력자 아이들에게 친근하고 익숙한 국내 귀신의 모습이 겹치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컨저링 시리즈, 2013-21>만 보더라도, "귀신"은 대상자들을 정하는 데에는 불특정 대다수로 원인 없이 결정되어 "악(惡)"으로만 바라본다.
그에 비해서, 국내 귀신은 '한(恨)'이라는 정서를 통해 "원인 - 결과"로 이야기를 만든다.어찌 보면, 지난 북미에서 <블랙폰>이 많은 사랑을 받은 이유에는 고착화된 이미지를 탈피했다는 것이 클 것이다! - 퇴마(退魔)와 성불(成佛)의 차이?
그렇기에 더더욱 "스티븐 킹"의 <그것, 2017-19>시리즈와 겹치기까지 한다.
아이들의 두려움으로 탄생한 "페니 와이즈"로부터 성장담을 보여줬던 양화 <그것>처럼 해당 작품 <블랙폰> 역시,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와 귀신을 보지만 자신과 달리 적극적인 여동생 "그웬" 등을 배치하며, 궤를 같이 가려 한다.2. 마동석이라면, 달랐을까?
그렇기에 악당을 맡은 "그래버"의 "에단 호크"는 그야말로, 미친 연기를 선보이나 단순한 "싸이코"에 그친다.
이런 이유에는 "페니 와이즈"가 각 아이들의 두려움으로 변했던 설정과 서사에서 나왔던 것과 달리, 이야기가 없다.
앞서 "하우스 호러의 클리셰를 깨부쉈다"라는 말이 머쓱할 정도로 "그래버"는 지고지순하게 "정도(正度)"에 벗어나지 않는다.
이외에도 영화 <블랙폰>의 이야기 전개에 아쉬움이 생긴다.이야기에서도 말했듯이 귀신을 볼 수 있는 "그웬"과 죽은 아이들과 통화할 수 있는 전화기는 극의 긴장감을 현저하게 줄인다.
결국,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해답 또한 준비되었으니 문밖에 무서운 "그래버"가 있다 한들, 극의 서스펜스를 느끼기에 어려움이 많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도움을 주는 아이의 모습은 <샤먼킹, 1998-2004>과 <블리치, 2001-16>같이 "혼령"이 나오는 만화도 연상시켜 "공포 영화"가 아니라 "엔터테이닝 영화"로 봐야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tmi. 1 - 원작자 "조 힐"은 가능한다면, 실사화를 "스콧 데릭슨"을 선택했지만 당시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의 촬영으로 무산될 뻔했으나, 하차함과 동시에 "러브콜"을 보냈다고 합니다.
· tmi. 2 - 이후 "스콧 데릭슨"이 승낙하자 제작사 "블룸 하우스"는 그의 자택 지하실에 똑같이 전화기를 설치해 캐스팅 소식을 알려줬다고 한다. (감독님, 정말 무서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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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죽어도 그 욕망은 남을지니
들어가며
지난주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 <귀신들> 시사회에 초청을 받아 개봉전에 미리 만나보고 왔다.
AI가 상용화된 근미래 세대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다섯편의 이야기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였다. 제목이 <귀신들>이지만 정말 귀신이 나오지는 않는다. 공포영화도 아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디스토피아적인 부분에서 공포감을 느낄 수도 있음.) 그렇다면 제목을 왜 귀신들로 지었을까? 리뷰와 함께 살펴본다.
#1. 보이스피싱 Boy's fishing
체감상 가장 인기가 많았던 에피소드였다. 첫번째 에피소드이기도 했고 아이돌 출신 배우 찬희와 고인이 되신 이주실 배우의 유작으로 알려진 보이스피싱은 영어제목대로 voice가 아닌 boy's라는 점이 반전이었던 이야기였다. 드라마적으로도 연출적으로도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에피소드가 아니었나 싶다.
첫 장면에서 엄마와 아들의 나이차가 너무 많이 나는 그림부터 이들 사이에 뭔가 문제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더니 1억이나 되는 돈을 달라는 아들의 재촉에 결국 노모는 그 돈을 주고 만다. 아들이 피싱 AI였다는 설정은 반전이 되지 못한다. 진짜 반전은 그녀가 아들을 닮은 피싱 AI를 이용해 사실 가장 바라왔던 일을 해내려고 하는 순간 벌어진다. 그녀에게는 오래전 실종된 아들이 있었고 평생을 그 집에서 혼자 아들을 기다렸다는 사실은 설정을 넘어서는 비통함이 있었다. 그녀를 보호하기 위한 모든 기술이 사실은 그녀를 영원히 상처입힌 세상 속에 가두어버렸다는 사실도 많은 생각이 들게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죄와 상처, 욕망을 밸런스 있게 그려낸 좋은 작품이었다.#2. 모기지 Mortgage
원본인간의 AI로 남아 새 아파트로 이사오기 위해 자신의 사후(비활성화 이후) 일할 또 다른 AI를 만들까말까한 딜레마에 처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에피소드도 재미있었다. 그와 시종일관 다정하게 대화하던 분양사무실 직원도 사실은 키오스크 AI였다는 사실도 소소한 반전으로 재미를 더 했다.
부동산 신화가 건재한 대한민국에서 집을 사기 위해 인생 몽땅을 저당잡히는 것도 모자라 죽은 뒤의 자신의 분신에게까지 빚을 연대하게 만드는 설정에서 집이 인간을 사는건지, 인간이 집을 사는건지 모르는 아이러니를 깔끔하게 잘 풀었다. 다만 재밌는 설정을 전달하는 정도로 싱겁게 끝나버리는 점이 아쉬웠다.
#3. 음성인식
반려 동물처럼 반려 AI를 맞이하는 세계라면 유기동물처럼 버려지는 AI도 있는 법. 이 에피소드에선 진짜 자식이 생긴 뒤 버려진 아이AI가 등장한다. 아이는 유기된 아파트 단지에 남아 계속해서 혼잣말을 해댄다. 이 설정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A.I.>가 떠오르기도 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주인공이 그런 AI들을 찾아다니는 여자(이요원)이 주인공이라는 점인데 사실 이요원이 맡은 캐릭터는 명확하게 설명되진 않지만 아마 애니멀 호더의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불명확한 스토리라인에도 불구하고 이 에피소드는 이 영화의 중심이다. 영화의 제목이 <귀신들>인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귀신 역시 누군가의 '한'으로 만들어져 인간세상을 떠도는 존재라 생각하면 귀신과 버려진 AI의 유사성을 쉽게 연결지을 수 있다.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탄생된 AI는 인간이 프로그래밍한 대로 말하고, 생각하며 평생을 인간 맞춤형으로 살지만 시효가 끝나고 나면 간단하게 버림받게 된다.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혼자 남아 끊임없이 사람을 부르고, 애정을 갈구하는 설정은 작가이자 감독이 AI의 정체성을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남을 욕망의 헌신으로 보았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었다.*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외간 찻집에서 첫사랑을 기다리는 남자. 드디어 그녀가 오고 두 사람은 함께 했던 예전의 이야기를 나눈다. 여전히 말이 잘 통하는 두 사람. 남자는 어렵게 자신의 진심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데... 그는 이미 죽었고 그녀 역시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 AI였기 때문. 뒤늦게 나마 서로의 마음을 안 그들은 이제 행복해졌을까? 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대사만으로 전달하기에는 핍진성이 떨어지는 점이 아쉬운 에피소드였다.
#5. 업데이트 update
정경호 배우의 1인 2역이 돋보이는 <업데이트>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소설가 위기찬이 죽고난 뒤에서 그의 정신과 성격을 이어받아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서 보험사는 위기찬의 AI를 보내며 시작된다. 외모가 똑같은 두 사람. AI는 빠른 속도로 위기찬의 학습하며 그가 남들 앞에서 얘기하지 않은 욕망을 드러내게끔 하는데.... 드러나는 충격진실은? 그 역시 AI였다는 것.
이건 창작자라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만한 에피소드였다. <모기지>의 예술가 버전이라고 해야할까? 직장인은 AI로 대출금을 갚는 노동자 복제를 남기고, 예술가는 자신이 죽은 뒤에도 미완으로 남을 소설 끝까지 써줄 창작자 복제를 남긴다. 마지막 에피소드 <업데이트>는 앞에 나온 네 개의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는 책이었고 영화의 에피소드는 모두 위기찬이 상상한 미래사회의 AI에 대한 허구의 소설이었던 것으로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
<귀신들> 총평! 추천? 비추천?
이 영화는 확실히 호불호가 나뉠 듯 하다. 평소 기승전결의 짜임에서 깊이 있는 스토리나 영상미, 캐릭터의 변화와 성장을 즐기는 관객분들이라면 불만족스러우실 것 같고. 가볍게 친구들과 영화관 나들이를 하면서 새로운 소재의 이야기를 기대하는 관객분들 또는 배우분들의 팬들이라면 소소하게 즐거운 관람을 하실만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영화개봉이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참고하셔서 즐거운 관극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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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머지 99%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방금 카페에 들어와서 노트북을 켰다. 늘 먹던 딥초코라떼를 주문했다. 그리고 뚜벅뚜벅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뭐라고 쓰지? 고민했다. 갑자기 지갑과 휴대전화가 어디 있지? 생각했다. 에어팟으로 음악은 나오는 거 보면 분명히 전화기는 근처에 있다. 주머니를 뒤졌다. 여긴 없다. 내가 지금 앉은 책상이 유리로 된 책상이 있고 아래에 투명한 공간이 있다. 이 공간에 손을 슬쩍 넣었다. 역시 없다. 뭐지? 갑자기 오싹해졌다. 가방에 있나? 가방에 손을 슬쩍 넣었더니 여기에도 없다. 순간 당황했다. 어쩌지. 근처의 가방을 다른 의자로 가져다 놓으려고 할 때 전화기와 지갑이 보였다. 노트북을 열어놨고, 그 기계에 가려져서 못 찾는 것이었다.
늘 있는 일인 것 같아 별로 놀랍지는 않지만 갑자기 상상에 빠졌다. 만약 누가 훔쳐간 거라면? 지금 앉아있는 자리 위치상 제일 구석에 있기 때문에 나를 굳이 찾아오는 게 아닌 한 내 걸 가져가기는 어렵다. 그래도 만약에 어린, 한 7살쯤 되는 애가 내 걸 훔쳐갔다고 하면 난 어떤 반응을 보일까? 예전 파리에 여행을 갔을 때 생각난다. 소매치기 같은 범죄가 어리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나는 '역시 나쁜 놈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있구먼'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난 경찰서에 가지 않을까? 그리고 어리다고 봐주고 이런 것 없이 처벌받게 했을 것 같다. 그게 그 애한테도 좋은 거고. 나 자신한테도 좋을 테니까. 당연하지. 나는 저 애의 도둑질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으니까. 이런 나의 마음가짐은 평소에 뉴스를 볼 때에도 이어진다. 내가 강박장애가 있어도 돈을 훔치고 싶은 강박에 시달렸던 적은 없다. 비슷한 느낌으로 '저 사람을 칼로 찌르지 않으면 불안할 것 같다'라고 생각한 적 역시 없다. 난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이 소년이라고 봐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년원 제도가 그렇게 옳은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도덕관념과 나이는 별개의 문제니까. 이런 나에게, 또 비슷한 생각을 가진 많은 이들에게 넷플릭스가 드라마 한 편을 가져왔다. 과연 소년범죄의 해답이 강한 처벌에만 있을까. 넷플릭스로 가보자.
1. 어떤 것에 대한 드라마인가요?
한 판사가 있다. 이 판사는 소년범죄에서 일하는 판사다. 판사는 연화 지방법원이란 곳에 발령받는다. 판사는 자기의 후임을 확인한다. 마음 따뜻해 보이는 남자 판사와 아래 직원들이 있다. 근무 첫날. 소년범죄 전과자들과 함께 식사하러 간 자리에서 식당의 손님이 지갑을 분실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판사는 전부터 표현하고 있던 소년범죄자들에 대한 혐오를 분출하며, 일행이었던 한 여자아이에게 책임을 묻는다. 적당히 타이르고 이해해주고 이런 거 없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여자아이의 도둑질을 들춰내 망신을 준다. 주인공 심은석 판사는 그런 사람이다. 온정도, 따뜻함도 없는 그런 법관이다.
드라마는 이 심 판사에 대한 인물 제시를 베이스로 소년범죄자들에 대한 판결 과정을 보여준다. 드라마의 핵심 소재는 이 것이다. 토막살인사건, 고등학교 시험지 유출 사건, 집단성폭행 등을 다루면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은 소년범죄의 이면을 다룬다. 아. 드라마에서 다루는 세부 소재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소년범들을 수용하는 소년범센터도 드라마에 담겨있다. 그러니까 소년범죄자들이 벌이는 범죄자가 얼마나 잔혹하냐가 소재가 아니라는 뜻이다(물론 폭력 수위 묘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부수적인 것일 뿐). 소년범죄가 어떻게 일어나고, 왜 노출될 수밖에 없으며 처분 이후 어떤 과정을 통해 사회로 나서는지도 묘사한다. 이 드라마는 그런 드라마다.
2. 어떤 드라마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나 역시 소년범을 싫어한 것 같다. 강박장애가 있어도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든 적은 하나도 없었다. 이들이 정신질환이 있다는 묘사 하나만으로도 무슨 병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게 만드는 살인귀가 된다는 식의 인식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몇몇 병이 그런 폭력적인 수위로 분출될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그런 폭력성과 내면의 아픔이 무조건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들이 어리다고, 정신질환자라고 봐주고 이런 게 좀 맘에 안 들었다. 나 역시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고 생각이 어느 정도 바뀌었다. 가령 나 역시 '시험지 유출 범죄'에 노출될 뻔했던 사실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런 일은 공정을 해치는 일이라 절대적으로 일어나선 안 되는 게 맞고 피해자는 엄벌에 처해져야만 한다. 그런데, 나는 서울대를 위시한 명문대 지상주의를 만든 쪽에 기여한 사람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범죄에 기여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내가 뭘 바꿀 수 있었을까 생각도 든다. 그런데 아쉽다. 나 역시 학벌에 지배당하고 있던 사람일까 봐. 그런 마음이 하나둘씩 쌓여서 지금의 10대가 고통받는 세상을 만든 건 아닐까 싶어서. 이런 미친 세상에 1인분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를 강요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소년심판은 이런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그것에 대한 응당한 처벌만을 핵심 키워드로 삼지 않는다. 나름의 균형 있는 시각으로 이 드라마를 보고 있는 어른들을 두세 번 생각하게 만든다.
3. 소년법을 소재로 다뤘습니다. 소년범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나요?
폭력의 수위를 미화해 무조건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적절한 처벌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소년범 센터를 다룬 에피소드가 있다. 에피소드 중간에 센터장과 10대 아이들의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1) 아이들이 먼저 심한 말과 함께 밥을 안 먹겠다고 했다 2) 센터장의 폭언과 푸대접 때문에 먹지 않았다가 대립하는데, 이 경우를 둘 다 상황 극화시켜 제시한다. 난 이게 분명한 감독의 의도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 연출자가 일단 누군가의 편을 들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두 번째. 이 두 가지 논쟁에서 '어느 게 옳은가'를 강조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난 실제로 어느 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나서 좀 화가 났다. 이렇게 한쪽의 시선만을 제시하는 연출법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후반부에 집단성 범죄를 다루는 에피소드가 있다. 여기서 성범죄 용의자가 피해자 아버지와 대화하는 신이 있는데, 아이패드에다 침을 뱉고 싶었다. 그러니까 범죄자들의 악성을 묘사하는 데는 가감이 없었고 이들의 범죄행각에 처벌이 무조건적으로 따라가야 한다는 필연성을 제시했다는 뜻이다. 무조건 미화하는 듯한 태도를 걱정하시는 분들은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된다.
4. 폭력의 수위는 어떠한가요?
성범죄 묘사가 있다. 또 학교폭력 묘사가 있다. 이 외에도 우리가 아는 10대 범죄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여기서 일어날 수 있는 범죄 묘사는 다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근데 쓸데없이 외설적이고 잔인하고 이러지는 않다. 적당히 화나고 적당히 거부감이 있다.
5. 이 드라마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3번에서 쓴 부분이 드라마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균형감각이다. 드라마는 쉽게 편을 들지 않는다. 즉 무작정 소년들을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쓰지 않았다. 이와 반대급부로 무조건적인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고도 말한다. 왜 소년범죄가 일어나는지. 일어나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지. 이들에게 과연 실질적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교화의 효과가 어떤 긍정적인 방식으로 일어나는지를 섬세하게 녹아내리며 탄탄한 극본의 힘을 보여준다.
다른 장점은 떠나간 이들에 대한 예우다. 소년범죄로 인해 세상을 떠난 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 마음이 너무나도 아프고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도 화가 여전히 날만한 일이다. 이 드라마는 이 피해자들과 유족에 대해서 사려 깊은 묘사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쓸데없이 잔인하지도 않고 외설적이지도 않다. 적당히 거부감이 들어 화가 나는 묘사였다고 생각한다. 또 떠난 이들에게 억지 신파를 주입시키지 않고도 감정이입을 하게 해 주니 난 이 정도면 좋은 시각으로 이들을 대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주인공 심은석의 입체성은 어느 정도 생각하기 쉬웠지만 차태석-나근희-강원중 캐릭터는 이제까지 본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인물들이라고 생각한다. 클리셰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이 분들도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단적으로 극을 위해 희생당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의 존재 이유만으로도 청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다.
이 외에도 배우들의 연기가 탁월하다. 속사정을 가지고 있는 심은석 역은 김혜수 배우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 같다. 또 입에 욕을 달지 않고 연기를 하는 김무열 배우도 연기가 좋았다고 생각한다. 신선했다. 또 이성민 배우는 찐 50대 가장의 잔소리 톤이 나와서 놀랐다. 그중 최고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이정은 배우다. 이정은 배우는 연기를 한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냥 그분의 다른 특성에 그런 모습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다른 조연진에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나온다. 아마 한국 독립영화를 많이 보셨으면 알 염혜란-이상희-이석형-유재명-이봄-심 달기 등 짱짱한 배우들이 드라마의 재미를 덧붙인다.
6. 이해가 어려운 작품은 아닌가요?
아니오. 이해가 어렵지는 않다.
7. 이 드라마를 보기 전에 알아야 할 사실이 있나요?
없다. 무난하게 볼 수 있다.
8. 왜 추천하고 싶나요?
드라마에서 이성민 배우가 맡은 강원중이 이런 대사를 한다. "중요한 건 법이 아냐. 시스템이지." 또 이정은 배우가 맡은 나근희 역이 이런 대사를 한다. "소년법은 스피드예요." 이 두 가지 대사는 상충한다. (드라마가 어떤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쓰지 않겠다) 법원이 범죄자들에게 사려 깊은 성찰 없이 교화 명령을 내리거나 강한 처벌을 했다고 해보자. 과연 그게 능사일까? 교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은 사실 많은 것을 염두하지 않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극 중 한 인물의 대사처럼 다른 나라에서의 예를 들며 소년범죄의 강한 처벌이 모든 해결책이 아니라는 게 사실일 수도 있으니까. 또 징역 15년 받고 다시 사회에 나온 전과자가 다른 범죄를 일으킨다는 보장이 있나?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이것에 대한 예시가 첫 번째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묘사되기도 한다. 또한 폭력의 대물림과 범죄자들에게 냉담한 시선이 또 다른 범죄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내는 분노 이면에 깔려있는 사실일 것이다. 사실 소년범죄자는 가해자가 맞다. 그리고 피해자이기도 하다. 절대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끔찍한 폭력을 일으켜 당연히 처벌받아야 할 범죄자이기도 하고, 어리기 때문에 더 나은 인간이 될 교화의 기회를 받지 못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평범하게 있는 부모님이 없다고, 돈이 없다고, 적절한 교육이 없다고 누구는 범죄 저지르기가 쉽다면 그게 100% 그들의 탓이라고 볼 수 있을까. 드라마는 이 두 가지의 처지가 절대 충돌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제시한다. 설득력 있게. 말과 글로는 이렇게나 쉽지만 시각이 트이는 건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는 탁월한 깊이로 관객들에게 도움을 준다.
뉴스로 접하는 강력범죄는 전체 소년 범죄 중 1% 정도라고 해요. 그런 나머지 99%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심은석 역의 배우 김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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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씩 네 거 만들면 돼
씨름. 이 얼마나 낯선 운동인가. 영화 관람 전, 그런 생각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종목인데 다큐멘터리로 보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런 의문을 알고 계시는지 영화 상영 전, 감독님이 짤막한 코멘트를 덧붙이셨다. 운동 종목으로 보면 낯선 스포츠일지언정 그 단어는 우리 일상 깊은 곳에 뿌리내렸다며.
힘들고 어려운 일이나 사건을 마주할 때 '문제와 씨름한다'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힘이 아주 센 사람에게 '천하장사' 수식어를 붙인다. 우습게도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은 이토록 작고 사소한 지점이다. 우리네 삶이 어찌나 평탄치 못한가. 몇 번이고 머릿속이나 입 밖으로 튀어나왔던 단어의 뿌리를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무척 반가웠다.
그렇게 씨름, 특히나 여자씨름을 했었고, 하고, 앞으로도 할 사람들의 이야기에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다큐멘터리 소재 특성상 특별한 스포일러는 없다지만, 영화 내용 상당 부분을 담았다.
영화의 첫 장면을 명확히 기억하긴 어렵지만, 도입부는 떠오른다. '씨름'을 보여주는 몇 가지 이미지들. 그리고 씨름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인터뷰 형식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나같이 한 선수의 실력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감탄하고 존경하는 모습이었다. 여자천하장사 타이틀을 최초로 걸고, 2대, 5대, 6대, 7대, 13대 등 전무후무한 기록을 가진 선수, 임수정. 일반인이 보기에도 대단한 횟수인데 같은 선수가 보기엔 또 얼마나 대단할까.
그의 초대 수상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화면이 무척 조악한 화질을 갖고 있어서, 눈으로도 체감했다. 모자이크 처리한 것처럼 무척 깨지던 화질부터 기술의 발전으로 해상도가 훨씬 큰 화면에 닿을 때까지 같은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을. 무언가 한 가지 일을 오래도록 해온 사람도 신기하지만, 최정상의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온 건 더욱이 놀라울 일이다.
임수정 선수의 일대기만 해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쌓이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영화의 재미나 가치는 훨씬 덜했을 것 같다. 씨름은 본디 상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스포츠 아닌가. 씨름판에서 서로를 마주 보며 무릎을 꿇고, 샅바를 붙든 채 한 사람이 먼저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반대편 사람도 뒤따라 몸을 일으킨다. 상대를 자신의 품에 들이는 자세이니만큼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만치 가깝다.
나의 숨소리가 상대의 귓가를 울리고, 상대가 내 귓가에 숨을 쉬고 뱉는다. 숨과 땀, 그리고 힘을 서로의 귓가에서 나누는 스포츠는 처음 보았기에 퍽 다정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선수들의 관계도 자매처럼 비친 것 같다. 투닥대는 말투나 장난기 넘치는 표정은 2000년대의 생활형 예능처럼 소박하고도 자연스러웠다.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만큼 인물이 중요한 장르는 없다고 본다. 사람들을 들여다보며 기록하는 것 자체로 의미가 만들어지기에 진솔한 모습을 속속들이 담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물이 자신의 자취를 좇는 카메라를 어려워하거나 숨기려 드는 순간, 그가 풍기는 거부감이 일순 화면 너머로도 전해진다. 그 흔적이 보일수록 몰입은 어려워지고 만다.
<모래바람>을 유쾌하게 즐길 수 있었던 건 이 영화에 담긴 사람들이 유쾌해서다. 그들 각자가 그러하고, 그들이 서로 주고받는 것이 그러하다. 쉽게 말해 케미가 있다. 어찌 보면 물 흐르듯 넘치는 자연스러움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아침에 눈 뜨고 밤에 잠들기 전까지 하루종일 시간을 함께 하고, 쉬는 날에도 함께 놀러 다니다 보면 눈빛만 봐도 척척 알아듣는 사이가 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우리가 가족과 척하면 척하고 서로의 선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쌓인 관계에서 나오는 일종의 노하우다. 하물며 훨씬 머리가 커진 때에 이토록 친밀한 관계가 된다는 건 그만큼의 시간을 함께한 것이고,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오래 씨름을 해왔단 의미이다.
운동하고, 시합 준비하고, 시합하고, 피드백을 주고받고, 다시 운동하고. 매일을 켜켜이 쌓는 작업을 고작 몇 시간 혹은 몇 분 안에 담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인물들의 말과 행동에서 묻어 나오는 그 자연스러움을 통해 착실히 쌓아온 매일을 얼핏 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엇비슷한 방향을 똑같이 걷는 듯해도 종래엔 자신의 길을 개척하러 가는 모습이 인상 깊게 남았다. 여자씨름팀 '콜핑'을 주축으로 선수들이 자라나다가 또 다른 도전을 할 곳을 찾아 떠나는 게 정해진 수순으로 보일 정도로.
그들이 그려간 궤적은 우리네 삶을 엿보는 듯했다.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라서, 내가 걷는 길을 함께할 사람이 주변에 모여들고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그들 각자만의 길로 갈라진다. 앞서 말했듯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므로.
이게 맞는 길인지,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리송한 순간은 언제든 한 번씩 찾아온다. 순간이 길어지면 시기가 된다. 그 시기엔 몇 가지 이름표가 있고 말이다. 슬럼프 혹은 번아웃. 어딘가 구렁텅이에 빠졌거나 홀로 걸음을 멈춘 상태라는 예감이 들 테지만, 그런 이에게 주저 없이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길이 맞다. 당신이 선택해서 걷고 있으므로. 과정에서 확신은 없어도 좋다. 흔들리면 흔들리는 채로 그저 자신의 것을 만들어 가면 된다. 결코 외롭진 않을 거다. 함께, 각자, 때로는 같이할 사람들이 언제든 있기 마련이니까. 물리적으로든 심적으로든.
종목에 상관없이 스포츠 경기를 볼 때면 종종 이런 맥락의 이야기를 응원으로서 건넨다.
괜찮아, 네 거 해.
하나씩 네 거 만들면 돼.어느 판에, 어느 길에 들어섰듯 내가 가진 걸 믿고 하나씩 해나가기. 과정으로서 완성하기. 씨름하는 우리 모두의 한판 승부를 응원하며, 글을 마쳐본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받아 관람 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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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를 타고 내려오는 다정함
‘당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가?’를 다루는 문제는 국내외 다양한 영화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이러한 문제의식은 작년 개봉했던 재일조선인 박수남 감독님과 박마의 감독님의 다큐멘터리 <되살아나는 목소리>와 2019년 개봉한 강상우 감독님의 <김군>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는데, 단순히 로맨스나 성장스토리에만 그치지 않고 과거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화이트 버드>에서도 이러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과거는 현재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리고 ‘이후 세대들은 이전 세대들의 경험과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 수 있는가?’
<화이트 버드>에서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었던 줄리안은 새로운 지역으로 전학을 가고, 새로운 학교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그의 할머니 사라는 그런 그에게 차 한잔을 권하며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을 구해주었던 줄리안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를 형식적으로만 바라본다면 흔히 현재 줄리안과 사라가 사는 시점의 이야기인 외화와 어린시절 유대인 소녀 사라와 다리가 불편한 소년 줄리안의 이야기인 내화로 구성된 단순한 액자식 구성이지만, 더 나아가 이것은 2차 세계대전을 직접 경험한 세대인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인 줄리안이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를 기억하게 된다는 점에서 포스트 메모리의 관점으로,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과거와 현재가 맺는 상호적 관계의 관점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사라는 어린 시절 유대인으로서 2차 세 계대전 당시 나치 정권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따돌림을 당하던 소년 줄리안의 도움으로 위험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약자로 취급 받고, 차별 받던 줄리안의 작은 배려와 선의는 무너져가는 사라의 일상을 구하고, 두 소년 소녀는 어두운 상황 속 서로를 비춰주는 빛이 되어준다. 영화의 마지막, 사라의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나듯, 이들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서로를 향한 순수한 사랑과 성장을 통해 많은 것들이 잊혀도 일상 속 다정함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한편, 나치의 집권과 유대인 학살, 수용소로의 연행, 검문 등 두 소년 소녀의 성장과 러브 스토리 뒤로는 사라와 줄리안의 일상 곳곳 모른 척 지나칠 수 없는 2차 세계 대전의 역사가 계속해서 등장하며 당대의 상황을 상기시킨다.
마리안느 허쉬는 ‘메모리’ 대신 ‘포스트메모리’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이후 세대들이 어떤 방식으로 트라우마적 사건과 역사에 접속하는 지에 집중하고, 이후 세대는 직접적 경험이 아닌 사진이나 부모가 들려주는 ‘잠자리 이야기(bedtime story)’를 통해 이러한 기억들과 간접적으로 매개 된다고 본다. <화이트 버드>를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줄리안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접하는 2차 세계 대전의 기억은 포스트메모리가 되고, 차 한잔과 함께 시작한 할머니의 유년시절 이야기와 사진은 과거 2차 세계대전의 기억과 줄리안을 잇는 매개체가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사라가 손자 줄리안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줄리안이 변화를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긍정적으로 변화 시키는 모습은 우리가 역사를 기억해야 할 이유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며 과거와 현재의 능동적인 상호 관계를 보여준다. 사라의 유년 시절은 달라진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다정함’과 ‘사랑’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통해 현재와 연결된다.
국적도, 세대도 다른 나 역시 <화이트 버드>를 통해 사라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 나의 삶과 유사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는 줄리안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태도를 성찰 해 볼 수 있었 듯, <화이트 버드>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국적과 시대를 초월해 현재까지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들에 닿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차 세계 대전이라는 사건은 종식되었지만, 동일한 사건이 아닐 뿐, 현재 세계 곳곳과 작은 일상 곳곳에서도 늘 크고 작은 분쟁과 권력의 남용, 무분별한 차별과 편 가르기는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전쟁들이 일어나고 있는 사회 속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건, 한 생명을 구하는 건 여전히 소년 줄리안이 사라에게 내밀었던 손처럼 작은 관심과 선의가 아닐까? <화이트 버드>는 사라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통해 작은 다정함과 선의의 위대함을 손자 줄리안을 넘어 관객들에게 까지 전한다.
* 위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의 자격으로 <화이트 버드> 시사회 관람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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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감독을 찾아서_#6] AI에게도 감정이 있을까? (with. 손동완 감독)
‘우리의 감독을 찾아서’는 단편 영화 감독을 만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팟캐스트입니다. 영화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영화란 무엇인지,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눠봅니다.
00:00 영화를 많이 찍어보는 것 04:43 첫 번째 영화 [바퀴] 09:58 두 번째 영화 [캐비닛] 11:29 두려움에 관하여 14:58 세 번째 영화 [잘 들었어요] 19:05 노래방 이야기 21:04 하남자들의 이야기22:59 [하얀 꿈] 이야기 & 다시 노래방 이야기 24:30 네 번째 영화 [레디 액션 영화 속으로] 28:31 연기에 관하여 & 사투리에 관하여 31:15 시나리오에 관하여 34:13 다섯 번째 영화 [리콜] 35:54 AI에게 자아란? 41:03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나? 51:24 장편 영화 이야기 55:15 다음에 찍고 싶은 단편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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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자경이 보여주는 멀티버스 액션! 이렇게 기발한 방법이 있었다니!!
?Rabbitgumi 입니다!
양자경 주연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개봉했어요.
멀티버스를 다루는 무척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주인공 에블린이 다른 우주와 연결하면서 보게 되는 다양한 다른 버전의 자신을 보는 장면들이 계속 이어지는데요.
마치 인생의 갈래길에서 다른 선택을 한 자신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죠.
다양한 가능성을 마주하게 만듭니다.
액션도 좋고, 영화의 유머도 꽤 타율이 높아요.
무엇보다 예측가능하지 않으면서 묘하게 설득되는 이야기 전개가 무척 훌륭합니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배우 양자경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겠죠.
무척 따뜻한 가족 영화로 볼 수도 있어요.
이 영화 궁금하시죠?
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에사는 일반적인 영화 리뷰 보다는 보면서 떠올렸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정리하여 전달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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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복지식당> 메인 예고편
“나는 반드시 중증 장애인이 되어야 합니다” 2022년 올해의 질문이 될 영화! [복지식당] 메인 예고편 대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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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수퍼소닉2> 티저 예고편 공개
전세계가 사랑한 초고속 히어로 소닉의 컴백⚡ [수퍼소닉2] 티저 예고편 공개! 더 업그레이드 된 액션과 더 강력해진 캐릭터 닥터 로보트닉부터 테일즈, 너클즈 등장에 기대 수직상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