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저2024-05-30 15:07:07
하나의 이야기가 새롭게 쓰여져 다른 옷을 입는 마법
영화 <소울메이트> 리뷰
사람 마다 다르겠지만, 좋아했던 영화의 리메이크 소식이 들려오면 겁이 덜컥 겁이 난다. 혹시나 애정 했던 그 영화가 잘못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 영화를 사랑했던 시간들마저 훼손될까봐 영화가 개봉될 때까지 조마조마하다. 그래서 좋아했던 영화의 리메이크작은 찾아 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르다. 우연히 본 영화가 너무 좋았는데, 리메이크작임을 알게 된 순간 덕질이 시작된다. 원작을 찾아보고 차이점과 공통점을 분석하고, 그 영화의 원작이 또 있는 경우에는 또 깊이 들어가 원작 소설이나 웹툰, 웹소설을 찾아 보는 기쁘고 즐거운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화 <소울메이트>는 단연코 후자다. 1998년 처음 만난 ‘하은’과 ‘미소’가 10대를 지나 어른이 되기 까지의 시간을 담고 있어,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20년전 청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소재와 소품들 그리고 제주도와 서울이라는 장면과 물리적인 거리감들, 그 사이를 채워주는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은 당연히 오리지널일 것 이라고 생각했는데, 매운 맛의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더 열심히 탐구하게 된 영화다.
초등학생 시절,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하은’은 조금은 자유롭게 엉뚱한 ‘미소’의 전학으로 처음 만나게 된다. 그림을 좋아했던 둘은 서로 그림을 그리며 가까워 졌고, 제주도에 미소만 남겨두고 떠난 엄마 대신 하은의 부모님과도 가깝게 지내며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소울메이트가 되어간다. 시간이 지나 2004년 고등학생이 된 두 사람. 하은의 첫사랑 ‘진우’가 나타면서 조금씩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미소는 학교를 그만두고 제주도를 떠나려하고, 하은은 그런 미소를 붙잡을 수가 없다. 그렇게 헤어진 미소는 서울에서, 하은은 제주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어른이 되어간다. 거칠고, 때로 각박하고, 자유로운 미소의 삶. 단정하고 차분하고 안정적인 하은의 삶은 닮은 구석도 닿을 곳도 없어 보인다.
사랑과 배려가 때로 더 큰 오해를 가져오기도 하고, 자격지심으로 비뚤어져 버리기도 한 복잡한 감정과 사건사이에서 진실과 진심에 다가가는 과정이 가슴 아프게 그려진 영화다. 원작으로 알려진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대만 금마장영화제에서 역대 최초로 공동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연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쉽게 <소울메이트>가 <안녕,나의 소울메이트>를 리메이크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의 원작은 따로 있다.
중국의 작가 칭산이 2000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칠월과 안생>인데, 소설 발표 후 2002년에는 만화로, 2011년에는 연극으로 각색되었고, 이후 2017년에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라는 영화로 제작되면서, 중국에서 엄청난 흥행을 하게 된다. 그 후 2019년 소설의 제목 그대로 <칠월과 안생>으로 무려 53부작의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소울메이트>는 그 이후 2023년에 개봉되었다. 원작 소설의 문장도 섬세하지만, 단편소설이기 때문에 원작에서는 심리나 생각 등이 자세히 표현되어 있지 않아, 오히려 영화가 더 좋았다는 평도 많다.
캐릭터가 가진 매력이 확실한 편이고, 두명의 친구가 각기 다른 성격과 환경에서 성장해가며 겪는 스토리가 조금은 격동적이라 그런지 단편 소설이 이토록 다양한 장르로 확대 재생산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사례를 보여준 것 같다. 특히 다른 콘텐츠로 만들어 지는 과정에서, 채널과 시리즈의 길이, 혹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설정이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도 있어서 각 콘텐츠를 유심히 본다면 콘텐츠를 좋아하거나, 혹은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하나의 이야기가 새롭게 쓰여져 다른 옷을 입고,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리메이크작의 묘미’ 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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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사를 바라보는 성찰의 태도
과거사를 바라보는 성찰의 태도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파이의 아내>는 NHK에서 방영된 TV 드라마를 영화의 형식으로 다시 제작한 영화다. 일본의 어두운 과거를 폭로하고 성찰하는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투자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공영방송 NHK의 제작지원 하에 이 영화는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본래 8K 카메라로 촬영되고 NHK 자사의 4K/8K 채널에 한정적으로 방영 예정이던 드라마는 베니스 영화제 극장 상영을 위해 재작업하는 과정에서 화면비 변경(1.78:1->1.85:1)과 색보정 작업 등을 거쳐 2K로 변환됐다. 8K의 선명한 화질이 2K가 되면서 그 선명도가 떨어진 것임은 분명할 것이나 이 영화가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이고, 예산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는 점 때문에라도 둘 사이의 화질 차이를 따지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행위일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를 만든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은사자상)을 받으며 이 영화는 더욱 회자되었고, 영화화는 잘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시대극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모던하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이 생각은 영화를 볼수록 독특한 영화라는 판단으로 확대됐다. 이 영화는 분명 1940년대 고베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이고, 인물들의 연극적은 대사 톤과 당시대를 옮겨 놓은 듯한 세트, 인물의 동선을 팔로잉하는 연극적인 촬영 방식 이를 분명히 드러낸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가 이 영화가 전통적인 역사 내지 시대극의 형식이나 스파이 장르물의 공식을 따르고 있느냐는 질문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물론 이 말이 이 영화가 과거 사실을 왜곡하거나 어떠한 관점에 편향된 영화라는 말은 아니다. 이 영화가 구성되는 방식에 독특한 지점이 있다는 뜻이다.
먼저, 이 영화의 방점은 어디에 찍혀있나. 보통의 정통 스파이물과는 다르게 이 영화의 방점은 제목대로 스파이보다도 '아내'에 찍혀있다. 보통의 스파이물이라면 범인 찾기 혹은 범인이 범인임을 들키느냐 마느냐 하는 데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스파이가 누군지를 초장부터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영화의 초점 자체가 스파이가 아닌 그의 아내 사토코에게 맞춰져 있다. 영화는 대부분 사토코의 시점을 따라가고, 관객은 사토코의 심정에 이입을 하며 극을 따라가게 된다. 유사쿠가 스파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둘은 섬유무역회사를 운영하며 유복한 생활을 즐겼다. 이들의 집 내부를 보면 유사쿠가 서양의 문화를 동경하고 그에 매료됐다는 걸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 둘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고, 무척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행복은 다가오는 전쟁과 함께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어느 날 유사쿠는 전쟁이 더 심해지기 전에 만주를 보고 오겠다며 급히 만주로 떠나고, 이때부터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만주에서 돌아온 유사쿠는 달라져있다. 이상함을 눈치챈 사토코는 그를 추궁하고, 그가 만주에서 일본군이 병균으로 생체실험했고, 그로 인해 죽은 수많은 주검을 목격하고 그 증거를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미국으로 가져가 폭로하려는 그의 계획을 듣는다. 헌병대장이 되어 돌아온 사토코의 옛 친구 야스하루의 존재가 부각되는 건 이 시점부터다. 세 인물이 서로를 의심하며 빚어내는 갈등은 이 영화의 서스펜스를 지탱해나간다. 야스하루는 유사쿠를 의심할 만한 정보를 일부러 그녀에게 흘리고,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만 풀리지 않는 그의 행동에 점점 의심을 갖게 된다. 이 지점에서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형식을 가지기도 한다.
자신은 '코스모폴리탄'이라며 세계시민을 자처하는 유사쿠는 자국 일본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려 하고, 사토코는 지금까지 유사쿠의 곁에서 누린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사토코는 처음엔 그를 배신한다. 남편의 금고에 있던 노트를 야스하라에게 가져가 조카 후미오가 체포되게 만들고, 자신의 남편 또한 의심받게 만든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사랑하는 남편을 택하고, 남편이 스파이라면 자신은 스파이의 아내다 되겠다 선언한다. 그녀를 움직인 것은 '진실'을 밝힌다는 대의보다 사랑이었고, 그녀에게 중요한 건 오직 유사쿠였다. 그러나 대의가 동기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녀는 남편이 만주에서 가져온 필름을 영사해 그가 보고 들은 만주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목격하고, 그를 돕기로 마음을 굳힌다.
그러나 미국으로 떠나는 날, 사토코는 유사쿠에게 배신당한다. 누군가 사토코의 행방을 고발해 미국으로 가는 배 안에 숨어있던 사토코는 일본군에게 발각되고 붙잡힌다. 사실 그녀가 맞이하는 결말은 암시됐다. 그녀가 유사쿠, 후미오와 함께 찍은 필름에서. 바로 이 필름, 영화 안의 또 다른 영화 안에서 사토코는 연인의 금고를 털다가 연인에게 들키고, 연인은 그녀가 쓰고 있던 가면을 벗겨 배신자가 자신의 연인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달아나는 연인 사토코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사토코는 그 총알에 맞아 죽음을 맞는다. 연인은 죽은 사토코를 안고 슬퍼한다. 이 필름은 영화 마지막에 가서 다시 상영된다. 많은 일본군들 앞에서. 관객은 그때서야 사토코가 봤던 만주의 참상을 담은 영상을 재촬영한 필름의 일부를 보게 되며, 또한 거기에 입혀진 유사쿠의 필름을 다시 보게 된다.
필름이라는 매개의 의의는 사실상 이 영화의 핵심이다. 관객은 만주에서 벌어지는 생체실험을 직접적으로 목격하지 못하고, 유사쿠가 만주에서 가져온 실험노트와 영상을 찍어온 필름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게 된다. 진실을 밝히고 전달하는 수단으로써 기능한다. 또한 필름은 사토코가 유사쿠를 적극 지지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단순 전달을 넘어 새로운 의의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유사쿠가 만주에서 가져온 필름은 그가 그곳의 참상을 직접 보고 들으며 찍어온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던 영상물을 재촬영한 결과물이다. 그곳의 진실은 필름 안에 다시금 담겼고, 누군가가 그것을 그 매개를 통해 간접적으로 목격하고 진실을 알게 되도록, 그것에 대한 직시와 판단을 가능토록 만들었다. 유사쿠가 사토코와 함께 찍은 필름이 덧입혀진 필름을 일본군이 다 같이 보게 되는 것 또한 반대의 의미에서 이 영화의 중요 씬 중 하나다.
덧입혀진 필름에 당황하던 사토코는 남편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주 훌륭하다"며 실성한 사람처럼 웃는다. 이어서 배를 타고 떠나며 유유히 손인사를 하는 유사쿠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을 배신했던 연인을 역으로 배신한 인물의 통쾌한 복수극으로 끝날 수도 있었겠으나, 이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수감된 사토코에게로 다시 초점을 맞춘다. 패전의 그림자가 고베에까지 드리웠을 때, 사토코가 불바다가 된 조국을 바라보며 뱉는 대사는 당시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미친 나라에서 미치지 않은 사람은 미친 사람이 되고, 미친 사람은 미치지 않은 사람이 된다. 정상적이지 않은 조국의 패전은 그 비정상의 무너짐에 있어서는 기쁨이 되겠지만, 조국의 패배라는 면에서는 슬픔이 된다. 바닷가에 가 그제야 울분을 토하는 사토코의 모습은 그런 조국을 둔 개인이 결국 맞닥뜨리게 된 피할 수 없는 비극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일본의 군국주의 과거사를 보여주면서 그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금의 일본이 가져야 할 양심과 반성 의식은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전쟁 중인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시대물을 작업해보고 싶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는 자유와 행복이 어떤 것인지를 보이고, 국가 안 개인이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국가에 의해 어떻게 빼앗기게 되는지 그려낸다. 감독의 반성적이고 성찰적인 양심선언처럼도 느껴지는 이 영화는 군국주의의 잔재 속 극우주의가 만연한 일본에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같다. 지식인이자 예술인의 입장에서 자국의 과거사를 드러내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작금의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묻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성찰적 태도는 일본 영화계의 주목할 만한 새로운 물결 중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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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무로가 이 가문 호적에서 파버린다네요
이 사람은 누구야
이 영화의 주인공은 잘 나가는 드라마 작가 ‘토리’ 박대서다. 어느 날 일어나 눈을 뜨는 대서. 자기 집에 누워있는 거라 딱히 이상할 건 없다. 전날 술을 어마어마하게 마신 대서.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정신을 차린다. 상의는 탈의되어 있다. 무심코 돌린 고개. 마치 부인이 누워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누워있다. 아예 처음 보는 사람이랑 같은 침대에 누워있다. 설마 이 사람이랑? 대서는 아연실색하며 일어난다.
또 다른 영화의 주인공은 드라마 업계 쪽에서 일하는 작가 진경이다. 혼자 사는 인생이야 말로 빛난다. 심지어 결혼에 대해서도 비혼주의를 고수할 만큼 연애에 큰 관심이 없다. 어느 날. 친구들이랑 클럽에 간다. 신나게 노는 진경. 코와 귀가 동시에 삐뚤어질 것 같이 마신다. 정신을 잃은 진경. 다음날이 됐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상의가 없다. 화들짝 놀라는 진경. 남의 집에 멍하니 일어난 기억에 충격받는다. 한편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진경의 가족들이다. 진경의 가족들은 뒷골목에서 잘 나가던 집안이라 사람 많고 돈 많다. 홍덕자 여사를 위시로 한 집안 식구들은 두 사람의 결혼을 위해 전력투구한다. 과연 이 로맨스가 성사될 수 있을까?'
데뷔 53년 차의 레전드
이 영화의 주인공인 홍덕자 역의 김수미 배우는 1970년 mbc 텔런트로 데뷔했다. 김수미 배우가 처음 인지도를 알린 계기는 <전원일기>의 ‘일용엄니’ 역이다. 당시 조연 롤을 맡으면서 연기대상을 받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극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강력했고 이 영향이 <전원일기> 후에도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발리에서 생긴 일>의 송희숙 캐릭터나 <젊은이의 양지>에서 천귀자 역할을 맡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이미지를 바탕으로 2005년 <가문의 위기 2 - 가문의 영광>, 2006년 <안녕, 프란체스카>에 출연하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한다.
김수미 배우는 여기서 얻은 이미지와 인지도를 바탕으로 연예계의 대모가 된다. 입은 거칠지만 마음 따뜻한 할머니로서 일반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습으로 브라운관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한 끼 줍시오>나 <미운 우리 새끼>, <라디오스타> 같은 예능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기도 하고 <밥은 먹고 다니냐?> 같은 프로그램에선 속 깊은 카운슬러로 활약한다.
본작의 장점은 영화 전부가 김수미 배우에게 존경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의 김수미 배우는 혼자만 빛난다. 영화 이야기에서 홍덕자는 주요 포인트마다 의사결정을 주체적으로 수행한다. 나머지의 인물들이 실없는 말장난만 하다가 분량을 날려버리는 것과 대비된다. 구체적으로 왜 진경과 대서가 결혼해야 하는지, 두 사람의 관계에 파장이 일어날 때 덕자가 어떤 역할을 차지하는지는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이렇게 이야기 내부에서가 아니라 영화의 등장인물들 중에 가장 연기력이 필요한 캐릭터기도 했다. 안정적인 연기력을 바탕으로 내내 들쭉날쭉한 영화에서 숨 쉴 틈이 되어준다. 이 인물이 젊은 세대를 바라보는 관점이 영화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에서 김수미 배우만 두드러진다는 점이나 홍덕자를 어떻게 묘사하는지에 대한 지점이 본작이 이 원로배우에게 바치는 일종의 존경심처럼 보이기도 한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이 스파이더맨 팬과 토비 맥과이어/앤드류 가필드에 대한 헌사인 것처럼,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최근작이 해리슨 포드에 대한 예우를 갖춘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가 김수미라는 연예게 원로에게 감사함을 전한 것이다.
뭐 어떡하라고
영화의 표면적인 장르 구성은 코미디/가족/느와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 어떤 특이점도 갖지 못했다. 코미디에 대한 부분은 후술 하기로 하고, 영화에서 가족과 느와르적인 특성이 제 구실 하지 못한다. 일단 가족영화의 특징이다. 가족영화는 일반적으로 온 가족이 함께 부담 없이 볼 수 있음과 동시에 서사의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이끈다는 특징이 있다. 대표적으로 <범죄도시 3> 같은 경우는 지나친 폭력은 아예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다양한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코미디가 됐다. 반대로 가족이 소재로 등장한다는 점 역시 이 영화의 장르 특성이 될 수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이나 <브로커>가 그렇다. 이 두 영화에서 등장하는 가족들은 피를 나눈 혈연은 아니지만 실제 가족과 유사하게 공동체를 이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유사 가족이 가진 혈연의 유대감을 묘사한 방식은 디테일이다. <브로커>에서 송강호 배우가 눈빛연기를 통해 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드러낸 부분이나 후반부 이지은 배우가 주인공 일행을 뒤늦게 찾아 나서는 부분이 그렇다. 또 <어느 가족>에서 안도 사쿠라가 맡은 감옥 오열신이 대표적인 예시다. 피가 섞이지 않아도 정들었던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본작 <가문의 영광 : 리턴즈>는 이 가족요소로서의 특성만 속속 피해 간다. 첫째로 자극적인 묘사다. 이 영화에서 성적인 농담은 수시로 들어간다. 이 영화를 찾은 가족이 전부 성인이면 큰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 작품이 지키는 선이 과연 ‘온 국민이 다 보고 웃을 만큼 적절’한 지는 의문이 있다. 가령 대서와 진경이 둘이 뭘 했는지의 여부가 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게 모든 이야기의 계기가 된 것은 맞으나 둘이 이어지는 기본 토대가 되는 기점은 홍덕자가 대서에게 친근감을 느낀다는 것에 있다. 이걸 인물 거의 대부분이 알면서도 말꼬리 잡듯 계속 성적인 농담을 친다. 들어가는 방식에서도 ‘이 대사가 이 영화에서 꼭 필요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진경과 누군가가 헬스장에서 대화하는 신이 있다. 이 장면은 그냥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성에 대한 이야기가 자유롭게 오가는 분위기를 흡수하기 위해 이 대사를 넣은 것으로 보이지만 맥락 없는 농담이기에 불쾌감만 느껴진다.
또한 가족을 소재로 했다는 것도 매가리가 없다. 전적으로 이야기의 의사결정에서 진경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별로 없다. 영화의 기본 설정이라서 당연하게 전제로 깔았다기엔 후반부에서 홍 씨 가문의 존재감이 아예 사라진다. '가문의 영광'시리즈인데 '진경이의 영광'만 남아있다. 또 덕자나 석재가 주인공 대서 곁에 수시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에서 그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다. 이는 영화의 기본 전제조건 '가족 구성원들이 막내딸의 결혼을 강제한다'는 설정과 모순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두 캐릭터가 주인공의 억지 로맨스를 만들기 위해 기능적으로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이 이야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사건을 다 보고 나면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영화가 허구로 세계를 창조한 예술이라고는 하지만 sf영화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의 핍진성과 개연성을 챙겨야 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다음은 느와르적인 요소다. 영화에서 '뒷골목 출신'이었다는 설정은 대서의 행동에 인과관계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깡패들이 들이닥쳐서 압박하는데 대서도 위축되는게 당연하다. 이렇게 범죄물적인 속성을 띄는 도중에 가족영화를 버무린다는게 쉽게 와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느와르적인데 가족영화로서의 테마를 삽입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그랬다. 주인공 상훈이 사람을 수시로 두들겨 패버리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 인물을 둘러싼 캐릭터들의 리액션이 자연스럽다. 작중에서 연희의 어머니 포장마차가 영업정지됐다는 설정이 예다. <똥파리>와는 반대로 이 영화에서 인물들은 그 모든 상황을 쉽게 받아들인다. 조폭이라는 소재가 무색하게 인물들이 이에 반응하지 않는다. 특히 대서는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단 1초도 하지 않는다. 또한 장석재는 이 영화의 느와르인 요소를 방해하기까지 한다. 영화 중반부까지 이 사람은 조직의 행동대장으로서 회사를 경영한다. 조직 운영은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야기의 그 어떤 위기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조직을 운영하는게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추성훈 배우가 맡은 역할은 장석재의 무능을 드러내기 쉬운 인물이지만 장석재는 그냥 방관만 하고 있다. 이럴 거면 사실 주인공 가족이 조폭이 아니어도 큰 문제가 아니다. 그냥 기업체 회장 딸이어도 이야기 전개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 느와르적인 노선을 타지 못한 이유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신에 있다. 이 장면은 촬영, 동선, 액션 모두 파악이 어렵다. 추성훈 배우가 빛나야 할 신에서 이 인물은 이야기의 내적 논리를 해치기까지 한다.
콩트 보는 듯
이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 중 예능에서 맹활약한 인물이 몇 있다. 보기만 해도 웃기다는 점은 장점같이 오히려 영화의 단점으로 작동한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플롯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이 장면에서 이걸 이렇게 한다고?'식의 웃음이 없다. 글쓴이가 두 감독 중 하나였다면 진경과 대서의 알콩달콩한 로코로 이야기의 톤을 정할 것이다. 그래야 공감이 돼서 웃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조연들이 이상한 말장난을 들이대면서 시간을 낭비한다. 대표적으로 홍 씨 가문의 주특기 묘사가 이야기에서 사건을 전달하는 데 있어 핵심이다. 그냥 염탐만 하고 가면 다행이지 이 행위가 인물들에게 아무 생산성이 없다. 웃기지도 않는데 소모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웃기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코미디 신에서 '이 부분에서 이렇게 웃길 거야' 대놓고 암시한다. 예고에도 나온 부분인데, '1.5.x 12가 뭐냐?'라는 질문을 인물들끼리 주고받는 신, 골프장 장면, 헬스장 장면, 추성훈 배우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그렇다.
이는 오마주가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유사한 맥을 잇고 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가문의 영광> 1편과 비슷하다. 이때가 2002년이다. 이 때 <색즉시공>이 개봉했다. 이때 한창 유행했던 19금 코미디적인 요소가 그대로 옮겨왔다. 또 2005년 정준하 배우가 처음 이 시리즈에 등장하기 전에 ‘노브레인 서바이벌’에서 바보 이미지가 있었다. 추측이 무색하게 이 바보 이미지를 그대로 갖고 온다. 탁재훈 배우가 맡은 장석재 역은 그냥 우리가 아는 예능인 탁재훈에서 전라도 사투리만 썼다. 이 탓에 두 사람(탁재훈, 정준하)이 맡은 역할은 별 연기력이 필요가 없다. 그냥 정자세로 두 손 모아 서있거나 전라도 사투리만 대충 늘어놓으면 임무 완수다. 반대로 김수미 배우가 맡은 역할은 영화에서 안정감이 느껴지는 유일한 파트다. 하지만 웃기는 방식 역시 정해져 있다. 욕설이다. 이 유머도 한 번만 나오는 게 아니라 이 인물 서사에서 계-속 나온다. 이렇게 저급한 유머가 듣기 싫은 것과 유사하게 보기도 싫은 장면은 대서-진경의 로맨스 서사다. 후반부 두 사람 서사는 부끄럽다. <달짝지근해 : 7510>에서도 이병헌 작가(감독)가 대서-진경과 비슷한 로맨스를 만들었다. 왜 전자는 부끄럽지 않은데 후자는 창피할까? 1차원적이기 때문이다. 이 대사와 수많은 몸개그 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넣었다는 것이 장면 전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제 그만합시다
MZ세대가 공감할 코미디를 표방하지만 영화는 많이 뒤떨어져 있다. 그나마 비교적 신선하다고 볼 수 있는 두 캐릭터는 윤현민/유라배우가 맡은 대서/진경이다. 이 두 캐릭터는 요즘 하는 말로 젠더의 관점에서 봤을 때 0점짜리 캐릭터다. 이야기에 강력하게 깔려있는 여성혐오적인 설정이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엄청나게 무례하거나 물질적인 것만 밝힌다. 이를 위해 대서는 영화에서 크게 희생된다. 특히 대서의 원래 여자친구로 등장하는 기은세 배우 캐릭터는 이야기에서 그 어떤 위기도 만들지 못하면서 얼굴만 비춘다. <달짝지근해 : 7510>에서의 한선화 배우 역할과 비슷한 캐릭터지만 이 인물이 후반부에 개과천선하면서 진정한 사랑에 대해 주제를 살린 것과 대비된다. 정용기, 정태원 감독이 이 인물을 설정할 때 딱 어떤 걸 노리고 쓴 지가 드러나기 때문에 이야기의 조악함이 더 두드러진다. 본작 최악의 캐릭터다. 기은세 배우의 열연이 그나마 살렸다.
이렇게 온갖 무리수로 점철된 영화의 설정들을 살리느라 유라 배우는 후반부 특정 몇 장면을 제외하고 이상한 디렉팅의 피해자가 된다. 특히 카페 시퀀스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몇 년 후에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이 카페 시퀀스에서의 톤이 영화 내내 반복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같은 사람이 연기하는 거니까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영화 안에서 진경이가 처한 상황을 잘 들여다보면 6할 이상이 짜증 내고 있다. 애초에 짜증 날 이유가 없거니와 이 일에 왜 이 인물이 휘말려야 하는지 납득이 어렵다. 상대역 남자주인공 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러닝타임의 절반을 당황하고 있어 연기가 물린다. 그러다 보니 영화 초반부의 편집 상태나 전체적으로 먹힌 듯한 사운드는 이제 큰 문제도 아닌 듯 싶다. '작품성 기대하지 마라'라는 말이 전적으로 변명으로 남은 안타까운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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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에 대한 영화적 오마주
7★/10★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핵심 사건은 엄마의 죽음과 뫼르소의 살인이다. 주인공 뫼르소는 해변에서 동료와 갈등 관계에 있는 한 아랍인 남성을 총으로 쏘는데 재판에서 핵심이 되는 건 살인 행위가 아니다. 뫼르소는 엄마의 장례식에서 대체로 시큰둥한 태도였고, 바로 다음 날 애인을 만나 영화를 보고 사랑을 나눴다. 이는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를 만한 사람임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가 된다. ‘엄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자는 마땅히 사람을 죽이고도 남는다’는 논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불성설이다. 카뮈가 고발하고자 하는 건 바로 이것이다. 누구나 부모자식 관계를 비롯한 일상의 수많은 관계 속에서 권태를 느낄 수 있다. 심지어 《이방인》에는 그런 순간들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묘사된다. 그러나 세상은 이를 ‘죄’로 여기고 응징한다. 카뮈의 말마따나 ‘부조리한’ 세상이다.
영화 〈썬다운〉은 《이방인》에 대한 영화적 오마주다. 런던에서 거대 육류사업을 하는 어머니를 둔 닐과 그의 동생 앨리스 그리고 앨리스의 두 자녀가 멕시코의 아카풀코로 휴가를 떠난다. 그런데 고급 호텔과 아름다운 바다에서 휴가를 즐기던 그들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앨리스와 그 자식들은 큰 충격을 받고 서둘러 런던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닐도 그에 동참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닐은 공항에서 여권을 놓고 왔다며 다음 비행기로 런던에 가겠다고 말한다. 거짓말이다. 그는 여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지독히 평온한 표정으로 허름한 호텔로 가 다시 휴가를 즐기기 시작하는 닐. 런던으로 돌아간 앨리스는 계속 그에게 전화하여 여권은 찾았는지, 언제 비행기에 탈 것인지를 묻는다. 닐은 계속 거짓말하며 상황을 모면한다. 멕시코인 여자친구를 사귀기까지 한다. 무기력하고 권태에 젖은 듯한, 그러나 동시에 자유가 깃든 닐의 표정이 압권이다. 닐의 얼굴은 해방과 자유가 반드시 환희를 동반할 필요가 없음을 가르쳐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닐이 보여주듯, 해방과 자유는 ‘오랫동안 갈망하던 것’이 ‘오랫동안 누려왔던 것’처럼 느껴질 만큼 평온한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결국 폭발한 앨리스는 직접 멕시코로 닐을 찾으러 오고 그에게서 적당한 연금을 제외하고는 모든 회사 경영권과 상속권을 포기한다는 서명을 받는다. 사실 이는 앨리스의 요구가 아닌 닐의 제안이다. ‘상식’의 세계에 속한 앨리스는 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든 닐의 제안에 ‘만족’한다. 그러나 멕시코에서 닐의 운전기사 역할을 하던 택시기사가 앨리스를 강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닐은 또다시 위기를 맞는다. 그가 앨리스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살인을 사주했다는 의혹을 받기 때문이다.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그가 어머니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음은 그의 범죄를 그럴듯하게 만드는 주요 ‘근거’가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쓰러진 닐은 암이 발병했다는 소식도 듣는다.
영화의 마지막, 그는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겠다는 듯 홀로 병원을 걸어 나온다. 닐은 돈도, 가족도, 여자친구도 버리고 떠난다. 여전히 예의 그 무기력하고 권태에 젖은(그러나 이제는 자유를 갈망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표정이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난다는 점에서) 동시에 소극적이기도 한(모든 것에서 그저 도망칠 뿐이라는 점에서) 닐의 저항은 일상의 부조리를 인내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부조리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고.
닐이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은 《이방인》의 뫼르소와 같은 듯 다르다. 바닷가에서 친구와 신경전을 벌이던 아랍인을 만난 뫼르소는 아랍인이 지니고 다니는 칼에 비친 태양 빛에 이끌려 그를 살해한다. 《이방인》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논쟁적인 장면이다. 〈썬다운〉에도 뫼르소가 보았을 태양 빛을 담은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그러나 그 태양빛은 닐을 살인하게 하지 않는다. 닐의 자유는 누군가를 죽일 필요가 없는 자유다. 뫼르소는 아랍인을 죽였음에도 엄마의 장례식을 트집 잡는 사회에 부조리를 느낀다. 그리고 부조리에 대한 의식의 깊이를 더해가며 자유에 도달한다. 여기서 아랍인은 그의 깨달음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나 닐의 자유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도구화하지 않는다. 내내 계급적 조건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닐이 가진 재산에 비해 그가 연금으로 요구하는 돈은 ‘소탈’해 보이기까지 하다. 닐의 자유에는 《이방인》에서 도드라지는 여성혐오도 없다. 멕시코 출신의 미셸 프랑코가 〈썬다운〉에서 그린 자유는 분명 《이방인》의 자유보다 진일보한 것이다. 뫼르소, 닐…. 카뮈가 쏘아 올린 자유의 계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내가 센 것이 맞다면 총 여섯 번이다.
**카멜 다우드는 소설 《뫼르소, 살인사건》(문예출판사, 2017)에서 아랍인의 관점으로 《이방인》을 다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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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의 평범성은 어떻게 공유되고, 확장되고, 유전되는가?
▷한줄평 : ‘악’은 그렇게 우리네 삶 속에 스며들어 현실이 되고 있다
▷영화 :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 2024.6월
영화의 시작은 암흑 그 끝은 아우성, 그리고 두 간극을 가득 채우는 행복한 일상, 우리는 이런 기괴한 영화와 같은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더군다나 ‘악’은 단지 몇몇 그럴만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에게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 무섭다. ‘선’에 대해서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소극적 회피는 이젠 일상이 되었다. 지금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벌어지고 있는 ‘홀로코스트’를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영화는 과거의 과오에 대한 참회를 말하지 않는다. 지금 현실 속 함께 치유해야 할 상처를 들춰낸다. 그 표현 방식은 독창적이고 강렬하다.
1963년 한나 아렌트는 홀로코스트 대학살 전범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담은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에서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이 ‘악의 평범성’이 주인공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 헤트비히 회스(산드라 휠러)와 공유되고 그리고 다섯 자녀들과 주변 사람들에게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 관심구역 또는 이익구역)’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둘러싼 40㎢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루돌프 회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으로 관심구역내 타운하우스 사택에서 거주한다. 이 2층짜리 사택에는 방만 10여 개가 있고, 커다란 정원과 온실, 정자, 마구간, 자녀들을 위한 작은 수영장까지 딸려 있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 컷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집요하게 담장 하나 사이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홀로코스트의 현장을 뒤로한 평화롭고 자유로운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가득 담아낸다. 그 흔한 배경 음악 하나 없다. 대신 수용소 담장을 넘어 들려오는 유대인들의 비명소리, 총성 소리 그리고 소각로 돌아가는 소리가 배경 음악을 대신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으로는 회스 가족의 일상을 쫓아가면서도 귀로는 유대인 학살의 참혹함에 귀 기울이게 된다. 영화는 마지막까지 철저히 눈과 귀를 분리해서 하나의 장면으로 담아낸다. 지옥과 낙원의 불편한 공존이다.
[주도] 한 가족의 든든한 가장, 루돌프 회스
1940년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초대 소장이 된 루돌프 회스는 이곳에서 200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을 학살한다. 1944년에는 70만 명의 헝가리 유대인을 강제 수용하는 작전을 자신의 이름을 딴 ‘회스 작전’으로 불린 것을 자랑스러워 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수용소에서 퇴근 후 아내와 잠들기 전 옛 즐거웠던 이탈리아 온천 여행을 떠올리며 다시 여행을 약속하거나, 아이들과 함께 강에 가서 나룻배를 타며 수영을 즐기거나, 장교 가족들을 초대하여 수영장 파티를 열거나, 아들과 말을 타며 새소리를 구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장면 등은 영락없는 한 가정의 가장임을 보여준다. 심지어 그는 수용소 방송을 통해 아내가 가꾸는 라일락 덤불은 훼손하지 말도록 세심함을 보여준다. 전출을 앞두고 아끼는 말과 교감하며 ‘사랑한다, 내 새끼!’라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도 안다. 그는 그저 견고하게 세워가는 한 가족의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일 뿐이다.
[공유] 꿈에 그리던 삶을 이룬 아내, 헤트비히 회스
유대인집 청소부 딸로 자라 17살에 루돌프와 결혼하여 정원, 온실과 수영장이 딸린 대 저택에서 ‘모범적인 보금자리’를 만들어가는 자신이 대견하다. 작은 텃밭에 불과했던 앞마당을 지난 3년 동안 수많은 꽃과 채소로 가득 채운 것도 자랑스럽다. 헤트비히는 스스로도 그동안 꿈 꿔왔던 삶을 이룬 ‘아우슈비츠의 여왕’으로 불리는 것을 흡족스러워한다. 그리고 유대인들로부터 압수한 모피 코트를 입어보거나, 하녀들을 ‘아무도 모르게 재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겁박함으로써 남편이 이룬 권력의 성취를 향유하기도 한다. 남편의 전출 발령에도 이곳에 남아 자신이 가꾸어 온 이 낙원을 지켜내고자 한다. 그는 그저 한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돌보는 평범한 가정주부일 뿐이다.
'난 죽어도 여기 못 떠나! 여긴 우리 집이야. 그동안 꿈꿔 왔던 삶이잖아!' 헤트비히 회스(산드라 휠러)
'낙원이 따로 없구나.' 친정엄마 리나
'그이는 저보고 아우슈비츠의 여왕이래요.' 헤트비히 회스(산드라 휠러)
‘너 따위는 내 남편한테 말만 하면 아무도 모르게 잿더미로 만들 수도 있어.’ 헤트비히 회스(산드라 휠러)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컷
[확장] 하인들과 동료 장교, 그리고 나치 추종자들
이 저택에는 다수의 하인들이 등장한다. 어느 날 유대인으로부터 압수한 속옷들을 하나씩 나눠 갖도록 하는 장면에서 하인들은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의 속옷을 고르는 일이 낯설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동료 장교 부인은 유대인에게서 뺏은 다이아몬드를 어떻게 습득했는지를 자랑삼아 늘어놓는다. 루돌프 회스는 사택에 기술자들을 불러들여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순환 시체 소각장의 설계를 검토하기도 한다. 하루에도 수백 명씩 태워 죽이는데도 이를 당연시한 집단 무의식은 자신들만의 낙원에서 웃고 떠들어대는 평화로운 일상을 가능하게 했다. 어쩌면 당시 수많은 나치 추종 세력들은 이러한 세상의 향유 및 확장을 반증한다.
[유전] 풍요로움을 향유하는 다섯 자녀들
회스 부부에게는 아들 둘, 딸 셋 등 어린 다섯 자녀가 있다. 형제간에 티격태격 다툼을 하거나 자매가 물에 젖은 수영복을 입고 집 마당을 왔다 갔다 하며 노는 장면은 여느 가정집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금이빨을 모으거나, 동생을 온실에 가두는 장난을 치거나(큰아들), 병정놀이를 하면서 놀거나, 소각로 돌아가는 소리를 입으로 흉내 내거나(작은아들), 초대받은 사람들이 적어놓은 방명록에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당의 환대를 감사한다’는 글귀를 함께 읽는(두 자매) 장면은 서서히 부모가 만들어 놓은 병든 세계의 일원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일상은 그저 평범한 가정의 자녀들 모습일 뿐이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스틸 컷
[회피] 딸의 참혹한 성공이 불안하기만 한 친정 엄마 리나
성공한 딸의 저택을 구경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온 친정 엄마 리나는 한때 유대인 집에서 일하는 청소부였다. 지금은 그들이 반대편 수용소에 갇힌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눈여겨보아왔던 그 집의 커튼을 경매에서 낙찰받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딸이 다양한 꽃과 채소가 가득한 정원을 가꾸고, 훌륭한 음식들을 차려오는 모습에 대견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잦아지는 기침과 밤새 창밖을 밝히는 소각로의 참혹한 모습에 적이 당황스럽다. 몰래 편지를 남기고 떠날 수밖에 없다.
[희망] 그러나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 폴란드 소녀
열화상 흑백 화면에 등장하는 폴란드 소녀 알렉산드라 비스토리니는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 속 유일한 빛의 존재다.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인들을 위해 사과와 야채들을 작업장 곳곳에 몰래 가져다 놓는다. 그리고 훗날 연주곡으로 태어난 ‘햇살(Sunbeams)’은 사라지지 않을 인류애의 희망을 대변한다.
영혼은
태양처럼 강렬히 불타올라
고통을 잊고 날아오르네.
우리 곧 보게 되리.
나부끼는 깃발을
아직 보지 않는
자유의 깃발을
알렉산드라(폴란드소녀) /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이렇게 루돌프 회스로부터 비롯된 ‘악의 평범성’이 그의 아내, 자식들, 하인들과 나치 추종자들에게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한 가족의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엄마와 아내로서, 자녀로서 각자의 자신의 위치에서 가족의 안락한 삶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 보편적 도덕 가치에 대한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 자신들이 가하고 있는 악행에 대한 죄의식이나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공감과 유대가 끼어들 틈이 없다. 기계적 충성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편 그토록 그들이 철저히 외면했던 학살의 참혹함은 담장으로도 가두어 두지 못했다. 그렇기에 과거의 길고 어두운 터널 끝 창문은, 오늘날 아우슈비츠 전시관에 맞닿아 있다. 담벼락 하나 사이로 천국과 지옥이 공존했듯이, 빛이 새어 드는 작은 창은 과거와 현실을 넘나드는 연결 통로가 되었다. 그래서 영화 마지막 크레딧에서처럼 그때의 비명과 아우성은 지금도 다시 여기저기서 처참하게 재생되고 있다.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가 제96회(202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언급했듯이 우크라이나에서, 이스라엘 가자 지구에서… 그리고 수많은 전쟁과 핍박과 무관심의 일상 속 현장에서.
※ 실제 루돌프 회스 집, 가족과 재판과정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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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왓챠에서 볼만한 학교 폭력을 다룬 영화들 BEST 7
넷플릭스 왓챠에서 볼만한 학교 폭력을 다룬 영화들 BEST 7
넷플릭스와 왓챠에서 볼만한 영화시리즈입니다. 요즘 벌어지는 '학교폭력 폭로사태'라는 테마에 맞춰서 '피해자' 관점에서 학교폭력을 다룬 영화들을 모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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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절의 너 (少年的你·2019)
[줄거리] 빚쟁이 어머니와 떨어져 홀로 대입을 준비하는 고3 천니엔(주동우)와 어린 시절부터 홀로 길거리에서 생활한 샤오베이(이양천새)는 둘 다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사랑을 키워가지만...
<소년 시절의 너>는 20세기 홍콩영화처럼 학원폭력을 과잉된 정서로 전시한다. 과잉된 연출 방식이 노리는 것은 ‘입시제일주의’를 주입하려는 어른들을 정 조준한다. 교육의 목적이 자기 계발이 아니라 지위 상승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중국 어른들은 중국 아이들에게 ‘계층에 대한 욕망’을 주입한다. 그 아이들은 친구를 존중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보다는 자신이 밟고 올라서야 할 ‘경쟁자’로 취급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청소년이 전 세계에서 행복도가 가장 낮은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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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의 왕 (The King Of Pigs·2011)
[줄거리] 회사 부도 후 충동적으로 아내를 살인한 ‘경민(오정세)’은 자신의 분노를 감추고 중학교 동창이었던 ‘종석(양익준)’을 찾아 나선다. 소설가가 되지 못해 자서전 대필작가로 근근히 먹고 사는 종석은 15년 만에 찾아온 경민의 방문에 당황하는데...
소위 ‘일진’, ‘짱’, ‘캡’, ‘학교 통’이 폭력으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돼지의 왕>은 힘 센 학생의 횡포에 침묵으로 동조하는 아이들은 ‘돼지’라고 묘사하며 학교 폭력의 이면에 대한 성찰을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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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 (Bleak Night·2010)
[줄거리] 한 소년이 죽었다. 평소 아들에게 무심했던 소년의 아버지(조성하)는 아들의 갑작스런 공백에 매우 혼란스러워하며 뒤늦은 죄책감과 무력함에, 아들 기태(이제훈)의 죽음을 뒤쫓기 시작한다. 아들의 책상 서랍 안, 소중하게...
10대 소녀보다 더 예민하고 섬세한 소년들의 갈등과 균열을 이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을까? <파수꾼>은 명확한 해답을 공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래 집단 내의 암묵적인 권력관계는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예민하고 복잡하다. 단순해보였던 역학관계의 복잡성과 통제불능성을 보여주면서, 견고해보였던 권력구조가 생각보다 허술하고 붕괴되기 쉬움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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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告白·2010)
[줄거리] 자신이 근무하는 중학교에서 어린 딸 ‘마나미’를 잃은 여교사 ‘유코’(마츠 다카코)는 봄방학을 앞둔 종업식 날, 학생들 앞에서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자신의 딸을 죽인 사람이 이 교실 안에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한다...
<고백>은 피해자의 부모가 가해자들을 응징하는 이야기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가해자로 드러나는 학생들은 결국 부모들의 무관심 또는 과도한 관심에 의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학교 폭력'이란 게 결국 기성세대가 떠안아야할 문제라고 확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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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Our Twisted Hero·1992)
[줄거리] 40대의 한병태는 회사를 그만 두고 시작한 지 1년 된 학원 강사다. 사회 속의 권력, 암투에 적응하지 못하고 폐쇄된 학원 공간에서 소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병태에게 어느날 국민학교 동창생인 황영수로부터 최선생(신구)의 부음 소식을 듣는다. 그런 그에게...
"일진"인 엄석대와 그 패거리가 한병태를 "왕따"로 만들고, 복종시킨 다음에는 "빵 셔틀"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소설은 수십년 전 작품임에도 오늘날 교실 내에서의 폭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매우 정확히 바라보고 있다. 집단따돌림을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가 아니라 결국 어른들과 공권력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
한편, 영화는 원작보다 훨씬 더 현대사에 빗대어 어떤 대상을 비판한다. 영화가 비판하려는 대상은, 엄석대 밑에서 부조리에 순응한 자들이 때때로 그 앞잡이 노릇까지 하면서 질서를 수호하려 했던 ‘독재에 순응한 구성원’들이 일말의 반성도 없이 끈 떨어진 권력에 손가락질 하는 군중심리이다. 이때 가장 모자라 보이는 친구 영팔이 ‘니네들도 나쁘다’며 울먹인다. 부조리는 엄석대가 옳지 못함을 알면서도 대항하기를 포기해버렸던 ‘이름 모를 녀석’들에 의해 유지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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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죽거리 잔혹사 (Spirit Of Jeet Keun Do - Once Upon A Time In High School·2004)
[줄거리] 1978년 말죽거리의 봄, 현수(권상우)는 강남의 정문고로 전학온다. 정문고는 선생 폭력 외에도 학생들간 세력다툼으로 악명높은 문제학교. 이소룡 열혈팬이라는 이유로 금새 죽고 못사는 친구가 된 모범생 현수와 학교짱 우식(이정진). 하교길 버스안에서 올리비아 핫세를 꼭 닮은...
<말죽거리 잔혹사>는 <비트>나 <친구>처럼 남학생들의 폭력세계를 다뤘지만, 사내들의 의리와 우정을 찬양하는 영화가 아니다. 내적으로는 영웅(역할모델)이 필요한 십대 사고방식을 탐구한다. 청소년기에 유독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이 너무나 초라하기 때문이다.
외연은 어떠한가? 독재 체제는 모든 국민들이 독재자 개인을 위해 움직여주기를 바라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자기 자신을 위해 행동한다. 권력에 저항하는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불합리와 불의가 횡행한다. 교실 내의 권력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들은 비겁한 어른들을 닮아가거나 폭력에 호소한다. 그래서 “대한민국 학교 X까라 그래!”라는 대사가 유달리 사이다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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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 (映画 聲の形·2016)
[줄거리] 초등학생 시절 그 애를 정말 많이도 괴롭혔다. 청각 장애가 있던 그 여자애는 늘 웃기만 했지. 그때의 잘못을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을까. 용서받을 자격 따윈 없겠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서 사과할게. 너무 늦지 않았다면...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어떻게 용서를 구해야할까? 관객들은 가해자 이시다의 사과를 지켜보면서 타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곧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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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콘텐츠는 블로거 영혼아이 TERU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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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이 '확신'이 될 수 있을까?
-이 리뷰에는 시리즈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삶의 주요 결정을 할 때 우리는 ‘감’ 혹은 ‘확신’이라는 걸 느낀다. 그 선택을 하지 말라는 혹은 선택하라는 느낌. 그건 아주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할 수도 있다. 그동안 내가 보고 들었던 것과 다른 사람이 이렇게 하면 더 좋다고 이야기한 여러 근거들을 바탕으로 어떤 결정을 한다. 바로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을 통해 우리는 ‘확신’을 느낀다. 그리고 그 선택이 옳다고 믿는다. 그 선택을 하기까지 여러 확신할만한 근거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충분히 근거를 들며 설명할 수 있고, 또 꺼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도 편하다.
반대로 어떤 순간에는 확실히 눈에 보이는 건 없지만 그냥 그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바로 ‘감’ 이 작동할 때다. 여기엔 내세울만한 근거가 없다. 그저 과거 자신의 경험 속에 녹아들어 있는 느낌을 바탕으로 결정하는 순간이다. 그건 ‘확신’은 아니지만, 그 느낌은 우리가 그것을 ’ 확신‘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아무 근거도 없지만 그냥 그 느낌을 믿고 선택을 한다. 그것이 옳은 선택일 수도, 나쁜 선택일 수도 있다. ’ 확신‘과 ’ 감‘ 으로 선택한 것들 모두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 그 순간에는 알 수 없다.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 O 난감> 속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고 판단할 때, ‘감’ 혹은 ‘확신’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분명 옳은 길이라 생각하고 선택하지만 이들이 만난 감정들은 인물 자신들에게 계속 혼란이라는 것을 던져준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맞다고 확신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진짜 맞는지 계속 의심하게 된다. 평범한 대학생 이탕(최우석), 강력계 형사 장난감(손석구) 그리고 연쇄살인마 송촌(이희준)이 가진 ‘감’ 혹은 ‘확신’은 정말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첫 번째 감정 - 대학생 이탕의 '감'
이탕은 평범한 대학생이다. 그는 고등학교 때는 괴롭힘을 당하는 힘없는 피해자였고 대학교에 가서도 어떤 식으로 살아갈야할지 알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에겐 특별한 목표도 없고 그저 학교에 다니면서 알바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다. 편의점 알바를 하던 어느 날 그는 진상 손님을 만나고 얼마 후, 그 손님과 같이 있던 일행과 길에서 다툼을 벌인다. 그리고 들고 있던 망치로 상대의 머리를 쳐 죽음에 이르게 한다. 평범했던 그가 특별해지는 순간이다.
그 순간 이후 이탕에게는 특별한 '감'이 생긴다. 연쇄살인범이나 범죄자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이탕이 처음 죽였던 남자가 알고 보니 연쇄살인범이었고, 두 번째로 죽이게 된 여자 역시 알고 보니 살인범이었다. 그가 가진 '감'은 지나가다가도 문득 범죄자의 느낌을 받고 돌아보며 새로운 살인 대상을 찾는다. 이후 몇 년에 걸쳐 이탕은 그런 범죄자들을 처단하며 돌아다닌다. 여기엔 조력자인 노빈(김요한)의 도움이 있었다. 노빈은 자신의 컴퓨터와 프로그램을 다루는 능력으로 범죄 대상을 물색하거나 증거를 없애고, 이탕이 살아갈 수 있게 의식주를 해결해 준다.
그런데 문제는 이탕은 자신의 감에 대한 '확신'이 없다. 그저 지나가다 어떤 느낌 만으로 죽일 상대를 찾아낸다. 조력자인 노빈의 도움이 있지만, 그건 살인 대상을 찾은 이후에 벌어진다. 어쨌든 이탕이 죽인 모든 사람은 강력한 범죄의 가해자들이다. 그들에게 피해를 받은 대상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죽어 마땅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확신'없이 벌어진 그 살인들은 과연 정당한 것일까. 그걸 지켜보는 일반 사람들에게 그게 영웅적인 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탕이 자신이 하는 살인들에 자신 없어하는 것도, 바로 그런 문제의식에 있다. 그저 '감'만으로 살인을 하는 것,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괴물이 되어야만 하는 평범한 학생 이탕은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계속 허우적댄다.
두 번째 감정 - 전직 형사 송촌의 '감'
이 시리즈의 최대 빌런인 송촌은 전직 형사였다. 그는 살인범이었던 아버지의 과오를 바로 잡고자 형사에 지원해 좋은 형사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경찰 내부의 시선이 그렇게 곱지 않다. 특히나 가장 좋지 않게 보는 건 장난감 형사의 아버지다. 어떤 사건을 거친 이후 그 역시 조력자 노빈을 만난다. 그리고 그는 노빈의 도움으로 나쁜 범죄자를 죽이면서 살인 행위를 이어간다. 송촌 역시 자신만이 가진 '감'으로 범죄자를 찾고 응징한다. 그가 가진 '감'은 그가 형사로서 가진 것이기도 하고, 그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송촌은 새롭게 영웅 노릇을 하는 이탕이라는 인물을 만나서 상대가 가진 '감'에 대해서 묻는다는 것이다. 송촌은 이탕에게 죽일 상대가 범죄자라는 '확신'이 있는지 묻는다. 송촌이라는 인물은 자신이 물색한 상대를 죽일 때 상대가 범죄자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형사적인 느낌과 감으로 판단해 실행할 뿐이다. 그래서 송촌은 오랜 기간 그런 살인을 해오면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할 무언가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송촌 역시 '확신'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살인행위를 멈추지 못한다. 그가 멈추는 건 자신의 '감'이 틀렸거나 이제 그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송촌은 자신의 끔찍한 행위들을 정당화할 '확신'을 찾아다녔을 것이다. 그전까지 그는 '감'에 따라 누군가를 추적하거나 살인을 해나간다. 그가 이야기 속에서 무시무시하게 느껴지는 건, 그가 가진 '감'이 무서울 만큼 꽤나 정확하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탕의 '감'과 송촌의 '감'은 무엇이 다른 걸까. 결국 두 사람의 그 느낌 때문에 그들의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는 걸까.
세 번째 감정 - 현직 형사 장난감의 '감'
형사 장난감은 다신이 맡은 구역에서 벌어지는 살인들을 보고 그것에 이탕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자신의 '감'으로 '확신'한다. 그래서 이탕이 일했던 편의점을 몇 번이나 방문해서 이탕에 대해서 조사하고 이미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른 각도로 살펴본다. 하지만 그는 이탕이 살인을 했다는 증거나 목격자를 전혀 발견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이탕이 살인범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장난감 형사는 무엇 때문에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건 그만의 '감'이 있기 때문이다. 형사로서의 '감'이 그에게 이탕이 살인범이라는 '확신'을 주었다.
사실 장난감 형사는 송촌 역시 추적하고 있다. 이탕과 마찬가지로 송촌이 영웅 놀이를 하고 있는 살인자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탕이 송촌과 같은 분류라는 것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 형사로서의 '감'만 있을 뿐 그것을 뒷받침할만한 증거나 목격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추적하는 힘이 떨어지게 되는 것도 그가 가진 증거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 역시 자신의 '확신'을 증명하지 못한다.
이야기의 말미, 장난감 형사는 어떤 사건 때문에 분노에 가득 차 송촌을 죽이려 한다. 그가 가진 '확신'은 '분노'와 함께 뒤섞여 엄청난 감정적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만약 그 에너지를 이기지 못해 그가 살인을 한다면 그 살인은 정당화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되면 결국 이탕, 송촌과 장난감의 행동은 어디가 다르고 어디가 같은가.
시리즈 <살인자O난감>은 '감'이 만들어내는 '확신'이 얼마나 약해빠진 것인지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준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아무 증거도 없이 자신들의 '감'을 '확신'으로 바꿔 살인을 행하거나 누군가를 잡으려 한다.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이 세 인물 모두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지 못했다. 이탕, 송촌, 장난감을 각각 대비시키던 시리즈는 이야기의 후반부에 세 인물을 한 곳에 몰아넣어두고 어떤 것이 맞는지 보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누구의 '감'이 더 믿을만한가. 그 '감'은 진짜인가.
이 이야기를 보고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감'을 느끼면, '행동'으로 옮기고 그 결과에 '확신'을 가진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하고 있을 이 감정의 프로세스가 과연 정말 옳은 것인지, 맞게 하고 있는 것인지, 시리즈 <살인자O난감>이 재차 묻고 있다. 세 인물이 가진 능력이 진짜 초능력인지 아니면 그냥 느낌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지만, 이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본 모든 사람들은 '감'으로 '확신'한다. 이들의 능력이 진짜라는 것을.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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