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5-07 17:36:18
믿고 보는 소지섭 투자 예술영화들
51k
한국 영화계를 다채롭게 해주는 예술, 독립 영화들.
그 중심에는 소지섭 배우가 있는데요.
작품성이 높은 해외작품에 자비를 들여
수입 배급해오는것으로 유명하죠.
벌써 작품수가 30편이 넘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소지섭의 회사 51k에서 공동제공을 맡은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가 오는 5월 15일
개봉합니다.
제 79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전설적인 사진작가 낸 골딘의 삶, 예술, 투쟁, 그리고 생존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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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피엔딩이 아닌 새로운 챕터의 시작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나고, 얼굴만 바라 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때가 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방금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와 또 전화기를 붙들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 그 사람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냐고 묻는 말에 “그냥 좋으니까, 다 좋다.”고 대답했던 설레는 시간을 지나, 이런 점은 이유 없이 좋고, 저런 점은 제법 괜찮은 것은 같고, 그래도 참아 줄만한 단점과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바꿔 보고 싶은 그런 성격들이 대충 파악이 되었다고 말도 안되는 자만심으로 “이 사람을 알만큼은 알고 있지.” 하고 결혼을 결심한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둘만의 관계는 나의 원가족, 그의 원가족까지 확대 되기 마련이고, 출산과 육아를 겪고 나면 둘의 우주는 더 넓어 진다. 넓어진 세계관 속에 놓여지고 나면, 내가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던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나의 생각과 다른 사람으로 바뀔 때도 있고, 가끔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상대방 뿐만이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은 모습들이 나타나 나 자신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도 부지기수다. 사랑이라는 것은, 아니 결혼이라는 것은 새로운 관계의 시작일 뿐 아니라, 나를 다시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발견은 긍정적일 때도 있지만, 부정적일 때도 있다. 지금의 나는 누구일까? 지금의 나는 무엇일까? 끝없는 물음표 속에서 답을 찾아가고,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가끔 이혼이라는 제도를 이용해, 관계를 재정비 하고 바로 세우고자 할 때도 있다.
영화 <결혼이야기>는 뉴욕시에서 활동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뮤지컬 감독 찰리 바버와 배우인 아내 니콜 바버의 이혼이야기이다. 둘은 아들하나를 둔 화목한 부부였지만, 시간이 흘러 결혼생활을 끝내고자 한다. 이혼 중재인을 찾아가 상담의 일환으로 서로의 대해 좋은 점을 쓴 글을 읽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이렇게 좋은 점들이 있지만, 결국 이혼을 선택한 부부라는 첫장면에서부터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현실적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후 진행되는 이혼의 과정은 더욱 더 현실적이다. 니콜이 처음에 말한 것처럼 서로 얼굴 붉힐 일 없도록 변호사 쓰지 말고 깔끔히 헤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동료의 권유에 LA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여성 가정변호사 '노라'를 만난 니콜은 상담에서 찰리와 함께했던 지난날을 되새겨 보다 찰리가 매번 자신을 등한시해왔고, 내 생각이 매번 거절당한 것 같고, 심지어는 기획사의 무대 매니저와 바람핀 것 같다며 억울함을 토로하다 결국 노라를 변호인으로 고용한다.
그 이후 니콜은 마침 가족을 만나러 LA로 건너온 찰리에게 이혼서류를 건넨다. 니콜의 독단에 괘씸해진 찰리는 또 다른 실력파 변호사 '제이'를 찾아가게 되고, 제이는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자문하게 되고, 부담스런 수임 비용과 아들에게 끼칠 악영향을 생각해 단념하고 뉴욕으로 복귀한다.
하지만 노라가 찰리에게 전화를 걸어, 이른 시일 내에 변호인을 고용하지 않으면 헨리의 양육권을 받아갈 수 밖에 없다고 재촉하면서, LA로 다시 넘어와 정중하면서도 회유적인 스타일을 선호하는 전직 가정변호사 버트 스피츠를 변호인으로 내세우게 된다. 양육권 소송에서 유리하기 위해 LA의 아파트를 임대해서 살게 되는 찰리.
애초에 이혼이라는 것 자체가 사랑했다 아름답게 헤어지며 서로를 응원해주는 관계가 되기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소송으로 약점을 내세우기 위해 서로의 나쁜 면을 모두 꺼내어 이혼으로 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고, 그 과정은 둘에게 또 다른 상처로 남게 된다. 사랑한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사람이 되어 가는 것 만큼 슬픈 일이 어디 있을까?
소송 중에도 문득 남아 있는 서로의 애정이 보이는 장면들이 있다. 상을 받은 니콜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말하는 장면이나, 찰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니콜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들에서 ‘이렇게 까지 이혼해야 하는 걸까?’ 라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니콜과 찰리 역시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찰리와 니콜의 이혼과정을 통해, 결혼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나의 인생과 너의 인생 그리고 아이까지 우리의 인생이 하나의 삶으로 완전하게 인정되며, 따로 또 같이 모두함께 행복의 순간을 누리도록. 나는 어떤 아내인가. 나는 어떤 엄마인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돌아보게 만든다. 결혼이란 ‘두 사람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와 같은 엔딩이 아닌 새로운 삶의 형태의 시작이고 인생의 과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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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크라운> 시즌 6 | 유종의 미를 가린 문제 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찰스'(도미닉 웨스트)와의 이혼 후 왕실을 떠난 '다이애나'(엘리자베스 데비키). 그녀가 파리에서 이집트 억만장자의 아들 '도디 알파예드'(칼리드 압달라)와 휴가를 즐기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엘리자베스'(이멜다 스턴톤)와 왕실은 위기에 휩싸인다. 다이애나를 죽음으로 내몬 냉혈한이라는 비난 속에서 대중의 지지라는 왕실의 기반이 흔들렸기 때문.
한편 '윌리엄'(에드 맥베이)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우울함을 떨치지 못한다. 다이애나의 인기와 언론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자 극도의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아버지와의 관계도 악화일로다. 그가 왕손으로서의 의무만을 강조하고, '카밀라'(올리비아 윌리엄스)와의 재혼을 추진하기 때문. 그런 그의 앞에 '케이트'(메그 벨아미)가 나타나고, 그녀와 시간을 보내면서 윌리엄은 숱한 풍파 속에서도 왕관을 지키는 할머니의 진면목을 발견한다.
리버스 <왕좌의 게임>, <더 크라운>의 끝
2019년 4월 14일. <왕좌의 게임> 시즌 8의 첫 번째 에피소드가 공개됐다. 엄청난 관심이 쏟아졌다. 전 세계 팬들의 이목이 쏠렸고, 첫 화 북미 시청자수는 1,176만 명에 달했다. 그로부터 약 1달 뒤, 팬들은 분노에 가득 찼다. 모든 캐릭터의 서사는 붕괴됐고, 암시와 복선도 회수하지도 못한 채 막을 내렸으니까.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가장 인기 있는 판타지 드라마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왕좌의 게임>의 끝은 실망스러웠다.
넷플릭스 <더 크라운>의 끝은 정반대다. <왕좌의 게임>이 HBO의 핵심 콘텐츠였듯이, <더 크라운>도 넷플릭스의 핵심 시리즈 중 하나였다. 에피소드 하나에 제작비 140억 원을 투입할 정도로 공들인 작품이었고, 영국 왕실과 갈등을 빚어 이슈를 만들기도 했다. 다만 마지막 시즌의 성적은 기대 이하였다. 파트 1 공개 첫 주를 제외하면 넷플릭스 순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심지어 국내에서는 TOP 10에 한 번도 이름을 못 올렸다.
그러나 성적만으로 <더 크라운>의 마지막을 평가할 수는 없다. 피날레 결과물로 팬들을 낙담시킨 <왕좌의 게임>과는 다르기 때문. <더 크라운> 시즌 6은 첫 시즌부터 이어진 질문에 충실히 답하며 막을 내린다. 왕관의 무게를 확실하게 보여주며 영국 왕실을 비롯해 현대 사회에서 쓸모없어 보이는 모든 것들의 존재 의의를 끝내 납득시킨다. 소재의 무게감만큼이나 품격 있는 퇴장이다.
모든 시즌을 관통한 미덕, 왕관의 무게
사실 영국 왕실은 수많은 미디어에 등장하는 슈퍼 스타다. 그런데도 <더 크라운>은 유달리 인기를 끌었다. 수많은 이유를 댈 수 있다. 우선 놀라운 싱크로율을 자랑한 영국 배우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클레어 포이, 맷 스미스, 바네사 커비, 엠마 코린 등 신성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막대한 제작비 값을 한 뛰어난 고증, 왕실의 비밀을 엿본다는 쾌감까지 고려하면 관심을 못 받는 게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그뿐이었다면 <더 크라운>은 화려한 재현 다큐멘터리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대신 <더 크라운>은 드라마로서 자기만의 미덕을 보여줬다. 핵심은 정반합이다.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이어진 전통을 유지하려는 이들과 그 전통에 회의를 표하며 변화를 요구하는 이들의 충돌을 그려냈다. 자칫 화려한 포장지에 가려질 수 있는 영국 왕실의 헤겔적 행보를 제시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그 방식이 때로는 인간적이고, 때로는 진중했기에 <더 크라운>은 흥미로웠다. 왕실 구성원은 어느 때보다 인간적이었다. 언니에게 가려진 영원한 이인자 마거릿 공주. 아내가 여왕이라서 자기 경력과 꿈을 포기해야 했던 필립 마운트배튼. 후계 1순위라는 이유로 부모의 사랑과 인정 대신 의무부터 배운 찰스 3세까지.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왕실에서 태어나 의무를 다해야 하는 이들의 고충이 잘 느껴졌다.
제도와 정책의 문제도 건드렸다. 시민, 언론, 총리의 입을 빌려 질문을 던졌다.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왕실이 어떻게 변해야 할지. 쇠락한 영국과 영연방에서 여왕의 역할은 무엇인지. 수십 년 된 왕실 요트 브리타니아가 퇴역하고, 마지막 식민지 홍콩도 반환된 가운데, 여왕의 존재의의는 무엇인지. 이처럼 보존과 개혁 사이 필연적 긴장을 엘리자베스가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는 재미가 이 시리즈의 본질이었다.
명예로운 피날레
<더 크라운>은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고,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주제를 활용해 엘리자베스의 마지막 해결책을 들여다본다. 다이애나의 죽음으로 시작된 극은 찰스와 카밀라의 재혼으로 마무리된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는 자연스럽게 엘리자베스 2세의 양위 문제를 거론한다. 대체 왜 여왕은 왕위를 넘기지 않는가? 네덜란드를 비롯한 다른 왕실은 적당한 나이에 양위하는 일이 적지 않은데 왜 영국은 예외인가?
드라마는 마지막 시즌다운 방식으로 여왕의 고민을 드러낸다. 노년의 엘리자베스 앞에 중년 '엘리자베스'(올리비아 콜먼)가 나타난다. 그녀는 엄마로서 제 역할을 못했다는 여왕의 자책감을 상기시킨다. 나이 들고 지친 엘리자베스는 흔들리고, 이에 여왕은 양위를 결정한다. 하지만 곧이어 청년 '엘리자베스'(클레어 포이)가 여왕을 만류한다. 자기는 죽을 때까지 왕관에 봉사하기로 서약했으며, 따라서 양위는 곧 왕실의 붕괴를 뜻한다고.
이 과정에서 왕관의 무게가 비로소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다. 여왕은 인정한다. 왕관도, 군주도 무용하다고. 모두가 평등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신으로부터 받은 권리를 주장하는 왕관은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고. 그렇기에 신성함은 역설적으로 왕관의 전부다. 시시각각 변하는 사회에서 왕관에 깃든 신성함이 없다면, 군주를 군주답게 만드는 어떤 권위도 찾을 수 없을 테니까.
결국 엘리자베스는 양위하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신의 대리자가 되겠다고 서약한 군주가, 스스로 서약을 포기하면 왕관은 더 이상 신성하지 않을 테니. 그렇게 유일한 존재 의의를 잃으면, 더 이상 왕실을 지탱할 수 없으므로. 그래서 그녀는 인간적인 한계를 숨긴 채 왕관의 무게를 견뎌낸다. 자기를 향한 모든 요구와 불평을 감내하며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다. 이 해답은 실제 역사와 오버랩되면서 아름다운 퇴장으로 이어진다.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다
품격 있는 퇴장은 의문을 더 키운다. 여섯 시즌을 관통하는 질문에 품격 있는 답을 내놓은 드라마인데 왜 흥행 성적은 명성과 인기에 비해 부족한 걸까? 이 질문에도 여러 이유를 떠올릴 수 있다. 드라마 시간대가 현재에 가까워질수록 궁금한 사건이 없을 수도 있고, 드라마에 너무 익숙해졌을 수도 있다. 다만 특히 두 개의 이유가 중요해 보인다. 하나는 각본이고, 다른 하나는 공개 방식이다.
<더 크라운> 시즌 6은 중반부터 새로운 인물에게 초점을 맞춘다. 다이애나의 죽음 이후 방황하던 윌리엄 왕세자가 왕실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이 전개가 단조롭고, 표면적이다. 윌리엄의 성장은 동생 해리와의 갈등 속에서 드러난다. 다이애나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와 아버지를 이해하는 윌리엄과 그런 형에게 실망한 해리. 이들의 관계는 엘리자베스와 마거릿의 갈등을 다시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윌리엄의 서사도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드라마는 윌리엄과 캐서린의 로맨스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정작 윌리엄과 찰스 부자의 갈등, 윌리엄과 엘리자베스의 관계는 형식적으로 몇 번 등장한다. 엘리자베스 2세와 찰스 3세가 서너 시즌에 걸쳐 대립한 것에 비하면 상당한 급전개다. 그러다 보니 왕실에 불만을 품었다가 조금씩 왕관의 의무를 깨닫는 윌리엄의 내적 변화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각본 문제는 전반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에피소드 4까지는 다이애나의 멜로드라마가 다시 한번 펼쳐진다. 그런데 같은 내용은 이전 두 시즌에도 나왔고, <스펜서>를 비롯한 다른 미디어에서도 숱하게 다뤄진 바 있다. 설령 첫 화에서 다이애나가 죽어도 이해 못 할 시청자가 없을 정도로. 이처럼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반복하다 보니 초반부는 루즈하고, 후반부는 정작 하고 싶은 말에 힘을 줄 시간을 잃어버린다.
넷플릭스의 전략적 실패
이에 더해 넷플릭스도 공개 방식을 잘못 판단한 듯 보인다. 넷플릭스는 최근 한 드라마를 두 파트로 나눠서 공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파트 1이 파트 2에 대한 기대감을 키울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 크라운> 시즌 6도 마찬가지다. 파트 1은 다이애나가 사망한 4회까지를 보여줬다. 나머지 에피소드 6개는 파트 2로 공개됐다.
문제는 상술했듯 파트 1의 내용이 지난 시즌과 비교해도 새롭지 않고,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도 신선하지 않다는 것. 달리 말해 시청자 입장에서는 파트 1을 본 뒤 파트 2를 기다릴 이유를 찾기 어렵다. 파트 1 공개 후와는 달리, 파트 2가 공개 후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1위를 차지하지 못한 점이 그 방증이다.
<더 크라운> 시즌 6은 일종의 헌정작이다. 사실 왜곡 문제 때문에 왕실과 줄곧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더 크라운>이기에 쉽사리 가늠할 수 없는 여왕의 심경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왕실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와 지지가 높아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품격 있는 마무리가 작품 내적 문제와 잘못된 전략으로 인해 온전히 조명받지 못하는 게 옥에 티일 뿐이다. 리버스 <왕좌의 게임>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Acceptable 무난함
온전히 조명받지 못해 아쉬운 품격 있는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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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져도 끝나지 않는 잔혹한 어른들의 게임
오징어 게임 (Squid game, 2021)
개봉일 : 2021.09.17 (넷플릭스 공개)
감독 : 황동혁
출연 : 이정재, 박해수, 오영수, 위하준, 정호연, 허성태, 아누팜 트리파티, 김주령
해가 져도 끝나지 않는 잔혹한 어른들의 게임
<도가니>,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까지. 매번 다른 느낌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황동혁 감독의 신작 <오징어 게임>이 9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각자의 사연을 가진 채 삶의 끝에 서있는 456명의 참가자와 인생을 완전히 뒤바꾸고도 남을 천문학적인 액수의 상금 456억. 수많은 참가자들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굶거나 빚쟁이에게 찔려 죽느니 목숨 걸고 인생 한번 바꿔보자며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건다.
한 사람당 1억. 최후의 1인에겐 456억. 누가 이런 서바이벌을 벌였는진 알 수 없지만 참가자들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돈다발에 “이건 진짜다.”라는 믿음을 얻는다. 옆에 누워있는 참가자는 믿을 수 없지만 돈만큼은 착실하게 믿는 것이다. 그리고 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믿지 못할 경쟁자들은 모두 제거해야 한다며 공격성을 내비치기 시작한다. 이 게임에서 죽는 게 나만 아니면 되니까. 생판 모르는 이의 목숨 vs 추가되는 1억 + 나의 생존 중 어떤 걸 선택하겠냐고 묻는다면 당연 후자가 아닐까.
<오징어 게임>은 황동혁 감독이 2008년에 구상하고 2009년에 쓴 이야기다. 당시 일본 서바이벌 물인 <라이어 게임>, <배틀 로얄>과 같은 작품들을 보며 서바이벌 물의 요소를 한국적으로 접목해 내기 위해 고민한 결과로 탄생한 것이 <오징어 게임>이라고 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약간의 각색이 더해지긴 했지만 이런 소재를 10여 년 전에 이미 모두 구상해놨다는 사실을 들었을 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쉬웠다. 그 당시에 바로 제작이 됐다면 지금보다 더 큰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무래도 그 사이에 영화 <헝거게임>이나 웹툰 <머니게임>처럼 돈과 명예를 건 서바이벌 물들이 지나간 후라 서바이벌 물 자체의 신선함은 조금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오징어 게임>은 아이들의 게임을 재해석하는 방법으로 다른 서바이벌물들과 차별화를 둔다. ‘극한의 공포 속에서 게임 참여자들은 서로를 의지하다가도 한순간에 의심하고 배신하고 결국엔 서로를 해하게 된다.’는 서바이벌 물 특유의 심리적 공포는 똑같이 존재하지만 <오징어 게임>은 다른 서바이벌 물들과 다르게 조금 더 단순하고 귀여운 게임을 반복한다. 어릴 적 골목에서 친구들과 했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게임들 말이다. 9편으로 구성된 시리즈엔 총 6종류의 추억의 게임이 등장하는데, 어떤 게임이 나오는지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전부 언급하지 않겠다.
이 시리즈의 차별점이자 가장 큰 매력은 낯설고 아기자기한 세트장과 디테일한 요소들이다. 강박증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 만큼 완벽하게 딱 떨어지는 각진 물건들과 진짜 같은데 가짜 같은 공간들이 담고 있는 무게감, 그리고 눈에 딱 들어오는 일꾼들의 핑크색 슈트와 선물 상자처럼 포장된 관들. 기계처럼 움직이는 일꾼들이 만들어내는 동작의 흐름들이 주는 묘한 분위기가 특히 만족스러웠다. 내용은 아름답지 않지만 눈에 담긴 세트장은 빈틈없이 마음에 들었다.
서바이벌 물 특유의 설정들과 게임의 일부로 인해 앞서 나온 여러 작품들과 비교되며 표절 논란을 함께 안고 가고 있지만 작품 자체가 완전한 표절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한 부분들이 있다. 장르적 특성과 플래그, 일부 장면과 소재를 모두 독창적, 독보적으로 구성하기엔 이미 서바이벌 장르가 쌓아온 이미지와 개념, 시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 사람의 심리라는 틀이 있기에 앞선 작품들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무조건 욕하기보단 개인적인 기준에 따라 판단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오징어 게임>은 간단한 룰로 이뤄진 추억의 게임들을 돈과 목숨을 건 피 튀기는 생존 게임의 주제로 이용하며 어릴 적 우리의 모습, 어른이 된 우리의 모습의 간극에서 오는 아이러니를 끌어올린다. 어릴 땐 친구들과 골목에서 웃으며 게임을 하던 아이들이 어느새 어른이 되어 인생 한번 뒤집어보겠다고 피 흘리고 절규하며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 씁쓸하고 슬플 뿐이다. 그때는 술래가 되거나 게임에서 져도 딱밤 한방이나 인디언 밥 한 번이면 패자 벌칙으로 충분했는데 이 게임에서 탈락하면 무조건 죽는다. 탈락한 자는 죽는다는 게임 특성상 아무래도 잔인한 장면들이 다소 많이 등장하긴 한다. 총으로 사람을 쏘거나.. 사람의 신체가 망가진다거나. 많이 고어한 편은 아니지만 반복해서 노출되다 보면 거부감이 들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라겠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목숨을 걸고 참여하는 게임 속 약육강식의 법칙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들은 초대장을 받고 자신의 손으로 참가를 결정한다. 사람들이 우수수 죽어 나가는 걸 보면서 두려움을 느끼고 도망갔던 참가자들은 현실에 떠밀려 대부분 다시 게임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최후의 1인이 내가 될 수도 있다며 확률을 계산하고,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이기심과 폭력성을 여과 없이 내보인다. 사람이 많아지면 당연히 무리가 생기고, 권력을 잡는 힘센 무리가, 나쁜 무리가, 그에 대응하는 착한 무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생존이라는 본능 앞에서 사람의 심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기 위해 어떤 행동까지 벌일 수 있는지. 추악하고 추잡한 본능의 단면을 제대로 훔쳐본 기분이었다. 근데 웃긴 건 왠지 이해가 가더라는 것이다. 나도 살아남기 위해선 충분히 그들처럼 행동했을지도..
게임의 참가자들은 게임장 입소에 앞서 똑같은 옷과 신발을 신고 이름 대신 번호를 부여받는다. 이들은 게임장의 위치도 모르고 당장 다음에 펼쳐질 게임 종목도 알 수 없고, 옆에 서있는 참가자의 이름도 알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게임을 컨트롤하는 사람들은 참가자들의 모든 걸 알고 있다. 이름, 나이, 사는 곳, 학력, 특이사항을 포함해 이들 인생의 대부분을 알고 참가자들 머리 위에서 이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즐거움을 느낀다.
가면에 그려진 도형과 가면의 종류에 따라 철저한 계급제로 운영되는 오징어 게임이란 작은 사회에서 참가자들은 얼굴과 몸을 속절없이 노출한 채 장난감으로 전락하고 만다.
* 이 게임에선 가면에 그려진 도형의 각이 많을수록, (네모>세모>동그라미), 상급자의 개념인 듯하다. *
끝나지 않는 게임에 대한 피로도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무력한 참가자의 모습이 우리 모습과, 무한히 경쟁해야 하는 게임이 우리 사회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같이 살자”고 말할 여유도, 그런 약속을 지킬 여력도 없이 이기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지쳐버린 우리들. 그리고 465명 중에 1등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최후의 1인을 가리기 위해 자비 없이 반복되는 게임들. 이 게임은 지옥이라 불리는 우리 사회의 일부분을 아주 크게 확대해 놓은 듯한 모습이다.
일부 후기들에선 반복되는 잔인한 장면들, 다소 느리게 느껴지는 전개에 대한 아쉬움을 볼 수 있었는데, 6번의 게임을 지나다 보면 다소 피로감이 몰려오는 건 사실이다. 단순한 게임이지만 믿었던 이들이 서로를 배신하고, 결국엔 1명만이 남아야 한다는 룰 아래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는 긴장감과 허탈함의 반복이 주는 감정 소모가 굉장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해? 예상은 했지만 진짜 싫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생존 게임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함께 지쳐간 기분이었다.
이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어릴 때 친구들과 골목길에서 하던 게임들은 해가 질 때쯤, 엄마의 “얘들아, 밥 먹어~”라는 말과 함께 끝났는데, 고립된 섬 안에서 펼쳐지는 생존 게임에 참여한 이들에겐 게임을 중지시켜줄 사람이 없다. 주최자들은 “참가자 과반수가 동의하면 게임을 중지할 수 있다.”는 조항을 걸었지만, 참가자들은 머리 위에 쌓인 돈을 포기하지 못한다. 말려줄 사람도, 욕심을 포기할 사람도 없다.
한낮에 시작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부터 밤처럼 어두운 세트장에서 치러진 징검다리까지, 하늘은 점점 어두워져가는데 생존에 대한 긴장감을 놓을 틈이 없다. 게임 주최자들은 여러 극한의 상황들을 연출하며 참가자들을 몰아가고, 차후엔 제발 극단적인 선택을 하라며 부추기기까지 한다.
게임 안의 인물들
돈과 생존이 달린 게임 앞에서 사람들은 조금씩 변화한다. 마지막까지 남은 주인공 기훈과 상우, 새벽이 그 변화를 가장 크게 보여주는 인물이다.
새터민 새벽은 아무것도 없이 동생과 덩그러니 남겨진 세상에서 엄마를 데려올 돈을 모으기 위해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새벽은 아무도 믿지 못한다. 게임의 초반, 새벽은 어떤 무리에도 끼지 않으려 하지만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기훈에게 마음을 열고 마지막 순간엔 기훈에게 동생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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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는 <오징어 게임>의 최고 브레인이다. 서울대 수석 입학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그는 정형화된 지략가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생존에 있어 가장 계산적인 인물이다.
개인적으로 <오징어 게임>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왔던 인물은 상우였다. 상우는 처음 게임에서 쫓겨나왔을 때 알리에게 차비를 빌려주거나 달고나 게임 직전 우산을 고른 기훈에게 게임 종류를 말해줘야 할지. 같은 양심적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한다. 자신을 믿은 알리를 배신하고, 부상을 입은 새벽을 찌르고 끝내 마지막 게임에선 기훈에게 칼을 휘두른다. 그는 보통 선하게 설정되는 주인공(기훈)의 편에 함께하면서도 생존을 위한 이기심을 숨기지 않는다.
마지막 게임에서 상우는 기훈에게 우승을 양보하며 죽음을 선택한다. 이 선택은 기훈에 대한 믿음, 사과의 의미 50%와 허공에 돈이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결단 50%가 합쳐진 일부 계산적인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기훈은 약삭빠르기보단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다. 가족도, 동료도, 어머니도, 내 인생도 챙기고 싶었기에 무엇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 그는 엉망이 된 인생을 되돌리기 위해 오징어 게임에 참여한다. 그는 약자인 1번 일남과 혼자인 새벽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게임 안에서 경쟁자가 된 상우에게도 옛 추억을 얘기하며 적대감을 하나도 내비치지 않는다.
좋게 말하자면 살육 게임 안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선인. 나쁘게 말하면 바보 같은 오지라퍼. 그런 상우가 변하게 된 건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상우가 죄책감 없이 사람을 죽인 순간부터였다. 마지막 만찬을 끝내고 칼을 집은 상우를 경계하던 기훈은 새벽의 죽음과 함께 방어와 공생이 아닌 공격을 선택하게 된다. 6번째 게임인 오징어 게임에서 공수를 결정하라는 질문에 ‘공격’이라 답하는 기훈의 대사로 그의 확고한 심경 변화를 느낄 수 있다.
1화의 시작, 기훈과 상우가 오징어 게임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9화에선 어른이 된 두 사람이 생존을 건 싸움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함께 골목을 뛰놀고 서로를 의지하며 자란 기훈과 상우가 어쩌다 이런 상황까지 몰리게 된 걸까. 문득 슬퍼지는 장면이었다. 기훈과 상우는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지만 마지막 순간엔 다시 떠오른 추억과 기훈의 결단으로 둘의 사이가 잠시나마 회복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와버린, 너무 많이 변해버린 두 사람은 함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지영의 말대로 “6.25이후 최대의 비극”같은 게임이었다.
게임 밖의 인물들
<오징어 게임>은 잔인하다. 자의로 참가하긴 했지만 어쨌든 돈과 생존을 필사적으로 바라는 참가자들을 마치 게임 말처럼 게임판 위에 올려두고 관찰하고, 가볍게 죽인다. 참가자들은 게임 내에서 서로의 이름과 추억을 나누며 나름의 동료애와 우정을 쌓아가지만 주최자들은 극적인 게임 연출을 위해 그 심리마저도 이용한다. 아침이 지나고 해가 져갈 때쯤, 이제 거의 끝나간다고 생각될 때쯤 주최자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과 1:1 게임을 붙여 참가자들의 작은 위로와 희망마저 빼앗는다.
그리고 가장 잔인한 건 게임에 함께 참여한 일남의 존재다. 구슬치기 게임을 하며 양심의 가책과 일남을 잃은 슬픔에 절어있던 기훈을 농락하듯 게임이 끝난 후 1년, 일남은 다시 기훈에게 카드를 보낸다. 일남이 게임에 참가한 이유는 돈이 없어서, 삶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보는 것이 하는 것보다 더 재밌을 수가 없지.”
그저 인생의 재밌는 것이 없어 참여했을 뿐, 기훈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일남을 지키기 위해 진심을 다했는데, 일남은 그저 재미 때문에 게임을 열고, 게임에 참가한다. 되짚어보면 일남은 누가 봐도 불리한 상황임에도 큰 걱정 없이 게임을 해왔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할 땐 걱정 없는 아이 같은 표정으로 선두로 뛰어나갔고, 구슬치기 게임에선 미련이 없다는 듯 기훈에게 구슬을 양보한다. 그리고 참가자 간 큰 싸움이 벌어지던 날 밤. 일남이 높은 침대에 올라가 “그만해, 나 너무 무서워!”라고 소리치자 프론트맨은 이내 스페셜 게임의 중지를 선언한다.
일남이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목숨이 달린 게임의 승리를 기훈에게 양보할 수 있었던 것, 그가 무섭다고 소리치자 상황이 종료되었던 것은 일남은 게임에서 지더라도 생명을 잃지 않기 때문에, 통제 못할 상황에서 일남이 생명을 잃는 걸 방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6화 깐부 에피소드에서 일남이 기훈에게 구슬을 양보하며 두 사람 사이의 믿음과 우정을 보여주는 장면에 울컥하긴 했으나 차후에 일남이 보여준 그 행동이 전혀 아름다운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결국 양심을 잃어버린 기훈의 모습에 대한 만족도를 구슬로 표현한 것일 뿐, 그 구슬 안에 담긴 진심이 무엇이었을지.. 더 이상 일남의 마음을 믿을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일남은 기훈을 가장 우습게 만드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오징어 게임> 속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게임에 참가하거나 게임을 진행한다. 등장인물들 중 유일하게 게임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인물은 준호다. 경찰인 준호는 실종된 형이 남긴 명함과 기훈의 증언을 듣고 게임장 내부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가장 용감하고 정의로운 인물이다.
준호는 주최자, 참가자, 외부인의 삼각 구도를 만들어 이야기의 흐름을 팽팽히 당겨낸다. 그리고 참가자들은 하나도 파헤치지 못한 오징어 게임의 비밀과 프론트맨의 정체를 밝혀내고 새로운 궁금증을 떠올리게 만든다. 차후 시즌 2가 제작된다면 준호의 생존 여부가 기훈에게 가장 큰 힘 또는 변곡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주최자들을 제외하고 그 해 오징어 게임에서 생존하거나 죽는 장면을 확실히 보여주지 않은 사람은 두 사람이 유일하니 말이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성을 지킨 주인공
주최자들은 극한의 상황에서 참가자들이 서로를 죽이고 탈락시키는 장면을 기대한다.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본성이란 이기심과 공격성이다. 기훈은 게임 내내 동료라 생각되는 인물들을 챙겼으며 마지막 라운드에서도 상우를 살리기 위해 게임을 중단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이 끝나고 상금을 받았음에도 죄책감과 여러 감정들로 인해 여전히 돈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일남은 남다른 우승자 기훈을 불러내 지나가는 사람들의 양심을 시험하는 마지막 게임을 제안한다. 하지만 기훈은 매번 일남과 주최자들의 예상을 뛰어넘어 타인에 대한 믿음과 인간성을 지키고 일남과의 게임에서도 승리한다. 그는 인간들의 밑바닥을 훑으며 즐거워하던 주최자들에게 커다란 한방을 먹이고 이 게임의 진정한 승자가 된다.
이 게임은 정말 평등한 걸까
“게임 안에선 모두가 평등해.”
<오징어 게임>은 반복적으로 평등을 주장한다. 이들은 밖에선 한 번도 이기지 못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모두 똑같은 위치에 놓고 인생의 마지막 기회를 주는 거라며 참가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건 전혀 평등한 게임이 아니다. 참가자와 주최자의 위치는 하늘과 땅 차이고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위계질서가 형성된다. 참가자들은 생존이 걸린 게임에서 본능적으로 서로를 해치고 죽지 않기 위해 숨는다. 목숨을 건 무한 경쟁을 끝내는 방법은 생명이 다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주최자들은 이 게임이 결국 평등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참가자들의 엎치락뒤치락 하는 모습을 하나의 내깃거리, 구경거리쯤으로 소비한다. 애초에 각자 다른 신체능력과 지능, 게임에 대한 경험치를 가진 400여 명의 사람에게 똑같은 게임을 제안하는 게 어떻게 평등할 수 있을까. 주최자로서 편의를 확보한 일남, 뽑기 게임에서 라이터를 사용한 미녀와 덕수, 일남 덕분에 게임을 통과한 기훈, 장기 적출로 미리 게임을 알았던 참가자 등.. 열심히 포장했지만 결국 평등하지 않은 게임이었다.
만약 456억을 얻을 수 있는 인생 역전의 기회가 온다면, 그 기회를 꽉 잡겠는가? 묻는다면 나는 절대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일확천금의 커다란 기회라면 그걸 놓쳤을 땐 그만큼 잃는 게 많을 테니, 큰 도박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정말 내일 죽을 수도, 내일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또 다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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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노년 레즈비언 부부, 돌봄의 확장과 섹스의 재정의
6★/10★
어느 노인 레즈비언 부부의 이야기를 덤덤히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영화 〈두 사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지막에야 나온다. 가정용 사이키 조명 아래서 두 노인이 천천히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블루스의 몸짓은 뒤따라 나오는 말, ‘우리에게는 약과 로션을 발라주는 게 섹스다’와 기막힌 짝을 이룬다. 수현과 인선은 서로에게 몸을 살짝 기댄 채 자신들만의 몸짓을 만들어내고, 늙어 약해진 몸에 약과 로션을 발라주며 스킨십을 한다. 두 사람이 40여 년의 세월 동안 함께 쌓은 관계가 빚어낸 친밀성‧돌봄 모델은 자못 단단해 보인다.
수현과 인선은 1985년 베를린에서 만나 1990년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파독 간호사였고, 인선은 파독 광부와 결혼한 상태였다. ‘남자 같은 여자’인 수현이 인선에게 예쁘게 핀 꽃을 따다 선물하며 두 사람의 관계는 본격화되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두 사람은 은퇴했고, 인선은 이종문화간 호스피스를 창립했다. 독일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공적‧사적 돌봄의 기회가 취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한 호스피스였다. 간호사로서의 전문성과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이 결합된 자리에서 피어난 자발적 사명감의 발로였을 테다.
인선은 호스피스 일과 더불어 한국과 독일 등에서 강연과 집필을 이어가는 중이고, 수현은 퀴어 퍼레이드를 비롯한 여러 소수자‧약자 집회에 참석하고 한인 교회 활동에도 열심이다. 영화는 두 사람이 각각 가정과 일터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차근히 담아내는데, 느릿한 두 사람의 몸동작과 말은, 집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오랜 생활의 연장이라는 것을 보여줄 만큼 안정적이다. 행동과 말 하나하나에 두 사람이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일구고 반복해온 무언가가 깃들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소박한 한국 음식을 차려놓고 함께하는 식사, TV에 나오는 송해 씨의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는 모습, 호스피스에서 우울한 얼굴의 이주민을 따뜻한 태도로 환대하는 인선의 얼굴, 어느 이웃 백인 노인의 상처를 꼼꼼히 체크하고 돌보는 인선의 모습 등은 이를 분명하게 증명한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두 사람의 오랜 관계성이 수렴하는 곳은 친밀성과 돌봄이 결합된 하나의 인상적인 관계 모델이다. 인선의 암이 재발하고, 수현은 그런 인선을 간병한다. 수현의 인선 간병은 두 사람이 간호사이자 호스피스 종사자, 레즈비언으로서 환자와 사회적 소수자를 돌봐왔던 것의 연장에 놓여 있다. 서로를 사랑한 두 여성이, 자기 역량이 닿는 곳까지 돌봄을 확장하다, 늙고 병 들면서 돌봄 역량을 다시금 서로에게 집중하는 모양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마주한 사회적 상황과 신체적 역량에 따라 그 범위가 조정되었을 뿐, 인선과 수현은 누군가를 돌보고 서로를 사랑하기를 멈춘 적이 없다. 두 사람의 블루스와 섹스에 대한 ‘급진적’ 재정의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건 이 때문이다. 영화 서사의 연장에서, 두 사람의 몸짓과 말에 지난 수십 년간의 돌봄‧친밀성 역량이 응축되어 있음을 분명히 감각할 수 있는 것이다.
친밀성과 돌봄이 긴밀하게 연계된 하나의 모델에 대한 제시와 더불어, 두 성소수자 노인이 오랫동안 함께 살며 소박하고 행복한 일상을 일궈왔다는 것도 그 자체로 의의가 있다. ‘너의 미래는 불행할 것이다’라는 말은 늘 퀴어에 대한 저주에 포함되어 있고, 퀴어 당사자는 돌봄의 공적 체계가 미비하다는 데 분노하면서도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종종 위축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존재는 그 자체로 혐오 세력의 저주에 대한 반례다. 물론, ‘퀴어하다’의 근원적 의미를 생각해봤을 때, 이성애 친밀성 모델을 동성 간 관계로 그대로 대체하는 것에 대한 대중 매체의 반복적 재현이 진정으로 ‘퀴어한’ 미래에 관한 상상력을 특정한 방식으로 고착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그러니 두 사람의 관계를 ‘지향해야 할’ 미래가 아닌 ‘참조할 만한’ 미래의 하나로서 주목하는 게 어떨까? 두 사람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관계성만큼이나 멋들어질 또 다른 미래를 위한 자리를 남겨두기 위해서 말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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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킹헤즈의 이해불가함과 대체불가함을 담아낸 필름
<스탑 메이킹 센스(Stop Making Sense)>(1984, 조나단 드미)
토킹헤즈의 ‘콘서트를 담아낸다’는 것, 놀랍게도 <스탑 메이킹 센스>는 그것을 해낸다. “Hi, I got a tape I want to play.”와 “Does anyone have any questions?” 사이, (녹음된) 데이빗 번의 날카로운 음성이 전하는 것은 맴버 소개를 제외하면 가사 뿐이다. 스토리텔링 위주인 토킹헤즈의 가사는 딱히 싱잉으로 정의되지 않는 번의 보컬링을 통해 전달되어야만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느낄 수 있다 하여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들의 가사와 음악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것, 아니 어쩌면 해석을 시도하는 것 자체부터가 별 의미없는 행위다. 말이 되기making sense를 기꺼이 멈추는 이 밴드의 무대는 머리로 이해하기를 그만둘 때 비로소 심장과 살갗에 닿는다.
기타로 ‘Psycho Killer’의 리프를 연주하기 시작하는 데이빗 번, 카메라는 쉴새 없이 움직일 예정인 그의 발을 감싼 스니커즈에서 출발한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댄스 무브에 집중하는 맴버들을 마구 흔들리며 스쳐가기도 하고, 한 벌스 내내 데이빗 번의 상반신에 고정돼 있기도 한다. 번이 스테이지를 문자그대로 조깅할 때는 마치 그에겐 관심이 없는 듯 다른 맴버들에게 머물러 있고, 제 키만한 스탠드 조명을 파트너삼아 밀고 당기며 춤을 출 땐 바로 곁에서 동선을 좇는다. 그 장면들은 전부 긍정적인 의미로 미쳤고 이상하다. 라인 바이 라인이 즉석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데이빗 번의 구상에 맞춰 순서대로 짜인 제스처들이다. 투어 중 목격한 일본 전통 공연들에 영감을 받았다는 기묘한 안무들은 완벽히 토킹헤즈의 음악과 결합된다. 구성된 무대의 모든 액션이 즉흥으로 와닿는 까닭은, 그날 그 순간 발생한 맴버들의 흥과 힘, 그 사이 교감은 스테이지드 될 수 없는 것이어서다. 선명한 디지털 레코딩과 조화를 이루는 <스탑 메이킹 센스>의 촬영은 공기중의 에너지 흐름을 포착한다.
고화질로 리마스터링된 <스탑 메이킹 센스>는 그 시절 토킹헤즈의 콘서트를 동시대에 밀접하게 관람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영화관에서 본다면, 꼭 시공간을 뛰어넘어 1983년 판타지스 극장에 도착한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현장 객석에선 쉬이 보기 어려운 것들까지 가까이 관찰할 수 있다. 이를테면 칠이 벗겨진 썬번 기타, 그것을 연주하는 번의 현란한 손놀림, 쉼 없이 리듬을 타는 티나 웨이머스의 어깨와 무릎, 미소가 떠나지 않는 크리스 프란츠의 얼굴 같은 것들. 객석에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부분을 담는 시선이 오히려 현장감을 극대화한다. 각 클로즈업은 숏이 나뉘어 있더라도 끊기지 않고 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4+5인의 맴버 각자의 대체불가함, 그리고 그들이 하나의 밴드로 움직이는 방식이 인식-되기보단 감각된다. 알려져 있듯 이 필름엔 아티스트 인터뷰가 없고 반응은 환호성 몇 차례 정도만 삽입된다. 다만 마무리 즈음 객석을 조명한 숏이 몇 이어지는데, 관객들조차 어쩐지 토킹헤즈화 돼 있다. 엔딩크레딧이 흐를 무렵엔 방금 그들 가운데에서 사흘에 걸쳐 이 예측불가한 퍼포먼스를 관람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40년이 지났음에도 이 필름과 콘서트는 전혀 낡지 않았다. 물론 이는 데이빗 번이 단지 과거의 전설이 아니라는, 신세대 뮤지션들과 협업하며 꾸준히 신곡을 내는 현재진행형 창작자라는 점과도 무관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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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터널스 / Eternals, 2021
배우 '마동석'의 별명 "마블리(Mavely)", 뜻은 강해 보이는 인상과 다르게 귀여운 이미지로 붙여진 별명이지만 발음은 "마블(MARVEL)"과 비슷한데요.
그런 '연관성(?)'에 곧장 새로운 마블 영화에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은 들려왔는데, 이에 참여한 배우와 제작진들의 이름들을 듣자니 입을 쉬이 닫히지가 않습니다.
"앤젤리나 졸리"를 시작으로 "리타드 메든 - 쿠마일 난지아니 - 셀마 헤이엑 - 젬마 찬 - 베리 케오칸", 그리고 <노매드랜드>로 "아카데미 감독상 - 작품상"을 수상한 "클로이 자오"까지 한국 영화 팬들뿐만 아니라 마블 그리고 씨네필들까지 모두가 궁금했을 겁니다.
그렇게 공개된 <이터널스>의 성적은 국내외 가릴 것 없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박스오피스 1위야, 사실상 예정된 결과이기에 궁금한 건 성적이었을 겁니다.
먼저, 국내에서는 21년 들어서면서 주말 박스오피스 1위 영화가 주말 관객수 100만명을 기록하게 된 첫 영화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여기에 상영 2주차로 접어든 현재 관객 수는 200만명을 넘기며 "역시, 마블이다"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미에서의 반응은 이와 다릅니다.
최소 8000만 달러에서 최대 1억 달러로 점쳤던 오프닝 성적은 7000만 달러에 그쳤고, 평가도 전문가 48%로 앞전 "아카데미 감독상 - 작품상"을 수상한 이력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데요.
'과연, 어떤 점들이 문제였는지?' - 영화 <이터널스>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지구가 생기고, 그 안에 살아가는 인류가 생기던 그 시점에 생명체들을 먹고 살아가는 "데비안츠"들이 외계로부터 찾아오게 됩니다.
이에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셀레스티얼"은 지구의 인류를 "데비안츠"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터널스"를 보냅니다.
그렇게, 지구를 지키는데 성공한 "이터널스"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지만 이내 "데비안츠"의 부활과 함께 지구의 멸망이 일주일로 다가옴을 알게 되는데...왜, 반응이 나쁘죠?
1. 신을 다루었다고, 영화가 완벽하지는 않아요.
영화 <이터널스>를 소개하는데 앞서, "마블" 혹은 "슈퍼 히어로"장르의 작품들을 보는데 특정 규칙들이 존재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생소한 이름과 함께 관객들에게 소개되는 '해당 캐릭터의 능력부터 어떻게 가졌으며, 또한 왜 영웅으로 변모하고 어떤 적과 마주하는지?'까지의 과정을 온전히 1명의 캐릭터가 풀어가는데도 132분(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분량)이 걸립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이터널스>의 155분은 길어 보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마동석"분을 포함하고도 10명분의 소개를 해야 하기에 짧게 느껴집니다.
물론, 이를 시원시원한 전개로도 바라볼 수 있겠지만 하나의 장점에는 하나의 단점이 따라오기 마련입니다.신이 약골이군
으레, 이런 '멀티캐스팅'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온다는 건 그만큼 캐릭터의 매력을 나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해당 캐릭터들의 출연 당위성을 비롯하여 이끌어가야 하는 이야기의 개연성까지 성립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앤젤리나 졸리"라고 해도 그 분량을 보장받을 수가 없고, 이런 예상은 크게 다르지가 않았습니다.
영화 <이터널스>는 뭔가, 캐릭터의 깊이를 논하기에는 각자 매력들이 뚜렷해 관객들의 선택을 유도합니다.
특히, 캐릭터들마다 취하고 있는 입장의 차이도 있기에 분열하는 조직만큼이나 관객들도 다양한 스탠스를 취하게 됩니다.2. 5개의 입장을 어떻게 풀 건데?
이에 일부 관객들은 이를 두고서, 이번 <이터널스>의 차별화 즉슨 고착화된 마블 영화의 새로운 변화로 볼 것입니다.
하지만 저처럼 "마블 영화"를 많이 봐왔던 관객들에게는 <이터널스>는 여전히 그들의 법칙에 굳혀진 작품입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대립을 취하는 구조는 이미,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한 번 다뤄진 구조입니다.
물론, 찬성과 반대의 <시빌 워>와 다르게 이번 <이터널스>는 각자 2명씩 짝을 이뤄 5명의 입장으로 가짓수를 늘려 관객들에게 폭넓은 선택을 취하게 하나 이는 전개에 있어 중요한 개연성을 빠트리게 만듭니다.메뉴는 많아졌는데, 젓가락이 안가네?
앞서 언급한 <시빌 워>는 "슈퍼 히어로가 조치하는 행동들을 제한하는가?"에 찬반을 다루었고, 이에 조직이 와해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각자 나온 솔로 영화에서 끝마친 소개와 설명도 있겠지만, 이 2개의 입장을 온전히 담아내는 데에도 147분이나 걸렸습니다.
그렇기에 각자 솔로 영화도 없이 2개도 아닌 5개의 입장을 풀어야 하는 <이터널스>로서는 155분은 부족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런 걱정은 <이터널스>의 캐릭터들, 그리고 보여주는 방식에 엿보입니다.3. 선택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 <이터널스>에는 "플래시백"이 많이 나옵니다.
이를 잘 쓴다면야 큰 문제는 아니지만, 문제는 이게 "플래시백"은 관객들에게 설명하는데 논리보다는 감정을 앞세운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대에 놓인 캐릭터들의 모습을 통해서, 감정을 먼저 읽게 함으로 몰입하게 만들면서도 이야기를 늘리게 합니다.
물론, 이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에는 10명의 캐릭터들의 입장 차를 소개하기에는 이보다 간결한 방법이 없거든요.
여기에 그들의 소개까지 하려면 선택이 아닌 필수였을 겁니다.어쩔 수 없는 조치였습니다.
그럼에도 이후 "스프라이트"의 선택과 "킨고"의 불참, 그리고 악당으로 등장하는 "대장 데비안츠"의 대립도 여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먼저, 대장 데비안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이들을 직접적인 마찰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극 중 "흡수"라는 설정으로 비밀을 알고 있는 "에이잭"을 통해 "이터널스"와의 대립각을 세우는데, 이는 "악당을 세워야 하지만 설명할 분량은 없으니 이렇게 진행하자"라는 느낌이니 무미건조를 넘어 갖다 세워둔 느낌입니다.
여기에 "스프라이트"의 선택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갑작스레, 제안하니 당황스러울 뿐입니다.4. 마블에게 이런 여유도 없었나?
무엇보다 캐릭터들의 죽음은 이야기의 방향을 좌우하는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태나"와 "길가메시"의 관계에서 추후 "대장 데비안츠"의 대립까지 귀결되는 이야기의 연결 새는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가슴이 따라가는 공감은 이번 <이터널스>를 무리하게 1편으로 축약시킨 부작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명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음에도 "마블 영화"로 끝난 건 어른들의 속 사정이 빚어낸 해프닝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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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영상은 씨네 랩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2022년 1월 개봉예정인 작품 [미싱타는 여자들]의 시사회를 다녀온 뒤 제작한 영상입니다. 1970년대 평화시장에는 가난해서 혹은 여자라서 공부 대신 미싱을 타며 `시다` 또는 `공순이`로 불린 소녀들이 있었다 저마다 가슴에 부푼 꿈을 품고 향했던 노동교실 그곳에서 소녀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노래를 하고, 희망을 키웠다 다른 시대를 살았던 청춘이 오늘의 청춘에게 보내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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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는 게 제일 좋을 나이에 왕이 된 헨리 5세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 모두를 마주하게 되는데...
왕권을 둘러싼 물리적 정신적 싸움을 리얼하게 그린 이 영화 흥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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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피치 오브 타임 극장판> 메인 예고편
친구 윤오의 연락을 받고 한국에 도착한 피치.
그렇게 날 반갑게 맞아준 윤오가 사실은 귀신이라고?!
25년째 한국을 떠나지 못하는 떠돌이 태국 귀신 마리오를 만난 피치는
윤오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지박령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악귀가 되지 않고 무사히 환생하려면
죽은 날로부터 49일안에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을 풀어야 한다!
도대체 윤오가 그토록 원하던 일이 무엇이었을까?
함께 버킷리스트를 찾아가면서
서로를 향한 마음은 점점 커져가고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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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여타짜> 메인 예고편
인생 역전을 꿈꾸며 도박을 시작한 ‘미미’.
어느 날 밤, 정체불명의 괴한의 습격으로 눈 앞에서 가족을 잃는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포커 카드를 입수한 ‘미미’는 수소문 끝에
비밀리에 운영되는 하우스 도박판 전용 카드임을 알아채고
배후를 찾기 위해 도박장에 입성한다.
내로라하는 선수들만 모인 그 곳, 미스터리한 타짜 ‘오자와’를 만나며
평범했던 ‘미미’의 삶은 송두리째 뒤바뀐다.
그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는 포커판에서
두 사람은 인생 최대 위기를 겪으며
목숨이 오가는 거대한 판에 뛰어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