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M2024-04-01 00:27:16
드니빌뇌브 감독의 대표작, 그을린 사랑
그을린 사랑 / Incendies (2011) 리뷰
Incendies / 그을린 사랑 (2011)
드니 빌뇌브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그을린 사랑'이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필름특별상영되었습니다.
필름을 직접 영사하여 스크리닝하는 귀한 기회였네요.
특별상영회를 빌미로 미루고미뤄왔던 '그을린 사랑'을 드디어 감상하였습니다.
/ 간단한 줄거리 /
쌍둥이 남매인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 나왈의 유언을 전해 듣고 혼란에 빠진다. 유언의 내용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생부와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아 자신이 남긴 편지를 전해달라는 것. 또한 편지를 전하기 전까지는 절대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당부도 함께 담겨있다. 어머니의 흔적을 따라 중동으로 떠난 남매는 베일에 싸여 있던 그녀의 과거와 마주한다. 그리고 그 과거의 끝에는 충격적인 진실이 기다리고 있는데....
-네이버 영화-
이후 감상평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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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갑니다.
엄마인 나왈의 과거와 쌍둥이의 현재를 교차편집하여, 쌍둥이들이 엄마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관객들도 함께할 수 있도록 이끌어줍니다.
엄마의 과거는 이렇습니다.
기독교인인 나왈은 이슬람난민 와합과 사랑에 빠져 아이를 갖게 되고, 사회적 외압에 의해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아이의 발 뒷꿈치에 세개의 점을 찍고 입양보내게 됩니다.
이는 그녀가 아이를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이죠.
이후, 나왈은 계속되는 내전에 아이가 있는 지역이 공격받았다는 소문을 듣고 아이를 찾으러 떠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녀는 살아있는 지옥을 경험하게 됩니다.
죽음당한 사랑, 잃어버린 아이, 영혼이라고는 없는 도시.
그녀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녀가 살아갈 유일한 희망은 그녀의 아이인 셈이죠.
아이를 찾는것만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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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 돌아와, 그녀는 새로 자리잡은 낯선 땅에서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순간 이후에는 언제나 좋지 못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죠.
그녀는 사랑 속 또다른 화염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번 화염은 과거의 화염과는 다릅니다.
과거의 화염은 전쟁과 희생으로 점철된 비극이었다면,
새로운 화염은 그녀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고통이라 칭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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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화염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였고,
사랑 속에서 화염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러한 아이러니가 영화의 극적인 상황을 연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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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적 관점에서 영화의 아쉬움을 말하자면,
단순한 편집방식과 플레시백의 사용입니다.
이야기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 될때마다 새로운 타이틀을 던집니다.
그리고 플레시백을 사용하여 과거로 이동합니다.
이는 관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절한 연출방식일 수 있지만, 자칫 지루함을 유발할 수있으며, 또한 씬과 씬 사이의 연결이 부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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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연출적 아쉬움을 제외하고, '그을린 사랑'은 꽤나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 멋진 영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또한 인상깊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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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염 속 타오른 사랑, 사랑 속 타오른 화염 "
YELM
이 영화는 한줄로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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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부도의 날, IMF 경제 위기 속 다양한 인물의 군상을 보여주다
국가부도의 날이 개봉했을 때 김혜수 배우가 출연하다기에 보러가고 싶었으나(사실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면 영화를 보러 가는 편이다) 내용이 굉장히 무거울 것만 같아서 포기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1997년 경제 위기를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영화관이 아닌 집에서 보기 때문에 그 어두움이 크게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 생각을 하며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우려와 달리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 상황을 가볍게 풀어내지 않아서 그 선을 굉장히 잘 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 시놉시스
모든 투자자들은 한국을 떠나라. 지금 당장. 1997년,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 호황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때, 곧 엄청난 경제 위기가 닥칠 것을 예건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은 이 사실을 보고하고, 정부는 뒤늦게 국가부도 사태를 막기 위한 비공개 대책팀을 꾸린다.
한현, 곳곳에서 감지되는 위기의 시그널을 포착하고 과감히 사표를 던진 금융맨 윤정학은 국가부도의 위기에 투자하는 역베팅을 결심, 투자자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을 알 리 없는 작은 공장의 사장이자 평범한 가장 갑수는 대형 백화점과의 어음 거래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소박한 행복을 꿈꾼다.
국가부도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일주일. 대책팀 내부에서 위기대응 방식을 두고 시현과 재정국 차관이 강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시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IMF 총재가 협상을 위해 비밀리에 입국한다.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는 사랑, 그리고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 1997년,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해당 시놉시스는 네이버 영화 정보를 참조했습니다.
위기에 대처하는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이유는 경제 위기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인물들의 다양한 군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위기가 닥쳤을 때 위기에 휩쓸리는 사람, 위기를 이용하는 사람,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의 모습을 너무나도 잘 표현하고 있었다.
갑수는 IMF체제에 경제적으로 몰락하며 직원들에게 친절하던 사정에서 직원들을 일하는 기계로 보는 사장으로 성격이 변화했다. 그러고 이러한 경제 위기에서 그나마 최악의 상황을 막아보려 동분서주하는 인물 시현과 그 대척점에서 현재 자신의 기득권만 지키면 상관없다는 재정부 차관, 대한민국이 붕괴되는 순간에도 경제흐름을 활용해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종학의 모습까지.
한 나라에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피해를 보는 사람뿐 아니라 역으로 엄청난 경제적 부를 얻는 사람의 모습까지 다양하게 영화 속에 녹여내고 있었다.
색감의 변화를 활용하다
1997년이라는 현재보다는 아날로그적인 시대를 그리고 있지만 영화를 보면서 느낀 색감은 ‘차갑다’ 였다. 블루톤의 이미지를 많이 활용하고 조명 자체를 차갑게 써서 해당 시기가 얼마나 안타까운 상황인지를 시각적으로 확 다가오게끔 만들고 있었다.
이렇게 블루톤의 이미지만 활용했다면 그 느낌이 크게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갑수가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오렌지톤의 이미지를 주면서 굉장히 따뜻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면서도 같은 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자살을 결심할 때는 너무나도 창백한 블루톤의 이미지를 활요하고 있었다. 이러한 차이를 통해 갑수의 절망적인 심리상태를 잘 드러낼 수 있었다.
그리고 경제고위급 관료들만이 있을 때는 따뜻한 조명들을 활용해서 이들이 경제 위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해당 위기를 국가적 재난으로 봤던 한시현이 등장할 때는 같은 공간에서도 약간 채도가 빠진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러한 섬세한 조명의 사용 덕분에 캐릭터별 감정이나 해당 위기를 인물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잘 드러내 줬던 것 같다.
판단은 관객의 몫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생각보다 강하게 기득권을 비판하고 있지는 않다. 그저 그 때 IMF 체제를 선언했고, 상황을 그렇게 만들었던 사람들이 현재 어디 회장 어디 명예이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식으로 당시의 위기 상황과 해결 방식을 사실 위주로 전달하고 있었다.
IMF 체제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 감정적으로 다루는 거시 아니라 자막으로 처리를 해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에 대해 영화 자체가 평가를 많이 자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크게 누구를 비판해야 되는지 유도를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떤 이들에게는 이 작품이 아쉽게 다갈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좋았다. 현재 관객들의 각자 상황 속에서 어떤 인물에 더 집중을 해서 볼지 그리고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가치 판단을 어떻게 할지 순전히 관객의 몫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관객의 사회적 위치와 가치관이 변화할 때마다 보면 이입을 할 수 있는 캐릭터와 등장하는 다양한 군상들에 대한 가치 판단이 달라지는, 관객의 입장에서 역동성 있는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만족스러웠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가해자와 피해자로 영화의 구성원을 가르기보다 다양한 인물들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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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블의 예수님까진 아니고 테레사 수녀쯤?
패트와 매트
이 영화의 주인공은 중고차 딜러 웨이드 윌슨(라이언 레이놀즈)이다. 슈퍼히어로 같은 건 이미 은퇴했다. 웨이드를 떠난 바네사. 웨이드와 함께라면 재미는 있을지언정 위험한 일이 많았다. 진중하지 못한 웨이드에 모습에 실망한 걸까? 웨이드는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며 이제는 주위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는다는 점 하나를 바라보며 살고 있었다. 그러던 오늘은 웨이드의 생일이다. 삼삼오오 모인 친구들. 웨이드는 정말 기뻤지만 은근히 소심한 탓에 고마운 마음을 다 드러내지는 않았다. 마음을 숨기는 웨이드. 생일 파티에 온 바네사(모레나 바카린)를 보면서도 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곳에서 들려오는 벨소리. TVA라는 곳에서 왔다고 한다. 얘네 뭐야? 맞대결을 펼칠 준비를 하기도 전에 TVA가 웨이드를 끌고 가버렸다. TVA에 가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패러독스(매튜 맥퍼딘)이었다. 패러독스가 건네는 제안. 웨이드에게 본인 세상과 친구들을 구하고 싶다면 특정 멀티버스의 중심인물을 만나 여기로 데려오라고 지시한다. 그 중심인물이 누구냐고 묻는 데드풀. 패러독스의 입에 나온 이름은 '울버린(휴 잭맨)'이었다. 울버린? 내 친구 울버린? 설마 로건? 근데 걔는 이미 죽지 않았나? 하지만 괜찮다. 여기는 마블이고, 한참 멀티버스 세계관을 좌우로 넓게 펼치고 있었다. 멀티버스의 울버린을 만나면 되는 일 아니겠어? 데드풀은 울버린을 만나, 울버린은 데드풀을 만나 지독하게 티격태격한다.
히어로로 어떻게 살 것인가
우선 이 영화의 핵심을 이야기하기 전에 MCU 4,5 페이즈에서 작동하는 핵심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이 뭐야? ‘어떻게 주체적으로 슈퍼히어로가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시간대를 <어벤저스 : 엔드게임> 직후로 돌린다. <블랙 위도우>는 스칼렛 요한슨이 다시 출연하며 새로운 히어로의 등장을 알렸다. 나타샤와 같은 주연이었던 옐레나(플로렌스 퓨). 블랙 위도우들의 일환으로 활약하다 언니에게 자극받아 히어로가 된다. 블랙 위도우가 본질적으로 암살자들의 집단이고 나타샤 본인부터가 SHELD에 입사하기 전에 나쁜 짓을 일삼던 캐릭터였다. 빌런에서 히어로가 됐다는 의미인데 이 흐름은 사실상 이후 영화들에게 핵심으로 작동한다. 애 같은 무책임함을 보여줬던 스파이더맨, 친구의 희생을 뒤로하고 각성하는 이터널스, 존재감이 부족했지만 정복자 캉과 처음으로 정면대결했던 앤트맨, 스티브가 아닌 진짜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나는 팔콘이 그랬다. 글쓴이가 이 문단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마블의 드라마나 영화들도 다양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히어로, 자연인으로서 단단해지는 플롯을 중심으로 담았다.
이 <데드풀과 울버린> 역시 ‘엔드게임’ 이후의 마블이 발표한 영화/드라마가 담고 있는 핵심을 그대로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데드풀이 갖고 있는 히어로로서의 개성만으로도 ‘어떻게 주인공이 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을 플롯에 넣기 쉽다. 어떤 특성? 그것은 데드풀이 ‘제4의 벽’을 넘는다는 속성이다. 보통 이야기를 통제하는 것은 감독이거나 제작진이다. 하지만 데드풀은 그 경계선을 넘으며 본인(캐릭터)을 이야기를 만드는 감독과 같은 입장에 등치 시킨다. 이야기를 자기가 쓰고 싶은 대로 쓰는 것이다. 1차적으로 이야기의 핵심이 캐릭터에 닿아있는데, 영화의 플롯도 ‘데드풀이 바네사에게 어떤 자극을 받고 특정한 위치에 있고 싶어 한다’니 사실상 ‘데드풀이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한다’란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울버린 역시 ‘어떻게 이야기를 쓸 것인가’에 대한 부분과 이어진다. 사실 울버린은 <로건>이라는 영화에서 장중한 마무리로 이야기를 끝냈다. 하지만 영화 외적인 맥락에서 이 울버린이라는 캐릭터는 ‘이야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고민 한가운데 있는 인물이다. 왜? 그거야 마블은 ‘판타스틱 4’나 ‘엑스맨’ 같은 엑스맨 유니버스의 등장인물들을 mcu로 편입시키기 위해 신작을 개발하고 있다. <더 마블즈>의 쿠키영상이나 mcu의 핵심인 완다의 역할 같은 것이 아직도 Mcu에 남아있다. 그리고 내년즈음에 mcu판 <판타스틱 4>가 발표된다는 말이 있고, 글쓴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7월 28일) 닥터 둠 역할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캐스팅했다는 속보가 있으니 마블이 현재 울버린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 중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마블이 울버린을 두고 ‘어떻게 이야기를 써야 하지?’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외적인 맥락이라 울버린을 이렇게 활용하는 것이 이야기에서 겉도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이미 데드풀이 ‘제4의 벽’을 넘는다는 점에서 어색함을 줄였고, 마블의 멀티버스 사가는 이런 서사의 뒤엉킴을 해소하는데 적합하다. 데드풀의 파트너로 울버린을 선택한 것이 영화 외적인 근거가 되는 셈이다.
한번 더
이 영화에서 글쓴이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놀랄 것 같은 부분이 있다. 바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다. 이게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처럼 누가 어떻게 나온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다 난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시놉시스나 예고만 본 관객들 입장에서 보면 하나하나 예상외의 캐릭터 터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중 글쓴이가 가장 좋았던 것은 울버린과 관련된 카메오였다. 글쓴이는 ‘엑스맨’을 다 보지도 않았어서 휴 잭맨하면 사실 울버린부터 생각나지 않는다. 휴 잭맨 연기 잘하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울버린과 관련된 캐릭터 하나는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는데, 울버린에게 있어 이질적인 이미지라 인간적인 측면이 강조됐던 캐릭터였다. 이 <데드풀과 울버린>은 이 캐릭터가 왜 등장하고 어떻게 퇴장하는지에 대한 예우를 충실히 갖췄다. 한편으로는 이야기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도 데드풀과 울버린에게 적용된 모티브가 여전히 작동한다. 이 인물에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낸다는 것 역시 중요한데 이 인물이 보여주는 영화의 몇 장면만으로도 감동을 준다.
이번엔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영화 최고의 강점. 세 사람의 등장이다. 글쓴이는 이 영화에 이 세 사람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사람 없었을 것이라 본다. 그리고 그 예상하지 못하다는 점은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전적으로 예상한 바다. 이 인물들은 코믹스가 영화화된다는 관점에서 확실하게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끝마무리 짓지 못한 캐릭터들이다. 영화는 이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어떤 인물은 ‘오직 나 혼자’라고 말하기도 하고 특정 캐릭터는 굳이 그 인물이었어야 했으며 그 나머지 캐릭터는 굳이 특정 히어로를 언급했다. 심지어 세 캐릭터가 특정 캐릭터의 어떤 행동을 바라보는 장면까지 넣으면서 이 영화의 핵심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조/카메오들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인물이 있다. 아마 글쓴이만 이 캐릭터가 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할 것 같기도 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생뚱맞으니까. 이 캐릭터가 이렇게 중요할 일인가? 하지만 이 인물 역시 영화 후반부에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를 주목하니 흥미로웠다. 영화가 '어떻게 영웅으로 살 것인가'라는 점을 살렸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캐릭터 역시 극의 내적 논리를 철저하게 따라간다고 생각했다.
A vs B
이 영화에서 처음과 끝이라는 모티브가 작동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두 세계의 충돌이다. 우선 영화 안의 두 주인공 데드풀과 울버린은 이야기 안에서 내내 티격태격한다. 우악스러운 데드풀이나 성격 더러운 울버린이나 다들 각자 주장이 세다. 내내 평화로운 분위기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 재미가 없다. 그럼 내내 싸울 수밖에 없는데, 이 다투는 이유를 주목해 보면 영화가 두 인물의 어떤 점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를 주안점으로 뒀다. 이 주안점은 영화에서 두 번째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첫 번째는 TVA의 존재) <데드풀과 울버린>의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데드풀이 여자친구를 잃었는데 케이블 덕분에 어찌어찌 잘 산다 같은 거 말고, 왜 이 영화가 기획됐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이 영화의 기저에 깔려있는 따뜻한 분위기가 있다. 왜 따뜻함이 있을까? 바로 폭스가 디즈니에게 인수합병됐기 때문이다. 이거 과정 엄청 복잡했고 기사도 여러 개 나왔다. 애초에 마블 코믹스가 원작인데 다른 회사가 영화를 만드는 상황이 정상적이진 않으니 대략적으로 유추해도 이 과정이 가볍지는 않았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 상황은 두 세상이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게 됐다는 점에서 극 중 데드풀-울버린과의 관계와 겹쳐 보인다. 데드풀이 제4의 벽을 넘나드는 것처럼 이야기의 안과 밖이 하나의 모티브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 두 세계의 충돌이라는 키워드는 플롯을 이끄는 동력이 된다. 첫째. 두 주인공의 액션은 정말 대단하다. 액션의 다이내믹함이 과하면 과할수록 두 인물 간의 충돌이, 또 감정적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체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이 특징을 정확하게 이해해서 테이크를 길게 뺀다던가 무기도 비슷하게 배치하면서 긴박감을 늘린다. 두 번째. 영화의 두 빌런은 충돌이라는 모티브를 전적으로 이행하고 있는 인물이다. 첫 번째 빌런 미스터 패러독스는 캐릭터 명부터가 ‘패러독스’다. 패러독스는 직역하면 역설이다. 그리고 이 인물은 충돌을 일으키기 위해 세상을 욕망하는 인물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카산드라 노바(엠마 코린)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과 충돌한다. 어떤 인물이 되고 싶은 데드풀과는 다르게 카산드라는 무의미함을 좇는다. 두 상황이 충돌한다는 모티브가 빌런을 때려잡는다는 장르의 특징이 빌런과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더 나아가 크고 작게 대립하는 영화의 상황들, 다른 시리즈를 가져온 측면이나 멀티버스를 활용한 방식이나 이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중반부의 두 캐릭터나 이야기의 원동력으로 관객들을 집중시키는 박력이 돋보였다.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의 마지막 직전
이 영화의 단점을 누군가가 나에게 물으면 글쓴이는 준비물이 너무 많다는 점을 뽑고 싶다. 글쓴이는 이 영화 개봉 하루 전에 <데드풀 2>를 봤다. <데드풀 2>를 보고 느낀 점. 이걸 어떻게 지금의 MCU와 연관 짓지? 글쓴이가 영화를 보고 느낀 점. 지금의 MCU와의 큰 연관점을 가지는 건 '로키' 시리즈의 TVA다. 이 집단이 범우주적으로 수많은 시간선을 관리한다는 집단이라는 걸 모른다면 '쟤들은 뭐야?'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걸 알고 난 다음이 문제다. 이야기 전개 상 감독이 영화를 전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후반부에 좀 있다. 이 구멍을 영화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코미디로 돌파하는 감이 있는데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영화의 맥이 쉽게 빠질 것이다.
글쓴이가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단점이라고 보는 것은 극후반부의 전개다. 이 영화가 이 MCU의 시리즈물에 편입한 순간부터 정해져 있는 단점이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끝마무리가 확실하지 못했다. 두 빌런 카산드라 노바와 미스터 패러독스의 끝마무리도, 울버린과 데드풀도 이야기에서 더 설명이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카산드라 노바는 인물의 능력에 비해 설명하는 것이 게을렀다도 생각한다.
생명 연장?
글쓴이는 이 영화를 보고 꽤나 만족했다. 그리고 동시에 의문점이 들었다. 마블 시리즈 보면서 좋았다고 느낀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다 지난 것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였다. 스파이더맨이 돌아온다던가. mcu의 원년멤버인 로키의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짓는다던가 하는 일들이 그랬다. 대중적으로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 volume 3>가 흥행한 걸 생각해 보면 역시 마찬가지다. 이 <데드풀과 울버린> 역시 마찬가지다. 잊혀 간 것들과 지금 내 주위에 있는 것들에 대해 말하는 영화임과 동시에 지나간 것에 예우를 갖추는 영화다 보니 마블의 동력이 정말 다 떨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런 우려와는 별개로 이 영화 자체는 정말 재미있다. 휘둥그레 놀라는 전개, 멀티버스 활용법, 라이언 레이놀즈의 기획자로서의 역할, 숀 레비의 역량과 휴 잭맨의 카리스마까지 신나는 오락영화를 기다려온 관객들에겐 기대치를 충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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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을 사냥하고 싶었던 <늑대사냥>
과거에 교통사고가 나는 모습을 앞에서 본 적이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 택시가 사람 한 명을 쳤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잠깐 넘어지는 선에서 끝난 교통사고. 큰일이 아니었어서 다행이었지만 이 기억은 나에게 굉장히 크게 남아있다. 안 그래도 겁이 많은 나는 이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그런지 잔인한 거 잘 못 본다. 잔인한 걸 잘 못 보지만 스릴러 장르는 취향에 맞는 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아무튼 그런 타입이라고 설명하기로 한다. 타란티노와 크로넌버그가 그렇게까지 끌리지 않았던 이유가 이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내 취향저격 300%인 <큐어>와 <추격자>도 수위 묘사가 있는데 아무튼 이런 장르는 박진감이 있으니 좋아한다고 주장하고 다닌다. 그러면 이 영화도 완전 취향저격이어야 할 텐데? <아수라>도 나쁘지 않았던 나는 이 영화가 내 시간을 사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필리핀으로 배를 타고 이동해서 한 영화를 만났다. <늑대사냥>이다.
아수라장 5분 전
어느 날의 대한민국.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배 안이다. 강력범죄자들을 데리고 이동하고 있는 프런티어 타이탄. 온갖 나쁜 놈들은 죄다 모아놨기 때문에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살인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범죄는 다 저질렀던 범죄자들이지만 이송 과정은 나름 인격적인 대우를 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잡무에 시달리는 형사들. 투정을 내뱉는 부하들을 다독이며 석우는 항해를 시작하고자 한다. 카메라는 지상으로 옮겨간다. 아마 해안 쪽을 담당하는 경찰의 한 부서로 보인다. 모니터로 해안 상황을 감시하고 있던 사람들. 갑자기 어떤 남자가 들이닥친다. 대웅과 일당들은 경찰 인원들을 내쫓고 경비단에 자리를 잡는다. 대웅의 일당들 역시 같은 경찰인 것으로 보인다.
카메라는 다시 배 안으로 옮겨간다. 여전히 어수선한 배. 범죄자들을 수송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얼른 작전이 마무리됐으면 하는 마음은 어린 형사 다연도 마찬가지다. 다연은 형사가 직업이라지만 이 남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의사 경호는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가 싫다. 그런데 경호에게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것 같다. 수상한 기색은 경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찰 내부에서도 이상한 눈빛을 교환하는 남자들이 있다. 폭풍전야 속에 있는 배. 배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이상한 눈빛을 교환한 남자들이 배의 사람들을 죽이고 죄수들의 탈옥을 도운 것이다. 아수라장이 된 배. 죄수들은 한국으로 향하는 항로를 뒤엎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과연 그들의 계획이 성사될 수 있을까?
하드보일드
우리나라가 확실히 잔인한 장르가 발달한 나라는 아니다. 일단 나부터 그렇게까지 잔인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많은 분들의 취향과도 이어진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우리나라 시네필들한테나 익숙하지 일반 대중들은 사실 잘 모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외화 수입이 발달했긴 했지만 한국에서 로컬화를 시켜서 표현하긴 좀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화라는 게 말이 쉽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 지점에서 이 영화가 도달한 성취, 또 가지고 있는 장점 중 하나는 폭력에 대한 수위다. 영화는 하루 온종일 내내 피 튀기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고. 이런 건 기본이다. 심지어 팔다리 뜯는 게 꽤나 자주 나온다. 팔과 다리가 몸을 관통하기도 하고 목을 조르다 못해 손가락으로 찌르기까지 한다. 이런 취향이 있으신 분들은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느낄 만큼 수위가 굉장히 세다. 이렇게 수위를 세게 설정하면 장르적으로 아드레날린이 급상승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건 후반부 장르 비틀기와도 관련이 있다. 이 장르와 높은 수위는 확실히 시너지가 있다.
또 예고편에서도 잠깐 모습을 드러낸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담당 배우가 이 영화에 캐스팅됐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도 한데, 바로 이 영화는 장르가 중반부를 넘어서 한번 뒤바뀐다(또 이 장르 변화가 영화 엔딩이랑 크게 관련이 없기도 하다). 그러니까 영화 구성이 1부/2부로 나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전반부/후반부에서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기는 한다. 1부는 스릴러물이다. 범죄자들이 합심해서 경찰들을 죽이고 탈옥을 도모하는 게 영화의 중심 내용이다. 2부는 호러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등장해 배 승객들이 생존게임을 펼친다는 것이 주요 서사다. 1부 범죄/스릴러물에서 빌런 종두가 강력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좋은 연기를 펼쳐 보이며 시각적으로 압도한다. 또 뭔가 찝찝한 화면 색감이나 배 안을 구현한 미술까지 나름 장르적인 특색을 잘 갖췄다고 볼 수 있다. 2부 호러물에서는 '초대받지 않은 그것'의 연출이 좋았다. 동선이나 액션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했다. 중후반부 영화를 이끄는 주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당 배우가 연기력으로는 검증받은 사람이기도 하고 이 인물을 중심으로 한 승객들의 리액션이 잘 구성되어 있어서 2부 자체로도 몰입하기 좋다. 또 극후반부 액션도 잘 뽑았다. 후반부 액션 연출은 이 영화의 최고 장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의아한 선택
1, 2부 각각의 완성도 자체는 좋았다. 두 장르의 특성을 잘 살린 부분이 러닝타임 곳곳에 보인다. 이거까진 좋았다. 그런데, 사실 이 장르 변동이 영화에 플러스가 됐는지는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써보자면 전후반부의 구분선 때문에 러닝타임을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단 전반부. 경찰을 살해하고 탈옥을 도모하는 죄수들의 이야기다. 후반부. 예상하지 못한 변수 때문에 배 안이 혼란 속에 빠진다. 이 두 가지를 기준선으로 잘라 중심인물로 다르게 설정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전반부는 서인국 캐릭터가, 후반부는 성동일 캐릭터가 이끈다. 제목이 두 번 들어가는 건 이 구분선을 더 선명하게 해 준다. 가장 처음에 '늑대사냥'이 제시되는 부분이나 후반부에 제목이 왜 '늑대'가 들어갔는지를 보면 이는 극이 두 번으로 나뉘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1,2부가 딱 달라붙지 않는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가령 <헤어질 결심>을 보자. 이 영화 역시 1,2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래의 남편 기도서의 살인사건이 1부, 사기꾼 임호신의 피살사건이 2부다. 두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서래와 해준의 사랑이야기가 영화의 주요 서사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사건 사이에는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1부의 로맨스를 2부에 감정적으로 터트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박찬욱, 정서경 두 사람이 극을 위해 필수적으로 설정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또 홍콩 영화 중 명작으로 꼽히는 <중경삼림>은 그냥 옴니버스 영화다. 애매모호하게 떡밥을 해소한 게 아니라 양조위, 왕페이 캐릭터의 사랑이야기와 금성무 캐릭터의 사랑이야기가 공간만 같지 아예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이런 설정도 이해할 수 있다. 애초부터 감독이 그걸 노리고 영화를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이 1,2부 구성이 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일단 영화 자체가 1-2부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1부에서 뿌린 일부 떡밥이 2부에서 회수되기 때문이다. 인물도 비슷하고 주요한 사건까지 공유한다. 그럼 <헤어질 결심>처럼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뜻이다. 장점으로 발휘되면 좋았겠지만 이 형식이 영화의 오히려 단점이 되어버렸다. 2부가 있기 때문에 1부가 의미 없이 느껴진다. 2부에서 불청객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마무리될 건데 1부에서 범죄자들이 경찰은 왜 죽이고 탈옥 계획은 왜 잡아? 어차피 그렇게 될 건데? 이는 반대로도 작용한다. 1부의 범죄자들의 탈출기를 주요 서사로 잡아도 이 영화는 큰 문제가 없다. 그냥 시놉시스만 생각해도 편하다. '범죄자들이 힘을 합쳐 잔혹하게 경찰을 죽이고 탈출하는 범죄/스릴러물'이라 생각하면 살짝 뻔하기는 해도 이야기에 손상이 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후반부로 갈수록 중요한 이야기가 전반부랑 큰 관련이 없으니 앞의 서사가 '왜 넣었지?'라는 의문점만 든다.
이는 이 영화의 폭력 수위와도 비슷한 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끌고 가는 주요한 원동력은 폭력적인 에너지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굉장히 강한 수위로 영화는 내내 기를 빨아놓는다. 그런데 전반부에서 맡았던 피비린내가 비슷한 템포로 후반부까지 이어지니 아무래도 극을 보는 게 지루할 수밖에 없다. 또 그렇게 온 에너지를 분출하며 러닝타임을 봤는데 후반부에 들어서고 이야기가 평면적으로 전개되면 다 예상이 가기 시작한다. '영화 계속 이런 톤이었으니까 앞으로 저렇게 되겠네' 그렇게 예상한 것이 정확히 이루어지고, 이내 곧 맞는다. 사람이 죽는 걸 고민을 많이 했을 영화다. 애초에 감독은 이런 지점을 장점으로 염두하고 만들었을 테니까. 그런데 이 부분만 생각하고 형식과 이야기 구성이 산만하니 러닝타임 동안 관객의 세상을 설득시키기가 어려웠다.
꼼꼼하지 않은 디테일
이렇게 영화 내내 겉돌다 보니 자잘 자잘한 아쉬움도 크게 다가온다. 첫 번째는 퀴어 캐릭터 활용법이다. 이 영화에는 퀴어 캐릭터가 나온다. 이 퀴어 캐릭터의 첫 번째 등장은 전화를 받으며 뭔가를 지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성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이거 사실 이럴 이유가 없다. 굳이 그 상황에서 그 성적인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그냥 의자에 앉아서 지시하는 장면만 나와도 극 전개에는 아무 무리가 없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 영화에서 퀴어라는 소재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냥 이 사람만 퀴어로 설정된 것 빼곤 아무런 특징을 잡을 수 없다. 왜 이렇게 설정했을까? 간단하다. 자극적이니까. 이 상황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 같은 강렬한 이미지를 넣고 싶으면 그 인물의 그 행동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영화 전반적으로 과한 폭력 수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생각은 더 탄력을 받는다. 이 연출 방식은 사실 굉장히 불쾌했다. 서사에서 1도 중요하지 않고 자극적으로만 쓰기 위해서 넣었다. 이게 소수자의 입장인 퀴어를 활용해서 그런 연출 방식을 쓴 건데 그냥 동성애 혐오같이 느껴졌다. 쓸데없이 자극적인 느낌?
또 영화 전반적으로 사운드 편집은 굉장히 아쉽다. 아마 이 부분은 영화의 가장 큰 단점으로 꼽아도 충분할 것이다. 간단하다. 내내 귀가 아프다. 그 전부터 귀가 아프지만 특히 '그것'이 등장하고 나서가 더 아팠다. 물론 영화 안에서 '그것'의 존재감이 강해야 하기 때문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게 이 귀 따가움의 변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의 존재감으로 고통받아야 할 건 극 중 인물들이지 관객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에서도 꼼꼼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하나도 기대가 안 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아는 부분이 있다. 솔직히 여기서 좀 기대했다. 극 전개의 핵심이 있을까 봐. 근데 그런 것 없다. 승객들의 대응은 굉장히 단순하다. 이 때문에 이야기 전개가 다 예상 가능하고 서스펜스를 느끼기도 어렵다. 그리고 극후반부 하이라이트가 되는 액션신이 있고 나서 진주 인공과 관련된 어떤 설정이 있다. 이거, 좀 많이 이상하다. 극에서 내내 제시됐던 큰 설정이랑 안 맞는다. 이게 전형적인 이야기와는 벗어나긴 했는데 그걸 위해서 기본적인 토대까지 흔들어버린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 전체가 극 전체적으로 장르의 특성을 따르기보다는 '클리셰를 부순 신선함'을 추구한 티가 난다. 그런데 그것도 기본적인 완성도가 보장이 되어야 유효타로 작동하는 지점이다.
그래도 장점은 있어
뭐 그렇게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영화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있다. 성동일, 서인국, 정소민, '그것'을 맡은 배우, 그리고 극후 반부의 액션신이다. 일단 성동일 배우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많이들 아는 배우다. 또 <아빠 어디 가>나 <슛돌이> 시리즈에서 입담이 좋은 배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개인적으로 글쓴이는 성동일 배우의 진지한 연기를 한번 보고 싶었다. 초중반부까지는 베테랑의 클래스를 보여주지만 중반부에선 뭔가 매가리가 없었다. 그리고 후반부는 이 배우의 모든 경험치가 다 드러난다. 후반부 극을 마무리 짓는 카리스마로는 손색이 없었다. 또 서인국 배우는 처음 보는 악역 연기였는데 꽤 잘했다. 이 사람이 욕을 하는 게 잘 그려지지 않았는데 이 부분도 무리가 없었다. 또 배우가 비주얼을 어떻게 구현하나? 도 영화에서 주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좀 기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문신을 그냥 좌시하지 않고 톤, 표정, 제스처로 시너지를 내는 좋은 연기가 돋보였다. 이 인물의 행보는 극에서 중요하다. 이 들쭉날쭉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보를 설득력 있게 묘사한 좋은 연기였다. 또 정소민 배우는 존재감이 돋보였다. 비율이 은근히 좋으시던데 이런 배우였나? 싶었다.
또 극후반부의 액션신은 정말 대단하다. 두 배우의 합이 엄청났다. 그렇게 잔인하지도 않은데 이 두 사람의 전투신이 러닝타임 내내 전개되는 고어함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두 배우가 액션을 하는 건 그렇게 자주 봤던 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션 하나만큼은 탄탄하게 구성해서 극의 생동감을 부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성과 창의성이 돋보이는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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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삭은 젓갈처럼 가족도 시간이 필요해
어린아이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보통 한 사람의 생애에서 사춘기가 되기 전까지는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절대적이다. 아이가 부모, 형제, 자매, 조부모, 친인척과 일대일로 직접 맺는 관계뿐만 아니라 아이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관찰하게 되는 다른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도 아이의 소우주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가족은 아이의 성격, 인격, 인생관, 가치관, 장래희망, 심지어 행동반경까지 좌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이에게 이토록 소중한 존재가 가족이라면, 학교 친구를 비롯한 타인이 자신의 가족을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 주기를 아이는 간절히 바랄 것이다.
영화 <비밀의 언덕>의 주인공인 초등학교 5학년 '명은(문승아 배우)'의 삶에서도 엄마, 아빠, 오빠, 할아버지, 삼촌은 너무나 중요한 사람들이다. 명은은 반에서 누구보다 야무지고 똑똑하지만 시장에서 젓갈을 파는 부모를 부끄러워한 나머지 거짓말의 성을 쌓기 시작한다. 명은의 거짓말 속 세계에서 아버지는 한량이 아니라 번듯한 종이 회사의 직원이고, 어머니는 현모양처 전업주부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996년 한국 사회에서 회사원 아버지, 전업주부 어머니, 두 명의 자녀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은 이상적(이라고 생각되지만 과연 그러한지는 의문인) 중산층 가족상이었고 명은도 그런 가족을 꿈꾼 것이다.
영화 <비밀의 언덕>은 글쓰기를 통해서 명은이 조금씩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가다듬고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가족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일본의 배우이자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가 “가족이란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가정의 화목한 상태를 시종일관 유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가족만큼 애증으로 점철된 복잡한 인간 관계도 없기 때문에 기타노 다케시의 말은 묵연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힘이 있다. 처음 가족에 관한 거짓말을 할 결심을 했을 때 명은에게 이 말을 들려줬다면 명은도 공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십 대 소녀의 키처럼 시에서 주최하는 글쓰기 대회를 치르며 명은의 마음도 빠르게 자라서 가족을 포용할 공간을 마련한다.
명은의 엄마와 아빠가 시장에서 운영하는 젓갈 가게의 맛깔스러운 젓갈들을 보며 곰삭은 젓갈처럼 가족도 서로를 이해하고 품어 주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젓갈을 만들 때 원재료의 부패를 방지하고 맛을 돋우는 소금이 꼭 필요한 것처럼 가정의 붕괴를 막고 가족 관계를 더 두텁게 만드는 진솔한 소통이 절실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짜고, 맵고, 쿰쿰해서 처음엔 먹고 싶지 않지만 그 맛을 깨닫고 나면 매끼 젓갈을 찾게 되는 것처럼 차마 말하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삭히고 있던 비밀을 가족에게 털어놓고 나면 매일 가족을 더 찾게 되지 않을까?
영화 <비밀의 언덕>에서 '명은' 역의 문승아 배우, 명은의 담임 선생님 '애란' 역의 임선우 배우, 엄마 '경희' 역의 장선 배우, 아빠 '성호' 역의 강길우 배우 등 주조연들은 모두 조화롭게 극을 이끌어 간다. 또한 이지은 감독이 단역임에도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 준 명은의 반 친구들도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여 실재했을 것 같은 1996년 어느 초등학교 5학년 교실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데 힘을 보탠다. 영화 <비밀의 언덕>은 연기뿐만 아니라 각본과 연출도 빼어나고 1996년의 시대상을 충실히 반영해 시대극으로서도 흠잡을 곳이 없는 완성도를 갖췄다. 현재 시나리오 단계에 있다는 이지은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끝)
* 씨네랩의 초청으로 8월 23일 씨네Q 신도림에서 진행된 '월드비전 주최 [경계를 넓히는 영화: 비밀의 언덕 상영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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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 가장 빛나는 시
영화 <패터슨>은 단조롭다면 단조롭고, 풍성하다면 풍성한 일주일을 담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버스를 운전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그 날 분량의 창작 혼을 발휘해 무언가를 리폼하고 있고, 저녁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면서 동네 바에 들러 맥주를 한 잔 들이켜는 삶. 본인의 이름과 같은 패터슨이라는 도시에서 그렇게 매일 비슷하지만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패터슨의 일주일이다.
작은 진폭으로 일상은 매일 다르게 변주된다. 어떤 날은 아내가 컵케이크를 굽고, 어떤 날은 기타를 사고 싶다고 한다. 어떤 날은 버스를 운전하면서 허세를 부리는 남성들의 대화를 듣게 되고, 어떤 날은 이 마을에 유일한 아나키스트 십대 커플의 대화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 내내 패터슨은 끊임없이, 부지런히, 쉬지 않고 시를 캐낸다. 버스를 출발하기 전에, 점심시간에, 작은 노트를 들고 앉아서 계속 쓴다. 직장 동료가 아침마다 "물어본 김에 말이야" 하면서 매일 다르게 변주되는 일상에서 자질구레한 불평을 셀 때, 패터슨은 매일 다르게 반짝이는 무언가를 적확한 단어로 붙잡아 엮으며 시를 쓴다.
가끔 나도 시를 쓴다. 휴대폰 메모장에 [작은 시]라는 폴더가 있다. 다듬다 만 시, 언젠가 빚어내고 싶은 시어, 만족스럽게 완성한 시, 다시 읽다가 반쯤 지운 시, 같은 것들이 섞여 있다. 그것들을 모아 언젠가 공모전에 시를 내보려고 한 적이 있다. 최소 편수에 맞추기 위해 그동안 썼던 모든 시를 다 끌어모으다가 도저히 부족해 중2병 시절 썼던 노트까지 뒤진 적이 있었다. 그 시를 모두 인쇄해 침대 위에 펼쳐놓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묶어 보면서 순서를 배열하는 내내 나라는 인간의 지난 십여 년 변천사를, 어쩌면 나의 내장 같은 것을 펼쳐놓고 있는 기분이었다. 십수 년의 장구한 시간이 불과 몇십 장 되지 않는 종이로 흩어져 있었다.
그래서 매일 다른 시구를 적는 패터슨이 굉장히 다작(多作)한다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패터슨 자신에게는 그런 의식이 없다. 그는 공모전 같은 곳에 내기 위해 시를 정리하고 묶는 일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의 시를 자랑스러워하면서, 세상에 내놓자고 계속해서 그를 설득한다. 아내는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과 패턴을 과감하게 집안 곳곳에 드러내고, 자신 있게 컵케이크를 만들어 마켓에 내놓으면서 두근두근 기대하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새로이 가슴 뛰는 일이 생기면 남편을 졸라 기타를 사고, 혼자 뚱겨 보면서 이미 포크 아티스트가 된 것처럼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남편의 시를 마음 다해 자랑스러워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은 분명 아름답고 다정하다. 그리고 글은 분명 읽는 사람에게 닿아야 하니 사실 그의 말이 맞다. 패터슨이 그토록 좋아하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또한 그의 시를 소리쳐 드러냈기에 지금 패터슨의 손에 시집이 놓여있는 거니까.
그리고 그런 마음은 글을 쓰고 싶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옛날과 달리 꼭 등단을 하거나 학력이 높거나 특이한 경험을 한 사람이 아니어도 책을 낼 수 있는 세상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등단보다 셀럽이 되는 쪽이 책을 내기엔 훨씬 빠르고 쉬울지도 모른다. 우후죽순처럼 책이, 작가가 솟아나는 세상. 그곳에서 우직하게 얼굴을 붉히며, 아직은 드러내지 않을 시를 쓰는 사람은 확실히 섬 같은 구석이 있다.
시집 한 권 내지 않았어도, 늘 자신을 버스 운전기사라고 소개해도 패터슨에게는 그런 섬 같은 시인의 면모가 보인다. 먼 훗 날 패터슨 시의 누군가가 (예를 들면 엄마와 언니를 기다리며 시를 쓰던 여자아이 같은 누군가가) 패터슨의 초기 시집을 들고 걸어 다닐 것만 같은, 지금 이 모습은 그 시대의 프리퀄 같다는 예감에 휩싸인다. 좋은 시는, 시인은 시간을 초월하므로 과거는 먼 미래를 닮아있는 것이다.
나는 그렇지 못해서, 조바심이 난다. 더 좋은 문장을, 더 좋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은 가끔 길을 잃는다. 글을 향한 짝사랑은 그렇게 갈지자걸음을 걷는다. 정말 좋은 문장으로, 좋은 이야기로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고 싶어 하다가도, 어떨 때는 그냥 내 이름자 박힌 책과 작가라는 타이틀과 거기서 나오는 지적 허영심만 쏙쏙 취하고 싶은 것 같다. 세상에 인정받는 글을 보며 부러워한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아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 마음이 비단 시와 글에 대한 마음만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정답을 모르고 시험지를 받아 든 학생의 태도로 사는 게 문제라는 걸. 고쳐야지 마음 먹지만 그것조차 하나의 과제로만 부여하곤 하는 스스로를 잘 안다.
그러나 영화 말미에 일본인이 던진 말처럼, 때로는 여백이 상상의 여지를 주기도 하는 것이다. 어쩌면 패터슨이 일상 속에서 오롯이 자신의 시를 쓸 수 있는 지금, 아직 등단 전이고 원고 청탁이나 강연 요청이 들어오지 않고 그에 대한 비평이 들려오지 않는 지금이 그에게 가장 빛나는 시를 쓸 수 있는 때인지 모른다. 정말 그의 정수가 흘러나오는 건 지금일 것이다. 누군가의 초기 작품이란 가장 거친 날것으로 그가 드러나는 방식이니까. 가장 그다운 것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시간이니까.
그 사실이 기묘하게 나에게 위안을 준다. 지금은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시간이 아니라, 가장 나다운 것들을 이루어가는 시간이라는 점이. 패터슨이 긴 다리를 성큼성큼 옮기며, 그냥 좋은 사람 소리 듣는 평범한 이웃처럼 웃으며, 그런 날들을 담담하게 사는 모습을 바라보면 지금이 그의 가장 빛나는 시라는 생각이 드니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어느새 조바심을 내려놓고, 여백이 주는 여지를 즐길 수 있다.
패터슨이라는 캐릭터뿐 아니라 이 영화 자체가 나를 그렇게 가르친다. 개가 납치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협박처럼 들리는 젊은이들의 경고 이후에도 패터슨은 여전히 개를 바 밖에 묶어놓는다. 조금 머뭇거리다 개에게 "납치당하지 마."라고 말해두는 게 전부다. 당연히 납치 예방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이후로 부부가 개를 잃어버리게 될까 계속 불안했다. 1장에서 총이 등장했다면 2장이나 3장에서는 반드시 쏴야 한다며? 어디서 체호프의 총 얘기는 주워듣는 바람에. 그러나 그건 나만의 불안이었다. 단편적인 지식은 나름의 쓸모가 있지만, '그래야 한다'라고 사람을 옭아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너무 많은 순간 누군가의 정의를 기다린다. 시란? 시는 이런 거야. 시는 어떤 순서로 묶어야 하지? 이런 규칙에 따라 묶어야 하는 거야. 누군가 그렇게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바보짓을 자꾸만 반복한다. 이런 건 문예창작과에 갔으면 배웠으려나? 안 되면 조상 탓이라고, 툭하면 전공을 돌아보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해도 되나? 이렇게 하는 게 맞나? 누군가 맞다고, 혹은 그게 아니라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해주길 기다린다.
시는 그런 마음 바깥에 있다. 그리고 거기에 시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평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 모른다. 다만 지금 쓰는 대로, 나의 시들은 내가 묶고 싶은 대로, 그 느낌과 그 속도가 맞다. 잘 되지 않으면 잘 되지 않는 대로 담담하게 흘려보내는 것이 맞다. 마음이 또 불안해지거든 눈을 들어 패터슨을 보자. 그리고 조용히 작은 노트를 펴자. 다시 지금의 빛이 눈에 들어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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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이른 유턴
이 글은 영화 [파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갈 때는 출처를 반드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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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영화 장르가 그렇듯 오컬트라는 장르에도 "세계관"이 존재한다. 물론 마블 영화로 대변되는 대형 히어로 프랜차이즈 영화에 비하면 세계관이라는 것 자체의 설명이 똑 부러지게 되지 않을 때가 많겠지만 말이다.
등장인물의 측면에서 봐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마블 영화에서의 주인공들은 투자액수에 비례하게 번쩍이는 능력으로 입을 떡 벌어지게 할 때가 많지만. 오컬트 속 주인공들의 필살기는 빠른 확인이 어려울 때가 많다. 근거리공격인 주술적인 격투(?)도 존재하지만 원거리 공격인 저주로 힘을 겨룰 때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인물들이 가진 능력이 중첩되거나, 심지어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심심찮게 나온다. 이미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오컬트는 무려 "내공"이라는 단어 하나로 인물의(혹은 같은 능력의) 더블링을 퉁 칠 수 있다.
보통 주인공과 같은 능력을 가졌지만 더 높은 내공을 가진 고수를 찾는 것은 언제나 어렵고, 그 고수의 등장은 주인공에게는 최후의 숙적(Arch enemy)인 경우가 많으므로. 오컬트 영화의 세계관은 그 어떤 장르보다 인력난에 시달려야 한다. 또한 주인공은 마지막 대전을 겪기 위해 반드시 성장해야 하는데, 이 내적 성장(혹은 짬바가 차는 과정)은 주인공이 반드시 한 번은 뒤통수를 맞는 반전의 형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초반부 한 시간;숨이 자꾸 멎는다
사진출처: 다음 영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들을 설득할 수 없는 방법으로 보이지 않게 싸워야 하는 모호함을 장르적 특성을 타고났기에. 영화 초반은 이 영화만이 갖고 있는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일정 시간을 할애해야만 한다.
영화 [파묘]에서는 이 역할을 화림(김고은)의 초반 내레이션이 도맡는다. 어둠에 있던 것들이 빛의 경계로 슬그머니 나올 때. 그때 사람들이 자신을 찾고. 그때가 되어서야 어둠으로 그 존재들을 돌려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똑 부러지게 그어놓은 자신들의 한계 위에서. 화림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은 작두를 타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뛰어놀아야 할 고유 영역에서 가장 큰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게 할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표현을 효과음(BGM이나 배경음악보다는 효과음에 가깝다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을 이용해 쌓아 올리는 것도 꽤나 유효하다.
그저 점프 스케어(Jump Scare)에 집중한 크고 단말마 같은 음향이 아닌. 앉아있는 관객의 뒤로 슬그머니 다가와 손가락으로 슬쩍 목덜미를 훑는 것 같은 서늘함을 남긴다. 분명 기척을 느꼈음에도 뒤돌아 볼 수 없기에 관객은 자신의 상상력만으로 손가락의 실체를 향한 두려움의 몸집을 걷잡을 수 없이 불려 갈 수 있다.
영화의 초반 한 시간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의 긴장감으로 관객들을 괴롭힌다. 다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인물들의 칼춤에 몇 번이고 떨어진 간이며 심장을 열심히 주워대다 보면. 그제야 겨우 가늘게 숨을 몰아 쉴 수 있는 잘 짜인 결말로 다다르게 된다. 안도하는 관객들에게 주어지는 후련함은 마치 여기까지 잘 버텼다며 쥐어주는 시원한 물처럼 소중하게 다가온다.
비로소 찾아온 안정을 느끼며 마른 목을 축여갈 때 즈음. 영화는 급작스런 유턴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단 한 번의 유턴으로 인해 호불호라는 길 위에서 나머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오컬트 장르에 없는 것은?;메신저
사진출처: 다음 영화
현대적인 천재의 표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셜록(BBC 드라마. 오이배치 출연)을 보자. 그는 모든 것의 정보를 기억하고 엮어낼 수 있는 비상한 머리와 뛰어난 관찰력을 가졌다. 그런 능력을 배가 시켜주는 소시오패스적인 기질 덕에(?) 자칫 미제로 남을 수 있는 사건을 풀어내는 데 있어서는 경찰들이 오히려 몰래 찾아올 정도다. 셜록의 이름은 그들의 입에 오르내릴지언정 공공연하게 "대놓고"부를 수는 없다. 애초에 셜록이라는 방법 자체가 "공식적인" 해결 방법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 경계는 오컬트라는 장르의 한계와도, 또한 초반에 화림이 선언한 자신들의 역할, 혹은 존재의 위치와도 완벽하게 일치한다. 장르가 "설명이 불가함"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장르 속 인물들은 조금은 억울하고, 또 조금은 찌질한 채로 살아간다. 또한 누군가에게 감히 공식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다. 애초에 메신저로서의 자격이 없는 셈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후반부의 시도는 낯설고 잘 알지 못하는"다른 나라"에서 온 존재를 엮어보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이는 영화 [곡성], 그리고 드라마 [방법]에서도 시도했던 것이기에 그다지 새로운 시도라고는 부를 수 없다.
문제는 그 시도가 어설프다는 점이다. 딱 한 번만 존재할 수 있는 오컬트 장르의 반전 장치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는 데다, 그마저도 긴장감이 사그라진 상태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뒤통수를 가격하는 힘이 그다지 크지 않아 사건의 중대함이 얼마나 큰지 별로 느낄 수 없다.
또한 전반부에는 이야기의 구심점이 사람들에게 있었으나, 후반부에서는 중심축이 사건을 설명하는 쪽으로 묘하게 이동한다. 이 덕분에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일본은 적이다.라는 본능이 그대로 발동되어 버리고 만다. 덕분에 이 장르에서는 존재하면 안 되는 메신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거부감이 후반부 내내 마치 망령처럼 귓가를 맴돈다.
거 어데 도깨비입니꺼?;여기서도 내가 다 했어 임마.
사진 출처:다음 영화
전반부에서 형체가 없던 적은 후반부에 가서는 완벽하게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적에 가깝게 묘사된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거대하게 묘사되는 적이 무자비한 학살을 해대는데도 형태가 흐릿한 혼령이나 날카로운 소리 한 조각보다도 무서움을 실어 나르지 못한다. 상상력이 더 이상은 쓸모없이 되어버리면서부터, 그저 화면에 보이는 존재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수동적인 감상은 초반부의 심장 롤러코스터를 겪어온 관객들에게는 그저 슬래셔 장면의 나열처럼 보일 뿐이다.
적의 속성이 바뀌면서 드러나는 첫 번째 문제점은, 유일하게 영화 속에서 오컬트적인 "전투 기술"을 갖고 있는 화림의 쓸모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화림은 후반부의 싸움에서 승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장면을 연출해내지 못한다. 완벽하게 기선제압을 당해 허둥거릴 뿐이다.
물론 언제나 영화 속 주인공이 승리의 편에 당당하게 서 있을 것이라는 법도 없다. 어쩌면 마이너 한 장르 영화의 특성상 주인공의 비극적인 결말이 낯설지 않거나 오히려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적을 없애야 한다면 화림이 아닌 다른 등장인물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이 사건을 종결해야 한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점이 드러난다.
등장인물들이 가진 능력치의 최대와 최대가 맞붙어야 하는 후반부를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시간을 쓰다 보니 각 인물들의 숨은 능력을 보여주거나 설명할 시간이 없어져버린다는 것이다. 화림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데다 봉길(이도현)은 병원에 누워있는 상황에서. 관객의 머릿속에서 이 사태를 끝낼 "마땅한"인물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정상적일 것이다.
그러니 뜬금없이 상덕(최민식)이 소싯적 짬바를 발휘해서 직접 K-고스트 버스터즈가 되어버리는 장면이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누가 노래방의 민족 아니랄까 봐. 끝을 앞둔 겨우 3 분 전에 갑자기 등장하는 히어로라니. 능력에 대한 빌드업이 되지 않은 영웅은 이제 마블 프랜차이즈에서도 찬밥신세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기에. 상덕의 활약에 무게감이 실리지 않는 결말이 참으로 아쉽게 느껴진다.
마치면서;감독님 사랑합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는 "별로"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아니오. 에 가깝다.
한 시간 후의 그 유턴이 정말 길을 잘못 들어 원점으로 가려고 했던 시도였는지. 아니면 의도된 유턴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장르에 대한 애정이 있는 관객이기에, 아쉬움의 투덜거림이 좀 더 크게 입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만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한국의 오컬트 장르는. 누가 뭐라 해도 장재현 감독님에게 빚이 있다고 생각한다. 음침한 곳에 숨어있던 무언가를 꺼내 경계까지 꺼내놓고, 자신만의 누울 자리를 용케 찾아 단단히 자리 잡아주신 덕분에.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를 한국 패치가 완벽히 장착된 채로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그것도 여러 번이나!!)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선택한 중반부의 유턴이 그저 조금 "이르다" 정도로 말하고 싶다.
스스로가 예상했던 바깥풍경을 못 보았기에 이질감이 들었고. 조금 기이한 기분과 낯섦 속에서 두리번거리는 바람에 이정 자체의 경이로움이 좀 줄어들었을 뿐. 목적지에 도착할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의 TMI]
1. 독일어 공부는 여전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못해먹겠네요.
2. 좀 아파서 쉬었습니다. 이제 괜찮아요.
3. 오늘 과자 한 봉지 다 먹음.
4.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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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딜리버리 - 아이빼고 다 가진 금수저 부부 VS 아이빼고 다 부족한 MZ커플의 위험한 거래
*해당 리뷰영상은 영화배급사 마노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어 제작된 영상입니다
유산 상속을 위해 아이가 필요한 금수저 부부 ‘귀남’(김영민)과 ‘우희’(권소현).
계획 없는 임신을 해서 난감해진 개털 백수 커플 ‘미자’(권소현)와 ‘달수’(강태우).
‘미자’와 ‘달수’는 생활고로 인해 안타까운 결심을 하고, 하필 ‘귀남’이 있는 산부인과를 찾게 된다!
그리고 ‘우희’의 아버지 ‘태식’(동방우)을 속이기 위해 금수저 부부는 임신 사기극을 계획하는데…
올 가을 가장 버라이어티한 공동 태교가 시작된다!
11월 20일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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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로잘린> 공식 예고편
셰익스피어의 고전 명작 로미오와 줄리엣. 어디 한 번 제대로 비틀어 보겠습니다!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로미오의 전여친이자 줄리엣의 사촌인 로잘린의 커플 브레이커되기 대작전? 디즈니+ 오리지널 영화 [로잘린] 10월 14일 단독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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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퍼펙트 케어>
영혼까지 탈탈 터는 ‘완벽 케어’ 서비스!
친~절 머리나는 그들이 온다!은퇴자들의 건강과 재산을 관리하는 CEO 말라,
알고 보면 일사불란한 한탕 털이 기업이다.
사람을 요양원으로
집과 가구는 경매로
모든 것을 탈탈 터는 게 그들의 주업.
법꾸라지 그들은 치밀한 계획 하에
법의 테두리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완벽한 말라의 케어 비즈니스에
순진한 양 같은 다음 타겟이 잡히고
더욱 더 완벽한 케어 서비스를 계획하기 시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