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1-03 16:03:33
컨텐츠 홍수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나를 지키는 방법
2024년에는 CLOSER TO THE MOMENT NOTE 와 함께 영화, 책, 공연, 전시 등 다양한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보세요 물건을 소비하듯, 콘텐츠도 소비하는 시대. 콘텐츠 홍수 속에서 나를 지키키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또는 지키기위해, 알리기위해 ‘기록’하는데요. 클로저에서 영화와 문화 생활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록노트를 제작했습니다.
내가 어떤 장면에서 무슨 감정을 느꼈고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영화에서 좋았던 대사들을 적어 나가다 보면 기록의 끝엔 나의 취향이 보이기 시작할거에요. 100개의 영화를 기록해보세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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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회로 최대치에 담겨있는 비밀
엑. 배가 왜 이렇게 아프지? 분명히 알약 네 알을 빼먹지 않았음에도 탈이 났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인가? 그럼에도 책 읽기 게임하기 공부하기는 포기할 수 없어서 이 변명을 나 자신도 듣지 않을게 뻔하지만 오늘은 뭔가 이상했다.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또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다행히 목적지와 집이 그렇게 멀지 않아서 금방 도착했다. 제주의 원도심 어느 곳에 내린 나. 근처 지하상가에 들어가 화장실을 찾는다. 자주 온 곳이라 어딘지 위치도 외워버렸다. 공중화장실에서 변기 커버를 아무거나 잡고 올렸다.
악! 비명을 질렀다. 누가 변기 물을 안 내렸다. 후다닥 질끈 눈을 감고 물을 내렸다. 그리고 바로 옆의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악! 이 깔끔한 공중화장실 변기 한가운데에 휴지 몇 장이 둥둥 떠다닌다(그냥 휴지만 있었다). 오늘 운수가 왜 이래? 우연 치고는 뭔가 재수 옴 붙은 느낌이다. 근데 또 억울한 게 변기 물이 고장 났냐? 그건 또 아니다. 쭉쭉 잘 내려갔다. 다른 변기도 후다닥 물 내리고 약을 꺼내 먹은 다음 아픈 복통을 처리했다. 그렇게 지하상가를 나와 나의 대장은 왜 이따위인가? 자조하다 갑자기 느닷없이 '이 우연이 참 웃기기도 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 때문에 화장실에 갔는데 그 변기 두 개가 물 안 내린 채로 있었다. 근데 그 변기 하나엔 어떤 못된 인간이 휴지만 둥둥 떠다니게 만들었다. 금세 나는 그런 적이 없었을까? 반추해본다. 다행히 내가 기억하는 선에서는 그랬던 적이 없다. 하지만 마음 한 편에서 '이런 우연도 벌어졌는데 다른 재미있는 일도 일어나면 안 될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에잉. 이 무료한 사회복무요원 생활을 빨리 지나 우연같이 만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누구는 차 운전 열심히 하던 때 세 명의 여자들은 각기 다른 우연에 맞이했다. <드라이브 마이 카>와 같이 제작됐었다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 <우연과 상상>이다.
우연을 상상해서 만든 이야기
메이코는 모델이다. 사진 촬영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 집으로 가는 택시에서 동료 사진작가 츠쿠미와 남자 이야기를 하게 된다. 츠쿠미가 만난 남자는 나름의 매력이 있었다. 이야기가 잘 통해서 수다 만으로도 밤을 새웠다고 한다. 츠쿠미는 그 남자를 마법 같은 일로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잘 맞는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던 츠쿠미. 그렇게 메이코에게 자랑 아닌 자랑을 늘어놓았다. 근데 메이코의 반응은 영 탐탁지 않다. 혹시? 츠쿠미가 말하는 남자의 특성을 조합하면, 메이코의 전 남자 친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충분했다. 생각에 잠긴 메이코. 메이코의 전 남자 친구가 있는 사무실로 길을 돌린다.
사사키는 대학생이다. 그리고 그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나오다. 사사키는 대학 교수 세가와가 진행하는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세가와가 꼴 보기 싫었던 사사키. 유사 여자 친구였던 나오를 구슬려 세가와에게 망신을 주려고 한다. 나오는 사사키의 부탁을 거절했다가, 세가와 교수의 저서가 상을 받았던 것을 보고 한번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나오는 사사키의 부탁대로 세가와 교수를 유혹을 시도하는데,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일어나게 된다.
중년의 여성 나츠코. 10대 때까지 사랑했던 연인을 찾기 위해 동창회에 참석한다. 그런데 그녀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아쉬운 나츠코. 속상한 마음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기차역으로 향한다. 그때, 옛사랑과 비슷한 사람을 발견했다. 다시 달려가는 나츠코. 그 사람도 왠지 나츠코를 아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츠코는 확신에 찬다. 행인의 집으로 향하는 나츠코. 나츠코는 그곳에서 우연이 만든 기막힌 사실을 맞이하게 된다.
우연히 만나 상상하기
영화는 세 편의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우연은 '내 친구가 어제 썸탄 남자가 내 전남친'이라는 우연이다. 두 번째 우연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였다. 세 번째 우연은 내 옛사랑을 길 지나가다 만났다는 우연이다. 영화는 세 가지 에피소드를 병렬로 배치시켜 우연의 속성에 탐구한다. 영화는 세 우연에 앞서 상상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상상을 통해서 인물의 내면을 관찰하는 것이 영화의 주요 소재다.
잠깐 생각을 해 보면, '우연'이 뭘까? 인생은 거의 대부분 필연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우연이 일어나기 어렵다. 우연은 그러니까 상상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내가 지금 당장 이 카페에서 벗어나 만원을 주울 확률은 거의 상상력에 가깝다. 세상 사람들 모두 다 만원 돈이 아깝기 때문에 지갑에 넣고 다닌다. 그리고 또 요즘은 xx페이가 잘 되어 있어서 현찰 갖고 다니는 사람도 얼마 못 본 것 같다. 이 필연의 가능성이 하나, 둘 모여 우연을 없애버린다. 잠깐 상상했던 나의 우연이었다. 그런데 난 이 우연을 기다리고 있다. 또 이 우연을 맞이하면 대충 어떤 행동을 할 것 같은지도 예상이 간다. 사실 간단하다. 내가 이 우연을 상상했던 이유는 방금 초코라떼 하나를 주문하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 못 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상상은 나에게 있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우선이었다. 역시 마찬가지로 인물들이 맞이하는 우연은 본연이 갖고 있는 욕망에 근거해서 벌어진다. 우연처럼 벌어진 일에 어떻게 행동할지 모를 것 같지만 그 진단에는 '나'라는 인물이 거진 다 스포일러를 하고 있다. 전남친과의 재회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 교수를 만나서 들었던 이야기, 바라던 옛사랑과의 조우까지 이 우연을 대비하는 인물들의 태도는 내면에 갖고 있는 구멍과도 상충한다. 그리고 정확히 그 구멍의 크기만큼 인물이 행동한다. 영화는 이 인물이 갖고 있는 공허함과 미련을 우연이라는 상황을 접목시켜 가감 없이 드러낸다.
또 하마구치 류스케 월드
6개월 만에 돌아온 하마구치 류스케의 신작이다. 작년 <해피 아워>와 <드라이브 마이 카>가 국내에서 개봉했을 때가 생각난다. 전자는 후에 왓챠를 통해 봤고 후자는 극장에서 두 번 봤다. <드라이브 마이 카>가 주는 마력은 어마어마했다. 천천히 쌓아 올려 도착한 엔딩에 긴 여운이 남았다. 그리고 내 인생영화로 등극했다. 이는 비단 나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분들의 인생영화가 된 두 작품.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지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은 이유는 분명하다. 지루하지 않게 사람의 내면을 묘사하는 능력 때문이다. 이 하마구치 류스케가 가진 강점은 이 세 편의 옴니버스 영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특히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내면 묘사가 탁월하게 드러난다. 나츠코가 만난, 그러니까 행인에 해당하는 인물이 에피소드 3의 후반부에서 같은 장소를 와다다 달리는 신이 있다. 또 나츠코가 행인의 집에서 만나 하는 대화들을 잘 보면 글 쓰는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자기 언어에 기반한 문장'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사의 톤이 보편적인 톤으로 일관되면 연극 같은 느낌이 강할 것이다. 근데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에서 말하는 대사들은 배우 고유가 갖고 있는 언어와 톤으로 전하는 형식이라 극이 갖고 있는 개성과 흡인력이 뛰어나다. 이는 실제로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가후쿠가 대본 리딩을 한 방식(자주 대본 리딩 읽기)이 실제 하마구치 류스케가 쓰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에 의도를 부여해서 연출자로서의 시그니쳐를 새긴 것이다.
근데 손님은 홍상수
이 영화에는 손님이 한 명 있다. 바로 홍상수다. 지금 당장 구글에 '하마구치 류스케 홍상수'라고 검색하면 작년 10월에 하마구치 류스케가 '나는 홍 감독의 팬'이라고 말한 부분이 있다. 영화의 형식이나 내용이 홍상수를 베꼈다(근데 그렇게 마음먹어도 못 베낄 듯..)는건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살짝 홍상수의 영화를 하마구치 류스케가 자기 식대로 소화한 느낌이 든다.
우선 자기화의 근거로는 '대화'를 사용한 방식이 떠오른다. 사건이 공개되기 전의 홍상수는 인간 존재에 대해 조롱하는 듯한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그 사건이 공개되고 난 후는 외로움이라는 정서가 영화를 이끄는 듯했다. 하마구치 류스케가 자기화시킨 부분은 전자다. 특히 <옥희의 영화> 생각이 난다. 우선 <우연과 상상>과 <옥희의 영화>의 차이점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옥희의 영화>에 '우연'이란 키워드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옴니버스 영화지만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들이 같은 사람이 아니다(이선균, 정유미). <옥희의 영화>를 다시 보지 않아도 생각나는 차이점 키워드는 두 개다. 이는 하마구치 류스케가 뇌를 빼고 홍상수의 영화를 갖고 오지 않았다는 의미와 닿아있기도 하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해피 아워> <아사코>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타인과 나의 관계를 통해 바라보는 자아'를 중심으로 극본을 써온 사람이다. '인간의 욕망을 통해 웃긴 인간의 내면을 묘사한다'는, 전반기 홍상수의 영화적 테크닉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이를 보여주듯 '마음의 구멍'을 위시한 인간 내면 치유의 대사가 <우연과 상상> 곳곳에서 들린다는 것은 그 근거가 된다고 생각한다. 욕망의 발현이 아닌 하마구치 류스케의 방법론 제시라는 점에서 탁월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셈이다. 또한 주연 배우가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옥희의 영화>에서 주연 배우들은 다 똑같다. 근데 모두 같은 역할을 맡았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홍상수 감독님이 이 글을 읽고 '그냥 돈 없어서 그렇게 섭외했는데 히히'라고 하면 딱히 할 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글쓴이가 느끼기엔 네 편의 이야기가 한 가지 키워드로 읽히는 게 싫었던 것 같다. 영화의 구조보다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느꼈던 정서, 그 정서를 공유하는 시간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해석한다. 비슷한 이야기들을 묶어 네 에피소드의 공감대를 하나로 묶고 싶었던 것이다. 이 <우연과 상상>은 세 에피소드의 배우들이 다 다르다. 이러면 단편영화 세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각기 다른 우연과 입장 차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사연을 통해 웃기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하는 게 관객이 되는 셈이다. 당연히 뭐가 더 낫고 구리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하마구치 류스케는 적어도 홍상수가 그동안 갖고 있었던 전개 방식과는 다른 형식을 택한 건 확실한 셈이다.
그리고 이와 반대로 홍상수 영화에서 썼던 연출법이 곳곳에 보이기도 한다. 일단 배경음악을 잘 들어보면 홍상수의 감성이다. 음악의 ㅇ자도 모르는 나. 그냥 '클래식 비슷한 것'으로 홍상수의 OST를 기억하고 있다. 근데 또 이 홍상수란 사람의 취향이 일관돼서 일상 속의 상황에 튀지도 그렇지도 않은 음악들을 넣어 왠지 모르게 웃긴 느낌이다. 이 <우연과 상상>에서도 이런 연출 방식이 나타난다.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후쿠와 다카츠키가 대화하는 신, 눈 묘지 앞에서 가후쿠와 미사키가 대화하는 신에서 조용한 배경으로 대사만 나왔던 것과 대비된다. 또 홍상수 특유의 매가리 없는 클로즈업이 영화에 제시된다. 뭐 클로즈업 기법 쓰는 거야 감독 맘이지만 각각의 쓰는 타이밍은 홍상수가 썼던 형식을 빌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이 외에도 19금 코드를 사용한 것, 반복과 차이를 활용한 방법까지 우리나라의 영화 팬이라면 왠지 모르게 드는 기시감이 놀라울 것이다.
베를린의 이유 있는 선택
이 영화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에 이유를 증명하듯 영화에 마법을 부린 것 같다. 전부 다 일어날 가능성이 적은 우연인데, 왠지 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근데 그게 영화 보는 이유 아니겠어? 이미 벌어진 일이 아님에도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듣는 것. 또 그게 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믿는 것. 우연 같은 좋은 이야기를 만나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야 말로 사람에게 있어 영화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다들 알 거라 생각한다. 사람 사는 이야기 다 똑같다. 그런데 이 영화는 비슷한 궤를 향하는 것 같지만 좀 더 창의적이고 개성이 있다. 일본의 풍경과 감성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녹아든 사랑스러운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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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공개 첫 주말 4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한편 <파일럿>은 개봉 3주 차에도 장기 흥행을 보이며 400만 돌파를 목전에 두게 되었고
광복절을 맞이해 개봉했던 <행복의 나라>는 3위, <트위스터스>는 4위 <빅토리>는 6위에 머물렀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도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4150만 달러를 기록해 1위를 차지했으며 <데드풀과 울버린>이 1조 4564억원을 벌어들이며 역사상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R등급 영화가 됐습니다.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식민지를 떠난 청년들이 버려진 우주 기지 '로물루스'에 도착한 후, 에이리언의 무자비한 공격을 피하며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전작들과 달리 민폐를 부리는 인물이 적다는 점과 적재적소에 삽입되고 오마주 된 에이리언 시리즈의 레퍼런스, 떡밥 회수 등 에이리언 골수 팬들을 충분히 만족시킨다는 평가를 받으며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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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로운 순간을 담은 영화 8선
영화… 좋아하세요?
당연한 말이지만, 저는 참 좋아하는데요.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 중 가장 마지막 단계가 바로 ‘영화를 찍는 것’이라 말했던 프랑수아 트뤼포처럼
바로 여기, 영화를 사랑하다 못해 직접 영화를 찍기로 결심한 이들이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활동했던 영화 연구소를 담은 <노란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부터
곧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싱글에이트>까지!
온 힘을 다해 영화를 찍고, 사랑한다고 외쳤던 이들을 담은 영화 8편을 준비했습니다.
이 영화들을 보고 나면 문득 여러분도 영화를 찍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줄거리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금요일 방과 후. 학교 최고의 인기인 키리시마가 배구부를 그만뒀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평온했던 교내가 술렁이기 시작한다. 배구부원들과 친구들은 혼란에 빠지고, 서서히 이들의 감정에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그러던 중 키리시마와는 가장 먼 존재였던 영화부 마에다가 움직이게 되고, 이야기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는데…
줄거리
난생처음 극장에서 스크린을 마주한 순간부터 영화와 사랑에 빠진 소년 ‘새미’. 아빠 ‘버트’의 8mm 카메라를 들고 일상의 모든 순간을 담기 위해 열중하던 새미는 우연히 필름에 포착된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고 충격에 휩싸인다.
진실을 비추는 필름의 힘을 실감한 새미에게 크고 작은 삶의 변화가 일어나고 엄마 ‘미치’의 응원으로 영화를 향한 열정은 더욱 뜨거워져만 가는데…
줄거리
시대극 찐 팬으로 영화감독을 꿈꾸는 고교생 ‘맨발’. 영화 동아리에서 자신이 기획한 <무사의 청춘>이 탈락되자 직접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절친 ‘킥보드’, ‘블루 하와이’와 드림팀을 결성한다.
우연히 극장에서 만난 미래에서 온 의문의 소년 ‘린타로’를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한 ‘맨발’은 꿈에 그리던 촬영을 시작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지는데…
줄거리
1978년 스타워즈를 보고 흥분한 고등학생 히로시와 그의 절친 요시오, 사사키는 8mm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카메라 가게 직원의 제안으로 ‘시간 역행’을 주제로 한 SF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오랜 짝사랑인 나츠미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우려는 히로시의 열의와 함께, 학교 축제에서 상영을 목표로 이들의 청춘 가득한 영화 만들기가 시작된다.
줄거리
90년대 초, 시네필들의 공동체인 '노란문 영화 연구소' 회원들이 30년 만에 다시 떠올리는 영화광 시대와
청년 봉준호의 첫번째 단편 영화를 둘러싼 기억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영화
줄거리
황홀하면서도 위태로운 고대 도시, '바빌론'에 비유되던 할리우드.
'꿈' 하나만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이를 쟁취하기 위해 벌이는 강렬하면서도 매혹적인 이야기
줄거리
1931년 프랑스 파리의 기차역, 역사 내 커다란 시계탑을 혼자 관리하며 숨어 살고 있는 열두 살 소년 휴고.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휴고에겐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긴 고장 난 로봇 인형만이 가진 전부다. 아버지의 숨겨진 메시지가 있을 거라 믿으며 망가진 로봇 인형을 고치려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휴고는 어느 날 인형 부품을 훔쳤다는 이유로 장난감 가게 주인 조르주에게 아버지의 수첩을 뺏기고 만다.
조르주 할아버지의 손녀딸 이자벨의 도움으로 로봇 인형의 설계도가 담긴 아버지의 수첩을 되찾으려는 휴고는 떠돌이 아이들을 강제로 고아원에 보내는 악명 높은 역무원의 눈에 띄게 되고, 애타게 찾던 로봇 인형의 마지막 열쇠를 가지고 있던 건 다름 아닌 이자벨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줄거리
수많은 걸작을 탄생시킨 영화감독 ‘살바도르 말로’. 약해진 몸과 마음으로 활동을 중단한 채 지내고 있다.
그는 32년 만에 자신의 영화를 다시 보게 되고, 미워했던 주연 배우 ‘알베르토’를 오랜만에 찾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와 조우하게 되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되는데..
강렬했던 첫사랑, 찬란했던 욕망, 괴로웠던 이별, 가장 솔직한 거장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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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과 불신의 문을 열어라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종교와 신앙심에는 언제나 호기심이 많습니다. 어쩌면 신앙이 없기 때문에 그 궁금증이 더 커지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를 향한 상상은 종종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커지곤 하니까요. <헤레틱>은 저처럼 종교와 신앙에 물음표가 있는 사람들에게 꽤 흥미롭게 다가갈 스릴러 영화입니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인물이 <러브 액츄얼리>의 휴 그랜트라면,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한 번쯤은 볼만한 이유가 되지요.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헤레틱>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헤레틱>은 2025년 4월 2일 국내 개봉작입니다.
헤레틱
Heretic
Summary
외딴 집을 찾은 신앙심 깊은 두 소녀에게 집주인은 믿음을 뒤흔드는 이야기를 꺼낸다. 무언가 의심스럽다고 느끼는 순간, 두 소녀는 꼼짝없이 집안에 갇히게 된다. 친절했던 남자는 돌변하고, 그녀들은 살기 위해 위험한 선택을 하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출연: 휴 그랜트, 소피 대처, 클로이 이스트
믿음을 조롱하는 궤변의 이단자
모르몬교도 '반스'와 '팩스턴'은 방문 포교를 위해 '미스터 리드'의 집을 찾습니다. '미스터 리드'는 모르몬교에 호의적인 듯이 대화에 참여하다가, 자연스럽게 두 명의 여성을 집에 가두어 버리죠. 그러고는 이 세상에 참된 종교는 없다는 주장을 피력하며, 방문 포교를 할 정도로 신앙심이 투철한 두 소녀에게 '믿음'과 '불신'의 길 중 하나를 골라야만 이 집을 나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미스터 리드'는 얼핏 참된 종교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종교 비평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자신의 손아귀 안에 있는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통제가 신앙심을 만든다'는 주장의 외연을 만들어 가는 소위 '또라이'일 뿐입니다. 종교적 신념이 강한 사람들의 믿음을 뒤흔드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이자, 이상적인 신념을 향한 인도자인 척하는 비겁한 감금 행위자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소녀에게 '믿음'과 '불신'의 선택지를 꺼내 보이기까지 '미스터 리드'가 펼쳐 보인 궤변의 시퀀스는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일신 종교들이 수천 년간 껴안고 있던 논리적 빈틈들을 짚어가는 장면은, 묘한 설득력을 안기기까지 했죠.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르몬교를 각각 다른 버전의 보드게임 '모노폴리'에 비유한 대사는 놀랄 만큼 참신했습니다.
실제로 재 보진 않았지만, 체감상 십 분 가까이 이어졌던 이 시퀀스는 말 그대로 휴 그랜트의 무대였습니다. 휴 그랜트 하면 언제나 <러브 액츄얼리> 속 영국 총리의 낭만적인 얼굴이 먼저 떠올랐기에, 그가 이런 장르와 잘 어울릴지 의문도 있었는데요. 그는 이 장르의 옷을 완벽하게 갖춰 입었습니다. 비겁하고 뒤틀린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해내는 휴 그랜트의 연기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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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문'이라는 영화적 장치
<헤레틱>의 핵심 설정은 '미스터 리드'의 집에 설치된 '믿음'과 '불신'의 문입니다. 어느 쪽 문을 선택해야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지는 주인공 두 소녀와 관객 모두 알 수 없고, 그러한 불확실성이 영화의 긴장감을 만들죠. 하지만 그 두 개의 문은 모두 하나의 지하실로 연결되어 있었고, 어느 쪽을 택하든 두 소녀는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두 개의 문을 활용한 서스펜스가 너무 빨리 끝나버린 점과 두 개의 문을 그 이상의 영화적 장치로서 활용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쉽습니다. 중반 이후의 전개에서는 문이 하나였어도 이야기의 흐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겁니다. 이 장치를 더 유의미하게 사용하였더라면, 이야기 전개의 긴장감과 매력이 더 살아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지만, 이 작품이 감각적이고 신선한 스릴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단순히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종교와 신앙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지요. '미스터 리드'가 주장하는 내용의 뼈대는 모르몬교의 '참된 교회' 교리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 인상도 받았는데요. 기독교 사회에서 이단이라 불리는 모르몬교의 신자들과, 모든 종교를 부정하며 스스로 이단자가 된 사람의 대립. 이러한 구조는 믿음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려는 시도로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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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리드'의 모습에서 종교와 신앙에 부정적인 감정과 깊은 의구심만을 가졌던 제 모습이 엿보여 괜히 께름칙해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무종교인이지만, 이제는 종교와 신앙을 있는 그대로 존중합니다. 아무리 신의 부재를 증명하고 종교를 부정해도, 그것을 뛰어넘는 신앙의 힘과 가치가 있음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신에게 기도한다고 해서 기적 같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와 내 주변, 그리고 세상의 안위를 빌게 되는 그 행위에 기대는 것뿐이라고 이야기하는 소녀 '팩스턴'의 대사처럼 말이지요.
One-Liner
이단자가 내뱉는 확신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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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폭스 헌트> 리뷰: 파리에서 펼쳐진 추적의 서사
씨네랩의 초대로 아내와 함께 용산 CGV에서 영화 <폭스 헌트)>의 시사회에 참석했다. 장립가(張立嘉) 감독이 연출한 영화 <폭스 헌트>는 파리의 도심 속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추격전을 그린 범죄 액션 스릴러다.
이 영화는 양조위, 단형굉, 장오월, 올가 쿠릴렌코 등 화려한 배우진이 무대를 채우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서사가 초반부터 빠른 호흡으로 전개된다. 중국 특수팀이 국제 금융 사기범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영화는 국경을 넘나드는 스케일과 날 선 긴장을 동시에 잡아낸다. 장 감독은 악명높은 금융 사기범을 잡기 위한 특수 작전팀 ‘폭스 헌트’의 활약을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특히 파리 시가지를 질주하는 추격전과 스펙터클한 액션은 시청각적 몰입감을 강하게 전달한다
'화양연화’ ‘색계’ 등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양조위는 희대의 금융 사기범 다이이첸 역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그의 차가운 눈빛과 절제된 표정은 인물의 교활함과 외로움을 동시에 드러낸다. 파리에서 올가 쿠릴렌코에게 값비싼 목걸이를 건네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사랑과 속임수 사이를 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그의 연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단형굉은 특수팀 리더 예준 역으로 등장해, 흔들림 없는 결단력과 무게감으로 스토리 전개의 중심을 붙든다. 장오월은 여성 수사관으로 강인하고 스마트한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파리 법정에서 검사 역할까지 맡아 통역 없이 유창한 외국어로 재판관을 설득하는 장면은 과장된 영웅주의에 가까워 다소 현실감을 떨어뜨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정의를 실현하는 경찰의 헌신과 충성심, 그리고 희생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이 관객에게는 애국심 마케팅으로 읽힐 가능성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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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혼의 사무라이
황혼의 사무라이
'황혼의 사무라이'는 중의적 제목이다. 주인공 이구치가 하급 사무라이로 창고지기 노릇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느라 해가 떨어지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야 해서 '황혼'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구치가 살던 19세기 중반은 '사무라이'라는 계급이 사라지기 직전이어서 역사적으로 사무라이의 '황혼'이기도 했으며, 마지막 '사무라이'로 살았던 이구치가 관군의 총탄에 죽음으로써 계급으로의 사무라이는 '황혼'을 맞이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영화는 하급 사무라이 이구치의 막내딸, 다섯 살 이토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이토의 눈으로 본 세상이며, 회고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토는 다섯 살에 등장해 나중에 일흔 살의 노인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메이지 유신'을 중심으로 나이를 살펴보면, 이토는 1860년생으로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70년을 더 하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1930년대가 된다.
이토의 나이가 중요한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역사가 매우 빠르게 군국주의화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인데,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의 수십 개 막부가 사라지고, 일본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이 강화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 종료되는 것과 동시에 조선을 침략하고, 곧바로 식민지를 확대한다. 가장 가까운 나라가 조선이었고,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도 일본 식민지로 전락한다.
이런 일본의 침략은 유럽과 미국 강대국의 폭력 앞에 무릎 꿇은 뒤, 선진문물을 수입해 빠르게 개화하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발빠르게 최신 무기로 무장할 수 있었고, 여기에 자신감을 얻어 이웃 나라들을 침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지방에 남아 있던 막부의 토호세력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식민지에서 얻는 이익을 일정부분 공유하며, 일본 내부의 화합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부활한 것은 '메이지 유신' 이전의 막부와 관련이 있다. 형식적으로 막부는 사라졌지만, 지방의 토호세력은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은 메이지 천황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막부에서 귀족으로 신분이 바뀌어 중앙 정부 또는 지방 정부에서 권력을 가진 세력이 된다. 이들 지방 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천황제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천황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지는 않았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전체주의 체제가 오래 이어져 오고 있었고, 정치적으로 기반이 약한 메이지 천황제에서 과거 막부의 전통, 사무라이의 신성화 등이 군대, 군인을 우상화하고, 군인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군국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1860년대 초, 우나사카 막부 휘하에서 하급 사무라이로 살아가는 이구치는 막부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평시에 성의 곡식창고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고 있다. 그는 매우 가난해서 한달에 50석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데, 그 돈으로는 생활이 궁핍해 퇴근하고 저녁에 새장을 만들어 파는 부업을 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폐병을 앓던 아내가 사망했고,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 매우 난감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다. 게다가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고, 어린 두 딸은 이제 열 살, 다섯 살이어서 그가 오로지 돌봐야 하는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함께 술집으로 몰려가 술을 마시며, 여흥을 즐기지만 이구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집안 일을 하고, 어머니도 돌봐야 하고, 아이들도 보살펴야 한다. 여기에 부업으로 새장을 만들어야 하니 그는 조금도 쉴틈이 없는 것이다.
하루는 영주가 곡식창고 시찰을 나왔는데, 이구치가 직접 보고를 하다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걸 영주에게 들키고 말았다. 다행히 영주는 덕이 있는 사람이라 다른 말을 하지 않았으나, 영주의 부하인 관료들이 더 난리를 부리고, 이구치의 집안 어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구치의 삼촌이 그날 저녁 집으로 달려와 영주 앞에서 망신 당한 사실에 대해 노발대발 하고, 자기가 점지한 지인의 딸이 있으니 재혼하라고 윽박지른다. 하지만 이구치는 어린 두 딸과 치매를 앓는 노인이 있는 집에 어떤 여자가 올 것이며, 설령 온다해도 고생만 할 뿐이니 자기는 재혼할 의사가 없노라고 말한다.
이구치는 성정이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그는 술도 마시지 않고,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폭력을 싫어한다. 그는 사무라이 계급이고, 그 자신 어려서 무술을 배워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나, 먼저 칼을 빼는 일은 결코 없다. 더구나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가장 아끼는 보검은 아내의 병구완을 위해 일찌기 팔아버렸다. 그의 꿈은 농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구치는 운명을 잘못 타고 태어난 인물이다. 그는 사무라이보다는 농부나 학자가 되는 것이 본성에 어울리게 보이는데, 사무라이에서도 하급에 머무른 것은 그가 욕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봄이 되어 진달래가 피는 따뜻한 날, 이구치는 두 딸과 함께 들판으로 나와 나물을 뜯는다. 그때 개울에 떠내려오는 어린 아이의 시신을 보게 되고, 몇 년 째 계속되고 있는 흉년으로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나마 이구치의 가족은 근근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구치는 친구 이누마를 만난다. 이누마는 한 달 정도 오사카 막부와 쿄토의 황성을 다녀왔는데, 막부의 움직임과 황성과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얼마 전, 결혼했던 여동생 토모에가 이혼하고 집에 와 있다고 말한다. 토모에의 전 남편 코다 역시 사무라이였고, 부유한 집안이었다. 하지만 술 마시고 아내를 때리며, 학대해서 오빠 이누마가 막부에게 직접 부탁해 이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집에 돌아오니 뜻밖에도 토모에가 와 있었다. 이구치는 몹시 반가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토모에 처지를 위로한다. 토모에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길에, 토모에 집앞에 도착했을 때, 집안에서 싸움이 벌어져 소란스러웠다. 토모에의 전 남편 코다가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코다는 토모에보다 그의 오빠 이누마가 더 괘씸하다고 화를 낸다. 그러면서 이누마에게 행패를 부리고 싸우자고 덤벼드는데, 이때 이구치가 나서서 싸움을 말리고, 코다를 힘으로 제압한다. 코다는 화가 나서 이구치에게 정식으로 대결을 신청하고, 두 사람은 목숨을 건 싸움을 하게 된다.
이누마는 자기 때문에 코다와 싸우게 되었으니, 자기가 나서겠다고 하지만, 이구치는 이누마의 실력으로는 코다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으므로 나서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진검이 아닌, 목검을 들고 코다와 맞선다. 이 시기에는 이미 사적 폭력이나 개인적 결투는 막부에서 금지하고 있었지만, 사무라이들은 목숨을 걸고 일대 일 승부를 겨루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
코다는 이구치가 목검을 들고 서자 자기를 얕잡아 본다며 진검으로 달려든다. 이구치는 가볍게 코다를 제압하고, 이누마와 함께 돌아온다. 이 영화에서 사무라이가 칼을 들고 싸우는 장면은 두 번 나온다. 이구치가 코다와 싸울 때, 이때는 목검을 들었지만 사무라이의 검술이 어떤 모습인가를 짐작하는 동작이 나온다. 목검이 아니고 진검이었다면, 코다는 두세합 만에 목숨을 잃게 된다.
또 한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구치와 요고 젠에몬의 결투인데, 전혀 과장하지 않은 사실주의 형식으로 사무라이가 어떻게 싸우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사무라이의 결투는 일본 사무라이의 환상을 깨뜨리고, 막부 시대의 사무라이가 어떤 존재인가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구치가 집에 돌아오니 토모에가 보낸 편지가 있었고, 이구치는 토모에의 마음을 읽는다. 이후 토모에는 이구치의 두 딸 키야노와 이토의 '엄마'가 되어 생활의 중심이 된다. 어린 키야노에게 살림살이를 알려주고, 함께 놀아주며, 나들이도 하면서 엄마 역할을 해주는데, 이구치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다.
이누마는 이구치에게 토모에의 재혼을 거론한다. 이누마도 이구치를 좋아하는 친구이고, 토모에는 어려서부터 함께 소꿉놀이를 하던 동생이었으니 서로 남다른 감정을 갖고 있는 진정한 벗이었다. 이누마는 부잣집 아들이지만 가난한 이구치를 차별하지 않고 친구로 어울렸고, 나이 든 지금도 변함없이 친구로 지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누마의 인성도 훌륭하고, 토모에는 어려서부터 이구치를 좋아했었다. 다만 입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그건 이구치도 마찬가지였지만, 집안이 너무 기울어져 토모에가 자기와 결혼하면 불행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이구치는 혼인을 거절한다.
이누마는 한달 전, 에도(교토)에서 영주가 사망하는 바람에 후계자 문제로 내부 권력투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이구치에게 알려준다. 이구치는 최하급 말단 사무라이여서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자기와는 직접 문제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고관리 사무장인 쿠사카가 이구치를 찾아온다. 두 사람은 우나사카 가문의 고위 관료인 호리 댁으로 찾아가 명령을 하달받는다. 요고 젠에몬이 할복하지 않아 죽이러 간 무사들이 오히려 요고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으니 이구치가 가서 요고 젠에몬을 죽이라는 명령이다.
이구치는 애써 변명하며 거절하지만, 호리는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며, 말을 듣지 않으면 무사 계급을 박탈하고 번에서 내쫓겠다고 협박한다. 하는 수 없이 승락하고 돌아온 이구치는 죽음을 의식하며 마음을 정리한다.
이구치는 몸종 나오타에게 심부름을 보내, 토모에에게 와달라고 부탁한다. 나오타의 전언을 들은 토모에는 급하게 달려오고, 전투를 앞두고 몸치장을 해야 하는 이구치의 부탁을 듣고 그의 몸단장을 돕는다. 이 과정에서 이구치는 자신이 마음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는다. 토모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어릴 때부터 늘 좋아했고, 결혼하고 싶었으며, 결혼한 이후에도 토모에를 잊지 않고 있었노라고. 지금 결투를 하러 떠나지만, 살아 돌아오면 토모에에게 청혼하겠노라고. 지난번 오빠를 통해 재혼 이야기를 들었지만,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란 토모에가 자신과 혼인하면 평생 고생만 할텐데, 그건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고백하노라고.
이 장면에서 이구치와 토모에의 모습은 담담하지만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어 감동으로 다가온다. 가난한 이구치와 부잣집 딸 토모에의 신분, 어릴 때부터 서로 좋아했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감정들, 체면과 권위로 살아야 하는 사무라이와 사회 제도로 억눌린 여성의 지위와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수많은 제약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믿으며 조용히 살아온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을 읽게 되면서, 시대와 역사를 떠나 인간 본연의 사랑의 실체를 만나는 느낌이다.
하지만 토모에는 이미 혼담이 들어왔고, 자기도 그 혼담을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불러줘서 고맙다고 담담히 말한다. 이구치는 자기가 하면 안 되는 말을 한 것 같아 몹시 당황하면서 마침 도착한 길잡이를 따라 집을 나선다.
요고 젠에몬은 상당한 실력을 지닌 사무라이다. 그를 죽이러 간 다른 사무라이들이 칼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할 정도였는데, 이구치는 내심 자신 있었지만, 그래도 긴장한다. 그는 조심스럽게 요고의 집안으로 들어간다. 마당에는 먼저 들어갔던 사무라이의 주검이 쓰러져 있고, 그 주변으로 파리들이 요란하게 날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요고는 이구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고는 이구치에게 싸우지 않겠노라고, 자기는 도망갈 것이고, 도망가도록 길을 터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요고는 자기가 살아왔던 과거를 이야기한다. 그 역시 사무라이로 쇼군을 모셨으나, 그 쇼군이 다른 쇼군에게 지면서 가산이 몰수당하고, 자기 가족도 쫓겨나 낭인으로 7년을 떠돌다 어렵게 하세가와의 수하로 들어올 수 있었고, 하세가와의 은혜를 입었기에 그를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7년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딸이 병으로 죽었다는 말을 하고, 이구치 역시 자기 아내가 병으로 죽은 것을 알고 있으니, 하급 사무라이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말한다.
이구치도 아내의 병구완을 위해 명검을 팔고, 싸구려 검을 가지고 다닌다는 말을 한다. 이때 갑자기 요고가 화를 내며, 싸구려 칼로 자기를 베러 왔느냐고 소리친다. 요고의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두 사람은 결투를 하고, 이미 지쳐 있던 요고는 이구치의 칼을 맞고 죽는다. 두 사람이 싸우기 전에 나눈 대화는 하급 사무라이의 처지를 드러내는 의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의 존재가 이제 시대의 막바지에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투에서 이기고 돌아온 이구치를 맞이하는 건 토모에였다. 토모에는 이미 집안에서 재혼 혼담이 오가고 있고, 상대도 정해졌지만, 집안의 반대를 무시하고 독단으로 이구치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이후 이구치와 결혼하고 두 딸과 행복하게 살지만, 그 기간은 불과 3년이었다. 이토의 나레이션으로 이어지는 토모에와 이구치의 사연은, 이구치가 관군과의 전투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고, 토모에는 두 딸을 데리고 도쿄로 이주해 그곳에서 두 딸을 훌륭하게 키운다. 토모에가 나이 들어 숨지자, 카야노와 이토는 아버지 이구치와 어머니 토모에를 한 무덤에 모신다.
막부가 해체되고,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면서 일본은 메이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의 국가체제로 발전한다. 그 와중에 마지막 사무라이였던 이구치와 토모에의 애틋하고 깊은 사랑과 저물어가는 사무라이의 역사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이구치의 삶을 보면서, 역사 속에서 개인의 삶과 운명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역사는 거대한 담론으로 강물처럼 흘러가지만, 그 속에는 무수한 개인들의 삶이 담겨 있고, 한 평생이 들어 있고, 개인의 희노애락이 담겨 있다. 역사를 덩어리로만 볼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개개인의 삶을 깊이 들여다 보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에 거울이 되는 장면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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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에서 만난 타노스와 콜렉터 #7
환몽(幻夢) CINE 리뷰 7화_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Sicario, 2015) 리뷰
** 영상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의 후속작 '시카리오 : 데이 오브 솔다도'가 개봉했습니다. 숨 막히도록 건조하게 설계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시카리오 세계관이 그만큼 인상 깊었다는 의미겠지요.
기념하여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를 조금 깊게 이야기 해봤습니다!
(공교롭게도 멕시코라는 땅에서 어벤져스의 타노스와 가오갤의 콜렉터의 조우네요!)- 드니 빌뇌브 감독의 연출 특징!
- 정의를 위한 악이란?
- CIA와 FBI 이야기
- 아쉬운 점
- 우리가 꼽은 명장면
- 환줄평 / 몽줄평영화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를 보고나서 마구 생각하고,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시카리오 #시카리오암살자의도시 #드니빌뇌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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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웨인> 공식 예고편
질풍노도의 시기지만 마음은 따뜻한 열여섯 웨인.
방금 사귄 애인델을 오프로드 바이크에 태우고 도난당한 아버지의 유산인 1979년식 슈퍼카를 되찾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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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에 잠식된다! 생존을 향한 몸부림의 시작 절대 소리 내지 말 것 [에이리언: 로물루스] 파이널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