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12-27 20:12:07
고래의 꼬리처럼 힘차게
영화 <클레오의 세계> 리뷰
PROGRAM NOTE.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여섯 살 클레오가 사랑하는 보모 글로리아를 떠나보내며 겪는 이별과 상실의 과정을 그린 작품.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급히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글로리아와 마지막 여름 휴가를 보내며 인생의 한 단계로서 이별의 의미를 받아들이려는 클레오의 이야기가 뭉클하고 따스하게 그려진다.
(2023년 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POINT.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쁘띠 마망>… 셀린 시아마를 좋아하세요? 셀린 시아마 감독의 모든 장편영화를 제작한 바로 그 제작사의 신작! 속속들이 아름다운 작품을 또 한 편 만나보세요
✔️ 안경을 쓰면서 바로 클레오로 변신했다는 놀라운 신인 배우, 루이스 모루아-팡자니! 클레오가 웃을 때마다 행복해졌어요
✔️ 겨울 코끝을 찡하게 만들어줄 따뜻한 작품. 생의 처음에 있던 것들을 헤아려보게 만드는 영화라서, 2024년 새해 첫 영화로도 좋을 것 같아요
✔️ 2023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 개막작, 2024 선댄스영화제 스포트라이트 부문 초청! 자꾸 시선이 가는 영화
✔️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100%! 받을 만 하지
✔️ 믿고 보는 조합, ‘그린나래미디어’ & ‘하이스트레인저’!
✔️ 2024년 1월 3일 개봉

#최초의 세계
이 영화의 원제는 ‘아마 글로리아(Ama Gloria)’, 그저 정직하게 ‘보모 글로리아’이다. 안경점에서 시력 검사를 하는 클레오의 모습과 함께 보이는 글로리아를 통해, 우리는 금방 꽤나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첫째, 그는 클레오의 어머니가 아니다. 둘째, 그는 클레오와 다른 뿌리를 갖고 태어났다. 셋째, 그럼에도 시력 검사 결과조차 도와주고 싶어할 만큼 그는 클레오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보모. 사어(死語)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어쩐지 빅토리아 시대 고전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느낌의 단어다. 실제로 요즘은 ‘베이비시터’ 같은 표현을 더 많이 쓰기도 하고. 하지만 보모라는 말에는 더 끈적하고 진득한 느낌이 배어 있다. 한자로 ‘모母’ 자를 쓰고 있어 그런지, 옛날에 더 많이 쓰던 단어라서 그런 건지. <클레오의 세계> 속 글로리아 또한 베이비시터보다는 보모라고 부르고 싶은 존재다. 그건 단순히 클레오의 아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오래 함께해왔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둘은 서로에게 온전히 기대는 존재다. 아이 얼굴의 밀가루를 털어주고, 놀이터에서 생긴 상처를 후 불어주는 사람. 걷고, 씻고 하는 모든 순간을 놀이와 웃음으로 채워주는 사람. 오래 전 읽은 소설 <봉순이 언니>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녀만이 우는 나를 달래주었고, 그녀만이 내 잠자리의 베개를 고쳐놓아 주었다. 그녀는 나와 마주친 최초의 세계였다.
클레오에게 글로리아는 최초의 세계다. 그렇기에 클레오는 글로리아를 작은 몸과 마음 다해 힘껏 사랑한다. 갑작스럽게 전화로 전해져 온, 글로리아 어머니의 부고 소식 앞에, 슬퍼하는 글로리아 옆에 조용히 앉아 통통한 뺨과 곱슬머리를 기대며 앉는다. 그렇게 클레오는 온 존재로, 글로리아의 슬픔에 고요히 귀를 기울인다. 때로는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하는 작은 아이는, 조용히 흐르는 슬픔을 감쌀 줄도 알 만큼, 그만큼 자신의 최초의 세계를 사랑했다. 자신을 키우는 존재의 콧노래, 그가 숨죽여 이불로 작은 몸을 덮어주는 순간의 기억, 이런 것들은 어린 시절의 어느 정도를 차지할까. 평소 크게 기억하지 않고 사는 어떤 기억들이 사실은 나를 지탱하게 하고 있음이, 영화에서 부드러운 색채로 그려진 애니메이션을 타고 관객에게로 흘러온다.

#세계는 깨어지고 확장된다
그러나 힘껏 자신을 다 기댄 클레오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이별은 온다. 글로리아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이제 글로리아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장례를 치러야 하고, 어머니에게 ‘황혼 육아’로 맡겨두었던 자신의 진짜 아이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으므로. 그렇게 글로리아로 가득하던 클레오의 세계는 최초의 균열을 맞이한다.

아이들도 알 건 다 안다. 그래서 그 균열의 순간은, 어둠 속에서 훌쩍훌쩍 우는 클레오의 모습. 떼쓰지도 조르지도 못하고 창틀만 꼭 붙잡은 클레오의 눈물 속에서 일방적 순간이 된다. 그러나 진짜 클레오가 균열을 감지하는 건, 오히려 방학을 맞아 글로리아의 고향 섬에 놀러 가서 작은 방에 몸을 뉘이는 순간이다. 가족들과 찍은 글로리아의 사진을 보며, 클레오는 처음으로 감지한다. 내 모든 것인 사람에게, 그에게는 내가 모든 것이 아님을 처음 깨닫는 순간.
그 순간, 머릿속에서 딱 클레오만했던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1학년 소풍 날이었고, 1학년이니까 보호자의 동행이 허락되었으며, 우리 엄마는 나뿐 아니라 동네 이웃집 아이와 동행하고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간호사로 근무하고 계셨던 아주머니는 미안한 얼굴로 아이를 챙겨달라고 연신 부탁했고, 그 모든 사정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엄마가 나 없이 다른 친구와 둘이서만 다정하게 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같은 프레임의 사진에 찍히는 걸 보는데,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조합을 목격했다는 생경한 기분이었으나 뭐라고 설명하지 못한 감정이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때의 내 마음이 이해된 것이다.

굳이 <인사이드 아웃>에서 빙봉이 사라지는 슬픈 장면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성장은 언제나 상실을 동반한다. 내가 알던 세계가 조각나는 아픔을 거친다. 그러나 깨지고 다친 세계는 무너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틈으로 더욱 확장된다. 글로리아에게 자신이 모든 것이 아님을 깨닫는 클레오의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이를 통해 글로리아는 물론 글로리아의 가족들과도 연결된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차츰 배우고, 중심이 아닌 채로도 건강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른다. 영원히 애정의 중심에만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글로리아뿐이었던 “클레오의 세계”는 이렇게 또 조금 확장되었다. (이 영화 제목 번안은 정말 멋지다.)

#그 후로도 우리는 자라겠지만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클레오의 세계”가 확장되는 아릿한 성장의 시간을 따뜻하고 다정하게 바라보는 동시에, 클레오를 둘러싼 사람들에게서도 사랑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주인공의 성장담을 서술하기에 벅차 허덕이는 영화가 아니라, 모든 인물의 성장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담은 넉넉한 작품이다.
자신이 낳은 아이들 대신 자신이 낳지 않은 누군가의 아이를 돌보고 사랑하며 사는 여성의 삶, 섬에 줄곧 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묘한 텃세를 받으며 그 거리감 안에서 다시 생활을 꾸려 가는 글로리아의 삶.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 조금은 떨떠름한 분노의 대상인 엄마를, 동생도 아닌 클레오와 공유해야 하는 세자르의 삶. 어쩌면 상실과 성장을 계속하는 건 클레오만이 아니다.

방학은 끝나고, 여정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막을 내린다. 이별은 필연적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애정 어린 돌봄을 필요로 하는 동시에, 그 애정의 바깥으로 가지를 뻗어야만 성장할 수 있는 존재이다. 유년시절을 꼬박 메운 글로리아의 애정 바깥으로, 클레오는 나아가야만 한다.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의 꼬리처럼 힘차게. 때로는 힘껏 존재를 던지듯 다이빙하고, 또 때로는 다른 이의 손에 의지하여 뭍으로 올라오면서. 그러면서.
왜 이렇게 그 장면들마다 눈물이 났을까. 개인적인 기억의 편린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오래 전 인도에서 “돌보던” 아이들을 두고 비행기에 오르면, 불 꺼진 밤 비행기에서 조용히 줄줄 울던 날들이 떠올라서. 따로 떨어져 행복해져야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걸 잊지 않아야 하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아서. 집이라고 부르는 곳을 두 군데 이상 가져버린 사람들은 그리움이라는 감정과 떨어질 수 없다는 걸 배워 버려서. 그래서.
딱 클레오만한 나이였을 때의 나, 글로리아 같은 상황이었을 때의 나… 이 영화는 내 안의, 이제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을 톡톡 끌어올렸다. 이 영화는 이렇게 보편적인 정서를 통해, 우리 기억과 감정의 문을 두드린다. 누구에게나 처음으로 인지하는 ‘온 세상’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그 사람의 애정 바깥으로 찢겨 나와 성장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누구나 이 영화에서 자신의 조각을 엿보게 될 것이다. 꼭 글로리아나 클레오와 같은 경험이 없더라도.

이 영화의 다정한 시선 속에서, 84분 동안 나는 또 무언가를 찢고 조금 자랐다. 이토록 부드러운 색채와 사랑스러운 감각 속에서 자랄 수 있다면, 상실도 두렵지 않다. 고래 꼬리처럼 이 영화를 품고, 또 열심히 발장구를 쳐본다. 생을 향해서.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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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산 | 처음 보면 오컬트, 끝까지 보면 가족 드라마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임 교수직을 노리는 대학교 시간강사 '윤서하'(김현주). 부려먹기만 하고 교수직을 확답하지 않는 담당 교수에게 치이고, 요가 학원 강사인 남편 '재석'(박성훈)의 외도에 시달리던 그녀에게 갑작스러운 경찰 전화가 걸려온다. 있는 줄도 몰랐던 작은 아버지가 사망했고, 그의 소유였던 선산이 그녀에게 상속될 예정이라고.
얼떨결에 작은 아버지 장례를 치른 후 선산 처리를 고민하는 그녀. 그런 그녀 앞에 불길한 일이 잇달아 벌어진다. 존재 자체를 몰랐던 이복동생 '김영호'(류경수)가 갑자기 등장하고, 남편이 총에 맞아 사망하며, 그녀의 아파트 현관문이 닭 피로 도배된 것. 사건을 맡은 담당 경찰 '최성준'(박희순)과 '박상민'(박병은)이 확실한 수사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자, 그녀는 직접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베일에 감춰진 진실은 상상도 못 한 채.
일보전진과 일보후퇴
<부산행>, <반도>, <염력>, 그리고 <정이>. 연상호 감독의 장편 영화를 보다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가족애와 신파의 존재다. <부산행>만 해도 호불호가 나뉘는 수준이었지만, <염력>과 <반도>를 기점으로는 신파가 극의 개연성과 몰입을 저해한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이에 더해 좀비, 히어로, 디스토피아, SF 등 각 장르의 고유한 재미를 방해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반면에 영화가 아닌 작품이면 위의 비판을 피해 가는 경우가 있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이 대표적이다. 이 드라마에서 연상호 감독은 신파에 기대지 않았다. 신의 심판이라는 초자연적 소재를 내세워 인간의 욕망과 종교의 이면이라는 철학적 주제에 집중하며 호평받았다.
연상호 감독이 제작과 각본을 맡은 <선산>은 반복되는 비판에서 벗어나려 한다. 가족애와 신파는 포기하지 않았지만, 오컬트라는 새로운 성공 공식을 앞세웠다. 또 장르물에 신파를 더하는 대신, 반대 방향으로 접근했다. 그 결과 신파에 기반한 가족 드라마에 오컬트와 스릴러적 요소를 곁들여졌다. 그러나 <선산>의 변화는 제자리걸음이다. 이번에도 장르적 쾌감을 살리지 못한 나머지, 일보 전진이 일보 후퇴에 가려지고 말았다.
현대 사회 속 선산과 가족
제목만 봐도 <선산>은 가족 드라마다. 선산은 조상의 무덤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자연히 일련의 전개를 예상할 수 있다. 주인공이 선산을 물려받고, 그에 반발하는 가족과 외부인이 나타나며, 그 사이에서 숨겨진 가족사가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선산 때문에 추진 못하는 부동산 개발 사업이 껴 있으면 금상첨화다.
<선산>도 마찬가지다. 위의 전개가 모두 들어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선산'이라는 어휘의 특성을 살려 약간의 변주를 주는 데 성공했다. 선산은 사실 나날이 낯설어지는 단어다. 가족 형태의 변화 때문이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핵가족에서 1인 가족으로 가족의 범위가 좁아질수록 혈연의 중요성은 낮아진다. 그 과정에서 장례 방식도 바뀌고, 선산에 매장할 일이 줄어들면 단어 자체를 입 밖으로 꺼낼 일도 없어진다.
주인공 윤서하는 이 세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녀에게 가족은 큰 의미가 없다. 남편 재석은 외도 중이고, 아버지 윤명호는 딸이 어릴 때 집을 나갔다. 작은아버지 윤명길의 존재는 알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서하는 작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도 놀라지 않는다. 선산을 상속받는다는 소식을 들어도 선산 자체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저 누구에게 얼마에 팔아야 할지 궁리할 뿐이다.
진짜 가족을 찾는 여정
<선산>은 윤서하와 180도로 다른 인물을 내세워 선산을 둘러싼 갈등을 부각한다. 그녀의 반대편에는 이복동생 김영호가 위치한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버려졌고, 존재가 지워진 채로 지냈다. 이복 누나가 자기 존재를 전혀 모르고, 경찰조차 그를 선산의 상속자로 고려조차 안 할 정도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는 선산에 오히려 더 집착하고, 윤서하를 위협한다. 그에게 선산은 온전한 가족의 일원으로 마침내 인정받는다는 의미이므로.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선산>은 물질적인 욕망 때문에 선산을 두고 벌이는 암투를 담아낸 드라마가 아니다. 그보다는 선산을 지렛대 삼아 가족의 공동체적 의미를 고찰하려는 이야기에 가깝다. 가족을 대하는 현대적인 태도와 전통적인 태도의 충돌을 선산을 통해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이는 두 이복 남매와는 접점이 없는 최성준의 가족 이야기에 꽤 많은 분량이 부여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일에 치여서 가족에 충실하지 못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아내가 갑작스레 쓰러져서 죽는 순간 옆을 지키지 못했고, 비극의 원인을 아들에게로 돌렸다. 그 결과 아들은 아버지를 칼로 찌르고 싶어 할 만큼 증오했고, 아버지는 아들과 의절하며 가족 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성준은 윤서하 사건을 수사하면서 변한다. 가족 관계에 완전히 무관심한 윤서하, 이복 누나와 선산에게 집착하는 김영호와 대화를 나누면서 아들과의 관계를 되짚는다. 현대적인 태도와 전통적 관점 사이에서 어떻게 가족 관계를 재건할지, 한번 끊어 버렸던 혈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 고민한다. 이는 윤서하가 종국에 김영호와 연락을 안 한다고 해서 관계를 아예 끊은 건 아니라고 말하는 대사와도 상통하는 모습이다.
내용과 장르의 괴리
이렇게만 보면 <선산>은 가족 드라마로서 흥미로운 작품 같다. 확실한 지향점과 메시지를 갖췄으므로. 반면에 장르적으로는 아쉬움이 크다. 포스터나 예고편을 보고 키운 기대를 드라마가 배신하기 때문. <선산>은 중반부까지 오컬트 분위기를 유지한다. 김영호가 무언가에 빙의된 건지, 아니면 무당에게 조종당하는지 헷갈리게 만든다. 삼재 부적, 굿하는 스님의 존재도 그 일환이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철저히 숨겼던 윤서하와 김영호의 진짜 관계가 비로소 수면 위에 올라오면서 오컬트 분위기가 일시에 가족 드라마, 더 나아가서는 막장 드라마로 전환된다. 그 과정에서 여러 암시나 복선도 맥거핀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선산>이 일반적인 스릴러라면 이는 나름 효과적인 반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선산>이 애초에 오컬트 작품으로 포지셔닝했기에 이 반전은 악수로 작용한다. 오컬트 요소를 배제하는 순간 평범한 한국 드라마 중 하나일 뿐이니까. 초자연적 존재의 정체를 헷갈리게 하며 마지막까지 서스펜스를 유지한 <곡성>이나 <잠> 등의 작품과 다른 길을 간 대가를 치르고 만다.
선택과 집중의 부재
그뿐만이 아니다. 전체적인 만듦새에도 군더더기가 있다. 윤서하가 대학교 시간강사로서 난관에 빠지고, 최성준과 박상민의 갈등을 빚는 플롯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윤서하를 이성적인 판단을 못하도록 유도하고, 최성준의 가족사를 부각하기 위한 장치다. 초반부에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활용하면 충분할 내용인 셈이다.
그런데 이 플롯은 중요도에 비해 분량이 과하다. 중후반부에도 거듭 등장하면서 존재감이 커지고, 그 결과 중심 갈등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이에 더해 설명조 대사도 너무 많다. 보여주기만 해도 되는 순간에 굳이 캐릭터의 입을 빌려 일일이 상황을 설명한다. 자연히 흐름은 순간적으로 끊기고, 극은 늘어진다.
그 결과 윤상호 감독의 일보 전진은 제자리걸음으로 귀결된다. 장르물의 본질적인 재미를 살리지 못했다는 함정에 <선산>이 또 한 번 빠져 버렸기 때문. 단순한 신파를 깊이 있는 가족 드라마로 풀어내고, 초자연적 소재라는 성공 공식을 버무리는 변화를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Poor 형편없음
오컬트향 1% 첨가한 막장 가족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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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르다는 게 틀린 건 아니니까, <위국일기>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절연한 언니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소설가 ‘마키오’는
홀로 남은 조카 ‘아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혼자가 된
‘아사’를 향해 수군거리고
이를 참지 못한 ‘마키오’는 홧김에
‘아사’를 집으로 데려오는데…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 수 있을까?
🔖평범하지만 특별한 동거
누적 판매 180만 부를 기록한 야마시타 작가의 동명 인기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 <위국일기>. 베스트셀러 작가 '마키오'가 절연한 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언니의 딸이자 자신의 조카인 '아사'를 본인 집으로 들이게 된다. '버려진 대야 같은 신세'라고 사람들로부터 낙인이 찍힌 '아사'를 보고 충동적으로 보호자를 하기로 결정한다. '마키오'는 자신의 언니한테는 장례식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만큼 나름의 악감정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의 화살이 '아사'한테까지 갈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다.
'다른 나라에서 쓰는 일기', '어긋난 나라의 일기' 라는 제목이 나타내는 것처럼 '마키오'와 '아사'는 서로 다른 생활방식, 성격으로 함께 사는 데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리고 '엄마' 혹은 '언니' 라는 인물을 향한 감정 자체가 다르기에, 그 갈등은 더 심해져갈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나라에 사는 듯하며 끊길 듯 안 끊기는 이 관계를 지속하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한다.
😭귀엽고 예쁜 여자 캐릭터의 축복이 끝이 없다..
만화 원작을 안 봐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영화를 보고나니 개인적으로 만화를 꼭 보고싶은 마음이다. 물론 러닝타임이 130분이 넘어 꽤 길었음에도 평온하고 따뜻한 방법으로 관객을 집중시켰다. 어른이 되어도, 나이가 여전히 들어가도 '성장'이라는 건 누구나 다 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한편으론 아라가키 유이 배우가 맡은 '마키오' 배우의 감정선이 다소 갑작스럽게 보였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다시 말해 인물의 심경 변화 서술이 쪼금 평이하게 다가왔다. 그치만 원작의 전부를 다루지 않았으며 '아사'가 밴드에 들어가 노래하는 부분에서 결말이 맺어진다는 점이 더욱 좋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깔끔하게 끝났다는 느낌이다. 실제 다른 후기들을 찾아보니까, 원작에 비해 분위기가 밝다는 평이 꽤 보이던데 맞는듯하다.
사실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연출, 원작 비교 등등 다 괜찮고 보통이었지만!!! 어쩜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들마다 다 귀엽고 예뻐서.. 원작 만화도 이런가?? 싶은 생각이었다. (이 부분 때문에 더더욱 만화를 찾아보고 싶음..) 만화찢고나온 여자 배우들이 계속 해서 나오는데 그래서 몰입이 더 잘 되었던 기분이었다.
별점 3.5 / 5 일본 작품의 훈훈한 분위기를 가볍게 느끼고 싶다면!! 보는 걸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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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사랑은 옥수수 같아
2X9 구교환 대리운전 브이로그
https://youtu.be/QmAWZMIRYEo?si=agfrUTK9C47TSwg1
내 사랑은 옥수수 같아. 만일 연인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흔히 남들이 말하는 거창한 사랑 같지는 않을 것이다. 완벽해 보이지도 않고 말이다. 어떤 남자의 사랑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다소 특이하고, 틈이 있는 옥수수 같은 사랑을.
유튜브에서 〈대리운전 브이로그〉를 마주한다면, 정말 대리운전기사의 24시간을 담은 브이로그를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혹은 썸네일의 이미지도. 브이로그가 아니라 단편영화에 가까운 〈대리운전 브이로그〉는 그래서 여느 2X9 연출작들처럼 특별하다. 옥수수 농장을 하시는 아버지, 춤을 추고 나머지 시간은 대리 운전 아르바이트로 보내는 아들. 그런 아들 ‘구교환’(구교환)에게는 자신의 춤을 좋아하는 연인 ‘소정’이 있다.
어김없이 콜을 받고 주차장에 도착한 교환을 맞이하는 건 파란 오픈카와 두 여자다. 코앞에서 나누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범상치 않다. 드넓은 주차장과 비좁은 차 내부의 간극이 긴장감을 조성하며 그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두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차린 교환은 당황하지 않는다. 소정의 두 언니 앞에서 되레 당당하다. 연인과 절대 헤어질 수 없다는 교환의 의지와 함께 심판이 시작된다. 마지막 91번째의 총성이 울릴 때, 2022년판 ‘백 투 더 퓨처’는 막을 내린다. 이별을 선언하지 않으면 총알을 맞이하게 되는 굴레 속에서, 교환은 가져온 옥수수 하나를 다 먹으면 소정과 헤어지겠다고 약속한다.
교환에게 사랑은 옥수수다. 내용물을 흘리지 않으며 원형을 보존할 수 있고, 비워진 정도를 개수로 단박에 알아차릴 수도 있으며, 모든 게 끝나도 단단한 심이 되어 남는 건 분명 사랑이다. 어떻게 보면 완벽한 구황작물이란 뜻이다. 아버지의 업을 이어받고 싶진 않지만 대리운전을 나갈 때면 킥보드에 달고 다니는 옥수수도, 자동차 보닛 위에 마지막 의지를 남기고 온 옥수수 한 알도. 전부 교환의 사랑이다. 오늘도 교환은 옥수수와 사랑으로 점철된 꿈에서 소정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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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3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2월 셋째 주!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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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 넘보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 네이버 영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17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중인 가운데 3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뒀습니다. 1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32만 5129명을 동원해 누적 관객수 285만 6967명으로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으며, 이번 주 중 300만 관객 돌파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지난 11일 '하울의 움직이는 성'(261만 명)을 제치고 국내 개봉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역대 흥행 순위 2위에 오른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역대 1위인 '너의 이름은(379만 명)'의 기록까지 뛰어넘을 수 있을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아바타: 물의 길', 국내 누적 매출액 역대 2위 달성
ⓒ 네이버 영화지난달 '1천만 관객'을 돌파한 할리우드 대작 '아바타: 물의 길'의 국내 누적 매출액이 전체 개봉작 중 역대 2위에 올랐다고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가 13일 밝혔습니다. 이날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아바타: 물의 길'의 국내 누적 매출액은 1천361억여 원을 기록해 종전 2위였던 '명량'(1천357억여 원)을 넘어섰습니다. 전체 1위는 2019년 개봉한 '극한직업'으로, 누적 매출액은 1천396억여 원입니다. 글로벌 매출의 경우 22억 1430만 달러로 역대 글로벌 박스오피스 4위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재 역대 글로벌 흥행 랭킹 1위는 '아바타', 2위는 '어벤져스: 엔드게임', 3위는 '타이타닉'입니다.
CGV 씨네라이브러리 재개장
ⓒ CGVCGV가 운영하는 국내 최초 영화 전문 도서관 '씨네 라이브러리'가 다시 관객 품으로 돌아옵니다. CGV는 한동안 운영을 중단했던 '씨네 라이브러리'를 일반 고객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재개방했다고 14일 밝혔습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출입을 제한했던 것을 실내 마스크 해제 등 방역 지침 완화에 맞춰 일반 고객에게 재개방한 것입니다.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10층에 위치한 '씨네 라이브러리'는 영화 관련 전문 서적 1만 여권을 갖춘 국내 유일 영화 전문 도서관으로 2015년 5월에 처음 선보였습니다. 영화 원작, 영화 전문서, 국내외 시나리오를 비롯해 영화에 창의적인 영감을 안겼던 미술, 사진, 건축, 디자인, 세계 문학 고전 등 인문, 예술 분야 등의 엄선된 장서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넷플릭스 공개예정
ⓒ 네이버 영화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하는 시대에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이라 더 섬뜩한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가 넷플릭스에서 17일 공개됩니다.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는 평범한 회사원이 자신의 모든 개인 정보가 담긴 스마트폰을 분실한 뒤 일상 전체를 위협받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동명의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져 스마트폰이라는 흔한 소재를 사용했지만 속도감 있는 연출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신인인 김태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임시완, 천우희, 김희원 등 연기력이 보증된 배우들의 열연이 몰입도를 높였습니다.
'똑똑똑', 3월 8일 국내 개봉
ⓒ 네이버 영화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한 화제작 '똑똑똑'이 3월 8일(수)로 국내에 개봉합니다. 영화 '똑똑똑'은 휴가를 즐기던 가족이 인류를 살리면 가족이 죽고, 가족을 살리면 인류가 멸망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미스터리 스릴러로, 북미 개봉과 동시에 '아바타: 물의 길'의 박스오피스 흥행 독주를 막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흥행 대이변을 일으킨 작품입니다. 데이브 파티스타, 루퍼트 그린트 등이 출연하며, 연출은 '식스 센스' '언브레이커블' '23 아이덴티티' '글래스' 등을 만든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맡아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영화 '30일' 크랭크업
ⓒ 네이버 영화
배우 강하늘과 정소민이 주연을 맡은 영화 ‘30일’이 크랭크 업했습니다. 영화 ‘30일’(가제, 감독 남대중)은 로맨스로 시작했지만 스릴러가 되어버린 연애의 끝을 딱 30일 앞두고 뜻밖의 사고로 동반기억상실증에 걸린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 코믹 로맨스입니다. 강하늘과 정소민은 영화 ‘스물’에 이어 다시 한번 연인으로 만나 연애의 모든 과정을 새로운 스타일의 코믹 로맨스로 탄생시킬 준비를 마쳤습니다. 작품 촬영을 마친 강하늘은 “촬영하는 동안 매일매일 다음 날의 촬영이 기대됐을 정도로 즐겁고 행복했다. 관객 분들께도 기분 좋은 웃음을 선사할 영화가 될 것이라 믿는다”라고 크랭크업 소감을 전했습니다.
‘더 플래시’ 슈퍼볼에서 예고편 공개
ⓒ 워너 브라더스6월 16일 개봉 예정인 '더 플래시'가 예고편을 공개하며 베일을 벗었습니다. 워너브라더스는 12일(현지시간) 미프로미식축구(NFL) 슈퍼볼 57 캔자스시티 치프스와 필라델피아 이글스 경기에서 '더 플래시'의 예고편을 공개하며 첫 선을 보였습니다. 공개된 예고편에는 '다중우주'라는 소재상 두 명의 에즈라 밀러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으며, '맨 오브 스틸'에서 조드 장군 역을 맡았던 마이클 섀넌, '슈퍼걸' 사샤 칼레도 등장했습니다. 앞서 '더 플래시'는 주연인 에즈라 밀러의 수많은 법적 문제로 인해 난관에 부딪힌 바 있습니다. 에즈라 밀러는 지난해 한 주택에 무단 침입해 술을 훔치는가 하면 난동과 폭행, 그루밍 범죄 의혹 등에 휩싸이며 논란의 중심에 섰으며, 지난 8월 이 같은 논란에 대한 사과를 전했습니다. DC의 수장인 제임스 건은 '더 플래시'에 대해 "역대 최고의 DC 영화이자 역대 최고의 슈퍼 히어로 영화다. DCU를 재설정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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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입 금지된 곳이라서 낙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전에는 기쿠지로가 정확히 마츠리 날 밤에 죽었고 그 후 소년 마사오는 천사들 귀신들 도깨비들(을 방불케할 정도로 이상하리만큼 친절한 어른들)과 한껏 즐거운 놀이를 하고 집으로 돌아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패싸움 후 이상한 꿈을 많이 꾸는 마사오의 도깨비 꿈, 최고로 많이 다치고 해진 기쿠지로의 모습, 그리고 천사의 종을 열심히 울려댄 오후 덕에 더 굳게 믿었다.
영화를 다시 보니 기쿠지로는 굳이 그 마츠리가 아니라 어디서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찻길 위에서 히치하이크하려다 뺑소니 차에 치었을 때든, 호텔 수영장에 빠졌을 때든, 싸움난 길거리(들)에서든, 훔친 택시에서 운전 미숙으로 연기가 났을 때든, 심지어 경륜으로 한탕하고 아가씨들 있는 술집에서 진탕 퍼마신 여행 첫날밤이든.
<탑건 : 매버릭>의 오프닝에서 마하 10을 넘긴 매버릭이 바로 그 사고에서 이미 죽었고, 나머지 2시간은 그의 아름다운 인생을 기리는 주마등이라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같은 간편하고 모호한 표현을 끌어오지 않고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단호히 가정한) 김병규 평론가의 글처럼. <기쿠지로의 여름>도 초반부 새벽 풀밭에 세워진 택시와 거기서 사람이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장면이 너무 피안 같아서, 혹시 이전에나 이후에 기쿠지로가 이미 죽은 건 아닐지 계속 의심했다.
그러니까 이건 언제 어디서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기쿠지로가 “너도 나와 같구나”를 말하더니 소년을 어떻게든 엄마에게로 또 집으로 데려다주려고 애쓰는 얘기. 자기는 엄마를, 유년기를, 제대로 된 인생을 되찾는 데에 실패했지만 소년에겐 조금 이른 화해를 선물해주려고 하는 얘기. 그렇게 기쿠지로는 어른이 된다, 마사오를 아이로 만들어주기 위해.
그래서 이 영화가 ‘마사오의 여름’이 아니라 ‘기쿠지로의 여름’일 거란 걸 새삼 느꼈다.
또 예전엔 마사오를 놀아주는 후반부가 다소 지루할 만큼 길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이 왜 마사오를 놀아주려 하는지는 알았지만 왜 자기들이 더 신난 것마냥 그렇게 필사적으로 분장까지 해가며 온몸으로 놀아주는지는 몰랐고, 그래서 더 그들이 명계에서 온 상상친구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보니 알 것 같다. 오프닝부터 여름 방학을 맞이한 마사오가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아이는 축구교실을 친구들 집을 길거리를 찾아다니지만 모두 돌봐줄 가족이 있고 저만 혼자다. 엄마가 정말 돈을 벌러 갔다면 할머니가 손자를 위해 방학 중 하루도 못 빼고 가게에서 일할 것까진 없었을 텐데. 어쩌면 엄마가 새살림을 들었단 것까지 마사오는 어른스레 다 직감하고 있었을 테고… 다른 아이의 엄마가 된 엄마를 처음으로 보면서 애가 (불쌍하게도) 별로 안 놀라보였으니까.
놀아주는 어른들이 생겼기에 ‘무슨 애가 저렇게 울상이냐’던 마사오는 히힛 히힛 밝게도 잘 웃는 애가 된다. 애어른 아니고 진짜 애. 마사오가 달려갈 때마다 하늘에서 지켜봐준 누군가도 더이상 걱정되지 않을 만큼 해맑은 애.
왜 마사오가 얼마나 외로운지 예전에는 제대로 몰랐을까? 어떤 시기는 완전히 지나오고 나서야 그게 남들 눈에 어때 보이는지 알 수 있어서겠지.
그보다도 정말 미치겠는 건 기타노 타케시의 표정들.
피를 닦아주는 마사오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처음 말하는 표정
요양원에 모셔둔 괴팍한 어머니를 창 너머로 바라보던 표정
소년 마사오를 그러니까 소년 기쿠지로를 보내주던 마지막 표정
(그러니까, 우두커니 선 기타노 타케시의 얼굴이란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도 하나비에서도 소나티네에서도 왜 이렇게 사람을 울리는가. 더이상 마사오의 엄마가 아닌, 더이상 스기모토가 아닌 요시무라 사토코를 멀거니 바라볼 때에도. 사고 때문인 건 알지만 기타노 타케시의 파르르 규칙적으로 떨리는 왼쪽 눈마저도 마사오 대신 울기 위한 것 같다.)
현실의 타케시란 폭력적이고 자주 막말하고 틀린 구석도 있는 노인네란 거 알지만. 어떤 사람의 얼굴은 타인의 슬픔을 너무 깊이 너무 깊이 깊이 깊이 이해하고 있어서, 그걸 대신 짊어져주고 있어서 도무지 미워할 도리가 없다는 거..
바로 이런 얼굴
그리고 또 하나의 마음에 걸리는 얼굴 - 마사오가 올려다본 밤하늘 별자리에 비친, 옛사람 혹은 도깨비 정도로 분장한 기타노 타케시의 표정. 딱 세 컷 지나간 그 얼굴이 이전에도 이상하게 계속 오래 남았었는데, 전엔 그 이유를 몰랐지만 이제는 좀 알겠다. 곱게 화장하고 자신만만하게 눈을 치뜨는 그 얼굴이 너무 자부심에 가득찬 희극인의 것이라 그랬나보다.
봐주는 사람 없어도 계속 뭘 새로 배우고 연습하고 선보이던 기쿠지로. 수영과 탭댄스와 저글링, 맹인 흉내와 직접 고안한 그 모든 놀이까지.
어쩌면 이건 세상을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보는 뼛속까지 예능인(‘게닌’ 비트 타케시)의 자기충족적 실험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장 친숙하고 가장 순진하며 가장 날카로운 관객인 어린아이를 데려다놓고 한 극 무대에서의 실험. 그리고 밤하늘에서 반짝반짝 빛난 그 표정으로 유추해보건대 다케시와 눈에 익은 극단 출신 후배 배우들은 성공한 무대에 굉장히 기뻐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마사오라는 아이 자체도 기타노가 자기 유년기에 보내는 연민의 상징물이나, 성숙으로의 관문보단 ‘곧 내(창작자)가 될 너(관객)’와의 합일을 위해 심어둔 것 아닌가? 싶지만. 그러니까 이 극이 그려내는 좋은 어른이니 성장이니 우정이니 하는 것에 계속 집중하기보다도, 끝에는 ‘감독으로서의 나’를 우위에 두는 메타영화로 무게중심이 기울어질 법도 한데 끝까지 그래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결국 예술품이 다룬 무언가 중 어떤 게 가장 귀중한가를 따질 때, 그 무엇보다 시간에 구애받는 영화라는 매체는 어느 씬에 얼마 정도의 시간을 할애했는가로 일차적 판단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마사오의 감정 묘사에 상당한 비중을 할애한 - 걸 넘어 오로지 그 감정을 매만져주고 위로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마냥 애쓰는 - <기쿠지로의 여름>은 정말이지 모범적으로 다정한 성장 동화다.
물론 기쿠지로는 여자를 사고 팔고 사람을 갈취하고 패고 죽이는 일을 여전히 우습게 아는 전직 야쿠자일 테지만. 적어도 영화 속에선 기쿠지로가 저지르는 모든 폭력, 절도, 강탈, 사사로운 시비까지도 아이인 마사오를 저 멀리에 두고 진행된다. 기쿠지로는 언제나 마사오에게 “꼬마야 저기 가있어”라고 하는 대신 “꼬마야 여기서 기다려”라고 말하고 자기가 (카메라 프레임 바깥의) 폭력의 자리로 돌아가서 일을 해치우고 온다. 그것이 어른의 태도니까.
물론 마사오도 종종/영영 세상의 잔혹함을 피해갈 수는 없다. 그러나 영화는 살면서 한 번도 안 겪어보는 게 무조건 나을 끔찍한 일이 있다면, 당연히 최선을 다해 네가 그 일을 겪지 않게 해주겠다고 말하듯 든든한 보호자처럼 개입한다. 여행 초입 보호자 기쿠지로가 잠깐 취한 사이, 소아성애자 대머리 중년을 만나면서 중학생 형들보다 훨씬 위험한 폭력에 노출된다. 그때 영화는 현실은 이런 거야,라는 듯이 뻐기며 폭력의 정밀 묘사에 공들이지 않는다. 또한 폭력적 응징의 과정에도 전혀 관심이 없어보인다. 굳이 너의 상처를 훈장 삼을 일도 없고, 세상의 가장 어두운 쓰레기장이 얼마나 끔찍한지 입 아프게 말 얹을 것도 없단 듯한 태도.
사실 이 영화에서 폭력은 대부분 무자비하게 생략/압축된 슬랩스틱 코미디의 결과물로서 소비될 뿐이다. 다케시는 아이에게 좋은 웃음을 선물하고 싶었던 어른-코미디언의 태도로서 그정도가 딱 적절하다고 여긴 것 같다.
그러니 다시.. 예전에는 기쿠지로가 죽었다고, 단지 마사오를 안전히 집까지 데려다주려고 유령처럼 남아있었던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기쿠지로를 마사오에게 딸려보낸 그 이웃집 친절한 여자는 갑작스레 남편을 잃고 어떻게 살아가면 좋나 괜히 걱정도 됐는데.
다시 생각해봤더니 혹시 기쿠지로가 죽었더라도 부인은 그냥 잘 살아갔을 것 같다. 그 사람도 기쿠지로가 어디서 어떻게 죽든 어쩔 수 없단 것쯤 알고 살았을 것이다. 세 번째 결혼이기도 했고… 남자들의 사라짐에 그냥 그렇구나 할 것 같은 어른.
그리고 그보다 먼저 기쿠지로는 안 죽은 것 같다. 소리도 없고 그림자도 없고 발자국도 없고 미련도 없어보여서 마치 귀신같고 이상한 움직임이 줄곧 나왔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기쿠지로다, 빠가야로 라고 해줬으니까.
건강하라고, ‘다음에 또’ 엄마 찾으러 가자고 말해줬으니까,
그리고 멀어지는 기쿠지로가 아니라 힘차게 달려가며 멀어지는 마사오가 막의 마무리를 장식했으니까.
귀신이고 도깨비고 천사고 꿈이고 뭐고 .. 그냥 안 죽었을 것 같다 그냥.
마사오에게 다 큰 마사오가, 기쿠지로에게 어린 기쿠지로가 함께 노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게 영화의 목적지였으니까. 그게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삶은 결국, 출입금지인 풀밭에 연못에 밭에 해변에 마구 헤집고 들어가더라도 함께 있는 순간의 재미를 찾아내는 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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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디즈니가 일깨워주는 ‘나’라는 기적
? About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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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론 하워드 감독 / 스테파니 비트리즈, 윌머 발더라마 목소리 출연
미국, 콜롬비아 / 109분 / 애니메이션 / ALL
2021.11.24 개봉 (D+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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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Words Review
언제나 디즈니가 일깨워주는 ‘나’라는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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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int
린-마누엘 미란다 음악감독의 오리지널 뮤지컬 넘버, 화려하고 알찬 색감, 따뜻한 가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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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디즈니의 올해 네 번째 애니메이션 <엔칸토 : 마법의 세계>를 드디어 만나고 왔다. 그간 흥행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과 <주토피아>를 연출한 ‘바이론 하워드’와 뮤지컬 넘버의 거장 ‘린 마누엘 미란다’가 의기투합했다. 멕시코 문화를 속속들이 잘 풀어낸 <코코>에 이어 <엔칸토>에서는 콜롬비아 문화를 다채롭게 잘담아냈다. 그만큼 포스터에서부터 알 수 있는 것처럼 색감이 정말 화려하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본 디즈니 애니메이션 중에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는 눈이 매우 즐거웠다. 이번 <엔칸토>를 보면서 확실히 느낀 것이지만, 디즈니 영화의 주제는 항상 ‘자신’으로 부터 시작해서 귀결된다. 나 자신의 수많은 단면 중 하나하나의 감정들 혹은 가치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올해 개봉했던 영화들로 예시를 들어보자면, <소울>은 행복,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도전, <루카>는 사랑, 그리고 <엔칸토>에서는 진실을 그린다. 어쩌면 모두 당연한 것들일지라도 당연한 만큼 스스로 깨닫기 힘든 법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들에 비례해 내가 느끼는 감정들과 생각들은 일일이 나열할 수 없다. 그만큼 디즈니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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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ore (3.5)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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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대사
“기적은 너희가 받은 능력이 아니라 너희 자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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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드라마 모두 마사지하듯 시원하게 이야기로 풀어드립니다!
씨네마사지 ?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시사회에 초대 받은 황보와 태형
이들이 본 마이뉴욕다이어리는 과연 어땠을까...?
*시사회 초대는 영화 전문 플랫폼 [씨네랩]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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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계의 전설 월드 챔피언 윌리엄스 자매
그들의 신화는 여기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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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덕 부정기는 끝?났?다? 폭풍 성장해서 돌아온 [샤잠! 신들의 분노] 메인 예고편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