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12-27 20:12:07
고래의 꼬리처럼 힘차게
영화 <클레오의 세계> 리뷰
PROGRAM NOTE.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여섯 살 클레오가 사랑하는 보모 글로리아를 떠나보내며 겪는 이별과 상실의 과정을 그린 작품.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급히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글로리아와 마지막 여름 휴가를 보내며 인생의 한 단계로서 이별의 의미를 받아들이려는 클레오의 이야기가 뭉클하고 따스하게 그려진다.
(2023년 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POINT.
✔️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쁘띠 마망>… 셀린 시아마를 좋아하세요? 셀린 시아마 감독의 모든 장편영화를 제작한 바로 그 제작사의 신작! 속속들이 아름다운 작품을 또 한 편 만나보세요
✔️ 안경을 쓰면서 바로 클레오로 변신했다는 놀라운 신인 배우, 루이스 모루아-팡자니! 클레오가 웃을 때마다 행복해졌어요
✔️ 겨울 코끝을 찡하게 만들어줄 따뜻한 작품. 생의 처음에 있던 것들을 헤아려보게 만드는 영화라서, 2024년 새해 첫 영화로도 좋을 것 같아요
✔️ 2023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 개막작, 2024 선댄스영화제 스포트라이트 부문 초청! 자꾸 시선이 가는 영화
✔️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100%! 받을 만 하지
✔️ 믿고 보는 조합, ‘그린나래미디어’ & ‘하이스트레인저’!
✔️ 2024년 1월 3일 개봉

#최초의 세계
이 영화의 원제는 ‘아마 글로리아(Ama Gloria)’, 그저 정직하게 ‘보모 글로리아’이다. 안경점에서 시력 검사를 하는 클레오의 모습과 함께 보이는 글로리아를 통해, 우리는 금방 꽤나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첫째, 그는 클레오의 어머니가 아니다. 둘째, 그는 클레오와 다른 뿌리를 갖고 태어났다. 셋째, 그럼에도 시력 검사 결과조차 도와주고 싶어할 만큼 그는 클레오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보모. 사어(死語)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어쩐지 빅토리아 시대 고전 소설에나 나올 것 같은 느낌의 단어다. 실제로 요즘은 ‘베이비시터’ 같은 표현을 더 많이 쓰기도 하고. 하지만 보모라는 말에는 더 끈적하고 진득한 느낌이 배어 있다. 한자로 ‘모母’ 자를 쓰고 있어 그런지, 옛날에 더 많이 쓰던 단어라서 그런 건지. <클레오의 세계> 속 글로리아 또한 베이비시터보다는 보모라고 부르고 싶은 존재다. 그건 단순히 클레오의 아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오래 함께해왔다는 이유만은 아니다. 둘은 서로에게 온전히 기대는 존재다. 아이 얼굴의 밀가루를 털어주고, 놀이터에서 생긴 상처를 후 불어주는 사람. 걷고, 씻고 하는 모든 순간을 놀이와 웃음으로 채워주는 사람. 오래 전 읽은 소설 <봉순이 언니>의 문장이 떠올랐다.

그녀만이 우는 나를 달래주었고, 그녀만이 내 잠자리의 베개를 고쳐놓아 주었다. 그녀는 나와 마주친 최초의 세계였다.
클레오에게 글로리아는 최초의 세계다. 그렇기에 클레오는 글로리아를 작은 몸과 마음 다해 힘껏 사랑한다. 갑작스럽게 전화로 전해져 온, 글로리아 어머니의 부고 소식 앞에, 슬퍼하는 글로리아 옆에 조용히 앉아 통통한 뺨과 곱슬머리를 기대며 앉는다. 그렇게 클레오는 온 존재로, 글로리아의 슬픔에 고요히 귀를 기울인다. 때로는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하는 작은 아이는, 조용히 흐르는 슬픔을 감쌀 줄도 알 만큼, 그만큼 자신의 최초의 세계를 사랑했다. 자신을 키우는 존재의 콧노래, 그가 숨죽여 이불로 작은 몸을 덮어주는 순간의 기억, 이런 것들은 어린 시절의 어느 정도를 차지할까. 평소 크게 기억하지 않고 사는 어떤 기억들이 사실은 나를 지탱하게 하고 있음이, 영화에서 부드러운 색채로 그려진 애니메이션을 타고 관객에게로 흘러온다.

#세계는 깨어지고 확장된다
그러나 힘껏 자신을 다 기댄 클레오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이별은 온다. 글로리아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이제 글로리아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장례를 치러야 하고, 어머니에게 ‘황혼 육아’로 맡겨두었던 자신의 진짜 아이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으므로. 그렇게 글로리아로 가득하던 클레오의 세계는 최초의 균열을 맞이한다.

아이들도 알 건 다 안다. 그래서 그 균열의 순간은, 어둠 속에서 훌쩍훌쩍 우는 클레오의 모습. 떼쓰지도 조르지도 못하고 창틀만 꼭 붙잡은 클레오의 눈물 속에서 일방적 순간이 된다. 그러나 진짜 클레오가 균열을 감지하는 건, 오히려 방학을 맞아 글로리아의 고향 섬에 놀러 가서 작은 방에 몸을 뉘이는 순간이다. 가족들과 찍은 글로리아의 사진을 보며, 클레오는 처음으로 감지한다. 내 모든 것인 사람에게, 그에게는 내가 모든 것이 아님을 처음 깨닫는 순간.
그 순간, 머릿속에서 딱 클레오만했던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1학년 소풍 날이었고, 1학년이니까 보호자의 동행이 허락되었으며, 우리 엄마는 나뿐 아니라 동네 이웃집 아이와 동행하고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간호사로 근무하고 계셨던 아주머니는 미안한 얼굴로 아이를 챙겨달라고 연신 부탁했고, 그 모든 사정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엄마가 나 없이 다른 친구와 둘이서만 다정하게 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같은 프레임의 사진에 찍히는 걸 보는데,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조합을 목격했다는 생경한 기분이었으나 뭐라고 설명하지 못한 감정이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때의 내 마음이 이해된 것이다.

굳이 <인사이드 아웃>에서 빙봉이 사라지는 슬픈 장면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성장은 언제나 상실을 동반한다. 내가 알던 세계가 조각나는 아픔을 거친다. 그러나 깨지고 다친 세계는 무너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틈으로 더욱 확장된다. 글로리아에게 자신이 모든 것이 아님을 깨닫는 클레오의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이를 통해 글로리아는 물론 글로리아의 가족들과도 연결된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님을 차츰 배우고, 중심이 아닌 채로도 건강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성장이라고 부른다. 영원히 애정의 중심에만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글로리아뿐이었던 “클레오의 세계”는 이렇게 또 조금 확장되었다. (이 영화 제목 번안은 정말 멋지다.)

#그 후로도 우리는 자라겠지만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클레오의 세계”가 확장되는 아릿한 성장의 시간을 따뜻하고 다정하게 바라보는 동시에, 클레오를 둘러싼 사람들에게서도 사랑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주인공의 성장담을 서술하기에 벅차 허덕이는 영화가 아니라, 모든 인물의 성장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담은 넉넉한 작품이다.
자신이 낳은 아이들 대신 자신이 낳지 않은 누군가의 아이를 돌보고 사랑하며 사는 여성의 삶, 섬에 줄곧 살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묘한 텃세를 받으며 그 거리감 안에서 다시 생활을 꾸려 가는 글로리아의 삶.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 조금은 떨떠름한 분노의 대상인 엄마를, 동생도 아닌 클레오와 공유해야 하는 세자르의 삶. 어쩌면 상실과 성장을 계속하는 건 클레오만이 아니다.

방학은 끝나고, 여정은 반드시 어딘가에서 막을 내린다. 이별은 필연적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애정 어린 돌봄을 필요로 하는 동시에, 그 애정의 바깥으로 가지를 뻗어야만 성장할 수 있는 존재이다. 유년시절을 꼬박 메운 글로리아의 애정 바깥으로, 클레오는 나아가야만 한다.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의 꼬리처럼 힘차게. 때로는 힘껏 존재를 던지듯 다이빙하고, 또 때로는 다른 이의 손에 의지하여 뭍으로 올라오면서. 그러면서.
왜 이렇게 그 장면들마다 눈물이 났을까. 개인적인 기억의 편린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오래 전 인도에서 “돌보던” 아이들을 두고 비행기에 오르면, 불 꺼진 밤 비행기에서 조용히 줄줄 울던 날들이 떠올라서. 따로 떨어져 행복해져야 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걸 잊지 않아야 하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아서. 집이라고 부르는 곳을 두 군데 이상 가져버린 사람들은 그리움이라는 감정과 떨어질 수 없다는 걸 배워 버려서. 그래서.
딱 클레오만한 나이였을 때의 나, 글로리아 같은 상황이었을 때의 나… 이 영화는 내 안의, 이제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을 톡톡 끌어올렸다. 이 영화는 이렇게 보편적인 정서를 통해, 우리 기억과 감정의 문을 두드린다. 누구에게나 처음으로 인지하는 ‘온 세상’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그 사람의 애정 바깥으로 찢겨 나와 성장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누구나 이 영화에서 자신의 조각을 엿보게 될 것이다. 꼭 글로리아나 클레오와 같은 경험이 없더라도.

이 영화의 다정한 시선 속에서, 84분 동안 나는 또 무언가를 찢고 조금 자랐다. 이토록 부드러운 색채와 사랑스러운 감각 속에서 자랄 수 있다면, 상실도 두렵지 않다. 고래 꼬리처럼 이 영화를 품고, 또 열심히 발장구를 쳐본다. 생을 향해서.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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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 게임 2] 끝장리뷰 | 반기독교 ?! | 성기훈과 프론트맨 관계성 | 십자가 상징 | 형제애, 모성애 | 핑크모텔, cctv 해석 | 납득되지 않은 지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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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 게임 2] (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에피소드 1 ~ 4
Chapter 2 에피소드 5 ~ 7
00:00 오징어 게임2
01:28 반기독교
02:55 십자가 상징
04:15 형제애와 모성애
07:03 차별반대
07:47 성기훈과 프론트맨
09:52 납득되지 않는 지점들
11:23 별점 및 한 줄 평
11:36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징어게임2 #오징어게임2리뷰 #오징어게임2후기 #오징어게임2해석 #오징어게임시즌2 #오징어게임시즌2리뷰 #오징어게임시즌2후기 #오징어게임시즌2해석 #이정재 #강하늘 #이병헌 #임시완 #황동혁감독 #squidgame2 #squidgame2review #squidgame2netflix #최승현 #박성훈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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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해길랍>
“매일 널 만나길 기대해. 누굴 좋아하는 거 처음이야.”
등굣길 버스 안, 반짝이는 서로에게 반한 ‘탕셩’과 ‘완팅’은
가슴 뛰는 첫사랑을 시작한다.
서로의 세상이 되어가던 어느 날,
충격적인 사고로 ‘완팅’은
한 통의 편지와 ‘탕셩’만 남겨둔 채 곁을 떠난다.
몇 년 후, ‘탕셩’ 앞에 새로운 친구 ‘류팅’이 등장한다.
낯선 익숙함에 잊지 못했던 감정이 자라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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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극장판 포켓몬스터DP : 기리티나와 하늘의 꽃다발 쉐이미> 1차 예고편
끝나지 않은 전설의 포켓몬들의 배틀로
위험에 빠진 반전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감사포켓몬 ‘쉐이미’와 ‘지우’, ‘피카츄’가 나서면서 시작되는 모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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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움과 쓸쓸함이 있어 혼자가 아닌 우리
어. 그래. 그럴 때 있지.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에이. 그래서 영원한게 있나. 생각은 다 바뀌는거 아냐? 당연하지. 너무 걱정하지마. 나도 그게 그렇게 될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어찌됐건 다 이뤄지더라. 다 잘될테니까 신경 쓰지 마. 수화기 반대편으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밝아서 다행이었다. 너 예전에 어디 아프다고 하지 않았나? 아. 지금은 괜찮다고? 다행이네. 아무튼 생각 많이 하는게 그렇게 좋아보이진 않더라. 난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예전에 했던 전애인 이야기. 내 20대동안 바뀌었던 처지에 관한 이야기. 별의 별 소재로 대화가 이뤄졌다. 그래도 너 많이 발전했다. 너만한 사람이 없긴 하지. 과분한 칭찬에 멋쩍게 웃었다. 그럼 다음에 봐. 전화를 끊었다. 발전한 사람이라. 휴대전화 전원을 아예 끄고 책을 손에 잡았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이었다. 소설 안엔 여자주인공이 나온다. 제발. 선생이 저를 서울로 데려다 주세요.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남자는 이 부탁을 거절한다.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여자의 말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렇게 부탁을 거절하고 남주인공은 안개 가득한 도시 무진을 떠난다. 소설은 안개가 가득한 도시의 모습을 묘사한다. 주인공이 떠나고 난 후는 보여주지 않는다. 소설을 끝마치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게 만약에 내 주변의 이야기로 치자. 여자주인공은 어떻게 될까? 남은 시간동안 남자주인공의 빈자리만 느끼다가 시간을 보내게 될까? 남자는 선택을 후회하진 않을까? 책 읽고 나면 늘상 하는 잡생각이었다. 사실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온다고 해서 원하는 인생이 짠하고 이뤄질리는 없어. 그럼에도 여주인공은 사람이기 때문에 혹시나에 기댔을거야. 여주인공이 어떻게 될 것 같느냐고? 난 책이 던지는 질문에 안개같이 막연하게 답했다. 그냥 그렇게 살다 가지 않을까. 어차피 남자주인공같은 사람은 이 소설책에서 한 사람밖에 없을테니까. 비슷한 상황이 떠오르면 계속 생각나겠지? 그럼 남자들에게 비슷한 말을 계속 하거나 직접 서울로 올라가거나 둘중 하나를 택할거야. 어떤 존재가 있다 없어지는 건 상대를 내 일상속에서 지워버리는게 익숙해진다는 점에서 씁쓸한 일이었다. 무진의 안개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토니 티키타니>는 부재에 관한 영화다. 러닝타임이 짧다. 1시간 30분이었다. 적당한 길이의 단편소설을 읽으면 이정도 시간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는 이를 반영하듯 영화라기 보다 책을 읽는것처럼 진행된다. 책을 읽다보면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 전반에 걸쳐 들리는 나레이션은 이를 연상시키며 영상을 한장한장 넘기는 것 같은 느낌을 더해준다. 촬영한 카메라의 시선이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르다는 것도 특이점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를 연출해서 얻는 이점은 하나 더 있다. 주인공 토니의 일생을 표현하는데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토니는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 만든 이름이다. 일본이름도 영어이름도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이름의 처지와 비슷하게 어느곳에도 속해있지 못해 외로웠던 주인공은 어렸을때부터 또래 애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였다. 이렇기 때문에 그는 혼자인 것에 그렇게 불만이 없었다. 타인이 보면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었으며 매사가 혼자였던 삶에 한줄기 희망이 들어온다. 완벽한 이상향의 여인 에이코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이다. 에이코와 함께라면 늘 행복했던 토니. 외로움덕에 쓸쓸하지 않았던 인생에 처음으로 고독이란걸 느끼게 된다. 에이코가 날 떠나면 어떡하지. 이런 잡다한 고민에 속이 썩던 그는 에이코에게 청혼한다. 결국 결혼에 골인한 둘은 그렇게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 뿐이었다. 너무 많은 의류를 사들인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소비를 줄이자고 했던 조언이 예상치 못한 비극이 됐다. 토니는 새로운 삶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선택할 겨를도 없이.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영화의 2/3쯤 된다. 난 영화가 말하려는 메세지가 남은 1/3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 지점을 넘긴 영화는 아내 에이코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 무언가 행동하는 토니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내와 옷핏이 비슷한(실제 배우가 1인 2역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해서 부인이 샀던 의류를 입게 한다. 부인과 이미지가 비슷한 사람을 통해 처음 느낀 외로움을 채우고 싶었던 주인공. 이걸로는 택도 없음을 느낀다. 늘 혼자였을 땐 외로움을 몰랐는데 그녀가 떠나고 난 후에야 고독을 느낀 것이다. 이 이후에도 주인공과 까운 사람이 간암으로 상을 떠난다. 이 덕에 토니는 세상 아무도 찾지 않는 외톨이가 됐다. 영화는 아내의 옷장에 멍하니 있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안그래도 혼자인데, 아버지가 상하이의 어떤 감옥에서 누워있는 모습과 오버랩되어 처연하기까지 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아내와 닮은 가사도우미에게 전화를 하는 주인공 모습이 나온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릴 때 그녀는 옆집 아줌마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일을 하느라 부재중이었기 때문에 통화는 실패한다. 영화는 그냥 그러고 끝난다. 완벽히 지운것도, 지우려고 노력하는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이 사람이 이 사건으로 성격이 이렇게 변했다는 식의 서술도 없다. 사실 이 영화의 이런 화법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그 사람같은 인연은 온 지구를 다 뒤져 찾아봐도 하나밖에 없다. 이 작품과 무슨 관련이냐? 부재로 인한 외로움에 해결책같은건 없단 걸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 모습이 보였으니까.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빈자리는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토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영화는 이런 나에게 또 우리에게 손을 내어준다. 우리를 일으켜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같이 쪼그려 앉아서 손을 잡아준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난 이 이상의 인간이 아니구나. 나도 토니와 그렇게 별다를 바 없는 삶을 보냈구나. 몇년도 지난 일에 대해 후회하는 날이 많았다. 세상이 유달리 혹독할때도 하지 않았던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사는거다. 누군가가 떠난 빈자리를 느끼면서 말이다. 난 지금 그걸 이겨내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날 떠난다고 해서 난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둘 다 아닌것 같다. 이젠 세상 눈치 안보고 산다지만 몇명은 솔직히 멀어진다는 게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게 강박이 될때마다 나에게 되뇌인다. 감사하며 살아라.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갈 받는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상대가 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를 잃을 필욘 없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을 잊어버리고 살다간 세상에 혼자만 남는다. 이게 지금의 나에게 답에 가까운 솔루션인걸 뻔히 알면서도 어쩔때는 지나간 날에 아쉬워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기에 이 영화가 좋았다. 이거 우리 모습인거 알아. 이런 메세지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감독은 공감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의도했다고 생각한다. 원작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을 그대로 살린듯한 덤덤한 나레이션부터 앞서 언급한 '바로 옆에서 보는 듯한 카메라 구도'까지. 이 영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외로움과 쓸쓸함이란 그렇게 큰 감정이 아니라 우리 일생에서 친구처럼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어느 한 부분을 도려내어 지극히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던 것도 우리 삶 속의 외로움을 돌이켜보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맞아. 외로움이라고 하는거 사실 별 것 아니다. 그 사람 사정은 그 혼자만 알고 있다. 나도 그랬다. 아직도 한참 멀었고 지나치게 어린 인생이지만 내가 느꼈던 일상이란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기준을 남에게 둘때도, 여유가 생겼을때도 나는 목적지 없이 달리기만 했던 것 같다. 이건 특히 누가 나를 떠날때 심했다. 뭔가가 없다는 걸 느낄때마다 일을 벌였다. 바쁘게 살면 잊을 수 있을테지. 방구석에 앉아 누구를 만나는게 아니라면 난 이 생각에 빠져 무언가를 후회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강박증이 있는 머릿속은 지독하게 나를 붙잡아 놓아주질 않았다. 찌질한 모습 다 버렸고 내가 아니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몇가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럴때마다 매순간 드는 생각이 있다. 아. 있을때 잘할걸. 이 빈자리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채울 수 없는거구나. 어른이 된다는건 이 회한을 받아들이는 것이구나. 내 노력만으로 인간관계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뻔히 알면서도 가끔은 나는 나를 혼냈다. 괜찮아. 이 영화를 보고 드는 첫번째 생각은 그것이었다. 이 영화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좋은게 아닐까.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던 이유도 작품이 주는 쓸쓸한 카타르시스가 우리가 일상을 버티는 괜찮은 이유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 이 세상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예정된게 분명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게 25살의 내가 느낀 세상에 관한 모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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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5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샤를리즈 테론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차기작에 합류합니다. 2025년 초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인 이 작품은 맷 데이먼, 톰 홀랜드, 젠데이아, 로버트 패터슨, 앤 해서웨이, 루피타 뇽오 등 걸출한 스타 배우들이 출연을 알려 화제가 되었습니다.
놀란은 지난 3월, <오펜하이머>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큰 성공을 거둔 직후 이 영화의 각본 작업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해당 작품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제작, 배급하며 2026년 7월 17일에 개봉 예정(북미 기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애플TV+ <파친코>, 티빙에서 볼 수 있다
국내 OTT 플랫폼 티빙에서 ‘애플TV+ 브랜드관’을 출시를 알렸습니다. 오는 10일부터 티빙 프리미엄 요금제 가입자는 추가 비용 없이 애플TV+의 콘텐츠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애플TV+의 콘텐츠로는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일으켰던 <파친코>를 비롯하여 <테드 래소>, <세브란스: 단절>, <디킨슨> 등이 있습니다.
변요한 <타짜 4> 주인공 발탁
배우 변요한이 새로운 타짜 시리즈의 주인공 장태영 역으로 발탁됐습니다.
<타짜 4>는 싸이더스가 제작을 맡고,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국가부도의 날>을 연출한 최국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예정입니다.
한편,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타짜’ 시리즈는 각각 569만 명(타짜), 401만 명(타짜: 신의 손), 222만 명(타짜: 원 아이드 잭)의 관객을 동원하며 준수한 성적을 기록해 왔습니다.
<어느 가족> 릴리 프랭키,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연기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를 다룬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연기한 배우의 베일이 드러났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에서 호연을 펼친 릴리 프랭키가 그 주인공입니다.
우민호 감독은 “워낙에 좋아하는 배우였다. 그분이 흔쾌히 이 작품의 진정성을 알아주시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셨다.”라고 캐스팅 비하인드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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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중한 인연들이 떠나가기 전에 잘해주자!
시놉시스
멧은 암에 걸린 자신의 아내인 니콜을 절친한 친구인 데인과 함께 간병하고 있다. 암이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니콜은 자신의 버킷리스트들을 적는다. 6개월간의 시간이 그녀에게 남았는데 그 시간 동안 많은 목표를 이루고 딸인 몰리와 이비에게도 작별 편지를 남긴다. 멧과 니콜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오해가 있었던 걸까?
니콜에게 있어 갑작스럽게 다가온 암은 너무나도 놀랐을 것이다. 항암제를 먹어도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서 이미 말기로 발전한 니콜은 자신이 못해봤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기 시작한다. 먼저 반지의 제왕 책 다 읽기와 파란 머리로 염색하기, 퍼레이드 걸 되보기 등등의 목표들을 이루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왜 니콜이 암에 걸렸을까? 그 이유는 바로 남편인 멧과의 다툼부터 시작되었다. 멧은 가족을 위해 돈을 벌려고 해외로 나가는 기자 일을 했고 불륜도 저질렀지만 니콜의 부모님과 니콜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니콜 또한 뮤지컬 배우이면서 피터라는 무대 감독과 불륜을 저질렀고 노트북에 적혀있는 메일 때문에 멧에게 발각되었다. 그래서 둘은 서로 거칠게 다투기 시작했고 니콜은 암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냈다.
멧은 사실 가족들을 먹여살리려고만 했지 직접 가족과 함께 있어본 적 없는 가장이면서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니콜이 말하길 가족과 함께 있어달라는 요구도 무시하고 그저 자신의 일에만 집착하는 멧이였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니콜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다. 딸인 몰리도 그런 아빠를 싫어했으며 이비가 놀다가 다쳤는데도 그렇게 보살피지 못했다.
어쩌면 니콜이 암에 걸린 건 멧이 자초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니콜이 죽고 난 후 멧은 아버지로서 사명을 다하는데 진정한 아버지가 되고자 노력한다. 그 이후로 니콜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 위해 글로 쓴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데인도 불쌍하기 그지없다. 사실은 니콜의 절친한 친구였음에도 멧이 니콜과 결혼하고 난 후 그저 멧에게 조언만 해주는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단점을 지적해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니콜이 암에 걸렸을 때 제일 니콜을 간병해 준 사람이기도 하다. 결국 멧의 빈자리를 데인이 계속 대신해 줬는데 너무 착했고 멧에게 이용만 당한 것 같이 느껴진다.
데인은 그런 자신을 위해 자가용을 타고 사람이 드문 한적한 사막의 산으로 올라가 등산을 하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어느 중년의 여자를 만나고 그 중년의 여자도 자살도 계획해 봤고 인생이 힘들었는데 데인에게 따뜻한 수프를 건네면서 말벗이 필요하다면 전화를 달라고 하면서 전화번호를 건네준다. 어쩌면 데인은 그렇다 할 직장도 없었고 멧에게 끌려다니는 듯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혼자라는 기분은 데인도 마찬가지로 느끼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서 실화라고 하는데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저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보살피는 멧의 심정과 쓸쓸한 빈자리를 지키고 있는 니콜과 그 자리를 메꾸어주는 데인의 심정까지를 보여주는데 이 영화를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과 지금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야겠다는 여운을 남긴다. 떠나가면 붙잡을 수 없는 게 인연인지라 필자도 지금의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잘해줘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지금의 인연들이 떠나가기 전에 소중히 대하자!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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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디버드>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상에 젖은 채 새크라멘토를 운전하는 크리스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본 어떤 인간의 모습도, 그토록 우수에 차 있지 못했다. 지금껏 마주한 그 누구도 그녀만큼 성장을 대변하지는 못했다.
성장을 절감하는 순간은 내 과거가 가여워질 때가 아닐까. 탈주하고 싶었던 곳들이 짠하게 느껴질 때. 구현하고 싶던 미래들에 억지로 나를 껴 맞추던 과거들이 안쓰럽게 느껴질 때. 이제껏 가져온 것들을 제대로 사랑해주지 못했음을 깨달을 때.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어린 크리스틴은 크리스틴을 사랑해주지 못했다. 그 이름에서 도망치고 싶을 만큼 '나'를 증오했다. 대신 내가 원하고 바라는 '나'만을 사랑했다. 내 머릿속에서 수없이 상상하고 그리며 수많은 수정 작업을 거쳐 완성해낸 완벽한 나 - 레이디버드만을 사랑했다. 그러나 레이디버드라는 이름과 인격을 향한 집착은 그녀의 사랑의 방향이 자아가 아닌 '완벽성'을 향해 있었음을 반증한다. 완벽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미완의 자신도, 타인도 결코 사랑할 수 없다. 영화의 막바지 크리스틴이 참회의 감정을 느끼는 대상은 다수이겠지만 가장 크게 미안함을 느끼는 대상은 자기 자신일 테다. 완성형의 꿈은 미치도록 사랑했으나 완성된 꿈을 꾸는 진행형의 나는 사랑해주지 못했던 그 시절을 반추하며, 그녀는 후회가 곁들여진 사랑을 곱씹는다.
Different things can be sad.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레이디버드의 슬픔 앞에서 이라크 전쟁에서 죽어가는 민간인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치 레이디버드의 슬픔은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카일.
레이디버드는 카일과의 섹스가 별로여서 슬픈 게 아니다. 자신이 카일의 첫 상대가 아니어서 슬픈 게 아니다. 그는 자신의 슬픔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카일 때문에 슬픈 것이다. 이는 즉, 카일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프롬에 가는 날 제니와 제니의 남자친구, 카일은 레이디버드를 두고 "she is so wierd"라는 말을 한다. 나를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나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새크라멘토에서의 추억을 회상하며 다시 교회를 찾는 그녀의 모습은 언뜻 '지나고 보면 다 아름답더라'와 같은 형식적 교훈을 전하는 여타 성장(을 테마로 하는) 영화를 떠올리게끔 한다. 고통의 해결책을 시간의 흐름에 일임해 현재의 비극성을 지우고 지금의 통증을 간단히 마비시켜버리고자 하는 그런 고리타분한 영화들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중점은 과거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데에 있지 않다. 영화는 과거의 고통과 슬픔을 현재를 위한 거름으로 쓰지 않으며 성장을 지나치게 숭고화하지 않는다. 고통의 존재 이유를 당위적으로 논하지 않고 성장을 결과로 취급하는 성취지향적 태도 역시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지나고 보면 다 좋은 추억이니 지금도 견디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성이고,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서성이고, 사랑과 증오의 경계에서 서성이다가-
상처받고 상처 준 자신을 끌어안아 보다 더 따뜻한 시선으로 과거를, 현재를 바라보는 성장. 영화는 이런 성장을 이야기한다. 무엇엔가 깊이 아파하던 나를,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던 과거를 연민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하나하나 보듬는 자가 치유에 대해 말한다. 지나온 것들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지나온 내가 아름다운 거라고, 스스로를 대견히 여길 수 있는 관용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영화 말미, 크리스틴은 잘 견뎌낸 나를 토닥이고 그때의 나를 위해 눈물짓는 지금의 시간을 격려한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가 화해를 말하는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든다. 이를테면 엄마와 크리스틴이 각자의 진심으로 서로의 마음을 찬찬히 적셔드는 그런 방식.
엄마는 크리스틴에게 편지를 전하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을 완벽하게, 보기 좋게 전하고자 시도했지만 써도 써도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는 절망감으로 인해 그녀는 끝내 편지를 밀봉하지 못한다. 그러나 크리스틴을 마음을 녹인 건 완성된 편지도, 완벽한 글솜씨도 아니었다. 끝내 그녀에 손에 들리지 못한 미완의 편지, 서투른 글솜씨, 차마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엄마의 끝없는 진심이었다. 작품은 이곳에서 또 한 번 미완의 것들이 가져다주는 진심과 기적을 조명한다.
미완을 무한으로, andless를 endless로.
어쩌면 유한의 존재인 인간에게 가장 큰 선물은 무한이 아닐까. 마침표 찍지 못한 수많은 마음, 정돈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마음. 이처럼 때때로 우리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진실된 화해를 이룩할 수 있다. 그저 사랑이, 느껴지는 순간에.
사랑이 느껴지는 또 하나의 화해의 씬은 엄마와 크리스틴이 새크라멘토를 운전하는 모습이 겹쳐지는 순간이다.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묘사하는 데에는 언어도, 사과도 필요치 않다. 그저 둘은 같은 공간 속에서 닮은 듯 다른 마음으로 서로를 헤아린다.
미완의 존재들이 미완의 것들로 서로를 치유하고 사랑하는 기적들이 무한 반복되길, 이곳이든 너머이든 어느 곳 누군가는, 완생이 아닌 미생의 존재인 우리에게 끝없는 축복을 보내주길 바라본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아니, 날 좋아하냐고.”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를까.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 나는 사랑을 택하겠다.
누군가 내게 진심을 고백한다면 그건-
"난 널 좋아하기보다 사랑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내가 널 미워할 수는 있어도 결코 네가 싫어지지는 않을 거야."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고백을 듣는 내가 마음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었으면,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상대의 뜨거운 진심에 손이 다 델지라도 타오르는 마음의 온도를 기꺼이 체험하는 용감한 사람이었으면.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추한 것들이 다 부도덕한 것은 아니야."
추한 모습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그레타 거윅. 추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녀의 대담함이 삶을 대하는 그녀의 솔직함인 것 같아 새삼 그녀가 참 용기 있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s 어쩌면 모든 꿈은 꿈으로 존재할 때만 아름다운 게 아닐까. 환상처럼 간직하던, 엄청난 상징적 의미를 두던 첫 경험도, 금지되어 온 담배도, 19금 포스터도 결국 경험하니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처럼.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리월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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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함 속 담긴 순수함과 성장
유치함 속 담긴 순수함과 성장
영화 <28세 미성년> 리뷰
감독] 장모
출연] 니니, 왕대륙, 곽건화
시놉시스] 애인 마오의 달콤한 청혼만을 십 년째 기다린 스물여덟 살 량시아는 프러포즈는커녕, 그에게 차인 뒤 초콜릿을 먹고 수상한 능력을 얻게 된다. 다섯 시간 동안 겉모습은 그대로인 채, 마음만 열일곱 살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 열일곱이 된 작은 량시아는 지하철에서 만난 자유로운 청년 얀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고, 그와의 짧지만 달콤한 데이트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열일곱, 스물 여덟 두 량시아의 평화로웠던 이중생활은 점점 꼬이기 시작한다.
왕대륙이 나온다고 해서 시사회를 신청해 보러갔던 영화 28세 미성년. 사실 그동안 유행했던 나의 소녀시대, 안녕 나의 소녀를 보지 않아서 이 작품을 이을 첫사랑 영화라고 하기에 기대를 안고 찾아갔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사실 첫사랑 이야기라는 프레임 속에 자아찾기 라는 의미가 더 강조된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로맨스 속 ‘자아 찾기’ 프로젝트
줄거리만 보면 28세 량시아의 사랑과 17세 량시아의 사랑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끝까지 다보면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라기 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 해맑고 꿈에 부풀어 자신의 능력을 자유롭게 뽐내던 작은 량시아와 사랑하는 애인을 위해 10년 간 자신의 그림실력을 뒤로하고 내조에만 힘쓴 큰 량시아. 큰 량시아는 작은 량시아의 도움을 받아 과거 자신이 꿈꾸는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게 되고, 스스로 사랑하며 작가로 다시 성장한다.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이에게 의지하기 보다 작은 량시아와 큰 량시아가 서로를 의지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스토리 상 뻔하긴 했지만 눈물짓게 되는 작품이었다.
잘생기고 예쁜 배우들 보며 눈호강하다
최대한 리뷰를 할 땐 이런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들은 정말 예쁘고 잘생겼다. 스토리가 뻔하다보면 지루할 수 있는데 얼굴만 봐도 재밌다. 얼굴로 관객을 영화 속으로 흡입한다. 량시아 역을 맡은 니니 배우를 이 작품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는데 여자가 봐도 반할 정도로 정말 예뻐서 감탄하면서 영화를 봤다. 거기에 17살 때와 28살 일 때의 목소리 톤과 성격, 걸음걸이가 모두 달라서 지금이 몇 살인지 딱 보이는 연기력으로 또다른 감탄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실 CG가 엄청나게 티가 나는 밤하늘의 별들과 갑자기 마오와 얀이 싸우는 이 개연성 없는 전개 속에서 당황스러움이 몰려와야 하지만 다들 예쁘고 잘생기다보니 얼굴을 감상하느라 당황스럽지 않은 것도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일 것이다.
열린 결말로 여운을 주다
스스로를 사랑하며 홀로서기를 시작한 량시아에게 마오는 그녀를 되찾기 위해 알몸으로 거리를 누비며 그녀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 장면을 보며 량시아는 그저 웃을 뿐 용서를 해줬는지, 아니면 시원하게 차버렸는지 알 수는 없다. 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장면으로 이 영화가 마무리 됐다면 개인적으로 28세 미성년에 좋은 평을 남기진 못했을 것이다. 사실 량시아가 마오의 청혼을 거절하고 홀로서기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책없지만 순수했던 자신과의 조우를 통해 꿈을 다시 찾고 그 꿈을 이룬 량시아를 보며 힐링을 해서 그런지 량시아를 사랑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용만 한 마오에게 돌어가는 량시아는 상상할 수가 없다. 영화지만 이대로 주체적인 모습으로 량시아라는 캐릭터가 남아있길 바란다.
영화 28세 미성년은 과거 순수했던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면 아마 유치함 속에서 힐링을 선사해주는 작품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량시아처럼 어렸을 적 자신과의 조우를 통해 자신의 꿈을 간직하고 이뤄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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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캡틴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 “무난한” 캡틴 아메리카를 위한 관객은 없다.
(IMDB, 발췌 편집)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지속된 졸작들로 인해 바닥까지 내려간 마블. 엔드게임 이후 지금까지 개봉했던 주요 캐릭터의 영화와 시리즈를 돌아보자.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완다비전>, <팔콘과 윈터솔져>, <로키>, <블랙 위도우>, <샹치>, <이터널스>, <호크아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미즈 마블>, <토르 러브 앤 썬더>, <쉬헐크>,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가오갤3>, <더 마블스까지> 총 17편이 개봉했다. 이 중에서 '스파이더맨'과 '가오갤'을 제외하면, 꼭 봐야할 좋은 작품이 없다. 이렇게 참담한 상황에서, <캡틴 아메리카: 브레이브 뉴 월드>가 개봉했다. 이 작품이 엔드게임 이후의 세계관을 잘 이끌어나갈 진정한 첫 번째 영화가 될 수 있을지 하나씩 따져봤다.
예고편 대참사
(IMDB)
이번 영화를 기다리면서 어처구니없었던 부분은 다름 아닌 예고편이었다. 감칠맛을 살짝 돋우는 정도로 보여주는 게 예고편의 목적이지만, 영화 전부를 보여줬다고 해도 무방했다. 주인공이 쉽게 죽거나 다치지 않는 특성을 지닌 히어로 장르는 베일에 싸인 빌런으로 긴장감을 만들어 내야 한다. 하지만 레드 헐크를 공개해 버리면서 영화의 긴장감은 다 날아가 버렸다. 물론, 메인 빌런인 스턴스는 예고편에 많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캐릭터 자체에 큰 매력이 없었다. 이 부분은 밑에서 다루고자 한다.
이번 예고편에 대해 너무 가혹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건 아닌지 비교해 보기 위해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 예고편을 다시 봤다. 인피니티 워를 몇 번이나 봤던 입장이지만, 타노스가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 그리고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고편 마저 명작이다.
이번 예고편을 보면서, 이번 영화마저 성적이 좋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난다는 마블의 불안감과 성급함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이 캡틴아메리카 아닌가. 엔드게임 이후 처음 개봉하는 캡틴 아메리카 영화이기에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는 그들 입장에서 당연할 터다. 예고편으로 인해 긴장감은 제로 였지만, 캡틴 아메리카니까 뭔가 보여주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품고 극장에 갔다. 그런데 또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이런 빌런, 지긋지긋해.
예고편에 많이 등장한 레드 헐크는 메인 빌런이 아니다. 무려 2008년에 개봉했던 인크레더블 헐크에 등장한 스턴스가 메인 빌런이다. 17년 전 등장한 일회성에 가까운 빌런을 등장시킨 느낌이다. 등장시킬 빌런이 얼마나 없었길래 하는 궁금증이 생길 정도다. 스턴스는 히어로 영화에 나오는 대표적인 빌런 중 하나인 매드 사이언티스트라고 보면 된다. 이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굳이 예전 영화를 찾아볼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실험을 하다가 일이 틀어져서 세상에 앙심을 품은 빌런 정도로 이해해도 문제없다. 빌런이 지루한건 오랜만이다.
(IMDB)
게다가, 극중 스턴스의 실제 모양새를 보면 메인 빌런이 이렇게 허약해 보일 수도 있나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가녀린 모습에 빌런이 안쓰럽게 보일 지경이다. 메드 사이언티스트 답게 두뇌 싸움은 잘하느냐? 꼭 그렇지도 않다.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 등장했던 헬무트 제모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여러모로 폼이 떨어진다. 빌런이긴 한데, 빌런의 역할을 제대로는 한 건지 의문이 생기는 사이드와인더. 그의 등장도 아쉽다. 캡틴 아메리카가 운전 중인 차량을 폭파하고, 그와 단독 액션 장면이 있을 정도로 비중 있는 캐릭터처럼 그려졌다.
윈터 솔저가 닉 퓨리를 급습하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스턴스보다 묵직한 느낌의 빌런처럼 보였지만, 영화가 끝나는 무렵까지 사이드와인더의 쓸모는 무엇이었는지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예전 캡틴 아메리카 영화에 등장했던 레드 스컬이나 헬무트 제모를 생각하면 이번 빌런들은 총체적 난국에 가까웠다. 마블 원작에 따른 빌런의 등장 순서가 이렇게 정해져 있다면 어쩔수 없다. 하지만, 레드 헐크의 마무리와 무전기나 들고 다니는 빌런의 모양새를 보면 이건 좀 아니지 않나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 생각해도 이건 너무 아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무난해선 안 된다.
(IMDB)주인공 캡틴 아메리카는 어땠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나쁘지 않지만 그렇게 좋지도 않고 아직 어색하다. 캡틴 아메리카 보다는 강화된 팔콘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여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팔콘의 첫 등장은 스티브 로저스의 조력자였다. 여러 영화에서 전투에 참여했지만, 팔콘 개인의 서사를 쌓을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았다. 팔콘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부분이 어벤저스: 엔드게임에서 스티브 로저스로부터 방패를 받는 순간 아닌가. 이후에야 팔콘 중심의 서사가 펼쳐지는 팔콘 윈터 솔져 6부작 시리즈가 나왔었다.
하지만, 팔콘 개인의 서사를 차곡차곡 쌓는 데 집중하지 않았다. 썬더볼츠 개봉을 위해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이는 데 신경을 분산했기 때문이다. 팔콘의 서사가 쌓이기보다는 마블의 세계관만 넓어졌다. 물론, 팔콘이 캡틴 아메리카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고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고민은 스티브 로저스가 시빌 워에서 보여줬던 신념에 비교하면 소박하다. 이제야 팔콘의 첫 번째 개인 영화가 나왔는데, 아직도 “내가 캡틴 아메리카 맡기에 적임자 일까?”, “내가 혈청을 맞았더라면?”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 솔직히 좀 짜치더라.
(IMDB, 반가웠고.)
이런 모습을 자기들도 알고 있는 건지, 팔콘의 캡틴 아메리카로의 성장을 위한 조언자 역할로 버키를 잠깐 등장시키기까지 했다.(오랜만에 봐서 반갑긴 하더라.) 이런 모든 과정을 거친 후, 뜬금없는 입담으로 레드 헐크를 잠재우는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했다. 참 뜬금없었다. 레드 헐크와의 대치 과정에서 새로운 액션과 기술을 선보였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팔콘이 캡틴 아메리카로서의 정체성 고민을 이번 편에서 끝내던가, 아니면 스스로 해답을 찾는 과정이 제대로 그려졌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어설프게 빌런을 처리하고, 고민 살짝 하다가 브레이브 뉴 월드가 끝났다.
팔콘이 캡틴 아메리카로서 보여준 힘과 기술은 어땠는가? 전보다 확실히 발전한 느낌이다. 방패를 사용하며 전투하는 어떤 장면에서는 스티브 로저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 부분은 칭찬할 만하다. 레드윙도 전편에 비하면 발전된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을 짜치게 만드는 요소가 또 있었다. 바로 CG다. 역대 캡틴 아메리카 영화 중에서 가장 CG 퀄리티가 떨어졌다. 과장 더하자면, 마블 영화 중에서도 CG 기준으로 보면 중하위권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특히, 항공 전투 장면은 탑건: 매버릭보다 못했다. 이번 편에서는 팔콘을 이을 호아킨이라는 인물도 등장한다. 스티브 로저스의 조력자로 등장했던 샘처럼, 그 역시 같은 포지션의 인물로 등장한다. 그런데, 그는 항공 전투에 한 번 참여해 부상을 당했다는 이유만으로 팔콘을 계승할 것처럼 그려진다. 팔콘이 수년간 함께하며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받아 계승한 과정과 비교하면, 초고속 승진한 느낌이다.
수습 가능할까?
종합해보면, 빌런을 빌런답게 그려내는 데 실패했다. 캡틴 아메리카는 여전히 애매하다. 아군으로 등장해 팔콘의 위치를 계승받는 호아킨의 등장도 양산형 느낌을 지울수 없다. 팔콘이 캡틴 아메리카로 진급하니까, 빈 자리를 채우는 느낌이다. 팔콘은 수년간 어벤저스의 조력자로 등장하며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받아 그를 계승했다. 초고속 승진이라는 말이 적합하다. 또한, 페이즈 1에서는 쿠키 영상도 아주 잘 활용했다. 쿠키 영상을 다음 편에 대한 짧은 예고편 느낌으로 사용하며 관객들에게 다음 편에 대한 감칠맛을 줬다. 다음 편에 대한 수많은 추측을 만들어내며 수많은 팬들이 생기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영화에서의 쿠키 영상은 엔드게임 이후에 나온 영화들의 쿠키 영상들에 비해 영양가 없었다. 더욱이, 이제는 그만 했으면 하는 소재를 또 등장시켰다. 바로, 멀티버스다. 다른 세계에서 적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페이즈 1에서 최종 빌런 타노스를 향하는 빌드업에 비하면 너무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다. 다음 편에 대한 감칠맛은커녕 또티버스라는 짜증만 만들어낸다. 생각하면 할수록 앞으로의 영화들에 대한 빌드업을 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만 든다. 이쯤 되면, 엔드게임에서 모든 이야기를 끝냈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과연, 수습이 가능할까.
(IMDB)
*이 와중에 등장한 리브 타일러는 왜 반지의 제왕에서 봤던 모습이랑 다르지 않은지 신기할 뿐이다.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이라는 현실 국제 외교 포인트를 차용한 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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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에피소드 5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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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차별반대
07:47 성기훈과 프론트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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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별점 및 한 줄 평
11:36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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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널 만나길 기대해. 누굴 좋아하는 거 처음이야.”
등굣길 버스 안, 반짝이는 서로에게 반한 ‘탕셩’과 ‘완팅’은
가슴 뛰는 첫사랑을 시작한다.
서로의 세상이 되어가던 어느 날,
충격적인 사고로 ‘완팅’은
한 통의 편지와 ‘탕셩’만 남겨둔 채 곁을 떠난다.
몇 년 후, ‘탕셩’ 앞에 새로운 친구 ‘류팅’이 등장한다.
낯선 익숙함에 잊지 못했던 감정이 자라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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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전설의 포켓몬들의 배틀로
위험에 빠진 반전 세계와 현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감사포켓몬 ‘쉐이미’와 ‘지우’, ‘피카츄’가 나서면서 시작되는 모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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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움과 쓸쓸함이 있어 혼자가 아닌 우리
어. 그래. 그럴 때 있지.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에이. 그래서 영원한게 있나. 생각은 다 바뀌는거 아냐? 당연하지. 너무 걱정하지마. 나도 그게 그렇게 될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어찌됐건 다 이뤄지더라. 다 잘될테니까 신경 쓰지 마. 수화기 반대편으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밝아서 다행이었다. 너 예전에 어디 아프다고 하지 않았나? 아. 지금은 괜찮다고? 다행이네. 아무튼 생각 많이 하는게 그렇게 좋아보이진 않더라. 난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예전에 했던 전애인 이야기. 내 20대동안 바뀌었던 처지에 관한 이야기. 별의 별 소재로 대화가 이뤄졌다. 그래도 너 많이 발전했다. 너만한 사람이 없긴 하지. 과분한 칭찬에 멋쩍게 웃었다. 그럼 다음에 봐. 전화를 끊었다. 발전한 사람이라. 휴대전화 전원을 아예 끄고 책을 손에 잡았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이었다. 소설 안엔 여자주인공이 나온다. 제발. 선생이 저를 서울로 데려다 주세요.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남자는 이 부탁을 거절한다.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여자의 말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렇게 부탁을 거절하고 남주인공은 안개 가득한 도시 무진을 떠난다. 소설은 안개가 가득한 도시의 모습을 묘사한다. 주인공이 떠나고 난 후는 보여주지 않는다. 소설을 끝마치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게 만약에 내 주변의 이야기로 치자. 여자주인공은 어떻게 될까? 남은 시간동안 남자주인공의 빈자리만 느끼다가 시간을 보내게 될까? 남자는 선택을 후회하진 않을까? 책 읽고 나면 늘상 하는 잡생각이었다. 사실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온다고 해서 원하는 인생이 짠하고 이뤄질리는 없어. 그럼에도 여주인공은 사람이기 때문에 혹시나에 기댔을거야. 여주인공이 어떻게 될 것 같느냐고? 난 책이 던지는 질문에 안개같이 막연하게 답했다. 그냥 그렇게 살다 가지 않을까. 어차피 남자주인공같은 사람은 이 소설책에서 한 사람밖에 없을테니까. 비슷한 상황이 떠오르면 계속 생각나겠지? 그럼 남자들에게 비슷한 말을 계속 하거나 직접 서울로 올라가거나 둘중 하나를 택할거야. 어떤 존재가 있다 없어지는 건 상대를 내 일상속에서 지워버리는게 익숙해진다는 점에서 씁쓸한 일이었다. 무진의 안개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토니 티키타니>는 부재에 관한 영화다. 러닝타임이 짧다. 1시간 30분이었다. 적당한 길이의 단편소설을 읽으면 이정도 시간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는 이를 반영하듯 영화라기 보다 책을 읽는것처럼 진행된다. 책을 읽다보면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 전반에 걸쳐 들리는 나레이션은 이를 연상시키며 영상을 한장한장 넘기는 것 같은 느낌을 더해준다. 촬영한 카메라의 시선이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르다는 것도 특이점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를 연출해서 얻는 이점은 하나 더 있다. 주인공 토니의 일생을 표현하는데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토니는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 만든 이름이다. 일본이름도 영어이름도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이름의 처지와 비슷하게 어느곳에도 속해있지 못해 외로웠던 주인공은 어렸을때부터 또래 애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였다. 이렇기 때문에 그는 혼자인 것에 그렇게 불만이 없었다. 타인이 보면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었으며 매사가 혼자였던 삶에 한줄기 희망이 들어온다. 완벽한 이상향의 여인 에이코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이다. 에이코와 함께라면 늘 행복했던 토니. 외로움덕에 쓸쓸하지 않았던 인생에 처음으로 고독이란걸 느끼게 된다. 에이코가 날 떠나면 어떡하지. 이런 잡다한 고민에 속이 썩던 그는 에이코에게 청혼한다. 결국 결혼에 골인한 둘은 그렇게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 뿐이었다. 너무 많은 의류를 사들인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소비를 줄이자고 했던 조언이 예상치 못한 비극이 됐다. 토니는 새로운 삶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선택할 겨를도 없이.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영화의 2/3쯤 된다. 난 영화가 말하려는 메세지가 남은 1/3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 지점을 넘긴 영화는 아내 에이코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 무언가 행동하는 토니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내와 옷핏이 비슷한(실제 배우가 1인 2역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해서 부인이 샀던 의류를 입게 한다. 부인과 이미지가 비슷한 사람을 통해 처음 느낀 외로움을 채우고 싶었던 주인공. 이걸로는 택도 없음을 느낀다. 늘 혼자였을 땐 외로움을 몰랐는데 그녀가 떠나고 난 후에야 고독을 느낀 것이다. 이 이후에도 주인공과 까운 사람이 간암으로 상을 떠난다. 이 덕에 토니는 세상 아무도 찾지 않는 외톨이가 됐다. 영화는 아내의 옷장에 멍하니 있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안그래도 혼자인데, 아버지가 상하이의 어떤 감옥에서 누워있는 모습과 오버랩되어 처연하기까지 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아내와 닮은 가사도우미에게 전화를 하는 주인공 모습이 나온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릴 때 그녀는 옆집 아줌마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일을 하느라 부재중이었기 때문에 통화는 실패한다. 영화는 그냥 그러고 끝난다. 완벽히 지운것도, 지우려고 노력하는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이 사람이 이 사건으로 성격이 이렇게 변했다는 식의 서술도 없다. 사실 이 영화의 이런 화법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그 사람같은 인연은 온 지구를 다 뒤져 찾아봐도 하나밖에 없다. 이 작품과 무슨 관련이냐? 부재로 인한 외로움에 해결책같은건 없단 걸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 모습이 보였으니까.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빈자리는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토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영화는 이런 나에게 또 우리에게 손을 내어준다. 우리를 일으켜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같이 쪼그려 앉아서 손을 잡아준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난 이 이상의 인간이 아니구나. 나도 토니와 그렇게 별다를 바 없는 삶을 보냈구나. 몇년도 지난 일에 대해 후회하는 날이 많았다. 세상이 유달리 혹독할때도 하지 않았던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사는거다. 누군가가 떠난 빈자리를 느끼면서 말이다. 난 지금 그걸 이겨내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날 떠난다고 해서 난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둘 다 아닌것 같다. 이젠 세상 눈치 안보고 산다지만 몇명은 솔직히 멀어진다는 게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게 강박이 될때마다 나에게 되뇌인다. 감사하며 살아라.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갈 받는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상대가 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를 잃을 필욘 없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을 잊어버리고 살다간 세상에 혼자만 남는다. 이게 지금의 나에게 답에 가까운 솔루션인걸 뻔히 알면서도 어쩔때는 지나간 날에 아쉬워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기에 이 영화가 좋았다. 이거 우리 모습인거 알아. 이런 메세지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감독은 공감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의도했다고 생각한다. 원작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을 그대로 살린듯한 덤덤한 나레이션부터 앞서 언급한 '바로 옆에서 보는 듯한 카메라 구도'까지. 이 영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외로움과 쓸쓸함이란 그렇게 큰 감정이 아니라 우리 일생에서 친구처럼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어느 한 부분을 도려내어 지극히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던 것도 우리 삶 속의 외로움을 돌이켜보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맞아. 외로움이라고 하는거 사실 별 것 아니다. 그 사람 사정은 그 혼자만 알고 있다. 나도 그랬다. 아직도 한참 멀었고 지나치게 어린 인생이지만 내가 느꼈던 일상이란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기준을 남에게 둘때도, 여유가 생겼을때도 나는 목적지 없이 달리기만 했던 것 같다. 이건 특히 누가 나를 떠날때 심했다. 뭔가가 없다는 걸 느낄때마다 일을 벌였다. 바쁘게 살면 잊을 수 있을테지. 방구석에 앉아 누구를 만나는게 아니라면 난 이 생각에 빠져 무언가를 후회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강박증이 있는 머릿속은 지독하게 나를 붙잡아 놓아주질 않았다. 찌질한 모습 다 버렸고 내가 아니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몇가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럴때마다 매순간 드는 생각이 있다. 아. 있을때 잘할걸. 이 빈자리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채울 수 없는거구나. 어른이 된다는건 이 회한을 받아들이는 것이구나. 내 노력만으로 인간관계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뻔히 알면서도 가끔은 나는 나를 혼냈다. 괜찮아. 이 영화를 보고 드는 첫번째 생각은 그것이었다. 이 영화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좋은게 아닐까.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던 이유도 작품이 주는 쓸쓸한 카타르시스가 우리가 일상을 버티는 괜찮은 이유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 이 세상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예정된게 분명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게 25살의 내가 느낀 세상에 관한 모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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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5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샤를리즈 테론이 크리스토퍼 놀란의 차기작에 합류합니다. 2025년 초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 촬영을 시작할 예정인 이 작품은 맷 데이먼, 톰 홀랜드, 젠데이아, 로버트 패터슨, 앤 해서웨이, 루피타 뇽오 등 걸출한 스타 배우들이 출연을 알려 화제가 되었습니다.
놀란은 지난 3월, <오펜하이머>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큰 성공을 거둔 직후 이 영화의 각본 작업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해당 작품은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제작, 배급하며 2026년 7월 17일에 개봉 예정(북미 기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애플TV+ <파친코>, 티빙에서 볼 수 있다
국내 OTT 플랫폼 티빙에서 ‘애플TV+ 브랜드관’을 출시를 알렸습니다. 오는 10일부터 티빙 프리미엄 요금제 가입자는 추가 비용 없이 애플TV+의 콘텐츠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애플TV+의 콘텐츠로는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일으켰던 <파친코>를 비롯하여 <테드 래소>, <세브란스: 단절>, <디킨슨> 등이 있습니다.
변요한 <타짜 4> 주인공 발탁
배우 변요한이 새로운 타짜 시리즈의 주인공 장태영 역으로 발탁됐습니다.
<타짜 4>는 싸이더스가 제작을 맡고,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국가부도의 날>을 연출한 최국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을 예정입니다.
한편,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타짜’ 시리즈는 각각 569만 명(타짜), 401만 명(타짜: 신의 손), 222만 명(타짜: 원 아이드 잭)의 관객을 동원하며 준수한 성적을 기록해 왔습니다.
<어느 가족> 릴리 프랭키,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 연기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를 다룬 영화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연기한 배우의 베일이 드러났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에서 호연을 펼친 릴리 프랭키가 그 주인공입니다.
우민호 감독은 “워낙에 좋아하는 배우였다. 그분이 흔쾌히 이 작품의 진정성을 알아주시고 어려운 결정을 내려주셨다.”라고 캐스팅 비하인드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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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중한 인연들이 떠나가기 전에 잘해주자!
시놉시스
멧은 암에 걸린 자신의 아내인 니콜을 절친한 친구인 데인과 함께 간병하고 있다. 암이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니콜은 자신의 버킷리스트들을 적는다. 6개월간의 시간이 그녀에게 남았는데 그 시간 동안 많은 목표를 이루고 딸인 몰리와 이비에게도 작별 편지를 남긴다. 멧과 니콜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오해가 있었던 걸까?
니콜에게 있어 갑작스럽게 다가온 암은 너무나도 놀랐을 것이다. 항암제를 먹어도 온몸에 암이 전이되어서 이미 말기로 발전한 니콜은 자신이 못해봤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기 시작한다. 먼저 반지의 제왕 책 다 읽기와 파란 머리로 염색하기, 퍼레이드 걸 되보기 등등의 목표들을 이루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왜 니콜이 암에 걸렸을까? 그 이유는 바로 남편인 멧과의 다툼부터 시작되었다. 멧은 가족을 위해 돈을 벌려고 해외로 나가는 기자 일을 했고 불륜도 저질렀지만 니콜의 부모님과 니콜에게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니콜 또한 뮤지컬 배우이면서 피터라는 무대 감독과 불륜을 저질렀고 노트북에 적혀있는 메일 때문에 멧에게 발각되었다. 그래서 둘은 서로 거칠게 다투기 시작했고 니콜은 암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냈다.
멧은 사실 가족들을 먹여살리려고만 했지 직접 가족과 함께 있어본 적 없는 가장이면서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니콜이 말하길 가족과 함께 있어달라는 요구도 무시하고 그저 자신의 일에만 집착하는 멧이였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니콜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다. 딸인 몰리도 그런 아빠를 싫어했으며 이비가 놀다가 다쳤는데도 그렇게 보살피지 못했다.
어쩌면 니콜이 암에 걸린 건 멧이 자초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니콜이 죽고 난 후 멧은 아버지로서 사명을 다하는데 진정한 아버지가 되고자 노력한다. 그 이후로 니콜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 위해 글로 쓴다.
이 영화에서 나오는 데인도 불쌍하기 그지없다. 사실은 니콜의 절친한 친구였음에도 멧이 니콜과 결혼하고 난 후 그저 멧에게 조언만 해주는 존재였을 뿐만 아니라 단점을 지적해 주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니콜이 암에 걸렸을 때 제일 니콜을 간병해 준 사람이기도 하다. 결국 멧의 빈자리를 데인이 계속 대신해 줬는데 너무 착했고 멧에게 이용만 당한 것 같이 느껴진다.
데인은 그런 자신을 위해 자가용을 타고 사람이 드문 한적한 사막의 산으로 올라가 등산을 하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어느 중년의 여자를 만나고 그 중년의 여자도 자살도 계획해 봤고 인생이 힘들었는데 데인에게 따뜻한 수프를 건네면서 말벗이 필요하다면 전화를 달라고 하면서 전화번호를 건네준다. 어쩌면 데인은 그렇다 할 직장도 없었고 멧에게 끌려다니는 듯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혼자라는 기분은 데인도 마찬가지로 느끼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서 실화라고 하는데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저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를 보살피는 멧의 심정과 쓸쓸한 빈자리를 지키고 있는 니콜과 그 자리를 메꾸어주는 데인의 심정까지를 보여주는데 이 영화를 통해서 가족의 소중함과 지금 있는 사람들에게 잘해야겠다는 여운을 남긴다. 떠나가면 붙잡을 수 없는 게 인연인지라 필자도 지금의 인연을 맺은 사람들에게 잘해줘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지금의 인연들이 떠나가기 전에 소중히 대하자!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영화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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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디버드>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상에 젖은 채 새크라멘토를 운전하는 크리스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본 어떤 인간의 모습도, 그토록 우수에 차 있지 못했다. 지금껏 마주한 그 누구도 그녀만큼 성장을 대변하지는 못했다.
성장을 절감하는 순간은 내 과거가 가여워질 때가 아닐까. 탈주하고 싶었던 곳들이 짠하게 느껴질 때. 구현하고 싶던 미래들에 억지로 나를 껴 맞추던 과거들이 안쓰럽게 느껴질 때. 이제껏 가져온 것들을 제대로 사랑해주지 못했음을 깨달을 때.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어린 크리스틴은 크리스틴을 사랑해주지 못했다. 그 이름에서 도망치고 싶을 만큼 '나'를 증오했다. 대신 내가 원하고 바라는 '나'만을 사랑했다. 내 머릿속에서 수없이 상상하고 그리며 수많은 수정 작업을 거쳐 완성해낸 완벽한 나 - 레이디버드만을 사랑했다. 그러나 레이디버드라는 이름과 인격을 향한 집착은 그녀의 사랑의 방향이 자아가 아닌 '완벽성'을 향해 있었음을 반증한다. 완벽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미완의 자신도, 타인도 결코 사랑할 수 없다. 영화의 막바지 크리스틴이 참회의 감정을 느끼는 대상은 다수이겠지만 가장 크게 미안함을 느끼는 대상은 자기 자신일 테다. 완성형의 꿈은 미치도록 사랑했으나 완성된 꿈을 꾸는 진행형의 나는 사랑해주지 못했던 그 시절을 반추하며, 그녀는 후회가 곁들여진 사랑을 곱씹는다.
Different things can be sad.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레이디버드의 슬픔 앞에서 이라크 전쟁에서 죽어가는 민간인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치 레이디버드의 슬픔은 별것 아니라고 말하는 카일.
레이디버드는 카일과의 섹스가 별로여서 슬픈 게 아니다. 자신이 카일의 첫 상대가 아니어서 슬픈 게 아니다. 그는 자신의 슬픔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카일 때문에 슬픈 것이다. 이는 즉, 카일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프롬에 가는 날 제니와 제니의 남자친구, 카일은 레이디버드를 두고 "she is so wierd"라는 말을 한다. 나를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나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새크라멘토에서의 추억을 회상하며 다시 교회를 찾는 그녀의 모습은 언뜻 '지나고 보면 다 아름답더라'와 같은 형식적 교훈을 전하는 여타 성장(을 테마로 하는) 영화를 떠올리게끔 한다. 고통의 해결책을 시간의 흐름에 일임해 현재의 비극성을 지우고 지금의 통증을 간단히 마비시켜버리고자 하는 그런 고리타분한 영화들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중점은 과거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데에 있지 않다. 영화는 과거의 고통과 슬픔을 현재를 위한 거름으로 쓰지 않으며 성장을 지나치게 숭고화하지 않는다. 고통의 존재 이유를 당위적으로 논하지 않고 성장을 결과로 취급하는 성취지향적 태도 역시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지나고 보면 다 좋은 추억이니 지금도 견디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서성이고,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에 서성이고, 사랑과 증오의 경계에서 서성이다가-
상처받고 상처 준 자신을 끌어안아 보다 더 따뜻한 시선으로 과거를, 현재를 바라보는 성장. 영화는 이런 성장을 이야기한다. 무엇엔가 깊이 아파하던 나를,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던 과거를 연민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하나하나 보듬는 자가 치유에 대해 말한다. 지나온 것들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지나온 내가 아름다운 거라고, 스스로를 대견히 여길 수 있는 관용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영화 말미, 크리스틴은 잘 견뎌낸 나를 토닥이고 그때의 나를 위해 눈물짓는 지금의 시간을 격려한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가 화해를 말하는 방식이 무척 마음에 든다. 이를테면 엄마와 크리스틴이 각자의 진심으로 서로의 마음을 찬찬히 적셔드는 그런 방식.
엄마는 크리스틴에게 편지를 전하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을 완벽하게, 보기 좋게 전하고자 시도했지만 써도 써도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는 절망감으로 인해 그녀는 끝내 편지를 밀봉하지 못한다. 그러나 크리스틴을 마음을 녹인 건 완성된 편지도, 완벽한 글솜씨도 아니었다. 끝내 그녀에 손에 들리지 못한 미완의 편지, 서투른 글솜씨, 차마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엄마의 끝없는 진심이었다. 작품은 이곳에서 또 한 번 미완의 것들이 가져다주는 진심과 기적을 조명한다.
미완을 무한으로, andless를 endless로.
어쩌면 유한의 존재인 인간에게 가장 큰 선물은 무한이 아닐까. 마침표 찍지 못한 수많은 마음, 정돈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마음. 이처럼 때때로 우리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진실된 화해를 이룩할 수 있다. 그저 사랑이, 느껴지는 순간에.
사랑이 느껴지는 또 하나의 화해의 씬은 엄마와 크리스틴이 새크라멘토를 운전하는 모습이 겹쳐지는 순간이다.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순간을 묘사하는 데에는 언어도, 사과도 필요치 않다. 그저 둘은 같은 공간 속에서 닮은 듯 다른 마음으로 서로를 헤아린다.
미완의 존재들이 미완의 것들로 서로를 치유하고 사랑하는 기적들이 무한 반복되길, 이곳이든 너머이든 어느 곳 누군가는, 완생이 아닌 미생의 존재인 우리에게 끝없는 축복을 보내주길 바라본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아니, 날 좋아하냐고.”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를까. 한 가지만 골라야 한다면 나는 사랑을 택하겠다.
누군가 내게 진심을 고백한다면 그건-
"난 널 좋아하기보다 사랑하는 것 같아.
그래서 내가 널 미워할 수는 있어도 결코 네가 싫어지지는 않을 거야."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고백을 듣는 내가 마음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었으면,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었으면. 상대의 뜨거운 진심에 손이 다 델지라도 타오르는 마음의 온도를 기꺼이 체험하는 용감한 사람이었으면.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추한 것들이 다 부도덕한 것은 아니야."
추한 모습들을 아름답게 만드는 그레타 거윅. 추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그녀의 대담함이 삶을 대하는 그녀의 솔직함인 것 같아 새삼 그녀가 참 용기 있는, 따뜻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s 어쩌면 모든 꿈은 꿈으로 존재할 때만 아름다운 게 아닐까. 환상처럼 간직하던, 엄청난 상징적 의미를 두던 첫 경험도, 금지되어 온 담배도, 19금 포스터도 결국 경험하니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처럼.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리월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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