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1-29 16:02:59
MBTI_INFJ 영화인들 모아보기

내일 놀래? / infj : 생각해볼게 (놀 의향 / 생각해볼의향 없음)
웃으면서 거절 잘하는 인프제. 친한 지인들은 안다는 인프제의 영혼리스 리액션.. 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마음은 정말 따숩답니다(?) 친구들의 고민 들어주기 장인, 도어슬램 장인, 혼자있기 장인.
알다가도 모를 인프제! mbti infj라고 밝혀진 영화인들 같이 만나보아요
✅ 친구들에게 내 성격 알려주기 (태그)







Relative contents
-
- 나를 위한 마음, <풀타임>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풀타임 Full Time, 2021
프랑스 / 88분
감독: 에리크 그라벨
나를 위한 마음, <풀타임>
<풀타임>은 일상의 반복을 외피이자 내피로 효과적으로, 또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이혼 후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엄마, 쥘리의 출퇴근이 이야기의 뼈대이자 전부지만, 그것이 영화가 내놓은 모든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요소를 섞어 복잡하게 느낄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굉장히 간단한 방법으로 명확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이어간다. 망설임 없이 표면 서사와 심층 서사를 능숙하게 넘나드는 쥘리의 일상은 환경, 온도 등에 따라 몸의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다가온다. 두 서사 사이의 간격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하기도 하는데, 그로 인해 너무나 평범해 쉽게 지나치기 쉬운 하루를 역동적인 사건으로 느끼게 하고, 그 결과 별거 아닌 것을 한순간에 마음 쓰게 만든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을 옆집 할머니에게 맡기고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는 쥘리가 특별한 지점 없이도 관객의 마음을 졸이게 하는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영화는 도로를 뛰고 있는 것 같은 쥘리의 거친 숨소리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있다. 꿈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알람 소리로 눈을 뜬 순간부터 쥘리는 숨 돌릴 틈 없이 움직인다. 직장에 늦지 않기 위한 뜀박질로 시작해 집에 무사히 돌아오기 위한 뜀박질로 끝나는 하루. 스펙터클한 일상을 더 완벽하게 완성하는 건 따로 있다. 시끄러운 파리의 소음만큼이나 가슴을 갑갑하게 만드는 쥘리의 문제들. 교통을 마비시킨 대규모 파업과 갚지 못한 대출 빚, 옆집 할머니의 직언, 연락 부재중인 전남편, 사랑하는 아들의 파티 준비까지, 쥘리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쳇바퀴 안에서 바쁘게 살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발적으로 수많은 문제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는 점이다. 쥘리는 오래전부터 직장 상사 몰래 이직을 꿈꾸고 있었다. 이미 5성급 호텔에서 동료 직원들을 평가할 수 있는 고참 룸메이드로 일하고 있지만, 마케팅 회사를 더 원한다. 호텔 룸메이드 처우보다 조건이 좋은 건 당연하고, 궁극적으로 과거 잘했던 일을 늦지 않게 다시 하고 싶기 때문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 더 좋은 조건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싶은 마음, 더 확실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마음. 쥘리의 강력한 동기는 호텔 룸메이드란 현실 속 직업을 위태롭게 만들기 시작한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우린 때때로 앞에 산적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중요한 일과 진짜 중요한 일을 나누곤 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모두 잘 해낼 수 없을뿐더러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부분 일의 순서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여기면 될 일이니까. 난제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쥘리는 자신의 문제에 순서를 배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순서가 사실은 선택이란 단어를 감추기 위해 쓴 용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쥘리에게 선택은 있을 수 없다. 그녀의 현실에서 선택은 사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조차 허용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건들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서 하나를 포기하면 전부를 포기해야 한다. 달리는 열차에 손을 뻗어 맘에 안 드는 열차 칸을 뜯고도 기차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나이는 이미 한참 지났으니까.
그녀를 둘러싼 사건들은 죄다 단기간에 확실한 답을 찾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쥘리는 참고 견디는 일에 익숙하다. 익숙함에 젖어서 다른 일을 게을리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에 능숙하진 않지만 최선을 다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녀에게 익숙함은 현실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교통 파업은 교통마비의 원인이지만 쥘리에겐 주어진 환경일 뿐이다. 자연재해와 같아서 남 탓은 불가능하다. 물론 교통마비 현상이 쥘리의 고통을 가장 극대화하고 즉각적으로 보여주지만, 쥘리의 적대자는 아니다. 그녀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이며 자기 자신이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두 아이를 돌봐주는 옆집 할머니의 오지랖(주제넘은 말)에 성심성의껏 대답하고, 그만두겠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그녀에게 꽃다발을 선물한다. 하루는 부탁하다가 다른 날엔 할머니의 말에 동의하는 척하고 또 다른 날엔 애처롭게 애원한다. 양육비를 보내지 않는 전남편에게 매일 전화하면서 자괴감과 무력함을 느끼지만 내일이 되면 다시 그에게 전화해 음성메시지를 남긴다. 면접을 보러 다니는 와중에 아들의 생일 파티를 위한 준비를 잊지 않고 카풀과 차 렌트로 출퇴근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능하게 한다. 마케팅 최종면접을 위해 그동안 쌓아놓았던 호텔 룸메이트 마일리지도 거침없이 사용한다. 내가 이렇게 몇 년간 헌신했으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란 심보로 말이다. 그 일이 사실상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나쁜(?) 일이다. 가능한 모든 힘을 쥐어짜고 기용할 수 있는 자신의 인적자원을 이용한 결과, 쥘리는 호텔에 출입하지 못한 채 길거리에서 일자리를 잃는다. 과거 나를 위해 했던 일들이 현재 나의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됐다.
한 번쯤은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벌이거나 난동을 피우며 해결되지 않는 화를 표출할 법한데, 그녀는 묵묵히 벌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집중한다. 교통마비가 끝나기를 견디는 것처럼, 옆집 할머니가 마음을 바꾸길 기다리듯이, 최종면접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바라듯이, 쥘리는 끝까지 자신에게 올 긍정적 신호를 기대한다. 그 모습이 너무 간절해 안쓰러워 보이지만, 상관없다. 우린 그녀를 당연하게 응원하고, 쥘리는 모두가 예상했듯 합격 소식을 들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출퇴근이 전부인 <풀타임>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힘은 쥘리를 향한 관객의 진한 공감에 있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사실 달라지는 현실은 없다. 여전히 쥘리의 출퇴근은 난항일 거다. 아니 이젠 그 안전한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 그전보다 훨씬 빨리 일어나 뛰어다녀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봐줄 사람도 찾아야 하고, 답답한 전남편에게 똑같은 음성메시지를 남기겠지. 하지만 쥘리는 끝까지 파업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전남편과 직장 중간에 위치한 파리 외곽에서 꿋꿋하게 두 아이를 키웠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니까. 쥘리는 보통 사람들을 대변한다. 적당히 합리적이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사람이다. 나아가 가끔은 과한 요구도 나를 위해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보통 인간이다. 개인적인 문제들이 곪아 터지면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언제든 나의 현실이 될 수 있고,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해서 그 고통이 말끔하게 해결될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녀는 우리처럼 살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으로, 보통의 삶을 치열하게 사는.
단단하게 잡고 있는 것들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나만 힘들고 나만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며 더는 나오지 않는 한숨을 토해내려 애쓰는 날도 있다. 쥘리의 일상이 그랬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넘어지거나 고꾸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나'를 위한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현실에 맞춰 사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자기가 원하는 인생의 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희망적인 결실까지 얻었으니 해피엔딩은 당연한 결과다. 평범함이 위대함이 되는 건 쉽다. 물론 아찔하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갖게 한다. <풀타임>이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과 함께 쥘리를 달리게 한 건 그 대단함에 숨어있는 힘을 눈앞에 보여주기 위함이다.(영화 내내 들리는 소음과 어지러운 카메라 무빙도 같은 목적을 위해 달려왔다.) 따라서 첫 장면부터 관객의 무관심을 관심으로 바꾸는 힘엔 조금의 다급함도, 조급함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화무쌍한 현실을 견디는 나에게 작은 위로와 위안을 전달한다. 그리고 난 그게 참 반가웠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자연스럽게 쥘리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곧 나를 위한 마음이 될 때, 마침내 영화는 그녀를 멈춰 세운다.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놀이기구 앞에서 새로운 출발을 앞둔 쥘리의 모습.
홀로 멈춰 있지만, 그녀는 이미 뛰고 있다.
또다시 자신이 가진 시간을 전부 다 꺼내놓고서.
-
-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찰나의 순간
27살 나이로 2021년 첫 장편 데뷔작 ‘걸’을 통해 71회 칸에서 황금카메라상은 물론, 주목할 만한 시선 남우주연상, 퀴어종려상, 국제비평가협회상까지 4관왕을 수상하며 탁월한 감성을 지닌 차세대 감독으로 주목받은 루카스 돈트 감독의 두 번째 영화 클로즈를 시사회로 감상하고 왔습니다. 작년 10월 열린 27회 부국제에서도 상영되었던 작품으로, 13살 동갑내기 두 소년의 우정을 통해 관객들이 지나온 어린 시절의 우정에 대한 그리움과 충격적인 사건의 슬픔이 이끈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점의 친밀함이라는 요소가 아주 옅게 성 소수자(LGBTQ)의 장르적 분위기도 흘리지만, 딱히 구분 짓지 않을 정도라서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 감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미리 만나본 작품의 후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어릴 때부터 친구라 거의 형제 같아”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레오와 레미는 친구들에게 관계를 의심받기 시작한다. 이후 낯선 시선이 두려워진 레오는 레미와 거리를 두고, 홀로 남겨진 레미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고 만다. 점차 균열이 깊어져 가던 어느 날, 레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예고편│Trailer
원제: CLOSE│감독: 루카스 돈트│각본: 안젤로 티센스
출연진: 에덴 담브린, 구스타브 드 와엘 외 多
장르: 드라마│상영 시간: 104분
국가: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등급: 12세 관람가
평점: 로튼토마토 신선도 91% 팝콘 86%, IMDB 7.8
수상 내역: 58회 시카고국제영화제(실버휴고 심사위원 특별상, 골드Q휴고상-아웃룩프로그램), 45회 밀 밸리 영화제(관객상- 세계장편), 69회 시드니 영화제(작품상), 75회 칸영화제(심사위원대상)
수입·배급: 찬란│공동배급: (주)하이스트레인저│공동제공: 소지섭, 51k
개봉일: 2023년 5월 3일
“관계를 규정하는 사회에 잊혀진 다정함과 그리움”
꽃 농장으로 둘러싸인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사는 13살 동갑내기 소년 레오와 레미는 어린 시절부터 양가 부모님까지도 허물없이 지낼 만큼 형제처럼 자란 둘도 없는 절친으로, 모든 것들 공유하며 함께 하는 사이입니다. 중학교에서도 같은 반이 되어 서로를 챙기지만 다른 이들은 둘 사이를 우정 이상으로 보며 험한 말도 서슴지 않았고, 서로가 멀어지는 불씨가 됩니다. 누구나 흔히 보낸 유년 시절의 우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사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며 보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불알친구, 죽마고우로 일컬어지는 두 사람이 학교라는 사회에 들어가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 규정된 무언가를 느끼며 멀어지는 관계에 대한 생각들을 비춥니다. 서로를 의지하고 누구보다 챙겼던 이들의 순수한 우정이 정해진 잣대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들을 말입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남성과 여성의 특정적인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에 맞춰 변화를 맞이하는 관계는 어쩌면 관객 모두가 지나온 아주 자연스러운 시간들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항상 붙어 다니고 먼 미래의 허황된 꿈을 이야기하며, 상상만으로 그저 즐거워했던 당연한 순간들이 처음 마주한 공동체의 뒤틀린 시선과 마주하며 희미해져가는 과정입니다. 사회의 명확한 재단으로 인해 세상 둘도 없는 친밀하고 다정했던 마음을 잃어가는 안타까움은 레오와 레미의 알 수 없는 다툼으로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변화하고 선을 그어야만 성숙한 우정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어른이기에, 레미의 극단적 선택이 레오에게 얼마나 큰 슬픔으로 남을지 가슴이 아프고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CLOSE’, 가깝거나 단절되었다는 완전히 상반된 의미를 내포한 제목처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관계와 상실, 함께 했던 수많이 이들의 그리운 기억으로 빚어지는 감정들을 파고듭니다. 꼭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건이나 주변의 시선과 편견으로 조금씩 멀어졌던 이들이 남긴 다정한 흔적의 연민과 공감을 불러오죠. 사적인 우정을 사회를 구성하는 보편적인 관계성으로 확장시키며, 상실의 아픔으로 성장하는 맑고 깊은 눈동자를 가진 어린 주인공을 집요하지만 사려 깊게 담아내면서 말입니다. 그렇기에 루카스 돈트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다정함이란, 어쩌면 그렇게 잊혀 갔던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일 거란 생각이 들었고, 신인 아역의 에덴 담브린의 빛나는 연기가 의미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습니다. 영화 클로즈, 제목과 정말 딱 떨어지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
한 줄 평 : 가깝거나 단절되는 관계의 그리움으로 빚어지는 성장의 시간
-
- 사회문제 맛보기
호주에서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했다는 <드라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을 감추고 온전히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가뭄이라는 뜻의 제목 <드라이>에 맞게 영화는 오랜 기간 가뭄이 이어진 마을 키와라를 배경으로 해들러 일가족 사망 사건을 파헤쳐 나간다. 가물어져 바닥이 갈라지고 땅의 맨바닥이 드러나는 장면이 영화 곳곳에 배치되지만 진실은 갈라진 바닥에 숨어 도통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된 애런 포크(에릭 바나 분)는 그 진실을 찾아 마을을 샅샅이 뒤지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20년 전에 벌어진 엘리 디컨의 죽음에 사사건건 부딪히고 해들러 가족의 죽음이 자신과 무관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지만 갈라진 키와라의 땅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엘리 디컨은 죽었을 때 바지 주머니에 애런의 이름이 적힌 메모지를 넣은 채 발견되었는데 이로 인해 애런은 엘리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처럼 여겨져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가물어질수록 작물은 말라가고 사람들도 함께 죽어가지만 애런은 도저히 진실을 찾을 수가 없다. 왜 <드라이>는 하필 가뭄이 든 마을을 배경으로 한 것일까?
엘리 디컨이 죽었을 때의 정황 중 특이점은 엘리가 강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사건이 말라가는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것과는 정 반대다. 또한 애런의 회상 신은 대부분이 강가를 배경으로 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친구인 루크, 그레첸, 엘리와 강가에서 놀곤 했던 애런은 엘리에게 짖궂은 장난
이라기엔 엘리가 죽을 뻔했지만을 치던 루크 해들러를 떠올리며 루크가 정말로 자신의 가족을 몰살하고 자살했을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하지만 루크의 부모님은 그럴 리 없다며 애런에게 수사를 부탁한다. 확실히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은 이상한 점이 많다. 막내딸인 갓난 아이만이 살아남았다는 점이나 사살에 사용된 탄약이 평소 루크가 사용하던 것과는 다른 종류였다는 것 등이다. 강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던 엘리와는 달리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은 가물어진 마을 한복판인 집에서 벌어진다. 물을 배경으로 죽음을 맞이한 엘리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그 진실을 알려주지만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은 가물어질수록 증거가 하나씩 드러난다. <드라이>의 배경이 가물어진 마을을 배경이어야만 했던 이유는 건조한 날씨에 서로에 대한 불신이 깊어져가는 긴장감을 상징하는 동시에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밝혀지는 배경으로서도 가뭄이 유용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한편 가뭄 이외에 영화는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지만 어느것 하나 깊이 들어가지 않고 맛보는 데 머문다. 엘리가 죽었을 때 애런은 루크와 사건 정황에 대해 입을 맞추는데 같이 다른 곳에서 토끼 사냥을 했다고 거짓말한 것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회상장면이 지나가고 나면 성인이 된 그레첸(제네비브 오라일리 분)이 실제로 토끼 사냥을 하고 있다. 이 장면은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는 진실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기도 하지만 죄없는 토끼가 날조에 이용되거나 마당에 숨어든다는 이유로 사살당해도 되는지 관객에게 의문을 품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하다. 하고많은 야생동물 가운데 토끼가 사살 대상이 된 이유는 작고 연약한 동물인 동시에 빠르지 않아 쉽게 사살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는 20년 전 죽은 엘리 디컨에 대한 비유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인다. 엘리의 죽음은 엘리에 대한 애도보다 애런과 루크에 대한 혐오 면에서 더 크게 작동한다. 평소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소녀임에도 엘리가 죽자 마을 사람들은 크게 동요하고 비난할 누군가를 찾는다. 확실한 증거가 없음에도 알리바이가 딱히 있지도 않았던 애런과 루크는 엘리의 죽음에 책임을 지게 되고 결국 애런은 아버지와 함께 마을을 떠난다. 이 부분 또한 서로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 진실 그 자체를 찾기보다는 그저 비난에 초점이 맞춰지는 사회현상을 가볍게 보여주지만 더 깊이 들어가지 않고 영화는 현상을 바라볼 뿐이다.
엘리의 죽음은 의문투성이인 동시에 관객은 애런이 20년 전에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혼란에 휩싸인다. 그렇다면 애런은 20년 전에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야 했을까? 애런이 사실대로 말했다면 애런은 엘리의 죽음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음에도 책임을 져야 할 판이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거짓말은 용인되는 것인지, 혹은 애런이 무고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아버지에게까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당연한지 은연중에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역시도 더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가 관객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지 궁금해하지만 수많은 질문 가운데 초점이 맞춰지는 질문은 없다. 이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20년 후 일가족의 몰살까지 이어지지만 사실 엘리 디컨의 죽음과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은 독립적인 사건임이 영화가 진행될수록 드러난다. 영화가 무심코 던져주는 질문들은 영화 진행을 위한 맥거핀으로 기능하며, 애런은 이 맥거핀을 충실히 따라가며 관객의 혼란을 유도하는 동시에 본인도 혼란 속으로 들어간다. 애런이 이 혼란을 벗어나는 것은 결국 윤리적인 질문을 피해 객관적인 증거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순간이다. 사건에서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모두 걷어내고 객관적인 실체를 마주한 애런은 사건의 진상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가물어진 마을에서 얼마 안되는 숲에 불이 질러질 위험으로부터 마을을 구해내고 숲 또한 보전된다.
숲이 보전되었다는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더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해들러 일가족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밝혀낸 애런은 다시 마을을 떠날 채비를 하며 엘리를 기리는 마음으로 숲을 향한다. 엘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반대로 애런의 감정이 촉발한 행동에서 드러난다. 엘리와 시간을 보내곤 했던 장소에서 엘리에게 작별인사를 하려던 애런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결국 엘리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알게 된다. 엘리의 죽음에 진정으로 책임이 있는 자가 밝혀질 때 또다시 영화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가볍게 관객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 역시 깊이 들어가지 않고 맛보기만 함으로써 관객은 다시금 어리둥절해진다. 영화는 이런 사회적 현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문제들을 단순히 몰입감을 위한 장치로서 소비할 뿐인가. <드라이>는 밀도 높은 서사를 가지고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영화지만 사회적 문제들을 맥거핀으로 소비한다는 측면에서는 아쉬운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가 끝나면 이제 관객은 현실로 돌아와 영화에서 제기되었던 문제들을 맞닥뜨려야 한다. 영화가 묘사한 다양한 종류의 혐오들은 정당한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허용할 수 있는 거짓말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몰입도 높은 수사 서사를 가진 <드라이>가 모든 진실을 알려준 후에도 극장을 떠나는 관객의 뒷맛이 깔끔하지 않은 이유다.
*본 리뷰는 씨네랩 시사회 초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 책임감의 무게
살아가면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책임을 짊어지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단순히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놀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가족, 직장, 사회에 대한 책임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게 되면 부모로서의 책임도 생기고, 직장에서는 팀을 이끌거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책임도 생긴다. 이런 책임감이 인생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만들지만, 동시에 우리를 성장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책임감은 단순히 의무를 다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깊이 고민하고, 그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의사나 비행기 조종사 같은 직업은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그들의 결정 하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최고의 판단을 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가지고 있다.
영화 <하이재킹>은 이러한 책임감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부기장 태인(하정우)은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직업의식과 책임감을 끝까지 지키며, 희생자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한다. 그의 동료인 기장 규식(성동일)과 승무원 옥순(채수빈) 역시 마찬가지로 높은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들 역시 승객의 안전을 먼저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비행기를 납치하는 용대(여진구)는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는 책임감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게 비록 잘못된 에너지가 되어 발산되지만 결국에 그의 행동도 책임감에서 비롯된 죄책감이 원인이었다. 이 영화는 각 인물들의 책임감이 어떻게 충돌하고, 그것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첫 번째 감정] 태인의 책임감
부기장 태인은 과거 공군에서 납치된 여객기를 격추하라는 명령을 어긴 경험이 있다. 그는 승객과 승무원들을 살리고 싶었기 때문에 명령을 거부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비행기는 납북되었고 태인은 군에서 퇴출당했다. 이러한 과거가 그에게 큰 두려움을 안겼겠지만, 그에게 여객기 조종사라는 직업으로 연결시켜 주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를 그 일을 그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여객기 조종사가 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승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영화에서 태인은 매우 조용하고 진지한 인물로 묘사된다. 특별히 실없는 말을 하지 않고 항상 침착한 태도로 상황을 대처하는 그는 이 영화 안에서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이다. 비행기가 납치당했을 때도 그는 감정적인 반응을 먼저 보이지 않고, 침착하게 그 상황을 대처하며 승객들을 안전하게 내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납치범에게 위협을 당하고 총에 맞는 상황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태인의 책임감은 단순한 의무감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일종의 사명감으로 보이기도 하고, 과거에 다른 여객기를 납북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도 그에게 더욱 책임감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 에너지는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강력한 힘이 된다. 그는 납북된 선배 조종사의 가족들까지 챙기는 등,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가는 사람이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영화 전반에 걸쳐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느 누구도 아닌 태인의 서사가 중심이 된다.
[두 번째 감정] 용대의 분노
납치범 용대는 사실 억울한 인물이다. 북으로 넘어간 형 때문에 빨갱이로 몰려 감옥에 가고 어머니는 혼자 집을 지켰지만, 지병으로 홀로 외롭게 죽음을 맞는다. 그는 가족을 살필 기회도 없었고, 그저 감옥에서 출소해서 돌아온 집에 숨져있는 그의 어머니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억울한 상황과 슬픔은 그대로 큰 분노를 만들어낸다. 물론 그의 납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용대의 분노는 그를 비행기 납치로 이끌었다. 그의 분노는 다른 무고한 승객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고, 결국 그의 잘못된 선택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거나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했다. 하지만, 그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다. 그는 침착하게 대응하는 부기장 태인을 보며 자신이 상황을 주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조금은 만만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용대가 가지고 있는 분노가 그의 판단력을 망가뜨렸기 때문에 그런 행동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용대는 극단적인 선택을 계속해나간다. 북으로 가자는 그의 외침은 후반부로 갈수록 공허하게 들린다. 단지 그의 분노만 화면 속에서 전달될 뿐이다. 하지만 그의 분노는 점점 어두워지는 다른 승객들의 얼굴빛에 가려져간다. 그래서 그의 서사 안에서는 그의 행위에 정당성을 가지지만, 비행기 전체의 승무원과 승객들의 서사까지 확대하고 나면, 그 분노는 정당성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아무 의미 없는 분노가 되어버린다.
[세 번째 감정] 규식의 믿음
기장 규식은 처음에는 태인을 믿지 않았다. 공군에서 쫓겨난 태인을 직접 평가하기 전까지는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는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담배를 피우며 태인과 규식의 대화에서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규식은 태인에게 이번 비행에서 착륙을 해보라고 이야기하면서, 태인의 실력을 살펴보려 한다. 외부의 평가는 이미 끝난 태인에겐 그 기회가 그의 경력에 꽤 중요한 기회였다.
이후 비행기가 납치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인은 차분함을 유지하게 된다. 그런 그의 태도를 본 규식은 부기장으로서의 태도를 먼저 인정하게 된다. 폭탄이 터지고, 비행기에 구멍이 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그 상황을 대처하고 승객안심시키는 모습은 충분히 규식에게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준다. 규식은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점차 태인에게 의지하게 되고, 결국 그를 전적으로 믿게 된다.
중반부에 규식은 눈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되면서 태인에게 완전히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결국 규식은 마지막 순간에 태인에게 착륙을 맡긴다. 규식의 믿음은 태인이 자신의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외부의 판단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믿은 규식의 태도는 매우 감동적이다. 이 영화에서 기장으로서의 역할은 무척 제한적이었지만, 리더로서 가질 수 있는 품격은 충분히 보여준 규식이다.
영화 <하이재킹>은 과도하게 감동코드를 밀어 넣지 않으면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한다. 특히 부기장 태인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중심인데, 그의 우직한 모습이 끝까지 이 영화를 지탱한다. 그가 가진 책임감, 그리고 그의 주변 인물들의 믿음이 그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게 만든다.
비록 분노에 가득 찬 납치범이 벌인 일이지만, 그를 달래고 설득하면서 좋은 상황을 만들려 애쓰는 모습이 긴장감 있게 담겨 있다. 이 영화는 실화의 힘이 장점이 되는 영화다. 비행기 불시착한 모습도 실제와 똑같고, 납치범의 사연도 거의 비슷하다. 살아남은 사람들과 희생된 사람들의 구성도 실제와 동일하다. 실화가 좋았기 때문에 담백하지만 긴장감 있는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에는 유머가 전혀 없다. 성동일과 하정우라는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특유의 개그 연기가 전혀 없다. 또한 외부 비상 센터 같은 정부의 대처를 보여주는 장면도 없이, 온전히 비행기 안에서 벌어지는 일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점이 이 영화의 감정들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영화가 다루는 당시 시기에는 비행기 납치나 납북이 많았다.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도 누군가를 살리려는 책임감을 가졌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언제나 그런 사람은 사회에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단지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영화 <하이재킹>에는 그런 책임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
- '프로젝트 사일런스'보다 부실한 것 같은 기획력
30중 추돌사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청와대 행정관 차정원(이선균)이다. 딸(김수안)과 함께 사는 싱글파더 정원. 직장이 청와대인 탓에 위에서도 어깨가 무겁지만 그의 입장에 더 중요한 과제가 있다. 바로 딸이 랩(힙합)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궁여지책으로 낸 해결방식은 호주로 유학을 보내는 것이다. 운전 중인 정원. 그전에 이상한 양아치 조박(주지훈)와 말다툼이 있던 것은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 한참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데 사건이 벌어진다. 콰콰쾅하는 소리가 난다. 앞에서 확인하니 수많은 차량이 추돌사고를 일으켰다. 어수선한 도로. 군인들이 모여 도로를 정리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개 한 마리가 혼자서 돌아다니더니, 이내 곧 군견들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당황하는 사람들. 골프선수 유라(박주현), 병학과 순옥(문성근/예수정), 과학자(김희원) 역시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생지옥이 된 도로. 과연 탈출할 수 있을까?
재난에'만' 집중하다
사실 이 <탈출 :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재난영화라는 근본을 충실히 쫓아간다고 볼 수 있다. 재난영화의 근본이 뭐야? 기본적으로 현 사회 시스템에 대해 다룬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재난이 벌어진다. 그럼 그 재난을 수습하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지? 그 상황에 대해 이상적인 대처를 보여주나(<비상선언>, <볼케이노>) 한 사회의 시스템에 대해 비판하거나(봉준호 감독의 <괴물>) 정부차원이 아니더라도 시민들이 연대해서 극복하는 줄거리(<칠드런 오브 맨>)거나 시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저열한 인간군상극(<부산행>)이 나올 수 있다. 이 <탈출 :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이 특성 중 하나를 그대로 가져왔다. 바로 <괴물>의 사례다. 이것을 잘 살리는 주인공 차정원은 청와대 안보실 행정관에서 근무하는 인물이다. 그럼 청와대의 인물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어떤 인물이랑 연결됐을까? 바로 유력한 대권후보 정현백(김태우)이다. 이 설정은 이 영화가 한국사회에 대해 비판할 때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또 영화가 하이라이트에서 강조하는 무언가가 있다. 이 무언가가 (합을 맞춘 티가 날 지언정) 이 차정원이라는 인물이 이 역할을 맡아 이 이야기를 끌고 가고 이 상황을 맞이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근거가 된다. 영화가 인물 설정을 통해 무언가를 노리고 이 작품을 기획했는지가 드러나는 셈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영화가 장르를 공간으로 설정한 방식 역시 돋보인다. 이 영화는 도로에서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인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장르적인 토대를 만들고 싶어서. 자동차가 30중으로 추돌사고가 일어나 그 여파로 크리쳐들이 풀려난다. 크리쳐들이 풀려나는 계기가 도로에서 벌어지는 일에만 국한 짓는 것이다. 뭐 바닷물에 오염수를 뿌렸다던가 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럼 <괴물>이 생각난다. 또 그 오염수라는 것에 변수가 좀 있다. 그 안의 생태계라던가 환경단체의 감시 같은 것들이 세계를 이루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있을까?라는 걸 생각해 보면 2020년대에 이런 접근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나름 영화가 독자적인 노선을 고른 것이다.
그리고 글쓴이는 이 영화가 도로라는 공간적 배경을 선택한 이유가 인물들의 소시민적인 특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도로가 뭘까? 기본적으로 양 방향에서 오며 가며 이동하는 것이 도로다. 이 도로에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차에 탑승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일단 차에 있다. 겉으로 이 안에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건 국무총리건 알 수 없다. 차만 보인다. 인물들 간의 수평적인 관계가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영화는 이 특성을 동력으로 삼았다. 이 영화는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사회 안의 계급을 활용하지 않는다. 플롯에는 기능적일지언정 이야기 안의 문제 해결에는 인물들이 자기 몫 다 한다. 또 자기들끼리 직간접적으로 소통하는 모습도 적지 않게 보인다. 골프선수와 호주 유학 가려는 10대 여학생이 대화할만한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 그리고 서로 아이디어를 내는 데에 있어서도 누가 높고 낮다 이런 게 없다. 각자 캐릭터들이 도로라는 공간적 배경 하에 하나로 집결시킨 것이다. 둘째로 이 영화는 도로의 공간적인 특성이 플롯 안에 새겨놓은 흔적까지 보인다. 도로는 두 방향에서 서로 오고 가는 것이다. 만약 이 것의 한 방향을 자른다면? 한 방향 안에서만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럼 돌아가야 한다. 도로를 통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냥 그 도로 안에 갇힐 수도 있다. 여기서 이 영화가 던지는 윤리적인 문제와도 닿는데, 만약 이 도로를 이용하는 이용객 중 하나가 도로를 관리하는 입장이라면 그게 공정한 것일까? 이 질문을 영화가 도로라는 공간적 배경으로 구현한다. 극후반부를 보면 인물들이 도로를 둘러싼 리액션을 보여준다. 이 리액션이 사실상 영화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공간적 배경이 ‘도로’가 아니었다면 이 구도가 나오지 못했다는 점에서 공간이 영화의 핵심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라진 서스펜스
이 영화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하면 긴장감이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 있어 실질적인 재난에 해당하는 것들은 군견이다. 군견은 적군을 학살하는 것에 있어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전적으로 일반적인 군견 같지 않다. 근육이라던가 감각이라던가 기동력이라던가 굉장히 뛰어난 애들이 이 군견들이다. 그리고 다른 설정. 영화가 안개가 자욱하다는 것이다. 그럼 어떤 서스펜스가 생기겠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곳으로 들이닥치는 서스펜스가 있겠지? 영화가 이 서스펜스를 잡았을까? 아니오. 그럼 어떻게 잡았어야 했을까? 바로 청각적인 쾌감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걸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박(주지훈)이 받아야 할 돈만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기능적으로 소비되는 네 캐릭터만 반복적으로 보여줄 뿐이다. 아니면 정원 부녀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게 영화가 프리미어를 가졌던 칸 영화제와는 다른 분량이라서 애매하게 된 지점이 있는데, 부녀관계가 더 깊숙해야 하는데 매가리가 없기 때문에 차라리 이 부분을 조금 덜 가져가더라도 장르적인 이해도에 주안점을 찍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에서 크리쳐에 해당하는 군견들도 이야기의 흐름에서 굳이? 싶은 점이 많다. 가장 큰 이유. 이 크리쳐들이 개일 이유가 있었을까? 이것은 영화에서 양 박사 캐릭터에게 설명이 부족했다는 과도 이어진다. 영화 안에서 양 박사는 군견들을 탄생시킨 프로젝트의 책임 연구원이다. 그럼 이 프로젝트를 굉장히 잘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이면을 설명하는 방법 중 하나는 개의 특성을 영화 안에서 핵심 소재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군견들의 단점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서스펜스가 생길 수도 있다. 필요한 물건이 있을 것이고, 그 조건이 발휘되거나 그렇지 않는다라는 경우가 있으니까. 하지만 영화는 이것에 관해 그냥 1차원적으로 활용하고 끝낸다. ‘개코’라는 관용어구가 있는 만큼 냄새로 인물들을 추적한다던가 하는 방식이 영화 안에서 중요하게 작동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탈출 :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근육질의 강아지만 보여주는 선에서 상상력을 피지 못한다. 솔직히 이 영화의 재난이 <미스트>처럼 못생긴 괴물이면 어땠을까? 그건 차라리 비주얼이 무섭기라도 해서 '쟤한테 걸리면 끝장나겠다' 겁이 나기라도 한다. 이 영화의 강아지 묘사라면 호랑이, 고양이, 늑대, 하다못해 모기나 파리 같은 곤충들이었어도 큰 문제가 없다. 영화가 서스펜스에 중요한 것들을 놓친 셈이다.
만화가가 꿈이어도 되는 거 아닌가
이 영화의 캐릭터들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있어 100% 적합하지는 못했다. 대표적으로 유라라는 캐릭터가 그렇다. 이 인물은 <부산행>의 마동석 배우 캐릭터 같은 느낌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기를 활용해서 크리쳐들을 활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내로 나온 정유미 배우의 캐릭터가 임산부인 것을 활용해 이동이나 보고 듣는 것에 제약이 생기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골프선수라는 직업적 떡밥(?)을 해결하는 방식을 보면 조악하다. 사실 유라가 사격선수라면? 군인 출신이었다면? 골프선수보다 후반부의 전제조건에 더 깔끔하게 호응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둘째. 영화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정현백이라는 인물물과 군인들이 가진 현실적인 능력 묘사가 이 영화와 적합했는지는 의문이다. 영화 후반부까지 다 보고 나서 드는 의문이기도 한데, 청와대 조직을 글쓴이 같은 20대 남성이 알 리는 없기는 하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 이게 특정 누군가가 이 모든 상황을 컨트롤했다기엔 반론거리가 많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노부부 병학(문성근)과 순옥(예수정)은 이 영화가 둔 가장 큰 패착이다. 이야기를 납작하게 만들 거라는 걸 예측하는 것과 동시에 전 국민이 보고 즐길 오락영화와는 전적으로 다른 장면이 나온다.
의문스러운 기획
전체적으로 영화가 노리는 바는 있었지만 그것을 이루는 토대가 부실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탈출 : 프로젝트 사일런스>다. 스릴러물로서의 서스펜스? 그렇다기엔 긴장감을 잡으려는 시도가 크리쳐 디자인 말고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동시에 이야기의 힘으로 플롯을 끌고 가기엔 인물들이 차정원을 제외하고 극을 이끄는 데 있어 적합하지 못하다. 허점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이걸 총합하면 얕은 영화라는 평이 가능하다. 인물도 다 예상되고. 영화의 핵심 사건도 다 예상되고. 캐릭터들을 기발하게 활용한 것도 아니고. 한국사회의 정치판을 비판하기엔 조직 내부의 알력다툼에 무심하고. 과연 이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덱스터 스튜디오의 CG 기술력만 느껴진 작품이었다.
-
- [BIFF 데일리] 가장 씁쓸한 방식으로 ‘한국적인’ 가족 이야기
보통의 가족/A Normal Family
한국영화의 오늘: 스페셜 프리미어
Korea/2023/109min
*시놉시스
두 쌍의 부부가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성공지상주의자 변호사 재완(설경구)과 원리원칙주의자 소아과 의사 재규(장동건)는 형제다. 재완의 아내 지수(수현)와 재규의 아내 연경(김희애)까지 네 사람은 아이들의 범죄 현장이 담긴 CCTV를 보며 고민에 빠진다.
〈보통의 가족〉은 어쩌면 가장 씁쓸한 방식으로 ‘한국적인 것’을 포착했다고 할 수 있을 영화다. 두 엘리트 가족이 있다. 형 재완은 잘 나가는 로펌 변호사고, 동생 재규는 대형 병원 의사다. 재완의 두 번째 아내 지수는 재완의 사무실에 떡 배달을 갔다가 결혼까지 하게 된 ‘젊고 예쁜’ 여성이고, 국제 봉사 NGO에서 일한 재규의 아내 연경은 올바름과 정정당당을 강조하는 재규에게 어울리는 짝으로 보인다.
이들의 관계는 묘하게 뒤틀려 있다. 재완은 동생 재규가 원리원칙주의자처럼 보여 답답할 때가 있고, 재규 역시 종종 형 재완이 돈만 아는 속물이라 생각한다. 지수는 상류층에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출신 때문에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콤플렉스를 가졌고, 치매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연경은 어쭙잖게 형님 행세를 하려 드는 지수가 같잖기만 하다.
어느 가족에게나 있을 법한 뒤틀린 관계 역학을 지닌 이 엘리트 가족에게 사건이 생긴다. 고등학생인 재완의 딸과 재규의 아들이 술을 마신 후 노숙자를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제 두 가족은 시험대에 든다. 법의 허점을 악용해 승승장구하던 변호사 재완은 과연 딸이 연루된 살인사건까지 무마하려 시도할까? 형 부부를 비웃으며 ‘선하게’ 살고자하는 재규와 연경은 과연 자기 자식 일에서도 지금껏 견지해온 삶의 원칙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새엄마’라는 지위에 늘 불안을 느끼던 지수는 오히려 이번에는 그 거리감에 안도하지는 않을까? 무엇보다, 살인을 저지른 아이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인지할까? 그리고 그들은 부모의 사회적 영향력을 어떤 방식으로 계승하려 하는가?
〈보통의 가족〉은 설득력 있는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앙상블이 인상적인 영화다. ‘멜로 장인’, ‘멜로 거장’이라 불리는 허진호 감독의 재능, 즉 관계성을 탁월하게 감각하고 드러내는 재능이 가족이라는 뒤틀린 이익 공동체에 적용되자 또 다른 빛을 발한다. 허진호 감독이 새로이 천착한 가족 관계는 동시대 한국에 관한 여러 물음을 파생한다.
-자본주의에서 경제적 엘리트는 ‘신분’이 되었다. 상류층과 하층민의 목숨 값은 다르다.
-가족이라면 다른 가족의 ‘허물’을 덮어줘야 한다.
-각자도생의 원칙이 가족 내부에까지 침투했다. 즉 자기 이익에 반하면 자식까지 버린다.
-뼛속까지 신자유주의의 능력주의, 경쟁주의를 학습한 청소년들에게는 보편적 윤리와 도덕이 없다. 이들에게는 자기 생존만이 윤리이자 도덕이다.
-‘선함’은 본질적으로 위선과 허영이다.
〈보통의 가족〉을 보고 우리가 논쟁할 수 있는 명제들의 대략적인 목록이다. 결이 비슷한 것들도 있지만 상호 모순적인 것들도 있다. 관객의 관점과 문제의식에 따라 이는 얼마든지 더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던지는 도발적인 물음들은 문제를 빙글빙글 돌리지 않고 직선적으로 나아간다. 관객은 매 순간 ‘나라면?’이라고 질문해봄으로써 멜로 장인이 선보이는 ‘기괴한 가족 멜로’의 현장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와 메시지가 마찬가지로 설경구 배우가 출연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2022)를 연싱시키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완성도와 몰입도가 더 높게 느껴졌다. 함께 보며 논쟁할 만한 시의성과 오락성을 고루 갖춘 영화다.
*영화 상영시간
10-03/16:00/롯데시네마 센텀시티 4관
10-04/09:00/CGV센텀시티 6관
10-07/09:00/CGV센텀시티 3관
-
-
- 디즈니 알라딘 총정리 #9
환몽씨네 디즈니 특집 1편!
영화 알라딘 (Aladdin, 1992) 분석** 영상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올해도 내년도 디즈니꺼!
환몽씨네 '디즈니 라이브 액션' 특집!'알라딘'과 '라이온 킹'에 대해 재밌게 떠들어 봤어요 :)
1편에서는 알라딘 실사화를 기념해,
환몽씨네가 26년만에 애니메이션 알라딘을 이야기합니다.- 승승장구하는 디즈니
- 디즈니의 실사 프로젝트 ‘디즈니 라이브 액션’
- 알라딘이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
- 알라딘이 중국인이라고?
- 디즈니의 캐릭터 설정
- 영화주제 : Be Yourself
- 실사화에서 기대되는 장면!영화 '알라딘'을 보고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2편 '라이온킹'도 많은 기대해주세요!
#알라딘 #aladin #영화알라딘
-
- 디즈니+ <형사록 시즌 2> 티저 예고편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강력계 형사 '택록'의 마지막 반격?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형사록 시즌2] 7월 5일, 오직 디즈니+에서!
-
- 영화 <정글 크루즈> 어드벤처 비하인드 영상
<캐리비안의 해적> 디즈니 제작! 이번엔 아마존이다!
미지의 세계 아마존에서 관광객들에게 최고의 스릴을 선사하는
재치 넘치는 크루즈 선장 프랭크(드웨인 존슨).
고대 아마존의 전설을 쫓아 영국에서 온 식물 탐험가 릴리 박사(에밀리 블런트)가
의학의 미래를 바꿀 치유의 나무를 찾는 여정에 함께 할 것을 제안하면서,
순탄치 않은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은 아름답지만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열대우림으로 함께 모험을 떠나고
수많은 역경과 초자연적인 힘을 마주하게 된다.
고대 나무에 얽힌 비밀이 드러날수록 릴리와 프랭크는 더욱더 커다란 위험에 처하고
인류의 운명도 위태로워지는데…
전설을 믿는다면 저주도 믿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