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3-11-20 20:34:31
집착병에 걸린 인물들의 허무한 결말
-<독전 2>(2023)
누군가를 무척 좋아하고 의지할 때가 있다. 나를 도와준 사람이거나 나에게 도움이 될 사람일 수도 있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좋아하는 마음은 그 마음의 크기만큼 진심을 다해 상대방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 사람에게 긍정적인 말을 듣고, 그 사람이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의 반응을 살핀다. 이런 구도는 사랑을 하는 연인, 직장 생활의 인간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서로에게 감정적인 접점이 있다면 서로 기대하고 의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적정한 선을 넘어가면 그것은 집착이 된다. 상대방의 대단한 점을 보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 정도라면 괜찮지만, 그를 대단한 사람으로 보고 오로지 자신만의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그것은 그 상대방에게 만으로 시선을 고정시킨다.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오로지 한 사람만 보고 가는 것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줄인다. 하지만 당사자에게 그런 위험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좁아진 시야는 자신에게 불행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광적인 집착을 보여주는 영화
영화 <독전 2>는 많은 인물들이 한 인물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이야기다. 사실 몇 년 전 개봉한 <독전> 1편 속의 인물들도 이선생이라는 미스터리 한 인물에 집착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선생이 누구인지라는 미스터리를 관객에게 던지면서 등장하는 어떤 인물도 이선생이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게 구성했었다. 마약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선생은 경찰에게는 소탕하고 싶은 갱단의 두목이고, 다른 범죄자들에게는 한 몫챙길 수 있는 기회를 줄 구세주와도 같은 존재다. 이번 2편에서는 전편의 인물들이 대부분 재등장하면서 이선생을 향한 집착이 엄청난 광기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건 1편과 마찬가지로 형사 원호(조진웅)와 락(오승훈)이다. 여기에 브라이언(차승원)이 다시 등장하고, 큰 칼(한효주)이 새롭게 소개되면서 영화에 긴장을 불어넣으려 애쓴다. 이 중심인물 네 명의 공통점은 모두 이선생을 찾는다는 것이다. 사실 1편은 형사 원호의 수사로 시작되어 이선생은 누군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가는 이야기다. 다양한 인물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섞이면서 벌어지는 난장 같은 상황들이 영화 끝까지 시선을 끌었고, 약간 모호하게 끝나는 결말부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의미에서 흥미롭게 느껴졌다.
이번 속편은 1편의 클라이맥스가 정리되고 꽤 시간이 흘러 보이는 마지막 결말 장면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다. 원호는 여전히 진짜 이선생을 찾고, 락과 브라이언 그리고 큰 칼까지 합류하면서 이선생을 찾는 모든 인물이 서로 속고 속이는 대결을 벌인다. 이 정도면 도대체 이선생이 뭐길래 그렇게 모든 인물들이 매달리는지 질문을 하게 된다. 전편에서는 집착이라는 느낌보다는 집요한 추적에 가까웠다. 하지만 속편으로 이어지면서 각 인물들이 모두 이선생에 너무 집착한다는 인상을 준다.
이선생이 그렇게 전지전능한 인물일까. 원호가 이선생을 잡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또 다른 인물 락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이선생을 찾는다. 반면에 이 영화의 빌런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이언과 큰 칼은 이선생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마약에 대한 사업권이나 부의 축적이라고 하기엔 그 동기가 너무 약하다. 게다가 여러 가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이선생을 찾으려 애를 쓰는 인물들은 마치 어린아이가 떼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썬생은 누구인가
영화는 진짜 이선생을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시킨다. 하지만 그에겐 특별한 무언가가 없었다. 영화는 그를 마치 특별한 인물인 것처럼 보여주려 하지만 그에겐 어떤 카리스마나 능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의 긴장이 가장 고조되어야 하는 부분에서 가장 긴장감이 떨어진다. 주요 인물인 락과 이선생의 대면은 분명 특별한 장면이겠지만 복수의 통쾌함이나 시원함을 느낄 수 없다. 이건 이선생을 추적하는 각 인물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각 인물들은 적당히 무능하고 과하게 집착한다.
<독전 2>가 가장 실패한 부분은 새로운 악당인 큰 칼의 이미지다. 1편의 진하림(김주혁)이나 보령(진서연) 같은 강렬한 캐릭터를 추가하려 투입했지만, 큰 칼을 연기한 한효주의 이미지와 잘 맞지 않고 그저 이선생에 집착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캐릭터로 소비되고 만다. 그는 브라이언이나 락, 원호를 위협하긴 하지만 크게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허무하게 퇴장하고 만다. 이선생과 직접적인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 빌런치고는 크게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이썬생은 실제로 많은 사람을 돕는다. 새로운 마약을 만드는데 돈과 사람을 지원하면서 자신의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자신의 실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이선생은 그를 궁금하고 추종하는 수많은 범죄자들을 양산했다. 그들은 이선생을 사랑했고 존경했다. 그 마음은 손에 잡히지 않는 이선생의 뒤를 따라가 집착의 모습으로 변했다. <독전 2>는 그렇게 집착하다 망가져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는 영화다.
영화는 1편에서 어느 정도 열어두었던 결말을 완전히 닫는다. 영화를 보고 나면 오히려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이선생에 집착하던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얻기 위해 그 수많은 희생을 했을까. 그들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말은 이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아무도 승리자가 되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뒷맛도 그렇게 좋지 않게 되어버렸다. 1편이 끝나고 나서 많은 살람들이 영화의 이야기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만들었고 여러 번 관람하면서 추가적인 흥행을 할 수 있었지만 이번 속편은 그렇지 못했다.
영화 <독전 2>는 1편의 박해영 감독 대신, 백종열 감독이 연출했다. 그는 1편을 보고 나서 채워지지 않은 이야기를 새롭게 채워 넣었지만 오히려 각 인물들을 모두 집착병에 걸린 사람들로 만들었다. 또한 실제 이선생을 공개하는 강수를 뒀지만 그마저도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극적인 긴장감도 전편에 비해 많이 떨어지면서 스타일리시한 영상만이 유일한 장점이 되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적정한 선을 넘는다. 이선생을 애타게 찾던 인물들은 광적인 집착을 보여주면서 전편에서 보여줬던 매력을 대부분 잃는다. 무엇보다 1편의 락 역을 맡은 류준열이 오승훈으로 교체되면서 배우가 만들어냈던 특유의 아우라가 많이 사라져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보이는 점도 영화의 몰입을 방해한다. 유일하게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점은 이 영화가 넷플릭스에 공개되었다는 점이다. 관객들의 반응이 좋지 않은 영화지만, 넷플릭스에 공개되어 큰 손실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1편의 성공을 생각하면 무척 아쉬운 결과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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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공감, 그리고 연대와 저항의 상징이 되기까지. 종이의 집: 신드롬이 된 드라마 (2020)
<종이의 집>은 어쩌면 지금까지 본 넷플릭스 드라마 중 손에 꼽는 작품이 될 것 같다. 나도 이 드라마에 빠져 이렇게 까지 공감하고, 열광하게 될 줄이야. <종이의 집 : 신드롬이 된 드라마>는 종이의 집의 성공 비결뿐만 아니라 그들의 땀과 열정, 뒤이어 일종의 '레지스탕스'의 아이콘이 된 그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처음 Parte 1을 접했을 때 느꼈던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여섯 도둑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특함과 특유의 긴장감이 보는 이를 꽉 쥐고 놓아주지 않는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언급한 <종이의 집>의 매력에 대해 알아보자.
- Parte 1. '공감'은 가장 큰 소통의 언어이자, 강력한 힘이다 -
<종이의 집>은 처음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작 드라마가 아니다. 스페인 단독으로 방영되는 드라마였지만, 생각보다 저조한 시청률에 Parte 2가 마지막임을, 배우들을 포함한 모든 제작진들이 예상했다고 한다. 그랬던 그들이 넷플릭스의 손을 잡게 되며 '로또'를 맞는 순간이 오게 된다. 예상보다 높은 시청률이 연이어 나오고, 현재는 전 세계 스트리밍 순위 2위에 빛나는 성과를 거둔 드라마가 바로 <종이의 집>이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가장 큰 역할은 바로 '등장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뻔하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렇게 서사가 매력적이고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들이 과연 있을까. 보편적으로 생각했을 때, 조폐국 그리고 스페인 은행을 터는 도둑과 이를 쫓는 경찰이 있을 때 우리는 과연 누구의 편이 될까? 망설일 필요 없이, 바로 경찰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이 도둑들을 열렬히 응원하게 된다. 이들에게는 우리와 다름없이 개개인의 사연이 있고, 인생이 있다. 이들의 '범행 계획'또한 보는 재미가 있지만, 여러 인물이 얽히면서 발생하는 감정들을 따라가는 것 또한 시청자들의 마음을 자극한다. 그 감정에 대해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 공감은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비록 스크린이라는 벽이 있지만, 이는 금세 허물어지고 누구보다도 가장 가까이, 진솔하게 소통하게 된다.
무엇보다 '스페인'이라는 국가의 특색이자 아이덴티티를 살린 것 또한 포인트이다. 정열과 사랑의 국가에 걸맞게, 여러 감정들 중 '사랑'이 가득한 드라마이다. 범죄물에 사랑이라니, 조금은 대조되는 조합이지만, 이렇기에 더욱 이들의 관계성이 돋보인다. 이는 인물 간의 사랑이기도 하고, 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사랑이기도 하다. 인물들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자. 예정되어 있던 사랑도 존재하지만,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누군가가 자신을 흔들어놓는 순간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우리는 이들의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바라보며 같이 마음 아파하고, 설레어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우리들의 사랑을 말하자면, 극 중 흔히 말하는 '민폐 캐릭터'또한 존재하고, 당최 걷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보는 이들에게 불안감과 공포를 안기는 인물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들도 미운 구석이 있을 뿐, 나름의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 Parte 2. 유연한 제작 과정,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 -
<종이의 집>은 대본을 미리 짜고 한꺼번에 촬영에 들어가는 방식이 아닌, 촬영을 함과 동시에 다음 각본을 짜는 방식으로 드라마를 이어간다. 그렇기에 좀 더 유연한 사고와 매 상황에 맞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선보인다. 이들의 제작 과정 또한 등장하는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오고 가는 그들 대화의 결과물이 이렇게 큰 사랑을 받게 될지,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건 바로 이들의 '시간 전개 방식'이다. 보통은 계획에서 행동의 옮기기까지의 시간 흐름대로 내용 전개가 이루어지는 반면, 이 드라마는 첫 화부터 사건 당일을 바로 보여준다. 범행 시작을 보여줌과 동시에 중간중간 그들이 아지트에서 했던 계획 동기와 과정을 보여주며 과거로 돌아가는 시점 또한 존재한다. 이렇게 두 시점이 동시에 흘러감을 보여주면서 <종이의 집>만의 차별화된 개연성을 보여주고 있다. '범죄'라는 장르에 맞게, 반전 또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특히 매 시즌의 마지막 장면은 놀라움의 연속.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가담과 희생은 서스펜스물로서의 강점을 충분히 보여준다.
- Parte 3. 이들이 주는 메시지 -
아마 이것이 <종이의 집>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이자, 긍정적인 변화일 것이다. 극 중 그들이 입는 붉은 점프슈트와 달리 가면, 이것은 이제 '저항'그리고 '연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내용 중간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시위 모습은 여성 인권, 자유를 위해 맞서는 사람들의 현재를 담아낸 실제 상황이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붉은색이 자주 등장함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저항군'이라는 그들의 투쟁에 걸맞은 색이다. 이에 사람들은 영향을 받아,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는 맞서나가기 위해, 빨간 점프슈트를 입고 달리 가면을 쓴 채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주제곡인 'Bella Ciao' 또한 파급력이 엄청난데, 실제로 세계 2차 대전 때 이탈리아 저항군이 사기를 높이기 위해 불렀던 노래이다. 제작진들도 자신들의 일종의 노동요였던 이 노래를 결국 메인 테마곡으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 노래는 변화의 불씨가 되었고, 75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은 평화를 외치며 Bella Ciao로 그 순간을 기념하고 있다.
<종이의 집>을 간단히 말하자면 공감과 사랑, 그리고 저항이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뀌었고, 사람들은 거리로 나가 자신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 드라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종이의 집>의 팬이라면 충분히 공감하고, 그렇기에 더 경이로운 다큐멘터리이다. 미디어 매체의 좋은 영향력이자, 본보기가 되는 작품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 본 콘텐츠는 브런치 JW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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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감정, 사랑일까 이기주의적 욕망일까
6★/10★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잘 나가는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일하는 료스케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는 류타. 둘은 게이라는 점을 빼고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다. 료스케는 좋은 집에 살고, 멋지고 세련된 옷을 입으며, 자신의 고민을 함께 나눌 게이 친구들이 있다. 반면 류타는 늘 돈에 쫓긴다. 생활비와 어머니 간병비를 벌 목적으로 다른 남성에게 몸을 팔기도 한다.
세대와 계급, 생활 양식 등 많은 것이 다른 둘. 그러나 친구의 소개로 수강생과 개인 운동 트레이너로 만난 둘은 서로에게 빠져들어 빠른 속도로 몸과 마음을 섞으며 조금씩 관계의 깊이를 더해 나간다. 료스케와 게이 친구들, 료스케‧류타의 베드신은 게이들이 우정을 나누고 사랑하는 방식을 현실감 있게 포착한다. 그 세계에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 금세 이입할 수 있을 만큼 게이 커뮤니티에 대한 영화의 묘사는 생동감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게이/퀴어 영화가 ‘아니다’. 영화 전반부에서 둘의 로맨스가 중점이었다면, 후반부는 어느 날 갑자기 홀로 남겨진 료스케가 류타의 어머니와 서로 의지하며 또 다른 가족을 형성하는 과정을 담는다. 료스케가 늘 화려한 옷을 입는 건 그 옷이 자신의 어릴 적 상처(게이에 대한 또래의 혐오, 어머니 상실)를 감춰주는 갑옷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류타와 류타 어머니와의 관계는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그 자체였다.
이 때문일까? 얼핏 감동적으로 보이는 이들 관계에서 료스케는 종종 선을 넘는 듯 보인다. 료스케가 류타에게 자신이 용돈을 줄 테니 성매매를 그만두고 내 곁에 남으라고 요구하는 장면, 혼자가 된 류타 어머니에게 함께 살자고 말하는 장면을 보자. 료스케는 분명 ‘진심’이다. 하지만 무엇을 향한 진심일까? 료스케가 두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진심일까? 혹시 료스케의 제안은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었다는 데 대한, 치유된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에 대한 진심은 아니었을까? 류타 모자에게 돈과 집을 제공하겠다는 료스케의 제안은 독립된 시민으로서 류타 모자가 갖는 자존감을 훼손할 가능성을 품는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모든 관계는 주고받는 호혜성에 토대를 둔다. 일방적인 증여는 호혜가 아닌 시혜이며, 이는 보통 서로 대등하지 않은 관계에서만 발생한다.
하지만 료스케는 거침이 없다. 그들이 자기 곁에 없을 때 다시 상처받은 상태로 되돌아갈까 두렵기 때문이다. 관점에 따라 이들의 관계가 감동을 자아낸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료스케가 두 사람을 자신의 이기주의적 욕망에 포섭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료스케는 ‘에고이스트(이기주의자)’다.
영화가 감동과 이기심이라는 두 결의 서사를 펼쳐내는 방식이 흥미롭다. 두 서사는 다른 서사를 압도하지 않은 채 내내 불편한 긴장을 유지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느 서사에도 승기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누군가를 향한 ‘사랑’이 ‘이기주의적 욕망의 표출’과 교묘히 섞여 있음을 보인다. 이외에도 게이 커뮤니티의 (돈을 매개한) 친밀성, 호혜와 시혜, 상실의 문제를 예측 불허한 방식으로 오고 가는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많다. 〈에고이스트〉가 던지는 생산적 질문은 숙고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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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은 미친 짓이다
*본 영화의 내용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달시’(제니퍼 로페즈)와 ‘톰’(조쉬 더하멜)의 결혼식 당일,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에 참석할 모두가 섬에 모인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이던 그때! 갑자기 들이닥친 해적으로 인해 결혼식장의 모두가 인질이 되고… ‘달시’와 ‘톰’은 무사히 혼인서약을 마치기 위해 목숨을 건 버진 로드를 걷게 되는데… 죽이든가, 죽든가! 가장 화X한 웨딩이 온다!사람들은 흔히들 결혼이 사랑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샷건 웨딩> 속 이 커플들도 마찬가지로 생각한 듯하다. 그런데 그 완성으로 가는 과정 중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 결혼식에서 일이 터진다. 그런데 이 일이 단순히 우연히 일어난 해프닝일까?
둘의 결혼식은 초반부터 삐걱댄다. 톰의 완벽해야 하는 결혼식은 불만 가득하고 달시는 자신의 자신이 바라던 결혼식이 아닌 것에 대해 계속해서 불편하다. 둘의 불만과 불안이 계속 쌓여가다 결혼식 날 아침이 밝는다. 갑자기 등장한 달시의 전애인, 션의 존재가 거슬리는 톰과 자신과 맞지 않는 전통에 자신을 끼워 맞추고 있는 달시는 결국 거스러미를 참지 못한다. 둘의 불만이 터져나가고 갈등으로 치닫는 순간 당사자 없는 결혼식에서는 납치 사건이 벌어진다.
결혼은 혼자가 아닌 둘이 하는 것이다. 또 결혼식 이후에는 동화처럼 엔딩이 나지 않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맞춰가며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펼쳐진다. <샷건 웨딩> 속에서는 생전 겪을 일 없던 하객 납치 사건이 둘에게 현실로 들이닥친다.
그들은 계획을 짜는 순간조차도 삐걱거린다. 톰의 완벽해야 하는 계획에 자꾸 달시가 태클을 건다. 그런데 달시의 일차원적이고 대책 없는 계획이 자꾸만 먹힌다. 톰 혼자 준비했던 완벽한 결혼식은 이제 없지만 둘이서 이 결혼식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둘이 유일하게 같은 게 있다면 납치당한 하객들을 지켜내야겠다는 마음이다. 그 마음 하나에서 시작하여 둘은 점점 서로에게 맞춰 나간다.
내가 재미있게 봤던 건 달시의 드레스였다. 톰의 집에서 대대로 물려 입던 이 드레스는 당연히 톰과 결혼하는 달시에게로 넘어간다. 하지만 달시는 마음에 들지 않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이 드레스에 억지로 자신의 몸을 맞추는 달시의 모습은 원하지 않는 결혼식의 형태에 자신을 맞춰나가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전쟁 같은 상황에서 달시의 드레스는 타의든 자의든 찢겨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에게 맞는 형태로 웨딩드레스를 개조해낸 달시의 모습은 해방적이기까지 하다. 결혼식 중 신부에게 빠질 수 없는 드레스가 전통과 억압을 상징했다면 이를 찢어내고 자신에게 맞게 만들어낸 최종의 드레스는 달시가 사랑을 위해 참아왔던 것을 터뜨리고 자신을 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결혼식 납치 사건은 어떻게 보면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 실전 결혼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갈등을 좀 더 익사이팅하고 블록버스터스럽게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각자를 맞춰나가지 않고 혼자 준비했던 결혼식은 당연히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 결혼은 혼자가 아닌 둘이 하는 것이니까. 반면 많은 면에서 다른 둘이 상황에 의해 서로에게 맞춰 나가면서 척척해내게 된다. 그리고 끝내 결혼식을 해낸다. 톰이 생각한 것처럼 완벽하지도 달시가 생각한 것처럼 둘만의 결혼식은 아니지만 불청객도 존재하지만 그들은 결혼식을 해낸다.
결혼식에서 벌어진 인질극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풀어낸 <샷건 웨딩>을 들춰보면 결혼 생활 그 자체이다. 결혼은 단순히 사랑의 결말부가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과 함께인 새로운 장을 여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샷건 웨딩>은 합을 맞춰 나가고 예전의 것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찢어버려야 하는 결혼이라는 삶을 잘 보여주는 영화였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샷건 웨딩> 시사회에서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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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아이만 잃어버린 게 아니다! <미씽>은 실종된 아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부부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가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을 짚고 넘어간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도덕과 윤리는 물론, 가족의 정, 뉴스 미디어의 지향점인 진실 보도 등이 바로 그것. 영화는 잃어버리고 있는 것조차 망각해 가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비추며, 우선적으로 복원해야 할 가치와 희망을 전한다.
아이가 실종된 지 3개월이 지났다. 수색도 하고 탐문 조사도 벌였지만, 아이의 행방은 묘연하다. 사랑하는 딸을 잃어버린 사오리(이시하라 사토미)는 희망을 부여잡고 남편 토요(아오키 무네타카)와 매일 전단을 뿌린다. 하지만 세상의 관심은 식어가고, 사오리는 악플과 점점 무관심해져가는 남편에 과민반응을 일으킨다. 그녀가 믿는 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줬던 지역 TV 뉴스 기자 사다(나카무라 토모야) 뿐이다. 한편, 높은 시청률을 원하는 방송국은 사다에게 좀 더 센 이야기를 가져오라 독촉하며, 실종된 아이와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지만,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사오리의 남동생 케이고(모리 유사쿠)와 인터뷰하라고 압박한다.
<미씽>은 실종 사건에 관련된 이들이 모두 합심해서 끝내 아이를 찾는 감동 어린 영화가 아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이 사건을 마주하는 이들의 민낯을 밀도 있게 보여준다. 연출을 맡은 요시다 케이스케 감독은 전작 <공백>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진실보다 현상에 치중하는 현대인들의 잘못된 시각을 꼬집는다.
대중의 표적은 사오리다. 그녀는 딸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을 항시 느끼고 있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보도되는 뉴스와 그에 따른 악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녀의 이런 행동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를 간 당일, 아이가 실종되었기 때문. 독박육아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다가 딱 하루 자유를 만끽했던 자신의 행동이 이 결과를 낳았다고 자책하는 그녀는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은 채 엄마의 책임을 물며, 마녀사냥을 일삼는 대중들을 증오한다. 아이러니 한 건 남편의 만류에도 악성 댓글을 일일이 확인하고 답글을 다는 것. 이유는 그렇게 해서라도 사람들이 딸의 실종 사건을 오랫동안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뉴스는 진실을 외면한 채 자극적인 이슈만 다루려고 한다. 사다는 최대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진실을 보도하려고 노력하지만, 회사의 압박에 두 손 두 발을 든다. 결국 사건 당시 정확한 알리바이도 없고, 거짓 진술을 했던 케이고를 인터뷰한다. 그러나 어렵게 따낸 인터뷰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한다. 시청자들의 도파민 분출 희생양이 된 케이고는 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하고, 결국 직장을 옮겨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피해를 만든 건 방송국 놈들이지만, 정작 피해를 당한 건 케이고인 셈. 이 사건은 미디어의 이면을 잘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처럼 영화는 뉴스, SNS 등 진실을 왜곡하고 시청률과 조회수에만 치중하는 미디어의 폐해를 보여준다. 특히 사다는 미와의 생일이 아님에도 생일 축하 장면을 촬영하고, 딸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사오리에게 눈물을 더 흘리라고 말하며 이를 카메라에 담는다. 그 자체로 섬뜩하다. 썩은 동아줄이라는 걸 알면서도 사오리는 어떻게든 딸을 찾고자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하지만,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지켜보는 남편은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이는 시쳇말로 그림이 되는 것을 연출을 통해 찍고, 이를 진실인 것처럼 소비하는 미디어 생태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결은 다르지만 SNS의 폐해를 고발한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의 <백설공주 살인사건>(2015), 진실의 실체가 없는 진실게임을 그린 손석구 주연의 <댓글부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미씽>은 사회 비판적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가족의 상실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오롯이 전한다.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며 이 비극의 사실성을 부여하는 건 이시하라 사토미의 몫. 출산 후 첫 영화 복귀작인 이번 작품에서 그녀는 제대로 망가진다. 피폐한 모습은 물론, 딸을 찾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점점 미쳐가는 여성이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는 엄마의 얼굴은 리얼리티를 더한다.
과거 ‘고멘 애교’를 보여줬을 때의 그녀를 생각하면 오산. 실제 엄마가 된 이후 보여주는 감정의 진폭은 꽤나 크다. 특히 중반부 경찰서에서의 오열 장면은 백미. 어쩌면 이 영화는 이시하라 사토미의 ‘그렇게 엄마가 된다’ 편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감독은 누군가의 고통이 곧 자신의 유희가 되는 상황 속에서도 조심스럽게 한 가닥 희망을 전한다. 후반부 딸을 잃어버리고, 남편, 남동생의 관계가 틀어진 사오리는 자신과 비슷한 실종 사건을 겪은 엄마를 위해 팔을 걷어붙인다. 동기는 딸을 찾기 위함이지만, 그 행동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잃어버렸던 중요 가치를 일깨워주고, 희망의 빛을 데려온다. 그 일 이후, 사오리는 자신 만큼이나 남편과 동생도 죄책감과 아픔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이들을 이해하며 어그러진 가족 관계를 바로 세우는 첫 단추를 채운다. 과연 사오리는 딸을 찾을 수 있을까? 마지막 무지개가 그 답을 대신한다.사진 제공: 2024 <missing> Film Partners
평점: 3.0 / 5.0
한줄평: 이시하라 사토미, 그렇게 엄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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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데 매력적이야 근데 이상해
즐겨 보는 영화들은 이렇다. 스토리가 뛰어나거나 영상미가 기막힌. 한 마디로 어느 한 면이라도 최소한의 완결성을 갖춘 작품을 보고자 한다. 그런 내게 <지옥의 화원>은 별종이다. '지상 최대의 여직원'을 가린다고 빌드업하다가 캐릭터 붕괴라고 느낄 만큼 생뚱맞게 끝내다니. 작년부터 영화를 보고서 왓챠 피디아에 별점을 기록 중인데, 말만 봐서는 0.5점이라도 던졌을 것 같다. 하지만 손가락은 3.5를 눌렀으니, 나 스스로도 의문에 답해야 했다. 이 영화가 왜?
*아래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작중 인물들을 통해 드러나고, 관람객은 그 의미를 찾고 연결하며 감상한다. '메시지'라고 해서 반드시 교훈 담긴 말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시청각을 화려하게 자극하는 영상미가 전부이기도 하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웃기기만 한 코미디도 있고 말이다. 이 영화의 카테고리는 후자에 가까운데 시트콤 같은 상황을 보며 왁! 하고 터지는 웃음이 아니었다. 어이없는 헛웃음이 끊길 듯 끊기지 않다가 영화가 끝난다.
좀 더 언질 하자면, 러닝타임 마지막 부분에서 헛웃음이 가장 많이 터진다. 굉장한 허무함과 함께. 나름 특색 있게 쌓아온 모래성을 제 손으로 무너뜨리며 사실은 이게 완성이라고 하는 느낌이었다. 애석하게도 완성된 모래성은 재미, 유쾌함, 감동, 여운, 그 무엇도 남기지 못했다. 완성 직전의 클리셰가 차라리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렇게까지 결말 관련 혹평을 던지는 건 관람객보다는 창작자로서의 마음이 담긴 탓이다.
작품을 보는 동안 관람객은 그 세계에 흠뻑 빠진다. 한 사람을 두 시간 동안 집중해서 본다고 생각하면 당연하다. 게다가 일방적으로 보고 듣기만 한다. 얼굴 표정이며 말, 행동까지 세세하게 보니까. 이쯤 되어 이 영화 내용과 접목시켜 보아야겠다.
영화에서 제시하는 세계관은 딱 하나다. 직장에서 일하는 여성 직원들의 싸움 세계. 그 사람들이라고 맨날 쌈박질하는 건 아니다. 일할 땐 일하고, 싸울 땐 싸운다. 본업과 부업 개념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회사에서 일하고 퇴근한 후에 사이드잡 하는 경우가 요즘엔 왕왕 있지 않은가. 독립된 공간으로 나누어 구분하지 않고, 한 곳(회사)에서 두 가지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회사들은 겸업을 허락해 주는지 피까지 흘려가며 쌈박질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 딱 한 사람은 계속 주시한다. 주인공인 나오코. 나오코를 포함한 두 명의 동료는 부업을 안 한다. 즉 어느 파벌에 들어가지도 않아서 회사에서 싸움할 일이 없다. 다만 싸움 자체에 무관심한 동료들과 달리 매번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흘끗 댄다. 왜 이렇게 관심이 많을까.
나오코의 회사는 파벌 셋으로 나뉜다. '광견' 사타케 파, '대괴수' 칸다 파, 그리고 '악마' 슈리 파. 꽤 치열한 싸움 끝에 슈리 파가 승리하고, 사타케 파와 칸다파는 자연스럽게 슈리 파 아래로 합쳐진다. 이러면 사이드잡을 잃는 건가 했을 무렵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신입 '호조 란'.
약자를 괴롭히는 걸 못 참고,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싸움에 별 관심 없는데 어느덧 슈리 파를 이기는 바람에 회사 내 질서를 정리한 인물이다. 나오코의 내레이션처럼 만화영화 같은 설정이다. 사실 영화의 모든 요소가 그렇다. 나오코의 내레이션으로 상황이 전개되는 것도 그렇고, 인물들의 우스꽝스럽지만 진지한 태도도 그렇고. 싸움을 제일 잘하는 란과 주인공 나오코가 친구가 된 것마저. 둘은 드라마 얘기를 하거나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며 쇼핑을 하는 등 지극히 '평범한' 회사 생활을 함께한다.
이제 또 하나의 변곡점. 다른 회사들의 수장을 이기면서 은근한 유명세를 떨치던 란. 이때 나오코가 란을 끌어들이기 위한 인질로 끌려간다. 게임으로 치면 보스몹이 나온 셈이다. 혼자 오라는 말을 착실히 따르며 란은 불구덩 속으로 자진해서 뛰어 들어갔다. 당연히 이길 것 같던 란은 주요 간부 4명 중 3명을 쓰러뜨리는 과정에서 무너지고 만다.
란은 일명 '히로인' 역할이 아니었던 건가. 그들은 회사의 다른 직원들에게 란의 패배를 알리라며 나오코를 묶은 사슬을 풀어준다. 그리고 이제 힘을 숨기던 주인공 나오코는 자신의 싸움 실력으로 직원들 전부를 무너뜨린다. 쓰러진 란을 대신한 복수라기엔 제 안위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싸움 잘하는 집안의 딸로 타고난 능력이 있던 나오코는 아주 평범한 회사원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어떤 싸움이건 끼지 않고 멀리서 관망했고.
애석한 건 란도 마찬가지다. 이 사람은 반대로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싸움으로 인정받길 원했는데 나오코의 압도적인 실력에 도망쳤다. 회사에서는 나오코의 의도대로 모든 공이 란에게 돌아갔다. 란이 없는 건 찝찝해도 그런대로 평화로운 생활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이번엔 나오코의 회사까지 찾아왔다. '지상 최대의 여직원'이라는 오니마루를 모셔오면서까지.
사타케, 칸다, 슈리 등 모든 직원들이 고전할 때 나오코가 싸움에 끼어든다. 이번에도 별 수 없이 제 힘을 발휘하며. 오니마루와의 경합은 만화영화의 끝판왕으로 치닫았다. 몸이 붕 뜨는 와이어 액션이나 에너지파 같은 CG를 동원해서. 결국 나오코의 승리로 모든 부업이 종결되는 듯했다.
그때 란이 돌아왔다. 핏빛으로 물든 유니폼을 입고서. 사라진 2주 동안 '최초 여직원'을 찾아가 한 수 배운다. 감독은 코미디 요소로 넣었겠지만, 수련 내용이 꽤나 시대착오적이다. 전화를 상냥하게 잘 받고, 커피 심부름을 잘하고, 복사기를 정확하고 빠르게 잘 쓰기.
사실 이런 요소는 틈틈이 보였다. 남성 직원이 등장하면 흐름이 조금 깨졌다. '지상 최대의 꽃미남'인 것 같은 효과를 넣는다거나 여직원들이 갑자기 탕비실을 바쁘게 정리하거나 시급한 와중에도 젤리 사놨으니 먹으라는 말에 걸음을 몇 번이나 멈춰 선다거나. 학원물을 성별만 바꿔서 그대로 오피스로 옮긴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구체적인 업무 내용은 나올 필요가 없지만, 완전히 잡무 위주로 돌아간다는 게 아쉬웠다.
이제 마지막. 수련에 수련을 거듭한 란과 나오코는 동등하게 싸움을 이어갔고, 결투는 옥상에서 끝이 났다. 란은 자신이 졌다고 생각했고 나오코에게는 무승부였다. 다시 예전처럼 밥 먹고 잘 지내자는 꽤 훈훈한 결말인 것 같았는데
남직원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뒤바뀐다. 여직원의 본분은 싸움이 아니라 잡무를 잘하는 것이라는 뜬금없는 설교를 시작하고, 란에게 사랑 고백을 던진다. 란은 그 말에 동화된다. 나오코가 걸어가는 뒷모습에 '완패'라는 단어로 끝.
별점 1.5점은 모두 이런 요소 때문이었다. 과장스럽고 우스운 상황은 코미디의 일부이니 괜찮았다. 서브 컬처에 대한 거부감도 없고, 오히려 다양한 형태의 영화가 나오는 게 좋은 현상이라고 느낀다. 그런데 맥락을 몇 번 끊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인물들의 모든 배경이나 노력을 '필요 없는 것'이라고 말하다니. 이건 창작자로서 지양해야 할 태도가 아닐까 싶었다. 기꺼이 내용에 몰입하며 따라왔을 관객들에게 왠지 모를 배신감을 안겨주는 플롯이니까.
남직원과 여직원 사이의 위계를 슬쩍 내비치려는 의도였으면 또 모르겠다. 학원물이나 소년만화에서 흔히 보이는 설정을 성별 바꾼 채로 회사 배경에 옮긴 과정에서 조금 더 심도 있는 고려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모쪼록 실험적인 시도로도 영화의 퀄리티를 높이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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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이토록 뚝심 있고 암울하며 끈적한 조폭 영화라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감독] 김창훈 KIM Chang-hoon
출연] Xa-bin HONG 홍사빈 Joong-ki SONG 송중기 Hyoung-seo KIM 김형서
KOREA|2023|124 min|DCP|Color|Special Premiere
시놉시스
명완시에 나고 자란 18세 고등학생 '연규'(홍사빈). 중국집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그의 꿈은 엄마 '모경'(박보경) 함께 네덜란드로 이민을 가는 것. 하지만 현실을 녹록지 않다. 새아빠 '정덕'(유성주)의 딸 '하얀'(김형서)을 도와주려다 일진과의 싸움에 휘말리고, 졸지에 합의금 300만 원을 토해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도움의 손길이 등장한다. 마찬가지로 명완시를 떠나 본 적 없는 '치건(송중기)'이 선뜻 300만 원을 준 것. 이를 계기로 연규는 치건처럼 명완시에서 살아남으려 한다. 치건이 중간 보스인 조폭 조직에 합류해 이것저것 일을 배우는 연규. 그러나 연규가 치건에게 의지하면 의지할수록, 치건이 연규를 신뢰하면 신뢰할수록 그들에게는 점점 더 위험한 일들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갱스터 영화의 사회적 맥락
갱스터 영화는 필연적으로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영화다. 지나치게 남성적, 마초적이라고 비판받고, 높은 수위 때문에 불쾌하다는 지적도 피하지 못한다. 그러나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폭력성은 갱스터 영화에 남성 판타지 이상의 사회적 의의가 깃드는 힘이기도 하다.
미국에서는 갱스터 영화의 전성기가 두 차례 있었다. 금주법이 시행된 대공황 시기,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사회가 혼란했던 70년대다. 갱스터 영화의 폭력성과 선정성은 당대의 사회 구조적 불안을 보여주는 상징이자, 비정상적인 시스템 하에서 성공하고 싶은 욕구를 반영한 몸짓인 셈이다. 한편으로는 그 폭력성과 선정성을 스크린 안으로 제한하면서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는 기제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제76회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 섹션에 초청된 <화란>은 장르의 본분을 충실히 해낸 수작이다. 신인 감독 김창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은 마지막까지 톤을 유지하는 뚝심, 달라붙은 껌처럼 찐득한 장르적 쾌락이 돋보인다. 조폭의 가장 말단에 위치한 한 고등학생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한국 조폭 영화의 익숙한 틀을 깨부수기 때문이다.
영화의 전부인 오프닝
사실 <화란>은 오프닝이 전부인 영화다. 학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남학생 일진 무리. 연규가 그들에게 다가간다. 무리 중 한 명을 붙잡더니 돌덩이로 머리를 내리친다. 그러고는 돌덩이를 내려놓는다. 이때 운동장에 고여 있던 물덩이에 피 묻은 돌이 떨어지고,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사이 흙탕물이 된 물덩이 표면에 제목 <화란>이 나타난다.
아무 맥락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마주한 오프닝은 충격적이다. 예상치 못하게 폭력적인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 물론 영화는 그 직후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규연은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남매 하얀을 돕기 위해 폭력을 행사했다. 그녀가 학교 내 일진이 여자 속옷을 거래하는 일에 휘말려서 협박당하고 있었기 때문.
대신 충격만큼 <화란>의 주제는 간명히 드러난다. 고요한 물덩이가 피로 물들고 파동 치기 시작한 이상, 흙탕물을 되돌릴 수 없다고. 즉, 폭력의 굴레에 발을 내딛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고. 실제로 영화는 현실 속 온갖 폭력으로 가득하다. 연규네 가족은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에 시달린다. 불법 사채업자 치건은 오토바이 절도 사업을 병행하고, 정치인 뒤를 봐주는 조폭이다. 심지어 사회적 혐오와 책임회피 같은 이슈도 끼어들어 있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이들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일절 하지 않는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를 감싸 안으려고 하지 않는다. 연규도, 치건도, 하얀도, 새아빠도 모두 폭력이 잘못된 것인 줄 안다. 심지어 부패 정치인 '정의석'(서동갑)도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영화는 더 냉혹하다. "열심히 공부해라"라는 말이 빈말로 느껴지는 암울한 사회상과 폭력의 굴레를 고발하겠다는 의지도 강렬하다.
갱스터인 척하는 멜로드라마
악의 굴레를 멜로드라마로 바꿔서 보여주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를 지닌 두 남자의 브로맨스 덕분에 폭력의 의미와 역할이 더 잘 전해진다. 연규는 아버지가 없다. 친아빠는 어릴 적 자기를 버리고 떠났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엄마는 새아빠와 결혼했다. 하지만 새아빠는 술만 마시면 연규와 엄마를 두들겨 팬다. 하얀이 말려야 간신히 말을 들을 정도다.
자연히 연규에게는 머리를 다친 일진에게 줄 합의금 300만 원을 마련할 재주가 없다. 중국집 배달 아르바이트로는 택도 없다. 그런 그에게 치건이 나타난다. 연규에게 홀연히 300만 원을 선물하더니 결코 자기를 찾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폭력에 시달리던 연규는 끝내 치건을 찾아간다. 어떤 힘이든 있어야 맞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런 그를 보면서 치건은 망설이다 못해 자기만의 생존 방식을 하나 둘 알려준다. 그 역시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가정폭력 피해자였으므로. 폭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과 그럴 수 없는 일. 더 나아가 손가락 하나, 손톱 한쪽으로 책임지는 방법에 대해서도. 그렇게 처한 상황도 성격도 다르지만 서로의 상처를 알아본 두 사람은 형과 동생, 가족이 된다. 이 과정은 마치 한 편의 멜로 같다.
연규와 치건의 관계는 뻔해 보이기도 한다. 절망에 빠진 주인공에게 의지할 대상이 홀연히 나타난다. 주인공은 그를 닮고 그와 함께 하기 위해서 자기에게 맞지 않는 길을 걷는다. 여느 갱스터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관계다. <신세계> 속 이자성과 정청,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속 재호와 현수 관계를 자연히 떠올릴 순간도 스쳐 지나간다.
'화란' 속에 '화란'이 있는가
하지만 연규와 치건 사이에는 낚시찌에 걸린 물고기 마냥 애매한 대목이 있다. 그들의 관계가 특별한 이유다. 서로에게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같은 존재이기 때문. 치건은 연규가 말하지 않아도 그의 아픔을 알아본다. 그래서 그가 자기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절망에 빠진 그를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
연규도 치건의 삶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안다. 물론 폭력의 달콤함에 잠시 즐기기도 한다. 그러나 큰 형님 '중범'(김종수)의 살인 지시에 불복할 만큼의 사리 분별은 한다. 이처럼 원치 않지만 자기 모습을 발견한 형과 잘못을 알지만 형이 되고 싶은 동생. 영화는 쌍방이 빚어내는 애매한 긴장감을 극한으로 몰고 가서 터뜨린다. <화란>의 멜로가 다른 갱스터 영화 속 브로맨스와 차별화되는 이유다.
그 중심에는 제목이 있다. '화란'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재앙과 난리를 뜻하는 말이자 네덜란드의 한자어다. 이때 전자는 현실의 유의어다. 연규와 치건이 사는 세상은 그 자체로 지옥이니까. 후자는 희망의 유의어다.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를 데리고 네덜란드로 이민을 가는 게 연규의 꿈이니까.
두 형제 사이의 긴장감은 두 번째 화란의 유무에서 비롯된다. 연규에게 화란은 두 가지 의미이지만, 치건에게 화란의 의미는 하나뿐이다. 연규의 금속 보관함이 비상금과 네덜란드 여행 가이드북으로 꽉 차 있는 반면, 치건의 나무 보관함은 끝내 비어있듯이. 이 차이가 둘의 말로를 갈라놓는다. 동생은 화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울 의지가 있지만, 형에게는 그럴 화란이 없기 때문. 이는 영어 제목이 <Hopeless(희망이 없는)>인 이유다.
한국 영화의 클리셰를 거부하다
이러한 멜로드라마는 <화란>이 한국 조폭 영화의 틀을 탈피하는 원동력이 된다. 사실 배경은 유사하다. 한국 조폭 영화는 주로 재개발 지역에서 사건이 발생한다. <비열한 거리>, <강남 1970>, 심지어 1달 전쯤 개봉한 <보호자>까지도. 조폭은 철거민을 밀어내는 역할을 맡는다. 이는 고도의 압축 성장을 이뤄낸 한국 사회의 집단적 욕망을 가장 잘 반영하는 설정이라 할 수 있다.
조폭 영화 속 신축 부동산은 중산층으로 발돋움하려는 평범한 서민의 욕망을 보여준다. 이는 장르는 달라도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궤를 같이 하는 지점이다. 조폭 또한 부동산 재개발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조직 내외적으로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킬 수 있다. 그렇기에 한국 조폭 영화는 정치인, 기업인, 조폭의 삼각관계를 주로 반복한다. 조폭인지 정치인인지 분간하는 게 의미 없는 <아수라> 속 박성배 시장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 삼각관계에는 올드하다는 이미지와 클리세 범벅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인 감독은 과감한 시도를 한다. 정치인, 기업인, 조폭이 아닌 조폭의 말단, 막내에게 집중한다. 치건의 큰 형님은 재개발 사업 이권을 두고 국회의원 선거를 주무르려 한다. 그러나 연규에게 이는 중요한 일이 아니다. 윗사람이 어떤 이익을 두고 싸우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조폭 영화에 담긴 새 세대의 현실
대신 영화는 새로운 세대의 고민에 집중한다. 치건은 연규에게 묻는다. "언제 여기 왔어?" 연규가 답한다. "태어날 때부터요." 이는 단순히 명완시에 언제 왔는지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언제부터 폭력의 굴레에 빠졌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린 연규 입장에서는 답이 어렵지 않은 질문이다.
이 문답의 연장선상에서 영화는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성년을 앞둔 고등학생이 이미 존재한 카르텔, 폭력의 굴레를 어떻게 버텨내는지, 책임 지고 빠져나갈 방법은 있는지. 이미 자리 잡힌 사회 구조, 상승할 희망조차 찾기 힘든 시스템 안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한다. 이는 <화란>의 분위기가 여느 영화보다도 암울하고 처절한 이유다.
그렇다고 <화란>은 그저 냉혹한 현실로 이야기를 끝맺지 않는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 한 가닥 응원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 치건과 헤어진 후 집에 돌아온 연규는 새아빠에게 맞아 죽은 엄마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는 새아빠에게 복수하는 대신 하얀과 함께 집을 나온다. 다른 도시로 떠난다. 자기 손으로 폭력을 거부하고, 굴레를 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화란>은 고여 버린 장르에 새 숨결을 불어넣는 데 성공한다.
물론 마지막 장면이 마냥 희망적이지는 않다. 과연 연규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를 완전히 떠날 수 있을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두 주인공의 표정도 홀가분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그들이 새 출발을 알린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화란>은 회의감을 떨치지는 못해도, 이제 막 성년이 될 두 주인공에게 마지막 응원은 보내려고 노력한다.
좋고 싫은 이유가 같다
분명히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다. 15세 관람가치고 잔인한 장면이 꽤 많다. 완성도 문제도 있다. 여기저기 생략된 지점이 많다 보니 뒤로 갈수록 영화가 버거워한다. 특히 조직 상부에서의 의사결정과 음모, 하부 조직원과의 감정선과 흐름이 매끄럽지 않다. 하얀처럼 점점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캐릭터도 생긴다. 정교한 스토리텔링 대신 배우들의 연기력과 분위기에 기대기 때문. 서사의 빈 공간을 유추해야 하는 불친절한 작품인 셈이다.
다만 역설적으로 좋아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인 영화이기도 하다. 반지하방의 습기처럼 답답하고, 운동화에 달라붙은 껌처럼 찐득한 분위기는 근래 한국 영화에서 맛보기 어려운 개성이다. 도를 넘는 듯한 잔혹함은 그 분위기와 현실을 강조한다. 그 덕분에 송중기의 새로운 모습, 홍사빈과 김형서라는 신인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더 나아가 웃음을 단 한순간도 허용하지 않는 뚝심까지 고려하면 <화란>은 근래 한국 영화 중, 특히 갱스터(조폭) 영화 중 보기 드문 수작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들짐승처럼 맹목적이고 폭력적이며 진득한 갱스터 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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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화 서울의 봄 - 이 영화에 담긴 감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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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레빗구미입니다. 오늘은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이 영화는 1212 사태를 배경으로 한, 역사적인 사건을 극화한 작품입니다. ?
? 영화는 전두광과 이태신이라는 두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감정의 격동을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전두광의 탐욕과 이태신의 분노, 그리고 국민의 허탈감까지, 이 영화는 다양한 감정을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 황정민과 정우성의 연기는 각각의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군사반란과 그로 인한 국민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 이 영화가 갖는 감정적 가치를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서울의 봄'을 꼭 관람해보세요. 감독 김성수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여러분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입니다.
?️ '서울의 봄'에 담긴 감정들을 직접 경험해보세요. 영화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저희 채널을 구독하고 다음 리뷰를 기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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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니언즈2> 2차 예고편
ll ᐕ)) 벨로!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유! ☀ #미니언즈2 2022년 7월 27일 드디어 개봉 확정! 귀여운 미니언들 컴백 준비 완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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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드라큘라 2021> 예고편
세실리아와 마르틴 모자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발생 사흘째, 그녀는 혼자 아들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실마리조차 없다. 그러던 중 최근 3일간 발생한 의문의 살인 사건들에 자신 그리고 미지의 존재가 연관된 것을 느끼게 된다. 결국 살육의 주범을 찾던 그녀 앞에 상상을 초월한 거대한 태초의 악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