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Hyun2023-11-19 10:26:42
공백을 채우면 나아질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
영화 '독전2' 리뷰
※ '독전' 1, 2편 스포일러가 담겨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빈틈없이 꽉 채워나가는 플롯이 좋지만, 때로는 공백을 두는 게 오히려 나아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독전' 제작사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욕을 부렸다. 1편에 남겨둔 스토리의 공백을 채우면 더 근사할 것이라는 믿음에 앞서 2편을 꺼내보였지만 안 하느니만 못한 그림이 되어버렸다.
'독전'은 아시아 최대 마약 조직의 보스이자 실체 없는 인물 '이선생'을 쫓는 형사 조원호(조진웅)와 이를 돕는 조직원 서영락(류준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독전'이 5년 전 개봉해 520여 만 명 관객을 동원했던 이유는 단순히 범죄조직을 소탕하는 게 아닌, 영어제목에 걸맞게 '믿음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며 홀로 싸워나가는' 구성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또 출연진들의 물 오른 연기력과 떼깔이 좋은 영상미, 음악 구성도 눈도장을 받았다.
이렇게 잘 마무리된 '독전'인데 2편으로 컴백했다. 이미 끝맺음을 맺었는데 새롭게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으나, 제작사인 용필름은 1편 스토리 중 용산역에서 펼쳐진 지독한 혈투 이후 노르웨이에서 원호와 영락이 재회하기까지 30일 간 사이 이야기를 채우는 '미드퀄' 형식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변화도 생겼다. 1편에서 서영락과 보령 역으로 존재감을 뽐냈던 류준열, 진서연이 하차하게 됐고, 이 자리를 오승훈, 한효주가 채웠다. 오승훈은 서영락 역으로, 한효주는 새로운 빌런 섭소천 역을 맡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독전2'는 '독전'이 깔아 두었던 것들을 모조리 흩트려놨다. 2편으로 나오는 만큼, 전편과는 다른 차별점 혹은 개성이 있어야 하지만 시리즈로서 연속성을 이어가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독전2'는 1편과는 동떨어진 느낌에 서사마저 따로 노는 느낌이 강했다.
리뷰 풀버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세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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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원작 퀴어 영화 上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날씨가 춥다 보니 실내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이럴 때일수록 집에 꼭 틀어박혀 재밌는 영화도 보고,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도 읽으면 그게 행복이겠죠 ?
그런데 도대체 어떤 책을 읽을까, 어떤 영화를 볼까 고민하셨던 분들 모두모두 모이세요!
그 고민들, 씨네랩이 한꺼번에 몽땅!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
오늘은 저희가 재미있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퀴어 영화들을 소개해 드리려고 하거든요!
사랑스러운 고등학생들의 연애와 고민을 담아낸 하이틴 소설부터,
죽지도 늙지도 않는 신비로운 인물 '올란도'의 삶을 담아낸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까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으니 힘차게 시작해 볼까요 ٩( ᐛ )و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8)
Call Me By Your Name
ⓒ 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1983년 이탈리아, 열 일곱 소년 엘리오는 아름다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족 별장에서 여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어느 오후, 스물 넷 청년 올리버가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찾아오면서 모든 날들이
특별해지는데... 엘리오의 처음이자 올리버의 전부가 된 그 해, 여름보다 뜨거웠던 사랑이 펼쳐진다.
Cine Pick!
'첫사랑의 마스터피스'라는 칭호를 얻기도 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아이 엠 러브>(2009)와 <비거 스플래쉬>(2015)를 잇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욕망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에요. 제목부터 낭만적인 이 영화는 국내에서는 《그 해, 여름 손님》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기도 한 안드레 애치먼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요. 2007년 해외 출간 당시 람다 문학상 게이 소설 부문에서 수상하는 등 세계 언론의 극찬을 받았던 작품으로, 출간 10년 뒤에 영화로 재탄생되며 제 90회 미국 아카데미상 각색상 수상을 포함한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음악상(<Mystery of Love>)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는 등 다시 한 번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 예스24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여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달콤쌉쌀한 로맨스!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과 책을 함께 만나본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
아가씨 (2016)
The Handmaiden
ⓒ 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후견인 이모부의 엄격한 보호 아래 살아가는 귀족 아가씨 히데코. 그녀에게 백작이 추천한 새로운 하녀가 찾아온다. 매일 이모부의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이 일상의 전부인 외로운 아가씨는 순박해 보이는 하녀에게 조금씩 의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하녀의 정체는 유명한 여도둑의 딸로, 장물아비 손에서 자란 소매치기 고아 소녀 숙희.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될 아가씨를 유혹하여 돈을 가로채겠다는 사기꾼 백작의 제안을 받고 아가씨가 백작을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하녀가 된 것. 드디어 백작이 등장하고, 백작과 숙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가씨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하는데…
Cine Pick!
<아가씨>는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두터운 팬층을 보유 중인 박찬욱 감독의 10번째 장편 영화입니다. 원작 소설은 영국의 여성 작가 세라 워터스의 역사 스릴러 소설인 《핑거스미스》로 알려져 있는데요, 스릴러 소설로는 처음으로 부커상 후보에 올라 화제가 되었던 작품으로 빅토리아 시대를 무대로 하여 부유한 상속녀 '모드'와 그의 하녀 '수'의 미묘한 관계, 런던 뒷골목과 상류사회의 대비, 음모와 사랑, 배신까지 리얼하게 묘사한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 예스24
주연배우인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배우의 리얼한 연기가 돋보이며, 아름답고 섬세하게 구현된 세트와 미술 전반은 칸 영화제에서도 인정받아 류성희 미술감독에게 미술 부문 스탭으로서는 최초로 '가장 뛰어난 기술적 성취를 보여준 작품의 아티스트에게 수상하는 상'인 벌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기도 했습니다. 영화화 과정에서 빅토리아 시대를 일제 강점기로 각색하여 색다른 재미가 있다고 하니, 함께 감상하면 재미가 두 배겠어요!
러브, 사이먼 (2018)
Love, Simon
ⓒ 다음 영화
시놉시스
사이먼은 평범한 삶을 사는 고등학생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 다만, 자신이 게이인 걸 아무도 모른다는 것뿐. 남들과 다를 바가 없지만 게이라는 이유로 남들이 자신을 다르게 볼까 마음 한 켠에 고민을 안고 다닌다. 게이임을 숨기고 학교 생활을 이어가던 사이먼은 교내 게시판을 통해 학교에 커밍아웃하지 않은 게이가 또 있음을 알게 된다. 사이먼은 익명의 학생 블루에게 메일을 보내 자신도 게이임을 처음으로 밝힌다. 사이먼은 블루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진다. 교내 수 많은 남학생 중 블루는 누구일까?
Cine Pick!
<러브, 사이먼>은 발간 즉시 큰 인기를 끌었던 베키 앨버탤리의 영 어덜트 장편 소설 《Simon vs. The Homo Sapiens Agenda》를 원작으로 하는 하이틴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자 퀴어영화입니다. 국내에서는 《첫사랑은 블루》라는 제목의 청소년용 도서로 발간되었으며, 십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심리학자였던 작가를 단숨에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습니다. 작가는 심리 상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성 정체성을 지닌 어린이들을 위한 지원팀 공동 대표를 7년간 맡아 오기도 했다고 해요.
ⓒ 예스24
영화는 북미 개봉 당시 평단의 호평과 흥행을 동시에 이끌어 낸 작품으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만든 첫 퀴어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가볍고 통통 튀는 하이틴 로맨스의 매력을 유지하면서도, 성소수자 학생이 겪게 되는 심적 고난을 깊이 있게 다루어 관객으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사이먼 스피어 역은 2013년에 킹 오브 썸머로 영화 데뷔 후 2015년 작 쥬라기 월드에서 이름을 알린 닉 로빈슨이 맡아 자연스러운 연기와 풋풋한 매력으로 눈길을 끌었으며, 사이먼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친구들 및 주변 인물들은 대부분 신예 배우들이 맡아 신선하고 귀여운 연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OST가 좋은 영화로도 유명한데요, Khalid, The 1975, Troye Sivan 등이 참여한 사운드 트랙을 감상하는 재미도 크겠습니다.
올란도 (1994)
Orlando
ⓒ 다음 영화
시놉시스
여성보다 더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젊은 귀족 올란도는 만찬회장에서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시를 낭송한다. 여왕은 그에게 저택을 하사하고 영원히 죽지도 늙지도 말라는 말을 남기는데, 과연 여왕의 말대로 올란도는 400년을 살아 남성과 여성 사이를 오가는 인간이 된다. 여왕이 죽은 후 영국 주재 러시아 대사의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갑자기 그녀가 고국으로 돌아가버리자 상심한 올란도는 1주일 동안 잠에 빠지고, 깨어난 후에는 시를 쓰며 마음을 달랜다. 얼마 후 터키 대사가 되어 영국을 떠난 올란도는 그곳에서 일어난 전쟁에 휘말리자 다시 긴 잠에 빠지게 되고 깨어나보니 자신의 성이 여자로 바뀌었음을 알게 되는데...
Cine Pick!
여성 감독 샐리 포터가 감독과 각본을 맡은 영화 <올란도>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모더니즘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어요. 소설은 성별을 오가며 400년을 살아간 '그'이자 '그녀'였던 올란도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유머러스한 문체로 젠더의 허구성을 그려낸 버지나아 울프의 숨겨진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양성성을 지닌 매력적인 인물 올란도의 모델은 당시 울프의 연인었으며, 이후로도 오랫동안 가깝게 지냈던 여성 작가 비타 색빌웨스트였다고 해요. 비타가 작품을 위해 직접 분장을 하고 찍은 사진들이 책 속에 사료 형식으로 수록되어 있었고, 비타의 아들이 소설에 대해 "문학사상 가장 길고 매혹적인 연서"라는 평을 남겼다는 점 등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 더욱 흥미롭습니다.
ⓒ 예스24
남성과 여성을 넘나들며 늙지도 죽지도 않는 신비로운 인물 올란도를 연기한 배우는 바로 틸다 스윈튼입니다. 어쩜 이렇게 찰떡같은 캐스팅이 다 있나 싶죠! 다양한 캐릭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 내는 틸다 스윈튼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역할이라는 데 모두들 동의하실 거에요. 소년이었다가 남자로, 또 다시 여자로. 긴 세월의 삶 속에서 느끼는 고독과 남성이자 여성으로서 세상을 체화해내는 틸다 스윈튼의 연기가 일품인 영화입니다. 여성으로서의 고난을 보여주며 성별의 경계를 모호화하는 장치가 영화 전반에 걸쳐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 문학과 영화에 관심이 있는 분에게도 추천드리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의상과 소품을 감상하는 재미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캐롤 (2016)
Carol
ⓒ 네이버 영화
시놉시스
1950년대 뉴욕, 맨해튼 백화점 점원인 테레즈와 손님으로 찾아온 캐롤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거부할 수 없는 강한 끌림을 느낀다. 하나뿐인 딸을 두고 이혼 소송 중인 캐롤과 헌신적인 남자친구가 있지만 확신이 없던 테레즈, 각자의 상황을 잊을 만큼 통제할 수 없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감정의 혼란 속에서 둘은 확신하게 된다. 인생의 마지막에, 그리고 처음으로 찾아온 진짜 사랑임을…
Cine Pick!
영화 <캐롤>의 원작 소설은 범죄 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자전적 소설이자 유일한 로맨스 소설인 《소금의 값》입니다. 하이스미스는 《재능 있는 리플리》를 통해 이름을 널리 알린 작가인데요, 리플리 시리즈는 영화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져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었지요. 《소금의 값》은 작가가 생활고에 시달렸던 시절에는 맨해튼의 대형 백화점에서 인형 판매 사원으로 일을 했었는데, 당시에 딸의 선물을 사러 온 모피 코트를 걸친 금발 여성에게 매혹되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했다고 해요. 그러나 동성애에 대한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와 사생활, 작가로서의 정체성 고착이 염려되어 다른 필명으로 책을 냈던 것이 100만 부가 팔려나가 그녀에게 큰 성공을 안겨 주었고, 40년이 지난 후에야 《캐롤》을 제목으로 재출간하며 자신이 저자였다는 사실을 처음 밝혔습니다.
ⓒ 예스24
영화 <캐롤>은 겨울 했을 때 많이들 떠올리는 영화이기도 해요. 1950년대의 추운 맨해튼을 배경으로 피어나는 고요하면서도 뜨거운 사랑 영화이기 때문이겠지요. 캐롤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사랑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된 인물인 테레즈는 상대역인 케이트 블란쳇의 오랜 팬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던 루니 마라가 맡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영화 내에서도 밖에서도 빛나는 두 사람의 케미가 영화 팬들 사이에서 화제이기도 했지요.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소중한 사람과 함께 즐겨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오늘 씨네랩이 소개해드리고 싶었던 영화는 여기까지입니다.
미처 보여드리지 못했던 다른 작품들은 다음 편에서 보여드릴 테니 기대해 주세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랄게요 :)
씨네랩 에디터 Y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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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조커가 된 것일까? 사회가 만든 것일까?
사실 다크나이크를 보지 않았기에 조커라는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영화 <조커>를 보는 것이 많이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커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기에 무리가 없었던 한 편의 다큐와 같았던 작품이었다.
영화 <조커> 시놉시스
“내 인생이 비극인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
이제껏 본 적 없는 진짜 ‘조커’를 만나라!고담시의 광대 아서 플렉은 코미디언을 꿈꾸는 남자. 하지만 모두가 미쳐가는 코미디 같은 세상에서 맨 정신으로는 그가 설 자리가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조커>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
스펙타클보다는 한 편의 다큐같았던 작품
매력적인 악당 조커. 악당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어서 솔직히 굉장히 스펙타클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에 가까웠다.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이 어째서 사회적인 제도라는 틀 속에서 악당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조커라는 인물 자체에 궁금증이 많았던 사람들이라면 분명 좋아할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다보니 집중이 잘 됐던 것은 사실이나 단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설명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일일이 다 설명을 해주다보니 굳이..? 이런 감정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특히, 소피와의 관계가 플렉의 환상이었다는 점은 소피의 표정과 태도를 통해서도 바로 알 수 있었음에도 구디 화면에서 소피를 지우는 방식으로 아주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서 나름 반전이었는데 그 효과가 상쇄하는 느낌이어서 안타까웠다.
결국 개인의 탓인가?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영화는 전반적으로 두 가지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문제 혹은 사회 구조의 문제 둘 중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면서 영화를 봤던 것 같다. 물론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 경계를 계속 생각하게 만들엇던 작품이었다.
영화는 고담시의 상황이 굉장히 좋지 않다는 것을 뉴스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그리고 광대가 되어 일을 하지만 불량배드이 판치는 고담시에서 아서 플렉은 그들에게 된통 당하고 만다. 이렇듯 초반에는 사회구조적으로 문제가 많은 고담시를 조명하면서 구조의 영향에 무게를 실어주는 듯했다. 그러나 영화가 진행이 될수록 아서 플렉이 앓고 있는 정신질환과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받았던 어린시절을 보여주면서 고담시의 구조적 문제는 배경으로 밀려나고 초점을 개인의 트라우마로 옮겨간다. 그렇게 개인의 트라우마로 조커가 된 아서 플렉이 시위가 판치는 고담시에서 영웅으로 추앙되면서 다시 사회 구조 속으로 편입된다.
뮤지컬 넘버의 차용
조커를 보다가 눈이 한 순간에 커졌던 장면은 지하철에서 3명의 술주정뱅이들이 아서 플렉을 향해 ‘어릿광대를 보내주오’ 뮤지컬 넘버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어릿광대를 보내주오’는 사실 내요이 남을 조롱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니다. 뮤지컬 <Little night music>에서 여주인공이 20년 전 배우로서의 경력을 위해 헤어졌던 남자 주인공과 재회하면서 다시 사랑을 이어가고 싶지만 벽에 부딪히면서 부르는 넘버다. 자신을 조롱하면서도 상대방에게 의지하고 싶은 감정이 낭낭한 이 넘버가 영화 조커에서 남을 조롱할 때 가장 먼저 쓰인다.
이 역설에 귀가 트였고, 아서 플렉이 조커 분장을 한 채 그들의 노래를 따라부를 때는 뮤지컬 속 여자주인공처럼 자조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뮤지컬에서는 현시에 없는 어릿광대라는 존재가 이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라지만 영화 조커에서는 아서 플렉이 실제 광대가 되면서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할 주체가 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조커>는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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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과 악이라는 종이 한 장에 불어오는 바람
반야심경 마지막 구절에 등장하는 '사바하'는 불교에서 '원만하게 이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주문의 마지막에 붙인다는 특징으로 보자면 기독교의 아멘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포스터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이 제작한 영화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최근 한국 오컬트 영화 중 하나이다.
(이후 스포일러)
출처: 넷플릭스
이 영화는 이전에 두 번 본 적이 있는 영화인데, 최근 다른 오컬트 영화를 보고 감상을 쓰던 차에 생각이 나서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왜 개봉 당시에 영화관에서 보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고, 그럼에도 혼자서 멈추고 생각해가며 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보통 종교 영화라고 하면 특정 종교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영화들만을 알고 있었는데,
사바하 속에는 불교와 기독교적 세계관이 공존한다는 점에서(거의 불교가 주된 세계관이긴 하지만) 더욱 흥미로웠다.
출처: 넷플릭스
오컬트 영화는 시청 시 상징과 해석의 재미가 크다고들 말하곤 하는데, 이 영화 속에도 정말 상징이 많았다.
하지만 상징을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의 대사로 해설해주거나 촬영으로 보여주는 등 상대적으로 관객에게 친절한 영화라 머리 싸매지 않고 보기가 편했다.
이 영화에서도 다루는 '진짜 신이 존재할까?'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무신론자였던 학창 시절의 내가 항상 부정해 왔지만,
성인이 된 이후를 생각해보면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런 능력을 가진 존재가 있다면 꼭 보고 싶다는 궁금증만이 남아있는 것 같다.
출처: 넷플릭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이 영화는 '어디에 계시나이까'라는 대사를 통해 땅에 발을 딛고 아등바등 살고 있는 인간들을 굽어살피지 않는 것만 같은 신에게 원망의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에서 깊게 묘사되고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주인공 박 목사의 가족을 죽인 13살 무슬림 소년병의 '신의 뜻이다'라는 말은,
또 다른 주인공 나한의 맹목적 믿음과 악행에 대치되고 있으며 기독교인인 감독이 관객에게 가장 전하고 싶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또 주인공 나한이 악행을 저지르고 가위에 눌리며 잠에 들 때 그를 위로해주는 것은 풍사 김제석도, 벽에 그려진 사천왕도 아닌 어머니의 자장가라는 점 역시 인상 깊다.
이런 주제의식만 있었다면 영화가 너무 진지하거나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 불교적 세계관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는 영화가 된 것 같다.
출처: 넷플릭스
이 영화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명확한 선악은 없다'이다. 영화 속의 표현'만'빌리자면 기독교적 세계관은 선악이 뚜렷한 이분법적 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는데,
불교적 세계관 속에서는 집착과 욕망이라는 개념만이 악한 것으로 표현될 뿐 행위자의 선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각자가 서있는 위치와 행동에 따라 계속 변하는 것이다.
악한 행동을 하나 했다고 부처가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선한 행동을 100년 가까이 한 생불도 짐승으로 전락할 수 있다. 작중 살아있는 미륵불, 육체와 시간을 극복한 영생의 존재로 묘사되는 김제석은 성불의 직전에 삶에 대한 집착이 생겨 용에서 뱀이 되었다. 반면 태어나면서부터 악성을 타고났다고 여겨진 '그것'은 뱀이 된 김제석을 죽이기 위한 무언가로 거듭나게 된다. 이러한 설정은 맹목적인 믿음의 허망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영화 속에서 관객이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다.
출처: 넷플릭스
또 영화에서 유독 강조되는 것은 '연기(緣起)'이다. 생활과 윤리 과목에서 얼핏 배웠던 것 같은 이 개념은 작중에서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태어나기에 저것이 태어나며, 이것이 멸하기에 저것이 멸한다'라는 대사로 표현된다. 풍사 김제석은 티베트 고승의 예언을 들었기 때문에 삶에 대한 집착이 생겼고, 삶에 대한 집착이 생겼기 때문에 뱀이 되었다. 악이 된 김제석을 멸하기 위해 '그것'이 태어났고, 김제석이 번뇌를 끝내고 집착을 버렸다면 끝까지 악성을 유지했을 '그것'은 김제석이 끝내 뱀으로 전락함으로써 오히려 부처(혹은 무언가)가 된다. 김제석이 멸하니 '그것'도 멸하며 하늘은 땅이 되고 땅은 하늘이 된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과관계는 결국 우리가 영화 밖에서도 볼 수 있는 많은 일들을 설명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출처: 넷플릭스
결국 우리는 진짜 신적인 존재를 목도하더라도 그것이 선을 향해 있는지 악을 향해 있는지 판단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주어진 위치에서 최소한의 양심을 중심에 세우고 나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생각해보며 사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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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 빠진 것처럼>, 단순한 화면 공유를 넘어 공간과 감각의 공유로
영화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출처 없는 목소리를 제시하며 해당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은 채 어딘가 비어있는 듯한 화면으로 시작한다. 키아로스타미는 공백을 통해 관객이 영화에 개입할 수 있는 틈을 열어주고 싶었던 것일까? 화면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 중 정작 목소리의 주인공은 없는 듯 하고, 과연 발화자는 누구인지 관객의 궁금증은 증폭된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단발머리 여자가 카메라 앞으로 자리를 옮겨 앉음으로써 비로소 화면은 채워진 듯한 느낌이 들고, 곧이어 화면이 전환되며 드디어 출처 없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드러난다. 그녀는 아키코라는 대학생으로 콜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어느 날 히로시는 아키코에게 홀로 살고 있는 타카시의 집에 방문하라고 제안하고, 할머니가 올라오시는 날이라며 몇 차례 거절을 반복하던 아키코는 결국 할머니와의 만남을 외면한 채 타카시의 집으로 향한다. 타카시의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 아키코는 할머니가 남긴 음성메시지를 듣는다. 그런 아키코를 따라 이어폰으로 타고 들어오는 할머니의 음성메시지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외면했다는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그 다정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감정은 영화가 창조한 아키코와의 동일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V.F. 퍼킨스의 주장에 따르면, 인물과 관객을 동등한 조건에 두는 것은 동일시를 창조하고 강화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에서 아키코는 마지막 음성메시지가 끝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자리에 앉아 음성메시지를 듣는데 이는 아키코라는 인물을 시각적, 청각적 수행만 가능한 관객과 동등한 조건에 두는 것이며, 이로써 영화 속 인물과 관객은 더욱 긴밀하게 연결된다. 즉, 영화는 인물과 관객을 동등한 처지에 위치시킴으로써 아키코와 관객의 동일시를 창조하고, 관객은 그러한 동일시를 통해 아키코의 감정에 이입하며 영화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등장인물과 관객을 동등한 조건에 둠으로써 동일시를 창조하는 예는 히치콕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창>에서 부상으로 인해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이웃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제프리와 <마니>에서 화장실 벽에 기대어 바깥소리를 엿듣고 있는 마니가 그 예시다. 앞서 발생한 아키코와 관객의 동일시는 그녀가 탄 택시가 역 근처에 다다랐을 때 관객 또한 아키코와 같이 고개를 쭉 내밀고 창가에 바싹 붙어 할머니가 정말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를 강하게 느끼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이 장면에서 택시는 역에 안정적으로 정차하는 것이 아니라 원형의 도로를 따라 계속 주행하는데, 이때 중간에 정차한 차와 뛰어가는 행인으로 인해 아키코의 시야에서 할머니가 기다리는 동상의 아랫부분이 일시적으로 가려지기도 하며 창밖에 나무들과 차 창틀, 가로등들은 아키코가 할머니에게 근접하는 동안 계속해서 할머니의 모습을 드러내고 감추기를 반복함으로써 영화는 할머니가 그곳에 서 있다는 걸 대놓고 보여주지 않는다. 이러한 선택을 통해 영화는 관객이 보고 싶은 것을 한번에 드러내주지 않음으로써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관객이 영화에 참여하게 만들고, 원형의 도로는 할머니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주위를 뱅뱅 맴돌기만 하는 아키코의 심정을 부각한다.
아키코가 타카시의 집에 들어설 때, 그의 집에서는 수화기 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키코가 도착하자 타카시는 들고 있던 수화기를 내려놓고 스피커폰으로 전환하는데, 이를 통해 관객은 아키코와 함께 수화기 너머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며, 초조하고 난처한 타카시의 감정에도 이입하게 된다. 타카시는 걸려온 전화에 응답하기 바빠 아키코를 제대로 맞이하지 못하고, 그녀가 집 안을 활보하는 동안에도 전화를 붙들고 안절부절못한다. 타카시는 애써 통화를 마무리 지으려 해보지만, 발신자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가고, 심지어는 다른 화제로 새거나 본론을 잊기도 하는데, 타카시와 마찬가지로 관객 역시 그러한 상대의 전화를 끊지 못하고 계속해서 들으며 타카시의 초조하고 답답함에 공감하게 된다. 아키코는 타카시가 준비한 음식도 먹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려 한다. 타카시는 그녀를 방 밖으로 유도하려 하지만 아키코는 도통 말을 듣지 않고, 카메라도 그녀처럼 고집스럽게 방 안을 떠나지 않는다. 이때 거실에 있는 전화가 울리고,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들려오는 소리는 관객이 얼른 전화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가서 전화를 끊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한다. 한편으로 이것은 고집스럽게 방 안을 지키고 있던 카메라를 타카시를 따라 방 밖으로 끌어내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타카시가 전화를 끊기 위해 방을 나서자 카메라도 그제서야 방 안을 벗어난다. 마찬가지로 잠시 후, 거실로 나온 타카시와 관객을 다시 아키코가 있는 방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역시 방 안에서 울리는 전화벨이다. 화면 밖에서 들려오는 전화벨은 반복적으로 들리는 소리를 중단시키고 싶다는 관객의 욕구를 자극하고, 타카시가 전화선을 뽑아둠으로써 전화벨이 또 울려 잠들어 있는 아키코를 깨울 것 같다는 걱정과 긴장감은 일시적으로 해소된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다양한 시각, 청각 장치를 활용하며 관객이 영화 속 인물과 사건이 실제로 그러하다고 믿고 개입하도록 한다. 어쩌면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영화가 가진 그 제목에서부터 관객의 참여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제목 끝에 모양이 서로 비슷하거나 같음을 나타내는 격 조사 ‘처럼’ 을 더함으로써 그것의 의미는 어딘가 모호해지고, 관객은 등장인물 중 누가 사랑에 빠진 것인지, 그 인물이 정말 사랑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런 척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증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에 빠진 것처럼>은 제목을 비롯해 작품 속에서 전화와 음성메시지, 창문과 같은 다양한 시청각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관객에게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영화를 “감각하고 참여할 것”을 제시하며 퍼킨스가 ‘순수한 반응’이라고 했던 어떤 것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한다. 관객은 단순히 감상하는 것에서 나아가 영화를 경험하며, 그것과 ‘공간과 감각을 함께 공유’하는 것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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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 피그, 당신의 따뜻한 시선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스터 피그 2016 제작
멕시코 / 드라마 / 95분
감독 : 디에고 루나
미스터 피그, 당신의 따뜻한 시선
미스터 피그, 유뱅크스는 전 재산인 농장이 팔릴 위기에 처해있다. 몸도 성치 않은 그가 유일하게 다 쓰러진 농장에서 키우고 있는 동물은 돼지 한 마리, 하위다. 하나밖에 없는 딸의 걱정과 원망 속에 지칠 대로 지친 유뱅크스는 죽기 전 딸에게 목돈이라도 남겨주려 하위를 도살장에 데려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그는 하위를 도살장에 팔지 못하고 도망치듯 달아난다. 도살장을 점령하고 있는 최신식 기계들을 보곤 불같이 화를 내며 이런 곳에 하위를 죽게 놔둘 수 없다고 소리치면서. 최신식 기계들은 그의 눈에 야만적이며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망할 기계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유뱅크스는 하위에게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난다. 그렇게 <미스터 피그>의 진정한 여행기는 시작한다. 영화 초반 유뱅크스와 하위의 관계가 흔한 농장 주인과 동물의 관계가 아님을 알 수 있다면, 영화 중반 이후로는 그의 숨겨진 이야기가 드러나면서 꼬여있던 매듭이 점점 풀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유일한 말동무이자 삶의 동반자인 하위를 친한 친구에게 데려가는 내내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어 산소통을 찬 자신보다 더. 나아가 그는 모텔까지 찾아온 딸을 설득해 하위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한 여정을 이어간다.
출처: 영화 <미스터 피그> 중
<미스터 피그>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돋보이는 영화다. 아무 말 없이 떠나버린 아버지를 어떻게든 이해하려는 딸과 굳이 진실을 말하지 않고 혼자 모든 책임을 지려는 아버지. 그들의 여정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다. 그러나 점차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부녀 간 꺼내지 못했던 진심이 하위로 하여금 조금씩 밖으로 넘치듯 흘러나온다. 모텔 침대 위에서, 도로 위 차 안에서, 그리고 배 위에서.
그는 아내를 너무 사랑했기에 그녀의 외도를 눈치챈 후 조용히 떠났었고, 딸을 너무 사랑하기에 자신의 병도 알리지 않았다. 딸은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어쩔 수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한다. 그의 짧은 몇 마디였지만, 어느새 딸은 아버지의 꿈을 무모하다고 비난하지 않고, 그와 눈을 맞춰 함께 걷기 시작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꺼지는 거였어."
"언제나 난 너에게 보살핌을 받는구나. 미안하다."마지막 장소를 향해 가는 아버지와 딸의 모습은 이제 더는 불안하거나 초초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산소통 배터리 포기하면서 하위를 섬으로 데려가는 유뱅크스. 그의 곁에 묵묵히 함께 있는 딸. 이제 그들 사이엔 엉켜버린 감정도 없으며 못다 한 이야기도 없다. 엉켜있을 시간이 그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했고, 딸은 하루빨리 아버지의 마음에 짐을 덜어주고 싶었으니까.
출처: 영화 <미스터 피그> 중
도착 장소까지 가기 위해 탄 배 위에서 유뱅크스의 여정은 끝난다. 청명한 하늘과 웃음을 머금은 딸의 얼굴, 그리고 자신의 품 안에 있는 하위를 끝으로 그의 눈은 스르륵 감긴다. 미스터 피크의 삶은 너무나 고단했고, 외로웠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정말 아름다웠다. 해변에 도착하고 배에서 내린 딸의 뒤로 들리는 다급한 목소리, 눈을 감고 있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손을 핥고 있는 하위, 그를 껴안고 우는 딸의 모습. 그들의 뒤에서 환하게 비추는 햇살까지. 슬퍼하고 안타까워해야 할 그 장면은 <미스터 피그>의 최고의 장면이다.
가족에게서 스스로 도망쳐 나온 아버지는 다시 딸을 만나고, 새 가족이었던 하위를 보내주면서 코 앞에 다가온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제야 자신을 이해하는 딸과 함께 살 수 있는데도, 충분히 병원에서 치료 받을 수 있는데... 오히려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결정과 그 이유를 딸에게 털어놓는다.
"사람들은 죽음을 너무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 그래서 죽기 전 중요하고 의미 있는 얘길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아. 모두 의미 없어. 의미 없는 것들이야."
살면서 충분히 했으면 된 것이다. 더는 부족한 자신을 옭아맬 필요가 없다. 아버지는 딸에게 자신의 죽음이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우린 죽음을 앞둔 그에게서 초초함이 아닌 따뜻함이 느껴진다. 질투, 욕망, 배신과 같은 어두운 요소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한없이 깨끗하고 정겨우며, 평화롭다. 죽음마저도 <미스터 피그>에선 따사로워 보인다.
하위가 주인의 마음을 안다는 듯 해변 모래사장에 누워 파도를 맞다가 일어나 자연스럽게 카메라 앵글에서 사라진다. 그 마지막 장면이 긴 여운으로 남는 건 분명 이유가 있다. 난 이를 글로 다 풀어 쓰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에 또 한 번 따뜻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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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이야기
넷플릭스에 공개된 [수리남]은 에너지가 넘치는 시리즈다. 한 번 시작하면 그 힘에 이끌려 6편을 내리 정주행 하게 만드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 정주행 욕구가 든 시리즈였다. 마침 개봉된 시점이 추석 연휴 직전이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시리즈를 넷플릭스에서 찾아봤을 것 같다. 여기에 개봉한 영화도 <공조2> 한 편 밖에 없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타이밍에 공개를 했다.
추석이 지나고 여기저기서 여러 가지 평이 들려온다. 정말 많은 사람이 본 것 같다. 웬만해서는 이렇게 까지 이야기가 되지 않는데, [수리남]에 대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각 배우들이 너무 잘하는 역할 혹은 그동안 해왔던 역할의 캐릭터를 맡아 기시감이 느꼈다는 평도 있었고, 이야기의 허점이 있었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평가들의 반응이 이 시리즈가 '싫었다'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모든 사람들이 시리즈를 보기 시작해서 명절 연휴에 모든 에피소드를 끝까지 봤다는 이야기다. 시리즈의 특성상 흥미가 느껴지지 않으면 에피소드 보기를 중단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끝까지 시청을 완료한 것 같다.
나 역시 이 시리즈를 처음 보기 시작하고 4일 정도 기간에 모두 시청을 완료했다.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재미있게 봤고, 하정우와 황정민이 협상을 벌일 때 연기가 무척 좋았다. 전반적으로 연기가 무척 좋은 시리즈다. 박해수와 조우진의 연기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조금 논란이 있는 건 배우 유연석의 연기다. 황정민이 맡은 전요한의 수석 변호사로 등장하는 그의 연기가 어색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유연석이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다. 크게 연기가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던 배우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시리즈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그에게 딱 맞았던 것 같다.
일단 얄밉게 느껴지는 껄렁대는 연기와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자신이 배운 사람이라는 걸 일부러 티 내는 연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기억에 그가 악역이나 껄렁한 연기를 하는 걸 잠깐이라도 본 적이 없다. 외형적으로 가지고 있는 반듯한 이미지를 깨는 이번 연기는 그가 앞으로 좀 더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줬다.
하정우가 맡은 강인구는 판타지적인 인물이다. 한국에서 단란주점과 카센터를 운영하던 그가 수리남으로 가서 홍어를 수입하려다 마약 밀매범으로 감옥에 간다. 출소 이후 국정원 요원과 함께 마약 사범 전요한을 잡으로 가서 벌이는 그의 대처 능력은 무척 인상적이다. 흔들림 없이 협상을 하고 전요한의 협박을 받고 그대로 강하게 되치기를 던진다. 완전히 협상이 완료될 때까지 그는 협상의 여지를 열어놓고 상대방의 바닥을 꺼내기 위해 침착하게 자신의 수를 던진다. 이런 시리즈의 모습은 실제 배우 하정우가 겪었던 보이스 피싱에 대처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배우가 피싱범에게 대하는 모습이 시리즈를 보면서 떠올랐다. 이런 점을 보면 하정우를 캐스팅한 건 아주 좋았던 것 같다.
시리즈의 악당 전요한을 맡은 황정민의 연기도 좋다. 그런데 그의 연기는 과거 <신세계>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 톤으로 보이는 그의 연기는 기시감이 들기는 하지만 이 시리즈 안에 무척 잘 어울린다. 아무도 믿지 않지만 주변을 잘 구슬려 자신의 사업을 진행해나가는 그의 모습은 시리즈에 긴장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시리즈에는 수리남에서 차이나타운에 살고 있는 조직 보스 첸진도 등장한다. 배우 장첸이 연기하는 이 인물도 이 이야기에서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첫 등장부터 그가 보여주는 위압감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후반부에 조금은 부속품처럼 소비되어 버리는 역할이지만 전요한, 강인구, 첸진이 서로 엮이고 서로를 이용하면서 벌이는 상황들이 무척 재미있게 구성되어있다.
윤종빈 감독은 <공작>, <범죄와의 전쟁> 같은 영화를 통해 긴장감 넘치는 인물 구도를 선보인 적이 있다. 여기에 꼼꼼하게 만든 미장센이나 촬영이 이번 [수리남]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시리즈를 보는 내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전개도 좋았지만 역시나 가장 좋았던 건 배우들의 연기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였지만, 일반인이 첩보를 한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을 설득하게 만드는 건, 결국 배우들의 연기다.
오랜만에 정주행 하고 싶다는 욕구가 드는 시리즈를 본 것 같다. 대부분의 시리즈는 한 편 보고 약간의 텀이 생긴다. 그런데 [수리남]은 멈추지 못하고 달려가게 만든다. 아직도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넷플릭스에서 이 시리즈를 보라고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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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vielog #30] 스릴러로 돌아온 안젤리나 졸리의 추격극
영화 윈드리버의 타일러 쉐리던 감독이 신작 영화로 돌아왔습니다.
굉장히 건조하지만 아이를 잃은 슬픔을 가진 캐릭터를 등장시켜 일종의 복수극을 스릴러로 보여줬는데요.
이번 영화는 좀 더 스케일이 커지고 빨라졌습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지만 그래도 영화가 재미있습니다. 마음을 쫄깃하게 만드는 스릴러 영화에요.
시카리오 시리즈의 각본가로 유명한 타일러 쉐리던은 이제 연출을 시작하는 감독입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되는 감독이네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봐주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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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도적인 캐스팅에도 아쉬움을 남긴 원더랜드 / 눈과 귀가 즐거운 / 로맨틱 드라마 / 탕웨이 박보검 연기는 굿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원더랜드" 후기입니다.
*엔드크레딧 전 재미난 쿠키영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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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듄: 드리프터> 티저 예고편
최강의 질주 액션!
생존을 위한 사투가 시작된다!우주를 수호하는 제미니 부대는 그레이 리더의 지휘 아래 에레보스 우주 전투에 뛰어든다.
간단한 보호 작전인 줄로만 알았던 미션은 어마어마한 대전투로 드러나고 설상가상,
제미니 부대는 모두 전멸하고 '아들러' 와 '헤이즐'의 함선은 어느 행성에 불시착하게 된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함선과 희박한 산소 그리고 그들을 추격하는 어둠의 그림자가 숨통을 조여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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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 2차 예고편
점점 강력해지는 어둠의 마법사 그린델왈드를 막기 위한 덤블도어의 특별한 미션, 뉴트와 친구들의 운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