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3-11-15 07:52:27
1963년, 1974년, 2023년의 임신중지
〈앵그리 애니〉
1963년, 1974년, 2023년의 임신중지
〈앵그리 애니〉
아래로6★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 《사건》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레벤느망〉에서 주인공 안은 두 번의 임신중지를 시도한다. 뜨개질바늘을 사용해 혼자서 한 번, 불법 시술소에서 또 한 번. 〈레벤느망〉은 이 고통스러운 순간을 비껴가지 않는다. 안의 거친 호흡과 고통스러운 신음, 날카로운 시술 도구가 안의 몸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럼으로써 ‘불법’이라는 추상적 규범이 초래하는 위험과 이것이 우리에게 남기는 수치심을 고발한다.
〈레벤느망〉의 배경은 1963년의 프랑스다. 〈앵그리 애니〉는 그로부터 10년 후의 일을 다룬다. 두 아이가 있는 엄마 애니는 임신중지가 가능한 곳을 수소문해 한 서점을 찾는다. 서점 직원은 찾는 책이 있다면 말해달라고, 혹시 모임에 온 것이라면 커튼 뒤쪽으로 가 보라고 말한다. 커튼 뒤에는 ‘불법이지만 비밀은 아닌’ 일이 이뤄지는 중이다. 그곳에 모인 여성들은 임신중지가 필요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그러자 누군가가 그들에게 사려 깊은 태도로 앞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될지 상세한 설명을 해준다. 임신중지에 어떤 도구를 활용할지 하나하나 일러주고, 모든 궁금증에 상냥히 응대한다. 겁에 질려 그곳을 찾은 여성들의 긴장이 조금씩 풀린다. 그들은 MLAC, 임신중지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의 활동가다.

이제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시작된다. 애니는 임신중지를 위해 침대에 눕는다. 의사 한 명과 활동가 둘이 애니 곁에 있다. 그들은 애니에게 거울로 자궁을 살펴보기를 권한다. 자기 몸의 아름다움을 긍정하기 위함이다. 의사는 애니가 불편함을 느끼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활동가는 애니의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내내 곁을 지킨다. 아름다운 선율의 노래를 불러주기도 한다. “끝났다고요?” 임신중지가 마무리되자 애니가 깜짝 놀라 묻는다. 임신중지 경험이 있는 애니에게는 이토록 쉽고 간단하고 안전하게, 심지어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며 임신중지가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레벤느망〉의 임신중지 장면과 달리, 〈앵그리 애니〉의 임신중지 장면은 심지어 ‘편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두 영화가 임신중지를 재현하는 방식의 차이는 여성의 임신중지 경험이 어떤 환경과 맥락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극적으로 대비한다.
MLAC 덕에 공포가 안도로 바뀐 애니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경험에 계속 잊히지 않는다. MLAC의 도움으로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은 안전하고 믿음직한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원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기부금 형식으로 비용을 지불하면 됐다. 그들의 활동이 자신에게 가져다준 커다란 평온에 감명받은 애니는 순수한 호기심이 인다.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 불법 행위를, 심지어 비밀리에 진행하지도 않는 이들은 모두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데, 애니는 그런 그들에게 마음이 움직인다.

그러던 중 애니에게도 각성의 순간이 온다. MLAC 조직이 여러 곳에서 활동하긴 했어도 임신중지를 원하는 모든 여성을 돕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즉, 여전히 많은 여성이 위험한 환경에서 임신중지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여성이 이 과정에서 죽었다. 애니의 이웃도 마찬가지였다. 애니는 본격적으로 MLAC 활동을 시작한다. 활동을 통해 자신의 편견을 조금씩 수정해나가고, ‘생명 파괴’ ‘문란함’ 등의 낙인 때문에 여성들이 임신중지에 얼마나 큰 심리적 부담을 느끼고 있는지도 직접 대면한다.
애니가 MLAC 활동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영화의 질문은 확장된다. 〈앵그리 애니〉는 그저 임신중지의 합법화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영화에는 더 크고 깊은 질문이 담겼다. MLAC를 찾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기존 활동가, 의사만으로는 모든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이에 오랫동안 단체에서 의사를 돕던 활동가들이 직접 임신중지 시술을 집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주로 남성으로 구성된 MLAC의 의사들이 반발한다. 자칫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기에 전문가만 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여성들은 의사 없이 임신중지보다 훨씬 더 위험한 출산을 인류의 탄생 때부터 서로 도우며 해왔고, 시술법이 발전한 덕에 임신중지의 절차가 비교적 간단해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MLAC 여성 활동가들은 여성들의 느끼는 공포에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었다.

이는 남성/국가/전문가 집단이 여성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독점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애니는 화를 내는데(‘앵그리 애니’), 그 이유도 이 때문이다. MLAC의 활동이 큰 이슈가 되어 임신중지가 합법화되었으나 합법화가 의료 기관이 그 권한을 독점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MLAC에서 가능했던 여성들 간의 연대, 여성 경험의 가시화 등은 배제된 채(즉 MLAC에서 여성들이 쌓아 온 역량이 사라질 위기에 놓인 채) 여성이 다시금 남성/국가/전문가의 수동적 객체로 위치지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애니는 화가 난다. 임신중지가 합법화된 후 병원에서의 임신중지는 위험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여성을 다시금 외롭게 만들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MLAC 활동을 하며 애니가 가족에 ‘소홀해지는’ 과정과 이로 인한 가족 내 갈등을 통해서는 여성이 가사노동의 책무 때문에 사회 활동을 하는 데 제약을 받는 상황을 짚기도 한다. 〈앵그리 애니〉는 단순히 낙태죄 폐지가 진보·정답이 아님을, 여기에는 이를 초과하는 다양한 결의 질문과 고민이 동반되어야 함을 보인다. 임신중지에 관한 단편적 이해와 서사를 넘어, 여기에 무수히 많은 이슈가 결합되어 있음을 보이는 이 영화는 낙태죄가 페지된 이후에도 여전히 아무런 후속 입법 조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무책임한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임신중지 이슈에 관한 필람작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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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행 세계 로맨스 영화, 그래서 뭐가 특별한데?
<나를 모르는 그녀의의 세계에서>
작가 지망생 리쿠(나카지마 켄토)는 교수에게 빼앗긴 창작 노트를 되찾기 위해 학교에 몰래 잠입한다. 경비원에게 들켜 도망치던 중, 비어 있는 강당에서 노래를 부르던 미나미(미레이)를 만난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만남은 서로의 인생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두 사람은 곧 연애를 시작한다.
결혼을 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꿨지만 리쿠의 소설이 히트하고, 유명 작가로 떠오르면서 둘의 관계는 서서히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다.
소설을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가장 뒤편으로 밀려났다.
월식이 있던 어느 밤, 운명이 완전히 전복된다. 여느때와 같이 잠에서 깬 리쿠는 더 이상 소설가가 아니고 글도 쓰지 못하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고 있었고, 아내인 미나미가 인기 가수가 되어 있다.
그녀는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학 완전히 타인으로 대하면서 리쿠는 큰 충격에 빠진다.
그녀가 자신을 모르는 세계에서, 리쿠는 그들의 행복했던 세계를 되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미키 타카히로 감독의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는 평행 세계라는 오래된 장치를 전형적으로 활용한다. ‘사랑의 반복 가능성’, ‘시간을 넘는 감정’은 이미 일본 로맨스 영화의 단골 소재이며,
그의 작품 <오늘 밤, 이 세계에서 사랑이 사라진다고 해도>처럼 그 전통은 이미 과잉 상태에 가깝다. <나를 모르는 그녀의의 세계에서> 역시 그 계보를 충실히 따르며,
대중이 기대하는 멜로적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단순한 판타지 로맨스를 넘어서는 지점은, 주제의식의 ‘깊이’가 아니라, ‘조율’에 있다.낯을 섬세한 감정으로 풀어내며 진정성을 가진다.
그리고 이 진정성은, 무엇보다 두 배우의 연기에서 나온다.
미나미 역의 미레이는 첫 연기 도전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섬세한 감정선을 보여준다. 눈빛과 망설임, 짧게 머뭇대는 손끝의 움직임 같은 것들이 그녀의 진심이 된다. 칸토 역시 리쿠라는 인물을 갈등과 후회, 집착과 배려 사이에서 복잡하게 흔들리는 내면을 절제된 방식으로 드러낸다. 덕분에 이 비현실적인 설정도 끝내 감정적으로 납득된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축적 위에, 관객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끄는 인물이 있다.
바로 키리타니 켄타가 연기한 카지와라 선배다. 초반 그는 능청스럽고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조언자로 등장한다. 영화의 흐름 속에서 한숨 돌릴 여유를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관객들로 하여금 가장 이입하며 볼 수 있는 캐릭터로 조연으로 활용될 것 처럼 보이지만 후반부, 그는 자신의 죽은 아내에 대해 이야기하며 영화의 주제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어떠한 형태로건 존재하는 것은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쿠는 미나미의 기억을 빌미로 그녀에게 다가간다. ‘남편이었기에 알 수 있었던 디테일들’을 이용해 그녀의 마음을 열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자문하게 된다.
“내가 그녀의 삶에 없던 편이 더 나았던 건 아닐까.”
그 질문은 로맨스의 안락한 공식에 균열을 낸다. 사랑은, 그리고 함께한 시간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 축복이었을까. 리쿠는 희생함으로서 비로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이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관계에 있어서 잘못된 선택은 없다. 그때마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고 켜켜이 쌓여 때론 후회하기도 또 자연히 몸에 남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돌이킬 수 없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좋은 방식으로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이 영화는 만약, 이라는 가정으로 그가 정의하는 사랑에 대해 말한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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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만 성장하는 성장영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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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잘 짓는 것은 정말 어렵다. 어찌 보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내용은 잊혀도 제목만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져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셀링 포인트가 될 것이다.
서두에 밝히자면, 이 영화는 제목만 좋았다.
<태어나길 잘했어>는 다한증이 있는 박춘희의 성장 이야기다. 박춘희를 위한, 박춘희에 의한, 박춘희만의 이야기. 박춘희의 주변인물과 배경과 사건들은 파편처럼 흩어져 저 멀리로 사라지고, 광활한 우주에 박춘희 혼자 남겨진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너무 많은 어려움들
춘희는 중학생 때 부모가 죽는 바람에 외삼촌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게 된다. 왜 죽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데, 아무튼 부모가 죽어 혼자 남겨진 춘희는 외삼촌 부부와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그 누구도 춘희를 환영하지 않고, 여분의 방이 있는데도 굳이 다락방을 내어준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지만 방금 부모상을 치른 아이에게 참으로 불친절한 외삼촌네 가족이다.
설상가상으로 춘희에게는 다한증까지 있다. 다한증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다. 하필이면 학교에서 폴카댄스를 춰야 하는 상황인데, 손을 잡고 춤을 출 파트너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선생조차 불쾌해 한다. 명상센터에서 '저는 쩔어 있어요, 땀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춘희. 땀은 인생의 모든 고난과 역경에 쩔어있는 춘희의 메타포이자 상징이다.
춘희는 어른이 된 이후 외삼촌네 식구들과 함께 살던 집에서 혼자 산다. 외삼촌네 식구들은 고등학생이 된 춘희만 내버려두고 새 아파트로 이사가버렸기 때문이다. 춘희는 혼자 살아도 조그만 다락방에서 지내고, 다한증을 수술할 돈을 모으기 위해 매일 마늘을 깐다. 끼니도 오직 컵라면뿐이다.
중학생 정도의 아이에게 조실부모도 엄청난 충격일 테니 이후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사실 조실부모와 눈칫밥 먹는 것, 이후 버려진 집에서 버려진 채로 살아가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왜 굳이 다한증까지 설정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혹은 다한증 하나로도 충분하다. 부모를 잃거나 잃지 않거나, 평범한 가정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다한증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풀어나갈 만한 이야기이다. 달리 말하면 주인공의 캐릭터가 그렇게까지 입체적이지 않다. 춘희는 그저 딱한 아이이다.
우리나라는 국가보장시스템이 있는 나라이고, 생활고로 힘들 때는 각 동 주민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 핍진한 이야기는 차치하자. 이 영화는 불쌍한 춘희 이야기이니까.
춘희와 NPC들
외삼촌네 딸, 춘희의 외사촌 유라는 춘희를 너무 싫어한다. 유라는 충분히 춘희를 싫어할 만하다. 그러지 않아도 예민한 사춘기에 갑자기 사촌이 우리집에서 살게 된다니. 더군다나 같은 학교이기까지. 영화에서 보여지는 유라는 성질머리가 보통이 아니다. 여자들은 원수의 자식에게도 생리대는 빌려준다는데, 생리대를 가져가는 춘희를 도둑년이라고 욕하는 개인적인 악행에서 나아가 수학여행에 술을 챙겨가고 담배를 피우는 불량학생이기까지. 춘희를 선량한 희생자로 만들기 위해 유라가 꼭 못되처먹은 아이가 되어야 했나?
유라의 오빠이자 춘희의 사촌오빠는 식당을 운영한다. 춘희는 그 식당에서 쓸 마늘을 까주고 3만 원씩 받는다. 그 오빠란 사람은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했다. "혁명에도 실패하고 사랑에도 실패"했다며 술 마시고 징징거린다. 도대체 왜 학생운동을 했는지 이유도 명분도 없고, 왜 하필 춘희에게 마늘까는 일을 주는지 모를 일이며(홀서빙직을 제안하기는 하지만), 왜 이혼위기에 처했는지 모를 일이다. 오빠를 설명하는 일련의 사실들은 그의 캐릭터를 형성하지 못한다. 혹시 춘희가 마늘을 까는 알바를 하기 위해 오빠가 있어야 했나?
춘희와 잠깐 사랑에 빠지는 주황이라는 캐릭터를 보자. 스토리상 남자주인공에 가깝다. 주황은 말을 더듬는데, 어릴 때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말을 더듬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까진 좋다.
그런데 주황의 역할은 춘희를 갑자기 사랑하고, 춘희가 돈이 없으니 돈 주겠다고 말하고, 춘희에게 차이는 것뿐이다. 춘희에게 잠깐의 행복을 맛보게 하기 위해 굳이 말을 더듬는 남자가 있어야 했나?
가장 골때리는 인물은 노숙자이다. 단순한 도식으로 보았을 때 집이 없다는 점에서 노숙자는 춘희보다 불쌍하다. 춘희는 집에 가는 길에 여자 노숙자를 발견하고, 노숙자가 맨발인 걸 보고 사촌오빠에게 받은 마사이족 신발을 준다.
이 노숙자는 총 세 번 등장한다. 춘희가 신발기부를 하기 위해 등장, 번개맞은 춘희를 살려주기 위해 등장, 춘희에게 마사이족 명언도 아닌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을 해주기 위해 등장. 춘희에게 자기보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경험을 하게 만들기 위해 노숙자가 나와야 했나? 굳이 마사이족 신발이었어야 했나?
그 외 외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기타 등등 모든 영화 속 인물들은 춘희의 성장을 돕기 위한 NPC에 불과하다. 심지어 춘희에게 꽤 중요한 인물이었던 외할머니의 죽음도 외숙모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진다. 그때 춘희가 문상을 갔는지, 울었는지, 절망에 빠졌는지, 무감정했는지 궁금하다. 외할머니는 유일한 춘희 편이었으니까.
갑자기 들이닥친 이방인에게 부모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유라의 불안, 혁명도, 사랑도, 이도저도 해내지 못한 사촌오빠의 좌절감, 비록 말을 더듬지만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기를 좋아해주는 것을 경험하고,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될 주황의 성장, 춘희가 선물해준 신발을 신고 새로운 삶을 향해 걸어나가게 될 노숙자의 변화는 춘희에게 하등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이 영화는 오직 춘희의 성장만을 위해 전개된다. 반대로 말하자면 춘희 외에는 그 누구도 성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계는 전혀 넓어지지 않고 오직 춘희의 자아만 부풀어오른다.
내면의 상처받은 아이 만나기
다시 말하지만 춘희는 '불쌍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 조실부모와 천대와 왕따 등등을 모조리 경험했다. 작은 다락방에 갇혀 살았던 춘희는 어른이 되어도 전혀 성장하지 못하고 다락방 같은 안전기지에 갇힌다.
그런 춘희가 우연히 책을 기부하려다 명상센터를 알게 되고 거기에서 주황을 만나 타인과 관계를 맺어보고, 사기도 당해보고, 자기보다 불쌍한 사람을 도움으로써 춘희는 조금씩 성장한다.
이야기 초반에 춘희는 번개를 맞고 쓰러진다. 우리는 번개를 맞은 춘희의 앞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날 것을 예상하게 되는데, 그 변화란 어린 춘희의 등장이다.
1.조실부모한 고아 / 2.다한증 / 3.눈칫밥 먹는 더부살이 / 4.매일 컵라면 먹기 / 5.평생 마늘까기 / 이 정도의 설정도 너무 많은데, 6.번개맞기 / 7.어린 춘희 만나기가 추가된다.
어린 춘희를 등장시키기 위해 번개를 때리는 게 뜬금없지만, 아무튼간 어린 춘희를 만난다는 것은 위로받지 못했던 내면의 어린아이와 마주하는 일이다. 차마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던 그 시절의 불쌍하고 어린 나를 어른인 내가 안아주는 것, 그렇게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앞으로 나가가는 것. 그러므로 너는 쓸모없는 아이가 아니라 태어나길 잘한 아이라는 것. 그것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이다.
결국 춘희는 그 집을 떠난다. 자발적으로 떠났으면 좋았으련만, 사촌오빠가 투룸 정도 얻을 수 있는 돈이라며 봉투를 내밀고, 사촌오빠에게 갑자기 왜 그랬냐고 화를 내며, 라면이 아닌 고기를 사먹고 나서 이사간다. 이사를 가도 여전히 마늘을 깐다.
어른 춘희가 몇 살이나 되었는지는 불명확하다. 다만 춘희는 이제 다락방이라는 안전기지와 상처받은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영화에서는 보여주지도, 다루지도 않더라도 외삼촌네 식구나 주황, 노숙자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곳에서 성장하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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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다 보려고 한다. 다른 작품들이 좋더라도 이 작품을 좋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의 영화들 중에서도 절망적인 영화들이 한두 편씩은 있으니까.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직면하고 과거와 화해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분명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똑바로 바라보는 건 너무 무섭고,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상처받을 것 같다. 상처받은 어린이는 마음 속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다 별안간 툭 튀어나온다. 우리에게 번개가 떨어질 일은 극히 드무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처투성이 불쌍한 어린이를 잘 위로하고 달래주어서 마음 속 감옥에서 풀어주는 수밖에.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춘희에게 떨어진 번개처럼, 커다란 위로가 될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모두 태어나길 잘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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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가운 겨울밤, 높게 솟은 것들을 향해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노스페라투>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 감독의 1922년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대부분의 스토리라인 역시도 원작을 따라간다. 툭툭 끊겨 삐걱거리는 움직임, 그림자와 점프 스퀘어의 사용 등 연출에서도 원작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찌보면 순정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올록' 백작도 원작 캐릭터 그대로이다. 이렇게 영화는 지금 본다면 어색하게 느껴지는 오래된 영화의 색깔을 숨김 없이 표현했다.
하지만,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작품은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다. 공포의 얼굴하면 떠오르는 '빌 스카드가드', '릴리 로즈 뎁'과 공포 영화 거장의 만남은 기대를 충족시켰다. 클로즈업에서도 빛을 발하는 배우들의 연기와 작품의 톤은 클래식 공포의 정석적 흐름을 따라갔다. '올록' 백작의 성을 비추는 와이드 샷처럼 아름다운 미장센은 매 프레임을 정지시켜 한 편의 사진처럼 간직하게끔 하는 생각을 갖게할 정도였다. '엘렌'이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노스페라투와 합의했다는 설정은 해당 작품이 원작/과거 리메이크작과 다른 특징이었다.
이 설정 덕분에 '자유 의지'라는 주제는 효과적으로 드러났다. 작품 내내 등장하는 '엘렌'의 신음은 고통보다는 쾌락의 소리처럼 느껴지는데, 이는 그녀가 스스로 노스페라투를 선택한 것을 의미한다. 결국 노스페라투를 안으며 불결과 순결이라는 양가적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엘렌'의 모습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엘렌'에게 자신을 받아들일 3일을 주는 노스페라투, 3일이 지나 첫 닭이 울자 엘렌 곁에서 타버리는 노스페라투. 이는 노스페라투를 예수로, 엘렌을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로 연상하게 한다. 신을 모방하고 조롱하는 악마는 공포 영화의 클리셰로 여겨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화의 엔딩에서 노스페라투와 엘렌의 실루엣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노스페라투'를 비운의 괴물처럼, '엘렌'을 위대한 순교자처럼 보이게 했다.
명작을 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공포를 조성하는 데 있어 로버트 에거스의 전작에서 볼 수 있었던 창의적 연출이 없었던 점은 분명 아쉬웠다. 그러나 드라큘라 영화에 있어 상징적인 작품을 과감하게 재창조했고, 새시대의 얼굴들로 구시대의 냉랭함을 표현했다는 것은 영화의 뚜렷한 성과이다. 차가운 겨울밤과 날카롭게 솟은 첨탑. 더이상 느낄 수 없는 그 시간과 공간을 <노스페라투>를 통해 느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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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모두들 평안한 주말 보내셨나요?
오늘은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결과를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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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NEW)
마블 스튜디오의 올해 첫 개봉작인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가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주말 관객은 59만여명 정도에, 앞선 이틀간의 관객수까지 더해 누적 관객 수는 86만3천여 명을 기록했습니다. 통상적으로 마블 신작이 개봉 첫 주 100만명 이상을 동원했던 것에 비하며 부진한 성적으로, 지난해 11월 개봉한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첫 주말 79만여명을 모으는 데 그친 것보다 못한 기록입니다.
2. <더 퍼스트 슬램덩크> (⬇︎1)
앞서 3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켜온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결국 마블에게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떨어졌습니다. 주말 관객 26만 9천여명에 누적 관객 328만 2천여명으로, 순위는 하락했지만 관객 수는 지난 3주간의 주말 평균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3. <타이타닉: 25주년> (⬇︎1)
개봉 25주년을 기념해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한 <타이타닉: 25주년> 역시 지난 주보다 순위가 하락하며 3위에 이름을 올리며 주말 관객 수 9만 8천여명, 누적 관객 수 83만 9천여명을 기록했습니다. 한편, 6위로 밀려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또다른 작품인 <아바타: 물의 길>은 글로벌 누적 흥행 수익 22억 4320만 달러를 돌파하며 <타이타닉>의 기존 흥행 수익을 뛰어넘고 글로벌 역대 박스오피스 톱3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40회 예측 이벤트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이벤트입니다.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겠습니다.
남성 60%, 여성 40%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높은 비율을 보였습니다. 연령대 별로는 3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고, 그 다음으로 20대, 40대, 50대, 10대 순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습니다.
한 주 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건 13세 미만 여성과(581,733명)과 46세 이상 여성(602,327명)이었습니다. 또한, 주말 관객 수 스코어 예측의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전체 참가자의 1.2%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의 성비 및 나잇대 비율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4. <두다다쿵: 후후섬의 비밀> (NEW)
이번 주말 박스오피스의 4, 5위는 모두 애니메이션 영화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국내 애니메이션 영화인 <두다다쿵: 후후섬의 비밀>이 3만6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3위에 올랐는데요, <두다다쿵> 시리즈는 전 세계 40여 개국 이상에 수출되며 K-애니메이션의 기술력을 인정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엄마를 찾아 후후섬으로 떠난 두다와 친구들의 좌충우돌 모험기를 다뤘다는 <두다다쿵: 후후섬의 비밀>은 형형색색 다채로운 색감과 실감나는 캐릭터들이 눈길을 사로잡으며 화려한 즐거움을 선사하며 어린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5. <어메이징 모리스> (NEW)
5위도 마찬가지로 애니메이션 영화 <어메이징 모리스>입니다. 세계적인 판타지 소설 작가 테리 프래쳇의 '놀라운 모리스와 똑똑한 쥐 일당'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세상을 집어삼키려는 빌런 쥐 마왕에 맞선 사기력 만렙 말하는 고양이 모리스와 상극 친구들의 환상적인 팀플레이 어드벤처를 담은 작품입니다. 3만5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해 주말 박스오피스에서 동시기 개봉작 <두다다쿵: 후후섬의 비밀>에게 밀렸지만, 누적관객 5만1천여명을 기록하며 개봉 첫 주 애니메이션 박스오피스에서는 1위에 올랐습니다.
(2)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가 국내에서와 마찬가지로 북미에서도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국내보다 2일 늦은 2월 17일 개봉하여 주말 매출액 1억 4백만 달러(한화 약 1352억 원)의 오프닝 흥행 수익을 냈으며, 전편인 <앤트맨>, <앤트맨과 와스프>를 뛰어넘는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2위에 이름을 올린 <아바타: 물의 길>은 누적 매출액 6억 5700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전 세계적으로는 22억 433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데 성공해 전세계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타이타닉>을 추월했습니다. 당초 2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됐던 손익분기점은 진작 넘어선 상황으로, 제임스 카메론의 작품 3편이 현재 글로벌 박스오피스 1위, 3위, 4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지난주 1위를 차지했던 <매직 마이크>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 <매직 마이크스 라스트 댄스>는 3위로 떨어졌고, <장화신은 고양이: 끝내주는 모험>이 4위에, 지난주 순위 진입에 실패했던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Knock at the Cabin(국내에서 <똑똑똑>으로 개봉 예정)이 다시 5위에 올랐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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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2월 셋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이만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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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할 수 있는 기만, 대체할 수 없는 마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넬리는 친구 레네와 함께 고향으로 향한다. 그렇게 가고 싶던 고향은 멀고도 험한 길이었고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검문소를 거쳐야만 했다. 고통으로 점철된 상처를 보여주지 않으면 지나갈 수 없는 시대의 참혹함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돌아온 고향은 모든 것이 파괴된 모습이었고 고통스러운 사실이 넬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사실에도 유일하게 자신의 추억이 남아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얼굴에 붕대를 감고 피투성이였던 넬리는 얼굴 재건을 위해 성형수술을 해야 했고 이전과는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런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것일까. 그렇게 달라진 얼굴로 유일하게 살아남은 가족, 남편 조니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고 ‘피닉스’에서 만난 조니는 넬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런 슬픈 사실에도 쉽게 슬픔을 드러낼 수 없는 넬리에게 조니는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와이프 넬리를 연기해달라고 부탁하고 넬리는 그를 수락한다. 넬리에게 소중하게 여겨지던 추억은 조니 에게 있어서 바래진 추억일 뿐이었을까. 웃지 못할 연극이 계속되면서 애써 외면해왔던 현재의 모습에 파고들면서 끝을 보이고 있었다.
끝없이 바닥 치는 내면의 마음이 과거의 따뜻한 사랑을 되찾기엔 왜곡된 진실이 그를 가로막고 있었다. 의술로도 원상태로 돌릴 수 없었던 겉모습과 마음이 남기는 흔적이 곳곳에 자리 잡으면서 고통과 사랑을 동시에 느낀다. 그와 함께하면서 시작된 기만을 비롯한 연극이 비극의 끝을 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제 자리로 자신을 옮겨 온다. 복수보다 무서운 용서가 마지막을 맴돌며 온몸에 전율이 피어오른다. 당연하게 여겨진 것을 잃어가며 소중한 것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은 당연하게 여겨 어쩌면 외면했던 것들의 다른 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당연히 아니라고 생각하는 역사의 왜곡은 개인의 왜곡으로 이어져 예견된 비극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고개를 돌리고, 모습을 감추고, 눈을 감을 텐가. 이제는 대답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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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를
작년 11월부터 지금까지 매일 생각하는 영화가 있다.
과장이면 좋겠지만 아니다. 영화를 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매일 <아니아라>를 생각하면서 살고있다.
나는 스웨덴 영화제에서 영화를 봤는데 티빙 독점 공개로
티빙 이용권만 있으면 아니아라를 볼 수 있다.
나중에 꼭 개봉하면 좋겠다. 영화관에서 꼭 봐야하는 영화니까.
<아니아라>는 스웨덴 영화고 장르는 SF이며 우주 영화다.
화성으로 떠나는 우주선인 아니아라호는 지구에서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힐링 AI 프로그램인 미마와 식량 시스템까지 갖추었다. 멸망하고 있는 지구를 떠나서 화성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아니아라호에 탔고 3주 후면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아니아라호는 우주 부유물과 충돌해 궤도를 이탈해버리면서 어쩌면 평생 우주에서 떠돌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한다.
스포주의
영화는 줄거리만 봐도 절망적이다. 새로운 삶을 찾아서 탔던 우주선에서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줄거리를 알고 영화를 봤지만 글로 보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달랐다. 훨씬 더 절망적이었다. 3주 후 가 아니라 어쩌면 평생 우주에서 살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직시한 사람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미쳐가며 무너진다.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있고 낙관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과 버티는 사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평생 우주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사람과 죽을지도 모르지만 진실을 알리려는
사람이 존재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생각났다. 지구를 벗어나고 지구의 기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지구에서의 모습과 닮았다. 이기적이고 나약해지고 사랑하고 불신하는 모습들... 내가 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고 현실감이 없지만 영화 속 인물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보였다. 물론 영화의 상황이 훨씬 심각하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전 세계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1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우리는 코로나가 언제 완전히 끝날지 예상할 수 없다. 확진자가 줄어들어서 안도하면 갑자기 확진자 수가 늘어나고 다른 나라의 뉴스를 보면 더 절망적이다. 만약에 끝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을 침범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만약에 코로나가 존재하지
않았던 2018년에 <아니아라>를 봤다면 지금처럼
몰입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니아라호에는 힐링 AI 프로그램인 미마가 있어서 미마 로브가 관리하는 미마가 있는 곳에 가면 지구에서의 행복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사람들은 미마에게 점점 집착하기 시작한다.
미마가 없으면 지구와의 연결고리가 사라지니까. 물론 자신들은 살려고 그랬지만 미마는 사람들의 이기심에 지쳐가고 결국 자살한다. AI가 자살한다는 건 상상하지도 못했고 너무 충격적이었다. 어쩌면 미마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찾고 지구에서의 순간을 회상하기 위해 발악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사실 영화에서 사실을 은폐하고 그래도 화성에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캡틴이 너무 싫었다. 처음에는 너무 미웠다. 왜 사실을 은폐하며 살아가지? 차라리 먼저 사실을 말했다면..이라고 생각했는데 근데 사실을 말했다면 사람들은 무너졌을 거다. 먼저 무너지거나 나중에 무너지거나의 차이다. 캡틴의 선택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사실을 은폐하고 잘못이 없는 미마 로브에게 누명을 씌우는 인간이기에 나쁜 사람이다. 근데도 아니아라를 보면 거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행동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미마 로브 이야기를 진작에 했어야 하는데 이제야 적는다.
미마 로브는 힐링 AI 프로그램인 미마의 관리자다. 미마를 누구보다 걱정하고 아끼는 미마 로브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누명을 받고도 지하실에 몇년을 있어도 다시 살아간다. 미마 로브는 사랑하는 연인인 이사겔과 지내면서 하루하루를 버틴다.
계속 살아가려는 미마 로브와 다르게 이사겔은 체념하고 지쳐하다가 결국 삶을 포기한다. 사실 영화를 처음 볼때는 이사겔이 조금 미웠다. 혼자 남은 미마 로브는 어떻게 살아가라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광활한 우주에서 평생을 살고 죽어도 우주에 있다고 생각하면 삶을 포기하고 싶은게 당연하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낮이 아니아라호에는 없다. 밖은 깜깜한 우주일뿐. 나라면 그런 삶을 지속할 수 있을까. 이사겔의 선택을 비난할 수 없다. 혼자 남은 미마 로브가 안타까울뿐이다. 이사겔을 보면서 울부짖던 미마 로브의 표정이 생생하다. 미마 로브는 바로 삶을 포기하지 않고 그래도 살아간다.
영화는 AI 프로그램인 미마를 보여주면서 기억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지구의 소중함을 느끼게하면서 절망만을 얘기하는 것 같지만 난 이 영화를 보면서 희망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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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저링 유니버스
개봉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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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내 이름은 마더> 공식 예고편
복수는 마더처럼. 알래스카 황무지에서 수년간 숨어 지낸 치명적인 암살자. 멀리서 그리워만 하던 딸을 구하기 위해, 그녀가 돌아온다. 제니퍼 로페즈, 조셉 파인즈, 루시 파에스, 오마리 하드윅, 폴 레이시,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출연. 《내 이름은 마더》를 시청하세요.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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