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dong2023-11-12 22:38:46
'로키'가 바라왔던 '영광스러운 목적'을 향해
드라마 <로키 2> 스포일러 없는 리뷰
<로키 2>의 주인공은 ‘장난의 신’ 로키다. 실비가 로키(톰 히들스턴)의 눈앞에서 ‘계속 존재하는 자’를 살해하고 난 후의 이야기가 드라마 1화 시작으로 이어진다. TVA 안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돈다. 갑작스럽게 침입한 로키를 제지하기 위해 요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도망치는 로키. 카트 위로 떨어진다. 카트를 운전하던 여자가 깜짝 놀라 앞의 흉상에 부딪혔다. ‘계속 남아있는 자’의 흉상과 부딪힌 카트. 흉상이 깨지고 케이시가 등장한다. 사실 로키는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이 무엇인지 전부 판단하지 못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갑자기 벌어지는 일이 무엇인지 다 이해하려고 할 즈음에 케이시와 만났다. “너 누구야?”반문하는 케이시. 방금까지 대화했던 케이시가 나를 모른다니, 이상한 상황이 벌어져 당황한다. 로키가 도착한 곳은 과거의 TVA였다. 새삼 시간선을 넘나들며 이동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단적으로 이 현재만 봐도 머리가 아픈 상황이다. 하지만 그거보다 더 큰 것은 ‘계속 존재하는 자’라는 인간이 여러 세계선을 관리하며 우주의 대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나는 신이야. 그리고 나에겐 영광스러운 목적이 있다고. 로키는 ‘정복자 캉’이 만들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친구들을 불러 모은다.
<로키 2>는 우리가 좋아하던 마블의 상상력이 그대로 구현된 드라마다. 마블이 최전성기를 구가할 때를 상징하는 영화는 세 편이 있다.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캐릭터의 개성을 모두 살리면서 스릴러로서의 재미를 챙긴 경우, 역시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저>에서 극강의 액션을 보여주던 작품도 있었고 <닥터 스트레인지> 1편처럼 눈이 호강하는 시각화와 상상력이 영화의 무기인 때도 있었다. 이 <로키 2>는 <닥터 스트레인지> 1편처럼 상상력의 힘이 드라마의 동력이 되는 경우다. 이 드라마가 이 뛰어난 상상력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점은 인물의 내면이다. 여러 우주를 오가며 인물의 절박함이 어디에 있는지를 조명한다. 대표적으로 이야기 중후반부로 흘러갈 때 모비우스(오언 윌슨)와 로키가 보여준 감정연기는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서서히 쌓아 올린 감정선은 엔딩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며 복잡한 이야기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또 우리가 마블의 드라마/영화를 논할 때 항상 이야기하는 ‘기존 MCU와의 연계성’의 측면에서도 <로키 2>가 구사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하지만 드라마의 그 어떤 장점 중 가장 위에 있는 것은 정서적인 여운이다. 우리가 마블의 드라마와 영화에 열광하던 모든 순간에 로키가 있었다는 것이 이 작품의 엔딩을 더 특별하게 만들 것이다.최근 마블의 아쉬운 타율에 가려지기는 속상한 웰메이드 드라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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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독일] 한스의 선택
<거대한 자유(Grosse Freiheit)>(2021, 세바스티안 마이저)
* 위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1969년 서독, 몇 번째인지 모를 옥살이를 하던 한스 호프만은 ‘175조’ 폐지 목소리를 담은 기사를 보게 된다. 출소한 후 어느 바 앞에 다다르고, 두 남자가 스스럼없이 애정표현을 하며 그곳을 나오는 것을 목격한다. 간판에 적힌 이름은 ‘거대한 자유’. 들어가 홀로 있던 한스는 낯선 남자를 따라 계단을 내려간다. 미로같은 공간, 남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를 욕망하고 있다. 카메라는 그들을 비추지만 집중조명하지는 않는다. 꿈꾸는 듯한 시선과 리듬으로 한스를 따라간다. 이내 미로를 빠져나온 그는 자판기에서 담배를 뽑고, 밤거리로 나와 상점 쇼윈도를 깨 물건을 대강 주머니에 쑤셔넣는다. 여유롭게 서성이다 주저앉아 담배에 불을 붙인다. 이번의 카메라는 길 건너편에 고정된 채 먼발치에서 원테이크로 그를 담는다. 화면은 어둡고, 표정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바 시퀀스에서 가득 울려 퍼지던 음악은 멎은 채다. 단조로운 경보음이 귀를 파고든다. 엔딩크레딧에서는 그마저도 사라지고 고요만이 남는다.
침묵 속에서 관객은 생각에 빠진다, 한스는 왜 교도소로 돌아가기로 했을까. 그에 대한 두 갈래의 해석을 가져왔다. 이에 따라 포스터 아트 또한 다른 정서로 읽히게 될 것 같다.
먼저, 13년 동안 여러 번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더 나은 삶을 바라기를 포기하게 됐고, 머릿속 감옥에 갇혀버렸다고 보는 방향이 있다. 앞서 한스는 레오를 교도소에서 내보내기 위해 그의 거짓 진술을 인정했었다. ‘왜 그랬냐’고 묻는 레오에게 ‘너와 달리 나는 이미 희망이 없다’며 자조했었다.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대사는 오스카와의 미래를 꿈꾸던 십 년 전과 대조된다. 연인을 향한 열정으로 반짝이던 눈은 이제 생기를 잃고 일시적인 위안을 찾는다. ‘거대한 자유’에서 마음껏 서로를 탐하는 남자들을 지나며 제가 속할 곳이 아니라고 느꼈고, 자유를 반납한 후 ‘안락’하고 익숙한 생활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자판기에서 담배를 뽑은 것은 영혼이 억압에 중독되었음을 상징한다. 마침내 ‘거대한 자유’가 ‘(부분적으로)허용’됐을 때, 한스는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잃어버린 채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좀 더 힘을 싣고 싶은 것은 두 번째 해석이다. (배우의 얼굴에 담긴 것이 이에 가깝다고 느꼈다.) 한스는 변한 적이 없다, 늘 사랑의 자유를 위해 망설임 없이 다른 모든 자유를 포기할 준비가 돼 있는 이였다. 십 년 전 오스카에게 동독으로 넘어가자고 말했던 그는, 이제 빅토르에게 함께 도망가자고 제안한다. 다시 교도소에 들어가기로 한 결정은 익숙한 억압으로의 회귀가 아니었다. 빅토르와 같은 중독자의 패턴을 보인 것도, 체념하거나 포기한 것도 아니었다. 한스는 자신이 무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거대한 자유’에서 사랑을 나누는 남자들을 지나치며 그가 느낀 것은 몸의 자유, 그리고 ‘너’의 부재. 그래서 쇼윈도에 돌을 던졌다. ‘너’와의 추억이 담긴 담배에 불을 붙이곤 경찰이 오기를 기다렸다. ‘네가 나올 수 없다면 내가 들어갈게.’, 그에게 자유는, 머무는 장소에 있지 않았다. 사랑에 있었고, 상대방에 있었다.
너무 낭만화한 것일까.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이라 해도- 한 인간의 심리를 정확히 짚어내려 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늘 확실하지만은 않은 말과 행동, 몸짓과 표정을 통해 짐작할 수 있을 뿐이고,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뒤따르는 감상은 달라질 테다. 내가 한스 호프만의 눈빛에서 읽은 바는 위 두 문단 중 후자에 가까웠고, 그를 바탕으로 아래 문장들을 적었다.
1945년, 한스 호프만은 수용소에서 교도소로 ‘옮겨진’다. 파시즘 체제가 내린 형을 2차대전 후에 ‘이어’ 살게 된 것이다. 독일 제국 때 확립되고 나치가 강화한 ‘형법 175조’를 서독이 그대로 따르기로 해서다. 영화가 이 이상한 시대와 국가와 법을 고발하는 방법은, 한스라는 인물로 중심을 잡는 것, 그의 눈에 세계를 담고 세계가 그를 관찰하게 하는 것이다. 허구적 ‘위인’의 (자서전보다는)전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관계의 상대방들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 역시 그를 관찰하고, 시선으로 그에 대해 말한다. 1968년, 재판을 받고, 옷을 벗고, 신체 부위를 내보이는- 그의 행동에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이 전혀 없었던 건 익숙함 때문만은 아니라고 느꼈다. 종종 자조와 체념을 내보이기는 하지만 한스의 태도는 늘 당당하다. 잘못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알고 있다. 아는 것만이 아니라, 그때도 지금도 ‘늘 방법을 찾아낸다’. 한스 호프만은 그 한결같음으로 주변의 폭력성과 비정상성을 선명히 드러내는, 드물게 빛나는 사람이다. (해선 안 될 것은 한스를 밀어낸 오스카나 거짓 진술을 한 레오를 섣불리 평가하는 행위. 레오를 비난할 수 있는 이는 오로지 한스 뿐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저화질 필름에 담긴 비디오였다. 장소는 공중화장실, 카메라는 고정된 채 그곳에서 성행위를 하는 남자들을 촬영한다. 서독 경찰이 숨겨놓은 카메라에 찍힌 영상으로, 재판장에서 공개되어 한스가 ‘175조’를 어겼음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로 쓰인다. 그러나 영화는 먼저 관객에게 그 자체만을 보여주길 택했다. 촬영된 까닭과 재생되는 상황에 대한 설명 없이 본다면, 영상에 담긴 것은 그저 (불법이 아니어야 할 일이 불법인 세상에서) 순수한 욕망을 추구하는 모습일 따름이다. 오스카와의 추억 역시 유사한 비율과 톤의 프레임에 담겨 있다. 그리고 하나 더, 교도소 문에 달린 반입구가 있다, 빅토르가 한스에게 불을 붙여주던. 독방에서 한스가 피운 성냥의 불빛이 꺼지며 1945년으로 연결되는 연출은- 긴 세월 동안 여러 번의 옥살이를 하며 그가 찾은 자유가 무엇인지 탐구하려는 듯하다.
작품이 1945년이나 1969년이 아닌 1968년을 오프닝에 배치한 까닭은, 또다른 시작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래된 인연과, 새로운 사랑의 상대방으로서 재회한 해. 오스카의 죽음을 알고 무너져내리는 자신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빅토르가 십 년 후 마약중독으로 괴로워할 때, 한스는 그 포옹을 돌려준다. 당신의 괴로움을 다 내 피부에 새기겠다고, 내가 붙잡을 테니 당신은 놓아도 괜찮다고 선언하듯 촘촘하고 단단한 그 포옹들. 작품은 빅토르와 한스의 관계를 ‘편견을 넘어선 우정’ 따위로 얼버무리지 않고 정확히 로맨스에 다다르도록 했다. 거기엔 빅토르가 처음부터 틀렸다는 암시가 있다. 어쩌면 먼저 상대를 좋아하기 시작한 쪽이었던 그는, 그 마음을 알아채고 꺼내어 준 한스의 사랑에 구원받았다. 구원은 (차별적 억압의 근거로 이용되곤 했던) 십자가와 성경에 있지 않았다. 찬송가가 울려 퍼지는 예배당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며 남자와 데이트하는, 성경에 바늘로 구멍을 뚫어 러브레터를 쓰는, 그것을 찢어 담배를 말아 피우는 한스의- 조그마한 신성모독, 위대한 사랑에 있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가끔 <거대한 자유>의 포스터를 들여다봤다. 누군가의 머리에 나 있는 문, 그 프레임 안엔 아마도 그 자신일 남자가 갇혀 담배를 물고 있다. 밖에서 불을 붙이는 손은 누구의 것일까, 어쩌면 그역시 자신의 손일지도 모르겠다고 막연히 짐작하기도 했다. 영화를 관람하며 손의 주인이 빅토르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장면이 기억의 방으로 들어온 순간, ‘손은 그 자신의 것이 된다’고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1957년, 컴컴한 독방에서 한스는 오스카와의 추억을 재생했다. 성냥 한 개비를 다 태우고 나서야 담배에 불을 붙였다. 13년 동안 교도소와 독방을 들락거린 그를 살아남게, 아니 살게 한 것은 그 성냥불이었다. 찰나를 태우고 사그라들지만 기억 속에서 반복해 빛을 내는 그것은, 특정한 대상인 빅토르보다는 모든 사랑과 상대방들을 상징함에 더 가깝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한스는 사랑의 감정과 기억에서 얻은 연료로 삶의 불을 붙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어둠 속 잠깐의 빛에 홀려 중독된 것이라 해도, 그 길에 사랑이 있다면- 나는 한스의 마지막 선택을 감히 안타까워하고 싶지는 않다.
<거대한 자유>는 실재했던 부조리와 폭력에 대한 고발, 빅토르와 한스의 오랜 세월에 걸친 사랑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한스 호프만과 그가 택한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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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체가 사라져도 사랑할 수 있을까
벽에 붙여둔 포스터를 보며 생각했다. 결국 인간은 무언가와 닿아야만 하는 존재일까.
방 한 쪽 벽에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를 잘 붙여두고 그 밑엔 잘 틀지도 않는 음반들을 쌓아둔다. 마음에 드는 책은 꼭 종이책으로 구입하고 굳이 손 편지를 써 보내는 우리는,
결국 사랑에도 손을 뻗어 닿고자 하는 것이다.
그럼 그 존재가 사라져 버린다면, 우린 어떻게 사랑을 이어가야 할까.
샬롯 웰스 감독의 영화 <애프터썬>은 31살이 된 주인공 소피가 11살 여름방학, 아빠 캘럼과 떠났던 튀르키예 여름휴가 영상을 돌려 보며 당시를 회상하는 영화다. 관객들은 소피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며, 11살의 그녀는 온전히 알 수 없었던 아빠의 우울을 천천히 목격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캘럼은 영화에서 늘 작은 공간에 존재한다. 캠코더와 연결된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등장하거나 호텔 방의 거울 속에 비춰지는 등 스크린의 가장자리나 희미한 화면, 어둠 속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위태로운 난간 위에 올라서고, 어둡고 파도치는 바다로 뛰어든다. 캘럼은 좀처럼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어딘가로 떠다니는 인물이다. 소피에게 넌 어디든 원하는 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고향에서 조차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영화 후반부에 여의치 않은 지갑 사정에도 무리해서 구입한 카펫은 그가 온전히 발붙일 유일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작은 카펫을 세상의 전부로 여기는 어린 아빠는 소피에게 이를 선물한 듯 보인다. 31살의 된 소피는 자신의 침대에서 카펫에 발을 디디며 일어난다. 캘럼의 작은 카펫은 그가 유일하게 세상과 닿을 수 있는 공간이자, 어른이 된 소피(어쩌면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머물고 있을)가 발 디딜 곳이 되어주는 셈이다. 또, 캘럼의 부재 이후 그녀를 아빠와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제목 애프터썬은 햇볕에 탄 피부에 바르는 크림을 의미한다. 이미 다 그을려 버린 피부지만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바르는 이 크림은 소피와 캘럼이 서로를 돌보는 방식이다. 그들은 영화 내내 애프터썬 크림을 바르며 서로의 존재와 함께함을 확인한다. 부모의 이혼 이후 소피는 주로 엄마와 지내는 듯 보인다. 그녀는 휴가 중 캘럼에게 ‘우리가 같은 태양을 볼 수 있단 사실을 떠올려. 비록 같은 장소에 있진 않더라도, 같이 있는 거나 다름없잖아?’라는 말을 건넨다. 뜨거운 햇볕에 달아오른 피부에 닿는 차가운 크림의 감촉은 여행 내내 소피가 느낄 부드러움이며 계속해서 아빠의 부재를 상기시킬 시린 감각이다.
영화는 계속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캘럼의 춤사위를 비춘다. 그의 춤은 고통의 몸부림이자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이며, 어떻게든 삶을 붙들어 보려는 시도다. 엔딩 장면에서 소피와 캘럼은 Under Pressure 음악 속에서 함께 춤을 춘다. 11살의 소피는 아빠의 우스꽝스러운 춤을 창피해하면서도 기꺼이 그와 춤추고 31살의 소피는 닿지 않을 절규와 함께 있는 힘껏 그를 껴안는다. 비로소 아빠의 우울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어버린 소피에게는 더 이상 그의 실체를 감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한다. 사랑하는 대상의 실체를 잃는 것은 이를 불가능하게 하여 우리를 괴롭힌다. 그렇기에 우리는 떠난 이에 대한 기억을 기어코 끄집어내어 그를, 또 나를 안아주어야만 한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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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
스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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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는 불안하다. '나'밖에 없던 세상에 갑자기 '세계'가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나와 세계의 간극을 인지하는 동시에 타자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때 우리는 무언가가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거나, 친구와 나를 일치시키기도 한다. 또래집단의 영향력이 가장 강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는 어떤 감성을 가진 어른이 될지를 좌우한다.
학교폭력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데, 가장 마음이 아픈 건 자아가 형성되는 이 시기에 한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렸고, 그것이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폭력 뒤에는 트라우마가 남는다.
노래며 영화며 유행처럼 제목이 길다.
직관적이어서 한번에 이해할 수 있긴 하나 이제 사람들이 은유를 이해할 수 없게 된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편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는 직관적인 듯 보이지만 제목만으로 내용을 유추하기는 어려웠다.
원제인 <All the Bright Places>를 <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로 번역한 건 <보니 앤 클라이드>를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로 번역한 것과 비슷하겠다.
전형적인 하이틴 영화는 아니다.
하이틴 영화라 하면 축제 같은 데서 우연히 만난 청소년들이ㅡ이때 여학생이 모범생이고 남자에게 관심이 없거나, 남학생이 찐따 캐릭터로 무리에서 서열이 낮든지 둘 중 하나는 해야 한다ㅡ 어쩌다 보니 사랑에 빠지고, 어쩌다 보니 주변에서 모함하고, 어쩌다 보니 극복하지만, 대입이 그들을 가로막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난관을 다 극복한 후 해피엔딩.
매일 조깅을 하는 시어도어 핀치는 같은 학교 학생인 바이올렛 마키를 만난다.
바이올렛은 다리 난간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다.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기세다.
시어도어는 바이올렛을 잘 구슬려 다리에서 내려오게 한다.
바이올렛이 궁금해진 시어도어는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친해질 구상을 한다.
하이틴 영화의 상큼하고 기분좋은 부분들이다. 어른들에게서 보이는 질퍽한 욕망 같은 게 보이지 않으니까.
시어도어는 바이올렛의 상처를 본다. 교통사고로 언니를 잃고, 생존자에게서 보이는 죄책감 같은 것들.
시어도어는 마이애미의 아름다운 곳을 소개하는 숙제를 빌미로 바이올렛과 함께 한다.
각종 어려움에 봉착하나, 시어도어는 끈질기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어도어는 굉장히 밝고 에너제틱한 친구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시어도어의 방에는 온갖 문구로 채워진 포스트잇이 가득하다.
학교에서는 정신적인 문제로 상담을 받고 있지만 불성실하며, 학교에서는 '괴물'이라 불린다.
가끔 사라졌다 나타나는데, 시어도어의 친구들은 '원래 그렇다. 곧 돌아온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바이올렛도 시어도어의 어두운 면들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그는 별일 아니라고 할 뿐이다.
이들의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의 영상미에 빠지게 된다.
처음으로 갔던 '마이애미에서 가장 높은 곳'. 해발 300미터가 조금 넘는 언덕과 낡은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모습, 꽃과 호수, 낡은 오두막.
내가 선생이라면 그런 곳을 찾으라고 숙제를 내어주었을 것 같다.
아주 가까워진 두 사람. 하지만 학교에서 시어도어 핀치는 여전히 괴물이다.
바이올렛에게 핀치를 조심하라는 말을 하는 남자애를 핀치가 패버리고, 또 숨어들어간다.
바이올렛은 핀치를 찾아 그의 집에 갔다가, 벽에 붙은 수많은 포스트잇을 본다.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버린 핀치.
바이올렛은 핀치로부터 위로를 받고 상처를 조금씩 치유했던 것처럼 그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보려고 한다.
하지만 핀치는 집안 살림을 다 부술 듯이 던지고는 집을 나가버린다. 그리고 또 사라진다.
그가 발견된 곳은 둘이 함께 뛰어들었던 호수.
지구 반대편으로 이어져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그 호수에서 시어도어의 운동화와 옷이 발견된다.
말할 수 있는 상처들은 이미 어느 정도 극복한 상처일 것이다.
너무 아픈 것들은 차마 꺼내어 볼 수도 없어서 마음 속 어딘가에 숨겨두고 꽁꽁 얼려버린다. 다시는 꺼낼 수도 없게.
그래서 별 거 아닌 걸로 치부하기도 쉽다.
때로는 상처 많은 사람들이 더 밝아 보인다. 그들은 스스로의 상처를 돌보는 것이 두려워 남의 상처들을 대신 어루만진다.
그리고 우연히 타인에게 자신의 상처를 보였을 때 전속력으로 도주한다.
시어도어는 그런 인물이다.
그러므로 영화에서도 시어도어의 서사가 부족하다.
그의 우울과 불안과 폭력성을 대변해 줄 이야기가 없다.
시어도어가 죽지 않기를 바랐다. 어디선가 나타나서 이제 나도 준비되었으니, 다시 시작해 보자고 말하기를 기다렸다.
100분이 조금 넘는 러닝타임 내내 위태하고 불안했다.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건 폭력적이다.
이런 이유로 우울하고, 혹은 이런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서사가 없을 때, 사회는 우울증 환자를 비난한다.
의지가 부족하다, 남들도 다 그만큼 힘들다, 너만 유난이다, 예민하다.
"깨어 있기"를 간절히 바랐던 시어도어는 깨어 있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깨어 있는 게 대수냐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저 깨어 있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가진 힘을 다 쓰기도 한다.
이 영화의 미덕이라 하면, 친구의 자살 후 남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보여준 것이다.
자살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빠지지 않고, 바이올렛은 시어도어와 함께 했던 여행을 발표하며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그와 함께한 여행의 궤적을 다시 한 번, 그것도 스스로 운전하여 따라간다.
어쨌든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 눈부신 세상 끝까지, 너와 내가 함께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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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았지만 너무 아파서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영화들이 있다.
아마 나는 다시 이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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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현실적인 디스토피아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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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은 서기 2027년을 배경으로 한다. 지금이 2022년이니, <칠드런 오브 맨>의 세계가 구현된다면 바로 지금이다. 출생자가 없으니 살아있는 자들이 다 죽으면 인류가 멸망하는 세상. 영화가 개봉되었던 2006년에는 픽션이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반쯤은 논픽션이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는 다니스 고렛 감독의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는 2043년이 배경이다. 20년 뒤에는 이 영화를 두고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이라고 말하게 될까. 하지만 이 영화는 지금도 충분히 현실적이다.
제국주의 메타포
거대 독재국가 '에머슨'은 4살 이상의 아이들을 모두 아카데미로 보낸다. 이름은 아카데미이지만 사실상 군대라고 볼 수 있다. 에머슨은 전쟁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데, 살상무기가 바로 아이들인 것. 한 번 아이들을 아카데미로 빼앗기면 다시는 볼 수 없다. 그러니까 아이를 국가에 헌납하는 것이다. 그 국가가 조국도 아니다. 원래 살던 땅을 점령한 침략자이자 식민지 통치자들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있는 지금, 이 영화는 오히려 현실보다 덜 비극적여 보인다. "하나의 나라, 하나의 언어, 하나의 국기"를 표방하는 에머슨의 구호는 낯설지 않다. 러시아뿐인가. 중국 역시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고 있다. 영화는 마치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던 1492년처럼 구현된다. 흰 피부와 최첨단 무기를 가진 사람들이 토착민들이 살고 있는 땅을 빼앗고 그들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에머슨은 식민지의 사람들에게 드론으로 식량을 배급한다.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들은 드론이 떨어뜨리는 식량들로 연명하는데, 어느 날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죽어간다. 식량에 바이러스를 심은 것. 우리는 침략자들이 가지고 온 균 때문에 토착민들이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어갔다는 것을 역사에서 배웠다.
디스토피아의 종말론적 세계관이라기 보다는 과거의 재현에 가깝다. 실제로 토착민의 피가 흐르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였을지도 모르겠다. 연출을 맡은 타이카 와이티티 역시 뉴질랜드 토착민을 조상으로 둔다.
우리나라의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기간과도 거의 유사하다. 일제의 대동아공영론이나 가상 국가인 에머슨의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언어를 말살하고 땅과 민족성을 빼앗는 것. 일제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통치 방식은 비슷비슷하다.
요컨대 이 영화에서 표현하는 디스토피아는 새로운 것(외계인, 로봇 등)의 등장이라기 보다는 이미 존재했던 제국주의적 학살의 재현이다.
구원자 서사
영화는 내래이션으로 시작된다. 명상을 하면서 거대한 모기떼와 북쪽에서 구원자가 찾아오는 것을 보았다는. 니스카와 그의 딸 와시즈는 에머슨의 눈을 피해 숲속에 산다. 무려 11년이나 에머슨을 따돌렸다.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새 사냥을 해야 하는데 와시즈는 새에게 말을 건다. 그의 말을 알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새는 날아 가버리고, 식량을 구하지 못해 굶어야 하는데다 설상가상 와시즈의 다리가 덫에 걸린다.
어쩔 수 없이 황폐화된 도시로 돌아간 모녀. 약을 구하고 싶지만 보건소에 가면 당연히 와시즈가 끌려갈 테고, 속수무책으로 친구의 집에 숨는다. 친구의 아들은 에머슨에 끌려가 군인이 되었다. 덫에 걸린 상처는 점점 깊어지고 열까지 끓어오르는 와시즈를 구하기 위해 니스카는 스스로 아이를 에머슨에 보낸다.
이렇게 되면 관객들이 예상할 수 있듯 영화는 '엄마의 딸 구하기' 양상으로 접어든다. 시장에서 말린 과일을 팔며 생계를 이어가는 니스카에게 접근한 남자는 같이 에머슨으로 가자고 제안하고, 또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에 의해 크리족의 본거지로 가게 된다. 전개가 다소 갑작스럽고 불친절하다.
크리족은 공동체사회를 이루어 사는 토착민이다. 그들의 모습은 인디언과 비슷하다. 그들은 니스카가 북쪽에서 온 크리족이라는 걸 알고는, 그가 자신들의 구원자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영화 초반에 나온 내래이션은 크리족의 예언인 것.
니스카가 할 일은 크리족 아이들을 데리고 빅스톤이라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주면 딸 와시즈를 에머슨으로부터 구해주겠다는 딜. 알고 보니 크리족들도 아이들을 숨겨두었고, 그 아이들을 안전지대로 데리고 가야 했다. 그 역할을 할 사람이 니스카라는데, 한 부족의 운명을 맡길 사람을 너무 검증없이 믿어버리는 건 아닌가 싶다.
에머슨의 이간질로 딸은 엄마가 자기를 버린 줄 알고 있다. 이간질과 세뇌는 상대편을 우리편으로 끌고 오기에 너무 좋은 수단이다. 상대가 집단에 대한 소속감이 클수록 효과도 커진다. 아무튼 와시즈는 와시즈대로, 크리족은 크리족대로, 니스카는 니스카대로 난관에 봉착한다.
거대한 국가주의와 힘없는 가족주의의 싸움에서는 필연적으로 소집단이 패하게 된다. 그때 소집단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구원자 신화이다. 영화는 힘없는 토착민들에게 구원자를 내려줌으로써 그들을 구하고자 한다. 니스카가 이들을 구하게 될까, 와시즈를 구하게 될까, 혹은 크리족이 이 모녀를 구하게 될까.
디스토피아는 왜 비슷한 모습일까?
타이카 와이티티의 (아직까지는) 대표작인 <토르-라그나로크>의 환상적인 영상과 <조조 래빗>의 아름다움을 생각해 보면, <나이트 레이더스>에서는 와이티티가 왜 자신만의 디스토피아를 구현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기대했던 포인트가 와이티티의 연출이었는데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왜 모든 디스토피아는 회색일까.
눈이 내려 컴컴한 숲, 에머슨 시민권을 얻지 못한 자들이 사는 곳, 그들의 옷, 골목 등 모든 것이 회색이다. 디스토피아들이 대부분 회색으로 표현되는 것처첨, 이 영화는 한편으로는 지난 디스토피아 영화들의 답습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과하게 화려하고 발랄한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는 영화가 나오면 좋겠다. 회색 디스토피아는 너무 많다.
요즘 2시간 반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영화가 주를 이루는데, <나이트 레이더스>는 러닝타임 101분이라는 대단한 미덕이 있다. 러닝타임이 짧은 탓인지 전개가 갑작스럽거나 매끄럽지 않은 부분들이 꽤 있었다. 세계관의 구현도 다소 아쉬웠다. 다른 디스토피아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변별점이 부족하지 않을까 싶은. 그러나 아직 작품수가 많지 않은 감독이고, 첫 장편이기에 앞으로의 행보가 무척 기대된다. <나이트 레이더스>의 속편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감독이 세계를 그리고 인식하는 방식이 좋다. 거대한 힘이 휘두르는 폭력 앞에 우리 모두는 패전국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힘이란 군사력뿐만 아니라 자본력도 포함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러시아가 있고, 신장 위구르 지역 및 기타 소수민족을 핍박하는 중국이 있다. 그뿐이겠는가. 우리나라 내에서도 폭력은 끝없이 자행된다.
<나이트 레이더스>에서 세상이 디스토피아가 된 원인은 외계인도,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도, 어떤 특별한 힘도 아닌 그냥 못되고 이기적인 인간들이다.
그럼에도 폭력에 굴하지 않는, 서로를 구원하려는 인간이 있는 한 이 세상이 쉽게 디스토피아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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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세상 끝에서, 너와 나> 이야기를 하면서도 영화 제목에 대해서 한번 언급했는데, 나이트 레이더스... 나는 처음에 '밤의 전파'인가? 했다. 알고 보니 Rader가 아니라 Raider이니 '야간 침입자'인가... 알고 보지도 못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도 사실 어느 쪽이 레이더스인지 모르겠다.
에머슨처럼 전 세계가 하나의 언어를 쓰는 것도 아닌데... 알고 보면... <나이트 레이더스>의 디스토피아는 이미 진행 중인 게 아닐까?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한 후 남기는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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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 알고리즘] 어른들을 위한 동화
[무비 알고리즘 Movie Algorithm]:
[무비 알고리즘]에서는 다양한 영화들을 하나로 묶어본다. 너무나 달라보이는 영화들. 그것들에게서 어떠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이번 무비 알고리즘의 연결고리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그리고 다룰 작품은 웨스 엔더슨, 기예르모 델토로, 팀 버튼, 헬리 셀릭이라는 네 명의 거장이 자신만의 색깔로 만들어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네 편이다. 공포와 코미디, 슬픔과 행복, 차가움과 따뜻함까지 그들의 영화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 지금부터 그 영화들에 담긴 연결고리를 알아보자.길을 지나다가 발견한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영화 포스터. 포스터를 본 아이는 엄마, 아빠에게 그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러 가자고 조른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스토리가 진행되자, 아이는 영화의 기괴함과 공포스러움, 그리고 잔인한 현실에 깜짝 놀라 눈물을 흘린다. 엄마, 아빠에게 영화관에서 나가자고 말하는 아이. 하지만 아이의 말을 못 들은 것인지 엄마와 아빠는 영화에 몰입했고, 그들의 눈가는 눈물로 젖어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 아이들의 눈물과는 다를 것이다. 지금부터 어른들을 울린 동화 같은 이야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나보자.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Stop-Motion Animation)’이란?
영화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전에 ‘스톱모션’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스톱모션은 애니메이션의 한 기법으로, “물체를 아주 조금씩 움직여서 매 프레임을 촬영하고 이를 영상으로 만드는 기법”을 말한다. 이처럼 프레임을 연결하면 물체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듯한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스톱모션은 캐릭터를 만드는 재료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질감을 묘사하는데 용이하다. 클레이나 목재, 플라스틱, 고무 등 다양한 재료를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촉각적 심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실질적 대상을 만들어서 촬영하므로, 다양한 카메라 구도로 연출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고유의 아날로그적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스톱모션은 제작 시간과 비용이 막대하게 들고,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한 기법이라 많은 제작사가 선호하는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해외의 ‘라이카 스튜디오’나 ‘아드만 스튜디오’, 국내의 ‘콤마 스튜디오’와 같이 스톱모션 기법을 고집하는 제작사들도 존재한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다른 기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비단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뿐 아니라 실사영화나 광고 등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된다. 그럼 지금까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으니, 네 편의 영화들에 대해 알아보자.
<유령신부 Corpse Bride >
- 영화: 유령신부 (2015)
- 감독: 팀 버튼, 마이크 존슨
- 출연진: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 에밀리 왓슨 外
‘죽음과 삶 따윈’
어느 유럽 마을 생선 가게 졸부의 아들인 ‘빅터 (조니 뎁 分)’. 그는 신분상승을 원하는 부모님에 의해 몰락한 귀족의 딸인 ‘빅토리아 (에밀리 왓슨 分)’와 결혼을 약속한다. 서약 내용을 외우기 위해 숲속에 간 빅터는 너무나 몰입한 나머지 땅 속에 있던 ‘에밀리 (헬레나 본햄 카터 分)’의 손가락 뼈에 반지를 끼우게 된다. 빅터가 자신에게 청혼했다고 생각한 에밀리는 빅터를 사후세계로 데리고 간다. 사후세계에 간 빅터는 에밀리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동정하게 된다. 그러나 빅토리아가 자꾸 생각나는 빅터. 결국, 에밀리를 속여 현실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빅터는 빅토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이때, 자신이 속은 것을 깨달은 에밀리는 빅터를 다시 사후세계로 데리고 간다.
에밀리는 빅터의 청혼이 실수였음에 좌절하는데, 그를 위로해주는 빅터로 인해 그들은 점점 가까워진다. 사라진 빅터로 인해 갑부 ‘바키스 (리처드 E. 그랜트 分)’와 결혼하게 된 빅토리아. 그 소식을 들은 빅터는 독약을 먹고 자신도 죽어 에밀리와 결혼하기로 한다. 하지만 바키스가 자신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했다는 것을 알게 된 빅토리아는 교회로 도망치고, 그 곳에서 빅터와 에밀리의 결혼식을 보게 된다. 에밀리 역시 빅토리아를 보게 되는데 그들을 위해 자신이 빅터를 놓아주기로 한다.
그 순간 빅토리아를 찾아온 바키스. 빅터와 바키스는 치열한 결투를 하게 되고, 결정적 순간 에밀리가 빅터를 구해준다. 사실 바키스는 오래전 에밀리를 죽인 장본인이었고, 다시 한번 에밀리를 모욕한다. 하지만 독약을 와인으로 착각하고 마신 바키스. 결국 악당 바키스는 유령들에게 끌려가게 된다. 그리고 빅터와 빅토리아를 위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한 에밀리는 나비가 되어 그들의 행복을 빌며 하늘로 돌아간다.
‘산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
팀 버튼 감독은 실사영화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발휘했지만, 그의 기괴하고 독특한 상상력은 스톱모션에서 더욱 빛났다. 그의 첫 작품이었던 <빈센트> 역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었고,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이나 <프랑켄위니>와 같이 대중과 비평가 모두를 만족시킨 훌륭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팀 버튼 감독은 이번 <유령신부>에서도 특별한 연출들을 선보였다.
유령신부에서 잘 나타나는 연출은 먼저 두 세계의 색감 대비이다. 작품의 색감을 살펴보면 현실세계와 사후세계의 색감이 너무나도 대비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빅터에게 있어 현실은 자신이 무엇 하나 결정할 수 없는 수동적이고 억압된 공간이다. 반면 저승은 자신이 선택하고 이에 따라 온전히 행동할 수 있는 주체성과 자유가 강하게 나타나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숲이나 집과 같은 현실 속 공간은 회색이나 갈색 등 차분하고 낮은 톤의 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반해 사후세계의 공간들은 청록색이나 보라색과 같이 화려한 색으로 활기차게 묘사된다.
캐릭터들 역시 마찬가지로 빅터의 부모님, 빅토리아의 부모님, 바키스와 같이 현실세계의 부정적 캐릭터들은 무채색의 색감을 가진데 반해, 에밀리와 벌레 친구, 유령들은 형형색색의 색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에밀리가 일반적인 유령의 색인 회색이나 검정색이 아닌 파란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다는 점 또한, 색감을 통해 해당 캐릭터의 성격을 의도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이처럼 유령이나 괴물 등 인간이 아닌 대상에게 오히려 인간보다 더욱 인간다운 모습을 부여하는 것은 팀 버튼 감독의 다른 영화인 <비틀쥬스 시리즈>나 <가위손>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또한 스톱모션 기술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에밀리로 대표되는 캐릭터들의 표정 역시 세밀하게 묘사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특유의 질감을 활용해, 얼굴 근육이나 눈동자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이다.
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에밀리나 빅터, 빅토리아와 같이 길쭉하고 빼빼 마른 캐릭터들이나 해골들은 <팀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속 ‘잭 스켈링턴’과 마찬가지로 스톱모션과 만났을 때 더욱 시각적 재미를 준다. 작품 초반 사후세계에서 유령들이 에밀리의 과거를 이야기하며 춤을 추는 장면이나, 작품 후반 빅터와 바키스의 결투 장면에서도 등장인물들의 체형은 스톱모션으로 인해 시원시원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희생’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놓아 줄게”라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되고, 역설적으로 들릴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 내내 빅터만을 사랑했지만 그를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놓아준 에밀리. 그녀의 마음은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어느 순간 온전히 이해하고 느끼게 된다. 삶과 죽음이라는 비유가 너무나 극단적이라고 할지 몰라도, 사랑이나 꿈 등을 무언가가 갈라 놓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 너무 좌절하거나 매달리지 말자. 멍이 들 만큼 꽉 쥔 손도 조금은 놓아보면 어떨까.
<개들의 섬 Isle of Dogs >
- 영화: 개들의 섬 (2018)
- 감독: 웨스 엔더슨
- 출연진: 브라이언 크랜스턴, 에드워드 노턴, 란킨 코유 外
‘개와 인간’
가까운 미래, 일본의 한 도시 ‘메가사키’ 그곳에서는 시민들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다. 그 병은 바로 ‘개 독감’ 즉, 개가 전염병의 원인이었다. 그러자 시민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메가사키의 시장 ‘고바야시 (노무라 쿠니치 分)’는 도시의 개들을 쓰레기 섬으로 내쫓는 도그노포비아 정책을 실시한다. 하지만 고바야시의 입양아 ‘아타리 (란킨 코유)’는 아버지와 다르게 개를 사랑했고, 자신의 개 ‘스파츠 (리에브 슈러이버)’를 찾기 위해 쓰레기 섬, 일명 개들의 섬으로 향한다.
그 곳에서 아타리는 ‘치프 (브라이언 크랜스턴)’를 비롯한 개들을 만나, 함께 모험을 떠나게 된다. 아타리와 치프 일행은 스파츠가 코바야시 연구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곳에 도착한다. 하지만, 아타리를 잡으러 로봇견과 사람들이 나타나 그들은 위험에 빠지게 되는데, 그 순산 스파츠가 나타나 아타리와 치프를 구해준다. 그러던 와중 처음에는 아타리에게 적대적이었던 치프가 너무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소년인 아타리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스파츠와 치프가 형제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어느덧 새로운 무리의 리더이자 아버지가 된 스파츠. 스파츠는 아타리의 경호견 자리를 치프에게 넘겨준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고바야시 시장이 쓰레기 섬의 개들의 안락사 조건으로 재선에 성공하였고 파티를 열고 있었다. 파티와 동시에 개들에게 겨눠지는 와사비가 든 총. 그 순간 아타리와 개 백신의 혈청을 가진 ‘트레이시 (그레타 거윅 分)’가 나타나고 그들은 치프에게 혈청을 주입한다. 개들을 살리자고 연설하는 아타리. 아들의 연설에 고바야시 시장은 마음을 바꾸고 안락사 계획을 취소하려 하는데, 그 순간 고바야시 시장의 집사가 공격을 하며 파티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결국, 아타리 일행은 승리하나 아타리와 스파츠는 크게 다친다. 다친 아들을 위해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준 고바야시 시장. 결국 아타리는 깨어나게 되고, 메가사키의 새로운 시장이 되어 스파츠와 치프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털 하나부터 도시 전체까지’
미장센하면 뺄 수 없는 웨스 엔더슨 감독답게, 이 미장센을 위해 <개들의 섬>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통해 탄생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자체가 수많은 돈과 노동을 필요로 하지만 이번 영화는 일반적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넘어섰다. 영화를 만드는데는 2년이 넘게 걸렸는데, 대부분의 시간이 퍼펫 (애니메이션에 사용된 봉제인형)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개들의 섬을 위해, 개 캐릭터 퍼펫 500개, 인간 캐릭터 퍼펫 500개 총 1000개의 퍼펫이 만들어졌다. 또한 캐릭터 하나당 총 다섯 가지의 사이즈가 제작되는등 엄청난 노력이 들었다.
하지만 단순히 양적 노력 말고도 질적 노력 역시 병행되었다. 질적 노력의 대표적인 것이 퍼펫의 소재였다. 작품 속 개들의 털 질감을 현실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테디베어 공장에서 사용되는 알파카 털과 메리노 양털이 사용되었으며, 인간 캐릭터의 피부 생기를 살리기 위해 반투명 수지 점토를 사용했다. 또한 실제 같은 표정을 구현하기 위해 얼굴 교체 시스템을 사용했다. 이를 통해, 신속하게 표정변화를 표현할 수 있었다.
캐릭터 말고 배경을 만드는데 있어서도 커다란 규모의 세트장을 만들었고, 진짜 도시처럼 곳곳에 쓰레기를 배치함으로써 현실감을 더했다. 또한 CG를 최대한 배제하고 아날로그 제작 방식을 통한 디테일을 중시하는 웨스 엔더슨 감독답게, 구름 하나하나 강물 하나하나까지 만들었다. 화면 속 구름은 솜으로, 강물은 샌드위치 포장지로 된 컨테이어 벨트로 만들었다. 또한 작품에 기괴함과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에서 사용하는 기법인 ‘On Ones (1초당 24프레임)‘가 아닌 ‘One twos (2초당 24프레임)’를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누가 봐도 웨스 엔더슨의 영화임을 알 수 있게 만드는 그의 대표적 특징, 대칭적 구도와 균형. 속도의 조절을 통해 만들어진, 정적인 표현과 동적인 표현의 오고 감. 적절한 유머와 만화를 보는 듯한 이펙트와 편집은 스톱모션의 매력을 잘 살렸으며, 작품의 재미를 극대화했다.
‘저항의 미학’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만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들개>나 <7인의 사무라이>를 오마주한 구도가 나오는가 하면, 일본의 다양한 문화가 아름답게 묘사되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어가 작품 내내 등장하기도 하는 등 작품은 일본과 너무나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작품은 개봉 직후, 서양인의 관점에서 보는 동양(일본)에 대한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갖고 있다고 논란이 되었다. 그 이유는 작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스테이시’ 일본 사회의 비랍리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백인 구원자의 서사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어가 자막 없이 등장한 것도 관객의 상상의 자유와 전체적 스토리의 집중을 위해서라는 감독의 설명과는 다르게, 인종차별 논란의 불씨를 지피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과 별개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만들어낸 훌륭한 비주얼과 믿고 듣는 음악은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또한 개와 인간의 관계를 통해 파시즘과 환경파괴에 대한 경계, 다수에 대한 소수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어린 소년과 그의 개가 만든 우정, 그리고 그들이 함께하는 투쟁과 이야기는 너무나 작고 절실하기에 더욱 아름다웠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Guillermo Del Toro's Pinocchio >
- 영화: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 감독: 기예르모 델토로, 마크 구스타프슨
- 출연진: 이완 맥그리거, 데이비드 브래들리, 그레고리 맨 外
‘가족은 만들어지는 것’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한 노인이 거대한 소나무를 깎고 있다. 노인의 이름은 ‘제페토 (데이비드 브래들리 分)’. 노인이 만든 것은 비행기 폭격으로 죽은 자신의 아들을 닮은 목각 인형, ‘피노키오 (그레고리 만 分)’였다. 피노키오를 만든 그날 밤, 제페토가 잠든 사이 숲 속의 ‘푸른 요정 (틸다 스윈튼 分)’이 피노키오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피노키오는 생명을 갖게 된다. 살아난 피노키오를 본 제페토는 충격을 받으나 이내 피노키오를 자신의 아들처럼 키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본 유랑극단의 ‘볼페 백작 (크리스토프 발츠 分)’은 피노키오를 이용하기 위해 데려간다. 하지만 피노키오를 다시 찾은 제페토와 볼페 백작. 그들이 싸우다가 피노키오는 교통사고를 당해 정신을 잃는다.
그러나 불사의 몸이었던 그는 이내 다시 이승으로 돌아온다. 볼페 백작의 부당한 계약서의 내용을 본 피노키오는 제페토를 위해 극단에서 일하게 된다. 점점 인기를 얻게 된 피노키오는 어느덧 총통 ‘베니토 무솔리니 (톰 케니 分)’를 위해 공연하게 되는데, 피노키오는 공연을 일부로 망친다. 결국 무솔리니의 경호원에 총에 맞아 죽은 피노키오. 이번에도 역시 피노키오는 이승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피노키오는 불사의 몸의 활용가치를 인정받아 군사훈련을 하게 되는데, 훈련 중 공습경보가 울린다. 그러나 공습에 살아남은 피노키오의 앞에 볼페 백작이 나타나고 피노키오를 죽이려고 한다. 버로 그 순간, 피노키오의 친구가 된 볼페 백작의 원숭이 ‘스파차투라 (케이트 블란쳇 分)’이 그를 구해준다.
하지만 그들은 바다로 떨어지고, 바다괴물의 뱃속에 들어온다. 거기서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 제페토와 세바스티안(이완 맥그리거 分)과 재회한다. 그리고 그들은 괴물이 재채기하는 틈에 다행히 탈출하지만, 그 순간 기뢰가 터져 모두가 위험에 빠지고 피노키오는 죽게 된다. 한시가 급한 피노키오는 제페토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영생을 포기하고, 영속의 모래시계를 깨버린다. 결국, 목숨이 하나 남은 평범한 목재인형이 된 피노키오. 그는 제페토와 스파자투라, 세바스티안 모두를 구하고 목숨을 다한다.
그 모습을 본 세바스타안은 피노키오를 올바른 길로 이끌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냐며, 그를 돌려달라고 푸른 요정에게 애원한다. 푸른 요정은 그의 말을 인정하고, 세바스티안의 소원을 들어주게 되며 피노키오는 다시 살아난다. 제페토는 피노키오에게 사랑한다고, 네 모습 그대로 살아달라고, 피노키오는 제페토에게 아버지가 되어달라고 말한다. 제페토, 피노키오, 세바스티안, 스파자투라는 한 집에서 서로가 생명을 다할 때까지 살아가며 영화는 끝난다.
‘나무와 동화 ’
앞서 본 작품의 감독들 역시 자신만의 특별한 세계와 개성이 있지만, ‘기예르모 델토로’ 역시 잔혹하고 기괴하지만, 또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다. 어찌 보면 ‘팀 버튼’ 감독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필자는 기예르모 델토로의 세계가 팀 버튼 감독보다도 진중하고, 잔혹하며 무겁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 내내 깔려있는 찝찝하고 불쾌한, 하지만 어딘가 따뜻한 분위기. 이번 작품에서 이 분위기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캐릭터의 질감이다. 작품의 주인공 피노키오만을 두고 보더라도 정말 나무로 만든듯한 질감이 가히 예술이다. 목각인형 특유의 질감을 그대로 재현했으며, 그 거칠고 불완전한 질감은 피노키오의 아직 완성되지 못한 미숙하고 순수한 자아와 거기서 오는 불안감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스톱모션 특유의 연출을 통해 물리적 질감이 잘 드러났다. 또한 수많은 크리쳐 디자인을 만들어온 기예르모 델 토로답게 ‘푸른 요정’의 날개나 ‘장의사 토끼들’의 털, ‘바다 괴물’의 피부 등은 사실적이진 않지만, 기괴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잘 전달했다.
피노키오의 움직임과 카메라 움직임 역시 스톱모션의 특징과 어울러져 특유의 느낌을 만들었다. 목각인형이라는 피노키오의 특징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애니메이션 기법은 단연 스톱모션일 것이다. 사람과 다르게 유연성이 없는 딱딱한 나무처럼 걸어다니는 피노키오의 움직임은 스톱모션만이 주는 정지된 느낌과 맞물려 절묘하게 작용한다. 카메라 움직임 역시 피노키오를 위주로 다이나믹하게 따라가거나, 공습이나 바다괴물 장면처럼 위험한 상황에서는 정말 미세하게 흔들리면서 실사 영화를 보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이를 통해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몰입이 더욱 쉬웠다. 이 외에도, 전쟁 중인 이탈리아 마을의 모습이나 바다, 숲 등의 배경을 충실히 구현해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동화의 느낌을 살렸다.‘세상 끝에서 나와’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은 그의 작품 <악마의 등뼈>나 <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과 같이 전쟁이나 냉전시대의 혼란함에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하곤 했다. 이번 작품 역시 1차 세계 대전이라는 전쟁 상황을 바탕으로 동화 피노키오를 새롭게 재해석한 것이다. 피노키오는 작품 내내 제페토에게 그의 죽은 아들 ‘카를로’의 대체재 느낌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고 피노키오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면서, 피노키오는 카를로가 아닌 제페토의 아들 피노키오 그 자체가 된다.
전쟁이나 인신매매, 죽음 등 비도덕적이고 고통스러워서 인간이 무력감을 느끼는 상황 속에서 피노키오뿐 아니라, 제페토 역시 성장한 것이다. 순수하지만 따뜻한 피노키오. 이제 필자도 어느덧 자라, 아이가 아닌 어른의 시점에서 피노키오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피노키오를 바라보니, 티끌 하나 없는 순수함을 가진 그가 부러워졌다. 부디 피노키오는 가슴 속 그것을 영원히 잃지 않기를 바란다.
<코렐라인: 비밀의 문 Coraline>
- 영화: 코렐라인: 비밀의 문
- 감독: 헨리 셀릭
- 출연진: 다코타 패닝. 테리 해처, 존 호지맨 外
‘꿈 속으로, 꿈 속에서’
새 집으로 이사온 ‘코렐라인 (타코타 패닝 分)’ 그녀에게 새 집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상한 이웃들에 찝찝한 풍경, 거기에 계속되는 부모님의 무관심까지. 심심한 코렐라인은 수맥 찾기 놀이를 하다 검은 고양이와 이웃집에 사는 ‘와이비 (로버트 베일리 주니어 分)’를 만나게 된다. 집에 돌아온 코렐라인은 집을 돌아다니다 막혀있는 작은 문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날 밤 어떤 쥐가 그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고 코렐라인은 따라가게 된다. 코렐라인이 통로를 지나 들어간 곳은 ‘다른 세계’였다. 그곳에는 단추 눈을 가진 ‘다른 엄마 (태리 해처 分)’와 ‘다른 아빠 (존 호지맨 分)’가 있었고, 그들은 너무나 친절했다. 그렇게 다른 세계에 빠져버린 코렐라인은 그곳과 현실 세계를 왔다갔다하게 된다. 그러나 코렐라인에게 그 세계는 위험하다고 말하는 이웃들과 고양이. 하지만 코렐라인은 이를 무시한다.
평소처럼 다른 세계에 있던 코렐라인. ‘다른 엄마’는 코렐라인에게 이 곳에서 살고 싶다면 눈에 단추를 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에 두려움을 느낀 코렐라인은 얼른 잠을 자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 하지만, 눈을 뜨니 여전히 다른 세계였다. ‘다른 아빠’의 말실수로 코렐라인은 다른 세계가 ‘다른 엄마’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녀가 마녀라는 것을 알게된다. 결국 코렐라인은 탈출하려 하나, 다른 엄마가 이를 막아서고 코렐라인이 계속해서 반항하자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코렐라인을 거울 감옥에 가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눈과 생명을 빼앗긴 3명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다른 와이비의 도움으로 겨우 현실 세계로 돌아온 코렐라인. 하지만 코렐라인의 부모님은 마녀에게 잡혀간 상태였다.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다시 다른 세계로 돌아간 코렐라인. 그녀는 자신의 눈과 부모님을 걸고, 마녀와 내기를 하게 된다. 세 개의 눈을 찾아야 하는 코렐라인. 그녀는 마녀의 방해에도 세 개의 눈을 모두 찾아낸다. 그러나 내기에 졌지만 마녀는 인정하지 않았고, 코렐라인은 마녀가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문을 열게 유도해, 부모님과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현실 세계와 다른 세계를 오갈 수 있는 열쇠를 찾기 위해 현실세계로 찾아온 마녀의 손. 코렐라인은 다시 한번 위기에 빠지지만 와이비의 도움으로 마녀의 손을 무찌른다. 결국, 평화를 되찾은 그들. 코렐라인과 와이비 그리고 부모님과 이웃들은 함께 파티를 하고 정원을 가꾸며 영화는 끝난다.
‘이곳에만 있는 너’
‘헨리 셀릭’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았는가? 물론, 위에서 만나본 3명의 감독에 비해서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가히 스톱모션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는 위대한 애니메이터이다.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과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의 연출을 맡기도 했으며, <코렐라인: 비밀의 숲> 말고도 2022년, 넷플릭스에 공개된 <웬델 & 와일드>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실사영화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오고가며 작품 활동을 하던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오로지 스톱모션 외길인생을 살아온 헨리 셀릭. 그가 이번 작품에서 보여주는 특별한 요소들에 대해 알아보자.
해당 작품 역시 상당한 정성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졌다. ‘다른 세계’의 환상적인 모습을 위해 많은 풀잎들을 모두 인조털로 만들거나 하나하나 색을 칠해 꾸몄으며, 40 그루의 나무를 직접 만들었다. 또한, 주인공 코렐라인 인형은 28개가 제작되었는데, 10명의 스태프가 3, 4개월의 시간 동안 1개의 인형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머리카락을 표현하기 위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최초로 합성 모발을 사용하는가 하면, 55km가 넘는 촬영장소에 52개의 무대를 만들고 그 위에 130개가 넘는 세트장을 짓는 등 대규모 촬영 구역을 만들었다.
영화 속 장소를 보면, 같은 장소라도 현실 세계와 다른 세계가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대비를 보여주기 위해 각각 다른 거대한 규모의 세트를 만들었다. 특히 작품 속, ‘보빈스키 (이완 멕쉐인 分)’의 서커스와 ‘미스 스핑크 (제니퍼 손더스’), ‘미스 포서블 (돈 프렌치)’의 뮤지컬 공연 장면을 완성시키기 위해 300명이 넘는 스텝들이 일주일간 작업하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는 74초 정도만 등장하지만 말이다. 이번 영화도 앞서 소개한 <유령신부>와 마찬가지로 두 대조적 세계를 색감을 통해 강조한다. 현실 세계와 그곳의 인물을 회색과 무채색으로, 다른 세계와 그곳의 인물을 화려한 색으로 묘사한 것이다.
또한 다른 세계에는 따뜻한 조명을 사용해 그 공간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코렐라인이 다른 세계의 숨은 진실을 알아갈수록 그곳의 전체적인 색은 안개가 낀 것처럼 탁해진다. 작품을 촬영할 때 사용된 카메라는 실사 영화에서 쓰이는 카메라였는데, 이로 인해 실사영화와 유사한 구도로 촬영이 가능했으며 극적이고 다양한 촬영기법들이 가능했다. 특히 작품 속 카메라 앵글은 어떤 상황에서, 왜곡되고 비대칭적으로 사용되어 다소 과장되고 극적인 효과를 준다. 예를 들어, 현실 세계와 비교되는 다른 세계의 기괴함과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 화면을 삐딱하게 잡거나, 인물의 신체를 갑자기 꺾어버리는 등 다양한 연출을 시도했다.
‘나와 우리를 찾아서’
영화는 주인공 ‘코렐라인’이 마녀로 대표되는 두려움에 맞서 싸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그녀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게 된다. 또한 환상과 현실, 거짓과 진실의 차이를 느끼며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내면에 숨은 가치를 발견한다. 마지막에 가족과 친구, 이웃들과 소박하게 파티를 하는 코렐라인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어쩌면 그녀가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에게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혼자 있는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사랑하는 이들을 불러모아 함께 식사를 하는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바라왔던 순간들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만 성장하고 진정한 나만을 찾으려고만 애쓰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큰 가치를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나를 찾았다면, 이제는 내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자. 그들이 있어야 우리가, 우리가 있어야 내가 되는 것이다.
동화와 스톱모션
특유의 질감과 분위기로 특별한 느낌을 주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을 보다보면, 어른이 된 내가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를 다시 읽어보는 듯한 느낌이 난다. 어른의 생각과 어른의 느낌으로 동화를 보자, 단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생각과 기분이 드는 것처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도 그러하다. 수많은 노력의 날들이 만들어낸 두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한 편. 그 한 편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와 따뜻함은 동화처럼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지금까지 어른들을 위한 동화와 같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 4편에 대해 알아보았다. 처음과 마지막에 소개한 영화 <유령신부>와 <코렐라인: 비밀의 문>에 대해 더욱 알고 싶다면 ‘온더플로어’의 팟캐스트 ‘펀치 드렁크 무비’를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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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틱> 메인 예고편
비행기 추락 사고 이후, 북극에 조난된 ‘오버가드(매즈 미켈슨)’.
그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무전을 치고, 북극의 지형을 조사하고,
송어를 잡고, 죽은 동료의 무덤에 가서 인사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추락한 헬기 속 생존자를 발견한다.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이대로 구조를 기다릴 수는 없고,
자칫 이동하면 함께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홀로 지내면서 잊고 있었던 생명의 온기.
그녀를 살리기 위해, 지도 한 장에 의지한 채 임시 기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 속 선택의 순간…
살리기 위해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