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0-30 10:46:56
10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호불호가 갈리는 지브리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는 벌써 1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는데요. 호평과 혹평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데요 다들 보셨나요? '난해하다' '지루하다'라는 반응과 이를 반박하는 다양한 해석과 분석이 이어지면서 관객들 사이에서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관객들의 'n차 관람'까지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국내 박스오피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계의 대표적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작
<바람이 분다> 이후 약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개봉 첫 주말에 흥행 독주를 이어가며 1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30일>은 누적 관객 180만명을 돌파하여 식지 않는 열기를
입증하며 2위, 25일 개봉한 <용감한 시민>이 3위에 올라섰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인기 호러 게임 Five Nights at Freddy’s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는 실사화 영화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첫 티저 트레일러가 공개된 지 하루 만에 조회 수 1000만 회 및 유튜브 인기
급상승 1위를 달성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27~29일 7800만 달러를 벌어들여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다음 달 15일 공개될 예정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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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개봉 예정 <007 노 타임 투 다이>, 그래미 어워즈 음악상 수상
2021년 개봉 예정 <007 노 타임 투 다이>, 그래미 어워즈 음악상 수상
지난 3월 14일 (북미 기준) 미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북미 최대 음악 시상식 "제 63회 그래미 어워드"가 열렸다. 2021 그래미 어워드는 방탄소년단(BTS)이 한국 가수 최초로 그래미 후보에 오르고, 단독 공연까지 진행하며 한국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이들은 지난해 발매한 첫 번째 영어 싱글 앨범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두아 리파, 저스틴 비버, 레이디 가가, 테일러 스위프트와 함께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아쉽게도 상은 '레인 온 미'(Rain On Me)의 '레이디 가가'의 품으로 돌아갔다.
제 63회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
여태껏 인종 차별 논란과 보수적인 이미지로 비판을 받기도 했던 '그래미 어워드'의 이런 변화는 미국 내 다른 시상식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자국 영화 <미나리>를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2019년, 영화 <스타 이즈 본>의 두 주연 배우 '레이디 가가'와 '브래들리 쿠퍼'가 꾸민 "Shallow" 무대는 영화만큼 짙은 감동을 주며 화제를 모았다. 그래미에서 총 3개 부문으로 구성된 '영화 (Visual Media)' 파트는 대부분 개봉을 앞둔 영화가 아닌 시대에 많이 뒤쳐진 곡들, 특히 전년도 오스카 시상식의 수상작들이 상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올해, '빌리 아일리시'가 <캣츠>, <겨울왕국 2>, 그리고 <온워드>의 주제곡을 제치고, 영화 주제곡상을 수상하며 이변을 일으켰다.
빌리 아일리시는 25번째 007 영화 <노 타임 투 다이>의 주제곡 "No Time to Die"로 그래미 시상식의 새로운 역사를 썼는데, 이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가 음악상을 수상한 첫 사례이다. 전통적으로 그래미의 사운드트랙 위원회는 투표자들이 영화를 볼 수 없는 곡들에 대해서는 '부적격' 판정을 내려왔지만, 2020년은 코로나19 라는 특수성 때문에 이런 이례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다.
빌리 아일리쉬는 2020년 4월이었던 영화의 본래 개봉에 맞춰 2020년 2월 곡을 발표했다. 곡은 발매와 동시에 007의 나라 영국에서 차트 1위를 달성하며 대성공하였지만, 영화는 코로나의 여파로 개봉이 2020년 11월로, 2021년 4월로, 그리고 2021년 10월로 끊임없이 연기되고 말았다.
제임스 본드는 1962년 극장에 처음 발을 내딛은 이후, 꾸준히 영화계 대표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고 있다. <스펙터>(2015) 이후 본드걸을 맡고 있는 '레아 세이두', 그리고 <보헤미안 랩소디>의 '라미 말렉'이 출연하는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제 6대 제임스 본드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007 작품으로, 007 시리즈 사상 첫 일본계 미국인 감독 '캐리 후쿠나가'가 감독을 맡으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21년 개봉을 앞둔 007 시리즈 제 25편은 빌리 아일리시의 수상 이외에도 몇 가지 특이점이 있다.
1) <스펙터>(2015)를 마지막으로 만료된 소니 픽처스의 배급권을 따낸 '유니버설 픽쳐스'가 배급하는 첫 007 영화이다.
2) 007 시리즈 최초로 IMAX 카메라가 사용되었다. 기종은 IMAX MSM 9802로 70mm 필름이다.
3) 개봉 연기 이전에 주연 배우인 '다니엘 크레이그'의 부상으로 촬영 또한 지연된 적이 있다.
4) '본드'가 남자인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밝혀진 정보는 <캡틴 마블>에도 출연한 이력이 있는 '러샤나 린치'가 영화에서 007 칭호를 이어받을 것이라는 것 뿐이며, 2대째 제작을 맡고 있는 브로콜리 가문의 '바바라 브로콜리'가 "여성 본드"가 탄생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기에 이후 상황은 미지수이다.
5) <노 타임 투 다이>의 상영시간은 2시간 43분으로 역대 007 시리즈 최장 시간이다.
6) 제작비는 2억 5,000만 달러 (한화 약 2850억 원)으로 007 시리즈 최고 금액이다.
7) 제작사인 MGM 측은 넷플릭스와 애플 TV+에 각각 6억 달러와 8억 달러를 협상가로 제시하며 '극장 개봉'을 꼭 이뤄내겠다는 신념을 지켜냈다.
'자메이카'를 배경으로 하는 시리즈 제 25편,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현재 2021년 10월 개봉을 목표로, 사람들의 관심이 식지 않도록 예고편 또한 꾸준히 내고 있다. 부디, 다니엘 크레이그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길 바란다.
사진 : <조조 래빗>의 '히틀러' 역을 맡은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
번외로, 영화 사운드트랙 상은 예상대로 <조커>(2019)에게 돌아가며 Hildur Guðnadóttir는 작년 오스카의 영광을 이어나갔다. 이변은 최우수 영화 편집 앨범상에 있었다. '타이카 와이티티'가 영화의 제작과 감독을 모두 맡은 블랙 코미디 영화 <조조 래빗>(2019)이 수상을 차지한 이번 결과에, 수상자였던 감독 '타이카 와이티티'는 "네, 이제 그래미가 상을 아무한테나 막 뿌리는 것 같네요. 만든 지 너무 오래 돼서 기억조차 나지 않는 영화입니다."라고 말하며 웃픈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조조 래빗>의 앨범은 비틀즈의 앨범 "I Want to Hold Your Hand"을 다양한 장르를 섞어 독일어 버전으로 새롭게 녹음한 앨범이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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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로 물들었던 그 바람과 돌들이 말할 때까지
다큐멘터리의 근본으로
이 영화가 취한 전략은 특이하면서도 다큐의 특성을 살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여러분에게 있어 다큐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글쓴이는 어렸을 때 봤던 다큐 '인간극장'이다.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어 PD와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 모든 모습을 담는다. 영화는 이 '인간극장'형 방식을 택했다. 아마 영화의 스태프인 것 같은 사람 몇 명이 제주 4.3 사건의 목격자이자 피해자들에게 인터뷰를 진행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인터뷰를 따라 그때 겪었던 일들을 세세하게 증언한다. 영화는 이게 전부다. <비욘드 유토피아>처럼 서스펜스를 외부에서 끌고 들어오지도, <물방울을 그린 남자>처럼 미술작품 같은 시각화를 사용하지 않고 딱 논픽션의 근본 그 자체를 다룬 것이다. 이런 탓에 약간 영화가 원위치 제 자리를 맴돈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에피소드를 다큐처럼 표현하는 것이 아닌 그 당시의 증언만 푸티지로 남겼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취할 수 있는 1차적인 줄거리를 가진 이유는 지극히 당연하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 때문이다.
첫째. 왜 이 영화는 단적인 에피소드를 보여주지 않는 병렬형 구조를 취한 것일까? 이는 곧 영화가 왜 편집을 이런 식으로 했을까? 와도 이어진다. 바로 이 영화에서 할머니가 입으로 전달하는 4.3 사건의 상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영화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터뷰와 제주의 풍광을 포착한 영상으로 이이루어 져 있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로 전개되면 될수록 어떤 요소가 사실상 이 풍광을 특정 방식으로 묘사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가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관객과 거리를 둔 의도가 이해가 된다. 이 의도와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출한 방식은 영화의 분명한 강점이다. 실제로 이 장점은 영화의 제목이 '돌들이 말할 때까지'에서도 읽을 수 있는데, 비관적이라면 비관적일 수도 있지만 역사가 개인과 한 지역에게 남긴 상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골랐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이 영화가 격정적인 톤을 유지했다면 윤리적인 선을 어긋나는 셈이 된다. 무슨 말이냐. 제주 4.3 사건의 전체적인 개요와도 관련이 있다. 4.3 사건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글쓴이가 제주에 나고 자라면서 들은 것은 '이념 대립을 핑계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것'이라는 점이다. 핵심은 핑계라는 점이다. 이 핑계라는 뜻은 굉장히 부당하면서도 동시에 시대적인 맥락이 있다는 뜻이다. 영화는 이 부분을 빼곡히 묘사하는 좋은 수를 보여준다. 만약 이 부분이 영화 안에서 픽션 형식으로, 내지는 기-승-전-결의 스토리텔링으로 구현됐다고 생각하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해칠 수도 있다. 왜? 감독의 감정이 틈입해서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장면이 위력이 옅어져 분노만 느껴지는 것이다. 왜 분노를 표출하겠어? 당연히 폭력의 잔혹함 때문이다. 이 폭력의 잔혹함을 고발해 당시 행정부의 극악무도함을 고발하는 것도 좋은 의도가 될 수 있겠지만 영화는 그 이전에 깔려있는 악을 고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일반적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내적 트라우마에 집중한다. 또 만약 이 영화가 자칫 개인에게 해한 폭력을 과시하고 또 영화적 재미로 활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이 부분을 유연하게 벗어난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이야기의 재미와 박진감이 아니라 그때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라는 걸 그대로 암시하면서.
좋은 빛, 좋은 공기
영화가 구술이라는 특성을 활용한 것은 나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구술은 곧 '입을 통해 말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구술이 가진 고유의 특성이 뭘까? 바로 개인의 기억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이 기억이 사람에 따라서는 신빙성이 떨어지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개개인을 통해 역사의 거대한 부분을 보여주고자 했던 시도는 충분히 탁월했다. '고양이 대학살'로 대표되는 역사의 미시성에 대해 아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 측면을 보여주고자 하는 듯하다. 어떻게? 인터뷰를 통해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구체적인 진술과 다섯 명이라는 인원을 통해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다섯 명의 할머니들이 같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조명하는 것이다. 이 다섯 명이라는 인터뷰이는 구술이라는 특성이 가진 약점 '기억이 왜곡될 수도 있다'를 다른 방식으로 피해 가는 선택이기도 한데, 반복되는 진술이야 말로 한 개인이 가진 트라우마가 일시적인 게 아닌 것임을 보여주는 반증이 된다.
또한 이 '개인에 의한 구술'이란 부분이 영화의 외부 맥락에서도 대비되는 지점이 있다. 4.3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굉장히 중요한 재판이 2019년 제주지방법원에서 있었다. 이 재판은 영화 안에서나 밖에서나 굉장히 중요했다. 이 재판을 영화 내적으로 어떻게 묘사했는지, 그리고 4.3의 폭력을 온몸으로 겪은 분들에게 어떤 의미로 전달하는지가 '구술'이라는 의미와 대치되면서 그 나름의 의미를 공고히 다진다. 글쓴이가 영화의 이 연출을 보면서 연상됐던 영화는 <좋은 빛, 좋은 공기>다. 이 영화는 광주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일어났던 각각의 민주화운동을 보여준 다큐멘터리다. 두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을 보여주는 것이 그 영화의 핵심이었는데 이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그 반대다. 공간을 특정 지역에 좁혀놓고 공통점을 가진 다섯 명으로 좀 더 구체화시켜 사건이 가진 비극성을 덧붙이는 것이다. 만약 이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를 보고 인상 깊으셨다면 <좋은 빛, 좋은 공기>를 추천드린다.
신뢰도 최상
글쓴이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장점으로 인터뷰의 퀄리티를 뽑고 싶다. 왜? 제주 선주민인 글쓴이는 2021년에 대학의 소속 학회에서 현장실습생 일을 한 적이 있다. 이 학회의 임무 중 하나는 4.3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 사실 커뮤니케이션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물론 정정하신 분이 대다수지만 고령이다. 찾아가는 과정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인터뷰 내용은 5명의 할머니에 각자 변형을 주면서 핵심만 쏙쏙 빼내는 정교한 인터뷰 능력을 보여준다. 가령 A 할머니는 사람들이 죽는 모습 그 자체를 목격한 분이다. B 할머니는 의사소통이 어렵다. 왜? 언어를 평생 배운 적이 없으니까(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영화 안에서 확인하시라). C 할머니는 공부 열심히 하셨다. 당시에 사회구조가 여성이 날개를 펼치기엔 어려운데 이 분은 예외다. D 할머니는 위의 분과 이유로 의사소통이 어렵다. 이 이유는 영화가 이데올로기에 의한 폭력을 묘사할 때 볼 수 있었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D 할머니의 존재는 영화에서 분기점이 되면서 4.3 사건을 겪은 이들을 한 데로 묶는데, 영화 안에서 이 인물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확장시키는지가 아주 흥미롭다. 어떤 대상에게 신뢰도를 불어넣는 방식은 각자 다르다. 이 영화는 다양한 인물군으로 특정 인물을 빛내는 선택지를 골랐는데 이야기의 형식의 측면에서 훌륭했다고 쓰고 싶은 부분이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
나이를 들며 영화에 관심이 생기면서 깨달은 건 내가 다양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영화가 결국 책과 이어지는 취미라서가 아니다. 이런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방법론을 존중하는 방식을 어느정도는 알게 된 것 같다. 글쓴이가 이 영화를 보고 다시 느낀 것은 생명의 고귀함이다. 결국 살아있다는 것. 그 후에 떠나간 사람들을 기억한다는 것. 역사의 부조리함에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해 증언한다는 것. <너와 나>에서 '너와 나'를 이루는 이 세상이 붕괴되는 비유가 아니더라도, 인간 하나가 이 세계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장점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이 그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 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고 자랐던 제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글이라도 쓰는 것 말곤 없다는게, 이제 세상에 없다는 것이 이렇게 슬픈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 속상하고 씁쓸하다. 나 역시 제주의 수많은 돌들이 말할 때까지 이 기억을 오래오래 가지고 있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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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석이 떨어졌던 그곳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Asteroid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애스터로이드는 영화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도시다. 주민이라곤 87명밖에 없는 작은 마을 애스터로이드. 미국 남서부의 한가운데 자그맣게 위치해 있다. 이 동네 가운데에는 차가 지나갈 수 있는 도로가 있고 음식점이 있다. 차를 정비하는 정비소가 근처엔 주유소까지 있다. 이 외에는 다른 숙박시설이 몇 군데 있다. 하지만 이 도시의 명물은 행성이 충돌한 흔적이다. 우주과학이 발달한 도시 애스터로이드. 이 도시에는 이 크레이터를 연구하는 몇 과학자들이 함께 살고 있기도 했다.
애스터로이드는 한적하다면 한적하다고 볼 수 있는 도시다. 이 도시에 방문객이 왔다. 아이들이 내린다. 이 아이들이 온 이유는 도시에 행사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 있는 영재들을 모아 장학금을 여는 일정이 있었던 것이다. 어느 음식점에 두 가정이 도착했다. 한 가정은 어머니와 딸이 함께 온 밋지와 디아나 모녀, 또 다른 사람들은 오기와 우드로 부자다. 난데없이 아버지 오기가 밋지와 디아나 모녀를 향해 사진을 찍는다. "왜 허락 없이 사진을 찍는 거죠?" 밋지가 묻는다. 오기의 답은 간단했다. "전 사진작가거든요." 대신 일반적인 사진작가는 아니고, 주로 전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찍는 사람이었다. "좋아요. 사진을 인쇄한 결과를 보고 싶군요. 그 대신 사진이 예쁘게 나오면 다 괜찮아요." 밋지는 유명 배우였기 때문에 여기저기 찍히는 사진이 많이 피곤했다. 이 만남을 시작으로 밋지와 오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또 동시에 디아나와 우드로의 이야기 역시 펼쳐진다.
액자 안에 액자
영화는 전체적으로 극 중 극형식을 취하고 있다. 감독의 전작 중 하나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공통점을 취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다만 전작과 갖는 차이점은 배경으로 어떤 것을 기저에 깔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우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카메라는 1985년으로 향한다. 한 소녀가 공동묘지 안으로 들어간다. 어떤 동상 앞에 선다. 주섬주섬 책을 꺼내는 소녀. 책을 쓴 작가는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무슈'라는 호텔 컨시어저다. 그러니까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구성은 '들었던 이야기를 책에서 읽은' 쪽이 되는 셈이다. 다른 작품인 <프렌치 디스패치>는 기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기자는 어떤 이야기를 무슨 관점에서 담는가가 핵심인 직업이다. 심지어 이야기의 전제조건 자체가 한 언론사의 발행인이 죽어가며 남긴 유언이다. 그러니까 들었던 이야기를 관점에 따라 풀어냈다는 것이 작품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본작인 <애스터로이드 시티> 역시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영화 전체적으로 깔려있는 전제조건은 영화의 이야기 배경에 연극이 깔려있다는 점이다. <프랜치 디스패치>가 언론을 소재로 했다는 점과 공통점, 차이점을 동시에 갖는다. 직업인으로서의 특성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 된 것이다. 우선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는 언론인으로서의 특성인 ‘어떤 걸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것이 영화에서 핵심으로 작동한다. 이번에는 <애스터로이드 시티>에 나오는 영화와 예술의 관계다.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극후반부에 반복돼서 나오는 어떤 문장이다. 이 문장이 직접적으로 나오는 것과는 별개로 영화는 한 이미지를 반복하고 있다. 초반부에 제시되는 특정한 사건, 영화에서 인물들이 대화하는 방식, 웨스 앤더슨 특유의 강박적인 미장센, 이상한 유머감각이 그 근거다. 이는 예술과 현실의 관계라는 영화의 핵심 키워드와도 관련이 있다. 다시 영화의 구조로 돌아온다. 창작자가 어떻게 연극을 만들었는가? 가 영화의 핵심으로 들어갔다는 점은 역시 직업인으로서의 특징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차이점이다. 사실 1차적으로 드러나는 차이점은 ‘구체적인 시기를 설정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하지만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이 역시 같은 지점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본작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1955년이라는 시간적 배경이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렌치 디스패치>는 가상의 도시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물론 <애스터로이드 시티>도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 구체적인 시점이 들어갔다는 점은 분명한 특이점처럼 느껴진다. 무슨 말이냐? 당시 브로드웨이, 미국의 연극판은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고 한다. 또 있다. 또 흔히 1950년대 중반의 할리우드라고 하면 걸작이 쏟아지던 때였다. 흔히 고전 할리우드라고도 한다. <현기증>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 여러분들도 흔히 한 번 들어봤을 법한 작품들이 나왔다. 이런 영화들이 개봉하던 때에 이 작품들을 만드는 과정을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것은 이 시기의 예술가들이 갖고 있는 관점을 영화에서 다루고 싶어서였겠지? 즉 1950년대의 미국을 영화가 그리워한다는 점이 핵심이 된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는 <프렌치 디스패치>에서도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이다. ‘무언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에 고정적으로 깔려 있는 대전제가 뭘까? 바로 과거의 사건은 기억 속에서 마모되지 않다면 가만히 있다는 점이다. 이를 왜 그리워할까?를 스스로에게 반문한다면 그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럼 그 핵심이 저널리스트와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공통점은 결국 예술가의 이면에 깔려있다는 점, 현실에서 벗어나 예술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 와도 닿아있는 셈이다.
흑백과 컬러
이 영화는 전작 <프렌치 디스패치>와 유사하게 흑백/컬러 두 설정을 이어가고 있다. 본작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 흑백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부분은 극에서 현실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반대로 컬러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극 중 극에 관한 부분이다. 이 컬러와 흑백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가도 영화의 소소한 재미거리가 된다. 그러나 단순히 소소한 것으로 영화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큰 줄기로서 연출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이 흑백으로 표현한 부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이 흑백 시퀀스 전부가 컬러 시퀀스를 이해하는 거의 모든 가이드라인이다. 대표적으로 초반부에 연극 작가와 배우가 대화하는 신이 있다. 이 부분이 대표적인데, 예술이 현실로 끌고 들어왔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이 반복은 영화 중 연극에서, 다시 후반부의 흑백 시퀀스에서, 초반-후반의 수미상관 구조에서 반복된다고도 할 수 있다. 현실과 가상의 대비? 당연히 경계선을 흐려서 영화의 하이라이트 신까지 끌고 가기 위함이다. 전체적으로 난해한 작품이지만 이 색채대비를 서사로 끌고 온 방식을 주의 깊게 본다면 여러분도 이해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영화에서 사용되는 큰 아이러니 중 하나는 '직접 드러나진 않지만 간접적으로는 엄청 중요하게 밑줄 쳐져 있다'라는 점이다. 작품을 보면서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두 사람이다. 바로 레오 까락스와 스티븐 스필버그다. 후자는 <파벨만스> 때문이다. 현실이 어떻게 영화화되는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레오 까락스의 <홀리 모터스>와 <아네트>가 갖고 있는 아이러니가 생각이 났다. 전자 <홀리 모터스>는 얼굴을 바꾸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왜 역할을 바꿀까? 바로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함이다. 역할을 바꾼다는 점을 반복함으로써 영화를 만들고 보는 일이 현실과 얼마나 유사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반대로 <아네트>에서 쓰인 아이러니는 주인공 부부의 딸과 관련한 부분이다. 딸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지만 목각인형으로 묘사가 됐었다. 뭐 이외에도 영화 대사가 매번 노래인 거나 바다를 묘사하는 방식이 누가 봐도 연극적인 것도 작품 자체의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는 초반부에 제시되는 한 에피소드와도 관련이 있었다. 이 사건이 품고 있는 거대한 아이러니가 있고, 또 이 일이 갖고 있는 세팅이 있다. 후자의 성격 상 이 일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영화의 제목이 왜 '애스터로이드'인가 와도 관련이 있다.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인물들이 이 일을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공간 설명에서 이미 다 깔려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중요했다고 볼 수 있는 아이러니는 대사에서 나온다. 영화는 <고도를 기다리며>와 비슷한 지점이 있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고독은 상실이다. 캐릭터들은 각자의 사정에 의해 무언가를 잃어버려 외로워하고 있다. 이를 위해 초반부의 한 사건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고, 연극을 만들기도 하며 연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또한 극 중 극에서 이상한 행동을 벌이는 경우도 몇 있다. 이 상실에 대한 리액션은 인물들이 어떻게 대화하는가? 와 관련이 있다. 영화의 난이도를 직접적으로 가장 크게 올리는 요소가 된다. 어느 장면에서는 이게 코미디로 작동한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건 이 사람들이 초반부의 사건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글쓴이는 이것이 <고도를 기다리며>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 인생은 이런 장면들로 가득 차있다. 시간이 약은 아니다. 정말 모든 걸 다 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런 건 없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아이러니는 이런 것들이다. 과연 뭐가 현실이고 뭐가 예술일까? 하지만 무엇이든 지금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현실을 위해 예술이 있다. 반대로 예술 덕에 현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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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기울어진 세상을 헤엄쳐
SYNOPSIS.
위험에 빠진 아이, 이상하고 귀여운 수호 동물과 마주치다
PROGRAM NOTE.
절친 타이스와 함께 수영 대회를 준비 중인 열한 살 소녀 아마. 아마는 스스로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세네갈 출신인 아마의 부모님은 망명 신청을 거절당해 더이상 합법적으로 네덜란드에 거주할 수가 없다. 어느 날 남동생과 엄마가 불시에 잡혀가고, 도망친 아마는 아빠를 찾아 헤매던 중 거대한 호저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의 수호신>은 네덜란드에 있는 수많은 불법 이민자들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실에서 착안한 판타지 영화다. <나의 수호신>은 자신의 집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쫓겨나는 상황에 직면한 아이의 이야기를 통해 ‘집의 의미’를 묻는다. 이민자 이슈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논란 중 하나이지만, <나의 수호신>은 인권이라는 큰 틀 안에서 우정과 연민의 힘으로 해피엔딩을 맞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소망하는 작품이다. (최은영)
우리가 사는 도시를 집어들고 가방 털 듯 탈탈 털면, 거기서 후두둑 떨어지는 동물들은 개, 고양이, 햄스터… 같은 것만이 아닐 거라는 이야기를 어디에서 읽었더라. 생각지 못한 동물들이 후두둑 떨어질 거라는, 정글에서나 볼 거라고 생각했던 동물들이 실은 우리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그 말을.
그렇다면 사람은 어떨까. 나와 비슷한, 아주 닮지는 않았어도 대충 엇비슷한, 그리고 나와 다르지만 대충 예상했던 사람의 범위, 그 바깥의 누군가를 분명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도시 한복판에서 마주칠 거라 생각하지 않듯이.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익숙한지 아닌지 고작 그 문제다. 누군가의 상상력 하나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진 것처럼.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려 본다면, 우리 모두 똑같이 그릴 수 있을 것처럼.
우리의 주인공 아마는 그렇게 도시를 탈탈 뒤집으면 조금 당혹스러울 법적 지위를 가진 채로,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살고 있다. 성격도 밝고, 공부도 잘하고, 네덜란드 최고의 수영 선수를 보며 꿈을 무럭무럭 키우고 있는 될성부른 수영 유망주 어린이이기도 한데, 대회 하나를 나가려고 해도 ‘써도 될 것’과 ‘써서는 안될 것’을 신중하게 골라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아마가 사는 집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마을 같다. 아이들을 씻기고 자신도 씻기를 즐겨 하는 이웃이 샤워기를 틀면 계단참으로 물이 주르륵 흐르는, 그만큼 연결되어 있는. 그러나 아마의 가족은 이런 상황에 불평을 일삼기보다 자연스러운 생활의 풍경으로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다. 아빠와 장난칠 때나 썼던 소금 통 하나를 사러, 그 심부름 하나로 아마의 생활이 영영 달라질 때까지는.
집에 있던 아마의 어머니와 동생은 “불법 이민자”여서 잡혀 가고, 아마는 놀이터에 숨어서 일을 나가신 아빠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아마의 세상이 전체적으로 기울어 있음을 관객은 이내 깨닫게 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앵글이 항상 기울어 있다. 학교도, 경찰서도, 집 바깥도, 전부 다 기울어 있다. 아마가 아빠를 찾아 들어간 “드 로테르담” 건물, 아빠의 일터 또한.
이 기울기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다. “불법 이민자”에 대한 편견은 말할 것도 없고, 아마는 스스로가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자랐기 때문에, 자신이 불법 이민자이고 그 편견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사무직과 청소 일에 대한 편견도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일한 업체의 이름은 Sunshine services이지만, 역설적으로 선샤인이라고는 전혀 빛나지 않는 밤에만 일하고, 밤으로 취급받는다. 세계가 기울어 있는 것이 사실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서글픈 현실에 갑자기 거대한 호저가 나타난다. 영화 자막에서는 고슴도치로 번역되었지만, 호저는 고슴도치와 다르다. 꿀벌과 말벌 정도의 차이랄까. 고슴도치가 가시를 있는 힘껏 세워도 멀리서 (그러니까 그 가시가 나를 공격하기 않을 거리에서) 보면 귀엽겠지만, 호저가 가시를 세우는 모습을 멀리서 보면… 그로테스크하다.
나는 호저라는 생물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호저를 처음 봤는데, 심지어 인도의 동물원에서 야행성 동물들을 모아 놓겠다고 조명을 있는 대로 침침하게 해 둔 어둠 속에서 그 가시가 파르르 서는 모습으로 처음 보았다. 뭔데 저거. 뭐야. 왜 무서워. 무서움을 익히 아는 다른 동물보다, 전혀 모르는 생물의 가시가 더 무서웠다. 알고 보니 호저는 정말 만만치 않은 생물이었다. 호저의 가시에 공격을 받으면 맹수도 배겨낼 재간이 없다.
그러나 이 영화, <나의 수호신> 원제인 ‘토템’답게, 이 영화 속 거대한 호저는 귀엽기만 하다. 도시 속의 사람은 내지 못한 위로의 울음소리를 호저가 낸다. 제목이 <나의 수호신>인데 자막에는 ‘토템’으로 나와, 수많은 어린이 관객들이 엄마에게 “토템이 뭐야?”를 물어야 했음은 아쉬운 포인트지만… (참고로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토템은 “부족 또는 씨족과 특별한 혈연관계가 있다고 믿어 신성하게 여기는 특정한 동식물 또는 자연물. 각 부족 및 씨족 사회 집단의 상징물이 되기도 한다.”)
커피 머신도 사랑이 필요하다며 쓰다듬는 사람이 있는 도시에서, 아마는 그저 호저와 함께 걷는다. ‘상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면 같이 걸을 상대도 없는, 대도시 속 외로운 아이의 삶. 집이었던 곳은 경찰과 개의 손에 마치 범죄자의 소굴처럼 취급되며 서슴 없는 수색의 대상이 되지만, 호저는 깡통 차기 놀이 상대가 되어 준다. 마치 전통 속 여우 사냥의 한 장면처럼, 아마가, 사람이, 개에게 쫓기는 장면이 현실에서는 연출되지만 호저는 파르르 가시를 세워 아마를 지켜준다.
극중에서 호저를 볼 수 있는 인물은, 아마와 마음의 결을 같이 하는 이들뿐이다. 애초에 아마의 옆에 서 있었던 이들을 제외하면, ‘그리오grio’ 그러니까 가수이자 시인인, 노래로 이야기를 전해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게 하는 일을 사명으로 품은 이들밖에 없다. 이는 영화를 포함한 예술의 기능 중 주요한 한 지점을 짚는다. 기울어진 세상에서도 노래는 계속되어야 함을.
‘온 세계가 당신의 조국’이라는 네온사인이 무의미하게 빛나는 거대한 도시에서, 정작 도시 안에서 평생을 자란 사람을 밀어내는 도시에서, 아마는 호저의 등에 올라 기울어진 세상을 걷는다. 이 차가운 현실에, 이야기 하나를 놓는다. 그 순간 세상은 변한다.
기울어진 세상에서도 ‘상자 바깥에서, 틀을 깨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그들이 그리오grio의 후예, 그러니까 이야기가 잊히지 않도록 하는 이들인지 모르겠다. 아마가 외로운 여정을 걷는 내내 곳곳에서 아마를 먹이는 손길이 있었듯이, 이 외로운 도시를 가방 뒤집듯 탈탈 털면, 생각지도 못한 동물들이나 사람들과 함께, 환대의 손길 또한 함께 후두둑 떨어질 것이다.
아마는 앞으로도 기울어진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아마의 정체성은 ‘네덜란드인’에서 ‘경계인’으로 달라졌을 것이다. 사실은 우리 모두 경계인임을 우리는 언제 깨달을 수 있을까. 여기 계속 사는 거냐는 질문, 아마와 타이스 두 아이의 물음에 부모님의 대답은 동일했다. “그래, 당분간은.” 이사를 가든 추방을 가든, 결말이 어떻든 우리 여기서 당분간은 살아갈 존재들임은 동일하다. 도시를 뒤집어 탈탈 털면 후두둑 떨어질 존재들이라는 사실만큼은 동일하다.
그게 다르게 취급되는, 기울어진 세상을 우리 살아가지만, 이 기울어진 세상에서 노래와 환대의 손길은 계속되니, 새처럼 날아드는 그 손길과 멜로디를 따라 계속 헤엄쳐갈 일이다. 씩씩하게!
9월 15일 20:00-21:37 롯데시네마 은평 5관
9월 17일 16:00-17:37 롯데시네마 은평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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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콥스키의 아내 | 러시아에 추락한 이카로스를 만나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세기 러시아 제국, 모스크바 귀족 가문 출신의 '안토니나'(알리오나 미하일로바)는 파티장에서 일생의 사랑을 발견한다. 바로 러시아 최고의 '표토르 차이콥스키'(오딘 런드 바이런). 그날부터 그녀는 그와 결혼해서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꿈을 실천에 옮긴다. 그가 재직하는 음악원에 입학하고, 그에게 연애편지를 보내고, 신에게 간절히 기도한다. 그렇게 안토니나는 차이콥스키의 아내가 된다.
하지만 신혼의 단꿈도 잠시. 그녀와 표토르의 사이는 점점 벌어진다. 급기야 남편은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하고, 별거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안토니나는 결코 차이콥스키의 아내의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는다. 그의 명성과 재산을 탐내서가 아니다. 그녀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 또 사랑이 유효한 이상 그들을 갈라놓을 수 있는 존재는 신밖에 없으니까.
차이콥스키의 아내, 러시아의 이카로스
파란 지중해 위를 내려쬐는 태양. 그 사이를 황금날개가 거침없이 노닌다. 이카로스다.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함께 갇혀 있던 감옥을 탈출한 기쁨에 취한 그. 따스히 자기를 감싸는 태양빛에 마음을 빼앗긴 채 계속해서 태양을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카로스가 태양을 향해 날아갈수록, 황금날개의 밀랍이 녹고, 그는 그렇게 깊은 바다의 심연 속에 빠지게 될 운명임을.
19세기말 러시아 제국에도 이카로스가 있었다. 그저 여성이었고, 태양이 아닌 한 작곡가를 경외했으며, 바다가 아닌 은반 같은 호수 밑으로 침전했을 따름이다. 2022년 제75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은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러시아의 이카로스, 안토니나 차이콥스키의 이야기를 다뤘다.
안토니나는 결혼 이후 평생을 차이콥스키의 아내로 살았지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순간도 영위하지 못한 비운의 여인. 세례브렌니코프는 그녀의 일생을 스크린 위에 펼쳐 놓는다. 특히 그녀의 황금날개가 무너져 내린 이유를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거북하게, 때로는 환상적으로 풀어낸다.
태양을 만난 황금날개의 비상과 추락
세레브렌니코프는 안토니나의 황금 날개에 집중한다. 그녀는 차이콥스키라는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고, 태양과 행복한 오후 시간을 보내지만, 이내 그 태양 때문에 추락해 갈사한다. 카메라는 철저히 안토니나의 시점에서 그 과정을 담아낸다. 안토니나의 내면을 파고드는 심리학 보고서인가 싶을 정도다. 이때 핵심은 불이다. 불의 모티브를 적극 활용해 태양의 광채, 따스함, 흉포함을 모두 보여준다.
일례로 파티에서 만난 차이콥스키를 그리워하는 안토니나의 방은 어두침침하다. 자욱한 안개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그가 그녀의 방에 찾아오고, 청혼을 받아들이자 그녀의 방은 달라진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가득하다. 분명 실내인데, 날 좋은 오후에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처럼 밝고 따뜻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그녀의 결혼은 이내 파탄 난다. 아내를 친구 다음 순위로 두는 남편. 아내와의 성관계를 거부하는 남편. 그런 남편에게 안토니나는 지치고, 그들 사이는 조금씩 벌어진다. 이번에는 촛불이 등장한다. 수직으로 길게 뻗은 촛대와 촛불은 안토니나와 표토르를 이어 줄 수평선을 자꾸만 끊어버린다.
촛불은 이제 화재로 번진다. 차이콥스키는 이혼을 요구하고, 별거를 유지하며, 생활비만 붙인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 관계를 놓지 못한다. 남편, 아이들과 가족사진을 찍는 꿈을 꾸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하지만 꿈은 소음과 함께 끝나고, 눈을 뜬 그녀는 온 집을 삼킨 화재를 발견한다. 결혼반지마저 불 속에 놓고 창문에서 몸을 던지는 안토니나. 불을 피해 몸을 던진 그녀는 태양 때문에 바다에 빠진 이카로스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화려한 러시아 제국의 민낯
이카로스가 죽은 이유는 명확하다. 태양에 가까이 가면 밀랍이 녹을 수도 있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다. 안토니나가 추락한 이유는 다르다. 미련과 집착을 버리지 못한 그녀의 잘못만큼이나 시대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화려하게만 보이는 러시아 제국의 민낯을 공개한다.
영화는 의미심장한 자막으로 시작한다. 자막에 따르면, 19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에서는 여성이 마음대로 이혼을 할 수 없었다. 정부의 공식 허가가 떨어지거나, 법원의 명령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측이 이혼에 동의하거나, 한쪽에 명확한 귀책사유가 있어야만 했다.
문제는 이 법 때문에 평행선을 달리는 차이콥스키와 안토니나의 입장 차이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것. 차이콥스키는 동성애 성향 때문에 퍼진 소문을 가라앉히기 위해 안토니나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대가로 신경 쇠약과 우울증을 앓았다. 그렇기에 그는 자기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거짓 사유를 인정하면서까지 이혼을 요구했다.
반면에 안토니나는 남편의 요구를 수용할 수가 없다. 그녀는 진심으로 남편을 사랑하기에 이혼에 동의할 수 없다. 또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남편이 불륜을 저지른 적이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이혼 서류에 서명하지 않았고, 집착과 미련의 결혼 생활을 이어갔다. 두 소수자의 잘못된 만남을 파국으로 몰아간 사회가 낳은 비극 속으로 빠져든 셈이다.
차이콥스키 없는 차이콥스키 영화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표토르와 안토니나의 평행선을 제목에 충실한 화법으로 전달한다. 사실 아무리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이라 해도 차이콥스키라는 이름을 모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바이올린 협주곡을 비롯한 그의 음악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음악 중 하나이기 때문. 하지만 그의 음악 세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일생에 대해서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바로 이를 역이용한다. <차이콥스키의 아내>에서 차이콥스키에게 부여된 분량은 많지 않다. 대신 그의 개인사와 성적 지향은 철저히 복선으로 암시된다. 영화는 결혼식을 시작으로 이혼하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자그마한 복선을 던진다. 그렇게 신발 속 모래 알갱이 마냥 뭔지 모를 불편함과 물음표를 조금씩 키워 나간다.
예를 들어 결혼 소식을 접한 차이콥스키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묘하게 반응한다. "자네가 결혼을 하다니 의외네?" 같은 대사와 함께 안토니나에게 미묘한 축하를 건넨다. 그뿐만이 아니다. 표토르는 안토니나가 한껏 힘을 준 옷이나 장신구를 보고 예쁘다는 말을 한 번도 건네지 않는다. 불협화음은 계속된다. 영감을 받은 표토르가 피아노 연주에 몰입하려는 찰나에 안토니나가 끼어드는 식이다.
이 장면들은 안토니나가 이혼 통보를 받은 뒤 시퀀스와 이어진다. 가족사진 촬영이 대표적이다. 신혼 때 부부 사진을 찍으러 간 표토르와 안토니나. 하지만 막상 카메라 셔터가 눌리는 순간, 차이콥스키는 아내와 다른 곳을 바라본다. 마치 결혼 생활에 초를 치려는 듯이. 이 장면은 가족사진을 찍는 안토니나의 꿈과 이어지면서 그녀의 절망을 더 강조한다.
무대 위에서 피어나는 우울함
안토니나의 추락은 무대 예술을 보는 듯이 독특한 연출 덕분에 더욱 인상적이다. 연극처럼 막이 바뀌거나, 연극 무대처럼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공간이 이어지는 식으로 그녀 내면에 자리 잡은 우울함과 불안감을 표출하는 장면이 거듭 등장한다.
이는 당시의 분위기를 메타적으로 표현하고, 또 비판하는 연출이라 할 수 있다. 세레브렌니코프의 말을 빌리자면, "그 시대가 워낙 연극적"이었으니까. "당대의 사람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의상을 입었고, 사회가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고, 사회가 강요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했으니까. "인생은 일종의 무대 연출이었고, 각자에게 정해진 배역"이 있는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그저 아름답지만은 않다. 어둡고 차가운 빈방에서 안토니나는 남자 무용가들과 춤을 춘다. 이 발레는 마치 그녀의 내면을 끄집어낸 것 같다. 차이콥스키를 향한 비틀린 사랑, 집착과 광기가 무대를 가득 채운다. 피아노 건반음이 강조된 음악이 더해지면 안토니나의 불안정한 상태를 눈, 귀, 가슴으로 느끼기에 충분하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비록 불운한 시대와 사회가 그녀에게 잘못된 결혼 생활을 안겨줬지만, 비극을 잘라내지 않은 선택은 온전히 안토니나의 본인의 몫이라는 것. 이처럼 찜찜하고 불쾌한 마무리 덕분에 <차이콥스키의 아내>는 뇌리에 강렬히 각인된다. 비록 전형적인 구성과 마무리는 아니지만, 안토니나 차이콥스키의 일생과 사랑을 이해하는 데는 전기 영화로서 이보다 충실하기도 어려울 테니까.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한 여자 안에서 피어나 그녀를 파괴한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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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 봤다고 소문내지 말아야 하는 영화.
오늘은 정말 따끈따끈하게 나온 영화 대외비를
누구보다 빠르게 보고 왔는데!
누구보다 느리게 후기를 작성하네요?
아이러니하지만?~
영화를 본 걸 꼭 비밀로 해야 하는 이유라서 대외비라는 이름이 붙은 걸까?
합리적인 의심을 해보면서, 리뷰 시작해 봅니다.
기본 정보
장르 : 범죄, 드라마, 스릴러, 느와르, 시대극, 피카레스크
감독 : 이원태
각본 : 이수진
출연진 : 조진웅, 이성민, 김무열
개봉일 : 2023년 3월 1일
평점 : 6.27
기획 의도
"몰랐나? 원래 세상은 더럽고, 인생은 서럽다."
1992년 부산, 밑바닥 정치 인생을 끝내고 싶은 만년 국회의원 후보 "해웅"
"해웅"은 이번 선거에서만큼은 금배지를 달 것이라는 확신했지만,
정치판을 뒤흔드는 권력 실세 "순태"에게 버림받으며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한다.
"누가 센 지는 손에 뭘 쥐고 있는가 보라 안 했습니까?"
"순태"에 의해 짜여진 선거판을 뒤집기 위해 부산 지역 재개발 계획이 담긴 대외비 문서를 임수한 "해웅"
행동파 조폭"필도"를 통해 선거 자금까지 마련한 "해웅"은 무소속으로 선거판에 뛰어들어 승승장구한다.
대한민국을 뒤집을 비밀 문서,
이 판을 뒤집는 놈이 대한민국을 뒤집는다.
여담
영화 대외비의 처음 제목은 <대외비 - 권력의 탄생> 이라는 제목이었으나
부제를 제거한 지금의 영화 대외비로 최종 낙점되었다고 한다.
배우 김우열은 지역 조폭 김필도를 연기하기 위해
한 달 사이에 12kg을 증량했다고 한다.
원래 영화는 2021년도 제작되었으나,
여러 사정상으로 인해 2023년에 개봉한 전형적인 창고 영화라고 한다.
후기 및 결말
영화 대외비 결말을 살펴보자면
전해웅(조진웅)과 권순태(이성민)은 서로 윈윈 전략을 택하여
금배지를 달 수 있게 도와주면서 더 높은 곳으로 향하고,
김필도(김무열)은 전해웅(조진웅)을 배신하지만, 오히려 역배신 당해
하늘나라로 빠이빠이.... 했다...
영화 대외비 거의 개봉과 동시에 바로 달려가서 봤던 영화인데...
대부분의 영화 관람평을 보면 나와 같은 생각이 한가득 드는 평이 많다
이 영화를 본 것을 비밀로 해야 하는 대외비 같은 영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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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쳐. 네가 제일 잘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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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적 도깨비 깃발, 명절용 오락 영화 그이상, 그이하도 아닌 속편!
설 연휴를 앞두고 해적 도깨비 깃발이 개봉했습니다.
2014년에 개봉했던 1편에 이은 속편이죠.
속편이지만 영화 속 시기와 캐릭터는 모두 바뀌었어요.
이번엔 의적과 해적이 만나게 됩니다.
거의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지만 조금은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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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도쿄 리벤저스> 메인 예고편
기대 없는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20대 청년 타케미치는
어느 날 뉴스를 통해 첫사랑 여자친구가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유일하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었던 그녀를 떠올리던 타케미치는
특별한 타임리프를 통해 10년 전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게 되고
그녀를 살리고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자신이 변해야만 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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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퇴마록> 공식 예고편
세상의 모든 악에 대항할 퇴마사들의 탄생⚡ 하늘이 불타던 날🔥 새로운 전설이 시작된다! 1000만부 베스트셀러 원작 오컬트 블록버스터 [퇴마록] 예언의 시작 예고편 공개! 2025년 2월 극장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