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10-30 10:46:56
10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호불호가 갈리는 지브리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는 벌써 1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는데요. 호평과 혹평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데요 다들 보셨나요? '난해하다' '지루하다'라는 반응과 이를 반박하는 다양한 해석과 분석이 이어지면서 관객들 사이에서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관객들의 'n차 관람'까지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국내 박스오피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계의 대표적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작
<바람이 분다> 이후 약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개봉 첫 주말에 흥행 독주를 이어가며 1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30일>은 누적 관객 180만명을 돌파하여 식지 않는 열기를
입증하며 2위, 25일 개봉한 <용감한 시민>이 3위에 올라섰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프레디의 피자가게>는 인기 호러 게임 Five Nights at Freddy’s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는 실사화 영화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첫 티저 트레일러가 공개된 지 하루 만에 조회 수 1000만 회 및 유튜브 인기
급상승 1위를 달성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27~29일 7800만 달러를 벌어들여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했습니다. 국내에서는 다음 달 15일 공개될 예정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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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선으로 압축된 스파이 세계
영국의 비밀정보부 요원 ‘조지 스마일리’(게리 올드만)는 소련의 이중 첩자를 색출하는 미션에 실패한 후 은퇴한다. 그러나 소련의 고위급 장교를 감시 중이던 현장요원 ‘리키 타르’(톰 하디)는 서커스라 불리는 MI6의 최고위급 간부 중 팅커, 테일러, 솔저라는 코드 네임을 부여받은 '퍼시(토비 존스)', '빌(콜린 퍼스)', '로이(키어런 힌즈)' 중 한 명이 스파이임을 본부에 알리고, 이에 본부는 조지에게 다시 한번 비밀 색출 작전을 맡긴다. 유일하게 믿을 만한 동료 '피터(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도움을 받으면서 조지는 어제까지 동료였던 정보부 모든 이들을 상대로 한 작전에 다시 나선다.
에스피오나지 장르, 곧 첩보물은 통상적으로 두 가지 서사를 기본 골격으로 삼아 살을 붙여나간다. 거시적 관점에서의 냉혹한 서스펜스와 미시적 관점에서의 씁쓸한 개인사가 그것이다. 영화 속 스파이들은 소속된 국가와 기관의 이해관계에 따라 동료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같은 편인지 아닌지를 거듭 분간해 내야만 한다. 실패의 대가가 목숨일 수도 있는 만큼 이 과정은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한편 적군과 아군이라는 철저한 흑백의 이분법만으로 이루어진 스파이의 세계는 첩보원이기 이전에 다양한 색을 지닌 개개인의 이야기를 짓밟으며 연민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러한 두 이야기 사이의 균형은 시리즈 중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007 스카이폴>이 보여주듯 잘 만든 첩보물의 기준이 된다. 2012년 이후 9년 만에 재개봉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역시 이 균형을 아주 잘 잡은 영화 중 하나다.
사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낯설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서스펜스를 보여주는 방식이 트렌드에서 벗어나 있다. 많은 첩보물들은 특유의 서스펜스를 액션씬에 담아 직관적으로 제시하는 데 힘을 기울여 왔다. 실제로 상술한 <007> 시리즈를 비롯해 <미션 임파서블>, <제이슨 본>, <킹스맨>과 같은 첩보물 프랜차이즈들은 나날이 거대해지고 기상천외해지는 화려한 액션을 통해 명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와 같은 슈퍼히어로 영화와 첩보물의 만남도 이러한 트렌드에 일조했다.
하지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멋진 액션 대신 등장인물들의 동선에 집중한다. 그들이 특정 공간에 도착하는 순간을 에피소드의 시작점으로 삼고, 그전까지는 그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만나는 이들이 누군지, 목적인지를 좀처럼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인물들이 걷는 장면은 그 자체로 긴장감을 자아낸다.
더 나아가 영리한 카메라 워킹을 통해 스파이의 세계를 표현한다. 카메라는 인물들이 거리를 좌우로 움직이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 영화의 내용이 하나의 직선 위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노력한다. 실제로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부다페스트 작전에서도, 런던에서 목적지를 향할 때도 작중 첩보요원은 항상 좌우로만 걸으며, 카메라 역시 그들을 쫓아 좌우로만 움직인다.
이처럼 마치 인물들을 하나의 직선 위에 올리는 듯한 연출은 꼭 액션이 아니어도 긴장감이 팽배한 스파이들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왜냐하면 타인이 아군인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분간해야만 하는 영화 속 스파이들은 양쪽 끝을 향해 뻗어 있는 하나의 직선 위를 살아가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매튜 본 감독의 <킹스맨> 속 첩보 요원인 해리와 전 세계 인구의 반을 죽이려는 빌런 밸런타인 대화를 보자. 밸런타인이 본래 제임스 본드와 같은 젠틀맨 스파이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하자, 해리는 007 시리즈 속 악역이 되는 것이 자신의 꿈이었다면서는 둘 모두 꿈대로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받아친다. 긴장감과 유머스러움이 같이 녹아든 이 장면은 서로가 서로의 적대자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 스파이의 속성을 꿰뚫는다. 단지 <킹스맨>과 달리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스파이의 삶과 세계의 본질로부터 고조되는 서스펜스가 간단하면서도 영리한 카메라 워킹에 담겼을 뿐이다.
더불어 이러한 연출은 영화의 배경인 시대상과도 조화를 이루며 양 극단으로 갈린 세계에 사는 이들이 느낄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액션이 배제된 것은 냉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전면적인 충돌은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서로의 편을 확인하고 포섭하려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적절히 묘사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매 등장마다 좌와 우를 넘나드는 영국의 첩보 요원들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미국과 소련 사이를 바쁘게 움직이며 새로운 위치를 설정해야 했던 냉전 당시 영국의 국제 정치적 상황에 대한 비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낯설게 느껴진 두 번째 이유는 영화의 비중이 스파이들 간의 갈등이 아닌 스파이 개개인의 씁쓸한 이야기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미국과 소련의 존재로 대변되는 상이한 이념 간의 갈등이 개개인의 아픔들을 다루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 점은 첩보물 블록버스터들의 전형적인 서사 구조를 전복시킨 것 같기도 하다.
분명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열심히 편을 가른다. 누가 소련의 이중첩자인지를 찾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나 중간중간마다 현재의 맥락과 상황에서 다소 어긋난 장면들을 삽입하며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는 신호를 숨기지 않는다. 영화는 현재 상황과 과거의 기억을 유려하게 넘나들고, 중간중간에 새로운 인문들을 등장시키면서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오다가 잠깐 끊는다. 이런 교차 편집이 한두 번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수 차례에 걸쳐 반복되며 현재 상황을 진행하다가 필요할 때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이 신호들은 직선 위에서의 편 가르기가 끝나는 찰나에 마침내 온전한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마지막 5분 사이에 인물 들 간의 과거는 전모를 드러낸다. 리키가 러시아 여성과 나눈 비운의 로맨스, 소련과의 첩보전으로 인해 파괴되어 버린 조지의 가정사와 2차 세계대전 참전 전우들의 우정, 사랑하던 두 남성 중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죽여야만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운명에 휘말리는 것까지 모든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는다.
그 결과 영화는 더 이상 첩보원들의 눈치와 두뇌 싸움을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는 스파이의 세상, 그 직선 너머에 있는 개인들의 입체적인 세계를 들여다본다. 냉혹한 서스펜스의 첩보물은 애절한 드라마가 되고, 흥겨운 음악을 만난 결말은 아이러니가 가득한 비극으로 장식된다. 이는 실질적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인물이 첩보 활동 외의 과거사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피터이고, 첩보전에서 손을 뗐다가 다시 돌아오며 가슴 아픈 과거를 모두 보여준 조지가 정작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낯설고 장르의 주류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고 느껴지는 대목을 통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첩보물의 현실적 감각, 그리고 그 안에 내재된 인간사에 대한 통찰을 모두 담아 장르 영화로서의 균형점을 확실하게 잡는다. 그리고 거대한 시각에서 하나의 직선으로 표현된 세계와, 그 세계가 온전히 담을 수는 없는 개인들의 현실이 충돌하는 모순이 담긴 이 균형점은 9년 만에 재개봉한 영화가 여전히 빛이 나는 이유다. 국가와 공동체의 이익이 화두인 팬데믹 상황에서, 두 번째 냉전의 시작을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가득한 세상에서, 100년이 넘게 이어졌던 역사와 전통이 자본의 이름으로 공격받는 세상에서 개인의 삶과 권리가 우선순위에서 밀릴 때 생길 비극을 보여주는 장르 영화는 그 자체로 유의미하기 때문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스파이의 삶을 스릴 있으면서도 가슴 아프게, 거시적이면서도 미시적으로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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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가학원: 죽음의 쿤달리니 / The Cursed Lesson, 2019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를 시작으로 매주 신작들이 개봉하면서, 극장가에 모처럼 활기가 띠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번 6월 극장가에는 공포 영화들의 개봉이 엿보입니다.
국내와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거둔 <컨저링 3: 악마가 시켰다>와 '코로나19' 이후 첫 북미 1억 달러를 넘긴 <콰이어트 플레이스 2>, 그리고 12년 만에 시리즈를 이어나가는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모교>까지 연달아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인데요.
그렇기에 이에 OTT 플랫폼들도 발맞춰 공포 영화들을 선보이던 중에 이 영화가 눈에 밟히더군요.
영화 <요가학원: 죽음의 쿤달리니>는 작년 20년 11월에 개봉한 영화로 우리가 알고 있는 2009년에 개봉한 <요가학원>의 후속작입니다.최종 관객수 271,514명으로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최근 <펜트하우스>의 "유진", "박한별", 그리고 "최다니엘"과 같은 유명한 배우들이 출연했다는 것만으로도 모르는 영화는 아닙니다.
근데, 이번 <죽음의 쿤달리니>는 일반적인 속편은 아니었습니다.
안면이 익숙한 배우들이 나오나 전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아닌 새로운 배우들과 감독들로 추려진 영화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영향이었는지 영화는 최종 관객수 9,128명으로 1만명도 모으지 못한 채 쓸쓸히 퇴장하고 말았는데요.
여기에 보고 온 관객들의 평가도 좋지 않아 선뜻 손이 안 갔는데 과연, <요가학원: 죽음의 쿤달리니>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 감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1. 전작과 인연을 끊은 이유가 이거 때문에?
앞에서도 말했듯이 영화 <요가학원: 죽음의 쿤달리니>는 자연스레, <요가학원>이라는 전작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시리즈'라는 안정적인 장치와 '전작을 봐야 하나?'라는 걱정을 동시에 안겨주어 만드는 입장과 보는 입장의 괴리감을 형성하는데요.
그런 점에서 이번 <죽음의 쿤달리니>는 전작이 주었던 '미(美)에 대한 집착'이라는 큰 틀의 콘셉트를 "요가학원"에서 풀어나갈 콘셉트를 유지하고, 전작과의 연결성을 끊어 놓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려는 관객들은 굳이 일부러 전작을 찾아볼 수고로움은 덜어놓는 것인데, 그러면 안 됐습니다.메시지보다 장면들이 더 노골적인데요.
깜빡하고 영화 <요가학원: 죽음의 쿤달리니>의 이야기를 설명하지 못했는데요.
영화는 점점 경쟁에 밀리는 모델 '효정'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추천으로 "요가학원"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점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이에 휘말리는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판에 박힌 이야기만큼 영화는 앞서 언급한 '미(美)'에 대한 메시지가 먼저, 눈에 보입니다.
극 중 '나이가 너무 많다'라는 대사든지 '성형외과에서의 시술'까지 뻔하다면 뻔한 장면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에 관객들도 시큰둥해질 것을 우려했는지 영화는 '요가하는 모습'이 아니라 '노출'을 합니다.
해당 영화의 연령 등급이 '청소년 관람불가'라서 잔인한 공포쯤을 예상했는데, 이런 이유가 존재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2. 야해서 무섭지가 않아요.
그렇게 선보인 '야한 장면(?)'은 꽤 수위가 높습니다.
일반적인 "베드신"이 아니라 '행위 예술(?)'로 보일 정도로 서로의 몸을 휘감는데, 장면을 떠나 배우들이 고생하는 것이 눈에 보이더군요.
근데, 문제는 '이 장면이 왜 나오느냐?'입니다.
본 이야기의 전개에도 맞지 않아 덜어내도 개연성에 큰 문제가 없으니 "꼭 넣었어야만 했는지?"에 아쉬움이 생기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이유에는 영화 <요가학원: 죽음의 쿤달리니>의 장르가 "성인 영화"가 아니라 "공포 영화"라는 것입니다.예상은 했지만...
<요가학원: 죽음의 쿤달리니>의 러닝 타임이 93분으로 '이 영화가 어떤 공포를 선보일지?'라는 대충이나마 예상은 했습니다.
이야기 전개에 부족한 시간이니 "점프 스케어", 깜짝 놀래는 것으로 관객들을 비명을 유도하겠다는 것으로 말이죠.
그리고 이게 딱 맞아떨어졌지만, 비명보다는 탄식을 하게 만듭니다.
이런 이유에는 영화가 "효정"의 이야기가 공포로 이어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큽니다.
극 중 "효정"은 밤에 죽은 친구의 귀신을 보거나 뱀소리를 듣는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데, 이는 그녀의 학창 시절에도 연관되었음을 영화 후반에서나 알려주는데요.
그렇기에 때아닌 귀신의 등장은 "점프 스케어"나 황당함으로 다가오니 무서움보다 피곤하게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주요 이야기들이 '공포'보다는 앞서 언급한 "베드신"으로 활용되니 주객이 전도된 느낌도 있고요.3. 야한 장면에만 힘줬구나?
여기에 더 아쉬움이 남는 건 "성민"을 비롯한 형사들의 이야기입니다.
비록, 기억에 남는 것이 "야한 장면"뿐이지만 영화는 "형사"들을 출연시켜 극 중 수사함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키려는 시도 또한 있습니다.
문제는 이게 너무나도 얄팍히 한데, 보통 "각색"은 이야기를 드라마나 영화와 같은 매체에 맞게 가공하는 작업입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제주도의 "김녕굴"을 소재로 한 것을 보여주나 이에 대해서 제대로 매듭짓지 못합니다.뭐 하기는 했는데...
실제로, "김녕굴"이 "뱀"에 관련된 설화가 있어 극 중 "뱀"이 나오기는 합니다.
근데, 영화는 그들의 동기 설명보다는 몸으로 보여주어서 "왜, 그랬는지?"라는 여전히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형사"들을 출연시켜 극 중 수사함으로 관객들을 몰입시키려는 시도가 있다고 말했지만 어디까지나 "네이버 지식백과" 수준으로 해당 영화를 꼭 봐야 하는 관객들의 동기로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그저, 기억에 남는 건 "베드신"과 요가를 저급하게 바라보는 창작자들의 마인드(?)만이 전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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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벗어날 탈(脫)
불일부이(不一不二), 오프닝부터 기이한 거문고 소리와 함께 전면에 떠오르는 한자어는 아리송하다. 불교 철학에서 출발한 위 구절은 ‘너와 나는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 (다르게 말해서)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다.’라는 뜻이다. 의미를 풀어보니 이해가 더 복잡해진다. 두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임을 짐작케 한다.
불치병에 걸려 삶의 막바지에 선 영목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108배에 매진한다. 죽음을 맞기 전, 마치 열반의 경지에 이르려는 듯 여자친구의 애닳은 전화에도 굴하지 않고 단지 절을 할 뿐이다. 숭고하게 절을 하고, 물잔을 비우고, 산책을 하고, 단상을 기록하며 번뇌를 지우기 위해 노력한다. 무겁게 생각하지 않으려하지만 도리어 생각이 많아지는 역설을 발견하는 나날이 지속되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다가 홀린 듯 나무 더미 속 공간으로 기어들어가 붉은 꽃 한 송이를 보게 된다. 그 날 이후 영목은 붉은 옷의 형상을 목격하기 시작한다. 신경이 쇠약해져 헛것을 보게 된 걸까, 혹은 부다의 현현인가. 공포에 휩싸인 영목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박차를 가한다.
지우는 작가다. 애니메이션으로 입문했지만 이내 그만두고 그림을 그린다. 전시를 앞두고 있지만 번아웃이 온 탓에 마감기한에 쫓기고 있다. 영감을 기다리다가, 예전에 그렸던 애니메이션이나 내보라는 기획자의 독촉 전화를 받고는 자신이 애니메이션을 그만 둔 이유를 반추해보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부터 끝을 두려워한 지우는 죽음의 필연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왜 모든 것은 끝내 멈추어야 하는가? 왜 모든 이야기는 끝이 나야 하는가? 과거 남자친구와 함께한 니스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들춰보다가 어렴풋이 답을 찾고 다시 애니메이션을 그리기 시작한다.
서보형 감독의 첫 번째 장편 영화인 벗어날 탈은 실험적이다. 전형적인 영화 구조에서 벗어나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병치시켜 풀어내다가, 종국에는 이어버린다. 죽음을 연료삼아 깨달음으로 나아가기위해 노력하지만, 죽음(미지의 형상)을 두려워하는 영목. 멈춤을 두려워하여 영원히 유예하려고 하지만, 사진(정지한 것)에서 생명을 포착하고 애니메이션(움직이는 것)을 다시 그리게 된 지우. 서로가 두려워하는 것을 열망하고 열망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먹고 먹히는 관계. 영화는 순환하며 점에서 거대한 고리 모양의 구조를 띠고 있다. 마치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대비되는 것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다름을 부각하고 있다. 여자와 남자, 상승과 하강, 멈춤과 움직임 그리고 물과 불. 영목(남성)과 지우(여성)은 각각 수직운동과 정지-움직임을 반복하며 삶(물)과 죽음(불)을 찾아 헤매고 있다. 그러나 가장 짜릿한 지점은 서로 다른 개념이 접합되는, 말하자면 불일부이가 실현되는 때이다. 영목과 지우가 만나는 순간, 죽은 줄만 알았던 해변의 사나이가 영목으로 환생한 순간, 저승사자 같은 빨간 옷의 여인이 지우로 치환된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마치 영혼을 주고받듯 성스럽게 입을 맞추며 이어진다.
지우의 애니메이션 속에서 두 사람이 합쳐지는 장면은 불일부이를 더욱 명료하게 나타낸다. 이야기 속에서 한 남성은 한 여성의 자궁으로 기어들어가 잉태된다. 남성의 모습에서 꽃을 찾으러 나무 더미 세상으로 기어들어가는 영목이 겹쳐진다. 지우는 둥그런 베개를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출산해내는 연기를 하는데, 마치 지우가 영목을 출산한 것처럼 느껴진다. 서로 대비되는 것을 좇던 두 인물이 결합하게되니, 영목은 죽음을 연료삼아 추구했던 깨달음보다 삶의 기쁨이 더 중요함을 깨닫고, 지우는 끝의 두려움을 극복하여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삶과 죽음이 구분되지 않고 이어지니 만물은 서로 같지도, 다르지도 않다는 뫼비우스의 띠가 완성되는 것이다.
2018년 제작한 단편영화 <탈날 탈(頉)>에서 확장된 <벗어날 탈(脫)>은 정해진 포맷 안에서 제작한다는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4대 3비율을 사용하며, 남녀 한 명씩만 등장시키고 거문고 음악을 사용할 것. 가히 제한된 조건 속에서 창의력이 극대화된 경우라 할 만하다.
4:3, 정확히는 1.375:1(아카데미 비율)의 화면비를 사용하면서 회화적 연출이 두드러진다. 수직운동을 반복하는 영목의 움직임을 담기에 탁월했다.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수행에 정진하거나, 몸을 꼿꼿이 편 채로 좌선하는 모습에서 잘 드러났다. 또한 프리즈프레임을 활용하여 회화적 특성을 부각하면서도, 1초 24번 이하로 프레임을 분절하여 달리는 지우의 모습을 간격있게 표현한 장면은 움직임을 중시하는 지우의 특질을 강조하는 것에서 나아가 움직이는 이미지(Moving Pictures)라는 영화 매체의 본질까지 환유한다.
박우재 음악감독의 거문고 연주는 혼란스러운 극의 분위기를 선율로서 충실하게 표현한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른 채 무작정 구도하는 마음, 미지의 형상과 조우하여 혼란스러운 마음에서 영목과 지우가 만나 하나로 이어지는 장면까지. 작은 단위로 특정 비트를 표현하는 것에서 발전하여 하나의 선율로서 장면을 뒷받침하기까지 다양하게 기능한다.
로베르 브레송은 시네마토그래프를 ‘움직이는 이미지와 소리를 가지고 하는 글쓰기.’라고 표현했다. 영화는 태동 이래 끊임없이 존재론적 위협을 받아왔다. ‘제7의 예술’로 명명되며 독립된 예술로서 지위를 공고히하는가 했지만, 회화, 문학, 연극, 음악, 무용의 특징과 비교하는 방식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브레송의 표현은 독자적인 영화의 정의를 정립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벗어날 탈>은 회화의 특징을 끌어들이면서도 가장 영화적인 방식으로 승화시켜 시네마토그래프로서 구현해내었다는 점이 신선하면서도 반갑다. 이미지(쇼트)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역학과 탁월한 사운드를 잘 버무려 영화의 본질을 존중하면서도, 인접 예술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저변을 확장한 실험적 시도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3년 만에야 관객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익숙하지 않은 불교 교리를 영화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표현의 한계가 직관적 동요를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정신적인 것을 시각화하여 필름 위에 환원해냈다는 점만으로도 괄목할 만하다.
원을 그리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벗어날 탈>은 부서지면서 생겨날 것을 권한다. 멸(滅)의 끝은 생(生)의 시작이고, 생의 끝은 곧 멸의 시작이니 매끈하게 이어진 마음으로 사는 것이 진정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이 되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순환의 길 위에서 마음을 기울일 것은 바라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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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어지며 미어지기를 택한 마음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언제 봐도 마법 같은,『데미안』속 문장이다. '새'와 '알'은 세상 모든 성장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우리는 언제나 오늘을 사는 동시에 내일을 향한다. 삶의 여정이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는 것이기에 목적지가 저곳이라면, 지금 발 디딘 이곳을 벗어나야만 한다. 잃는 동시에 얻는다.
이 사실을 개념적으로 받아들이고 정립할 수 있는 건 시간이 꽤나 흘러서지만, 이제 막 자라는 아이일 때부터 사실 이동은 시작되었다. 우리는 딱 이맘때의 아이 '클레오'를 영화에서 만난다. 한창 자랄 일만 남은 여섯 살 과 그 아이가 훨씬 더 미약할 때부터 함께했던 유모 '글로리아'.
클레오의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그의 시점을 온전히 담고자 노력한 영화이기에, 글로리아뿐인 클레오의 세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필 때다.
* 아래부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이의 일과는 단순하다. 일어나 글로리아와 유치원에 가고, 끝나면 글로리아와 손을 잡고 조잘조잘 떠들며 집으로 돌아간다. 먹고 씻는 사이사이에 장난도 치다 보면 까무룩 잠들고. 가끔 만나는 아빠와 짤막한 인사를 나누며 또다시 글로리아와 단둘이 하루를 보낸다.
유일하게 글로리아가 없는 유치원에서의 일과는 어떤가. 요리 수업인지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선생님을 따라 달걀을 깬다. 달걀은 그냥 깨지지 않는다. 어딘가에 부딪혀야 한다. 그런데 너무 강한 힘으로 뭉개져서도 안 된다. 껍질이 파편처럼 섞이고 마니까. 하지만 아이들의 작은 손은 그 크기와 달리 어딘가 맹렬한 면이 있어서 조절을 하지 않고, 기꺼이 부딪힌다.
조각조각을 걸러내야 하는 일. 꽤나 성가신 일이 아이들에겐 당연한 과정이다. 그저 재료 속에 숨은 껍질을 찾는 데에 온 집중과 정성을 다한다. 이제 주걱으로 보올에 담긴 재료들을 힘차게 섞는다. 이때도 온 힘을 다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일러둔다. 너무 세게 하지 말라고.
이 장면은 클레오를 비롯한 우리 인간 모두의 겪어온, 겪은, 그리고 겪을 일상의 연속이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잊었을 뿐이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세계를 깨고 나왔는지를. 다만 깨고 나왔을 때의 고통과 낯섦은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어서 새로움 앞에 쉽게 움츠러든다.
잔잔하던 일상에 작은 파동이 일렁인다. 글로리아에게 일이 생긴 것이다. 그는 경제적 이민자다. 머나먼 섬에서 나고 자라 아이들까지 낳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자리를 찾아야 했고 섬보다는 도시가 훨씬 유리했다. 몇 년을 이곳 프랑스에서 보냈는데 집으로 돌아갈 일이 생겼다. 어머니의 부고.
바람에 나부끼는 갈대밭의 소리와 글로리아의 무거운 목소리. 발걸음을 서성일 때마다 글로리아가 갈대 틈 사이로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다. 어느 밤. 글로리아는 아이에게 조심스럽고도 덤덤하게 사실을 전한다. 아이는 잠시간 멈칫하다가도 크게 개의치 않아 보인다. 여름방학에 클레오가 섬으로 놀러 오게 해 달라는 글로리아의 부탁에 아빠가 긍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글로리아는 맹세의 침까지 뱉었다. 우스꽝스러운 다짐. 궁금해진다. 글로리아는 정말 확신했을까. 클레오를 다시 보게 되리라고. 그의 눈동자에는 한치의 거짓이 없었으나, 확신할 순 없다. 클레오를 보내겠다는 아빠의 긍정은 사실 빈말이었는데 감쪽같았다.
하지만 클레오는 아빠의 빈말보다 글로리아의 맹세의 침 뱉기를 믿는다. 나름 격렬한 투쟁을 거치고 나서 클레오는 드디어 글로리아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과거는 모두 질감 덩어리가 뭉친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된다. 거친 파도의 바다와 들끓는 화산이 있는 섬. 글로리아처럼 보이는 여자, 지금보다 어딘가 어려 보이는 실루엣. 표정은 알 수 없다. 질감과 명암과 움직임을 느낌으로 받아들여 그의 마음을 유추할 뿐이다.
클레오는 그다지 달가운 손님이 아니다. 섬 특성상 폐쇄적인 환경이고, 외부인을 경계하는 만큼 내부인의 자부심이 굉장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글로리아는 내부인이지만 가족 안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외부인 같다.
특히 클레오보다 몇 살 더 많은 듯한 세자르에게 글로리아는 낯선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도 잘 모르겠던 사람이 대뜸 제 엄마 행세를 하려 들고, 게다가 생김새도 이질적인 애를 데려와선 저한테 주지도 않은 관심과 사랑을 쏟아붓는다. 세자르의 반항심과 반발심은 바다 위 절벽에서 다이빙하는 아찔한 취미로 이어진다.
클레오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환경을 관찰하고 습득해 간다. 세자르의 날 선 모습을 아이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툴툴대고 인상 쓴 얼굴을 하고서도 세자르는 클레오를 자신이 돌볼 대상임을 인지한다. 잠든 아이를 업고 집으로 걸어가는 식으로. 어쩌면 돌봄 받지 못한 자신을 클레오에게 투영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 감정을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건 아니다. 영화의 시선은 내내 오묘하다. 클레오와 글로리아의 깊고 오래된 사랑과 유대감을, 유모가 된 계기를 얼굴 없는 애니메이션으로 유추할 뿐이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단어를 손쉽게 입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그저 눈빛과 행동, 웃음으로 감각하게 된다.
클레오는 글로리아의 세계에 들어와 사진에서 보았던 추억의 대상들을 몸소 겪었다. 그의 세계는 다양하고 넓은 반면, 자신의 세계는 여전히 글로리아밖에 없었고. 환경을 바꿨지만 여전히 새는 알에서 나오지 못한 거다. 원치 않았을 테지만, 클레오의 알은 깨지고 만다. 글로리아의 손자가 태어나면서.
갓난아기는 빽빽 울고 어른들은 달려들어 그를 어르고 달랜다. 클레오는 제가 온몸으로 받던 글로리아의 관심을 모조리 '뺏겼다'. 한참 자라난 이들의 눈엔 자연스러운 흐름이나, 이제 막 세계가 깨어진 존재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다. 글로리아의 모든 관심을 저 작은 애가 앗아갔다. 단잠 자는 글로리아를 깨우려고까지 하는 저 아기는 악마처럼 보일 따름이다.
결국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클레오는 아이들이 지닌 특유의 맹목스러움을 아기에게 분출하고, 글로리아가 이를 엄하게 꾸짖는다. 집밖으로 뛰쳐나가 마구잡이로 걷던 클레오의 발걸음은 남자아이들이 깔깔대며 뛰놀고 있는 바다 위 절벽으로 향한다. 그리고 비장하게, 다이빙한다.
앞서 말했듯 어른의 세계는 이것저것 복잡하고 많은 것들이 담긴다. 글로리아는 딸과 아들이, 손주가, 마음을 나누고 있는 사람이, 공사 중인 호텔이,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어느 하나가 없어져도 상실감이 아주 클 테지만 남은 것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아이의 세계엔 어느 딱 하나밖에 없어서 그 하나가 사라지면 세상을 잃는 것과 같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은 마지막 발악처럼 무모한 게 당연하고, 글로리아도 아이의 마음을 듣고 헤아린다. 클레오에 대한 사랑과 별개로 그를 돌보는 건 돈을 받는 일이라서 글로리아는 아이에게 큰 요구를 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지 않고 장난치려 들 때도 받아주듯. 그런데 세자르에겐 어딘가 모르게 엄했다. 행동을 교정하려 들고 책임을 요구하고.
그래서 클레오를 바다에서 꺼내준 세자르에게 '엄마에게 뽀뽀해 줘'라며 사랑의 표현을 요구했다. 세자르가 뚱하게 그냥 고맙다고 말하라고 하자, 그제야 진심의 말을 전한다. 어딘가 모르게 따듯해진 찰나의 표정이 잔상에 남았고.
글로리아는 일로서 아이를 돌보는 게 익숙하더라도 가족으로서 아이를 돌보는 건 다소 서툴었던 걸까. 아무리 성인이라고 한들 언제나 부족한 면은 있기 마련이니까.
이건 평생 익숙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별.
클레오를 돌봐줄 새 유모가 생기고, 글로리아는 한 번 고향에 돌아온 이상 나갈 생각이 없다. 이곳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이 많으니까. 클레오를 덜 사랑하는 게 아니다. 세계가 다르다. 클레오에겐 글로리아밖에 없어서, 오히려 둘은 멀어져야 한다.
각자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는 어느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깨어지고 부서지며 나눠진 조각조각이 또 다른 추억을 만든다는 것을 배워야 하니까. 기억의 총합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고, 또 다음 세계를 깨고 나온다는 것을.
그렇게 클레오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던 때. 이번엔 전과 다르다. 다음을 기약하지 않고, 글로리아는 제가 오래도록 찼던 고래 목걸이를 클레오에게 둘러준다. 자신의 몸과 다를 바 없던 무언가를 떼어내는 감각. 지금 당장은 클레오가 매끈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없을 테지만 느낌으로는 알았을 테다.
꽤 의연해 보이던 글로리아는 몸을 돌려 걷자마자 엉엉 울고 싶던 마음을, 끝에서야 터뜨린다. 아프다. 너무너무 아프다. 언제나처럼 목에 있던 목걸이가 사라진 무게만큼 허전하다. 우리는 그의 눈물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안다. 비워진 무게에 문득 익숙해질 것임을. 클레오가 글로리아 세계에서 완전히 제거된다는 게 아니다. 사랑스러운 일부로 존재할 테다. 다만 빈자리는 곧 새로움으로 채워지기에. 글로리아가 그래왔듯 클레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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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셸 공드리 감독의 신작: LE LIVRE DES SOLUTIONS / 솔루션 북 (2023) 리뷰
LE LIVRE DES SOLUTIONS / 솔루션 북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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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개봉한 미셸 공드리 감독의 신작 '솔루션 북'을 어제 영화관에서 보고 왔습니다.
대강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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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마크'는 에이전트에 자신의 새로운 필름을 소개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건 아닌 것 같다며, 그를 해고하려하고,
마크는 이에 맞서, 자신의 클립과 자료들을 챙겨 작은 마을로 도피합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영화를 감상한 사람의 의견을 먼저 드리자면, 일단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미셸 공드리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이 본인을 주인공 '마크'에 투영하여 만든 영화인만큼, 그의 기존 작품 스타일과 제작/연출 방식을 알고 보면 이 주인공 '마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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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가장 큰 포인트는 '코미디'입니다.
그런만큼 중간중간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재미요소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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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 이 영화는 한 사람이 영화를 제작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가 아닌,
(물론 겉으로는 맞습니다만, 미시적으로 보았을때는 그게 포인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영화와 함께 성장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영화인 것 같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를 제작하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위기와 갈등들을 통해 그가 한단계 성장하고, 새로운 사랑도 찾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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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톡톡 튀는 영화입니다.
연출도 마음에 들었고, 피에르 니니의 연기도 완벽했네요.
한국에서는 언제 개봉할지 모르겠지만, 개봉하면 보러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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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타임 1시간 42분,, 정말 마음에 듭니다.
까이예 뒤 시네마 (Cahiers du cinéma) 가 평점 5점 만점에 5점을 주었지만...
저는 3.5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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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와 영화 사이에서 허우적대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블립 이후 PTSD에 시달리기 시작하자 '닉 퓨리'(새뮤얼 L. 잭슨)는 우주 방공 시스템 'S.A.B.E.R.'로 숨는다. 하지만 그가 우주에서 마음을 달래는 사이, 지구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퓨리가 새 집을 찾아주겠다는 30년 전 약속을 배신했다고 판단한 스크럴이 인류를 위협하기 시작했기 때문.
새로이 스크럴 저항군의 리더가 된 '그래빅'(킹슬리 벤아디르)은 인류를 절멸할 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고, 지구는 제3차 세계 대전 직전에 빠진다. 그 사이 퓨리의 절친 '탈로스'(벤 멘델슨), 아내 '프리실라'(샬레인 우더드), 그리고 탈로스의 딸 '가이아'(에밀리아 클라크)는 목숨을 위협받는다. 이에 퓨리는 마침내 지구로 돌아온다. MI6 국장 '소냐'(올리비아 콜먼)의 도움을 받아 그래빅을 막기 위해서.
닉 퓨리도 구하지 못한 MCU
MCU가 위기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 정도를 제외하면 '마블'이라는 이름값에 걸맞은 흥행도, 비평도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 <앤트맨: 퀀터매니아>로 막을 올린 페이즈 5도 표류 중이다.
디즈니+ 드라마도 반응이 안 좋다. <완다비전>, <호크아이>, <팔콘과 윈터솔져> 등 익숙한 히어로가 등장한 작품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변호사 쉬헐크>, <미스 마블> 등 새로운 캐릭터를 소개하는 작품은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영화와 드라마의 연계도 악수가 됐다. 드라마를 보지 않으니 시리즈에 연계된 영화 역시 자연히 흥미가 떨어진다.
MCU는 여전히 두 리더,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셈이다. 이에 마블은 아끼던 카드를 꺼냈다. <엔드게임> 이후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만 잠시 모습을 비춘 닉 퓨리가 첩보 드라마 <시크릿 인베이젼>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어벤져스 프로젝트의 기획자도 MCU의 구세주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시크릿 인베이젼>이 드라마와 영화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까닭이다.
인간 닉 퓨리를 보다
<시크릿 인베이젼>을 <변호사 쉬헐크>, <미스 마블>과 같이 분류하면 닉 퓨리 기분이 꽤 나쁠지 모른다. '닉 퓨리'가 주인공이라는 개성과 재미만큼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퓨리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나 <캡틴 마블> 정도를 제외하면 언제나 조연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항상 베일에 가려 있었다. <시크릿 인베이젼>은 MCU가 10년이 넘도록 감춘 인간 닉 퓨리를 보여준다.
퓨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약하다. 동료들을 잃고, 나이가 들었다. 그는 지키지 못한 30년 전 약속에 짓눌린다. 자기가 초래한 위기의 한가운데에서 도통 갈피를 못 잡는다. 그는 아내와 친구 등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들을 찾아가 도움을 구한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그의 결점과 인간적인 면모를 들려줄 기회를 잡는다.
각 에피소드는 퓨리와 특정 인물과의 관계를 강조한다. 마리아 힐과의 동료애. 탈로스와의 애증 섞인 신뢰. 그래빅과의 갈등.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이아와 퓨리의 동병상련. 퓨리를 중심으로 각각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문학적인 대사가 곁들여져 품격이 느껴지기도 한다. 레이먼드 카버의 시 '마지막 단편'을 인용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결국 <시크릿 인베이젼>은 외관이 첩보물일 뿐, 퓨리의 인생을 들려주는 드라마에 가깝다.
이민자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물론 퓨리만 있지는 않다. <시크릿 인베이젼>은 퓨리를 중심으로 다른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함께 풀어나간다. 그중 가장 중심이 되는 서사는 탈로스와 그래빅의 대립이다. 퓨리가 새로운 집을 마련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자 종족의 생존을 위한 길을 선택해야 했던 둘. 그러나 그들이 생각한 방식은 달랐다.
드라마는 이들의 갈등을 단순한 선악으로 가르지 않는다. 그래빅이 빌런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신념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세히 살핀다. 그래빅에게 퓨리가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탈로스는 퓨리를 얼마나 신뢰했는지. 퓨리의 배신이 얼마나 큰 상처였는지. 그래빅이 인간을 얕보는 이유와 탈로스가 믿는 인간의 강점까지. 퓨리와의 관계 안에서 그들의 신념이 만들어진 과정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보니 둘의 대립은 마치 <엑스맨> 시리즈 속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갈등 같다. 탈로스는 인간과 돌연변이가 공존할 수 있다는 프로페서 X와 같은 의견이다. 그는 그래빅을 막고, 지구를 구한 대가로 인간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요청하려 한다. 반면에 그래빅은 매그니토에 가깝다. 인간을 모두 죽이고 지구를 차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혐오를 선동하는 지도자가 문제 해결을 위해 국민을 전쟁터로 내모는 역사가 반복된다.
최근 멀티버스에 집중하는 MCU에 지친 팬들에게 이 대목은 퍽 반갑다. 잠시 과거의 마블이 보이기 때문. 현실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며 세계관을 확장한 덕분이다. <캡틴 마블>이 스크럴을 난민에 비유해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시크릿 인베이젼>은 스크럴을 이미 한 사회에 녹아든 이민자로 대한다. 드라마의 주된 배경이 미국이 아닌 유럽인 점도 무게감을 더해준다.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를 간과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크릿 인베이젼>은 꽤 만족스럽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각 인물의 서사는 잘 쌓아 올렸지만 정작 첩보물로서의 재미가 부족하다. 케빈 파이기가 이 드라마를 두고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정신적 후속작이라고 밝힌 것에 비하면 성에 차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까지 등장했지만 첩보물다운 서스펜스는 부족하다.
이유는 명백하다. 마블 스튜디오가 드라마와 영화의 차이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연속성이다. 영화는 한 편의 완결성만 갖추면 된다. 속편 예고는 선택사항이다. 드라마는 다르다. 다음 화를 기대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회별로 기승전결을 가지되 전 회차 역시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드라마에 이중 플롯이 필요한 이유다.
이 작업은 정교한 계산을 필요로 한다. 각 에피소드에 어떤 이야기를 분배할지, 각 회의 핵심 사건은 뭔지, 다음 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엔딩은 뭘지, 전 회차를 아우르는 이야기는 어떻게 풀어낼지. 이 모든 작업이 이뤄져야 드라마의 이중 플롯이 안정적으로 완성된다.
모아 놓고 보면 부실한 이유
그런데 <시크릿 인베이젼>은 이중 플롯을 살리지 못했고, 첩보물로서의 연속성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시도는 했고, 편린이 보이기도 한다. 동료도 조직도 잃은 채 그래빅의 음모에 대응하지 못하는 퓨리. 그 빈자리는 MI6 국장 소냐가 채운다. 그녀는 영국 정부에 침투한 스크럴을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그래빅을 추적하고, 그의 계획을 조금씩 알아챈다.
하지만 그녀의 활약은 피상적이고, 부분적이다. 극의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활용될 뿐이다. 적은 아니지만 친구도 아닌 퓨리와의 팽팽한 줄다리기도 그리 자연스럽지는 않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을 지키지 못한 퓨리부터 헛되이 희생한 셈인 탈로스, 어벤져스를 모두 합친 것보다 다 강해진 가이아와 허망하게 퇴장한 그래빅까지. 여러 캐릭터의 마지막 행보는 이해하기 어렵다.
당연한 일이다.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첫 두 에피소드의 러닝타임은 50분 남짓이다. 이후 나머지 4개 에피소드는 40분 분량도 채우기 힘들어한다. 약 4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6개로 나눈 셈이다. 그러니 각 화의 플롯은 챙겨도 전체 에피소드를 연결할 플롯까지 온전히 챙길 여유가 없다. 주인공인 퓨리만 적극적으로 부각하고 나머지 캐릭터와 이야기를 희생한 격이다.
물론 퓨리의 뒷이야기를 감상하고, MCU의 확장을 본다는 점은 여전히 만족스럽다. 그러나 이 작품에게 기대한 첩보물의 성격이 옅어진 이상 주객전도라는 인상을 지울 수는 없다. 특히 누구로든 변할 수 있는 스크럴 종족의 특성, 곧 첩보물에 가장 걸맞은 능력도 온전히 살리지 못했으니 더더욱. 결국 드라마를 제작한 기획부터 의문이 남는다. 6개 에피소드로 쪼개기보다 과감히 편집해 한 편의 영화를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시크릿 인베이젼>은 마블의 현재를 요약해 준다. 마블은 디즈니+ 출범과 맞물려서 드라마 제작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드라마라는 형식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도통 감을 못 잡는 듯 보인다.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었다가 영화로 제작하기로 변경된 <아머워즈>가 방증하듯. 이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만달로리안>과 <안도르> 등의 드라마를 영리하게 활용해 프랜차이즈를 확장하는 것과 자연히 대비를 이룬다.
그렇다고 플랫폼을 포기할 수도 없으니 이런 딜레마도 따로 없다. 이미 <로키> 시즌 2, <에코>, <아이언하트>, <데어데블: 본 어게인> 등 8개 드라마가 공개 예정인 가운데, 과연 마블은 이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지켜볼 일이지만, 낙관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Poor 형편없음
디즈니+, MCU의 계륵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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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빈 주연 넷플릭스 영화 무도실무관 / 김우빈의 멋진 액션 연기 / 감동적인 부자의 눈물 / 무도실무관이란 직업의 재발견 / 사회정의의 실현 / 성범죄 아동성범죄 불법촬영 척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무도실무관"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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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헐크버스터가 온다!
#왓이프 #아이언맨 #마블레고
2021. 06. 08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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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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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왓이프 아이언맨!
00:41 유출된 레고
02:32 왜 사카르에?
03:06 레고가 페이크라면?
03:55 접점이 없는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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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만은 변치 않아. 우리가 어딜 가든지, 가족은 우리의 요새야.” [아바타: 물의 길] 티저 예고편 대공개 2022년 12월, 오직 극장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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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시작된 곳, 전설이 부활한다! SF 액션 블록버스터의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