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뚜로빼뚜로2023-09-21 20:39:22
추석에는 갈비를 뜯으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자
영화 <커밍 홈 어게인, 2019> 리뷰
2019년 작품인데 한국 개봉은 2023년 9월 20일이니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재미있게도 영화 속에 그려지는 명절은 설날이지만, 한국 관객과 추석을 앞두고 만나게 되었다. 설이든 추석이든 명절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을 만나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날이 아닌가. 깊은 맛이 나는 양념에 재운 갈비, 채소를 따로 볶아 씹는 맛이 아삭한 잡채, 쑥갓 고명으로 정갈함을 더한 동태전 등을 밥상에서 마주하였을 때, 당신은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 <커밍 홈 어게인, 2019> 포스터
혼자 알아서 잘 큰 아들, 창래
창래는 어린 시절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학창 시절 그의 최선은 높은 성적으로 가시화되었다. 더 좋은 고등학교, 더 좋은 대학교는 가족과 떨어져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미국 서부에서 정반대 쪽인 동부까지, 분명히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엄마는 엄마대로, 창래는 창래대로 힘겨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창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그 속에 뿌리를 내리느라 힘들었고, 엄마는 그런 아들을 보며 어색한 공기를 느꼈다. 창래는 늘 그랬듯이 혼자 알아서 잘 크는 아들이었다. 예일대에 입학을 했고, 월스트리트 금융가에 취업을 하며 '아시안 아메리칸 엄마'들이 바라는 '드림'을 이루었다.
혼자 알아서 잘 큰 아들, 창래
갈비로 사랑을 표현했던, 창래 엄마
갈비는 살코기가 뼈에 어느 정도 붙어 있도록 저미는 것이 중요하다. 뼈가 있어야 고기 맛이 더 사는 법이다. 갈비는 고기만큼 양념장도 중요한데, 그중에 배는 고기를 연하게 만들면서 단맛을 추가해 주기 때문에 빠뜨리면 안 된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부른 것이 어미의 마음이지 않은가. 비록 몸은 미국 땅에 발 붙이고 살지만, 엄마는 자신이 먹어본 음식 맛을 떠올리며 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정성 들여해 주었다. 때로는 아들만큼 빠르게 늘지 않는 영어 실력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는 일도 있지만, 그것 역시 영어 공부에 매진하지 못하는 게으른 어미 탓이지 아들 창래는 아무 잘못이 없다. 남편은 지금껏 라면조차 제대로 끓이지 못하는데, 엄마를 위해(어쩌면 창래 자기 자신을 위해) 명절 상차림을 해내는 창래의 음식 솜씨는 분명 엄마를 닮았다.
갈비로 사랑을 표현했던, 창래 엄마
원작은 이창래 작가의 에세이
영화 <커밍 홈 어게인>은 이창래 작가의 에세이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이창래 작가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3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995년 발표한 소설 영원한 이방인(Native Speaker)이 그의 대표작으로 미국에서 아웃사이더로 살아가는 한국계 이민자들의 정체성을 그려내며 한국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그는 영어로 소설을 쓰는 미국 작가이지만, 한국에 올 때마다 먼 친척을 알아가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였다.
영화의 원작이 되는 에세이는 1995년 작가가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간병하던 시기에 쓴 글이었다. 이 글을 중국계 미국인 웨인 왕 감독이 읽고, 영화화를 제안하였다. 웨인 왕 감독도 어머니가 파킨슨병을 앓다가 돌아가신 즈음이었다. 어머니는 그를 뱃속에 품은 채 미국 땅으로 건너왔다. 언젠가 가족과 이별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가끔 우리는 그것을 잊는다.
원작은 이창래 작가의 에세이
미국인들은 집 안에 신발을 신고 들어간다. 그러나 창래네 집은 신발을 문 앞에 가지런히 벗어두고 양말 바람으로 집 안을 다닌다. 카펫이 깔려있긴 한데 바닥 보일러가 없으니 발이 시릴 것 같다. 카펫은 전체 세탁이 어려워서 더러워지면 알코올로 그 부분만 닦아낸다. 집 안에서 신발을 신는 것이 맞을까. 벗는 것이 맞을까. 그때 솔직히 미안했었다고 말해볼까. 이문세 '옛사랑'은 겨울과 어울리는 노래다. 광화문거리 흰 눈에 덮여가고 하얀 눈 하늘 높이 자꾸 올라가네. 자꾸 올라가네.
노래를 들으며 그리움이 가득 담긴 댓글을 읽어보자.
* 해당 리뷰는 씨네 랩(CINE LAB) 크리에이터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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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움과 쓸쓸함이 있어 혼자가 아닌 우리
어. 그래. 그럴 때 있지.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에이. 그래서 영원한게 있나. 생각은 다 바뀌는거 아냐? 당연하지. 너무 걱정하지마. 나도 그게 그렇게 될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어찌됐건 다 이뤄지더라. 다 잘될테니까 신경 쓰지 마. 수화기 반대편으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밝아서 다행이었다. 너 예전에 어디 아프다고 하지 않았나? 아. 지금은 괜찮다고? 다행이네. 아무튼 생각 많이 하는게 그렇게 좋아보이진 않더라. 난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예전에 했던 전애인 이야기. 내 20대동안 바뀌었던 처지에 관한 이야기. 별의 별 소재로 대화가 이뤄졌다. 그래도 너 많이 발전했다. 너만한 사람이 없긴 하지. 과분한 칭찬에 멋쩍게 웃었다. 그럼 다음에 봐. 전화를 끊었다. 발전한 사람이라. 휴대전화 전원을 아예 끄고 책을 손에 잡았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이었다. 소설 안엔 여자주인공이 나온다. 제발. 선생이 저를 서울로 데려다 주세요.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남자는 이 부탁을 거절한다.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여자의 말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렇게 부탁을 거절하고 남주인공은 안개 가득한 도시 무진을 떠난다. 소설은 안개가 가득한 도시의 모습을 묘사한다. 주인공이 떠나고 난 후는 보여주지 않는다. 소설을 끝마치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게 만약에 내 주변의 이야기로 치자. 여자주인공은 어떻게 될까? 남은 시간동안 남자주인공의 빈자리만 느끼다가 시간을 보내게 될까? 남자는 선택을 후회하진 않을까? 책 읽고 나면 늘상 하는 잡생각이었다. 사실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온다고 해서 원하는 인생이 짠하고 이뤄질리는 없어. 그럼에도 여주인공은 사람이기 때문에 혹시나에 기댔을거야. 여주인공이 어떻게 될 것 같느냐고? 난 책이 던지는 질문에 안개같이 막연하게 답했다. 그냥 그렇게 살다 가지 않을까. 어차피 남자주인공같은 사람은 이 소설책에서 한 사람밖에 없을테니까. 비슷한 상황이 떠오르면 계속 생각나겠지? 그럼 남자들에게 비슷한 말을 계속 하거나 직접 서울로 올라가거나 둘중 하나를 택할거야. 어떤 존재가 있다 없어지는 건 상대를 내 일상속에서 지워버리는게 익숙해진다는 점에서 씁쓸한 일이었다. 무진의 안개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토니 티키타니>는 부재에 관한 영화다. 러닝타임이 짧다. 1시간 30분이었다. 적당한 길이의 단편소설을 읽으면 이정도 시간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는 이를 반영하듯 영화라기 보다 책을 읽는것처럼 진행된다. 책을 읽다보면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 전반에 걸쳐 들리는 나레이션은 이를 연상시키며 영상을 한장한장 넘기는 것 같은 느낌을 더해준다. 촬영한 카메라의 시선이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르다는 것도 특이점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를 연출해서 얻는 이점은 하나 더 있다. 주인공 토니의 일생을 표현하는데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토니는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 만든 이름이다. 일본이름도 영어이름도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이름의 처지와 비슷하게 어느곳에도 속해있지 못해 외로웠던 주인공은 어렸을때부터 또래 애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였다. 이렇기 때문에 그는 혼자인 것에 그렇게 불만이 없었다. 타인이 보면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었으며 매사가 혼자였던 삶에 한줄기 희망이 들어온다. 완벽한 이상향의 여인 에이코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이다. 에이코와 함께라면 늘 행복했던 토니. 외로움덕에 쓸쓸하지 않았던 인생에 처음으로 고독이란걸 느끼게 된다. 에이코가 날 떠나면 어떡하지. 이런 잡다한 고민에 속이 썩던 그는 에이코에게 청혼한다. 결국 결혼에 골인한 둘은 그렇게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 뿐이었다. 너무 많은 의류를 사들인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소비를 줄이자고 했던 조언이 예상치 못한 비극이 됐다. 토니는 새로운 삶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선택할 겨를도 없이.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영화의 2/3쯤 된다. 난 영화가 말하려는 메세지가 남은 1/3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 지점을 넘긴 영화는 아내 에이코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 무언가 행동하는 토니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내와 옷핏이 비슷한(실제 배우가 1인 2역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해서 부인이 샀던 의류를 입게 한다. 부인과 이미지가 비슷한 사람을 통해 처음 느낀 외로움을 채우고 싶었던 주인공. 이걸로는 택도 없음을 느낀다. 늘 혼자였을 땐 외로움을 몰랐는데 그녀가 떠나고 난 후에야 고독을 느낀 것이다. 이 이후에도 주인공과 까운 사람이 간암으로 상을 떠난다. 이 덕에 토니는 세상 아무도 찾지 않는 외톨이가 됐다. 영화는 아내의 옷장에 멍하니 있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안그래도 혼자인데, 아버지가 상하이의 어떤 감옥에서 누워있는 모습과 오버랩되어 처연하기까지 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아내와 닮은 가사도우미에게 전화를 하는 주인공 모습이 나온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릴 때 그녀는 옆집 아줌마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일을 하느라 부재중이었기 때문에 통화는 실패한다. 영화는 그냥 그러고 끝난다. 완벽히 지운것도, 지우려고 노력하는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이 사람이 이 사건으로 성격이 이렇게 변했다는 식의 서술도 없다. 사실 이 영화의 이런 화법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그 사람같은 인연은 온 지구를 다 뒤져 찾아봐도 하나밖에 없다. 이 작품과 무슨 관련이냐? 부재로 인한 외로움에 해결책같은건 없단 걸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 모습이 보였으니까.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빈자리는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토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영화는 이런 나에게 또 우리에게 손을 내어준다. 우리를 일으켜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같이 쪼그려 앉아서 손을 잡아준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난 이 이상의 인간이 아니구나. 나도 토니와 그렇게 별다를 바 없는 삶을 보냈구나. 몇년도 지난 일에 대해 후회하는 날이 많았다. 세상이 유달리 혹독할때도 하지 않았던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사는거다. 누군가가 떠난 빈자리를 느끼면서 말이다. 난 지금 그걸 이겨내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날 떠난다고 해서 난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둘 다 아닌것 같다. 이젠 세상 눈치 안보고 산다지만 몇명은 솔직히 멀어진다는 게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게 강박이 될때마다 나에게 되뇌인다. 감사하며 살아라.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갈 받는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상대가 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를 잃을 필욘 없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을 잊어버리고 살다간 세상에 혼자만 남는다. 이게 지금의 나에게 답에 가까운 솔루션인걸 뻔히 알면서도 어쩔때는 지나간 날에 아쉬워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기에 이 영화가 좋았다. 이거 우리 모습인거 알아. 이런 메세지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감독은 공감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의도했다고 생각한다. 원작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을 그대로 살린듯한 덤덤한 나레이션부터 앞서 언급한 '바로 옆에서 보는 듯한 카메라 구도'까지. 이 영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외로움과 쓸쓸함이란 그렇게 큰 감정이 아니라 우리 일생에서 친구처럼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어느 한 부분을 도려내어 지극히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던 것도 우리 삶 속의 외로움을 돌이켜보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맞아. 외로움이라고 하는거 사실 별 것 아니다. 그 사람 사정은 그 혼자만 알고 있다. 나도 그랬다. 아직도 한참 멀었고 지나치게 어린 인생이지만 내가 느꼈던 일상이란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기준을 남에게 둘때도, 여유가 생겼을때도 나는 목적지 없이 달리기만 했던 것 같다. 이건 특히 누가 나를 떠날때 심했다. 뭔가가 없다는 걸 느낄때마다 일을 벌였다. 바쁘게 살면 잊을 수 있을테지. 방구석에 앉아 누구를 만나는게 아니라면 난 이 생각에 빠져 무언가를 후회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강박증이 있는 머릿속은 지독하게 나를 붙잡아 놓아주질 않았다. 찌질한 모습 다 버렸고 내가 아니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몇가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럴때마다 매순간 드는 생각이 있다. 아. 있을때 잘할걸. 이 빈자리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채울 수 없는거구나. 어른이 된다는건 이 회한을 받아들이는 것이구나. 내 노력만으로 인간관계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뻔히 알면서도 가끔은 나는 나를 혼냈다. 괜찮아. 이 영화를 보고 드는 첫번째 생각은 그것이었다. 이 영화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좋은게 아닐까.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던 이유도 작품이 주는 쓸쓸한 카타르시스가 우리가 일상을 버티는 괜찮은 이유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 이 세상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예정된게 분명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게 25살의 내가 느낀 세상에 관한 모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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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니 데이 인 뉴욕(A Rainy Day in New York/ 2018/ 미국)
(이미지 출처: 네이버이미지)
<뉴욕, 뉴욕>
개츠비와 애슐리는미국 뉴욕주 북부에 위치한 인문학의 명문, "야들리대학교" 캠퍼스 커플이다. 둘은 학교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만났다. 야들리대학교를 좋아하는 개츠비의 어머니는 자신처럼 아들이 훌륭한 문학가가 되기를 원한다. 그뿐 아니라 피아노를 가르쳤고 뉴욕의 모모한 미술관에는 꼭 가도록 챙기면서 예술적 소양을 길러주었다.
개츠비는 문학가로 이름을 떨친 어머니가 속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가을마다 맨해튼의 집에서 파티를 열며 두 아들들이 꼭 참석하기를 원하나 순종적인 형과 달리 애슐리는 어머니의 '허세 가득한 버젓함'이 싫어 파티를 피할 궁리만 한다.
어머니의 파티가 열리는 주말, 애슐리는 예술 영화감독 롤란 폴라드를 뉴욕 맨해튼에서 인터뷰할 기회를 얻는다. 진작에 주말을 뉴욕에서 지내며 애슐리에게 여러 명소들을 구경시켜주고 싶었던 개츠비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며 함께 보내게 될 특별한 주말에 마음이 설렌다.
그러나 뉴욕에 도착하여 애슐리가 롤란 감독을 만나게 되자마자 일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영화에 대한 평가에 매우 엄격한 롤란. 그의 신작은 애슐리가 보기에 훌륭하지만 롤란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다. 시사회에서 완성된 영화를 보고 우울했던 그는 인터뷰 도중에 사라지고 만다. 시나리오 작가 테드에게 남겨진 애슐리는 어쩌다 테드 아내의 불륜 사건에 휘말려 개츠비와의 저녁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만다. 아내로부터 불륜이 사실임을 확인하게 되어 옥신각신하던 테드는 롤란이 있을 만한 곳의 주소를 애슐리에게 건네며 택시를 태워 보낸다.
주소대로 영화 스튜디오로 찾아간 애슐리. 간발의 차이로 롤란은 놓치고 그대신 매력적인 배우 프란시스코를 만난다. 그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애슐리에게 접근한다. 프란시스코와 함께 있던 애슐리는 파파라치들에게 노출되어 방송을 타게 된다.
프란시스코가 초대한 영화인들 파티에 간 애슐리. 그 자리에서 롤란과 테드, 프란시스코 등 세 사람 모두와 어울리며 애슐리는 꿋꿋이 인터뷰를 이어간다.
한편 애슐리와 함께 지내려고 세웠던 계획이 모두 무너지자 개츠비는 맨해튼을 거닐며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난다. 뒷담화 킹 트롤러는 의대에 다닌다고 했고 영화학교에 진학한 조쉬는 길에서 학교 영화를 촬영 중이었다. 배우 구하기가 여의치 않아 이웃 친구들을 동원하여 만드는 영화에는 고교시절 개츠비의 여자친구였던 에이미의 동생, 챈이 출연 중이었다. 챈은 언니와 개츠비가 사귈 때 여느 남학생들과 많이 달랐던 개츠비를 몰래 좋아했었던 후배. 남자 배우가 궁했던 차에 급하게 캐스팅된 개츠비는 몇 번의 NG 끝에 화끈한 키스 장면까지 해치운 뒤 챈과 헤어져 형의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엄마에게 자신이 뉴욕에 왔음을 비밀로 해달라고 약속하고 형 대신 포커게임을 하기로 한다.
비가 세차게 내려 택시를 잡은 개츠비와 거의 동시에 같은 차에 오른 챈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동행한다. 챈은 의상디자인을 공부하는데 그림 속 옛날 인물들의 의상에 관심이 많았던 것.
그런데 미술관에서 개츠비는 파티에 참석하려고 뉴욕에 온 삼촌 부부와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아 어쩔 수 없이 어머니에게 전화로 애슐리와 함께 파티에 가겠다고 알린다.
형대신 포커게임을 한 개츠비는, 언제나처럼 또 이겨서 수 만불을 손에 쥔다.
애슐리가 프란시스코와 함께 있는 장면을 TV로 보고 낙심한 개츠비는 애초에 그녀와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던 칼라일호텔의 바에 들러 혼자 술을 마신다. 그러다가 에스코트 서비스를 하는 금발 미녀를 만나 거금을 주고 어머니의 파티에서 애슐리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집을 찾은 개츠비. 그의 어머니는 한눈에 금발의 미녀가 창녀임을 알아채고 내보낸다. 그리고 개츠비를 불러 가족의 비밀을 알려주는데 개츠비는 충격을 받는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반감에서 놓여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문 닫을 시간에 칼라일 바를 다시 찾아 피아노를 치는 개츠비 앞에 비에 흠뻑 젖은 애슐리가 나타난다. 그렇게 토요일은 둘의 계획과 관계없이 전혀 로맨틱하지 않게 날아가고 말았다. 일요일 아침, 센트럴파크에서 애슐리의 원대로 마차를 타던 개츠비는 느닷없이 무언가 깨달은 듯, 특종 기사를 쓰게 되어 의기양양한 애슐리에게 돈을 쥐어주고 자기는 뉴욕에 남겠으니 혼자 학교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둘이 헤어지자 다시 비가 내리며 뉴욕은 안개 속으로 잠긴다.
노래하는 시계탑 아래에서 저녁 6시에 낭만적인 생각에 잠겨 서성이는 개츠비 앞에 그의 마음이 닿아있는 한 여성이 나타난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비내리는 뉴욕의 아름다움을 여실히 스크린에 담은 우디 앨런 스타일 영화이다. 우디 앨런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배우들이 히스테리컬하게 쏟아내는 대사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 대사는 노골적일 정도로 솔직하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이는 롤란은 애슐리가 그의 감정을 편하게 해주기를, 테드는 그녀가 그를 이해하고 그에게 영감을 줄 뮤즈가 되기를, 프란시스코는 육체적으로 그에게 쾌락을 주기를 매우 솔직하게 요구한다.
챈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애슐리의 형은 약혼자에 대한 불만을, 애슐리 어머니는 가족의 비밀을 태연하게 애슐리에게 알린다.
영화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그가 싫어하는 것은 명확하게 안다.) 또 당당하게 주장하지도 못하며 우물쭈물하는 것은 애슐리 뿐이다.
애슐리는 학교신문 기자 일이나 문학 공부에는 시큰둥하고 오히려 승률이나 내기, 포커 게임과 술집에서 연주될 법한 피아노곡 연주에 매우 능하다. 그가 흠뻑 빠져 있던 애슐리가 그와의 연애보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성공에 열심을 내는 것에는 그러려니 할 뿐이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폭탄 같은 고백에 비로소 그는 문학과 별로 맞지 않으며 어머니 같은 야망도 없는 자기 자신에게 눈을 뜬다. 그리고 같은 예술적 소양을 지니고 있고 유대 문화를 배경으로 한 챈에게 마음이 향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당하면 우리는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아울러 엄청난 충격을 준 대상을 원망하며 자기 연민에 함몰되고 말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딛고 일어설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할 형편을 맞는다.
애슐리의 선택은 후자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 그런 결정을 한 애슐리는 어쩌면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혹은 보이는 이상으로 강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있다가 잠깐 돌아와 보낸 주말 동안 그는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된 후 그 깨달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부쩍 성장한 것 같다.
이 영화의 볼 거리는
첫째, 뉴욕이다. 불안과 신경증적인 고민이라는 성장통이 비와 안개에 젖은 아름다운 뉴욕에서 일어나고 잦아든다.
둘째, 호화 캐스팅이다. 캐릭터를 스크린 위에 살아나게 하는 그들의 연기가 빛난다.
셋째, 배경 음악이다. 비와 잘 어울리는 풍성한 재즈 선율은 모든 것의 첨단인 뉴욕이 매우 올드하게, 감성적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아들과 어머니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강한 유대감을 보이는 유대문화이다. 모계사회처럼 어머니를 중심으로 움직여지는 가정과 자녀교육이 우리문화와 비슷하여 흥미롭다. 영국인에게 직접 들었는데 영국의 전통에 따르면 아들은 어머니보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더 돈독하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요즘 긴 장마로 매일 만나게 되는 비가 지루하거나 귀찮지 않게 느껴진다. 오히려 무언가를, 깨달음이나 신선한 만남을 기대하게 만든다. 역시 노장은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았다(©2020.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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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걸 뒤엎어버리고 새로움을 맞이하다
모든 걸 뒤엎어버리고 새로움을 맞이하다.
<티탄> 영화 리뷰
폭력과 충격
티탄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폭력적이고 기괴한 표현 방식으로 다가왔다. 개연성으로 엮인 이야기라기보다는 은유의 연속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보기가 힘들 정도로 폭력적이고 기괴한 장면들이 있었지만,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에너지가 영화를 보는 사람을 끌고 가는 느낌이다.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 이렇게 강력한 표현 방식으로 영화를 보여주는 것일까?
충격 속 이야기들
이 영화가 말하고 자 하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 인물을 중심으로 다시 영화를 돌아보았다. 주인공은 알렉시아이자 아드리앙이다. 여성과 남성의 모습을 모두 비춰준다. 그렇다고 주인공을 양성이라고 칭하기엔 그 이상의 젠더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자동차와도 관계가 가능했고 그로 인해 임신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젠더를 자꾸 뒤엎어버리는 설정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보여준다. 처음 알렉시아 가지고 있던 성적 대상화된 여성성의 모습을 아예 비틀어버린다. 알렉시아의 처음과 끝의 모습을 비교해서 보면 성적 대상화된 여성성이 도드라져 보인다. 특히 처음 레이싱걸로서 춤을 추는 주인공과 소방차 위에서 춤을 추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여성의 성적 대상화에 대해 말한다. 두 장면을 비교해서 보면 여성의 미가 대상화된 이미지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또 대상화된 여성성으로 임신이 있다. 고귀하고 신비롭게 여기는 임신을 이 영화에서 두려움으로 보여준다. 변화하는 몸과 감당하기 힘든 상황들이 보는 사람에게도 느껴져 임신이라는 것이 무섭게 느껴진다.
전환
주인공이 아닌 다른 인물로도 성에 대한 생각을 비틀어버린다. 뱅상은 남성성을 힘들게 이어가고 있는 인물이다. 약에 의존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위하여 남성성을 억지로 이어 나간다. 그 모습이 괴롭게 느껴질 정도로 뱅상은 남성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하지만 뱅상은 결국 약으로도 남성성을 지키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장면에서 다양한 측면으로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남성성, 여성성, 젠더 자체에 대한 인식을 비틀어서 전달한다.
주인공과 뱅상은 결핍이 있고 각자의 성에 잡혀있는 채로 시작했다는 점이 비슷하다. 주인공은 아버지에 대한 애정의 결핍이 있고 성적 대상화된 여성성에 사로잡힌 레이싱걸로 살아가고 있었고, 뱅상은 실종된 아들로 인해 사랑을 주고자 하는 대상
의 결핍이 있고 소방대장의 위치를 위해 남성성에 끌려다녔다. 이런 공통점을 가진 두 사람은 잡혀있던 성에서 해방되고 서로로 자신들의 결핍을 채워가며 새로운 신인류를 맞이했다.
비틀고 뒤집어
감독은 주인공과 주위 인물들로 모든 것을 비틀어버린다. 그 방법이 다소 폭력적이
고 기괴해 받아드리기 어렵지만 나는 이것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충격을 표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감독은 기존의 성과 모든 고정된 이미지를 엎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새로운 세상은 고정관념에서 해방되어야 만날 수 있다는 메시지 같다.
한 줄 코멘트
충격으로 뒤엎어지고 발견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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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추천작] 처음 태동한 개념이 몰고온 혼란, 그리고 담담하게 시대를 견딘 사람에 대하여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에서 가장 기대를 많이 했던 영화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 시계공장과 아나키스트의 관계가 어떠할지, 그리고 무정부주의가의 모습을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뱅크시 전시회를 보면서 무정부주의라는 사상과 예술의 조합에 굉장히 인상을 받은 터라 영화와 함께 결합한 무정부주의의 이야기는 어떨지 기대가 됐다. 영화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는 19세기,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서 시계를 만드는 스위스 한 마을은 변화를 겪는다. 이 마을에서 조용히 일어난 무정부주의 운동 지지 현장에서 한 러시아인 여행자와 시계 공장 노동자가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 이 이후로는 영화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인상적인 인물의 구도와 배치
영화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에서 궁금했던 것은 인물이 왜 자꾸 가장자리에 위치하는 것일까? 였다. 커다란 나무나 지붕을 가운데에 배치하고 인물들이 화면 끝에 걸쳐 있는 통에 무의식적으로 내가 몸을 움직이며 조금 더 시선을 옮기면 저 인물들을 더 잘 볼 수 있지 않을까 했었다.
그 이유는 영화 GV에서 풀렸다. 감독의 말에 따르면 당시 무정부주의자들은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었고, 이러한 주변부적인 특성을 무정부주의를 따르는 인물들을 시각적으로 화면의 가장자리에 놓이게끔 만들면서 중심적인 세력이 아니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이렇게 비가시적인 개념들도 영화적 장치를 통해서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감독의 연출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영화 음악 없이 자연의 소리로 채워넣다
영화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ASMR을 틀어놓은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째각째각 돌아가는 시계 소리와 걸음 소리, 그리고 새소리 등 일상생활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을 조금 더 부각시켜 놓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소리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여서 영화음악의 부재에 대해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영화 음악이 단 한 차례도 쓰이지 않고, 일상의 백색소음만 활용했다는 것에 굉장히 신선했던 작품이었다.
영화 음악이라는 것이 영화 속에서 굉장히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었고, 영화 음악이 없다면 영화에 대한 집중도와 몰입감이 덜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편견을 완벽하게 깨준 작품이었다. 무정부주의자들의 합창을 제외하고는 그저 일상의 소리만으로도 영화 자체의 집중도를 올리고, 청각적 요소가 전혀 비어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다.
19세기 시간의 힘에 대해
이 작품은 자본주의가 태동하고, 시간이라는 개념이 시작되면서 이를 통해 권력의 힘을 잡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언뜻언뜻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처럼 표준시가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스위스에서는 공장시간, 지역시간, 전보시간, 시청시간 등 총 4개의 시간이 존재했고, 어떤 시간을 쓰느냐에 따라서 각 기관의 권력을 상징하고, 절대 다른 시간에 맞추려 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서 시간이라는 개념을 장악하는 것이 당시 권력의 상징이었음을 잘 드러내고 있었다.
이와 더불어 국가라는 개념도 태동하던 시기였는데,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영토와 국가, 그리고 시간이 처음 이러한 개념이 등장했을 때는 굉장히 혼란스러웠고, 이에 대한 표준을 정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세력의 반발과 과도기적인 시간이 존재했음을 담담한 시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개념이 과거에는 혼란 그 자체였고, 그리고 현재 혼란한 개념에 대해서 미래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개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함께 들었던 순간이었다.
영화 <시계공장의 아나키스트>는 무정부주의와 함께 시간과 국가의 개념이 태동하던 유럽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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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베 얀손 영화 후기 - 삶과 캐릭터란 자신의 Symbol을 보여주는 하나의 브랜드이다.
핀란드의 유명한 작가이자 무민이라는 캐릭터를 탄생 시킨 토베 얀손은 유명한 조각가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토베 얀손은 아버지의 재능을 닮아서인지 미적 감각이 탁월하다. 화가이면서 삽화가이기도 했던 토베 얀손의 삶은 어땠을까? 영화 초반부에서 전쟁이 끝난 직후이자 1945년에 토베 얀손은 엄격한 예술가 아버지를 피해 새로운 거처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고 비비카라는 시장의 딸이자 각본 연출가를 만나 동성애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토베 얀손과 비비카의 사랑을 보여주는데 그만큼 비비카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는 토베 얀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끊임없이 성적인 노출 장면이 영화 겹겹에 나오는데 무민이라는 캐릭터가 탄생되기까지에는 토베 얀손의 파란만장한 삶을 엿볼 수 있다.
토베 얀손이 비비카를 만나고 무민이라는 캐릭터를 그리면서 아동용 만화가가 되기 시작한다.
토베 얀손에게는 비비카라는 여성이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 없이 이 둘은 거침없이 사랑을 나누고 확인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서로 예술을 좋아하며 예술가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무민이라는 캐릭터가 지금까지 인기를 끌어온 것은 토베 얀손이 삶을 멋진 모험이라고 생각하는데 있어 담긴 토베 얀손만의 철학이 담겨있는 것 같다. 자신의 아버지는 토베 얀손이 그리는 무민이라는 만화가 예술이 아니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토베 얀손을 인정하게 되고 각본 연출가인 비비카 덕분에 연극으로도 탄생하게 되어 아동들에게도 인기를 끌게 된다. 만약 자신의 그림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무민이라는 캐릭터는 없었을 것이다.
무민이라는 캐릭터가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노력과 고난이 있었다.
사회주의적인 분위기가 있는 핀란드에서는 신문에 아동용 만화를 그리지 못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자유로운 연애를 지향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사회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나라에서도 성(SEX)에 관련된 부분에서는 보수적인 것보다 진보적이다. 거침없이 사랑을 하고 거침없이 헤어지는 당시 핀란드 시대상의 분위기는 불륜을 매도하기보단 수용하는 사회였던 것 같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성적인 장면들과 노출은 자신의 신체 노출에 대한 개방적인 사람들의 자유분방한 태도가 보인다. 그렇기에 사랑에 대한 관점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수많은 박수갈채를 받은 토베 얀손의 무민 연극은 당시 자유로운 핀란드 시대상의 분위기가 한몫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토베 얀손이 무민이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킴으로써 핀란드를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동화 작가로서 그녀가 살아온 인생 경험과 철학은 무민이라는 캐릭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어찌 보면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들을 다르다고 억압하기보다는 그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포용을 보여주는 게 맞는 것일 수도 있다고 필자는 생각하는 바이다. 토베 얀손이 탄생시킨 무민이라는 캐릭터도 단순한 캐릭터가 아닌 모험적인 삶을 좋아했던 다사다난했던 인생을 표현한 작품이 아니었을까? 지금 우리에게 무민은 어떻게 생각되고 각인되고 있을까?
삶이 모험이라면 캐릭터는 나 자신을 표현하는 심볼(Symbol)이다.
하니엘의 주관적인 영화 한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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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아먹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
공포영화는 다양한 방법으로 인간의 두려움을 자극한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 귀신, 악령 등 초자연적인 현상에서부터 잔혹한 살인마와 같은 실질적인 공포까지. <에이리언 시리즈>는 호러영화 중에서도 크리쳐물에 속하는 장르지만, <쥐라기 공원>, <죠스>, <피라냐>등과는 다른,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와 절망을 자극한다. 바로 이성과 본능의 선과 악을 뒤집는 내용들과 무자비한 성폭력의 메타포 때문이다.
영화 안에서 '제노모프'로도 불리는 이 괴생명체는,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인간과 제노모프의 기원을 다루는 <프로메테우스>에서도 나오듯 '엔지니어'라고 불리는 창조주들이 만들어 낸 생물이다. 이 제노모프는 알에서 태어나 '페이스허거'로 불리는 상태로 숙주를 찾아 얼굴에 들러붙고 입에 삽입해 제노모프의 유충을 넣는다. 제노모프의 유충은, 숙주의 DNA와 결합해 숙주에 따라 다른 형태의 성체로 자라난다. 인간의 DNA와 결합한 제노모프는 뛰어난 지능과 포악한 본능으로 생물들을 잡아먹는다.
<에이리언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그 특유의 미술은 기괴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던 화가 H.R. 기거가 만들었다. 제노모프의 디자인도 애초에 그가 그렸던 한 그림에 나오는 괴물을 모티브로 했다. 바이오메카니즘으로도 불리는 기거의 그림들은, 뼈와 기계 관들을 반복적으로 밖으로 드러내면서 반투명한 미끌거리는 질감을 넣어 무척이나 기분 나쁜 느낌을 준다. 특히 제노모프의 머리는 남성 성기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이러한 기거의 디자인은 후에 다양한 곳에 영향을 주었는데, 만화 <베르세르크>의 사도와 5인의 천사들 디자인이 그 예다.
디자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페이스허거는 강제로 얼굴에 들러붙어 삽입을 해서 유충을 몸속에 넣고, 나중에 체스트버스터가 되어서 가슴에서 튀어나오게 된다. 이 과정은 그저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라서 무섭다기 보단 성폭행에 의한 강제임신과 출산을 연상시켜 더 끔찍하게 만든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주인공들은 전부 여성이고, 여성이 침을 질질 흘리는 남성 성기모양의 머리를 가진 폭력의 화신인 괴물과 대항해 싸우는 내용이다. 그 세세한 영화 뒷이야기를 모르더라도 영화 미술이나 디자인, 연출들이 그걸 느끼게 해 주기 때문에, 끔찍함을 넘어서서 불쾌함으로 다가가 영화 자체를 보기 힘들어할 수도 있다.
또한 제노모프는 태어난 본능으로 인간의 뇌를 주식으로 먹는다. 본능이 이성을 잡아먹는 것이다. 본능과 이성의 뒤집힘은 작중에서 여러 번 나오는데, 앤디와 같은 합성인간이 이성적이라면 제노모프는 본능적이고, 인간은 그 중간에서 이성과 본능을 다 가지고 있다. 인간의 본능은 모두를 위한 합리적인 선택을 전혀 하지 못한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이 살려는 본능이나, 친구를 살리려는 본능에 이끌려 죽음을 자초한다. 이 와중에 이성만이 극대화된 합성인간들은 합리적인 생각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주인공들이 들어가게 되는 우주정거장은 로물루스와 레무스 모듈로 이루어져 있는데,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로마를 건국한 형제의 이름이다. 로물루스와 레무스도 전쟁의 신 마르스의 강간으로 낳은 자식이다. 또 로물루스 모듈은 모두 제노모프의 근거지가 되어 승무원들이 잡혀가 숙주가 되어있는데, 역사에서도 로물루스는 로마에 여성이 부족하다고 이웃나라의 여자들을 납치했었다. 레무스 모듈이 그나마 웨이랜드 유타니의 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모듈이라면, 로물루스의 연구소는 그들의 끝없는 탐욕의 본능을 드러내는 모듈이다. 이 탐욕은 제노모프보다 더욱 끔찍한 것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모든 본능이 나쁜 것이고, 이성은 합리적이며 옳은 것일까? 망가진 합성인간이 인간성을 되찾고, 인간성은 죽음을 무릅쓰고 친구를 구한다. 모든 것이 계산대로 완벽할 순 없다. 제노모프도 통제할 수 있다는'합리적 이성'으로 통제하려는 사람들을 본능으로 끔찍하게 이성의 상징인 뇌를 잡아먹으며 죽이지 않은가.
수많은 시리즈를 낳은 <에이리언>이지만, 이번 <에이리언: 로물루스>는 그 근본의 메시지에 가장 충실하다. 70년대 사이버펑크가 지닌 우주선의 디자인부터, 남성의 성폭력과 여성이 대항하는 힘, 본능과 이성의 줄다리기. 그리고 <이블데드>를 리메이크하면서 인정받은 페데 알바레즈의 뛰어난 연출력까지. <에이리언 시리즈>가 가진 특징과 재미를 그대로 살려냈고, CG가 아닌 실물이 보여주는 질감과 레트로한 감성은 <에이리언>을 처음 접하는 젊은 관객들도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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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th JIMFF 이은정 감독님 interview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오랜만이다 의 #이은정 감독님 본격 탐구! ?♀️
? JIMFF X HISTRANGER ?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HISTRANGER가 떴다!
JIMFF 공식 웹 데일리팀이 직접 취재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현장을
지금부터 살펴볼까요?
한국경쟁 상영작 [오랜만이다]의 이은정 감독님을
하이스트레인저 웹 데일리 팀이 직접 만나보았습니다!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8월 25일 대개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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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 매주 목요일 밤 11시 59분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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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의 기대에 못미친 오컬트 블록버스터 / 퇴마록 애니메이션 / 원조 퇴마소설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퇴마록"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전에 하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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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튼 아카데미> 메인 예고편
우당탕탕 흘러가는 #바튼아카데미 에서의 겨울 ⛄️❄️ 세 사람의 따뜻한 연대와 위로가 담긴 [바튼 아카데미] #2월21일극장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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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방법: 재차의> 티저 예고편
되살아난 시체 '재차의'(在此矣)가 살인을 저질렀다!
살인사건 현장에서 피해자와 함께 용의자도 사체로 발견된다.
그러나 용의자의 시신은 이미 3개월 전 사망한 것으로 밝혀져 경찰은 혼란에 빠진다.
한편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기자 임진희는 라디오 출연 중
자신이 바로 그 살인사건의 진범이며 생방송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다는 전화를 받게 된다.
경찰과 네티즌은 임진희 기자의 온라인 생방송을 일제히 주목하고
인터뷰 당일 그 곳에 나타난 범인은 되살아난 시체 '재차의'에 의한 3번의 살인을 예고하는데…
첫 번째 살인이 예고된 날,
엄청난 수의 ‘재차의’ 군단이 나타나 무차별 습격을 시작하고
총력 방어에 나선 경찰 당국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과연 이들을 조종하고 있는 배후는 누구일까?
이들을 막아낼 유일한 ‘방법'(謗法)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