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8-29 21:25:42
[SIWFF 데일리] 인간에서 인간까지
영화 <카메라를 든 사람>
SYNOPSIS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 커스틴 존슨이 25년간의 촬영 경력 동안 포착해 낸 푸티지 영상을 직조하듯 풀어 낸다. 영상 제작자와 대상들 사이의 관계, 카메라의 객관성과 개입 사이의 긴장, 그리고 날것의 현실과 가공된 이야기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영화.
PROGRAM NOTE
감독으로서 영화는 곧 ‘이야기’로 정의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감독은 이야기 안에서 배제된 촬영 현장의 목소리에 대해 늘 아쉬움과 한계를 느끼고는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영화 〈카메라를 든 사람〉은 무엇보다 예외적이며 뛰어난 작품이다. 이는 25년 동안 촬영감독으로 활동한 커스틴 존슨만이 가지는, 감독과는 다른 시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영화는 오랜 기간 촬영 현장에서 카메라를 통해 만난 사람과 감정을 주고받았던 순간을 엮어서 만든 커스틴 존슨만의 자서전이다. 마치 잘려진 천 조각들이 ‘퀼트’라는 하나의 예술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본 듯하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 5년 만에 다시 찾은 보스니아의 한 가족과의 대화와 ‘작은 상영회’는 이야기에서 놓쳐버린 현장의 순간들이 어떻게 환생되고 의미화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다큐멘터리를 하다 보면 감독의 그릇만큼 세상이 보일 때가 많다. 현장에서 만난 이들에 대한 깊은 탐색과 교감이 쌓여 결국 자신의 아이들과 치매를 가진 어머니에게로 카메라가 향할 때, 어떻게 카메라가 한 개인에게 역사가 되어 성숙한 시선을 갖게 하는지, 또한 그것이 관객에게 어떠한 울림을 주는지, 이번 영화제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권우정]

일전에 넷플릭스에서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주변에서 알음알음 추천을 받고, 왓챠피디아도 내가 4.1점을 줄 거라고 했으므로. 역시나 좋았다. 딕 존슨의 죽음을 다룬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딕 존슨의 딸이자, 다큐멘터리 촬영 감독으로 25년을 살아온 감독 커스틴 존슨의 작품이 상영된다고 해서,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첫 영화로 냉큼 골랐다. 그리고 역시나, 좋았다.
이 작품은 25년 동안 수많은 작품에 참여하면서 그가 촬영한 풋티지 영상을 모아모아 새로이 편집한 것이다. 커스틴 존슨 감독은 이것을 자신의 회고록처럼 여겨 달라고 했다. 타이틀이 떠오르기 직전 보이는 장면은 도로만이 펼쳐진 넓은 평원에 번개가 치는 순간과 우렁찬 천둥 소리가 포착되는 것, 그리고 관객인 나와 동시에 깜짝 놀란 숨을 들이켜는 촬영자의 소리. 기둥 뒤에 공간 있듯, 카메라 뒤에 인간 있음을 감추지 않는다.
굉장히 다양한 영상이 조각조각 모여 있다. 스레브레니차 집단 살해의 기억이 남아 있는 보스니아처럼 역사의 어떤 순간도 들어 있고, 복싱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담는 장면도 들어 있다. 복싱 코치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가까이서 찍는 게 진리라고 말한다. 복싱도 촬영도 가까운 데서만 가할 수 있는 일격이 있는 것 같다. 이 영화는 그 가까운 촬영의 일격을 연타로 날리는 걸작이다.

얼핏 평이해 보이는 장소에서도 ‘흥미로운 요소’를 찾는 것이 카메라의 힘임을 느끼게 한다. 얼핏 단조로워 보이는 도시의 풍경에서, 벽의 포탄 자국이, 93-94년 사이에 사망한 사람들의 묘비가, 스레브레니차를 잊지 말라는 그라피티가, 카메라에 점점이 담기면 그곳은 더 이상 평이한 도시가 아니게 된다.
세계 곳곳, 각기 다른 세계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성실히 따르며, 카메라는 다양한 것을 담는다. 삶의 ‘흥미로운’, ‘독특한’ 이야기가 있는 단면마다 커스틴 존슨의 카메라가 있다. 그러나 그 다양한 조각조각들이 모인 곳, 소실점에 있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바로 인간을 담기 위해 그의 카메라는 그토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유리창을 깨끗이 닦아 차창 너머로 찍을 수밖에 없는 나라들도 있다. 알 자지라 주요 인물들이 수감된 예멘의 감옥 앞이나 카불처럼 위험한 곳들이 있다. 그러나 거기서도 유리창을 닦는 손이 흥미롭게 담겼다고 말하는 ‘기술 전문가’인 동시에, 자신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잊지 않는 ‘예술가’가 있다.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의 익명성을 위해, 머뭇거리며 움직이는 손과 목소리만 담은 인터뷰 영상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전해진다. 인터뷰의 가장 앞 단어를 건네주면서, 공감하고 경청한다. 카메라의 역할은 결코 응시에만 그치지 않는 것이다. 기술과 예술을 동원하여, 담고 전달하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를 앓는 어머니의 모습도, 집단 살해의 기억 이후에 살던 곳으로 돌아온 가족들이 거둔 알알이 보석 같은 열매도, 눈을 다쳤지만 똑똑한 소년으로만 보였던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증언도… 촬영자에게나 감상자에게나 뚜렷하게 각인되는 이런 영상들은, 카메라의 역할이 응시에만 그쳤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피가 흘렀던 역사의 기억들과, 그 자리들이 오늘날은 평화로워진 장면을 대조해서 보여주는 것도 카메라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편집한 손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영화의 보여주기는 사실 적극적인 말하기이다. 무수한 이들의 피가 흘렀던 초원에 오늘날 얼마나 햇살이 곱고 들꽃이 살랑거리고 있는지, 단지 고운 들판을 보여줄 뿐인데 왜 우리는 참담해지는지. 이 적극적인 말하기가 없다면, 다시 말해 기록의 행위가 없다면 우리 눈에 그저 예쁜 초원으로만 보였을 것이다. 그토록 거대한 기억도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기록하고 전달하는 한, 조각도 이야기가 된다.
커스틴 존슨의 작업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이것이 팩트와 기록이 모여 역사가 되는 과정과도 비슷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조각조각 모인 이야기들이 새로운 진실을 그려내고, 풋티지 영상이 모여 새로운 작품이 되는 과정이다.

영화는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고민도 함께 담았다. 현장 프로듀서 겸 통역으로 보스니아에서 내내 동행한 이의 말처럼. 우리의 선택이지만, 더 오래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해소도 필요하다는 것을.
때로는 몰랐던 이야기 앞에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때로는 대답을 회피하는 인터뷰이에게 다른 주제로—이를 테면 옷 같은 얘기로— 말을 돌리기도 하는 커스틴 존슨의 모습을 보며… 전문가가 된다는 건 단순히 기존 하던 일에 노련해지는 일일 뿐만 아니라, 자기 하는 일 안에서 자기 감정을 정확하게 직면하는 일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흔히 전문가가 된다고 하면, 마치 감정은 무디게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감정을 잘 해소하고 정돈하는 것이 오히려 필요한 것 같다. 꼭 영화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배우나 소위 ‘감정 노동’으로 일컬어지는 일들이 아니어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대부분 감정을 사용하며 일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인간의 시선에서, 시선 끝의 인간까지. 다큐멘터리는 결국 그런 작업이 아닐까.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도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의 경계를 넘어서서, 보여지지 않는 그 너머까지, 그 소실점에 있는 인간에까지 시선이 미친다면 그 사람이 어느 직군에 있든 전문가 소리를 들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때 나의 조각 모음은 어떤 회고록의 모양이 되어 있을까. 커스틴 존슨의 인생 thanks to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은 엔딩 크레디트가 쭉 올라가는 동안 생각했다. 나의 크레디트에 남기고 싶은 이름과 마음들을. 이 영화에서 보고 배운 아름다운 시선이 거기에도 한 자락 묻어나 있다면 참 좋겠다.
2023.08.25. 14:00-15:43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6관
2023.08.28. 19:30-21:13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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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와 과거의 다정한 조우
작년 가을. 회사에서 일하다 엄마의 연락을 받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주섬주섬 상황을 알리고, 며칠 자리를 비울 준비를 했다. 장례식 기간 특별 휴가, 장례식이 끝나면 부모님 댁으로 같이 가기 위해 하루 연차를 더… 자리 비우는 동안 일은 이렇게 저렇게 대신 부탁드려요.
침착하게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화장실 칸에 들어가 아주 잠깐이나마 혼자가 된 순간 목에서 울음이 솟구쳤다. 어떤 울음은 구토처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이구나. 아직은 안 돼, 아직 울면 안 돼,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울음을 다시 집어넣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핸드폰으로 각종 예매와 약속을 취소하면서.
그때 취소한 예매 내역에 <쁘띠 마망>이 있었다.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을 두근두근 기다리고 있었지만, 개봉하고 한참이 지나 보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극장엔 나뿐이었고, 더욱 공교롭게도 영화의 주인공 '넬리'가 처한 상황이 나와 거의 비슷했다. 비로소 울음을 참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었다.
영화는 주인공 넬리의 할머니가 돌아가신 직후의 상황에서 시작한다. 넬리는 할머니가 계셨던 병원의 노인들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성실하게 인사를 하고 병원을 떠난다. 넬리의 엄마 마리옹은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넬리를 데리고 할머니의 시골집으로 향한다.
넬리는 인사성이 밝다. 할머니가 계셨던 병원을 떠나면서 한 사람 한 사람과 눈 맞추어 인사하는 모양새로 보아, 일상적인 인사를 제법 성실하게 채워온 것 같다. 넬리는 사려 깊은 아이처럼 보인다. 운전하는 엄마의 입에 과자를 넣어준 후 주스 빨대도 물려줄 만큼.
그럼에도 넬리는 결정적인 작별 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결정적인 순간의 마지막 배려를 할 수 없었다. 매일 최선을 다해도 모든 순간을 다 거머쥘 수는 없다. 사실 마지막 인사를 잘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마지막은 늘 처음일 수밖에 없으므로. 그때가 마지막이었다는 것도 뒤늦게야 알게 되므로. 이별은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으니까.
우리는 이별 후에야 그 평범했던 행위들, 무심코 지나치는 게 당연했던 모든 순간을 안타까워한다.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로 남는 후회의 문장들. 인사를 할걸. 화를 내지 말걸. 손을 잡아줄걸. 전화를 할걸. 가슴 치게 만드는 것들은 언제나 작고 사소한 일들이다. 빈 병실에서 창밖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를 막 떠나보낸 마리옹의 마음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넬리의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인지, 숲의 마법인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시간 속에서 한 채의 집을 두 채로 이어 붙여, 못다 한 작별의 시간을 갖는다. 이 시간은 기적, 어쩌면 꿈, 염원이다. 넬리와 ‘쁘띠’ 마리옹의 만남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영화는 구태여 설명하지 않는다. 기적이란 원래 그렇게 설명할 수 없이 일어나는 거니까.
기적과 이별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이리라. 예고 없이, 설명할 수도 없이 찾아온다는 것. 그 뒤에 붙는 모든 해석은 다 어떻게든 수용해 보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것. 실은 그저 닥쳐온 일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것.
이 기적은 모든 순간 위로가 된다. 훗날 자신에게 탄생을 줄 이의 생일을 친구로서 같이 축하하며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 촛불을 부는 것도. 숲속의 집을 같이 지어 올리고, 보트의 노를 같이 저어 가고, 소꿉놀이 같은 연극을 같이 하고, 앞으로 자신을 먹일 어떤 이와 함께 핫케이크를 만드는 일도.
정작 현실에서 못다 하고 왔던 인사는 이곳에서도 스치듯 건네게 된다. 그렇지만 괜찮다. 지금이 마지막 순간이라고 인지한 채로 마지막을 맞이하는 순간 깨닫게 될 테니까. 사실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뒤에 붙는 ‘~했을 텐데’의 말은 큰 의미가 없었다는 걸. 다시 돌아가도 우리는 케이크 촛불을 불고, 같이 집을 짓고, 같이 보트의 노를 젓고, 그렇게 일상적 행위들로 시간을 살뜰히 채울 것이다.
그러니까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그 말 뒤에 붙는 모든 말들은 사실 어떤 행위에 대한 후회가 아니다. 좀 더 같이 있고 싶었다는, 지금이 마지막이 아니길 바랐다는 솔직한 마음이다.
너무 가까워서 불러보지 못한 이름들이 있다. 엄마의 이름처럼. 이 영화는 시간을 이어 붙이는 마법으로 그 이름들을 조명한다. 할머니는 넬리의 이름에서 증조할머니를 떠올리고, 넬리는 엄마의 이름을 마리옹이라고 불러 본다. 이름을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구나. 아주 오랫동안 불러보지 못한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래와 과거는 그렇게 다정하게 조우한다. 미래가 과거를 닮는 것 같지만 과거도 미래를 닮는다. 이 영화 이후 “안녕 Au revoir”라는 인사는 한층 더 따스하게 기억될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신석정의 시 <푸른 침실>을 떠올렸다. 실제로 영화 속 침실들이 죄 푸른색이기도 했고. 두 아이, 미래와 과거가 함께 있는 모습이 꼭 항해처럼 보이기도 했다.
일림아
너와 나는 푸른 침실의 배를 잡아타고
또
어디로 출발을 약속하여야겠느냐?
( <푸른 침실> 부분)시인이 딸의 이름을 부르며 쓴 시와 함께, 이 영화가 반짝반짝 부려 놓은 마법을 끌어안고, 나 또한 어떤 작별을 되새김질했다.
가끔 삶의 어딘가, 균질하던 순간이 툭 깨지고 그 자리에 마음이 툭 걸리는 순간이 있다. 니트의 올이 어딘가에 훅 걸려 풀어지는 것처럼. 가까운 이의 죽음도 분명 그런 순간일 것이다. 아무리 잘한 사람이라도 후회가 남는, 그런 순간.
그렇게 멈춘 자리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이야기를 통해 다시 이별의 자리에 돌아가, 나의 모든 순간을 되새김질하여 소화하고 내일로 갈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자전적이라는 이 영화를 보며, 셀린 시아마의 마법을, 또 그 영화에서 새로운 시선을 발견하게 될 수많은 이들을 생각한다.
이별 후 눈물 혹은 한숨으로 잠 못 이루는 어떤 이의 베갯잇에 이야기 하나를 고이 수놓아줄 수 있다면. 이 영화를 종이배처럼 접어 푸른 항해를 내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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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어지러운 세상 속에 흔들리지 않는 건
콩나물국 있으니까 챙겨 먹어라.
가끔 부모의 마음이란 과연 어떤 걸까, 생각한다. 우리 엄마는 나랑 같이 사는데도 매일같이 오후 2시쯤이면 집에 있는 반찬들의 목록을 나에게 카톡으로 보내곤 한다. 나는 주로 집에서 점심과 저녁을 모두 챙겨 먹는 편이라 냉장고 어느 칸에 고기가 있는지 훤히 아는데도.
오후 2시에 집에 있는 반찬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액션 코미디 SF 장르라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참 어려운 영화다. 한참 입소문을 타고 끝물즈음에야 겨우 시간을 내어 영화관에서 관람했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어떠한 평도 후기도 보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사실 이 영화를 스포하기가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 진행이 빠르고, 화면 전환이 체감상 초 단위로 이루어지며, 내용의 전개와 장르도 5분마다 바뀌기 때문에 관객은 저들의 우주를 넘나드는 모험을 그냥 눈으로만 잘 좇아가면 된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멀티버스
이 영화에서 멀티버스의 개념은 선택과 결정의 결과에 따른 평행 우주다.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때마다 우주는 갈라지고, 다른 결정을 한 나는 각자의 우주에서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작게는 점심 메뉴부터 크게는 진로나 연인까지. 우주 어딘가에 다른 선택을 한 내가 그 결과 나름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이 있을까? 우리 모두가 술자리에서, 혹은 자기 전에 항상 하는 생각 아닐까.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그 주식을 팔지 않았더라면? 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다른 평행우주의 에블린의 삶을 잠깐 훔쳐보며 나는 잠깐이나마 대리 경험을 한 것만 같았다. 다른 우주의 내가 잠깐 궁금했다.
#2. 버스 점프
영화는 한 단계 상상을 더 해, 멀티버스 간의 점핑까지 가능토록 한다. 다른 평행우주의 내가 가진 능력을 '버스 점프'를 통해 이 우주로 빌려오는 것이다. 버스점핑을 하는 방법이 기가 막힌데, 밑도 끝도 없이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립글로스 씹어 먹기, 열 손가락 사이를 종이로 모두 베는 것 등이다. 진지하게 풀었다면 자칫 우스워졌을 수 있는 소재였는데, 대놓고 우습게 만들어서 B급 코믹 감성을 더하니 나무랄 데 없었다.
이유 없는 이상한 행동에 이유를 붙인 것이 마음에 든다. 가끔 나는 이유 없는 행동을 한다. 예를 들자면 갑자기 얼굴 근육을 당겨 본다거나, 혀를 찬다거나, 엉덩이를 흔든다거나 그런 행동들. 이 영화는 이런 행동까지 우주의 일부분으로 끌어안는다.
#3. 에브리씽 베이글
미국에서 지내던 시절, 나는 베이글과 사랑에 빠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베이글 가게로 달려가서 이것저것 잔뜩 넣은 베이글과 커피를 주문하고, 만든 지 하루 지나서 10개를 1달러에 파는 베이글을 잔뜩 사 와서는 집에서 또 야무지게 크림치즈를 발라서 먹곤 했다. 그 당시 나를 좋아하던 대학 선배는 나에게 잘 보이겠답시고 아침마다 베이글을 사다 줄 정도였으니까. 사실 선물로는 베이글보다 반짝이는 게 더 좋지 않나 싶지만.
아무튼, 갈릭 베이글과 어니언 베이글을 가장 좋아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에브리씽 베이글이었다. 깨가 잔뜩 올라가 한 입 베어 물기만 해도 우수수 쏟아질 것만 같은 비주얼에 도대체 뭐가 들었을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이름까지. 모든 것이 들어가 있는 베이글이라니, 공포 그 자체가 아닌가.
이 영화의 빌런인 조부 투바키(스테파니 수)가 모든 것을 파괴하는 블랙홀로 에브리씽 베이글을 만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정말이지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 없었다. 투바키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던 게 아닐까. 모든 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에서 오는 역설적인 공포. 역시나, 먹을만한게 아니었어.
#5. We are all small and stupid.
이 대사의 정확한 번역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작고 어리석어.
저 눈알 달린 돌멩이는 저 말을 위로라고 하는 걸까 싶었다. 극단적인 허무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딸 돌멩이에게 고작 하는 말이 저것이라니. 그런데 갑자기 마음 속 한 곳이 팍 하고 터져버린다. 아직도 이유를 짚으라면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나는 여기서부터 엔딩까지 쉬지 않고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 놀랍고도 다행인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극장 곳곳에서 다들 뭐가 그리 서럽고 힘들었는지 울고 있었다는 후기다. 덕분에 나도 맘껏 울었다.
대충 80년에서 100년 사이를 산다고 치면, 우리 모두 어느 한순간에는 조부 투바키였던 것이 아닐까. 이토록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돌멩이의 별 것 아닌 한마디가 위로로 콕 박힌다. 뭘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답을 제시하는 대신, 그냥 나의 미숙함과 어리석음을 안아버린다. 그래, 모두 뭐 다 그런 거지?
#6.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여기서 전개는 한 번 더 몰아치는데, 갑자기 여태껏 무능해 보였던 남편 웨이먼드(조너선 케 콴)의 활약이 나오기 때문이다. 웨이먼드는 처음부터 에블린을 귀찮게만 했다. 지금 세금 폭탄을 맞게 생겼는데, 이혼 타령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웨이먼드는 차갑고 원칙주의자인 국세청 직원한테까지 이혼 위기를 털어놓는 솔직하고, 온정적인 캐릭터다. 그런데 웨이먼드의 사정을 들은 국세청 직원은 그를 이해하고 심지어 시간을 더 주기까지 한다. 결국 상황을 해결할 수 있게 만든 건 웨이먼드의 진심이었다.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문제를 해결할 답을 찾는 데만 몰두하던 에블린은 끝에 몰려서야 웨이먼드의 말을 제대로 듣기 시작한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귀찮게만 여겼던, 그의 진심.
그리고 그녀는 적들을 물리치기 위한 무기로 다정함을 선택한다. 포용하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안아준다. 그녀가 투바키를 포함한 적들을 모두 다 무찔렀음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이유 없이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은 얼마나 단단하고 강하길래 이 험난하고 혼돈스러운 세상에서 저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만, 먹고 사느라 바빠서 또 내일이면 잊게 된다. 우리는 작고 어리석음을, 그리고 다정함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강한 무기라는 것을.
이 영화처럼 이상한 방법으로라도, 가끔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오후 2시에 집에 있는 반찬을 알려주는 다정함을, 바쁘다는 핑계로 카톡을 읽지 않는 나의 나약함을, 그리고 읽지 않은 카톡창에 또다시 밥을 잘 챙겨 먹으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엄마의 진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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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의 어둠에도 사랑으로 빛나는 북극성은 반드시 있다
"밀폐된 공간의 사람들,
예측 불허의 상황에 끊어지는 소통,
죽어가는 바깥의 비극."
얼마 남지 않은 2020년을 돌이켜보면 금세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유행병으로 폐허가 된 세상의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혹독했던 일 년 동안 생존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체감했을 것이다. 전 세계는 록다운과 거리 두기로 함께 하는 사람들과 떨어져야 하는 순간을 경험했고, 매일 현황판 속 증가하는 숫자들을 바라보며 누군가의 죽음과 아픔을 지켜봐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에 앉은 채 SF에 눈을 돌린다. 과학의 발전으로도 막지 못한 세상의 멸망이 눈앞에 찾아온 순간에 우리보다 앞서 겪은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불확실한 근미래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밀폐된 공간의 사람들,
예측 불허의 상황에 끊어지는 소통,
죽어가는 바깥의 비극."
영화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필멸의 시간이 다가온 우리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자, 죽어가는 지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인도할 빛에 관한 이야기이다.
출처: 다음 영화
영화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넷플릭스에서 개봉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SF 영화다. 2049년, 지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으로 더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행성이 되었다. 쫓기듯 지상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 속 북극해에 있는 바르보 천문대의 늙은 과학자 어거스틴은 혼자 그곳에 남기로 한다. 암 말기 환자인 그는 아직 대기가 오염되지 않은 극 지대에서 생을 마치려고 한다. 수혈 없이는 일주일도 버티기 힘든 그는 마지막 삶을 거센 눈보라의 텅 빈 천문대에서 정리하고 있다. 그러던 중 어거스틴은 건물 안에서 대피하지 못한 한 소녀를 만난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아이의 이름은 아이리스. 과학자는 구조를 요청하지만 이미 통신은 끊어졌고, 어쩔 수 없이 아이리스를 데리고 있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목성의 위성 K-23의 탐사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는 에테르 호의 다섯 명의 대원을 보여준다. 인간이 거주할 행성을 찾아 이년 간 임무를 수행했고, 긍정적인 결과를 든 채 고향인 지구로 돌아가고 있다. 통신 담당 설리는 이주 전부터 지구와의 연락이 끊긴 상황을 의아해한다. 처음에는 우주선 내부의 문제로 여겼지만, 곧 원인은 지구에 있음을 인지한다. 설상가상으로 에테르 호는 경로를 이탈해 미탐사 구역을 거쳐 지구로 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다시 지구로 돌아와서, 늙은 과학자는 모든 우주 탐사가 정지된 상황에 에테르 호만은 지구를 향해 돌아오고 있음을 알게 되고, 현재 상황을 알리기 위해 교신을 시도한다. 하지만 수신이 약해 통신은 번번이 좌절된다. 그는 멀리 떨어진 하젠 호수의 성능 좋은 안테나를 이용해 교신하기로 하고, 아이리스와 함께 가혹한 눈보라와 미지의 북극을 헤치고 하젠 호수로 떠난다.
감독이자 주인공인 어거스틴을 맡은 조지 클루니는 원작인 릴리 브룩스돌턴의 SF소설 「굿모닝, 미드나이트」를 영화로 만들었다. 영화는 서로 떨어진 두 적막의 공간에서 알 수 없는 재난 상황 속에 단절된 관계를 잇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다. 모든 것이 끝나가는 세상에서도 우리가 끝내 붙잡을 북극성은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작품은 코로나 시대의 고립과 불안에서 가족과 인간을 향한 마음속 깊은 간절함과 선의가 만드는 변화를 담았다.
결말을 이끄는 어거스틴의 모습은 지구와 닮아있다. 그의 외모와 더불어 신체적 상황을 묘사하는 장면들은 마치 죽어가는 지구의 형상처럼 보인다. 그의 삶에 주어진 마지막 임무인 교신은 지구가 인간에게 전하는 조언이자, 그 안에 살아가는 인류가 지켜야 할 가치를 놓지 않을 의지를 관객에게 촉구한다.
설리 역할을 맡은 펠리시티 존스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꾼 변호인〉의 긴즈버그 연방대법관 역으로 잘 알려진 배우다. 그는 실제 촬영 전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렸고, 감독과 작가는 원작에는 없던 설리가 임신 중이라는 설정을 시나리오에 추가했다. 이는 후반부 가족이라는 소재로 연결되는 등장인물과 더불어 설리에게 또 다른 층을 부여하여 해석의 가능성을 넓힌다. 우연과 운명으로 얽힌 영화는 개인에서 인간 전체로 확장된다. 희망은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연대의 노력은 절망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있음을 응원하고 있다.
소설을 각색하며 빠진 인물의 배경은 영화 중간 인물의 어떠한 선택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아름다운 영상에 비해 평이한 이야기 전개나 예측 가능한 결말 역시 영화의 아쉬움이라 할 수 있다. 플래시백 연결이 더 매끄럽게 이어갔어야 했던 점이나 중간에 삽입된 웃음 코드 장면은 사족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훌륭한 음악으로 장면 간 연결을 이어가는 부분은 인상적이나 서사의 부족함을 음악으로 채운다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의 연말,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를 보고 싶다면 ‘집콕’과 더불어 이 영화로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인류애를 충전하기를 바란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파랑달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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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러시아군의 침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이야기!
감독:이리나 칠리크
출연: 돈바스 지역의 한 가족
시놉시스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군이 쳐들어오자 그 속에서 일어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인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는 영화 맨 초반에 어느 한 가족이 나오는 장면과 함께 포격 소리가 크게 들리고 폭탄이 터지는 전장 속에서 일반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자신들의 삶을 보여준다. 트라우마로 남는 전쟁의 현장 속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피난을 가거나 그 도시에 남아있기도 한다. 이 영화는 가족이 등장인물로 나오면서 전쟁에 대한 참혹한 이야기를 여러 가지 씬으로 보여준다.
러시아군이 침공한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에 있는 이 가족은 어린아이부터 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여학생까지 다양하게 나온다. 대학 장학생이 되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해서 목표를 이루는 장면도 나오는데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게 어머니뿐만 아니라 주위 친척들까지 입시에 성공하면 포옹을 하거나 놀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야 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적군인 러시아군에게 맞서 싸우는 모습도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점점 러시아에 있는 많은 미국 기업들이 떠난다고 한다. 그러나 푸틴은 자신들에게 경제 보복하려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일본,우리나라까지 천연가스를 수출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평화를 원했던 러시아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소련을 무너뜨리고 독일 통일에도 기여했으며 평화를 위해 앞섰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고르바초프가 러시아를 망쳤다는 이야기를 하는 극우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뉴스에서는 전쟁이 금방 끝나지 않을 것으로 나오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다치고 피해를 입는 사례들이 들려오고 있다. 참혹한 전쟁을 경험하면서 트라우마가 일어나거나 죽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느낌이 많이 들기도 한다.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겹게 살아가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어서 기쁜 소식이 들려오길 바란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08/25(목) - 09/01(목)
2022-08-27 16:00 - 17:4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4관
2022-08-31 16:00 - 17:4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5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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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5주 차, 최신 씨네 뉴스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버드맨>을
연출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이 차기작 발표를
했습니다.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며 탐 크루즈를 비롯해
<추락의 해부>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산드라 휠러
<더 코너스> <클로버필드 10번지>의 존 굿맨,
<카인드 오브 카인드니스>의 제시 플레먼스가 캐스팅되었습니다.
8월 마지막주 씨네뉴스 시작합니다!
<사랑의 하츄핑> 80만 돌파
<사랑의 하츄핑>이 지난 27일 8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이는 77만 관객을 기록한 <뽀로로 극장판 보물섬 대모험>을 넘어선 수치로, 올해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 Top 5에 올랐습니다. 탄탄한 스토리와 개성 넘치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어린이뿐만 아니라 성인 관객들에게도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차기작 캐스팅 공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차기작에 톰 크루즈가 출연한다는 소식이 공식화되었습니다. 이냐리투 감독의 이번 프로젝트는 현재 제목이 없는 상태이며, 워너 브라더스와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가 이 영화를 배급하기 위해 협상 중이라고 합니다. 현재 밝혀진 기사에 따르면 톰 크루즈, 산드라 휠러, 제시 플레몬스, 존 굿맨, 리즈 아흐메드 등 캐스팅이 완료된 상황이라고 합니다.
김태리 주연 <정년이> 10월 12일 방영
김태리가 tvN 새 토일드라마 <정년이>로 복귀합니다. 이 드라마는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의 가난하지만 낭만이 있던 시대를 배경으로, ‘타고난 소리 천재’ 정년이가 최고의 국극 배우가 되기 위해 도전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드라마는 경쟁과 연대, 그리고 찬란한 성장기를 담아낼 예정입니다. 또한 라미란, 문소리, 신예은, 정은채가 출연하며, 모든 배역을 여배우들이 맡아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타란티노 감독 “토이스토리 트릴로지지는 너무 완벽해서 4편은 절대 보지 않을 예정”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27일 빌 하머의 팟캐스트 ‘클럽 랜덤'에 출연해 <토이스토리 4>를 보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프랜차이즈가 4편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면 ‘토이스토리’가 위대한 영화 3부작 중 하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나는 ‘토이스토리’ 3부작의 열렬한 팬이다. N번째까지 완전하고 완벽하게 작동하는 3부작은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무법자’ 단 하나 뿐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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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로커가 어느가족보다 나은가
간만에 엄마를 끌고, 영화를 보러 갔다. 주로 혼자 보러 가는 편이지만 유명한 영화제에서 상을 탔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보러가자고 끌고갈 명분이 생겼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이 글은 가족을 끌고 봐야할 만큼 이 영화가 상업적인 영화인지에 대해 고찰하며, 영화제에서 상을 타는 영화가 상업적인지에 대해서 다시 제고해보고자 쓰는 글이다. 이 영화의 네이버 평점이 낮던데, 나는 이 영화의 평점이 낮은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의 이유를 찾다 보니, 쓰게 된 글이랄까.
1.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정체성
이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일관적인 정체성에 대해서는 알 수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한다. 전작인 "어느 가족"에서도 가족이 된 이유가 각자 달랐지만 핏줄보다 더 가까운 가족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이 영화 브로커와 정서적 맥을 같이 한다. 가족보다 못한 사이가 있는 만큼 가족만큼 가까운 남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전작인 어느 가족보다는 좀 못한 것 같다.
나는 어느 가족을 볼 때는 이 사람들이 진정 가족이었을지 의심하고, 또 의심하다가 마지막 아이의 나지막한 외침으로 이들은 서로를 가족으로 인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나지막한 음성은 그 어떤 대사보다도 그들의 끈끈함을 강조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대놓고 남으로 뭉쳐 가족이 되어가는 사람들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아이를 팔아넘기기 위한 경제적 이유로 뭉쳐다니지만 사실은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대사 하나하나, 눈빛 하나하나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직접적 표현이 전작의 비해 진부하다고 느끼게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두 작품 모두 외로운 개인들의 집단화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생길 수도 있음을 묘사하지만 가족애에 대한 표현의 차이가 이렇게 영화의 매력을 반감시킬 수도, 배가 시킬 수도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두 영화들은 비교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두 영화는 비슷한 듯 하면서 다르기 때문이다.
2. 가족이라는 단어가 가진 복잡성
그리고 어느 가족에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형태의 가족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도둑질을 가르쳐서라도 돈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브로커 속 소영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팔아넘기려는 이유는 그녀가 살인자이기에 멀쩡한 가족을 이루어줄 수 없기 때문에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라도 멀쩡한 형태의 가족을 만들어주려고 한다. 이 두 영화 속에서 이야기하는 테마는 비슷하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가족의 형태에대한 고찰이 바로 그것이다.
소영이 국가 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브로커들과 함께 움직이며, 자신이 낳은 아이를 팔아넘기려고 하는 상대 가족들은 국가의 법이 합당한 가족이라고 인정하지 않거나 아이를 합법적으로 입양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법의 테두리는 생각보다 많이 보수적이라서 가족이라는 단어가 성립되려면 혈육이라는 개념이 개입하여야 한다. 그리고 합당한 형태의 결혼이어야 하고, 아이를 입양하는 데에 있어 외적인 자격 조건이 완벽하여야 혈육이 아닌 다른 아이를 입양해 키울 수 있음을 '인증'할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형태의 법적인 해석은 가끔 "정인이 사건"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아이를 입양하기에 외적 조건이 완벽하지만 자신이 입양했다는 사실을 트로피 삼아 아이를 인질 삼고 있는 가정, 아이를 입양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아이를 입양하기에는 외적인 법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 뒷돈 주고, 브로커를 이용하는 사람들, 이 둘 중 어떤 사람들이 더 나쁜 걸까. 가족이라는 단어는 무엇이기에 이리도 복잡하게 해석되어야 할까. 영화를 보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이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뭐가 그렇게 특별하기에 다들 하나의 가족을 만들고 싶어 안달들이 나 있는 걸까 하는 생각 말이다. 가족이라는 단어에는 참 많은 명암이 있는 것 같다.
3. 이 영화에 평점 테러하는 사람들에게
물론, 이 영화가 감독의 이전 영화보다 조금 진부한 부분이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면서 느꼈던 특이점이 있었다. 영화관에서 예상 외로 어르신들이 정말 많이 계셨다는 점이다. 내가 간 영화관이 서울은 아니었지만 시골의 한 작은 영화관이었기에 이런 점이 두드러졌다. 이 영화는 유명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자를 배출한 영화이다. 이 영화를 선택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영화의 캐스팅과 남우주연상 수상 여부에 따라 선택한 것이 아니었을까 의심하게 하는 지점이었다.
이 영화는 단연코 상업영화라고 보기는 힘들다. 상업 영화라고 하기엔 영화의 테마가 마이너하고, 어둡다. 상업 영화들은 관객이 공감하도록 적극적으로 설득하지만 이런 상업적이지 않은 영화들은 그렇지 않다. 공감을 설득하지 않고, 공감을 유발하는 상황을 그저 보여줄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왜 상까지 받았느냐, 개연성이 너무 없어서 평점을 1점만 주는 사람들에게 혹시 이 영화의 외적인 수상 성과에 따라 영화를 선택하진 않았는지 한 번 정도는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나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때문에 본 것인데도 내용의 진부함, 긴장감이 있는 듯 없는 듯한 전개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동감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육원에서 도망쳐 뒤늦게 합류한 발칙한 남아 캐릭터가 너무 귀여웠어서 지루한 스토리에 한줄기 빛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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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종, 기대보다 실망스러운 공포영화
랑종이 개봉했습니다.
나홍진 감독이 원안을 쓰고 제작에 참여한 영화라서 기대가 많았던 영화였는데요.
전작인 곡성과 주제가 통하는 측면도 있어 뭔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어요.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무당을 전면에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러닝타임이 꽤 긴데 초중반에 꽤 많은 공을 들이고 있어요.
그런데 후반부 공포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연달아 등장하면서 공포가 반감되는 단점이 보입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믿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부분도 많이 옅어져 버렸어요.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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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켓이 가지고 있던 '한(恨)'이 표출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Rabbitgumi 입니다!
오랜만에 리뷰를 업로드 합니다.
지난 주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3의 반응이 무척 좋습니다.
이미 많은 리뷰어와 관객들이 좋은 평가를 하고 있죠.
다양한 관점의 리뷰도 이미 보셨을 거에요.
저는 영화의 완성도 보다는 로켓이 가지고 있었던 감정과 그가 겪었던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에서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에서는 일반적인 영화 리뷰 보다는 보면서 떠올렸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정리하여 전달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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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일럿> 메인 예고편
JUST WATCH IT! 파하하하 웃음 준비 완료✈ [파일럿] 메인 예고편 공개! 7월 31일 극장 대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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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런칭 예고편
#전지적독자시점 런칭 예고편 공개💥 "이거, 그 소설 시작이랑 똑같잖아" 소설 속 세계가 현실이 되는 시간 2025년 7월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