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8-28 16:10:54
[SIWFF 데일리] 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SYNOPSIS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 도경을 잃고 폴란드 바르샤바로 떠난 명지, 같은 사고로 동생을 잃은 지은, 단짝 친구와 이별한 해수. 남겨진 사람들은 서로를 돌보며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상실의 슬픔 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따뜻한 희망의 이야기. 김애란 작가의 동명 소설 원작.
PROGRAM NOTE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문학적 기품을 바탕으로, 언어가 중요한 영화다. 이는 설혹 원작 정보를 알지 못한 채 작품을 접한 관객일지라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바, 중심인물들부터가 글쓰기 혹은 책과 관련된다. 하지만 그들조차 좀처럼 언어화하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편지라는 형식으로나마 그들이 가까스로 발화에 이르는 과정이 영화의 얼개를 이룬다. 여기에 마비 내지 부동의 자세에서 활강에 성공하기까지 점증하는 신체들의 이미지가 대구 된다. 허리께에서 시작해 몸 전체로 퍼져 나가는 발진 역시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이처럼 일견 관념적으로도 느껴지는 이야기의 배경으로 광주와 바르샤바라는 구체적 지명과 풍경이 제시되고, 마침내 인물들의 트라우마가 발화되는 순간이 도래한다. 지난 10여년 간의 한국 상황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특정한 어느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터, 관객과 영화 속 인물들 간의 연결이 감정이입을 넘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장소와 시대와 디에게시스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트라우마들의 아픔을 공유한다는 감각이 뚜렷하게 환기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태양을 바라보는 인물들이 교차편집되며 서로 간 동시성이 확보되고 이를 목도하는 관객 또한 그들의 애도와 회복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연대라는 것은 이렇게 생겨나는지도 모른다. [이유미]

명지(박하선)가 사는 아파트로, 두 개의 소음이 동시에 날아든다. 전화를 알리는 휴대전화의 진동 소리와, 아파트 바깥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도난 경보음. 경고음과 함께 들려온 소식은 부고를 알렸다. 경고음은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소리 또한 인생에 갑자기 날아들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지금까지의 세상을 무너뜨리고, 전혀 다른 곳이 되게 한다.
남편의 생명을 삼킨 물을 욕조에 받았다가 흘려보내기도 하고, 시어머니가 챙겨주시는 반찬은 냉장고에 그냥 쌓이기만 하면서, 명지의 세계 또한 달라져 있다. 영화 초반의 이러한 장면들은 짧은 호흡으로 뚝뚝 끊긴다. 이것은 상실 이후의 일상과 닮아 있다. 긴 호흡으로 뭘 하기 어렵다. 아니, 그냥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조차 긴 호흡으로 하기가 어렵다.

아주 작은 연결고리만으로 일상이 툭툭 끊어지기 때문이다. 잔뜩 삭아버린 실처럼. 초코 아이스크림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함께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던 어떤 날을 떠올리고, 테이블 모서리만 어루만져도 따뜻한 기억을 되돌아보게 된다. 영화 내내 명지의 아파트 조명은 꺼져 있어, 따뜻한 빛으로 가득했던 과거와 더욱 대비된다. 불이 꺼져버린 집처럼, 영혼 어딘가의 불이 꺼진 것처럼.
조금이라도 연결고리가 적게 느껴질 곳으로, 명지를 불러낸 사촌언니의 다정한 초대를 받아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하지만, 명지가 가는 모든 곳에 명지의 상처도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날아들었던 비보처럼, 아무 이유도 없이 원인불명의 발진이 몸에 붉게 자라난다. 우리 삶에 원인불명으로 찾아오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 보면 원인을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것이야말로 놀라운 일 같지만, 우리는 또렷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더욱 괴로워한다.
그 괴로움 속에서, 가장 황홀한 꿈은 그만큼 가장 슬픈 꿈이 된다. 부재한 누군가가 등장하는 꿈은 다 그렇다. 그런 세상에서는, 잘 지내냐는 짧은 말이 아프게 다가올 수도 있다. 전화를 해보자는 별 거 아닌 말이, 작고 유쾌한 말이 폐부 깊숙한 곳을 푹 찌를 수도 있다.

이들의 세상은 지독한 상실의 아픔에 둘러싸여 있어서다. 이건 어쩌면 물에 빠지는 것과도 비슷해서, 머리칼 올올이 깊숙한 곳까지 온통 나를 적시고 도저히 숨을 쉴 수 없게끔 괴롭힌다. 도경과 지용이 떠난 세계에 남겨진 이들은, 도경과 지용의 마지막을 앗아간 것과 비슷한 고통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인물들은 움직인다. 모든 단어에 추억이 묻어 있고, 딱 그만큼의 슬픔이 묻어나는 세상에서도. 명지가 폴란드 바르샤바로 떠났듯, 지용을 잃은 지은과 해수도 자기 자리에서 힘차게 움직이려 애를 써본다. 인물들이 이처럼 상실 너머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영화의 호흡이 조금씩 길어진다. 해일처럼 밀려와 관객을 덮는다.

왜 하필 폴란드 바르샤바였으며, 왜 하필 광주였나?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은 도시. 죽음을 잘 기억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상실 이후의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임을 잘 아는 사람들의 도시. 충분히 위로되지 못한 슬픔은 끝까지 그 눈을 뻣뻣하게 부릅뜨고 살아 나를 따라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 알고 싶지 않았지만, 알아버린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의 무수한 슬픔에 시선을 보내는 곳.
그곳에서 만난 현석(김남희)과 명지 사이, 덩그러니 질문 하나가 놓인다. “그때 그 손을 놓지 않았다면 우린 지금 같이 있을까?” 현석이 명지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명지가 도경을 생각하며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원인불명의 상황에서, 남겨진 이가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일,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말 중에 이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은 웅덩이가 되어, 인물들이 겪은 제각각의 상실이 여기에 고인다. 그리고 거기서 이들은 만난다. 명지는 이 질문이 도경과 지용 사이에도 놓여 있었음을 깨닫는다. 놓친 손이 있지만, 또 힘차게 움직여 닿으려고 애쓰는 손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편지를 통해 지은과 명지의 손이 마주한 순간, 명지도 손을 움직여 메일을 써 본다. 부치지 못해도 괜찮다. 너무 어려워도,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조금은 괜찮다. <벌새>의 영지 선생님처럼 말해 본다.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지만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고.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시리가 남긴 그 새삼스러운 질문은 어쩌면, 말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끝에서, 명지는 마침내 햇빛을 마주본다. 밖에서 들어오는 흐릿한 불빛 외에는 좀처럼 밝아지는 일 없는 어둑한 집에서, 오렌지색 노을과 눈을 마주친다. 슬픔은 여전하겠지만, 명지의 아파트가 이전처럼 밝고 따뜻한 빛으로 차오르려면 한참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몸으로 마음으로 상실을 겪어내고 있는 지은도 명지도, 살아서 그 빛과 눈을 마주한다. “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 그림자 없이 함께 춤을” 추고, “아름다웠던 그 기억에서 만나” 또 손을 뻗어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023.08.27. 16:00-17:4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3관 (상영코드 321)
Relative contents
-
- [BIFAN 데일리] '포크 호러' 그리고 매혹적인 지옥도
‘포크 호러’ 장르에 관한 잔잔한 조망
주술(Sorcery)
‘부천 초이스: 장편’ 섹션
크리스토퍼 머레이 감독
Chile, Mexico, Germany/2023/101min
19세기 말 칠레의 바닷가 마을. 선주민 우이이체푸족 청소년 로사 라인은 한 독일인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한다. 그런데 기괴한 일이 발생한다. 집주인이 키우는 양떼가 몰살되고 그 자리에 인디언 매듭이 남겨져 있던 것. 독일인 집주인은 라인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이를 말리는 그녀의 아버지를 잔인하게 죽이고 라인을 쫓아낸다. 자신을 ‘기독교도’라 여기는 라인은 슬픔과 혼란 속에서 선주민 어른들을 만나 부족의 세계관과 ‘주술’을 학습한다. 그리고 점령자 백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힘으로 ‘우리’와 ‘그들’의 ‘균형’을 맞추고자 한다.
〈주술〉은 종족, 부족의 전통에서 공포 요소를 끌어오는 포크 호러(Folk Horror) 장르의 영화다. 포크 호러는 누군가(정주민)에게는 친숙하고 일상적인 일이 누군가(점령자)에게는 공포로 다가가는 상황을 토대로 장르의 재미를 쌓아 올린다. 다만 이 영화는 공포나 섬뜩함보다는 잔잔한 흐름 안에 장르적 특징을 녹여내 포크 호러라는 장르가 어떻게 성립되는지를 차분히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선주민이 어렵게 획득한 ‘균형’이 권력의 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하는 한 일시적‧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생각해볼 만하다.
빠져나오고 싶지 않은 기괴한 매력의 지옥도
2551.02-지옥의 난교(2551.02-The Orgy of the Damned)
‘아드레날린 라이드’ 섹션
노르베르트 파펜비흘러 감독
Austria/2023/82min
도대체 괴상하다 못해 끔찍한, 그럼에도 눈을 뗄 수 없는 이 영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매드맥스〉의 지옥도가 하드코어한 슬랩스틱‧액션‧성인‧코미디로 동굴 안에서 진행된다면 이런 느낌일까?
원숭이 가면을 한 남자가 한 아이를 찾는다(사실 가면은 별 필요가 없다. 가면을 벗어도 원숭이 얼굴이니까). 그는 경찰에 수배 중으로, 그가 찾는 아이는 동굴의 경찰에게 잡혀 혹독한 훈련을 받는 중이다. 쫓기는 동시에 자신을 쫓는 사람들에게서 아이를 뺏어와야만 하는 상황. 도피와 추격이 혼종된 이 여정에서 원숭이 남자는 종합 격투기 시합장, 난음굴을 정처 없이 헤맨다. 이 여정에서 가면을 쓴 또 다른 여자를 만나 ‘구원’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한다. 마침내 한 자리에 모인 원숭이 남자, 아이, 가면 쓴 여자. 이들은 과연 ‘지옥’을 탈출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백미는 그로테스크라는 말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혼종적 신체‧욕망의 끝없는 연속에 있다. 이들 이미지는 흑백영화의 질감과 만나 기묘한 디스토피아적 생기를 얻는다. 인형‧해골과 섹스하는 사람들, 남성기와 여성기를 갈아 끼우며 행인을 유혹하는 매춘부, 남자들의 그룹 섹스, 귀두 대신 달린 눈알, 수간, 포경수술하지 않은 표피에 잔뜩 낀 구더기, 여섯 개의 풍성한 가슴을 가진 덩치 큰 남자, ‘과한’ 잔인함으로 상대를 유혹하는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 감독의 머릿속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불쾌한, 그러나 관객을 사로잡는 혼종적 육체와 욕망의 향연이 펼쳐진다.
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성별, 종(인간‧동물‧기계), 성적 욕망과 실천, 신체의 경계를 마음껏 난도질해 제멋대로 같다 붙인다. 그리하여 말끔히 분류되지 않는 존재들이 어지럽게(亂) 교류하는(交) ‘지옥’을 창조해낸다. 그러나 이 지옥을 탈출하고 싶지는 않다. 영화 속 세계에 들어가 보고 싶진 않지만, 그렇다고 눈을 떼기도 싫다. 영화가 잔뜩 헝클어놓은 관점으로 ‘일상’에 돌아온다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한가한 안온함으로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를 잔뜩 비꼴 수 있을 것만 같아서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6월 29일부터 7월 9일까지 온오프라인에서 진행됩니다. 오프라인 상영 시간표와 온라인 상영작 리스트는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 영화에서 마주친 연극
영화와 가장 비슷하고도 다른 예술,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에디터는 가장 먼저 ‘연극’이 떠올랐는데요.
그래서인지 영화에서도 연극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자주 보이곤 합니다.
무대 위를 오르는 배우를, 글을 적어내는 작가를, 극을 완성시키는 연출을 비추기도 하죠.
그럼, 영화 속 연극을 마주하러 떠나볼까요?
-
- 아무리 태어나지 말아야 할 팔자라도...
춘희는 다한증이 있어서 손에 땀을 많이 쥔다. 그래서 수술비를 모으기 위해 자신이 직접 깐 마늘을 사촌 오빠의 식당에 갖다주는 일당으로 3만 원을 받는다. 사실은 춘희는 손과 발을 뻗을 수 없는 다락방에서 자랐다. 고등학생 시절 춤을 가르치는 선생님에게 다한증이 있다고 말하다가 구박을 받는다. 상처받은 어린 춘희에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불에 손을 대서 흉터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춘희는 성인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간다. 오랫동안 살아온 이 집에서 얹혀사는 신세라 친척들에게 오랜 구박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자신의 인생을 사랑해 줄 남자를 만나는데 주황이라는 말을 더듬는 남자였다. 주황은 어렸을 적에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해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춘희와 주황은 연애를 하게 되고 서로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춘희에게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다. 과연 춘희와 주황의 연애는 성공할 수 있을까? 또한 자신의 삶을 앞으로 잘 개척할 수 있게 될까?
춘희에게 다한증은 극복해야 되는
오래된 상처 자국이다.
하니엘
춘희는 어린 춘희의 상처에서 벗아났을까?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춘희는 외숙모처럼 외지인에 불과한 것이었을까? 아마도 어린 시절에 쭉 뻗고 잘 수 없는 단칸방에서 살았는지 삶에 즐거움보다 괴로움이 많았다. 이것만이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소외당하고 항상 혼자였다. 그리고 사촌 오빠도 과거에 명문대생이었지만 데모만 하는 학생이고 염세주의자였다. 자신의 누나도 학교에서 담배 피우다 걸린 신세였고 불량한 학생이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어린 춘희가 항상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태어나질 말아야 할 팔자였다는 것을 미리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어른이 된 춘희의 모습은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기억에서는 단칸방에서 얹혀살던 집 안에서도 가족들이 항상 싸우기만 했기 때문에 자신을 존중하지 못하고 자랐다. 그런 그녀에게 주황이라는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도 마음속에 가둬둔 상처들 때문인지 헤어지고 싶다고 말했고 다시 혼자가 되는 일을 경험한다. 괴롭던 기억과 외로움으로 가득 찬 춘희에게 하고 싶은 말은 아마도
춘희: 모두 다 네 잘못이 아니야!(어린 춘희에게)
영화에서 본 명대사에서 발췌했음
-
- 많이 아쉬운, 죽음 직전 킬러의 복수극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해진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도하지 않게 벌어진 일 때문이기도 하다. 죄책감이 마음속에서 드러나게 되는 기준은 개인마다 다르다. 죄책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악행을 행하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각자 지켜야 할 선을 정해놓고 그 선을 넘지 않으며 일을 진행하기도 한다. 어쩌면 개개인의 죄책감은 사회 전체의 도덕성 유지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일지도 모르겠다.
그 죄책감은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때나 나오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일상에서는 아무 느낌을 가지지 못하다가 어떤 조건이 생기거나 자신의 기준을 넘어서는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갑자기 마음속을 채우는 죄책감은 그것을 느끼는 당사자에게 고민을 선사한다. 그것이 자신이 속한 조직에 반하거나 더 나아가 조직의 질서를 망가뜨리는 것이라면 더욱 그 고민은 깊어질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을 택하기도 한다. 은퇴 혹은 퇴직, 여행 같은 것을 행하면서 자신 속에 자리 잡은 고민을 해결하고 다음에 가야 할 방향을 선택하기도 한다.
킬러에게 죄책감을 주며 시작하는 영화 <케이트>
지난주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케이트>는 케이트(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가 죄책감을 느낀 그 시점부터 그의 마지막 결정까지를 담는다. 케이트는 청부살인 조직의 일원으로 의뢰를 받아 누군가를 암살하는 임무를 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배릭(우디 헤럴슨)에게 암살 교육을 받으며 현재까지도 같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배릭은 일종의 팀장 역할을 하는데, 케이트와는 유사 부녀 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초반 그들은 일본 야쿠자 조직의 누군가를 암살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암살 목표 옆에 그의 어린 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케이트는 조직의 압박에 방아쇠를 당겨 암살을 성공시킨다.
케이트의 죄책감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아이가 있으면 암살을 보류한다는 조직의 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조직은 해당 시스템의 잘못은 묻어두고 케이트에게만 죄책감을 심어준다. 자신이 암살을 완료한 사람 옆에 울고 있는 어린 딸 아니(미쿠 패트리샤 마티네)의 모습은 케이트의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아 계속 그를 괴롭힌다. 어찌 보면 그 암살 시스템이 좀 더 나은 시스템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케이트가 가져다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스템은 그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케이트에게 모두 책임을 넘긴다.
영화 속 케이트는 자신의 팀장인 배릭에게 마지막 임무 완료 후에 은퇴를 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그 이후 임무 직전 누군가가 건넨 술을 마시고 방사능 물질 때문에 피폭을 당한다. 하루 뒤에 죽음을 맞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방사능 피폭에서 회복될 수 있는 기술은 영화 안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영화 초반에 이미 주인공이 곧 죽음을 맞이할 거라는 것을 밝히고 영화를 전개하는 셈이다. 그 이후는 케이트가 자신을 죽음으로 이끈 두목을 찾아서 죽이는 것이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와 비슷한 이야기, 캐릭터의 구도
케이트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죄책감을 만들어낸 소녀 아니를 만나게 되고 같이 자신의 원수를 찾아내기 위해 애쓴다. 영화의 전반적인 구도와 캐릭터의 관계를 보면 얼마 전에 개봉한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건파우더 밀크셰이크> 속 주인공인 샘(카렌 길런)은 어떤 청부살인 조직의 일을 받아 살인을 하는 킬러다. 그리고 임무 수행 중 어떤 아이의 아빠를 죽인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아이를 보호한다. <케이트>에서도 케이트는 자신이 아빠를 죽인 아니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아이를 보호하려 애쓴다. 또한 케이트는 암살 조직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복수를 하게 되는데 결국 그 끝엔 암살 조직과의 대결도 하게 된다. 두 영화 모두 여성이 조직에 대항하여 싸움을 벌인다는 점에서도 유사한 부분이 있다.
두 영화의 캐릭터가 다른 점은 케이트를 움직이게 만든 건 온전히 죄책감이다. 그 죄책감이 현재의 상황을 만들었고 자신을 파멸시키는 결과를 불러왔다. 반면 샘을 움직이고 변화시킨 건 조직에 대한 반항심이 더 컸다. 그 이후에 죄책감과 복수심이 따라왔다. 영화 <케이트>는 시종일관 어둡고 진지하다. 액션의 강도도 굉장히 높아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케이트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는 사실적이고 직접적인 액션을 끝까지 보여주며 잔혹한 킬러의 모습을 보여준다. <건파우더 밀크셰이크>가 잔인한 액션이 이어짐에도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 속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두 영화의 차이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케이트>의 액션은 꽤 훌륭하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인물 간의 감정선을 그대로 따라가기는 어렵다. 죄책감 속에 복수를 강행하는 케이트의 모습은 점점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는데,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진다. 특히나 결국에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는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조금은 짜증 나게 느껴지게 한다. 또한 케이트와 아니가 만난 이후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두 사람이 별로 가까워질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서로를 걱정하는 모습은 설득력이 없다. 영화 말미 케이트의 사과는 너무 갑작스럽게 내뱉어져서 관객들에게 어떤 감정도 주지 못한다.
케이트가 쫒는 두목 키지마(쿠니무라 준)의 변화도 당황스럽다. 그가 왜 영화 마지막 케이트와 같은 편에 서서 싸우는지에 대해 영화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뜻밖의 도움으로 목숨을 유지하는 케이트가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은 결국 자신이 평생 일한 암살 조직이다. 이미 우리가 많은 암살자 관련 영화에서 보아 왔던 복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는 깔끔한 영상으로 액션을 촬영해냈지만 스토리의 개연성과 캐릭터 간의 이상한 관계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의 주인공 케이트의 행동과 상황에 공감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화려한 영상과 액션에도 많이 아쉬운 이야기가 캐릭터
영화는 배경을 일본으로 함으로써 동양적인 이미지와 네온이 강조되는 거리의 모습 등으로 이미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실제로 한국 팝 음악이 나온다거나 일본의 음악이 배경으로 흐르고 일본어 대사들이 등장하며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그런 이국적인 영화의 배경은 이 영화의 강점이지만 나머지 부분은 실망스럽다. 주연을 맡은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만 고군분투할 뿐 악역이나 주변 인물들은 소품 정도로만 머무르며 영화의 틀을 만드는 것으로만 소비된다.
영화 <케이트>는 영화의 처음에 느꼈던 케이트의 죄책감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다. 영화 속에서 케이트는 복수심으로 끝까지 달려가다가 갑작스럽게 자신의 죄책감에 대한 사과를 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 부분 역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내용으로 등장한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와 비교할 수밖에 없다.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샘과 아이의 관계를 영화 초반부터 만들면서 두 사람 자체의 서사와 관계를 만들어갈 시간을 만든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 샘이 건네는 사과에는 진정성이 있다. 하지만 <케이트>는 주인공의 사과가 진정성이 있다고 하더라고 정작 그것이 화면 밖의 관객에게는 진심으로 와닿지 않는다. 그래서 죽음을 앞둔 케이트의 고군분투가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공허하게 느껴진다.
이 영화를 연출한 세드릭 니콜라스-트로얀 감독은 <헌츠맨: 윈터스 워>를 연출하며 장편 영화 연출 경력을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여러 장편 영화의 비주얼 효과를 담당했던 그는 <캐리비안의 해적:죽은 자는 말이 없다>, <캐리비안의 해적: 블랙펄의 저주> 같은 영화에서 비주얼 효과를 담당했다. 그가 최근에 연출한 <헌츠맨>과 <케이트> 역시 영화의 영상이나 효과 자체는 훌륭한 편이다. 하지만 영화의 전반적인 구성이나 캐릭터, 이야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
- 킹덤: 아신전 (2021)
* 리뷰는 영화 <킹덤: 아신전>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
킹덤: 아신전 (2021)
연출: 김성훈
극본: 김은희
출연: 전지현, 박병은, 김뢰하, 구교환 등
러닝타임: 94분
공개일: 2021.07.23
<킹덤>의 스페셜 에피소드, 김은희+전지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조합
작년에 공개됐던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2>는 화제성에 비해 다소 호불호가 갈렸던 시즌1을 보완하며 호평 속에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시즌2 마지막회에서 '전지현'을 등장시키는 엄청난 떡밥으로 시즌3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임팩트까지 발휘했다. 대사 없이 얼굴만 잠깐 비췄던 전지현의 '아신'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들의 궁금증이 증폭되었던 가운데, 그의 전사(前史)를 다루는 스페셜 에피소드를 공개하며 시즌3를 위한 본격적인 예열에 들어간다. 이미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중 최고로 히트한 시리즈인 데다가 국내 최고의 톱스타인 '전지현'이 합류한 것만으로 스페셜 에피소드인 <킹덤: 아신전>에 대한 기대감은 높을 수밖에 없을 터. 다만, 요란했던 홍보와 여러 떡밥과는 달리 기대 이하의 스토리로 아쉬움을 남겼다.
주인공 전지현, 심각한 분량실종
<킹덤: 아신전>의 메인 홍보 포인트는 단연 흥행 보증수표이자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배우 '전지현'이었다. 4년만의 복귀작인만큼 주인공 '아신'을 맡은 그의 연기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러닝타임 94분 중 50분이 지나서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마저도 액션과 표정 연기가 전부이며 대사도 몇 마디 소화하지 않는다. 극은 전부 '아신'의 서사로 채워지기는 하지만, 유년 시절의 이야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성년이 된 아신의 이야기는 적게 등장한다. 처절한 고통 속에 살아온 아신의 삶이 부각됨에 따라 무정한 세상에 등을 돌린 그가 말을 잃는 것 또한 당연하다. 후반부의 임팩트와 전지현의 액션 장면은 분명 강한 임팩트와 함께 돋보이지만, 주인공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적은 분량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분량 실종은 비단 '전지현'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지현 못지않게 등장하는 영화마다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는 '구교환'의 분량도 심각하리만큼 적다. 그는 파저위의 냉혈한 부족장 '아이다간'을 연기했는데, 사실상 카메오에 가까운 존재감을 보여준다. 아신의 아버지 '타합'을 연기한 배우 '김뢰하' 또한 배우의 역량이 돋보일 만한 장면이 주어지지 않는다. 화려한 캐스팅을 앞세웠으나 정작 배우들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느낌이다. 아무리 시즌3를 위해 거쳐가는 징검다리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알멩이가 부실할 줄은 몰랐다.
시즌3를 위한 떡밥 회수일뿐
<킹덤 시즌3>라는 본편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스페셜 에피소드로 본작이 공개되었다는 것은 시리즈의 흐름과는 별개로 풀어낼 장편의 스토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특히 '아신'의 서사를 본편 중에 플래시백의 형태로 삽입한다면 흐름을 방해할 수 있어 스토리의 맥락상 별개의 에피소드로 만드는 것이 수월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본작을 끝까지 감상한 결과, 굳이 94분이나 할애해 가며 한 편의 영화 같은 에피소드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라는 의문점이 제기된다.
<아신전>을 통해 회수된 떡밥은 생사초를 먹고 살아난 좀비들이 조선을 활개하고 다니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는지, 이승희 의원은 그 약초를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지와 같은 '생사초'와 '역병'에 관한 사건의 발단들을 풀어낸다. 이를 제외하면 <아신전>에서 딱히 건질만한 떡밥은 없다. 즉, 풀어낼 이야기가 많지 않음에도 한 편의 영화 같은 분량으로 에피소드를 기획한 것은 지루함을 키우며 관심 없는 내용을 장황하게 설파하는 것과도 같다. 결정적으로 <아신전>이 재미가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빛나는 엔딩신, 그리고 전지현
<킹덤: 아신전>은 후반 10분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복수의 대상을 바로잡고 각성한 '아신'이 펼치는 후반부의 액션신과 분노하다 못해 무정한 세상에 신물이 나버린 '아신'의 시체 같은 표정 연기는 앞선 스토리를 모두 잊게 할 정도로 강렬하다. 절정에 다다른 장면에서 아신의 눈빛을 보면, 시청자가 더 이상 따라잡을 수 없는 감정선에 이르러 마치 지옥도의 사신 같은 모습을 연상시킨다. 대사 없이도 표정과 몸짓만으로 아신의 참혹한 복수의 심정을 표현하며 중반부까지 집중력을 잃게 했던 영화에 몰입감을 더한다.
확실히 <도둑들>, <암살>과 같이 전지현은 액션 연기를 소화할 때 유독 빛이 난다. 비현실적으로 뛰어난 무술실력을 가진 아신 캐릭터를 전지현이 연기함으로써 선역이 아님에도 히어로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어느 정도 연출한다. 그나마 전지현이 활약하는 후반부의 10분이 있었기에 <킹덤: 아신전>이 존재해야 하는 당위성을 조금이나마 뒷받침해줄 수 있게 된다. 아신이 본격적으로 활약할 시즌3를 기대할 수 있게 되는 이유 또한 결말부에서 찾을 수 있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
- 영화 '시크릿가든'엔 어른보다 용감한 아이들이 있다
풀 한 포기의 질긴 생명력에 위로 받는 날이 있다. 말 못 하는 동물의 온기가 백 마디 말보다 나은 날이 있다. 때때로 자연은 인간을 치유한다. 그 힘에 이끌려 아름다운 정원을 묘사한 영화 ‘시크릿 가든’을 선택했다.
<영화 ‘시크릿가든’>
‘시크릿가든(2020)’은 미국의 소설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비밀의 화원(1911)’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전염병으로 부모님을 잃은 소녀 ‘메리(딕시 에저릭스)’가 이모부 ‘아치볼드(콜린 퍼스)’의 대저택에 오게 되고, 숨겨진 비밀의 정원을 찾으면서 생기는 일을 다룬다. 그리고 ‘아치볼드’의 아들이자 ‘메리’의 사촌 ‘콜린(이단 헤이허스트)’과 또 다른 친구 ‘디콘(아미르 윌슨)’와 우정을 쌓아가는 내용이다. 국내에서는 ‘해리포터’의 시각 효과 전문가들이 참여한 점과 ‘킹스맨’으로 유명한 ‘콜린 퍼스’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었다.
<소설 '비밀의 화원'과 영화'시크릿 가든'>
잘 알려진 소설을 영화로 제작할 경우, 탄탄한 줄거리와 유명세를 활용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위험부담도 따른다. 소설을 아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영화와 비교하면서 보게 된다. 글로 읽을 때 상상력으로 채웠던 부분이 화면과 다르게 구현될 경우 아쉬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제작자는 등장인물과 배경 정도 유지한 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원작을 그대로 화면 구현할지 결정해야 한다.
‘시크릿가든’의 선택은 전자에 가깝다. 소설의 4번째 리메이크 영화라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다. 판타지 장르를 강조했고 굵직한 설정부터 세부사항까지 수정했다. 예를 들어 소설 원작에서 핵심이 되는 동물이 울새였다면, 영화에서는 주인 잃은 강아지가 등장한다. 아이들이 만나는 순서가 조금씩 다르다거나, 저택에서 일하며 ‘메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마샤(아이시스 데이비스)’의 비중이 크게 줄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비밀의 화원의 모습이다. 소설에서 비밀의 화원은 현재는 황폐하지만, 가능성을 품은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상처 받은 아이들이 메마른 정원에 씨앗을 심고 새싹을 가꾸며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아이들은 정원의 변화에 맞춰서 가랑비에 옷이 젖듯 조금씩 바뀐다. 반대로 영화는 ‘메리’가 저택에 숨겨진 아름다운 정원을 발견하고 아이들이 모르고 있던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는 과정을 그린다. 세 아이를 연결하는 부분도 정원이라는 공간보다 사랑하는 부모님을 떠나 보낸 아픔이다.
제가 직접 그린 인물관계도 입니다
이런 설정은 영화의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한다. 제작진들은 정원을 활용해서 화려한 영상미를 표현할 수 있었다. 푸르른 숲과 다채로운 색감의 꽃은 눈을 즐겁게 한다. 인물의 감정 변화에 따라 식물이 피고 지는 모습만 봐도 이 영화가 얼마나 화면에 공들였는지 알 수 있다. 정원뿐만 아니라 물, 빛, 불이라는 요소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해서 이야기에 영향을 주도록 활용했다.
정원이 색을 입자 아이들은 색을 잃었다. 특히 ‘마샤’의 동생 ‘디컨’은 영화에서 굳이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다. 원래 소설에서 ‘디컨’은 마을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만큼 넓은 마음을 가진 인물이자 자연에 능숙해서 정원 관리를 적극적으로 돕는 역할이다. 초반에 ‘마샤’의 이야기로만 드러나며 ‘메리’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마샤’의 비중이 줄어들고 완벽한 정원이 생기면서 그의 가장 큰 매력을 잃었다.
‘메리’는 어른의 아픔을 이해하는 성숙한 아이가 되어야 했다. 정원 관리가 빠진 영화 줄거리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연이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메리’는 전쟁으로 부모님을 따라 인도로 갔으며 어머니의 무관심 속에서 성장했다. 전쟁이 마무리되고 전염병이 퍼져서 부모님을 모두 잃는다. 그리고 영국의 대저택에서 아빠의 과거 대사를 회상하거나 우연히 발견한 편지로 인해 엄마가 무관심한 이유를 깨닫는다. 엄마의 부족한 행동을 자매(메리의 이모)를 잃은 아픔으로 정당화하고 아직 어린아이가 엄마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상황은 모순적이다. 어른의 관점에서 쓴 아이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든다.
<당신은 용기내고 있나요?>
소설과 영화가 다르지 않은 부분은 아이들의 용기이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열고 대담하게 비밀의 화원에 들어간다. 울새의 도움으로 열쇠를 찾는 소설과 달리 영화에서는 ‘메리’가 비밀의 화원으로 가기 위해 담장을 넘으며 훨씬 적극적으로 표현된다. 신비롭고 웅장한 노래와 함께 아름다운 색감의 정원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에 저절로 벅찬 감정이 든다. 아이들은 흙 속에서 구르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서 뛴다. 친구들과 다투고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한다. 다시 말해서 상처 받아도 다시 도전하고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을 용기가 있다.
소설부터 이어진 아이들의 용기는 저택의 주인 ‘아치볼드’가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동안 문을 닫고 숨겼던 비밀의 정원에 들어온 ‘아치볼드’는 이렇게 말한다.
“어른이 아이들한테 배움을 얻게 되다니.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우리에겐 마음껏 뛰어 놀 정원은 없지만, 영화를 보고 마음속 비밀의 정원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당신에게 그곳에 들어갈 용기가 충분히 있으리라 믿는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Jadeinx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챌린저스 - 젠데이아의 매력이 가장 빛나는 테니스 영화
-
테니스 코트 밖, 진짜 경쟁이 시작된다! 스타급의 인기를 누리던 테니스 천재 ‘타시’(젠데이아)는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하고 지금은 남편 ‘아트’(마이크 파이스트)의 코치를 맡고 있다. 연패 슬럼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아트’를 챌린저급 대회에 참가시킨 ‘타시’는 남편과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이자 자신의 전 남친인 ‘패트릭’(조쉬 오코너)를 다시 만나게 된다. 선 넘는 세 남녀의 아슬아슬한 관계는 테니스 코트 밖에서 더욱 격렬하게 이어지는데… 결승전 D-DAY, 가장 매혹적인 랠리가 시작된다!
-
-
- 영화 <십개월의 미래> 30초 예고편
만성 숙취를 의심하던 미래는 자신이 임신 10주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다.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온 변수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이,
가족과 연인, 국가는 각기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미래의 십개월은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
-
- 넷플릭스 <소년심판> 공식 예고편
소년범을 혐오하는 판사가 마주한 괴물 같은 아이들, 충격적인 현실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가장 차가운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