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0932023-07-18 17:04:50
진실이 궁금한 영화 | 기억의밤
기억을 잃은 남자, 기억을 하게 하려는 남자
여기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와, 기억을 되찾아 주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기억의 밤이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뭐가 진실인지 알지 못해서 한번 보게 된다면 끝까지 보게 되는 반전이 한가득 품고 있는 영화 기억의 밤. 리뷰 시작해 볼게요~
기본 정보
장르 : 드라마, 미스터리, 서스펜스, 스릴러
감독 / 각본 : 장항준
출연진 : 강하늘, 김무열, 문성근, 나영희
개봉일 : 2017년 11월 29일
평점 : 8.43
스트리밍 : tvN , NETFLIX, Wavve
기획 의도
새 집으로 이사 온 날 정체불명의 괴한들에게 납치된 형 유석. 동생 진석은 형이 납치된 후 매일 밤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며 불안해한다.
납치된 지 19일째 되는 날 돌아온 유석은 그동안의 모든 기억을 잃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돌아온 뒤로 어딘가 변해버린 유석을 의심하던 진석은 매일 밤 사라지는 형을 쫓던 중 충격적인 사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두 남자의 엇갈린 기억 속 감춰진 살인사건의 진실을 찾아야 한다.
여담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장항준 감독의 9년 만의 스크린 복귀 작품이다.
영화 기억의 밤은 주연 배우인 강하늘과 김무열의 연기력만으로 초반부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선사하며
꼬여버린 진실을 찾기 위해 몰입감을 선사해 줬다.
영화의 평점은 대체적으로 기자 평론가보단 관람객 평점들이 후하게 작용했다.
후기 및 결말
영화 기억의 밤 결말을 살펴보자면...
20년 전 한 가정집에서 일가족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유석(김무열)은 진석(강하늘)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석은 해리성 기억 상실증에 걸려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는 상태로 가선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미리 섭외한 가족 전체가 현장을 재현하며 진석의 기억을 꺼내기 위해 노력한다.
잠깐, 기억이 돌아온 진석은 누군가의 살인청부 때문에 실수로 두 모녀를 죽이게 되었었죠.
결국 유석과 진석 모두 자살을 하며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 작품은 작품의 완성도보단 두 배우의 강렬한 연기에 더욱더 눈이 갔던 작품이었어요.
무엇보다, 진실 밝히려는 김무열과 사실을 알아내려는 강하늘의 압도적인 강한 인상이 강렬하게 남았던 영화 기억의 밤.
무더운 여름날에! 킬링타임으로 딱 좋은! 영화 기억의 밤 추천드리고 싶어요~
한줄평 : 강렬하면서 무서운 누군가의 기억.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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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터 스트레인지2> 대혼돈이 아니라 광기의 멀티버스인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갑작스레 꿈에서 깨어난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 그는 멀티버스를 암시하는 듯한 꿈의 내용을 걱정하면서도 오랜 동료이자 친구였던 '크리스틴 팔머(레이첼 맥아담스)'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끝내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은 크리스틴과의 관계를 곱씹던 중, 괴생명체가 급습하자 '웡(베네딕트 웡)'과 함께 전투를 벌인 그는 전투 도중 꿈에 등장했던 소녀 ‘아메리카 차베즈(소치틀 고메즈)'를 만난다. 그녀로부터 멀티버스가 실재하며 멀티버스를 넘나들 수 있는 아메리카의 능력을 뺏는 존재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닥터 스트레인지는 과거의 전우이자 마법에 통달한 또 다른 히어로 '완다 막시모프(엘리자베스 올슨)'를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스칼렛 위치로 각성한 완다는 자신의 목적을 이유로 그의 부탁을 거절하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완다로부터 아메리카를 지키기 위해 멀티버스를 넘나드는 싸움에 나선다.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2016년에 나온 <닥터 스트레인지>의 속편으로, 멀티버스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이후 개봉하는 첫 MCU 영화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닥터 스트레인지 2>를 기대하는 시선과 분위기는 특히 '멀티버스'에 집중되어 있었다. 실제로 개봉 전 수많은 팬들은 <노 웨이 홈>이 그랬듯이 이번 작품도 특급 '카메오'를 선보일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은 멀티버스에 방점이 찍힌 영화가 아니다. 실제로 영화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스칼렛 위치의 추적을 피해 아메리칸 차베즈를 보호한다'는 핵심 플롯에 충실하다. 즉 이 작품 속 멀티버스는 그저 공간적 배경이고, 카메오는 말 그대로 카메오에 불과하며 단지 멀티버스를 오가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이야기를 보여줄 뿐이다. 그 대신 <닥터 스트레인지 2>는 부제인 멀티버스에 붙은 대혼돈, 정확히 말하면 '광기(madness)'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광기를 마주하며 겪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마주한 두 가지 광기
그렇다면 영화 속 그 광기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나 스칼렛 위치다. 자신이 만든 환상의 공간에서 자신의 마법으로 만들었던 쌍둥이 아이들과 함께하는 삶을 누렸던 완다 막시모프. 그녀는 자신의 환상이 파괴되고 연인이었던 비전에 이어 그 아이들마저 잃는다. 이후 어둠의 마법서인 다크 홀드에 의해 타락한 그녀는 쌍둥이 아이들을 다시 만나려는 광기에 휩싸인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우주의 쌍둥이들을 데려와 자신의 가정을 완성하는 꿈을 꾸고, 이를 위해 멀티버스를 오가는 능력을 지닌 아메리카 차베즈를 사로잡아 그녀의 힘을 빼앗으려 든다. 이는 세계와 우주의 수호자인 닥터 스트레인지가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자 위협이며, 따라서 스칼렛 위치는 누가 보더라도 닥터 스트레인지가 마주해야 할 위협적인 광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가 직면한 광기는 외부에만 있지 않다. 그의 내부에도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소재가 바로 꿈이다. 흔히 꿈은 잠재의식의 표현이라고 여겨진다. 깨어 있는 동안 자아나 의식이 미처 깨닫거나 인식하지 못한 경험이나 불안감, 심지어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무의식이 형상화한 것이 꿈이다. 영화는 이러한 꿈의 특성을 멀티버스와 결부시킨다. 영화에서의 꿈은 멀티버스 속 자신을 볼 수 있는 통로다. 따라서 멀티버스에 존재하는 자신을 만나는 것은 결국 본인 내면의 또 다른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멀티버스를 돌아다니며 다른 여러 닥터 스트레인지를 만나는 여행은 닥터 스트레인지 본인이 애써 누르고 억압하고 있던 무의식에 속한 본인 모습을 만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멀티버스 여정에서 처음으로 도착한 세계에서 그가 잊으려던 크리스틴과의 추억을 다시 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그에게 내재되어 있던 광기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 결과물이 멀티버스의 닥터 스트레인지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대의를 위해 희생을 정당화하고, 옳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하며, 사랑하는 이를 차지하려고 세계를 파괴하는 스트레인지를 마주한다. 당장 크리스틴의 결혼식에 참석한 닥터 스트레인지의 모습과 대사를 보면 다른 우주 속 본인이 될 가능성이 은연중에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닥터 스트레인지의 멀티버스 모험은 완다의 광기를 마주하는 여정이자, 동시에 자기 자신의 광기를 대면하고 그 광기가 자신을 잠식하지 못하게 하는 내적 여정이다. 그러다 보니 작중 닥터 스트레인지보다 완다가 더 능동적으로 사건을 주도하는 인물로 묘사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녀의 광기는 이미 드러나 있는 상태이지만, 닥터 스트레인지의 것은 아직 탐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모습만 다를 뿐 결국 공통적으로 광기를 품고 있는 두 주역의 초반부 대화에 유달리 '이성적'이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하는 것 역시 사뭇 의미심장하다.
거울로서의 멀티버스
이에 더해 멀티버스는 두 광기가 해소되는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멀티버스는 단지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통로일 뿐만 아니라, '나'를 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는 행위는 거울에 반사된 '나'의 상을 보는 것이다. 이때 거울은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알 수 없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거울을 보는 행위는 자기 자신의 외관이나 정체성을 재고하고 반성할 기회를 잡는 일이다. 그런데 거울에 비치는 상은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는 못한다. 언제나 좌우가 바뀌어 있으며, 거울의 표면에 따라서 형태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나'는 거울 안에서 자신의 모습과 유사하나, 동일하지는 않은 또 다른 주체를 만난다. 이때 '나'에게 그 주체는 하나의 대상이고, 그 주체의 입장에서도 '나'는 하나의 대상이다. 그렇기에 '나'는 거울 속 자신을 통해 타인을 만나고,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시 찾을 수 있다. 이는 덴마크의 설치 예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이 거울을 두고 평행세계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닥터 스트레인지에게는 멀티버스가 바로 그 거울이다. 다른 세계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본인이 내재한 광기의 위험성을 깨달은 그는 그들이 먼저 간 길을 따르면서도 또 다르게 걷는다. 전편들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닥터 스트레인지는 대의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희생을 감수하거나 금지된 규칙을 깨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1편에서 그는 금지된 타임 스톤의 힘을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인피니티 워>와 <엔드게임>에서는 더 큰 계획을 위해 타노스에게 타임 스톤을 내주며 많은 이들의 희생을 감수했다.
하지만 멀티버스라는 거울을 통해 다른 세계의 스트레인지가 대의를 위한 희생을 택하거나 어둠의 마법에 기댔는데도 실패하는 모습을 제삼자의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목격한 스트레인지는 이전과 다르다. 독선적인 성격을 잠재우고 다른 이들을 믿으며, 좋은 결과는 물론 옳은 과정도 같이 추구한다. 그 덕분에 그는 자신의 독단이라는 광기가 낳았던 죄책감과 그로 인한 행복의 부재로부터 탈피하는 데 성공한다. 그렇기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소서러 슈프림인 웡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장면은 유머스러운 대목이기도 하지만, 그가 드러나지 않은 광기를 통제하며 한 단계 성숙해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광기의 멀티버스인 이유
같은 맥락에서 보면 멀티버스를 건너오는 완다의 공포스러운 추격전에도 다른 의미가 있다. 완다는 닥터 스트레인지 외에 꿈에서 멀티버스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녀에게도 멀티버스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이자 동시에 거울이다. 즉, 그녀의 여정은 단지 아메리카 차베즈를 쫓는 것이 아니라, 스칼렛 위치라는 정체성 밑에 가려진 나머지 더 이상 현실의 자기 모습이 아닌 완다의 의식을 깊은 내면에서 끌어올리는 여정인 것이다.
초반부와 후반부의 완다가 처한 상황을 대조하면 그 의미가 더욱 명확해진다. 카마르 타지에 진입하려던 완다는 닥터 스트레인지에 의해 미러 디멘션에 갇힌다. 그는 완다를 수많은 거울로 가득한 방에 가두어 놓으면서 그녀로 하여금 스칼렛 위치가 된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만들려 하나 이는 효과를 보지 못한다. 반면 후반부에 스칼렛 위치는 멀티버스의 완다를 마주 본다. 멀티버스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깨닫고 타락해버린 현재의 모습을 깨닫는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다른 우주의 자신의 모습에 비추어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처럼.
이는 완다가 사용하는 다크 홀드의 대척점에 있는 '비샨티의 책'이 맥거핀으로 활용되는 이유다. 닥터 스트레인지와 완다의 대립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각자 품고 있는 광기를 어떻게 직시하고, 수용하고, 통제할 것이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다른 우주의 자신에게 빙의하는 흑마법 '드림 워킹'을 시전 한다는 점에서 둘은 다를 게 없지만, 그보다는 마법의 목적과 결과가 무엇이냐가 더 중요한 차이점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영화의 부제를 '광기의 멀티버스'가 아니라 '대혼돈의 멀티버스'로 번역한 선택은 캐릭터의 서사에 집중한 의도와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숨겨져 있는 의미를 부각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다.
양날의 검인 광기의 멀티버스
이처럼 광기로 가득 찬 내면을 여행하는 통로이자,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만드는 거울인 멀티버스. 다만 멀티버스의 활용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우선 완다의 광기를 강조시킨 결과 자칫 올드할 수 있는 샘 레이미 감독 특유의 호러 영화적 요소가 MCU에 잘 녹아든 것은 장점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일행을 쫓는 터널 장면이나 프로페서 X와의 전투에서 다수의 점프 스케어를 동원해 완다의 집착이나 광기를 살려내는 것이 대표적이다. 스칼렛 위치의 압도적인 힘을 잘 묘사한 이 장면들은 인간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파멸되는 공포감인 코스믹 호러를 부각하는데, 이 대목이 MCU의 클리셰를 비틀면서 신선한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그간 MCU의 빌런들은 제모 남작이나 미스테리오, 알렉산더 피어스와 같은 반전형 빌런인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광기로 가득한 완다는 초반부터 빌런으로 등장해 영화의 분위기를 장악해 버린다.
다만 멀티버스와 관련된 인물들의 서사가 평면적이라는 문제를 피하지는 못한다. 작중 멀티버스가 본질적으로 수단과 배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메리카만 해도 그녀의 과거사가 잠시 모습을 비추지만, 그녀의 역할은 두 주연의 내면을 살피는 멀티버스를 여는 데 한정된다. 그래서 그녀는 철저히 수동적으로 묘사되며, 본격적인 서사는 다음 기회를 기약할 수밖에 없다. 다른 우주의 히어로들 역시 같은 이유로 등장할 때의 임팩트에 비해 초라하게 퇴장하기를 반복한다. <노 웨이 홈>과 달리 본 작에서는 카메오가 단순한 일회성 팬 서비스로 낭비되는 듯한 인상이 강한 것이다. 또 멀티버스 속 인물들을 가볍게 소비하는 것은 그간 영웅의 죽음과 희생의 가치를 중시했던 MCU의 접근법과는 괴리가 있다. 달리 말해 '광기의 멀티버스'만으로 호러 영화와 MCU의 간극을 메우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호러물 클리셰대로 안일하게 방심한 인물들이 단숨에 죽는 전개가 남발되거나,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우연적 요소가 적지 않은 것은 미흡한 봉합의 또 다른 증거나 다름없다.
한편 멀티버스라는 소재에 매몰되지 않았다는 장점과는 별개로 단독 영화로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 있다. 액션이 대표적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를 상징하는 액션이라면 미러 디멘션을 활용한 화려하고 기하하적인 공간 왜곡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러한 연출이 완다를 상대할 때를 제외하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마블은 토르,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의 성장을 위해 제각기 묠니르, 슈트, 방패를 제거한 전적이 있다. 다만 이후 더 강력한 능력이나 무기를 획득해 히어로 영화다운 액션을 보여준 것과 세 히어로와 달리, 닥터 스트레인지에게서는 그러한 외적인 변화를 찾을 수가 없다. 이는 미러 디멘션을 활용한 연출이 주제와 메시지를 잘 살려낸 것과 무관하게 히어로 영화로서 실망스러운 측면이다.
또한 디즈니+의 독점 드라마인 <완다비전>과의 연계가 매우 강해 진입 장벽이 높아진 점도 지적될 만하다. 영화가 닥터 스트레인지와 완다의 심리를 묘사하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을 고려하면, 완다의 성장과 변화를 깊게 다룬 <완다비전>의 내용을 모를 경우 2시간의 러닝타임은 물음표로 가득 찰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이번 작품뿐만 아니라 앞으로 모든 마블 영화가 마주할 문제이기에, MCU로서는 적잖은 과제를 떠안은 셈이다. 결국 광기에 물든 두 히어로의 이야기에 철저히 초점을 맞춘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기대한 바에 따라 장단점과 만족도가 극단으로 갈릴, MCU 페이즈 4의 또 다른 문제작으로 막을 내린다.
A(Acceptable, 무난함)
멀티버스 파티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한 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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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첫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개봉 첫 주 1위를 빼앗겼던 <히트맨2>가 누적 관객 수 190만 명을 돌파하며 <검은 수녀들>을 넘어서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현재 추이와 별다른 대작이 개봉하지 않는 극장 상황상, 손익분기점인 230만 명은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검은 수녀들>은 2위에 머물렀지만, 누적 관객 수 143만 명을 불러들이며 손익분기점인 160만 명에 한층 가까워졌습니다. 앞서 160개국 선판매를 완료한 것으로 알려진 <검은 수녀들>은 해외 박스오피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에서 개봉 후 5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 중이라고 합니다.
한편, 동명의 대만 멜로 영화를 리메이크한 <말할 수 없는 비밀>은 개봉 첫 주 누적 관객 수 35만 명을 기록하며 다소 아쉬운 성적을 남겼습니다.
북미에서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선보인 <도그 맨 Dog Man>이 왕좌를 차지했습니다. <도그 맨>은 미국의 아동 그래픽 노블 시리즈 '캡틴 언더팬츠'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며, 개봉 전부터 입소문과 가족 관객층의 기대감으로 개봉 첫 주에만 3,6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습니다.
2위를 차지한 SF 스릴러 <컴패니언>은 누적 수익 95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제작비가 1,000만 달러에 불과하여 흥행 수익은 양호한 편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로튼토마토 94% 등 전반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소피 대처, 잭 퀘이드가 주연을 맡았고, 이상적인 커플이 친구들과 함께 떠난 호화로운 휴가 중 일어난 예상치 못한 사건을 다룬다고 합니다.
<무파사: 라이온 킹>이 순위권인 3위에 머무르며 여전히 무서운 뒷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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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라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0년 만에 출소한 ‘수혁’(정우성). 과거 여자친구 '민서'(이엘리야)를 만난 그는 자신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에 수혁은 오랫동안 몸 담았던 조직을 떠나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수혁이 자기와 함께 일할 거라 믿었던 보스 ‘응국’(박성웅)은 그의 선택에 실망하고, 오른팔 ‘성준’(김준한)에게 수혁을 감시하라고 지시한다.
수혁이 언제든 자기 자리를 빼앗을까 두려워하는 성준은 아예 수혁을 제거하기로 하고, 세탁기라 부르는 2인조 킬러 커플 ‘우진’(김남길)과 ‘진아’(박유나)에게 일을 맡긴다. 하지만 그들은 수혁 대신 민서를 죽이는 실수를 저지르고, 수혁이 복수를 다짐하면서 상황은 성준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기 시작한다.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의 부작용
정우성의 장편 연출 데뷔작 <보호자>는 제47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스페셜 프레젠테이션(Special Presentations) 부문, 제55회 시체스 영화제 경쟁 부문 오르비타(Orbita) 섹션, 제42회 하와이 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어 화제를 낳았다. 사실 <보호자>는 정우성 감독의 의도치 않은 데뷔 무대다. 원래 연출자가 제작 도중 하차하는 바람에 갑작스레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
그래서일까? 정우성 감독의 절친인 이정재 감독의 연출 데뷔작 <헌트>에 비하면 <보호자>의 완성도는 여러모로 아쉽다. 특히 비슷한 장르 영화로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티가 난다. 스토리가 평이하다 보니 액션을 연출하거나 캐릭터를 구축할 때 시도한 변화가 유독 눈에 띄기도 한다.
그런데 기존 작품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은 양날의 검이다. 영화 클리셰는 관객에게 인기가 있어서 거듭 사용된 기법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익숙하다는 이유로 클리셰를 파괴하면 관객이 오히려 영화를 어색하게 느끼며 호응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처럼. 안타깝게도 <보호자>는 이러한 실패의 역사에 한 줄을 더 보탠다.
스스로 잠재력을 막다
<보호자>의 기본 얼개는 익숙하다. 주인공과 여자친구, 딸의 관계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간편한 설정으로 가득하다. 10년 만에 출소한 수혁은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했던 민서를 만난다. 그는 그제야 민서가 임신했고, 10년 동안 혼자서 딸을 키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심지어 암에 걸린 채로. 수혁은 이제라도 여자친구와 딸 곁에 남기로 결심하고, 민서의 부탁대로 평범하게 살려한다.
하지만 그의 결심 앞에는 과거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가 몸담았던 조직이 그를 자유롭게 두지 않는다. 수혁, 응국, 성준의 삼각관계도 새롭지는 않다. 조직을 떠나고 싶어 하는 과거의 2인자 수혁. 그런 동생을 이해하면서도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1인자 응국. 예나 지금이나 수혁만 챙기는 큰형이 미운 현재 2인자 성준. 한국 누아르 영화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수없이 봐온 삼자대면이 펼쳐진다.
클리셰 홍수 속에서 제목과 소재는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한다. 영화는 '평범함'과 '보호자'라는 두 키워드를 내세워 이야기를 끌고 간다. 평범하게 살기로 마음먹은 수혁은 과거 동료를 만나 회포를 푼다. 응국은 그런 수혁을 비웃는다. 대조적인 두 장면에는 평범한 삶에 대한 자조와 회의가 담겨 있는 듯 보인다.
'보호자'라는 키워드도 거듭 언급된다. 민서가 사망했을 때 간호사는 수혁을 보호자라고 반복해서 호칭한다. 또 수혁은 딸이 인질로 잡혔을 때도, 결말에 도달해서도 자기를 아빠가 아닌 보호자로 소개한다. 민서와 약속한 평범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끝내 보호자로 남는 듯하다.
문제는 수혁의 서사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 이야기와 설정이 새롭지 않다고 판단해서인지 영화는 많은 내용을 생략했다. 그 결과 관객은 스스로 이야기를 추측해야 한다. 자연히 영화는 진부해지고 재미도 떨어진다.
액션에 승부를 걸다
이에 제작진은 확실한 선택과 집중을 보여준다. 시나리오는 장르적 관성에 맡기고, 대신 디테일한 부분에서 새로움을 추구한다. 액션이 대표적이다. 한국적이지 않고 이질적인 장치가 여럿 등장해 눈길을 끈다. 사제 네일건, <스피어더맨> 시리즈 속 그린 고블린이 사용할 법한 폭탄 등.
캐릭터 별로 액션을 구분해 직관적인 재미를 주려고 노력한 지점도 인상적이다. 일례로 수혁에게 자동차는 분신과도 같다. 10년 전에 사용하던 승용차와의 재회가 그의 첫 등장일 정도. 자연히 그의 액션은 자동차 비중이 크다. 몸으로 부딪힐만한 장면에서도 최대한 차를 활용한다. 호텔 건물 정문과 로비를 차로 뚫고 들어가서 성준의 부하들과 싸우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반면에 성준은 작중 유일하게 총을 사용하며, 그의 부하들도 주로 맨몸 액션을 선보인다. 성준이라는 인물이 불안과 열등감, 질투심에 찌들어 있는 만큼 그 감정을 더 날카롭게 강조하려는 의도가 느껴진다. 우진과 진아의 경우에는 전혀 다른 결의 액션을 보여주면서 영화에 생동감을 더한다. 이 커플은 폭력을 게임처럼 생각한다. 즉각적인 재미와 쾌감을 추구하는 그들의 액션은 무겁기만 할 수 있는 영화에 숨통을 틔어준다.
실패로 귀결된 승부수
하지만 액션에 힘을 주는 승부수도 성공적이지는 않다. 우선 부실한 각본이 발목을 잡는다. 흔히 좋은 액션에는 내러티브가 담긴다고 한다. 최근에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7>이 좋은 예시다. 남녀 주인공 사이에 신뢰가 싹트는 과정을 액션에 녹인 결과 후반부 기차 시퀀스에는 강렬한 카타르시스가 담겼다. <보호자>는 반대다. 급한 전개 때문에 인물 사이에 감정이 쌓일 겨를이 없다. 그 결과 액션에는 액션 그 자체의 쾌감만 남는다.
액션 자체의 맛도 좋지는 않다. 아이디어는 반짝여도, 연출이 받쳐주지 않기 때문. 일레로 카 체이싱 장면에서 카메라는 추격자와 쫓기는 사람을 차례로 보여준다. 이어서 쫓기는 사람이 뭔가 일을 꾸미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영화는 템포를 한 번 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대신, 추격자와 쫓기는 사람의 얼굴을 굳이 다시 보여준다. 결국 액션은 리듬이 늘어지고, 올드하다는 인상을 준다.
마지막으로 달라야 한다는 강박도 쾌감을 저해한다. 초반부 수혁이 카지노를 급습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수혁은 모든 조명의 전원을 끊은 후 카지노에 들어선다. 이때 수혁은 어두컴컴한 카지노 내부에서 홀로 칼에 손전등을 달고 다른 조직원을 공격한다. <스타워즈>의 라이트 세이버 액션을 보는 듯한 효과를 주려는 듯이.
문제는 따로 있다. 손전등 때문에 액션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화면은 어둡고, 손전등은 유일한 광원이다. 그 손전등은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비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자연히 화면은 환하게 빛나다가 어두워질 뿐이다. 심지어 카메라도 덩달아 흔들린다. 그 결과 이 액션 시퀀스는 현란하지만, 정확히 무슨 일이 있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잠깐이나마 빛나는 가능성
새로워야 한다는 욕심은 캐릭터를 묘사할 때도 드러난다. 사실 일부 캐릭터는 꽤 인상적이다. 선악 구분이 없는 우진과 진아 커플은 과장에 과장을 보태 한국형 조커와 할리퀸을 보는 듯하다. 의외의 대목에서 냉소적인 코미디를 선보이기도 하고, 서로를 끔찍이 챙기고 아끼면서 전형성도 약간 파괴한다. 특히 우진이 매번 다른 버전의 과거사를 털어놓는 장면은 <다크 나이트> 속 조커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커플도 영화 전체를 구하지는 못한다. 존재감은 강렬하지만, 그들이 정작 다른 캐릭터와 얽힐 때는 위화감이 느껴진다. 특히 수혁과의 관계가 부자연스럽다. 우진과 진아는 너무 가볍다. 돈만 받으면 되는 그들은 그저 게임을 즐기는 듯 보인다. 반대로 수혁은 너무 무겁다. 그는 아내를 죽인 원수, 딸을 납치한 파렴치범에게 복수하려 든다. 영화는 그 사이에서 좀처럼 균형점을 찾지 못한다.
결국 세 인물은 화학적으로 결합되지 않는다. 얽혀 있는 물리적인 시간은 길지만, 한 화면에서 서로 다른 영화를 찍는 것 같다. 다른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 갈등 구조와 인간관계를 지나치게 꼰 것도 한몫한다. 수혁과 성준이 갈등을 빚는 몇몇 장면에서는 우진과 수혁이 순간적으로 같은 편 같아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보호자>의 과욕과 강박은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결국 <보호자>는 "명배우는 명감독이 못된다"는 명제를 증명한 또 하나의 작품이 되어 버렸다. 의외의 대목에서는 나름대로 개성을 보여줬지만, 끝내 전체 완성도를 뒤집지는 못했다. 그래도 기대만큼 돋보인 김남길의 연기력, 예상외였던 박유나의 존재감, 그리고 정우성이라는 신인 감독의 가능성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떻게든 차이를 만들고 싶었던 강박이 끝끝내 아쉽기는 하지만.
Dreadful 끔찍한
수습은 했지만, 완성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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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고된만큼 아름답다,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 36호
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 2004)
제작 : 미국,드라마 │ 감독 : 클린트 이스트우드
출연 : 클린트 이스트우드(프랭키), 힐러리 스웽크(매기), 모건 프리먼(에디)
등급 : 12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33분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복싱 영화이자, 휴머니즘 드라마이자, 어쩌면 존엄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존엄사에 대한 첨예한 찬반양론이 존재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존엄사, 말 그대로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며 죽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주인공 '매기'는 웨이트리스 출신의 아마추어 복서다. 서른한 살이라는, 복서로서는 아주 늦은 나이에 복싱을 시작한다. 그녀는 슬플 정도로 박복한 팔자에, 가진 거라곤 열정 하나뿐이다. 그런 그녀의 열정에 못 이겨 복싱 매니저이자 컷맨(상처에서 피가 멈추도록 도와주는 보조자)인 '프랭키'는 삼고초려 끝에 그녀를 거두어준다.
매기는 집념 하나로, 프랭키를 따르며 1년 반 만에 엄청난 실력자가 된다. 나는 권투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아마도 복서에게는 타이틀 전이라는 게 궁극적 목표인가 보다. 매기는 첫 라운드부터 KO승을 거두며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 이 타이틀 전을 꿈꾸는데, 프랭키는 매기에게 타이틀 전을 시키는 것을 탐탁지 않아한다. 너무도 무서운 상대와 겨루어야 하는 타이틀 전에서, 친한 동료가 실명하고 평생을 힘들게 사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기의 고집으로 결국 프랭키는 타이틀전을 주선하게 되고, 종국엔 '밀리언 달러' 타이틀 전까지 출전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줄곧 승승장구만 했던 매기의 암울한 그림자가 터지고야 만다. 전직 창녀 출신으로 비겁한 반칙들을 일삼기로 유명한 독일의 복서 '블루 베어'와 겨루다가, 매기가 그만 사고를 당하고 만 것. 매기는 1,2번 경추가 완전히 박살 나,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이때, 별안간 전에 보았던 <미 비 포유>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얼굴도 잘생기고 유능하고 부유하던 남자가, 한 순간의 사고로 전신마비가 되어 살아가던 내용의 영화. 그를 사랑하게 된 여주인공은, 그가 합법적 존엄사가 인정되는 스위스에 가서 존엄사를 꿈꾼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런 그의 선택을 바꾸려 안간힘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삶의 욕구를 불어넣어주려는 여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죠, 하지만 내 인생은 아니에요. 난 (건강했던) 내 인생을 사랑했어요 진심으로요"라고 말하며 끝내 존엄사를 택했더랬다.
그때 그 영화를 보면서 나는, 남자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아니, 무슨 영화의 결말이 이래! 여자의 사랑이 이 남자의 선택을 바꿔 놨어야지! 살았어야지! 건강을 잃은 삶을 살아보지 못한 자의 섣부른 오만이었을까. <미 비 포유>에서나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나, 늘 목숨의 주인공보다, 다친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기를 쓰고 반대한다. 으스러진 삶을 감당해야 하는 당사자의 고통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자신의 고통을 먼저 헤아리기 때문이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프랭키도 마찬가지였다. 딸처럼 여기며 복서로서의 성장을 도왔던 매기가, 전신마비를 고통스러워하며 죽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요청했을 때, 프랭키는 거절한다. 상실감을 느낄 자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더 이상 복싱을 할 수도, 일어나 걸을 수도 없는 매기는 차라리 죽고 싶었다. 그래서 혀를 깨물고 수차례 자살시도를 한다. 그리고 그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자, 프랭키는 그제야 깨닫는다. 그녀를 도와줘야겠다고.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매기가 원하는 것은, 이 삶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건강하지 못한 육체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고.
무슨 연유로 딸과 멀어지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매번 딸에게 편지를 부치고도 반송이 되는 프랭키와, 면면이 쓰레기 같은 가족들을 둔 외톨이 매기. 매니저와 선수로서의 만남이었지만 둘 사이에는 거의 부녀지간에 가까운 애정이 존재했다. 그런 선수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때 프랭키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굳이 짐작해보지 않아도 그 무게를 알 것 같다.
하지만 그 무게는 프랭키뿐 아니라, 매기 역시 지고 있다. 자신이 사고를 당해, 프랭키가 엄청난 미안함과 부담감을 가지게 될 거란 걸 고스란히 느껴야 하는 매기의 마음은, 어쩌면 프랭키보다 더 무거웠을지 모른다. 하물며 자신이 목숨을 이어나간다고 해도, 그 돌봄과 죄책의 나날을 프랭키에게 지워야 한다는 건, 매기로선 정말 못 견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이런 매기의 복잡다단한 마음을 완전히 이해했을 프랭키는, 결국 자신의 손으로 매기의 산소호흡기를 떼고, 그녀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주사를 놓아준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야 <미 비 포유>에서는 몰랐던 것을 느꼈다. 존엄사의 진정한 의미를. 당사자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 그게 삶이든 죽음이든, 내 상실감보다 그의 고통을, 그로 인한 그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 또한 사랑이라는 걸.
매기의 죽음을 도와주며, 프랭키는 그녀에게 자신이 지어준 링네임 '모쿠슈라'의 뜻을 알려준다. 게일어인 모쿠슈라의 뜻은 "나의 소중한, 나의 혈육"이라는 뜻이다. 매기는 그런 프랭키의 마음을 마지막으로 간직하고 그렇게 존엄을 지키며 세상을 떠났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불의의 사고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나도 그에게 마냥 살아달라고 요구할 수는, 아마 없을 것 같다. 그가 원하는 게 죽음이고 해방이라면, 결국에 그 뜻을 존중해주고 싶어 질 것만 같다. 누군가를 잃을 상실감에 앞서, 인간에게는 누구나 존엄할 권리가 분명히 있다고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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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태닝시 음료수를 갖고 가지 말 것, 통나무를 가득 적재한 트럭 뒤로는 차를 몰지 말 것 한 동안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금기가 되었던 행동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만약 어떠한 장면들이 파편처럼 머리를 스친다면 그는 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의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살인마도 듣도 보도 못한 크리쳐도 아닌 주인공을 뒤쫓는 것은 바로 '죽음' 그 자체라는 주 내용을 필두로 시리즈화 되었던 영화가 14년만에 신작을 공개하게 되었다. 시리즈에서는 6편을 차지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 라인>은 오랜 공백을 거쳐 다시 리부트 된만큼 <스크림>에 이어 전세계 호래 팬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으며 현재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 중에 있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는 영화이지만 관람에 앞서 시리즈를 굳이 챙겨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또 다른 장점이 되어준다. 다만 이 한 가지는 기억 하는 것이 좋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뒤를 쫓아갈 것이다.
유명 공포영화에는 대체로 법칙이 존재한다. 뒤를 돌아보지 말 것, 방심하지 말 것, 낯선 사람에게 오는 전화는 받지 말 것, 친구를 의심할 것 등 시리즈를 거치며 완성된 공식들은 본편을 기준으로 세계관을 점차 확장시키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데스티네이션 시리즈도 단연코 그 중 하나인데, 이 중 가장 명심해야 되는 것은 '예정된 죽음은 피할 수 없음. 만약 피했을 경우 죽음은 어떻게든 당신을 쫓아간다.' 이다. 신박하고도 끔찍한 죽음 쇼로도 잘알려진 해당 시리즈는 갑작스럽게 보게 된 예지로 대형 사고를 면한 주인공과 그 친구들이 죽음을 어떻게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주된 내용으로 삼는다. 1편에서는 여객기 폭발 사건에서 벗어난 주인공 일행을 다루며 2편에서는 대규모 차량 추돌 사고를, 3편에서는 롤러코스터 운행 사고를 다루고 4편과 5편에서는 각각 레이싱장 사고와 다리 붕괴 사고를 보인다. 대규모 사고에서 목숨을 건진 이들은 1편에서 다뤄진 알렉스의 사고를 떠올리며 저 나름대로 죽음을 피해보고자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인물들은 죽음이 정한 법칙을 피하지 못한 채 각자 끔찍한 방법으로 목숨을 잃는다. 슬래셔 물 특유의 개연성보다는 그런 개별의 죽음에서 오는 창의성과 잔인함을 엔터테인먼트적으로 그리는 것이 해당 시리즈의 특징이나 이번 공개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 라인>에서는 전체 시리즈를 통과할만한 중요한 메세지를 던지기에 이른다.
그 메세지를 살펴보기에 앞서 시초가 되어준 <데스티네이션>에 경우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 외로도 죽음에는 순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운 좋게 피했다 한들 죽음은 그 순서를 착실히 지켜나가며 그들을 도로 저승으로 인도하는데 이런 <데스티네이션>의 시리즈보단 속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데스티네이션2>는 그 순서를 어겼을 시 건너 뛴 자는 일시적으로 도망칠 수 있으며 세상과 단절 될 경우 수명을 일시적으로 늘릴 수 있고, 한 번 심장이 멈춘 경우는 죽음으로 카운트 되어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등 죽음에서 극단적으로 도망친 자들이 등장하게 되며 절대적이진 않으나 파훼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편 중 하나로 등장하게 된다. <데스티네이션2>는 본편에서 죽음을 피하는 것에 성공했던 클레어가 재등장하며 본편과 좀 더 접점을 갖고 세계관을 확장시키려 한 편으로도 역시 알려져있다. 하지만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즉, 3편부터는 프렌차이즈화의 포문을 열며 직접적인 본편의 언급보다는 색다른 방식으로 예견을 하는 등 같은 법칙 아래 가장 인상 깊은 죽음들을 보여줬던 편으로 남게 된다. 사실 죽음과 이를 피해 생존하고자 하는 이들 간의 대결처럼 그려지는 것은 물론 다양한 죽음을 보여주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이다 보니 다소 메세지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슬래셔 물이 나타내고자 하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에 그 어떤 작품보다 충실한 시리즈이기도 하다. 또한 대형 사고로 그 포문을 여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나 이를 방지하거나 예방하고자 하는 요소가 아닌 초자연적인 묘사를 통해 죽음이 확정된 이들을 무조건 죽이는 식의 장면이 다수 그려지기에 의미보다는 장르성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이기도 하다. 즉 억지로 죽여주는 묘사가 등장함에 따라 교차 편집이나 클로즈업을 통해 보여주는 위험 요소보다는 더 말도 안되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등 억지스러운 부분이 관람 포인트가 됨으로 개연성을 따지는 것이 상당히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블러드 라인> 으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대형 사고에서부터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은 한 여성의 가족을 중심으로 그 세계관을 확장 시킨다. 늘 그랬듯 누군가에게 찾아온 예지 그렇게 살아남은 다수의 사람들. 하지만 이전 시리즈가 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구함으로써 그들을 기준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면 이번 영화에서의 생존자 '아이리스'는 해당 사고의 피해자가 될 뻔 한 모든 사람들을 구하게 된다. 즉 죽음이 찾아가야 할 가정의 수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운명은 이것에서만 어긋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리즈가 늘 보여줬듯 왜 몇 일만에 모든 사람들이 정리 되지 않았을까. 즉 그 사이 아이를 낳거나 새로운 가족을 형성한 이들이 존재함으로 살아남은 다수의 사람들 그리고 그 사고로 인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들에게까지 그 죽음이 바삐 찾아갔던 탓에 '아이리스'는 남편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두 남매를 낳기에 이른다.
이 부분부터 리부트의 강점이 드러난다. 친구나 단순 지인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닌 '가족'이라는 관계의 형태에게 찾아오는 죽음은 그 고리를 끊고자 하는 이들의 적극적인 당위성을 만들어주고 긴장감을 깨알 같이 해소시켜줄 개그 요소도 등장시키는데 적합한 요소로 사용된다. 특히 긴장감에 지친 관객들의 웃음 요소가 되어준 배다른 자식 설정은 특정 인물이 죽음의 고리에는 포함되지 않는 인물이기에 안심을 유도했다가 다름 아닌 '죽음을 엿먹이려 하면 좋지 못한 결과가 따른다.' 라는 히든 법치을 해금함으로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해당 시리즈 중 가장 획기적인 죽음으로도 평가받고 있는 '에릭'의 죽음은 한 번 분위기를 조성했던 시퀀스로 인해 임팩트를 주기도 했다. 또한 해당 편은 메인으로 삼는 참사는 물론 마지막 남매를 덮치는 죽음의 요소로 다름 아닌 작은 동전을 사용하는데, 이는 영화 내에서 작은 요소라도 큰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일종의 나비효과를 암시함과 동시에 이토록 작은 동전이라도 누군가의 끔찍한 최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전편들과의 연결점도 만들어내며 수미상관을 장식한다. 무엇보다도 이 연결점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본편의 장의사 '윌리엄 블러드워스'로 꾸준히 시리즈에 등장하며 마스코트 역할을 했던 이가 5편에 이어 그 정체의 비밀을 벗는 중요한 지점이 되기도 한다. 늘상 주인공들을 위협하는 죽음의 법칙에 빠삭했던 것은 물론 늘 의미심장한 대사를 남겼던 그가 다름 아닌 오래 전 '아이리스'가 구해주었던 꼬마였으며 그녀와의 교류를 통해 죽음의 패턴을 연구했던 사람임이 해당 편에서 밝혀지게 된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배우 토니 토드의 유작이기도 한 해당 영화를 통해 윌리엄은 25년동안 진행됐던 시리즈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메세지를 남긴채 그렇게 퇴장하게 된다. 너의 삶을 살아라. 죽음이 언젠가 당신을 쫓아올지라도.
죽음은 망토를 비롯한 그 어떤 외피도 쓰지 않지만 확실하게 해당 시리즈에서 슬래셔 물 속 살인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주인공을 끊임없이 추격하며 끝내 비참한 죽음에 이르게 한다.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가 다른 장르 영화들에 비해 그 누구보다 강렬한 기억을 선사하는 것은 초반에 묘사되는 사고뿐만이 아닐 것이다. 실체가 없는 죽음이 너무나도 공평하게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순서나 죽음을 속이는 등의 소재적 법칙을 제외하면 모두가 한 번쯤은 영화를 보며 두려워했을 우리의 방어 기제가 만들어낸 상상의 끔찍한 죽음들이다. 영화는 이러한 죽음이 극단적으로 가까운 이들을 조명하며 불안에 떨고 도망치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이들을 보인다. 덩달아 그들의 모습에 불안해질 필요 없다고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말한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삶을 살아가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일 뿐이라고 말하며 윌리엄은 아주 멋지게 그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난다. 초반 '스테파니'가 살아남은 '아이리스'와 대면했을 때 느꼈던 것은 단순 어색함 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죽음을 오랫동안 피하기 위해 도망치고 경계하는 삶은 과연 아이리스, 그녀의 삶이었을까? 혹시 죽음의 삶은 아니었을까. 아이리스는 다름 아닌 처음 보는 손녀에게 이것이 진짜임을 알리기 위해 도망을 포기한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스테파니를 위했지만 죽음의 삶을 물려준 셈이나 다름 없다. 피할 수 없는 것에 저항하는 인물들을 보며 우리가 진짜 집까지 가져가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삶이다. 죽음이 주는 불안이 당신을 지배하지 않도록 그저 삶을 살아가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것이 곧 죽음을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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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과 불안의 초상화
영화는 결혼식을 앞둔 저스틴과 마이클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저스틴은 조금 부산스럽지만 행복해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가 결혼식에 찬물을 끼얹으며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한다. 저스틴은 점차 결혼식장을 탈출해서 목욕을 하거나, 남편을 거부하고 낯선 남성과 관계를 가지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며 고통스러워한다. 기하학적인 형태의 그림을 치워버리고 새로운 그림을 채워놓는 모습은 그녀의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주변 인물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며, 각자의 요구를 강요할 뿐이다. 저스틴은 우울에 잠식당하며 서서히 무너져내린다. 헨드헬드로 불안하게 담긴 저스틴의 모습은 그녀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야기는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행성 '멜랑콜리아'의 등장으로 전환된다. 과학자들은 멜랑콜리아의 궤도가 지구를 비껴나갈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클레어는 계속해서 불안에 휩싸인다. 결국 멜랑콜리아의 충돌은 현실화되고, 담담한 저스틴과 달리 클레어는 점차 무너져내린다. 각각 우울과 불안에 무너지는 인물의 모습을 비추는 두 이야기는 비슷한 구조로 맞물린다. 저스틴은 우울에 빠져 서서히 잠식되어 간다. 한편 지구는 단어 그 자체로 우울을 의미하는 행성 '멜랑콜리아'와 충돌하며 파괴된다. 그렇기에 지구는 저스틴, 더 나아가 우울에 빠진 모든 이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클레어에게 이야기하는 저스틴의 대사는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저스틴은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사악하기 때문에 멜랑콜리아의 충돌을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또한 생명체는 오로지 지구에만 존재한다고, 온 우주에 생명체는 우리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스틴의 대사는 우울에 빠진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지구의 생명체가 우주 속에 외롭게 존재하듯이 그녀 역시 홀로 외로이 존재한다. 타인은 그녀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며, 타인과의 관계는 고통으로 돌아올 뿐이다. 지구는 사악하다고 말하는 저스틴에게 세상은 억압과 고통이다. 그러나 지구를 그녀 자신에 대입해 보면 그녀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결국 자기혐오라는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멜랑콜리아', 우울은 지구를 파괴하듯이 한 인간의 세계를 파괴한다. 저스틴을 잠식하는 우울과 클레어를 무너뜨리는 불안은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멜랑콜리아와 같이 피할 수 없는 종말이다. 스스로의 의지를 초월하는 거대한 종말 앞에서 인간은 무기력함을 느낀다. 멜랑콜리아의 충돌에 담담한 저스틴의 모습은 우울에 잠식당한 끝에 무감각해진 그녀의 마음을 은유적으로 비춘다.
1부에는 저스틴이 자신의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달리는 도중 한 다리를 건너가려 하지만, 말은 다리를 건너기를 거부한다. 저스틴은 말을 학대하다시피 때리지만 결국 다리를 건너가지 못한다. 자신의 말을 학대하는 모습은 자기혐오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한편 2부에서 클레어는 불안에 떨며 아들과 함께 골프카트를 타고 도망치려 하지만 같은 다리 앞에서 부딪혀 건너지 못한다. 저스틴과 클레어는 우울과 불안, 그로 인한 자기 파괴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종말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리를 건너 도망치지 못하듯 스스로의 세계에 갇혀 종말을 맞이한다.
영화는 인상적인 오프닝 시퀀스와 엔딩 장면을 보여준다. 오프닝 시퀀스는 멜랑콜리아가 지구에 충돌하는 장면과 그 순간 인물들의 모습들이 느린 속도로 이어진다. 엔딩 장면은 마법 동굴에 앉은 저스틴과 클레어, 레오 위로 멜랑콜리아가 거대하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첫 장면과 이어지는 종말의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는 점에서 피할 수 없는 굴레와 같은 종말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두 장면은 섬뜩하면서도 한편으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을 배경으로 이어지는 이미지는 우리를 압도한다. 우울과 불안, 고독과 외로움을 영화 매체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기묘하면서도 경이롭게 표현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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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말포함 영화리뷰? 사이비 종교가 실제로 저지른 끔찍한 일ㅣ결말포함 영화리뷰ㅣ위커맨ㅣ방구석 1열ㅣ
? '사람들이 봤다고 거짓말하는 영화들 by 건데'
인문학과 함께 보는 결말포함 영화리뷰 시리즈
001. 위커맨(1973) - 드루이드 종교에 대해서
#영화결말포함 #영화리뷰 #위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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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인 예고편
“바다가 보고 싶었어”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던 조제,
지구 반대편의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츠네오.
운명처럼 만난 두 사람은 같은 바다를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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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킹스맨 : 퍼스트 에이전트> 캐릭터 예고편
역사상 최악의 폭군들과 범죄자들이 모여
수백만 명의 생명을 위협할 전쟁을 모의하는 광기의 시대.
이들을 막으려는 한 사람과
그가 비밀리에 운영 중인 독립 정보기관,
‘킹스맨’의 최초 미션이 시작된다!
베일에 감춰졌던 킹스맨의 탄생을 목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