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M2021-03-23 22:39:00
뷰티풀 보이 / Beautiful Boy
/ 감상 /
영화 러닝타임 내내 약물 중독 극복과 실패가 반복된다.
아버지의 감정선이 영화의 주된 바이브이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 약물에 중독 된 아들의 모습보다 아버지의 노력에 집중을 하며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중반까지 부성애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버지와 가족에 대한 의미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고, 누가 뭐라하든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런 대단함이 후반부에 가서 미련함으로 보였다.
아버지의 이런 물심양면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약물에 손을 대는 아들을 보니 내가 한숨이 절로 나왔고, 그런 아들을 말로 타이르는 아버지의 행동이 보는 내내 답답함을 자아냈다.
아들을 타이르는 것만이 답일까? 싶었다.
한번쯤은 큰소리를 내면 어떨까 싶었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이니까 이게 옳은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조금 더 단호하게 대응을 하였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이 영화의 결말때문이다.
이 영화는 결국 약물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는 아들과 그 아들을 포기해버린 듯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 채 끝나기 때문이다.
결국 변한 건 하나 없는 결말이다.
약물중독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은 좋으나,
이런 힘빠지는 결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좋은 감정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러닝타임 내내 극복과 실패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재를 뿌려버리니.. 뭐랄까 아버지가 그간 해온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남은건 조금 더 망가져버린 아들과 가족들 밖에 없으니까.. 상황이 더 악화 된 것만 같은 기분?
그리고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친 아버지마저 포기해버리는 모습을 보니
아들 곁에는 이제 아무도 없겠구나 싶어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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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가장 인상깊은 대사가 있었다.
약물중독자 자식을 둔 부모들의 모임에서 한 엄마가 말한 대사 였다.
" 약물중독자의 가족들은 살아있는 사람을 애도하며 살아간다. "
이 대사가 아버지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래도 아버지가 그렇게 노력했던 이유는 애도하는 마음에서 였던 것이다.
약물에 손을 대기 전의 해맑았던 아들의 영혼을 애도하는 마음에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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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 관련 영화.zip
안녕하세요!
다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바로 오늘! 3월 22일은 세계 물의 날입니다.
인구와 경제활동의 증가로 인하여 수질이 오염되고,
전 세계적으로 먹는 물이 부족해지자,
유엔이 경각심을 일깨우 위하여 정한 날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물과 관련된 영화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린 브로코비치
Erin Brockovich, 2000
출처 | 네이버 영화
synopsis
무직의 싱글맘 에린은 변호사 에드의 보조로 취직한다.
어느 날, 캘리포니아의 발전소가 도시의 식수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맨손으로 그들과의 전면전을 펼친다.
cine pick!
<내 남자친구의 결혼 사고>,<노팅 힐>의 주연 줄리아 로버츠가
주인공으로 참여한 영화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더 감동적인 영화이자
희망과 에너지가 주는 영화이다.
Streaming Service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 seezn
랭고
Rango, 2011
출처 | 네이버 영화
synopsis
모하비 사막에 툭 떨어진 카멜레온 '랭고'는 얼떨결에 마을의 영웅이 되어버린다.
그렇게 랭고는 보안관을 맡게 되는데...
예측 불허한 사건들 속에서 랭고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펼쳐질까?
cine pick!
어른들을 위한 철학 애니메이션 영화.
동물 캐릭터가 매우 매력적이고,
물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
Streaming Service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The Shape of Water, 2017
출처 | 네이버 영화
synopsis
어느 날 실험실에 온몸이 비늘로 덮인 괴생명체가 수조에 갇힌 채 들어오고,
엘라이자는 신비로운 그에게 이끌려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박사가 그를 해부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탈출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cine pick!
물을 통해 사랑에 대한 인식 변화를 이끌어내는 영화.
제90회 아카데미 최다 노미네이트 직이자,
제74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제75회 골든 글로브 감독상, 음악상 수상!
Streaming Service
디즈니 플러스
다크 워터스
Dark Waters, 2019
출처 | 네이버 영화
synopsis
대형 로펌의 변호사 ‘롭 빌럿’은 세계 최대의 화학기업 듀폰의 독성 폐기물질 유출 사실을 폭로한다.
그는 사건을 파헤칠수록 독성 물질이 우리 일상 속에 침투해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고,
모든 것을 건 용기 있는 싸움을 시작한다.
cine pick!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져 더 무섭게 다가오는 영화 '다크 워터스'
이 영화를 보면서 수질 오염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Streaming Service
웨이브, 티빙, Apple TV+
인베이젼 2020
Invasion, 2020
출처 | 네이버 영화
synopsis
첫 우주 침공으로부터 3년이 지난 지구. 인류는 상처를 이겨내고
조금씩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평화도 잠시, 다시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이 존재하는 그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은 상황. 하지만 인류는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cine pick!
인간에게 필수적인 '물'이 목숨을
위협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면 어떻게 될까.
굉장히 궁금증을 자아내는 소재를 사용한 영화.
Streaming Service
seezn
씨스피라시
Seaspiracy, 2021
출처 | Rotten Tomatoes
synopsis
그가 사랑하는 바다가 죽어간다. 인간이 그 경이의 세계를 파괴한다.
그리하여 카메라를 들고 바다로 나간 감독.
그가 맞닥뜨린 것은 전 세계에 걸친 부패의 그물이었다.
cine pick!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영화.
절망감을 느끼게 만드는 영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하게 만드는 영화.
Streaming Service
넷플릭스
----------- 씨네랩 에디터 Hiz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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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끝을 향한 비행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의 비밀을 목격하곤 한다. 사소하고 작은 비밀부터 타인에게 영향을 줄 만한 큰 비밀까지, 여러 비밀을 두고 우리는 입을 다물 것인지, 밝힐 것인지의 갈림길 앞에 놓이게 된다. 어떤 비밀은 관여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숨겨지기도 하고, 자신의 처지와도 관련되어 있어 밝히기 곤란하다는 이유로 외면받아 숨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선택이 정말 옳은가? 우리는 무엇을 보았고, 또 무엇을 숨기고 있는가?
영화 <올빼미>는 누군가 독살당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을 목격한 인물을 내세우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만약 우리가 이 인물이라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그러한 질문 속에서 영화는 낮과 밤, 빛과 어둠, 그리고 볼 수 있는 이와 볼 수 없는 이를 두고 끊임없이 빛을 옮긴다. 해당 작품이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새롭게 역사를 각색한 만큼, 역사적 사실과 영화의 내용을 비교해 짚어가기보다 <올빼미> 속 각색된 인물들과 관계 구도를 중심으로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1.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영화의 주인공인 천경수는 맹인 침술사로, 빛이 있는 곳이나 밝은 대낮에는 앞을 보지 못하지만 어두운 곳이나 밤에는 흐릿하게나마 앞을 볼 수 있는 주맹증을 앓고 있다. 그러나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다른 신경 감각들의 발달로 발소리와 숨소리만을 듣고도 환자를 진단하고 침을 놓는 데에 용한 실력을 보인다. 덕분에 침술사를 찾던 어의 이형익의 눈에 들고, 실력을 인정받아 궁의 침술사로 일하게 된다.
궁에 들어가 일하게 되었을 때 경수는 기뻐하며 웃는다. 아픈 동생의 약값조차 낼 수 없던 어두운 현실에서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신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약값이 밀려 더는 약을 내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경수는 외친다. 궁에 들어가기만 하면 약값을 낼 수 있다고. 궁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러나 경수가 조금 더 밝은 미래를 위해 들어온 궁에는 그 무엇보다 어둡고 무거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 살아남기 위해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는 거짓말로 스스로 눈을 가렸던 경수는 가린 손 틈으로 소현세자가 독살당하는 것을 목격한다. 경수는 독살의 유일한 목격자이자, 그리고 나아가 인조가 소현세자를 독살하도록 명령했다는 것을 눈치챈 유일한 이다. 이때부터 경수에게 궁은 밝은 미래의 공간이 아니라 어두운 현실을 숨겨둔 감옥이 된다.
영화의 제목인 ‘올빼미’는 야행성 조류로, 낮보다 밤에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밤에 암흑 속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올빼미는 작중 주인공인 천경수와 닮아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낮에는 지팡이나 동행인 없이 앞을 구분하기도 쉽지 않지만, 밤이 되면 숨겨진 것들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설정은 경수의 약점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인물들이 무방비하게 경수에게 약점을 내비치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는 작중 초반 인조의 후궁인 소용 조씨가 경수의 앞에서 옷을 모두 벗는 모습에서부터 예고된다. 앞을 볼 수 있는 형익은 가림막 뒤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경수는 가림막 너머로 와 침을 놓는다. 이때 경수는 보이지 않는 척 손을 덜덜 떨면서도 들키지 않게 침을 꽂는다. 당시 촛불이 꺼지며 안이 어두워져 조씨의 몸을 볼 수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설정을 유지해 안전해지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작중 중심 사건의 예고에 불과하다. 경수가 아예 앞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한 형익은 소현세자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경수와 함께 침전으로 향한다. 그리고 경수를 앞에 두고 경수의 청각을 속여가며 소현세자에게 멀쩡히 침을 두는 척 행동한다. 범행을 공모하지도 않은 경수의 앞에서, 형익은 청각만 속이면 경수가 알지 못하리라 방심한 채 태연히 소현세자를 독살한다. 이때 촛불이 바람에 꺼지면서 경수는 소현세자가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게 되지만, 앞의 선택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척 들키지 않게 군다. 순간 경수를 의심한 형익이 경수의 눈앞에 침을 들이밀지만 명주천의 물기를 짜는 척 주먹에 힘을 꽉 준 채 눈을 뜨고, 천이 더 필요한지 묻는다. 형익은 다시 안심하고 범행을 이어가고, 경수는 모두가 잠든 밤, 자신이 목격한 독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소현세자 독살 사건의 진범, 목격자는 오직 하나. 위험을 무릅쓰고 본 것을 보았다고 말할 것인가, 눈을 감고 낮이 오길 기다릴 것인가?
영화는 빛의 양에 따라 앞을 보기도, 보지 못하기도 하는 경수를 두고 여러 인물을 등장시키며 ‘본다’는 행위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제시한다.
먼저 경수는 초반부터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궁궐 안 사람들에게 침을 놓을 때를 비롯해 모든 순간, ‘소경이 보는 것을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 눈앞을 완전히 가린다. 자신과 같은, 힘이 없는 약자는 보여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작중에서도 소현세자가 경수의 주맹증과 관련된 진실을 덮어줬기 때문에, 죽기 직전 경수의 사형 집행을 맡은 병사들이 경수를 못 본 척 살려주었기 때문에 순간순간마다 살아남기도 했다.
그러나 약하다는 이유로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감추는 것만이 옳을까. 경수가 어두운 곳에서는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현세자는 경수와는 반대의 관점에서 그를 바라본다. 살기 위해 눈을 가렸다는 경수의 비밀을 못 본 척 감추어 주면서도 ‘안 보고 사는 게 몸에 좋다고 하여, 눈을 감고 살면 되겠는가.’ 하며 경수에게 조언을 건넨다. 그리고 청에서 가져왔던 확대경을 선물한다.
지금껏 경수는 빛의 양이 적은 곳에서 흐릿하게나마 앞을 볼 수 있었고, 그 얕은 시각에 기대어 편지를 쓰거나 업무를 해 가며 연습해왔다. 그러나 경수가 쓴 글씨들은 흐릿하게 봤을 때는 멀쩡해 보여도 올바르게 쓴 글씨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확대경으로 자신의 글씨를 크고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된 경수는 그제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해왔던 것에도, 봐 왔던 것에도 잘못된 것이 있음을 알게 된다. 소현세자가 확대경과 함께 건넨 ‘제대로 보는 힘’을 가지게 되면서, 경수는 지금껏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를 다시 볼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다.
반대로 인조는 보이는 것을 외면해야 할 때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 청에서 돌아온 소현세자가 청의 문물들을 소개하며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의견을 꺼내놓자 명의 편에 서야 한다고 강경하게 거부한다. 명은 이미 쇠락해 힘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지만, 인조는 이전에 청에게서 얻은 굴욕을 잊지 못해 그 사실을 외면한 채 청에게 등을 지려 한 것이다.
그러나 소현세자가 보이는 것을 보인다고 말하며 인조에게 새로운 시각을 건네려 들자 인조는 자신의 권력에 소현세자가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고, 그를 독살할 계획을 세운다. 인조와 인조의 후궁인 조씨가 공모해 형익을 시켜 소현세자를 독살시켰다는 진실이 분명히 존재하는데도, 인조는 진실을 외면한 채 소현세자를 죽인 진범을 찾으라며 아들의 죽음을 대하는 보통의 왕의 구색을 갖추려 든다.
명은 이미 쇠락했다는 진실을 말하던 소현세자가 자신에게 위협이 되자 그를 독살했듯, 인조는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것들은 없애고 진실을 감추려 든다.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알게 된 세자빈이 찾아오자 세자빈의 가문에서 선물한 전복죽에 독이 들어 있었다며 누명을 씌워 가두고, 경수가 최 대감을 도와 진실을 밝히려 하자 최 대감에게 권력을 주겠다는 말로 소위 말하는 ‘합의’를 봐 가며 왕의 자리를 유지하려 한다. 소현세자는 학질로 사망했고, 궁에는 아무 일도 없었으며, 자신은 아들의 비통한 죽음에 깊이 통감하는 왕일 뿐이라는, 허울뿐인 이야기로 사건을 마무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극중 소현세자는 경수보다 이전에 인조에게 ‘보이는 것’에 대해 말했던 인물이다. 청에 끌려갔다 8년이 지나서야 돌아온 그는 청에서 보고 겪었던 것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인조에게 청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때 인조는 나지막이 대답한다.
너, 보는 눈이 바뀌었구나.
소현세자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해당 장면에서, 인조는 소현세자를 적대시하고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는 결국 소현세자를 죽이기로 공모한다는 비극으로까지 이어진다. 보이는 것을 보인다고 말한 자는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소현세자의 죽음을 경수가 목격하면서 그 ‘새로운 관점’은 경수에게로 옮겨온다. 지금껏 따라왔던 이형익이 소현세자에게 독침을 꽂아 그를 독살하려 한 진범이었다는 진실의 면이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지금껏 이형익과 윗선의 명만을 따라온 경수에게 능동적으로 선택할 선택지를 부여한다. 보는 눈이 바뀐 소현세자는 ‘보이는 것을 보인다’고 말해 죽었고, 진실을 알게 된 경수 또한 보는 눈이 바뀌었다. 이제 선택은, 숨겨져 있던 진실을 목격한 경수에게 달려 있다.
새롭게 보이는 것을 보인다고 말할 것인가, 덮어두고 기존의 것들만을 바라볼 것인가?
-2. 낮과 밤의 전복 – 새롭게 창조되는 세계
영화에서 등장하는 이들 중 가장 약해 보이는 자는 단연코 주인공인 천경수다. 경수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지팡이를 짚거나 안내인과 동행해야만 대낮에도 길을 걸을 수 있다. 어두워지면 흐릿하게나마 사물과 글자를 인식할 수 있지만, 그를 당당히 밝힐 수도 없다. 경수의 대사처럼, ‘보이더라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야만 사람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수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점에서 궁의 왕족들은 경수의 머리 위를 점한다. 경수에게 침을 맞는 중전도, 소현세자도, 인종도 모두 여차하면 경수를 영원한 어둠 속으로 밀어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경수는 궁의 비밀을 알아도, 알지 못해도 암흑 속에 있는 것처럼 허우적대야 한다.
그러나 ‘진짜’ 진실을 모르는 건 경수가 아니라 궁의 왕족들이다. 그들은 경수의 눈이 완전히 멀지 않았다는 것을, 그래서 경수가 어둠 속에서는 앞을 가로막은 암흑을 걷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무방비하게 자신의 몸을 내맡기는 궁의 왕족들에게, 경수는 천천히 침을 꽂는다. 이는 다시 말해 왕족들에게만 경수의 목숨이 달린 것이 아니라, 경수에게도 왕족들을 위협할 힘이 있다는 것이다.
작중 형익의 침을 맞아 독살당하던 순간, 소현세자는 눈과 코, 입에서 피를 흘리며 조용히 죽어간다. 진실이 가려지던 그날 밤, 어둠이 드리워진 곳이 곧 낮이나 마찬가지였던 경수는 모든 걸 목격한다. 이 순간, 경수가 보았으나 보지 못한 것처럼 넘어갔던 장면들이 다시금 돌아와 퍼즐 조각처럼 맞춰진다. 인조의 후궁이었던 소용 조씨가 형익에게 무언가를 건네던 순간, 그리고 무언가를 건네받은 형익이 독이 묻은 침으로 세자를 독살하는 순간. 경수는 그 순간에는 형익의 의심을 피하고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척 굴었지만, 다시 돌아와 형익이 미처 제거하지 못했던 침 하나를 손에 넣는다. 이 과정에서 침을 회수하려 왔던 형익을 피해 달아나며 소동을 벌이게 되고, 밤중 병사로 꾸며져야 했을 소현세자의 죽음은 ‘독살범이 있다’는 의혹과 함께 논란이 된다. 증거는 가졌으나 권력을 가지지 못한 경수는 세자의 편이 될 수 있는 이들을 떠올리다 세자빈을 찾아가지만, 인조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며 찾아온 세자빈에게 반역죄를 덮어씌워 옥에 가둔다. 경수는 이후 형익이 받아 구석에 숨겨두었던, 세자를 죽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던 문서를 찾아 최 대감을 찾아간다. 그러나 최 대감은 인조가 소용 조씨를 통해 건넸다던 그 문서의 필체와 공식 문서의 필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독이 묻었던 침, 소용 조씨가 건넸던 문서. 모든 증거를 직접 가져왔던 경수는 원손의 도움으로 인조가 의심을 피하고자 다른 손으로 비밀 문서를 적었다는 사실을 알고, 왼손으로 쓴 공식 문서를 얻기 위해 나선다. 이때 경수의 무기가 되는 것이 바로 ‘침’이다. 그는 형익이 보낸 것처럼 당장 침을 놓아야 마비가 멎는다고 속이고 왕의 침소로 잠입한다. 그리고 인조에게 침을 놓아 오른손에 마비가 오게 만든다. 이 때문에 급히 문서 작성을 요청하는 우승지 앞에서 인조는 왼손으로 글씨를 적게 된다. 옥새를 찍기 직전 형익이 달려와 경수가 범인이라고 외치지만, 경수는 그 순간 인조에게 침을 놓아 모든 신경이 마비되도록 만들고, 왕을 인질로 삼아 사람들을 무른 뒤 문서에 옥새를 찍어 들고 달아난다. 절대 권력을 쥐고 있었던 인조는 경수의 말에 벌벌 떨고, 숨겨져 있던 진실은 경수의 힘을 통해 바깥으로 드러날 위기를 맞는다.
경수는 증거품을 전달한 뒤 계획대로 궁을 나가려다 문지기들이 ‘형익이 원손을 치료하러 갔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다시 궁 안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소현세자의 아들이자 장차 인조를 압박할 수 있는 원손에게 형익이 독침을 놓으려는 것을 목격한다. 경수는 다시금 침을 무기로 사용한다. 그가 쓰던 독침을 형익에게 놓아 형익을 쓰러뜨린 뒤, 경수는 원손을 업고 달려 나온다.
그러나 경수가 불을 붙여 타오르기 시작한 얕은 빛은 곧 흐릿해진다. 경수가 원손을 업고 최 대감을 찾던 도중 날이 밝아오고, 어둠 속에서만 앞을 볼 수 있는 경수는 시야가 흐릿해져 가야 할 방향을 잃게 된다. 이 때문에 정처없이 떠돌다 인정전에 당도해 옥좌에 앉아 있던 인조의 앞에 서게 된다.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보이는 것을 밝힌 경수의 앞에 ‘밝혀진 것조차도 감출 수 있는’ 이들이 등장한다. 경수가 증거품만 가져온다면 진실을 밝혀줄 것 같았던 최 대감은 경수가 몸을 날려 구해왔던 증거물을 들고 인조를 찾아간다. 그러나 인조의 회유 끝에 자신의 권력을 챙길 수 있는 선을 계산하며 ‘합의’를 하기 시작한다. 옥에 갇힌 세자빈이 믿었던 마지막 빛, 최 대감은 언제든 꺼질 수 있는,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은 얕은 빛에 불과했다. 어둠 속에서 힘을 발휘해 ‘독살의 증거’를 확보했던 경수는, 인조와 최 대감의 아침 앞에서 무력하게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경수가 보이는 것을 밝혀도 권력 구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영화는 세자빈의 죽음과 원손의 죽음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진실을 밝히려 했던 이들이 까맣게 타 들어간 현실을 조명한다.
-3. 끝나지 않은 밤
그러나 영화 속 세계는 그 지점에서 끝나지 않는다. 경수의 눈을 가리고 끌고 가라고 명령할 수 있는 힘이 인조에게 있었다면, 인조의 명령을 받드는 이들에게도 거부할 힘이 있다. 최 대감이 인조와 합의를 본 뒤 나와 사람들에게 ‘독살자는 없다’고 선언하자 경수는 따라 나와 사람들에게 자신이 보았다고 소리친다. ‘주상이 이형익을 시켜 세자 저하를 독살했’다는 경수의 외침에 인조는 화가 나 검을 들고 ‘소경이 나를 능멸한다’고 소리치다 넘어져 머리에 피가 흐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순간 그 자리에 있던 왕실 사람들은 인조를 돕지 않는다. 오히려 차가운 시선으로 인조를 바라볼 뿐이다. 궁녀, 내시, 호위, 누구라고 지칭할 것 없이 모두 드러난 진실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경수를 침수시켜야 했던 내금위는 경수의 목을 치려다 말고 내금위장에게 ‘우리 모두’ 보지 않았냐고 묻는다. 그가 ‘모두가 진실을 알고 있는데 이럴 수는 없다’며 그 힘을 거부했기 때문에, 용기를 내 눈을 떴기 때문에 경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4년 뒤, 마비가 심해진 인조의 앞에 다시 설 수 있었다.
이 순간 비로소 낮과 밤은 거꾸로 뒤집힌다. 경수가 도움을 청하고자 했던 왕실 사람들은 억울하게 끌려가거나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며 인조를 끌어내리지 못했다. 이 때문에 경수는 흐려진 시야 속에서 진실을 다시금 덮으려는 목소리를 듣고, 쓰러진 원손을 두고 무력하게 끌려가야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찾아온 경수는 마비된 채 무력하게 누워 있는 인조의 앞에 앉는다. 그리고 침을 꽂는다. 등불이 꺼지고 밤이 찾아오면, 경수의 낮이 된다. 그 어둠 속에서 소현세자의 정수리에 박힌 채 남아 있던 독침을 기억하며, 경수는 인조의 머리에 독침을 꽂아 넣는다. 누구도 인조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그 무력한 공간에서.
경수는 진실을 알고 있지만 권력을 뒤집을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경수가 조력자를 찾은 건 그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경수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세자빈은 누명을 쓰고 끌려나가고, 최 대감은 권력 욕심에 자신의 눈을 다시 가릴 뿐이다. 눈이 가려진 자와 눈을 가린 자, 그렇게 조력자들이 퇴장했을 때, 다시 말해 어둠 속에 남은, 앞을 볼 수 있는 이가 자신밖에 남지 않았을 때 경수는 비로소 전면에 등장한다. 원손에게 사실을 고하고, 용기를 내고, 증거물을 직접 찾아내고, 인조의 오른손을 마비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과거 소현세자가 독살당했던 방식 그대로 인조에게 독침을 놓는다.
경수를 살려주는 이도, 인조를 끝내는 이도 모두 왕족이 아니다. 경수는 진실을 알고 경수를 살려준 내금위 때문에 살 수 있었고, 다시금 인조의 앞에 설 수 있었다. 경수의 운명도, 인조의 운명도 모두 권력자의 손에 끝나지 않았다. 영화 내내 권력을 쥐고 있었던 이들은 왕족이었지만, 결국 이 이야기를 이어가게 하고 매듭짓는 이는 따로 있었다는 점에서 그 무엇보다 결정적인 힘은 권력자가 아닌 시민에게 있는 것처럼 읽히기도 한다.
-4. 대비 : 관객을 속인 양면성
<올빼미>를 보는 동안 관객은 끊임없이 속는다. 이는 인물들이 숨기고 있는 진실이나 경수의 재등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형익과 인조의 양면성과도 관련이 있다. 먼저 인조의 명을 받들어 소현세자를 독살하기 전까지 형익은 선한 이미지로 연출된다. 작중 초반부터 형익은 내의원에서 일할 이를 찾기 위해 직접 침술원을 찾는다. 그리고 맹인 침술사인 경수가 청각을 비롯한 발달한 감각으로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제대로 침을 놓자 이런 능력을 알아보고 경수를 내의원으로 데려온다. 당시 경수에게는 심장병을 앓고 있는 동생이 있었고, 이 때문에 정기적으로 약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형편이 좋지 않아 약값이 많이 밀려 힘들어하던 경수에게 궁에서 일하게 해 준 형익은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구도는 경수에게만이 아니라 왕실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진실을 알게 된 뒤 경수가 강빈을 찾아가 고하자 강빈은 형익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믿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왕실을 위해 일해왔고, 원손을 아끼던 인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수의 등장과 소현세자가 선물했던 청의 문물, 확대경으로 인해 강빈은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조 또한 ‘절대적인 악역’으로만 비추어졌던 것은 아니다. 그는 세자가 돌아오기 전 원손에게 다정하게 대해줬으며, 소현세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진심을 다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독살 의혹이 있다는 말에 철저히 조사하라고도 명한다. 이는 작중 인물들에서 더 나아가 관객들까지도 그들을 의심하지 못하게 만든다. 주인공인 경수가 어둠 속에서 진실을 보기 전까지, 그리고 강빈이 인조를 찾아왔을 때 인조가 떨고 있는 것을 느낀 경수가 배후에 왕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기 전까지. 경수가 진실을 고했을 때, 낮에도 밤에도 그들을 지켜볼 수 있었던 원손과 세자빈은 그의 말을 믿지 못한다. ‘그가 그럴 리가 없다’는 이유로.
이로써 영화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기점으로 분위기의 반전과 함께 인물들의 이미지를 대비시킨다. 형익과 인조의 숨겨진 면이 밝혀지면서 영화는 표면상 병사(病死)로 정리된 듯했던 소현세자의 죽음 뒤 배후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던진다. 이때부터 경수 또한 형익과 인조와 대적하며 능동적으로 행동한다. 형익의 지시 아래에서 일했던, ‘봐선 안 될 것을 보았다면 모른 척해야 한다’는 의원 만식의 조언 아래 숨죽여 움직였던 경수는 형익과 인조를 속이고 증거를 손에 쥔다. 그리고 비로소 인조에게 독침을 놓기까지 한다. 소현세자의 죽음을 기점으로 영화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면, 인조의 죽음을 기점으로 인조와 경수의 구도 또한 다시 한 번 바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진실을 밝히던 경수의 입을 막았던 인조와, 경수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밝히지만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침소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인조. 경수가 비로소 인조에게 독침을 놓고 조용히 침소를 떠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렇다면 악역들의 밤은 끝이 났을까?
과거 인조반정으로 인조를 왕위에 세웠던, 소현세자의 죽음을 숨겨주는 명목으로 인조와 타협하며 권력을 쥐고 비선실세의 자리에 오른 최 대감은 극중에서 어떤 결말로도 비추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두운 밤은 계속해서 다시 찾아올 것이다. 우리가 눈을 감고 있는 사이, 아주 조용히 우리를 속이려 들면서.
인조에게 독침을 꽂으며 경수는 나지막이 묻는다.
무엇이, 보이십니까?
해당 대사를 내뱉는 장면에서 경수는 인조에게, 그리고 나아가 영화관 바깥의 목격자들에게 묻는다. 모든 진실을 목격했다면 당신의 차례다.
본 것을 봤다고 말할 것인가, 입을 막는 손을 기어코 떼어내고 소리칠 것인가, 또는 눈을 가리고 돌아누울 것인가?
우리가 어떤 밤을 지나 어떤 아침을 맞이할지는, 이제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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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요
어느덧 청춘이라고 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내가 청춘을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고, 그냥 사람들이 ‘좋을 때네~’라고 말하는 그런 나이. 청춘이라는 단어에 걸맞다고 하는 그런 나이. 이게 청춘이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돈으로 살 수 없는 젊음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괜스레 우쭐해지기도 한다. 아마 몇십 년이 지나 할머니의 나이가 되면, 목이 찢어져라 내 나이가 어때서를 열창하며 지금이 바로 청춘이라고 바득바득 우기고 있겠지. 청춘이 뭔지도 모르면서......
‘아프니까’ 청춘인 걸까? ‘아파야’ 청춘인 걸까?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나 자신을 보고 있자니 내게 있어 ‘청춘’은 너무나도 먼 나라 얘기 같다. 그리고 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님은, 청년들의 삶에 ‘청춘’이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이기를 거부한다.
지금 젊은이들은 자기 부모세대보다 더 못살고 힘들어지는 최초의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세상은 발전해오고 앞으로 나갔지만, 더는 좋아질 것 같진 않죠.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힘들어지는 현실의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했다면, 지금은 무엇 때문에 자기 미래의 희망이 안 보이는지 찾기가 어렵죠. 그런 무력감과 분노를 품은 젊은이들이 일상에서 미스터리를 마주하는 내용입니다.- 이창동 감독
종수(유아인)의 마음이 너무나도 잘 이해돼 우울했다. 영화 속 현실이 지금의 현실과도 닮아있는 것 같아 괴로웠다. 형체가 없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갈망하는 불안한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였고, 그와 대비되어 미래가 보장된, 안락한 삶을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이 둘의 차이로 인해 비참한 현실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종수의 말대로, 벤(스티븐 연)과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벌써부터 어린 나이에 좋은 차와, 좋은 집이 있을까. 종수는 삶을 살아가는 게 그렇게나 버거운데.
해미(전종서)는 아프리카에 갔다 온 얘기를 하며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냥 저 노을처럼 사라지고 싶다고. 이후 해미는 세상 속에서 종적을 감춘다. 힘든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것일까. 자신의 삶은, 아름다운 청춘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벤에게 있어 ‘비닐하우스 태우기’는 단순한 취미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은유를 내 식으로 해석해 보자면, 그 비닐하우스는 물질 그 자체라기보다는 ‘해미’였을 것이다. 해미로 대표되는 사람들. 벤이 그들에게 남긴 계층 의식에 의한 상처는, 그들을 울렸을 것이고 그렇게 그들이 세상 속에서 사라지도록 했을 것이다. 결국 종수는 벤을 살해하지만, 수많은 벤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영화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수께끼와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감독의 의도와 비슷하게, 종수의 삶 역시 끝까지 수수께끼였을 것이라 생각하니 쓸쓸했다.
우리의 분노를 다 태우고 나면, 청춘을 찾을 수 있을까요?
‘청춘’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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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스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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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엣지 오브 투모로우>와 <컨택트>, 그리고 장강명의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제목이 너무 길어, 이하 '그믐'>을 나란히 놓고 보자.
인간이 외계생명체를 만나면 시간을 초월하는 초능력을 얻는다.
<컨택트>에서는 미래를 볼 수 있게 되고, <그믐>에서도 역시 그렇다.
외계인의 침공으로 멸망을 맞게 된 인류.
세계연합군 육군 소령 빌 케이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눈을 떠 보니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있다.
재입대의 악몽이 현실이 된 것. 심지어 소령이 아닌 이등병으로.
장교 사칭 혐의와 탈영 혐의를 받는 그는 범죄자들이 득실한 J부대로 편성된다.
안전장치를 푸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 실전에 투입된 그는 어떻게든 해 보려 하지만, 가슴에 부상을 입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계생명체의 체액을 뒤집어 쓴다.
죽은 줄 알았는데 또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끌려 간다.
똑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또 죽는다. 그리고 또 태어난다.
전투 경험도 없던 그였지만, 죽었다 살았다를 반복하니 경험치가 쌓여 이제 언제 어디서 외계인이 나타나서 자신을 쥐어팰지 다 외워버렸다.
전장에서 병력을 해변에서 빼내기 위해 리타에게 접근하다가, 죽을 뻔한 리타를 구한다.
그것도 몇 차례 반복된다.
어느 순간 안 봐도 척척 위험 상황을 빠져 나가는 케이지를 보고, 리타는 자기를 찾아오라는 말을 남기고 죽는다.
지루한 죽음과 깨어남 끝에 리타를 찾아간 케이지.
리타는 어디 이등병 따위가 날 찾아왔냐는 눈빛으로 그를 본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리타는 자신도 그 능력이 있었고, 죽지 않고 살아남아 수혈을 받았더니 그 능력이 사라졌단다.
수없이 죽고 또 죽어 케이지는 점점 더 외계인의 정체에 가까이 간다. 시간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오메가'의 존재도 함께.
자신이 타임루프를 할 수 있는 이유은 외계인 중 고위 개체인 알파의 체액이 몸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인 거다.
어차피 외계인들은 인간이 무슨 선택을 할지 다 알고 있다. 과거와 미래를 볼 수 있으니까.
인간에게만 시간은 순차적이지 4차원으로 한 차원만 올려도 시간은 왜곡되고 구부러진다.
우리는 4차원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감각적으로만 알 뿐이다.
아마 4차원의 나는 내가 이 글을 어떻게 쓰고 마무리할 것인지 다 알고 있을 터.
수많은 실험이 지루할 정도로 계속 반복된다.
매순간 죽었다 살아나야만 하는 케이지도 지루했을까.
이 영화 역시 무간지옥으로 빠지는 것만 같다. 죽지도 못하고 다시 살아나서 그 고통을 또 감내해야 한다.
무수한 시간을 반복하고 반복하다 방법을 찾은 그는 J분대를 이끌고 루브르박물관(오메가가 있는)으로 향한다.
분대원의 희생으로 리타와 둘만 살아남은 케이지.
수류탄과 함께 오메가 쪽으로 몸을 날린다. 참으로 헐리웃스러운 연출이다.
푸르른 액체가 케이지의 몸을 휘감고, 케이지는 죽는... 줄 알았지만 또 살아나, 다시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깬다.
자, 영화가 끝날 무렵의 톰 크루즈의 눈빛을 봐야만 하니 여기까지 이야기하도록 하자.
<컨택트>에서는 외계인의 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된 주인공이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된다.
있지도 않은 딸의 죽음. 그 고통은 주인공에서 현실인 것처럼 생생하다.
<그믐>에서는 이런 부분이 있다.
너 참 타이밍 기가 막히다. 여자가 겨우 웃으며 말했다. 이게 우연인 것 같지? 남자도 웃었다.
'우주알'이라는 게 소설 속 남자의 몸에 들어가는 바람에 남자는 시간을 넘나드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라는 대사는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떠올리게 한다.
인간이란 한없이 낭만적인 존재여서, 끝없는 타임루프 끝에도 한 사람을 사랑한다(그런 스토리가 사랑받는다).
그러고 보니 <어바웃 타임>과도 비슷하다.
어쩌면 우리는 언젠가 만났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끝없이 죽고 다시 태어났는지도.
고작 사랑 때문에, 라고 말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한심하게도 거의 모든 일이 사랑 때문이었다.
그러나 끝이 없는 천국은 지옥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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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커: 폴리 아 되 | 형에게 맞서는 이란성 쌍둥이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세상을 뒤흔든 고담시의 아이콘, 조커로 거듭난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그는 아캄 수용소에 갇힌 채 재판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간수 '재키'(브렌던 글리슨)의 권유로 참석하게 된 음악 치료에서 그는 운명의 그녀, '리 퀸젤'(레이디 가가)을 만난다. 짧은 대화만으로도 수많은 공통점을 찾아낸 두 남녀. 아서는 사랑을 속삭이는 그녀 덕분에 마음 한 편에 잠들어 있던 조커를 다시 한번 깨운다.
리와 함께 하는 삶을 위해 조커로서 당당히 재판에 출석한 아서. 변호인을 해임한 뒤 스스로를 변호하며 그는 법정을 자신의 코미디 쇼로 뒤바꾸려 한다. 그러나 조커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조커가 아닌 아서 플렉의 본모습을 알려주는 증언을 들으면서 조커로서의 삶이 과연 옳은지 고민에 빠진 것. 그렇게 그는 평범한 시민 아서 플렉으로 되돌아갈지, 아니면 고담시의 빌런 조커가 될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5년 전, 우리가 좋아했던 <조커>
조커.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잭 니콜슨, 히스 레저, 자레드 레토 같이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마피아, 무정부주의 테러리스트, 로맨티시스트 갱스터와 같이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되어 왔다. 그래서일까? 5년 전, 토드 필립스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가 만든 조커의 영향력은 새삼 놀라웠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을 정도로 연기를 잘했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할 만큼 반향이 거셌기 때문.
이유는 캐릭터의 해석과 작품의 구성에 있었다. 그는 단순한 가상의 캐릭터나 빌런이 아니었다. 사회 시스템과 체제의 부산물이었다. 정신질환자 아서 플렉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었고, 계속해서 이어진 재수 없는 사건들에 의해 조커로 거듭났다.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붕괴되면 언제든 등장할 것 같은 현실감이 물씬 느껴지는 인물이었다.
여기에 기존 히어로 영화의 문법이 더해지자 예상 못한 파급력이 터져 나왔다. 조커가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 위치에 서자, 선악의 구도가 전복되어 버렸다. 살인, 파괴, 혼돈의 악은 정당한 분노의 분출로 변모했다. 처벌과 질서의 선은 차별적인 사회의 불합리한 시스템을 상징하는 악으로 의미가 뒤틀렸다. 그 결과 <조커>의 엔딩은 기존의 상식, 질서, 금기를 부정하는 묘한 쾌감(혹은 불쾌감)으로 가득했다.
이 기묘한 고양 상태는 조커와 관객 사이에 독특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대부분의 관객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일상에서 아서 플렉을 곤경에 빠트린 경제 불황, 빈부격차,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느끼며 살아간다. 조커로 변해가는 아서 플렉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히 조커의 광기에 감정이입할 수에 없는 이유다. 이는 그의 탄생 배경을 오독한 인셀 논란, 모방 범죄에 대한 우려 같은 사회적 논쟁을 촉발시킨 힘이기도 하다.
아서 플렉과 조커, 조커와 아서 플렉
빌런과 관객 사이에 생긴 유대감과 정서적 고양 상태. 이는 5년 만에 나온 속편 <조커: 폴리 아 되>에게 주어진 과제이기도 했다. 속편인 만큼, 어떤 방향으로든 이 호랑이 위에 올라타야만 했으니까. 토드 필립스 감독은 이 과제에 전편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했다. 1편이 아서 플렉의 시점에서 조커의 탄생을 보여줬듯이, 조커의 다음 이야기가 아니라 조커라는 상징의 후광에 대처하는 아서 플렉의 이야기를 노래한다.
이 접근법은 오프닝에서 천언된다. 전편 후반부를 압축한 듯한 짤막한 애니메이션에 조커 분장을 한 아서와 그에게 딸린 그림자가 등장한다. 아서는 옷과 분장을 훔치려는 그림자와 격하게 싸우지만, 끝내 그림자에게 모두 강탈당한다. 토크쇼에 출연한 그림자는 자기 멋대로 '머레이 프랭클린'을 죽이고, 경찰이 오자 그 죄를 아서에게 뒤집어 씌운다. 경찰에게 구타당하면서도 농담을 건네는 아서를 비추며 애니메이션은 끝난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오프닝을 통해 다음 질문을 던진다. "아서 플렉과 조커는 동일인인가?" 영화의 구조와 구성도 이 질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전편의 연장선에서 이야기를 펼치는 것 같다가도 전편의 그림자와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새로운 캐릭터의 모습으로 등장한 전혀 다른 두 이야기가 서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며 긴장감을 산처럼 쌓는다.
단지 캐릭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장르적으로도 로직이 전혀 다른 뮤지컬과 법정 영화를 오가며 오프닝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그 끝은 전편과 사뭇 다른 방향처럼 보이는 결말로 귀결된다. 그렇기에 <조커: 폴리 아 되>는 속편인데도 동생보다는 이란성 쌍둥이 같다. 같은 유전자(접근법)를 가졌지만, 전혀 다른 외양(결말)으로 귀결되니까.
폴리 아 되, 광란의 뮤지컬
실제로도 <조커: 폴리 아 되>는 중반까지 전편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중심에는 리 퀸젤이 있다. 의사 아버지를 두고 대학원까지 다닌 엘리트 여성. 하지만 조커의 광기에 매료된 그녀는 단지 그를 만나기 위해 아캄 수용소에 입원한다. 첫눈에 반한 조커와 함께 하는 삶을 꾸리기 위해서 아서 플렉을 계속 부추긴다. 그와 조커가 별개의 인격이 아니며, 조커야말로 그의 진정한 인격이고, 자신은 조커와 사랑에 빠졌다고 속삭이면서.
이 대목에서 등장한 뮤지컬은 1편 속 코미디쇼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코미디쇼는 차별당하고 주류에서 배제된 아서의 삶을 보여줬다. 뮤지컬은 그런 삶이 사랑을 찾아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들려준다. 병동에서 리를 만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조커로서 그녀와 함께하는 삶을 꿈꾸는 상상을 멜로디와 가사에 응축해 보여준다.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는 조커의 읊조림과 레이디 가가의 가창력이 만나 노래의 울림은 더 극대화된다.
그렇기에 그들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는 '폴리 아 되', 곧 '공유정신병적 장애'라는 부제만큼 적절한 단어도 없다. 아서가 만들어낸 조커에 매료된 리. 그런 리의 희망과 상상을 토대로 더 커진 아서의 망상. 어느 한 사람에게 먼저 증상이 나타난 뒤 가까운 관계를 맺은 다른 사람에게 전파되는 병의 증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따라서 개봉 전 우려와 달리 뮤지컬 시퀀스는 되려 전편의 조커를 볼 수 있는 귀중한 순간이다. 그들이 수용소에 불을 지른 후 함께 노래하며 철문에 매달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법정에서 증인 심문을 듣던 조커의 갑작스러운 망상도 같은 맥락에서 충격적이다. 그를 심문하는 검사 '하비 덴트'(해리 로티)와 판사를 모두 때려죽이고, 법정을 점거한 뒤 노래하며 춤추는 그의 모습은 전편 결말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법정에서 벗겨진 조커의 분장
하지만 법정에서의 분량이 늘어나면서 <조커: 폴리 아 되>는 점차 예상을 벗어난다. 법정의 쟁점은 오프닝 애니메이션과 다르지 않다. 하비 덴트는 아서와 조커가 동일인이라며 유죄를 주장한다. 반면에 변호인은 조커라는 별도의 인격이 모든 범죄를 저질렀으니 아서는 무죄라고 주장한다. 법정이라는 일종의 거울 안에서 아서는 본래 본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객관적으로 마주할 기회를 잡는다.
재판 초반에는 변호인의 전략에 순응하던 아서. 하지만 환상 속에서 리 퀸젤과 펼친 뮤지컬 공연이 분기점이다. 뮤지컬 안에서 그는 처음으로 의미가 있는 사람이 되었고, 그토록 갈구했던 사랑과 관심을 마침내 찾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서는 리의 말을 따라, 그녀가 원하는 조커로서의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조커와 아서를 분리하려는 변호인을 해임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두 번째 분기점이 주어진다. 왜소증을 앓는 '개리'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괴롭힐 때 오직 아서만 자신을 동등하게 대했다고 증언한다. 그 증언을 들으면서 아서는 깨닫는다. 설령 조커가 되지 않아도 사랑을 받고, 나눠주고, 의미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또 수용소에서 조커를 지지하던 환자가 간수에게 구타당해 사망하자 그는 조커라는 또 다른 자아의 의미에 관해 회의를 품는다.
마침내 아서는 답을 내린다. 조커는 허상이라고. 사랑과 관심을 갈구한 자신이 만든 존재일 뿐이라고. 따라서 6명을 죽인 자신은 유죄라고. 이 결정의 대가로 아서는 사랑도, 목숨도 잃는다. 아서가 아닌 조커를 사랑했던 리는 그를 떠나고, 병동에 있던 또 다른 조커의 지지자는 배신감을 이기지 못해 아서를 살해한다. 이러한 전개를 보면 <조커> 2부작이 사실은 <아서 플렉>이라는 한 작품을 구성한 게 아닌가 싶다.
조커는 죽지 않았다
그런데 조커와 아서 플렉을 분리시킨 <조커: 폴리 아 되>의 선택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더 있다. 결말을 곱씹다 보면 아서와 달리 조커는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조커를 포기한 아서를 대하는 주변인의 태도가 그 방증이다. 리는 그의 고백을 거절한 뒤 떠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조커 역할을 할 다른 누군가를 찾으면 그만이다. 세상이 조커에게 열광하는 가운데, 꼭 아서가 조커여야 할 필요는 없다.
아서 살해범도 마찬가지다. 조커의 열렬한 지지자인 그에게 아서와 조커는 동일인이 아니다. 오히려 아서가 세상에서 사라져야 그들이 원하는 조커가 생명력을 유지한다. 그 둘이 별개라면 아서의 결심과는 무관하게 조커가 존재할 수 있으니까. 조커라는 불이 이미 붙은 상황에서 아서라는 불쏘시개는 더 이상 가치가 없는 셈이다. 아서가 없는 세상에서는 누군가가 조커를 자칭하며 배트맨과 싸울지도 모를 일이니까.
즉, 조커라는 광기가 이미 아서의 손을 떠난 가운데 아서 플렉은 죽어도 조커라는 상징과 이미지는 그를 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았다. 이 대목에서 부제 '폴리 아 되'는 이중적으로 읽힌다. 아서와 리의 관계뿐만 아니라, 조커와 조커의 지지자 간의 유대감을 설명하는 제목처럼도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아서 플렉이 조커를 포기하는 이야기인데도 <조커>라는 제목이 어색하지 않다.
동생이 아니라 쌍둥이였던 속편
물론 <조커: 폴리 아 되>는 실망스러워도 이상하지 않은 영화다. 예고편과 포스터를 비롯한 마케팅의 초점이 전부 빌런 '조커'와 '할리퀸'에게 맞췄으니 관객 입장에서는 속았다는 느낄 수 있다. 전편에서 탄생한 '조커'의 활약만 암시해 놓고, 정작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기를 거부하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보여줬으니 당연한 일이다.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뮤지컬 시퀀스도 과하게 삽입되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편을 부정하는 작품이라며 <조커: 폴리 아 되>를 비난하는 것도 적절하지는 않다. 비록 아서는 조커가 아닌 채로 죽었지만, 조커라는 상징이 지닌 의미만큼은 아서의 비참한 결말로부터 여전히 살아남아 있으니까.
이에 더해 1편과 2편이 동떨어져 있다고 단정 짓기도 어렵다. 조커의 탄생을 아서의 시점에서 보여준 전편도, 아서의 몰락을 그려낸 속편도,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함으로부터 누구나 언제든 조커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 따라서 <조커: 폴리 아 되>는 형의 존재를 부정하는 동생보다는, 형과 동생이 대등하게 겨루는 이란성 쌍둥이 속편에 가까워 보인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역할을 다 한 불쏘시개는 불 타 사라지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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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경한 액션 속에 담긴 인생의 진리
이 영화 하도 난리라서 꼭 보고 싶었었다. 뭐 얼마나 대단하기에 개봉한 지 얼마 안 돼서 재개봉까지 하게 된 걸까.
미국에서 빨래방을 운영하는 중국인 이민자 에블린 왕은 오늘 국세청에 가서 세금 문제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가득 안고 국세청에 간 순긴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 수만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도 자신의 남편과 똑같이 생겼지만 자신의 남편은 아닌 남자에게서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갑자기 그녀는 세상을 구해야 하는 슈퍼 히어로 예비자가 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복잡한 그녀의 삶에 더 복잡한 타이틀이 붙어 그녀의 인생은 점점 블랙홀로 흘러가고 있는데..........
1. 쌩뚱맞은 액션의 코믹함
이 영화에 열광했던 사람들이 어떤 요소에 감명 받았던 걸까. 이 영화의 강점은 뻔하지 않은 동양 액션에 있다. 주인공을 미국의 사회적 약자인 아시아인으로 설정해 동양적인 마샬 아츠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멀티 버스라는 개념이 들어가 맛있어 다른 차원의 세계로 넘어가려면 예상 가능하지 않은 이상한 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동양적이지만 생경한 액션들로 가득하다. 안 그래도 미국인들에게나 마샬 아츠는 흥미로운 무술인데 거기에 코믹함까지 더했으니 미국에서 왜 인기가 많은지는 알 것도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동양 무술이 아닌 코믹 요소가 더 먹혔다고 생각한다. 영화관 속에서 사람들이 많이 웃었던 이유는 에블린이 다른 차원으로 넘어갈 때 온갖 이상한 동작에서 비롯된 코믹함 때문이었다고 본다. 코미디는 언제나 먹히는 장르니까.
2. 모든 사람이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세탁소 주인인 우리의 에블린은 그 어떤 다른 차원의 에블린보다도 루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모든 삶의 선택에서 회피하는 선택을 하였으며 그에 대한 결과로 그녀는 현재 위기를 맞고 있다. 다른 차원에 살고 있는 그녀들은 그녀가 했던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던 에블린이고 그 결과 에블린은 자신의 삶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지금의 남편을 따라오지 않고 아버지의 말을 들었다면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지는 않을 수 있었을까 하는 후회 말이다.
그런 후회들이 모여 한때 그녀는 잠시 돌이 된다. 태초에 공간, 태어나기 전 태어나기 전 혹은 죽은 후에 돌아갈 자연의 상태로. 하지만 이 자연 상태로 돌아갔을 때 에블린과 빌런 조부 투바키의 행보가 다르다. 누구나 살면서 감정적 부침을 겪지만 그 부침을 딛고 삶의 소중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 반면 슬럼프를 이겨내지 못하고 우울함에 극치로 자신을 몰아가는 사람도 있다. 전자가 에블린 이고 후자가 조부 투바키 이다.
자신의 남편의 얼굴을 한 다른 세계 사람 알파 웨이 먼드는 그녀가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밑바닥을 치고 올라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아보는 선구안을 가진 이였던 것이다.
같은 상황에 있다고 모두가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우주 속에서 가장 하찮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고 해서 인생을 막 사는 사람도 있고 인생을 소중히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에블린은 우주 전체에서 가장 불행한 에블린이었지만 어쩌면 가장 축복받은 에블린이었을지도 모른다.우주 속에서 가장 찌질한 남편을 뒀지만 어쩌면 친절이 가장 큰 무기라는 점을 알고 있는 가장 통달한 남자를 가진 여자였으니까.
3.총평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참 클리셰가 많다. 결론적으로 가족애를 그렸고 그녀가 영웅이 되는데에 가장 큰 원동력은 그녀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가족 소재는 솔직히 뻔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과거에 대한 후회에 매몰돼 자신의 가족의 현재를 돌보지 못한 에블린의 깨달음이 더 감명깊었다. 우울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현재 감각을 되찾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 현재 감각을 되찾아야 미래에 대한 빛도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트라우마는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장점으로 잊자. 에블린이 슈퍼히어로가 되어서가 아닌 다음 챕터를 살아갈 힘을 가진 주체성을 가져서 좋았다. 현재 우울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았으면 좋겠다.
나를 괴롭히는 세상 속 수많은 빌런들에게 'Be kind'로 무장하는 것이 나의 존엄을 지키는 것, 이것이 내가 배워야할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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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6. 30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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