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징2023-06-11 00:38:05
박스오피스 1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4DX 후기
쿠키 있음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3.04.26 개봉)
감독: 아론 호바스, 마이클 제레닉
더빙: 크리스 프랫, 안야 테일러 조이 등
드림, 짱구는 못말려 등을 뚫고서 박스오피스 1위를 달렸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저는 닌텐도 유저도 아니었고... 슈퍼 마리오라곤 캐릭터 얼굴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이걸 굳이 돈 내고 영화관 가서 봐,,,?? 싶었었는데
주변 후기가 너무너무 좋길래~ 보러 갔어요
총평부터 말하자면 슈퍼 마리오는 무조건 4DX로 봐야 한다!
2D로 봤으면 재미가 반감 될 거 같거든요
내용도 재미있긴 하지만 4D가 진짜,,,
역대급으로 바람 불고 역대급으로 흔들리는 ㅋㅋㅋㅋㅋㅋㅋ
안전벨트 없으면 날아갈 것만 같은 (근데없음)
저 롯데월드 온 줄 알았잖아요
그만큼 신났다는 뜻입니다
저는 슈퍼 마리오 게임을 모르는 사람이라 알고 있던 사람들보다는 이해가 어렵더라고요
나오는 캐릭터들, 아이템들, 레이스들 모두 게임에 나온 거라던데
저는 사전 정보가 1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살짝 정신이 없기도 했고 스토리상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처음엔 마리오와 루이지의 형제애를 메인 스토리로 잡고 가나 보다 싶었는데요
다크 세곈가,, 거기에 빠진 루이지를 구하기 위함이라기보단
그냥 버섯 세계에서의 일들을 보여 주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을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리오가 원탑으로 빌런을 무찌른 것도 아니고
공주와 키노피오를 포함하여 마리오를 돕는 인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엔딩에서 루이지와의 우애를 강조하는 게 너무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오락성만 놓고 보자면 완벽했어요
쳐지는가 싶으면 바로 코믹 요소 작용하고 또 재미없어지는가 싶으면 바로 다음 레벨로 넘어가거든요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게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최대 장점 아닐까 싶어요!
그걸 4DX로 경험하면 더욱 더 배가 되는 거구요...
왜 자꾸 포디에 집착해 하시겠지만 이건 정말 4DX로 봐 주셔야 합니다 여러분 ㅠㅠ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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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켈리 갱> - '거짓과 진실을 거둬낸 네드 켈리의 이야기'
켈리 갱 (True History of the Kelly Gang, 2019)
개봉일 : 2021.08.31 (한국 기준)
감독 : 저스틴 커젤
출연 : 조지 맥케이, 러셀 크로우, 니콜라스 홀트, 에시 데이비스, 토마신 맥켄지, 찰리 허냄, 션 키넌
거짓과 진실을 거둬낸 네드 켈리의 이야기
혹시 Ned Kelly(네드 켈리)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지 모르겠다. 19세기 후반 오스트레일리아(이하 편의상 호주로 표기)에서 활동했던 은행강도인 네드 켈리. 네드 켈리가 왜 유명한가 하면 그는 단순한 도둑이 아닌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을 위해 핍박하는 자들의 물건을 훔치던 의적이자 공권력에 저항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호주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영국의 막강한 힘에 눌려 폭력과 불평등함으로 점칠 된 사회에서 시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저항했던 영웅이자 공권력이 가장 제거하고 싶어 했던 범죄자 네드 켈리. 그는 호주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홍길동과 임꺽정과 같은 인물이라고 한다.
교과서에서도 만나본 적 없는 네드 켈리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건 조지 맥케이 배우 덕분이었다. 그가 영화 <1917>의 히로인으로 주목받던 해, 자연스레 조지의 진중한 연기에 빠져들어 그의 필모그래피를 훑던 중, 내 시선을 순식간에 빼앗은 작품이 몇 개 있었다. 거친 표정과 단단하게 다져진 몸, 날카로운 눈빛. 지금껏 봐왔던 조지의 이미지와는 조금 달라 강렬하게 다가온 네드 켈리의 모습을 보고 순식간에 온갖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대체 어떤 영화일까.”, “네드 켈리란 인물은 어떤 사람일까?”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처음 알았을 땐 영화가 국내에 수입되지 않았던 때였고, 솔직히 무자막으로 볼 용기는 또 없었다. 그래서 원작 소설을 먼저 읽고, 사진들을 찾아보며 속칭 존버-를 했다. 그리고 존버는 승리한다더니, 2021년 여름의 끝자락. 네드 켈리를 만났다.
<켈리 갱>엔 위에서 소개한 인물, 네드 켈리의 불안정했던 유년시절과 저항 정신을 가득 담은 켈리 갱을 창설하고 마지막 전투를 벌이던 26살까지. 그의 생애가 담겨있다. 투박한 글체로 적어내려간 네드 켈리의 편지를 바탕으로 재해석된 소설 <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우선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딘가 아쉬웠다. 아무래도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소설과 2시간으로 일부 압축된 영화는 근본적인 정보량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영화 <켈리 갱>은 초반부에 비해 후반부의 변화가 너무 갑작스러웠다고 해야 할까.
조지 맥케이의 내레이션과 함께 천천히, 아주 깊게 훑고 지나간 유년시절 부분까지는 정말 좋았다. 어린 네드 켈리를 연기한 배우 올란도 슈워드의 연기도 훌륭했으며, 그 위에 얹어지는 조지 맥케이의 정갈한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매력에 빠진 채 “이제 그토록 궁금해했던 네드 켈리의 이야기를 듣는 건가.”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초반부를 감상했다. 하지만 네드 켈리가 성장하고 각성하는 계기가 조금 갑작스럽게 느껴졌고 그의 전투엔 비장함과 결의보단 흥분이 조금 앞서는 느낌이었다.
지배받고 있는 나라에서 태어나 지배자들에게 억압을 받으며 슬픔과 분노를 안고 자란 아이가 어떠한 계기로 각성을 했다기보단 갑자기 어느 날 폭발해버린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별로였다, 재미없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네드 켈리라는 인물을 만들기 위해 공들인 티가 역력했고, 배우들 또한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롭고 놀라운 액션들을 보여줬으며 카메라 안에 담아낸 광활한 배경 또한 정말 멋졌다. 결말까지도 참 좋았는데, 많은 기대를 해서 그런지 기승‘전’.. 전에 해당하는 그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만일 이 영화를 볼 예정이라면 네드 켈리라는 인물 또는 시대 배경에 대한 정보를 조금 훑어보고 가는 걸 추천한다. 그가 왜 이토록 분노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포인트를 미리 알고 간다면 감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억압의 시대에 온몸으로 부딪히며 평범한 시민이 되기 위해 거칠게 저항한 네드 켈리.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전설처럼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켈리 갱>은 용감한 시민 네드 켈리와 그의 동료들에게 보내는 존경과 박수갈채를 담은 작품이다.
아쉬운 시점을 지나고 나면 약간의 벅찬 감정이 밀려오는데, 그 순간 정말 희한하게도 아쉬웠던 감정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아쉬운 점은 분명 있었지만 조지 맥케이, 러셀 크로우, 니콜라스 홀트, 에시 데이비스와 같은 굵직한 배우진들의 연기 조합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누군가에겐 범법자로 낙인 되었던 그의 거칠지만 용감하고 진실된 일대기가 궁금하다면, 조지 맥케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다면 <켈리 갱>을 추천한다.
켈리 갱 시놉시스
폭력과 부패로 가득했던 시대
온갖 범죄로 세상을 더럽히는 무법자 ‘해리’와 부패경찰 ‘알렉스’에 맞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악인들을 단죄한 전설적 영웅이자 세상이 버린 위대한 범죄자 ‘네드 켈리’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이야기는 1867년 호주. 네드 켈리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진실과 거짓으로 뒤섞여 범법자 또는 영웅으로 불리는 그의 일대기에서 진실과 거짓이란 이분법을 거둬낸 후 깨끗하게 다듬어 내놓은 인생의 시작점은 다소 휑하고 뻐근하게 다가온다.
나의 비를 막는 지붕이 되어줄 거라 생각했던 어머니 엘렌은 아무리 파내려 가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해리 파워에게 네드를 제자로 팔아넘겼고 해리 파워와 함께 다니며 이 넓은 세상에서 나를 지켜줄 자는 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도 빨리 알아버린 네드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 마리 짐승 같은 남자로 자라게 된다.
무능하게 살다 감옥에서 갑작스레 생을 마감한 아버지, 여러 남자들을 거치며 서서히 네드를 지키길 포기한 어머니. 아직 어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동생들. 먼지만 날리는 땅에 살고 있는 네드 가족을 억압하는 영국 경찰들까지. 어린 네드가 감당하기엔 세상은 너무 거칠고 불공평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빠르게 막을 내렸고 희망 또한 보이지 않았다.
신이 버린 땅에서 아버지를 잃고, 남은 가족들의 일부는 볼모로 잡힌 채 공권력 밑에 무조건 수그려야 하는 불합리한 삶. 네드는 이 삶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한다. 억압된 사회의 진실을 감추면 숨이 막힐 것이고 편안한 길을 찾아 거짓을 숨기면 삶이 서서히 부패할 것이니 그는 진실된 사회를 되찾기 위해 거친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다.
네드는 원망스럽지만 잊지 못했던 가족들과 사랑에 빠진 여인 매리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이들의 삶을 위협하는 경찰들에게 대항한다. 그는 어릴 적에 발견한 아버지의 드레스에 담긴 저항정신을 그대로 물려받은 동생 대니와 친구 스티브, 오래된 절친 조니와 함께 흐드러지는 드레스를 입고 달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네 명의 청춘들은 이 조직의 이름을 ‘켈리 갱’이라고 명했다.
네드는 부패한 공권력 대신 진실된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지만 소수의 힘으로 거대한 권력에 대응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끝없는 도망 대신 맞서 싸우기를, 조용히 입을 닫기보단 우리의 역동적인 삶을 글로 남기기를 선택한다. 그는 평범한 시민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죽음도 불사한 자신들의 피로 쓴 역사를, 신이 버린 땅이라지만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소중한 땅을 되찾기 위해 겪어야 했던 거친 여정을 틈틈이 적어나간다. 네드는 두서없고, 문법과 문장 규칙 따위는 하나도 배우지 못한 티가 역력하지만 후세에 전달할 가치가 있는 이 글을 자신의 미래인 아이에게 바친다.
광기와 날것의 분노가 가득했던 마지막 전투를 마친 네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 후 사람들은 네드가 남긴 기록을 보며 손뼉을 치고, 형장에 매달려 있는 네드의 모습에 박수 소리가 얹어진다. 이 박수는 네드의 후손들이 네드와 그의 삶에 보내는 박수갈채를 의미하려는 연출이 아니었을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보다 좋은 세상을 남겨주고 싶었던 남자 네드 켈리. 거짓에 물들지 않은 진실된 그의 삶은 예상보다 더욱 거칠었고 어쩐지 버거워 보였다. 그는 자신이 남긴 기록이 후손들에겐 낯선 이야기가 되기를 바랐다. 핍박받던 나의 삶이 나의 후손에게도 익숙한 이야기라면, 이 억울하고 답답한 현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이어져선 안될 역사지만 여전히 잊히기만 하고 사라지진 않고 있는 강자의 압제와 폭력들. 안타깝지만 그가 원하던 세상은 아직 완전하게 도래하지 못한 것 같다. 남은 건 그가 미래라고 칭했던 우리의 몫이니 우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피로 물든 저항의 역사를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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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벽은 문이다.
이 글은 2023년 11월 1일 개봉 예정인 영화 [앵그리 애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가거나 인용 시 출처를 반드시 밝혀주세요.
말하기 힘든 것들을 입에 담아야 할 때가 있다. 게다가 그 주제가 금기에 가까워 혼잣말하는 것조차 천둥같이 울릴까 봐 움찔할 때가 있다.
영화 [앵그리 애니] 속 여성들의 고개도, 목소리도 한껏 바닥에서만 맴돌게 하는 그 "힘든 것"은 바로 낙태이다. 시행하지 않으면 현재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이를 향한 암묵적인 동의에도 불구하고 쉽게 입술을 열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는 그녀들에게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두꺼운 코트까지도 어깨 위에 하사한다.
그들의 굽은 어깨에 손을 얹어준 것은 생소하기 짝이 없는 MLAC(임신중지와 피임의 자유를 위한 운동) 단체였다. 뜨개질바늘로 이뤄진 애니의 이전 낙태가 잘못되었으며 안전하게 이뤄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다독여주는 통에. 애니는 걷잡을 수 없이 자신을 휘감던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따스한 손길에 마음을 녹인다.
여전히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두 번째 낙태 수술을 끝낸 애니는 안도감과 후련함을 담은 눈물을 흘리며 그제야 미소 짓는다. 마치 축배를 올리듯 MLAC운동가들이 건넨 물을 마시며.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아주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방향을 바꿀 것이라고는. 그리고 그 변화가 시작되는 계기가 자신처럼 임신 중절 수술을 받다 사망한 자신의 이웃 때문이라는 것도. 자칫 자신의 죽음일 수도 있었던 그녀의 죽음 앞에서, 황망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느꼈던 애니는 좌시하지 않기로 한다. 아직 두려워 완전히 쳐다볼 수는 없지만. 자신의 등 뒤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저 벽을.
애니, 벽을 바라보다
사진 출처:씨네랩/다음 영화
애니는 고개를 빤히 들어 자신이 마주한 벽을 바라보았다. 등 뒤의 두려움을 몰아내고 온전히 벽을 쳐다보기 까지도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승리한다 했건만. 큰 용기를 가지고 마주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벽은 바람 한 조각조차 통과하지 못할 것처럼 매정해 보였다.
자신이 직접, 그리고 혼자서 벽을 부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이 문에 잔뜩 끼어 있는 이끼라도 제거하지 않고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마치 자신이 중절 수술을 받을 때 손을 꼭 잡고 노래를 불러주었던 운동가처럼. 애니는 MLAC를 찾아오는 여성들의 불안한 마음에 자신의 투박한 손을 조용히 얹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임신 중절을 원하는 그녀들은 하나같이 임신이란 문제에 있어서 가장 불안한 주체였으며. 죄책감마저도 오롯이 홀로 짊어진 채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수많은 자기 검열을 뚫고 MLAC단체의 문턱을 어렵게 넘어섰다 해도, 그녀들은 최후의 순간에 종교적인 문제를 이야기하며 죄악이라 하거나, 그냥 낳겠다며 현장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애니는 그녀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겁쟁이라며 깎아내리지도 않았다. 이 모든 모습은 애니가 여성운동에 참여하기 전의 모습과도 정확하게 일치했고. 수없이 많은 여성들의 이런 모습이야 말로 자신이 마주해야 할 벽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이토록 간단하고 별 것 아니었냐는 말과 함께 수술 후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는 여성을 보며. 애니는 깨닫는다.
결국 자신을 비롯한 모든 여성들을 떨게 했던 것은. 이 벽자체가 아니라 벽보다 더 큰 두려움을 자아내는 덕지덕지 붙은 이끼에서부터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끼 따위 제거해서 무엇이나 할 수 있으려나.라는 일말의 의심마저도 말끔히 지운채. 애니는 이끼가 사라져 본모습을 볼 수 있게 된 문과 눈을 맞추며 되뇔 수 있었을 것이다.
바꿀 수 있다.라고.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해야만 할 때
사진 출처:씨네랩/다음 영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벽을 똑바로 바라본다 하여 무너져 내린다면. 목표를 가로막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일 테니까.
무엇보다 영화 속 여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그녀들의 남편들의 모습과도 같았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묻지도, 그렇다고 알아채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지레짐작으로 새 모카포트를 선물하는 무심함. 자신의 아내를 감시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마음대로 휘두르려 하는 눈먼 강경함. 그녀들이 하는 일 따위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무시에 더불어 여전히 수술의 주체인 여성들이 조금은 논의에서 빠져있는 듯한 안일함까지.
출산과 더불어 또 한 번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수술 앞에 싸우면서도. 애니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은 이런 양립할 수 없으면서 자신의 옆에 악착같이 붙어 존재하는 것들이 일으키는 마찰을 감당해야 했다.
비록 모두를 위한 최선의 결정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영화 속 애니의 선택에 대부분 박수를 보낼 수는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았으며, 욕심을 내지 않았다. 흔히 이런 상황에서 비유되곤 하는 "외줄 타기"같은 현실에서. 애니는 이 좁고 험난한 길을 끝까지 걸어가기 위해 떨어뜨려야 할 것이 있다면 기꺼이 손에서 놓아버렸다. 자유낙하하며 자신과 멀어져 가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만을 마음속에 꼭 안은 채. 그녀는 다시 턱을 들어 길을 걸었다.
또한 이 과정 속에서 그녀는 알게 되었다. 손에 쥐어진 것이 불필요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잘만 이용한다면 자신의 위태로움을 좀 더 잘 들여다보고 자세를 바로 잡을 기회가 된다는 것을.
마치 벽이 와르르 무너지기만 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 문이 되어 기꺼이 열고 다음 세계로 입장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식사, 다른 마음.
사진출처:씨네랩/다음 영화
영화 속 인물들은 완벽하지 않다.
의무감에 불타올라 화염병을 던지지도 않고. 당장 국회로 뛰어들어가 감정으로 호소하며 큰소리치지도 않는다. 비장한 음악을 깔며 어떤 이의 희생 앞에 눈물을 짜내지도 않는다. 누군가를 신격화해서 그 사람의 이름이 지구 밖에서도 들릴 것처럼 칭송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자신의 생각을 용기 내어 남들 앞에서 꺼내 입 밖으로 내뱉는다.
또한 온전히 옳은 인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극의 중간중간 들어차 있는 토론들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반드시 존재하고. 그녀들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영화와 거리를 두게 되는 장면들도 있다. 옳음이라는 큰 갈래에서는 동의하지만, 소소한 것들에서 부딪치는 장면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영화는 소위 "극적인"요소들을 배제함으로써 현실감을 더하고. 현실 속에서 극복해야 하는 진짜 문제들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인물들에 대한 미움이나 반감이 생기기보다, 완벽하지 않고 흔해 빠진 "애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도 현 문제에 대해 화낼 수 있고 변화할 수 있으며. 연대를 형성해 힘을 보탤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영화의 메시지를 가장 잘 나타내는 장면을 꼽으라 한다면. 임신 중절수술을 마친 후 함께 파스타를 나눠먹는 부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언뜻 영화 [친절한 금자 씨]에서 거사 후(?) 케이크를 나눠먹는 장면을 연상케 하기도 했다. 앵그리 애니의 식사 장면과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큰 다른 점이라 한다면. 자율성과 음식을 먹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찬욱 감독님은 그 장면이 제사 후에 음식을 나눠먹는 의식 같은 장면이라고(+그 케이크 혈액으로 만든 거 아님) 말씀하셨다. 그러나 제사에(?) 참여한 이들에게는 자율성이 조금은 배제되어 보였다. 약간은 입을 닫게 하기 위한 장치도 있었으며 분노를 쏟아내고 난 뒤에 다가온 식사에서도 살아남은 자 들을 기쁘게 하는 식사는 아니었다.(영화가 나쁘다는 게 아님.)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식사 장면은 누군가를 기리는 것이 아닌 앞으로 자신을 위해 든든한 한 끼를 함께 한다는 점. 그리고 자원한 사람들이 모여 이뤄져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희망적이고 든든한 식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파스타 자체는 맛없어 보였다. 제발 뭘 좀 많이 넣어서 먹으라고.)
아주 작고 힘없어 보이는 연대에서 시작된 그들의 웃음이. 조금 더 확대되어 더 많은 사람을 위한 길이 되기를 기대하게 되는 장면이었다.
마치면서
세이브 박지원 대표님, 씨네 21 김소미 기자님
GV에서도 나온 이야기이지만.
나 역시 애니가 마지막으로 했던 선택을 바라보며 생각할 것이 많아졌다.
과연 정규 의료인(으로 추정)이 되는 길을 걷는 것이. 근본적으로 애니가 가지고 있던 불만이나 두려움, 혹은 화를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될 가장 확실한 방법일까. 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물론 잘 해낼 것이다.
애니는 영화 속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며, 과격하지는 않지만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바꿔나가기를 주저하지 않은 인물이니까. 살아남기 위해 앞만 보고 자전거 페달을 밟던 그녀는 온데간데없고, 이제 주위를 둘러보며 자전거를 타는 그녀를 보며 울컥하고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런 불안하지만 아름다운 시작을 앞둔 애니가, 자신을 바꾸고 움직이게 만들었던 계기만큼은 영원히 잊지 않았으면 했다. 결국은 조금 더 장기적으로 옳은 선택을 조금 더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또 다른 애니들을 탄생시킬 수 있게 되기를.
또한 애니에게도 그러했듯이.
1970년대와 비교했을 때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의 모든 벽들이 다시 한번 문이 되기를 빌어보았다.
[이 글의 TMI]
1. 토마토카레에 꽂혀서 토마토 멸종시키는 중
2. 군고구마도 덩달아 씨가 마르는 중
3. 파프리카, 당근도 코끼리처럼 먹어치우고 있다.
4.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저처럼.(걸렸잖아)
#앵그리애니 #블란딘르누아르 #로르칼라미 #프랑스영화 #영화리뷰 #최신영화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영화리뷰어 #씨네랩
이 리뷰는 씨네랩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영화 관람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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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봐도 <길복순>이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청부살인 업계 최고의 회사인 MK 엔터테인먼트 소속 킬러 ‘길복순’(전도연). 맡은 '작품'은 반드시 완수해 내는 에이스인 그녀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다. 바로 소속사와의 재계약. 10대 딸 '재영(김시아)'을 제대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워킹맘인 그녀는 결국 퇴사를 결심한다. 하지만 그녀는 재계약 제안을 섣불리 거절하지도 못한다. 청부살인의 모든 것을 알려준 멘토, '차민규'(설경구) 대표와의 인연이 마음을 무겁게 하기 때문이다. 결국 답을 미룬 채 인턴 '김영지'(이연)를 데리고 마지막 작품에 들어간 복순. 모든 것이 순조롭던 그때, 임무에 숨겨진 진실을 발견한 그녀는 회사가 의뢰받은 일은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규칙을 처음으로 어긴다. 바로 그 순간, 복순은 이제 모든 킬러의 타깃이 된다.
액션 영화인 척하는 영화, 길복순
"액션이 많이 나오는 영화지만 액션 영화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영화." 변성현 감독이 설명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길복순>이다. 이상한 말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주인공 길복순은 청부살인업계 전설이다. 자연히 러닝타임 내내 액션이 쏟아진다. 길복순과 야쿠자의 일대일 결투가 시작이다. 블라디보스토크 술집에서, 길복순의 단골 식당에서도 화려한 액션이 이어진다. 그런데 어째서 <길복순>을 액션 영화로 보지 말라는 걸까?
영화가 끝나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피비린내가 가득하고 비명과 총성이 끊이지 않지만, <길복순>은 분명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다. 눈요기를 위한 액션, 쾌감을 위한 액션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품은 영화였다. <길복순> 속 액션은 워킹맘 길복순의 고민과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였다.
안타깝게도 변성현 감독의 야심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다. 다양한 잠재력이 보이지만, 무엇 하나 살지 못했다. 신파가 아닌 방식으로 풀어낸 모녀의 이야기는 색달랐다. 워킹맘을 킬러에 빗대어 일상 속 딜레마를 시각적으로 펼쳐 보인 아이디어도 신선했다. 그러나 둘 깊지 않다. 길복순의 서사를 함축한 액션이 부족한 깊이를 더하는 듯 보이나, 조악하다.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넘친 나머지 무엇 하나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기시감으로 가득하다. 결국 <길복순>은 액션 영화라 해도, 아니라 해도 불만족스럽다.
킬러보다 흥미로운 엄마 길복순
<길복순>의 스토리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킬러 길복순의 직장 생활, 길복순과 차민규 대표의 재계약 협상, 그리고 복순과 재영 모녀의 갈등. 앞의 두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살인청부업자가 등장하는 영화라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냉혹하고 비정하나 최소한의 규칙이 있는 킬러들의 세계는 <존 윅>과 <킬 빌> 시리즈를 보는 듯하다. 연예 기획사 시스템을 본뜬 킬러 회사 구조가 한국의 맛을 살짝 더할 뿐이다. 길복순과 차 대표의 사제 관계도 익숙하다. 서로 아끼고 인정하지만, 언제든 죽일 수 있는 사이. 추구하는 가치 때문에 희생되는 사적인 애정. 킬러들의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설정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눈에 띈다. 사실 모녀의 사정은 익숙하다. 워킹맘 복순은 딸 재영을 온전히 챙기지 못한다. 딸이 자기를 필요로 하는 순간 항상 출장을 가야 해서 미안해한다. 또 그녀는 딸이 어렵다. 방문을 쉽게 열지 못할 정도로. 담배를 피워도 제대로 혼내지 못할 만큼. 재영도 엄마가 어렵다. 직업조차 말하지 않는, 항상 비밀이 있는 엄마라서. 결국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재영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로 협박하던 학교 친구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 하지만 엄마에게 쉽사리 진상을 밝히지 못한다. 동성애자라는 비밀을 털어놨을 때, 자기를 응원해 줄 거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갈등을 풀어내는 방법이 재밌다. 답답하지 않다. 거슬리지도 않는다. 대신 독특하다. 신파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각자 비밀을 담담하게 꺼내 놓는다. 엄마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항상 오가는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딸은 소수자로서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이라고 속마음을 꺼내 놓는다. 고백만큼이나 응답도 쿨하다. 엄마는 딸의 선택을 조용히 응원한다. 딸도 엄마에게 고생했다고 말하며 방문을 열어 놓으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응원하고 위로할 수 있을 뿐, 문제 해결은 각자 몫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처럼 <길복순>은 애정 넘치는 모녀 사이를 눈물바다 없이도 감각적으로 뽑아내는 데 성공한다. 전형적인 킬러의 이야기보다 시원하고 맵시 있는 가족 이야기가 재밌는 이유다.
엄마와 킬러가 공유하는 딜레마, 목적과 수단
흥미롭게도, 스타일리시한 모녀 관계에 주목하면 평범한 킬러의 이야기도 조금은 달라 보인다. 복순과 '오다 신이치로'(황정민)가 대결하는 오프닝이 힌트다. 복순은 그에게 검을 들고 싸울 기회를 준다. 국무총리 아들의 대학교 부정입학 스캔들 뉴스를 보던 중 딸의 일침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복순에게 재영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아무리 목적이 중요해도 그 수단이 잘못되면 안 된다는 말이다. 물론 그녀가 딸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대결이 불리하다 싶어지자 복순은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대신 오다를 총으로 쏴 죽인다.
하지만 복순은 이미 변했다. 주어진 작품의 동기나 배경을 신경 쓰지 않던 킬러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보고 듣는다. 흠잡을 데 없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이 과연 엄마로서도 적절한지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가 겪는 딜레마를 복순도 피하지 못한다. 단지 킬러라는 직업 때문에 유달리 핏빛일 뿐. 국무총리의 살인 의뢰는 전환점이다. 정치 경력을 가로막는 걸림이 되어버린 아들을 죽여 달라고 의뢰한 국무총리. 하지만 복순은 국무총리 아들을 자기 딸과 겹쳐 보고, 옳지 않은 살인이라고 판단한다. 결국 복순은 살해 대상이 미성년자만 아니라면 반드시 의뢰를 성공시켜야 한다는 규칙을 처음으로 위반한다.
이처럼 가치관이 달라진 이상, 복순은 다른 킬러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이 세계에서는 언제나 목적이 수단에 우선하므로. 일단 '차민희'(이솜)가 그녀 앞을 가로막는다. 길복순을 항상 눈엣가시로 생각했던 차 이사. 오빠 차민규와의 근친상간도 마다하지 않는 그녀는 복순을 죽이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아픈 아버지를 미끼 삼아 '한희성'(구교환)을 협박한다. 복순의 친구에게도 우정을 버리라고 제안한다. 그녀를 죽이면 MK 엔터로 스카우트하겠다면서. 멘토나 다름없는 차 대표와의 대립도 피할 수 없다. 그 역시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사로운 인연은 포기할 수 있는 인물이니까. 그는 업계 탑이라는 MK 엔터 위상을 지키기 위해 자기 손으로 정한 원칙을 기꺼이 뒤엎어 버린다. 복순을 지키기 위해 그녀가 작품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목격자, 인턴 영지를 죽인다. 영지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복순이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도.
액션, 킬러와 엄마의 불완전한 가교
이때 액션은 달라진 복순의 내면을 극적으로 표출하기 위한 도구라 할 수 있다. 본래 그녀에게 살인 청부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액션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오다의 목숨을 총으로 간단히 빼앗는 것처럼. 영지에게 살해를 자살로 위장하는 방법을 알려줄 때도 사무적이었다. 살인을 하나의 능력으로 보고, 그 능력에 따라 킬러의 등급을 나누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나 회사 이익을 위해 남들을 짓밟아야 할 필요도 있기 때문.
생각이 바뀌자 그녀의 액션도 변한다. 차 이사의 사주를 받아 자기 목숨을 노리는 희성과 다른 친구를 상대하는 복순의 표정은 이전과 사뭇 다르다. 승진과 성공이라는 목표 앞에 헌신짝처럼 버려진 우정과 애정. 그 순간 복순의 얼굴에는 일전에 찾아볼 수 없던 착잡함이 깃들어 있다. 차 이사를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이 분노로 차 있는 것처럼. 또 차 대표와의 일전을 앞둔 그녀의 얼굴은 안타까움과 긴장감, 그리고 살의로 가득하다. 인간적으로는 가장 신뢰하는 스승이 이제 정반대 가치를 추구하는 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길복순>의 액션은 캐릭터의 감정과 서사를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또 자칫 완전히 따로 놀 수 있는 킬러 길복순과 엄마 길복순의 세계도 하나로 이으려 한다.
하지만 <길복순> 속 액션은 제 역할을 다해내지 못했다. 난잡한 액션 스타일 때문에 액션에 담긴 이야기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러시아 술집이나 식당 장면은 매튜 본 감독의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속 펍이나 교회 시퀀스를 보는 듯하다. 싸우기 전에 다음 상황을 머릿속으로 미리 시뮬레이션하는 장면은 <셜록 홈즈>나 <킹 아서> 등을 연출한 가이 리치 감독의 스타일을 빼닮았다. <007 스카이폴>처럼 화려한 조명 사이로 실루엣만 보이는 샘 멘데스 감독의 스타일도 중간중간 엿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한 시퀀스 안에 뒤엉켜 있고, 또 몇몇 장면에서는 합을 맞춘 티가 나다 보니 액션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스타일이 인상적이지 않을 정도다.
이에 더해 작위적이고 노골적인 몇몇 대사와 추임새, 희성이나 '신상사'(김성오)처럼 등장은 강렬하나 허망하게 퇴장하는 몇몇 캐릭터도 문제를 악화한다. 결국 <길복순>은 액션 영화로 보든 아니든 아쉬움이 크다. 액션 영화라면 액션이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액션 영화가 아니라면 퀄리티가 부족한 액션 때문에 응축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신선한 도전이 엿보여서 더 아쉽기도 하다. 실망스러운 작품이 공개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잦은 넷플릭스의 징크스를 충무로의 스타일리스트이자 기대주, 변성현 감독도 완전히 피하지는 못한 셈이다.
Poor 형편없음
액션도 드라마도, 하나에만 집중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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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그라들 줄 알면서도 영원함을 바라게 되는
좋아하는 가수로 주저 없이 스다 마사키를 말하던 때가 있었다. 장발, 넥타이, 통기타를 들고 목소리를 긁어가며 부르는 ‘사요나라 엘러지’ 영상을 족히 50번은 본 듯하다. 그의 노래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에 대해서 알기 싫었던 마음이 있었다. 노래에 대한 감상이 그 가수의 사생활이나 성격으로 인해 영향을 받아 변질되는 것이 싫었다. 그가 배우로 더 유명하다는 사실은 곧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오늘의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주인공 키누(아리무라 카스미)처럼 말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내 감정을 덮지 마. 어젯밤의 여운 속에 있고 싶단 말이야.” 우연히 지하철 첫 차를 기다리며 가까워진 무기(스다 마사키)의 집에서 돌아온 후 키누가 한 생각이다. 같은 신발을 신고, 같은 가수를 좋아하고, 내가 읽고 싶었던 소설을 이미 그가 읽고 있다. 너무나도 닮은 그들은 서로를 속절없이 사랑하게 되었다. ‘전철을 탄다’라는 말 대신 ‘전철 속에서 흔들린다’라는 말을 쓰는 무기를, 평생을 의문스러워 한 가위바위보의 규칙을 똑같은 이유로 이상하다 여기는 키누를 말이다. ‘운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연스레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일. 무기와 키누의 첫 만남이었다. 21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는 나이에 만난 그들은 싱그러운 사랑을 나눈다.
비록 지하철역에서 30분 동안 걸어가야 하지만, 강이 한눈에 보이는 작은 빌라에서 같이 살게 된 그들은 20대 중반을 함께 마주한다.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어도, 울고 있는 나의 앞에 슬리퍼를 신고라도 달려와 줄 당신이 있기에 그래도 괜찮은 날들이 이어진다. 인생의 목표가 ‘키누와의 현상 유지’였던 무기. 그러나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나선 후, 그의 다짐은 어딘가 어긋나게 된다. 재미없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은 키누와, 인생은 책임이라는 무기. 서로가 점점 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만 느끼고 있다는 생각에 키누는 점점 메말라간다.
끝내 헤어짐을 택한 그들은 함께 골랐던 커튼을 정리하고 가구를 옮기며 차근차근 서로의 흔적을 덜어낸다. 그 과정이 너무 아프지만은 않은 이유는, 매 순간 서로를 후회 없이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김없이 모든 것을 다 준 이들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별하고, 누군가는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미래를 약속하며 축하를 받기도 한다. 어떤 것이 좋은 결말이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알 수 없다고 얘기하고 싶다. 촘촘하게 얽혀있는 서로를 인생에서 분리해 내기란 당연하게 어려운 일이고, 함께했던 일상에서 혼자로 돌아가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 나의 젊음을 함께 나눴던 이가 있다는 것, 함께한 시간들이 나의 궤적이 되는 것 역시 값진 일일 것이다.
“시작이란 건 끝의 시작. 만남은 항상 이별을 내재하고 있고 연애는 파티처럼 언젠가는 끝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가져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수다를 떨면서 그 애달픔을 즐길 수밖에 없다.” 주인공 키누가 즐겨보던 블로그의 한 문장이다. 살아있는 꽃은 꺾는 순간 그 생명을 잃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시들어간다. 메말라 버릴 미래를 그리며 안타까워하기에는 그 당장 눈앞에 놓인 싱싱함은 너무나도 아름다울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언젠가 사그라들 줄 알면서도 영원함을 바라게 되는 사랑이 있기를, 찾아오기를, 있었기를 바란다.
Editor. 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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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홍수에 깃든 파괴적 창조의 에너지
워터|El Agua
엘레나 로페스 리에라|Elena LÓPEZ RIERA
Spain|2022|105 min|DCP|Color|Fiction|15|Korean Premiere
시놉시스
여름철의 스페인 남동부 작은 마을, 폭풍이 몰아치자 마을을 지나는 강이 또다시 범람하려 한다. 이번에도 해묵은 미신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어떤 여자들은 물을 품고 태어나 홍수가 나면 함께 사라질 운명을 지녔다. 마을 십 대들은 여름의 따분함을 달래려 담배를 피우고, 춤을 추고, 술을 마신다. 폭풍 전의 흥분되는 분위기 속에서 죽음의 악취를 풍기는 마을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아나, 그리고 호세는 사랑에 빠진다.
프로그램 노트
일련의 유명한 단편영화로 주목을 받은 엘레나 로페스 리에라 감독의 대망의 장편 데뷔작. 이 영화는 고대만큼이나 신화적인 법칙이 지배하는 한 마을의 여성 세계에 주목한다. 스페인 남부 지역의 한 마을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새로운 홍수가 발생하면 ‘몸속에 물을 지닌’ 선택받은 여자가 사라질 운명에 처한다는 것이다. 평화롭던 마을에 다음 폭풍이 다가올 징조가 보이고 소문이 대물림되는 한 가족(할머니, 어머니, 딸)은 다시 한번 과거의 명령과 조상의 두려움에 맞서야 한다. 리얼리즘과 신비주의 중간쯤에 있는 <워터>는 여성, 연대와 저항, 사랑의 이야기와 성장의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성경)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 강가에 모인 아나와 친구들. 철없는 장난을 치다가도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대화를 나눈다. 작은 소도시를 떠나 마드리드 야경을 즐기고, 공부도 하고, 꿈을 이루자고. 그러나 강물에 떠밀려 온 염소 시체가 나타나자 화기애애한 대화는 뚝 끊긴다. 대신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와 스크린을 장악한다. 홍수와 강, 그리고 몸에 물이 깃든 여자에 대한 불길한 전설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워터>의 오프닝은 일견 아무 맥락이 없다. 일상적인 수다와 마을 사람들이 공유하는 전설을 억지로 붙인 듯 보인다. 전설 때문에 불안해하던 아나와 호세가 바로 다음 장면에서 사랑에 빠지고 키스하고 있으니 더 당황스럽다. 대체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싶다.
하지만 결말에 도달하면 오프닝은 달리 보인다. 오히려 본본에 충실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색하다고 생각한 오프닝 안에는 영화가 보여주려 한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나 일행의 대화와 마을의 오래된 신화 사이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들을 억압하는 힘의 정체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도망갈 곳은 없다
아나와 친구들의 대화를 되짚어 보면 열망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과는 다른 삶을 원하는 갈망. 그런데 이는 역으로 현재 상황에 종속되어 있는 그들의 현실을 강조한다. 아나의 남자친구, 호세가 대표적인 캐릭터다. 과수원집 아들인 그는 자기가 런던에서 유학하다가 돌아왔다고 떠들고 다닌다. 아나에게도 템즈 강의 야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해준다. 하지만 그의 말은 현실과 다르다. 아버지의 강한 권유 때문에 그는 집을 떠나지 못한 채 가업을 배운다. 나무에게 물 주고 열매를 수확하는 법, 호우에 대비하는 법을 충실히 익힐수록 아버지에게 인정받는다. 그의 일상과 현실은 다양한 잠재력과 젊은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전설의 역할도 다르지 않다. 오래된 신화는 젊은 여성을 억누르는 힘이다. 홍수와 강에 대해 듣고 자란 여성이라면 누구나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내 운명과 죽음이 이미 정해졌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시간이 지나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아니라면 내 딸이 강의 부름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니까. 물론 전설 따위 믿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전설이 마을 사람에게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나의 할머니가 샤먼 마냥 주술로 갓난아이를 치료하는 걸 설명할 길이 없다. 따라서 <워터>의 도입부는 젊은이들을 억누르는 현실적인 이유와 비현실적인 이유를 한 번에 암시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경계를 허물어 탈출구를 뚫다
이때 로페스 리에라 감독은 아나에게, 그의 친구들에게 탈출구 하나를 열어준다. 현실과 신화, 현재와 과거라는 경계 사이에서 좁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방법은 간단하다. 통상 엄격하게 구분되는 신화와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 된다.
실제로 영화는 현실적인 기법을 활용하되, 신화적인 내용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달리 말해 픽션이지만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취한다. 영화는 아나의 이야기를 보여주다가 중간중간 마을 여성들의 인터뷰를 삽입한다. 강과 홍수, 여성에 대해 묻고 그들이 알고 있는 바를 말해달라고 요청한다. 그 결과 신화에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현실감이 더해진다. 한 명의 입이 아닌 여러 입을 거치다 보니 사실을 증언한다는 인상이 남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폭우와 홍수도 생동감을 살리는 방식으로 연출한다. 목격자들이 휴대폰으로 직접 찍은 제보 영상을 통해 불어난 강과 마을을 점령한 물을 진짜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역사적인 맥락을 더하기도 한다. 17세기 이후로 기록에 남을 만큼 컸던 홍수의 이름을 연이어 호명한다. 그렇게 하여 터무니없는 것과 이성적인 것, 실체가 없는 것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근거가 없는 것과 있는 것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현실도 아니고 신화의 세계도 아닌, 모호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홍수의 파괴적 창조
그저 공간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도 않는다. 그 공간을 도전적인 에너지로 가득 채운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청춘이다. 정해진 길을 따르라는 현실적인 압력과 이미 정해진 운명을 바꾸려는 활력을 보여준다. 아나와 호세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순간. 둘이 함께 새로운 미래를 다짐하는 장면. 홍수를 알리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할 때 스크린을 가득 매운 클럼의 젊은이들. 그 순간 <워터>는 마치 한 편의 청춘 영화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오프닝에 등장한 아나와 호세의 키스는 단순한 키스가 아니다. 어떤 이유로든 이미 정해져 버린 삶의 방향을 바꿔보려는 도전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힘은 여성들의 연대다. 홍수가 임박하자 성당에서 함께 기도하는 여인들. 아나가 무슨 선택을 해도 막지 않고 기다려주는 엄마와 할머니. 홍수가 나면 강에 몸을 던졌던 여인들. 그들은 아나가 암울한 죽음을 걱정하며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강에 몸을 던져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홍수의 힘을 빌려 그녀를 괴롭힌 현실과 신화의 억압과 압력을 모두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홍수는 단순한 파괴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니까. 노아도, 데우칼리온도, 우트나피쉬팀도 홍수를 통해 새로운 삶을 개척한 것처럼. 그래서 <워터>는 염소 시체를 비춘 도입부와는 달리 밝은 햇빛을 받으며 강물 밖으로 걸어 나오는 아나를 비추며 막을 내린다.
영화 <워터> 상영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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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잃어버린 ‘코모레비’를 찾아서
인생은 한 편의 시와 같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 자체로 멋지지만 가슴에 오롯이 새겨지지 않았던 이 말은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기여이 내 마음에 들어 앉았다. 평범한 일상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상황 속 찰나와 같은 ‘코모레비(こもれび,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의 순간은 시처럼 담백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한 부분을 그려낸다. 비록 평범하지만 그 자체로 완벽한 날이라 말하는 영화는 관객 모두에게 이런 삶을 살고 있지 않느냐고 되묻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어쩌면 이 작품은 그 물음의 답을 찾는 우리들의 여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오늘도 새벽같이 일어난다. 씻고, 식물에 물 주고, 자판기에서 뽑은 캔커피를 마신 그는 차를 끌고 일터로 나간다. 출근길 동반자는 이른 아침 도심 풍경, 그리고 카세트 테이프로 들리는 올드 팝이다. 이곳 저곳 화장실 청소를 하다 점심 시간이 되면 근처 공원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필름 사진기로 하늘을 찍는다. 모든 일이 끝나면 귀가 후 목욕탕에 가서 말끔히 씻고, 지하철 역사에 있는 단골 식당에 가서 술 한잔을 기울인다. 캄캄한 밤이 되면 책을 읽다가 졸리면 잠을 청한다. 매일 이 똑같은 일상을 사는 그는 누가 뭐라 하던 간에 묵묵히 자신의 루틴대로 일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집에 조카 니코(나카노 이리사)가 찾아오고, 그의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긴다.
<퍼펙트 데이즈>는 히라야마를 통해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초상을 보여주며, 자신이 맡은 일을 묵묵히 해내는 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히라야마는 매일 똑같은 일을 열심히 한다. 극중 어차피 다시 더러워질 화장실을 왜 그렇게 열심히 청소하냐는 동료의 핀잔에도 히라야마는 닦고 또 닦는데, 이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의 행위 자체가 누군가에게 행복한 순간을 줄 수 있다는 걸 믿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매번 그의 바람처럼 세상 일이 돌아가지는 않지만, 그 또한 인생이라고 믿으며 감내하고 또 다시 일을 한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히라야마는 고단한 삶을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수행자의 모습처럼도 보인다.
영화는 히라야마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주변인들, 특히 매번 그 자리에 항상 있는 사람들을 주시한다. 공원에 있는 나무, 공중 화장실, 집 주차장 캔 커피 자판기 등 무심코 지나가지만 꼭 있어야 하는 존재처럼 서점 주인, 식당 사장, 사진관 사장, 공원 노숙자 등을 히라야마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그들 또한 자신의 자리에서 책으로, 술 한잔으로, 사진으로, 존재 자체로 위안과 행복을 주는 이들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이들의 평범한 모습과 일상을 담은 건 이 영화의 시작점에서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연출을 맡은 빔 벤더스 감독은 도쿄의 공공 화장실들을 수리하는 ‘더 도쿄 토일렛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수리한 화장실을 보고 영감이 떠오른다면 관련된 작품을 하나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 노 감독은 외부인의 시선으로 도쿄의 화장실 그리고 이 도시의 사람들 일상을 지켜보며,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히라야마처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다른 이들이 잠시나마 특별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 예로 히라야마가 동료 다카시(에모토 도키오)에게 썸녀와의 데이트 비용을 주거나, 조카 니코에게 잠시나마 휴식처를 제공하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영화는 감독의 시선처럼, 극중 인물과의 거리두기를 한다. 히라야마라는 인물의 감정이나 과거 이야기를 보여주고 설명하기 보다는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마치 그가 하늘을 향해 사진을 찍고, 공원 노숙자를 지켜보고, 동이 트는 도심 풍경을 바라보듯 말이다. 이를 통해 생긴 여백은 아이러니 하게도 관객이 주인공의 일상에 더 집중하고, 미세하게 변하는 그의 감정과 태도를 확인하게 만든다. 이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바라보는 시점샷으로 변주를 주는데, 이를 통해 히라야마의 감정선과 그날의 온도차를 유추할 수 있다. 장면마다 흐르는 올드 팝 또한 말 수가 적은 그의 감정을 유추할 수 있도록 다리 역할을 한다.
<퍼펙트 데이즈>가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야쿠쇼 코지의 연기 덕분이다. 빔 벤더스 감독이 카메라로 써내려 간 영상 시에 때로는 규칙적으로, 때로는 격렬하게 운율을 행하듯 보여주는 연기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대사가 아닌 표정과 움직임으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몇 마디 말보다 임팩트가 더 강하다. 특히 극 후반부 아쿠쇼 코지의 마지막 표정은 압권이다. 그동안 숨겨왔던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처럼 하루 하루 쌓아온 모든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데, 이를 위해 2시간 내내 절제 연기를 보여준 것 같은 느낌이다. 극 중 다카시의 대사처럼 10점 만점에 10점. 아쿠쇼 코지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듯 제76회 칸영화제, 제47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에게 남우주연상의 영광을 안겼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관객이라면 히라야마의 마지막 표정을 보며 삶이 고되기에 찰나의 행복을 느끼는 건지, 찰나의 행복이 크기에 삶이 고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될 것이다. 결국 정답은 없기에 이 힘든 삶을 살아가는지도 모른다는 철학적 사유를 할지 모른다. 그보다 중요한 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아닐까. 고단한 삶을 깨우는 소리와 음악, 햇빛, 목욕, 사진, 술 한잔, 책 등 작지만 소중한 것들로 우리는 행복을 느끼고 그렇게 살아가니까 말이다. 부디 이 영화를 보고 고단한 삶을 잠시 잊게 만드는 자신만의 ‘코모레비‘를 찾길 바란다. 우리들의 퍼펙트 데이즈를 위해~
덧붙이는 말: 영화를 보고 극장 밖에 나오면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와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을 꼭 들게 될 것이다. K-pop 대신 올드팝을 듣는 자신에게 너무 놀라지 말고, 두 곡을 포함한 명곡 향연에 푹 빠지길 바란다. 빔 벤더스 감독님! 플레이리스트 좀 공유해주세요~
사진제공: (주)티캐스트
평점: 4.0/ 5.0
한줄평: 단조로운 일상에 스며든 특별하고도 가치있는 운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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