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필 K2023-05-28 07:31:48
인간 본연의 과감한 변화, 괴이한 진화
영화 <미래의 범죄들> 리뷰
비디오드롬, 플라이, 크래쉬와 같이 독창적이고 과감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은 신작 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세계관을 선보이는 스타일리스트 감독 중 한 명이다.
8년만의 신작인데다가, 바디 호러 장르로서는 1999년 <엑시스텐즈> 이후로 무려 23년만에 제작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첫 공개인 칸 영화제 뿐만 아니라 그 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무려 야외극장(!)에서 상영할 정도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필자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작품을 관람하였다.
신체가 스스로 변화하고 사람들은 인체를 개조하는 미래,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퍼포먼스이자 행위 예술을 펼치는 사울과 카프리스와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다룬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 답게 이번 영화도 기괴하고 과격한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이러한 상상력을 주로 보여주면 좋았겠지만, 배경 설명에 너무 많은 표현을 쓴데다가 고유 명사가 많이 나와 늘어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다만 수술과 신체 훼손이 일종의 섹스이자 애무로 다뤄지는 것을 섹슈얼하게 보여주는 장면들 같이, 매력넘치는 장면들이 많은 영화다.
아직까지도 한국 개봉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감스러울 뿐이지만, 언젠가 한국에서 소개가 되었으면 좋을 정도로 상당히 주목할 부분이 많은 작품임은 확실하다.
*이 글은 원글없이 새로 작성된 글이며, 출처란에는 작성자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기재하고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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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독한 트라우마도 나아지게 되는 날이 온다.
시놉시스
타쿠미 아사는 중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친척인 코다이 마키오가 후견인이 돼주고 타쿠미 아사와 같이 살게 된다. 비참한 심정을 앓게 된 타쿠미 아사에게 중학교 졸업식이 다가오고 자신의 단짝 친구가 그 비밀을 말하게 된다.
결국 중학교 졸업식을 마치지 못하고 달려 나온 타쿠미 아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부모님이 있었던 과거만 바라볼 뿐... 그런데 타쿠미 아사를 곁에서 위로해 주는 코다이 마키오의 뜻밖의 행동에 따뜻함을 느끼는데? 과연 타쿠미 아사와 코다이 마키오는 서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타쿠미 아사는 외로움과 초조함을 달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친척인 코다이 마키오에게 어른이 되는 법이 무엇일까 물어보기도 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단짝 친구가 동성애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밴드부 동아리에서 자신이 튀어 보이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그러나 자신은 많이 사랑받지 못한 존재라고 생각이 들은 타쿠미 아사는 코다이 마키오처럼 언제나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렇지만 코다이 마키오도 자신의 언니인 타쿠미 아사의 엄마를 싫어했고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 치부가 되어 기억에 깊이 박혀버렸다.
사실 코다이 마키오는 베스트셀러 소설가였으며 정작 자신은 고양이도 키우지 못하는 형편이었지만 자신의 친척이자 언니의 딸인 타쿠미 아사를 후견인으로 받아들이면서 많은 변화를 얻는다. 예전의 코다이 마키오의 삶은 정돈이 안된 지저분한 방의 책상에서 소설을 적는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었다. 자신이 그렇게 된 게 타쿠미 아사의 엄마이자 자신의 언니 때문인데 코다이 마키오가 어렸을 적에 모욕을 많이 받았고 중학생 때 쓴 각본 20장을 버렸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비하하는 말도 서슴지 않게 들었고 그럼으로 인해 크면서 악착같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 원동력이 지금의 소설가를 만들어준 게 아니었을까 싶다.
타쿠미 아사와 코다이 마키오의 관계는 초반에는 서먹했다가 후반으로 갈수록 좋아진다. 타쿠미 아사가 코다이 마키오의 동창 친구를 만나면서 요리 레시피도 배우고 어른이 되는 법도 차차 알게 된다. 또한 코다이 마키오의 전 남자친구에게도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차차 어른이 되어가는 타쿠미 아사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어른 아이처럼 행동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부모님을 교통사고로 이른 나이에 잃은 타쿠미 아사는 트라우마를 이겨내려 친구 간의 관계도 더 생각했고 주위 사람들의 눈치도 덜 보려고 노력한다. 상처가 깊은 과거의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을 했던 타쿠미 아사의 태도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 같다.
이 영화의 메세지는?
트라우마는 언제나 따라다니고 무섭다. 그걸 이겨내는 행동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큰 사고를 겪은 사람들은 과거에서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언제나 비가 내릴 수만도 없고 언제나 해가 뜰 수많은 없다. 인생이란 어떤 일들이 벌어질 수 없는 미지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필자도 이 영화를 보면서 과거의 상처를 긍정적으로 극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용기도 얻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한줄평으로 남기자면?
트라우마의 싸움은 나 자신이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써 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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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에서 영웅으로
<트랜스포머> 영화 시리즈의 첫 편이 나온 지 15년이 넘었다. 하지만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이야기의 초점은 흐려지고, 오로지 파괴적인 액션 장면들이 나열되는 느낌을 준다. 초기의 신선했던 감동은 점차 사라지고, 관객들 사이에서는 이 시리즈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가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포머의 세계관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특히 그들의 고향인 사이버트론이라는 행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애니메이션 영화 <트랜스포머 원>은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사이버트론의 기원을 다루며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단순히 로봇 전투 액션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들의 정치적 성장과 계급 갈등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사이버트론의 노동자 계급을 전면에 내세우며, 각 인물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감정을 통해 관객에게 정치적 함의를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흥미롭다. 이제, 이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주요 캐릭터들의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첫 번째 감정] 오라이온 팩스(옵티머스 프라임)의 자유
영화 <트랜스포머 원>에서 오라이온 팩스는 사이버트론 행성에서 평범한 노동자 계층에 속하는 광부로 등장한다. 그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깊었으며, 자신이 속한 세계의 질서가 올바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사이버트론의 지도부가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는 오라이온 팩스에게 큰 충격을 주며, 그는 시스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진실을 알게된 그 순간은 그의 내면에서 자유를 향한 열망이 싹트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오라이온 팩스는 시스템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폭력적이지 않다. 그는 자유를 위해 싸우되, 과격한 방법 대신 온건한 접근을 택한다. 그의 목표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부패한 체계를 개선하고 바로잡는 것이었다. 이는 정치적으로 비둘기파에 가까운 온건한 이상주의자적 태도이며, 사이버트론에서 자유와 정의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영웅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오라이온 팩스가 선택하는 길은 단순한 반란이 아니라, 타협과 대화를 중시하는 방식이다. 그는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 시스템 안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리더로 성장한다. 이는 그의 차분하고 이성적인 면모를 부각시켜, 단순한 전투영웅을 넘어선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한다. 그의 이러한 성향은 이후 옵티머스 프라임으로 거듭나며 사이버트론의 지도자로 인정받게 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두 번째 감정] D-16(메가트론)의 분노
오라이온 팩스와 대조적으로 D-16, 즉 메가트론은 같은 노동자 계층에 속해 있지만, 그가 택한 길은 완전히 다르다. 메가트론은 처음에는 규칙과 질서를 중시하는 성향을 보인다. 오라이온 팩스와 함께 노동자로 살아가면서도, 메가트론은 체제의 틀 안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지도부가 노동자들을 기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의 내면에서는 억눌렸던 분노가 폭발하기 시작한다.
메가트론의 분노는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 체제를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강한 욕망으로 변모한다. 그는 현재의 사회가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이 세상 자체를 파괴해야 한다고 믿는다. 메가트론의 이 파괴적인 성향은 그를 강경한 매파로 만든다. 그는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오직 새롭게 탄생할 세계를 꿈꾸며 폭력적인 혁명을 추진한다. 이는 그가 오라이온 팩스와 갈등하게 되는 핵심 원인이 된다.
하지만 메가트론의 분노는 단순한 파괴적 욕구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기존 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려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그가 오라이온 팩스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며, 이 영화는 메가트론이 가진 복잡한 감정을 더 깊이 파고들며 그의 폭력적 성향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메가트론은 단순한 악역이 아닌, 자기 방식대로 정의를 실현하려는 인물로서 그의 캐릭터가 확립된다.
[세 번째 감정] 사이버트론 고대 조상들의 믿음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사이버트론의 노동자 계급에서 시작한 두 인물이 결국 각기 다른 정치적 길을 걷게 된다는 점이다. 사이버트론의 고대 조상들은 영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그들은 각 영웅들에게 지혜와 힘을 부여하며, 그들의 성장과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흥미롭게도, 고대 조상들은 자유와 정의를 상징하는 오라이온 팩스, 즉 비둘기파의 손을 들어준다. 그들은 사회를 파괴하기보다는 개선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개혁하는 것을 지지한다.
이러한 조상들의 믿음은 오라이온 팩스와 메가트론이 상징하는 두 가지 정치적 이념, 즉 온건파와 강경파의 대립을 더욱 부각시킨다. 영화는 결국 이 두 인물의 갈등을 통해 자유와 분노, 개혁과 혁명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이들은 사이버트론의 미래를 두고 서로 대립하며, 그 과정에서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이라는 두 영웅의 정치적 성장과 충돌을 보여준다.
조상들의 역할은 단순히 전설 속의 존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혜가 현대의 갈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이 남긴 유산은 두 인물의 행동에 방향성을 제시하며, 영화 속에서 사회적 진화와 혁신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제공한다. 사이버트론의 고대 조상들은 이 갈등의 심오한 철학적 배경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는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깊이
<트랜스포머 원>은 단순한 액션 애니메이션 이상의 깊이를 가진 작품이다. 영화는 사이버트론의 계급 갈등과 노동자 계층의 정치적 성장 과정을 그리며, 자유와 정의, 분노와 혁명이라는 중요한 정치적 주제를 다룬다. 오라이온 팩스와 메가트론의 대립은 단순한 선과 악의 구도가 아니라, 각기 다른 정치적 이념이 충돌하는 과정이다. 이들은 자신만의 정의를 추구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 영화는 특히 사이버트론이라는 세계의 기원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갈등을 세밀하게 다룬 점에서 주목받는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단순히 로봇들의 전투 장면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에서 영웅으로 성장하는 인물들의 정치적 여정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영화는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논쟁이 되는 정치적 주제들을 트랜스포머 세계를 통해 풀어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번 영화의 감독은 애니메이션계에서 유명한 조시 쿨리다. 그는 <토이 스토리 4>를 통해 이미 그 능력을 인정받은 감독으로, <트랜스포머 원>을 통해 트랜스포머 세계관의 깊이를 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마이클 베이가 이끌었던 실사판 <트랜스포머> 시리즈와 달리, 조시 쿨리는 이번 애니메이션에서 서사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특히 캐릭터들의 내면을 탐구하며 그들의 성장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내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의 목소리 연기도 눈길을 끌었다. 옵티머스 프라임, 즉 오라이온 팩스의 목소리를 맡은 크리스 햄스워스는 특유의 남성적이고 강렬한 목소리로 프라임의 리더십과 결단력을 훌륭하게 표현했다. 메가트론의 목소리를 맡은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는 그의 분노와 카리스마를 잘 전달하며 메가트론의 캐릭터에 깊이를 더했다. 두 배우의 목소리 연기는 영화의 감정선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트랜스포머 원>은 트랜스포머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서사적으로 깊이가 있는 작품이다. 단순한 로봇 전투를 넘어, 정치적 성장을 그린 이 영화는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의 기원을 탐구하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트랜스포머 팬뿐만 아니라, 정치적 서사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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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스트 라이브즈 | 현생과 전생 사이에서 부유하는 인생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2살의 '해성'(유태오)는 첫사랑 '나영'(그레타 리)를 갑자기 잃는다. 그녀의 가족 모두가 뉴욕으로 이민을 떠났기 때문. 이후 12년이 지나도록 해성은 현생을 열심히 살아간다. 대학에 입학하고, 군대에 가고, 취업을 걱정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 편에는 나영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다. 그래서 그는 SNS를 통해 나영을 찾기로 결심한다.
한국을 떠나 12년 간 뉴욕에서 살아간 나영. 노벨 문학상 수상을 꿈꾸던 소녀는 여전히 작가의 꿈을 안고 살아간다. 어느 날, 나영은 SNS에서 어릴 적 풋사랑의 주인공이었던 해성이 자기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에게 연락한다. 그렇게 가까스로 닿은 인연을 또 다른 12년 간 간직한 두 남녀. 마침내 해성은 나영을 만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한다. 스쳐 지난 수많은 "만약"의 순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공식을 거부하다
바에 나란히 앉은 세 주인공. 그들의 대화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두 목소리가 들려온다. 주인공 셋을 관찰하며 그들의 관계를 유추한다. 그 내용은 마치 관객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듯하다.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동양인 남녀를 커플 비슷하게 생각한다. 조용히 옆에 앉아 있는 서양인 남성은 친구 내지는 가이드일 거라고 여긴다. 추측은 계속 바뀌지만, 그들의 의견은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의 구도 안에 갇혀 있다.
대부분의 로맨스 영화라면 평범한 순간이다. 애초에 로맨스 장르의 틀은 극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해피엔딩이든 배드엔딩이든 그 결말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속내용도 새로운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마라" "사랑의 힘으로 현재의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와 같은 내용이다.
하지만 셀린 송 감독의 첫 장편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알 수 있다. 위의 오프닝 시퀀스는 선전포고였다는 것을. 실제로 <패스트 라이브즈>의 끝은 전혀 다르다. 로맨스 영화에 기대하는 바를 완전히 벗어나는 감성의 여운을 선사한다. 그 중심에는 전생과 이민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이는 <패스트 라이브즈>가 신인 감독 작품인데도 아카데미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기시감 가득한 시작
초반부는 익숙하다. 해성과 나영의 유년 시절을 보여준다. 초등학교에서 성적을 두고 다투던 라이벌. 그와 동시에 단순한 친구 이상의 호감을 지닌 두 베스트 프렌드. 그들의 풋사랑은 나영이네 가족이 모두 이민을 가면서 자연히 깨진다. 그렇게 둘은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 노벨 문학상을 꿈꾸던 소녀 나영은 미국에서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 공대생이 된 해성은 취업하기 위해 분투한다.
길이 갈린 두 친구가 재회한 계기도 익숙하다. 해성이 군대에서 훈련을 받던 중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린다. 그는 나영의 아버지가 유명 영화감독이었다는 사실을 토대로 SNS에서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그의 노력 덕분에 나영도 해성이 자기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에게 연락한다. 그렇게 그들의 인연은 12년 만에 극적으로 이어진다.
이 빌드업은 익숙한 그림을 연상시킨다. 해성과 나영은 곧 재회할 것이다. 같이 살던 옛 동네에서 추억을 공유하며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다. 이 반가움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성인이 됐으니, 이성적인 감정으로 커질 것이다. 물론 현생은 그들을 편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원거리 연애라는 제약도 있고, 취업을 비롯한 미래의 문제가 그들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둘은 끝내 해피엔딩에 도달할 것이다.
두 번의 변곡점
그런데 <패스트 라이브즈>는 예상된 그림을 자꾸 벗어나며 관객과 밀당을 벌인다. 해성과 나영은 재회하지 않는다. 둘은 영상 통화만 나눈다. 그조차도 오래가지 않는다. 서로에게 빠져들고, 서로의 존재가 너무나도 익숙해지려는 찰나에 그들은 교류를 끊는다. 온라인상의 관계가 오프라인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자 그들도 서로의 관계를 스스로 정의하지 못한다. 그렇게 해성과 나영은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물론 다시 예상대로 되돌아오기는 한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미련을 끝내 버리지 못한 나머지 뉴욕에서 재회한다. 해성과 데이트를 즐기며 혼란스러워하는 나영. 해성을 질투하는 나영의 남편 '아서'(존 마가로). 조심스럽지만 자기 마음을 숨기지는 않는 해성까지. 로맨스에서 빠질 수 없는, 삼각관계라는 익숙한 풍경이 마침내 펼쳐지는 듯 보인다.
이 기대는 한 번 더 깨진다. 셋이 오프닝 시퀀스의 술집으로 향하자 긴장감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작은 불꽃만 튀어도 터질 것만 같다. 하지만 해성과 나영은 아서를 빼놓은 대화 끝에 서로를 사랑한 게 아니라 어린 시절이 그리웠을 뿐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렇게 영화는 불륜도, 운명적 사랑도 아닌 오래되고 특별한 우정으로 귀결된다. 이처럼 로맨스 영화의 공식을 오가는 작법 덕분에 <패스트 라이브즈>는 기술적으로 퍽 흥미롭다.
전생과 현생 사이에서
물론 혹자는 <패스트 라이브즈>의 시나리오를 비판할 수도 있다. 확실한 맛이 아니라며 게으르거나 흐릿하다는 지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개의 변곡점을 잇는 멋진 선 덕분에 <패스트 라이브즈>의 변주는 더욱 아련하다. 영화는 나영의 대사를 통해 거듭 '인연'을 강조하고, 그 결과 '전생(Past Lives)'이라는 제목에도 새로운 의미가 깃든다.
아서에게 나영은 말한다. 부부로 맺어지려면 전생에 8천 겁의 인연을 맺어야 한다고. 1겁이 10년의 28 제곱이니, 부부의 연이 얼마나 특별한 지를 강조하는 고백인 셈이다. 이는 해성과 노라의 관계에도 해당이 된다. 1만 킬로미터가 넘는 공간과 수십 년의 시간 차이를 뛰어넘을 정도로 끊어지지 않는 사이니까. 그들 스스로도 본인들의 전생을 궁금해할 정도로. 이 특별함은 아련함이 되고, 몽글몽글한 감정은 스크린을 휘어잡는다.
그 특별함은 결말에도 더 힘을 싣는다. 아무리 과거의 인연이 질기더라도, 부부의 연은 결국 나영과 아서의 몫이다. 전생의 인연이 더 강렬해 보여도 현생의 인연보다 진하지는 못하니까. 그렇지 않다면 이미 전생의 인연은 전생이 아닐 테니. 현실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논리적으로 귀결되기에 <패스트 라이브즈>는 오히려 더 감성적이다. 해성과 나영의 인연을 일반적으로 풀었다면 판타지겠지만, 그 길을 가지 않았기에 울림이 더 깊다.
돌풍의 원천
이 지점에서 <패스트 라이브즈>의 또 다른 특이점도 엿볼 수 있다. 전생과 현생의 개념을 공간적으로 시각화한다. 그래서 해성과 나영이 결코 연인이 되지 못할 인연이라는 점을 직관적으로 암시한다. 그들의 현생은 따로 있다. 나영은 미국, 해성은 중국에서의 삶과 관계가 그들의 현생이다. 그들이 그리워하는 어린 시절은 이미 떠난 보낸 한국에서의 삶이다. 즉, 한국이라는 장소와 그곳에서의 시간이 그들의 전생인 셈이다.
이는 나영과 해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이민자에게 미국은 현생이고, 떠나온 고국은 전생이나 다름없다. 장소뿐만 아니라 그곳에서의 사람과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민자라면 누구에게나 나영과 해성 같은 사랑이나 우정이 있었을 테니. 인연과 전생, 윤회라는 개념에 착안한 점도 나름 신선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이를 이민자의 삶에 결부시켰기에 보편적인 공감대를 자아내지 않았을까 싶다.
나영에게 해성은 고국과 전생에 대한 향수와 추억이다. 반면에 아서는 미국에서의 정착과 현생을 뜻한다. 이때 끝내 아서를 택한다는 것은 모든 이민자가 결국 미국에서의 삶과 가치,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수용한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즉, 지극히 미국적인 이야기이자 결말인 셈이다. 그래서 <패스트 라이브즈>가 유독 미국에서 반응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뻔한 말도 이토록 감성적일 수 있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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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탄소년단 RM이 주목한 사진작가 낸 골딘의 다큐 영화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사진작가이며 액티비스트인 낸 골딘(Nan Goldin)의 삶과 예술, 그리고 편견과 부조리를 향한 투쟁을 담았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임에도 2022년 베니스영화제서 최고 영예의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걸작이다.
연출은 아카데미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감독 로라 포이트라스(Laura Poitras)가 맡았다. 그녀는 낸 골딘을 가리켜, “인생에서 용감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지만, 낸과 같은 사람을 결코 만난 적이 없다.”라고 찬탄했다.
첫 장면부터 충격적이다. 낸 골딘이 연대해 투쟁하는 단체 <P.A.I.N>은 골리앗 새클러 가문과 그들의 기부금을 받아 이미지 세탁을 도운 대형 미술관에 드러누워 행동으로 성토한다. 낸 골딘과 <P.A.I.N>은 마약성 진통제를 무분별하게 판매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한 거대제약 회사와 그 회사를 소유한 새클러 가문이 죽음의 대가로 얻은 돈으로 기부한 자선기금을 거부할 것을 미술관과 대학에 요구하였다. 그녀의 활동으로 제약회사는 파산하였고,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새클러 가문의 이름이 지워져 갔다.
영화는 그녀의 사진예술이 세상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절망에 처한 자신도 살렸음을 그려낸다. 낸 골딘은 50여 년 전 정치적 검열과 차별이 노골적이었던 시절에도 카메라에 세상의 터부를 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친구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고, 사회적 금기와 직면하고 소외된 이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이러한 사진들은 정치적 행위라는 이유로 전시가 금지되었다. 낸 골딘은 사진이 예술인지 정치적 행위인지는 정부와 의회권력이 아니라 예술가와 관객이 결정한다고 소리 높였다.
낸 골딘에게 성정체성으로 집에서 쫓겨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언니가 있었다. 동성애자에게 가혹했던 시절 부모는 언니의 삶과 죽음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낸은 언니가 흔적 없이 죽은 후, 평생에 걸쳐 자신의 자취를 남기려고 몸부림쳤다. 낸에게 사진은 인생에 흔적을 남기는 수단이었고, 언어였다. 그녀는 가난과 차별, 생존을 위한 몸부림들, 남친에게 코뼈가 으스러지도록 폭행당한 얼굴도 사진으로 남겼다. 사진은 자신을 살리는 해방구였으며, 고통과 두려움을 헤쳐나가는 생존 행위였다.
영국의 저명한 현대미술 전문지 <아트리뷰(ArtReview)>는 2023년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을 선정하며 낸 골딘을 1위로 올렸다. BTS RM도 인스타그램에 낸 골딘의 사진집을 올려 그녀의 예술과 인생 여정에 관심을 드러냈다.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편한 마음으로 감상하기 힘든 영화다. 하지만 가장 밑바닥의 삶에서 고통스럽고 힘든 현실을 드러내는 사진들이 그 자체로 사람의 영혼을 건드리는 울림이 있음을 깨닫게 하는 소중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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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징어 게임 2 |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위선자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징어 게임 우승자가 되어 456억 원이라는 거액을 손에 넣었지만, 게임에서 죽은 친구와 동료를 잊지 못하는 '성기훈'(이정재). 그는 사람들이 돈을 위해 서로를 죽이는 이 게임을 중단시키기로 결심하고, 게임 진행의 총책임자인 '프론트맨'(이병헌)을 쫓는다. 그 출발점으로 기훈은 2년간 서울 지하철을 뒤진 끝에 게임 참가자 모집책인 '딱지남'(공유)을 찾아낸다.
딱지남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은 기훈은 마침내 프론트맨을 만나만, 곧바로 그의 계략에 당한 나머지 다시 한번 오징어 게임에 끌려간다. 경험을 살려 경마장 친구 '박정배'(이서환)를 포함해 모든 참가자를 살리고, 게임을 멈추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기훈. 그러나 '타노스'(최승현) 등 상금에 눈이 먼 참가자들은 그의 말을 부정하며 혼란을 초래하고, 그 사이 가명으로 게임에 참여한 프론트맨은 기훈과 그의 계획을 더 자세히 파헤친다.
1승을 더한 속편의 저주
<오징어 게임>이 쌓아 올린 금자탑은 화려했다.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흥행한 작품 중 하나였고, 제74회 에미상에서도 남우주연상과 작품상을 비롯해 여섯 부문을 석권했다. 자연히 시즌 2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겉모습은 기대를 충족시키기도 남았다. 주연 이정재는 <스타워즈>에도 출연하면서 더 중요한 배우로 성장했고, 임시완, 강하늘, 이진욱 등 각각 드라마 한 편의 주연을 맡을 수 있는 배우들도 결집했으니까.
하지만 막상 공개된 <오징어 게임 2>는 전 세계적인 흥행력과는 별개로 실망스럽다. 시작은 좋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힘이 부족하다. 여러 이유가 있다. 다음 시즌을 위한 징검다리라는 점이 명확하다 보니 극의 완성도가 부실하다. 지난 시즌에 비해 캐릭터들의 매력도 명확하지 않다. 새롭게 등장한 게임들도 지난 시즌에 비해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메시지다. <오징어 게임>은 잔혹하고 원초적인 자극을 통해 적자생존, 계급사회, 승자독식 같은 자본주의의 병폐를 고발했다. 3년 만의 속편은 주제의식을 계승하고, 확장시키려는 듯하다. 그러나 속편의 완성도와 존재 자체가 작품과 브랜드 간의 갈등을 극대화한 결과, <오징어 게임 2>는 위선자라는 오명을 피하지 못했다.
<오징어 게임>과 경제적 합리성
자본주의 질서는 한 가지를 전제한다. 모든 사람이 경제적 합리성을 갖췄다는 가정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에게 돌아올 효용이 극대화되는 선택지를 자율적으로 고른다. 이익이 되는 행동을 선택하고, 피해를 주는 선택은 포기한다. 3년 전, <오징어 게임>은 경제적 합리성이 극단적으로 발현된 상황을 보여줬다.
'상우'(박해수), '일남'(오영수)과 기훈의 대립이 그 예시다. 상우는 456억 원을 얻기 위해서 우정, 연민처럼 인간적인 가치를 기꺼이 포기한다. 일남은 기훈과 마지막까지 내기를 한다. 눈 오는 밤에 얼어 죽기 직전인 노숙자를 아무도 돕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는 인간의 선악에 대한 판단이 아니다. 인간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는 명제에 대한 판단이다. 일남이 보기에 남을 도와서 얻는 정서적 만족은 경제적으로 무의미하다.
기훈은 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이유로도 타인을 수단화하거나 타인의 존엄성을 침해할 수 없다면서 상우를 끝까지 설득한다. 우승 상금도 다른 참가자의 목숨값이라 여기며 쓰지 않는다. 일남과 달리 사람들이 아직 경제적인 효용보다 중요시하는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사람은 경제적 가치 외에 인간성, 신뢰 같은 의미도 같이 고려한다는 것. 기훈은 극단화된 현실의 구조와 논리에 이상적으로 맞서는 인물인 셈이다.
그렇기에 오징어 게임 속 놀이들은 기훈의 이상과도 같았다. 언제나 아름답고, 소중했다. 하지만 어릴 적 추억은 막대한 상금 앞에서 피로 물들었다. 참가자들은 자기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타인을 속이고 죽이며 인간성을 내버렸다. 경제적 합리성이 극에 달한 오징어 게임이라는 시공간에서 기훈의 믿음은 추억의 놀이처럼 변색되고 타락했다. 이 간극은 다른 데스 게임보다 오징어 게임이 특히 잔혹하고, 충격적인 이유였다.
무승부로 끝난 러시안룰렛
<오징어 게임>이 기훈의 신념을 외적으로 무너뜨리는 이야기였다면, <오징어 게임 2>는 그 반대다. 기훈 스스로 자기 믿음의 모순에 빠지는 이야기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는 두 번째 시즌의 첫 화가 특히 인상적인 이유와 맞닿아 있다. 딱지남이 노숙자들에게 빵과 복권 중 하나를 고르게 하는 대목, 그리고 기훈과 딱지남이 러시안룰렛을 하는 장면에 에피소드 7개가 전부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빵과 복권 중 합리적인 선택지는 빵이다. 복권에 당첨될 확률은 극히 낮으니까. 그러나 노숙자 대부분은 복권을 고른다. 딱지남은 그런 그들 앞에서 남은 빵을 짓밟는다. 일종의 세리머니다. 게임 요원이었던 그는 게임에 참가했던 아버지를 직접 죽인 후 조직에서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했다. 즉, 그는 일종의 신자유주의적 삶의 방식을 체화했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낮은 확률에 인생을 거는 게임 참가자들은 도태된 쓰레기일 수밖에 없다.
오징어 게임을 내재화한 딱지남과 기훈의 러시안룰렛은 향후 펼쳐질 싸움의 함의를 암시한다. 그가 보기에 기훈의 대의는 모순 범벅이다. 뺨을 맞는 대가로 돈을 받을 때 그는 이미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존엄성을 포기했다. 인간적 가치 대신 물질적 효용을 선택했고, 그 끝에서는 우승 상금도 획득했다. 모든 이득을 챙긴 후에야 게임을 파괴하겠다고 날뛴다. 딱지남의 시점에서는 기훈의 정의가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러시안룰렛으로써 기훈의 모순을 드러내려 한다. 기훈이 먼저 게임의 규칙을 어기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기훈은 규칙을 깨지 않았다. 이에 딱지남은 규칙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먼저 규칙을 어기는 것은 기훈의 모순을 인정한다는 의미일 뿐만 아니라 자기 인생까지도 부정한다는 말이니까. 다르게 보면 기훈도, 딱지남도 승리하거나 패배하지 못한 셈이다.
모순 끝에 패배한 2라운드
러시안룰렛이 1라운드였다면, 오징어 게임은 2라운드라고 할 수 있다. 프론트맨은 기훈의 바로 옆에서 게임에 참가하며 그의 신념과 믿음을 시험한다. 지난 게임 속 일남과 기훈을 연상시키는 언행을 보여며 기훈을 혼란에 빠트린다. 더 나아가 기훈을 자기모순 속에 가두고자 한다. 그 중심에는 새로운 규칙인 투표가 있다. 한 게임이 끝날 때마다 참가자들이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 그때마다 기훈은 딜레마를 마주한다.
거액의 상금보다 생명과 도덕성 등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믿는 기훈의 이상은 투표 때마다 부정당한다. 그의 선의와 이상은 게임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합리성에 앞에서 무력하다. 지금까지 번 상금으로는 게임장 밖의 삶을 바꿀 수 없다는 논리는 기훈의 친구와 동료도 설득될 정도로 강력하다. 기훈이 핏대를 높일수록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게임은 중단되지 않는다"던 프론트맨의 말만 거듭 증명될 뿐이다.
결국 기훈은 1라운드와 달리 2라운드에서는 패배한다. 현실의 벽 앞에서 힘없는 이상주의가 얼마나 무용했는지를 증명하고 만다. 딱지남 앞에서와 달리 기훈은 자기 규칙과 소신을 저버린다. 인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던 그가 게임의 중단이라는 '대'를 위해 일부 참가자라는 '소'를 희생한다. 밤 사이 참가자 간에 솎아내기가 자행될 때, 기훈은 싸움에 휘말린 참가자들을 돕는 대신 사망자로 위장해 진행 요원을 공격할 기회만 엿본다.
따라서 <오징어 게임 2>의 클리프행어는 시작과 동시에 예정된 결말에 가깝다. 자신의 영웅 행세가 위선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기훈은 모순 없이 딱지남과 프론트맨의 논리를 진정으로 파훼할 방법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을 테니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스타워즈: 제국의 역습>에서 신념을 고수한 캡틴 아메리카와 루크 스카이워커도 한 번 패배한 후에야 타노스와 다스 베이더를 꺾을 수 있었던 것처럼.
난 데 없는 클리프행어
문제는 만듦새다. 설령 서사적으로 필요했더라도, 허술한 전개와 불완전한 내용 때문에 클리프행어는 작위적이다. 기훈의 위선을 드러내는 쿠데타만 해도 설득력이 없다. 그의 쿠데타 시도 자체는 자연스럽다. 기훈은 애초에 오징어 게임을 파괴할 작정이었으므로. 그러나 게임 중단을 원한 참가자들이 쿠데타에 순순히 가담하는 전개는 부자연스럽다. 지금까지 챙긴 상금만으로도 그들은 빚을 갚고 수술비를 낼 수 있기 때문.
즉, 기훈과 프론트맨이 대면하는 엔딩을 위해 이야기가 작위적으로 설계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오징어 게임 2>는 전반적으로 산만하다. 시즌 3을 위해 포석을 두는 데만 열중한 나머지 서사를 깔끔하게 갈무리하는 인물도, 눈에 띄는 새 캐릭터도 없다. 극을 주도한 딱지남과 프론트맨은 기존 캐릭터이고, 그 외의 인물들은 조상우나 '장덕수'(허성태)만큼의 생동감을 갖추지 못했다.
그나마 성전환 수술 비용을 벌기 위해 게임에 참가한 특전사 군인, '조현주'(박성훈)가 눈에 띈다. 희생정신과 의리, 정의감과 풍부한 전투 경험을 다 갖춘 그녀는 트랜스젠더라는 선입견과 편견을 파괴하면서 유의미한 서사와 분량을 챙기는 데 성공했다. 탈북자 문제, 전세 사기 피해, 미혼모와 낙태 이슈, 청년층의 영끌 투자 열풍 등 여러 사회적 문제를 투영하려 한 시도 중 유일하게 성공한 사례이기도 하다.
시즌 2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분량을 늘린 듯한 구성도 발목을 잡는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기훈과 준호가 섬으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준호의 섬 탐색은 곁가지로 밀려난다. 시즌 2에서 아무런 활약도 보여주지 못할 캐릭터를 위해 에피소드 하나를 날린 셈이다. 그 결과 클리프행어를 마주했을 때, <오징어 게임 2>가 다음을 위한 7시간짜리 티저처럼 느껴지는 실망감을 지울 길이 없다.
긴장감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오징어 게임 2>가 시청자의 기대를 온전히 충족시킨 것도 아니다. 기훈과 프론트맨의 대립각을 강조하기 위해서 장르적 쾌감을 일부 포기한 대가다. 물론 게임 자체가 재미없지는 않다. 새로운 게임을 활용해 긴장감을 조성하는 시도는 나름대로 유효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직후에 제기차기, 공기놀이, 비사치기, 팽이 돌리기 등과 같이 지난 시즌에 없었던 게임을 배치해 예상을 빗겨 나간 구성이 대표적이다.
짝짓기 게임을 전환점으로 활용한 선택도 영리했다. 게임과 투표를 진행하면서 참가자들은 나름대로 서로 의지할 팀을 만든다. 그런데 짝짓기 게임을 기점으로 참여자들의 본성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로 인해 불신의 씨앗이 커지고, 참가자들의 관계는 변곡점을 맞이한다. 짝짓기 게임이 일반적으로 단합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활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실과 정반대 되는 양상은 더욱 흥미롭다.
하지만 두 번째 시즌이라는 예상된 함정을 피하지는 못했다. 동화 같은 세트와 동요가 배경으로 깔린 살육 장면은 본질적으로 지난 시즌이 보여준 폭력적인 스펙터클과 다르지 않기에 상대적으로 더 지루하다. 한국 한정으로는 캐스팅이 이 문제를 심화한다. 지난 시즌과 달리 각자 드라마 주연을 맡아도 될 배우들이 대거 합류한 결과 누가 살고 죽을지 모르는 스릴을 거의 느낄 수 없다.
게임이 끝날 때마다 치러진 투표도 역효과를 낸다. 투표는 일종의 사회적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대화와 협상, 토론과 설득이 잘 통하지 않을 정도로 양극화된 한국 정치 지형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듯하다. 아슬아슬하게 갈린 투표 결과에 불복하는 모습 등도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 투표도 세 번째에 이르면 긴장감보다는 지루함의 비율이 높아진다. 투표가 어떻게 진행되든 간에 게임이 계속 진행될 거라는 사실이 뻔히 보이기 때문.
위선자의 상술
결과적으로 <오징어 게임 2>는 속편의 존재 자체가 내재한 모순점을 노출하고 만다. <오징어 게임>의 메시지는 상술했듯이 명확했다. 탐욕으로 인해 극한으로 나아간 자본주의의 끝에 위치한 경제적 양극화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였다. 가난한 이들이 생존하기 위해 서로를 죽일 때, 그 과정마저도 상업화하고 즐기는 현대 사회의 구조와 폭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 2>는 본말이 전도됐다. 날카로운 풍자는 잊고, 어린 시절 놀이를 잔인하게 만들면 성공한다는 데에만 초점을 맞췄다. 즉, 철저히 돈벌이를 위한 작품으로 변했다. 매텔, 크록스, 조니 워커를 비롯해 콜라보 대열에 합류한 수많은 브랜드는 그 방증이다. 황동혁 감독도 시즌 1의 금전적 보상이 충분하지 못한 나머지 계획에도 없던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으니 예견된 상황일지도 모른다.
물론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이러한 비판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이미 <오징어 게임 2>가 갖가지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으니까. 넷플릭스 드라마 최초로 서비스 중인 모든 국가(93개국)에서 동시 1위를 달성했고, 첫 주에만 6,800만 시청수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드라마 역대 첫 주 최다 시청수도 경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징어 게임 2>는 빚 좋은 개살구에 불과해 보인다. 시즌 1에 비해 덜 흥미롭고, 짜임새도 부족한 어린 시절 놀이만으로는 노골적인 상업성과 지독한 돈 냄새가 다 가려지지 않기 때문. <오징어 게임>이라는 브랜드가 <오징어 게임>이라는 작품의 메시지를 지운 셈이고,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꼴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시즌 3의 전개에 따라 시즌 2가 재평가될 여지가 있다' 정도가 아닐까.
Poor 형편없음
돈에 미친 개가 돈 냄새 묻은 개를 나무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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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뿌리는 여성을 휘감아 자라나고,
인도보리수는 독특한 일생을 보낸다.
새똥에 들어 있는 씨앗이 다른 나무에 떨어지고, 공중에 뿌리가 솟아나와 바닥까지 자라난다.
숙주였던 나무는 가지로 휘감아 죽이고 이 신성한 나무는 홀로 선다.
<신성한 나무의 씨앗> 오프닝 中
<신성한 나무의 씨앗> 메인 포스터는 굉장히 특이하다. 영화 타이틀이 인물을 강조하는 프레임을 넘어 다른 텍스트의 자리까지 침범하고 있다. 히잡을 쓴 여성의 눈을 가린 안대는 배경과 동일한 색깔을 띠며 마치 한 몸인 것처럼 동화되어 있다. 경직되어 있는 듯한 여성은 채도가 높은 배경과 대조되는 회색빛 무채색으로 온통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을 둘러싼 것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신성한 나무, 인도보리수
위에서 아래로 하강하는 총알의 모습으로 영화 오프닝이 시작된다. 손에서 책상으로 흩뿌려지는 총알들은 마치 씨앗의 모습과도 같다. 무력을 상징하는 총알은 대상 모를 개개인의 믿음을 낳는다. 그 직후 어두운 복도에서 충성을 맹세하는 이만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이 영화의 극이 어떻게 진행될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승진을 약속 받은 이만은 동시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명목의 총을 하사받고, 이는 더 높은 지위와 커다란 권력은 무력을 동반하기 마련임을 드러낸다. 공과 사가 명확하게 분리되어 평화가 지켜져야 할 가정 내에 총이 들어옴으로써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가족 사이에 벌어질 것임을 암시하며 관객의 불안감이 커지기 시작한다.
인도보리수는 인간에게 발견되어 학명을 지니게 된 나무, 그런 단순한 생물의 개념을 넘어 ‘신’이 깨달음을 얻은 나무이자 인도 문화와 종교 내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하나의 표상으로 인식된다는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름 모를 나무는 자신으로부터 자라난 가지에게 죽임 당하고 삼켜지면서 '인도보리수'의 존재가 완성된다. 그 결과물은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열매이다. 누구에게나 찬양 받는 신성함, 올곧음, 강직함을 맛본다.
그들의 종교란 그렇다. 여성을 짓밟고 무참히 자라난, 무결하고 고결한 신성을 만끽한다. 신은 말했다. 늘 약자를 보듬어야 하고 서로 사랑하며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고 타이른다. 하지만 인간은 나약하기 짝이 없다. 이해관계에 얽혀 본인이 스스로 만든 신념에 갇혀 살아간다. 누군가는 본인을 희생해가며 상대방을 위하지만 누군가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며 욕망을 채우고 만다. 그러나, 적어도 여성들은 각자의 뚜렷한 입장 속에서 옳고 그름을 아우르는 상식선을 지키며 돕고 도움을 받는다. 가족의 기둥인 엄마이자 현실에 안주하며 다른 이를 쉽게 비난하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이에게 도움을 주고자 했고 비합리적인 현실에 눈을 뜨는 복합적인 캐릭터, '나즈메'를 신과 같은 모습으로 연출하는 장면이 극중 딱 두 번 나온다. 두 장면은 첫 번째로 발발된 갈등 상황에서 비슷한 타이밍에 나오는데, 아주 대조적으로 드러난다.
나즈메는 딸 '레즈반'의 친구 '사다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국가의 통치에 반발하는 폭동 세력으로 인식하고 딸에게 가까워지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이는 그저 나즈메 스스로 만든 불안감에서 비롯된 상황에 갇혀 자신의 손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딸 레즈반까지 컨트롤하는 것 뿐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판단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그러나 교정을 걷고 있던 사다프가 우연히 시위대에 휩쓸리는 바람에 큰 부상을 입고 급하게 레즈반의 집에 온다. 나즈메는 사다프의 모습을 확인하고 별 말 없이 그의 눈에 박힌 산탄총 탄환을 아주 조심스럽게 뺀다. 이 장면은 매우 성스럽게 연출되었고, 거의 직후에 동일한 사운드와 연출이 나즈메가 이만의 면도를 해주는 장면에도 나온다. 하지만 나즈메는 피에 물든 탄환을 물에 흘려 보내고 신경질적으로 손을 닦는다. 남성의 폭력에 의해 여성에게 박힌 탄환들은 외면하고, 오로지 본인이 창조한 스트레스만 받으며 맘편히 자라난 남성은 여성 손에 의해 조심히 다뤄지고 깔끔하게 마감되고 있기에 국가적 문제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후반부에 둘째 딸 '사나'가 아빠 '이만'을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 스피커로 가장 좋았던 시절의 가족들 목소리를 들려주는 장면에서 이만은 분노에 휩싸여 스스로 그 스피커들을 망가뜨린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잔상까지 자신의 손으로 없애버린 것이다. 어리석은 감정에 휩싸여 그가 직접 궁지로 몰아 넣었던 아내와 딸들이 살아 돌아오고, 자신이 그렇게도 끔찍하게 아꼈던 총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흙에서 나온 손, 그리고 옆에 남겨진 총. 폭력을 양분삼아 여성을 희생하며 자라났던 나무의 최후였다.
*여성, 삶, 자유!
영화에서 보통 가로 화면과 세로 화면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기 마련인데, <신성한 나무의 씨앗>에서는 가로로 진행되는 스토리의 주춧돌로서 세로 화면이 활용된다. 이례적으로 두 가지의 구도가 동일한 목적을 위해 사용된 것이다. 더 나아가, 세로 화면으로 드러나는 상황들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편집 덕분에 관객의 의식이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세로 화면은 다큐멘터리에서 주로 활용되는 자료화면 그 자체이기에, 사실전달이 주 역할임은 변하지 않으나 극에서 결코 동떨어져 있지 않은 위치를 유지하는 독특한 연출 방식이 돋보인다. '사나'는 그러한 세로 화면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극중 스토리에 녹여내는 주요 인물이다.
(왼쪽부터) 나즈메, 레즈반, 사나
중후반부의 극을 극도의 긴장 상태에 몰아넣은 '총'의 행방. 나는 오히려 사나가 총을 가지고 있어서 속이 시원했다. 마지막 장면에 나오듯 사나는 엄마아빠가 바라보는 어린아이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항상 인스타그램 릴스를 확인하고, 언니인 레즈반에게 DM을 보내고, 헤드셋을 끼고 노래를 듣는 등 바깥세상과 단절되어 있는 모습이 강조되며 어린이 취급을 받지만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있었다. 아빠는 옳지 않고 모든 걸 맘대로 하고 엄마는 항상 져준다. 설령 사나에게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물리적인 폭행을 가하지 않았더라도, 간접적인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영향을 끝도 없이 받고 성장해왔으리라 예상된다. 가족간에 존재했던 그 모든 문제의 무게감을 오롯이 받아내다가, 히잡 시위를 이끌어낸 여성들처럼 타파하려고 일어선 것이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외압을 두려워 하지 않고 행동한 사람들을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만. 개인정보가 만천하에 드러나서 두려워하는 그의 옆에 우연히 정차한 운전자는 히잡을 안 쓴 여성의 모습이 보인다. 지극히 평범한 현대 여성의 모습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굉장히 임팩트 있는 균열을 만드는 역할로서 활용된다. 이만은 순간적으로 화가 나 창문을 열지만 결국 아무것도 못한다. 악은 선을 마주하면 두려워하고 움츠러든다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던 거 같다. 가장 차분하지만 극적인 연출, 그야말로 영화다운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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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나무의 씨앗>은, 극영화의 도구를 잘 빌려온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국가 체제의 문제점을 가정 스릴러의 소재를 빌려 굉장히 효과적으로 담아냈다. 잘못에 저항하면 처벌 받는다는 영화 이후의 결과를 알고 있기에 엄격한 기준으로 선별한 배우들과 대부분이 실내인 제한된 장소에서 촬영하는 상황 속에서도 이렇게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정신력과 사명감에 존경을 표한다. 극에서는 주요 사건의 스토리텔링에 집중하기 위해 히잡 시위에 대한 결과가 포함되지 않았지만, 실제 히잡 시위는 여성들에게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다만, 히잡에 대한 선택권과 자유도가 확연히 늘어났으나 아직까지도 국가적으로 시행되는 여성 복장규정과 처벌은 굳건하다고 한다. 감독과 배우의 용기라는 씨앗으로 말미암아, 이란에 자유의 나무가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낸다.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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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캡틴아메리카4, "그"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
2021. 04. 28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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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
*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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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타임라인*
00:00 이제 시작이다
00:43 캡틴아메리카4가 온다
02:34 1대 캡틴, 크리스 에반스
03:48 숙제타임
05:17 와칸다 포에버
06:05 제2의 블랙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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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슈퍼배드 4> 1차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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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iversalpictureskr 장르: 액션-코미디 출연: 스티브 카렐, 크리스틴 위그, 윌 페럴, 피에르 꼬팽, 조이 킹, 소피아 베르가라, 스티븐 콜베어 미란다 코스그로브, 클로이 파인먼, 스티브 쿠건, 크리스 리노드, 다나 가이어, 매디슨 폴란 각본: 마이크 화이트, 켄 다우리오 감독: 크리스 리노드 공동연출: 패트릭 드라게 프로듀서: 크리스 멜라단드리, 브렛 호프만 7년 만에 돌아온 슈퍼배드 시리즈! 세계 최강의 악당에서 AVL(안티 빌런 리그) 요원이 된 그루가 미니언들과 함께 신나고 흥미넘치는 새 챕터를 열 일루미네이션의 ‘슈퍼배드4’로 돌아왔습니다. 2022년 여름, 블록버스터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 세계에서 약 1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일루미네이션의 ‘미니언즈2’에 이어, 역사상 가장 큰 글로벌 애니메이션 프랜차이즈의 그루(오스카 후보 스티브 카렐)와 루시(오스카 후보 크리스틴 위그)와 딸들인 마고(미란다 코스그로브), 에디스(다나 가이어), 아그네스(매디슨 폴란)의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기에 아빠가 된 그루를 괴롭히기 좋아하는 새로운 가족 그루 주니어도 함께 찾아옵니다! 그루는 막심 르 말(에미상 수상자 윌 페럴)과 그의 팜므파탈 여자친구 발렌티나(에미상 후보 소피아 베르가라)라는 새로운 적과 마주하게 되고, 그루의 가족은 그들로부터 도망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 영화는 조이 킹(불릿 트레인), 에미상 수상자 스티븐 콜베어(더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 그리고 클로이 파인먼(SNL)이 새로운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합니다. 피에르 꼬팽이 미니언즈의 상징적인 목로리로 돌아오며, 오스카 후보에 오른 스티븐 쿠건이 사일러스 램스바텀으로 돌아옵니다. 논스톱 액션과 일루미네이션 특유의 반항적인 유머로 가득한 ‘슈퍼배드 4’는 미니언즈의 공동 제작자이자 오스카 후보에 오른 크리스 리노드(슈퍼배드, 마이펫의 이중생활)가 감독을 맡았고, 일루미네이션의 선구적인 설립자이자 CEO인 크리스 멜라단드리와 브렛 호프만(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미니언즈 2)이 제작했습니다. 패트릭 드라게(씽2게더, 마이펫의 이중생활 2 애니메이션 감독)가 공동 연출을 맡았으며, 에미상 수상에 빛나는 화이트 로터스의 마이크 화이트와 슈퍼배드 시리즈의 베테랑 작가 켄 다우리오가 각본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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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웬디> 스페셜 예고편
‘피터팬’ 탄생 110주년 기념,
새로운 주인공, 새로운 시각의 All New ‘피터팬’!기찻길 옆, 작은 식당이 세상의 전부인 소녀 ‘웬디’는
내면에 차오르는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매일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피터’가 나타나고
‘웬디’와 쌍둥이 형제 ‘더글라스’, ‘제임스’를 이끌고 여정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로 어른이 되지 않고 영원히 어린이로 살 수 있는
신비로운 섬에 도착하게 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