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M2021-03-22 20:33:00
피아니스트 / The Pianaist
/ 감상 /
_ 사실 저번에 본 피아니스트보다 이 피아니스트를 더 보고 싶어했었는데...
전쟁의 참상을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인 것 같다.
내가 여태 본 전쟁영화는 대부분 군인들의 전쟁터에서의 삶을 보여준다거나,
수용소에서의 삶을 보여주었는데,
이 영화는 실제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갔던 한 사람의 인생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성을 극대화 시키고 보는이로 하여금 공감을 잘 이끌어 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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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슈필만의 인생의 버팀목이다.
위기의 순간마다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그가 낙담하고 인생을 포기하고 싶어질때면 피아노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더이상 가라앉지 못하게 지탱해준다.
그리고, 그의 목숨을 실제로 살려주었다.
후반부에서 독일장교를 만났을 때, 만약 슈필만의 직업이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면 어떘을까?
과연 슈필만을 살려주었을까 싶다.
피아노의 선율에 녹아들어간 슈필만의 감정이 장교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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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었던 씬은 앞에서 말한 슈필만이 장교앞에서 연주했을때이다.
슈필만이 그렇게 치고 싶어했던 피아노..
그는 이게 자신의 마지막 연주라 생각하고 모든 감정을 담아 연주하였던 것 같다.
그 장면을 보고 전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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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젠펠트가 결국 슈필만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죽게 된다.
난 호젠펠트의 마지막에 대하여 그리 안타깝지 않다.
그가 아무리 슈필만을 도와주었어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집단의 우두머리 급이었으니
그거대로 대가를 치르는게 맞다고 본다.
그를 인정하는건 그 이후에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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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연기에 박수를..
난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그 특유의 우울하고 슬픈 연기가 너무 좋다.
아련하고 우울한 연기 원탑 에이드리언 브로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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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리저튼>, 성(sex)에 무지한 우리들
성(sex)에 대한 의혹, 두려움, 거부감 이런 것은, 많은 작품 속에서 <나 자신 조차 내가 진정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모습>,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모습에 대해서는'진짜’가 아니라고 여기면서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 등으로 나타나곤 한다.
결국 ‘성(sex)’에 대한 의혹이나 거부감, 두려움 등은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 <나는 나의 소망에 따른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나의 선택은 내가 제대로 나의 소망을 보지 못하고, 제대로 나의 모습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인가> 등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래서, 성에 대한 의혹이나 두려움, 거부감 등을 가진 인물들은 작품속에서 종종 상대방과 계약관계를 맺거나, 가짜 연극 무대를 펼쳐 주변 사람들을 눈속임하려고 한다.
자기 자신 조차 스스로를 속이고 있거나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들은 쉽게 '계약 결혼, 계약 연애', '~하는 척'하는 거짓 연극을 쉽게 시작한다.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던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
'성에 무지한 처녀'의 원형적 캐릭터를 간직한 여주인공 '다프네', 전형적 난봉꾼이자 잡놈의 캐릭터를 간직한 남주인공 '사이먼', 이 두 사람 간의 '계약연애'는 성에 무지하고 성에 대한 두려움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두 사람이, '성'을 매개로 진짜 자기 자신의 소망을 깨닫고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이먼과 다프네
<브리저튼>은 '성에 대한 의구심과 두려움의 극복, 성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곧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문제, 나의 진짜 소망을 왜곡없이 들여다보는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이먼과 다프네의 관계가 '가짜'에서 시작하여 '진짜'가 되기까지, 이 작품은 ‘성(sex)'이 갖는 두 가지 측면, 즉 <착취와 억압의 매개가 되기도 하는 속성>과 <사랑과 생명의 근원이 되는 속성> 모두를 잘 보여주고 있다.
사이먼
사이먼은 ‘성(sex)'이 갖는 부정적 측면, 왜곡된 틀에 갇혀 있던 인물이다. 성을 착취와 억압의 도구로만 여긴다. 그것이 갖고 있는 생명근원적 힘, 사랑의 힘은 보지 못했다. 이 또한 성에 대한 두려움과 의구심, 의혹의 문제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누구보다 성(sex)을 잘 안다고 자부했을 잡놈같은 인물이었으나, 사실 그 누구보다 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성에 무지한 존재였다.
다프네
다프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분명했다.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기!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성’에 대한 그녀의 무지, 두려움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선택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똑부러지고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였으나, 정작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진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이 없었다. 그녀의 성에 대한 무지는 '가짜'를 '진짜'로 믿게 만든다.
성(sex)을 통해 성의 긍정적 속성을 새롭게 깨달아 나가는 두 사람
성에 대한 왜곡, 성에 대한 무지는, 사이먼과 다프네가 진짜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성에 대한 왜곡과 무지는 바로 이 성(sex)을 통해서만이 극복할 수 있었다.
유독 두 사람의 정사 장면이 화제가 된 <브리저튼>. 이는 두 사람 관계가 가짜에서 진짜가 되기 위한 필수 관문이었다. '성'에 대한 왜곡과 무지를 바로 잡을 수 있었던 시간. 가짜에서 진짜가 될 수 있었던 시간.
나 자신이 진짜 소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의 선택이 나의 소망에 따른 것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종종 그 소망은 ‘가짜‘, ‘거짓‘, ‘~하는 척'이기도 하다.
여러 작품 속 '계약 연애', '계약 결혼' 같은 설정이 종종 나온다. <브리저튼>도 그렇다. 계약연예로 시작한다. ~하는 척, 가짜로 시작한 관계이다. 이 '계약 관계(연기하기)'의 설정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우리의 실제 모습과 많이 닿아 있다. 진짜 나의 모습은 감추고, 진짜 나의 소망은 억누르고, 진짜 나의 모습을 모르는 상태에서, 가짜 소망이나 가짜 모습을 내세워서 관계를 맺는 것!
그러한 관계는 십중팔구 ‘지속'에 실패하게 된다. 결국 수많은 작품들은 말한다.
“내 안의 감추어진 소망이 드러나고, 나 스스로 그 모습을 인정하지 않는 한 진짜 인생은 시작될 수 없다고!"
수많은 작품 속에 '계약 연예', '계약 결혼' 또는 '~하는 척 하는 가짜 연극판' 같은 설정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단번에, 자신의 진짜 소망을 알아차리거나 받아들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기에! 자신 조차도 자신을 속이기가 쉽기에! 나 조차도 내가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잘 모르기에!
다프네와 사이먼은,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하는 척'하는 '가짜 연극 무대'를 거치면서, “진짜”를 발견하게 된다. 그 지점에서부터 “진정한 관계의 지속”도 가능해진다! 더 이상 연극이 아닌! 진짜 자기 인생 속 진짜 관계가!
우리 모두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연기’하는 과정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단계일지도!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나의 진짜 소망을 안전하게 탐색할 수 있는 <가짜 판>, <연극무대>가 필요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문학 행위 자체가 (문학을 감상하고 체험하고 생산하는 그 모든 행위가) 우리에게 일종의 안전한 <시뮬레이션> 판이 되어주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남기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의 이야기를 교류하는 모든 행위가! 한결 안전하게 감추어진 나의 진짜 욕망, ‘진짜 나’의 모습을 탐색할 수 있는 판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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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보면 화들짝 놀랄 00년대 청춘 갬성
감성에 살고 감성에 죽다.
그시절 반윤희, 강지한은 모이세욘..타고난 파이터이며 아웃사이더인 민, 폭력 조직에서 성공하기를 꿈꾸는 태수, 미래에 대한 소박한 꿈을 버리지 않는 환규는 무차별적 싸움과 혼돈속에서 10대를 보낸다. 어느날 환규를 따라 나간 노예팅에서 민은 로미를 만나 운명적 사랑을 느끼고 이날 이후 민은 기꺼이 로미의 노예가 된다. 민과 환규는 방황하던 마음을 잡고 분식집을 개업하여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쓰고 감옥에서 나온 태수는 전갈 조직의 중간 보스로 자리를 잡는데..
우연히 다모임 게시판에서, 우리 학교 여자애들의 외모를 탓하는(--;) 지은성의 글을 보고 리플을 단 나 한예원. 아니 불만 있으면 달래서 달았더니 그녀석,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대고 쫌스럽게 군다.
날 자기 여자친구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에 대한 얘기는 한 마디도 해주지 않는 녀석.... 정말, 나를 진짜 좋아하기는 하는 걸까?
성격과 외모에서 모두 '갓 상경' 한 느낌을 풍기는 한경, 서울에서 엄마와 함께 살기 위해 말 그대로 '갓 상경'하여 강신고로 전학을 오는데... 그러나 그녀의 서울 생활은 정신적, 신체적 충격의 연속이다. 인근 학교의 여자애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는 원조 킹카 반해원은 허둥대는 한경의 안쓰럽고도 귀여운 모습에 반한다. 그리고 성격대로 저돌적으로 대시한다.. 문제는 옆 학교 성권고의 짱 정태성도 바로 이 정한경을 찍었다는 사실이다. 자존심과 사랑을 모두 건 둘의 대결은 한치의 양보도 없는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모범시대, 불량영웅 중삘(feel)이가 왔다!. 은하 미용실의 외동아들이자 문덕고의 '쌈장'인 중필(류승범 분)의 하루 일과는 무척이나 고단하다. 물론,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학교 가는 일. 일단 학교 조무래기들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하기 위해선, 호시탐탐 그의 자리를 노리고 있을 무리들과 겨뤄 심심찮게 얘깃거리를 제공해야 하고, 비밀 아지트로 활용하고 있는 학교 옥상도 관리해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태풍처럼 등장한 전학생 상만. 그 일대를 초토화하며 주먹세계를 평정하려 한다는 소문이 그의 귀에도 들려온다.
그와중에 중필을 보호하겠다고 겁없이 나선 나영은 무모한 상만과의 싸움에 참패, 초죽음이 되어 돌아온다..자유롭게 세상을 날고 싶은 엉뚱한 몽상가 태희 사회로 첫 발을 먼저 내딛은 현실주의자 혜주 생계를 위해 꿈은 잠시 뒤로 미뤄둔 꿈많은 모험가 지영 친구들의 든든한 버팀목 쌍둥이 비류와 온조 십대에 만나 모든 게 행복했고 즐거웠던 우리 각자 다른 네 갈래 길의 스무살을 만났다. 그렇게 서로의 길로 향하던 우리에게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 한 마리 우리를 하나의 길로 이어줄 수 있을까? 잘 있었니? 나도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
아버지의 실직으로 닭집 딸이 된 수완, 대학 2학년인 그녀는 등록금을 위해 고액과외를 뛴다. 책상 밑으로 거울을 들이밀며 그녀의 치맛 속이나 궁금해 하는 골칫덩이들과의 험난한 대결, 불의를 참을 수 없는 그녀는 오늘도 과외 7일만에 짤리는 사고(?)를 치고 만다. 그러나 "과외 없으면 등록금도 없다"를 외치는 엄마 등쌀에 또다시 과외전선으로 뛰어든 그녀, 마침내 막강 난적 지훈을 만나게 된다. 벼락부자집 장남, 싸움꾼에, 학교 '짱'에, 고등학교를 2년 꿇은(?) 전적 화려한 동갑내기 제자 지훈...
첫 만남부터 반말은 기본이고 수업시간 내내 담배를 피워대는 지훈에게 질려버린 수완, 그만 두기엔 또 사고 치고 엄마 볼 면목이 없고 어떻게든 기선을 제압하려 두 팔 걷어 붙여 보지만 지훈의 적시타 한 방에 나가 떨어지고 만다. 그렇게 시작된 동갑내기 과외 수업, 그러나 그 둘 주변엔 심상찮은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는데...
2002년 서울, 63빌딩. 30층, 게임 기획자 형태는 2년 넘게 준비해온 채팅 게임 사이트 ‘후아유’의 대박을 꿈꾼다. 하지만 회사는 자금줄이 끊기고, 월급은 막히고, 여자 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채이기까지 한다. 그러던 중, ‘후아유’를 비방하는 당돌한 여자 별이를 만난다. 지하 1층, 수족관 다이버 인주는 한번도 시연해본 적 없는 인어쇼를 위해 연습에 열중이다. 동료들 모두 마다하는 인어쇼를 준비하며 고군분투하지만 가능성이 안 보이고,수영선수 시절 남자친구였던 호진의 유학 소식에 쓸쓸해하던 중 채팅게임 사이트 ‘후아유’에서 맘이 통하는 친구 멜로를 만난다. 별이가 인주라는 걸 알고 멜로라는 아이디로 의도적으로 접근한 형태는 게임과 현실, 양쪽에서 이중적인 모습의 인주에게 호기심을 느끼다가 그녀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인주는 멜로가 바로 형태라는 걸 모르는채, 얼굴도 모르는 멜로에게 점점 빠져든다. 형태를 무시하고 멜로만 찾는 인주의 모습에 아이러니를 느끼는 형태.. 급기야 자기의 분신인 멜로를 질투한다. 온라인의 관계와 현실 관계의 간극이 커지면서 갈등하던 형태는 인주를 만나 고백할 것을 결심한다. 서로 연락도, 만나지도 않기로 약속했던 인주도 만나자는 멜로의 제안을 받아들이는데.
169cm, 95kg. K-1이나 씨름판에 나가도 거뜬할 체격을 가진, 그러나 한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여린 마음의 소유자 한나. 신이 그녀에게 허락한 유일한 선물인 천상의 목소리로 가수를 꿈꾸지만 미녀 가수 ‘아미’의 립싱크에 대신 노래를 불러주는 ‘얼굴 없는 가수’ 신세다. 생계를 위해 밤에는 ‘폰팅 알바’까지 뛰어야 한다. 쉴 틈 없이 혹사당하는 목. 그러나 정작 가장 괴로운 건 그녀의 마음이다. ‘아미’의 음반 프로듀서이며 자신의 음악성을 인정해준 유일한 사람 한상준을 남몰래 사랑하게 된 것. 짝사랑에 몸달아하던 그녀, 드디어 꿈에 그리던 그의 생일파티에 초대받고 들뜬 마음으로 한껏 멋을 부리고 나타나는데... 그런데 그날 밤 이후 거대한 그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69cm, 48kg. 뽀샵으로 그려도 힘든 완벽한 S라인 몸매의 소유자 ‘제니’. ‘한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음반활동을 중단하게 된 ‘아미’의 공백을 멋지게 메꾸어 줄 상준에게는 그야말로 구세주다. 교통사고 당한 사람이 넋을 놓고 쳐다보다가 병원가기를 잊을 만큼 황홀한 미모의 그녀는 고맙게도 노래실력까지 사라진 ‘한나’ 만큼 돼주신다. 그러나 떨이로 파는 생선에 환장하고, 넘어진 자장면 배달부의 빈 그릇을 친절히 주워주며, 예쁘다는 말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감동하고, 남이 먹다 남긴 것도 거침없이 주워 먹는 등 희한한 엽기행각을 벌인다. 이상하리 만큼 착한 미녀 제니! 이 모든 상황을 의혹과 질투의 눈으로 바라보는 라이벌 ‘아미’. 점점 자신의 입지를 위협하는 제니의 존재에 위기감을 느끼고, 독특한 미녀 제니의 뒷조사를 감행한다. 과연 그녀의 S라인 뒤에 숨겨진 살 떨리는 비밀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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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은 게 아닌 잠시 묻어두었을 뿐
난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을 좋아하는 팬이다. 스토리 부문이 아쉽기도 하지만, 신카이 감독이 만드는 작화 퀄리티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이다. 특히 <너의 이름은>(2016)을 보고 앞으로 이런 아름답고 놀랄 만한 영화들이 무수히 나온다는 미래에 흥분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양한 영화들을 보고 내 생각을 적고 싶다는 욕망이 들끓어 영화 글을 적어야겠다고 다짐한 방아쇠 같은 영화이기도 하다. 수많은 명작들을 뒤로하고 <너의 이름은>으로 영화 글을 적어야 하겠다고 다짐한 나 자신이 지금 생각해보면 서툴고 웃긴 계기다. <초속 5센티미터>는 <너의 이름은>이 떠오르는 영화이자, 그 시절의 내가 품었던 마음을 느끼게 해 준 영화다. 그리고 첫사랑도.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너의 이름은>(2016), <초속 5센티미터>(2007)
<초속 5센티미터> 네이버 스틸컷
작화
신카이 마코토 감독하면 빠지지 않는 키워드다. 그가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작화는 실제 사물과 매우 흡사한 퀄리티를 꾸민 작화로 유명하다. <초속 5센티미터> 역시 도시와 자연 풍경과 책, 옷 등과 같은 사물이 실제 공간과 사물을 연상케 하는 작화를 보여준다. 이 영화 과연 2007년 작품인가 감탄을 자아내는 퀄리티.
그러나 인물의 작화는 사물을 표현한 작화보다 떨어진 퀄리티를 보여주지만,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주변 작화에 더 큰 매료가 되기 때문이다.
황혼
잠시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중 <너의 이름은>(2016)과 이 영화 장면을 비교해보고 싶다. 두 영화 공통적으로 나오는 장면은 해가 지는 노을 풍경 즉, 황혼 시간대다. 황혼 시간대에 두 남녀가 같이 있는 장면을 통해 더 낭만적이고, 주황빛이 돋아나니 따뜻한 색감을 보여준다. 다만 이 황혼의 연출 목적이 두 영화가 다르다. <초속 5센티미터> 2부 '코스모 노트' 중 타카키와 카나에가 만난 황혼 장면은 타카키를 향한 카나에의 짝사랑이 노을빛을 통해 더 애틋하게 담기지만, <너의 이름은>에 등장하는 타키와 미츠하가 만나는 황혼 장면은 보고 싶었던 두 남녀의 만남이 노을빛을 통해 더 절실하고 소중한 시간처럼 다가온다.
여담으로, 또 하나 찾은 두 영화의 비교점은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상승과 하강이다. <초속 5센티미터>는 가고시마 지역에서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장면과 우주선이 상승하며 나타난 거대하고 하얀 연기가 등장한다. 이 장면이 <너의 이름은>에서 하늘에 하얀 연기를 뿜어내며 하강하는 운석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첫사랑
<초속 5센티미터>는 잊어지지 않은 첫사랑의 감정을 보여준다. 타카키가 첫사랑 아키라와의 만남을 잊지 못하며 흘러가는 시간을 보여준다. 그 중간에 카나에가 타카키를 좋아하는 짝사랑 장면도 보여주지만 타카키가 추구하는 감정은 아키라와의 첫사랑이다. 그리고 그는 성인이 돼서도 다른 여자와의 만남은 고작 1센티미터 밖에 다가오지 못했다는 말과 함께 아키라를 그리워한다. <초속 5센티미터>는 첫사랑에 대한 설렘과 감정을 전해주고, 첫사랑이 지닌 미련 또한 전한다. 잊기 싫어 묻어 두었던 첫사랑의 흔적을 영화가 잠시 꺼내어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신롬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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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독일] <타인의 삶>을 보면서 배우는 정치
<타인의 삶>을 보면서 배우는 정치
- 감시자의 눈으로 본 인간의 본성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국가를 위해 감시하고, 의심하고, 고발한다. 인간의 숨결까지 탐지하려는 국가의 냉혹한 눈, 바로 슈타지의 비밀요원 게어트 비슬러. 그의 존재는 사람을 들여다보는 듯하지만 정작 인간의 마음은 닫힌 채 살아온 그림자다. 그러나 그가 감시하던 한 예술가 커플의 삶, 그 속의 자유와 사랑은 서서히 그를 흔들게 된다.
이 영화는 감동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역사적 증언이 된다. 배경은 1984년 동베를린. 철의 장막 이편, 동독은 사회주의라는 이념 아래 국가가 개인의 삶을 철저히 지배하던 곳이었다. 슈타지(Ministerium für Staatssicherheit), 국가보안부는 그런 통제의 최전선이었다. 이들은 말 그대로 '국민을 보호하는 척, 국민을 감시한' 조직이었다. 1950년부터 90년까지 존재한 이 기관은 소련의 KGB를 모델로 창설해 서방 세계의 자유주의를 '적대적 사상'이라 규정하고, 이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시민들의 일상까지 침투했다. 이 조직은 이웃, 연인, 가족의 신뢰까지 파괴해버린다.
이 냉혹한 국가 장치는 바로 냉전의 부산물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 속에서 서독과 동독으로 분단됐다. 서독은 마셜플랜과 NATO의 보호 아래 자유주의 진영의 전진기지가 되었고, 동독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일원이자 소비에트 블록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이념은 경계를 만들었고, 경계는 인간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밀어냈다.
영화 <타인의 삶>은 냉전기의 동베를린이라는 단절된 시간 속에서 감시라는 절대적 권력 아래 무너져 가던 인간성을 기적처럼 다시 일으켜 세운 이야기다. 이 영화는 한 비밀경찰의 ‘변화’나 ‘감동적 회개’를 그리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감시라는 구조적 억압이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포위하고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며 그 틈 사이로 고개를 내미는 인간적 연민의 가능성을 직조해간다.
<타인의 삶>이 보여주는 비극은 총성이아닌 침묵 속에서 벌어진다. 그것은 독재가 강요한 '침묵의 사회'며 감시가 개인의 내면까지 잠식한 체제의 결과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은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은 사람을 위해 변한다. 비슬러는 감시를 중단함으로써 처음으로 누군가의 삶에 진심으로 '참여'한다. 이것이야말로 정치가 놓친 인간의 가능성이다.
동독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며 붕괴의 길을 걷는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는 숨겨진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결국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통일을 이뤄냈다. 이 통일은 국경이 아니라 체제와 기억, 억압과 저항의 통합이기도 했다.
출처 : 나무위키
이 영화는 국가와 체제가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역사서다. 동독이라는 나라는 소련의 영향 아래 세워진 ‘작은 전체주의’였고, 감시는 단지 정치적 기술이 아닌 일상적 감각이자 언어였다. 믿음은 분해되었고, 관계는 해체되었으며, 침묵은 권력이 되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반도를 생각하게 된다. 독일은 수십 년 간 동서독 정상회담과 베를린 협약 등 정치적 협상을 통해 꾸준히 준비해왔고, 주변국 특히 프랑스의 협력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Asia Paradox’의 그림자 아래 있다. 경제적으로는 상호의존이 깊지만 정치와 안보는 대립의 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균열을 극복하지 못한 민족주의, 그리고 '존재론적 안보'에 집착하는 주변국들의 태도는 탈냉전의 기회를 아시아에서는 아직 꽃피우지 못하게 한다. 북한의 핵 위협과 중국의 부상, 미중 체제경쟁과 일본의 군사적 재무장까지 지금의 동아시아는 냉전의 유산 위에 여전히 군림하는 긴장 상태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어디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까. 혹은 들여다보는 그 순간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일 수 있을까? 우리는 체제의 감시자이면서 동시에 양심의 증인이 될 수 있는가?
비즐러는 이 질문에 대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응답한다. 침묵하는 감시자에서 말없이 도운 구원자로의 여정은 곧 인간이 시스템을 넘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변주다.
여전히 감시의 언어가 살아있는 북쪽, 그리고 여전히 분단을 일상의 배경으로 삼고 있는 남쪽. 우리는 아직도 역사 속에 머물러 있다. <타인의 삶>이 동독의 폐허 속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양심’의 존재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한반도 분단 현실에서도 중요한 울림을 남긴다. 우리는 언제쯤 타인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함께 살아낼 수 있을까?
감시의 균열에서 피어난 양심. 그 서사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이제 우리의 서사가 되어야 한다. 그런 가능성을 우리가 믿는다면 언젠가 이 땅에도 장벽이 무너질 수 있으리라
<영화에서 보는 정치> 교양 수업에서의 영화 <타인의 삶>을 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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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로 물들었던 그 바람과 돌들이 말할 때까지
다큐멘터리의 근본으로
이 영화가 취한 전략은 특이하면서도 다큐의 특성을 살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우선 여러분에게 있어 다큐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글쓴이는 어렸을 때 봤던 다큐 '인간극장'이다.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어 PD와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 모든 모습을 담는다. 영화는 이 '인간극장'형 방식을 택했다. 아마 영화의 스태프인 것 같은 사람 몇 명이 제주 4.3 사건의 목격자이자 피해자들에게 인터뷰를 진행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인터뷰를 따라 그때 겪었던 일들을 세세하게 증언한다. 영화는 이게 전부다. <비욘드 유토피아>처럼 서스펜스를 외부에서 끌고 들어오지도, <물방울을 그린 남자>처럼 미술작품 같은 시각화를 사용하지 않고 딱 논픽션의 근본 그 자체를 다룬 것이다. 이런 탓에 약간 영화가 원위치 제 자리를 맴돈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 에피소드를 다큐처럼 표현하는 것이 아닌 그 당시의 증언만 푸티지로 남겼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취할 수 있는 1차적인 줄거리를 가진 이유는 지극히 당연하다.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 때문이다.
첫째. 왜 이 영화는 단적인 에피소드를 보여주지 않는 병렬형 구조를 취한 것일까? 이는 곧 영화가 왜 편집을 이런 식으로 했을까? 와도 이어진다. 바로 이 영화에서 할머니가 입으로 전달하는 4.3 사건의 상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영화는 피해자 할머니들의 인터뷰와 제주의 풍광을 포착한 영상으로 이이루어 져 있다. 그러나 영화 후반부로 전개되면 될수록 어떤 요소가 사실상 이 풍광을 특정 방식으로 묘사한다. 이 지점에서 영화가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 방식으로 관객과 거리를 둔 의도가 이해가 된다. 이 의도와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출한 방식은 영화의 분명한 강점이다. 실제로 이 장점은 영화의 제목이 '돌들이 말할 때까지'에서도 읽을 수 있는데, 비관적이라면 비관적일 수도 있지만 역사가 개인과 한 지역에게 남긴 상흔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선택을 골랐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이 영화가 격정적인 톤을 유지했다면 윤리적인 선을 어긋나는 셈이 된다. 무슨 말이냐. 제주 4.3 사건의 전체적인 개요와도 관련이 있다. 4.3 사건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글쓴이가 제주에 나고 자라면서 들은 것은 '이념 대립을 핑계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것'이라는 점이다. 핵심은 핑계라는 점이다. 이 핑계라는 뜻은 굉장히 부당하면서도 동시에 시대적인 맥락이 있다는 뜻이다. 영화는 이 부분을 빼곡히 묘사하는 좋은 수를 보여준다. 만약 이 부분이 영화 안에서 픽션 형식으로, 내지는 기-승-전-결의 스토리텔링으로 구현됐다고 생각하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해칠 수도 있다. 왜? 감독의 감정이 틈입해서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장면이 위력이 옅어져 분노만 느껴지는 것이다. 왜 분노를 표출하겠어? 당연히 폭력의 잔혹함 때문이다. 이 폭력의 잔혹함을 고발해 당시 행정부의 극악무도함을 고발하는 것도 좋은 의도가 될 수 있겠지만 영화는 그 이전에 깔려있는 악을 고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일반적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내적 트라우마에 집중한다. 또 만약 이 영화가 자칫 개인에게 해한 폭력을 과시하고 또 영화적 재미로 활용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이 부분을 유연하게 벗어난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이야기의 재미와 박진감이 아니라 그때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라는 걸 그대로 암시하면서.
좋은 빛, 좋은 공기
영화가 구술이라는 특성을 활용한 것은 나름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구술은 곧 '입을 통해 말로 설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구술이 가진 고유의 특성이 뭘까? 바로 개인의 기억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이 기억이 사람에 따라서는 신빙성이 떨어지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개개인을 통해 역사의 거대한 부분을 보여주고자 했던 시도는 충분히 탁월했다. '고양이 대학살'로 대표되는 역사의 미시성에 대해 아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 영화는 그 측면을 보여주고자 하는 듯하다. 어떻게? 인터뷰를 통해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구체적인 진술과 다섯 명이라는 인원을 통해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이 다섯 명의 할머니들이 같은 트라우마를 안고 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조명하는 것이다. 이 다섯 명이라는 인터뷰이는 구술이라는 특성이 가진 약점 '기억이 왜곡될 수도 있다'를 다른 방식으로 피해 가는 선택이기도 한데, 반복되는 진술이야 말로 한 개인이 가진 트라우마가 일시적인 게 아닌 것임을 보여주는 반증이 된다.
또한 이 '개인에 의한 구술'이란 부분이 영화의 외부 맥락에서도 대비되는 지점이 있다. 4.3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때 굉장히 중요한 재판이 2019년 제주지방법원에서 있었다. 이 재판은 영화 안에서나 밖에서나 굉장히 중요했다. 이 재판을 영화 내적으로 어떻게 묘사했는지, 그리고 4.3의 폭력을 온몸으로 겪은 분들에게 어떤 의미로 전달하는지가 '구술'이라는 의미와 대치되면서 그 나름의 의미를 공고히 다진다. 글쓴이가 영화의 이 연출을 보면서 연상됐던 영화는 <좋은 빛, 좋은 공기>다. 이 영화는 광주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일어났던 각각의 민주화운동을 보여준 다큐멘터리다. 두 장소에서 일어났던 일을 보여주는 것이 그 영화의 핵심이었는데 이 <돌들이 말할 때까지>는 그 반대다. 공간을 특정 지역에 좁혀놓고 공통점을 가진 다섯 명으로 좀 더 구체화시켜 사건이 가진 비극성을 덧붙이는 것이다. 만약 이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를 보고 인상 깊으셨다면 <좋은 빛, 좋은 공기>를 추천드린다.
신뢰도 최상
글쓴이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장점으로 인터뷰의 퀄리티를 뽑고 싶다. 왜? 제주 선주민인 글쓴이는 2021년에 대학의 소속 학회에서 현장실습생 일을 한 적이 있다. 이 학회의 임무 중 하나는 4.3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 사실 커뮤니케이션이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물론 정정하신 분이 대다수지만 고령이다. 찾아가는 과정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인터뷰 내용은 5명의 할머니에 각자 변형을 주면서 핵심만 쏙쏙 빼내는 정교한 인터뷰 능력을 보여준다. 가령 A 할머니는 사람들이 죽는 모습 그 자체를 목격한 분이다. B 할머니는 의사소통이 어렵다. 왜? 언어를 평생 배운 적이 없으니까(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영화 안에서 확인하시라). C 할머니는 공부 열심히 하셨다. 당시에 사회구조가 여성이 날개를 펼치기엔 어려운데 이 분은 예외다. D 할머니는 위의 분과 이유로 의사소통이 어렵다. 이 이유는 영화가 이데올로기에 의한 폭력을 묘사할 때 볼 수 있었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D 할머니의 존재는 영화에서 분기점이 되면서 4.3 사건을 겪은 이들을 한 데로 묶는데, 영화 안에서 이 인물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확장시키는지가 아주 흥미롭다. 어떤 대상에게 신뢰도를 불어넣는 방식은 각자 다르다. 이 영화는 다양한 인물군으로 특정 인물을 빛내는 선택지를 골랐는데 이야기의 형식의 측면에서 훌륭했다고 쓰고 싶은 부분이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
나이를 들며 영화에 관심이 생기면서 깨달은 건 내가 다양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영화가 결국 책과 이어지는 취미라서가 아니다. 이런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방법론을 존중하는 방식을 어느정도는 알게 된 것 같다. 글쓴이가 이 영화를 보고 다시 느낀 것은 생명의 고귀함이다. 결국 살아있다는 것. 그 후에 떠나간 사람들을 기억한다는 것. 역사의 부조리함에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해 증언한다는 것. <너와 나>에서 '너와 나'를 이루는 이 세상이 붕괴되는 비유가 아니더라도, 인간 하나가 이 세계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장점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나는 이 사건이 그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 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고 자랐던 제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런 글이라도 쓰는 것 말곤 없다는게, 이제 세상에 없다는 것이 이렇게 슬픈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는 것이 속상하고 씁쓸하다. 나 역시 제주의 수많은 돌들이 말할 때까지 이 기억을 오래오래 가지고 있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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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에이트 쇼 | 메시지도 이야기도 놓쳐버린 불상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후 평범하게 살아가던 '진수'(류준열). 하지만 그는 지인을 따라서 주식에 손을 댔다가 투자한 돈을 다 잃고, 사채업자에게 쫓기던 중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릴 결심을 한다. 그 순간 갑자기 도착한 입금 문자와 게임 참가를 종용하는 메시지. 계좌에 꽂힌 엄청난 액수의 돈에 놀란 진수는 그 자리에서 게임 참여를 결정한다.
3층 카드를 골라 방에 입주한 그는 1분에 3만 원씩 버는 규칙에 놀라고, 다른 참가자 7명, '8층'(천우희), '7층'(박정민), '4층'(이열음), '6층'(박해준), '2층'(이주영), '5층'(문정희), '1층'(배성우)과 안면을 튼 후 게임을 가능한 오랫동안 지속할 규칙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우연히 갈린 층수에서 비롯된 불평등이 가시화되자 참가자 8명은 서로를 짓밟고 더 많은 돈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에 돌입한다.
감독이 작품보다 우선될 때
거울. 영화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할 때 흔히 사용하는 비유다. 거울을 보면 안 보이던 외적인 문제를 찾을 수 있듯이, 영화도 관객이 미처 깨닫거나 생각 못했던 사회적 문제를 일깨워줄 수 있으니까. 봉준호의 <기생충>과 <설국열차>가 그랬듯이.
한재림 감독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에이트 쇼>를 자기만의 거울이라 생각한 듯싶다. 배진수 작가의 웹툰 '머니게임'과 '파이게임'을 각색한 이 드라마는 한국의 사회적, 경제적 구조를 비판, 풍자, 고발하려는 의도를 숨기지 않는다. 전작인 <관상>, <더 킹>, <비상선언>에서 선보인 연출력과 스타일을 적극 활용해 메시지를 펼쳐 보이고, <오징어게임>의 아류작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려고도 한다.
그러나 <더 에이트 쇼>는 한재림의 <기생충>도, <오징어게임>도 되지 못했다. 우선 거울에 비춰 보여주려는 문제점을 영화적으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다. 다른 작품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감독 자의식이 과하게 반영된 마무리는 시청자가 작품을 소화할 여지를 없앴다. 그 대가로 8부작 드라마의 화려한 볼거리는 단순한 기교에 불과해지고, 의도도 메시지도 가학성과 자극성에게 잡아먹혀 버렸다.
명확한 목적
<더 에이트 쇼>의 목적은 확실하다. 8개 층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에 한국 사회를 빗대어 그 모순점과 불평등함을 비판, 풍자하려 한다. 우연히 1층부터 8층까지 선택한 8명의 주인공. 그들의 운명은 순전히 운에 달렸다. 가장 이상적인 비율의 피보나치 수열로 1층부터 8층까지의 상금이 주어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권력과 부의 격차는 벌어진다. 금수저론, 코인과 주식 열풍이 불었던 원인을 유비적으로 드러내려 한다.
어떻게 보면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의 만남이다. <기생충>이 계단을 활용해 계층 관계를 보여줬듯이, <더 에이트 쇼>도 위아래로 움직이는 동선 속에 1층부터 8층까지의 위계를 녹여냈다. 바삐 움직이는 캐릭터들도 한국인의 대표적인 모습을 집약한 듯하다. 위로 올라가려 발악하는 1, 2, 3층. 이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4, 6, 8층. 그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5층과 7층. 주변에서, 또 뉴스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물상이다.
이에 더해 윤리적인 선도 함께 건드린다. 8층을 장악한 이들은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아래층을 잔인하게 찍어 누른다. 인간의 기본적인 3대 욕구인 식욕, 성욕, 수면욕을 통제하거나 자극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시험한다. 이때 <더 에이트 쇼>는 '모든 악행의 책임은 권력을 악용한 개개인의 몫인가? 아니면 그렇게 환경을 조성한 시스템의 문제인가?'라는 질문을 함께 던진다. <오징어게임>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한재림이 한재림 한 전반전
한재림 감독 특유의 스타일은 <더 에이트 쇼>가 목적에 다가서는 원동력이다. 특히 한재림 감독의 장점이 빛나는 전반부가 유도 인상적이다. 그는 다양한 코미디를 다룰 때도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바 있다. <더 킹>에서는 검사 주인공을 내세워 한국 현대 정치사를 비꼬았다. 계유정난에 개입한 관상가의 비극 속으로 관객을 자연스럽게 초대한 <관상>의 전반부도 인상적인 코미디였다.
<더 에이트 쇼>의 전반전도 마찬가지다. 블랙 코미디 느낌이 짙다. 노동 소득만으로는 부를 늘릴 수 없는 가운데, 주식과 코인 대박을 꿈꾸지만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는 평범한 2030의 모습을 진수에게 투영한다. 그 덕분에 <더 에이트 쇼>는 별다른 설명 없이도 극의 몰입도를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연상시키는 여러 장치는 풍자의 화법으로서도, 블랙코미디라는 신호로서도 탁월하다. 과거 무성영화 스타일의 자막, 필름 화면, 영화 비율을 활용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진수가 슬랩스틱을 여럿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모던 타임즈>가 비인간적인 공장 노동에 시달린 노동자의 피폐한 삶을 꼬집었다면, <더 에이트 쇼>는 약 1세기가 지나자 그 노동 자체가 무가치해졌다고 일깨우는 셈이다.
자가당착에 빠진 후반전
문제는 후반부다. <더 에이트 쇼>는 앞서 던진 비판점을 강조하기에 충분한 전개를 보여주지 못한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 끝은 냉소와 자조에 가깝다. 어떻게든 꼭대기층으로 올라가려던 1층의 발버둥을 잔인하게 짓밟으며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계단 위에 설 수 있다는 희망을 지워 버린다.
그런데 1층을 제외한 게임 참가자들의 삶은 정작 희망적이다. 비록 게임 속에서 겪은 충격적인 일 때문에 피폐해진 듯 보이지만, 거액의 상금을 챙겨 바라던 삶 또는 더 좋은 삶을 누린다. 즉, 현실에서 층수를 바꿀 수 있는 사다리를 제대로 챙긴 셈이다. 1층은 영원히 1층, 8층은 끝까지 8층이라는 게임의 끝과는 거리가 멀다.
자연히 <더 에이트 쇼>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기 어렵다.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과는 거리가 먼 결말을 보여준다. 빈부격차와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문제를 비판하려는 건지, 시스템에 순응한 채 조용히 살아야 한다는 건지, 인간성을 버리면서까지 상금을 타내는 참가자들의 노력과 인내심을 본받자는 건지 혼란스럽다.
이 단점은 감독의 전작인 <비상선언>과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화려한 스펙터클로 눈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캐릭터들이 군상극을 펼치기 시작하자 메시지와 개연성, 캐릭터는 모두 흔들리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주제 의식마저도 공감되지 않고, 억지스러운 해피 엔딩은 실망감을 키운다.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있겠지만, 정작 그 메시지를 담아낼 이야기를 만드는 데 실패한 전철을 답습하고 말았다.
허망한 마지막
어떤 면에서는 <비상선언>보다도 더 큰 실패다. <비상선언>에서는 못 본 단점이 드러나기 때문. '7층'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7층은 자기가 경험한 게임을 토대로 '더 에이트 쇼' 시나리오를 쓴다. 한때 흥행 감독이었던 7층이 이제는 현실적이고 예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는 감독의 자의식이 투영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7층이 쓴 시나리오 제목을 비추는 엔딩은 인상적이지 않다. 허세에 가까워 보인다. <더 에이트 쇼>의 내용이나 문제의식은 결코 날카롭거나 새롭지 않기 때문.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이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을 활용해 하위 계층을 더 촘촘히 감시하고, 착취하는 현상은 이미 <설국열차>, <오징어게임>, <헝거게임> 등 숱한 작품이 다룬 바 있다.
또 다른 작품들과 달리 문제의식을 제시할 뿐, 그 대안이나 비전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설국열차>에서는 기차가 전복됐다. 캣니스는 헝거게임 경기장을 부수고, 성기훈은 프론트맨을 잡으러 간다. 반면에 <더 에이트 쇼>는 게임을 끝낸 참가자들이 상금 덕분에 해피엔딩을 누리는 것 다음 이야기가 없다. 그저 영화감독인 7층의 입을 빌려 사회 모순을 통찰했고, 그 비판을 드라마(영화)에 담아냈다는 도돌이표에 그친다.
만약 <기생충>처럼 아예 새로운 문제의식을 보여줬다면 다른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기생충>은 기득권은 악하고, 빈곤층은 선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면서 관객의 시야를 넓혀 버렸으니까. 그런데 <더 에이트 쇼>는 그 정도의 통찰력까지는 못 보여줬다. 권력자는 악하고 타락하고, 빈자는 선하지만 고통받는다는 오래된 도그마를 답습하기 바쁘다. 자연히 메타적인 결말은 더욱 허망하고 실망스럽다.
<더 에이트 쇼>가 <오징어게임>이 될 수 없는 이유
주제 의식과 의도에 공감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게임 자체를 보는 재미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이는 <오징어게임>과 <더 에이트 쇼>의 결정적인 차이다. 두 게임의 참가자 모두 돈을 원한다. 하지만 전자는 예상치 못하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수동적인 플레이어였다. 반면에 후자는 능동적인 주체다. 자기 의지로 상대의 존엄성을 가능한 잔인하게 짓밟는다. 그 결과 계속해서 연장되는 게임 시간은 쾌감 대신 거북함으로 가득해진다.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극단적인 참가자도 몰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특정한 인물상을 대변하는 장기짝에 불과하다. 정신병자, 천재, 선인, 악인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티끌만큼도 변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속고 속이는 후반부에서는 속는 사람의 아둔함에 탄식이 나올 정도다. 캐릭터 간의 관계와 심리 변화를 쫓는 <오징어게임>의 재미는 찾아볼 수 없다.
마지막으로 영화 대신 드라마를 선택한 결정도 악수다.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 전개가 느리다. 그러다 보니 <더 에이트 쇼>는 중간마다 가학적인 장면을 의도적으로 전시할 수밖에 없다. 왕게임이나 숨바꼭질처럼 특별하지 않은 게임이 등장하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자극적인 상황을 조성하기도 한다. 수면 고문 장면처럼.
결국 <더 에이트 쇼>는 거울이 아니라 빈 깡통이다. 감독과 출연자의 명성은 요란하고, 볼거리는 화려하다. 하지만 정작 그 내용은 특별하지도,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다.
Poor 형편없음
<더 킹> 마냥 이륙해서 <비상선언>처럼 착륙한 한재림표 <오징어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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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의 스턴트 모음집! (화려한 와이어 액션에 취해봐~)
2020. 07. 04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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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3. 23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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