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정2023-05-06 12:53:06
착취하지 않는 단 한 사람
영화 <토리와 로키타> 리뷰
영화를 보기 전, 다르덴 감독이 한국 관객에게 남긴 메시지를 먼저 접하게 되었다. “<토리와 로키타>를 보는 한국 관객들이 한국에 도착하는 또 다른 ‘토리’와 ‘로키타’ 같은 이주 아동들의 친구가 되어주길 바랍니다.”라는 문장을 읽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나온 ‘특별 기여자’들과 그 아이들을 떠올렸다.
‘난민’이라는 단어는 그동안 건강한 담론보다는 혐오 표현으로 이어지기 일쑤였지만, 그때만큼은 그래도 여론이 갈린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우리와 함께 일해 온 ‘특별 기여자’들인데 팽해서는 안 된다는, 한국인의 의리가 불안을 이겨낸 목소리가 있었다. 여론이 이 정도라면 그래도 다행이다, 생각하며 무사 귀환에 안심한 후로는 나도 크게 관심 갖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달 친구들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독서모임을 하다가 알게 되었다. 당시 특별 기여자 자녀들이 학교에 갈 때, 기존 학생들에게 전달할 선물을 하나씩 들려 보냈다고. 이것이야말로 아이히만의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는 무능’과 무엇이 다르냐며 분개했다. 차라리 옛날 반장 엄마들처럼 햄버거나 쫙 돌리는 게 낫지, 기존 학생들이 시혜를 베푼 것이 아닌데 마치 그런 것처럼 저자세로 들어가게 만드나? 아이들은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경계를 넘어설 텐데 어른들이 먼저 선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뒤늦게 들은 내가, 토리와 로키타 같은 이주 아동의 친구라 말할 수 있나. 지긋지긋한 내 안의 아이히만을 인지하며, 다소 무거운 감정을 안고 영화관으로 들어섰다. 토리와 로키타의 행복과 무운을 비는 마음으로.

영화는 불안한 눈빛의 로키타에서 시작한다. 몇 마디 이야기가 오고 갔을 뿐인데, 관객은 금방 로키타의 거짓말을 눈치챌 수 있다. 로키타의 뒤를 따르는 카메라와 함께 가다 보면, 로키타의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토리와 로키타는 각자의 이유로 아프리카 어딘가를 떠나 온 아이들이다. 벨기에에 정착해서 함께 살고자 하지만, 진작에 체류증을 받은 토리와 달리 로키타의 서류 발급은 계속해서 지연된다. 두 사람은 남매임을 증명해서 체류증을 받고자 하지만, 삶은 녹록하지 않다.
두 사람은 식당에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돈은 모이지 않는다. 잊어버릴 만하면 나타나서 입국 비용을 내놓으라고 하는 브로커들이 있고, 고용주 또한 여러 모로 아이들을 착취하며, 심지어 로키타는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돈을 보내야 한다.

아이들은 피자도 배달하고, 식당에서 노래도 한다. 프랑스어로 노래하고 이어 이탈리아어로 노래한다. 이국의 언어로, 서사를 부여하면서 불러야 하면 노래도 노동이 된다. 이들의 일은 점차 위험해진다. 위험한 밤의 거리에서, 마약 배달까지 하고 있다. 아직 어려도 야무진 토리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야무지게 챙겨 받을 줄 안다.
노동이 되어야 하는 노래와 대조적으로, 두 사람의 지친 밤을 위로하는 노래가 있다. 토리가 따라 부르는 로키타의 자장가. 실제 카메룬 언어로 된 자장가라는데, 내 귀에는 어쩐지 자꾸 익숙한 찬송가처럼 들렸다. “사랑의 주 사랑의 주 내 맘 속에 찾아오사 내 모든 죄 사하시고 내 상한 맘 고치소서”라는 한 구절처럼. 아무리 뒤져봐도 찬송가라는 말은 없던데. 그러나 진짜 찬송가였다고 해도 그 노래는 로키타를 구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브로커들이 로키타에게 만남을 요구하는 장소는 언제나 교회다.

아직 어린 어깨에 책임이 너무 많다. 스스로를 보호하기에도 어린데, 자기 세상을 지켜야 한다. 그 세상에서 유일하게 서로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로키타에게는 토리, 토리에게는 로키타이다. 두 사람이 어떤 서사를 통해 여기까지 왔는지, 어떻게 이런 유대 관계를 쌓게 되었는지 영화에서 밝히지 않는다. 다만 유독 힘든 날 보고 싶은 사람도 서로이고, 학교에서 ‘아는 사람’ 그리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도 서로일 뿐이다. 겁먹고 숨을 헐떡일 때 약과 물을 건네주는 한 사람, 대신 문을 두드려 따져 물어주는 사람, 착취의 세상 속에서 착취하지 않는 단 한 사람이다.

아이들의 깊은 우정에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은 피부로 감각하여 정확히 알고 있다. “우리는 환영 못 받잖아.” 로키타가 시시각각 처하는 상황은 분명 비극이지만, 세상이 로키타를 그전까지 대해온 방식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끌고 가고, 무슨 일이 생겨도 탈출구가 없는 건물에 들어가야 하고, ‘원한다 je veux’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 사람이라면 응당 가지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 로키타는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아는데도, 흥청망청 사는 어른보다도 훨씬 똑똑하게 삶을 마주하고 있음에도.

영화의 많은 장면에서 카메라는 아이들의 노동하는 등을 따라간다. <로제타> 때부터 일하는 누군가의 등을 다정하게 따르던 그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 자체로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러나 알고 있다. 다르덴 형제가 만드는 영화의 감각에 안심할 수 없는 현실을 우리는 살고 있다는 걸. 영화 속에도 친절한 개인은 있었다. 기꺼이 제 자리에서 자기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는, 잘 곳 없을 때 오라고 주소를 주는 쉼터 선생님도. 그러나 개인의 친절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실마리를 풀어야 하는 문제를 우리는 알고 있다.
다르덴 형제는 말했다. 영화를 보고 돌아가는 길, 토리와 로키타의 이야기에서 조금은 마음에 남은 것이 있길 바란다고, 그래서 주변과 이야기를 나눠 주길 바란다고.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왜 다르덴 형제가 토리와 로키타의 친구가 되어 달라 말했는지 알 것 같다. 아이들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세상만큼은 아니었으면, 사라지지 않도록 아이들이 그 자리에만 있을 수 있도록 아주 작은 변화라도 이루어 갔으면.
그런 마음으로 잠을 자고 아침을 맞으니, 세상은 어린이날이 되어 있었다. 우리는 아이들을 얼마나 환대하고 있을까. <토리와 로키타>가 던진 질문을 계속 입 안에서 굴려 본다. 담담하여 다정하며, 더 깊은 담론을 끌어내는 이 영화는, 아마 남은 오월 내내 '오월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라는 해맑은 노래와 함께 잔상처럼 남아 있을 것 같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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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이 너무 재미없어서 신기할 때
재미없다. 진짜 너무 재미없다. 나의 모지리함과 지루함이 덧붙여서 토할 것 같이 식상한 일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영화 리뷰를 써서 어딘가에 올리는 사람 같지 않게 내 일과는 너무나도 재미가 없다. 인생은 원래 영화 같은 순간의 연속 아닌가? 근데 내 하루하루는 매일이 예상이 가는 뻔한 클리셰라 너무나도 지루하다. 살면서 혹시? 하는 생각은 거의 100% 확률로 이어진다. 또한 별 일 아닐 거라는 막연한 걱정 덜기는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사건사고는 우리 생각 외의 곳에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제가 벌어진다는 것이 너무나도 일상적이라 뭐 새로울 것도 없다. 인생은 이렇게나 개 같은 순간의 연속이다. 잔인할 만큼 나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주지 않는다. 심지어 취업하려면 2년이나 남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역시 나를 떠나고 있거나 마음이 생각만큼 가깝지 않았다. 그러니까 세상은 역시나 혼자 사는 게 맞다.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고도 선임 놀이를 안 하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생겨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미친놈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엿을 먹이는 게 일상의 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근데 난 그 사람 이름도 다 모르고 나이도 모른다. 그런 사람에게 사회생활이란 이런 것이라며 엿을 먹이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단편적인 설루션으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뜻이 된다. 이 귀찮음과 짜증남에서 온 스트레스의 진정한 열쇠는 소집해제다.
소집해제. 만약 직장인이 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닐걸. 직장인이 되면 무슨 다른 미친놈이 튀어나와서 나를 괴롭힐 수도 있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스텝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사실 나의 삶을 톺아봤을 때 100%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이 알고 보니 헛바람이었다는 걸 들켜 잘렸을 때도 그땐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그 기억이 나를 성장시켰다는 것엔 반박의 여지가 없다. 또한 항우울제가 없으면 일상이 어려웠던 시기가 나의 공감능력의 중요한 베이스가 됐다는 점 역시 분명한 사실이 될 것이다. 근데 진짜 인간적으로 이건 너무한다. 너무 심각하게 재미가 없다. 내 주치의 선생님에게 이 노잼 시기가 1년 동안 이어졌다고 말하고 싶은데 어떤 식으로 전달해야 이 마음을 전할까 감이 안 잡혀서 뭐라 말하기가 어렵다. 주치의 선생님은 나를 '매일매일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는 감사한 말을 전했지만 나는 요즘 이것에 점점 질리고 있는 것 같다. 의미가 있을까. 거대한 에세이 작가가 돼서 사람들을 웃고 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결국 같은 마음으로 돌아오는 삶에 너무나도 지쳤다. 아무래도 영원히 이 일상 속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인사이드 르윈>은 벗어날 수 없는 일상에 관한 영화다. 코엔 형제는 이 할리우드에서 큰 이름들 중 하나다. 내가 기억하는 코엔 형제는 살짝 염세적인 인간관이 포함되어 있었다. 가령 <시리어스 맨>의 경우에서 주인공은 돌아버리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멘털이 세다. 이 말은 그에게 달려있는 현실이 개판 5분 전이라는 뜻도 되겠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는 안톤 쉬 거라는 캐릭터를 통해 악이라는 개념을 형상화했다. 이게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긴 한데 거의 대부분 미국 사회에 닥쳤던 경제위기를 은유했다는 쪽이 지배적이다.-나도 이 해석에 동의하는 바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미국은 아니다'라는 메타포를 담은 것이다.- 이렇게 코엔 형제는 암담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었다. 무기력하고. 어쩔 땐 노숙도 하고. 보통 거의 대부분은 운명에게 주인공이 당한다. <파고>에서의 잔혹한 살인사건 역시 관찰자의 관점에서 이를 막을 수 없었다는 패배의식이 담겨 있다.
<인사이드 르윈>은 이런 가치관에 근거한 '코엔 형제 초 울트라 매운맛'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포크송 부르는 사람이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싸돌아다니는 게 뭐가 초 울트라 매운맛이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수위는 그렇게 세지 않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잔인할 정도로 지루하다. 심각하다. 우리의 일상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잔인하거나 무서워서 보기 어려운 영화가 있는 반면 '이게 도통 뭔 소린가' 싶은 작품도 있겠지? 극한의 예술영화라고 볼 수 있는, 이 <인사이드 르윈>은 좀 어려운 예술영화 축에 속한다. 심지어 음악을 사용한 방식도 쉽지 않다. <라라랜드>나 <겨울왕국> 같은 뮤지컬 영화들은 명랑한 멜로디를 베이스로 하지 않는가? 이 작품은 그런 거 없다. 주인공 오스카 아이작과 다른 등장인물들이 튀어나와서 기타 하나 덩그러니 놓고 노래 부른다. 끝이다. 그냥 그렇게 맹숭맹숭하게 2시간가량의 러닝타임을 채우고 끝난다.
근데 그러다가 끝난다는 게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특장점 중 하나는 조명의 질감이다. 그것만 있냐? 아니다. 처음 이 작품을 볼 때 사운드 믹싱이 되게 잘 됐다고 느꼈었다. 실제로 아카데미에서 음향 믹싱상에도 노미네이트 된 적이 있다고 한다. 뇌를 빼고 누군가의 일상을 멍하니 들여다본다고 생각하면 시간이 후딱 가는 환경을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맞다. 이 영화는 일상에 관한 작품이다. 주인공은 무명 가수다. 근데 노래를 잘 부르거나 대스타가 됐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이 사람은 존재감이 그렇게 큰 사람이 아니다. '내 이름은 르윈(Liewyn) 데이비스요'라고 말했는데 듣는 상대역이 'Le and Davis'라고 반응하는 것이 좋은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에피소드도 있다. 고양이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데 그 고양이의 이름을 '르윈 데이비스'라고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 이 사람은 자기 이름도 똑바로 이해시키지 못하는 인물인 것이다. 근데 솔직히 르윈 데이비스는 그럴 만한 인물이다. 자기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타인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가 자기를 '그린 펑'이라고 소개하자 '설마 네 이름이 진짜 그린 펑이요?'라고 묻는다. 이를 돌려 말하면 이 사람이 상대방의 존재를 받아들이거나 각인시킬 때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이런 무기력한 일상이 단편적으로 쨘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 르윈의 전 여자 친구 진은 임신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이건 누구 아이인가?'라는 의문이 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르윈에겐 어림도 없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른 채 전 여자 친구의 낙태를 준비하게 된다. 이 낙태 비용은 어디서 났느냐? 르윈의 전전 여자 친구 역시 임신을 했던 경험이 있다. 르윈은 이 사람에게도 낙태를 종용한 적이 있다. 더 이상한 건 전 여자 친구 다이앤은 돈을 받기만 했고 실질적으로 낙태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담당 의사는 이 돈을 갖고 있으니 이 비용으로 전 여자 친구 진의 낙태 비용을 댈 수 있다고 말한다. 르윈은 그렇게 하라!라고 답한다. 즉 전전 여자 친구가 낙태를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고/전 여자 친구 아이의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근데 이 무지라는 키워드는 이 영화 내내 나타난다. 영화 안에서 르윈의 주 수입원은 누군가에 의해 들었던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자기가 주도적으로 일자리를 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점입가경으로 발전하는 순간이 있다. 아티스트로서의 실패담만 쌓았던 그.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그는 선원이 되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그의 누나가 그의 지시로 며칠 전에 선원 자격증을 직접 버렸다고 한다. 또 그렇다고 해서 그걸 재발급할 돈이 있냐? 아니다. 또 막상 속상한 것은 아티스트일 때는 대타로서의 삶을 사는데 선원으로서의 인생은 내가 '휴 데이비스의 아들이다'라는 것을 인정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를 유일하게 인정하는 것은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포기했을 때인 것이다. 그렇게 자기가 자기대로 인정받는 상황이 유일한 돌파구라 믿었는데 그의 일상은 그를 그렇게 가둬놓은 것이다. 이는 줄거리의 내용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엔딩 신에서도 이를 암시하는 부분이 있다. 초반부에 르윈이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이 나온다. 근데 또 후반부에 같은 사람에게 또 맞는다. 이 둘은 살짝의 비틀기(?)를 넣었다. 맞기 전후에 어떤 교수의 집에서 잠을 자는 사건을 넣은 것이다. 오프닝은 자기 전에 남자에게 맞고, 엔딩은 자고 난 다음에 맞나 아무튼 그랬을 것이다. 단적으로 봐도 그의 일상이 변하지 않았다는 암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수미상관'이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사실 선후관계가 비틀어졌다. 중요한 건 이 둘이 사건의 전후관계가 바뀌었다고 해서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무엇이 달라졌나?' 하는 물음일 것이다. 그렇게 망신을 당하고 누구에게 두들겨 맞기까지 했는데 어쩌면 달라진 게 없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갇혀놓은 일상 속에서 산다. 매번 다른 것 같지? 아니다. 매일같이 출근하고 이름과 얼굴, 나이까지 기억하는 게 귀찮은 놈과 산다. 원래 어디를 가도 나를 미친놈으로 보는 인간이 있지 않는가? 여러분도 예외가 없을 것이다. 또 돈은 우리의 삶에서 가장 친한 친구기도 하다. 돈 없으면 글쓰기도 영화도 없다. 직장을 왜 바꾸나? 돈이 정말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별 것 아닌 이유에 목메달고 집착하며 그 이유로 똑같은 하루를 보낸다.우리는 그냥 평범한 소시민이다. 고양이의 이름에서 따온 '율리시스(오디세우스)' 설화는 한 영웅의 이야기이다. 집 떠난 그리스의 한 사람이 다시 귀향하기 위해 벌이는 온갖 개고생을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근데 이건 전적으로 영웅의 이야기다. 우리가 영웅인가?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영웅이라기보단 자기밖에 모르는 악당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악당 취급을 받는 걸 떠나 심지어 우리의 목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만 가득 차 있다. 돈 벌어서 뭐하냐? 어차피 쓸 일도 없이 바쁜데. 뭐 먹는 거 빼면 카드를 사용할 일 자체가 없는 게 나의 일상이다. 적금을 굳이 들지 않아도 돈을 모을 수 있는 신기한 상황이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이라고 다를까? 아마 아닐 것이다.
난 코엔 형제가 이런 우리의 삶을 꿰뚫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소시민에 가깝다. 영웅이 돼서 큰 목적을 이뤄 혼자 의기양양해 돌아오는 그런 장밋빛 미래 아무도 관심 없다. 가족들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같은 칭찬 여러 번 해도 짜증 나는데 영웅담이나 성장기 같은 거 누구든 반복해서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볼구하고 우리는 매일매일을 이겨낸다. 의미가 없는 걸 알면서도 각자가 치열하게 사는 것이다. 매일이 의미가 없다는 거 알면서도 왜 살아? 아이러니하게 허무하니까 일상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허무한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그거 진짜 의미 없어? 아닐걸. 허무하다는 걸 알았다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삶에서 얻는 진정한 무언가 일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난다는 건 우리가 자란다는 뜻도 된다. 이 영화에서만 봐도 알 수 있다. 르윈은 율리시스의 개고생을 그대로 겪고 몇 개의 깨달음을 얻었다. 선원의 길이 자기의 것이 아니란 걸 알았다. 이 뿐인가? 또 돈도 없고 희망도 없고 여자 친구도 없으며 코트까지 없는 이 상황에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이 음악뿐이란 걸 알았다. 뿐만 아니라 동료의 자살로 인해 생긴 죄책감을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게 되었으며, 누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두들겨 맞는 상황 속에서도 '다음에 보자'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쿨해진 것이다. 이 <인사이드 르윈>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관한 영화가 맞다. 근데 큰 틀에서는 벗어날 수 없을지 몰라도 결국 우리는 한발 더 나아가는 존재다. 그 자랐단 증거가 누구에게 두들겨 맞고도 '또 보자!'라고 말하는 나이브함이 아니어도 괜찮다. 우리의 시간이 점점 무언가를 잃게 하고 있더라도 '그게 오롯이 유일하게 남은 것'이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시선을 조금이라도 돌려 권태로운 일상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맞다. 영화는 재미가 없다. 마치 우리의 일상처럼. 근데 재미가 없어서 재미있다. 뭔 개소리냐 싶을 것이다. 근데 이 일상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소름 돋게 내 하루하루와 닮아있어서 웃기고 부끄럽기까지 하다. 일상이 재미없으니까 그런 감정으로 영화에 공감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하루하루를 본다는 관점에서, 흘러가듯 본다면 블랙코미디란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코미디가 이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오디세우스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다. 아마 유재석 같은 인물들도 별 볼 일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근데 이런 일상 속에서도 조금이라도 자라는 부분이 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주제는 이런 것이다. 세상과 나 자신이 부딪히며 생긴 부정교합이 우리가 살아가는 희망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참자. 영화를 보는 이유가 뭐야? 이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은 아닐까? 언젠가 이런 우리에게 명랑한 일상이 돌아올 것이다. 그게 언젠지는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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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 is MINARI?" 정이삭 감독이 밝힌 제목 '미나리'의 진짜 의미
오스카 유력 후보작으로 예측되는 <미나리>가 미국 영화협회와 시상식을 석권하며 전 세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가운데 국내외를 불문하고 타이틀에 대한 궁금증이 쏟아지고 있다. '미나리'라는 영화 제목이 누군가의 이름(mina LEE)인지 아니면 심오한 뜻을 담은 새로운 단어인지 의견이 분분했던 가운데, 감독과 배우가 '미나리'의 진짜 의미를 공개했다.
영화에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정이삭 감독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채소 '미나리'를 뜻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미국에 이민 온 부모님을 두었으며, 1978년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태어나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 남부 아칸소라는 시골 마을의 작은 농장에서 자랐다. 가족을 위해 농장을 시작한 아버지와 새로운 직장을 구하게 된 어머니를 대신해 자신을 돌봐줄 할머니가 한국에서 미국으로 왔다. 그때 할머니가 가져온 미나리 씨앗을 미국 아칸소에 키우게 되었는데 다른 채소보다 가장 잘 자라는 모습이 기억에 강렬히 남았다고 한다.
출처: 판씨네마
감독은 "미나리는 '가족 간의 사랑'을 의미한다.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적응력이 우리 가족과 닮았다"라고 밝혔다. 또한 "미나리는 땅에 심고 1년은 지나야 잘 자란다. 영화 <미나리>는 우리의 딸과 아들 세대는 행복하게 꿈을 심고 가꾸길 바라며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어느 한국 가족의 다정하고 유쾌한 서사시"라고 말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프로듀서와 주연 배우로 참여한 스티븐 연은 "미나리는 땅과 주변의 물을 정화하는데, 나에겐 그게 미나리다. 우린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라고 전해 영화 속 가족이 외딴곳에서도 함께 자리 잡고 살아가게 하는 가장 소중한 존재로 그려짐을 짐작하게 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엄마 '모니카' 역으로 분한 한예리는 "미나리는 사랑이다"라고 마음을 전했으며, 영화 속에서 미나리를 심는 할머니 '순자' 역을 맡은 윤여정은 "미나리는 삶의 지혜"라고 덧붙여 관객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깊은 감동을 전할 것을 예고했다.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은 <미나리>는 올봄 3월에 전국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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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초앞 1초뒤] 너와 나의 시간이 다르더라도
작년 여름? 한창 소설에 흠뻑 빠져 있었을 때, 30분 단위로 시간이 빠른 남자와 반대로 시간이 느린 여자가 어떤 거대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를 구상해보려 한 적이 있다. 시간이 다른 두 사람을 만나게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과제여서 그냥 아이디어로만 남겨두었는데, 마치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오래된 편지처럼 이 영화가 찾아왔다. 일본 공상과학 영화 특유의 개구쟁이 같음과 독특한 상상력이 가미된 ‘참 일본스럽네에~’ 영화였다. 내가 리뷰를 남기지 않는다면, 아마 많은 분이 이 영화가 상영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갈 법한 그런 영화였다. ‘썸머는 필름을 타고’, ‘리틀 포레스트(일본판)’같은 느낌도 아주 살짝 묻어 있는 것이 꽤나 귀여웠다. 특히나 니콘 카메라부터 계속해서 울리는 셔터의 찰칵! 소리까지, 평소 필름 카메라나 사진 촬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꽤나 즐겁게 관람할 영화다. 아쉬움이라면, 내가 교토를 여행해 보지 못해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소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영화적으로 아쉬움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로맨스를 희망하면 실망하실 영화다. 이건 영화사나 배급사에 좀 미안하지만, 이 영화는 집에서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맥주 한잔하면서 보면 안성맞춤일 영화다. 맥주가 아니라면, 머나먼 교토를 느낄 수 있는 교토 특산 사케나 하이볼도 괜찮을 것 같다. 배경 자체는 불꽃놀이, 푸르른 나무, 따사로운 바닷가, 수박과 아이스크림 등 여름으로 가득 차 있다. 굳이 여름이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영화 곳곳에 작지만 강렬한 암시를 배치해, 나도 모르게 여름이란 계절의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일본 여름 영화 하면 떠오르는 클리셰와 비운의 여주인공에게 불어닥치는 뻔한 운명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 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지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쓴맛이 아닐까? 상영 내내 달콤한 솜사탕을 먹는 기분이지만, 체하지 않게 미지근한 할머니표 보리차 한 잔을 마시는 것 같았다.
이건 나만의 편견일지 모른다. 유독 최근 일본 영화는 시점에 대한 자유분방함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괴물’에서는 인간이 얼마나 일부의 시선을 갖고 사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슬픔을 내비치며 말해준다. 전국제에서 관람한 ‘새벽의 모든’은 방향이나 전혀 다른 두 혜성이 마주치는 시선을 따숩게 담았었다.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남자 주인공의 시선으로 우리는 알 수 없는 특이한 경험을 한다. 그런데 이 경험은 누구나 겪어 본 적 있는 익숙한 감각이자 추억이다. 왜 그런 적 있지 않나? 자고 일어났는데 아직 저녁이었다든가, 하루가 사라진 듯 다시 아침인 경험을 말이다. 나는 분명히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겨우 3-4시간밖에 흐르지 않은 체험 말이다. 마치 온 세상이 멈춰버리고, 나의 시간만이 하염없이 흘러간 몽롱한 느낌 말이다. 영화는 발칙한 상상력으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추억이나 기억을 부드럽게 긁어준다.
평소 너무 빠르게 살아가는 남자 주인공, 너무 느긋하게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은 사실 마주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설령 만난다하더라도 속도가 붙은 남자는 더 빨리 미래로 갈 것이고, 상대성 이론에 따라 여자의 시간은 더 느려질 것이다. 마치 당신을 찍기 위해 셔터 버튼을 누른 순간, 필름을 통과해 버린 빛처럼 말이다. 숫자로 셀 수 없이 무한한 빛은 이미 우리 존재가 태어나기 이전에 만들어진 과거의 유산이다. 지금 내가 바라보는 태양도 사실상 옛날의 태양인 것처럼 말이다. 종종 영화 ‘인터스텔라’는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너무 빨라서, 너무 늦어서 어긋나버린 두 주인공을 이어주는 것은 몇 장의 사진이다. 사진 안에 담긴 우주의 메시지가 광활하게 펼쳐진 시공간의 제약을 뚫고 둘을 동시에 통과한다. 과학 이야기를 더 하자면, 최근에 유튜브에서 ‘관계론’으로 세상을 정의하는 것을 보았다. 당신과 내가 일말의 관계를 맺고 있으면 우리는 서로 존재한다. 반대로 내가 만나지 못한, 예를 들어, 지구 반대편에 존재하는 어떤 누군가에게는 서로 존재하지 않는 상태다. 그와 나 사이에는 어떤 인과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도 관계론에 적용할 수 있다. 옷깃을 스치는 순간, 그 전에 내가 당신을 그리고 당신이 나를 마주 보는 상황에서 우린 또 다른 차원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영화는 전혀 만날 것 같지 않은 시공간에 살고 있던 두 사람이 처음부터 만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일본의 전설처럼 두 사람은 이미 붉은 실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지만 아직 셔터 속도나 조리개 조정값은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다. 정말 조금, 머리카락 사이즈를 움직여도 결과물은 전혀 다르게 나오는 것이 사진이다. 그래서 사진을 좋아한다. 이미 지나가 버려서 다시 탈 수 없는 버스나 머릿속 지우개가 지워버린 사랑하는 모습도 사진으로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진들 모두 우연의 일치로, 여러 번의 우연이 만든 아름다운 운명이자 인연의 작품이다. 시간이 반대로 흐르는 두 남녀가 만나서 사랑을 확인한 것과 달리, 전혀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던 남녀가 몸이 바뀌는 것과 달리, 영화는 사진에 담긴 사랑을 통해 운명을 이어 붙인다. 그 과정에서 배우들의 행동이나 표정, 개그 방식이 꽤나 귀여웠다. 역시 여름에는 오펜하이머처럼 묵직한 삼계탕이나 벌컥벌컥 들이켤 수 있는 달큰한 하이볼 같은 영화가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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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의 밤하늘은 가장 짙은 블루>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The Tokyo Night Sky Is Always the Densest Shade of Blue)
개봉일 : 2019.02.14. (한국 기준)
감독 : 이시이 유야
출연 : 이케마츠 소스케, 이시바시 시즈카, 마츠다 류헤이, 이치카와 미카코, 사토 료
‘억지로 밝힌 밤하늘에서 몇 개의 별을 찾다’
“달이 원래 저렇게 푸르렀던가? 도쿄에서만 그런가?”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 없이 매일을 살아가던 청년이 아주 오랜만에 달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온색보다는 한색이 잘 어울리는 도시, 천만 명이 모여 살지만 그만큼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도시. 도시 속 삶을 어떻게 생각하냐 묻는다면. 가장 먼저 ‘팍팍함’, ‘차가움’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를 것이다.
도시에도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날, 따뜻한 햇볕이 빨래를 보송하게 말려주는 날, 온기에 땀이 후끈 솟아오르는 날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도시는 ‘차갑다’는 이미지를 갖는다. 우리가 ‘서울’을 떠올리면 화려한 빛과 그 이면에 있는 쓸쓸함을 떠올리듯, 일본 청년들에게 비치는 ‘도쿄’라는 대도시의 이미지도 비슷한가 보다.
월세를 내고, 가벼운 청구서들 속에 적혀있는 무거운 돈들을 전부 납부하고, 미래를 위해 조금 아껴놓고 나면 수중엔 남는 게 하나도 없다. 내가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무엇을 위해 살아남으려 노력하는 걸까. 현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고민한다.
나 혼자 살아남기에도 벅찬, 누군가와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년 신지와 미카. 두 사람의 내뱉지 못한 한숨은 턱밑까지 차올라있다. “진짜 사랑은 없어”라고 말하며 차가운 현실을 두 눈으로 직시하고 있는 미카와 거의 보이지 않는 왼쪽 눈의 시선에, 어쩌면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희망적인 삶을 꿈꾸는 신지. 억지로 밝힌 도시의 차가운 하늘 아래서 두 사람은 새로운 빛을 찾는다.
가장 짙은 파란색으로 물든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둡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 하늘은 가장 밝은 밤하늘일 수도, 그곳엔 진짜로 반짝이는 별 몇 개쯤이 떠있을 수도 있다. 어찌 됐든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되어줄 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 시놉시스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낮에는 간호사, 밤에는 술집에서 일하는 ‘미카’. 일용 노동직으로 일하며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지만 막연한 희망을 꿈꾸는 ‘신지’. 이들은 화려함과 고독함이 한 데 섞인 도쿄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서로를 이해하는 진정한 사랑은 없을 것 같던 도쿄의 밤하늘 아래, 방황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며 삶에 대한 희망을 함께 품기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세상을 미워해도 돼.”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열심히 날고 있는 비행선처럼 열심히 달려보지만 특별할 것이 없는 나날이다. 줄지어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 낀 나라는 존재는 널따란 자전거 주차장에 세워진 자전거 한 대와 다를 것이 없다. 사람들을 향해 따뜻한 숨결을 불어주기보단 사람들의 한숨을 먹으며 더욱 차갑게 반짝이고 있는 도시. 미카는 도시에 발을 들이고, 그 차가움과 무게에 익숙해진다는 건 나 자신을 죽이는 거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검은색 밤하늘을 억지로 밝힌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파란색이고, 차가운 도시 속에서 미카의 손톱에 칠해진 핑크색은 찾아볼 수가 없다. 곧 자라서 사라질 손톱 위 외엔 그 어디에도 부드러운 색은 없다. 홀로 살아남기에도 벅찬 생활, 누군가 나를 사랑해 주거나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함부로 꿈꾸지 못할 일이다. 미카에게 진짜 연애란 없는 것이다.
“청구서 보는 게 소름 끼쳐.”
신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 왼쪽 눈의 시야 대신 선명한 오른쪽 눈의 시야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세상의 절반만을 보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입을 쉬지 않는다. 동료들은 그런 신지를 ‘이상한 애’라고 칭하기도 하지만, 금세 웃으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던지는 신지를 미워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좋아한다. 연봉은 200만 엔이 될까 말까 한 직업, 월세 6만 5천엔, 수도세, 전기세, 통신 비용. 테이블 위에 쌓인 얇은 종이들은 바람에 휙-날아갈 만큼 가볍지만, 종이에 적힌 현실의 무게는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무겁다.
어항 같은 도시 속에서 만난 나와 같은 이상한 애
천만 명이 사는 도쿄에서 한 사람을 여러 번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항상 기온이 유지되는 어항처럼 항상 차가움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에 살고 있는 작은 거북이 같은 두 사람. 푸르지만 예쁜 달이 빛나는 도쿄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가장 잘 아는 사이가 된다. 미카는 눈이 잘 안 보인다는 걸 숨기기 위해 쉼 없이 떠들어대는 신지의 아픔을, 신지는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미카의 상처를 알게 된다.
사람은 언뜻 보면 강해 보이지만, 말 한마디면 쉽게 고독을 얻을 수 있고, 작은 흉터 하나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연약한 존재다. 신지와 함께 일하는 청년들이 매일같이 신나는 노래를 틀고, 술을 마시며 춤을 추는 건 젊음의 혈기를 뽐내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건 어두운 밤에 밀려올 슬픔을 힘껏 털어내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언젠가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예고 없이 차오르는 차가운 슬픔이 가득한 도시에서 다른 이에게 위로를 받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나와 비슷한 이상한 애를 만나는 것도, 이상한 애에게 나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도.
“사랑은 많은 사람을 죽였어”
미카는 사랑도, 사랑한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 언젠간 버려질 것이니. 신지는 사랑했었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시작조차 하지 않았던 그 감정을 이제 와서 말하는 것도,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의미가 없으니.
매일을 쪼들리며 살아가는 삶에 사랑이란 것이 필요할까? 아니, 어울리기나 할까 고민해 본다. 사랑을 하면 돈이 들고,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을 쪼개 사랑에 마음을 써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사랑이 내 삶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멋지진 않아도 이렇게라도 살고 있으니, 이렇게라도 살아있으니 내 앞에 반짝이고 있는 감정 하나쯤은 손에 꽉 쥐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가장 짙은 파란색을 한 하늘 아래지만, 반짝이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진 말자. 내가 세상을 반도 못 보고 있다고 하여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그조차 못 보는 사람도 많은걸.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위태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하여 그 무슨 일이 모두 나쁜 일일 거라는 보장도 없으며, 아무 일 없는 아침을 맞이할 확률도 생각보다 높다.
우리는 행복의 의미를 몰라도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 지갑에 여유가 없다고 해도 진짜 위로를, 사랑을 만난다면 마음껏 사랑하고 위로받을 자격이 있다. 미카와 신지는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된다. 마음껏 마음을 표현하고 서로의 어깨를 맞대거나 기댈 수 있는 존재. 사랑했다거나 여전히 사랑한다는 말이 아닌 지금 너를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미카와 신지를 붙잡던 과거의 푸르름이 허물어지고 분홍색의 꽃이 피는 아침이 찾아온다.
완전한 검정이 없는, 어둠을 억지로 밝혀놓은 화려한 도시에서 진짜 반짝이는 것을 품기 위해 노력하는 청춘들에게 <도쿄의 밤하늘은 가장 짙은 블루>는 위로와 또 다른 색을 가진 눈물이 될 것이다. 이 감정을 천천히 아주 깊게 들이마셔보라. 어쩌면 이 어두운 하늘에 나를 위한 별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이 생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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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와 삶의 관계에 대한 스필버그의 회고록
운명처럼 다가온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은 무섭다. 어린 새미. 엄마, 아빠랑 손 잡고 극장에 가기로 했다. 극장이 무섭다는 아들의 말에 엄마 미치와 아빠 버트는 아들을 달랜다. "상영관에 가면 막상 사람들이 거인처럼 보일 거야. 근데 그건 다 연기하는 거라고." 귀엽게 설명한다. 용기를 내는 새미. 손 꼭 잡고 극장으로 들어간다. 새미와 부모님이 보기로 했던 영화는 <지상 최대의 쇼>다. 러닝타임이 재생된다. 영화에 정신이 팔려 미친 듯이 빨려가는 새미. 특히 그 영화의 한 장면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장면은 기차가 추돌사고를 일으키는 신이었다. 대박! 어떻게 저렇게 만들지? 설마 진짜 기차를 부술리는 없을 테고. 금세 집으로 돌아가서 이 장면을 구현하고 싶어졌다.
집에 도착했다. 직접 그 장면을 만들어보는 새미. 아버지에게 핀잔도 듣지만 새미를 멈출 수는 없다. 꿈이 생기기 시작한 새미. 꿈을 영화감독으로 정했다. 현재 2023년의 누군가가 말해도 '정말?' 할 말을 1950년대에 했으니 오죽할까. 아버지는 이런 새미의 목표를 취미쯤으로 생각한다. 반면 어머니 미치는 생각이 다르다. 춤추는 걸 좋아했던 미치. 아들 새미가 영화감독으로서 잠재력을 펼치길 바라고 있다. 아무튼 새미 가족은 사이가 좋다. 카메라를 새미에게 사준 아버지 버트. 취미든 아니든 알 바 아니다. 이제 새미의 세상을 만들 때가 왔다. 꿈 앞에 나아가는 새미. 그런 세미 앞에 거친 인생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신이 된 남자
한 분야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것도 이 방대하게 넓은 영화 시장에서 게임 체인저가 됐다면 그 공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죠스>로 '블록버스터'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스필버그. 영화적 상상력은 공간과 시간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발현됐다. 외계인들과의 첫 만남을 묘사했던 <미지와의 조우>가 생각난다. 사실 이 영화를 지금 2023년 본다고 하면 살짝 루즈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봐도 신선하다고 느낄 부분이 몇 있다. 스필버그의 상상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 모두 다 <E.T>라는 영화를 알고 있다. 골판지 돌돌 말아 만든 것 같은 비주얼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외계인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어른아이들을 위한 동화를 만들었던 스필버그. <미지와의 조우>가 스릴러/미스터리적인 특성을 띈 것과는 반대로 <E.T>는 동화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 분이 같은 장르 안에서 템포를 바꾸는 것에만 능한 게 아니다. 그냥 영화를 잘한다. 전쟁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스릴러 <마이너리티 리포트> 로맨스 <영혼은 그대 곁에> 등 장르와 시대를 가로질러 압도적인 능력치를 보여준 것이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나이가 들면 늘 하던 것에 익숙해질 만도 한데 이 사람에게 그런 건 없다. 물론 전체적으로 스필버그가 갖고 있는 영화적인 톤은 그대로지만 크고 작은 변화들은 지속해 왔다. 최근 작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까지 스필버그는 뭐에 홀린 듯 영화를 만들어왔다. 이 <파벨만스>는 스필버그가 홀렸던 ‘어떤 것’에 대한 영화다. 왜 영화를 사랑하게 됐는지를 러닝타임동안 옴니버스 형식으로 설명한다. 또한 두 번째로 영화를 만들 때 어떤 가치관을 바탕으로 만들게 됐는지도 보여준다. 또 가장 결정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청년 스필버그의 영화관에 영향을 줬는지도 보여준다. 엥? 그냥 전기영화 아니야? 이 영화는 뻔한 전기영화와는 다른 감이 있다. 바로 러닝타임 내내 이런 가치들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에피소드 하나당 하나가 아니라 사실상 이런 가치들이 하나로 묶여있는 듯한 연출법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의 핵심과도 이어져있다. 예를 들어서 주인공의 부모님은 입체적인 캐릭터다. 아버지 버트는 아들의 꿈이 취미라고 생각하지만 카메라를 사 준다. 또 이 버트라는 캐릭터는 아버지로서 굉장히 훌륭한 사람인 것으로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어떤 문제가 있어서 영화의 핵심 사건에 원인을 제공한다. 또 어머니 미치는 아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사람이다. 또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아들의 꿈을 후원한다. 이 영화를 좋아하고 예술가적 특성이 마음 안에 있는 그녀가 결국 어떤 결과를 맞이하는지도 영화에서 재미있게 묘사된다.
무관은 정말 서운해
사실 아카데미를 그렇게까지 신뢰하는 편은 아니다. 뭐 오스카에서 상 하나 못 받았다고 영화 가치가 떨어지나? 그런 건 없다. 글쓴이만 해도 작년 수상작인 <코다>보다 <드라이브 마이카>나 <파워 오브 도그>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건 좀 해도 너무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엄청난 작품이라는 것은 변함없지만 감독상 정도는 줄 만 했잖아?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감독의 역량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느낄 수 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새미는 영화 안에서 몇 작품을 찍는다. 이 작품은 새미의 삶과 별개처럼 보이지만 사실 거의 그대로 현실을 담고 있다. 극 중 극이 품고 있는 서사 중 몇몇 장면이 현실의 어떤 지점에서 영화화되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정밀하고 섬세하게 이야기를 구성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 현실과 영화와의 사이라는 지점은 영화의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과도 이어져있다. 그러니까 그 부분은 이 ‘현실과 영화사이의 교집합’은 곧 ‘새미의 예술관’, 즉 ‘스티븐 스필버그의 예술관’과도 이어진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렇게 토대가 단단해진 스필버그는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까? 아버지가 세계 2차 대전 참전 용사였다는 것(<라이언 일병 구하기>) 외로웠던 유년시절에 판타지적인 요소로 아로새긴 친구(<E.T>), 퇴색되어 버린 가족의 사랑(<A.I.>) 유대인의 관점에서 보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뮌헨>)까지 그의 실제 행보를 생각해 보면 이런 장면들이 작품을 보고 나서도 다른 감동처럼 느껴지게 한다.
또 이 영화는 인물에 대한 판단이 거리감이 있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우리가 만약에 한 60여 년 동안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그 60년의 세월 동안 쌓은 입지가 세계 최고라고 생각해 보자. 우리 지나가다가 만난 아무 나도 '어려운 시기 이겨내서 지금 행복하게 잘 산다'류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떠들곤 한다. 할리우드에서 잔뼈가 굵은 감독이라면 이 드라마틱한 성장서사를 더 전하고 싶지 않을까? 영화는 냉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인물을 판단하지 않는다. 자기 연민에 대한 이야기? 없다. 영화를 위한 거룩한 희생? 감정적으로 들끓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이 사건들을 어떻게 영화화할 것인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감정적인 반응에 강점이 찍힌 건 작품 상영 후를 묘사하는 지점 쪽에 있다. 그래서 어린 시절 함께 살았던 가족들에 대해서 무작정 안 좋게 묘사한다던가, 영화에서 악역이라고 볼 수 있는 인물들을 무조건 감싸준다던가 하는 일은 없다. 생각해 보면 이 역시 영화의 핵심 중 한 부분('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영화화한다는 것')과도 닿아있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리고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도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영화 촬영은 엔딩과도 관련이 있다. 엔딩에서 그렇게 연출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흐름이 깨지기 때문이다. 이 말은 영화에서 두 사람의 촬영방식을 구현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새미가 찍는 극 중 영화, 스필버그가 기획한 장면 연출이다. 또 어떤 장면에서 빛을 활용한 촬영이 돋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미학적인 아름다움이 영화에서 품기는 분위기를 더 매력 있게 만든다.
이 둘이 부부
사실 이 <파벨만스>를 글쓴이가 전부터 기대했던 이유는 두 주인공 때문이다. 바로 폴 다노와 미셸 윌리엄스다. 폴 다노는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선 굵은 연기를 한 것으로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있다. 또 <더 배트맨>에서는 적은 노출로 어떻게 하면 광기를 폭발시킬 수 있는지를 연구한 티가 났다. 이렇게 테크닉 화려하게 때려 박는 연기를 잘하는 것 같지만 이 사람은 따뜻한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연기력으로 두드러지는 부분은 다른 배우들 쪽에 좀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의 테크닉이 다른 영화들처럼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폴 다노는 대체불가한 장점을 과시하며 안정적으로 극을 이끈다. <밀양>의 송강호 배우가 생각나는 연기였다.
미셸 윌리엄스는 연기의 정석을 그대로 옮긴 것 같았다. 폴 다노처럼 개성 있는 해석능력으로 자기만의 세계를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미셸은 반대로 그 세계와 인물을 오롯이 이해하고 순간마다 서려있는 감정연기를 풍부하게 보여줬다. 이 마치를 가로지르는 캐릭터 특성은 호기심과 신선함이다. 뭔가 새로운 걸 찾아 나서는 성격인 미치. 이 신선함에 대한 강박은 인물을 후반부까지 이끄는 좋은 동력이 된다. 걸핏하면 몰입이 깨질 수도 있는 인물을 영화의 엔딩까지 적절하게 끌고 갔던 것은 이 미셸 윌리엄스의 덕이 크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양자경과 케이트 블란쳇이 유력했던 탓에 이 분이 엄청 언급된 건 아니라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 미셸 윌리엄스는 인물의 입체성을 이 세계가 품고 있는 질서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만한 가치가 충분했다고 느낀다.
모든 걸 포함하는 이야기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역시 엔딩이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에게도 가장 인상 깊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솔직히 처음 극장 문을 나올 때 '이걸?' 싶었다. 그런데 집에 가면서 다시 돌아보니 이 영화의 엔딩으로 이 장면만큼 깔끔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해가 어려운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의 첫 장면과 끝장면이 왜 그 부분으로 시작할까?를 생각해보신다면 이해가 쉽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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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일본에서 주목받는 떠오르는 영화감독 미야케 쇼의 신작 <새벽의 모든>이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극심한 감정 변화에 시달리는 후지사와와 공황장애로 인해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야마조에가 특별한 연대로 삶의 희망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공감 드라마입니다.
새벽의 모든은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공식 초청되었고,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 이어 3연속 베를린에 초청된 미야케 쇼 감독은 일본을 대표하는 신예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의 섬세한 연출력과 따뜻한 시선으로, 삶의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9월 셋째 주 개봉예정 PICK
새벽의 모든
All the Long Nights
개요: 드라마 | 일본 | 119분
감독: 미야케 쇼
주연: 마츠무라 호쿠토, 카미시라이시 모네, 미츠이시켄, 시부카와 키요히코
개봉: 2024.09.18.
배급: (주)디오시네마
줄거리
한 달에 한 번, PMS 때문에 짜증을 억제할 수 없게 되는 ‘후지사와’. 한층 악화된 증상에 다니던 회사를 도망치듯 그만둔 그녀는 아동용 과학 키트를 만드는 작은 회사, ‘쿠리타 과학’으로 이직한다.
친절한 동료들과 가족 같은 회사 분위기에 차츰 적응해 가던 중, 직장 내 자발적 아웃사이더 ‘야마조에’의 사소한 행동에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크게 분노를 터뜨린다. 그러던 어느 날, 발작 증세를 보이며 쓰러진 ‘야마조에’가 극심한 공황 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서로의 고충을 나눈 두 사람 사이에는 친구도 연인도 아닌 특별한 우정이 싹트기 시작하는데…
수유천
BY THE STREAM
개요: 드라마 | 한국 | 111분
감독: 홍상수
주연: 김민희, 권해효, 조윤희, 하성국
개봉: 2024.09.18.
배급: (주)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줄거리
한 여대에서 촌극제가 있다. 전임이라는 이름의 강사가 외삼촌에게 자신의 학과 촌극 연출을 부탁한다. 전임은 매일 학교 앞 수유천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신의 작품 패턴을 얻어내려는 것이다. 외삼촌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몇 년 째 일을 못하고 있는 배우 겸 연출자이다.
사십 년 전 이 여대에서 대학 일학년의 신분으로 촌극을 연출했던 기억 때문에 연출을 맡은 것이다. 촌극하는 학생들 사이에 스캔들적인 사건이 하나 일어나고, 전임과 외삼촌은 그 사건에 가볍게 끼어들게 된다. 그사이 외삼촌은 텍스타일과 여교수와 가까워지는데, 밤마다 하늘의 달은 점점 커져만 가고, 전임은 아침마다 수유천에서 그림을 그린다.
테인티드 러브
Tainted Love
개요: 드라마 | 중국 | 100분
감독: 마잉신
주연: 주동우, 장위, 장유호, 이몽
개봉: 2024.09.19.
배급: (주)디스테이션
줄거리
“사랑해… 거짓말” 연인에게 사기를 당한 여자 ‘저우란’. 진실을 찾기 위해 방문한 낯선 곳에서 두 남자 ‘린즈광’과 ‘쉬자오’를 만난다. 꿈 같았던 만남도 잠시, ‘저우란’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깊어지는 사랑과 의심 속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트랩
Trap
개요: 스릴러, 범죄, 미스터리 | 미국 | 105분
감독: M. 나이트 샤말란
주연: 조쉬 하트넷, 아리엘 도노휴, 살레카 샤말란, 헤일리 밀즈, 알리슨 필
개봉: 2024.09.18.
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줄거리
팝스타의 콘서트, 경찰의 거대한 덫… 탈출해야만 한다!
10대 딸과 함께 인기 팝스타의 콘서트를 찾은 ‘쿠퍼’. 신나게 콘서트를 즐기던 그는 순간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그곳이 최악의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한 거대한 덫임을 알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쿠퍼’ 자신이 바로 연쇄살인마라는 것! 이제 ‘쿠퍼’는 수많은 관객과 경찰을 따돌리고 어린 딸과 함께 무사히 이 덫에서 탈출해야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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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리아 페레즈] 끝장리뷰 | 뮤지컬 선택 이유 | 젠더에 대하여 | 결말해석 | 세 명의 남편 ?!
[에밀리아 페레즈](2025)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젠더 이슈?
Chapter 2 뮤지컬 이유
00:00 에밀리아 페레즈
00:45 젠더 이슈
05:09 뮤지컬 이유
07:16 별점 및 한 줄 평
07:35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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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 여름, 가장 차가웠던> 티저 예고편
예기치 못한 일로 자허의 어머니는 2년 전 살해됐다. 이 일로 자허와 그녀의 아버지는 인생의 중심을 잃는다. 레슬링팀에서 은퇴한 후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한 자허의 아버지는 도축장에서 육류 배달업자로 일하고 이로 인해 자허는 놀림을 받는다. 외롭고 무기력해진 그녀는 수치심과 불공정에 맞서기 위해 본인만의 도덕 규범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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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노바디>
정말이지 착하게 살고 싶었다. 참으려고 했다.
이제 나 건드리면 X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