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2023-04-03 15:07:33
40대여 일어나라 더 퍼스트 슬램덩크 THE FIRST SLAM DUNK
특정 연령대가 아닌 모든 연령층을 타겟으로 아직도 롱런 중
만화 원작의 애니메이션 영화 '슬램덩크'가 올해 1월 4일 개봉해 현재까지 상영 중으로 롱런 중이다. 그다지 관객몰이를 하지 못할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는 달리 박스오피스 1위, 상영 3개월이 되는 시점에서는 3위이다. 관객 수는 435만 명으로 스크린에 함께 걸렸던 국내 블록버스터 영화들보다 관객 수가 많은 편이다. 유명 배우를 기용한 몇 편의 한국 영화가 100만 명을 넘기지 못하는 기간 동안 추억의 애니메이션은 400만 명을 넘어섰다.
40대를 타깃으로 한 작품일 것이라 여겨졌지만, 10대 만족도는 9.65, 40대는 9.35로 오히려 만화책이 아닌 애니메이션을 통해 만난 이들의 만족도가 더 높다. 코믹스에서 다 그려내지 못했던 가드 송태섭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연출된 작품이지만, 북산과 산왕 간의 대결이라는 그리고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향해 가는 북산 팀의 이야기가 담긴 만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알지 못하는 관객 층에게도 충분한 어필을 한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만화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감독을 맡았고, 상영 시간 124분, 평점 9.27이다.
슬램덩크 만화책의 주인공 채치수, 서태웅, 정대만, 강백호, 송태섭 중 앞의 4인의 스토리는 충분히 그려졌으나, 송태섭의 이야기는 충분치 않아 그에 관한 스토리를 쓰고 싶었다던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바램이 담긴 더 퍼스트 슬램덩크 THE FIRST SLAM DUNK이다.
만화책에서는 하나 누나를 좋아하고 귀에 피어싱을 낀 다소 껄렁껄렁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가드로서의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자신만의 필라소피를 농구 안에서 풀어내는 모습이 매력적이던 송태섭의 성장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하지만 영화는 송태섭의 성장 과정뿐 아니라 산왕과 북산과의 경기를 통해 강백호만이 가진, 그리고 채치수, 서태웅, 정대만, 안경 선배, 하나 누나, 안선생, 강백호의 친구들, 그들 자신만이 가진 특유의 캐릭터를 살아있는 듯 발하며 극의 재미를 더한다.
이 애니메이션 원독자들은 2023년 이 시대의 40대 들일 것이다.
그들은 X 세대라 불리며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문화 가운데 컸으며, 그들은 새로운 물결을 만든 세대들이다. 자신들이 학습되고 부모 세대로부터 받은 익숙함들은 그들이 접하게 된 새로운 문화나 교육들과는 이질감이 생겨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층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기존 문화와 흐름에 아무것도 모르고 편승하기에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은 그러한 자신들의 위치 때문에 수많은 어려움과 고민 가운데 봉착하게 되었다.
그들은 새로운 물결을 만들며 마치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 거대한 기존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지만, 세상 가운데 이미 존재하고 있던 물결은 무척이나 넓고 깊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 타협하지 않고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가는 이들과 그 물줄기 안에서 편승하는 듯 보이지만, 마음 안에 담겨 있는 열정을 무시할 수 없는 이들이 되어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 가운데서 무력감을 느끼고 우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누워 있는 자들에게 이 영화는 일어서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단지 추억을 회상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추억을 딛고 일어나 마음속의 열정으로 다시 그 거센 물줄기 안에서 새로운 물꼬를 틀라고 촉구하는 듯 보인다.
OST는 비트 있게 생동감을 주며 움직이고, 북산고 선수들의 호흡과 관객의 호흡은 정확히 일치한다.
더빙과 자막 중 자막을 선택하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영화의 흥미를 더해줄 것이다.
40대여,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길 바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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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실패하는 사랑에 관하여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사랑을 하는 순간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실패할 것이 눈에 뻔히 보여도, 그것이 나를 다치게 할지라도 일단 덤벼들고 보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 앞에 주춤할 수 있는가. 계산하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될까.
토베 얀손은 우리에게는 무민 원작자(또는 무민 엄마)로 알려졌다. 핀란드 국민 캐릭터 무민을 만든 사람. 어쩌면 그냥 거기까지.
조앤 K. 롤링이 해리포터 시리즈를 썼다, 같은 느낌이다.
무민에 대한 이야기는 책, 애니메이션, 전시 등 다양하다. 하지만 무민을 만든 사람이 대관절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알 길이 없다.
토베 얀손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온 영화 <토베 얀손>은 그런 점에서 작가론적 영화다.
토베는 조각가 아버지의 후광에 가려 의기소침한 화가다.
캔버스를 흰색 물감으로 뒤덮으며 그것을 '자화상'이라고 부르는 화가.
토베의 아버지는 토베가 하는 것마다, 그리고 실패할 때마다 '그러게 내 말을 들으라고 했지?' 같은 말만 한다.
토베는 아버지를 따라갈 수 없음에 좌절한다.
아버지는 토베가 그리는 무민 캐릭터에도 그런 식이다.
'이런 건 그림이 아니야'
아버지는 토베의 <담배 피우는 여자> 그림을 안 보이게 돌려놓는다. 그러나 토베는 숨쉬듯 담배를 피우는 애연가다.
아버지는 또한 국가이자 제도이자 관습이자, 그 모든 규범의 상징이다. 아버지를 거역하는, 아니 거역해야만 예술가가 될 것이다.
토베가 그린 그림들은 주목받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낙서처럼 그린 무민으로 만든 풍자만화가 조금씩 주목받는다.
그래도 수입은 불규칙하다.
토베는 예술가가 아니면 동정 뿐인 집안에서, 천재 아버지의 오점을 맡고 있다.
예술가 모임에서 만난 유부남 아토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와 결혼할 만큼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토베의 <담배 피우는 여자> 그림을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그 사람은 토베의 심장을 강타한다.
바로 비비카.
비비카는 시장의 딸이자 연출가이다. 시장의 고희연 초대장 삽화를 의뢰하면서 인연이 되었다.
토베는 거절할 수 없는 강한 끌림에 비비카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어떡하나. 비비카는 아무나 사랑한다. 혹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결혼을 했지만 남편을 사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토베만 바라보지도 않는다.
끝없이 다른 이들에게 추파를 던진다.
토베는 비비카의 부탁 반 강요 반으로 무민의 연극 각본을 쓰게 된다.
하기 싫지만 사랑하니까 한다. 그래도 다행히 무민 연극이 히트를 치면서, 토베는 꽤 유명한 작가가 된다.
화가는 아니고, 동화작가다.
누군가가 묻는다. 왜 동화를 쓰게 되었냐고.
토베는 대답한다. 화가로서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비비카를 사랑하지만 비비카는 이기적이다. 비비카에 대한 사랑은 영영 실패한다.
파리에서 우연히 비비카를 만나, 사랑한다고 말하는 토베에게 비비카는 '나는 파리를 사랑해'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다.
아토스는 토베와 결혼하기 위하여 이혼까지 불사한다. 토베 역시 비비카에 대한 좌절감으로 청혼을 승낙하지만, 결국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아토스 역시 토베와의 사랑에서 실패했다. 아무리 무뎌지려고 해도 안 되는 마음이 있다는 그의 말처럼.
무민의 인기는 고공행진한다. 당시 세계적인 일간지였던 <이브닝뉴스>에서 토베와 계약을 하는데, 그 기간이 무려 7년이다.
월급인 줄 알았던 금액은 주급이다. 집세도 못내서 전전긍긍하던 그가 하루아침에 인기작가가 되었다.
영화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까지를 다룬다.
아버지가 죽고, 유품을 정리하다가 신문에 연재한, 혹은 인터뷰한 무민과 토베의 모든 것을 모아둔 스크랩북을 발견한다.
그리고 토베는 별안간 치워두었던 물감과 캔버스를 꺼내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이가 있었으니, 토베의 평생 반려자인 툴리키다. 툴리키는 토베에게 무엇을 그리느냐고 묻는다.
토베는 말한다.
"새로 시작하는 사람"
*
영화는 무민의 탄생 배경이라든지 토베가 무민으로 얼마나 부자가 되었는지 등을 완전히 배제한다.
영화 안에는 예술가이자 여성인 토베 얀손만 존재할 뿐이다. 그의 고독, 그의 외로움, 우울이 펼쳐내는 행위들만 존재한다.
토베 얀손은 무민을 그리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인자한 할머니 이전에 시대와 관습에 저항하며 치열하게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던 한 명의 예술가였다.
또한 자신의 삶을 이끌어나간 한 명의 여성이었다.
이 영화의 감독 또한 여성인데, 한 인간에 대한 전기적 영화임에도 그의 연대기, 혹은 그의 위대함을 작위적으로 꾸미지 않았다는 점에서 전기적 영화의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토베는 화가가 되는 데도 실패하고 비비카와의 사랑도 실패했으나, 실패는 실패대로 의미가 있다.
끝없이 실패해도 다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들, 그것이야말로 진짜 사랑이 아닐까.
무민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음에도 다시 붓과 물감을 잡는 토베 얀손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은 늘 우리를 아프게 한다.
돈을 사랑하면 돈이 당신을 아프게 할 것이고, 반려동물을 사랑한다면 그것이 당신을 아프게 할 것이다.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것 때문에 몇 리터의 눈물을 쏟았는지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람을 사랑할 때는 말할 것도 없다. 반드시 그것 때문에 울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장정일의 시,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처럼, 사랑을 끄고 켤 수 없기 때문이다.
실패할 줄 알면서도 거듭 사랑한다.
어쨌든 삶을 굴려가는 건 사랑이다. 실패하거나 말거나, 사랑이 우리를 죽이고 살린다.
* 시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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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나를 ‘다이애나’라고 부르지만
영화가 시작하기 전,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연기한 주인공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짤막한 인터뷰가 나왔다. 그가 말했다. 다이애나 관련 영상을 ‘다’ 보았다고. 호기심이 잔뜩 일었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납득할 만한 연기력을 처음으로 볼 수 있으려나.
그가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들을 꽤 보았다. 2016년 <카페 소사이어티>와 <퍼스널 쇼퍼>, 2018년 <리지>, 2019년 <찰리스 엔젤스(미녀 삼총사 3)>, 2020년 <크리스마스엔 행복이>. 감상은 늘 비슷했다. 과하지도, 약하지도 않다. 그런데 인상적이지도 않다. 꾸준히 작품을 해온다는 건 배우로서 욕심이 있고, 그만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인데. 괄목할 만한 성과가 안 보여 내심 응원했던 것 같다. 구설수 말고, 뛰어난 연기력으로 이슈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
<스펜서>를 보던 중 문득 생각했다. 이래서 다이애나비 영상을 ‘모두’ 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했구나. 디테일한 버릇, 몸짓, 말투, 태도까지. 그 인물을 잘 모르는데도 이 사람 특유의 제스처와 걸음걸이, 시선처리까지 한눈에 보였다. 물론 이 모든 걸 계산했다면 한계가 있었을 거다. 왜, 그런 캐릭터들이 있지 않은가. ‘나 지금 연기하는 중’ 임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캐릭터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는 자신이 알게 된 사실들을 모두 잊었다고 했다. 덕분에 연기가 아주 자연스러웠다. 애를 쓴다는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냥, 그 사람을 보는 듯한 느낌. 한 인물의 감정선을 집중적으로 표현하는 영화에서 연기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물론 있다. 연출.
이제 영화 내용을 살펴보면서 몇 가지 인상 깊었던 대목을 짚어보려 한다. 비극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한 허구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라고 해야 할지 모호하다. 게다가 실화를 다룬 이야기는 내용을 알고 보아야 더 좋기도 하다. 예를 들면,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
<스펜서>
개봉: 2022.03.16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16분
출연진: 크리스틴 스튜어트, 샐리 호킨스 등
영화의 색감은 전체적으로 노랗다. 이건 몇 가지 효과를 만드는데 1) 색 바랜 느낌을 준다. 2~30년쯤 지난 옛날의 분위기 말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망일이 1997년이니, 과거의 이야기를 바탕에 두었다고 표현한 것일 수 있겠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라는 영화의 주요 키워드와 연결되기도 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뒤에서 이어가기로 한다. 2) 따뜻하다. 부드러운 햇살이 주는 따스함은 부정할 수 없다. 여기에 보여주는 이미지들은 삭막하고 엄숙하다. 이미지 간의 대비가 극명한 영화다. 다이애나의 화려한 겉모습과 썩어 문드러진 속(마음, 혹은 신체적 장기)을 대조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적막한 시작이었다. 배경이 넓게 보이는 롱샷으로. 군용차를 아주 조그맣게 보여준다. 차가 지나가는 소리만 고요히 울렸다. 그리고 카메라의 움직임은 드론 같았다. 차 문이 열리고, 군인들이 나오는 장면까지 말이다. 멀찍이서 비춘지라 인물 개개인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고로 한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 표정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게다가 똑같은 군복 차림이라서 구별하기도 어렵다. 그들은 하나의 존재처럼 턱, 턱, 턱, 묵직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계단 아래로 향했다.
그곳은 널찍한 주방. 철제 테이블이 즐비한 곳이다. 무표정한 얼굴로 이곳저곳을 걷다가 말한다.
Clear.
군인들이 나가고, 요리사들이 들어온다. 새하얀 요리복을 차려입은 그들과 군인들과 다를 바 없다. 셰프의 지시에 맞춰 움직인다. 무슨 전쟁 중의 만찬도 아니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가족끼리 오래간만에 모이는 자리였다. 정해진 순서, 정해진 역할, 정해진 준비. 숨이 꽉 막히는 상황. 배경에 깔린 음악이 불안하고도 불편했다.
한편, 다이애나는 홀로 운전 중이다. 도무지 알 수 없단 얼굴로 지도를 들여다 보고, 식당에 들어가 여기가 어딘지 묻는다. 길을 잃은 다이애나. 그가 물리적으로 처한 상황은 심리적 상황과 동일하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모른다. 그 딴에는 최선의 저항일 수도 있겠다. 한 번쯤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억지로 참석해야 하는 자리에 최대한 늦게 도착하려고 이런저런 핑계를 만든 적. 사방에 널린 불편함을 감내하기는 쉽지 않을 테다.
아주 느지막이, 왕실에 다이애나의 차가 들어선다. 그리고 그 위로 타이틀 <SPENCER>가 얹어진다. 현재 ‘다이애나’라고 불리는 그의 가문 이름, ‘왕세자비’에 가려진 그의 뿌리.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다이애나’ 혹은 ‘프린세스’가 들어가던 것. 왕실에서의 삶을 이름으로 붙였지, 그의 과거가 담긴 패밀리 네임은 제목으로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스펜서> 포스터를 보고서도 누구의 이야기인지 예측할 수 없다. 얼굴도, 익숙한 이름도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웅크린 상반신과 끝없이 펼쳐진 드레스 자락만이 마주하는 전부다. 왠지 모를 무거움이 느껴지는 뒷모습.
즐거운 크리스마스에는 한 가지 풍습이 있다. 로비에서 몸무게를 재고, 크리스마스가 지난 후 다시 몸무게를 재서 얼마나 무게가 늘어났는지 확인한다. 잘 먹었다는 게 그만큼 시간을 잘 보냈다는 의미인 것처럼. 다이애나에겐 곤혹일 수밖에 없다. 명분뿐인 자리에서 즐거움은 찾아볼 수 없고, 무시와 조롱을 묵묵히 견뎌야만 한다. 3일. 3일만 버티자. 스스로에게 되뇌는 수밖에.
이제 환각 같은 일들이 드문드문 일어난다. 제가 앉을 의자에 각자가 맞춰 앉은 식사 자리. 남편 찰스 공이 준 진주 목걸이를 성가시다는 듯 계속 만지작대다 힘으로 뜯어낸다. 자연히 진주들은 하나씩 떨어져 일부는 수프에 퐁당 들어간다. 다이애나는 그것들을 목구멍으로 꿀꺽 삼킨다. 딱 하나가 아니라 하나씩 여러 개를.
반짝이는 진주 목걸이. 보는 사람 눈에는 아름답지만, 착용하고 있는 사람에겐 무겁기만 하다. 목을 감싼 모양새가 목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곳을 ‘집’으로 명명해야 하는 다이애나에게 주어진 상징물. 게다가 진주 목걸이는 찰스가 불륜 상대에게 먼저 준 것이다. 결국 다이애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간다. 알고 있는데 모르는 척해야 하는 답답함. 뭐라도 뱉어내고 싶지 않을까. 애석하게도 얼마 먹지도 못한 수프가 뱉어낼 수 있는 전부다. 차라리 목을 꽉 막고 있는 진주였다면 좋았을 텐데.
무너진 그를 어떻게든 지탱하는 건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이다.
윌리엄과 해리, 두 아들들과 함께일 땐 다이애나가 밝다. 평소에도 몸에 밴 웃음기가 있지만, 표정에 생기가 돈다. 장난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왕실을 비꼬는 상황극을 이어간다. 두 아들의 나이대는 다이애나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떠올리는 자신의 모습과 비슷하다. 마냥 행복했던 지난날. 자신의 진짜 집이 있던 때. 마구 달릴 수도, 웃을 수도, 있던 때.
두 아들은 현재에 머물면서 다이애나에게 과거를 느끼게 해 준다면, ‘앤 불린’은 말 그대로 과거의 사람이다. 온갖 누명과 추문을 뒤집어쓰고 끝내 사형당한 영국의 16세기경 왕비. 의아한 건 다이애나가 앤 불린의 언니인 메리 불린의 후손이라는 거다. 왜 자신의 선조가 아닌 앤 불린의 환영을 보고, 살아갈 힘을 얻었을까.
아마 자신과 비슷한 삶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을 둘러싼 헛소문과 음해를 알면서도, 끝내 사형대까지 몰린 사람. 찰스의 경멸 어린 눈빛, 낮잡아 보는 태도, 미친 사람 보듯 하는 왕실의 신하들. 이러한 환경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는 건 생각만큼 어렵다. 게다가 왕실의 말을 듣지 않아서 죽게 된 선례가 버젓이 있으니, 압박감은 엄청날 테다.
그러나 비슷한 환경에 처한 사람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면이 존재한다.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아는 셈이다. 사행 집행일에’ 나는 목이 얇으니 금방 죽이겠다’고 농담한 앤 불린의 담대함. 표적이 되었음에도 당당한 자세. 앤 불린은 사형당했으나 불쌍히 여길 사람은 아니다. 왕실이 그를 죽인 건 절대 움츠러들지 않았기 때문이니까.
크리스마스 만찬을 벗어난 다이애나는 자신의 옛날 집으로 향한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상태가 나빴다. 꼭 다이애나처럼. 위험한 곳이라고 왕실의 소령에게 알리고, 그는 웃으며 답한다. 썩은 계단을 밟아 죽는 건 다이애나의 선택이라는 듯이. 그곳에서 죽으려던 다이애나는 앤 불린의 환영이 걸어오는 말을 듣고, 꿋꿋이 살아가기로 한다.
다이애나,
당신의 무기는 당신 자신이에요.
다이애나의 옛날 집 주변에는 허수아비가 있는데, 아버지의 낡고 해진 재킷이 걸려있다. 다이애나는 언젠가 그것을 깨끗이 만들어 놓으라고 재단사 ‘매기’에게 말했다. 하지만 매기 또한 환영이다. 말끔하게 바뀐 줄 알았던 재킷은 여전히 더럽고, 매기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앤 불린의 환영으로 생을 다짐한 다음 날, 환영이 아닌 진짜 매기가 나타난다.
환영과 실제의 차이는 화면 구도에서 보였다. 환영에서는 인물의 얼굴이 명확하게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이애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매기의 눈과 몸은 관객, 즉 정면이 아닌 다이애나를 향하기에.
그러니까, 다이애나는 몰랐던 거다. 자신과 몇 없는 주변 인물들 사이를 갈라 치기 하고, 헐뜯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도 있음을. 환영의 여성, 그리고 실존하는 여성에게서 힘을 얻은 다이애나는 두 아들을 꿩 사냥에서 빼내오기로 한다.
방법은 간단했다. 평소처럼, 그러니까 ‘미친 것처럼’ 보이면 되었다. 꿩 사냥을 하는 한복판에 나타나 아들 둘이 자신에게로 올 때까지 이곳에 서있겠노라고. 역시나 찰스는 끔찍하다는 얼굴이다. 다이애나는 그 눈빛에 개의치 않는다. 자신과 따스한 감정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 충분한 것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없다. 영화 초반, 다이애나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길과는 다르다. 그 길은 하나 빼고 모두 닫혀있었고, 이 길은 모든 방향으로 열렸다. 얼마나 열렸는가 하면 드라이브 스루로 치킨을 주문할 정도로. 그리고 이때, 다이애나는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말한다.
스펜서.
모두가 그를 다이애나라고 칭하지만, 그는 자신을 스펜서라고 칭한다. 엄연히 다른 이름, 다른 존재로.
스펜서의 마지막 표정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한다. 파파라치, 교통사고. 이로써 마냥 좋은 결말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러나 해방감을 느낀 순간이 무의미하지도 않다. 허수아비처럼 왕실 한 자리를 지키고, 정해진 옷을 순서대로 입어야 하고, ‘좋은’ 겉모습을 꾸며내는 데에 급급한 삶에서 단 한 번이라도 자유를 얻었다면.
끝으로
매기가 말하기를, 당신에게 필요한 것.
Love 사랑
Shock 충격
Laughter 그리고 웃음.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 받아, 참석 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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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목소리를 내는 프랑스 여성 영화 앵그리 애니
앵그리 애니는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2023년 개봉작 '슬기로운 아내 수업'과 연결 선상에 있다. 비록 장르는 드라마와 코미디로 다르지만, 페미니즘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다. 전통적인 관습에 의해 남편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이 여성의 가장 큰 미덕이요 삶의 목적인 프랑스 사회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남녀 관계에서 성적 결정권이 남성에게만 있는 것은 결혼 전이나 후나 동일하다.
원치 않는 임신과 원하는 임신이었을지라도 남편이 원치 않아 자신의 몸을 다치게 하는 그리고 죄악이라 여겨지는 결정을 한다. 그래서 그녀들은 죄책감과 고통 가운데 살지만, 합법적으로 수술을 받을 수 없어 생명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배 속 생명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영화는 성에 있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받아야 하며, 피임에 의한 자유로움을 어필한다. 피임에 의한 무분별한 성생활이 영화의 주제라기 보다 남녀가 동등한 입장에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관계를 맺어가야 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영화를 보는 중 여성의 특성과 여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적힌 여성 잡지를 정작 남성이 아닌 여성이 읽는다는 아이러니함에 관한 글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성의 결정권은 여성이 바라는 영역이지만, 이러한 주제를 다룬 영화 관람은 대부분 여성들이다. 앵그리 애니 시사회 역시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세 네명의 남성 관객이 있어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이 문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희망의 작은 불씨처럼 보였다.
남성이 여성을 존중하고 같은 선상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대해줘야 함을 어려서부터 알아가고 배워가길 바래 8사 아들과 함께 시사회에 참석했다.
남편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라는 등식을 가진 아내에게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운동에 참여하며 자신과 같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이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움을 주는 것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해간다.
가정을 내팽개친다는 조롱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가사 일에 참여할 수 있음을 피력하며 그녀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자리로 간다.
안전한 방법으로 자신의 목숨을 지켰다고 안도할 즈음 자신과 동일한 상황 안에서 목숨의 힘이 점점 약해져 간 친한 친구의 일을 경험하며 애니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 결정이 달라진다.
나 또한 애니와 비슷한 일을 겪은 뒤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결정을 내리는 선택이 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까지 이렇게 살아왔고, 즈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는데 왜 유독 너만 이렇게 하냐?"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란 나는 더 이상 이 말이 부정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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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생하지 않는 엄마에 대하여
영화 <로스트 도터> 포스터
로스트 도터 (THE LOST DAUGHTER, 2021)
장르 : 미국·영국·이스라엘·그리스, 드라마 │ 감독 : 매기 질렌할
출연 : 올리비아 콜맨(레다), 다코타 존슨(니나), 제시 버클리(젊은 레다) 외
등급 : 15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22분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모성을 잃은 여자, 레다.
왜 하필 임신을 준비하고 있는 기간에 이 영화를 보게 됐는지 모를 일이다. 갖기 전에 잘 생각해보라는 신의 경고였을까. 이 영화는 아이를 키우는 환희와 즐거움의 반대편에 존재하는 ‘희생’의 무게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그것도 아주 적나라하고 노골적으로 말이다.
대학교수 ‘레다’는 혼자 휴가를 즐기러 그리스 해변에 왔다. 그녀는 모래사장에 책을 펴고 앉아 누구의 간섭도 없이 홀가분한 시간을 즐기려 하지만, 그곳에 놀러 온 또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된다. 대가족 단위의 시끄러운 어떤 가족들이다. 그 가족의 무리에는 한 젊은 여자가 있다. 서너 살쯤 된 딸을 키우는 듯한 그 여자의 이름은 ‘니나’. 어린 딸과 동행하는 젊은 니나에게, 레다는 자꾸만 시선을 빼앗긴다.
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아름답지 않고 희생하지 않는 엄마에 대하여
레나에게도 니나와 같이 젊은 시절이 있었다. 이른 나이에 낳은 두 명의 딸도 있었다. 그러나 레다의 회상에서 그려지는 그녀의 젊은 시절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두 명의 딸아이는 징징거리며 레다를 보채고, 레다는 그런 아이들이 지겹다. 유망한 대학원생이었으며 꿈이 있었던 레다에게 아이들은 축복보다는 힘겨운 짐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다 레다는 대학교수를 사랑하게 됐고, 그 길로 3년간 아이들을 버려두고 집을 떠났다. 말이 통하는 지적이고 섹시한 대학교수, 아이로부터의 해방감. 그런 것들이 지친 레다를 유혹했고 환상을 갖게 만든 것이다. 물론 레다는 결국 아이들이 그리워져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일에 대한 죄책감까지 씻어지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 일을 벌인 지 십수 년이 지난 레다는, 뭔가에 씐 듯 해변에서 니나의 어린 딸이 가지고 놀던 인형을 훔쳐서 숙소로 가지고 온다.
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행복을 잃은 여자, 니나
휴가를 즐기는 동안 레다는 니나와 부딪힐 일이 많았다. 니나가 잠시 어린 딸을 잃어버렸을 때 레다가 찾아다 준 날도 있었고, 딸 때문에 힘들고 불행하다는 니나의 하소연을 듣는 날도 있었다. 그녀와 만나면 만날수록 영락없이 레다는 자신의 젊은 시절이 겹쳐 보인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숙소로 훔쳐온 인형에 대고 자신의 젊은 시절과 두 딸들을 투영시켰다.
그러던 중 레다는 니나가 남편을 두고 숙소 종업원과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레다가 편해진 니나는 불륜남과 거사를 치를 수 있도록 숙소를 빌려달라는 부탁까지 청해오는데. 레다는 그러기로 약속은 하지만 석연치 않고, 그걸 모르는 니나는 기쁜 마음으로 숙소의 키를 받으러 온다.
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지나가는 바람이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고, 아이 때문에 힘들어하고, 그 지겨운 일상을 벗으려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우려는, 자신과 너무도 닮은 니나를 꾸역꾸역 남처럼 대하려 했으나… 레다는 말해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네가 겪고 있는 그건 지나가는 바람이 아닐 수도 있다고, 아이를 키우는 내내 그런 기분이 들 수도 있다고, 그 산물이 바로 나라고.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의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게 인간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출산과 육아는 여자의 삶의 판도를 많이 바꾸어놓는 듯싶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아이를 케어하기 위한 품이 들기에, 아이가 얼마나 예쁘냐 와는 상관없이 지치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닐까. 그러지 않고서는 모든 엄마들의 소망이 ‘육퇴(육아 퇴근)’일 수가 없잖은가.
영화 <로스트 도터> 스틸컷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짓눌리는 것들
물론 젊은 시절 레나의 일탈과 방황을 두둔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가보지 못한 자유의 길을 꿈꾸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가정을 저버리지는 않으니까. 다만 모성이라는 커다란 범주 안에, 너무나 큰 인내와 희생이라는 요소가 있다는 것에는 깊이 공감하고 싶다. 레나에게도 니나에게도 그리고 모든 엄마들에게도 모두 비슷한 위기와 고비가 있었으리라 이해하고 싶다.
영화의 마지막. 레나는 자신이 니나 딸의 인형을 훔쳤음을 고백한다. 다 큰 어른이 돼서 왜 아이의 인형을 훔치고 모른척했는지 니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관객인 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누가 알 수 있을까. 아이를 버리고 3년간이나 외도를 했다가 돌아온 여자의 그 죄책감의 깊이를. 부디, 영원히 그 감정을 모르길 바라며 살 뿐이다.
* 해당 포스팅은, 씨네랩(CineLab)으로부터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언론 배급 시사회에 초청받아 작성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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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꽃과 면사포
영화는 푸른 새벽, 아름답게 정돈된 정원에서 시작된다. 흰 드레스를 입은 채 장미를 꺾는 금발머리 소녀 엠마는 하인에게 명령하고 긴 복도를 걸으며 자신의 신분을 소개하고는 난생 처음 겪는 이별을 준비한다. 어텀 드 와일드 감독의 <엠마>는 원작인 제인 오스틴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힘든 일 없이 살아가던 엠마가 가까운 가정교사와 헤어지는 큰 변화를 겪으며 시작하고, 완벽히 계획해둔 일들이 어그러지는 가운데 자기 자신을 찾아간다. 그러는 동안 인물들은 색색의 벽과 촛불의 따뜻한 조명, 태피스트리 사이를 우아하게 움직이며 능청스러운 유머를 구사한다. 제인 오스틴이 쓴 여성의 이야기, 안야 테일러 조이가 표현한 매력적인 캐릭터, 어텀 드 와일드 감독이 꾸민 아름다운 화면과 재치있는 농담이 모인 작품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고전이나 예전에 쓰인 이야기를 재해석한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아주 과감한 각색을 시도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머리 앤>은 원작에서 현시대에 살고 있는 여성들, 성장하는 소녀들이 힘을 얻을 만한 지점을 이끌어내어 새로운 세대의 성장 이야기로 만들었고,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매혹당한 사람들>또한 70년대 작품의 시점을 뒤집어 여성들의 이야기로 다시 썼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을 보는 동안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주인공인 ‘조’가 결혼을 선택하는 결말이 실제로 그의 선택인지 혹은 소설의 출판을 위해 쓴 내용일 뿐인지 명확히 하지 않은 점이다. 그런 점에서 <엠마>가 결혼식을 올리는 엔딩이 조금은 답답하게 느껴진다. 영화 내내 응원하고 지지한 것은 엠마가 편견을 걷어내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으면서 성장하는 과정이었지, 이제 스물 한 살인 그가 좋은 남자를 찾아 ‘진짜’ 안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엠마가 마침내 찾아온 평화에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 와중에도 면사포에 가로막힌 채 영화가 끝나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고전 작품의 재해석이나 시대극을 선택하는 것은 오히려 새로운 것을 보고 싶은 욕망과 맞닿아 있다. 조금은 클리셰적인 스토리일지라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세계와 규율을 소개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가치를 답습하기만 한다면 작품이 금세 늘어지거나 답답해지고 만다고 생각한다. 제인 오스틴, 브론테 자매, 루이자 메이 올콧의 소설은 아무리 늘어나도 부족하지 않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었기에 영상으로 만나더라도 기대감을 가지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엠마>의 미장센과 캐릭터들이 구사하는 유머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를 충실히 재현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이틀리가 저택을 포기하고 하이버리의 주인으로서의 엠마를 존중하기로 결정한 데에 만족해야 하는 결말과, 엠마에게 성찰이나 반성이 필요할 때 나타나서 윽박을 지르는 연출 또한 그렇다.
이런 아쉬움은 아름다운 화면과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먼저 주인공 ‘엠마’를 맡은 안야 테일러 조이와 ‘해리엇’을 연기한 미아 고스가 주고받는 호흡이 훌륭하다. 초반에는 신분이 낮은 해리엇이 엠마를 어떻게 대할 지 몰라 쩔쩔매고 후반에는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서 엠마가 해리엇 앞에서 크게 당황하고 만다. 이전에 조금은 신비롭거나 긴장된 역할을 통해 보았던 두 배우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연기를 지켜보는 것이 새롭고 재미있는 작품이었고, 특히 안야 테일러 조이의 당황해 흔들리는 눈빛이나 어떤 상대든지 긴장감있게 대화를 연결해 나가는 능력이 돋보였다.
연기도 좋았지만 역시 <엠마>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화면을 채우는 요소들이다. 엠마는 어린 나이에 하트필드의 안주인 역할을 하는데,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엷은 분홍빛, 푸른빛의 벽과 카펫이 그의 집임을 알려준다. 반대로 나이틀리가 상속받은 저택은 수많은 그림과 거울로 채워졌고 가구며 조각상이 모두 덮여 있어 그가 등장함과 동시에 집안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단순히 배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인물들이 이 공간 안에서 만들어내는 재미있는 장면들도 많다. 엠마가 벽난로를 등지고 거울을 옆에 둔 채 옷을 갈아입다가 치마를 걷어 올려 다리에 불을 쬐는 장면이나, 나이틀리가 방에 뛰어 들어와 예복을 벗어 던지고 바닥에 누워 버리는 장면, 엠마의 아버지가 찬 바람을 막으려 응접실 한 가운데에 수많은 파티션을 놓고 앉아 있는 장면 같은 재치있는 연출과 자연광, 촛불 조명이 영화의 성격을 만들어낸다.
이런 점 덕분에 인물 관계가 복잡해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에도, 영화가 조금 지루하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즐기면서 볼 수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촛대나 주인공의 머리장식, 커튼과 태피스트리 무늬를 구경하면 되니까. 아무리 절망적인 스토리라도, 어떠한 새로움도 없는 영화라도 일말의 아름다움을 찾았다면 즐길 수 있는 내게는 커다란 만족을 준 작품이었다. ‘뭐가 문제인가, 자려고 누우면 생각나는 장면을 선물해 준 영화인데!’ 하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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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펜서>, 다이애나 스펜서의 고통과 자유, 그리고 고귀한 혁명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스펜서>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스펜서>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영화이다. 다이애나는 스펜서 백작의 셋째 딸로, 1981년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결혼했다. 하지만 찰스 왕세자에게는 오랜 연인인 카밀라 파커볼스가 있었고, 다이애나와의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한 결혼이 아니었다. 다이애나를 향한 찰스의 사랑은 한 왕세자가 왕세자비에게 가지는 사랑에 불과했다. 왕이 되고 싶었던 찰스 왕세자에게 가장 적당한 왕세자비는 다이애나였다. 다이애나는 계속되는 왕세자의 부정, 과도한 언론의 관심과 노출 등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고 이 고통은 꾸준히 쌓이고 또 쌓였다.
다이애나의 버팀목은 두 왕자 윌리엄과 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 아들은 다이애나의 마음을 다잡아주는 존재였으며, 왕실 속에서 다이애나의 숨통을 터 주는 존재였다. 그녀는 두 아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였고, 꾸준한 자선활동을 이어나갔다. 자연스레 전 세계의 사람들은 이런 다이애나를 사랑했다. 이후 다이애나는 왕실에서의 자신의 생활을 모두 고발하는 책을 발간하였고, 마침내 찰스 왕세자와 이혼하며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스펜서>는 실제 인물과 사건들을 바탕으로 쓴 '허구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영국 왕실에서 크리스마스 기간을 보내는 다이애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곳에서의 경험을 끝으로 그녀는 마침내 '다이애나 스펜서'라는 이름을 되찾기로 결심한 뒤, '해방'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기 시작한다. 특히 이 영화는 한 인물의 일대기 보다는 '내면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따라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통해 표현되는 다이애나 비의 고뇌, 고통 등의 심경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녀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는 늘 남들보다 느린걸요.
다이애나(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자신의 차를 타고 왕실로 향한다. 왕실에서 이루어지는 3일간의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서이다. 다이애나는 늦을까봐 서두르지 않는다. 가는 길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허수아비에 걸려있던 아버지의 옷을 발견한 뒤 그 옷을 가져오기 위해 넓은 들판을 가로질러 뛰기도 한다. 이때의 다이애나의 얼굴은 길을 잃었다며 왕실 주위를 배회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왕실에 도착한 다이애나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현실이 펼쳐진다. 처음부터 다이애나는 왕실의 감시 하에 강제로 몸무게를 쟀고, 남편인 찰스 왕세자가 선물한 진주 목걸이를 착용하고, 왕실에서 정해준 옷을 입고 모임에 참석했다. 찰스 왕세자가 선물한 이 굵은 진주 목걸이는 왕세자가 자신의 내연녀에게도 선물한 목걸이였으며, 다이애나는 이 목걸이를 뜯어서 스프와 함께 삼키는 상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한편, 끊임없이 옥죄어 오는 왕실에서 다이애나를 숨 쉬게 하는 존재는 두 아들 윌리엄(잭 닐렌)과 해리(프레디 스프라이)였다. 다이애나는 두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랍스터와 게 인형을 건넨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단단한 껍질을 가진 존재들. 두 아들이 그렇게 강하고 단단하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자신도 단단한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모두 투영된 선물이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왕실의 다른 사람들이 잠든 밤, 다이애나와 두 아들은 서로에게 질문을 하면 솔직하게 답을 하는 놀이를 시작한다. 윌리엄은 다이애나에게 무엇이 엄마를 슬프게 하는 것이냐고 질문한다. 다이애나는 과거로 인해 슬프다는 답을 한다. 왕실에는 미래가 없다. 과거에 정해 놓은 규칙들로 인해 현재와 미래가 바뀌는 모습을 쉽게 예측할 수 없는 곳이다. 현재나 미래를 한 개인이 쉽게 바꾸기도 어려운 곳이다. 다이애나에게 왕실은 그렇게 과거로부터 비롯된, 굳게 닫힌 새장이었다.
다이애나는 중간에 큰 아들 윌리엄에게 '자신이 바보 같은 짓을 할 때면 막아달라'는 말을 전한다. 나는 이 말이 너무나도 아프게 느껴졌다. 문장 자체만으로 내 마음 속이 쿡쿡 찔리듯이 아프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의 경우 이 문장이 그랬다. 아프고, 또 아팠다.
다이애나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토해낸다. 그리고 왕실 사람들은 요리사들이 정성스레 만든 음식들을 제대로 즐길 수는 없냐면서 이런 다이애나를 질책한다.
한편, 화려하고 아름다운 의상을 입은 다이애나가 음식을 토해내는 곳은 동화 같은 파스텔 색감의 화장실이다. 스크린 속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 인물이 서 있는 공간이 너무 이질적이어서 해당 인물의 심정이 더 고스란히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다. 바로 이 장면들이 그러했다.
오로지 자신만이 있는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구토를 하고, 자신의 울분을 이렇게나마 표현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그녀의 불행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더불어,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장면들과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화면, 마구 요동치는 듯한 사운드로 인해 다이애나의 숨막힘이 나에게도 느껴졌고, 영화 밖의 관객인 나조차도 '당장 저 왕실을 뛰쳐나가야 한다' 라는 생각을 계속 할 수밖에 없었다.
'왕세자비' 인 그녀를 향한 언론의 지나친 관심은 그녀의 숨을 옥죄어 오는 또 다른 존재였다. 수많은 카메라를 마주할 때 그녀의 입은 웃고 있지만, 그녀의 눈은 항상 울고 있다. 혹은 울기 바로 직전의 위태로운 눈이다. 왕실에서는 언론에 비춰지는 그녀의 모습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꾸며나갔고, 다이애나가 의상 담당자가 정해준 옷을 입고 나가지 않았을 때는 질책하기도 했다. 다이애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렌즈들은 참 잔인하고 삭막하다.
그녀의 자해 횟수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며, 그녀의 불안감과 고통은 커져만 갔다. 그녀는 다른 이들의 저지를 뚫고 오랜 시간이 지나 폐가가 된 자신이 어린 시절 살던 집에 찾아간다. 그리고 그녀는 그곳에서 '앤 볼린'의 허상을 마주한다. 앤 볼린은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로, 헨리 8세에게 이용 당한 뒤 결국 간통죄라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채 참수형을 당한 인물이다. 다이애나는 계단 밑으로 떨어지는 상상도 하였지만, 자신의 마음을 다잡고 굳은 결심을 한다. 찰스 왕세자가 준 굵은 진주 목걸이를 마침내 뜯어내고, 왕실 밖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이애나가 춤추는 장면, 달리고 또 달리며 끝없이 뜀박질을 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어린 시절 발레를 좋아하던 그녀의 모습도 나온다. 다이애나는 이렇게 맘껏 춤을 추고, 바람을 가로지르며 뛰어다님으로써 자신의 내면 속의 어떠한 심정들을 마구 분출해냈다. 혼동, 고뇌, 동요를 겪고 있던 그녀의 춤과 뜀박질은 그 행위 자체로 '해방'과 '자유'에 대한 갈증이 마침내 해소될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 장면들을 보는 순간이 영화의 러닝타임 중 내게 제일 벅찼던 순간이었다. 그저 '벅찼다'. 이 단어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다이애나는 허수아비에 걸려있던 아버지의 자켓을 입고 꿩 사냥을 하러 간 두 아들에게 찾아간다. 총을 쏘기 위해 규칙적으로 서 있던 왕실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등장하는 다이애나의 모습은 한 마리의 '새' 같았다. 새장 밖을 빠져나온 새. 자유를 갈망하는 새.
그리고 다이애나는 총을 쏘기 싫어했던 두 아들을 데리고 자신의 차를 통해 왕실을 빠져나간다. 억지로 갇힌 새장을 숨 막혀 하던 새들은 모두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KFC에서 음식을 주문하며 자신의 이름을 묻는 직원에게 다이애나는 '스펜서'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부분, 그리고 좋았던 부분은 모두 '매기(샐리 호킨스)'와 다이애나의 장면이었다. 매기는 다이애나의 전용 왕실 의상 담당자로, 두 아들과 함께 다이애나가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존재였다. 다이애나를 버티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중간에 매기 대신 다른 왕실 의상 담당자로 교체되며, 다이애나의 고통은 더 심화되기도 했다.
- 전하의 무기는 전하 자신이에요.
자신을 무너뜨리지 말아요.
- 뜻밖의 말을 꺼내 (전하의) 어둠을 걷어내고 싶었어요.
- (전하의) 아이 같은 웃음을 좋아해요.
- 전하에게는 사랑, 충격, 웃음이 필요해요.
매기는 다이애나의 허상 속에 나와 다이애나에게 힘을 불어주기도 하고, 다이애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다이애나를 웃음 짓게 하기도 한다. 다이애나에게도, 그리고 관객인 나에게도 가장 큰 숨통이자 안식처, 미소 짓게 만드는 존재는 매기였다.
그리고 매기는 다이애나의 차에
'전하를 사랑하는 사람은 저 뿐만이 아닙니다.'
라는 메시지를 적어 남겨둔다. 다이애나를 가장 응원하고, 지지하고, 사랑하는 이의 찬란한 메시지.
샐리 호킨스의 모든 장면들이 찬란했다.
그래서 샐리 호킨스의 분량이 적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너무 아쉬웠다. 샐리 호킨스의 장면이 더 많았으면 영화를 보는 나도, 영화 속의 다이애나도 고통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비극을 바탕으로 꾸며낸 이야기' 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 영화와 영화의 토대가 되는 실제 이야기는 비극이다. 영화 자체는 다이애나 스펜서가 자유를 되찾으며 끝나지만, 실제 '다이애나 스펜서'의 삶을 알고 있는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마냥 기뻐할 수 만은 없다. 마음 한 켠에서는 계속 그녀를 향한 슬픔이 차오르고 있다.
그렇지만 왕실을 뛰쳐나오는 다이애나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고귀한 혁명'을 느낄 수 있다.
숨 막히고 고통 뿐이었던 왕실이라는 사회를 주체적으로 벗어난 이의 혁명,
자유와 해방을 좇아 진정으로 웃을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간 이의 혁명.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서의 그녀의 고귀한 혁명을 마주함으로써 우리는 조심스레 그녀를 애도해본다.
'다이애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놀라운 연기를 펼쳤고, 오직 표정과 눈빛, 몸짓 등을 통해 한 인물의 내면을 생생하게 표현해낸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이 작품을 통해 많은 찬사를 받고 있다.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만으로도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스펜서>는 16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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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캐스팅 소개 후에 제대로 있습니다.
블록버스터답게 엔드크레딧이 제법 긴데, 엔드크레딧 후에는 쿠키가 없으니 편하게 나오셔도 될 듯합니다.#분노의질주, #빈디젤, #성강, #샤를리즈테론, #블록버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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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전설적인 왕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결말포함)
영화에취한다 비지니스메일: allwey02@gmail.com
영화:킹아더
결말포함된 영상이니 시청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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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즈였던 전처 ’엘비라’의 죽음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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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술사 ‘마담 아카티’를 찾아가 강령회를 제안한다
‘마담 아카티’의 진지한 퍼포먼스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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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무도실무관> 공식 예고편
태권도, 검도, 유도 도합 9단 무도 유단자 '이정도'(김우빈)가 보호관찰관 '김선민'(김성균)의 제안으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전자발찌 대상자들을 24시간 밀착 감시하는 ‘무도실무관'으로 함께 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액션 영화 넷플릭스 영화 《무도실무관》 9월 13일,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