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3-20 17:11:22
3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3월 17일 ~ 3월 19일
안녕하세요! 영화/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은 날씨가 정말 좋았는데요, 다들 즐거운 시간 보내셨나요?
그럼 오늘은 3월 셋째 주 주말 동안의 박스오피스 분석 결과를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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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3월 셋째 주 주말에는 총 112만 2천여 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는데요, 한 주간 총 163만 9천 명의 관객이 다녀가 지난주(175만 2천 명) 대비 93% 수준의 관객 수를 기록했습니다. 신작들의 개봉에도 불구하고 지난주에 이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이 2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였으며,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역시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박스오피스 2위를 지켜냈습니다. 뒤를 이어서 지난 15일 개봉한 김다미, 전소니 주연의 <소울메이트>가 3위에, DC 유니버스의 신작 <샤잠! 신들의 분노>가 4위,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가 5위에 올랐습니다. 이로써 주말 박스오피스 1위~5위 중 세 편이 모두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의 차지가 되어 극장가 앨본 애니 열풍의 위력을 다시 한번 증명하였습니다.
1. <스즈메의 문단속>(-)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고등학생 스즈메가 재난을 부르는 문을 닫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을 담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스즈메의 문단속>이 개봉 이후 2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켜내고 있습니다. 주말 동안 1456개 스크린에서 71만 2천여 명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누적 관객은 195만 1106명을 기록하였는데요, 개봉 첫 주 주말 관객수였던 69만 4251명보다 높은 결과치입니다. 이로써 <스즈메의 문단속>은 흥행 독주를 이어갈 뿐만 아니라 예상보다 빠른 흥행 속도로 개봉 12일 만에 2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게 되었습니다.
2. <더 퍼스트 슬램덩크>(-)

지난주에 이어 2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역시 <스즈메의 문단속>과 마찬가지로 지난주보다 8.0%가량 증가한 관객 수를 기록하였습니다. 주말 관객 10만 7515명으로 누적 관객 수는 415만 5087명을 돌파하였는데요, 일본 역대 애니메이션의 국내 흥행 순위 1위의 기록을 갈아치운 뒤에도 멈추지 않는 흥행 질주에 과연 500만 관객 유치까지 가능할 지에 귀추가 모아지고 있습니다.
3. <소울메이트>(NEW)

지난 15일 개봉한 <소울메이트>는 개봉 첫 주말 관객 7만 2662명, 누적 관객 11만 8661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3위로 데뷔하였습니다. 영화 애호가들로부터 사랑받은 중국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2017)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배우들의 호연과 섬세한 연출에 힘입어 ‘성공적인 리메이크’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한창 흥행 열풍에 탑승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들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4. <샤잠! 신들의 분노>(NEW)

청소년 히어로를 앞세운 성장 히어로물이자 DC 유니버스의 신작인 <샤잠! 신들의 분노> 역시 개봉 첫 주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들의 강세에 밀려 주말 관객 수 4만 1661명, 누적 관객 6만 3135명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19년 개봉한 전편 <샤잠!>과 비교하였을 때는 대동소이한 성적으로,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는 1위로 데뷔해 국내에서 유난히 주목받지 못하는 느낌이 크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5.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1)

개봉 이후 팬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관객몰이 중에 있는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는 이번 주말 3만 1405명의 관객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순위 5위를 기록, 누적 관객 수는 49만 4853명을 달성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북미 박스오피스 TOP 5>
1. <샤잠! 신들의 문노> 3,050만 달러 (누적 3,050만 달러)
2. <스크림 6> 1,750만 달러 (누적 7,602만 달러)
3. <크리드 3> 1,537만 달러 (누적 1억 2,770만 달러)
4. <65> 580만 달러 (누적 2,242만 달러)
5.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407만 달러 (누적 2억 583만 달러)
국내에서는 외면받고 있는 <샤잠! 신들의 분노>가 북미에서는 개봉 첫 주 오프닝 수익 약 3050만 달러(한화 약 398억 원)를 기록하며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하였습니다. 그러나 개봉수익은 거의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성적으로, 2019년 개봉했던 1편의 수익보다 44%가량 감소할 전망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지난주 1위와 2위를 기록했던 <스크림 6>와 <크리드 3>는 샤잠에 밀려 이번 주말 각각 2위와 3위로 한 계단씩 떨어지게 되었는데요, 두 작품 모두 누적 매출액 7600만 달러, 1억 2770만 달러로 시리즈 내 최고 수익을 거둔 작품으로 거듭날 예정일 정도로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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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3월 셋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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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이 넘는 여정을 끝낸 사람들의 이야기
이 글은 시사회 초대받은 후 작성되었으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흔히 삶을 여행에 비유한다. 탄생이라는 출발지에서 죽음이라는 도착지까지 가는 동안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사건사고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때로는 축제 같은 순간을 경험하며 환상에 취하지만, 반대로 깊은 동굴 속에서 길을 잃은 듯 끝없는 좌절을 느끼는 순간이 생긴다. 그래서 세월을 막론하고 여행이 주제인 수많은 예술 작품은 사람들의 공감과 사랑을 받았다. 영화 '트립 투 그리스'도 주인공들의 여행이 이야기의 중심이지만, 평범한 여행 영화와 다른 약간의 독특함이 있다.
영화 '트립 투 그리스'
영화 '트립 투 그리스(The Trip to Grecce)'는 영국의 유명 배우 '스티브 쿠건(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롭 브라이든)'이 6일 동안 그리스에서 미식 여행을 즐기는 내용을 담았다. 2010년 (한국에서는 2015년) 개봉한 '트립 투 잉글랜드'를 시작으로 '트립 투 이탈리아', '트립 투 스페인'으로 이어진 '트립'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이자 마지막 시리즈이다.
내용을 그대로 적은 영화 제목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트립' 시리즈의 구조는 단순하다. 중년의 두 남자는 '옵저버' 매거진의 제안으로 여행을 하며 현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 영화의 대부분은 여행 도중 스티브와 롭이 자연스럽게 나누는 대화 내용이다. 그들의 대화는 멈추지 않고 오디오는 비어있을 틈이 없다. 롭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노래를 부르고 스티브는 여행지와 연관된 해박한 지식을 풀어낸다. 두 사람은 식사를 할 때도 음식에 대한 감탄보다 누가 더 비슷하게 유명인을 성대모사하는지 경쟁하기에 바쁘다.
이처럼 방대한 분량의 대사를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트립 투 그리스'는 대본이 없다. 인물의 장소와 상황만 정해져 있고 감독과 상의 하에 배우가 현장에서 즉흥으로 대사를 내뱉는다. 또한 두 사람은 극 중 이름을 자신의 본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다. '트립' 시리즈의 감독 '마이클 원터바텀' 인터뷰에 따르면 배우들의 원래 성격을 과장하여 캐리커처같이 묘사했다고 설명한다. TV 다큐멘터리로 연출을 시작한 '마이클 원터바텀' 감독은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자연스러움과 현실감을 강조한다.
트립 투 그리스를 영상으로 미리 만나보세요!▼
긴 여행을 끝내는 지혜로운 마무리
그들이 여행한 그리스는 지중해 연안의 국가로 에메랄드 빛 바다가 둘러싼 아름다운 섬들이 많아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영화 속 그리스의 잔잔한 바다와 노천 식당에서 즐기는 먹음직스러운 음식은 휴양지의 여유를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스티브와 롭이 자유롭게 수영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 어디로든 여행을 떠나고 싶은 충동마저 든다.
영화는 아름다운 풍경에서 더 나아가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에 집중한다. 이전부터 '트립 투 잉글랜드'는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를, '트립 투 이탈리아'에서는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셀리', 마지막으로 '트립 투 스페인'을 통해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발자취를 따라갔었다. 스티브와 롭이 그들과 관련된 여행지를 둘러보며 직접 언급하거나 영화의 상황이 그들과 비슷하게 연출되었다.
그리스에서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Odyssey)'의 내용에 따라 터키 아소스부터 그리스 이타카까지 여행한다. '오디세이'는 그리스 신화의 영웅이자 이타카의 왕인 '오디세우스'의 귀향길을 그린 작품이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목마라는 뛰어난 전략으로 10년 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이타카로 돌아가려 한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의 아들 '아이아스'의 소행과 포세이돈의 아들인 외눈박이 괴물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했다는 이유로 고난과 역경을 겪게 된다. 오랫동안 전해진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다양한 문학 작품에 영감을 주었으며, '오디세이'라는 단어는 여정, 모험 여행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영화 곳곳에 '오디세이'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스티브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이혼한 부인과 아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행을 먼저 마무리한 스티브와 달리 롭은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 모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오디세우스를 닮았다. 또한 40대에 잉글랜드를 여행한 그들이 5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긴 여행을 끝낸다는 상징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거기에 그리스에서 탄생한 '희극'과 '비극'의 개념이 더해진다. 스티브와 롭은 6일 동안 각자 기쁜 일과 암울한 일을 모두 겪는다. 예를 들어 롭은 아내가 늦은 저녁에 아이를 두고 홀로 영화를 보러 갔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끼지만, 결말에 이르러 그리스로 찾아온 아내와 사랑을 속삭인다. 영화는 롭의 해피엔딩과 스티브의 안타까운 결말이 번갈아 보여주며 희극과 비극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고전의 현대적 해석과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은 '트립 투 그리스'를 보통의 여행 영화가 아니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트립 투 그리스'는 시리즈를 사랑한 관객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마무리였다.
우리의 오디세이는 어떻게 쓰일까?
영화를 보고 나니 거리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이 오디세이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이 든다. 퇴근시간, 발걸음을 바삐 옮기는 사람들은 어디로 돌아가는 걸까? 내일의 고난과 역경을 무사히 헤쳐나갈 수 있을까?
주인공이 이제 막 여정을 시작했는지, 거의 끝나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남은 여정 동안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이야기는 새롭게 쓰일 것이다. 오디세우스처럼 역경과 고난을 극복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감동 스토리도 가능하다. 롭처럼 노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스티브처럼 멋진 모습을 스스로 자랑하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람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나쁘지 않다. 마음이 내키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여행하자. 언젠가 끝날 우리의 오디세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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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우마가 나를 괴롭힐 때
정소영 감독의 단편영화 「달이 기울면」 의 텍스트 분석을 하기에 앞서 먼저 트라우마(trauma)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트라우마에 의거한 불안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란 일반적인 의학용어로는 '외상(外傷)'을 뜻하나,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외상', ‘(영구적인 정신 장애를 남기는) 충격'을 말한다. 트라우마는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하는 일이 많기에 이러한 이미지는 장기 기억되어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되었을 때 머리속에 이미지가 떠오르며 불안해지는 상태를 말한다.
영화에서 가장 독특하게 느껴지는 기울어진 집은 주인공 ‘재아’의 트라우마를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기울어진 형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정성과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리고 트라우마는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다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불쑥 튀어나와 정신을 잠식한다. 그래서 주인공 ‘재아’ 또한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외부적 요인인 지진으로 인해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오르게 되자 기절하는 등의 장면이 나온 이유가 그러하다.
영화는 기울어진 형태를 주된 이미지로 잡았다. 그래서 영화 속 주된 공간적 배경인 집 자체가 기울어져 표현되는데, 기울어진 집안이 주는 이미지는 관객들에게 불쾌한 기분을 야기한다. 가장 안락해야할 공간이 기울어졌다는 것은 주인공의 삶이 밸런스가 무너지고 극심한 혼란 상태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는 트라우마를 형상화시켰을 뿐만아니라 무언가가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기울어진 집에서 제사를 지내려고 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집이 더이상 안락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아닌 불안정한 공간으로 설정되어 관객들은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진다. 즉 낯익은 낯설음을 경험하게 됨으로써 영화에 더 몰입하게 만든다.
영화는 주인공. ‘재아’가 기울어진 집에서 부모님 제사를 지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영화가 시작되고 난 뒤 이웃 아주머니가 전해주는 과일을 받기 위해 어그러져 열리지 않는 문짝 대신 문 옆에 난 조그만 통로를 통해 물건을 주고 받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머니의 걱정스러운 우려와 자신은 이 기울어진 동네를 벗어난다고 말하는 장면을 통해 이제 기울어진 동네에 남아있는 사람은 주인공인 ‘재아’ 뿐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재아’는 제사를 위해 촛대를 세우거나 사과를 올려 놓지만 기울어진 집 때문에 물건들이 구르거나 제대로 안착되지 못한다. 화나고 짜증나지만 이 곳을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 소식을 알 수 있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방사능 비, 홀로 사는 여대생을 노린 성폭행 범죄의 증가와 같은 안 좋은 소식들 뿐이다. 그리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인 전화기에서는 돈을 재촉하는 오빠의 목소리만 들려온다.
제사를 준비 하던 중 ‘재아’에게 친오빠가 찾아온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오빠가 찾아오는 씬(Scene)의 분위기가 매우 공포스럽게 그려진다. 마치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처럼 말이다.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특징인 어두운 밤, 비가 거세게 내리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버려진 동네에 추적추적 발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보려고 하는 데 문은 굳게 잠겨있기에 집을 돌아 창문으로 다가간다. 창문 밖으로 비치는 사람의 모습은 ‘재아’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안겨준다.
그래서 재아는 칼을 들고 창문을 억지로 여는 사람을 찌른다. 그러나 그가 오빠인 것을 깨닫고 안심하게 되는데 이 부분만을 보자면 영화는 스릴러장르로 보인다. 그러나 미스테리(Mystery)한 인물은 ‘재아’의 친오빠로, 같이 제사를 지내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이는 맥커핀(Macguffin)으로, 맥커핀(Macguffin)이란 속임수, 미끼라는 뜻으로 영화에서는 서스펜스 장르의 대가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이 고안한 극적 장치를 말한다.
극의 초반부에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버리는 일종의 ‘헛다리짚기’ 장치를 말한다. 관객들의 기대 심리를 배반함으로써 노리는 효과는 동일화와 긴장감 유지이다. 주목을 받는 대상을 맥거핀(Macguffin)으로 사용해 관객들의 김을 빼놓는다. 관객은 스스로의 믿음과 판단력이 조롱당했음을 깨닫게 되지만 이 때문에 불쾌함을 느끼기보다는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된다. 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무가치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는 무지와 오해로 인한 아이러니한 세계를 형성한다. 히치콕은 헛다리짚기를 통해 동일화의 허구성을 체험하도록 만들었지만, 히치콕 이후의 감독들은 극적 재미를 위한 트릭으로 맥거핀(Macguffin)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감독은 ‘재아’의 자살기도, 친오빠의 등장을 맥거핀(Macguffin)으로 그려내어 영화의 재미를 높였다.
기울어진 공간에서 친오빠의 등장은 ‘재아’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처럼 비춰준다. 그러나 친오빠와 같이 제사 준비를 해도 기울어진 공간에서는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과일들은 제대로 그릇에 위치하지도 못하고 선풍기 또한 기울어진 곳에서는 작동이 되지 않아 사용할 때마다 수평을 맞추어야 작동이 된다.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수평을 맞추어야 한다.
이 장면은 불안정한 사람이 제대로 사회에서 작동되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수평을 맞추어야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기울어진 공간은 사람의 마음을 형상화하며 바깥세상 즉, 사회에서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기울어진 마음을 수평으로 맞추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래야 제 기능을 하며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다. 기울어진 공간에서는 억지로 수평을 맞추지 않는 이상 작동되지 않는다.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은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억지로 수평을 맞추면서 살아가고 있다.
오빠는 왼발은 의족을 차고 있고 오른발에 소리가 나는 발찌를 차고 있다. 이는 오빠에게는 족쇄이자, 재아에게는 트라우마의 청각화다. 오빠가 장애를 가지게 된 이유는 ‘재아’의 욕심 때문이다. ‘재아’는 어릴 적 서랍장 위에 있는 과자를 가져가기 위해 지진이 나는 상황에서도 도망가지 않았다. 오빠는 그런 ‘재아’를 구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서랍장이 친오빠를 덮쳐 왼쪽발이 절단된 것이다.
오빠가 움직일 때마다 들리는 소리는 ‘재아’의 트라우마를 야기한다. 그리고 오빠에게 발찌는 족쇄이다. 집을 떠나온 뒤 3년 동안 자신이 가진 핸디캡을 딛고 살아보려고 했지만 의족을 착용한 오빠에게 던져지는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 나름대로 막노동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지내왔지만 생활의 궁핍함과 차가운 사회의 시선은 쉬이 없어지지 않는다. 결국 막노동 현장에서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오빠는 자신의 족쇄를 끊어내지 못하고 잠식된 모습을 그린다.
「달이 기울면」에는 동굴이 등장한다. 오빠가 제사를 준비하다가 물건이 제대로 안 세워지고 굴러 떨어지는 이 공간이 지긋지긋하여 땅을 파고 동굴을 발견한다. 동굴 안에서는 빛이 새어 나오고 기울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이 동굴안에서 ‘재아’와 오빠는 제사를 지내려고 한다. 그리고 마치 어머니 자궁과 같은 안락함도 느껴진다. 이 공간 속에서는 두 인물간의 트라우마를 직접 입밖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에 지진이 발생하고 기울어진 집은 점차 수평이 맞춰지게 된다. 수평을 맞춰지는 집을 보면서 ‘재아’는 자신이 오빠의 발을 다치게 한 사건이 떠오르고 재아는 기절한다. 다음 날 아침 찾아온 사람들로 인해 문이 부서지고 ‘재아’는 오빠의 유품을 받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죽음 충동과 연결 지어 텍스트를 분석해 볼 수 있다. 여자 주인공 ‘재아’와 오빠는 죽음 충동에 빠져있다. 죽음 충동이란 프로이트가 제창한 정신분석학 용어로 죽음으로 향하려는 욕구를 말한다.
‘재아’가 자살기도를 하는 장면을 맥거핀으로 사용하면서 ‘재아’의 죽음충동을 그려내거나 오빠가 자신의 죽음을 동굴안에서 고백하는 것을 말할 수 있다. 기울어진 집 안에 구멍을 뚫어 동굴을 만들고 동굴을 통해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등장인물의 모습은 일방적인 공간(상징계)에서 동굴이라는 상상계의 틈으로 들어가고 싶은 욕망을 보여준다. 동굴은 죽음으로 가는 공간이다. 동굴은 돌아가신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고 오빠가 자신의 죽음을 토로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크레딧에서 조그만 공간으로 빨려 가는듯한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임상체험을 한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죽음을 맞이했을 때 환한 빛이 나오고 그 빛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는 진술을 영상화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시간으로서의 이미지란 공간 속에 과거, 미래, 현재가 혼용되어 있는 공간을 말하는데 불쾌한 공간의 고리를 끊고 싶은데 그 파편화된 이미지에서 과거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이는 동굴에서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다가 오빠가 자신의 죽음을 말하자 지진이 일어나고 파편화된 과거의 이미지를 통해 재아가 자신 때문에 오빠가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가 혼재된 공간인 동굴은 시간으로서의 이미지로 해석될 수 있다. 즉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과거와 미래, 현재의 시간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단편 영화「달이 기울면」을 보고 나면 맥거핀, 죽음 충동, 시간으로서의 이미지등 다양한 이론들을 영화적으로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는 것을 배울 수 있게 해준 영화인 것 같다. 영화가 던져주는 메시지는 다소 무겁지만 누구에게나 트라우마는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수평만 유지할 수 는 없다. 한 쪽으로 기울수 도 있고 불안감에 빠져 자살을 기도하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트라우마(trauma)를 통해 잠식되는 불안감이라는 어두운 감정을 기울어진 공간 속 ‘재아’라는 인물을 통해 잘 드러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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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애가 가득한 영화 <레슬리에게>
*스포일러 유의
아내와 함께 용산 CGV에서 영화 <레슬리에게>의 시사회에 참석했다. 마이클 모리스 감독의 영화 <레슬리에게>는 인간 생에 존재하는 모든 감정을 롤러코스트의 드라마틱한 움직임처럼 보여준다. 로또 당첨으로 세상을 모두 가진듯한 희열, 알코올 중독으로 파멸을 겪은 아픔과 후회, 버린 어린 아들이 성장하여 엄마를 멀리하는 현실에 대한 고통,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서 오는 자책.....
돈벼락으로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한 레슬리. 지역방송과 인터뷰에서 아들 제임스와 함께 나와 마음껏 기쁨을 표현했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신가요?”
“아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기타도 사주고, 식당도 차리고....”
6년 후, 술에 빠져 수억의 복권 당첨금을 몽땅 탕진한 레슬리. 올데 갈 데가 없어 장성한 아들 집을 찾는다. 하지만 알코올중독을 뿌리칠 수 없어 술을 멀리하겠다는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아들 제임스(오웬 티그역)는 룸메이트의 돈을 훔쳐 술을 마셨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엄마를 멀리한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하고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 영화는 자신의 그릇된 행동으로 나락에 떨어진 사람이 변화하여 일어서는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담고 있다. 주인공 레슬리의 알코올 중독과 함께 모텔의 젊은 주인 로열도 마약중독자이다. 중독은 삶을 파괴하고 관계를 무너뜨린다. 중독은 또한 의존을 불러온다. 알코올에 중독이 되면 알코올 의존을 벗어나기 힘들고, 마약에 중독되면 마약에 손을 떼기 어렵다.
의지를 가지고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엄청난 고통의 금단현상이 따라온다. 로열이 마약이 생각나면 밤중에 괴성을 지르고 밖으로 뛰어나가 옷을 벗고 춤을 추며 마약에 대한 생각을 돌리려고 몸부림치는 이유다. 레슬리는 오로지 아들에게 괜찮은 엄마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고통스러운 술의 유혹을 뿌리친다.
나락에 떨어진 인생에도 눈을 들어 보면 분명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들의 존재와 호의가 망한 인생에 온기를 돌게하고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
호텔 관리인 스위니(마크 마론역)의 관심과 사랑은 중독된 두 사람을 치유하고 중독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구원자가 된다. 잘못된 과거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사는 영혼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은 이 영화는 비평가협회상을 받아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촬영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촬영감독 라킨 세이플이 맡아 영화를 더욱 빛냈다. 레슬리의 역을 맡은 안드레아 라이즈보로의 연기는 빛났다. 영화의 깊이를 더한 그녀의 연기는 아카데미에서도 인정하여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렸다.
영화의 러닝타임 대부분을 인간사의 어두운 내용들이 펼쳐져, 보는 내내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다. 2시간 러닝타임이 3시간 정도로 느껴졌다. 다행히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 카타르시스가 되었다. 옆에 앉은 여성관객도 억눌린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서인지 참지 못하고 소리 내며 훌쩍이며 엔딩에 감동했다. 2시간 내내 인간사에 등장하는 모든 감정이 파도치는 보기드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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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을 수 없는 상실과 잃을 수 없는 그리움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클로즈> Close 2022
벨기에 / 드라마 / 104분
감독: 루카스 돈트
잊을 수 없는 상실과 잃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클로즈>
레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아 잠을 자지 못하는 레미에게 작게 속삭인다. "상상해 봐 넌 방금 알에서 나온 아기 오리야, 난생처음으로 눈을 뜬 거야. 넌 다른 오리보다 훨씬 아름다워, 특별해." 계속 뒤척이던 레미는 레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레오는 아기 오리가 도마뱀을 만났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넌 도마뱀이 무섭지 않아, 사실 처음 봐서 잘 몰라, 하지만 넌 걔가 좋아. 너처럼 특별하거든. 아기 오리와 도마뱀은 같이 길을 떠나 그리고 함께 트램펄린을 뛰어." 레미는 그제야 깊은 보조개를 보이며 눈을 감는다.
레오가 언급하고 레미가 집중한 특별함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피부로 느낀 특별함은 한때 내가 느꼈던 얼룩덜룩한 색깔이다. 우리 역시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특별하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으니까. 어두컴컴하고 외롭고 공허한 감정을 숨기고, 타인들 틈에 섞이고 싶지 않은 마음을 애써 좋게 표현하기 위해 '특별'로 나를 포장했던 기억. 지극히 개인적이라 내밀했고, 따라서 언제든 각자의 안전지대가 있었던 순간들….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나만의 기준을 처음 정립하고 보낸 유년 시절의 기억은 잊을 수는 있어도 결코 잃을 수는 없다는걸.
<클로즈>가 두 아이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이 특별함에서 시작한다. 우린 이미 이 특수한 특별함의 결말을 알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마음으로 벼랑 끝에 섰던 그 시절의 나, 내가 반드시 앓아야만 했고 그리하여 놓쳐버렸던 관계, 하나를 잃는 순간 전부를 잃은 것만 같았던 순간. <클로즈>는 삼분의 일도 채우지 못한 '나'의 나이테를 스스로 도려내면서까지 제 세상을 지키려고 한 두 소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출처: 영화 <클로즈> 스틸(다음)
다른 아이, 틀린 사람, 특별한 존재, 그리하여 쉽게 외톨이가 되는 나. 두렵고 무서운 세상을 견디는 데 필요한 건 나와 똑 닮은 이방인이다. 딱 한 명이면 된다. 세상의 편협한 기준에 맞춰 사는 게 어렵고 힘든 '특별한' 내가 '특별한 나'를 운명적으로 만나 제삼자들의 노골적인 힐난에서 안전하게 벗어나는 것이다. 중요한 건, 탈출하는 순간 특별이란 단어엔 조금의 부정도 남아있지 않아야 한다. 레오와 레미가 직접 울타리를 세워 강한 연대를 형성한 것처럼 말이다. 두 사람 사이엔 공유하지 않는 감정도, 나눌 수 없는 이야기도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가능성과 모든 불가능성을 어떠한 기준 없이 전달하고 전달받는다. 일방적인 것 같지만, 엄연히 그들이 정한 룰이며 합의된 사랑이자 우정이다. 이 절대적인 포용과 충만한 상호교류는 레오와 레미의 세계를 같은 도형으로 찍어내는 것도 모자라 원래 하나였던 것처럼 단일 세계로 보이게 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이 세상이 존재했을 때부터 너와 나는 함께였다는 믿음, 그 결과 견고한 울타리는 보이지 않는 경계로 완벽하게 변모한다.
수년간 함께 같은 계절을 지나왔던 레오와 레미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 서로 다른 곳에서 혹독한 계절을 맞이한다. 단단하고 강력했던, 그래서 조금의 이질감도 느낄 수 없었던 울타리를 먼저 넘어 도망친 건 레오였다.
출처: 영화 <클로즈> 스틸(다음)
"너희 둘이 사귀니? 친구라기보단 너무 가까워 보여서."
장난기 섞인 농담 반 진담 반, 레오는 쫓기듯 부정했고 레미는 침묵했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가 동일한 언어를 쓰는 일은 희박하다. 각자가 정의한 단어를 조합해 서로의 의견을 파악하고 이해해 받아들일 뿐이다.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고, 엄청난 노력이 요구되며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는 면역력도 갖고 있어야 한다. 반 이상이 어긋나기를 택하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들어간 레오와 레미는 이제 막 작은 사회에 던져졌다. 어른도 갖지 못한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고로 그들에겐 농담 반 진담 반은 있을 수 없다, 오로지 날카롭게 파고드는 냉혹한 악담뿐이지.
레오는 달라진다. 레미와 거리를 두고 적성에 맞지도 않는 아이스하키를 배우고 새로 사귄 친구들 틈에 섞여 주파수가 다른 웃음 코드에 반응한다. 특히 아이스하키를 배우는 레오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레오가 아이스하키를 자신의 남성성 표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그는 자신의 남성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상태다. 무엇이 남자다움이며 어떤 시각이 다른 아이들이 원하는 시각인지 모른다. 목적 없고 보이지 않은 불안에 발이 걸린 채, 자기 확신과 의지를 버리고 형태조차 잡히지 않은 세계에 들어가려 애쓸 뿐이다. 레오가 타인의 잣대로 인해 자기 자신을 잃는 건 찰나였고, 레미는 이를 막을 힘도 명분도 없었다. 그들의 울타리는 이미 망가진 후였다. 누구나 때가 되면 자기만의 세상에서 나와 더 큰 세상을 맞닥뜨려야 한다지만 이를 제삼자가 무차별적으로 관여한다니, 참 애석한 일이다. 더 기분 상하는 건 그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는 걸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점점 더 노골적으로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레오에 레미는 혼란스러워한다. 레오에게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다가가 돌변한 이유를 묻지만, 돌아오는 건 대답을 품은 침묵이다. 레오는 레미에게 냉랭한 태도를 유지한다. 동시에 레미가 현재 자신의 상황을 헤아려주길 바란다. 레미라면, 나와 같은 세계에 사는 나라면 당연히 자신을 이해해 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레미는 레오와 다른 사람이다. 두 사람의 세계가 같은 모양으로 빚어졌을 뿐이다. 늘 같이했던 놀이도 나눴던 대화도 사라진 지 오래다. 끝내 레미는 처참히 부서진 울타리 앞에서 자신의 형체를 영원히 지우기로 한다. '나와 나'가 아닌 '나' 홀로 남은 세계에서 탈주하는 건 레미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레오에게 자기 존재를 부정당한 것만큼 슬픈 일이었다.
출처: 영화 <클로즈> 스틸(다음)
레미의 죽음으로 학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심리상담을 진행한다. 레오는 더욱더 많은 친구를 사귀고, 공동체 안에 무난히 섞이기 위해 학교생활에 더 몰두한다. 악착같이 레미를 생각하지 않기 위해 아이스하키를 하고 새로운 친구 집에 놀러 가 잠도 자고, 부모님 화훼농장 일을 돕기도 한다. 가족은 온 마음을 다해 반쪽을 잃은 레오를 살피고 위로한다. 그러나 레오는 계속 고통에 몸부림친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레미가 부서진 울타리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며, 레미에게 마지막으로 건넸던 자신의 침묵이 사실은 엄청난 폭언이었다는 것을. 그는 레미에게 한 대답을 자신에게 똑같이, 수백 번 되풀이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혹독한 벌을 주기 위해 아이스하키를 했던 거고, 레미 엄마와의 대화를 피하면서도 모든 시선 끝엔 그녀를 담았으며 매일 고통을 삼켰다.
죄책감, 슬픔, 분노, 자책, 공포, 두려움. 처음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과 원치 않는 상황들.
마침내 팔을 다쳐 더 이상 아이스하키를 못하게 되자 레오는 레미의 부서진 화장실 문과 형언할 수 없는 슬픔, 그리고 죄책감에서 자신이 평생 벗어나 수 없을 거란 진실을 받아들인다. 레미를 향한 참을 수 없는 그리움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때 그 시절 우리가 반드시 마주해야만 했던 현실이었고, 온전한 내 편과 나였던 너를 다신 볼 수 없는 미래였다. 이전과 다르지 않게 흐르는 시간과 표면적으로만 바뀌는 계절 속에서, 괜찮아질 거란 믿음과 이별과 작별하는 이상적이고 획기적인 방법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아기 오리와 도마뱀이 함께 여행을 떠나는 아름다운 동화는 두 아이의 밤을 포근하게 해줄 수는 있어도 책임져주진 않으니까. 레미 엄마를 향한 레오의 고백이 유독 고통스럽고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출처: 영화 <클로즈> 스틸(다음)
레오와 레미의 특별함에서 시작했던 <클로즈>는 레오가 비로소 혼자가 되자 속도를 올려 우리 모두가 걸어야 했던 순간들을 빠르게 지나친다. 카메라는 더 가깝게 레오를 향하고, 이야기는 더 담담하게 레오를 통과한다. 이를 가슴 아픈 성장이라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레오의 모든 반응을 세밀하고 집요하게 관찰한다. 무엇보다 ‘지나간다’, ‘흘러간다’, ‘멈추지 않는다’에 몰두한다. <클로즈>의 초점은 상실한 레오가 아니라 상실한 레오의 뜀박질에 맞춰있기 때문이다. 충분히 감각적이고 심미적이지만 그 이상 선을 넘지 않는다. 동시다발적으로 솟구치는, 도저히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이 레오를 집어삼키는 걸 손 놓고 지켜보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이에게 계속 상황을 안겨준다. 아이스하키도 심리상담도 꽃밭을 트랙터로 밀고 다시 그 땅에 모종을 심는 화훼농장 일도, 레오의 사랑하는 가족도 모두 레오의 이야기를 끊기지 않게 한다, 하루를 살게 한다. 덕분에 레오는 멈추지 않고 달린다.
무뎌짐이 당연한 세상 속에서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할 방법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다.
둘이 뛰었던 농장을 혼자 뛰는 레오가 잠깐 멈칫거려도 더는 마냥 불안하지 않듯이.
잊을 수 없는 상실과 잃을 수 없는 그리움이 그날의 나를 아주 가까이서 이끌었음을 부정하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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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끔찍한 스릴의 유일한 피난처 <토리와 로키타>
" 저마다 홀로 아프리카를 떠나 벨기에로 온 어린 소년과 사춘기 소녀는
어려운 이민 생활에 맞닥뜨리지만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우정으로 맞선다. "
아프리카계 이민자 청소년인 토리와 로키타는 우정으로 연결된 위장 남매이다. 벨기에에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체류증을 얻어야 하지만 사회에서 바라본 이들은 그저 거주의 이유를 증명할 수 없는 난민의 신분으로 취급된다. 그런 그들 앞에 놓인 생존 방식은 위험을 수반한 마약 운반과 같이 불법일 뿐만 아니라 노동의 대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일들에 더불어 끊임없이 위협받는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노동을 위해 불법 체류증을 구하기로 할 때, 둘의 인생은 고통스러운 함정에 빠지게 된다.
<토리와 로키타>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미성년자들이 직면하는 노골적인 위험과 성적 착취에 대해 보여준다. 또한 토리와 로키타의 ‘삶’을 위해 노력할수록 영화적으로 느껴지는 스릴은 비례하여 증가한다. 감독의 스릴러 장르적 연출 덕인지, 스릴러 장르에 학습되어 느끼는 스릴인지, 이들에게 더 이상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에 느껴지는 스릴인지 그 경계에서 위태롭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실제로 현재 체류권 취득이 어려운 청소년이 받는 위협과 착취는 갈수록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기에 주류 사회의 그림자가 된 이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위협과 착취 문제에 대한 해결에 대한 고민의 부재와 함께 행해지는 무책임한 관료적 결정에 대한 비판이라는 의견이다. 결론적으로 영화를 보며 느끼는 스릴은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주민이 삶에서 느끼는 끔찍한 스릴 체험이라고 볼 수 있다. 우정만으로 버틸 수밖에 없고, 우정이기에 서로의 피난처가 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에 더욱 귀 기울여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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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고딕 호러 명작 <노스페라투>1922 리메이크 소식!
<그것> 페니와이즈 역, <존윅 4> 빈센트 드 그라몽 후작 역으로 얼굴을 알린 빌 스카스 가드가
주인공 오를로크 백작 역을 맡았다고 하는데요.
뿐만 아니라 니콜라스 홀트, 릴리 로즈 뎁, 윌렘 대포, 애런 테일러 존슨 등
화려한 라인업과 <더 위치> <라이트 하우스>로 이름을 알린 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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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씨네뉴스 함께해요
<노스페라투> 트레일러 공개
1922년 개봉한 역사상 최초의 장편 흡혈귀 영화 <노스페라투>가 리메이크로 돌아옵니다.
원작을 연출한 독일 표현주의의 거장 F.W 무르나우 감독의 <노스페라투>는 호러 장르를 포함한 좀비물, 크리처물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명작으 로버트 에거스 감독이 연출을 맡았습니다. 감독은 호러 영화 <라이트 하우스>로 높은 호평과 더불어 칸 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하여 많은 호러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소니 픽쳐스 <스트리트 파이터> 실사판 2026년 개봉 예정
소니 픽쳐스가 세계적 인기를 얻은 대전 격투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실사 영화화를 발표했습니다. 소니는 캡콤과 공동 개발, 제작 및 배급을 맡을 예정이며 개봉일은 2026년 3월 20일로 확정되었습니다. 현재까지는 <톡 투 미>를 연출한 대니, 마이클 필립푸 쌍둥이 감독이 협상 중에 감독직에서 물러나 새 감독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영화티켓 담합 인상’으로 공정위 신고
26일 시민단체가 ‘영화티켓 담합 인상’을 이유로 멀티플렉스 3사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습니다.
"멀티플렉스 3사가 최근 한두 달 사이에 주말 기준 1만 2000원짜리 티켓을 1만 5000원으로 인상했다"면서 "티켓 가격 폭리가 관객에게 부담을 주고 영화계를 위기로 내몰고 있다”라고 주장했으며, 영화관 측은 사업 특성을 이유로 가격이 비슷해진 것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박찬욱 <동조자>,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편 특별 상영
제28회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박찬욱 감독의 <동조자> 전편이 특별 상영됩니다.
<동조자> 특별 상영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탄 응우옌이 집필한 동명의 원작 소설로 제3회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동조자’는 오는 7월 11일 10시 30분부터 20시 30분까지 총 7부를 4회(1~2부 / 3~4부 / 5~6부 / 7부)로 나눠 부천 CGV 소풍 5관에서 전편 상영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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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는 사랑의 표현 / 파도가 지나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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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도시의 사랑법] 끝장리뷰 | 발(foot), 교회, 성경 상징 | 신발, 알비노 해석 | 가치판단의 딜레마
[대도시의 사랑법](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발(foot)과 교회
Chapter 2 가치판단의 딜레마
00:00 대도시의 사랑법
00:20 박상영 작가
02:36 발(foot)
05:15 성경, 기독교
07:36 가치판단의 딜레마
10:36 별점 및 한 줄 평
10:53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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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메인 예고편
흙수저, 취준생. 뭔가를 시작하기도 전에 청년들에게 붙여지는 무수한 꼬리표들.
카메라 앞에 선 27살 ‘무순’은 규정되지 않는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은 청년이다.
오전에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는 밴드에서 기타를 치며 복싱 신인왕전에 참가한다.
어느 날, 친구 태원과 부산에서 서울까지 470킬로미터에 달하는
러닝을 결심하고, 장장 11일간의 여정을 떠난다.
오로지 자신의 육체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정직한 시간,
이유 없이 달리던 길끝에서 무순과 태원은 뜻밖의 세계와 만나게 되는데...
나를 찾기 위한 달리기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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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천고결진> 예고편
“당신에게 입은 은혜를 아직 갚지도 못했는데, 어째서 나만 이 세상에 남겨둔 거야!” 〈천고결진〉 9월 15일(수) 밤 9시, 10시 왓챠 독점공개! 월/화/수/목 같은 시간 각각 2개의 에피소드로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