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3-03-03 09:36:37
짙은 여운을 남기는 찰리 카우프만의 영화들
<존 말코비치 되기>, <이터널 선샤인>, <아노말리사> 등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눈 깜짝할 새에 또 한 주가 빠르게 지나가고 어느덧 주말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요, 이번 주말은 모두 어떻게 보낼 계획이신가요? 여러분의 고민을 줄여드리기 위해 씨네랩은 오늘도 재미있는 영화추천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이번엔 미국의 천재적인 영화감독이자 각본가, 찰리 카우프만(Charlie Kaufman)의 작품들을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려고 해요. 카우프만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유명인의 머릿속에 들어가는 통로를 발견하기도 하고(존 말코비치 되기), 세상 사람들 모두의 목소리가 똑같이 들려 괴로워하거나(아노말리사), 이별의 고통 때문에 기억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기도 합니다(이터널 선샤인). 카우프만의 매력은 인간의 다양한 욕망과 그로부터 비롯된 자아의 분열을 그만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그려내는 것인데요, 기괴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카우프만의 작품세계에 한번 빠져들고 나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려우실 거랍니다.
찰리 카우프만은 누구?

먼저 찰리 카우프만에 대해 소개해 드릴게요. 카우프만은 원래 1990년대 초부터 후반까지 TV 코미디 시리즈와 시트콤 시리즈의 작가로 활동하다가, 1999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각본을 쓰며 전 세계 영화인들이 주목하는 창작자로 떠올랐습니다. 해당 작품으로 그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오르고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뒤이어 <어댑테이션>, <이터널 선샤인> 등의 각본 작업으로 꾸준히 사랑받던 카우프만은 2007년 <시네도키, 뉴욕>을 통해 드디어 감독으로 데뷔하는데요, 안타깝게도 비평가들의 극과 극을 달리는 상반된 평가, 열악한 극장 성적으로 인해 이후 영화 제작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쓰는 족족이 제작에 실패하는 고배를 마시던 카우프만은 감독 데뷔 8년 만인 2015년, 듀크 존슨과 함께 애니메이션 영화 <아노말리사>를 공동 연출하는 데 성공해 해당 작품으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애니메이션 장편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후 카우프만은 2020년 장편소설 <Antkind>를 출간하고,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한 영화 <이제 그만 끝낼까 해>를 통해 다시 한번 평론가들의 호평을 얻었습니다.
올해 1월 카우프만은 삼성이 기획한 'Filmed #withGalaxy'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갤럭시 스마트폰을 활용해 촬영한 단편영화 <자칼과 반딧불이>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영화와 관련된 한 인터뷰에서 차기작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라이언 고슬링을 염두에 두고 쓴 각본이 있으며, 라이언 고슬링이 실제로 제작 및 출연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제작이 무사히 성사되어 두 사람의 협업을 볼 수 있게 된다면 영화팬으로서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겠네요 :)
찰리 카우프만의 영화들
존 말코비치 되기(1999)
Being John Malkovich

감독: 스파이크 존즈
출연: 존 쿠삭, 카메론 디아즈, 캐서린 키너, 존 말코비치 등
장르: 판타지, 코미디
러닝타임: 112분
불경기에 부르는 곳이 없는 인형술사 크레이그. 생계는 아내 로테에게 맡긴 채 거리에서 인형극을 하다가 행인에게 얻어맞는다. 절망에 빠져 새 일을 찾기로 한 크레이그는 어느 날 주특기인 손놀림으로 '레스터 회사'에 서류정리 사원으로 일자리를 얻게 된다. 회사는 뉴욕시의 한 빌딩인데 7과 1/2층(7층과 8층) 사이에 사무실이 위치하는 기괴한 곳이다. 첫날부터 동료 여직원 맥신에게 반하지만 그녀는 냉담하고, 낙심한 그는 어느 날 서류를 정리하다 사무실의 캐비닛 뒤에 숨겨진 문을 발견한다. 문을 열고 작은 통로 안으로 들어가자, 갑자기 어둡고 습기 찬 터널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은 바로 배우 '존 말코비치'의 뇌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
15분 동안 존 말코비치의 뇌 속에 머물 수 있고, 그의 감각을 모두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크레이그가 이 사실을 로테와 멕신에게 알리자 맥신은 통로를 이용해 돈을 벌려하고, 로테는 통로에 직접 들어가 해방감을 느낀다. 얼마 뒤 맥신이 말코비치를 유혹하러 갔다가 그 안의 로테와 사랑에 빠진 것을 알게 된 크레이그는 질투에 사로잡혀 로테를 집에 감금하고 말코비치 속으로 들어간다. 한편, 말코비치는 이상함을 느끼고 맥신의 뒤를 밟았다가 사람들이 돈을 내고 통로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분노하지만, 곧 머릿속을 점령한 크레이그에게 조종당하고 마는데...
자아의 성질과 영혼의 실존 말이야,
내가 과연 나일까? 말코비치가 말코비치일까?....
이 관문이 얼마나 골치 아픈 형이상학적 문제인지 모르겠어?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는 영화 <그녀>로도 유명한 스파이크 존즈가 연출, 찰리 카우프만이 각본을 쓴 1999년도 영화입니다. 인형을 조종하는 남자가 우연히 배우 존 말코비치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블랙코미디 판타지로, 이루지 못한 꿈과 욕망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려는 남자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카우프만이 시나리오를 완성했을 당시에 할리우드 대부분의 제작사들이 '내용은 기발하지만 영화로 만들기 어렵다'라며 제작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게 시나리오가 닿았고, 코폴라가 자신의 사위였던 스파이크 존즈 감독에게 연출을 맡기며 두 사람의 협업이 시작되게 되었다네요. 두 사람은 이 영화로 제7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각 감독상, 각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독특한 카메라 워킹 또한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현실의 인물들을 비출 때 일반적인 눈높이로 고정되어 있던 카메라가 주인공들이 말코비치의 몸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핸드헬드를 활용한 1인칭 시점 숏으로 바뀌어 관객들 역시 말코비치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어댑테이션(2002)
Adaptation.

감독: 스파이크 존즈
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메릴 스트립, 크리스 쿠퍼, 틸다 스윈튼 등
장르: 드라마, 코미디
러닝타임: 114분
<존 말코비치 되기>로 명성을 얻은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니콜라스 케이지)은 괴짜 난초 수집가 존 라로쉬(크리스 쿠퍼)에 관한 저널리스트 수잔 올리안(메릴 스트립)의 논픽션 책 <난초도둑>을 각색하라는 주문을 받는다. 소심하고 사색적인 찰리는 각색이 풀리지 않자 신경쇠약을 일으키는데, 찰리의 경박한 쌍둥이 동생 도날드(니콜라스 케이지 1인 2역)는 시나리오 강좌에서 배운 상업영화 공식에 맞춰 써낸 스릴러 각본이 비싼 돈에 팔리는 쾌거를 올린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찰리는 경멸해 온 시나리오 강좌를 청강하고 원작자가 숨긴 진실을 찾기 위해 올리안과 라로쉬의 뒤를 밟는다.
머리카락을 자르자. 머리칼이 많은 척 남들을 속이면 안 돼...
비참하잖아. 그냥 자신감을 갖자. 여자들도 그런 거 좋아하지.
남자도 매력이 필요해. 살아 있어서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할 거 같아.
호르몬 때문인가. 그럴지도 몰라.
호르몬 불균형하거나 뇌에 문제가 있어서 불안이 생기는 거지.
치료받아야 해. 그런데 못생긴 건 어떻게 하지.
그건 치료도 안 될 텐데...
<어댑테이션>은 <존 말코비치 되기>에 이어 스파이크 존즈와 찰리 카우프만이 다시 한번 손을 잡은 영화입니다. 수잔 올린의 소설 <난초도둑>을 각색한 작품으로, 찰리 카우프만은 이 작품을 통해 허구의 인물이자 자신과 똑같이 <존 말코비치 되기>로 명성을 얻은 시나리오 작가 '찰리 카우프만'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가 책 <난초도둑>의 각색 작업 중 고뇌에 빠져 상상과 일상이 혼합되는 내용을 다뤘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내용이 모두 허구일까요?
찰리 카우프만이라는 각본가는 실재하고, <난초도둑>도 실재합니다. 게다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책의 원작자인 '수잔 올린', 난초 수집가 '존 라로쉬' 모두 실제 인물이죠. 그러나 영화 속 찰리 카우프만이 상상하고 쓴 것처럼 수잔과 존은 내연 관계였던 적이 없으며 카우프만의 쌍둥이 형제 도날드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이렇듯 영화는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강박에 시달리는 찰리를 중심으로 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창작의 고통 속에서 분열하는 시나리오 작가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문학 작품 원작의 영화를 떠올렸을 때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의 독특한 접근이죠. 실제로 원작자 수잔 올린은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고 전하면서도 '삶과 집착'이라는 책의 주제에 충실함과 동시에 갈망, 실망과 같이 더욱 미묘한 부분들에 대한 통찰을 담은 것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해요.
영화 <어댑테이션>과 책 <난초도둑>에 등장하는 '유령 난초'는 정서경 작가가 쓴 한국 드라마 <작은 아씨들>에서도 등장합니다. 너무나 다른 성격의 작품들이지만 인간의 욕망과 개인의 파멸, 성공, 갈등을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는 비슷할 지도 모르겠네요. 함께 감상하며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터널 선샤인(2005)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감독: 미셸 공드리
출연: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마크 러팔로 등
장르: 드라마, 멜로/로맨스, SF
러닝타임: 107분
조엘은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라쿠나사를 찾아가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기억이 사라져 갈수록 조엘은 사랑이 시작되던 순간, 행복한 기억들, 가슴속에 각인된 추억들을 지우기 싫어지기만 하는데... 당신을 지우면 이 아픔도 사라질까요? 사랑은 그렇게 다시 기억된다.
제발 이 기억만큼은 남겨 주세요,
이것만큼은...
<이터널 선샤인>은 만드는 영화마다 환상적이고 독특한 영상미를 자랑하는 미셸 공드리와 찰리 카우프만이 협업한 두 번째 작품입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은 뮤직비디오와 광고 연출로 먼저 주목을 받은 뒤 영화 <휴먼 네이처>로 영화감독 데뷔를 했는데요, <휴먼 네이처>가 찰리 카우프만과의 첫 번째 협업 프로젝트였으나 그리 좋은 평을 듣지 못했고, 두 번째로 함께한 작품인 <이터널 선샤인>이 두 사람 모두의 커리어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됩니다. 흥행과 비평 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고,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공드리와 카우프만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됩니다.
제목인 '이터널 선샤인'은 영화에서 나오듯 알렉산더 포프의 시 'Eloisa to Abelard'의 한 구절인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무구한 마음의 영원한 햇빛)'에서 인용했다고 해요. 주연 배우로는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커스틴 던스트, 마크 러팔로 등이 출연했으며 전체적인 줄거리는 헤어진 뒤 서로의 기억을 삭제하지만 결국 또다시 사랑에 빠지고 마는 연인의 이야기입니다. 괴롭게 만드는 기억으로부터 도망치는 것, 망각하는 것은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사랑에 관해서,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에 대해서 찰리 카우프만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터널 선샤인>의 주인공 조엘은 연인이었던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던 중 결국 참지 못하고 제발 멈춰 달라고 애원하죠. 영화는 헤어진 연인을 완전히 잊고 싶기도 하고, 또 영원히 기억하고 싶기도 한, 연애가 끝난 뒤 복잡하게 꼬여버린 사람의 심리를 기괴하리만치 환상적인 영상미와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냅니다. 반복되는 연애, 사랑, 실패. 그럼에도 눈물 나게 아름다웠던 그때의 우리를 기억한다면 그 지긋지긋한 인생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되죠. <이터널 선샤인>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인생영화로 손꼽히며 개봉 이래 오랫동안 회자되는 로맨스 영화인 이유는 사랑을 경험해 본 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소재를 그 누구도 시도한 적 없었던 방식으로 아름답게 그려낸 찰리 카우프만의 글과 이를 뒷받침해 준 미셸 공드리의 뛰어난 연출력 덕분일 것입니다.
시네도키, 뉴욕(2008)
Synedoche, New York

감독: 찰리 카우프만
출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캐서린 키너, 새디 골드스타인, 미셸 윌리엄스 등
장르: 드라마, 코미디
러닝타임: 123분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사는 연극연출가 케이든. 교외에서 지역 극장을 운영하는 그의 삶은 황량해 보인다. 화가인 아내 아델은 자신의 경력을 쌓고자 어린 딸 올리브를 데리고 그를 떠나버린다. 묘하게 솔직해서 마음이 끌리는 극장직원 헤이즐과의 새로운 관계는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끝나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의 무상함에 괴로워하던 그에게 거대한 연극무대를 올릴 일생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는 뉴욕의 창고에서 실물 크기의 도시를 만들어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극으로 올려 잔인하리만큼 정직하고, 진실된 인생을 그려볼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연극 속의 삶과 케이든의 실제 삶의 경계가 뒤엉키며 그가 맺은 모든 관계들은 한계에 다다르게 되는데…. 케이든은 과연 이 위대한 예술작품을 완성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어요.
그리고 이들 중 아무도 엑스트라는 없어요.
그들 모두는 자기 나름의 이야기를, 삶을 살고 있어요.
그래서 그들 각자의 삶은 주목받아 마땅해요.
<시네도키, 뉴욕>은 그간 각본 작업만 하던 찰리 카우프만의 감독 데뷔작인데요, 제61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첫 선을 보였고 이후 토론토, 시카고, 오스틴, 런던, 시체스 등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에 연이어 초청되며 평단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BBC 선정 21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20위에 랭크되었던 <시네도키, 뉴욕>은 찰리 카우프만의 영화들 중에서도 가장 난해하기로 손꼽히며, 그만큼 관객 평이 크게 갈리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강박에 사로잡혀 사는 연극 연출가 '케이든'의 연극 그 자체인 삶과, 또 삶 그 자체인 연극을 소재로 했으며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사건들을 거치며 늙어가다가 끝내 죽음에 이르는 주인공 역할은 2014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안타깝게 사망한 명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맡았습니다.
영화의 제목 중 일부인 '시네도키 Synedoche'는 사물의 한 부분으로써 그 사물 전체를 가리키거나, 그 반대로 전체로써 부분을 가리켜 비유하는 것을 뜻하는 '제유'라고 합니다. 찰리 카우프만의 이야기가 자주 그러하듯, <시네도키, 뉴욕>에서도 현실과 극의 경계는 수없이 여러 번 허물어지고 시공간 역시 제멋대로 왜곡됩니다.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영화이기 때문에 두 번, 세 번 볼수록 의미가 남달라 지는 작품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하는데요, 외로운 삶 속에서 끝없이 투쟁하는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노말리사(2015)
Anomalisa

감독: 찰리 카우프만, 듀크 존슨
출연: 제니퍼 제이슨 리, 데이빗 듈리스, 톰 누난 등
장르: 애니메이션, 코미디, 판타지
러닝타임: 90분
남편이자 아빠 그리고 [고객을 어떻게 대할까]라는 저서로 존경받는 작가 '마이클 스톤'은 일상에 찌들어있다. 전문적인 고객서비스에 대한 연설을 위해 신시내티로 출장을 간 프레골리 호텔에서 마이클은 인생의 반려자가 될지도, 되지 않을지도 모를 제과회사 세일즈 담당자 '리사'를 만나면서 자포자기의 권태로운 삶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데...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아픔은 무엇일까요?
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누구에게나 사랑할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아노말리사>는 찰리 카우프만이 2005년에 썼던 희곡을 원작으로 만든 스톱 모션 방식의 성인 애니메이션 영화인데요,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 후보에 오르는 등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었습니다. 극 중에서 주인공 '마이클'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같은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병인 '프레골리 증후군'과 유사한 정신병을 앓고 있습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목소리가 똑같은 남자 목소리로 들리는 것입니다. 아내와 아들도 있고 커리어적으로도 훌륭한 삶을 살고 있지만 더없이 외로운 마이클은 출장을 간 곳에서 우연히 다른 사람들과 다른 목소리를 가진 여자 '리사'를 만나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아노말리사>의 주인공은 찰리 카우프만의 손에서 탄생한 여러 캐릭터가 그러하듯 고독과 망상, 불안함에 빠져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끝까지 보고 나서의 감상이 관객마다 천차만별일 것으로 느껴지는 영화인데요, 찰리 카우프만의 다른 영화들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이 작품 역시 만족스럽게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매우 정교한 스톱모션 기술 또한 이 영화의 백미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만이 낼 수 있는 미묘한 분위기가 영화의 메시지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며 신선한 재미를 선사합니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2020)
I'm Thinking of Ending Things

감독: 찰리 카우프만
출연: 제시 플레먼스, 제시 버클리, 토니 콜렛, 데이빗 듈리스 등
장르: 드라마, 공포, 스릴러
러닝타임: 134분
우리는 언제 만난 걸까. 언제까지 만나게 될까. 새로 사귄 남자 친구와 여행을 떠나는 여자. 그의 부모님이 사는 외딴 농장에 가는 길.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흔들린다.
자신의 죽음이 필연적임을 아는 동물은 인간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동물들은 현재에 산다.
인간은 그럴 수 없기에 희망을 발명한 거다.
<이제 그만 끝낼까 해>는 찰리 카우프만이 2020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한 스릴러 공포 영화입니다. 찰리 카우프만이 처음으로 호러 장르에 도전한 작품이기도 하며, 캐나다 작가 '이언 리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시 플레먼스가 주인공 '제이크' 역을, 제시 버클리가 '제이크의 여자친구' 역을, 토니 콜렛과 데이비드 슐리스가 각각 '제이크의 부모님' 역을 맡아 열연을 선보였습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소 찝찝할 수 있는 우울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주인공들은 서로 아귀가 맞지 않는 대화를 나누고, 시간과 공간은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알 수 없게 뒤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에 다다르면 여자 주인공이 줄곧 읊조렸던 "이제 그만 끝낼까 해"의 의미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기이한 현상들의 전말이 밝혀집니다. 전개 방식 자체만으로도 영화적 성취가 큰 작품이며, 찰리 카우프만의 전매특허인 뒤틀린 인간 심리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입니다. 제시 버클리와 제시 플레먼스, 그리고 정말 압도적인 토니 콜렛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이렇게 찰리 카우프만의 영화 여섯 편을 만나 봤는데요, 어떠셨나요?
이미 카우프만을 좋아하시는 분들께도, 처음 접해보시는 분들께도 좋은 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재미있는 영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겁고 평안한 주말 보내세요!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YUMI였습니다.
우리 다음에 또 만나요 :)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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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이 필요한 금쪽이가 빙의를 경험하면 벌어지는 일
<톡 투 미>의 주인공은 호주의 어느 동네에 사는 미아다. 미아는 얼마 전 어머니를 잃었다. 외로운 미아. 사랑한다는 말을 못 했다는 것이 우울했다. 이런 미아는 친구들끼리 모여 재미있게 놀던 도중 한 아이가 꺼낸 ‘90초 빙의 챌린지’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친구 중 한 명이 가져온 손 모형에 누구든 다가와서 악수를 하면, 90초 동안 귀신과 빙의되는 것이 이 '90초 빙의 챌린지'였다. 자기도 직접 챌린지를 해보고, 친구들이 빙의하는 모습도 구경하는 미아. 하지만 일행 중 한 명이 미아의 어머니에 빙의한 모습을 보자 이성을 잃는다. 금기를 깨는 미아. 이후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톡 투 미>가 젊은 영화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여러 매체에서 유행하는 흐름을 잘 가져왔기 때문이다. 우선 영화 전면에서 우리가 잘 아는 소셜미디어들이 등장한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이 그 예시다. 두 소셜미디어가 등장한 후 릴스나 클립류의 짧은 영상이 유행했다. 이 바뀐 시대상을 반영하듯 이야기의 템포는 빠르다. 이 빠른 템포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에 있어 분명한 강점이다. 짧게 이어 붙인 장면이 속도감 있는 플롯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빠르게 전달한다고 해서 캐릭터들을 대강 묘사하지도 않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은 결핍이 하나쯤은 있으며, 각자가 가진 단점에 따라 움직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결함이 인물의 동기가 되는 셈이다. 이 인물들의 동기는 ‘90초 빙의 챌린지’에 대한 태도와도 직결되어 사실상 영화의 핵심으로 작동한다. 어떤 인물이 선을 넘고 또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설정이 호주 사회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했기 때문에 따라오는 단점도 있다. 이 영화의 사운드 믹싱이 관객들이 듣기 편한 상태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톡 투 미>가 '점프 스케어'가 아닌 시,청각적 요소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로 보인다. 감독의 욕심이 과욕이 된 것이다. 또 전체적으로 미야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플롯은 작위적으로 느껴지기 쉽다. 하지만 어디선가 봤던 시시한 오컬트 호러와는 종자가 다른 영화라는 점에서 추천하는 작품이다. 11월 1일에 개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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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EO가 된 여전사
아카데미 3회 노미네이트! 골든 글로브 2회 수상에 빛나는 헐리웃 대표 배우 '시고니 위버'가 새로운 영화와 함께 극장을 찾아주었다고 하는데요! <에이리언> 시리즈를 통해 강인한 여전사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린 시고니 위버는 이후 정반대의 스타일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 <워킹 걸>을 통해 골든 글로브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입증해낸 배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전세계 흥행작 <아바타>에서 그레이스 박사 역을 맡은 그녀는 시대가 지나도 녹슬지 않는 단단한 연기를 선보이며 다시 한번 전 세계를 사로잡기도 했는데요!
아카데미 3회 노미네이트를 비롯하여, 골든 글로브2 회 수상 및 5회 노미네이트, 영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에 빛나는 '시고니 위버'를 올 12월 <마이 뉴욕 다이어리>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1995년 뉴욕 최고의 작가 에이전시의 CEO로,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인물이지만 아랫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따뜻한 캐릭터라고 하는데요. 헐리웃 라이징 스타 '마가렛 퀄리'와 함께 폭발적인 시너지를 선보일 대배우 '시고니 위버'를 만들어준 작품들을 지금부터 같이 만나볼까요?
잇츠 CINE PICK!!
<에이리언>(Alien), 1979
공포, SF | 미국 | 117분
감독 : 리들리 스콧 | 출연 : 톰 스커릿, 시고니 위버, 베로니카 캣라이트
⭐️ 9.50 (네이버 관람객)
우주 화물선 노스트로모호. 외계에서 귀중한 광물과 자원을 나르는 이 거대한 우주선에는 승무원 7명과 광석 2000만톤의 화물을 싣고 지구로 귀환 중이다. 인공 동면을 취하고 있던 대원들은 서서히 프로그램된 컴퓨터에 의해 잠에서 깨어나는데 이들 중엔 2등 항해사인 엘렌 리플리도 있다.
혹성 LA-426 옆을 지날 때, 지적 생명체의 것으로 보이는 발신파를 포착한다. 이에 그녀는 승무원을 깨우고 혹성 탐사를 위해 3명의 승무원을 급파한다. 이 이상한 발신원은 거대하고 정체 불명의 우주선이었으나 우주선은 이미 오래전에 파괴되어 썩고 있었으며 탑승 승무원들은 모두 미이라로 변해 있었다. 사고 원인을 찾기위해 좀 더 안으로 들어간 조사반은 여기저기에서 계란 모양의 물체이 있는 산란실을 발견하고 궁금증을 갖는다. 그 중 캐인이 공격을 받고 실신한다.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하여 실험을 하던 케인은 물체에 충격을 가하고 그 순간 물체로부터 작은 생물이 튀어나와 마스크를 녹이고 케인의 얼굴에 철썩 달라 붙는다. 이들은 이 외계생물이 인간세포로부터 양분을 빨아고 기생하는 존재임을 알게 되는데...
씨네 pick : 영화 역사상 최고의 여전사 캐릭터 <에이리언> 시리즈의 ‘엘렌 리플리’는 전사는 “남성들만 하는 역할”이라는 편견을 깨고,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를 형성해내며 당대 그리고 후대 여성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시고니 위버’가 없는 <에이리언>은 상상할 수조차 없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엘렌 리플리’ 캐릭터는 이미 역할을 다 했다며 <에이리언> 시리즈에는 복귀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는데요. 시리즈물임에도 1~4편 모두 감독이 달라 주제 의식이나 분위기가 매편마다 달라지는 영화 '에이리언'은 아직까지도 시고니 위버를 대표하는 명작입니다.
<고스트 버스터즈>(Ghostbusters), 1984
SF, 판타지, 코미디 | 미국 | 107분
감독 : 이반 라이트만 | 출연 : 빌 머레이, 댄 애크로이드, 시고니 위버
⭐️ 8.31 (네이버 네티즌)
뉴욕에서 괴짜 교수로 유명한 피터 밴크맨, 레이몬드 스탠드, 에곤 스펜글러, 루이스 등 4인조는 뉴욕에 출몰하는 유령들을 잡기위해 '귀신잡는 대행회사'를 설립, 가지각색의 귀신을 잡아들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뉴욕의 다나의 집에 출현해, 거대한 빌딩 옥상에 버티고 있는 유령들의 총두목격인 '카쟈'에게는 아무래도 역부족인듯.
씨네 pick : <에이리언>을 통해 당대 최고 주가를 달리던 '시고니 위버'에게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캐스팅 제의를 건넨 <고스트 버스터즈> 제작진! 그리고 이를 흔쾌히 승낙한 시고니 위버까지! 이 모든 것이 합쳐져, <고스트 버스터즈>는 흥행 대박을 터뜨리며 대표 호러 코미디 시리즈의 시작을 열었는데요. 시고니 위버는 본 시리즈의 리부트인 <고스트 버스터즈>(2016)에도 우정출연 하며 의리를 보였습니다.
<워킹 걸>(Working Girl), 1988
코미디, 멜로/로맨스 | 미국 | 110분
감독 : 마이크 니콜스 | 출연 : 해리슨 포드, 시고니 위버, 멜라니 그리피스
⭐️ 8.21 (네이버 네티즌)
증권 회사 여비서로 일하고 있는 테스 맥길은 성실하고 똑독하지만 학벌이 야간 대학 겨우 나온 것이 전부여서 이제 나이가 30에 접어들었지만 원하는 증권 중개인은 못되고 늘 비서로 머무는 자신이 안타깝다. 또 그녀는 자신의 그런 성공이 뒷바쳐 줄 성격도 냉정하지 못하고 너무 순하고, 직장 위치를 여러 차례 바꾸어도 여자인 탓에 남자 동료들로부터 놀림을 당한다. 그러나 언제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그녀는 마침내 새로 부임 온 같은 나이의 상사 캐더리의 비서일을 얻게 되면서 그녀에게서 여성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냉철한 마음 자세 등 많은 자극을 받는다. 특히 테스는 그나마 자신을 어느 정도 신뢰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주저없이 알려달라는 캐더린이 무척 맘에 든다. 하지만 생각은 잠시뿐, 그녀 역시 상관이라는 직위로 테스를 하인 다루듯 부려먹는 권위주의로 가득한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의 명령에 순종하며 열심히 일하던 테스는 어느날 캐더린에게 자신이 그동안 생각했던 라디오 방송 회사 인수 계약에 관한 좋은 아이디어를 캐더린에게 내놓는데 그녀는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반응한다. 얼마 후, 캐더린이 스키 사고로 입원하자 전화를 통해 자신의 사소한 일까지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모두 테스에게 부려먹는다. 캐더린 심부름을 하던 테스는 그녀가 자신의 아이디어가 좋은 것을 알고 자기 것인양 속여 잭 트레이너에게 협조 요청을 한 것을 알고는 말과 행동이 틀린 그녀의 이중적인 성격에 분괴한다. 또한 동거 생활 중인 남자 친구 마이크가 집에 다른 여자를 불러들여 놀아나는 것을 목격하고는 집을 나와 슬픔에 휩싸이는데.
씨네 pick : <에이리언>과 <고스트 버스터즈>를 통해 SF 영화의 흥행보증수표가 된 시고니 위버가 이미지 변신을 꾀한 작품입니다. 높은 흥행 성적과 연기력에도 유난히 상복이 없었던 그녀는, 본 작품을 통해 골든 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그녀의 연기는 모든 장르에 통한다는 것을 입증해내기도 했는데요. 해리슨 포드, 알렉 볼드윈에 멜라니 그리피스까지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 역시 흥행에 성공하였다니 금상첨화죠?
<아바타>(Avatar), 2009
SF, 모험, 액션, 전쟁 | 미국 | 162분
감독 : 제임스 카메론 | 출연 : 샘 워싱턴, 조 샐다나, 시고니 위버
⭐️ 9.07 (네이버 네티즌)
지구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판도라 행성으로 향한 인류는 원주민 ‘나비족’과 대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가
‘아바타’ 프로그램을 통해 ‘나비족’의 중심부에 투입되는데…
피할 수 없는 전쟁! 이 모든 운명을 손에 쥔 제이크!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한 역대급 세계가 열린다!
씨네 pick : 전 세계 흥행 1위의 대작,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미 <에이리언 2>를 통해 시고니 위버와 호흡을 맞춘 이력이 있는데요. 세계적인 거장 감독과 전 세계가 인정한 최고의 액션 여전사 시고니 위버는 <에이리언 2> 이후에도 꾸준히 인연을 유지해왔다고 합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그녀를 캐스팅하기 위해 직접 전화를 걸어 대본을 전달했고, 시고니 위버 역시 그녀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는데요. 이 둘의 조합을 <아바타 2>에서 다시 한번 만나볼 수 있다고 하니, 어찌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처럼, 다양한 영화를 통해 그녀만의 이미지를 구축해온 대배우 '시고니 위버'가 pick한 다음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의 개봉을 기다리며
오늘도 영화로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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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 이모와 F 조카의 특별한 동거, 그리고 성장!
이모와 조카 사이의 친밀도는 어느 정도일까? 사람마다 가족 관계에 따라 다르지만, <위국일기>의 이모와 조카는 친밀도 0%다. 이야기만 들었지 얼굴 한번 제대로 본적 없는 남남이기 때문이다. 연결고리라곤 혈연관계 하나뿐. T 성향의 이모와, F 성향의 조카가 만나 이루는 특별한 동거는 같은 구석 하나 없는 두 사람이 어떻게든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과정을 느리지만 무해하고 따뜻하게 보여준다. 더불어 이들의 성장 모습도 함께.
왜 그랬을까? 소설가 마키오(아라가키 유이)는 언니 장례식장에서 홀로 남겨져 갈 곳 없는 조카 아사(하야세 이코이)에게 동거를 제안한다. 그것도 홧김에. 연거푸 이불킥을 날릴만큼의 이 제안은 반려동물도 못 키울 정도로 누군가와 함께 사는 걸 잘 못하는 본인이 더 놀란다. 혼자 글을 쓰고 사는 것에 익숙한 마키오의 생활을 잘 몰랐던 아사는 그날 이후 낯설게만 느껴지는 이모 집에서 함께 지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처럼, 아사는 혼란스럽고 복잡하지만 새로운 세상에 한 걸음을 뗀다.
독특하고도 특별한 성장영화인 <위국일기>의 두 주인공 마키오와 아사의 관계는 가느다란 실과 같다. 오롯이 한 가닥만 이어져 있는 듯한 연의 끈은 때로는 느슨하게 때로는 팽팽하게 유지된다. 남들 앞에 서는 걸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빈말은 죽어도 못하는 마키오와 정반대로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를 중요하면서 감정적 공감을 잘 하는 아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접점이 거의 없다. 딱 하나 마키오에게는 언니, 아사에게는 엄마인 미노리(나카무라 유코)가 존재가 있지만, 각각 증오와 그리움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한다.
영화는 너무나 다른 존재로서의 두 인물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을 세심하게 그린다. 그 중심에는 억지로 관계를 맺지 않으려는 마키오의 모습이 자리 잡는다. 극 중 그녀는 성공한 소설가지만 아웃사이더다. 마치 사회가 규정짓는 평범함에 반기를 들 듯, 마키오는 소설을 통해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 푹 빠져 산다. 아사가 온 이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지만, 여느 가족처럼 다정하게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다. 장례식장에서 아사에게 ‘널 사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나는 널 절대로 짓밟지 않을 거야.’라는 말처럼 그녀는 사회가 요구하는 멋진(?) 보호자가 아닌 조금은 다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아사를 대하는 보호자로서 최선을 다한다.
아사 또한 이런 마키오의 낯선 모습에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하지만, 이내 이모의 진실한 마음을 안다. 그동안 친구 등 자신의 행복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관계에 치중했던 아사는 이모와의 동거를 통해 비로소 자신을 보는 법을 배운다. 그녀는 자기 사랑했던 부모가 사라지고,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절친했던 친구와의 사이가 멀어지는 등 의지할 곳 없이 외톨이가 되어 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이런 마음을 다잡아주는 건 일기다.
자신이 쓰다 말던 노트를 아사에게 건넨 마키오는 하루에 있었던 일이나 마음에 남은 감정을 쓰라고 권유한다. 소설가다운 처방전인데, 이는 아사가 남이 아닌 자신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마치 과거의 마키오처럼 말이다. 이 일기는 한 장씩 채워지면서 누군가가 아닌 오롯이 자신이 원하고, 하고 싶고, 바라는 것들을 알 수 있는 지표가 된다.
이 과정을 통해 두 인물은 서로에게 위안을 주고 의지하며, 성장한다. 사춘기를 관통하는 아사는 물론, 자신만의 세계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 마키오도 모두 성장한다. 극 중 아사는 마키오를 보면서 어른에 대한 획일화된 모습, 어른도 친구가 있다거나 모든 걸 다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을 벗어던진다. 어른도 불완전하다는 걸 그때야 깨닫는 이 소녀는 이후 이해의 폭을 넓히고,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재차 확인한다. 그 결과물로서 미완성이지만 그래서 더 좋은 가사를 쓰고, 직접 노래도 부른다.
어른이라면 알겠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과거 언니와의 절연 이후 마키오는 성장을 멈췄다고 볼 수 있다. 나이와 외관상만 어른이지, 과거의 상처로 인한 생채기는 그녀의 성장판을 닫아버린 셈. 운명의 장난인지 증오했던 언니의 딸인 아사를 통해 그녀는 굳게 닫혔던 마음을 조금은 연다. 그리고 아사와 반대로 자신이 아닌 타인을 이해하는 시도한다. 이 과정을 통해 마키오는 어른이 된다. 감독은 후반부 마키오의 고향 해변을 배경으로, 아사 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서서 이해의 시도를 하는 마키오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물론, 두 인물이 중심이 되다 보니 주변 인물들의 스토리가 뻗어 나가지 못하고, 큰 사건 없이 느린 템포로 이어지다 보니 극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영화의 메시지가 도드라져 보이는 건 배우들의 몫. 과거 사랑스러운 청춘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줬던 아라가키 유이는 보다 무표정하지만 성숙한 그리고 남다른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올해 4월 국내 개봉한 <정욕>에 이어 그녀의 진중하면서도 사려 깊은 내면 연기를 마주할 수 있다. 청춘의 모습은 하야세 이코이가 담당한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은 말간 미소를 짓고, 관심받는 걸 좋아하면서도, 친구들과의 관계의 어려움에 슬픔과 외로움을 느끼는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잘 표현한다. 과거 아라가키 유이처럼 하야세 이코이의 이름도 기억할 것 같다.
영화는 성장의 첫 단계가 남이 아닌 나를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이는 느슨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어진다고 전한다. 서로 다른 이모와 조카의 동거가 특별한 건 바로 진정한 성장의 좋은 예이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좋은 에코(울림)가 되는 순간의 기쁨은 꽤 크다. 어른이든 미성숙한 어른이든 간에.덧붙이는 말: 참고로 영화 제목인 ‘위국일기(違国日記, 어긋난 나라의 일기)’는 부모가 아닌 마키오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쓰는 일기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사진 제공: 영화사 진진, (주)하이스트레인저
평점: 3.0 / 5.0
한줄평: 담담하게 적어가는 너와 나의 어른 일기!* 〈씨네랩〉 초청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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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월 셋째 주 극장 개봉 & 예정작 ?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3인 1역으로 기대감을 모으고 있는 <마스크 걸>!
주인공 김 모미는 고현정, 나나,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1명이
배역을 맡아 화려한 라인업과 함께 베일에 싸인 한 명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습니다.자 그럼 <마스크걸> 외 영화 개봉작 3편, 같이 알아볼까요?
마스크걸
Mask Girl
ⓒ 넷플릭스
개요: 드라마 | 한국 | 7부작
감독: 김용훈
출연: 고현정, 안재홍, 엄혜란, 나나 등
오픈: 2023.08.18.
배급: 넷플릭스
시놉시스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가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면서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김모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CINE PICK!
<마스크걸>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정체불명의 BJ 마스크걸, 나나, 고현정이 모두 김모미 역할을 맡았으며 연대기별 3인 1역을 연기한 세 배우가 세 개의 이름, 세 번의 살인, 세 개의 인생을 살아야했던 파란만장 김모미의 인생을 어떻게 관통할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지옥만세
Hail to Hell
ⓒ 네이버영화
개요: 모험 | 한국 | 109분
감독: 임오정
출연: 오우리, 방효린, 정이주, 박성훈 등
개봉: 2023.08.16.
배급: 찬란
시놉시스
학창 시절 내내 왕따와 학교 폭력에 시달려 온 나미와 선우는 같은 반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간 사이 자살을 시도한다. 자살 실패 이후, 두 사람은 자신들을 가장 괴롭혔고 지금은 서울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채린을 찾아 복수하려 한다. 하지만 종교에 귀의한 채린이 너무도 선한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CINE PICK!
학폭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두 여고생의 로드 무비로 27회 부산국제영화제 CGK 촬영상과 제 48회 서울독립영화제 넥스트 링크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의 ‘전재준’ 역할을 맡았던 박성훈 배우와 <소년심판>에서 ‘김아름’ 역할을 맡았던 정이주 배우 모두 전작에서 보여준 생생하고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너의 순간
Your Moment
ⓒ 네이버영화
개요: 멜로 | 한국 | 109분
감독: 이상준
출연: 옥자연, 우지현, 이상일
개봉: 2023.08.16.
배급: 영화로운형제
시놉시스
어느 비오는 날, 우연히 정후의 캠핑카에 뛰어들게 된 영은 그의 캠핑카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고, 이후 둘은 서로의 아픔을 나즈막히 짐작하며 그 해 여름을 함께 보낸다. 정후를 통해 사진의 매력을 알게 된 영은 사진을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영은 정후의 아버지를 찾아가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정후는 분노에 휩싸인다. 아버지를 결코 용서할 수 없었던 정후. 이후 정후와 영의 사이는 점점 벌어지게 되고...
CINE PICK!
영화 <너의 순간>은 2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한국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로, 서로 다른 아픔을 가진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며 성장해가는 로맨스 영화입니다.
강변의 무코리타
Riverside Mukolitta
ⓒ 네이버영화
개요: 드라마 | 일본 | 120분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마츠야마 켄이치, 무로 츠요시, 미츠시마 히카리
개봉: 2023.08.23.
배급: (주)디스테이션
시놉시스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삶을 위해 작은 어촌 마을 공장에 취직한 ‘야마다’는 공장 사장의 소개로 낡고 오래 된 ‘무코리타 연립주택’에 입주한다. 그곳에는 남편을 잃고 딸과 함께 살고 있는 집 주인 ‘미나미’ 남의 집을 제집 드나들 듯 오가는 옆집 이웃 ‘시마다’ 아들과 묘석을 방문 판매하는 ‘미조구치’가 살고 있다. 어느 날, ‘야마다’는 인연을 끊고 살았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접하게 되고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에 혼란스러워 한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무코리타 연립주택’ 사람들 가족도 친구도 아니지만 함께라서 외롭지 않아
CINE PICK!
여유와 따듯함이 공존하는 <강변의 무코리타>는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데스노트> 시리즈 ‘L’ 역으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마츠야마 켄이치, <은혼>을 비롯해 다수의 일본 영화와 드라마에서 감초 역할로 등장하는 무로 츠요시, 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퍼스트 러브 하츠코이>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미츠시마 히카리가 출연해 독특한 유머와 가슴 따뜻한 앙상블을 이루는 작품입니다.
킬러의 레스토랑
High Heat
ⓒ 네이버영화
개요: 액션 | 미국 | 84분
감독: 자크 골든
출연: 올가 쿠릴렌코, 돈 존슨
개봉: 2023.08.17.
배급: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시놉시스
전직 특수요원 출신 스타 셰프 '아나'(올가 쿠릴렌코)가 마피아의 타겟이 된 레스토랑을 구하기 위해 킬러 본능을 다시 일깨운다.
CINE PICK!
<킬러의 레스토랑>은 ‘웨비 어워드’를 석권한 신선한 감각의 이전 광고 감독 잭 골든이 감독을 맡았으며 전직 특수요원 출신 셰프 ‘아나’가 레스토랑에 잠입한 마피아들에게 맞서며 벌어지는 짜릿한 액션물입니다.
이렇게 극장 개봉 영화, 총 다섯 편의 영화를 소개해 드렸는데 어떠셨나요?
그럼 남은 한 주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지금까지 씨네랩 에디터 Amy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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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일에 보기 좋은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일 년 중 가장 특별한 날인 생일! 그러한 생일을 더욱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줄
영화 한 편 봐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생일에 보기 좋은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해피 버스데이
ⓒ 네이버 영화
synopsis
엄마가 떠나기 전 약속한 대로, 일 년에 한 번씩 생일카드를 받게 된 ‘노리코’.
생일카드 속에는 엄마 ‘요시에’가 딸을 위해 준비한 특별한 선물들이 담겨있다.
항상 밝고 씩씩한 엄마와는 달리 주연보다는 조연이고 싶었던 ‘노리코’는
엄마의 생일카드와 함께 매년 특별한 추억을 쌓으며 조금씩 성장한다.
그리고 드디어 스무 살 생일을 맞이한 ‘노리코’는 엄마의 마지막 생일카드를 받게 되는데…cine pick!
신나는 생일 날 보기에는 조금 슬플 수 있는 스토리지만,
생일 관련 소재를 다룬 만큼 생일날 보면 감동이 두 배가 될 것 같아 추천해본다.
아날로그 감성이 묻어나는 영화이며, 소중한 기억과 추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영화이다.
겨울왕국 열기
ⓒ 네이버 영화
synopsis
생일을 맞이한 안나를 위해 엘사가 특별한 생일 파티를 준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안나의 생일을 맞아 멋진 파티를 만들어 주고 싶은 엘사, 그러나 정작 본인이 감기에 걸려생일 파티를 엉망으로 만드는 주범이 되고 마는데..
cine pick!
흥행작 겨울왕국의 속편 <겨울왕국 열기>는 7분 가량의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귀여운 캐릭터들의 등장과 중독성 강한 OST 'Making Today a Perfect Day'까지!!
신나는 생일을 더욱 더 신나게 만들어줄 영화이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 IMDB
synopsis
이모네 식구의 갖은 구박을 받으며 살아가던 고아 소년 해리포터. 큰 기대 없이 맞이한 11번째 생일 날,
해리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입학 초대를 받고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알게 된다.
cine pick!
전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은 <해리포터> 시리즈! 그 중 첫 번째 시리즈에서는
해리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해리와 함께 생일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
케이크와 함께 한다면 더욱 더 몰입감 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버스데이 원더랜드
ⓒ 네이버 영화
synopsis
생일 전날, 평소 자신감이 없는 아카네 앞에 갑자기 나타난 연금술사 히포크라테스와 그의 제자 피포.
자신들의 세계를 구해달라며 아카네를 억지로 데려온 곳은 행복의 색으로 가득한 원더랜드였다!
골동품가게 지하실과 이어진 신기한 나라의 구세주가 된 아카네는
엄청난 모험 끝에 인생을 바꿀 중요한 결단을 내리는데!cine pick!
한 편의 동화같은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 띄고 있으며, 영상미가 무척 뛰어나
보는 내내 눈이 즐거운 영화이다. 깨알 같은 개그 요소도 매우 재밌다.
라푼젤
ⓒ 네이버 영화
synopsis
올드보이도 못 견뎠을 장장18년을 탑 안에서만 지낸 끈기만점의 소녀 라푼젤. 어느 날 자신의 탑에 침입한
왕국 최고의 대도를 한방에 때려잡는다. 그리고 그를 협박해 꿈에도 그리던 집밖으로의 모험을 단행한다.
과잉보호 모친의 영향으로 세상을 험난한 곳으로만 상상하던 라푼젤. 그런 그녀 앞에 군기 빡 쎈 왕실 경비마
맥시머스의 추격, 라이더에게 복수의 칼날을 가는 스태빙턴 형제의 위협, 라푼젤의 가짜 엄마 고델의 무서운 음모 등이
얽히고 설켜 점점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터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세상물정 깜깜한 우리의 라푼젤은 자신 앞에 펼쳐진
스릴 넘치는 세상을 맘껏 즐기는데...
cine pick!
생일 선물로 떠오르는 불빛을 직접 보고 싶었던 라푼젤. 여러분들은 어떤 선물을 받고 싶으신가요?
모든 불을 끄고 무드등 하나만 켜 놓고 본다면 영화에 더욱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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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우리가 만날 때
오래 품은 소원에는 힘이 있다. 흩어지지도 해지지도 않고, 모양을 오래도록 유지했다는 그 자체로. 그 끝에 이루어진 소원은 거의 성공 신화가 된다.
그만큼 쉽지 않으니까. 소원이라는 단어는 얼핏 강해 보이지만 현실이 되기 전까지는 흐릿한 안개 같다. 흐지부지 밀려나기도 하고, 세파에 깨지기도 하고, 문득 스스로 폐기할 수도 있다. 오래 품은 소원을 이룬다는 것은 뚝심과 에너지, 자기 확신은 물론 행운까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이룬 이야기에는 거의 마법에 준하는 힘이 있다. 무심코 떠오른 강렬한 생각 하나를 한참 바라본 끝에 확장한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처럼, 남들에게 인정받는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끝내 꿈꾸던 장면을 만들어낸 영화 <라라랜드>처럼.
그런데 <매드 맥스> 시리즈로 이미 반열에 오른 조지 밀러 감독에게도 그런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20년 전 읽은 단편소설을 토대로 빚은 영화를 마침내 가지고 왔는데, 공교롭게도 소원을 소재로 한 이야기다.
세상 모든 이야기를 섭렵한 서사학자 알리테아(틸다 스윈튼)가 학술 대회 차 방문한 튀르키예에서 기념품으로 작은 병을 구입한다. 그런데 별안간 병에서 지니가 튀어나오고, 세 가지 소원을 묻는다. 알리테아는 이런 이야기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거절하려 하지만, 지니는 알리테아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이 세 번이나 병에 갇히게 되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건 환상일까 진실일까? 이야기는 크게 지니의 이야기 세 편과, 알레티아의 세 가지 소원 두 가지 축으로 굴러간다고 볼 수 있다.
과학이 이야기를 만날 때
영화는 튀르키예로 이동하는 비행기 안의 알리테아에서 시작한다. 오래전 이야기들처럼 ‘옛날 옛적에…’ 식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데, 무미건조한 현대 사회 풍경을 묘사하는 문장들에 전혀 다른 색을 입혀, 마치 다른 시공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공항에서 내려 발걸음을 옮기는 알리테아를 봐도, 온통 무채색 옷을 입은 사람 중 유일하게 다른 색깔 옷을 입은 사람이다.
서사학자로 학회 발표 자리에 선 알리테아는 정작 이야기가 이야기일 뿐이라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데, 일상의 태도를 보면 사실은 이야기 그 자체인 사람이라 물건을 고르는 기준조차 세간의 가치보다는 이야기가 묻어나는 지 여부를 본다. 빈티지 물건들이 다시 사랑받는 세상, 알리테아와 같은 이들은 여전히 꽤 많아 보인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람들이 좋아할 영화다. 작은 물건 하나에 깃든 이야기로 기뻐하는.
그런 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가 튀르키예인 점은 매우 적절하다. 행정 수도로 기획된 도시 앙카라 말고, 천년 고도 이스탄불이어야 한다. 오래된 도시에는 골목마다 이야기가 숨어 있으니까. 벽면에도, 발코니에도, 옛 연인의 단꿈이나 누군가의 한숨, 피, 배신, 눈물 같은 것들이 속속들이 배어 있으니까.
더없이 적절한 풍경에서 알리테아와 지니는 만나고,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에 의존해 영화는 진행된다. 지니의 이야기 속에는 다양한 시대가 등장한다. 시바 여왕의 시대, 오스만 제국의 시대, 제피르라는 여자가 살았던 중동의 어느 시공간까지. 각 시대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뒤섞어 매끄럽게 연출되어 있어, 눈과 귀에 화려하게 감긴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아야 하는 이유다)
실제 역사에 마법이 존재하던 시대 같은 것은 없지만, 그저 꿈에 불과하지만, 지니의 이야기 속 세계는 마치 "옛날 먼 옛날 어딘가"에는 마법이 존재했을 것만 같아 보인다. 생각해 보면 이야기란 원래 존재였다. 아직 식량 생산이 충분하지 않고 전쟁과 기아가 코앞에 있던 그 옛날에도 사람들은 황금빛 이야기를 통해 괴로움과 척박함 속에서 살아 버텼을 것이다. 병 속의 지니처럼.
불안한 미지의 세계에서 이야기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힘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은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과학이 발달한 지금, 과학은 이야기를 대체했는가? 어떤 설명은 과학에게 자리를 내주었겠지만, 여전히 이야기는 나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자기 이야기는 별로 없다는 알리테아에게 지니는 정색하고 말한다. It’s always a story. 우리의 삶은 언제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써내려 가고 어떤 식으로 편집할지 차이가 있을 뿐, 이야기가 아닐 수는 없다. 삶의 이야기, 그것은 과학이 대체할 수 없는 이야기의 영역이다.
애당초 이야기와 과학은 서로 배척하는 단어가 아니라 연결된 별개의 무언가이다. 지니의 이야기 속 제피르를 보아도, 최초의 영화와 상당히 닮은 것을 만들어냈다. 이야기와 과학이 만나는 지점에 영화도 있고 인간도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이야기를 만날 때
알리테아는 자기 이야기를 쓰기보다는 수많은 이야기를 읽고 파악하고, 요약하고 정리하여 갈래로 기억하는 사람이다. 떠나버린 사람의 기억은 상자 하나에 말끔하게 담아 넣고, 상처로 기억되는 순간들도 담담하게 축소해서 기술한다.
반면 이야기를 풍성하게 풀어내는 지니는 상대적으로 더 인간 같다. 소원을 들어주는 정령이라 하나,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다. 더 강한 존재에게 붙잡히기도 하고, 미래도 모른다. 한 치 앞도 모르고 갈망하는 존재, 그것이 인간다운 것임을 깨닫게 한다.
바로 이 지점에 이야기의 매력이 있다. 사실 세 가지 소원에 대한 이야기는 알리테아가 말하듯 흔한 장르다. 우리도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도 이토록 오래된 이야기가 여전히 흡입력을 갖는 이유는 거기에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세 가지 소원이란 결국 마음이 진정으로 갈망하는 게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보아야만 알 수 있는 질문이다. 한 가지도 아니고 세 가지라는 점에서 더욱 세밀하게 속내를 드러낸다. 위험을 느끼면서도 끝내 손을 뻗게 만드는 것, 그 손끝에 무엇이 닿을지 집중하고 보게 되는 것. 마음이 편하기보다 외줄 타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위태롭다. 어쩌면 괴로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를 사랑하은 지니 또한 이야기를 괴로워한다. "희망은 괴물 같고, 이야기는 희망의 노리개"라는 그의 대사에서, 우리의 이 괴로운 갈망 끝에 무엇이 있는지 보인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끝내 희망을 찾아 헤매 온 것이었다.
절망의 중심을 직시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희망의 한 갈래 길을 찾는 것. 이야기는 이야기를 믿는 인간에게만 그렇게 존재한다. 그냥 인간이 그렇다. 인정 없이는, 사랑 없이는, 대화 없이는, 그래서 그것들로 희망을 바라보지 않고서는 이 어둠을 헤치고 살아갈 길을 알지 못한다. 힘들어 죽겠는데 한 번 더 무릎을 펴게 만드는 것이 "괴물 같"은 희망. 포기할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지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것. 이야기는 그래서 존재한다.
이 점은 현대 사회가 이야기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 깨닫게 한다. 이야기조차 그저 지식의 파편으로 간주하며, 재산화되어야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세상. 이야기는 갈망의 산지가 아니라 무수한 심심풀이 도구 중 하나로 간주되어 간다. 화려한 보석 같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굴러다니는 돌이 된다.
현대 사회는 이야기의 찬란한 빛이 많이 감춰진 시대다. 사람들은 “콘텐츠를 소비”하지 “이야기를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지 않는다. 괴로워도 희망을 향하기보다, 그저 아는 절망을 늘어놓으며 절망을 절망의 핑계로 삼는 게으른 창작도 "콘텐츠"로 훌륭하게 기능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식과 이야기의 의미는 변한다.
옛날 같았다면 환영받았을, 이야기가 풍요로운 땅에서 온 이들은 불청객 취급을 받고 있다. 알리테아가 사는 런던의 길거리에도 터번을 쓴 남자와 차도르를 두른 여자가 돌아다니는 세상인데, 알리테아의 이웃집 할머니들은 자기네 문화권이 아닌 이야기를 찾아 다닌다며 알리테아를 못마땅해 한다. 이들은 모른다. 자신들의 조상이 게으르게 그려낸 이야기가 그들의 절망에 기여했다는 걸. 아니었다면 그들은 지금쯤 전혀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만날 때
그러나 이 척박해 보이는 시대에도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 여전히 이야기를 들이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이야기로 의미를 찾고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 삶의 어떤 부재 가운데서도 그 위로를 찾아 버틸 수 있는 사람. 이를 위해 이야기 끝을 뾰족하게 다듬고 섬세하게 방향을 잡는 사람. 괴로워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 심지어 이야기를 사랑하다 못해 이야기의 일부가 되고 마는 사람들이 있다. 가끔은 광인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알리테아의 이야기도 그렇다. 사실 모든 이야기는 진실인 동시에 광기이다.
그래서일까.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본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존재처럼 방황한다 해도, 언젠가 어떤 이야기와 반드시 공명할 것이다. 그 이야기를 통해 마주친 누군가의 눈이 반드시 알아볼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살아 버텨야 한다. 극장의 어둠 속에서 기꺼이 기립근에 힘을 주고 끝도 없이 영화를 보며, 나의 영혼에 다정하게 공명할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마침내 만날 것이다. 그리고 말하겠지. “And yet here you are, my Impossible.”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청받아 감상 후 작성하였습니다. 영화의 개봉일은 2023년 1월 4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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