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3-02-27 07:45:34
화려한 포장지, 그렇지 못한 내용물
〈살수〉 리뷰
4★/10★
각본가의 자질과 연출가의 자질은 얼마나 같고 다를까? 영화 〈살수〉를 보고 든 생각이다. 이 영화의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곽정덕 감독은 〈백두산〉의 각본을 쓰고, 〈끝까지 간다〉를 각색한 인물이다. 이 두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수 있다. 하지만 두 영화를 높게 평가하지 않더라도, 각각 상업성과 작품성 등의 측면에서 평가받은 지점이 있는 영화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살수〉는 조금 이상하다. 〈백두산〉은 상업영화의 스펙터클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획이었고, 〈끝까지 간다〉는 탄탄한 구성으로 장르적 완성도를 높인 영화였다. 그런데 〈살수〉에는 둘 중 그 무엇도 없다. 눈길을 사로잡을 정도로 화려한 액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액션의 헐거움을 메울 탄탄한 스토리를 갖추지도 못했다. 몇몇 배우들이 연기력으로 고군분투하며 영화를 지탱할 뿐이다.
조선 최고의 살수 이난은 몸이 망가져 더는 격한 무공을 사용하지 말라는 조언을 듣는다. 그러던 중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약초를 찾아 한 마을에 들렀다가, 자그만 주막을 운영하는 모자母子를 만나, 그들을 도우며 잠시 그 집에 머문다. 이 마을은 산적이 기승을 부리고, 고을의 행정 업무를 맡아 산적을 토벌해야 할 이방은 정작 산적과 내통하는 문제가 많은 마을이었다. 어쩌다 이들의 관계에 끼게 된 이난은 산적과 이방의 위협에 맞서 위기를 극복하고 받은 만큼 돌려주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이어간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살수〉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적어도 한 측면에서는 관객을 사로잡을 수도 있었을 영화다. 화려한 사극 액션, 코믹 요소, 전개의 탄탄함……. 고루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이 중 하나만 확실히 잘했다면 지금보다는 더 나았을 것 같다. 지금처럼 여기저기에 발을 애매하게 걸치다 스스로 무너지지는 않았을 거란 소리다. 이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연기로 영화를 끌고 가는 몇몇 배우에게는 기꺼이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포장에 비해 즐길 만한 요소가 너무도 부족한 영화라는 점은 못내 아쉽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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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파도 감독의 신작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月下老人. 달 월, 아래 하, 노인 노, 사람 인의 한자로 풀이하면 ‘달 빛 아래의 노인’이 된다. 중국 고대 설화에서 시작되어 붉은 실로 남녀의 다리를 묶어 인연을 맺어주는 전설 속의 노인을 뜻한다. 현대에서는 부부의 인연을 맺어주는 중매인 중매하는 중매쟁이를 뜻하기도 한다. 멜로/로맨스 장르인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2)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구파도 감독은 전작 공포 스릴러 <몬몬몬 몬스터>로 2017년도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한다. 두 장르는 다르지만 각각의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낸 감독은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로 판타지 로맨스물이라는 장르를 소화해낸다. ’사후세계’, ‘환생’이라는 아이템뿐만 아니라, 보고 있자면 묘사하는 사후 세계의 프로덕션 디자인이나 세계관이 국내 작품 <신과 함께>가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감독은 <신과 함께>를 보고 2001년에 쓴 소설 <月老>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밌다. 복합적인 장르의 혼합과 스토리 진행 호흡에서 B급 영화로 느껴지게 하는 부분이 없진 않지만, 그렇게 넘기기에는 핵심으로 다뤄지는 소재가 중요하게 느껴진다. 인간으로 환생하기 위해 사자(使者)로 일하게 된 주인공에게 주어진 임무는 인간들의 연(緣/부부가 되기 위한 젊은 연인의 연)을 이어주는 일이다. 이에 따라 파생된 배경이자 사자로 등장하는 주된 인물은 샤오룬/핑키/원한을 가진 악령까지 세 명이 된다. 이들의 생전 애정 관계를 풀어보자. 짝으로 다니게 된 샤오룬과 핑키 중 핑키는 나름 연이라고 생각했던 남성으로부터 배신당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인물이다. 사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던 중 그 남성에게 복수하기 위해 환생이 불가한 악령이 되는 것에 흔들리기도 한다. 그때 나타난 악령 운명 깃발을 떨어트리게 하는 샤오룬의 등장은 복선처럼 후에도 핑키의 운명을 다른 길로 안내한다. 여기까지’ 딱히 생전에 미련이 없을 것만 같은 평범한 ‘전사’라면 샤오룬은 끈끈한 연을 맺던 연인이 있던 인물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줄곧 샤오미를 따라다니며 결혼해달라고 설득한 끝에 그 답을 받으려는 순간 벼락에 맞아 죽게 된 샤오루는 이승에 사랑하는 연인 샤오미를 남겨두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악령은 500년 전 부하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끊임없이 이 일을 잊고 환생하는 부하들을 보며 원한을 품고 악령이 된 인물이다. 이 셋은 크게 두 분류 사랑을 하던 사람/사랑을 하고 싶었던 사람로 나뉘며 그 중 후자에 속하는 핑키와 원령은 그 중에서도 원한의 정도로 다시 나눌 수 있다. 핑키 또한 원한을 가지고 자신을 죽인 남성을 죽일까 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려 새로운 연을 찾아간다. 하지만 비슷하게 애정(관계)을 갈망하던 악령의 원한은 점점 집착으로 변해 멈출 수 없게 된다. 이들은 저승에서까지 애정을 갈망하는 이승과는 별 다르지 않은 삶을 산다. 저승까지 가지고 가는 일이라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전생의 기억을 잃었던 가진동이 키우던 강아지 아루를 만나 기억을 되찾으며 그와 동시에 혹은 기억이 떠오르기도 전에 느꼈을 감정이 느껴지는, 가진동(샤오룬 역) 얼굴의 미세한 떨림은 모든 서사를 제쳐두고 사랑하는 이를 남겨두고 저승에 가게 된 이의 아픔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판타지/공포/로맨스 멜로의 뒤죽박죽이지만 완성도 높은 장르를 오가며 2시간 동안 지루할 틈이 없는 장면들 와중에도 감정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 데에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핵심소재가 한몫했다는 의견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봐야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다. 더불어 사후 세계에서 받는 묵주에서 악행으로 인한 3알이면 돌고래로 환생할 수 있다는 디테일한 설정들에서 환생을 기대해보게 만든다. 2021년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초청된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는 국내 영화사벌집에서 공동제작 및 수입하여 그린나래미디어를 통해 2월 9일 개봉한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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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주인공과 레미제라블(불쌍한 사람들)
*마지막 글 꼭지에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 뮤지컬 <잭 더 리퍼> 스포일러 주의문구가 있습니다. 참고하세요!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좋아한다면,
오정세/엄혜란/김선영/강하늘/공효진
그리고 손담비 배우를 좋아한다면
추천한다!로맨틱 코미디로만 기대한다면 큰 코 다칠 드라마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혼자서 아들을 키우는 동백 씨가 전남편의 마을에 와서 정착하는 이야기.
이렇게만 소개하면 별 것 없어 보이지만, 여기에 큰 함정이 있다.
내가 보기에 이 드라마의 장르는 달달한 로맨스가 아니라 손에 땀을 쥐는 스릴러다.
우리나라 드라마들에는 우스운 공식이 있다.
의학 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하고, 범죄 수사 드라마는 범인 잡다가 연애하고, 요리 드라마는 요리보다도 연애를 한다. 장르 불문하고 드라마 전체가 <러브 액츄얼리> 같다.
*난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좋아한다. 단지, '모든 장르가 연애 중심이다'라는 것에 대해 불만을 말한 것이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
그런데, 이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다르다. 스릴러라면서 연애가 낀 것이 아니라, 연애를 할 것 같은데 스릴러가 낀다. 뭐가 다르냐고?
방금까지 주연 둘이 간질간질한 대사를 주고받았는데, 다음 편 예고가 나올 즈음되니까 갑자기 스산한 배경음악과 함께 범죄현장 수사 중인 경찰들 모습이 비친다. 누군가 이미 사망했거나, 누군가가 범죄를 일으킬 것 같은 행동을 한다.
자칭 타칭 범죄 스릴러 마니아인데, 범인 쫓다가 연애하는 경우는 많이 봤어도 이런 전개는 처음 접해서 신선함을 느꼈다.
이런 장르 처음인데, 꽤 맘에 들었다.
그럼에도 범죄 스릴러 마니아에게 추천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는 사건 맺음 방식 때문이다.
스릴러가 끼어들기는 했지만, 결론은 로맨틱 코미디였다.
*직접 보시려는 분의 재미를 위해, 자세한 줄거리와 맺음은 생략하기로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아래에 소개하겠다.
그 사람은 뭐가 돼? (feat. 뮤지컬 <잭 더 리퍼>)
자자,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존재한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과 뮤지컬 <잭 더 리퍼>에 대한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위로 또는 뒤로 가기를 권한다!*우측 포스터 속 소름돋는 디테일: 동백 외 인물들 발치에 있는 노란 숫자사인
우선, 모르는 분을 위해 소개하자면, 뮤지컬 <잭 더 리퍼>는 스릴러 뮤지컬이다.
영국에 실존했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를 모티브로 제작된 뮤지컬이며, 세 남자의 시선을 오가며 극이 진행된다.
신출귀몰한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 대중의 이목을 끌 자극적 특종을 쫓는 기자와 사랑하는 여인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의사가 극을 이끌어간다.
이 뮤지컬 내에도 로맨스가 존재한다. 가장 중요한 로맨스 라인은 주연인 의사와 그의 연인이다. 연인이 '장기 이식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자 수년 전에 사망한 줄 알았던 연쇄살인마 잭에게까지 도움을 청하며 신선한 장기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사.
그런데, 알고 보니 진짜 잭은 수년 전 추격 때 이미 사망했고, 의사가 살인에 대한 죄의식을 덮기 위해 새로운 인격을 만들어냈던 것이었다.
이를 알게 된 그의 연인은 다음 세상에 다시 만나자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오열하던 의사는 범인을 쫓던 형사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이 와중에 특종감을 드디어 찾았다며 신난 기자에게 형사가 던지는 말이 있다.
이 이야기가 세상에 밝혀지면,
희생자들의 죽음은
그저 저 둘의 사랑 이야기를 돋보이게 해 줄
개죽음이 될 거야.장르 특징 면에서는 만족했지만, <동백꽃 필 무렵> 역시 드라마의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이미 사망한 사람들은 그저 이야기에 흥미진진함을 더해줄 '개죽음'이 되어버렸다.
물론, 각 인물들의 사연을 제시하기는 하지만, '모두 동백 씨와 관련이 있다. 동백 씨 주변에서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을 강조하는 장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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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을 사냥하고 싶었던 <늑대사냥>
과거에 교통사고가 나는 모습을 앞에서 본 적이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 택시가 사람 한 명을 쳤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잠깐 넘어지는 선에서 끝난 교통사고. 큰일이 아니었어서 다행이었지만 이 기억은 나에게 굉장히 크게 남아있다. 안 그래도 겁이 많은 나는 이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그런지 잔인한 거 잘 못 본다. 잔인한 걸 잘 못 보지만 스릴러 장르는 취향에 맞는 게 무슨 말인가 싶지만 아무튼 그런 타입이라고 설명하기로 한다. 타란티노와 크로넌버그가 그렇게까지 끌리지 않았던 이유가 이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내 취향저격 300%인 <큐어>와 <추격자>도 수위 묘사가 있는데 아무튼 이런 장르는 박진감이 있으니 좋아한다고 주장하고 다닌다. 그러면 이 영화도 완전 취향저격이어야 할 텐데? <아수라>도 나쁘지 않았던 나는 이 영화가 내 시간을 사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필리핀으로 배를 타고 이동해서 한 영화를 만났다. <늑대사냥>이다.
아수라장 5분 전
어느 날의 대한민국.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배 안이다. 강력범죄자들을 데리고 이동하고 있는 프런티어 타이탄. 온갖 나쁜 놈들은 죄다 모아놨기 때문에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살인부터 시작해서 갖가지 범죄는 다 저질렀던 범죄자들이지만 이송 과정은 나름 인격적인 대우를 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상한 잡무에 시달리는 형사들. 투정을 내뱉는 부하들을 다독이며 석우는 항해를 시작하고자 한다. 카메라는 지상으로 옮겨간다. 아마 해안 쪽을 담당하는 경찰의 한 부서로 보인다. 모니터로 해안 상황을 감시하고 있던 사람들. 갑자기 어떤 남자가 들이닥친다. 대웅과 일당들은 경찰 인원들을 내쫓고 경비단에 자리를 잡는다. 대웅의 일당들 역시 같은 경찰인 것으로 보인다.
카메라는 다시 배 안으로 옮겨간다. 여전히 어수선한 배. 범죄자들을 수송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얼른 작전이 마무리됐으면 하는 마음은 어린 형사 다연도 마찬가지다. 다연은 형사가 직업이라지만 이 남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의사 경호는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가 싫다. 그런데 경호에게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것 같다. 수상한 기색은 경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경찰 내부에서도 이상한 눈빛을 교환하는 남자들이 있다. 폭풍전야 속에 있는 배. 배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이상한 눈빛을 교환한 남자들이 배의 사람들을 죽이고 죄수들의 탈옥을 도운 것이다. 아수라장이 된 배. 죄수들은 한국으로 향하는 항로를 뒤엎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과연 그들의 계획이 성사될 수 있을까?
하드보일드
우리나라가 확실히 잔인한 장르가 발달한 나라는 아니다. 일단 나부터 그렇게까지 잔인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많은 분들의 취향과도 이어진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우리나라 시네필들한테나 익숙하지 일반 대중들은 사실 잘 모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외화 수입이 발달했긴 했지만 한국에서 로컬화를 시켜서 표현하긴 좀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기화라는 게 말이 쉽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 지점에서 이 영화가 도달한 성취, 또 가지고 있는 장점 중 하나는 폭력에 대한 수위다. 영화는 하루 온종일 내내 피 튀기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쏘고. 이런 건 기본이다. 심지어 팔다리 뜯는 게 꽤나 자주 나온다. 팔과 다리가 몸을 관통하기도 하고 목을 조르다 못해 손가락으로 찌르기까지 한다. 이런 취향이 있으신 분들은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느낄 만큼 수위가 굉장히 세다. 이렇게 수위를 세게 설정하면 장르적으로 아드레날린이 급상승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건 후반부 장르 비틀기와도 관련이 있다. 이 장르와 높은 수위는 확실히 시너지가 있다.
또 예고편에서도 잠깐 모습을 드러낸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담당 배우가 이 영화에 캐스팅됐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도 한데, 바로 이 영화는 장르가 중반부를 넘어서 한번 뒤바뀐다(또 이 장르 변화가 영화 엔딩이랑 크게 관련이 없기도 하다). 그러니까 영화 구성이 1부/2부로 나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한데, 전반부/후반부에서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기는 한다. 1부는 스릴러물이다. 범죄자들이 합심해서 경찰들을 죽이고 탈옥을 도모하는 게 영화의 중심 내용이다. 2부는 호러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등장해 배 승객들이 생존게임을 펼친다는 것이 주요 서사다. 1부 범죄/스릴러물에서 빌런 종두가 강력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좋은 연기를 펼쳐 보이며 시각적으로 압도한다. 또 뭔가 찝찝한 화면 색감이나 배 안을 구현한 미술까지 나름 장르적인 특색을 잘 갖췄다고 볼 수 있다. 2부 호러물에서는 '초대받지 않은 그것'의 연출이 좋았다. 동선이나 액션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했다. 중후반부 영화를 이끄는 주요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당 배우가 연기력으로는 검증받은 사람이기도 하고 이 인물을 중심으로 한 승객들의 리액션이 잘 구성되어 있어서 2부 자체로도 몰입하기 좋다. 또 극후반부 액션도 잘 뽑았다. 후반부 액션 연출은 이 영화의 최고 장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의아한 선택
1, 2부 각각의 완성도 자체는 좋았다. 두 장르의 특성을 잘 살린 부분이 러닝타임 곳곳에 보인다. 이거까진 좋았다. 그런데, 사실 이 장르 변동이 영화에 플러스가 됐는지는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써보자면 전후반부의 구분선 때문에 러닝타임을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단 전반부. 경찰을 살해하고 탈옥을 도모하는 죄수들의 이야기다. 후반부. 예상하지 못한 변수 때문에 배 안이 혼란 속에 빠진다. 이 두 가지를 기준선으로 잘라 중심인물로 다르게 설정하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전반부는 서인국 캐릭터가, 후반부는 성동일 캐릭터가 이끈다. 제목이 두 번 들어가는 건 이 구분선을 더 선명하게 해 준다. 가장 처음에 '늑대사냥'이 제시되는 부분이나 후반부에 제목이 왜 '늑대'가 들어갔는지를 보면 이는 극이 두 번으로 나뉘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1,2부가 딱 달라붙지 않는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가령 <헤어질 결심>을 보자. 이 영화 역시 1,2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래의 남편 기도서의 살인사건이 1부, 사기꾼 임호신의 피살사건이 2부다. 두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서래와 해준의 사랑이야기가 영화의 주요 서사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사건 사이에는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1부의 로맨스를 2부에 감정적으로 터트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박찬욱, 정서경 두 사람이 극을 위해 필수적으로 설정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또 홍콩 영화 중 명작으로 꼽히는 <중경삼림>은 그냥 옴니버스 영화다. 애매모호하게 떡밥을 해소한 게 아니라 양조위, 왕페이 캐릭터의 사랑이야기와 금성무 캐릭터의 사랑이야기가 공간만 같지 아예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이런 설정도 이해할 수 있다. 애초부터 감독이 그걸 노리고 영화를 만들었으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이 1,2부 구성이 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일단 영화 자체가 1-2부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1부에서 뿌린 일부 떡밥이 2부에서 회수되기 때문이다. 인물도 비슷하고 주요한 사건까지 공유한다. 그럼 <헤어질 결심>처럼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뜻이다. 장점으로 발휘되면 좋았겠지만 이 형식이 영화의 오히려 단점이 되어버렸다. 2부가 있기 때문에 1부가 의미 없이 느껴진다. 2부에서 불청객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마무리될 건데 1부에서 범죄자들이 경찰은 왜 죽이고 탈옥 계획은 왜 잡아? 어차피 그렇게 될 건데? 이는 반대로도 작용한다. 1부의 범죄자들의 탈출기를 주요 서사로 잡아도 이 영화는 큰 문제가 없다. 그냥 시놉시스만 생각해도 편하다. '범죄자들이 힘을 합쳐 잔혹하게 경찰을 죽이고 탈출하는 범죄/스릴러물'이라 생각하면 살짝 뻔하기는 해도 이야기에 손상이 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후반부로 갈수록 중요한 이야기가 전반부랑 큰 관련이 없으니 앞의 서사가 '왜 넣었지?'라는 의문점만 든다.
이는 이 영화의 폭력 수위와도 비슷한 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끌고 가는 주요한 원동력은 폭력적인 에너지다.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굉장히 강한 수위로 영화는 내내 기를 빨아놓는다. 그런데 전반부에서 맡았던 피비린내가 비슷한 템포로 후반부까지 이어지니 아무래도 극을 보는 게 지루할 수밖에 없다. 또 그렇게 온 에너지를 분출하며 러닝타임을 봤는데 후반부에 들어서고 이야기가 평면적으로 전개되면 다 예상이 가기 시작한다. '영화 계속 이런 톤이었으니까 앞으로 저렇게 되겠네' 그렇게 예상한 것이 정확히 이루어지고, 이내 곧 맞는다. 사람이 죽는 걸 고민을 많이 했을 영화다. 애초에 감독은 이런 지점을 장점으로 염두하고 만들었을 테니까. 그런데 이 부분만 생각하고 형식과 이야기 구성이 산만하니 러닝타임 동안 관객의 세상을 설득시키기가 어려웠다.
꼼꼼하지 않은 디테일
이렇게 영화 내내 겉돌다 보니 자잘 자잘한 아쉬움도 크게 다가온다. 첫 번째는 퀴어 캐릭터 활용법이다. 이 영화에는 퀴어 캐릭터가 나온다. 이 퀴어 캐릭터의 첫 번째 등장은 전화를 받으며 뭔가를 지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성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이거 사실 이럴 이유가 없다. 굳이 그 상황에서 그 성적인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 그냥 의자에 앉아서 지시하는 장면만 나와도 극 전개에는 아무 무리가 없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 영화에서 퀴어라는 소재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다. 그냥 이 사람만 퀴어로 설정된 것 빼곤 아무런 특징을 잡을 수 없다. 왜 이렇게 설정했을까? 간단하다. 자극적이니까. 이 상황에서 익숙하지 않은 것 같은 강렬한 이미지를 넣고 싶으면 그 인물의 그 행동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영화 전반적으로 과한 폭력 수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생각은 더 탄력을 받는다. 이 연출 방식은 사실 굉장히 불쾌했다. 서사에서 1도 중요하지 않고 자극적으로만 쓰기 위해서 넣었다. 이게 소수자의 입장인 퀴어를 활용해서 그런 연출 방식을 쓴 건데 그냥 동성애 혐오같이 느껴졌다. 쓸데없이 자극적인 느낌?
또 영화 전반적으로 사운드 편집은 굉장히 아쉽다. 아마 이 부분은 영화의 가장 큰 단점으로 꼽아도 충분할 것이다. 간단하다. 내내 귀가 아프다. 그 전부터 귀가 아프지만 특히 '그것'이 등장하고 나서가 더 아팠다. 물론 영화 안에서 '그것'의 존재감이 강해야 하기 때문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게 이 귀 따가움의 변명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의 존재감으로 고통받아야 할 건 극 중 인물들이지 관객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에서도 꼼꼼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하나도 기대가 안 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아는 부분이 있다. 솔직히 여기서 좀 기대했다. 극 전개의 핵심이 있을까 봐. 근데 그런 것 없다. 승객들의 대응은 굉장히 단순하다. 이 때문에 이야기 전개가 다 예상 가능하고 서스펜스를 느끼기도 어렵다. 그리고 극후반부 하이라이트가 되는 액션신이 있고 나서 진주 인공과 관련된 어떤 설정이 있다. 이거, 좀 많이 이상하다. 극에서 내내 제시됐던 큰 설정이랑 안 맞는다. 이게 전형적인 이야기와는 벗어나긴 했는데 그걸 위해서 기본적인 토대까지 흔들어버린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영화 전체가 극 전체적으로 장르의 특성을 따르기보다는 '클리셰를 부순 신선함'을 추구한 티가 난다. 그런데 그것도 기본적인 완성도가 보장이 되어야 유효타로 작동하는 지점이다.
그래도 장점은 있어
뭐 그렇게 아쉬운 부분이 많았던 영화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있다. 성동일, 서인국, 정소민, '그것'을 맡은 배우, 그리고 극후 반부의 액션신이다. 일단 성동일 배우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해 많이들 아는 배우다. 또 <아빠 어디 가>나 <슛돌이> 시리즈에서 입담이 좋은 배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개인적으로 글쓴이는 성동일 배우의 진지한 연기를 한번 보고 싶었다. 초중반부까지는 베테랑의 클래스를 보여주지만 중반부에선 뭔가 매가리가 없었다. 그리고 후반부는 이 배우의 모든 경험치가 다 드러난다. 후반부 극을 마무리 짓는 카리스마로는 손색이 없었다. 또 서인국 배우는 처음 보는 악역 연기였는데 꽤 잘했다. 이 사람이 욕을 하는 게 잘 그려지지 않았는데 이 부분도 무리가 없었다. 또 배우가 비주얼을 어떻게 구현하나? 도 영화에서 주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좀 기괴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은 문신을 그냥 좌시하지 않고 톤, 표정, 제스처로 시너지를 내는 좋은 연기가 돋보였다. 이 인물의 행보는 극에서 중요하다. 이 들쭉날쭉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보를 설득력 있게 묘사한 좋은 연기였다. 또 정소민 배우는 존재감이 돋보였다. 비율이 은근히 좋으시던데 이런 배우였나? 싶었다.
또 극후반부의 액션신은 정말 대단하다. 두 배우의 합이 엄청났다. 그렇게 잔인하지도 않은데 이 두 사람의 전투신이 러닝타임 내내 전개되는 고어함보다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두 배우가 액션을 하는 건 그렇게 자주 봤던 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션 하나만큼은 탄탄하게 구성해서 극의 생동감을 부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제성과 창의성이 돋보이는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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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10월 둘째 주도 잘 보내셨나요?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는데 이번 주부터는 최저 기온이 2도까지 내려갈 정도로
추워진다고 하니 따뜻하게 입고 외출하시길 바랍니다!
씨네픽과 함께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
'주말 박스오피스 영화 순위'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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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인생은 아름다워> (▲1)
▶ 10월 첫째 주에 2위를 차지했던 <인생은 아름다워>가 1위에 등극했습니다. 개봉 14일째인 10월 12일을 시작으로 1위를 유지하며 역주행을 시작했습니다.
좌석 수가 개봉주에 비해 많이 줄어든 상황 속에서 더 높은 좌석판매율을 기록했습니다.
주말 동안 (10월 14일 ~ 10월 16일) 관객 수 12만 4,15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82만 9,737명을 돌파하였습니다.
2. <공조2: 인터내셔날> (▼1)
▶ <공조2: 인터내셔날>은 5주 차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다 6주 차에 2위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평일 동안 <인생은 아름다워>와 각축을 벌이다 주말에 결국 아쉽게 1위를 내주게 되었습니다.
주말 동안 (10월 14일 ~ 10월 16일) 관객 수 11만 2,874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677만 2,99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3.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수수께끼! 꽃피는 천하 떡잎 학교2> (▲1)
▶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수수께끼! 꽃피는 천하 떡잎 학교>는 그동안 국내에서 개봉한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시리즈 중 가장 높은 스코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과 시리즈 최초로 선보인 미스터리 장르로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주말 동안 (10월 14일 ~ 10월 16일) 관객 수 8만 1,343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555만 9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씨네픽의 이번 주 122회 예측 이벤트는 10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씨네픽 유저 예측 결과
정답자 비율(%)
▶ 한 주 동안 많은 씨네픽 유저분들이 박스오피스 순위를 예측해 주셨는데요.
<에.에.원>과 <공조2>를 1위로 많이 예상해주셨는데, 둘째 주 1위는 <인생은 아름다워>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3위의 경우 딱 세 분만이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라고 예측을 해주셨습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123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4. <오펀: 천사의 탄생> (NEW)
▶ 레전드 공포영화로 불리는 전편에 이어 13년만에 등장한 속편 역시 다양한 관객층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주말 동안 (10월 14일 ~ 10월 16일 관객 수 7만 34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0만 46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줄거리
엄청난 비밀을 숨긴 사이코패스가 에스토니아의 정신병동을 탈출, 부유한 가족의 실종된 딸 ‘에스더’로 사칭해 미국에 온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어딘지 낯선 딸의 정체를 눈치챈 엄마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에스더와 맞서는데...
5. <정직한 후보2> (▼3)
▶ 개봉주부터 상위권을 유지하던 <정직한 후보2>가 개봉 3주 차에 5위로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전편에 비해 아쉬운 평점으로 관객 수가 점점 감소하고 있습니다.
주말 동안 (10월 14일 ~ 10월 16일) 관객 수 5만 8,658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83만 5,420명을 돌파하였습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Halloween Ends>가 1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첫째 주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모든 영화가 한 단계씩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The Woman King>만 4위를 계속 유지하고, 순위 변동으로 인해 <Don't Worry Darling>이 순위권 밖으로 떨어졌습니다.
<Halloween Ends>는 주말 동안(10월 14일 ~ 10월 16일) 매출액은 41,250,000 (한화 약 593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며, 총 누적 매출액 역시 동일합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TOP 5>
1. <할로윈 엔드> 4,125만 달러 (누적 4,125만 달러)
2. <스마일> 1,240만 달러 (누적 7,116만 달러)
3. <라일, 라일, 크로커다일> 738만 달러 (누적 2,275만 달러)
4. <더 우먼 킹> 369만 달러 (누적 5,974만 달러)
5. <암스테르담> 289만 달러 (누적 1,959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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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10월 둘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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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친 관음증에 가려버린 야심 찬 재해석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버지를 모른 채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노마 진(릴리 피셔)'은 정신병에 시달리던 엄마에게 학대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정신병원으로 이송된 후 그녀는 아버지가 할리우드에서 일했다는 말 한마디를 간직한 채 보육원에서 지내게 되고, 노마는 배우로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꿈을 키워 나간다. 이후 염색한 금발 머리와 섹슈얼리티가 두드러지는 외모를 무기 삼아 '마릴린 먼로(아나 데 아르마스)'로 거듭난 그녀는 스타덤에 오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부재가 남긴 공허함 때문에 먼로는 남자에게 집착하기 시작하고, 아울러 스타로서 화제의 중심에 서야 하는 독특한 삶의 무게에 짓눌리면서 그녀는 마릴린과 노마 사이에서 혼란에 빠진다.
앤드류 도미닉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아나 데 아르마스가 마릴린 먼로를 연기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블론드>는 개봉 전부터 숱한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제7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라는 점과 아나 데 아르마스의 높은 싱크로율은 기대를 키우기에 충분했다. 반면 원작인 조이스 캐럴 오츠의 동명 소설이 논픽션이 아닌 소설이라는 점을 두고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일례로 미국의 영화 평론가 그레이스 랜돌프가 이 작품을 "전기 영화인 척하는 강간 판타지"라며 평론을 거부했다. 마침내 공개된 <블론드>는 이처럼 상반된 기대와 우려가 모두 옳았음을 보여준 영화였다. 시대의 상징을 재해석하려는 감독의 야심은 그 자체로 인상적이지만, 야심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아쉬움을 넘어 불쾌한 대목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블론드>는 자칫 단순히 금발의 섹스 심벌이라는 이미지에 갇힐 수 있는 마릴린 먼로를 더욱 입체적인 인간상으로 그려내려 한다. 그녀를 둘러싼 사건과 루머가 너무나도 유명한 만큼 과감한 접근법을 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빛나는 할리우드 스타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며 먼로를 치열한 정체성 싸움을 펼치는 역동적인 캐릭터로 재해석하려 했던 야심을 드러낸다.
카메라가 포착하는 마릴린 먼로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뿌리 없이 자란 꽃과도 같은 그녀의 괴로움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정신병에 걸린 엄마와 함께 지난 유년 시절을 보여주면서 배우 이전에 자연인 '노마 진'의 엘렉트라 콤플렉스를 자세히 묘사한다. 할리우드에서 일한다는 아버지는 사진만으로도 엄마의 폭행과 학대에 시달리는 어린 노마에게 큰 위안이 된다. 더 나아가 보육원에서 자라게 된 그녀에게 아버지의 존재는 그 자체로 안정되고 따뜻한 가정의 상징이 되어 버린다.
동시에 영화는 마릴린 먼로라는 스타와 노마 진이라는 자연인의 간극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포착한다. 무섭게 열광하는 레드카펫의 군중들과 카메라를 비추는 모습. 그 유명한 치마가 바람에 휘날리는 먼로를 찍는 사진기들까지. 마릴린 먼로에 가까워질수록 노마 진이 사라지는 삶, 유명세를 감당하고 시대의 심벌로 거듭나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를 놓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영화는 커리어의 정점에 도달한 순간 LA를 떠나 뉴욕으로 향하는 그녀처럼 노마 진의 흔적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한 여성을 역으로 포착할 수도 있다. 이처럼 <블론드>는 어릴 적 트라우마, 스타로서 소비되는 이미지, 이중적 생활로 인한 불안 심리 상태에 초점을 맞춰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새로이 구축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녀의 염문과 가십은 단순한 스캔들의 영상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노마 진'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갈증을 강조한다. 그녀가 여러 남편을 '아빠 Daddy'라고 호칭하는 것이 단적이 예시다. 노마 진은 거듭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할 사람을 쫓고, 그 아버지와 행복할 가정을 이룰 아이에게 집착하며 공허한 자신의 뿌리를 채워 넣으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마릴린 먼로의 가십을 항상 날아갈 듯한 희망과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한 절망의 이미지로 대비시켜 보여준다. 스타가 아닌 한 개인의 시점에서 제시하기에 그 명암은 더 짙다.
작중 처음으로 마음의 안식처로 생각했던 '찰스 채플린 주니어(제이비어 새뮤얼)'와의 관계는 사랑하던 아이를 포기해 두고두고 그녀의 원죄가 되어 버리는 낙태로 귀결된다. 그녀가 가장 화려한 스타로 발돋움하는 찰나에, 또 아버지를 만날 거라는 희망으로 부풀어 있던 순간 마주해야 했던 '조 디마지오(바비 카나베일)'의 프러포즈는 노마를 학대받던 어린 시절로 되돌려 보낸다. 극작가인 '아서 밀러(에이드리언 브로디)'에게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지만 정작 아서가 그녀의 사연을 영화 시나리오의 한 조각으로 활용하는 사실을 알게 되자 깊이 좌절한다. '존 F. 케네디(카스파르 필립손)'와의 루머를 풀어내는 대목은 마릴린과 노마 사이에서 결국 체념해버린 그녀의 모습을 암시하듯 고통스럽고 기괴하다.
그렇기에 원작 제목 <블론드 Blonde>를 고수한 것 역시 도미닉 감독의 야심이 집약된 선택으로 보인다. 마릴린 먼로가 금발로 염색해서 이미지를 확립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영화는 통념과 달리 마릴린 먼로로 변모하는 과정 이면에 숨어 있던 심상을 금발에 투영한다. 섹슈얼리티한 이미지의 구축보다는 노마 진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노마 진으로 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필사적인 노력을 제목에 담는다.같은 맥락에서 흑백과 컬러를 오가고, 현재 영화 제작 시 사용되는 대부분의 화면 비율을 한 번 이상 활용하며, 심리 변화에 따라 화면이 늘어지거나 휘어지는 연출도 눈에 띈다. 쉽사리 짐작하기 어려운 노마 진과 마릴린 먼로의 내면을 영상으로 풀어내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감독의 야심이 시청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될 수 있느냐다. 여기서 <블론드>는 패착을 두었다. 다만 영화 속 마릴린 먼로와 실제 먼로의 삶이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원작자인 조이스 캐롤 오츠부터 자신의 책이 논픽션이 아닌 소설이라고 공언한 만큼, <블론드>의 내용이 실제 사건과 다르다고 비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을 수 있다.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창립 스토리를 다룬 <소셜 네트워크>가 동명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하는데도 실제 사건과 여러 차이점이 있다는 것, 그런데도 봉준호나 타란티노와 같은 감독들이 이 작품을 2010년대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다만 작품 속 묘사가 실제 사건과 다를 경우 그 이유는 제시되어야 한다. <소셜 네트워크>가 실제와 다르게 표현한 대목은 마크 저커버그라는 캐릭터가 자신의 이익과 결부되지 않으면 타인의 심리를 파악하고도 고의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그 덕분에 세상 모든 사람들을 연결해줄 페이스북이라는 거대한 SNS를 탄생시킨 주인공의 주변에 정작 친구도, 연인도, 동료도 남아있지 않는 아이러니한 엔딩의 비극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소셜 네트워크'라는 제목의 이중적인 의미를 전달하는 데 톡톡히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블론드>는 실제와 달라야 하는 그 이유를 보여주지 못했다. 영화는 아버지와 가정의 부재가 남성들과 아이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 과정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마릴린 먼로라는 캐릭터의 고통을 더 과장하고 그녀의 내적 혼란을 부추겼다. 실제로는 없었던 사건인 먼로의 낙태가 스토리 라인에 삽입되고, 연인 관계가 아니었던 남성들과의 관계나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적잖은 분량을 부여받은 것은 극적 전개를 위한 선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을 보여주는 방식은 영리하지 않다. 2시간 30분이 넘는 긴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각 에피소드 사이에서 널뛰는 먼로의 감정선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대신 아버지의 부재와 불우한 어린 시절이라는 한 원인에서 모든 이야기가 비롯되었다는 단순한 불행 포르노를 답습하는 데 그친다. 그 결과 왜 먼로가 몇십 년 동안 그토록 불안정한 상태여야 했는지를 전혀 납득시키지 못한다.
더 나아가 마릴린 먼로를 소비해 왔던 기존의 시각을 비판하면서, 정작 감독 본인도 같은 행태를 반복하는 내로남불에 빠지고 만다. 영화는 그녀를 둘러싼 수많은 카메라의 압박, 그녀를 착취하는 영화 업계 사람들의 무자비한 태도, 그녀를 성적으로 소비하고 활용하는 언론과 대중들을 마치 굶주린 괴물처럼 묘사한다. 결국 먼로의 내밀한 이야기를 드러내어 결과적으로 그녀를 자극적으로 탐닉한 이들이 한 여성을 비극으로 몰고 간 과오를 비판하려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래서 영화는 먼로가 캐릭터를 재해석해서 원작자인 아서 밀러조차 깨닫지 못했던 캐릭터의 이야기를 보충하는 장면처럼 숱한 스캔들의 주인공이기 이전에 연기에 진심이었던 여배우의 모습도 단편적으로나마 제시한다.
문제는 <블론드>의 시점도 먼로에 대해 마찬가지로 선정적이고, 소비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관음증적인 앵글과 시선을 통해 집중적으로 포착된 마릴린 먼로의 사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그저 정신적으로 쇠약한 인물로 그려낸다는 인상을 준다. 또 그녀가 단지 성적인 존재로만 남겨졌다는 식의 묘사 역시 불쾌함을 남긴다. 그래서 이러한 연출에 대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해명과 반론은 케네디와 먼로의 만남 장면처럼 구체적인 상황 묘사가 불필요한 대목에 힘을 준 순간 의미를 잃어버린다. 결국 영화의 결말은 그저 불편하고 찝찝할 뿐, 재해석의 의도나 야심은 작품을 곰곰이 따져보지 않는 한 와닿지 않는다. 그렇게 넷플릭스 <블론드>는 그 모든 고통을 표현해 낸 아나 데 아르마스의 열연만 남긴 채 막을 내린다.
P(Poor, 형편없음)
야심 찬 재해석에 절제의 미덕만 갖추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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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글이 보기엔 나쁘지 않은
나는 공식적인 머글이다. 영화를 좋아해서 이렇게 끼적거리긴 하지만 연예인을 덕질한다거나 특정 장르를 덕질하진 않는 그저 잡식 인간이다. 그런데 삶이 무료하던 시점에 한 애니메이션를 실사화한 영화를 보았다. 당연히 애니에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애니는 보지 않았는데, 찾아보니 이게 그렇게 설레는 애니였나 보던데 뭐 그런가보다 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판단하는 나의 기준은 오글거림의 유무이기 때문에 이 영화 오글거리지 않았다는 지점에서 큰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보아하니, 애니에는 남주 여주 뿐만이 아니라 남주의 누나도 등장하는 것 같던데 이번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더라. 이후에 시즌 2를 제작하려는 걸지, 그냥 분량상 잘라낸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이 영화의 장점은 로맨스가 주된 주제인 영화인데, 모든 장면들이 과하지 않다. 감정 표현도 과하지 않고, 오히려 절제되어 있다. 군인이라는 남주의 캐릭터에 맞게 모든 표현이 절제되어 있다. 그리고 여주 또한 대단히 오버를 떨지 않는 캐릭터이다. 일본 영화는 가끔 연극적인 요소들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고, 인물들의 리액션이 한국인이 느끼기엔 과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지점들이 있는데, 이 영화는 그런 류의 로맨스는 아닌, 아련함이 가미된 로맨스라서 볼만 했던 것 같다. 약간 애니 실사화라고 하면 으레 그런 오버스러운 리액션이 떠올랐는데, 이 애니는 애초에 그런 소재가 아니었던 것 같더라.
오히려 이 영화가 일본 영화같다고 느꼈던 지점은 이능력자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때문인데, 시대를 불문하고, 불이나 바람을 다룰 줄 안다는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것이, 일본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기 때문에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가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백하게 넣어놔서 그런지 초능력자들의 결투로 이어지는 마지막 클라이막스를 보는데 크게 거부감이 없었다.
뭐, 대단한 칭찬을 한 것 같지만 사실은 킬링영화용으로는 나쁘지 않다는 의견을 적고 싶었던 것 뿐이다. 대단한 잘 만든 영화라고까지는 평가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름 설레는 잔잔한 로맨스 영화를 보고 싶으신 분들이나 '나는 머글인데 일본 실사화 영화에 도전해보고 싶다'하시는 분들이 입문용으로 도전해보면 좋을 만한 영화인 것 같다. 뭐, 내 주변 오타쿠를 자처하는 친구들은 실사화를 굳이 왜 보려고 하는 친구들도 많긴 하지만 말이다. 간편하게, 크게 자극적인 영화를 보고 싶지 않을 때 흘러가듯이 보면 나쁘지 않은 영화인 것 같아서 괜시리 한 번 넣어봤다. 요 근래 너무 심각한 영상물들만 소개한 것 같아서 말이지......
뭐, 지금까지 칭찬만 이어갔으니 아쉬운 점을 말해본다면, 물론 로맨스 장르라는 지점에서는 크게 결격 사유는 없지만 수많은 장르 중의 하나인 영화라고 봤을때는 뭐 그렇게 자주 볼 것 같진 않다는 점 정도? 크게 별로는 아닌데 대단히 추켜세워줄 만한 장점도 없는 그래서 더 특이하게 느껴졌는 지도 모르겠다. 약간 평양냉면 처음 먹는 느낌이었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까. 분명히 나쁘지는 않은데, 아 뭔가 박수까지는 안나오지? 라고 생각하며 의아했던 기억이 있는데, 혹시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피드백 주실 분 있으면 주시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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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남자]리뷰/해석:진정한 천만영화란 무엇인가를 보여준 작품
#왕의남자#이준익#천만영화
오래된 영화다보니 주로 줄거리를 중심으로 풀어봤습니다.영상에 사용된 BGM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겨울에 피는 꽃 - https://youtu.be/Vmrrd9nON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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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동석 형네집? 안젤리나 졸리의 로멘스? 이터널스 모든 사건의 중심, 바빌론을 알아보자!
#이터널스 #길가메쉬 #마동석
2021. 06. 02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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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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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모두가 놓친 장소
00:40 역사의 시작, 바빌론
02:00 길가메쉬 & 바빌론
02:55 안젤리나 졸리의 사랑
03:50 이터널스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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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매직 아치> 메인 예고편
깊은 바닷 속 소심한 돌고래 ‘델피’는
오래 전 모험을 떠난 아버지에게 들은 숨겨진 도시를 찾기 위한 탐험 중
원하는 것으로 변신시켜주는 ‘매직아치’를 발견하게 된다.
한편, 시시탐탐 피쉬타운을 노리던 곰치들은 ‘매직아치’의 존재를 알게 되자
‘매직아치’를 이용해 피쉬타운을 차지하려 하는데…
과연 델피는 피쉬타운의 평화를 지키고 용감한 돌고래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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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비상선언> 캐릭터 예고편
영화 #비상선언 캐릭터 예고편 대공개! ✈️ 사상 초유의 항공재난에 맞선 인물들의 긴박감과 절실함!? 개봉까지 무한 재생 안내 말씀?드리며 8월 3일, 극장에서 탑승을 선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