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아2023-01-07 10:44:36
짧고 굵었던 박지연 지일주 주연의 강남좀비
살아서 함께 나가요
이수성 감독의 ‘강남좀비’가 지난 1월 5일 개봉했습니다.
티아라의 ‘박지연’ 씨가 출연한다는 소식에 세간의 관심이 쏠렸던 작품으로 부산행 이후로 오래간만에 보는 한국판 좀비영화입니다.
좀비 영화의 전형적인 주제 의식과 좀비화 되어 가는 과정을 포함한 좀비의 특성들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풀어낸 터라 기존 매니아 층들이 보기에는 그다지 거부감은 없을 듯 합니다. 다만 하드고어적인 측면은 좀 덜한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좀비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보다는 재난영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수성 감독은 ‘미스터 좀비’ 이후로 12년 만에 만든 이 영화를 촬영하는 동안 두 주연 배우의 의견을 받아들여 내용을 수정하기도 하였습니다.
태권도 3단인 박지연 씨가 보여주는 의외의 통쾌한 액션과 연결 동작으로 보여주는 발차기 등은 몸으로 좀비에 맞서는 의외의 액션들로 재미를 더합니다.
뜻하지 않게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오열하는 씬에서는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의외의 반전에 피식 웃으며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으로 몸이 릴랙스 되는 기분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멘사 회원 지일주 씨의 시나리오 해석력과 여린 듯 강인한 캐릭터를 보여준 박지연 씨, 다양한 조연들의 연기가 어우러져 짧은 시간 관객들을 흡입시키는 영화 ‘강남좀비’ 이야기는 여기서 마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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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길이네 곱창집> - '내일의 희망을 붙잡고 살아간다는 것'
용길이네 곱창집
(焼肉ドラゴン, Yakiniku Dragon)
개봉일 : 2020.03.12 (한국 기준)
감독 : 정의신
출연 : 김상호, 이정은, 마키 요코, 이노우에 마오, 오타니 료헤이, 오오이즈미 요
'내일의 희망을 붙잡고 살아간다는 것'
이 영화는 오늘 당장 손에 잡히는 희망이 없어 어쩌면 내일은 있을지 모르는, 내일의 희망을 잡고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다. 전쟁 직후 만신창이가 된 조국에서 쫓겨나듯 떠나온 용길과 영순은 낯선 땅에서 부부의 연을 맺는다. 용길과 영순과 함께 떠나온 시즈카, 리카, 미카는 한 자매가 되고, 막내 토키오가 세상에 나온다. 이들은 한국인이면서 일본인이고, 지금 밟고 있는 나라 땅에 살아가는 국민이면서 국민이 아닌 사람들이다. 경제는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용길이네 곱창집이 있는 판자촌은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내린다.
강한 태풍 한 번이면 날아갈 듯 연약해 보이는 작은 판잣집에서 함께 사계절을 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또 아껴가며 긴 세월을 버텨온 용길의 가족에게서 여러 발효 식품들의 냄새가 풍기는듯하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아주 진하게 묵어버린 된장과 고추장. 그런 것들의 냄새 말이다.
머리 위로 쉼 없이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있건만 내가 고향으로 돌아갈 때 탈 비행기는 없는 현실이 슬프다. 하지만 슬퍼하고 주저앉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무조건 부딪히고, 이겨내고, 살아남아야 한다. 용길은 그렇게 말한다. 그는 나를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낯선 땅에서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힘을 쥐어짜본다. 나라를 위해 한쪽 팔을 바쳤건만, 돌아온 건 힘겨운 삶뿐이다.
다른 나라와 조금은 다른 시기이긴 하지만, 최근에 개봉한 영화 <미나리>를 보며 <용길이네 곱창집>을 떠올리기도 했다. 아직 씨조차 뿌리지 못한 단단하고 낯선 타국 땅 위에 나와 나의 가족들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족의 모습이 서로 닮아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어디든.. 타국살이라는 것이 참 눈물 나는 일이란 걸 이만큼 자라고 나서야 알았다. 아무튼, 지지 않고 꿋꿋이 뿌리를 뻗어내리고 있는 그들의 내일엔 아주 작은 희망이 움틀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용길이네 곱창집 시놉시스
1969년, 고도성장이 한창이던 일본 오사카 공항 근처의 판자촌 동네. 그곳에 전쟁을 겪고 일본으로 건너와 뿌리를 내려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다. 좁디좁은 ‘용길이네 곱창집’ 한 켠에 모여 술 한 잔에 시름을 털어내며 차별과 무시를 꿋꿋하게 버틴다. 가족이 있기에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69년 봄, 노란 잎을 가진 꽃이 만개하고 따스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때. 우리는 용길이네 곱창집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고도성장이라는 특급열차를 탄 사회 속에서 아직 그대로 머물러있는 판자촌. 구불구불 이어지는 골목의 한켠, 용길이네 곱창집이 있다. 머리 위로는 비행기가 지나고, 시끌시끌한 동네는 풍족하진 않지만 나름의 행복을 찾아가고 있는듯하다.
첫째 시즈카와 둘째 리카, 셋째 미카, 그리고 막내 토키오. 용길과 영순. 여러 복잡한 사연을 가진 이 여섯 명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살고 있으며, 느리고 뒤처진 걸음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생을 살아간다.
시즈카는 다리를 절고, 리카는 사랑하지 않는 테츠오와 결혼을 하고, 미카는 유부남 하세가와와 사랑에 빠진다. 토키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고 그를 지켜보는 영순은 속이 터진다. 영순과 반대로 용길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소란 피우지 말라며 가족들을 토닥인다. “소란 피우지 마”, “난 한국 가련다!” 두 사람의 말다툼은 영순의 한마디와 함께 막을 내린다.
한국과 닮지 않은 듯 어딘가 닮은 나라. 일본. 혼인을 약속한 신랑의 발바닥을 때리고, 술에 거나하게 취해 닐리리아를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함께 있는 일본인들도 한국인들과 닮아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비슷한 나라라고 해도 어쨌든 타국은 타국이다.
전쟁의 참혹함을 피해 도망치듯 안착한 타국 땅. 용길은 가진 돈을 털어 땅을 사고 곱창집을 차린다. 그는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나가다 보면 언젠가 희망이 생길 거라 믿으며, 외롭게 남은 한 팔로 열심히 곱창을 굽는다. 그 땅이 국유지라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시간이 지나 사회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젠 나름 먹고살만해진 사람들을 위한 여유 공간의 건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부는 판자촌이 원래 국유지였다며 그곳에 공원을 지을 것이니 빠른 시일 내에 퇴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내 돈을 주고 산 내 땅이지만 내 땅이 아닌 땅. 용길은 나도 돈을 주고 산 땅이라며 퇴거 명령에 불응한다.
가슴이 터져나갈 것만 같다. 당장이라도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돈도, 다시 터를 잡을 돈도 없다. 비행기 활주로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지만 비행기와 가장 먼 사람들. 용길은 막내 토키오를 손수레에 태우고 활주로 옆길을 달린다.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를 지르면서 말이다.
가진 것 없는 무력한 이들이 할 수 있는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털썩 주저앉아 울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뿐이다. 영순은 가족들과 갈등을 겪을 때마다 큰소리로 윽박을 지르고, 시즈카, 리카, 미카 또한 자신을 갈등하게 만드는 인물인 테츠오와 하세가와 부인에 대적해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토키오와 용길은 그러지 못했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토키오는 아이들을 향해 제대로 된 말 한번 해보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현실을 이겨낼 무기가 없다면 마음껏 소리라도 질러봐야 하는데.. 그것조차 할 수 없었던 토키오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안타까웠다.
용길은 아들의 죽음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앞에서 처음으로 큰소리를 토해낸다. “이 땅 가져가려면 내 팔 돌려줘.” 항상 담담하게 가족을 지켰던 아빠의 입에서 서러운 말들이 터져 나온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하는 순간이었다.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등지고 매일같이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남았다. 나라를 위해 전쟁에 나갔고 팔을 잃었다. 하지만 이 나라는 다시 잡은 삶의 희망조차 빼앗아가려고 한다. 내 땅, 내 가게, 내 생계. 원래부터 사고팔 수 있는 땅은 아니었다지만.. 그래도 엄연한 내 땅이었거늘. 용길에겐 이제 고향도, 새로운 희망도 보이지 않는듯하다.
“거기서 보는 풍경은 멋지냐?”
삶이 답답하고 팍팍하다. 토키오는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리를 피해 지붕에 올라간다. 용길은 그런 아들을 보며 “거기서 보는 풍경은 멋지냐?”라고 묻는다. 붉게 물드는 하늘은 굳이 말할 것 없이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하늘 아래서 용길이 말한다. “기분 좋다. 이런 날은 내일을 믿을 수가 있지.”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오늘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정말 희망이 찾아올까? 내일이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일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용길의 가족은 희망을 찾아 각자의 길로 떠난다.
용길이네 곱창집이 있던 판자촌은 철거 후 아름다운 공원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아픔은 남김없이 쓸려나갈 것이고, 그 위엔 아주 깔끔하게 포장된 새것들의 냄새가 가득 차겠지. 흩어진 가족들은 각자의 터전을 구축하고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가끔은 가족을 잊고, 또 가끔은 사무치게 그리워하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연 많은 한 가족의 추억이, 찢어지게 아팠던 순간들이 벚꽃잎 한 장 한 장에 담겨 휘날린다. 오늘을 살아가고 나면 내일은 희망이 있겠지.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 다가올 희망을 그리며 오늘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내일은 희망이 가득 쏟아져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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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 '시원하게 터트리는 안티 히어로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The Suicide Squad)
개봉일 : 2021.08.04 (한국 기준)
감독 : 제임스 건
출연 : 마고 로비, 이드리스 엘바, 존 시나, 조엘 킨나만, 실베스터 스탤론, 비올라 데이비스
’더 나쁜 놈들을 시원하게 터트리는 안티 히어로들‘
2021년,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개봉 후 5년. 제임스 건 감독의 지휘 아래 제작된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가 개봉했다. 세상을 해치던 범죄자들이 감형을 위해 제멋대로인 시한폭탄 같은 팀에 합류한다는 설정은 전작과 동일하나 이번엔 더 강하게, 더 미쳐서 돌아왔다. 눈앞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아주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본격 난리 나는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이거 이렇게 해도 되나?”싶은 의문이 들어도 이들은 자신의 뜻대로, 끌리는 대로 그냥 그대로 간다. 거침없이 터트리고 뒹굴고 무너트린다. 정말 거침없기 때문에 다소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이런 표현에 큰 거부감이 있지 않다면 은근 견딜만한 잔인함이었던 것 같다. 처음엔 혼란스러웠으나 적응하고 나니 “이정도 미친 짓은 괜찮잖아?”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내가 순간 미웠지만.. 이 영화를 보는 시간만큼은 이 돌은 자들의 소용돌이에 휩쓸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현실에선 이렇게 미칠 수 없으니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통해 특유의 유머와 센스를 뽐냈던 제임스 건 감독이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후속편을 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사실 이렇게 미쳐버린 영화가 나올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R 등급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근데 실제로 만나보니..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상한 건 이게 또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거다. 각자의 방향성이 뚜렷해 여기저기로 튀어나가는 인물들과 과격한 표현들이 가볍고 통쾌하게 다가온다.
전작에선 할리퀸이 영화의 멱살을 끌어잡고 캐리 했다는 평이 많았는데, 이번엔 할리퀸만이 아닌 여러 캐릭터들이 본인의 확고한 포지션을 유지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니었나 싶다. 각자의 매력과 사연을 가진 캐릭터들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이며 특이한 케미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믿을 수 없지만 든든한 아군은 또 없을 것이다. 원래 미친 사람이 가장 강한 법인데, 미친 사람이 우리 팀이라니. 미친 적군을 상대하는 것보다 이런 게 훨씬 마음이 편하다.
세상이고 뭐고 나 구하려다가 세상을 구하게 된 안티 히어로들의 환장할 케미와 잔인함을 적절한 유머로 풀어낸 제임스 건 감독의 센스가 빛난다.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세이프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시놉시스
“우리는 격하게 세상을 구하고 싶다!”
살고 싶다면 무조건 성공시켜라! 최강 우주 빌런에 맞선, 자살특공대에게 맡겨진 ‘더’ 대책 없는 작전. 팀플레이가 ‘더’ 불가능한 최악의 안티히어로들. 최고의 팀워크를 기대한다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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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든 살리든 한동안 함께할 동료야”
빠른 석방 또는 가족의 안전을 조건으로 뭉쳐진 범죄자 용병팀 태스크포스X. 할리퀸을 포함해 위즐, TDK, 블랙 가드, 몽갈, 부머 등으로 이루어진 팀이 가상의 섬 코르토 몰티즈에 상륙하고 화려한 데뷔이자 오프닝 무대가 시작된다. 그리고 갑자기 끝난다. 화려한 데뷔를 앞둔 용병이 아닌 커다란 낚싯바늘이었던 그들이 모두 터져나가고 드디어 진짜 주인공이 등장한다.
블러드스포트, 피스메이커, 릭 플래그, 킹 샤크, 랫캐쳐, 폴카 도트, 그리고 할리퀸. 이들은 미국이 저지른 어두운 비밀을 땅 밑에 묻는 비밀 작전을 수행하게 된다. 누구를 돕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단지 나를 위해서. 내 감형을 위해서.
각자의 목표만을 위해 달려가는 팀이 처음부터 손발이 착착 맞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들은 개인플레이와 은근 잘 맞는 팀의 경계를 정신없이 뛰어넘는다. 단 하나의 목표를 보며 각자의 속도로 달려가던 인물들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자신의 힘과 그 뒤에 감춰진 비슷한 상처를 나누며 결국엔 친구가 된다. 그리고 함께 자신들이 저지른 것보다 더 큰 악행을 저지르는 고위직들과 커다란 외계 생명체 스타로에 맞선다.
안티 히어로들은 스타로를 물리침과 동시에 오랜 독재와 어두운 비밀로 몸살을 앓고 있던 코르토 몰티즈를 구한다. 이러려고 온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너무 나쁜 비밀을 알아버렸고, 서로를 믿고 힘을 모아보니 나라를 구해버렸다. 시민들과 독재에 맞선 인물들이 희생당하고 고위직들은 어두운 비밀을 묻기 위해 사건을 모르는척한다. 그리고 웃기게도 상황을 보고 있던 탈옥수들과 쥐가(?) 대신 세상을 구한다. 가장 나쁘다고 생각하는, 하찮다고 취급되는 존재들이 말이다. 세상을 구하는 건 무조건 착하고, 희생정신이 넘치는 히어로만이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다. 같은 목표를 향해 힘을 모을 친구가 있다면 안티 히어로들도 세상을 구할 수 있다. 쥐 떼가 몰려나올 때 두려워하는 블러드스포트를 감싸던 랫캐쳐의 손에 작은 감동을 느꼈다면.. 나 너무 과몰입한 걸까.
처음엔 그저 각자 다른 방향으로 미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팀의 리더 격인 블러드스포트가 팀의 중심을 잡고 릭 플래그와 랫캐쳐가 인물들의 마음에 조금씩 남아있는 정의감을 끌어모으자 나름 하나의 팀다운 구색이 갖춰진다. 거기에 할리퀸과 킹 샤크, 폴카 도트가 각자의 색을 토해내며 이야기를 다채롭게 만든다.
강력한 오프닝에 비해 중간부가 조금 헐렁하긴 했지만 결론은 좋았다. 사실 상상도 못한 방법이었다. (아무튼 세바스찬은 착한 사람도 알아보고 스타로도 혼내주고.. 정말 대단하다.) 착한 사람일 거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안티 히어로들의 변화에 묘한 뿌듯함이 차오른다. 더불어 그들이 각자 갖고 있던 상처를 털어내는 모습도 참 인상적이었다. 블러드스포트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생긴 쥐 공포증을, 폴카 도트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를, 킹 샤크는 친구가 없어서 겪었던 외로움을, 랫캐쳐는 아빠의 부재 후 기댈 곳 없던 불안함을 극복했으며 할리퀸은 조커에게서 받은 상처를 교훈 삼아 자신에게 상처를 입힐 것 같은 남자에게 망설임 없이 총을 겨누는 더 강해진 모습을 보인다. 더욱 강해진 이들이 다음에도 세상을 구해주려나?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안티 히어로들도 이렇게 성장을 한다.
통쾌하게 나쁜 놈들의 머리를 날리며 유쾌하게 웃기고, 나쁜 놈들도 세상을 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영화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 각 캐릭터들의 색깔과 통쾌함을 동시에 잡아내 꽤나 만족도 높은 영화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임스 건 감독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이 쭉- 상승했다. 특히 <킹스맨>을 오마주한 장면을 보며 무릎을 탁 쳤다. 이 감독님도 이렇게 젠틀하고 유쾌하게 때려 부술 수 있구나. 감독님 앞으로도 하고 싶은 거 다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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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스웨덴] 한 여름의 힐링
스웨덴의 하지 축제 ‘미드소마’는 본래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여 여름의 한가운데를 축하하는 밝고 따뜻한 축제다. 해가 가장 길고, 햇살이 풍성한 시기에 들판에 모여 춤을 추고, 꽃을 엮고, 음식을 나누는 모습은 스웨덴 하면 떠오르는 평화롭고 여유로운 이미지와도 잘 어울린다.
하지만 아리 애스터 감독의 영화 <미드소마>는 이런 실제 축제를 전혀 다른 시선으로 비튼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 속, 오히려 그 안에서 벌어지는 기이하고 잔혹한 일들은 우리가 기대했던 북유럽의 정서와 충돌하며 강한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환상처럼 맑은 풍경 안에서 무너져가는 인물들의 심리와, 그들이 목격하는 상식 밖의 의식들은 다양한 묘사와 메타포와 함께 묘한 긴장감을 더한다.
영화의 시작은 대니에게 닥친 끔찍한 비극으로 열린다. 여동생이 부모님의 방에 가스관을 연결해 부모님을 살해하고, 스스로도 가스를 흡입해 생을 마감한 것이다. 대니는 한순간에 가족 전체를 잃는다. 세상에 단 하나의 의지도, 이해자도 없는 상황. 그녀는 본능처럼 남자친구 크리스티안에게 매달리지만, 그는 이미 관계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고,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기댈 곳조차 없는 대니는 고립감 속에 갇혀 점점 더 외로워진다. 죽은 가족들의 환영은 그녀를 끊임없이 따라다니고, 마음은 늘 눈물로 가득 차 있다. 작은 자극에도 울음이 터질 듯한, 그런 상태로 대니는 간신히 일상을 버텨낸다.
그때, 크리스티안의 친구 펠레가 자신의 고향에서 열리는 축제, ‘미드소마’에 그들을 초대한다. 대니도 덜컥 따라나서게 된다. 그리고 도착한 그곳은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계, 그들만의 규칙과 전통이 지배하는 마을이었다. 이곳은 이성이나 합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일정 나이가 되면 공동체를 위해 스스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고, 때로는 제물을 바친다. 개인의 생명보다 공동체의 지속이 우선되는 사회. 개인이라는 주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하나의 톱니처럼 기능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니는 이 기이한 마을에 점점 스며든다. 일행 중 유일하게 ‘선택’받으며, 마을의 축제의 여왕 ‘메이퀸’으로 추앙받는다. 처음엔 당황하고 두려워했지만, 그녀는 서서히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로 돌아가 봐야 또 상처받고 외면당할 뿐이라면, 차라리 이 낯선 공동체 안에서 위안을 찾고 싶어졌던 건 아닐까.
그녀는 결국, 충격적인 장면을 통해 크리스티안에 대한 감정과 그간 쌓였던 울분을 폭발시킨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을 사람들은 대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함께 울부짖는다. 그 울음은 그녀의 고통에 대한 진정한 공감이었을까? 아니면 단지 의식의 일부였을까?
<미드소마>에서 당혹스럽고, 기괴했던 장면이었다. 그 광경을 보며 “이래서 사람들이 사이비에 빠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울음은 나에게 공허하게 느껴졌고, 진심이 담긴 공감이라기보단, 형식적인 흉내 같았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대니는 어쩌면 그런 울음조차 내심 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세상 밖에서조차 남자친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했던 대니. 그런 그녀에게는 ‘함께 울어주는 사람들’이 그저 형식일지언정 큰 위로였을 수 있다. 적어도 누군가는 나의 고통을 ‘보고 있다’는 느낌.
그래서일까?
난 대니의 마지막 웃음이 이상하리만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영화 초반부터 대니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지, 얼마나 이해받고 싶었을지를 따라가다 보니, 그녀가 그토록 갈망하던 위로와 소속감을 이 낯선 공동체 안에서 얻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묘하게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그 방식이 잔혹하고 기괴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현실에서조차 아무도 그녀의 고통을 진심으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기에, 마을 사람들의 '함께 울어주는 행위'만으로도 대니에게는 그토록 간절한 공감이었을지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밝고, 하얗고, 꽃으로 가득찬 아름다운 영화의 비주얼은 그런 심리적 불안을 더 돋보이게 만든다. 잔혹한 장면들과 기괴한 의식들이 가득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초원, 화사한 햇살, 평화롭기까지 한 풍경. 마치 동화 속 마을 배경의 만남으로 공포영화로서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오히려 대낮에 대놓고 보여지길 강조하고, 강요하기 때문에 <미드소마>만의묘하고 강렬한 분위기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대니의 선택과 웃음이 완전한 해방인지, 혹은 또 다른 형태의 억압인지에 대해선 쉽게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공감받고 싶었던 순간들, 이해받지 못해 외로웠던 시간들, 그리고 어딘가에라도 속하고 싶었던 간절함.
<미드소마>는 그 모든 감정들을 환하게 빛나는 한낮의 태양 아래, 너무도 또렷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무섭고, 그래서 더 슬프다.
* 북유럽의 여름과 예쁜 꽃들로 가득찬 행복한 축제를 느끼고 싶다면 <미드소마>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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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과 내가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뜬다. 더 일찍 일어나고 싶었지만 12시에 일어나는 삶에 익숙해졌다. 아침에 아빠한테 ‘아빠, 오늘은 좋은 크리스마스예요’라고 다시 누운 기억만 난다. 그리고 동시에 백수 생활 6개월 차. 빈도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때 당시 속은 무진장 쓰렸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까 익숙해지는 느낌이다. 다시 어학부터 따야 뭐라도 하겠지? 그러나 하고 싶은 공부, 그러니까 인적성과 ncs만 파고 있으니 나도 변덕이 심한 편이다. 왜 필요할 때 필요한 걸 안 하는 걸까? 공부하는 일도 마음이 움직이는 것인데 말이다. 뭐든 재미를 붙였다는 것이 희망적이다. 확실히 난 내일이 기다려진다. 그 자그마한 성취감이 쌓이는 쾌감이 어마무시하다. 그전 날 내가 뭘 했던 뭐든 해나가는 과정이 좋았다.
나만 이런 건 아닐 것이다.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불안함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하다못해 유느님도 ‘말하는 대로’라는 음원을 낸 적 있는걸. 그리고 내가 봐왔던 수많은 영상들이 동시에 떠오른다. 이 시기가 불안하다고 말했던 수많은 사람들. 내 주위의 누군가도 서류광탈은 아프다고 말한 적 있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그냥 정해진 무언가가 있거니-하고? 그동안 많은 걸 깨왔다고 생각했지만 여기가 내 한계일까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하지만 이런 속상한 상황에도 뭔가 즐거운 건 있을 거라 믿는다. 아무튼 내일은 확실히 기다려진다고.
이런 나도 크리스마스를 맞이한다. 아무튼 크리스마스다. 전날 닭강정이 먹고 싶어 아무 데나 가서 결제했다. 하지만 정작 알맹이는 없고 오징어 맛 나는 과자만 양의 절반이었다. 적어도 6천 원 닭강정과 10500원어치가 양이 비슷하면 그건 좀 이상하지 않나? 도저히 그 오징어 맛을 참을 수가 없어서 엄마 몰래 쓰레기 봉지에다 갔다 놨다. 이 생각을 하다 갑자기 지금 내가 현재 있는 카페와 내 방 안이 생각난다. 카페는 깔끔한 반면 내 방안은 뭔가 물건이 많았다. 책상부터 시작해 거울, 옷까지 듬성듬성 삐져나온 물건들이 갑자기 보기 싫어진다. 아. 집 가면 방부터 치워야지. 새 해가 머지않았는데 새 마음 새 뜻으로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갑자기 할 일들이 뭉게뭉게 떠오른다. <노량> 쓴 것도 좀 고치자. 내일은 레이저 제모가 있다고. 아니야. 영어 단어부터 외울까? 하루라도 빨리 어학을 치워야 뭐라도 할 수 있다.
요즘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생각이다. 난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걸까? 사실 먹고살기만 해도 큰 문제는 없다. 나는 기자인지 평론가인지 모를 영화 글을 쓰는 게 재미있다고. 그냥 기자로 살아도 힘든 판에 영화기자로 살면 일단 경쟁률에 못 이길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겸손하게 살기로 한다. 그리고 영화 글을 쓸 수 있는 온오프상의 지면이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 이 브런치가 나에게 영예로운 무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수익으로 이어지기만 하면 참 좋을 텐데. 재미로만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도 있는 법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 내가 있는 이 카페의 사장님이 음료를 다시 채워주셨다. 한 3년쯤 된 것 같다. 자주 가던 카페가 영업을 종료하고, 젊은 여자 사장님이 운영하고 있는 곳은 오랜만이었다. 애정을 쏟는 곳에 자주 방문하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다. 그리고 정들게 되면 상대도 나에게 정을 쌓는다. 그 쌓은 정은 이후 사람 하는 행동을 결정한다. 20대 초 자주 가던 카페가 영업을 종료하고 채울 것이 없어 이곳저곳 많이 다녔다. 나를 ‘아들!’이라 부른 카페 사장님도 있었지만 내가 활동하는 시간대(?)와 영업시간이 맞지 않아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완벽하게 빈자리를 채우는 걸 무의식 중에 바랬던 나. 조금 모자라보여도 마음 둘 곳을 원했다. 하지만 20대 초 추억이 서려있는 곳만큼의 무언가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대신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서 다행이다. 어릴 때 가던 곳은 사장님이 멋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 아는 사장님은 성격이 정말 좋으시지만 잘 알지는 못한다(물론 이 분도 멋있는 분일 것이다). 그래도 내 시간과 맞는 영업시간이 있다는 점에 만족해야겠지. 어릴 때 가던 곳이랑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아이스티와 초코라테 맛집이라는 점이다. 초등학생 입맛인 나에게 적합한 곳이다. 아. 이런 내 입맛을 충족시키는 식당도 현재의 카페 근처에 있다. 지금이야 돈 없는 불쌍한 애다. 하지만 한 때 점심으로 ‘초리’ 가서 난반정식 먹고 여기서 공부하면서 카페로 딱 하루를 마무리하면 그 무엇이 부럽지 않았다. 이 식당도 생각해 보면 사장님과 나 사이의 3의 인물 덕에 알게 된 곳이다. 누군가에게 준 애정 덕에 새로운 장소를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맛있는 생각을 하다 문득 집에 갈 시간이 됐다는 걸 체감한다. 오늘은 12월 말. 연말이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쌓은 데이터베이스 중 하나는 ‘난 사람 구경을 재밌어한다는 점이다. 연말에 행복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 환하게 웃는 사람들. 카페 안에도 몇 커플이 보인다. 좋겠다! 나도 새로운 해에는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하지만 딱 체감되는 것이 있다. 바로 해가 바뀌며 소망이 달라진 것이다. 사랑을 찾으면 좋겠지만 딱히 없어도 뭐 큰 문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진다면 문득 두려워질 것이다. 영화를 못 보고. 글을 못 쓰고. 가끔 책 못 읽고. 처음 가 본 서울독립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 영원히 갈 수 없다면 아득해진다. 언젠가 사랑을 찾을 거야!라는 희미해지는 희망도 나를 살게 하지만 지금 내가 사랑하는 것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정말 특별한 경험을 했다. 올해 1월에 내가 쓴 글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는 분을 우연히 본 것이다. 내가 쓴 글을 네이버 검색에서 찾았다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런 반응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이 아직까지도 기쁘다. 이런 경험을 하니 다시 목표를 재조준하게 됐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게 내 가치를 보여주고 싶다.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의지하게 만든다면 더없이 행복할 거라는 바람이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내 사랑도 언젠가 찾을 것이다. 내 운명 같은 사랑을 찾고 싶어 하는 욕망이 약해지긴 했어도 내가 원하는 사랑은 아직까지 내 마음 안에 남아있다.
나에 대한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혼자 하다가 다시 내 시선에 집중한다. 하하 호호 웃는 사람들. 사람들은 각자 즐거운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내 뒤에 알콩달콩 다투는 커플이 있다. 두 사람은 같은 신발, 그러니까 컨버스를 신고 있었다. 셀카도 찍고 장난도 치면서 방긋 웃고 있다. 두 사람은 정말 행복해 보인다. 저 두 사람도 오늘을 추억하며 행복해할까? 부러운 마음에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린다. 바로 옆자리다. 두 여성이 눈에 들어온다. 둘은 친구인 것 같았다.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걸 보니 아마 여행 온 것 같다. 대놓고 쳐다보면 좀 그렇잖아? 에어팟을 빼고 두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또 흘깃 쳐다본다. 제주 사투리 억양 자체가 없다. 야. 여기 근처에 뭐가 있다는데?(그 ‘뭐’를 비롯한 여러 단어가 잘 들리지는 않았다) 여기 한 번 가보자. 야. 내일 우리 여기 가보는 건 어때? 나 여기에서 뭐 사서 가려고. 두 사람은 세상 즐거워 보였다. 제주 여행 좋지. 내가 서울 가서 느끼는 기분을 저 사람들은 느끼는 것 아냐? 그 여행을 서로 사랑하는 친구와 온다면 기쁨이 두 배가 될 것이다. 금세 잘 들리지 않았던 단어 몇 개를 상상한다. 두 친구 중 한 명은 근처 굿즈샵에 가서 선물을 사서 주변 사랑하는 이에게 주고 싶은 것 아닐까? 어릴 땐 몰랐지만 선물은 필시 주는 사람이 더 기쁜 일이다. 새삼 드는 생각. 여행은 이렇게 내일의 나를 기대하게 만든다. 동시에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힘은 굳이 여행이 아니더라도 매일 있다. 나에겐 아직 그런 사랑이 남아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하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이 사랑이 없는 삶이, 또 떠나간 나의 모습이 얼마나 텅 비었을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깊게 배웠던 것 중 하나. 상실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면 생기는 그 빈자리가 너무나도 싫었다. 왜 다들 울어야만 하고. 왜 다들 그렇게 사라져야 하는 걸까. 사라지지 않을 수는 없는 걸까. 닭강정의 맛. 같이 치킨 먹는 엄마. 언젠가 만날 내 운명 같은 사랑. 영화와 글쓰기.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와 김혜리의 필름클럽. 우상과 친구들. 이 카페 사장님. 하나하나 찍는 쿠폰들. 내 소망과 꿈까지. 나의 세상을 이루는 무언가가 사라진다면 이내 곧 나머지도 없어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예감하고 있다. 이동진 평론가님과 김혜리 기자님이 사라진다면 나의 영화와 글쓰기에 큰 공백이 생길 것이다. 영화와 글쓰기가 사라진다면 나의 감성적인 면모가 어느 정도는 텅 빌 것이다. 닭강정의 맛이 사라진다면 이 카페에서 마실 초코라테의 향을 느끼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언젠가 만날 사람들에게 ‘미안했어’라고 말할 일 자체가 사라진다면 언젠가 만날 새로운 사랑도 나의 어리숙함에 도망칠 것이다. 집 안에 혼자 남는 삶이야 뭐 두말할 필요 없다. 이렇게 나의 인생의 많은 것들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당연히 난 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다. 어느덧 싫어하는 것들에 별로 관심을 안 두기 때문인지 이제 생각을 어느 정도는 던 것 같다. 내 주위의 것들이 날 떠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이기심 이 머릿속을 맴돈다. 왜 다들 죽는 걸까. 죽지 않을 순 없는 걸까. 영원히 남아있을 수는 없을까.
<너와 나>는 존재와 상실에 관한 영화다. 세미(박혜수)는 머릿속에 걱정이 가득하다. 학교에서 자다가 꿈을 꿨다. 그 꿈속에서 둘도 없는 단짝친구 하은(김시은)이 죽었다. 뺨에 눈물이 흐른다. 눈물을 닦는 세미. 담임 선생님께 쪼르르 달려가서 조퇴를 신청한다. 될 턱이 없다. 호기롭게 자율학습을 째는 세미. 집에 잠깐 들른 후, 하은이가 있는 병원으로 향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세미와 하은. 사실 세미에겐 비밀이 있다. 하은이를 사랑하고 있던 것이다. 언젠가 세미는 하은이에게 널 정말 사랑한다고, 뭐든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려고 한다. 수학여행에 간다면 이 고백이 쉽겠지? 하지만 하은이에겐 사건이 있다. 바로 최근에 자전거에 치여 다리를 다친 데다 가정형편이 충분하지 않아 여행비를 댈 수 없던 것이다. 다급한 세미. 고백도 하고 싶고. 다른 친구들이랑도 지내고 싶고. 수학여행도 가고 싶고.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목표는 ‘너(하은)와 함께 행복하는 것’이었다.
이 <너와 나>는 이 세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존재와 상실에 대해 탐구한다. 네가 없는 세상, 그 나머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이를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세미가 없는 빈자리를 보여주거나 하은이가 없는 빈자리를 보여준다. 하은이가 먹던 사과를 세미가 바라본다던가, 주인 잃은 강아지를 이야기의 핵심으로 내보이는 것이 그렇다. 이 존재와 상실을 연이어 보여준 목적은 두 사람의 사랑에 빛을 비추기 위함이다. 두 사람은 서로가 없는 빈자리를 쫓아간다(특히 세미를 중심으로 하은이의 빈자리를 탐구한다). 동시에 세상과 충돌한다. 그리고 그 서로에 대한 절실함이 모아지는 지점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두 소녀가 서로의 빈자리를 체감하는 것이 영화의 핵심이 된 것이다.
이제까지 수도 없는 영화를 봤다. 영화 글을 쓰는 것이 삶의 재미 중 하나였던 나. 당연히 영화와 관련된 이런저런 추억이 있다. 2023년 상반기엔 <바빌론>을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가보고 싶었던 서울독립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에 방문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선명한 기억은 후반기에 있다. <너와 나>를 보고 운 기억이다. 난생 안 해본 굿즈 수집이라는 것도 해보고, 티켓을 6번이나 샀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영화와 관련된 장소에 가봤다. 수많은 ‘사랑해’를 보면서 먼저 떠나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누군가 있다 떠나간 자리가 이렇게 황량하고 외로운 것이라는 걸 느꼈다.
내가 뽑는 단연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다. <헤어질 결심>과 <소설가의 영화>, <기생충>과 <버닝>만큼의 뛰어난 터치가 아니더라도 이 영화는 누군가의 마음에 남기 충분하다. 지나치게 많은 빛의 양. 이기적인 세미.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하은.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간 것들을 기억하며 ‘사랑해’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 밖의 많은 사람들도 2014년의 4월의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잊고 살았던 나. 내가 사랑을 찾아 헤매던 날이 참 더없이 소중했다는 걸 체감한다. 동시에 이 시간 동안 사랑할 일이 많았을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거구나. 내가 없는 세상. 그리고 당신이 없는 세상은 이렇게 우울한 것 투성이구나.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 이거 정말 큰 의미였다. 이거 하나라도 없으면 이 세상이 무너진다는 의미였다.
난 이 글을 구성함과 동시에 읽어주는 많은 것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당신이 없는 세상은 온갖 눈물로 가득 찰 것이다. 흐릿한 하늘로 변할 것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지 못해 맴돌 것이다. 여러분 덕에 생긴 행복한 기억이 우울함으로 변할 것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어떤 것들이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당신이 줄 사랑이 사라질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이유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떠나간 이들을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지금 있는 것들에 따뜻한 것들을 줘야 한다. 그래야 먼저 보낸 이들이 그렇게라도 살아 숨 쉬어 우리들의 마음을 듣고 있을 테니까. 기억공간을 나서면서 느꼈다. 이 기억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거었다는 예감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올 한 해, 아니 그전부터 이 사회를 떠나간 이들에게 기억하겠다는 말을 전할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이 <너와 나>를 만든 스태프들과 감독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그리고 김시은, 박혜수 두 배우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각자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언젠가 당신들이 이 글을 읽어 내가 인정받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리고, 2014년 4월 우리 곁을 떠난 이들과 또 2023년 이 사회에 있다 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하겠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고생 많으셨다. 새로운 해가 왔다. 다들 힘내자. 사라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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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간 추억은 어떻게 사람을 살게 하는가? <로봇드림>
살다보면 차마 잊히지 않는 인연들이 있다. 지나가버린 세월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각별한 사람과 그와 공유했던 시간들은 우리 뇌리에 오래도록 남는다. 추억 속에서 그들은 눈부시고, 우리는 때때로 '그'가 아니면 다시는 누리지 못할 행복을 가늠하곤 한다. 우리는 그때와 같은 경험을 다시는 하지 못하리라는 걸 알고, 그게 우리를 아쉽게 한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우리는 어쨌거나 새 인연을 만나 새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지나가 버린 추억은 무가치한 것인가? 그저 흘러가버린 인연은 우리 안에 무엇으로 남는가? 영화 <로봇 드림>은 우리가 흘려 보낸 수많은 인연과 삶의 단편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개'는 번화하지만 외로운 대도시에 사는 시민 중 하나다. 그는 외롭다. 그 많은 시민들 중 그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외로우신가요?'
어느날 텔레비전 광고는 그에게 묻는다. 그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가 반려 로봇을 들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연인은 조각한 피그말리온처럼 '개'는 반려 로봇을 조립한다. 로봇은 완벽하다. 그는 가장 순수한 눈으로 '개'를 바라보고, '개'가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보다 더 절묘한 파트너는 없을 것만 같고, 둘에게 찾아온 찰나같은 여름은 행복하기만 하다.
그러나 운명은 잔혹하고, 둘의 행복은 지속되지 못한다. 바다에서 논 것이 무언가 잘못된 걸까? 즐거운 물놀이 후 로봇은 더는 움직이지 못하고, '개'는 고철로 된 친구를 해변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로봇을 되찾아오겠노라 다짐하지만, 여름철이 지난 해변은 입구를 걸어 잠갔고, '개'와 로봇은 단절되고 만다. 나중에 다시 여름이 오고, 해변이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로봇은 자취를 감춘 후다. 영원할 것만 같던 우정이 한순간에 스러지고 만 것이다. 이별은 예고없이 들이닥친다. 둘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운명이란 으레 그런 것이므로.
이별은 괴롭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지나도록 둘은 끝없이 서로를 그린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과의 관계는 자꾸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것만 같다. 그럴수록 서로가 보고 싶다. 재회의 기쁨을 상상할수록, 오늘의 고독은 선명해진다. 다시는 그런 인연을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도 싹튼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 야속하게도 그렇다.
결국 새로운 인연은 오고 만다. 로봇은 그저 고철로 마감될 수 있었던 그의 삶을 구원한 새로운 가족을 만났고, 개는 새로운 반려 로봇을 들인다. 그러는 사이 둘은 참 많이 변했다. 이별을 기점으로 두 사람의 삶도 저마다의 길을 따라 나아가버린 탓이다. 다시 봄이 왔고, 로봇은 스쳐지나가는 옛 인연을 알아보지만, 그의 손을 잡는 대신 그를 떠나 보낸다. 그와 함께 들었던 노래 한 곡과, 그 언젠가 나누었던 진실한 감정을 되새기면서.
My thoughts are with you
Holding hands with your heart to see you
Only blue talk and love
Remember, how we knew love was here to stay
Now December found the love that we shared in September
Only blue talk and love
Remember, the true love we share today
난 늘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과 한 마음이 되어서.
진한 농담과 사랑 뿐이었지만
기억하세요, 사랑이 지속될 거라는 걸 우리가 어떻게 알았는지
이제 12월이 되었고 저는 우리가 9월에 나누었던 사랑을 찾았어요.
진한 농담과 사랑 뿐이었지만
기억하세요, 오늘 우리가 나누는 진정한 사랑을.
지나간 추억은 오즈의 마법과도 같다. 그것은 찬란하지만, 우리가 추억하는 방식 그대로 재현되지는 못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의 속성이 본디 그렇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나가버린 세월과 시간들은 무가치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했던 그 향그러운 추억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전보다 성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중 로봇과 개가 그랬듯, 우리는 그 찰나 같은 기쁨으로 말미암아 살아갔을 것이다. 그 기쁨을 알기에 우리는 그것을 나눌 줄도 알게 되었을테고, 그 지나간 인연과 함께 하며 저질렀던 몇몇 실수들은 우리를 더욱 조심스러워지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을 때, 그를 더 소중히 여길 줄도 알게 되었으리라. 그러니, 이미 지나가버린 옛날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유의미하다. 로봇이 개를 더는 붙잡지 않고 그를 그저 떠나보낸 것은 그가 이러한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리라.
이 이야기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경험과 정서를 생생하게 담음으로써 보편성을 가진다. '개'를 통해 드러나는 ;지독한 고독에 시달리며 나의 완벽한 이해자를 그리는 개인'의 모습은 현대 사회에서 그리 낯설지 않다.
또 한편으로, 이것은 우리 사회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언젠가 매스컴을 타던 강아지 로봇 '아이보'를 떠올렸다. 부품이 절판되어 다시는 회생시킬 수 없어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는 그 반려 로봇들 말이다. 나는 또한 로봇과 개의 관계를 통해 우리 세계의 개와 인간의 모습을 연상했다.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개가 근원적인 고독을 이기지 못해 반려 로봇을 들인다는 설정은, 우리 인간이 개에게서 애정과 위안을 받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작중 반려 로봇들이 그 사회에서 받는 취급 역시 우리 사회의 '반려 동물'이 처한 현실과 닮아 보였다. 결코 우리 사회에 주류가 되지 못하는 소수자들의 삶도.
작중 '개'는 250불짜리 연 대신 70퍼센트 할인되는 연을 사야하며, 싸구려 맥앤치즈로 끼니를 떼우고 단칸방 신세를 면치 못한다. 그의 주머니 사정은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 그는 또한 친구를 사귀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보통 사람들 사이에 쉽게 섞여들지 못하고 스스로 친구를 '만들어야만 한다'. 그의 평안과 행복은 스스로 만든 ' 갈라테이아'에 의해서만 영위된다. 그리고 이렇게 어렵사리 찾은 인연은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단절되고 만다. 개가 아닌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로봇은 그저 고철에 불과하고, 로봇은 토끼, 악어 등의 타인에 의해 처절하게 이용당하고 만다. 그들의 이러한 모습들에서 수많은 현실적인 장벽에 의해 와해되고 무너져 내리는 성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 마이너리티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비극으로 마감되지 않는다. 둘은 서로가 아닌 인연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새 사람은 온다. 흔치는 않지만, 어떤 사람은 온전히 고립된 또 다른 개인에게 기꺼이 손 내밀기도 한다. 그것은 가장 소박하지만 견고한 연대이자, 사랑이다.
사람은 참 외롭다. 오늘날처럼 개인과 개인의 삶이 단절된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어렵사리 만난 인연이 더 소중하고, 그래서 이미 지나쳐 버린 인연에 대한 미련도 쉽사리 버리지 못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런 외로운 삶은 끝없는 부침을 맞는다.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는 사이 우리는 때때로 행복하고, 때때로 비참하다.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삶의 속성이라는 것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어제의 좋았던 날들에 너무 빠져들 것도 없고, 조금 전의 나쁜 일에 잠겨들 필요도 없다. 어쨌든 시간은 흐르고, 오늘과 내일은 온다. 우리는 우리가 맞이할 그 많은 순간들을 어떻게 하면 충실히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렇게 살아가면 그만이다. 오늘 좀 덜 충실하면 어떤가? 내일 조금 더 충실하면 된다. 내일이 영 시원찮으면 모레에는 그보다 올라갈 길이 많으니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부침 속에서, 자꾸만 밀려드는 그 파도와 해일의 삶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요트를 타고서 돛을 올릴 뿐이다. 요트가 없으면 뗏목이라도 타면 된다. 그게 없으면 헤엄이라도 치는 것이다. 그러다 힘들면 남의 배 좀 얻어 타고, 가끔 외딴 섬을 만나면 거기서 몸도 좀 말리고, 나처럼 외롭고 처량한 사람에게 기꺼이 손도 내밀고. 그런 좋은 추억과, 소박한 연대가 서로 엮이다보면 인연은 오고, 해는 떠오른다. 우리는 다시금 그 햇발 아래 살아가게 된다. '개'와 '로봇'이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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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우리는 어른으로 자란다
이번에도 '믿고 보는 픽사 애니메이션'이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며 다시 한번 힐링을 선사했다. 9년 만에 후속편으로 컴백할 만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는 13살이 되어 사춘기에 접어든 라일리의 변화와 성장을 그린다. 그동안 라일리의 감정 컨트롤을 담당해 왔던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 이외에 불안, 당황, 따분, 부럽 등 낯선 감정들이 갑자기 들이닥친다.
1편에서 부모를 따라 고향인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를 떠나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오면서 낯선 환경에 어려움을 겪고 기쁨과 슬픔이 충돌하는 과정이 주류였다면, 이번에는 라일리가 다양해진 감정들과 함께 복잡 미묘한 시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보여준다.
기쁨은 라일리의 좋지 않은 기억들을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면서 '나는 좋은 사람이야'라는 자아를 형성하지만, 부정적 상황을 미리 대비하는 불안의 영향력에 라일리가 또 다른 힘을 발휘하면서 기쁨이 만든 자아는 빛을 잃어간다. 하지만 라일리에게 닥칠 수 있는 부정적 상황을 미리 대비했지만, 불안이 만든 자아는 열등감 가득한 '난 부족해'로 탄생해 위기에 빠뜨린다.
1편보다는 스토리 구조가 단순해지고 깊이가 얕아진 느낌이 들지만, '인사이드 아웃 2'가 전하는 진한 메시지는 전편 못지않게 강력하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주로 겪을 법한 신념의 형성부터 자존감, 불안감, 이기심, 욕심까지 아주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특히 불안이 일으키는 일련의 사건들은 현대 사회에서 누구나 겪게 되는 감정 이야기로 확대해 불안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어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위로한다.
동시에 아름다운 동심을 잃지 않는다. 기쁨을 포함한 기본 감정들의 모험을 통해,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서도 잃지 말아야 할 솔직한 감정들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청소년기를 거쳐 어른으로 성장하는 라일리를 위해 모든 감정들이 손을 잡을 땐 '난 사랑받는 존재였어'라는 결론에 다다르며 울컥하게 만든다. '어른동화' 픽사의 저력이 여기서 느껴진다.
이번 편에서 새롭게 합류한 감정 캐릭터들과 라일리의 '비밀의 방'에 숨겨진 비밀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한다. 그중 비디오게임에서 튀어나온 랜스와 파우치는 웃음 신스틸러로 활약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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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03. 16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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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마블의 미래?
00:46 화이트 비전
02:00 모니카 람보
03:11 캡틴마블2 & 시크릿 인베이젼
04:33 숙제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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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1 여러분 덕분에 많이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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