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0932022-12-31 15:39:26
감성추적 시간여행 영화 시간이탈자
영화 <시간이탈자> 줄거리,결말
시간 여행 그런 영화 좋아하시나요?! 과거로 간다면?! 무엇을 하시겠어요?! 로또를 산다?, 주식을 산다? 등등 많이 있겠지만, 누군가는 순양을 산다고.. 아.. 아무튼!
영화 시간이탈자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과거를 바꾸기 위해 시간 여행을 떠나며 벌어지는 이야기 입니다.
이번에 가지고 온 영화 시간이탈자는 사랑하는 연인을 살리기 위해 펼쳐지는 시간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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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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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7 노 타임 투 다이' 주말 박스오피스 1위
[국내 박스오피스 소식]
6년만에 돌아온 '007 노 타임 투 다이', 주말 박스오피스 1위.
다니엘 크레이그 라미 말렉 주연 6년 만에 전 세계 국내 최초 개봉한 '007 노 타임 투 다이 '가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56만의 누적 관객 수를 기록했습니다.
4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관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영화 '007 노 타임 투 다이'(감독 캐리 후쿠나가)는 지난 주말(1~3일) 38만 3천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지난 29일 국내에서 전 세계 최초 개봉한 이후에 개봉 첫 날 10만명 관객 수를 기록했으며, 누적 관객 수는 56만여 명입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는 강력한 적의 등장으로 죽음과 맞닿은 작전을 수행하게 된 제임스 본드의 마지막 미션을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입니다. 제임스 본드 역의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시리즈 마지막 작품이며, 차기 제임스 본드 역은 누가 될 지도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습니다.
시리즈 사상 최고 제작비인 2억 5000만 달러(한화 약 2962억)가 투입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리즈 최초로 IMAX 카메라까지 도입하여 더욱 시원하고 광활한 액션 블록버스터의 진수를 선보입니다. 또한 영국, 이탈리아, 노르웨이, 자메이 카 등 4개국 글로벌 로케이션 진행했으며, 전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개봉하였습니다.
2위는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켜왔던 변요한 김무열 주연의 범죄액션 영화 '보이스'가 차지했습니다. '보이스'(감독 김선 김곡)는 같은 기간 9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누적 관객 수 112만명을 돌파했습니다.
'보이스'는 보이스피싱 피해로 모든 것을 잃은 전직 형사 한서준이 중국 보이스피싱 본거지에 잡임해 추적하는 이야기를 다룬 범죄액션 영화입니다.
3위는 박정민 임윤아 주연의 힐링영화 '기적'이 자리를 지켰습니다. '기적'은 지난 주말 4만 5천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누적 관객 수는 53만 2천여명입니다.
4위와 5위는 각각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과 지난 9월 29일 개봉한 영화, 호소다 마모루의 신작 애니메이션 ’용과 주근깨 공주‘가 이름을 올렸습니다. 각각 누적 관객 수 170만 여명과 2만 2천여명을 기록했습니다.
[북미 박스오피스 소식]
마블의 히어로물 ‘샹치 텐 링즈의 전설’이 지금까지 북미에서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켜왔지만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10월 1일 개봉으로 1위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10월 1일 북미 개봉한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는 개봉 첫 날 북미에서만 $37,290,000 (한화 약 442억)을 벌어들이며 박스오피스 1위를 탈환했습니다. 지난 주말(1일~3일)까지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박스오피스 1위는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가 차지했으며, 누적매출은 $90,100,000(한화 약 1,069억)을 기록했습니다.
같은 날 기준 북미 박스오피스 2위는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와 같은 날 개봉한 애니메이션 <아담스 패밀리 2>로 누적매출은 $18,007,000(한화 약 213억)을 기록했습니다. <아담스 패밀리 2>는 그렉 티어난, 콘래드 버논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았고, 샤를리즈 테론, 클로이 모레츠, 오스카 아이삭 등 할리우드 명배우들이 목소리 연기를 맡고 있어 영화 팬들의 큰 화제가 된 작품입니다.
뒤를 이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 박스오피스 3위를 기록했으며 전 주 대비 매출액은 약 54% 감소했으며, 누적매출은 $206,108,802(한화 약 2,446억)입니다.
4위와 5위는 각각 워너브라더스의 범죄드라마, TV시리즈 ‘소프라노스’의 프리퀄인 <더 매니 세인츠 오브 뉴어크>, 유니버설 픽처스의 뮤지컬 영화인 <디어 에반 핸슨>이 차지했습니다.
이번 주에도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의 계속되는 북미 박스오피스 1위가 예상되는 가운데 과연 독주가 계속될 수 있을까요?
[씨네픽 박스오피스 예측분석]
하이, 스트레인저가 운영하는 씨네픽은 사용자들의 콘텐츠 예측치, 선호도, 외부 마케팅 지수 등으로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는데요. 또한 사용자들이 예측한 박스오피스 순위, 박스오피스 스코어 분석하여 빅데이터를 구축하여 콘텐츠 분석자료로 영화, 콘텐츠 산업에 활용하고자 합니다.
실제로 씨네픽 앱에 참여한 사용자들의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자료에 따르면 ‘007 노 타임 투 다이‘ 주말 박스오피스 스코어는 31세~40세 남자 사용자 예측이 거의 근접할 정도로 유의미한 데이터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실 관람 추이를 보면 여성 관객보다는 남성 관객이 그리고 남성 관객 중에서는 30대가 40%로 가장 많이 차지하는 만큼 씨네픽의 박스오피스 스코어 예측 데이터가 유의미함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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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으로도 채우기 힘든 사람의 마음
난 오늘도 크림 앱을 켜서 사고 싶은 물건을 구경했다. 보통이면 여러 개 찾아 보겠지만 근래의 나는 하나만 검색한다. 이제 물건은 나를 더 이상 기쁘게 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어느 신발은 당근에 내놓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신는 것은 덩크 2족과 컨버스, 로퍼 4켤레다. 살 필요가 없던 것에 돈을 써왔다. 아. 이럴꺼면 그냥 우리 엄마 가방이나 사 줄걸. 무엇이든 경험해 보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라곤 하지만 요즘 신발장만 보면 씁쓸하다. 결국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건 내면이었다. 최소한의 사람구실만 할 정도로,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TPO만 맞는다면 일상을 사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남들 사춘기때 하는 걸 안하고 살았으니 그 만큼의 댓가를 겪었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이 합리화에 살을 더 붙힌다. 에잉. 그래도 뭐 먹는것보단 낫지. 물건이라도 남았으니까. 큰 손해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안해본다.
근데 이 합리화도 얼마 못 갈거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금전감각이란 큰 돈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무뎌지기
때문이다. 난 머지 않아 요즘은 뭐가 나왔나? 하는 마음에 스니커즈를 보고 있을 것이다. 또 아직 사회인도 아닌데 단일품목에 그정도를 태우는건 선 넘었지 하며 그거보다 싼 것들을 위시리스트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돈을 쓴다. 담배를 안 피우고 밖에서 밥을 잘 안 시켜먹는 내 생활패턴이 이 돈을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하며 내 자신을 속인다. 그리고 호구가 된다. 리셀가로 웃돈을 주고 산다. 이번엔 다를거라 생각하지만 여전히 마찬가지다. 이걸 산다는 의미가 나의 어떤 것을 증명해주는게 아니라는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마음에 드니까 산다!라는 핑계로 난 나를 속인다. 이 세상은 내가 알아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남이 나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되게 잘 아는 인생의 교훈인데 가끔 나는 알아서 멀리 돌아간다. 가끔 내가 하는 행동이 코미디같다.<블루 재스민>은 자아의 붕괴에 관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재스민과 진저다. 진저와 재스민은 자매 사이다. 자매 사이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로 재스민의 남편이 진저의 돈을 갖고 사기를 친 것이다. 사실 사기꾼은 재스민의 남편 할이었어서 언니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구석이 있긴 하다. 이에 따라 언니를 그렇게 미워하지는 않지만 진저는 수천의 빚에 명확한 일자리도 없는 언니가 루이비통 가방과 일등석을 타고 왔다는 사실에 황당해한다.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재스민. 정신 차리기는 커녕 재스민은 과거 회상에 자주 빠진다.
과거 회상에 자주 빠진다는 것은 현재가 행복하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스민은 사실 오갈 데 없는 처지다. 동생 부부가 복권으로 딴 20만 달러를 사기당해 모두 날렸고 전남편은 남 등쳐먹은 사기꾼이었기 때문에 기댈 가족이 없다. 심지어 이에 대한 충격으로 아들 대니와도 멀어졌으니 낙동강 오리알이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돈 흥청망청 쓰던 과거에서 돌아와 현실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재스민은 드와이트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드와이트는 정계 입문에 관심이 있는 외교관으로 품격 있는 미모의 재스민과 완전 찰떡인 커플이다. 둘의 연애 초기는 이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근데 이 알콩달콩한 분위기는 오래 못 갔다. 우연히 만난 진저의 전 남편(그러니까 남편 할의 사기 피해자)에게 재스민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듣고 드와이트는 이별을 고한다. 어려운 이별을 받아들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재스민은 화를 불같이 낸다. 진저와 칠리가 깨를 쏟아내며 알콩달콩 사랑에 빠진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돌아버린 재스민은 진저 커플에게 악담을 내뱉고 밖으로 달려나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를 보자마자 '자아의 붕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지금 당장 네이버에 '자아'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과 관념이라는 뜻이 나온다. 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과 관념'은 구체적으로 딱 떨어지는 단어가 아니다. 그래서 각자가 생각하기에 따라 다른데, 나는 이 자아라는 단어를 삶의 기준이라고 적용하고 싶다. 내 자아가 무너졌을 때도 내 기준이 없어서 사람들이 규정한 것을 따라갔다. 재스민에게 있어 명품은 이 자아를 흐리게 만든 도구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나도 비싼 스니커즈들 좋아하고 아직도 신는 입장이라 잘 안다. 비싸다라는 기준은 애초부터 타인에게서 온다. 내가 싸다고 생각하면 싼거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또 이것은 상대적이다. 내가 어떻게 목표를 설정했느냐에 따라, 또 현실 지갑 상황에 따라 갈리는게 싸다 혹은 비싸다라는 관념이다. 이런 식으로 타인이 설정한 기준이 부조리하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을때가 있다. 나는 내가 비싼 스니커즈들을 사면서 느꼈던게, 이것들을 사다보면 사람의 돈이 쉬워진다. 넷플릭스 구독료가 올라간다고 하면 '와 얘들 돈독 제대로 올랐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30~40만원대 스니커즈들은 '괜찮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건이 주는 기쁨이 되게 신선한 것이라서 사치품을 사는 것이 자아가 혼자 설 수 있는 환경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더 중요한건 내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일텐데. 그것들에게서 받는 기쁨보다 중요한 건 맛있는거 먹고 좋아하는 사람 만나며 영화 재밌게 보는, 그런 사람의 근본적인 지점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이란 이런 '나는 누구인가'를 채워과는 과정이었다.
재스민은 명확한 직업 교육도 못받았고 무너지는 현실에 대한 대처능력도 없어서 이런 것에 대해 탐구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자아가 붕괴됐다. 오갈데 없는 입장인데 자기가 부자라는 환상에 빠진 채로 끝나는 결말이 그 예시다. 원래 자기가 만든 자아라는게 있었다면 돈을 해프게 쓰지도 않았겠거니와 동생의 복권 당첨금을 다 날려버리는 결과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 뿐일까? 돈 많은 남자랑 연애한다고 몸을 움츠리며 울 일도 없었을 것이고 사기꾼 남편을 만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쉬운 구조를 통해 현실감각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우디 앨런식의 코미디가 아닌 현실의 한 단면을 잘라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다. 내가 누구라는 물음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살아있게 도와준다. 물건? 있으면 좋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내 자신이 어떻게 서있을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앞을 정확하게 바라보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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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늑대아이 - 모성애, 성장 그리고 정체성
줄거리
대학교에서 늘 쓸쓸한 모습으로 혼자 공부하는 그를 만난 '하나'
둘의 만남은 우연이였으나 둘의 사랑은 운명과도 같았다.
하나에게 자신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그
그는 늑대였지만, 하나는 그런 그의 모습도 사랑했고 둘은 동화같은 사랑을 나누었다.
그와 함께 보낸 하룻밤에 나은 두 아이.
눈 오는 날 낳은 '유키'와 비 오는 날 낳은 '아메'
그러나, 그는 어느 날 죽게된다.
혼자 아이 둘을 키우게 된 하나는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시골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게 된다.
아이들은 아빠와 마찬가지로, 늑대와 인간이 섞인 늑대인간이였고
처음에는 사람들과 크게 접하지 않으며 지낸다.
하지만, 유키는 성장하며 학교에 가고싶어하게 되고
하나는 그런 유키를 학교에 보내게 된다.
그런 유키와 달리, 어릴 때 부터 유키와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아메는 학교보단 집에 엄마인 하나와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한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하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슬슬 선택하게 된다.
감독
이름 : 호소다 마모루
필모그래피 :
늑대아이, 썸머 워즈, 시간을 달리는 소녀, 괴물의 아이, 미래의 미라이, 원피스 극장판 6기 등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중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만한 감독 중 한명으로,
신카이 마코토 보다 작화는 좀 떨어질지언정(좀더 부드럽고 가벼운 듯한 작화) 스토리에선 밀리지 않는다.
이 감독의 애니메이션은 2012년을 기점으로 갈리는데,
2012년 늑대아이 시기에 늦은 나이에 득남을 해서, 그 시기부터는 영화가 대체로 가족간의 이야기에 포커스가 맞춰졌다면,
그 이전 시간을 달리는 소녀, 썸머 워즈 같은 경우는 청춘에 포커스를 두어,
그만의 여름세계를 창조해냈다.
대체로 작화가 신카이 마코토에 비해 떨어진다고 하지만 머리카락 한올 한올 휘날리는 이런 디테일 함이 아닌 밸런스 있는 작화를 선호해서
뭔가 스케치 하는 듯한 느낌의 작화를 선호한다.
이 감독이 연출한 작품 들은 배경 작화나 명암 효과는 균형이 잘 맞아서 보기 편하다는 느낌을 잘 받는다.
총 평
★★★★☆ 9.0/10.0
-짧은 평가-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리뷰할 때, 애니라고 하는 것이 있고 영화라고 말하는 것이 있는데,
두 가지로 분류하는 기준은 작품성을 가지고 종종 이야기합니다.
이 작품은 영화의 가치를 가지며, 애니메이션이란 선입견을 그냥 깨부술 수 있는 영화입니다.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득남을 한 시기인 2012년 늑대아이를 분기점으로 작품세계가 갈려나갑니다.
과거는 청춘과 그 시절의 여름을 예찬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현하지만,
2012년 이후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이을 가족간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룬 영화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족관계와 모성애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도 큰 틀로는 주인공과 아이들의 내적 성장을 심도있게 잘 다루었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많이 다르지만, 늑대아이만을 보면은 왜 이 감독이 포스트(차기) 하야오 라는 평가를 받는지는 충분히 이 작품 하나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여운이 적절히 남는 결말-
결말을 보면은 오묘합니다.
따뜻하며, 춥고, 달달하며, 쓴 맛이 올라옵니다.
유키와 아메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서로 떠납니다.
유키는 인간에게 섞여 지내는 것을 선택하며 떠나고, 아메는 자신의 본질적인 거주환경인 야생에서 살아가는 것을 택하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중 하나인 이유가,
다른 가족영화들과 달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난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성장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외적 모습이 변하는 것도 있지만,
내면의 모습이 더 성숙해진다는 의미도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내적 모습의 성장과 이상적 어머니상을 그리며, 영화를 전개합니다.
도시로 떠난 유키와 야생으로 떠난 아메, 그 뒤에는 홀로 남은 하나를 보여주는데,
하나의 모습을 보여주며, 하나는 아이들의 아버지를 잠시 생각하며, 영화는 아메가 다 자란 늑대가 된 모습과
하나의 모습, 유키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하나는 혼자 시골에 남게 되었고, 아이들은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게 되며,
어머니의 품을 떠나게 됩니다.
영화가 그저 행복한 결말도 아니고, 불행한 것도 아닌 보는 이의 관점에서 다 다르게 느껴지게
장치를 설정한 것은 정말 일품이였습니다.
그냥 아이들과 엄마는 행복하게 잘 지냈다에서 그치지 않고, 한 술 더 떠서,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났다.
그 과정에서 엄마의 품을 떠나며, 엄마가 할 역할을 다 했고, 이제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을 하러 갔다.
라고 하며, 아이들의 관점으로는 희망찰 수도 있고, 부모인 하나의 관점에선 자식을 놓아주는 심정이다 보니,
아쉽거나 씁쓸한 느낌이 잘 남게 합니다.
-따뜻한 이야기 속에 내재된 고통-
영화를 보면, 유키와 아메의 엄마인 하나는 영화 내내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묵묵히 참으며 두 아이를 키웁니다.
영화는 따뜻한 이야기에서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냥 따듯하기만 했으면, 이정도 고평가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홀로 아이 둘을 키우는 어머니의 심정이 잘 들어나며, 아이들의 갈등과 서로 성장함에 따라 갖는
서로 다른 주관으로 인해 아이들은 서로 다른 미래를 선택하며, 부모를 떠나는 이야기까지 그려내었는데,
이 부분에서, 하나는 진짜 헌신적이며, 가장 이상적인 부모라 말할 수 있을 만큼,
홀로 아이를 키우며,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 참고 버티며, 아이들을 키우는데, 영화에선 이 고통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 고통을 보는 우리에게 잘 전달합니다.
아이들의 성장도 마찬가지로
유키는 자신이 늑대라는 것을 들키지 않게 하기위해, 최대한 사람인척 하며 학교를 다니고
그러면서 인간으로 살려 하며, 자신과 가치관이 다른 동생 아메와 갈등이 생기며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는 갈등도 잘 보여주었습니다.
-깔끔한 연기, 적당한 음악, 절제된 연출 = 차기 '미야자키 하야오'-
근 10년간 나온 극장판 애니메이션 중 가장 절제된 연출을 보이며,
적당한 음악과 함께 목소리 연기를 잘 보여준 작품을 뽑으라 묻는다면,
단연코 바로 이 작품을 말할 것 입니다.
너무 과하다하게 생각하지 않게 딱 끊은 절제된 연출을 선보입니다.
이게 상당히 힘든게, 이런 가족영화에서 정체성을 추구하며 극대화하기 쉽상인데,
이 작품은 그 극대화를 최소화하며, 더욱 인간적이게 그리려 애썼습니다.
그 부분이 영화 곳곳에 드러나며,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적당히 절제된 듯 하며 극의 분위기를 끓어올리는 음악은 최고였다가 아닌
딱 좋았다. 수준으로 잘 어울렸습니다.
음악이 작품을 뛰어넘는게 아닌 같이 잘 화합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유키와 아메의 연기력은 준수했으며, 미야자키 아오이의 하나 목소리 연기도 일품이였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제작진과 성우를 한 사람들을 봤을 때,
이 사람이야 말로 차기 미야자키 하야오다. 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절제된 연출을 하며, 성우 기용을 하지 않고, 배우를 섭외하여 주연급 캐릭터 연기를 해서
성우들의 오버하는 톤이 아닌 현실적인 톤을 더욱 잘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인물의 성장-
위에서 계속 언급했듯, 인물들의 성장에 초점이 잘 맞춰진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핵심 키워드를 꼽으라 하면, 싱글맘, 성장, 늑대, 등 많겠지만 가장 큰 주제를 내포한 단어는 정체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사람이라며, 평범한 사람들처럼 학교를 다니고, 대학교를 졸업하여
어느 평범한 사람들 무리에 섞여 지내고 싶어하는 유키와
자신은 늑대라며, 늑대를 위험한 짐승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야생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늑대의 삶을 추구하는 아메
둘은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도 달랐다.
외향적인 것을 추구하며, 활기찼던 유키. 내향적이며, 늘 엄마의 그늘에서 지내던 아메.
서로 다른 둘의 모습을 보여주며, 중재자의 역할로 엄마가 있었으며
아이들은 늑대지만, 여느 일반 가정과 다를 거 없이 갈등과 행복이 공존하는 집이라는 걸 잘 보여주며
인간과 똑같이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커피처럼 향은 나를 편안하게 하며, 마실 때는 처음에는 쓴맛과 신맛이 느껴지지만,
혀에 닿았을 때는 씁쓸함을 느끼고, 목에 닿았을 땐 커피 향과 따뜻함에 내려가는 영화라 생각했습니다.
이상적과 현실적 두가지를 잘 늑대아이인 아메와 유키, 엄마인 하나에 잘 대입하여
성장이란 이야기를 심도있으며, 가족들이 쉽게 접하게 만들었다는 것에 큰 칭찬을 합니다.
-관람객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는 초반의 전개와 설정-
이 영화의 유일한 허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두가지입니다.
초반에 갑작스러운 하나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인 늑대의 죽음 그리고
너무나도 이상적인 어머니.
우선 아버지의 죽음이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옵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 작품에서 극의 분위기를 정 반대로 뒤집으며, 큰 서사적 흐름의 장치로 이용되는데,
그 죽음을 설명하는 것이 급하게, 그냥 어영부영 매꾸는 듯 합니다.
그리고 너무 헌신적이기만 한 하나의 모습은 작품 이입에 오히려 몰입이 힘들기도 합니다.
하나가 화를 내거나 싫어하는 내색이 하나도 없는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몇가지 점을 제외하곤 현 시점,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상당히 퇴보하는 요즘시기, 근 10년간 나온 극장판 애니메이션 중
제대로 영화라고 불러볼 법한 작품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가는거니? 난 아직 너에게 아무것도 해준게 없어…"
(行くの?私はまだあなたに何もしてあげたことがない。)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한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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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 너머 세계 속으로… 영국] 친애하는 이디스에게
<X를 담아, 당신에게(Wicked Little Letters)>(2023, 테아 샤록)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서프러제트 운동이 한창이던 1920년대 영국, 작은 마을. 부모와 함께 사는 독실한 여성 이디스는 욕설이 잔뜩 담긴 편지를 여러 통 받는다. 이디스의 부친은 옆집 거주자 로즈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경찰은 정황과 ‘평판’(…)을 근거로 로즈를 체포해 버린다. 이디스는 ‘고난을 극복한 순수한 크리스천 여성’ 포지션으로 종교 행사에 참석하며 유명인사가 되고, 로즈는 다른 의미로 유명인사가 된 채 꾸준히 무죄를 주장한다.
사건의 공적인(그런데 비공식적인) 실마리는 글래디스로 인해 풀린다. 백인 남성으로 가득한 경찰서에서 홀로 비백인 여성 경관으로 일하는 글래디스는, 증거가 불충분한 상황에서 로즈가 범인으로 몰리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비밀리에 재조사를 시작한다. 그가 그 시대에 여성으로서 경찰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아버지가 경찰관이었기 때문으로 짐작되는데, ‘네 아버지는 위계를 잘 지켰다’는 상관의 말에서 레이시즘이 감지된다.(판사 역 캐스팅처럼 픽션적 허용이었다고 해도.) 글래디스는 동료 남성 경관처럼 사건을 배정받는 대신 리셉션에서 종일 민원을 접수받거나, ‘여성 피해자가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킬 것을 대비’해 남성 경관이 진술을 받는 가운데 동석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호칭 “woman police officer”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위계에 순응하고’ 시키는 일을 하다 보면 수갑을 채울 권리가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 이후 그는 “police officer” 앞에 붙은 “woman”이 자격과 지위를 제한하기 위한 꼬리표였음을 깨닫고, 이는 비공식 수사를 멈추라는 상관의 협박에 순응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다.
영화는 글래디스가 로즈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권한 밖의’ 수사를 진행하거나 이디스가 그것을 눈치채고 따돌리는 모습을 통해 일종의 버디 수사물적 재미를 가져가고, 로즈와 이디스에게 질문하는 검사와 변호사의 공방을 통해 법정물의 긴장감까지 더한다. 그러나 범인 색출과 정의 구현으로 간편하게 결론을 내지는 않는다. 영화가 보다 클로즈업하는 바는 로즈의 심리와 이디스의 동기다.
영화는 거침없이 매력적인 로즈를 활용해 코미디를 연출하는 와중, 그가 느끼는 억울함이나 분노만이 아니라 공포나 자기 혐오, 때로는 고독을 포착한다. 제시 버클리는 로즈의 다소 드라마틱한 캐릭터성을 천연덕스럽게 입어 혼을 쏙 빼놓고, 별안간 무방비한 표정을 드러내 극에 몰입하게 했다. 맨발로 당당하게 거리를 다니고 일상적으로 유쾌하게 욕을 내뱉곤 하는 로즈는 한편으로 스스로를 경멸한다. 가난하게 자랐고, 어려서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도둑질을 했고, 결혼 없이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을. 그는 경찰서 리셉션에 있는 글래디스를 조롱하고 모욕한다. 나이트 클리닝 레이디라느니, 수갑은 있냐느니 하고 비꼬는 로즈의 말은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하지만, 그 저변에는 로즈 자신을 포함한 여성에 대한 경멸, (어쩌면 열등감,) 현실에 대한 포기가 있다. 로즈는 딸 낸시가 ‘나와는 다른’ 여자이기를 바란다. ‘나이스 걸은 기타를 치지 않는다’며 기타를 빼앗고, 낸시가 미래에 ‘잘은 모르지만 좋은 직업’을 가진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자신에게 “slut”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과 한 편에 서서 로즈는 조용히 제 인생을 손가락질해왔다. 무죄가 밝혀진 후 로즈는 낸시에게 기타를 선물한다. 낸시가 스스로를 미워하는 여자로 자라지 않게 하려면, 로즈가 로즈를 미워하는 것을 멈춰야 하는 것이다.
이디스는 ‘욕설 편지 키트’를 방에 숨겨두고, 온갖 저주가 담긴 편지를 자신에게 익명으로 부쳤다. 사건이 알려지고 관심을 받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그저 로컬 셀러브리티(?)가 되고자 한 행위 같지는 않다. 이디스는 부친의 소유물 취급을 받으며 자라 왔고, 현재도 그렇다. 부친의 감시 속에서 가사노동을 도맡고, 자신을 비하하거나 구속하는 말을 일상적으로 듣는다. 부친을 거역하지 못하는 것은 수 해에 걸쳐 학습된 결과다. 그가 편지를 쓴 범인임이 드러나는 시점은, ‘벌로 성경 구절을 이백 번 쓰라’는 부친의 지시를 수행하던 도중이다. 성경 구절을 옮기던 정갈한 필체가 공격적으로 어긋나고… 이디스는 구두를 벗고 살금살금 걸어가 편지지를 꺼낸다. “친애하는 이디스에게” 전송할 욕을 적어내려가는 그는 거의 희열을 느끼는 것만 같다. 자주 성적인 표현이 들어간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기독교적 윤리에 기반한 가부장제에 갇혀 사는, 그것을 충실하게 내면화해온 여성의 자학적인 해소.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도, 그는 다만 멈출 수가 없다. 편지를 계속 부칠 경우 로즈에게 있는 혐의가 희미해질 가능성이나, 필기체로 꼬리를 잡힐 가능성 따위를 고려할 여유는 없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이디스와 로즈의 대립을 그리지만, 그들이 서로 ‘적’이 아님을 설득한다. 두 사람은 원래 친구였다. 이디스는 낯선 마을에 이사온 로즈에게 친절히 대해 주었고, 로즈는 이디스가 ‘감히’ 하지 못하던 말들을 시원하게 지르며 이디스가 조용히 해방감을 느끼도록 해 주었다. 사건이 마무리되고, 두 사람은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로즈는 이디스의 속에 그 엄청난 말들이 쌓이게 된 원인과 과정을 대강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디스의 아버지를 옆집에서 목격한 이웃으로서,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미워하는 게 훨씬 쉽다는 걸 아는 동료 여성으로서. (물론 로즈는 굉장한 대인배이지만… 그러고 보니 그들 사이가 서먹해진 계기마저도, 이디스의 부친이었다.)
이 작품이 훌륭한 까닭은 이디스에게 제대로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를 단순히 ‘서프러제트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에 구시대적 가부장제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규범에 충실하지 않은 이민자 여성을 대상으로 마녀사냥을 꾸민 보수 기독교 신자 여성의 전형’으로 만들어버리지 않고,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그의 내외면에서 벌어졌던 일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 주목의 효과를 극대화한 것은 올리비아 콜먼이다. 글로만 쓰던 욕을 사람들 앞에서 입 밖으로 내뱉고 반사적으로 활짝 웃는 이디스, 수갑을 차고 낙담한 얼굴을 하면서도 묘하게 홀가분해 보이는 이디스, 로즈와 훈훈한(!) 작별 인사를 나누며 미소 짓는 이디스. 그리고 교도소로 끌려가며 마침내 부친을 향해 욕을 쏟아내는 이디스가 있다. 저도모르게 튀어나온 언어들에 당황하면서도 흥분하는, 이내 통곡처럼 폭소하는. 올리비아 콜먼은 인물이 못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순간을 관객과 공유한다. 이디스의 의뭉스러운 선이 명확한 악의로 반짝이기까지의 흐름은 경이로웠다. 그 악의가 향하는 곳을 알려주는 것도, ‘사랑스럽지 않은’ 캐릭터에게 마음을 주고 끝내 이입해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도 콜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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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고민이 필요했던 부분은 두 여성이 남성들과 맺거나 맺었던 로맨틱한 관계였는데, 결론에 닿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먼저, 이디스의 가능했던 탈출구가 남성과의 결혼으로 언급된다는 점인데, (일단 이디스가 ‘시드니를 정말로 좋아했다’고 말하기도 하고…) 영화의 초점은 그의 옛 약혼자가 아닌 부친에게 있다. 픽션에서 ‘아들에게 집착하는 어머니 전형’이 혐오스러운 것으로 그려지는 반면, 마초적 아버지들의 딸에 대한 지나친 (이성애적) 통제는 ‘남다른 사랑’이나 ‘보호’로 미화되는 현상을 재고하게 하는 극단적 사례? 정도로 보면 되지 않을까. 다음으로, 법정에서 ‘남편이 전사했다’는 로즈의 말이 거짓임이 드러나고, 빌이 화내며 떠났다가 용서하듯 돌아오는 전개가 있다. 조금 단순하게 연출되긴 했으나, 영화의 중심 플롯은 그들의 로맨스가 아니었으니 부족하진 않았다. ‘로즈의 거짓말’은 당시 만연했던, 결혼 제도에 대한 맹신과 여성의 ‘행실’에 대한 터무니없는 터부, 낙인을 짚기 위한 설정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빌이 화냈던 까닭은 바람직하게도 거짓의 내용이 아니라 ‘나에게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으니. “내가 갈 곳이 달리 어디 있냐”며 짓는 미소에 담긴 의미가 ‘네 잘못을 용서한다’보다는 ‘네가 왜 그랬는지 이해한다’라면… 문제없다. ‘로즈가 빌이 인정한 좋은 엄마/연인’이어서가 아니라, ‘빌이 낸시가 인정한 좋은 대리 아빠’이므로 이 가족이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이에 더해, 죽은 남편의 옷을 입고 출근하며 큰 소매를 그대로 두는 케이트나 (남편을 줄곧 애도하는 것이라기보단, <Godless> 속 메리 애그니스처럼 ‘남성의 옷을 입은’ 케이스에 가까워 보였다.) 바지를 즐겨입고 늘 먼지 범벅으로 나타나며 연애보다는 닭이나 돼지, 헛간에 채울 겨에 훨씬 진심인 앤이- 결혼 제도를 벗어났거나 애초에 속할 생각이 없었던 여성들의 예시로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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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내고 싶은데 도와주렴”… 절제하지만 축축해진다
죽음을 선택하겠다고 가족이 말했다.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7일 개봉하는 <다 잘된 거야>(감독 프랑수아 오종)는 이 같은 상황을 관객이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영화다. 한 인간이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존엄사를 바탕으로 한다. ‘죽음의 권리’라는 뜨거운 주제를 던져놓을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영화에서 죽음에 대해 논쟁적인 장면은 찾아보기 힘들다.
“작별을 앞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고, 딸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담아내는 것을 중점에 뒀다.”는 오종 감독의 말처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아버지와 이를 받아들이는 두 딸의 일상이 다양한 감정으로 풀어진다. 당황, 슬픔, 분노, 안도, 웃음 같은 감정들이 모녀간에 수시로 교차한다. 그 사이를 오가는 관객은 예정된 상실에서 오는 야속함보다는 지금 곁에 있는 누군가를 더 떠올리게 될 것이다.
엠마뉘엘(소피 마르소)은 아버지 앙드레(앙드레 뒤솔리에)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는 어릴 때 앙드레와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아픔을 진심으로 걱정한다. 앙드레는 조금씩 회복하지만 이제 85세를 맞이하는 그의 몸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얼굴에는 마비 증상이 왔고 식사도 대화도 예전 같을 수 없다. 앙드레는 그런 자신을 답답해한다. 제대로 생활하지 못하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엠마뉘엘은 어느 날 병원을 찾았다가 앙드레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끝내고 싶으니 도와주렴.” 엠마뉘엘은 기겁해 병실을 나오고 앙드레는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엠마뉘엘은 고민 끝에 앙드레를 돕기로 한다. 스위스의 한 안락사 업체에 알아내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한다.
이별할 날을 미리 안 채 맞이하는 매일매일은 감정적으로 무거울 것 같지만 오종 감독은 최대한 담담한 시선을 유지한다. 엠마뉘엘이 일상을 잘 보내는 장면이 그렇다. 친구들과 생일파티도 하고 권투도 배우러 간다. 두 모녀가 다투기도 한다. 오히려 곳곳에 심겨 있는 조용한 유머가 관객의 긴장을 해소한다. 앙드레와 두 딸이 앙드레의 죽을 날을 결정하는 장면이 그렇다. 둘째 딸 파스칼(제랄딘 팔리아스)이 “3월엔 제 생일이 있잖아요”라고 말할 때 마치 ‘죽는 것도 어렵네…’라고 생각하는 듯한 앙드레의 표정이 재미있다. 그러다 하는 말. “(손자) 라파엘의 (음악) 연주는 보고 가야겠다.”
마지막이라는 순간은 쏜살같이 빨리 오는 법이다. 자의로 이뤄지는 이별의 무게감도 피할 수 없다. 앙드레가 해맑게 웃을수록 관객의 마음이 조금씩 무너지는 이유다.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들릴 때마다 관객의 마음 한구석이 축축해지는 걸 막을 도리가 없다. 엠마뉘엘이 스마트폰으로 녹화하는 영상에서 앙드레가 “충만한 인생이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잊기 힘들다. 그럼에도 마지막이라는 순간이 예고되었기에 오히려 상대를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과 과정이 생겨나고 때문에 이별과 상실을 겪더라고 괜찮다고 영화는 말해주는 것 같다. 이 영화의 제목을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이를 보는 관객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자칫 감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영화이지만 절제미가 돋보이는 건 배우들의 연기 덕택이다. 엠마뉘엘을 연기한 소피 마르소는 소리 없이 감정을 표현할 줄 안다. 단단한 얼굴을 지닌 그가 아무리 슬피 울어도 결코 처절하지는 않다. 앙드레 역의 76세 배우 앙드레 뒤솔리에의 모습은 진하게 남는다. 때로는 뻔뻔하고 짜증을 내던 그가 얼굴을 풀고 미소를 지을 때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뒤솔리에는 앙드레를 연기하기 위해 뇌졸중 후유증에 대해 의사에게 여러 번 설명을 들으며 준비했다. 연기할 때는 머리를 밀고 마비된 얼굴 표현을 위해 2시간가량 걸리는 분장도 했다. 12세 관람가. 1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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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레틱'들'
<헤레틱(Heretic)>(2024,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
* 작품의 장면과 결말 포함
* 씨네랩 크리에이터 활동으로 시사회에 초청받아 관람
영화가 시작되면 절벽이 화면에 들어온다. 두 목소리가 들린다. 팩스턴과 반스가 매그넘 콘돔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다. ‘일반 콘돔과 사이즈가 같대.’와 ‘내가 들었는데, 진짜로 크대.’의 주장이 별로 격렬하지 않게 충돌한다.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프레임은 점점 내려와 벤치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이어 그 아래 있는 매그넘 콘돔 광고판을 비춘다. 다음 컷에서 그들의 앞모습을 보여주기에 금세 잊히지만, 아무래도 이상한 오프닝이다. 영화는 ‘얼만큼을 보여줄 것인가’를 통제할 수 있음을 암시하며, 앞으로 줄곧 끌고 갈 논의의 틀을 맛보기로 들려주었던 것이다. 아마도 의심을 경험한 적이 있었을 반스와 주변의 말을 믿어만 온 팩스턴, 두 인물의 캐릭터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역할 또한 한다. 이후 전개를 따라가며 관객은 묻게 될지도 모른다, 종교는 매그넘 콘돔 광고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myth(신화, 근거 없는 주장)인가?
모르몬교 방문 전도 중인 팩스턴과 반스는 ‘미스터 리드’의 외딴 집에 다다른다. 때마침 비바람이 몰아치고, 리드는 추위에 떠는 그들에게 안으로 들어올 것을 제안한다. 온화한 인상을 지닌 남자의 친절, 따뜻해 보이는 거실, 소울메이트 와이프까지 있다니 거절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리드는 마실 것을 내오고 세 사람은 종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묘한 긴장감이 맴돈다. ‘불편한 질문’을 하겠다며 유머러스하게 경고한 리드가 일부다처제라는 주제를 입에 올리며, 긴장은 점차 서늘하게 증폭된다. 인물들의 정면만을 클로즈업하던 카메라는 이즈음 리드의 뒷모습을 조명하며, 그가 감추고 있던 면을 꺼내보이기 시작한다는 신호를 준다. 음악과 느닷없는 정전, 클로즈업, 컷과 컷 사이 속도 조절 등 전통적 수단과 더불어, 세 사람이 줄곧 형식적 예의를 차리고 있다는 점이 <헤레틱> 전반부의 화면에 독특한 서스펜스를 불어넣는다. 떨림을 감추며 ‘감사하다’고 말하는 팩스턴과 반스의 목적은 리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 생존에 있다. 미세한 적의를 내뿜고 있지만 ‘불편할 것 없다’고 말하는 리드는 본론을 꺼내면서도 본심은 드러내지 않으며 상황을 통제하려 한다.
완력보단 치밀한 계획을 사용하는 리드는 분명한 목적을 알려주지 않은 채 의미 없는 선택을 강요한다. 과할 정도로 양해를 구하고 상대방에게 귀기울인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대화를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교묘하게 유도한다. 이런 특징들이 전형성에서 살짝 벗어난- ‘매력적인 빌런’을 구체화한다. 배우가 지닌 특유의 이미지는 걸림돌이 아닌 최고의 재료가 된다. 리드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우며 유머에 사과를 곁들이는 영국 신사’의 공포스러운 변주다. 향초에 인쇄된 “블루베리 파이”를 반스가 목격하는 순간처럼, 휴 그랜트는 따스한 조명과 엔틱 소품이 으스스한 연출의 일환으로 뒤집히는 경계를 노련하게 탄다. 익숙한 배우에게서 낯익음과 낯섦을 동시에 발견하는 일은 즐겁다. 두 모르몬교도가 순진한 희생양이 아니라는, 끊임없이 공간 구조와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려 애쓰며 머리를 굴린다는 점도 작품의 매력을 더한다. 반스는 공포에 질린 상태에서도 리드의 논리에 있는 허점을 짚어낼 정도로 영리하고, 비교적 연약해 보였던 팩스턴도 만만치 않은 두뇌의 소유자다. 소피 대처와 클로이 이스트는 각 인물의 개성과 심리 변화를 훌륭하게 소화한다. 모르몬교의 가치관에 대한 동의 여부와는 별개로, 관객은 위험에 처한 두 사람에게 이입해 그들의 탈출을 응원하며 함께 미로를 헤쳐나가는 감각을 느끼게 될 것이다.
효과적인 서스펜스를 선사하는 화면에 빠져 서사를 따라가는 것이 표면적 재미라면, 그 서사 내부에 자리한 대화를 듣고 생각에 잠기는 일은 숨겨진 재미다. ‘종교는 신화와 다르지 않다. 더 홀리즈-라디오헤드-라나 델 레이, 볼테르-스파이더맨과 같은 변형이며, 마케팅으로 신도를 늘리는 그럴듯한 주장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착각하게 만들지만 사실 이미 정해둔 결론으로 이끄는 통제의 기술이다.’라는 가설은 음모론에 불과한가? 이 ‘가설’은 그럴듯하고 반스의 반박 또한 그렇다. <헤레틱>은 결국 모든 종교는 ‘이단heresy’이 아니냐는 아이디어를 던지고자 하는 것인가. 작가들이 리드에게 동의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극단적인 묘사로 충격을 주며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영화의 의도일 수 있다는 뜻이다. 모르몬교의 방문 전도가 밀실 스릴러를 연출하기 위한 초기 설정, 수단일 것으로 짐작하고 관람했으나, 돌이키면 오히려 밀실 스릴러라는 포맷이 종교에 대해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던 듯하다. 여성들을 가두고 통제하는 리드는 빌런이다, 그런데… 그가 도출해낸 아이디어는 어떤가. 제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행하는 범죄들에 정당화의 여지는 없으나, 그것은 역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져 온 폭력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영화는 어느 쪽의 편도 들지 않은 채, 유일한 생존자에게 거대한 의심을 안기며 끝난다. 리드의 의도대로 퍼즐을 푼 후 ‘컨트롤러’를 찌른 팩스턴은 도망쳐 나왔다가, 지하실로 통하는 쪽문을 열고 고민한다. 이 다음, 편집은 갑자기 툭 끊기고 팩스턴은 별안간 지하실 한가운데에 서서 리드에게 찔린다. 이것은 정말로 있었던 일인가? 이 전의 일들은? “예언자”의 시체는 팩스턴이 그럴 것이라고 추리했기 때문에 거기 있었나? 반스가 리드로부터 자신을 구하고 죽는 전개는 팩스턴의 바람인가? 창문에 갇혀 있던 나비가 탈출한 팩스턴의 손 끝에 앉았는가, 혹은 ‘죽으면 나비가 되어 사랑하는 이들의 손 끝에 앉겠다’던 그가 죽어가며 호접지몽을 꾸고 있는 것인가. <헤레틱>에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장하는 이들, 믿거나 믿지 않는 이들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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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영화 후기 / 안젤리나 졸리 오랜만 / 개쩌는 보안관 아내 임신부의 활약 / 산불은 양념?!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내가 죽기를 바라는 자들” 후기입니다.
쿠키 영상은 없네요~#안젤리나졸리, #범죄액션, #스릴러, #재난영화, #산불, #공수소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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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임씨를 부탁해 리뷰 - 국민 엄마 김영옥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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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영상은 홍보마케팅사를 통해 저작권 협의가 진행되어 제작된 영상입니다!
남 같은 가족, 가족 같은 남
85세 정말임 여사의 선택은?
85세 대구의 꼬장 할매 정말임 여사는 자식 도움 1도 필요 없다며
인생 2막을 내돈내산 나홀로라이프로 즐기려 했건만 이놈의 몸이 말썽!
오랜만에 외아들 종욱의 방문 탓에 팔이 부러지고,
이 사고로 요양보호사 미선을 들이게 된다.
엄마 걱정에 CCTV까지 들이는 아들과는 마음과 다르게 모진 말만 오가고,
요양보호사는 어쩐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 영 맘에 안 든다.
그렇게 마찰과 화해를 반복하던 중 종욱 가족이 불쑥 찾아온 명절날,
묻어두었던 관계의 갈등이 터져버리는데….
가족이 뭐 별거야? 이제 함께 살 테니 “우리 말임씨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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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토베 얀손> 30초 예고편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 토베는
삽화 의뢰로 알게 된 연극 연출가 비비카와
강렬한 사랑에 빠진다
자신의 캐릭터 ‘무민’을 연극 무대에 올리고
시청 벽화를 그리며 인정받기 시작한 토베
하지만 비비카는 파리로 떠나는데…
‘무민’ 작가로만 알고 있었던 그녀의 진짜 이야기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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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티저 예고편
마블의 새로운 강력한 히어로 ‘샹치’의 탄생과 베일에 싸여 있던 전설의 미스터리 거대 조직 ‘텐 링즈’의 실체를 다룬 첫 번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