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12-26 13:24:17
12월 5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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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약한영웅 Class 1>, 유럽·오세아니아·중동·인도 방영 확정!
ⓒ 웨이브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의 인기가 해외 전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기존 미국,
대만 등에서 동시 방영되었던 드라마는 미주에 이어 유럽·오세아니아·중동·인도 방영을 추가
확정하였다.
<정이>, 1월 20일 넷플릭스에서 공개
ⓒ 넷플릭스
<정이>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벗어나 이주한 쉘터에서 발생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전설적인 용병 ‘정이’의 뇌를 복제,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연상호 감독의 SF 영화이다.
<영웅>, 개봉 첫 주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
ⓒ 네이버 영화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영화 <영웅>이 개봉 첫 주 80만 관객 돌파와 더불어 5일
연속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였다. 마음을 울리는 감동과 풍성한 볼거리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해외
<기묘한 이야기>, 스핀오프 애니메이션 <기묘한 이야기 도쿄> 제작
ⓒ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인기 오리지널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가 일본 도쿄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가 제작된다고 한다. 기존 <기묘한 이야기> 세계관을 섞어 제작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 계정 공유 유료화 내년 초부터 실시
ⓒ 넷플릭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계정 공유 이용자에 대한 요금 부과 계획을 내년
초 미국부터 실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씨네랩 에디터 Hizy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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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의 가족> 10월 16일로 개봉일 변경
허진호 감독 연출 영화 <보통의 가족>이 10월 9일에서 6일로 개봉일을 변경했습니다.
10월 첫째 주에 개봉하는 <대도시의 사랑법>, <조커:폴리 아
되>의 경쟁을 피해 간 것으로 해석됩니다.
<보통의 가족>은 각자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던 네 사람이 아이들의 범죄현장이 담긴 CCTV를 보게 되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아냈다고 합니다.
영화는 제48회 토론토 국제 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이외에도 해외 유수 영화제에 19회 초청되며 하반기 기대작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대도시의 사랑법> 예매율 1위
26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 전산망에 따르면, <대도시의 사랑법>이 동시기 개봉한 작품 중 한국 영화 예매율 1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영화는 자유로운 영혼의 재희와 세상과 거리를 두는 흥수가 함께 생활하며 펼치는 그들만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원작 소설은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과 2023년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올라 작품성을 인정받은 바 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예매 첫날 ‘오류’
부산국제영화제 인터넷 예매 시스템에 오류가 생겨 일부 예매가 취소되는 등 이용자들이 불편을 겪었습니다.
영화제 측은 “결제 시스템의 트래픽 과부하로 인해 예매에 실패한 경우에도 결제가 진행됐다”라고 오류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이에 영화제는 “오류 발생 건은 환급 조치하고, 서버 증설 등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청룡영화상 사회자 한지민, 이제훈 발탁
30년간 청룡영화상 진행을 맡아 오다 지난해를 끝으로 사회자 자리에서 물러난 김혜수의 후임 사회자로 배우 한지민과 이제훈이 발탁됐습니다.
한지민은 "청룡영화상을 대표한 김혜수의 존재를 느꼈고, 다시 한번 김혜수 선배에게 깊은 존경을 보낸다”라며, "그가 만들어온 전통과 품격을 이어받아 부족하지 않게 노력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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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 are just gonna wait and see.
<라라랜드>
" 음악이 흐르는 LA의 별이 왜, 어떻게, 무엇을 위해 빛나는가."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개봉일자에 맞춰 영화를 보지 않았다. 보고 온 사람들은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City of stars'를 흥얼거리는데 영화를 보지 않은 나로썬 외톨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난 뒤에 재개봉 한 극장에서 우연하게 마주치게 된 영화였는데 이렇게 외톨이로 살 순 없겠다 싶어서 즉흥적으로 영화를 표를 끊고 봤었다. 옛날에 같이 살았던 외국인 친구가 'LALA LAND'만큼 멋진 영화가 없다고, 자기가 살았던 동네라고 영화 제목 자체가 우습지 않냐고 'LALA LAND(LA를 의미함과 동시에 꿈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 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이유를 몰랐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왜 그렇게 흥분했었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영화관이라는 게 아쉬울 만큼 환상적인 작품을 본 기분이 들었다. 영화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외국인들에게 어떨지 모르지만,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소재인 것 만큼은 틀림없다. 재즈 뮤지선, 그리고 배우 지망생의 꿈을 위한 도시 LA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로맨스 영화! 낭만적인 꿈을 찾아 헤메이는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 우습게 붙여놓은 촌스러운 타이틀 만으로도 이미 눈길을 끄는데 오프닝 시퀀스 부터 환상적인 연출이 시작된다. 고속도로 막힌 도로 위에서 흘러나오는 리듬이 'Another Day of Sun'으로 연결되는 순간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결정되는 듯 하다. 리드미컬한 음악과 춤추는 사람들, 음색이 돋보이는 음악과 색감으로 무장한 오프닝 시퀀스라니 '이걸 어떻게 원테이크로 찍었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시작부터 뮤지컬 영화임을 입증하듯 '음악에 집중하세요'를 여과없이 드러낸다. 여담으로, 아침 출근길에 자주 이 노래를 듣는다. <라라랜드>의 주인공처럼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바라는 것 마냥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색을 참 잘 활용하지 않았나' 였다. 인물들의 드레스나 배경, 흘러가는 장치 등에 색깔을 눈에 띄게 사용함으로써 영화 속 스크린이 아닌 마치 연극의 무대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또한 인물들에게 특성 색깔을 부여함으로서 각 인물의 성격이나 환경을 쉽게 표현하기도 한다. 안정감을 주지만 답답한 느낌을 만드는 초록색,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의 열정과 정열 욕구 그 자체를 표현하는 빨간색, 동시에 세바스찬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어 원색적인 미아와의 대조되는 베이지 톤. 미아(엠마 스톤 분)의 우울감과 맞닥뜨린 현실감을 상징하는 파란색, 아침과 저녁의 경계선에 주인공 둘을 섞어놓은 듯한 보라색 등 원색적인 색깔을 활용함으로써 인물의 상황과 개성이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 좋은 미장센의 요소였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눈에 띄도록 사용된 색깔들을 상황에 맞춰 해석해보는 것도 큰 재미요소 중 하나였다.
<라라랜드>가 인기있었던 가장 큰 이유 바로, 'City of Stars', 'mia & sebastian’s theme', 'Start A Fire' 한 번 들으면 쉽게 잊을 수 없는 환상적인 OST들이 그 주인공이겠다. 음악감독인 저스틴 허위츠의 말처럼, 음악이 영상이나 대본만큼 스토리텔링을 하는 아주 큰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되었다. 덕분에 감정적으로 솔직하고도 다채로운 표현력을 가진 음악들이 영화 내내 폭죽처럼 터진다. 뮤지컬 영화의 생명을 결정하는 음악이 자연스럽게 삽입된다는 것 또한 <라라랜드>가 가진 가장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이다. 여타 뮤지컬 영화가 그렇듯 뜬금없는 전개로 시작되는 음악이 낯설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주인공들의 인위적인 연출과 개연성 없는 음악은 도리어 거부감을 부를 뿐이니까 말이다. 하나, <라라랜드>는 인물간의 대화에서 그리고 주요 장면에서 배경음악처럼 뮤지컬 요소를 활용한다. 메인 스토리의 구축 지점에서 주인공들이 직접 연출하는 배경음악은 뮤지컬 영화 특유의 몰입감을 한층 더하는 듯 하다. 만나게 되는 지점부터 이별을 맞는 지점, 그리고 후의 우연한 만남의 지점까지 현실감과 더불어 가슴 아프지 않은 이별을 만들어 내는 섬세한 연출력이란 ...
겨울을 시작으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까지, 계절을 따라 진행되는 내러티브 또한 탄탄하고도 감미롭다. 오프닝의 계절, 진정한 재즈 음악을 찾는 세바스찬과 배우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준비하는 미아의 시련이 마치 겨울 그 자체를 상징하는 듯 하다. 이후 시간이 흘러 봄으로 넘어온 둘은 석양이 지는 아름다운 야경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춤을 추게 된다.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우연의 연속으로 손을 잡고 키스를 나눈다. 뜨거운 여름만큼이나 열정적인 둘의 사랑은 계속해서 이어지게 되나 그들의 현실은 사랑보다 냉정하다. 현실과 타협할수록 꿈과 멀어지게 되는 세바스찬을 보며 미아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윽고 가을 되고, 꿈에 대한 논쟁으로 둘은 갈등을 맞게 되고 둘의 관계도 흔들리게 된다. 이윽고 마찰이 잦아진 그들은 사랑도 꿈도 완성시키지 못한 채 이별을 마주한다. 이윽고 5년이 지난 겨울, 둘은 그토록 원했던 꿈의 위치에 서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눈을 마추고 이윽고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계절은 지나 다시 돌아오긴 하되, 돌아갈 수 없는 날들 속에 서로를 추억하며 '만약'이라는 화법으로 연출한 엔딩까지 ... 익숙하고도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꿈과 사랑을 계절에 비유해 전개한다는 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영화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낭만'으로 정의해두고 싶다. LA에 대한 이상을 갖게 만들고 우수에 찬 눈빛으로 영화를 바라보게 만드는 그런 낭만.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보는 동안 눈가 귀가 즐겁다 못해 발을 제멋대로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다. 작품의 퀄리티를 높히는 작품성이 좋았던 만큼 대중성도 굉장히 잘 잡아낸 듯 하다. 관객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어떤 장면들을 요구하는지 감독이 그대로 알아내 화면 속에 담아낸 것 처럼 보였다. 또한 라이런 고슬링과 엠마 스톤 두 배우 모두 이 영화에 찰떡같이 어울렸는데, 두 배우 모두 예술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과정이 아마 세바스찬과 미아 두 인물의 모습을 만들어내는데 큰 도움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각본과 음악 외에도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초반부의 지루함이 있긴 하나, 극 설명을 위한 초반부를 넘어서면 눈을 사로잡는 장면들의 연속이다. 영화 메인 OST 'City of Stars'를 그대로 빼다 박은 듯한 그리피스 천문대의 화려한 별들의 향연과, 로스앤젤레스 야경 속 보랏빛의 풍경, 90년대를 연상케 하는 재즈바와 할리우드 배경까지 ... 주인공 둘의 스탭을 따라가며 영화 중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스토리 외적으로도 볼거리가 넘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영화보다 한편의 무대처럼 보이는데, 이는 조명의 영향도 큰 듯하다. 영화에서 주로 사용하지 않는 핀 조명을 극 중 전개에 자연스럽게 활용함으로써, 영화 속 연출임은 분명하나 마치 실제로 무대를 마주하는 기분이 들게끔 시각화했다. <라라랜드>는 촬영도구나 연출적 요소 속에 디테일을 많이 숨겨놓은 영화인데 일일히 하나하나 설명이 어려울 만큼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지점이었다. 영화를 빠르게 전개시키면서 이런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니 그저 신기할 다름이다.
낭만적인 LA의 풍경을 그대로 담은 로맨스인 만큼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메인이지만, 동시에 LA이라는 거대한 도시 속 '꿈'에 대한 좌절과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것 또한 좋은 메시지 중 하나였다. 사랑과 꿈 사이의 경계선에서 버거워하는 남녀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모습은 <라라랜드> 제목의 정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 하다. 로맨스 영화라는 점에 사랑이라는 초점이 메인인 것 만큼은 사실이지만, 영화의 내용은 이러한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에 더욱 초점을 맞춘 듯 하다. 남녀가 서로 만나 끌리는 동안 그들의 가진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를 조언하고 위로하는 과정은, 스스로 정립할 수 없던 꿈을 이야기 하기 위해 사랑이라는 장치를 이용하는 것 처럼 보인다. 두 인물 모두 꿈에 대한 본질적인 불안감과 그 꿈의 정체성에 관한 깊은 고뇌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드러내는 양상은 차이를 보인다. 꿈과 현실을 타협하기를 여러번, 결국 원하는 바를 이루고 나서야 진정으로 서로의 눈을 맞추는 순간은 아프면서도 아름답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영화'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환상적인 OST 음악이 될 수도 있고, 몽환적인 세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색감이 될 수도 있으며, 좋아하는 배우가 캐릭터 그 자체가 되어버리는 것이 그 이유일수도 있다. <라라랜드>가 많은 이들의 인생영화로 꼽힐 만큼 그 요소들이 밸런스 있게 적절히 잘 조화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뮤지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로맨스의 기본 단계들을 잘 지켜냈으며,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전개 또한 신선하고 뭉클했다. 관객으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도록 화려한 화면과 색감을 적절히 잘 사용했으며 주인공의 연기가 섬세했던 덕분에 관객의 감성을 잘 어루만질 수 있었다. 자칫 지루해질 지도 모르는 2시간의 타임라인 속에 감독이 하고싶었던 말들을 그대로 담아냄으로써 결말까지 '환상적인' 영화 한편을 만들어냈다. <라라랜드>의 감독 데이미언 셔젤은 사람의 감정을 분출해내고 터뜨리는 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인 듯 하다. 전작인 <위플래시>와 최근 작품인 <퍼스트맨>만 보아도, 인물 개개인의 가진 감정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극찬하고 '황홀하다'라고 표현하는 영화 <라라랜드>, 최근까지도 여러 극장에서 재개봉을 하고 있는 추세이니 혹여 보지 못했다면 꼭 영화관에서 보길 추천한다.
사진 출처 : <LALA LAND> I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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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시작해
좋은 음악, 좋은 영화를 찾아 떠도는 인디언(independent+ person)을 위한 영화.
"영화를 다시 보는 행위란"
나에게 영화를 다시 보는 시간은 자신의 성숙해짐에 감동하는 시간이다. 이 영화를 예시로 들었을 때 첫 번째 봤을 때보다 두 번째에 봤을 때가, 그리고 세 번째에 봤을 때에 이 영화에 대해 더 깊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보이지 않았던 포인트들이 보이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하게 되고,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겪으면서 드디어 감독이 의도한대로 바라보는 느낌이라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된다. ("아,, 나 멋있게 잘 컸네,,, 이런 생각도 하고"라는 생각을 주니까)
그런 의미에 있어서 다시 찾게 만드는 영화들은 베리 머치 땡큐다. (비긴 어게인은 나 자신을 3번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나를 3번 사랑하게 만든 이 영화의 매력은 도대체 무엇인가"
#음악
음악에 대해선 취향이 확고하며 질 인디 음악만 듣는 내가 유일하게 인정한 영화 ost다.(개인적으로 라라랜드 ost 별로 안 좋아함)
심지어 아무리 좋아하는 인디 음악이라도 여러번 들으면 질리는데, 이 영화의 ost는 도통 그럴 생각을 안 한다.#거리 녹음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은 전부 일상적인 소음이 들어간다.(캔 따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 소리 등)
이 영화 특성상 거리에서 녹음을 해서 음반을 만드는 컨셉이기 때문에 ost에도 그러한 소음이 들어간다. 이 또한 나에게 베리 머치 땡큐였다.
녹음실에서 작업한 음악들은 음질은 좋아도, 알게 모르게 가수와의 벽이 확고하게 느껴졌다. 그에 반면 소음이 들어가는 음악들은 제 3자의 입장에서 노래를 듣고 있던 나를 끌고 와 나를 바라보며 공연을 해준다.
주변에서 듣는 일상적 소리가 들어가기 때문에 더 노래에 공감할 수 있으며, 그 공간을 상상하게 만들어 더욱 더 생생하고 가사가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여기에 +a로 비긴 어게인은 녹음 장소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비슷한 장소에 가서 이 영화의 ost를 틀면 <비긴 어게인>의 명대사"내가 음악을 이래서 좋아해, 모든 평범함도 음악을 듣는 순간 아름답게 빛나는 진주처럼 변하니까"
와 비슷한 감정을 겪을 수 있게 해준다. 주인공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다. 영화 한 번 봤다고 사는 것이 각박한 것만이 아니고 아름다운 것일 수 있다고 희망을 갖게 만들어주니까. 주변이 비현실적으로 서정적이라 삶에 애정을 겪게 만드니까. 내 인생에 있어서 이렇게 영화 주인공과 관객이 겪는 감정의 벽을 허무는 방법을 제시해준 영화는 <비긴 어게인>이 최초였다.
첨원하지면, 가로등 빛이 유난히 빛나는 밤에, 연인과 산책할 때( 비 온 다음 날 혹은 건물의 빛이 산란이 되는 한강과 호수 공원이면 더 좋다.) 이 영화 ost를 트는 걸 추천한다.
그러면 너를 바라보는 그 사람의 눈이 물에 일렁이는 가로등 빛처럼 일렁이는 경험을 겪을 수 있을 테다.
더 이야기해봤자 구차해지는 것이기에
음악이 필요한 밤, 속는 셈치고 이 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영화는 분석해야 하는 것이 아닌, 느끼는 것이다. 오늘 밤은 느낄 수 있는 영화 <비긴 어게인 어떤가요?>
파노라마 에디터_장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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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도 높은 영화가 완성되는 지점
SYNOPSIS.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의 가족이 사는 그들만의 꿈의 왕국 아우슈비츠.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가 정성스럽게 가꾼 꽃이 만발한 정원에는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집. 과연 악마는 다른 세상을 사는가?
POINT.
✔️ 일단 이 영화를 보세요. 시놉시스만 아시는 상태로 그냥 다짜고짜 보시기를 권합니다.
음향이 중요하니 돌비(메가박스), 사운드X(CGV) 등 음향을 강조한 상영관에서 보시면 좋습니다.
✔️ 이외의 다른 모든 이야기는, 영화를 다 보신 후에 찾아보셔요. 이 글 같은 리뷰는 물론, 평론가 해설 또한 영화를 보신 후에! 찾아보시는 편을 추천합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꼭 영화를 이미 보신 분만 읽어주세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종이 한 장을 꺼내든다. 길지 않은 한 마디지만, 손을 떨면서 하는 말에는 강력한 힘이 있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주연을 맡은 산드라 휠러 배우가 눈물을 흘리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shorts/D0v0WRqqVso
"... All our choices were made to reflect and confront us in the present, not to say 'look what they did then!', rather 'look what we do now!'. Our film shows where de-humanization leads at its worst. It shaped all about past and present. Right now we stand here as men who refuse their jewishness and the Halocaust being hijacked by an occupation which has led to conflict for so many innocent people... (applause)
... whether the victims of October the 7th in Israel or the ongoing attack on Gaza all the victims of this de-humanization, how do we resist? (applause)
Alexandra Bystroń-Kołdziejczyk, the girl who glows in the film as she did in life chose to, I dedicate this to her memory and her resistance. Thank you.우리의 모든 선택은 현재 우리 자신을 반영하고 대면하게 합니다 '그때 그들이 한 일'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을 보라는 의미죠. 우리 영화는 비인간화가 최악으로 치닫는 걸 보여줍니다.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유대인 정체성과 홀로코스트가 무고한 이들을 희생시키는 점령에 오용되는 것을 반대하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박수)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 희생자든 가자 지구에서 자행 중인 학살의 희생자든... 우리는 어떻게 저항해야 할까요? (박수)
알렉산드라 비스트로니 클로지치크, 영화에서 만큼이나 실제도 빛났던 소녀의 삶과 저항 정신에 이 상을 바칩니다. 감사합니다.이 발언은 이 영화를 완성했다.
아니, 이 영화는 나의 마음에 닿아서 완성되는 영화일 것이다.
소리는 당신을 상상하게 한다
영화는 종합 예술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오감, 아니 육감 중 가장 큰 부분을 시각에 의지한다. 철저하게 계산되어 고증된 공간과 의상, 내면에 깊은 두레박을 수도 없이 드리워 완성하는 배우의 연기, 그 장면 그 순간을 위한 깊은 노력 대부분이 시각에 의존한다. 영화 음악은 많은 경우 그 '시각'이 주는 감정을 보조하기 위해, 그 감정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영화는 다르다. 이 영화는 청각으로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한다. 그리고 그 감정을 시각이 보조한다. 붉고 불길하게 타오르는 꽃잎의 모양은 그 의미를 생각하기 이전에, 청각이 전달하는 불길한 느낌, 구역질 나는 느낌을 보조한다. 이건 대체 뭐지. 관객은 충격에 빠진다.
소리가 잔인한 이유는 당신을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시각이 아무리 충격적인 양상을 들이대도 당신의 상상보다 잔인할 수는 없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라는 카피는 사실 불가능한 카피이다. 언제나 각자의 상상이 각자의 최대치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당신이 상상하는 가장 최악의 아우슈비츠를,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성립시킨다. 간혹 들리는 비명 소리, 구타가 아닐까 싶은 소리, 총... 같은 느낌이 드는 소리, 동시에 우리의 식민지적 경험이 주는 그 총소리에 대한 의문, (일본군은 당시 총알이 아깝다며 한국과 중국에서 총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총의 개머리판으로 때리거나 총검으로 찌르거나... 그 행위는 그들에게 유희처럼 여겨졌고, 사체의 일부분을 손에 든 채 히죽히죽 웃는 사진도 여러 장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내겐 ‘수용소에서 총 소리가 이렇게 자주 들리나?’ 하는 의문이 들면서, 우리 선조들이 한반도 전역과 731부대에서 겪은 일들에 대한 괴로움과, 서방에서 아우슈비츠가 갖는 의미 대비 그 괴로움이 서술된 위치를 생각하게 되었다.) 거기서 오는 자괴감... 나의 직접/간접 경험이 주는 가장 끔찍한 지옥도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사이로 파고든, 보는 내내 궁금했던, 마치 기계가 작동되는 듯한 소리. 마침내 그 소리의 정체가 밝혀질 때에, 한편으로는 안심한다. 역사는 언제나 눈을 치켜뜨고 있다. 비록 소리가 상상하게 한 최악의 지옥도가 우리 마음에 펼쳐지지만, 그들은 도망갈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나일 가능성은 없을까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했다. 이 개념은 기본적으로 "악이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근원에서 나온(16p)"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단순히 아이히만을 비롯한 나치 일원들이 그저 일상을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이었다는 뜻만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바라보며 그에게서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 곧 판단의 무능성(20p)"을 발견한다.
다시 말해, "암호화된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언어를 무너뜨려 "사람들의 현실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21p)"고, "전쟁을 일상적인 인간의 삶의 한 측면으로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임으로써(42p)" 우리 모두는 아이히만이 된 것이다.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뼈 아픈 부분이, 이 영화에서도 지적된다. 과연 나는 영화 속 헤스 부부를 보며 단순히 그들을 절대악으로 지정하고 마음 편하게 영화관을 벗어날 수 있는가? 없다. 아이히만은 내 안에 있고, 헤스 부부 또한 그렇다. 17살 때부터 꿈꿔 온 이 삶을 포기할 수 없다는 헤트비히의 말은... 과연 이 사회에서 자기의 안위를 위해 '각자도생'해야 함을 배운 우리의 말과 얼마나 다른가?
수십 채나 되는 집을 소유하며 도시를 공허하게 만드는 사람들, '영끌'하는 자기만을 과하게 연민하며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법을 잊은 사람들, 소비로 존재를 대신하려는 사람들... "상투어로 자신을 위로하는 이 끔찍한 재능은 죽음의 순간에도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113p)"던 아이히만과 우리는 의외로 별로 다르지 않다. 이 영화 속, 아우슈비츠 코앞에서, 연기와 비명 소리와 (아마도 존재했을) 사람'이었던' 것들이 타는 냄새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꽃을 심고 집안을 가꾸는 헤스 부부... 내 집 마련의 꿈을 중요시하지만 사회의 모든 모순은 무시하는 우리와 과연 얼마나 다를까?
이 영화가 다른 홀로코스트 영화들과 다른 지점이 여기에 있다. 홀로코스트와 아우슈비츠라는, 인류사에서 가장 끔찍하다고 평가되는 이 사건조차도, 단순히 그 사건으로만 말하지 않는다. 아우슈비츠의 최대 희생자였던 유대인들은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어떤 행위를 가하고 있나. 그들 안에는 아이히만이 없는가? 우리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따르면 힘러가, 즉 나치가 사용한 책략은 우리의 "동물적인 동정심"을 "자기 자신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하고 있는가, 라고 말하는 대신, 나의 의무를 이행하는 가운데 내가 얼마나 끔찍한 일을 목격해야만 하는가, 내 어깨에 놓인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가, 라고 살인자들은 말할 수 있게(174p)" 된 것이었다. 과연 작금의 유대인들은 여기서 얼마나 다른가. 자기 연민과 비뚤어진 자기애로 인류애를 대체하고, 타인의 상황에는 ‘누칼협’ 같은 소리나 들이대고 있는 우리는 또 얼마나 다른가.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은, 이게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님을, 그러므로 나와 무관하고 그냥 스크린 안에서만 일어나는 그런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나를 뒤집을 수밖에 없다. 시오니즘을 신봉하는 프로듀서 앞에서, 실제로 이후 그의 발언이 공식 입장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은 프로듀서 앞에서, 다시 말해 커리어가 끊길 수도 있는 상황에서,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이 손을 떨면서 1분 남짓의 짧은 말을 이어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나 아렌트가 같은 유대인들에게 공격을 받으면서까지 아이히만의 이야기가 단순히 아이히만만의 문제가 아님을 지적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이 영화를 보고 그냥 '미학적으로 좋은 영화군...' 하고 단순하게 돌아설 수 없도록 나와 당신을 막는 힘 또한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어쩌면 그냥 단순히 잘 먹고 잘 살고 싶다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그 갈망이 우리를 비인간적인 자리로 몰아넣을 수 있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느니 배 부른 돼지가 되겠다는 결정이 얼마나 위험한가. 이 영화는 일상을 통해 보여준다. 밍크코트에 이어, 이미 죽었거나 그 근처에 이르렀을 여자의 립스틱을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입술에 바르는 헤트비히의 모습에서도, 알고 지내던 유대인 여자가 끌려갔어도 그 커튼을 갖지 못한 것이나 아쉬워하는 대화에서도.
실제 헤트비히 헤스의 말에서 따왔다는 "너 같은 건 쥐도 새도 모르게 불에 태워 재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는 과격한 대사를 빌려오지 않더라도, 우리가 좀 더 이 사회에서 인정받는 형태의 '인간'이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를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이 영화는 소름 끼치게 보여준다.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기에
누군가는 시대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의외로 선택지가 있었다.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그걸 보여주는 존재는 한 소녀다. 감독에게 매우 의미 깊었던 듯한, 영화 속에도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의미심장한 이미지로 등장하는, 감독의 아카데미 소감에도 등장하는, 알렉산드라라는 인물이 있다. 알렉산드라 비스트론 콜로지치크. 그는 영화 속에서 유대인들을 위해, 유대인들이 일하는 곳을 밤에 몰래 찾아가 과일을 하나씩 박아 놓고 사라지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가 밤에 뛰어다니는 그곳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다. 굳이 어설픈 직역을 하자면 "이득 지역"인데, "Interessengebiet"라는 독일어 단어를 그대로 옮긴 영어 단어이다. 나치가 아우슈비츠 인근을 부르던 단어로, 실제로 그들이 아우슈비츠 행정을 위해서라며 이득을 취하던 지역을 부르던 말이다. 1941년 나치는 폴란드 농민들의 땅을 빼앗고 이들을 몰아낸 다음,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동원하여 농사를 짓고 그 이득을 챙긴다. 그 과정에서 농민들과 유대인들 사이의 교류를 막았음은 물론이다. 말발굽 아래 너무 쉽게 짓밟히던 과일을, 가방에 소중하게 담아 하나하나 배치해 두는 소녀의 존재는, 처음에는 '뭐지?' 싶게 낯선 이미지로 등장하지만 이내 그 존재 자체로 어둠 속의 빛임을 느낄 수 있다.
그토록 열심히 가꾸는 헤스 부부의 집에는 한 번도 직통으로 내리쬔 적 없는 햇살이, 소녀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집안으로는 부드럽고 강하게 들어온다. 실제로 알렉산드라가 2016년 9월 사망하기 직전까지 살았던 집에서 촬영했다는 장면에서, 소녀가 피아노로 연주한 곡은 실제 아우슈비츠 수용소 수감자가 작곡한 곡이라고 한다. 제목도 <햇살>. 심지어 옷과 자전거 또한 실제로 알렉산드라가 사용했던 물건이라니 그 의미가 한층 두텁게 느껴진다.
실제 알렉산드라는 1940년 나치가 폴란드에 침공하면서 아버지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가두는 비극을 겪었고, 친구들과 함께 아우슈비츠 내부와 접점을 가지고 음식을 나르는 일을 했다고 한다. 1941년부터는 무장투쟁연맹의 일원으로 연락망을 담당하고, 1943년에는 나치에 의해 노역을 하면서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아우슈비츠에 음식을 전하는 일을 계속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헤스 작전'으로 소개된, 헝가리의 유대인을 '소거'하는 작전을 앞두고, 전출되었던 자리에서 다시 아우슈비츠에 돌아갈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통화하는 부부의 전화로 끝을 맺다시피 한다. 원하는 모든 바가 다 이루어졌지만 내려오면서 어쩐지 구토의 심경을 느끼는 루돌프의 모습이 영화의 사실상 마지막 장면인데, 이 장면은 매우 역겹다.
구토하지 못하면서도 구토 비슷한 것을 느끼는 그 모습이, 마치 가해자가 되어야만 했던 자신을 연민하는 액션처럼 느껴져서, "용서할 수 없는 죄는 사람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고통을 일으키는 것(178p)"이었다는 아이히만의 사고와 동일하게 느껴져서. 가스실을 만들고, "효율적인" 시체 처리법을 고안한 것이 "업적"이었던 그들의 사고방식. 자신의 알량한 삶을 위해 타인을 사지로 몰아넣고도, 그 방식과 체계와 행정이나 고민하고 있었던, 무뎌지고 마비되었던 두뇌들. 구토하지도 못하면서 어설픈 구토로 자신이 인간인 것처럼 호소하던, '비인간화'의 결과물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소개된, 매우 예외적인, 그래서 독특한 이야기 하나를 나눈다. 이 영화의 ‘헤스 작전' 회의 장면에서도 언급되듯 나치에 진작 동의했던 헝가리 정부와 달리, 끝까지 나치의 유대인 소탕에 반대한 나라가 있었다.
덴마크 국왕은 자신이 자진해서 유대인의 별을 달겠다고 했으며, (왕이 그렇게 말했는데도 굳이) 대신들은 혹시라도 왕이 반유대적인 조치를 취한다면 자진 사퇴하겠다고 했다. 유대인들은 '안전하게 운송'되었으며, 그 과정에 필요한 자금은 덴마크 부유층이 댔다. 결국 덴마크 출신의 유대인들 중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은 상대적으로 극소수였고, 이들은 대부분 순순히 문을 열어줄 만큼... 노쇠하였거나 가난에 치이느라 현상을 파악하기 어려운, 다시 말해 사회적 최약자들이었다. 이들을 위해 덴마크 사람들은 계속해서 '소란'을 피웠고, 그 결과 이들은 수용소에서도 남다른 지위를 누렸다고 한다.
읽으면서도 믿을 수 없었던 거짓말 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거였다. 이럴 수도 있었지만, 그럴 수도 있었다는 것. 어쩌면 이 영화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아우슈비츠와 '악의 평범성'을 타자의 위치에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의 아이히만이 가리키는 지점을 묻고, 그 지점과 싸울 의지가 있는지 묻는 것과도 같다. 이미 시체마저 썩어버린 과거의 나치에게 섀도복싱을 하는 대신, 진짜 내가 싸워야 할 상대에 맞설 마음이 있는지 묻는다. 우리 시대의 나치는 무엇이며, 그 앞에서 내가 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 질문에 무거운 마음을 답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답이 있는 곳이, 완성도 높은 이 영화가 완성되는 지점일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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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 최후의 밤 / 地球最後的夜晚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지구 최후의 밤 / 地球最後的夜晚 (Long Day's Journey Into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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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평 /
(최대한 스포를 안하고 쓴..감상)
이 영화는 컨셉(?)이 되게 독특하다.
1막은 기본적인 2D 그리고 2막은 3D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왜 불편하게 처음부터 3D도 아니고 굳이 중간부터 저런 불편한 설정을 하였을까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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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1막은 주인공의 기억더듬기라고 볼 수 있다.
본인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본다.
그렇기때문인지 시간이 순차적이지 않고, 과거였다가 현재였다가 한다.
그래서.. 이런 비순차적 플롯나열 덕분에 일단.. 빡집중안하면 중간중간 헷갈리고..
이게 '우리가 모르는' 주인공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다 보니.. 흘러가는 상황이 머릿속에 쏙쏙 박히지 않는다.. 어리둥절 투성이..
그리고 굉장히 지루하다.
어쨌든 이 기억더듬기파트가 한 1시간 10분정도 된다.
이 70분이 굉장한 난관이다.. 이것만 버티면.. 버티면.. 엄청난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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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시간 12분쯤 되면 갑자기 뜬금없이 영화 타이틀이 뜬다.
빠밤!!
이때 진짜 소름돋음.
그러면서 카메라 기법(?)이 마치 스팀게임처럼 변하고..
영화의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3D효과의 극대화를 위한 변화였던 것 같다.)
그리고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어진다.
근데 이게 새로운데.. 사실 새로운 사람이 아닌..
뭔가 기억을 곁들인..사람들이다..
아니 분명 아는 사람들인데 다들 몰라
이게 뭐야?
하던 도중 깨달은게.. '아, 이게 주인공의 꿈(상상)이구나..!'
그렇다.
2막은 주인공의 상상이고.. 그렇기 때문에 감독이 이 부분을 3D로 만든것이다!
(만약 내가 극장에서 봤다면 바로 알아챘겠지..난 이게 1,2막 구성인지 몰랐다)
이 꿈에서는 주인공이 1막에서 본인이 되짚어 본 기억들을 바탕으로 그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조합해 나간다.
그리고 이 꿈 자체가 주인공의 상상이다 보니,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누구인지 정확히 얘기해주기보다는 모두 상징으로 그들이 누구인지 알려준다.
이게 정말 재미있는게, 1막에서 대사로 언급되었던 부분들이 시각적으로 보여지면서 진짜 기억을 맞춰나가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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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1막이든 2막이든 가장 중요한 심볼은 '시계'이다.
영화를 볼 때 시계를 중심적으로 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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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정확한 대사보다 '상징'으로 설명해주는 어찌보면 불친절한 영화이기때문에.. 조금 어렵다..
솔직히.. 한번더 봐야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진짜 영화관에서 3D로 보고싶다..!!
재개봉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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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TAR 타르' 리뷰
현대인들이 뒤집어쓴 얼굴 이면에는 직업인의 자아와 자유인의 자아가 있다. 직업인의 자아가 만들어진 건 일이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면서부터다. 사람들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 그 이상의 가치가 일에 포함되어 있다고 믿어야 했다. 일은 인간의 숙명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노동의 지위는 올라갔다. 노동은 노력으로 성취해 낼 수 있었다. 특정 직종의 면허, 자격증, 인증서는 그러한 노력의 징표다. 노력은 단순하고 당연한 진리를 내포한다. 그래서 노력이 필요 없는 성질은 설명이 불가하기에 경외하게 된다. 천재성에 놀라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일하는 모습에서 자기표현의 경지를 맛보기 때문이다. 일이라는 건 원래가 반복적이고 의미 없는 일상인지라 그 이상의 요건을 달성하면 일종의 상징이 된다. 달인의 몸놀림에 경탄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아함, 그 이상의 카리스마. 타르의 몸짓에서 느껴지는 인상은 그러했다. 마에스트로의 지휘를 실제로 가까이 보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커리어나 능력,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위대한 직업인들의 면모에는 공통점이 있을까? 공통점을 정리하면 그들과 같이 설 수 있을까?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적용이 가능할까? 특정 장면에서 타르의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부드럽게 본인의 의견을 주장하는데 좌우로 넓게 팔과 다리를 뻗고 대화를 나눈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그 자세에서 이 영화의 무게중심이 온전히 느껴졌다.
리디아 타르는 자신의 지휘 경력에 중대한 변곡점이 될 교향곡 리허설에 들어간다. 그녀는 커리어와 능력 어느 면으로 보나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첫 여성 수석 지휘자로 얼마나 다양한 곡을 지휘했는지 셀 수도 없다. 무대와 스크린을 위한 음악을 작곡하기도 해서 4개의 주요 엔터테인먼트 수상식에서 모두 수상하기도 했다. 후학 양성에도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자서전 출간과 함께 콘서트를 준비하는 바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한다. 철옹성 같은 바위를 산산조각 내는 건 작은 틈새로 스며드는 물방울이다.
리허설 현장을 기록한 과정들은 단적으로 그녀가 얼마나 놀라운 실력을 가진 사람인지 보여준다. 인터뷰 장면부터도 그랬지만 지휘, 심사, 의사소통 등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다. 언어를 뒤섞어가며 표현해내고자 하는 정확한 음과 리듬을 짚어내며 지시한다. 그녀는 일련의 천재들이 그렇듯이 유별나게 괴팍하거나 괴상하게 특이점을 짚어내지는 않는다. 다만 정확한 의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미 오래전에 죽은 작곡가들이 악보에 남겨둔 단서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지휘자가 해석을 하는 과정은 적극적으로 악보의 여백에 뛰어들어 빈틈을 채워가는 일에 가깝다. 타르는 본인의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행동에 거침이 없다. 그만한 실력이 뒷받침되기에 거침없는 행동 또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용인되는 것은 오롯이 그녀가 그 위치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마에스트로의 자리에 올려놓은 건 '카바너',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이었다.
사람이 날카로워지면 불안해진다. 의도는 바늘과 같다. 찌를지 꿰맬지 결정해야 한다. 타인이 원하는 바를 이해하고 있다는 건 일단은 고지에 올라있는 것이다. 그 이점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개인의 판단에 달린 일이다.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 활용할 수도 있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해석은 주관의 소관이니까. 상대방을 내 속도로 잡아당길지 맞춰갈지 정해야 한다.
음악은 시간을 다룬다. 음악을 핵심 소재로 다루는 영화에서는 '시간을 활용하는 방식'을 집중해서 보면 좋다. 정해진 시간 내에 각각의 음이 저마다의 속도로 이어져야 비로소 음악이 된다.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한다. 지휘자가 시작과 끝을 선언한다. 또한, 그들이 메트로놈과 다른 이유는 템포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속도를 올리거나 내려서 각각의 소리를 유기적으로 밀고 당기며 감정을 자아내는 일은 전적으로 지휘자의 몫이다. 신의 존재를 모방하는 형태로 지휘자는 음악을 통해 그 권한을 시험한다. 영화의 중간중간에 신성을 다루는 비유를 통해서 이런 관념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음악의 바깥에는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 놓여있다.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 잠시 멈추거나 두 배로 감거나 되돌아갈 수 없는 절대적인 시간이다.
통제할 수 없는 시간 앞에서 타르는 무너진다. 옆집 노인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돌아가거나 멈출 수 없어서 도망친다. 도피처는 중요치 않다. 무엇으로부터 도망갔는지가 중요하다. 음악 바깥에는 리허설이 없고 해석해야 할 여백은 너무나도 넓다. 매 순간순간 자신만의 능력으로 의도를 파헤쳐나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 앞에 거장은 없으니까. 태어난 데에는 이유가 없으니 의도 또한 없다. 해야 하는 일은 정해지지 않았고 추측은 무의미하다.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 궤적을 충실하게 채워갈 뿐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행동을 모방할 뿐이다.
인성과 능력의 연관성을 따지는 건 우스운 일이다. 우린 둘 중 어느 것도 어느 누구에게서도 제대로 알 수 없다. 직업인의 자아나 자유인의 자아나 불안정한 건 매한가지니까. 완벽할 수는 없다. 완벽한 인간상이 정해지는 건 이 현실 세계 속에서는 비현실적인 일이다. 두 자아상을 온전하게 갖추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드는 감상이 인간의 면모는 아닐 것이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TAR 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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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창적인 전개와 충격적인 결말 / 스릴러에서 호러로 / 매혹과 고어의 경계 / 서브스턴스 / 데미 무어의 연기력 / 마가렛 퀄리의 매력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서브스턴스"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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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검은 수녀들> 런칭 예고편
강력한 악령에 사로잡힌 소년을 구하기 위해 금지된 의식에 나서는 사람들의 이야기 NEW는 영화, 음악, 드라마, 극장사업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의 분야를 아우르는 미디어 그룹입니다. NEW 영화사업부의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시고 NEW 영화 예고편, 미공개 독점 영상 등을 가장 먼저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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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최소한의 선의> 메인 예고편
내가 할 수 있는 선의는 어디까지일까? 임신을 마주한 학생과 선생님 장윤주 X 최수인의 섬세한 열연🌱 이제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시선 [최소한의 선의] 메인 예고편 공개✨ 2024.10.30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