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케2022-12-18 23:56:26
재능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영화 <지옥의 화원> 리뷰
지난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폭발적인 반응으로 관객상에 해당하는 넷팩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아 궁금했던 작품이다.
겉으로 보기엔 어느 기업과 다름없지만, 최강의 여직원이란 타이틀을 위해 각 부서별 파벌 싸움이 끊이지 않는 미츠후지 상사를 배경으로,
아주 평범한(?) 회사원 나오코가 싸움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오피스 코믹 액션이다.
만화 같은 오버스러운 액션이 적응이 안 되긴 했지만, 일부러 만화 같은 연출로 재미를 더한 것 같다.
OST가 장르와 잘 어울리는 락으로 스피디한 느낌이 있어서 싸우는 장면들과 잘 어울리면서 액션을 더욱더 실감 나게 마치 만화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유치하기도 하지만 그 너머에 주는 교훈도 있는 그런 영화. 하지만 엔딩 장면은.. 용납 못해..!!
주인공이 싸움에서는 이겼지만, 상대에게 남자친구 있다는 사실로 결국은 진 것과 다름없다는 그런 엔딩은 대체 뭡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액션과 코미디가 적절하게 섞여있는 이 영화를 시간이 된다면 한 번쯤 보는 것을 추천한다.
*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초청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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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짠내나는 철수들의 분데스리가
이 글은 영화 [선데이 리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인용하거나 퍼가는 경우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주세요.
사진출처:다음 영화
준일(이성욱)은 자신의 인생이 우성에게 태클당한 그 순간부터 곤두박질쳤다고 생각했다. 축구와 자신의 인생은 늘 하나였으니까.
그러니 내일모레 마흔인 나이까지도 대기선수처럼, 늘 벤치에만 있는 삶을 살았다. 가능성은 대기하는 인생의 길이와 반비례해 쑥쑥 줄어가고. 남들은 젊다며 부추겨 세울 법한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인생에는 소복하게 먼지가 쌓여있었다.
축구 경기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피할 수 없었던 그 태클에서 영원히 넘어져 있는 준일이니. 가족이라는 팀 안에서의 역할에 있어서도 잘 해낼 리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혼이라는 선수는 준일의 코 앞에서 입김을 내뿜으며 자신을 밀착 마크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혼만큼이나 더 압박감을 주며 저 멀리서부터 놀라운 속도로 다가오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실직이었다. 외통수도 이런 외통수가 어디 있을까.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외우던 말이었지만. 이 오합지졸을 너머 콩가루라 불러도 아무 이질감 없을 “철수 축구단”을 궤도에 올려놓아야 하는 일에서 만큼은 제아무리 가오가 육체를 지배한 준일이라 해도 피할 수 없었다. 여기서마저도 객기를 부렸다가는 정말 남은 건 레드카드 밖엔 없었으니까.
이름 짓는 센스도 참. 철수 축구단. 이라니. 무언가가 어디서 물러난다를 뜻임과 동시에 평범하기로 따진다면 홍길동만큼이나 흔해빠진 이름이 아닌가. 영희는 오징어 게임에 나와서 유명해지기라도 했지.(?) 철수라니.
사진출처:다음 영화
그러나 이 시답잖은 네이밍 센스에 그 어떤 반격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자신의 인생이 그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했다. 더 이상은 정말 물러설 수 없었고. 그 물러서지 못하는 전장에서 겨우 지켜내야 하는 것이라고는 평범해빠진 스스로의 삶이었으니.
그들의 삶은 철수 풋살팀의 훈련과정과 같았다. 시뮬레이션 속의 자신들이 벌이는 모의 시합은 완벽하다 못해 당장이라도 실현 가능할 것 같았지만. 현실은 오버헤드킥을 하려다 금쪽같은 득점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에 가까운. 마치 될 것만 같았던 매주의 로또 결과와 눈앞까지 아른거렸던 국가 대표 자리처럼. 가능성은 잔뜩 묻어있지만 현실과 이상의 간극만을 매번 알게 해주는 것만 같은 삶.
이름만큼이나 특출 날 곳 없는 신생 풋살팀이 경기에서 단번에 승리할 리가 없었다. 패배에 익숙한 삶을 잘도 눅눅하게 쌓인 먼지로 숨겨왔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물리적으로 맞닿은 패배는 그렇게나 시리고도 아팠다.
평소 같았으면 욕 몇 번 들어먹을 각오로 손 놓고 잠수를 타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루트였다. 그러나 소갈머리를 휘날리며 되지도 않은 상대를 악착같이 버텨내던 철수들은 준일의 마음에도 달라붙어, 그들을 향한 관심마저 완전히 철수할 수는 없게 만들었다.
벼랑 끝에 몰려 있는 처지의 정도는 다를지언정. 다들 마음속의 그 무언가를 해소하는 창구인 이 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만큼은 어렴풋이 다들 알고 있었으니까.
사진출처:다음 영화
MOM(Man of Melona 아니고 Man of Match)이었던 박 씨의 부상은 코치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철수이기도 했던 준일을 기어코 그라운드로 복귀시켰다. 도망가고 싶고 외면하고 싶었지만. 엉망진창 실력으로도 재미있다며 웃던 박 씨의 얼굴이 떠올라 준일은 결국 박 씨의 축구화를 신었다. 자신의 인생처럼 발에 전혀 맞지 않는 축구화를.
도망가지 않아서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은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물론 결과는 패배였고 예전 같지 않은 체력 덕에 그라운드 위에 널브러져 있어야 했지만. 준일은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려 넘어진 채 머물러 있던 그 순간에서 다시 일어섰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부상 이후 처음으로 아무 걸리는 것 없이 후련하게 웃었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과 꿈의 거리는, 이혼한 부인과 아들이 사는 집 사이의 거리인 딱 두 정거장의 거리 같았다. 제일 움직이기 귀찮은 거리이면서. 코 앞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을 놓고 있느라 더 가기 힘든 곳처럼.
하지만 이제 준일은 조금은 달라졌음을 스스로도 느낀다. 축구를 향한 재미를 찾은 것처럼. 인생을 향한 애착도 조금은 되찾은 것 같다. 상대팀을 밀착 마크하던 철수들이 마치 자신의 인생에 남은 장애물도 대신 막아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전히 땀을 뻘뻘 흘리고 표정을 잔뜩 찌푸린 채로. 이 지긋지긋한 동네 박지성들이 생각나 준일은 이사도 뒤로 미룬 채 핸들을 꺾었을 테지. 이젠 꽤나 자연스럽게 웃으면서.
마치면서
나는 늘 작은 영화들이 미네랄과 같은 요소라고 생각했다. 3대 영양소인 탄단지만큼 자주 거론되지는 않지만. 무시한다면 결국 거대한 몸도 쓰러뜨리고야 마는. 거대한 탄단지가 메울 수도, 볼 수도 없는 틈 사이를 단단히 메워주는 마지막 실리콘 역할을 한다고 말이다.
이 영화는 그만큼 소중하기도 하고, 마침 내게 정확하게 필요한 영화이기도 했다.
요새 나는 “모든 게 재미없음”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 어떤 것에도 웃을 수 없어 조금은 단조로운 삶에서 튕겨 나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것도 너무 자주.
그러나 화려한 중고 신인(?) 준일의 복귀를 보며. 그리고 자연스럽게 웃고 있는 인물들을 보며 내게도 그런 초심이 있었음을 조금은 더듬어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같았다. 이렇게 현실적인 연기를 할 줄 아는 배우분들이 없었다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애초에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재미.
어쩌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결국 마음속에서 나를 설레게 해 여기까지 이끌게 한 북두칠성을 다시 한번 어디 있는지 쳐다보게 해 준 영화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 되어준 영화이기도 하다. 내가 좋아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찾을 때까지. 혹은 다시 확신을 찾기 까지. 어쩌면 영화 리뷰어로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의 TMI]
1.사랑니 진짜 카운트 다운 중. 짱구 됨.ㅠ
2. 너무 웃겨서 몇 번이고 터짐. 진짜 연기의 신들임.
3. 영화 시간이 짧은데 딱 좋음. 딱 축구 전반 후반 같음.
4. 과카몰리 먹고 싶어서 아보카도 1Kg산 나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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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기자와 국가, 그리고 한 개인의 변화를 논하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뉴스 채널의 간판스타인 ‘프랑스 드 뫼르(레아 세두)’는 성공한 언론인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유명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물론 그녀의 삶이 완벽하지는 않다. 소설가 남편과의 불화와 학업에 관심이 없는 어린 아들의 존재는 그녀를 괴롭힌다. 완성도 높은 그녀의 리포트는 현실과 조작 사이에서 줄을 타며 그녀의 약점이 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길 위에서 발생한다. 프랑스는 운전 중에 모로코계 이민자 출신 남성 바티스트의 오토바이와 충돌하고, 이 교통사고는 뉴스가 된다. 언제나 기자이자 동시에 프랑스의 대표자였던 그녀는 한 개인으로서 어떻게 대처할지 알지 못하고, 그 과정에서 점점 당황하고 흔들리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한다.
신화는 그저 옛날이야기 취급을 받으면서도 때때로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과 교훈을 준다. 그리스 신화 속 시시포스의 형벌이 그렇다. 교활한 자로 알려진 그는 제우스의 치부를 드러내고, 하데스와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속여 두 번째 삶을 누리며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혔다. 그러자 신들은 그의 죄에 대해 평생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형벌을 내려 무의미한 노동 속에 시시포스를 영원히 가두었다.
흥미롭게도 시시포스의 형벌은 인간 삶에 대한 비유와도 같다. 바위를 산 정상에 올리는 행위로 시시포스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바위를 움직인다. 알베르 카뮈가 지적했듯이 설령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 해도 바위를 올리며 스스로 움직이는 그 순간만큼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시시포스는 신들이 의도한 무의미함에 굴복하지 않는다. 대신 어떤 상황에 처하든 삶의 순간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즐길 때 비로소 진짜 살아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진정한 삶의 변화는 그 결과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때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2021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던 브루노 뒤몽 감독의 영화 <프랑스>는 이러한 시시포스의 교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프랑스>는 '프랑스'라는 이름의 한 기자, 국가, 개인의 변화에 대해 말하지만, 그 변화를 결과로써 설명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영화는 가시적인 변화를 만들지 못하는 굴레에 갇여 있다 하더라도, 시시포스처럼 지금 이 순간의 현재를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 자체가 변화라고 이야기한다.
기자 프랑스의 변화
기자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이견 없이 가장 먼저 발언권을 얻을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닌 스타다. 특히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인 프랑스의 모습은 왜 그녀가 스타 기자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녀는 진행자로서 국제사회 이슈를 전달하고, 냉철하고 중립적인 태도로 정치인과 평론가들을 상대한다. 필요하다면 사헬 지역의 폭탄 사이를 뛰어다니며, 대통령을 당황시키는 질문을 거침없이 던지기도 한다. 또 촬영과 편집까지 신경 쓰며 화면에 담길 자신의 모습을 기획하는 데 능숙한 프로페셔널한 기자의 모습도 보여준다.
반면 후반부에 묘사되는 프랑스는 앞서 만나 본 그 기자가 아닌 듯싶다. 특히 영화 후반 바다로 국경을 넘는 난민에 대한 취재에선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다른 이에게 업혀 배에 탑승하거나, 난민들이 탄 배에서 필요한 때에만 영상을 찍은 후 더 쾌적한 요트로 넘어가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식이다. 물론 최종적으로 편집된 리포트 속 프랑스는 여전히 현장을 뛰어다니는 열정적인 기자이지만, 그 과정에서 프랑스는 이전과 매우 다른 인물처럼 보인다. 실제로 리포트 속 거짓이 밝혀지자 그녀는 격렬한 비난에 직면한다.
그러나 영화는 겉보기와 달리 전후반부의 기자 프랑스가 사실 변한 게 없음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그녀는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지만, 대통령의 답변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기 위한 퍼포먼스였기 때문이다. 전쟁지역을 생생히 담은 그녀의 리포트 역시 사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가로지르는 '연출'이라는 행위를 통해 얻어진 결과에 불과했다. 단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짓됨과 동시에 진실된 그녀의 행동이 어떤 모습으로 포착됐는지만 다를 뿐이다.
국가 프랑스의 변화
변화 없는 기자 프랑스는 변하지 않는 국가 프랑스와도 오버랩된다. 레아 세두의 얼굴을 클로즈업할 때 선명해지는 하얀 피부, 빨간 입술, 파란 눈동자의 조화가 상징적이듯이 영화는 '프랑스(국가)'와 '프랑스(레아 세두)'를 교묘하게 섞어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강대국이지만 사회 내적으로 문화와 인종의 차이로 인해 분열이 가속화되는 프랑스의 모습은 사회적 성공과 별개로 가족과 여러 불화를 겪는 프랑스의 일상을 닮았다.
이때 프랑스가 직접 취재하러 가는 사헬 지역은 변하지 않는 국가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사하라 사막의 남쪽 경계인 사헬 지역은 아직 프랑스군이 주둔하며 테러집단을 막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프랑스군 주둔은 테러를 감소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지역 주민들의 프랑스에 대한 반감을 키우고 있다. 과거 식민주의 제국으로서 북아프리카를 지배했던 프랑스가 모양새만 다를 뿐 다시금 식민주의적 접근을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정치, 경제, 군사⋅안보 영역에서 아프리카에서 과거 자신의 식민지였던 국가들과 프랑사프리크(Françafrique)라고 불리는 후견 관계 및 불투명한 인맥 네트워크를 유지해 왔다. 그러다 보니 프랑스군의 주둔은 이 관계의 신식민주의적 성격을 강화하는 듯 보인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가 자신과 접촉사고를 당한 바티스트 집을 방문해 "제 행동의 결과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프랑스 개인은 물론 국가의 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처럼 기자이자 국가로서 프랑스는 같은 선택을 반복하며 무의미하게 돌덩이를 정상까지 올리는 듯 보인다.
개인 프랑스의 변화
흥미로운 것은 미디어와 저널리즘 군상 혹은 한 나라가 처한 상황에 대한 풍자나 비판처럼 느껴지려는 차에, <프랑스>가 반복의 무의미함을 벗어날 힌트를 한 개인인 프랑스의 내면으로부터 찾는다는 점이다. 뒤몽 감독이 자신의 관심이 “오직 프랑스라는 인물의 내면에 있다”라고 밝힌 것처럼. 실제로 국가로서도 저널리스트로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던 프랑스는 그저 한 개인일 때 비로소 균열과 변화를 경험한다. 항상 거시적인 차원에서 세상에 접근하던 그녀는 접촉사고를 계기로 타인과 일대일 관계를 맺게 되고, 그로부터 비롯된 인연은 한 가지 깨우침을 되돌아온다.
후반부 다니엘과의 대화는 그 정점이다. 벗어날 수 없는 삶의 무게에 체념했고, 더 이상 삶은 변화 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듯한 프랑스. 그녀는 살인 강간범이라는 전과 이력을 알고서도 20년간 남편과 함께 살았던 그녀에게 정말 사람이 변할 수 있다고 믿었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다니엘은 수 차례에 걸쳐 사람의 변화를 믿는다고 대답한다. 이러한 다니엘의 답은 영화의 첫 장면, 엘리제 궁에서의 기자회견과도 일맥상통한다. 프랑스는 "현재의 프랑스 사회를 관통하는 '반란적' 상황에 대해 무관심인지 무기력한 지" 묻는다. 마크롱 대통령은 "개선의 여지는 많고 무관심한 적은 없었다"라면서 국가인 '프랑스'와 영화 내 인물이자 기자인 '프랑스' 모두에게 답한다. 다니엘과의 인터뷰 후에 올 때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해변을 보면서 프랑스가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변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뒤몽 감독은 씨네유로파와 인터뷰에서 "이 세계의 진실이 아니라 하나의 '질적 변화(metamorphosis)'"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를 선과 악, 진실과 거짓으로 명확하게 규정하는 대신 그저 열심히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현재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는 '죽다'와 '부활하다'의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 'de meurs'가 프랑스의 풀 네임인 'France de meurs'에 포함된 이유이기도 하다. 진보와 이상은 죽었고 현재만 남았다는 대사에 걸맞게, 프랑스는 달라지지 않는 반복 속에서 벗어나 현재와 순간 속에서 시시포스처럼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프랑스>는 분명 뒤몽 감독의 다른 작품들처럼 난해하고 어렵다. 영화가 끝난 후 검색을 해야 비로소 알 수 있는 프랑스의 사회 정치적 이슈들과의 연관성은 진입장벽이 된다. 또 쉽게 접하기 힘든 촬영 방식은 영화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카메라와 붐 마이크가 화면 안에 등장하는 것은 예삿일이다. 카메라는 차 안의 모습을 몰래 찍기도 하고, 인물의 바로 밑과 위에 위치하기도 한다. 제4의 벽을 넘어서는 듯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파란 두 눈은 그녀가 레아 세두인지 프랑스 드 뫼르인지를 분간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낯섦은 영화에 대한 호불호의 간격을 좁히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낯선 접근법이 신선함이 될 때, 이는 상반된 이미지를 천연덕스럽게 오가며 서로 다른 세 층위의 프랑스를 하나의 접점으로 연결시키는 레아 세두의 연기와 만나 <프랑스>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기도 한다. 자칫 '유명인의 시련, 좌절, 그리고 극복'이라는 뻔한 이야기에 묻힐 수 있었던 '프랑스'의 변화가 기자, 국가, 개인의 맥락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습을 드러내며 깊은 사유의 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A(Acceptable 무난함)
이 복잡한 이야기를 얼굴과 표정, 눈물만으로 담고 또 전달하는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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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데일리] 제천에 뜬 저스틴 허위츠, 그가 초대한 재즈의 밤
제천에 뜬 저스틴 허위츠, 그가 초대한 재즈의 밤
스페셜 콘서트 현장 스케치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스페셜 콘서트가 열리는 제천 비행장은 축제의 현장이었습니다. 저스틴 허위츠의 공연을 기다리며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흐린 날씨지만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사 먹었고, 각종 이벤트에 참여하면서 흥을 돋우고 있었는데요. 7시 20분, 현장 리허설이 끝나자마자 객석 입장이 이뤄졌습니다.
조율의 첫 음 ‘라’가 공연장에 울려 퍼지자 관객들의 기대감은 점점 더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스페셜 콘서트의 시작은 영화 ‘퍼스트맨’의 ‘The Landing’이었는데요. 아폴로 11호 사령선에서 분리된 착륙선이 달에 착륙하기 직전 이 과업이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긴장감을 불어넣는 곡이었는데, 아마 제천에서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감과 긴장감을 담은 첫 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후 이어진 영화 위플래쉬 삽입곡. 재즈곡인 만큼 오케스트라가 아닌 재즈빅밴드와 합을 맞춰갔는데요. 바로 직전 서울그랜드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뿜어낸 웅장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빠르고 통통 튀는 재즈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하고 있었습니다. 이 무대를 보면서 과연 허위츠는 재즈가 주전공이구나 싶었는데요. 그런데 검색해보니 허위츠는 대학 시절 클래식 전공이었고, 재즈 덕후였던 다미엔의 영향을 받아 재즈를 사랑하게 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재즈에 대해서는 오스카 피터슨의 존재만 알고 있었던 클래식 학도가 라라랜드의 재즈 음악을 작곡하다니. 그는 천재임이 틀림없습니다.
이번 콘서트에서 허위츠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고 하는데요. 14년 만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성큼성큼 피아노로 걸어가 영화 ‘퍼스트맨’의 ‘암스트롱’을 연주했는데, 피아노가 오케스트라 뒤편에 위치한 덕택에 한동안 카메라와 숨바꼭질을 하는 재밌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기존 영화에서 하프로만 연주되던 곡을 피아노 선율로 들을 수 있어서 이색적이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관객 앞에서 하는 연주여서였을까요? 약간의 실수와 함께 본인도 머쓱한 듯 웃어넘기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1부가 ‘공원 벤치의 가이와 매들린’, ‘위플래쉬’, ‘퍼스트맨’의 OST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2부는 관객들이 그토록 원하던 영화 ‘라라랜드’ 메들리로 이어졌는데요. 이번 스페셜 콘서트는 허위츠가 참여한 모든 영화의 음악을 한 공연에 올리는 최초의 공연이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기존의 곡들을 대규모 오케스트라로 편곡하거나 템포를 조정하는 등 세심한 조율이 이뤄졌다는 것이 잘 드러난 공연이기도 했습니다.라라랜드의 오프닝 곡이 시작되자마자 객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관객의 에너지에 허위츠는 만족한 듯 ‘씨익’ 웃으며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이어 나갔는데요. 지휘의 특성상 관객은 지휘자의 뒷모습밖에 볼 수가 없는데, 카메라를 지휘자의 정면에 배치해 스크린에서 허위츠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2부에서는 특히 허위츠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요. 자신의 지휘와 솔로 연주의 시너지가 폭발하면서 화려한 스캣이 이어지자 자연스럽게 그 만족감이 표현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솔로 연주자들의 실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스페셜 콘서트의 하이라이트는 허위츠의 반주에 맞춰 부른 이충주, 민경아 배우의 ‘City of Stars’였는데요. 허위츠의 피아노 솔로 반주 위에 입혀진 매력적인 중저음의 이충주 배우 목소리와 청아한 민경아 배우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단연코 최고였습니다. 그 외에도 전나영, 이수정, 연지 리, 문은수 배우가 참여해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 그대로 색색의 옷을 맞춰 입고 ‘Someone In The Crowd’를 소화한 모습도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된 한 여름밤의 페스티벌, 내리는 비와 함께 저스틴 허위츠와 재즈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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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스왈로우> 리뷰
영화 「스왈로우」(2020)의 주인공인 헌터(헤일리 베넷)는 남편인 리치(오스틴 스토얼)와 함께 결혼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되고 헌터는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먹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행복하리라 예상했던 결혼 생활은 답답한 생활의 반복이다. 리치의 가족으로부터 지극히 이방인으로 대우받고 단지 대를 잇기 위해 필요한 존재로 여겨지는 헌터에게 가족 간의 유대감은 고사하고 어떠한 (감정적인) 출구도 제공되지 않는다. 탈출구 없는 결혼 생활과 원치 않아 보이는 임신으로 헌터는 이식증을 앓게 된다. 영화는 헌터가 겪는 이식증을 헌터의 생활과 맞물려 제시함으로 병을 앓는다는 느낌보다 신비로움에 이끌려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생활의 유일한 탈출구를 찾은 듯 보이게 한다. 그러면서도 이식증의 자기 파괴적인 성격을 쾌락과 고통을 넘나드는 헤일리 베넷의 연기로 드러내며 스릴러적 요소도 놓치지 않았다. 영화는 이식증이 발병하기 전 공허하고 단조로웠던 헌터의 삶과 대비된 그 이후의 삶을 화려해진 집의 공간과 빠른 템포로 마치 안정적이고 건강한 헌터를 보는 듯한 정서를 불어넣어 관객이 안정감과 불안을 동시에 느끼도록 한다. 그러나 영화는 관객들이 이식증을 들킬까 마음을 졸이던 순간들을 그리 길게 끌지 않는다. 이 영화가 진정으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헌터의 이식증이 리치에게 발각된 이후 드러나는 헌터의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이식증으로 인해 받게 된 심리 상담에서 불현듯 그의 과거가 드러나며 영화는 관객에게 이식증을 앓는 헌터에 집중하기보다 선행해 존재하던 헌터라는 한 인간을 다시 처음부터 이해하도록 한다. 헌터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의 과거를 심리 상담가에게 말한다. 헌터의 엄마는 강간범의 소행으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하였고 종교적 이유로 임신중절을 선택하지 않았다. 헌터 자신의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던 이 과거를 헌터는 ‘많이 생각하여’ 극복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거가 리치에게 밝혀진 이후 헌터가 보인 심각한 불안 증세와 이식증의 재발은 아직 헌터가 그 과거의 영향력 안에 있음을 보여준다. 헌터는 결혼생활 중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이식증이 발병되었다. 헌터에게 이식증은 주체성과 자율성을 증명하는 행위이자 억압적 상황에서 하나의 감정적 배출구로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원치 않던 임신을 한 후, 억압적 상황에 대한 반영이 이식증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에 주목해볼 수 있다. 임신의 과정에서 먹는 행위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헌터는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는다. 부푼 배를 보고도 행복해 보이지 않던 그는 사실 자신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주체적으로 표명하지 못하는 억압의 상황에서 원치 않는 임신에 대한 거부감을 이식증으로 발병시키고 그 잘못된 쾌락에 더 빠져듦으로 일종의 투쟁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헌터의 엄마와 헌터의 통화 내용, 그에 따른 헌터의 반응으로 유추해봤을 때 헌터의 엄마가 (의도적이라 확신할 순 없지만) 헌터의 동생을 헌터보다 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헌터의 엄마는 자신이 의지가 아닌 종교적인 이유로 임신중절을 선택하지 않았다. 헌터를 어쩔 수 없이 출산한 엄마에게 헌터는 자신의 딸인 동시에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제공한 강간범을 연상시키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엄마와의 관계에서 헌터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의 온전한 의지로 탄생된 필연적 존재’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자라났을 것이다. 따라 헌터는 자신의 존재로 인해 누군가가 행복해지는 경험에 대한 결핍이 있었고 이 관계에 대한 집착이 낳은 결과가 리치와의 관계이다. 그가 자신 때문에 행복해했기에 그의 모든 선택을 따랐고 그를 사랑했을 것이다. 이 사랑의 관계는 결국 관계에서 헌터를 수동적인 존재가 되도록 했고 억압적이고 고립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게 했다. 헌터는 혼자 지내게 된 모텔에서 리치에게 진심을 털어놓는다. 이제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흘러가는 상황을 맞이한 헌터는 더 이상 이질적인 것(흙)을 삼켜내지 못한다.
다른 가족에게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한 헌터는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의 집으로 간다. 강간범의 흔적으로만 그를 바라보았던 타인의 시선에 대한 수많은 경험들은 헌터에게 헌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던지도록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자는 자신을 탄생케 한 아버지였을 것이다. 마침내 헌터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권리로 그 물음을 던졌고 아버지라는 작자는 대답했다. 헌터는 헌터가 그를 닮지도 않았음을, 그가 가진 비열한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헌터는 부끄러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드디어 확인받았다. 헌터는 누구의 흔적으로서도 아닌, 누구에게 사랑을 주어야 하는 존재도 아닌 ‘헌터‘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헌터가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상황에서 내린 첫 번째 선택은 임신중절이다. 헌터가 가진 아이는 마치 헌터를 닮았다. 누군가의 간절한 의지로 생겨난 존재가 아니다. 헌터의 선택에는 배 속의 존재가 자신과 같은 운명을 반복하도록 두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겼을 것이다. 원치 않는 임신으로 생기는 비극의 굴레를 끊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헌터뿐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스릴러적 분위기로 시작하였으나 곧 드라마로 전환되어 주인공인 헌터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아닌 그의 삶에 주목한다. 헌터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여성이 겪는 이타적이고 고립된 결혼생활부터 임신중절 선택까지 현재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여러 상황과 정서를 영화에 반영했다. 이 영화의 이야기를 한 여성이 과거를 극복하고 주체성을 획득하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헌터의 출생부터 마지막 헌터의 선택까지 이 이야기는 중점적인 주제로서 임신중절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말한다. 헌터가 자신에 대한 결정, 통제권을 생물학적 아버지 앞에서 온몸으로 부르짖은 뒤 행했던 일이 임신중절이었다는 사실은 단지 임신중절의 선택권을 임신을 한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이가 행사했다는 의미를 가질 뿐이다. ‘현실의 반영‘인 영화는 임신중절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다루었고 더불어 ‘반영의 현실’인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통해 이 이야기를 모든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시키며 같은 상황에 놓여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여성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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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 올라탄 사람은 두 번 다시 내릴 수 없는
살면서 다른 사람이 되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타인의 삶을 부러워 해 본 적은 있다. 대체로 우리는 나보다 더 높은 것을 바라보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가끔은 나의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도 어쩌면 다른 누군가에겐 갖고 싶은 꿈 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 <화차>의 선영처럼.
주인공 문호는 성실하고 다정한 수의사다. 병원밖에서 강아지를 보고 있는 선영을 보고 첫눈에 반해 사랑하게 되었고, 둘은 누구보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본격적인 결혼이야기가 오가고 문호의 부모님을 뵈러 가던 중에 문호는 잠시 휴게소에 들러 커피를 사러 들어갔는데 커피를 사 오고 나니 선영이 사라졌다.
문호는 바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고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당황한 그는 그녀가 두고 간 머리핀만 하염없이 들고 있다 정신을 차린 후 경찰에 신고한다. 하지만 경찰들은 단순한 가출이라면서 수사를 해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문호는 전직 강력계 형사인 사촌 형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게된다.
행복한 날을 보내는 중에 어떤 복선도 없이 갑자기 사라진 연인. 사촌 형은 문호에게 그녀의 이름부터 모든 것이 전부다 거짓말이었다고 말한다. 문호는 처음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아니 믿을수 없었지만 실종 당일, 은행잔고를 모두 인출하고 살던 집의 지문까지 지워버린 선영의 범상치 않은 행적에 그녀가 실종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사라진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그녀가 어떤 과거를 지나왔는지도.
선영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게 되면서 엄청난 빚을 혼자 떠안고, 사채업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그 후, 여자는 자신의 삶을 바꾸고싶어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운영하는 가게에 사채업자가 쳐들어와 남편도 떠나게 된다. 사채업자들 때문에 유흥업소에도 나가야 했던 삶.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여자는 누구도 찾지 않는 연고 없는 여자를 찾아서 그녀를 죽이고 신분세탁을 한다. 그렇게 원래 이름인 경선을 지우고 선영이 되었다.
경선의 집을 수색하던 중에 신분세탁을 하기 위해서 살해한 진짜 강선영의 시체를 찾게 되고, 이로 인해 경선은 쫓기게 되면서 체포당할 위기에 빠지게 되고 도망치던 중 에 옥상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경선은 자신의 삶을 바꾸고 평범하게 살고 싶었지만, 그것은 잘못된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이었다. 죄를 짓고 누군가의 삶과 이름을 뺏어서 산다는 것은 어쩌면 괴로운 지난 삶에서 벗어 나는게 아니라 더 큰 지옥을 만든 건지도 모른다. 어쩌다 따라온 행복에도 불안이 따라오고, 별다른 일이 없는 일상도, 작은 행복도 모두 온전히 누릴수 없는 마음. 그렇게 나는 나일뿐인데, 숨쉬며 살아있지만 나로써 살아가지도 못하고, 타인으로써 인생도 꾸려가지도 못하는 삶. 내가 아닌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불완전하고 불안한 일상을 견뎌야 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제목인 ‘화차‘ 는 악행을 저지른 망자를 태워 지옥을 향해 달리는 일본 전설 속의 불 수레를 뜻한다. 한 번 올라 탄 자는 두 번 다시 내릴 수 없는. 타인의 삶으로 살기 시작한 순간부터 불안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슬픔과 고통.
문호가 선영에게 한 말을 떠올린다.
'너는 무슨 잘못이 있어서 이렇게 살아? 아무 잘못 없 이 산 네 인생이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졌는지 봐.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도 매일 죽어.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 잘 살면 되는 거야. 그게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거야.‘
진심으로 사랑해준 문호에게 불안의 비밀을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둘은 행복했을까 아님 불안이 배가 되었을까? 내가 그가 사랑했던 선영이 아니라도 마음으로 아껴준 사람에 있었다는 것. 어쩌면 경선은 그 것으로도 괜찮았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화차에서 뛰어내릴때라고. 그렇게 끝내지 않으면 끝나지 않은 고통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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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끊어내지 못한 과거
지금의 나는 어떤 것들로 만들어진 걸까.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것들은 DNA라는 틀을 따라 계속 이어져온 것이어서 무척이나 분명하다. 하지만 그 외에 우리는 꽤 많은 것에 영향을 받는다. 집안 환경이나 사회적인 분위기도 이어져 내려오면서 조금씩 그 당시 상황에 맞게 변화한다. 그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오는 모든 것들 속에 작게나마 변하는 것들이 있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이 함께 지금의 나라는 존재를 만든다.
이 모든 연결고리의 시작은 결국 과거다. 과거의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역사를 우리는 평상시에 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결국엔 영향을 받으면서 현재를 만들어간다. 우린 미래에 내가 어떤 결과를 받게 될지를 궁금해하며 살아가지만, 가끔씩은 과거를 돌아보기도 한다. 조상의 역사를 찾아보고 그것을 통해 내가 다르게 갈 방향이 어떤 쪽인지를 생각해 본다. 때론 점집이나 무당을 찾아 현재 좋지 않은 것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미래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영화 <파묘>는 젊은 무당 화림(김고은)의 뒤를 따라가는 영화다. 화림은 그의 일을 돕는 봉길(이도현)과 함께 기이한 병이 대물림 되고 있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 가족에게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3대째 이어내려오고 있는데, 무당인 화림은 이 병이 조상의 묫자리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이 가족에게 찾아온 기이한 병은 이 집안의 미래를 막고 있는 병이면서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이 과거를 끊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집안의 장손은 네 사람을 고용해 파묘를 하려고 한다.
첫 번째 감정 - 화림의 두려움
화림은 무당의 관점에서 본능적으로 이 모든 문제가 묫자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이건 그의 몸에서 느끼는 본능적인 감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묫자리의 위치는 무척 좋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 화림은 관객이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이다. 묫자리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존재까지 감지할 수 있는 화림은 이 영화 안에서 만큼은 초능력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 내내 초자연적인 것들을 감지해 내고 그걸 다른 인물들에게 설명해 나간다.
여러 인물들 중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화림은 사실 초자연적 존재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존재의 힘에 따라 다른 태도를 보인다. 초반에는 자신만만하게 굿을 하고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다른 인물들을 이끌어나간다. 하지만 좀 더 강한 존재가 등장했을 때, 그는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가 두려움에 풀썩 주저앉는 순간, 그걸 보는 다른 인물들과 관객들은 두려움을 넘어서 공포를 느낀다. 달리 대항할 방법이 없어 보이는 엄청난 존재가 화림의 두려움 때문에 더 무서운 존재가 된다.
사실 젊은 무당인 화림을 겉으로 보기엔 무서워하는 것이 없고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그도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화림이라는 인물이 만들어내는 공포스러운 점이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엄청난 힘을 가진 과거의 존재다. 이미 육체가 없는 과거가 만들어내는 공포 속에서 화림은 자신의 미래마저 잡아먹어버릴 듯한 힘을 느낀다. 이 영화가 이야기 전반부에 감추고 있는 과거는 미래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청산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화림은 그런 청산되지 않았던 과거에 짓눌린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나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무당의 옷을 입고 칼춤을 춘다.
두 번째 감정 - 영근의 체념
무당 화림이 파묘를 위해 찾는 인물은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다. 그중에서 영근은 아주 평범한 장의사다. 죽은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무덤에 묻히거나 화장하는 순간까지 그는 덤덤하게 자신의 일을 해왔던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평범한 인물인 영근은 풍수나 불가사의한 일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그저 돈벌이를 위해 이 일에 뛰어들었다. 풍수사 상덕도 마찬가지지만, 상덕은 적어도 풍수지리라는 지식을 공부하고 배운 경험이 있다. 하지만 영근은 그야말로 평범한 관찰자의 입장이 된다.
영근은 큰 능력이 없지만 화림, 상덕, 봉길과 함께 파묘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는 그 모든 과정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고 빨리 상황이 마무리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후반부 엄청난 존재가 등장하는 것을 본 이후 영근은 빨리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그에게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빠르게 그 상황을 체념해 버린다.
그의 체념은 과거를 끊어내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지 않는다. 누군가가 다치고 힘든 상황에 놓여서야 움직이는 영근은 끝까지 그에게 찾아온 과거와 적극적으로 싸우기보다는 그저 옆의 사람을 돕는데만 급급해있다. 그는 비록 모든 상황을 체념했지만 주변 사람들까지 저버리진 않았다. 끝까지 과거를 끊어내려는 사람들 옆에 서서 작은 힘이나마 돕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근은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던 일반 국민들을 대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체념은 했지만, 돕는 걸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감정 - 상덕의 집념
상덕은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화하는 캐릭터다.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의 말들은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 왠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한 편으론 그의 말에 신뢰가 가는 느낌도 있다. 아마도 그가 그 일을 하는 껄렁하고 대충 하는 듯한 태도가 그런 느낌을 주는데 이야기 내내 상덕은 이런 태도를 계속 유지한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선 무당 화림의 말을 더 신뢰하게 되고, 상덕의 말이나 입장은 한 번 걸러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공포스러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 이후 이 존재와 과거에 대해서 제대로 파헤치는 건 상덕이다. 이 이야기에서 그의 역할이기도 한데, 그는 어느 순간부터 진짜 과거 모습을 알고 싶은 호기심을 느낀다. 진실에 조금씩 다가간다는 걸 느끼면서 상덕의 집념은 점점 더 커진다. 특히나 영화의 말미 그의 집념이 폭발하듯 몰아치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의 집념이 폭발하는 그 순간은 바로 나쁜 과거를 청산하고 끊어내는 순간이다. 그래서 꽤나 통쾌하게 느껴진다. 마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몰랐던 과거를 찾아내고 그 당시의 잘못된 무언가를 벌하고 끊어내는 느낌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상덕의 집념은 무당 화림의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과거 청산의 힘이다. 그가 힘껏 과거를 내리칠 때 모든 것이 바로잡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영화 <파묘>는 우리 모두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 영화다. 오컬트 장르로 시작한 영화는 중반부 이후 그 장르를 공포로 완전히 바꾼다.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꽤나 쉽게 설명하고 묘사하고 있는 공포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 좀 더 쉽고 대중적으로 역사적인 문제들을 엮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에 끝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나 공포스러운 과거와 그것을 끊어내는 과정을 보면서 아직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유산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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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다비전 예고편으로 놓치면 안되는 마블의 미래
#산돌구름 #완다비전 #마블예고편 #이스터에그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영상 타임라인*
00:00 인트로
00:45 신문 속 이름, 존
01:14 half sitcom, half MCU spectacular
02:18 하우스오브엠
03:20 쌍둥이, 위칸과 스피드
04:09 할로윈 코스튬
04:40 애거사 하크니스
06:18 멀티버스와 완다
08:02 아웃트로2020. 09. 23 영상입니다.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마블쟁이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arveleroffi...*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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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스> 메인 예고편
"미스 프랑스에 나갈 거예요"
동네 복싱장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지긋지긋한 매일을 보내던 알렉스.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고, 자신의 오랜 꿈을 기억해낸다.
좌충우돌 미스 프랑스 도전기!
한계를 뛰어넘은 당당한 발걸음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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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스위트홈 시즌3> 공식 예고편
괴물화의 끝이자 신인류의 시작을 비로소 맞이하게 된 세상, 괴물과 인간의 모호한 경계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이들의 더 처절하고 절박해진 사투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 시즌3 7월 19일,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