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수2022-11-16 19:08:09
안타깝지만 이 영화는 공포 영화가 아니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 리뷰
(출처: 네이버 영화)
경고: 스포일러 주의!
시골 소녀 엘리(토마신 맥킨지)가 런던의 어떤 패션 대학에 입학한다.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그녀의 꿈 속에는 샌디(안야 테일러조이)라는 여자 가수가 나타난다. 샌디가 살았던 1960년대 런던은 엘리가 항상 꿈꾸는 장소이기도 하다. 엘리는 샌디를 엿보며 샌디처럼 성공을 꿈꾼다. 그러나 샌디는 성공하지 못한다. 샌디 주위의 남자들은 샌디를 이용했다. 그리고 살해했다. 그 꿈 이후 엘리의 현실 속에는 샌디의 유령이 나타나 엘리를 괴롭힌다.
나는 이 정보를 듣고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했다. 꿈과 현실이 모호해지는 모습에 대한 기대, 그 갈등을 마무리하는 방법에 대한 불안. 결론부터 말하자.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모호해지는 모습은 성공적으로 묘사했다. 꿈 속 장면에 나타났던 런던 풍경도 붉은 색깔을 사용해 화려하고 고풍스럽게 묘사되었다. 그러나 꿈과 현실의 갈등을 마무리하는 데는 실패했다. 초반 ~ 중반에는 갈등을 잘 키우는 듯하더니 후반에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 공포 영화에 기대했던 것을 깨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포 영화에 나오는 공포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공포 자체의 정체를 밝히는 대신, 공포 때문에 겁에 질린 사람들의 모습만 잘 보여줘도 충분히 재밌는 영화가 나온다. 나한테는 <서스페리아>나 <킬링 디어>가 그랬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는 공포를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놓지 않는다. 공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제시해 초반 ~ 중반에 쌓아올린 공포감을 무너뜨려버린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를 통해 공포 영화 특유의 오싹함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빨간색, 피, 혼령으로 가득 찬 연출에도 불구하고. 그것보다 인상에 남은 것은 엘리의 성장이었다. 도시 생활 속의 공포를 극복하는 과정이 엘리가 좋아할법한 신나는 옛날 음악을 타고 전달된다. 영화를 공포 영화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다. 공포 영화의 연출을 빌린 성장 영화라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에드가 라이트'가 연출한 '공포 영화'라는 키워드 때문일까. 이 영화에 느꼈던 모든 의문이 해결된 뒤 나한테는 아쉬움밖에 남지 않았다. 보통 공포 영화가 끝날 때는 끝났다는 안도감이 드는데 말이다. <라스트 나잇 인 소호>가 공포에 대해 설명을 자제했다면 어땠을까. <유전>처럼 여운이 짙은 명작 호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나한테 에드가 라이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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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명할 수 없는 어딘가에 갇혀있는 사람들
'여름에 공포 영화를 보자'라는 말은 누가 만들어냈을까? 난 특히 여름에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다. 공포 영화는 라면 같은 존재다. 어느 순간에든 보기 좋은 그런 장르다. 그리고 공포 영화라고 해서 특히 여름에 개봉하거나 그러지는 않는 것 같다. 로맨스 영화라고 봄에만 개봉하라는 법 있나? <이터널 선샤인> 같은 영화도 겨울이 주요 소재인 영화인걸? 사실 계절에 특화된 장르라고 하는 건 없을 것이다. 그냥 잘 만들면 모두가 행복하다.
그렇게 잘 만든 영화는 모두를 행복하게 하기 충분하다. 그런데 어떤 영화는 세상이 알아봐 주지 않아서 혼자서 불행하다. 왠지 많이 언급된 것 같은 영화 <소름>, 초중반부의 잔잔함과 쉽지 않은 이미지도 없어 '뭐가 무서운가'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일단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고 있지 않다. 어찌 보면 '뭐야 재미없을 것 같은데?' 어림짐작하기 쉽고 손도 안 갈 것이다. 네이버에 들어가서 일일이 1200원 주고 결제하는 건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리뷰어들과 평론가들, 또 팬들이 '왜 우리 호러영화의 클래식 중 하나'라고 언급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영화 <소름>은 갑툭튀 점프 스케어 없이, 잔인한 비주얼 없이 머릿속에 오래오래 남는 공포영화다. 은근히 많이 못 본 영화 <소름>. 집에서 연인 혹은 가족, 친구들과 불 끄고 태블릿(모바일)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분명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2001년 낡아 무너질 것 같은 금화 시민아파트로 가보자.
문을 열고 들어온 이방인
낡은 아파트에 새로운 입주자가 생겼다. 미금 아파트 504호에 새로 들어온 남자의 이름은 용현이다. 504호에는 끔찍한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바로 용현이 입주하기 전에 소설가 광태가 불에 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집주인은 사람이 죽었다는 부정적인 에피소드에도 불구하고 사후처리를 깔끔하게 마무리짓지 않았다. 같은 5층에는 선영이라는 여자가 살고 있다. 선영은 아이를 잃어버리고 남편에게 맞고 산다. 남편은 이에 대한 충격 때문인지 매일 도박에 빠져 선영을 때리고 있다.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번 돈도 다 뺏어가는 나쁜 놈이다. 용현의 이웃사촌으로는 출판사 하다 망한 남자가 살고 있다. 이 남자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공포소설을 쓰고 있다. 선영의 이웃에는 동네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강사 은수가 살고 있다. 이 은수는 화재로 사망한 작가를 사랑하던 여자였다. 선영과 은수는 금세 친해지게 된다.
모르는 사람이 봐도 용현은 선영에게 관심이 있다. 내면이 상처 투성이인 선영. 용현을 그냥 무시하지만 보유 중인 택시로 선영을 데려다준 일을 계기로 어느 정도의 친분이 쌓이게 된다. 근데 남편은 세상 둘도 없는 찌질이다. 이를 보고 선영을 구타하는 남편. 이 폭력사태는 가라앉을 틈을 주지 않는다. 점점 더 심하게 맞는 선영. 선영은 참다못해 남편을 살해하게 된다. 선영과 용현은 남편의 사체를 유기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선영과 용현은 예견조차 하지 못했던 운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가장 무서울 법한 것
작년에 <랑종>을 인상 깊게 봤던 기억이 난다. 호불호가 강력하게 갈렸던 이 영화. 나는 극장에서 나가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는데 싫어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영화가 무서웠던 이유는 '설마 이렇게 될 것 같아'가 죄다 맞아떨어져 서다. 그리고 그 예상이 점점 수위를 높이면서 커졌으니 눈을 질끈 감고 봤다. 이 <소름>이 견지하고 있는 공포도 이와 유사하다. 모두의 인생에 있어 가장 무서운 일이 뭘까? '설마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만약에의 공포일 것이다. 사람마다 다른 태도로 이 '만약에의 위기'를 벗어나곤 한다. 근데 이 위치에 한번 쳐해 보면 삶을 살아가면서 이 기억이 계속해서 든다. 또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저 사람처럼 되면 어떡하지. 이 두려움과 함께 인생의 과제들을 이겨낸다. 그게 나를 포함한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인생일 것이다. 영화는 우리 내면에 있을법한 구멍을 포착해서 촘촘하게 그물을 짜 놓았다. 이 영화가 호러 분위기를 만드는 설정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이렇게 되지 않을까'라고 짐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게 짜여 있는 소설처럼 이 영화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얼핏 던져졌던 키워들이 하나하나씩 모여 광폭하게 폭주한다. 이 폭주하는 이야기는 '왜 예견하지 못했음에도 이 운명에 기시감이 드는가'를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아파트의 안과 밖
아리 애스터의 <유전>이 생각난다. 이 <유전>에서 중요했던 설정 중 하나는 네 명의 가족이 살고 있는 공간이었다. 이 집은 애니가 구현했다. 애니는 디오라마 아티스트다. 애니는 이 집을 디오라마로 묘사했다. 이 '집과 인물'사이의 관계는 이 영화의 키워드와도 어울린다. 세상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애니의 맘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공간인 '집'과 애니의 직업이 공포를 만드는 소재로 쓰인 것이다. 이와 별개로 오두막이라는 공간은 또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사용된다. 누가 여기서 어떤 행동을 하는가, 와 같은 사소한 포인트 하나하나가 엔딩신을 향해 달려가는 디딤돌이니 아리 애스터가 설정한 공간적 배경은 영화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 이렇게 공포영화에 있어 공간 세팅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는 우리나라 공포영화 <불신지옥>에서도 재현됐다. 아파트라는 공간을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이야기가 이 영화의 주요 내용이었다.
이 <소름> 역시 앞 두 영화처럼 아파트라는 공간 세팅이 중요하다. 일단 분위기를 만드는 미술의 비주얼이 눈에 띈다. 당시 금화 시민아파트의 외관에서 오는 낡은 비주얼은 낡았기 때문에 압도적이다. '저주가 걸린 집'의 개연성을 주는 듯한 공간 설정이었다. 또 이 아파트 안에 깔려있는 수많은 유사 쓰레기들, 듬성듬성 붙어있는 벽지, 누리끼리한 아파트의 색감까지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는 아파트라는 공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이 아파트만큼이나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는 공간은 '아파트 밖'이라는 설정이다. 이 영화가 무서운 이유는 서서히 조여드는 압박감과 패배감이다. 근데 영화 전반적인 줄거리가 '이렇게 될 것 같아서 발버둥 치는 내용'이라 '이렇게 했기 때문에 저렇게 대응함'식의 반복이라면 이 영화 하이라이트에 집중되는 압박감이 살짝 퇴색될 수도 있다. 영화는 해야 할 말에 힘을 빡 주고 있기 때문에 선영과 용현이 아파트 밖에서 행복한 모습을 중심으로 극을 이끌고 간다. 이 두 사람이 느꼈던 행복까지 누군가가 설계한 공간 아래에 놓아있는 사람처럼, 영화는 두 인물을 그렇게 묘사한다. 공간마다 임팩트를 주는 윤종찬 감독의 연출이 빛을 발현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반짝반짝 빛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김명민, 장진영 배우다. 지금 2022년 김명민 배우는 드라마 판에서 슈퍼스타다. 그와 반대로 영화 출연작들은 죄다 시원찮다. 솔직히 하나도 기억이 안 날 정도다; 근데 이 <소름>은 김명민 배우의 영화 출연 이력 중 가장 빛나는 영화가 아닐지 생각이 든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차가운 연기와는 정반대의 퍼포먼스를 소화한다. 비극적인 성장 서사를 갖고 있는 탓에 폭발하는 분노, 선영에게 의존하는 내면, 이기적인 성격, 또 후반부 특정 신의 표정연기까지 파릇파릇한 김명민 배우의 높은 잠재력이 느껴지는 영화다. 또 지금은 별이 된 장진영 배우도 굉장히 뛰어났다. 이 영화에는 베드신이 있다. 또. 남편에게 맞는 장면도 나온다. 그리고 영화의 배경이 되어 리액션 연기를 이끌고 가야 한다. 내가 배우라면 '이런 역할 해보고 싶다'라고 행복 회로를 굴릴 법한 역이었다. 장진영 배우는 이를 서릿발같이 차갑게 소화하며 영화의 분위기를 잘 이끈다.
앞의 이 두 배우의 연기도 탁월했지만 기억에 남는 건 기주봉 배우다. 홍상수 영화에서 '사랑이 최고야' 외치는 아저씨로 자주 봤던 기주봉 배우. 이 영화에서의 기주봉 배우는 '아런 역할일 것 같아' 예상하지만 그 외의 방식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대사 치는 톤, 표정, 인상, 심지어 글 쓸 때의 자세까지 홍상수 영화에서 봤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테크니컬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무엇을 절제하고 있는가'라는 인물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멋진 연기였다.
맨 위의 위로
많은 분들이 모를법한 영화다. 실제로 관객 수가 10만 명도 되지 않았으니 구체적인 수치도 근거로 들 수 있을 정도다.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도 윤종찬 감독이 비교적 인지도가 떨어지는 분이고 넷플릭스나 왓챠에 서비스하고 있는 영화도 아니다 보니 접근성이 그렇게 높진 않다(그 대신 네이버에서 1200원으로 구매할 수 있다. 나도 이를 통해서 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엔딩을 향해 달려가는 공포는 우리나라 호러 영화 중 위에 있는 이유를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장진영 배우의 파리한 비주얼, 소리 지르는 톤, 김명민 배우의 뜨겁게 폭발하는 광기, 낡은 아파트, 깜빡깜빡거리는 조명, 귀가 아픈 빗소리, 어두운 색감 등 이미지에 의한 공포-다른 영화에서도 볼 수 있는-도 챙기면서 서서히 내면을 잠식시키는 공포를 많은 분들이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곡성>과 함께 우리나라의 호러 영화 중 가장 돋보이는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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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결국 다시 혼자가 될 것이란걸 알기 때문에
업보. 불교에서 쓰는 말이다. 선악의 행업을 말미암아 삼은 과보를 뜻한다. 이 업보의 주체는 상황마다 다르다. 인간관계에 정답이란 없으니 당연하다. 내가 업보를 돌려받을 수도 있고 타인이 누군가에게 줬던 상처를 내가 입힐 수도 있다. 불교를 정의하는 또 다른 가치관이 있다. 윤회다. 생명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내가 지금 태어났다고 한 건 언제쯤 죽는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또 나는 다른 무언가로 태어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좋은 일 나쁜 일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지금 하품을 크게 하며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업보가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크게 준 상처의 대가를 돌려받고 있는 셈이다.
이 가정을 계속해서 곱씹다 보면 인생이 허무해진다. 공감을 못 받으면 어떡하지. 이겨내도 막상 같은 시련이 덮치면 어떡하지. 시간이 지나면 다 없어지는 일인데. 이러다 내가 받은 상처가 세상의 기준에 끼지 못한 게 된다면 참 외롭지 않을까. 이 감정이 내가 단 1마디도 반박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잘못한 거니까 그런 거겠지.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상대를 모욕할 방법을 고민한다. 그리고 알게 된다. 일어날 일이 일어났고, 나 역시 어떤 것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주변인들에게 더 감사해야 한다는 걸. 갑자기 나더러 화려하다고 했던 내 스승 중 한 명의 얼굴이 떠오른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연락할 일은 없어 마음으로만 그분의 행복을 기원한다. 나는 내가 성공했던 일들보다 훨씬 더 초라한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무언가에 휘둘리는 인간이기도 하고.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아무것도 없는 영화다.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눠진다. 한국의 인기 여배우가 유명 영화감독과 불륜설이 난다. 국내 여론은 당연히 난리가 나고 베를린으로 도피한다. 그리고 아는 언니랑 대화를 나눈다. 1부 끝. 2부는 여배우가 한국으로 돌아온다. 불륜이 났던 남자 감독과 만난다. 2부 끝. 이 영화는 줄거리만 단출한 게 아니다. 영화의 화법도 조용하다. 플롯이랄 게 없다. 조명도 제대로 안 된 것 같고. 인물 갑자기 튀어나오고. 대화도 사실 의미가 없다. 난 왕가위를 좋아한다. 왕가위 영화의 핵심은 때깔이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왕가위의 감성과는 전혀 딴판이다. 왕가위는 스트릿룩으로 멋을 뽐낸 사람쯤 된다면 (이 영화에서의) 홍상수는 맨투맨에 슬랙스만 입었는데 신발이 짚신인 사람이다. 난 난해한 옷차림인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은 뭘까.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비춰서 과연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없다. 이 사람이 말하고 싶은 건 없다. 2021년 오늘 영화를 다시 보고 나서 알았다. 이 사람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다. 딱히 우리에게 무슨 말을 걸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혼자 밤 해변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공유하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말이 아니라 상황을 보여주려고 했다. 감독은 어떤 감정을 생각하고 이 영화를 쓴 걸까? 난 외로움과 후회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영희가 유일한 속마음을 털어놓는 공간은 해변이다. 그녀는 애인을 좀 많이 신경 쓴다. 친한 언니에게도 애인 이야기를 한다. 지인들과 술 먹을 때도 애인 생각을 한다. 해변에서도 애인의 얼굴을 그린다. 그러다가 해변에서 잔다. 시간이 지나고 한국으로 돌아온다. 한국에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묘사되지 않는다. 그냥 그녀는 그러고 만다. 아무 일 없는 듯이. 시간이 지나 그녀의 그리움이 어떻게 됐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2부를 보자. 바다에서 지인들끼리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게 전부다. 근데 이건 꿈이었다. 영화가 보여주는 건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2부가 끝났다. 영화 안에서 사랑하는 애인을 만났던 건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아니다. 모든 게 꿈이었다. 결국 그녀는 혼자서 길을 걷는다. 영화의 시작은 친구와 함께 대화하는 장면이었는데 끝은 혼자다. 갈등의 해결? 그런 것 없다. 주인공의 해피엔딩? 없다. 새드엔딩? 당연히 없다. 아무것도 없다. 이 상황은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외로움이란 무엇일까. 이 세상에 나밖에 없는 것 같은 기분이 외로움이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그런 막연함이 외로움이라 생각한다. 영희는 혼자서 소리친다.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냐고 주변인들에게 묻는다. 근데 이게 꿈이다. 내가 진짜 나쁜 년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 마저도 혼자만의 착각으로 끝났다. 그뿐일까? 영희의 애인인 감독은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본인만 사랑하는 나르시시스트다. 결과적으로 비행기 타고 13시간이나 걸리는 베를린에서 남자를 생각했던 것이 헛수고로 돌아가버렸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의 그리움은 꿈으로 매몰됐다. 남는 게 없는 셈이다. 이게 홍상수가 말하고 싶었던 감정이다. 외로움이다. 우리는 초입 10분 만에 이 영화가 이러다가 끝날 거란 걸 알고 있다. 감독이 홍상수니까. 근데도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밤 해변을 보는 것처럼 멍하니 앉아있다. 어차피 세상에 나를 공감할 수 없는 건 나밖에 없단 걸 우리 모두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엔 이유가 없다. 그냥 이 세상에 혼자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 가장 외로워진다. 그리고 그게 내가 만든 이유 때문이란 걸 알면 걷잡을 수 없이 후회가 커진다. 바닷가에 홀로 누워서 잠을 자고 싶다. 그냥 멍하니 시간만 지나면 좋을 테니까. 좌절과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 그러니까 나 포함한 모든 이들이 어려움이 있으면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는다. 아무것도 없을 땐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마지막 엔딩신 바로 전까지를 보니 아마 홍상수 감독도 그런 것 같다. 외로우니까. 이 모든 게 내가 자초한 일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나 보다.
근데 마지막 엔딩신을 보자. 영희는 일어나서 똑바로 걷는다. 이 모든 게 꿈이었단 걸, 다 의미가 없어서 외로워하고 있단 걸 아는데도 앞을 보며 걸어간다. 외롭다는 뜻이다. 근데 1부에서 남자 등에 업혀 가던 모습이 아니었다. 2부는 혼자서 걷는다. 이제 더 이상 후회하지 않는 것 같다. 난 이 영화의 그녀 모습에게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외롭지 않은가 보다. 아무도 찾지 않아도 될 정도로 씩씩해졌나 보다. 영희는 후회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 같다. 후회는 어차피 우리의 곁에서 영원히 떠나가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게 꿈처럼 사라진다. 타인은 나를 이해할 수 없어서 용서를 해주지 않을 때가 많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그녀를 이해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영희는 이 모든 게 허상임을 알고도 이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앞으로만 걷는다. 난 이런 그녀의 모습이 우리의 삶에서 후회가 작동한 후의 방식과도 닮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 나라는 인간이 비호감 덩어리라 멀어질 수밖에 없던 모순적인 순간들. 뭐 그런 순간이 우리의 일생에서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걸 벗어나지 못하면 후회가 된다고 생각한다. 또 막상 그걸 세상이 이해해주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면 그냥 방 안에서 가만히 있어야 하나. 우리는 걸을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이기적일지도 모른다. 세상에게 상처를 주고도 앞으로 걷는다는 건 받은 이들의 입장에선 피가 거꾸로 솟는 셈일 테니까. 현실의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홍상수는 부인에게 큰 상처를 줬다. 사실 어찌 보면 질이 안 좋은 사람이다. 그는 이런 자기의 모습을 영희에 투영해 우리의 한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 알아. 아무도 날 이해할 수 없단 걸. 그리고 내 애인도 이해할 수 없겠지. 내가 누리던 인기 영희의 주변인처럼 다 꿈처럼 사라지겠지. 사랑도 언젠가 실패할 테고. 그럼에도 영희는 벌떡 일어나서 앞으로 걸었다. 외로움과 후회를 보여줘도 사실 자기는 선택지가 없단 걸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건 홍상수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당연하다. 사실 어쩔 수 없다. 내가 잘못한 일에 내가 외로움을 느끼던 타인이 나에게 가한 이기심이던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게 인생사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쩔 수 없다. 이 모든 상황이 모순이고 후회 속에 갇혀 나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변명한 셈이다. 나도 외롭고 후회한다고. 이게 내가 느낀 감정들이라는 걸 보여줬다.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말하는 바도 없이 자기 인생의 한 부분을 완벽하게 비유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끊임없는 루틴의 반복 속에 산다. 반복되는 일상 속 비호감 덩어리인 나. 이 세상에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때의 나만 있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지나간 세월을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게 꿈같아서 즐거웠던 시간은 우리를 아프게 만든다. 그러면 어때. 이 세상은 모순덩어리다. 내가 보이는 것들이 타인은 눈치 못 채는 순간의 연속이다. 타인과 교감하는 순간까지 심지어 꿈같이 사라질 때가 부지기수다. 이건 결국 후회나 외로움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잠에서 깨어난 영희처럼 앞에서 걸어갈 수밖에 없다. 시간 속에 우리의 삶을 가만히 놔둘 수밖에 없다. 회의감이 가득한 게 우리의 삶이라고 한들 홍상수는 이 감정 속에서도 자기의 내면세계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여러모로 제정신이 아닌 감독이다. 홍상수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지만 나도 그에게 설득당해버렸다. 처음엔 양홍원의 <오보에>를 리뷰하려고 시작했던 글이 점점 길어졌다. 굉장히 중요한 기획서를 써서 모 교수님에게 내야 하는데 한 3시간 동안 이 글만 썼다. 이제는 해변에서 혼자 배회하지 않아야 할 텐데. 공부도 다시 시작해야 할 텐데. 7월 말의 밤이 조용히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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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렉트릭 스테이트 | 장점을 놓친 루소 형제의 실패작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97년, 인류는 로봇 반란에서 힘겹게 승리를 거둔다. 전쟁 초기에는 로봇의 공세에 고전했지만, IT 기업 '센터'의 대표 '이선 스케이트'(스탠리 투치)가 인간의 정신과 기계를 연결시키는 뉴로캐스터를 개발하면서 전황이 180도 뒤바뀐다. 파일럿이 정신으로 드론을 조종함에 따라 로봇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 전쟁은 미국 서부 외딴곳에 마련된 격리 구역에 로봇들을 가둔 후에야 완전히 종결됐다.
전후 뉴로캐스터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인간 활동 대부분이 뉴로캐스터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 하지만 뉴로캐스터의 위상은 갑작스레 무너진다. 천재적인 지능을 지닌 동생 '크리스'(우디 노먼)가 죽은 줄 알았던 '미셸'(밀리 바비 브라운)이 동생의 정신과 연결된 로봇 '코즈모'를 만난 뒤 뉴로캐스터의 실체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 동생을 찾아 나선 미셸은 밀수업자 '키츠'(크리스 프랫)와 로봇 '허먼'의 도움을 받아 로봇 격리 구역에 진입하고, 동생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깨닫는다.
장점을 저버린 루소 형제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로 MCU에 합류한 루소 형제. 그들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이르기까지 비평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내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들의 가장 큰 장점은 스토리텔링이었다. 그들은 거대하고 추상적인 차원의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와닿게 만들 줄 알았다.
일례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은 어벤져스의 통제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다. 자유를 중시하는 캡틴 아메리카는 UN의 통제를 거부했고, 아이언맨은 어벤져스가 초래했거나 앞으로 초래할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자칫 추상적일 수 있는 '자유 대 책임'의 대립을 루소 형제는 두 주인공의 개인적인 영역에서 풀어냈다. 절친이자 윈터 솔져였던 버키가 아이언맨의 부모를 암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두 주인공은 살벌하게 싸운다. 캡틴 아메리카는 세뇌당한 버키에게 자유의지가 없었다는 이유로 옹호한다. 분노한 아이언맨은 버키에게 복수하려 한다. 설령 세뇌당했어도 버키가 자기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그의 일관된 논리였다.
그런데 루소 형제의 스토리텔링은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영화의 주제와 메시지와 직결되는 일상적인 서사와 캐릭터의 매력이 돋보이지 않을 경우, 영화의 구성 요소를 하나로 묶을 구심점과 재미가 사라짐에 따라 표면적인 메시지만 덩그러니 남을 수 있다는 것. 넷플릭스가 제작비 3억 2천만 달러를 투입해 루소 형제와 협업한 오리지널 영화 <일렉트릭 스테이트>가 바로 이 경우에 해당한다.
단절된 현실을 반영한 디스토피아
<일렉트릭 스테이트>의 큰 그림은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미셸의 연설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셸은 사람들이 서로 접촉하고, 연결되어 있는 세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사람에게도, 로봇에게도 전기가 흐르고 있으니 사람과 로봇도 반목하지 말고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극 중 여러 설정을 고려하면 미셸의 마지막 당부는 미국 사회에 나타난 여러 형태의 단절을 겨냥하는 듯하다.
일례로 인간의 정신과 기계를 이을 수 있는 신기술인 뉴로캐스터는 SNS와 스마트폰에 대한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다. 미셸이 집 밖에 나왔을 때 거리는 적막하다. 몸은 집에 두고 정신에 연결된 드론만 다니기 때문. 이 대목은 각자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보느라 조용한 버스나 지하철을 연상시킨다. 사람들과 오프라인에서 부딪히며 소통하기보다는 온라인에서의 소통이 갈수록 늘어나는 세태를 SF적으로 빗댄 셈이다.
한편 로봇 격리 구역은 서로 다른 공동체를 단절시킨 여러 경계선에 대한 비유처럼 보인다. 로봇들이 인간의 명령을 거부하고, 인간과 같은 권리를 요구하자 미국 정부는 전쟁 끝에 로봇들을 격리 구역에 가둔다. 로봇 격리 구역이 미국 서부에 있다는 점은 원주민 보호 구역을 연상시키고, 로봇과 인간 사회를 격리한 거대한 장벽은 트럼프 1기 이후로 추진되었던 미국-멕시코 국경 장벽 같기도 하다.
관계를 다시 잇는 남매와 친구
사회적 단절이라는 이슈를 여러 층위와 측면에서 제시한 뒤,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상황을 개선하려는 몇몇 개인을 조명한다. 미셸과 크리스의 플롯은 두 측면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이별했던 남매의 재회는 그 자체로 오프라인에서의 접촉과 소통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은 줄만 알았던 미셸. 하지만 크리스의 정신이 담긴 로봇이 나타나고, 로봇과 모험을 떠나면서 그녀는 한때 단절되었던 남매 관계를 되찾는다.
미셸과 크리스 대 이선 스테이트의 대립도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학대받았던 이선은 사람 간의 관계가 갖는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설령 사람들이 뉴로캐스터 속 세계에 갇힌 나머지 적막해진 세계도 안정적이라며 칭송한다.
이에 더해 이선은 뉴로캐스터에 천재적인 계산력을 지닌 크리스의 뇌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멀쩡한 남매를 생이별시키까지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는 인간과 로봇의 형태로 재회한 남매가 동생의 뇌를 착취하는 뉴로캐스터 기술을 파괴하는 전개에는 여러 의미가 동시에 깃든다. 단순히 동생을 구출하려는 모험은 물론, 파괴되었던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를 복구하려는 투쟁으로도 미셸의 서사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키츠와 허먼의 플롯은 또 다른 층위의 단절을 해소한다. 로봇 반란 중 죽을 위기에 처했던 키츠는 허먼의 도움 덕분에 목숨을 구한다. 종전 후 로봇 격리 구역이 생기자 키츠는 허먼과 함께 도망쳐서 밀수꾼이 된다. 이들의 관계는 마치 <그린 북> 속 '토니'(비고 모텐슨)와 '돈'(마허샬라 알리)의 우정 같다. 우정이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듯이, 개개인의 노력으로 사회적 경계와 구분을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왜'가 없는 이야기
하지만 <일렉트릭 스테이트>의 메시지는 공허하다. 거시적, 추상적 메시지를 일상적 경험으로 치환하는 캐릭터 각각의 플롯이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미셸과 크리스, 키츠와 허먼의 관계에 내포된 의도를 구현해 내는 디테일이 부족하다.
미셸과 크리스는 우애가 깊은 남매다. 누나는 아인슈타인보다 뛰어난 뇌를 지닌 남동생을 자랑스러워하고, 남동생은 그런 누나에게 의지한다. 하지만 그들의 남매애는 '왜'가 없다. 남매 관계가 유달리 돈독할만한 사연, 사건, 계기 등은 거의 제시되지 않는다. 남매의 정을 실감하기 어렵다 보니 죽은 줄 알았던 크리스가 로봇 형태로 나타나도, 미셸이 대의를 위해 크리스를 희생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도 특별한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
키츠와 허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들이 친구가 된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 로봇과 인간이 전쟁까지 치른 디스토피아 세계관에서 인간과 로봇의 우정이 싹트는 계기와 과정을 대사 몇 줄로 넘기기 때문. 이유도, 디테일도 없다 보니 그들의 우정은 스토리 전개를 위한 도구로만 소비된다. 실제로 미셸이 그들의 도움을 받아 로봇 격리 구역에 들어간 이후로 키츠와 허먼은 영화 전개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이처럼 주인공 간의 관계가 편의적으로 묘사되다 보니 메시지도 얄팍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주인공들의 관계가 오프라인에서 단절된 관계, 사회적으로 분리된 공동체 간의 관계와 명확히 대조를 이룰 때 메시지에 힘이 실린다. 그런데 정작 남매, 친구 사이에 대한 묘사가 일차원적이니 그와 대비를 이루는 주제와 메시지도 뻔하고 식상해진다. 미셸의 입을 빌려 의도를 직접 드러내는 결말은 교조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막대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일렉트릭 스테이트>가 아동용 영화 같은 결정적인 이유다.
보는 맛도 없다
더 나아가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스토리텔링의 허점을 만회할 만한 특별한 매력도 갖추지 못했다. 80, 90년대 느낌이 나는 카세트 퓨처리즘 요소가 반영된 시각 디자인은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로봇 반란으로 인해 문명이 몰락한 1997년을 배경 삼아 현실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전된 로봇 공학과 과학 기술의 디자인은 시청자의 눈길을 끌어당긴다.
그러나 독특한 디자인을 제대로 활용하지는 못했다. 특히 현실과는 다른 모습의 기술력을 강조할 수 있는 액션 연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루소 형제의 명성에 다소 가려졌던 단점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그간 루소 형제는 대규모 액션 시퀀스 연출을 버거워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중 와칸다 전투만 봐도 히어로 개개인의 활약상을 비출 뿐, 와칸다 군과 타노스 군이 집단으로 맞부딪히는 장면은 많지 않았다.
상술한 단점은 <일렉트릭 스테이트>에서도 반복된다. '센터'의 본사 건물 앞에서 펼쳐지는 로봇 대 드론의 대규모 전투 시퀀스는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그런데 정작 전투 장면은 일 대 일로 싸우는 드론과 로봇의 수를 늘려놓는 데서 그쳤고, 로봇과 드론이 한 집단으로서 대적하는 장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더해 각 로봇의 개성이나 특징을 부각하지도 못했고, 로봇과 드론의 움직임이 너무 느린 나머지 박진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일렉트릭 스테이트>는 OTT용 작품임을 감안해도 실망스럽다. 특히 감독의 명성에 비해 스토리텔링도 짜임새가 부족하고, 볼거리도 실속 없다. 루소 형제가 넷플릭스에서 제작에 참여한 <그레이 맨>, <익스트랙션>, <익스트랙션 2>와 비교해 보면 팝콘무비로서의 본분도 못하는 듯 보인다. 완성도만 놓고 봤을 때, 루소 형제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실패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Dreadful 끔찍한
생동감 없는 남매애와 우정으로 빚어낸 공허한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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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영화를 위한 영화
영화 리뷰에 앞서, 인상 깊었던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우선 영화의 장르는 예상컨데 코미디이다. 근데, 뒷자리 앉은 관객이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나 울컥했어. 너무 슬퍼" 라는 말을 했다. 왜인지 이해와 공감이 충분이 가는 대사다. 코미디인데 왜 슬프냐면, 이 영화는 누군가에겐 다큐멘터리다.
영화 감독 '000'
영화는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대상을 받은 '지석'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연출인 줄알았는데 실화였다고 한다.) '지석'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지만, 오래 사귄 여자친구의 아버님에겐 그저 '영화 감독이라는 꿈을 꾸는 능력 없는 남자친구' 일 뿐이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고 또 쓴다. 이번 시나리오 주제는? '장인을 죽이는 사위' . 이 시나리오를 가지고 제작사에 찾아가본다. 제작사에서는 "돈이 되는 영화가 아니다." 혹은 "저예산으로 찍을 수 있는 시나리오가 있다. 그걸 찍어달라"라는 부탁만 한다. 이들에게 지석은 그저 영화제에서 대상 받은 가성비 감독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 모임에선 그저 '감독'에 대한 한탄만 있다. '요샌 개나 소나 다 감독' '영화제목과 배우만 기억하는 요즘' 이라는 키워드로 불평불만을 쏟아내지만 결국 유의미한 소득은 없다.
영화 감독 '지석'은 극단 출신이다. 극단 동기였지만 지금은 대스타가 된 '명성'이 '지석'의 영화만 같이 해준다면, 투자와 나머지 캐스팅은 쉬워진다. 하지만 극단 시절 여자를 사이에 두고 다툰 그들은 멀어진 상황. '지석'은 창피함을 감수하고 '지석'을 찾아가지만... 소득은 없다.
그녀의 등장
그러던 중, 등장한 '미란'. '미란'은 어디서 본 듯, 한 그런 조단역을 맡았던 여배우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 미국에서 살며 배우의 꿈을 접고 행복하게 살던 중 시한부에 걸린 것. 그런 남편이 5억을 투자할테니 '지석'에게 영화를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나름(?)의 고민을 하던 지석. (사실 고민은 3초컷) 결국 '미란'과 함께 영화를 찍기로 한다.
스태프들도 구하고, 배우 오디션도 보고, 헤드들도 구하고. 예산이 넘쳐나니 로케이션 헌팅도 즐겁다. (지석의 전작품은총 예산이 3,000만원 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그들에게 시련이 생긴다.
눈이 즐거운 카메오의 출연
'어! 나 저 배우 아는데'의 연속이었다. 박호산·봉만대·모그·대도서관 등 화려한 카메오들로 구성되어있다. 인상 깊었던 카메오의 장면은 '잘나가지 않는 감독'들의 모임에서 실제 '모그 음악감독'이 출연해서 놀랐다. (아래 사진)
영화를 위한 영화
사실 영화를 전공해서 독립 단편영화를 촬영한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영화를 보니 참 애틋했다. 심지어 대학생이었던 시절 영화 제작 PD를 맡았을 땐, 한끼 식사를 1,400원 야채김밥을 할 지 좀 더 무리해서 2,000원의 봉구스 밥버거를 할 지가 최대 고민이었다. 지금은 현장일을 하지 않았기에 잊고 있었는데 '영화로 만들려고'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아직 상업 영화가 아닌 현장은 이렇구나.
그럼에도 '영화' 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기에, 지금 내가 있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이 영화에 주고 싶은 키워드는 영화를 위한 영화다.
정형석 감독님은 사실 이 작품으로 알게되었는데, 이 작품이 다섯 편째 장편 영화라고 한다. 정형석 감독님이 궁금해지는 영화다.
EDITOR_RIA
상영시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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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넷 째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오늘도 어김없이 씨네픽과 쉽고 유익한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를 알아보는 시간이 왔습니다!
10월 22일, 23일, 24일의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를 알아보고,
또 씨네픽의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유저분들의 예측 결과도 비교하여 보시면
아주 쉽고 재미있을거예요. :)
그럼 10월 넷째 주의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분석 시작해볼까요?
[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위.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10월 13일 개봉한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가 주말동안 34만 명의 관객 수를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습니다.
개봉한 지 12일만에 누적 관객 수는 160만 명을 돌파했으며, 과연 관객 수 200만 명을 돌파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2위. <듄>
▶주말 박스오피스 2위는 10월20일 개봉한 드니 빌뇌브의 신작 <듄>이 차지했습니다.
<듄>은 할리우드 초호화 배우 캐스팅과 압도적인 스케일로 많은 관심을 받아왔는데요.
155분의 긴 상영시간, 복잡한 세계관과 다소 낯선 개념들이 있어 진입장벽이 높다는 평이 있습니다.
이러한 난제 속에서 과연 <듄>은 100만 명의 관객 수를 동원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3위. <007 노 타임 투 다이>
▶주말 박스오피스 3위는 9월 29일 개봉한 <007 노 타임 투 다이>가 차지했습니다.
어느 덧 개봉한 지 한달 째가 되가지만 여전히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듄> 등 할리우드 대작의 개봉 속에서도 꾸준히 관심을 받고 있으며, 누적 관객수 11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듄>의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추이를 보면
여성 43%, 남성 57%로 남성 관객들이 더 많은 비율로 관람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연령대 별로는 20대와 30대의 비율이 70%를 차지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씨네픽의 22일~24일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이벤트에 참가자인 <듄>의 박스오피스 순위 2위를 예측한
20,30대 비율은 전체 참가자 수의 43%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씨네픽의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이벤트에 참가한 사용자들의 박스오피스 순위를 분석해보도록 할게요!
씨네픽 박스오피스 순위 이벤트에 참가자 중 월등히 많은 수로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를 1위로 예측해주셨습니다.
다음 2위는 <듄>, 3위는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씨네픽 이벤트 참가자 중의 71%가 넘는 수치로 <베놈2: 렛 데어 비 카니지> 1위로 예측했습니다.
또한 참가자 수의 절반이 넘는 54%의 사용자들은 <듄>의 박스오피스 2위 랭킹을 예측하였으며,
28%의 참가자가 <007 노 타임 투 다이> 박스오피스 랭킹 3위를 예측했습니다.
그렇다면 박스오피스를 예측하고 상금도 받아가는 씨네픽의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를 맞혀라!' 이벤트에 참가해
1위, 2위, 3위 순위를 모두 예측한 정답자 분들을 알아볼까요?
▶씨네픽 박스오피스 1,2,3위 순위예측 이벤트의 정답자는 총 73명으로 이는 참가자 중 총 21%를 차지하고 있으며
정답을 맞히신 모든 분들께 우승자 상금의 혜택이 주어졌습니다.
모든 참가자분들과 정답자분들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앞으로의 재밌고 유익한 씨네픽 박스오피스 예측 이벤트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4위. <라스트 듀얼: 최후의 결투> / 5위. <보이스>
[북미 주말 박스오피스]
▶북미 박스오피스 1위는 10월 22일 개봉한 <듄>이 차지했습니다.
주말동안 $40,100,000(한화 약 470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 <듄>의 제작비는 1954억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앞으로 얼마만큼의 수익을 거둘지 기대가 됩니다.
한편, <듄>과 같은 날 개봉한 월트 디즈니 사의 <Ron's Gone Wrong>(고장난 론)은
주말동안 $7,300,000(한화 약 85억)의 누적 매출액을 달성했습니다.
씨네픽이 준비한 10월 넷 째주의 박스오피스 순위 분석 시간은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는 더욱 유익하고 재밌는 콘텐츠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릴게요! :)
그럼 한 주 동안 건강하세요!
안녕~~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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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데일리] 인디고 걸스의 노래를 색다르게 즐기는 방법
저는 뮤지컬은 좋아하지 않지만, 주크박스 뮤지컬은 상당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이러한 성향을 갖게 된 데에는 아무래도 <글리>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오래된 명곡을 새롭게 편곡하거나 의외의 곡들을 매쉬업하여 극에 삽입하는 것이 <글리>가 음악을 대하는 방법입니다. 아주 오랜만에 이러한 <글리>의 감성을 되살린 작품을 감상했습니다.
글리터와 둠
Glitter & Doom
Summary
인디고걸스의 상징적인 곡들로 풀어낸 환상적인 여름 로맨스 뮤지컬. 뮤지션 '둠'과 자유분방한 '글리터'는 첫눈에 사랑에 빠져 함께 도망칠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29일은 정말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기에 충분한 시간일까? (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Cast
감독: 톰 구스타프슨
출연: 알렉스 디아즈, 알란 카미시
<글리터와 둠>은 1987년 데뷔하여 포크 음악과 펑크락을 결합한 음악을 선보인 인디고 걸스의 음악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낸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입니다. 이 뮤지컬 영화에는 오직 인디고 걸스의 음악만을 사용해 이야기를 전개하겠다는 외고집이 보입니다. 작품 속에는 'Closer to fine', 'World falls', 'Get out the map' 등의 노래가 적재적소에 쓰이는데요. 조금만 보아도 캐릭터와 장면을 만들어 놓고 인디고 걸스의 노래를 붙인 것이 아니라, 인디고 걸스 노래의 가사와 분위기에 맞춰 이야기를 구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중 음악을 활용하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인디고 걸스를 잘 알아야만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노래 가사와 짜맞추기 위해 넣은 장면들도 튀거나 어색하지 않게 세심하게 만들었으며, 편곡 자체가 완결성을 갖추어 무척 세련되기 때문인데요. 특히 '1 2 3 & Leads & I'll change'과 같이 여러 곡을 하나로 매쉬업하여 각기 다른 캐릭터의 상황을 표현하는 시퀀스들은 이야기의 선봉에서 이끄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면서도, 주크박스 뮤지컬의 매력을 온전히 보여줍니다.
주크박스 뮤지컬이 처음인 사람도 금세 빠져들 수 있도록 만인에게 익숙한 사랑, 꿈, 가족을 주제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 또한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요인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가족의 테두리에 갇혀 있는 '글리터'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가족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 자신을 가둬 버린 '둠'입니다. 극과 극의 두 사람이지만, 그들에게는 꿈이 가로막힌 상태라는 공통점이 있죠. 여느 사랑이 그렇듯 두 사람은 어느날 갑자기 우연히 사랑을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꿈과 가족에 관한 갈등을 해소하는 여정이 <글리터와 둠>의 주된 이야기입니다. 익숙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굉장히 뻔해 보이는 이야기는 인디고 걸스의 노래와 어울리게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남다른 생기를 얻습니다.
익숙함과 뻔함의 자리를 메우는 또 다른 요소는 독특한 영화적 편집입니다. 이 작품은 음악으로 관객의 귀를 사로잡는 동안에도 다양한 편집 기법을 활용해 지루할 틈 없는 화면을 관객에게 선사합니다. 씨네21 송경원 편집장은 과거 뮤지컬 영화인 <라라랜드>에 대해 "영화인 척하는 실황 공연"이라고 평한 적이 있는데요. 적어도 이 작품은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오직 영화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모습들을 제대로 보여줍니다.
독특한 성격의 캐릭터나 판을 뒤집어 놓는 반전이 없더라도 소소한 이야기들을 지루하지 않게 펼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제게, <글리터와 둠>은 짜릿한 전율을 선사하기도, 예상치 못하게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정상성의 범주라는 건 없다는 듯 퀴어들이 잔뜩 등장하는 점도, 간만에 떠오른 <글리>의 추억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지요. <글리>의 '커트'와 '블레인'처럼 탁월한 연기와 노래, 그리고 케미스트리로 극을 더 흥미롭게 만든 두 명의 배우를 새로 알게 되어 기쁘기도 합니다. 아직도 <글리> 사운드 트랙가 돌아가고 있는 제 음악 스트리밍 앱에 <글리터와 둠>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앨범이 새로이 추가된 채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에 몸을 싣습니다.
9월 7일(토) 20:00 제천시문화회관
9월 9일(월) 19:00~20:54 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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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 리뷰 - 아버지 부조금으로 장례식장을 노름판으로 만든 불효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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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전성기는 반드시 온다!
한때는 잘나가던 큰형님 `호성`(손현주).
8년 만에 출소해 보니 남보다 못한 동생 `종성`(박혁권)은 애물단지 취급이고,
결혼을 앞둔 맏딸 `은옥`(박소진)과 오랜만에 만난 아들 `동혁`(정지환)은
`호성`이 부끄럽기만 하다.
아는 인맥 다 끌어 모은 아버지 장례식에서
부조금을 밑천삼아 기상천외한 비즈니스를 계획하며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데…
그런데…! 하필이면 세력 다툼을 하는 두 조직이 이곳에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때마침 눈치라고는 1도 없는 `호성`의 친구 `양희`(정석용)가
술에 취해 오지랖을 부리는데...
일촉즉발! 수습불가!
과연 X버릇 남 못 준 `호성`에게 봄날이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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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작은 방안의 소녀> 메인 예고편
친구의 괴롭힘에 못견딘 희주는 자퇴하고 집에서 히키코모리 생활을 한다. 그리고 인터넷 라이브 방송에서 만난 동하를 통해 자신감을 얻는 방법을 배운다. 동하는 펜둘럼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최면을 스스로 걸기를 알려준다. 그리고 채팅으로 만난 자신과 같은 히키코모리들을 격려한다. 1년동안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던 희주는 점점 자신감을 얻으면서 드디어 방을 탈출한다. 그리고 희주모와 화해도 하며 사회로 나갈 결심을 한다. 하지만 이때 1년전 희주를 괴롭혔던 해영은 그녀의 집주소를 찾아내서 찾아온다. 그리고 다시 괴롭힘이 시작된다. 희주는 사회에 복귀하려고 하지만 해영이라는 장애물을 만난다. 결국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 싫은 희주는 동하에게 배운 펜둘럼을 통한 최면을 해영에게 이용할 결심을 한다. 그리고 해영을 스스로 자살하도록 최면을 걸고 자신은 사회에 온전하게 복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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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메인 예고편 공개 정유미 X 이선균 미스터리 공포 극장에서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