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작가2022-10-24 01:14:22
벙커를 나갈 수 있는 열쇠는 내게 있다
넷플릭스 [클로버필드 10번지] 리뷰
줄거리
*스포일러 포함*
애인과 다툰 후 집을 나온 '미셸'은 한적한 도로를 달리다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다. 눈을 떴을 땐, '하워드'라는 남자의 지하벙커였다. 그는 지구가 외계인의 침략을 당했으며, 대기가 심각하게 오염되어 벙커에서 나가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자진하여 이 벙커에 들어왔다는 '에밋'이라는 남자.
처음엔 이 말을 믿지 않아 난동을 피우던 미셸은 이내 봉쇄된 출입문 앞에서 방사능에 오염된 여자를 보고 나가기를 포기한다. 그런 미셸에게 하워드는 자신이 교통사고를 냈고, 그냥 지나갈 수 없어서 미셸을 데리고 왔다고 고백한다. 그의 진심을 믿기로 한 미셸은 하워드, 에밋과 함께 사는 공동생활을 받아들인다.
벙커 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지던 어느 날. 갑자기 공기 여과기에 무언가가 걸려 몸집이 제일 작은 미셸이 환풍구를 타고 여과기 전원을 작동하러 가게 된다. 미셸은 그 공간의 창문 안쪽에 긁어서 도와달라는(help) 메시지를 남긴 흔적과 귀걸이 한 쪽을 발견한다. 그것은 하워드가 계속 말했던 딸 '메건'의 귀걸이.
은밀하게 에밋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더니 에밋은 사진 속의 여자가 메건이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하워드의 말은 모두 거짓인 상태. 두 사람은 밖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다. 나가기 위해 방호복과 방독면을 만드는 미셸.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나 싶던 찰나, 결국 두 사람의 행각이 들통나고 만다.
극도로 화가 난 하워드 앞에서 자신의 잘못이라 거짓말을 한 에밋은 총에 맞아 죽는다. 조금의 시간을 벌었지만 이내 방호복을 들킨 미셸은 격렬한 몸싸움 끝에 탈출하게 된다. 미셸은 바깥세상에서 하워드의 말처럼 외계인과 그 군함을 보고 놀란다. 외계인에게 죽임당할 뻔했으나 기지를 발휘해 살아남은 미셸은 차를 타고 질주한다.
라디오에서는 생존자들의 피난처인 '배턴루지'와 전쟁 중에 지원을 요청하는 '휴스턴'에 대한 방송이 연달아 나온다. 마침 그 갈림길에 선 미셸. 결국 차를 꺾어 휴스턴으로 향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감상 포인트
1. 처음 보면 황당, 두 번 보면 이해, 세 번 보면 감탄.
2. 한정된 공간 안에서만 움직이는데도 지루하지 않고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된다.
3. 편하게 볼 수 있지만 잘 만든 영화.
감상평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는 개봉했을 당시 영화관에서 직접 봤던 영화였다. 영화관에서 남은 음료를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말도 안 되는 영화, 똥 싸고 안 닦은 영화 정도로 평가했던 기억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결말이 그때의 내게는 너무나도 파격적이었기 때문...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는 결말부의 외계인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래서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생각이 앞선다. 보통 이런 영화에는 '음모론이 거짓이다'라는 결말이 어울리기도 하고, 익숙하기 마련이니까. 하워드가 미셸에게 가스라이팅을 했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은 '엥? 진짜 외계인이 나온다고?'하며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SF와 미스터리, 스릴러를 가장한 성장물이다. 그래서 벙커 안에서 일어나는 심리 싸움은 모두 맥거핀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미셸이 변화했다는 사실이다. 미셸이 자신을 학대했던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털어놓는 것부터가 진정한 이야기의 시작이었던 것.
미셸의 삶은 벙커를 기준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벙커에서 나오기 전과 후로 나뉜다.
여태껏 미셸은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도망치고 외면해왔다. 첫 장면에서 미셸이 애인과의 문제에 부딪혔을 때, 사람들은 미셸이 심각한 폭력에 시달렸을 거란 예측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애인의 말마따나 '말싸움'을 했을 뿐이다. 전화를 건 애인과 한 마디 대화를 나눠보려 시도조차 하지 않는 미셸은 나약하다.
과거의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어 사사건건 그녀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어릴 적 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렸던 미셸로서는 문제에 부딪힐 용기도, 싸워서 이겨낼 자신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도망치고 외면하는 것만이 문제의 답이요, 그 밖의 방법은 그녀로선 알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미셸은 결국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앞을 막아주었던 에밋의 죽음을 목격하며 변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도, 자신조차 구원하지 못해 쩔쩔매던 미셸은 지하 벙커에서 나오기 위해 하워드와 사투를 벌인다. 방호복은 완성이 되었지만, 이제 더 이상 하워드를 막아줄 에밋은 없다. 즉, 자신이 직접 하워드와 맞서 싸우지 않으면 이 벙커에서 나갈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벙커를 하나씩 품고 산다.
그곳은 어떤 위험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때 그곳으로 숨어버리면 안전하다. 문제가 나를 지나갈 때까지, 나를 절대로 헤칠 수 없게 문을 꽁꽁 걸어 잠그면 된다. 하지만 벙커를 나올 때는 바깥에서 날 꺼내주길 기다려선 안 된다. 스스로 나가기를 원치 않으면 이 벙커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이 지하 벙커를 나온다는 것은 끔찍한 현실의 위험을 마주해야 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하지만 사실 정말 무서운 것은 바깥의 위험이 아니라, 모든 위험으로부터 숨으라고 유혹하는 벙커 안의 나 자신이다. 미셸은 자신을 구석으로 내몰던 스스로를 집어던지고 결국 벙커 바깥으로 나선 것이다.
갈림길에 선 미셸은 편히 쉴 수 있는 피난처인 배턴 루지와 전쟁 지원자를 구하는 휴스턴에서 결국 전쟁터를 택한다. 내면의 자신을 이겨냈기 때문에, 피하고 숨고 외면하기보다는 들이받아보자는 결정도 할 수 있었다. 결연한 표정으로 차를 돌린 미셸은 이제 학대당하는 어린 소녀를 바라보기만 하는 소녀가 아니다. 앞으로 나서서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맞서 싸울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이 지점에서 얼마 전 리뷰했던 [글리치]와 완전히 다른 양상이 된다. 전개 방식과 소재까지도 모두 흡사하지만, 단언컨대 [클로버필드 10번지]가 훨씬 더 나은 결말을 내놓았다고 할 수 있겠다. 지하 벙커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인물의 진정한 성장을 이끌어냈기 때문에.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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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룩 업」가짜 뉴스 때문에 빡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스포없음) | 돈룩업 리뷰 | 돈 룩 업 영화리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아리아나 그란데 | 빅쇼트 |
? "돈룩업(2021,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리뷰 (*스포없음)
- 돈룩업 영화정보
장르: 코미디, 드라마, SF
감독 | 각본: 애덤 맥케이
원안: 애덤 맥케이, 데이빗 시로타
제작: 제니퍼 매들로프, 애덤 맥케이, 케빈 J. 메식, 스테이시 로버츠 스틸, 스콧 스터버, 제프 G. 왁스먼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롭 모건, 조나 힐, 마크 라이런스, 타일러 페리, 티모시 샬라메, 론 펄먼, 아리아나 그란데, 키드 커디, 케이트 블란쳇, 메릴 스트립, 히메시 파텔 등
촬영: 라이너스 샌드그렌
음악: 니콜라스 브리텔
배급사: 넷플릭스
개봉일: 대한민국 2021년 12월 8일, 미국 2021년 12월 10일, 넷플릭스 아이콘 2021년 12월 24일
화면비: 2.39 : 1
상영 시간: 139분
제작비: 7,500만 달러
- 돈룩업 시놉시스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의 존재를 발견한 두 천문학자
임박한 재앙을 전 인류에 경고하려 언론사를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른 데 정신이 팔린 세상은 시큰둥한 반응뿐
"그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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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부모 밑에서 자란 귀여운 천재소녀 마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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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오 나의 마리아> 메인 예고편
50살, 순결함을 깨고 다시 태어나다!
곧 50을 앞둔 마트 캐셔 마리아.
집착하듯 성모 마리아상을 모아 마리아의 집은 성모 마리아상으로 가득하다.
50번째 생일 하루 전 날, 이상한 증상을 느껴 산부인과를 찾는 마리아.
무례한 의사는 “여전히” 경험이 없는지 질문하며 비웃듯 갱년기를 진단한다.
처방받은 호르몬 패치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어딘가 이상해지는 마리아.
불쑥불쑥 찾아오는 마리아의 조카 헬레나는 단번에 이모의 변화를 눈치채는데…
모든 감각과 머릿 속 공상이 생생히 살아나며 그동안과 다른 자유를 맛보게 되는 마리아.
그녀를 가두었던 순결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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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TV+ <슬로 호시스> 공식 예고편
밑바닥 요원들 손에 떨어진 일급비밀. 4월 1일 Apple TV+에서 '슬로 호시스' - Slow Horses를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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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만들 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여 급감한 관객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다. 하지만 이동진 평론가가 지적했듯 헐리우드 영화의 관객 수는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여 92% 가량으로 거의 회복한 모양새다. 전 세계적으로 ott가 발달하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관객들은 극장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원하고, 그 수요를 충족시키는 영화들은 보란듯이 스크린에서 맹활약 중이다. 그러나 한국 영화계는 전에없는 위기를 경험 중이며, 특히 올 한해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비상사태에 봉착한 상황이다. 관객은 여전히 티켓가 인하를 외치고 있고, 극장과 제작사는 인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관객도 극장도 모두 정답을 알고 있다. 관객은 좋은 영화에 대해 얼마든지 현재의 티켓가를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영화 <차박 - 살인과 낭만의 밤>은 안타까울 만큼 기존의 서사와 캐릭터를 답습하며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문제들을 반복한다. 이런 영화들에 대해서는 기존에 수많은 리뷰를 통해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해 왔기에 이번만큼은 완곡한 표현 없이, 순서를 매겨 문제점을 지적하는 편이 효율적일 것으로 보인다.
1. 인물 간의 관계와 캐릭터성의 진부함
주연배우가 데니안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영화를 리드해 나가는 것은 김민채 배우가 연기한 미유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본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안타까울 만큼 진부한 캐릭터를 답습하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인 것은 미유다. 김민채 배우의 빛나는 연기력이 아쉬울 만큼 미유는 기존의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던 '감정적인 여성' 혹은 피해자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을 찾아온 사촌동생에게 단호하게 대처하거나 무시하는 대신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남편에게 애교가 많으며 나약한 여성상을 보여준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비록 후반부에서는 능동적으로 살인마에게 대항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유는 감정적이다.
감정적인 여성 캐릭터가 문제인 이유는 남성은 이성적이고 여성은 감정적이라는 구시대적인 성별 구분법적 캐릭터 설정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과거 반복되던 서사에서 여성은 감정적인 모습을 약점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를 성적으로 어필하는 데 활용해왔다. 남성 구원자에게 나약한 여성은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기 위한 손쉬운 대상이다. <차박>에서 이 점이 더더욱 큰 문제였던 이유는 심지어 미유가 사촌동생과 근친관계였음을 노골적으로 암시하기 때문이다. 미유가 가진 비밀은 미유 자신의 야망이나 삶에서의 목표가 아닌 연애 관계에 머무른다. 이는 미유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원(데니안 분)에게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고작 아내인 미유를 보호하는 것뿐이라는 점은 서사뿐만 아니라 캐릭터 설정에서도 문제다. 설상가상으로 수원은 이 부분에서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2. 신선한 소재가 전혀 활용되지 않음
언론 시사회에서 감독이 스스로 밝혔듯 차박은 여지껏 영화에 활용된 선례가 극히 드문 신선한 소재다. 익숙한 공간인 집을 공포의 공간으로 바꾸어 일상의 공포를 활용하던 방식은 한때 신선했지만 점점 흔해져 이제는 전단지의 카피로도 활용되지 못한다. 차박은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영화에서는 미유와 수원이 단 둘이 보낼 수 있는 어둠의 배경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는 차박이라는 소재를 영화 초반 잠시 미쟝센으로만 활용하고 결국 공포의 배경으로 야산과 살인마가 활보하는 건물 내부를 택한다. 제목에도 활용된 차박은 영화를 보고 나면 대체 왜 차박이라는 소재가 필요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잠시 등장했다가 장렬하게 전사한다. 서사의 시발점이 되는 소재만큼은 신선하지만 이를 이끌어 나가는 동력이 없는 점은 최근 한국영화가 겪는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
3.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인물의 서사가 지나치게 생략됨
<차박>에는 주연으로 활약하는 미유와 수원 외에도 꽤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들에 대한 설명은 전무하다.
인물을 설명하는 데 있어 때로는 미지의 과거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인물의 행동 경위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생략되는 경우는 관객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기실 전사를 알 수 없어 매력적인 캐릭터는 조커와 안톤 쉬거를
제외하곤 극히 드물다. 이 두 캐릭터조차도 이들 외의 인물은 전사가 알려져 있거나 짐작할 수 있어 한층 빛을 발했던 경우다. 영태(홍경인 분)의 경우 영화 초반부 등장해 관객에게 의문을 남기고, 영화 후반부에 재등장해 나름의 활약을 보여주지만 관객에게 영태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일 뿐이다. 영태의 전사가 어렴풋이 짐작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사 내의 행동을 전부 설명해주진 못한다.
무엇보다도, 서사에 드러난 미유와 수원의 전사 또한 이들의 행동을 그다지 잘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캐릭터의 문제가 서사의 개연성 부족으로 이어진다.
<차박>에서 지적할 수 있는 부분들은 이외에도 많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근친 소재를 사용한다거나
소아성애가 암시되는 것, 모든 행동의 이유가 단순히 사랑으로 설명된다는 점 등이 부수적인 문제점이다.
한국 관객들이 단순히 스크린에서 스펙터클만을 기대해서 한국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한국 관객은 이제 보다 발전된 서사와 깊이 있는 메시지를 원할 뿐이다.
*본 리뷰는 씨네랩 시사회 초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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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회 시스템의 축소판, 그곳은 정말 유토피아였을까
우리가 사는 사회 시스템은 개개인들이 좀 더 체계적으로 살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집이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한다면, 사회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개인, 가족, 사회는 국가 단위로 그 단위를 확장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필요한 것들을 채워 넣어왔다. 규율과 법을 만들고 국가를 통치할 지도자를 뽑는다. 그렇게 뽑은 대표는 사회 전반적인 부분을 넓게 조망하면서 잘 되지 않는 일을 해결하고 모두가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 부족 사회에서도 작은 단위에서 늘 지도자와 그 주변은 다양한 논의를 거쳐 사회를 이끌어왔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다르게 말하면 정치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앞에 서서 사회를 이끌어왔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을 따르고 문제를 만들어내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계속 정쟁이 끊이지 않고 갈등은 계속된다. 어떤 경우에는 불합리한 결정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배척하고 사회에서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한다. 어떤 것이 더 옳은 것인지 현재 시점에서 판단할 수 없다. 그 갈등들이 지나간 후에 돌아보아도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지진 이후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의 이야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사회 체계가 무너진 이후,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모든 사회 시스템이 파괴되고 하나의 공동체만 유일하게 남게 된 것이다. 여기에 외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멀쩡해 보이는 아파트로 몰려든다. 식량, 추위 등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지만 선뜻 누군가 먼저 나서 상황을 끌어가지 못한 채 사람들은 점점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때 아파트에 불이 나고 한 인물이 갑자기 달려 나와 그 불을 꺼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 인물은 바로 영탁(이병헌)이다.
그렇게 영탁은 우연하게 사람들 눈에 띄어 영웅과 비슷한 위치에 선다. 그리고 결국 그가 새로운 아파트 대표가 된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사회 시스템이 붕괴된 곳에서 새롭게 등장한 지도자 그룹의 이야기를 담는다. 부녀회장인 금애(김선영)와 영탁을 중심으로 몇몇의 지도자 그룹이 만들어지는데, 여기에는 보안과 방법을 맡는 민성(박서준)이 포함된다. 이 영화에서 꽤 중요한 위치에 있는 민성은 과거 공무원이었고, 간호사인 명화(박보영)와 함께 살고 있다. 민성은 안정지향적인 인물이고, 명화는 좀 더 박애주의적이다. 초반에 외부인을 대하는 조금 다른 태도를 보여주는 두 사람의 성향은 영화 중반 이후 갈등을 만들어낸다.
새롭게 지도자가 된 영탁은 미스터리 한 인물이다. 조금은 어눌해 보이는 그의 초반 모습은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지 의심하게 하지만 그는 사람들을 모아 황궁아파트 주민이 아닌 외부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다. 그가 처음으로 실행한 이 일은 그가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탄탄하게 가질 수 있게 만든다. 그렇게 힘을 얻는 그가 만들어내는 황궁 아파트의 사회는 정말로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간호사를 중심으로 의료 센터를 만들고, 남자들이 외부로 나가 음식을 구해온다. 그렇게 모은 음식과 생활용품은 분배소에서 주민들에게 동일하게 분배를 한다.
완벽하지만 외부인에게 배타적인 시스템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은 적어도 황궁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완벽하다. 그들은 나름의 룰을 만들어 그곳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애쓰고 그것을 실제로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사회 시스템이 주는 안정감을 영화는 여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단, 한 가지 간과하게 되는 건 영화 초반에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이 외부인을 몰아내는 장면이다. 주민들은 강압적인 방식으로 외부인들을 몰아냈고, 많은 외부인들은 추운 날씨에 얼어 죽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이 과연 좋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는 계속 질문을 던진다. 생존을 위해서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사회 시스템이 하는 모든 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지. 모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무엇보다 가장 크게 생각하게 되는 부분은 바로 내가 그 안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외부인과 함께 살고자 한다면 사람은 점점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생존 시간이 줄어들 거라는 아주 단순한 계산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외부인들은 배제된다. 다 같이 사는 것이 아닌 우리만 사는 결정을 한다.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민성은 이 영화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 있는 일종의 관찰자다. 그는 영탁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황궁 아파트라는 사회 시스템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 그는 그 사회 시스템을 믿고 따른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회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외부인을 몰아내고, 외부에서 음식을 구할 때 외부인을 공격하기도 한다. 반면 민성의 아내 명화는 같이 사는 방향을 찾아보려 애쓴다. 몰래 숨어있는 외부인들을 돕고 이 영화의 가장 큰 비밀을 가지고 있는 인물의 진실을 밝혀내기도 한다.
민성의 생각이 옳을까? 아니면 명화의 생각이 옳을까? 다르게 묻는다면, 생존을 위해서는 우리만 사는 게 더 좋을까 아니면 다 같이 사는 게 더 좋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이 질문에 대답하기 쉽지 않다. 어떤 쪽으로 결정하더라도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불편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떤 쪽이 더 맞는다고 이야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질문하는 영화
영화 속 리더가 되는 영탁은 중요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 비밀이 무엇인지도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더 흥미로운 건 그 자신조차 피해자이자 약자라는 것이다. 그의 비밀이 밝혀졌을 때도 그를 온전히 미워할 수만은 없는 건 영탁이라는 인물도 결국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황궁 아파트의 대표가 되어 리더십을 발휘하지고 심지어는 악행도 서슴지 않지만 영화는 그가 과연 그 정도로 돌을 맞아야 하는 인물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사회 시스템은 필요하다. 엄청난 재난 상황에서 인간은 생존을 가장 앞에 두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배타적으로 외부인을 배제하지 않았고 포용적으로 받아들였다면 그 결말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 속 황궁 아파트의 사회 시스템은 배타적인 방향을 택했다. 그 결정이 될 당시만해도 그것은 옳은 선택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그 결정은 주민들의 투표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러니까 결정과정도 공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결말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것이 더 맞는 것인지 자꾸만 되묻게 만든다.
영화는 결말 부분에서 다른 선택을 한 시스템의 형태를 보여준다. 따뜻하고 새하얀 주먹밥으로 대표되는, 그 다른 시스템은 따뜻해 보이지만, 그이후의 결말은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도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야 하고 어떤 형태로든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만의 사회 시스템은 어떤 모습이 될까.
아무것도 없어진 사회에 완벽한 시스템이란 없다.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이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완벽한 국가는 없고,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누구는 배타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척하려 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포용할 것이다. 가장 쉽게 난민에 대한 여러 국가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난민들은 유토피아를 찾아 떠돌지만 그런 유토피아는 없다. 대부분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던 국가들은 잔인하게 난민들을 외면한다.
영화의 제목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콘크리트로 만든 아파트, 황궁 아파트를 의미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아파트의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낡은 오래된 아파트이지만 자산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사전적 의미로 집은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모든 사람이 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충분한 자금이 없으면 그런 집을 구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현대 사회에 꽤 만연해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점점 배타적으로 변해가는지도 모르겠다. 이 집은 내 집이니까 외부인은 나가라는 그 편한 말은 그들에게 안정감으로 돌아온다.
현대 사회 시스템의 축소판,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 초반 민성이 통조림을 떨어뜨려 소파밑으로 굴러간다. 그것을 집으로 소파 밑에 팔을 뻗어 통조림을 꺼내자 바퀴벌레들이 튀어나온다. 그러자 아파트 사람들은 기겁하며 모두 바퀴벌레를 밟아 죽인다. 이 영화에서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외부인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른다. 그 영화 초반 장면 자체가 이 영화의 전체 이야기를 함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관객에게 ’ 너라면 어떤 결정을 할 것 같아?‘라고 묻는다.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하면서 나아가야 할까.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어쨌든 결정을 하고 실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 질문은 꽤 난해하고 아픈 질문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영화적 재미를 놓치지 않고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화는 올여름 개봉한 영화 중 가장 지적인 이야기를 던진다. 적어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루는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초반의 어눌한 모습의 영탁이 후반부로 갈수록 광기에 휩싸이는 것을 표현한 이병헌의 연기가 무시무시하다. 민성 역을 맡은 박서준은 사회 시스템에서 안정적인 방향의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지만 예상과 다른 결말을 보게 되어 황망해하는 모습을 무척 잘 표현했다. 그 밖에도 명화 역의 박보영과 부녀회장 김선영의 연기도 훌륭하고 그 외의 인물들도 모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줘 극에 현실감을 높인다.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표현해 낸 엄태화 감독의 연출력이 가장 돋보인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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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편난 기억 너머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것들
애프터 양 (AFTER YANG, 2021)
"파편난 기억 너머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것들"
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드라마, SF
러닝타임 : 96분
감독 : 코고나다
출연 : 콜린 파렐, 조디 터너 스미스, 저스틴 H. 민
개인적인 평점 : 4.5/5
쿠키 영상 : 없음
애프터 양 줄거리
함께 살던 안드로이드 인간 ‘양’이 어느 날 작동을 멈추자 제이크 가족은 그를 수리할 방법을 찾는다. 그러던 중, ‘양’에게서 특별한 메모리 뱅크를 발견하고 그의 기억을 탐험하기 시작하는데… 무엇을 남기고 싶었어,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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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제가 됐던 애플 TV <파친코(1,2,3,7편)>의 연출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게 된 코고나다 감독의 신작 <애프터 양>이 전주 국제영화제를 거쳐 국내에 정식 개봉한다. 제23회 전주 국제영화제의 개봉작으로 선정된 <애프터 양>은 매 상영마다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애프터 양>은 알렉산더 와인스틴의 단편 소설 [양과의 안녕]을 각색한 작품으로, 테크노 사피엔스라 불리는 안드로이드가 각 가정에 보급된,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영화다. 주인공 제이크 가족은 입양한 딸 미카의 고향인 중국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안드로이드 양을 구매한다. 양은 미카에게 선생님이 되어주기도 하고, 하나뿐인 형제가 되어주기도 한다. 미카 또한 양을 오빠라 부르며 그에게 의지하고 함께 마음을 나눈다.
어느 날, 수명이 다된 것인지 양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자 제이크는 공식 서비스 센터와 사설 센터를 오가며 양을 고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어딜 가든 양은 다시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부정적인 답만 돌아올 뿐이다. 제이크는 양을 차 뒷좌석에 앉힌 채 이곳저곳을 헤매다 마지막 보루로 테크노 사피엔스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박물관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양의 중심부에 저장되어 있던 그의 기억 조각들을 마주하게 된다.
<애프터 양>은 안드로이드 양의 짧은 추억들을 함께 되짚으며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감정인 사랑과 행복했던 기억, 소중한 것의 상실과 회복, 나의 뿌리(정체성)와 인생을 찾아가는 여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 하나의 아쉬웠던 점? 취향의 차이
개인적으로 <애프터 양>은 상당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사심이 가득해서 더 좋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미리 말하자면 이번 리뷰에선 영화의 장단점을 비슷한 비율로 다루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나에겐 이 영화가 상당히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마친 후, 남아있는 감정에 푹 젖어있다가 다음 상영을 바로 예매했을 만큼 이 영화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아마 이 글의 90%는 영화의 장점과 내가 느꼈던 영화의 메시지들로 채워질 예정이라 아주 작은 아쉬웠던 점 하나를 먼저 던지고 가려고 한다.
<애프터 양>은 느린 속도를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에겐 추천하지 않는 영화다. 오프닝 신을 제외하면 스피드가 느껴지는 신이 거의 없고, 양의 기억이 짧게 파편 난 채로 재생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영화 전체가 마치 아름다운 비디오 일기처럼 흘러가는 느낌이 있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외적으로 감정을 많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다이나믹한 감정선을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또 SF영화라 하여 상상력으로 가득한 세상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도 비추! 조용한 영화기 때문에 피곤한 상태로 관람하는 것 또한 비추다.
객관적으로 본 아쉬운 점은 이 정도가 있겠고..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단점도 아니고 그냥 취향 차이 정도가 아닐까? 오히려 난 이 천천히 흘러가는 화면들이 좋았다. 빠르지 않은 속도 덕분에 푸른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연하게 느껴지는 바람 같은, 그 순간에 담긴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
오늘부터 나의 최애 주머니에 담긴 저스틴 H. 민 배우
이 영화에 처음 띠용-했던 건 코고나다 감독의 이름 때문이었고, 죽어도 꼭 봐야겠다!! 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저스틴 H. 민’이라는 배우 때문이었다. 올해 초, 나는 뒤늦게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통해 이 배우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고, <애프터 양>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해사한 미소와 조곤조곤한 말투, 밝은 성격과 내 취향을 저격하는 매력적인 외모. 거기에 <엄브렐러 아카데미>에서 보여준 발랄함과 따스함이 뚝뚝 떨어지는 연기까지… 저스틴 H. 민은 내 눈에 쏙 들어오는 매력적인 배우였다. 그리고 나는 <애프터 양>을 보자마자 한치의 망설임 없이 저스틴 H. 민을 최애 주머니에 담아버렸다.
저스틴 H. 민 배우는 <엄브렐러 아카데미>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으로 '양’이 되어 스크린에 나타났다. 그는 언젠가는 로봇처럼 딱딱하고 어색하게, 언젠가는 따스한 오빠처럼, 언젠가는 든든한 부모님처럼, 또 다정한 연인처럼 느껴지는 여러 결의 눈빛을 흘리며 나의 마음을 완벽히 홀리는 데 성공했다. 사실 저스틴 H. 민 배우는 단편 영화들을 제외하면 아직은 필모그래피가 많지 않은 배우인지라, 다양한 연기를 보지 못했었는데 <애프터 양>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정말 기뻤다. 나는 섬세하고 정갈한 그의 호흡에 속절없이 빨려 들었고 '이 배우는 지금도 엄청난 스타지만… 앞으로 더 잘될 배우가 확실하다!’고 외치며 그에게 뼈를 묻기로 다짐했다.
세련된 연출
<애프터 양>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다. 정확히 몇 년인진 알 수 없어도 왠지 멀지 않을 것 같은 미래로 보인다. 코고나다 감독은 익숙한 현재의 모습에 미래의 모습을 자연스레 녹여낸다. SF영화라 하면 정말 상상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배경을 떠올릴 수도 있는데, 이 영화는 정말 곧 다가올 것 같은 미래의 모습을 담았다. 안경과 닮은 판독기, 낯설지 않은 차의 구조, 지금도 찾아볼 수 있는 익숙한 카메라와 집, 가구들. 그래서인지 정말 이런 가족이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어 더욱 몰입이 됐던 것 같다.
그리고 인물들의 의복이나 음식, 차를 우려먹는 문화를 통해 영화 곳곳에 동양적인 요소들을 가미함과 동시에 깔끔한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건축물과 가구들을 배치함으로써 흠잡을 곳 없는 깔끔하고 안정적인 화면을 보여준다. 더불어 이 영화의 세련됨은 오프닝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는데, 이 부분은 먼저 얘기하면 장면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으니 자세히 언급하진 않겠다.
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H. 민 배우의 만남.
그들이 던지는 "~다운 건 무엇일까?" 하는 질문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H. 민 배우. 각자 떨어뜨려 놓아도 충분히 이슈를 몰고 다니는 인물이자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공통된 정체성이 있는 두 사람이 만난 작품이라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영화에서 양과 가까운 사이였던 에이다는 양이 교육용 안드로이드로서 미카를 가르치기 위해 중국의 문화와 아시아인다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말한다. 양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아시아인의 조건은 무엇일까?"
프로그램에 정보가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의 역사, 문화를 해박하게 알고 있지만 사실 중국에서 살아본 ㄴ적이 없는, 그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는 양은 미카를 가르치면서도 아시아인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제이크와 차를 마실 때도 그렇다. 차의 기원과 종류는 다 알고 있지만, 양은 차 한잔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그것이 어떤 맛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다운 것이란 무엇일까?"
하나 더 예를 들자면 제이크의 찻집이 있다. 제이크는 잎이 그대로 살아있는 차를 판매한다. 영화의 첫 장면, 제이크의 찻집에 들어온 손님은 가루로 된 차가 없냐고 묻더니 "차 가루가 없는 찻집도 있냐"고 말하며 찻집을 나간다. 차 가루가 없는 찻집은 찻집답지 못한 걸까? 찻집 다움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제이크는 손님의 말을 마음에 담아뒀는지 차 가루를 내 양과 함께 차 한잔을 마셔보지만 가루로 된 차가 주는 맛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시아인의 조건은 무엇일까?", "차를 즐긴다는 건 무엇일까?", "안드로이드다운 것은, 인간다운 것은 무엇일까?", "가족이란 건 무엇일까?" <애프터 양>은 무언가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애프터 양>을 만나기 전, 저스틴 H. 민 배우의 <애프터 양>이란 영화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터뷰를 읽고 가서인진 몰라도 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H. 민 배우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끊임없이 던져야 했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온전히 느껴지는 듯했다.
차에 대한 기억이 없고 지식만 있어도 나는 차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인가?, 중국에 대한 기억이 없고 역사에 대한 지식만 있어도 나는 아시아인이 되는 것인가?
저스틴 H. 민 배우는 자신 또한 이런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분명 나는 한글을 배웠고, 한인 교회에 갔고, 한국에 대해 알고 있지만 그것이 나를 한국인답게 만들 수 있는 걸까?"하는 고민 말이다. 코고나다 감독 또한 이 영화를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들어간 영화라고 언급했다.
저스틴 H. 민은 양을 닮았고, 양은 저스틴 H. 민과 닮았다. 나는 과연 누구이고,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나다운 것인가. 저스틴 H. 민 배우는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나’의 뿌리를 찾아가는 양의 여정이 곧 자신의 여정이기도 하다고 언급했다.
양의 이름 + 뿌리와 정체성에 대하여
Yang이라는 이름은 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H. 민이 항상 고민했던 '이민자(한국계 미국인)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그대로 드러나는 매개체다. 우리는 Yang을 양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영화 속 제이크의 가족은 Yang을 양이 아닌 '얭’에 가까운 발음으로 부른다.
저스틴 H. 민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코고나다 감독과 양의 이름에 대해 함께 고민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 사람은 양의 발음을 실제 버전(양)으로 할지 미국화 된 발음(얭)으로 할지 신중히 고려해 '얭’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서양인 부모들이 "Yang을 원래 발음에 가깝게 발음하기 위해 크게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코고나다 감독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아시아와 서양이라는 두 개의 문화의 중간에서 정체성과 소속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양의 잘못 발음되는 이름을 통해 은유적으로 나타냈다고 한다. 아마 서양, 아시아의 문화 사이에서 정확히 자리를 잡지 못한 채 고민하고 있는 이민자들의 모습을, 서양 부모들에 의해 '양’이 아닌 대충 '얭’으로 발음되는 그의 이름으로 비유했다고 생각하면 될듯하다.
다양성에 대하여
위에서 언급한 "~다운 것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은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주인공인 제이크의 가족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영화엔 다양한 모습을 한 가족들이 나온다. 제이크의 가족은 백인 남성, 흑인 여성, 아시아인인 딸, 안드로이드로 구성되어있고 그의 옆집엔 복제 인간 아내와 아이를 둔 이웃이 살고 있다. 오프닝 신에 나오는 가족 댄스 대회의 참여 가족들 또한 피부색, 성별, 인간/복제 인간/안드로이드의 구분 없이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같은 인종인 부부가 이루는 것인가?, 또는 사회 통념상 정해진 보통의 연인들이 이루는 것인가? 아니면 같은 핏줄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이룰 수 있는 것인가? 그 무엇도 정답이 될 수 없다. "~ 다운 것"은 타인이 함부로 정할 수 없는 개인의 정체성 문제이고, 그 답을 찾고, 정의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인것이다.
댄스 대회를 하면서 제이크의 가족들은 "우리가 한 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대로 이들은 하나의 온전한 가족이 되어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한 팀이 되어 살아간다. 백인 아빠와 흑인 엄마, 입양된 아시아인 딸, 딸의 오빠 역할을 하고 있는 안드로이드. 혹시 이들을 감히 '가족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있다면 내가 아주 조금만 혼내주려고 하니 어디 한번 그렇게 말해보길 바란다…)
새로운 안드로이드
나는 지금껏 안드로이드, 로봇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사뭇 건조할 것이라 생각했고 안드로이드는 인간이 될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닫는 순간, 높은 확률로 슬퍼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은 달랐다. 그는 제이크의 가족에게 심어진 곁가지가 아닌 든든한 뿌리였고, 인간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슬퍼하지도 않았으며, 건조한 표정을 하고 있는 진짜 인간들보다 더욱 인간다운 삶을 살아온 존재였다.
영화의 초반, 인간들의 눈으로 본 양은 딱딱한 로봇 같은 모습이다. 그는 미카와 대화를 나눌 때도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어딘가 어색한 모습으로 비친다. 하지만 양의 기억 속 양의 모습과 양이 느낀 감정들은 어떤 등장인물보다도 더 '인간다웠다'. 옆에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소중히 간직하는 따뜻한 마음, 사랑한 사람을 잊지 않고 그의 주변을 맴도는 지고지순함, 거울을 보며 빙긋 웃어보는 모습까지. 수많은 기억을 저장하며 순수하게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양의 모습은 아름다운 인간 그 자체였다.
여담으로 저스틴 H. 민 배우는 GV를 통해 양의 기억을 언급하며 양은 일상의 순간들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다며, 관객분들도 일상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생각해보니 내 일상을 단조로운 것이 아닌 매일 다른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본 날이, 일상에서 내 인생의 의미를 찾아본 날이 언제였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엔 왜 양이 주인공인지, 왜 그가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양의 기억을 여는 순간 확실히 알게 됐다.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애프터 양>인지. 그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옅은 흔들림과 여전히 반짝이고 있는 기억들은 나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선물했다. 이런 사랑스럽고 복잡한 안드로이드 같으니…
양의 소중한 기억 속을 함께 유영하며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96분. 이 시간의 일부는 나의 '아름다웠던 순간' 중 하나로 고이 저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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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어붙은 꿈들을 녹이는
*<브레이킹 아이스>에 대한 단상.
-나는 그 무엇도 아닌, 주동우의 얼굴을 기다렸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녀의 괜찮은 척 하는 미소, 체념하고 포기한 표정,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 꿈을 포기한 사람의, 무던해져 보려는 힘겨운 노력이 그녀의 얼굴을 통해 관객에게 닿는다. 언어를 초월한다.
-청춘, 겨울, 성장, 로맨스, 삼각관계 같은 것들은 뻣뻣하게 굳어 있다가 <브레이킹 아이스>에서 추운 공기와 두텁게 쌓인 눈, 잠에 취한 얼굴들을 보여주면서 천천히 녹는다.
-의외의 디아스포라.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려오고, 한국어 간판과 컵라면이 있는 연길에서 주인공들은 서로를 마주한다. 고향에서 도망쳐 온 여자,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남자, 그리고 잠시 들른 여행자. 그에게 구경을 시켜준다는 명목 아래 셋은 도시 여기저기를 여행하게 된다. 그들은 백두산까지 간다. 우울을 안고, 죽음을 선택지로 손에 쥐고 있는 하오펑의 내일이 없는 것 같은 여행은 오히려 샤오에게 새로운 내일을, 나나에게는 새로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을 가져다 준다.
-어쩌면 조금 서툰 진행과 보기 좋기만 한 성장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산 꼭대기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세 사람의 걸음과, 모르는 언어로 적힌 간판들 사이를 누비는 여행이 그들에게 다시 시작할 힘을 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브레이킹 아이스>가 관객에게 호소하는 방식은 그렇다.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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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그 문을 열지 마시오
출처 : 부산국제영화제
제목 : <오픈 더 도어>
감독 : 장항준
출연 : 서영주, 이순원
프로그램 노트
: <오픈 더 도어>는 어느 밤 술에 취한 두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미국 뉴저지, 치훈(서영주)은 매형인 문석(이순원)과 함께 술을 마신다. 과거를 추억하던 두 사람은 애써 외면했던 불행까지도 길어 내게 되고, 감정이 격해진 문석에 의해 숨겨져 있던 비밀이 밝혀진다. 장항준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오픈 더 도어>는 과거를 되짚어가며 숨겨진 사연을 조금씩 풀어놓는 미스터리 형식을 취한다. 숨겨진 그날의 진실보다 중요한 건 그에 이르는 과정이다. 4개의 챕터로 이뤄진 영화는 인물들이 불안과 의심으로 무너져 가는 모습을 조금씩 증폭시켜 나간다. 한정된 공간과 제한된 인물, 긴 호흡의 카메라를 활용해 밀도 높은 긴장감을 쌓아나가는 솜씨가 놀랍다. (송경원)
다섯 개의 섹션
영화는 총 다섯개의 섹션으로 나누어진다. 그마저도 시간의 흐름이 아닌, 섹션이 뒤로 갈수록 과거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의 특이점은 영화의 제목부터 말해주듯 섹션의 시작마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사실 이와 같은 사실을 자각하기까지는 네번째 섹션이 되서야 깨달았다. 문을 여는 행동은 '어떠한 선택'을 의미한다.
첫 시퀀스는 미국 뉴저지, 치훈이 매형인 문석의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며 시작된다. 둘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술에 취하니 그들이 꺼내서는 안될 이야기를 꺼낸다. 바로 '치훈'의 엄마이자 문석의 장모님의 살인 사건. 대화로 짐작해보면 그녀는 세탁소를 운영 중, 강도에 의해 살해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감정은 격해지고. 결국 문석이 숨겨진 비밀을 뱉어낸다. (첫번째 시퀀스 끝.)
출처 : 부산국제영화제
긴 카메라 호흡 그리고 사운드의 매력
사실 공포 영화, 스릴러 영화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1위가 스토리 그리고 그 다음이 사운드라고 생각한다. 공포 영화 혹은 스릴러 영화는 귀를 막고보면 하나도 안 무섭다는 말이 딱 그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오픈 더 도어>는 고전적일 수도 있는 사운드로 그 긴장감을 살린다. 실제로 옆자리 관객분은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귀를 막고 있었다. 나름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긴 카메라 호흡의 지루함을 사운드로 채워준 듯 했다.
영화 <오픈 더 도어>는 긴 카메라 호흡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첫 시퀀스부터 컷 전환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호흡이 길다. 스릴러 영화에서는 관객들의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 컷 전환하기 바쁜데 이 영화는 다르다. 치훈과 문석이 대화하는 장면에서 컷 전환이 거의 없었다.
영화를 관람할 당시에는 왜 호흡이 길지?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렇기에 궁금증을 유발하였고 결과적으론 난 그 둘의 대화에 깊게 집중했다.
출처 : 부산국제영화제
길어진 호흡에는 연기력이 필요하다
상기 문단에서 언급했듯이, 영화 자체의 호흡이 길다. 그 말은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력이 필요하다. 영화에는 불안 그리고 의심, 균열,그리고 배신 등의 감정이 담겨있다. 조금이라도 비어보이면 무너져버리는 스토리. 그럼에도 <오픈 더 도어> 배우들은 깊은 연기력으로 그 틈을 꽉 채워주었다. 장르가 '스릴러'인데 배우들 모두 연기가 '스릴러'스럽다. 사실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는 장항준 감독만을 보고 선택하는 바람에 배우들은 사전에 찾아보지 않았는데 기존에 조연으로 많이 보았던 배우들이기에 연기력이 보장된 것 같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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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성애를 기댄 채 어긋나버린 디스토피아의 세계관
시대가 변할수록 더 극심해지는 혐오와 차별 역사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는 토착민의 삶을
디스토피아 세상에서 자신의 딸을 지키고자 하는 모성애를 통해
풀어간 SF 영화 나이트 레이더스 리뷰이자, 시사회 후기입니다.
실제 캐나다 토착민인 크리족 혼혈 다니스 고렛 감독의 첫 장편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토르 시리즈의 감독이자, 종종 배우로도 활동하는
뉴질랜드 출신의 타이카 와이티티가 제작으로 참여했습니다.
20세기 중반부터 모더니즘과 제국주의, 권위주의 등을 비판하는
여러 문화 콘텐츠 중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토착민들의 이야기는
꽤 많이 접할 수 있는 서사이지만, 감독 출신부터 알 수 있듯
지금 현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어두운 미래 사회에 빗대며
딸을 빼앗긴 엄마의 처절한 사투를 그립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나이트 레이더스 줄거리
하나의 국가, 하나의 언어, 하나의 국기
2043년 캐나다 북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상을 지배하려는 독재국가 에머슨은
미성년 자녀들을 강제로 입교시켜 세뇌시키고 인간 병기로 길러내려
18세 미만의 자녀를 데리고 있으면 안 된다는 법까지 만듭니다.
니스카와 딸 와시즈는 도시 외곽의 우거진 숲에서 수시로 보내는 AI 드론의 정찰을 피해 살아가죠.
하지만, 식량을 구하던 중 와시즈가 덫에 걸려 큰 부상을 입게 되면서 이들의 상황도 바뀌게 됩니다.
당장 치료가 필요한 딸을 위해 도시에 함께 잠입하지만,
약을 구할 수 없음을 알게 된 니스카는 결국 자신의 딸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아카데미로 끌려가게 놔두는데...
예고편│ Trailer
원제 : Night Raiders│감독·각본 : 다니스 고렛│출연진 : 엘레 마이아 테일페데스, 브룩클린 르텍시에 하트, 알렉스 태런트 외 多
│장르 : SF, 드라마, 미스터리, 스릴러│상영 시간 : 101분│국가 : 캐나다, 뉴질랜드│등급 : 15세 관람가
│평점 : 로톤 토마토 신선도 84% 팝콘 47%, IMDB 5.1, 메타 스코어 63점│시청 가능 서비스 : 개봉일 2022년 3월 3일
# 나이트 레이더스 평점
모성애인가, 토착민의 비극인가
다른 나라를 침략해 땅을 점거하고 자신들의 법과 제도를 통해 원래 살아온 민족을 핍박하며
쫓아내는 제국주의의 모습이 에머슨이라는 국가를 통해 반영됩니다.
이는 인류가 반복해 온 하나의 역사로, 감독의 고향 캐나다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호주, 남아메리카 등
모두 유사한 사건들이 이어져왔다 할 수 있고,
어쩌면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 또한 이와 멀지 않음을 느낄 수 있죠.
가상의 국가 에머슨은 미성년자들을 강제로 입교시켜
“하나의 국가, 하나의 언어, 하나의 국기”라는 애국 강령을 반복해 외우게 하고,
외부와 철저히 격리시킨 채 이와 떨어진 사람들은 드론의 배급 식량 속 바이러스를 넣어
자신의 야욕을 채우려 합니다. 이것은 토착민들은 물론, 가족 간의 연결고리마저
배제한 채 하나의 역사로 통합하려는 독재국가의 모습을 띕니다.
다만 위에 언급한 주제의식을 끝까지 이어가기에는 인상적인 장르 영화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합니다.
크리족 출신이지만 그들과의 연결이 거의 전무한 상태로 예언을 기반해
별다른 갈등 없이 하나의 공동체를 생성하고
주 플롯은 딸을 찾기 위한 모성애를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는 극 중 등장인물 간의 관계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개연성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흐릿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감독이 과연 파괴된 공동체를 각기 다른 개인이 다시금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것인지 의구심이 들게 합니다.
이 때문인지 마지막에 보여주는 와시즈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너무나 뜬금없게 다가왔죠.
그렇기에 제국주의나 독재에 의해 파괴되고 자본주의에 의해
무너지는 토착민 공동체의 미래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디스토피아 세상에서 딸을 지키려는 엄마의 사투인지
명확한 설정이 부족하다 느껴졌습니다.
현재에도 진행되는 문제점에 대한 새로운 시선, 그리고 의미를 확장하고
공유시키는 행위는 분명 의미가 있겠지만, 이를 전달함에 있어 명확함은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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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룩 업」가짜 뉴스 때문에 빡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스포없음) | 돈룩업 리뷰 | 돈 룩 업 영화리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아리아나 그란데 | 빅쇼트 |
? "돈룩업(2021,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리뷰 (*스포없음)
- 돈룩업 영화정보
장르: 코미디, 드라마, SF
감독 | 각본: 애덤 맥케이
원안: 애덤 맥케이, 데이빗 시로타
제작: 제니퍼 매들로프, 애덤 맥케이, 케빈 J. 메식, 스테이시 로버츠 스틸, 스콧 스터버, 제프 G. 왁스먼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롭 모건, 조나 힐, 마크 라이런스, 타일러 페리, 티모시 샬라메, 론 펄먼, 아리아나 그란데, 키드 커디, 케이트 블란쳇, 메릴 스트립, 히메시 파텔 등
촬영: 라이너스 샌드그렌
음악: 니콜라스 브리텔
배급사: 넷플릭스
개봉일: 대한민국 2021년 12월 8일, 미국 2021년 12월 10일, 넷플릭스 아이콘 2021년 12월 24일
화면비: 2.39 : 1
상영 시간: 139분
제작비: 7,500만 달러
- 돈룩업 시놉시스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의 존재를 발견한 두 천문학자
임박한 재앙을 전 인류에 경고하려 언론사를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른 데 정신이 팔린 세상은 시큰둥한 반응뿐
"그래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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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부모 밑에서 자란 귀여운 천재소녀 마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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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오 나의 마리아> 메인 예고편
50살, 순결함을 깨고 다시 태어나다!
곧 50을 앞둔 마트 캐셔 마리아.
집착하듯 성모 마리아상을 모아 마리아의 집은 성모 마리아상으로 가득하다.
50번째 생일 하루 전 날, 이상한 증상을 느껴 산부인과를 찾는 마리아.
무례한 의사는 “여전히” 경험이 없는지 질문하며 비웃듯 갱년기를 진단한다.
처방받은 호르몬 패치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어딘가 이상해지는 마리아.
불쑥불쑥 찾아오는 마리아의 조카 헬레나는 단번에 이모의 변화를 눈치채는데…
모든 감각과 머릿 속 공상이 생생히 살아나며 그동안과 다른 자유를 맛보게 되는 마리아.
그녀를 가두었던 순결함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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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TV+ <슬로 호시스> 공식 예고편
밑바닥 요원들 손에 떨어진 일급비밀. 4월 1일 Apple TV+에서 '슬로 호시스' - Slow Horses를 감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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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만들 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여 급감한 관객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다. 하지만 이동진 평론가가 지적했듯 헐리우드 영화의 관객 수는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여 92% 가량으로 거의 회복한 모양새다. 전 세계적으로 ott가 발달하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관객들은 극장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원하고, 그 수요를 충족시키는 영화들은 보란듯이 스크린에서 맹활약 중이다. 그러나 한국 영화계는 전에없는 위기를 경험 중이며, 특히 올 한해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가 극히 드물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비상사태에 봉착한 상황이다. 관객은 여전히 티켓가 인하를 외치고 있고, 극장과 제작사는 인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관객도 극장도 모두 정답을 알고 있다. 관객은 좋은 영화에 대해 얼마든지 현재의 티켓가를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영화 <차박 - 살인과 낭만의 밤>은 안타까울 만큼 기존의 서사와 캐릭터를 답습하며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던 문제들을 반복한다. 이런 영화들에 대해서는 기존에 수많은 리뷰를 통해 때로는 직접적으로, 때로는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해 왔기에 이번만큼은 완곡한 표현 없이, 순서를 매겨 문제점을 지적하는 편이 효율적일 것으로 보인다.
1. 인물 간의 관계와 캐릭터성의 진부함
주연배우가 데니안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영화를 리드해 나가는 것은 김민채 배우가 연기한 미유라는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본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안타까울 만큼 진부한 캐릭터를 답습하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인 것은 미유다. 김민채 배우의 빛나는 연기력이 아쉬울 만큼 미유는 기존의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던 '감정적인 여성' 혹은 피해자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을 찾아온 사촌동생에게 단호하게 대처하거나 무시하는 대신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남편에게 애교가 많으며 나약한 여성상을 보여준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비록 후반부에서는 능동적으로 살인마에게 대항하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미유는 감정적이다.
감정적인 여성 캐릭터가 문제인 이유는 남성은 이성적이고 여성은 감정적이라는 구시대적인 성별 구분법적 캐릭터 설정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과거 반복되던 서사에서 여성은 감정적인 모습을 약점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를 성적으로 어필하는 데 활용해왔다. 남성 구원자에게 나약한 여성은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하기 위한 손쉬운 대상이다. <차박>에서 이 점이 더더욱 큰 문제였던 이유는 심지어 미유가 사촌동생과 근친관계였음을 노골적으로 암시하기 때문이다. 미유가 가진 비밀은 미유 자신의 야망이나 삶에서의 목표가 아닌 연애 관계에 머무른다. 이는 미유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원(데니안 분)에게 자신의 남성성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고작 아내인 미유를 보호하는 것뿐이라는 점은 서사뿐만 아니라 캐릭터 설정에서도 문제다. 설상가상으로 수원은 이 부분에서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
2. 신선한 소재가 전혀 활용되지 않음
언론 시사회에서 감독이 스스로 밝혔듯 차박은 여지껏 영화에 활용된 선례가 극히 드문 신선한 소재다. 익숙한 공간인 집을 공포의 공간으로 바꾸어 일상의 공포를 활용하던 방식은 한때 신선했지만 점점 흔해져 이제는 전단지의 카피로도 활용되지 못한다. 차박은 일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미지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영화에서는 미유와 수원이 단 둘이 보낼 수 있는 어둠의 배경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는 차박이라는 소재를 영화 초반 잠시 미쟝센으로만 활용하고 결국 공포의 배경으로 야산과 살인마가 활보하는 건물 내부를 택한다. 제목에도 활용된 차박은 영화를 보고 나면 대체 왜 차박이라는 소재가 필요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잠시 등장했다가 장렬하게 전사한다. 서사의 시발점이 되는 소재만큼은 신선하지만 이를 이끌어 나가는 동력이 없는 점은 최근 한국영화가 겪는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
3.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인물의 서사가 지나치게 생략됨
<차박>에는 주연으로 활약하는 미유와 수원 외에도 꽤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들에 대한 설명은 전무하다.
인물을 설명하는 데 있어 때로는 미지의 과거가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인물의 행동 경위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생략되는 경우는 관객을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기실 전사를 알 수 없어 매력적인 캐릭터는 조커와 안톤 쉬거를
제외하곤 극히 드물다. 이 두 캐릭터조차도 이들 외의 인물은 전사가 알려져 있거나 짐작할 수 있어 한층 빛을 발했던 경우다. 영태(홍경인 분)의 경우 영화 초반부 등장해 관객에게 의문을 남기고, 영화 후반부에 재등장해 나름의 활약을 보여주지만 관객에게 영태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일 뿐이다. 영태의 전사가 어렴풋이 짐작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사 내의 행동을 전부 설명해주진 못한다.
무엇보다도, 서사에 드러난 미유와 수원의 전사 또한 이들의 행동을 그다지 잘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결국 캐릭터의 문제가 서사의 개연성 부족으로 이어진다.
<차박>에서 지적할 수 있는 부분들은 이외에도 많다. 굳이 필요하지 않은 근친 소재를 사용한다거나
소아성애가 암시되는 것, 모든 행동의 이유가 단순히 사랑으로 설명된다는 점 등이 부수적인 문제점이다.
한국 관객들이 단순히 스크린에서 스펙터클만을 기대해서 한국 영화를 보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한국 관객은 이제 보다 발전된 서사와 깊이 있는 메시지를 원할 뿐이다.
*본 리뷰는 씨네랩 시사회 초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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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사회 시스템의 축소판, 그곳은 정말 유토피아였을까
우리가 사는 사회 시스템은 개개인들이 좀 더 체계적으로 살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집이 물리적인 공간을 의미한다면, 사회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다. 개인, 가족, 사회는 국가 단위로 그 단위를 확장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필요한 것들을 채워 넣어왔다. 규율과 법을 만들고 국가를 통치할 지도자를 뽑는다. 그렇게 뽑은 대표는 사회 전반적인 부분을 넓게 조망하면서 잘 되지 않는 일을 해결하고 모두가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 부족 사회에서도 작은 단위에서 늘 지도자와 그 주변은 다양한 논의를 거쳐 사회를 이끌어왔다. 이른바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은 다르게 말하면 정치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앞에 서서 사회를 이끌어왔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을 따르고 문제를 만들어내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계속 정쟁이 끊이지 않고 갈등은 계속된다. 어떤 경우에는 불합리한 결정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배척하고 사회에서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한다. 어떤 것이 더 옳은 것인지 현재 시점에서 판단할 수 없다. 그 갈등들이 지나간 후에 돌아보아도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지진 이후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의 이야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사회 체계가 무너진 이후,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모든 사회 시스템이 파괴되고 하나의 공동체만 유일하게 남게 된 것이다. 여기에 외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멀쩡해 보이는 아파트로 몰려든다. 식량, 추위 등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지만 선뜻 누군가 먼저 나서 상황을 끌어가지 못한 채 사람들은 점점 어려움에 봉착한다. 그때 아파트에 불이 나고 한 인물이 갑자기 달려 나와 그 불을 꺼 혁혁한 공을 세운다. 그 인물은 바로 영탁(이병헌)이다.
그렇게 영탁은 우연하게 사람들 눈에 띄어 영웅과 비슷한 위치에 선다. 그리고 결국 그가 새로운 아파트 대표가 된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사회 시스템이 붕괴된 곳에서 새롭게 등장한 지도자 그룹의 이야기를 담는다. 부녀회장인 금애(김선영)와 영탁을 중심으로 몇몇의 지도자 그룹이 만들어지는데, 여기에는 보안과 방법을 맡는 민성(박서준)이 포함된다. 이 영화에서 꽤 중요한 위치에 있는 민성은 과거 공무원이었고, 간호사인 명화(박보영)와 함께 살고 있다. 민성은 안정지향적인 인물이고, 명화는 좀 더 박애주의적이다. 초반에 외부인을 대하는 조금 다른 태도를 보여주는 두 사람의 성향은 영화 중반 이후 갈등을 만들어낸다.
새롭게 지도자가 된 영탁은 미스터리 한 인물이다. 조금은 어눌해 보이는 그의 초반 모습은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지 의심하게 하지만 그는 사람들을 모아 황궁아파트 주민이 아닌 외부인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다. 그가 처음으로 실행한 이 일은 그가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지위를 탄탄하게 가질 수 있게 만든다. 그렇게 힘을 얻는 그가 만들어내는 황궁 아파트의 사회는 정말로 유토피아처럼 보인다. 간호사를 중심으로 의료 센터를 만들고, 남자들이 외부로 나가 음식을 구해온다. 그렇게 모은 음식과 생활용품은 분배소에서 주민들에게 동일하게 분배를 한다.
완벽하지만 외부인에게 배타적인 시스템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은 적어도 황궁 아파트 주민들에게는 완벽하다. 그들은 나름의 룰을 만들어 그곳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애쓰고 그것을 실제로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지 못했던, 사회 시스템이 주는 안정감을 영화는 여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단, 한 가지 간과하게 되는 건 영화 초반에 황궁 아파트의 주민들이 외부인을 몰아내는 장면이다. 주민들은 강압적인 방식으로 외부인들을 몰아냈고, 많은 외부인들은 추운 날씨에 얼어 죽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이 과연 좋은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영화는 계속 질문을 던진다. 생존을 위해서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사회 시스템이 하는 모든 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지. 모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무엇보다 가장 크게 생각하게 되는 부분은 바로 내가 그 안에 있었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외부인과 함께 살고자 한다면 사람은 점점 늘어나게 된다. 그렇다면 생존 시간이 줄어들 거라는 아주 단순한 계산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외부인들은 배제된다. 다 같이 사는 것이 아닌 우리만 사는 결정을 한다.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민성은 이 영화의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 있는 일종의 관찰자다. 그는 영탁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황궁 아파트라는 사회 시스템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 그는 그 사회 시스템을 믿고 따른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회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외부인을 몰아내고, 외부에서 음식을 구할 때 외부인을 공격하기도 한다. 반면 민성의 아내 명화는 같이 사는 방향을 찾아보려 애쓴다. 몰래 숨어있는 외부인들을 돕고 이 영화의 가장 큰 비밀을 가지고 있는 인물의 진실을 밝혀내기도 한다.
민성의 생각이 옳을까? 아니면 명화의 생각이 옳을까? 다르게 묻는다면, 생존을 위해서는 우리만 사는 게 더 좋을까 아니면 다 같이 사는 게 더 좋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이 질문에 대답하기 쉽지 않다. 어떤 쪽으로 결정하더라도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불편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떤 쪽이 더 맞는다고 이야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질문하는 영화
영화 속 리더가 되는 영탁은 중요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 그 비밀이 무엇인지도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더 흥미로운 건 그 자신조차 피해자이자 약자라는 것이다. 그의 비밀이 밝혀졌을 때도 그를 온전히 미워할 수만은 없는 건 영탁이라는 인물도 결국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황궁 아파트의 대표가 되어 리더십을 발휘하지고 심지어는 악행도 서슴지 않지만 영화는 그가 과연 그 정도로 돌을 맞아야 하는 인물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사회 시스템은 필요하다. 엄청난 재난 상황에서 인간은 생존을 가장 앞에 두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배타적으로 외부인을 배제하지 않았고 포용적으로 받아들였다면 그 결말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 속 황궁 아파트의 사회 시스템은 배타적인 방향을 택했다. 그 결정이 될 당시만해도 그것은 옳은 선택으로 느껴졌다. 무엇보다 그 결정은 주민들의 투표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러니까 결정과정도 공정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야기의 결말을 따라가다 보면 어떤 것이 더 맞는 것인지 자꾸만 되묻게 만든다.
영화는 결말 부분에서 다른 선택을 한 시스템의 형태를 보여준다. 따뜻하고 새하얀 주먹밥으로 대표되는, 그 다른 시스템은 따뜻해 보이지만, 그이후의 결말은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여기에도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야 하고 어떤 형태로든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그들만의 사회 시스템은 어떤 모습이 될까.
아무것도 없어진 사회에 완벽한 시스템이란 없다. 어디에도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이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완벽한 국가는 없고, 완벽한 시스템은 없다. 누구는 배타적으로 다른 사람을 배척하려 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포용할 것이다. 가장 쉽게 난민에 대한 여러 국가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난민들은 유토피아를 찾아 떠돌지만 그런 유토피아는 없다. 대부분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던 국가들은 잔인하게 난민들을 외면한다.
영화의 제목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콘크리트로 만든 아파트, 황궁 아파트를 의미할 것이다. 한국에서의 아파트의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낡은 오래된 아파트이지만 자산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사전적 의미로 집은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모든 사람이 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하지만 충분한 자금이 없으면 그런 집을 구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현대 사회에 꽤 만연해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점점 배타적으로 변해가는지도 모르겠다. 이 집은 내 집이니까 외부인은 나가라는 그 편한 말은 그들에게 안정감으로 돌아온다.
현대 사회 시스템의 축소판,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 초반 민성이 통조림을 떨어뜨려 소파밑으로 굴러간다. 그것을 집으로 소파 밑에 팔을 뻗어 통조림을 꺼내자 바퀴벌레들이 튀어나온다. 그러자 아파트 사람들은 기겁하며 모두 바퀴벌레를 밟아 죽인다. 이 영화에서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외부인들을 바퀴벌레라고 부른다. 그 영화 초반 장면 자체가 이 영화의 전체 이야기를 함축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관객에게 ’ 너라면 어떤 결정을 할 것 같아?‘라고 묻는다. 안정적인 사회 시스템 안에서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하면서 나아가야 할까.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 어쨌든 결정을 하고 실행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 질문은 꽤 난해하고 아픈 질문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영화적 재미를 놓치지 않고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화는 올여름 개봉한 영화 중 가장 지적인 이야기를 던진다. 적어도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다루는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초반의 어눌한 모습의 영탁이 후반부로 갈수록 광기에 휩싸이는 것을 표현한 이병헌의 연기가 무시무시하다. 민성 역을 맡은 박서준은 사회 시스템에서 안정적인 방향의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지만 예상과 다른 결말을 보게 되어 황망해하는 모습을 무척 잘 표현했다. 그 밖에도 명화 역의 박보영과 부녀회장 김선영의 연기도 훌륭하고 그 외의 인물들도 모두 훌륭한 연기를 보여줘 극에 현실감을 높인다. 이 모든 것을 제대로 표현해 낸 엄태화 감독의 연출력이 가장 돋보인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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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편난 기억 너머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것들
애프터 양 (AFTER YANG, 2021)
"파편난 기억 너머에서 마주한 아름다운 것들"
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드라마, SF
러닝타임 : 96분
감독 : 코고나다
출연 : 콜린 파렐, 조디 터너 스미스, 저스틴 H. 민
개인적인 평점 : 4.5/5
쿠키 영상 : 없음
애프터 양 줄거리
함께 살던 안드로이드 인간 ‘양’이 어느 날 작동을 멈추자 제이크 가족은 그를 수리할 방법을 찾는다. 그러던 중, ‘양’에게서 특별한 메모리 뱅크를 발견하고 그의 기억을 탐험하기 시작하는데… 무엇을 남기고 싶었어,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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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제가 됐던 애플 TV <파친코(1,2,3,7편)>의 연출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게 된 코고나다 감독의 신작 <애프터 양>이 전주 국제영화제를 거쳐 국내에 정식 개봉한다. 제23회 전주 국제영화제의 개봉작으로 선정된 <애프터 양>은 매 상영마다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애프터 양>은 알렉산더 와인스틴의 단편 소설 [양과의 안녕]을 각색한 작품으로, 테크노 사피엔스라 불리는 안드로이드가 각 가정에 보급된, 언젠가 다가올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영화다. 주인공 제이크 가족은 입양한 딸 미카의 고향인 중국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안드로이드 양을 구매한다. 양은 미카에게 선생님이 되어주기도 하고, 하나뿐인 형제가 되어주기도 한다. 미카 또한 양을 오빠라 부르며 그에게 의지하고 함께 마음을 나눈다.
어느 날, 수명이 다된 것인지 양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되자 제이크는 공식 서비스 센터와 사설 센터를 오가며 양을 고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어딜 가든 양은 다시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부정적인 답만 돌아올 뿐이다. 제이크는 양을 차 뒷좌석에 앉힌 채 이곳저곳을 헤매다 마지막 보루로 테크노 사피엔스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박물관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양의 중심부에 저장되어 있던 그의 기억 조각들을 마주하게 된다.
<애프터 양>은 안드로이드 양의 짧은 추억들을 함께 되짚으며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감정인 사랑과 행복했던 기억, 소중한 것의 상실과 회복, 나의 뿌리(정체성)와 인생을 찾아가는 여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 하나의 아쉬웠던 점? 취향의 차이
개인적으로 <애프터 양>은 상당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사심이 가득해서 더 좋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솔직히, 미리 말하자면 이번 리뷰에선 영화의 장단점을 비슷한 비율로 다루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나에겐 이 영화가 상당히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마친 후, 남아있는 감정에 푹 젖어있다가 다음 상영을 바로 예매했을 만큼 이 영화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아마 이 글의 90%는 영화의 장점과 내가 느꼈던 영화의 메시지들로 채워질 예정이라 아주 작은 아쉬웠던 점 하나를 먼저 던지고 가려고 한다.
<애프터 양>은 느린 속도를 좋아하지 않는 관객들에겐 추천하지 않는 영화다. 오프닝 신을 제외하면 스피드가 느껴지는 신이 거의 없고, 양의 기억이 짧게 파편 난 채로 재생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영화 전체가 마치 아름다운 비디오 일기처럼 흘러가는 느낌이 있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외적으로 감정을 많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다이나믹한 감정선을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또 SF영화라 하여 상상력으로 가득한 세상을 기대하는 관객에게도 비추! 조용한 영화기 때문에 피곤한 상태로 관람하는 것 또한 비추다.
객관적으로 본 아쉬운 점은 이 정도가 있겠고..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단점도 아니고 그냥 취향 차이 정도가 아닐까? 오히려 난 이 천천히 흘러가는 화면들이 좋았다. 빠르지 않은 속도 덕분에 푸른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연하게 느껴지는 바람 같은, 그 순간에 담긴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
오늘부터 나의 최애 주머니에 담긴 저스틴 H. 민 배우
이 영화에 처음 띠용-했던 건 코고나다 감독의 이름 때문이었고, 죽어도 꼭 봐야겠다!! 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저스틴 H. 민’이라는 배우 때문이었다. 올해 초, 나는 뒤늦게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통해 이 배우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고, <애프터 양>을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해사한 미소와 조곤조곤한 말투, 밝은 성격과 내 취향을 저격하는 매력적인 외모. 거기에 <엄브렐러 아카데미>에서 보여준 발랄함과 따스함이 뚝뚝 떨어지는 연기까지… 저스틴 H. 민은 내 눈에 쏙 들어오는 매력적인 배우였다. 그리고 나는 <애프터 양>을 보자마자 한치의 망설임 없이 저스틴 H. 민을 최애 주머니에 담아버렸다.
저스틴 H. 민 배우는 <엄브렐러 아카데미>에서 보여줬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으로 '양’이 되어 스크린에 나타났다. 그는 언젠가는 로봇처럼 딱딱하고 어색하게, 언젠가는 따스한 오빠처럼, 언젠가는 든든한 부모님처럼, 또 다정한 연인처럼 느껴지는 여러 결의 눈빛을 흘리며 나의 마음을 완벽히 홀리는 데 성공했다. 사실 저스틴 H. 민 배우는 단편 영화들을 제외하면 아직은 필모그래피가 많지 않은 배우인지라, 다양한 연기를 보지 못했었는데 <애프터 양>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정말 기뻤다. 나는 섬세하고 정갈한 그의 호흡에 속절없이 빨려 들었고 '이 배우는 지금도 엄청난 스타지만… 앞으로 더 잘될 배우가 확실하다!’고 외치며 그에게 뼈를 묻기로 다짐했다.
세련된 연출
<애프터 양>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다. 정확히 몇 년인진 알 수 없어도 왠지 멀지 않을 것 같은 미래로 보인다. 코고나다 감독은 익숙한 현재의 모습에 미래의 모습을 자연스레 녹여낸다. SF영화라 하면 정말 상상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배경을 떠올릴 수도 있는데, 이 영화는 정말 곧 다가올 것 같은 미래의 모습을 담았다. 안경과 닮은 판독기, 낯설지 않은 차의 구조, 지금도 찾아볼 수 있는 익숙한 카메라와 집, 가구들. 그래서인지 정말 이런 가족이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어 더욱 몰입이 됐던 것 같다.
그리고 인물들의 의복이나 음식, 차를 우려먹는 문화를 통해 영화 곳곳에 동양적인 요소들을 가미함과 동시에 깔끔한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건축물과 가구들을 배치함으로써 흠잡을 곳 없는 깔끔하고 안정적인 화면을 보여준다. 더불어 이 영화의 세련됨은 오프닝에서 제대로 느낄 수 있는데, 이 부분은 먼저 얘기하면 장면의 재미를 반감시킬 수 있으니 자세히 언급하진 않겠다.
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H. 민 배우의 만남.
그들이 던지는 "~다운 건 무엇일까?" 하는 질문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H. 민 배우. 각자 떨어뜨려 놓아도 충분히 이슈를 몰고 다니는 인물이자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공통된 정체성이 있는 두 사람이 만난 작품이라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영화에서 양과 가까운 사이였던 에이다는 양이 교육용 안드로이드로서 미카를 가르치기 위해 중국의 문화와 아시아인다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다고 말한다. 양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아시아인의 조건은 무엇일까?"
프로그램에 정보가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의 역사, 문화를 해박하게 알고 있지만 사실 중국에서 살아본 ㄴ적이 없는, 그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는 양은 미카를 가르치면서도 아시아인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제이크와 차를 마실 때도 그렇다. 차의 기원과 종류는 다 알고 있지만, 양은 차 한잔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 그것이 어떤 맛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다운 것이란 무엇일까?"
하나 더 예를 들자면 제이크의 찻집이 있다. 제이크는 잎이 그대로 살아있는 차를 판매한다. 영화의 첫 장면, 제이크의 찻집에 들어온 손님은 가루로 된 차가 없냐고 묻더니 "차 가루가 없는 찻집도 있냐"고 말하며 찻집을 나간다. 차 가루가 없는 찻집은 찻집답지 못한 걸까? 찻집 다움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제이크는 손님의 말을 마음에 담아뒀는지 차 가루를 내 양과 함께 차 한잔을 마셔보지만 가루로 된 차가 주는 맛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시아인의 조건은 무엇일까?", "차를 즐긴다는 건 무엇일까?", "안드로이드다운 것은, 인간다운 것은 무엇일까?", "가족이란 건 무엇일까?" <애프터 양>은 무언가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애프터 양>을 만나기 전, 저스틴 H. 민 배우의 <애프터 양>이란 영화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터뷰를 읽고 가서인진 몰라도 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H. 민 배우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끊임없이 던져야 했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온전히 느껴지는 듯했다.
차에 대한 기억이 없고 지식만 있어도 나는 차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인가?, 중국에 대한 기억이 없고 역사에 대한 지식만 있어도 나는 아시아인이 되는 것인가?
저스틴 H. 민 배우는 자신 또한 이런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분명 나는 한글을 배웠고, 한인 교회에 갔고, 한국에 대해 알고 있지만 그것이 나를 한국인답게 만들 수 있는 걸까?"하는 고민 말이다. 코고나다 감독 또한 이 영화를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들어간 영화라고 언급했다.
저스틴 H. 민은 양을 닮았고, 양은 저스틴 H. 민과 닮았다. 나는 과연 누구이고,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나다운 것인가. 저스틴 H. 민 배우는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나’의 뿌리를 찾아가는 양의 여정이 곧 자신의 여정이기도 하다고 언급했다.
양의 이름 + 뿌리와 정체성에 대하여
Yang이라는 이름은 코고나다 감독과 저스틴 H. 민이 항상 고민했던 '이민자(한국계 미국인)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그대로 드러나는 매개체다. 우리는 Yang을 양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영화 속 제이크의 가족은 Yang을 양이 아닌 '얭’에 가까운 발음으로 부른다.
저스틴 H. 민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코고나다 감독과 양의 이름에 대해 함께 고민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 사람은 양의 발음을 실제 버전(양)으로 할지 미국화 된 발음(얭)으로 할지 신중히 고려해 '얭’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서양인 부모들이 "Yang을 원래 발음에 가깝게 발음하기 위해 크게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코고나다 감독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아시아와 서양이라는 두 개의 문화의 중간에서 정체성과 소속감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양의 잘못 발음되는 이름을 통해 은유적으로 나타냈다고 한다. 아마 서양, 아시아의 문화 사이에서 정확히 자리를 잡지 못한 채 고민하고 있는 이민자들의 모습을, 서양 부모들에 의해 '양’이 아닌 대충 '얭’으로 발음되는 그의 이름으로 비유했다고 생각하면 될듯하다.
다양성에 대하여
위에서 언급한 "~다운 것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은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주인공인 제이크의 가족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영화엔 다양한 모습을 한 가족들이 나온다. 제이크의 가족은 백인 남성, 흑인 여성, 아시아인인 딸, 안드로이드로 구성되어있고 그의 옆집엔 복제 인간 아내와 아이를 둔 이웃이 살고 있다. 오프닝 신에 나오는 가족 댄스 대회의 참여 가족들 또한 피부색, 성별, 인간/복제 인간/안드로이드의 구분 없이 다양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같은 인종인 부부가 이루는 것인가?, 또는 사회 통념상 정해진 보통의 연인들이 이루는 것인가? 아니면 같은 핏줄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이룰 수 있는 것인가? 그 무엇도 정답이 될 수 없다. "~ 다운 것"은 타인이 함부로 정할 수 없는 개인의 정체성 문제이고, 그 답을 찾고, 정의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인것이다.
댄스 대회를 하면서 제이크의 가족들은 "우리가 한 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대로 이들은 하나의 온전한 가족이 되어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한 팀이 되어 살아간다. 백인 아빠와 흑인 엄마, 입양된 아시아인 딸, 딸의 오빠 역할을 하고 있는 안드로이드. 혹시 이들을 감히 '가족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있다면 내가 아주 조금만 혼내주려고 하니 어디 한번 그렇게 말해보길 바란다…)
새로운 안드로이드
나는 지금껏 안드로이드, 로봇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사뭇 건조할 것이라 생각했고 안드로이드는 인간이 될 수 없다는 한계를 깨닫는 순간, 높은 확률로 슬퍼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양은 달랐다. 그는 제이크의 가족에게 심어진 곁가지가 아닌 든든한 뿌리였고, 인간이 아닌 자신의 인생을 슬퍼하지도 않았으며, 건조한 표정을 하고 있는 진짜 인간들보다 더욱 인간다운 삶을 살아온 존재였다.
영화의 초반, 인간들의 눈으로 본 양은 딱딱한 로봇 같은 모습이다. 그는 미카와 대화를 나눌 때도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어딘가 어색한 모습으로 비친다. 하지만 양의 기억 속 양의 모습과 양이 느낀 감정들은 어떤 등장인물보다도 더 '인간다웠다'. 옆에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소중히 간직하는 따뜻한 마음, 사랑한 사람을 잊지 않고 그의 주변을 맴도는 지고지순함, 거울을 보며 빙긋 웃어보는 모습까지. 수많은 기억을 저장하며 순수하게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양의 모습은 아름다운 인간 그 자체였다.
여담으로 저스틴 H. 민 배우는 GV를 통해 양의 기억을 언급하며 양은 일상의 순간들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다며, 관객분들도 일상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생각해보니 내 일상을 단조로운 것이 아닌 매일 다른 아름다운 것이라고 생각해본 날이, 일상에서 내 인생의 의미를 찾아본 날이 언제였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처음엔 왜 양이 주인공인지, 왜 그가 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양의 기억을 여는 순간 확실히 알게 됐다.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애프터 양>인지. 그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옅은 흔들림과 여전히 반짝이고 있는 기억들은 나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선물했다. 이런 사랑스럽고 복잡한 안드로이드 같으니…
양의 소중한 기억 속을 함께 유영하며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96분. 이 시간의 일부는 나의 '아름다웠던 순간' 중 하나로 고이 저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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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어붙은 꿈들을 녹이는
*<브레이킹 아이스>에 대한 단상.
-나는 그 무엇도 아닌, 주동우의 얼굴을 기다렸구나, 하고 깨달았다. 그녀의 괜찮은 척 하는 미소, 체념하고 포기한 표정,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 꿈을 포기한 사람의, 무던해져 보려는 힘겨운 노력이 그녀의 얼굴을 통해 관객에게 닿는다. 언어를 초월한다.
-청춘, 겨울, 성장, 로맨스, 삼각관계 같은 것들은 뻣뻣하게 굳어 있다가 <브레이킹 아이스>에서 추운 공기와 두텁게 쌓인 눈, 잠에 취한 얼굴들을 보여주면서 천천히 녹는다.
-의외의 디아스포라.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려오고, 한국어 간판과 컵라면이 있는 연길에서 주인공들은 서로를 마주한다. 고향에서 도망쳐 온 여자,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남자, 그리고 잠시 들른 여행자. 그에게 구경을 시켜준다는 명목 아래 셋은 도시 여기저기를 여행하게 된다. 그들은 백두산까지 간다. 우울을 안고, 죽음을 선택지로 손에 쥐고 있는 하오펑의 내일이 없는 것 같은 여행은 오히려 샤오에게 새로운 내일을, 나나에게는 새로 시작해 보고 싶은 마음을 가져다 준다.
-어쩌면 조금 서툰 진행과 보기 좋기만 한 성장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산 꼭대기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세 사람의 걸음과, 모르는 언어로 적힌 간판들 사이를 누비는 여행이 그들에게 다시 시작할 힘을 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브레이킹 아이스>가 관객에게 호소하는 방식은 그렇다.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에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