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M2022-10-01 02:28:42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 The Fall
REVIEW
< 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 The Fall >
올해 두번째 '못 일어나겠어' 작품입니다.
(= 만점영화)
일단 이 영화 진짜 좋습니다.
좋은 이유:
1. No CG, 올 로케이션이 주는 미적 쾌감
영화를 보면서, 씨지로 구현할 수 없는 질감들이 보이길래 '아 설마 올 로케?' 했는데.. 역시나 였다..
진짜 이 영화는 카메라 구도나 미장센 등 이게 현실로 가능하다고? 하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이 많은데.. 정말 놀랍다.
2. 현실과 이야기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슬픔
이게 내가 이 영화를 극찬하는 포인트다.
물론 미장센, 연출 다 좋지만, 난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
주인공이 아이를 통해 모르핀을 구해 자살을 하기위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이 이야기와 주인공의 현실이 묘하게 맞물리나 그 사이 간극이 너무나도 커서 마지막에 그것들이 잘 맞물리지 않고 헤매게 된다.
난 이 장면이 진짜 내가 올 해 본 모든 장면 중 세 손가락에 든다고 생각한다.
(이게 그 장면인데 진짜... 너무 슬프다..)
3. 이 세상 모든 '로이'들에게
가장 마지막 장면은 알렉산드리아가 영화들에서 스턴트를 하는 로이를 찾는 나레이션과 함께 여러 고전 액션 영화들의 장면들이 지나간다.
이 장면은 마치 영화 뒤의 이 세상 모든 '로이'들에게 헌사하는 장면 같아서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나만 그런건가.. 마지막에 다같이 모여 영화를 보고, 영화의 장면장면들이 흘러가는 엔딩을 보고있으니 문득 '시네마 천국'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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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장면
(이 장면도 앞서 말한 장면의 연장선이다. 같은 파트)
이 색감도 너무 좋고, 모든 것을 포기한 로이의 모습이 너무 가슴아프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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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이별부터 공존까지 멀지 않은 우리 사회의 일부.
한국단편경쟁 6은 4개의 단편 영화를 하나로 묶어내었다. <너에게 닿기를>, <작별>, <분리에 대한 중요한 발견과 그에 따른 몇 가지 불안>. <곰팡이>으로 구성되어 있는 영화이다.
너에게 닿기를
오재욱 감독
시놉시스
학급반장 수진은 의도치 않게 같은 반의 청각장애인 주연을 다치게 한다. 수진은 친구들과 함께 주연을 찾아가 사과하려고 하지만, 주연은 사과를 받지 않고 친구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리뷰
여러 가지 수단으로 전달되는 말과 표정의 중요성.
반장인 수진이 같은 반 청각장애인인 주연을 다치게 했다. 그로 인해 주연에게 찾아가 사과를 하려 하지만 주연은 그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수진은 '수화'를 통해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써도 도무지 전달되지 않는다. 무표정 때문일까.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일까. 알 수는 없지만 이대로 멈출 수는 없었다. 오늘 안에 사과를 건네고 오해가 풀리길 바랄 뿐이다.
어떤 대상에게 말을 건넨다고 해서 나의 모든 말이 누군가에게 닿는 것은 아니다. 강요하는 것보다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다 알아봐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심지어는 무언의 목적으로 인해 사과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너에게 닿는 그 순간은 어떤 ‘오해’에서 벗어나 다시 진심이 통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공유하는 건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는 진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말과는 다르게 말을 해야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작별
공선정 감독
시놉시스
사고로 친구를 잃은 영주는 외상으로 인해 대학을 휴학했다. 그리고 정신과 치료를 병행하며 중학생들에게 진로상담을 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영주는 치료와 봉사활동의 마지막 날을 앞두고 그해의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 친구와 작별한 지 1년째 되는 10월, 영주는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회복하게 되었을까.
리뷰
누군가의 슬픔은 그 자체로 받아들여져야 하지만 우리의 현재는 그렇지 않다. 언제부턴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슬픔’이라는 감정에 굉장히 피로도가 높아졌다. 그래서인지 누군가에 대한 위로와 추모보다는 원인에 대한 책임이 우선시 된다. 정작 해결해야 할 것은 해결되지 않은 채, 상황과 추측만이 남아있다. 사회에서 수많은 슬픈 일들이 반감을 일으키는 일이 된 건 무엇 때문일까. 사회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보다 ‘나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이별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분리에 대한 중요한 발견과 그에 따른 몇 가지 불안
전찬우 감독
시놉시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연인의 집에 모르는 남자아이가 텔레비전을 고쳐 달라며 찾아온다. 순순히 텔레비전을 고치는 남자와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여자. 여자는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 엄마를 기다린다. 늦은 밤.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서 아이와 재회한다. 아이가 떠난 연인의 집. 두 사람은 아이가 남긴 텔레비전 사이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재회한 아이와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 두고 온 텔레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리뷰
두 사람이 외출한 사이, 모르는 남자아이가 집에 앉아있다. 텔레비전을 고쳐주면 가겠다고 말하는 아이,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순순히 텔레비전을 고친다. 하지만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는 여자는 아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아이의 엄마를 기다린다. 늦은 밤이 되어 아이 엄마가 연인의 집에 찾아왔고, 아이와 다시 재회한다. 아이가 떠난 연인의 집. 두 사람은 아이가 남긴 텔레비전 사이에서 서로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시 재회한 아이와 아이 엄마는 연인의 집에 두고 온 텔레비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서로가 중요해서 떨어질 수 없지만 함께 할 수도 없는 사이에 대한 어떤 정의를 보여주는 영화일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던 영화였다. 장면이 조각조각 연결되며 같은 시간 속 다른 대화는 더욱 희미하게 흩어진다.
곰팡이
박한얼 감독
시놉시스
30대 여자 J는 배우자의 유골에 곰팡이가 피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곰팡이를 밥에 올리자, 곰팡이가 스스로 움직여 음식을 찾아간다. J는 곰팡이 핀 음식을 욕조에 넣어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한다.리뷰
J의 상황이나 과거를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한 건 배우자의 존재는 J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곰팡이에 영혼이 스며들어 있는 듯 보였다. 자리를 옮겨가며 검은색 자국을 조금씩 넓혀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J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곰팡이가 핀 음식을 욕조로 옮겨 담으며 무언가를 만들고 그 속의 자신을 담근다. 그렇게 해서라도 비로소 하나가 되는 그 모습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일까. 진짜가 아닌 것에 빠져들게 하는 상실의 마무리가 참으로 무섭게 여겨졌다.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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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주 차, 최신 씨네 뉴스
안녕하세요.
영화/ 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최근 국내외 영화 / OTT계에 어떤 소식이 있었는지 정리하는
최신 씨네 뉴스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그럼, 최근에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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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헤어질 결심> 박찬욱, LA 미술관 아트·필름 갈라 수상
ⓒ 네이버 영화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의 아트 필름 갈라의 올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박찬욱 감독은 미국 아티스트 헬렌 파시지안과 함께 수상자로 선정됐다.
<엔시티 드림 더 무비: 인 어 드림>, 글로벌 예매 오픈
ⓒ 드림메이커 / CJ 4DPLEX
NCT DREAM의 첫 번째 영화가 오늘 글로벌 예매 오픈과 함께 메인 예고편과 보도스틸을 공개했다.
영화는 11월 30일 한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개봉을 앞두고 있으며, 한국 예매는 11월 중순에 진행될
예정이다.
정려원, <하얀 차를 탄 여자> 샌디에이고영화제 수상
ⓒ 네이버 영화
배우 정려원 주연의 영화 <하얀 차를 탄 여자>가 올해 샌디에이고국제영화제에서 국제 영화
부문에서 '베스트 인터내셔널 피처' 상을 받았다. ‘하얀 차를 탄 여자’는 피투성이가 되어 작은
병원에 나타난 여자 도경과 사건의 진실을 좇는 형사 현주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스릴러물이다.
<아바타: 물의 길>, 러닝타임 3시간 10분
ⓒ 네이버 영화
13년 만에 개봉하는 <아바타>의 속편 <아바타: 물의 길>의 러닝타임이 3시간 10분으로 확정
됐다고 미국 매체 할리우드포터가 보도했다. <아바타>보다 러닝타임이 29분 정도 늘어났다.
해외
<13일의 금요일 프리퀄>, 프리퀄 시리즈 <Crystal Lake> 제작
ⓒ 네이버 영화
유명 공포 영화 <13일의 금요일>의 프리퀄 시리즈인 <Crystal Lake>를 Peacock에서 A24와 함께
제작 중이라고 한다. 원작 작가와 함께 제작하여 원작의 요소가 담긴 프리퀄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완다 비전> 스핀오프, <비전 퀘스트> 제작 예정
ⓒ IMDB
디즈니 플러스에서 <완다 비전>의 스핀오프 시리즈로 <비전 퀘스트>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한다.
화이트 비전이 기억을 되찾는 여정을 담은 작품이며, <완다 비전>의 메인 작가 잭 쉐퍼가 각본에
참여한다고 한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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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용주의 스승과 이상주의 제자의 이야기
삶은 배움의 연속이다. 유치원을 시작으로 정규 교육과정에 들어가서는 초중고등학교를 지나면서 폭넓은 지식을 습득해 나간다. 그렇게 알게 되는 지식은 개인 삶의 방향을 선택하는데 영향을 준다. 다양한 종류의 책과 이론들을 배워나가면서 사람마다 흥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뭔가 배워 나간다는 것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의 선택지를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던 조금씩 앞으로 나가다 보면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그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를 어느 순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에 또다시 향후의 방향성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놓인다. 그래서 무언가를 평생 배워나간다는 것은 자신의 선택지를 계속 늘려가는 것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배움의 한가운데에서 누구나 인생의 스승을 하나쯤은 만난다. 그것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물이나 동물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스승과 깊은 관계를 맺기도 하고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그것을 관찰하면서 무언가를 배우기도 한다. 그렇게 스승을 삼을 무언가를 만난다는 것은 지금까지 배워왔던 그 배움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과정이라고 할 수 있고 또 새로운 시각을 알 수 있게 되는 기회가 된다. 만약 그 스승 또한 사람이라면 스승도 제자를 만나 다른 시각을 보게 된다. 제자가 가진 새로운 관점의 질문들과 패기, 열정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그것에도 무언가 다른 것을 배우게 된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는 서로 한 뱡향으로 배움을 전달한다기보다 서로 상호 작용하며 각자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자산어보>는 흑산도 유배지에서 생활하는 정약전(설경구)과 흑산도에서 물고기로 생계를 이어가는 창대(변요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약전은 그의 동생인 정약종, 정약용(류승용)과 함께 그 당시 실학과 같이 들어왔던 천주교의 교인이 되었는데 이후 정조의 뒤를 이어 순조가 왕위에 올랐을 때 시작된 신유박해로 인해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반면 창대는 흑산도에서 나고 자란 인물로 틈틈이 혼자 여러 책을 읽으면서 지식을 탐구하는 청년이다. 그는 배움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점점 난이도 높은 책을 읽음으로써 향후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길 원하는 인물이다. 영화 초반 이 두 인물은 서로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데 정약전에게 창대는 그저 섬에서 일하는 젊은이로, 창대에게 정약전은 조정에 반하고 성리학을 욕보인 죄인으로만 보인다.
영화 속 정약전과 창대의 만남은 실용주의자와 이상주의자의 만남같이 보이기도 한다. 유배 전까지 다양한 정치활동을 해왔던 정약전은 이미 성리학의 이상적인 길을 가려고 노력한 여러 가지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여러 가지 정치적 경험을 한 이후, 그가 흑산도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적이고 학문적인 탐구보다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이나 활동에 관심을 더 기울인다. 그래서 그는 다른 곳으로 유배 갔던 정약용이 올바른 정치에 대한 글을 무수히 써나갈 때, 좀 더 실용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에 대한 글을 썼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다 생물들에 대해 정리한 자산어보(玆山魚譜)다. 그는 성리학만이 진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진정으로 백성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반면 창대는 글을 읽고 배우면서 성리학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의 길을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창대는 책과는 다르게 하찮게 보이는 백성을 위한 서적을 만드는 것처럼 다른 접근을 하는 정약전이 못마땅하다. 성리학이 가장 이상적인 것이라 생각하는 창대에게 정약전은 그저 잘못된 길을 가는 정치인으로 보일 뿐이다.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건, 각자가 가지고 있는 배움에 대한 열망이다. 정약전은 다양한 바다 생물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그것에 대한 책을 써 널리 알리고자 한다. 그 작업을 하는 데에는 창대가 가진 바다 생물에 대한 지식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창대는 좀 더 많은 책을 읽고, 어려운 책에 대해 배우고자 한다.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는 데에는 그것을 쉽고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에겐 박학다식하고 경험이 많은 정약전의 지식이 필요하다. 그 지식에 대한 배움은 자신의 학문을 발전시키고 성리학의 본질에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는 생각과는 다르게 조금씩 가까워지게 된다. 이들이 가진 배움의 열망은 그들이 상대방을 바라보는 고정관념의 색안경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보이는 지식과 인간적인 면들을 온전히 바라보게 만든다.
창대는 정약전에게 여러 책에 대해 배워 나가며 자신 만의 지식을 쌓아간다. 그러면서 그는 성리학에서 내세우는 것을 바탕으로 좋은 정치를 실제로 행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영화 속에서 창대는 양반인 아버지(김의성)의 혼외 자식이다. 하위 계층인 그에겐 관직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과거 시험 조차 볼 수가 없어 계속 공부를 해나가서 자신의 배움을 아버지가 알게 되면 시험의 기회가 주어져 관직에의 문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를 하고 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창대가 보기에 그저 앉아서 쓸데없어 보이는 책을 쓰고 있는 정약전이 답답하기만 하다. 반대로 창대를 바라보는 정약전의 마음엔 성리학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하지만 그런 정약전의 노력은 빛을 발하지 못한다.
스승은 제자에게 다양한 지식을 알려주지만 그것을 활용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결국 제자의 몫이다. 그것에 대해 스승이 어떤 의견과 방향을 말할 수는 있겠지만 제자는 그 의견을 모두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 정약전의 지식과 혜안에 감탄하며 책을 배우던 창대는 스승으로 삼은 정약전의 총명함에 완전히 빠져든다. 하지만 한참을 그에게 책을 배운 이후 그가 선택한 삶은 스승 정약전이 원하던 방향은 아니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이 둘은 서로 아주 먼 관계였다가 조금씩 가까워져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가, 이내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영화 속에는 크게 위기상황이 있지는 않지만 이 스승과 제자가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그 상황 자체가 두 사람에게 닥쳐오는 가장 큰 위기이자 또 다른 배움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보는 관객은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유배시절 쓴 자산어보의 서문에 적힌 내용을 바탕으로 상상을 가미해 구성한 영화다. 서문에 등장하는 창대는 물고기에 대하여 박학다식하다고 적혀있고 자산어보를 완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둘이 실제로 스승과 제자 관계였는지 그리고 각자 어떤 길을 가게 되었는지는 상상의 영역이다. 흑백으로 촬영된 이 영화는 흑산도(黑山島)의 모습을 아주 정갈하고 깨끗하게 담는다. 마치 그 당시의 이야기를 보는 것처럼 영화에는 흑과 백으로 구성되어 빛바랜 앨범을 꺼내어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흑백으로 촬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비추는 흑산도 주변의 모습이나 고기를 손질하는 모습을 비추는 카메라는 생동감과 에너지가 넘친다.
자산어보가 흑산어보가 아닌 이유는 창대라는 인물의 의견이 영향을 주었다고 실제 자산어보의 서문에 적혀있다. 흑(黑)은 검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지만 어둡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검다는 뜻을 가지면서 부정적 의미가 없는 또 다른 글자인 자(玆)를 가져와 자산어보라는 이름으로 책을 완성하였다. 이렇게 책의 제목까지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을 보면 정약전이라는 인물은 다양한 목소리를 받아들일 줄 아는 학자였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영화 전반에 걸쳐 보이는 정약전의 모습은 일반인들의 삶과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들 또한 왕이나 관직에 있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영화는 이런 생각을 가진 정약전이 만인이 평등하고 모두가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정약전이 최하층 계급인 창대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 최대한 그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의 됨됨이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정약전의 열린 생각은 가거댁(이정은)과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가거댁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의 수발을 드는 가거댁을 최대한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양반이지만 집의 청소를 하려고 한다거나 최대한 빚을 지지 않으려고 돈을 건네는 등의 행위가 그것이다. 또한 관련하여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가거댁과 창대가 이야기하는 장면인데, 그때 가거댁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씨만 중하고 밭은 귀한 줄 모른다”. 실제 농사에서 좋은 씨앗 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 가거댁이 한 말이다. 여기에는 그 당시 아이를 낳는 여자는 홀대받고 씨를 뿌리는 남자들만 대우를 받는 그 시대 상을 비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거댁의 말을 들은 정약전은 그에 대해 특별히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 당시 하찮게 취급받던 여인의 말에도 반발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그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영화적 설정일지라도 그런 정약전의 열린 모습은 보는 관객들을 감동시킨다.
영화 <자산어보>는 정약전과 창대, 즉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로 보인다. 스승은 제자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가르쳐주고, 제자가 품고 있는 이상향을 실행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그가 제자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을 준 것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가고 있다. 이번이 첫 사극 연기인 설경구는 열린 생각을 가진 정약용처럼 보이고, 변요한은 그가 가진 퉁명스럽지만 총명한 이미지로 청년 창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비록 영화의 이야기에 허구가 다수 섞여있다 할지라도 이 영화가 담은 내용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감정과 지식을 담고 있다.
영화는 정약전과 가까웠던 정약용이 서로 주고받았던 시를 배우의 목소리를 빌어 들려주는데, 그 목소리를 듣는 동안 관객들에게 그 시의 한자를 그대로 화면에 보여준다. 그 한자로 된 시의 구절들을 실제로 모든 관객이 이해하며 읽지는 못하겠지만 그렇게 화면으로 제시되는 한시는 실제로 감정을 담아 그 한시를 읽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것은 흑백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움 화면과 함께 하나의 수묵화를 보는 것 같다. 그런 한시와 어우러진 이 영화는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담은 수묵화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 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자산어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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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지적 썸머시점에서 바라본 <500일의 썸머>
(위 글은 결말을 포함한 영화 전반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미래다'라는 슬로건으로 유명한 대기업 광고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보단,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마세요.' 나도 모르게 그 문구가 뇌리에 박힌 탓인지 이후 몇 번에 연애에서 종종 그 말이 떠올랐다. 처음엔 나를 보며, 다음엔 상대방을 보며. 영화 <500일의 썸머>는 한때 톰이었고, 썸머였던 우리들의 연애를 그린 로맨스 아닌 로맨스영화이다.
기념일에 흔히 쓰이는 카드를 만드는 회사에서 재직 중인 톰과 썸머. 톰은 그곳에서 카드에 들어갈 문구를 만들고, 썸머는 사장의 비서직으로 일하던 중 톰은 남몰래 썸머를 마음에 품는다. 그렇게 홀로 호감을 가졌던 톰은 우연찮은 기회에 썸머와 가까워지게 되고, 회식에서 그녀와 묘한 기류를 풍긴 그는 이후 썸머의 키스로 그녀와 한층 더 가까워진다. 그렇게 썸머와 남몰래 비밀연애를 하는가 싶었던 톰. 그러나 썸머는 그에게 '나는 진지한 관계는 싫어'라며 선을 그어버리고, 데이트에 찐한 스킨십에 썸이라고 하기엔 다소 농도 짙은 두 사람의 관계가 톰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운명을 믿는 톰과 사랑을 믿지 않는 썸머의 불확실한 연애는 썸머의 이별선언으로 막을 내리는가 싶더니, 회사 동료의 결혼식장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과연 도통 답을 내려주지 않는 썸머는 톰에게 있어 나쁜 여자이기만 한 걸까.
어느 댓글에서 영화 <500일의 썸머>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톰이 불쌍하다가도 영화를 두번째 볼 때에는 썸머가 이해된다고.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나도 이제 갓 스무 살이 되었던지라 도통 이 영화에 공감할 수 없었다. 200일에서 50일로, 300일에서 10일로 쉴 새 없이 오고 가는 영화의 서사도 그러하였고, 톰에게 좀처럼 마음을 내주지 않는 썸머가 못내 야속하였다. 한마디로 이 영화를 호구 같은 한 남자가 어장관리녀에게 치이고 치이는, 여자가 쓰레기와도 다름없는 그저 그런 멜로 영화로 치부해부린 것이다. 영화의 첫인상이 그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내가 좋아하는 이동진 기자가 뽑은 로맨스 영화 1위라는 것도 당최 이해되지 않았으며 종종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현실 연애라는 것도 좀처럼 공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서른을 바라볼 즈음에 다시 본 톰과 썸머는, 꽤나 현실적이었다. 어릴 땐 보이지 않았던 톰의 우유부단함과 썸머의 이중적인 속마음. 그리고 그녀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까지. 어쩌면 어려서라기보다도 몇 번의 연애가 종지부를 맺으며 깨닫게 되는 일종의 연륜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덧 나는 톰의 사랑보다 썸머의 자기방어에 공감이 가는 사람이 되고만 것이다.
이 영화를 전지적 썸머의 시점으로 본다면 이러하다.
회식에서 만취한 톰의 친구는, 톰이 썸머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썸머는 이를 다시 톰에게 물었지만, 톰의 대답은 어정쩡할 뿐이었고 그런 톰에게 '친구로서?'라고 되묻자 톰은 그렇다고 답해버렸다. 이후 썸머는 복사실에서 톰에게 먼저 키스를 했고, 그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연애는 그녀가 시작한 연애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둘이 레코드 가게에서 데이트를 하던 중 톰은 시종 링고스타를 좋아하는 썸머의 음악 취향을 장난삼아 웃어넘기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에 대해서 '나도 잘 몰랐어'라며 말하는 썸머에게 '내가 들려줬잖아'라며 답한다. 둘이 함께 영화 '졸업'을 보았을 때, 썸머는 극장에서 나와 그 영화를 보고 여운이 가시지 않아 울음을 멈추지 못했고 그런 그녀를 보며 톰은 '괜찮아. 그냥 영화일 뿐이잖아.'라며 그녀를 달랜다. 썸머가 좋아하는 뮤지션을 톰은 시종 장난처럼 놀려댔고, 그녀가 영화를 보고 나와 울음이 멈추지 않았을 때 그는 맛있는 것을 먹자며 데려갈 것이 아닌 왜 그 영화가 그녀를 울게 만들었는지 물었어야 했다. 그러니까 지금 그녀가 밥맛이 없던 것은 배고프지 않아서가 아닌 함께 있어도 외로운 이 남자와 더 이상 같이 있고 싶지 않아서인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그렇게 펑펑 운 영화 <졸업>의 마지막 장면은 결혼식장에서 여자 주인공을 데리고 도망쳐 나온 남자와 그런 그를 무작정 따라나온 여자. 그리고 두 사람이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듯 웃음기가 사라진 채 멍하니 정면만을 응시하던 순간이었다. 마치 세상에 둘만 남겨진 것 같던 찬란한 시기가 끝나고 서로에게 익숙해진 나머지 권태로워지는 연애의 말로처럼.
함께 싱크대며 가구들을 살펴보며 신혼부부처럼 장난을 치던 두 사람. 다소 들떠 보이는 톰에게 썸머는 나는 진지한 관계는 원치 않아라며 그에게 먼저 선을 그었지만, 그는 '알았다'라며 그녀를 이해하듯 넘어간다. 돌아서면 남인 연인 관계에서 우리는 헤어질 일 없다는 듯이 천진난만하게 구는 톰에게 그녀는 역설적으로 나는 진지해지고 싶지 않아라며 상대방에게 확신을 얻기 바랐지만, 톰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리 만무했다.
썸머와 술집에서 데이트를 하던 와중, 별안간 웬 남자가 그녀에게 추파를 던졌고 옆에 있는 톰은 남자친구냐는 그 남자의 말에 그저 친구라며 그 상황을 나서지 못하고 방관할 뿐이었다. 그러다 별안간 톰이 그 남자에게 주먹을 날렸는데 그 이유는 남자가 썸머에게 치근덕거려서가 아닌 톰 자신을 '찌질이'로 표현한 것에 분개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와 그는 썸머에게 너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말하지만, 썸머는 날 위해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라며 답한다.) 결국 크게 다투고 만 두 사람. 이후 썸머는 먼저 그의 집으로 찾아가 화해를 청하고 그 상황에서 톰은 '나는 너와 어떤 관계든 상관없어.'라며 마치 썸머를 배려하는 듯 말했지만, 이 시점에서만이라도 톰은 한발 더 나아가 그녀에게 직진해야만 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애인이랑 다름없어'라며 화를 내고 돌아간 남자의 집에 비를 뚫고 찾아간 여자가 들을 대답으로는 퍽 맘에 드는 대답은 아닌 것이다.
썸머는 그에게 이별을 고하고 그는 썸머와 다시 재회할 요량으로 회사까지 그만둬버린 그녀에게 메일을 보내지만 그녀는 '이제 정말 친구가 될 수 있겠지.'라며 답한다. 이후 직장동료 결혼식으로 향하는 배 안에서 다시 재회한 두 사람. 썸머는 그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고, 건축가가 꿈이었던 톰이 읽고 있던 '행복한 건축'을 핑계 삼아 말을 붙인다. 이후 결혼식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두 사람. 썸머는 톰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고, 톰은 운명처럼 썸머와 재회할 마음에 들떠 그녀를 찾아가지만 그가 들고 간 선물은 그녀가 좋아한 뮤지션의 앨범도 아닌, 보고서 펑펑 울어버린 영화의 DVD 내지는 O.S.T 앨범도 아닌 자신이 읽고 있던(자신이 좋아한) '행복한 건축'이었다.
그날 썸머의 결혼반지를 발견한 톰은 시간이 흘러 회사를 그만둔 후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언덕에서 머리를 식히던 중, 자신을 기다리던 썸머와 재회한다. 톰은 썸머에게 '그날 결혼식장에서 왜 나랑 춤췄어?'라고 묻지만 썸머는 '그냥 그러고 싶었어.'라며 답한다. 그런 그녀에게 톰은 '그냥 춤이 추고 싶었구나.'라며 대답해버리지만, 썸머가 단순히 '춤'이 추고 싶어 이미 남이 돼버린 그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걸고, 결혼식장에서 함께 춤을 추고, 자신의 집에 초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건 썸머가 톰에게 그리고 톰에게 미련이 남은 자신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는 아니었을까.
이처럼 전지적 썸머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되려 썸머를 욕하던 관객들은 절로 그녀의 태도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굳이 이처럼 세세하게 이럴 땐 이러했고 저럴 땐 저러했어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톰이 건축가의 꿈을 잊지 않도록 응원해준 썸머와 그런 썸머를 마냥 괴짜로만 바라보는 톰의 시선은 이 연애가 왜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준다. 썸머의 파티에 초대되어 그녀의 친구들과 합석한 자리에서 친구는 톰에게 꿈을 물었고, 자신의 하는 일은 비록 카드에 문구를 쓰는 일이지만 사실 건축가가 꿈이라는 말 대신 마치 자신의 현재 직업에 대해 굉장히 만족해하는 듯한 대답을 내놓는다. 그런 그를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던 썸머. 그녀에게 있어 '건축가를 꿈꾸는 톰'은 톰의 어린 시절 로망이 아닌, 그녀가 그에게 쏟은 마음 중 일부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썸머대신 톰을 나무라며 욕을 해야 옳은 것일까. 마지막 썸머의 말처럼 그저 톰과 썸머는 서로가 서로의 짝이 아니었을 뿐이다. 사랑에 있어 확신이 없는 썸머와 순수하게 운명을 믿는 톰. 사랑에 있어 상처받아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공허함과 허전함을, 사랑은 그저 아름답다고 믿는 톰이 알리는 만무했고 그런 톰에게 있어 쉽게 확신을 내주지 않는 썸머 역시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톰은 사랑이 아름답다고 믿었지만 그 사랑을 쟁취하는 것에 있어서는 운명보다는 행동이 먼저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썸머는 사랑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사랑해주기를 바라며 애매하게 톰을 밀쳐냈다. 어쩌면 연애도 싫다던 썸머가 자신이 무슨 책을 읽는지 물어봐 주는 낯선 남자와 결혼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톰과의 연애를 통해 그녀가 느낀 어떤 무엇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사실 '난 사랑은 믿지 않아'라며 톰을 밀쳐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며 사랑이 있다고 믿고 만 것은 아닐까. 썸머는 톰을 사랑하지 않아서라기보다, 톰보다 자신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와 헤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썸머는 일찌감치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톰이 사랑한 것은 자신이 아닌, 자신을 사랑하는 그의 모습 내지는 그저 '여자친구' 혹은 '연애 상대'일뿐이라는 것을. 그가 술집에서 낯선 남자와 주먹다짐을 하던 날, 그와 영화를 보던 날, 그가 그녀가 초대한 파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그녀에게 선물로 준 그 순간, 그녀는 서서히 마음을 닫아버렸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마치 썸머가 괴짜였기 때문에 둘의 연애가 끝이 난 것이 아니라고 말하듯 그녀가 서운해했을 모든 장면들을 영화의 엔딩으로 공을 들인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나레이션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톰은 더 이상 운명을 믿지 않기로 했다고. 뜨거운 여름이 지나 선선한 가을이 오듯 톰이 용기 내어 데이트 신청을 건넨 여자의 이름이 'fall(가을)'인 것은 단순한 각본가의 재간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 <500일의 썸머>는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에게 톰이었다가, 썸머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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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체가 사라져도 사랑할 수 있을까
벽에 붙여둔 포스터를 보며 생각했다. 결국 인간은 무언가와 닿아야만 하는 존재일까.
방 한 쪽 벽에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를 잘 붙여두고 그 밑엔 잘 틀지도 않는 음반들을 쌓아둔다. 마음에 드는 책은 꼭 종이책으로 구입하고 굳이 손 편지를 써 보내는 우리는,
결국 사랑에도 손을 뻗어 닿고자 하는 것이다.
그럼 그 존재가 사라져 버린다면, 우린 어떻게 사랑을 이어가야 할까.
샬롯 웰스 감독의 영화 <애프터썬>은 31살이 된 주인공 소피가 11살 여름방학, 아빠 캘럼과 떠났던 튀르키예 여름휴가 영상을 돌려 보며 당시를 회상하는 영화다. 관객들은 소피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며, 11살의 그녀는 온전히 알 수 없었던 아빠의 우울을 천천히 목격한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캘럼은 영화에서 늘 작은 공간에 존재한다. 캠코더와 연결된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등장하거나 호텔 방의 거울 속에 비춰지는 등 스크린의 가장자리나 희미한 화면, 어둠 속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계속해서 위태로운 난간 위에 올라서고, 어둡고 파도치는 바다로 뛰어든다. 캘럼은 좀처럼 현실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어딘가로 떠다니는 인물이다. 소피에게 넌 어디든 원하는 곳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고향에서 조차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영화 후반부에 여의치 않은 지갑 사정에도 무리해서 구입한 카펫은 그가 온전히 발붙일 유일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작은 카펫을 세상의 전부로 여기는 어린 아빠는 소피에게 이를 선물한 듯 보인다. 31살의 된 소피는 자신의 침대에서 카펫에 발을 디디며 일어난다. 캘럼의 작은 카펫은 그가 유일하게 세상과 닿을 수 있는 공간이자, 어른이 된 소피(어쩌면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머물고 있을)가 발 디딜 곳이 되어주는 셈이다. 또, 캘럼의 부재 이후 그녀를 아빠와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제목 애프터썬은 햇볕에 탄 피부에 바르는 크림을 의미한다. 이미 다 그을려 버린 피부지만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바르는 이 크림은 소피와 캘럼이 서로를 돌보는 방식이다. 그들은 영화 내내 애프터썬 크림을 바르며 서로의 존재와 함께함을 확인한다. 부모의 이혼 이후 소피는 주로 엄마와 지내는 듯 보인다. 그녀는 휴가 중 캘럼에게 ‘우리가 같은 태양을 볼 수 있단 사실을 떠올려. 비록 같은 장소에 있진 않더라도, 같이 있는 거나 다름없잖아?’라는 말을 건넨다. 뜨거운 햇볕에 달아오른 피부에 닿는 차가운 크림의 감촉은 여행 내내 소피가 느낄 부드러움이며 계속해서 아빠의 부재를 상기시킬 시린 감각이다.
영화는 계속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캘럼의 춤사위를 비춘다. 그의 춤은 고통의 몸부림이자 세상을 감각하는 방식이며, 어떻게든 삶을 붙들어 보려는 시도다. 엔딩 장면에서 소피와 캘럼은 Under Pressure 음악 속에서 함께 춤을 춘다. 11살의 소피는 아빠의 우스꽝스러운 춤을 창피해하면서도 기꺼이 그와 춤추고 31살의 소피는 닿지 않을 절규와 함께 있는 힘껏 그를 껴안는다. 비로소 아빠의 우울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어버린 소피에게는 더 이상 그의 실체를 감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누군가와 연결되고자 한다. 사랑하는 대상의 실체를 잃는 것은 이를 불가능하게 하여 우리를 괴롭힌다. 그렇기에 우리는 떠난 이에 대한 기억을 기어코 끄집어내어 그를, 또 나를 안아주어야만 한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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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돈과 비극으로 넘쳐나는 세상을 품은 낯선 뮤지컬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 한 마디로 카오스다. 장르도, 이야기, 형식도 하나로 규정짓기 힘들다. 마치 각 요소를 특성만을 가져와 한데 섞은 혼돈의 모양새다. 성을 바꾸는 마약왕의 설정이나, 스페인어 기반의 뮤지컬 형식, 멕시코의 척박한 현실 속 핍박 받는 여성들의 이야기 등 보기만 해도 잘 붙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단점보다는 장점으로 발휘되었다. 작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여우주연상 수상,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다 후보작(13개 부문 노미네이트)만 봐도 그렇다. 영화가 담은 혼돈의 세상이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느껴져서일까? 평가야 어떻든 <에밀리아 페레즈>는 흥미로운 작품인 것만은 확실하다.
멕시코에 사는 리타(조 샐다나)는 정의로운 법조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변호사가 되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돈과 권력의 논리에 살인자를 변호하는 처지.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찾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송신자는 마약왕 마니타스(카를라 소피아 가스콘). 그는 리타를 향해 자신이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여자가 된 이후의 삶을 만들어주면 거액의 돈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리타는 고민 없이 이를 수락하고, 마니타스를 에밀리아라는 여성으로 만든다. 마니타스의 아내 제시(셀레나 고메즈)와 아이들을 챙긴다. 몇 년 후, 리타 앞에 에밀리아가 나타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부탁을 한다. 과거 자기 가족과 함께 살게 해달라고.
<에밀리아 페레즈>는 마약왕에서 성녀가 되는 구 마니타스 현 에밀리아의 삶을 중심으로 이어간다. 진정 자신의 모습을 찾고 싶었던 트랜스젠더의 삶은 그 자체로 우여곡절이 많다. 새로운 인생을 갖기 위해서 그만큼 과거의 인생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써야 했던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얼굴로 살아가는 걸 선택한다. 물론, 그로 인해 생기는 일들은 기쁨보단 슬픔이 가득 차 있다.
영화는 이런 에밀리아의 선택을 통해 한 사람이 정반대로 변한다고 해도 그가 과연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겠느냐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작금의 시대에서 사회적 가면을 벗고 자신의 본모습을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처럼도 들린다.
극중 에밀리아는 성만 바꾼 게 아니다. 범죄 집단 내 지위, 가장의 지위를 내려 놓는다. 수술로 인해 180도 바뀐 삶을 즐기는 듯 하지만, 이내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려 한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 멕시코로 가고 마니타스의 친척으로 위장해 가족과 함께 산다. 그로 인해 복잡한 문제들이 생긴다. 몸은 에밀리아지만, 마음은 마니타스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감독은 이 캐릭터를 통해 아무리 자신의 본모습으로 살려고 해도 한 번 쓴 사회적 가면은 벗기 힘들다는 걸 보여준다. 이는 인간 본성과 사회적 역할의 첨예한 대립으로 읽히며, 인간에게 정해진 운명을 쉬이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도 확장 해석할 수 있다.
리타와 제시도 마찬가지다. 에밀리아를 도와준 후 거액을 받고 유럽에서 새로운 삶을 살았지만, 결국 멕시코로 돌아오고, 제시 또한 새로운 연인과 사랑을 불태우고 떠나려 하지만, 에밀리아와의 연을 끊어내지 못한다. 영화 초반 “정말로 수술한다 해도 ‘여자’의 몸을 가진 내면의 ‘남자’가 될 수 있다”는 성전환수술 담당 의사의 대사는 이 비극을 예견한 듯하다.
이는 힘든 여성의 삶으로 전이된다. 남성 권위주의적인 세상에서 여성들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목소리도 낼 수 없다. 결국 사회가 지정한 성 역할에 갇혀 살아간다. 마치 새장 속 새처럼. 리타와 제시, 그리고 범죄 조직에 가족을 빼앗긴 멕시코 여성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에밀리아도 잔혹한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자신의 자아를 새장에 넣어 놓았으니 앞서 소개한 여성들과 마찬가지의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서사의 맥락과 상관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뮤지컬 장면은 가슴속에 응어리진 이들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극 초반. 살인자를 변호해야 하는 리타의 삶을 한탄하는 'El Alegato', 리타와 에밀리아가 만연한 부정부패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El Mal', 진정한 사랑을 찾아 자유로운 삶을 살고픈 제시의 마음을 담은 'Mi Camino' 그 자체로 멋진 곡이면서도 한풀이 같은 성격이 짙다. 참고로 'El Mal'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주제가상을 받았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다양한 장르와 요소를 통해 자유를 갈망한 한 인간의 선택이 저지른 실수가 업보로 돌아와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는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든다. 순간순간 우리나라 드라마보다 더 센 막장극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결국 극 중 뼈저린 반성과 구원의 메시지는 마음을 동하게 만든다. 큰 범주 안에서 인간의 삶을 그린 자크 오디아르의 연출력, 진부한 표현일지 몰라도 온 힘을 다해 이 영화에 자신의 모든 재능을 쏟아부은 조 샐다나의 연기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영화를 얼룩지게 만든 건 영화 안이 아닌 밖에서 벌어진 이슈다. 에밀리아 역을 맡은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의 과거 SNS에 남긴 문제적 발언, 유럽의 시선으로 너무나 가볍게 담은 멕시코의 암울한 현실(강제 납치와 실종 사건)과 문화적 표현, 멕시코가 아닌 대부분 프랑스에서 대부분 촬영했다는 점 등은 영화가 가진 메시지와 상충하면서 감상을 저해한다. 이는 13개 부문에 올랐음에도 단 2개에 그친 오스카 수상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인다.
극 중 이야기처럼 <에밀리아 페레즈> 또한 업보가 작품의 족쇄가 되어 돌아온 셈.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말할 것도 없고) 현실 속에서 비로소 영화가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현실의 부정 이슈까지 끌어안은 이 혼돈의 영화는 과연 우리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사진 제공: 그린나래미디어
평점: 3.5/ 5.0
한줄평: 혼돈과 비극으로 넘쳐나는 세상을 품은 낯선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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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팬서의 죽음 이후 과연 매력적인 영웅이 탄생했을까
?Rabbitgumi 입니다!
채드윅 보스만의 죽음으로 영화 블랙팬서에도 변화가 필요하게 되었어요.
1편에서 겨우 세팅이 되었는데, 다시 2편에서 재세팅이 필요한 상황이죠.
이번에 2편이 개봉을 하게 되었는데 이번 영화가 마블 페이즈4의 마지막 영화에요.
그래서 더욱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있던 영화였죠.
마블 페이즈4가 스파이더맨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고만고만 했거든요.
이번에 개봉한 블랙팬서도 아주 좋다고 하긴 어려워요.
하지만 나쁘지 않은 영화인건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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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어땠을지 좀더 자세히 영상에서 알려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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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클리포드 더 빅 레드 독> 메인 예고편
뉴욕의 아파트로 이사 온 12살 소녀 에밀리
새로운 학교에 고군분투하는 에밀리를 바쁜 엄마는
출장을 가면서 철없는 삼촌 케이시에게 맡기고 떠난다.
마법 동물 구조 센터를 지나던 에밀리는
운명처럼 작고 빨간 강아지를 만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함께하게 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작고 빨간 강아지 클리포드는
하루아침에 3M가 넘게 커져버려 순식간에 뉴욕의 유명인사가 되어버린다.
엄마가 오기 전 클리포드를 되돌리려는 에밀리와
클리포드를 유전학 사업에 이용하려는 기업까지 뒤쫓으며
클리포드는 위험에 빠지고 마는데..!
세상에서 가장 큰 빨간 댕댕이,
클리포드의 놀라운 모험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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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더 라스트 레터> 공식 예고편
1960년대, 금지된 사랑을 나눈 연인(셰일린 우들리와 캘럼 터너)이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현재, 야심 넘치는 저널리스트(펄리시티 존스)가 두 사람이 주고받은 비밀의 연애편지를 발견한다.
그렇게 아픈 사랑의 사연이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