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7-15 10:35:56
무질서에 기우는 정의의 병폐 속 무기력한 개인
영화 <뉴 오더> 리뷰
끔찍한 비명과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바깥과는 달리 고급 저택에서는 호화로운 결혼 파티를 펼치고 있다. 녹색과 빨간색으로 점점 물들고 있는 세상은 내부에 신호를 주지만 그저 불안의 기우일 뿐이라고 넘긴다. 한편 유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마리안느는 유모를 돕기 위해 집으로 향한다. 마리안느가 나간 사이 들이닥친 시위대는 집 안의 곳곳을 무너뜨리기 시작하고 믿었던 집안의 피고용인들이 합세해 혼란과 피바람이 몰아친다. 이유 없는 폭력의 시위에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영화의 모든 장면에서 참혹한 폭력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끝없는 절망 속에서 또다시 절망을 바라보며 새 질서를 거듭한다. 하지만 새 질서를 가져올수록 부패와 부조리함이 반복될 뿐, 더욱 혼란에 빠지며 폭력과 희생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수많은 혼란 속에서도 다른 계급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이는 마리안과 마르타 모자뿐이다.

영화의 무자비한 폭력에 어떤 사회에서도 공평함을 발견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체제 변환 이후의 모습이 아닌 파국 이후의 새 질서를 그리면서 최악을 생각했지만, 그 보다 더 최악인 순간에서 끊임없이 총구를 머리에 들이대고 배신과 폭력의 연속은 체제 변환의 전쟁일 뿐이다. 무채색과 유채색의 대비는 또 다른 대비를 불러와 거꾸로 비치는 제목이 머지않은 미래를 비추듯 관객을 비춘다. 부패가 청산되고 갈등이 해소되는 대신 “오직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볼 수 있다.” 이 말과 함께 그저 이름뿐인 전쟁 같은 새 질서가 펼쳐진다.
*멕시코의 국기는 초록색, 하얀색, 빨간색 그리고 가운데엔 멕시코의 국장이 그려져 있다. 초록색은 독립과 대지, 하얀색은 순결과 통일, 빨간색은 백인과 인디오, 메스티소 등 인종의 통합과 국가 독립을 위해 바친 희생을 상징한다고 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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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키 17>: 돌아온 이야기꾼 봉테일.
지구 밖 낙원은 가능한가.
미키는 지구에서 티모와 영끌한 마카롱 사업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사채업자를 피해 지구를 뜬다. 파일럿 기술로 한자리 꿰차는 티모와 달리 미키는 아무런 기술이 없어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 익스펜더블 프로그램을 신청한다. 이름부터 노골적이다. 익스펜더블, 소모품으로 우주 식민지 개척을 위한 실험체가 된다. 미키는 임상 실험체로서 쓰이고 지워지길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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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프린팅의 반복이다. 극 초반에는 미키의 내레이션 목소리 때문인지 봉준호의 연출 터치 때문인지 미키의 상황이 덜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미키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굉장히 비인간적이고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음이 확실하다. 빚쟁이를 피해 고향 지구를 떠났지만 우주에서는 임상 실험체로서 죽고 다시 태어나길 반복 인생이니까.
미키에게 우주는 새로운 공간이지만 이곳에서의 처지는 더 나빠졌지 좋아지진 않았다. 노동의 신성함은 허울 좋은 미끼에 불과하다. 미키에게 남겨진 것은 죽음뿐인 노동이다. 이는 현실과 연관 지어 생각할 포인트가 된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류의 노동을 줄여 준다고 하지만, 인간의 노동보다 더 비싼 비용이 필요한 순간에서 인간의 노동이 줄어들 수 있을까?
오히려 값싼 인건비를 이용해 로봇 대신 위험한 일에 계속 투입시키지 않을까. 외국인 노동자의 사례만 봐도 쉽게 이해 가능하다. 우주 방사선과 바이러스 확인을 위해 소모되는 미키를 보고 있자니, 로봇 유지 보수 비용보다 값싼 노동이 미래에도 끊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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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신성한 것이라는 말에 엿이나 먹으라고. 미키를 보라고, 값싼 노동이 얼마나 위험한 곳에 투입되는지 당신들은 모르지 않냐는 봉준호 감독의 생각이 살짝 묻어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프린팅되는 미키를 대하는 모습과 멀티플이라는 개념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윤리와 법이 제대로 작동할지 의문이 생긴다.
죽고 나서 프린팅되는 미키 17을 보고, 그의 삶에 관심을 가지기보단 미키가 어떤 결과물을 낼 수 있는 존재인지, 그는 죽음을 어떻게 느끼는지에만 관심을 가지니까. 대부분은 그의 죽음과 삶을 단순한 하나의 절차와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인식한다.(죽음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것이 본능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하나의 육체에 하나의 영혼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멀티플 현상을 금지하는 법안을 만든다. 만약, 멀티플이 발생하게 되면 그 즉시 죽여서 삭제한다는 단서 조항도 만든다. 미키에게 행해지는 것과 모순적이다. 미키는 반복적으로 죽임을 당하고 재생당한다. 그러면서 동일한 기억이 심어진다. 자연의 섭리를 따지지만 인간을 프린팅 해서 자기들 입맛에 맛게 사용하고 죽이고 다시 살려내는 비인간적인 행위는 서슴지 않고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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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심어지는 것도 생각해 볼 포인트다. 누군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일부 기억을 삭제한 뒤 심을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이다. 기술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미키와 같은 처지의 사람을 자유자재로 통제할 수 있다. 코에 걸면 코 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격이다. 내로남불. 이런 상황이면, 법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지구에서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돌아가지만 제한된 자원과 극한의 환경인 우주에서는 어떤 사회 시스템이 작동할까?라는 의문도 생긴다. 우주형 자본주의가 새롭게 생겨나거나, 제한된 자원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 전체주의가 들어설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신기술을 가진 새로운 기득권이 전체주의 독재를 펼치게 된다면 마샬이 집권하는 사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마당에 우주로 공간이 바뀐다 해서 인류가 파라다이스를 건설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오히려 인간의 비인간적인 잔혹성이 커질 수 있지 않을까. 미키의 서사와 세계관을 살펴보면 심각하게 생각해 볼만한 내용이 많다. 이런 포인트를 넣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만 함몰되지 않고 극의 재미를 이끌어 가는 봉준호의 터치는 매우 좋았다. 물론, 로버트 패틴슨과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없었다면 완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성장과 사랑
나샤와 미키 18의 등장으로 미키 17은 변화를 맞이한다. 죽음과 프린팅밖에 없는 일상에 사랑과 질투의 감정이 새로 스며든다. 미키 17은 18과 나샤를 두고 경쟁(?)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미키 18은 17보다 더 적극적이고 때론 공격적이다. 미키 18은 미키 17의 다른 자아이자 봉준호 감독 자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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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17은 지구에서부터 니플하임까지 오게 된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엄마와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눌렀던 빨간 버튼으로 인생을 망친 벌을 받고 있다고 말이다. 여기에 대고 봉준호 감독이 미키 18을 빌려, “네 잘못이 아냐”라고 말하며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서의 미키 17은 일반의 삶을 살아가는 모두를 의미한다 해도 무방하다.
미키 18은 미키 17과 달리 인생이 꼬여버려 불행한 이유를 외부에서 찾는다. 지구에서 불의의 사고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자동차의 기계 결함이고, 니플하임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스스로의 벌이 아니라 마샬 때문이라고 말이다. 봉준호 감독은 전작에서, 구조적 문제에 봉착해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인물들을 그렸었다.
여기서는 문제의 원인을 바로잡고자 적극적으로 행동에 옮기는 인물을 미키 18을 통해 보여준다. 설국열차에서 기차의 벽을 터뜨리는 남궁민수와 비슷하다. 종국에는 미키 17이 자신의 손으로 비인간적인 시스템을 부숴버리며 당당히 극복하는 모습도 그려낸다. 미키 17에게 미키 18은 미키 스스로의 내적, 외적 성장을 촉진하는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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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극복의 과정에는 미키에 대한 나샤의 무조건적인 사랑도 한몫했음을 그려낸다. 여기서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바로, 나샤가 미키 17과 18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장면과 나샤와 카일이 미키 17과 18을 두고 경쟁하는 장면이다. 이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권력이 바뀌는 분기점이 된다. 결말로 향할수록 모계 사회에 대한 그림을 넣은 것으로 보인다. 짐작 가는 여러 장면이 더 있다. 멀티플 법안을 만드는 위원회에서 지구 측 발언자가 여성인 점. 독재 권력자인 마샬이 아내의 말을 잘 듣는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나샤의 신분이 변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정치적 올바름의 활용.
일부에서는 PC 주의를 버리지 못했다는 의견을 비추기도 한다.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구체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과거보다 현재 여성의 사회 진출은 늘었고 그에 따라 여성의 사회적 권력도 커졌다. 숫자는 적지만 여성 지도자를 배출한 국가도 있다. 앞으로도 인종과 성별에 따른 사회의 모습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실이 이러한데 영화의 배경은 우주다. 행성을 개척하려는 인류는 함선을 타고 이동하고 있다. 더불어 인간을 프린팅하고 기억을 심는 기술을 보유한 인류다.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면, 극 중에서 인종과 출신 그리고 사회적 구조를 창의적으로 구성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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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드런 오브 맨>의 주인공처럼, 베이비 크리퍼를 안고 살리기 위해 달려가는 나샤를 보면 나샤의 결말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니플하임에서 다음 세대를 책임지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어색하진 않다. 소설 원작의 작품이고 극중 인물과 사회적 배경에 대한 각색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다. 무작정 PC가 점철된 영화라고 비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런 상황도 충분히 있을 수 있겠다는 자연스러운 전개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미키 17은 PC 요소를 적절히 활용한 영화라고 보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PC를 적절히 활용한 것과 그저 이용만 한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라서 구별하기 어렵다. 백설 공주와 인어공주 그리고 마블의 사례를 따져보자. 백설 공주와 인어공주 원작 주인공은 백인이다. 아주 오랜 시간 백인 주인공으로 모두의 뇌리에 박혀있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이런 부분을 간과하고, 굳이 라틴계와 흑인 배우를 섭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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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원작과 팬들에 대한 각색을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했다고 봐야 한다. 조선시대 장군이 백인으로 등장하거나 타 인종으로 등장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봐야 한다. 원작의 특징을 무시하고 PC를 잘못 활용하면 이렇게 된다. 마블에는 대표적으로 아이언하트가 있다. 아이언맨과 아이언하트 사이에는 어떠한 개연성이나 연관성이 없다. 아이언맨은 전형적이지만 완벽한 영웅 서사를 가졌다. 반면, 아이언 하트의 서사는 그 자체로 빈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 바운더리에 포함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아이언맨 3에 등장했던, 차세대 아이언맨이 되지 않을까 모두의 기대를 받았던 캐릭터는 사라지고 뜬금없이 어린 흑인 배우가 아이언맨인 양 등장해서 PC 비판만 받았다. 차라리 캡틴 아메리카와 팔콘의 서사처럼 흘러갔다면 PC 비판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언 하트의 경우는, 서사를 무시하고 PC 요소를 잘못 활용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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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PC를 활용하는 방법이 구린 것이 문제다. 백설 공주와 인어공주 그리고 마블의 일부 영화는 이 부분에서 처참히 실패했다. PC 요소에 대한 비판보다는 이를 활용하는 방법의 적절성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정확한 지적이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는, 위의 영화들과 달리 미키 17은 PC 요소를 적절히 활용한 완성도 좋은 상업 영화다. PC를 덕지덕지 묻힌 영화라는 비난과 비판을 받기엔 서사의 완성도가 높고 비난 의견에 대한 근거는 빈약하다.
통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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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에서 등장했던 통역기가 여기서도 나왔다. 통역기 사용 전에는 미키와 나샤는 크리퍼가 미키를 살려준 것이라는 합리적 추측으로 결론짓는다. 마샬은 벌레의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다며 식민지 개척을 목표로 크리퍼 몰살을 계획한다. 모두 각자의 상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해 행동한다. 이 상황에서 통역기가 개발된다. 통역기를 통해 처음으로 크리퍼와 소통을 시도하는 인물이 미키다. 그는 왜 자신을 살려줬는지 크리퍼에게 물어본다. 프린팅 인간이라 맛이 없어서 그러냐고 말한다. 이때, 별것 아닌 크리퍼의 대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럼, 죽여?”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 사고를 가진 존재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자신과는 다른 존재기 때문에 자신을 해하려고 하는 위협적인 존재라고 빠른 판단을 하는 것도 인간의 속성이라는 것을. 영화를 보는 관객들조차 크리퍼가 위협적인 행동을 하진 않을까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고 이는 극 중의 인물들과 마찬가지라고 깨닫게 해주는 대사였다. 백인의 미대륙 원주민 침략 역사를 반추하게 한다. 넓게는 인류의 침략 역사도 떠올려진다.
여자어와 남자어가 있듯이 사람과 사람끼리의 오해도 쉬운 세상이다. 오해가 켜켜이 쌓여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던가. 만약, 역사의 여러 부분에서 서로의 입장과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통역기가 있었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펼쳐지지 않았을까. 이는, 나샤가 언급하는 원주민의 역사와도 관련된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마샬처럼 원주민을 약탈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변했을까. 무기를 개발하는 것보다 좋은 통역기를 개발하는 게 시급하겠다 싶더라. 이런 게 봉준호식 스토리텔링이구나 감탄했다.
그 외 이야기들미키의 과거 서사가 부족했다는 의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자동차 버튼을 눌러서 미키의 가족과 인생이 어떻게 변했고 이후로 이 사건이 미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키가 지구에서 사업도 말아먹고, 자신의 인생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아 그의 과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크게 필요하진 않겠다 싶었다.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자연스럽게 상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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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에서도 기택 가족의 구체적인 서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인물들이 어떤 특징과 사연을 가졌었는지 대사로 짧게 설명하고 만다. 이번 영화에서도 미키17이 내레이션으로 자신의 서사를 간략하지만 충분히 설명한다. 이러한 이유로 미키의 서사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미키 17과 18처럼, 생김새는 같지만 각자 이름을 가진 루코와 조코를 통해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름이 있고 가족이 있듯이 말이다. 인간이 얼마나 자신들의 세상만 생각하는지, 역지사지의 태도는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듯, 이들도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마지막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배척하지 말라고.
복제인간을 다룬 영화는 많다. 대부분의 경우 주인공과 주인공 복제 인간이 대립하면서 한쪽이 죽는 이야기로 끝나는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미키 17과 18은 살짝의 갈등이 있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들이 지배받는 시스템을 향해 그들이 처한 문제의 원인을 돌린다. 전형적인 복제인간 서사를 살짝 틀었다고 생각은 들지만 2009년에 개봉한 영화 <MOON>의 서사와 굉장히 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샤와 카일 그리고 티모와 일파까지 추가해 서사를 더 풍성하게 만든 건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마크 러팔로의 케네스 마샬은 트럼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특정 정치인을 이야기했다고 말하긴 했다. 그리고 마크 러팔로가 트럼프가 양 팔을 허리 위로 들어 트위스트 비슷하게 두둠칫하는 춤사위를 따라 하는 장면도 나온다. 어느 장면에서는 마샬이 말할 때 실룩이는 입술 모양으로 트럼프를 묘사한 것 같았다.
또한, 트럼프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을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질문을 받는 모습과도 유사한 장면이 있다. 더불어 One and Only가 적힌 빨간 모자와 카페 간판만 봐도 트럼프를 묘사했다는 게 명확하다. 트럼프가 총격을 당했었는데, 마샬 얼굴에 총알 스치는 장면이 나온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키 17의 촬영은 2022년 12월에 끝났다고 한다. 트럼프가 등장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또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대통령직을 수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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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샬의 이름 자체가 권위주의적이다. 마샬이라는 영문 성은 군사적 지도자를 의미한다고 한다. 극 후반에는 사실상 군사적 지도자에 가까운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마크 러팔로가 악역 연기에 처음 도전했다는 말이 있던데, 작년에 개봉한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가여운 것들>에서 악역에 가까운 던컨 웨더번을 연기한 모습도 떠올랐다. 물론, 사악한 정도의 캐릭터는 아니긴 했지만.
일파는 왜 소스에 집착했을까? 아직까지 정확히 모르겠다. 굳이 엮어 보자면. 미키와 같은 노동 계급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손에 흙먼지 하나 묻히지 않고 쏘옥 빨아먹는 권력자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보였다. 노동자들을 갈아 넣은 그들에겐 의미 있는 어떤 결과물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소스는 다채로운 맛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근데, 마샬 부부를 제외하면 함선의 사람들은 맛없는 밥만 조금씩 배식 받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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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샬은 넉넉한 음식들에 소스를 껴얹어 먹고. 이런 비교를 위해 설정한 부분 아닌가 싶기도 하다.(우주에서 향신료나 소스가 얼마나 귀하겠나.) 크리퍼의 꼬리를 자르고 갈아 마시는 행위와 미키 악몽에 등장하는 마샬 복제 장면을 연결 지어보면 복제 인간이 가능한 시기에는 장기 매매 같은 것도 성행하게 되리라는 상징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앞서 미키17 세계관을 먼저 설명해야 했지만 글의 마지막에서야 언급한다. 미키가 간 곳의 행성 이름은 니플하임이다. 이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세계 중 하나의 이름이라고 한다. 얼음과 안개의 세계. 실제 극에서 크레바스가 등장하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행성으로 그려진다. 니플하임은 죽음의 신인 헬이 통치하는 세계로 알려져 있다 한다. 죽은 자들이 가는 장소로도 여겨진다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지구에서 활용될 만큼 활용된 빈 껍데기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소모시키기 위한 장소라고 볼 수 있어 보인다.
봉테일의 귀환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미키가 화력발전소와 구의역에서 숨진 청년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미키가 우주에 나가서 시설을 정비하는 모습이나 사이클러 불구덩이로 미키의 시체가 던져지는 장면을 보면 봉준호 감독의 말이 쉽게 설득된다. 결과적으로, 미키에게는 죽음의 장소였지만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 곳이다. 나샤라는 사랑도 만났잖나. 어둡게 생각하면 한계 없이 침울해질 영화지만, 동시에 아기자기한 희망이 담겨 있는 영화기도 하다.
<기생충>과 비교하면 복부를 푹 찌르는 날카로운 느낌은 줄었지만, 그럼에도 봉준호의 영화는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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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인한 인력과 다정한 척력
어렸을 때는 엄마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엄마의 희생, 헌신, 모성애... 같은 단어들은 문자 그대로 단어로만 존재했다. 수업 시간에 문학 작품의 주제 의식과 소재가 무엇이라도 딱 못박아 배우듯, 그런 단어들을 나는 교과서적으로 배웠다. 이유는 단 하나다. 내게는 너무 당연했기 때문이다. 산소를 의식하면서 숨 쉬는 사람은 없듯이, 엄마가 주는 사랑에 둘러싸인 세상에서만 살아본 내게 '모성애'라는 말은 마치 산소의 원소 기호 같았다.
엄마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던 건 아니라는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엄마였으니까. 엄마, 하고 부를 때 언제나 손 닿는 거리에 있는 존재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늘 응, 하고 다정하게 대답했으니까.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니 막연하게 그려본 것들은 있다. 그러나 출산과 육아가 준다고 하는 기쁨도 고통도 내겐 상상 너머의 영역에만 존재한다. 어림잡아 보는 걸로는 근처에도 다다를 수 없는 깊은 감정일 거라 생각한다. 기쁨 쪽이든, 고통 쪽이든. 다만 기쁨 쪽이 더 깊고 거대하게 사람을 채운다면, 고통 쪽은 너무 사소해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것들이 바늘처럼 콕콕 찌를 거라, 빈도와 방식의 차이는 있을 거라고 상상해볼 따름이다.
<로스트 도터>는 '엄마가 된다는 것'을 상상만 해본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데까지, 실제의 언저리까지 사람을 데려간다. 성녀 같은 어머니도, 폭군 같은 어머니도 아닌, 다면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을 가진 인간들이 어머니가 된다는 사실을, 사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자명한 사실을 깨닫게 한다.
<로스트 도터>는 <잃어버린 사랑>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원작 소설과 이야기의 얼개는 거의 비슷하나, 얼핏 작고 사소해 보이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 차이들이, 원작 소설과는 다른 방향성으로 이 영화를 데려간다.
이야기의 주축은 40대 여성인 레다. 문학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이자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해변가에는 휴가 차 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휴가 차 왔지만, 제법 지역 유지에 속하는 가족 전체가 우르르 몰려와서 레다와는 다소 다른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 사이, 이야기의 다른 주축 '니나'가 있다. 니나는 여섯 살쯤 된 작은 딸 엘레나와, 엘레나가 목숨처럼 끼고 다니는 인형까지 함께, 부산스럽고 자못 당당한 가족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조용하게 있다. 마치 딸과 자신만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듯이 정성스럽게 딸을 돌보면서. 두 사람은 이따금 눈이 마주친다.
그러면서 레다는 이따금 자신의 기억을 돌아보게 된다. 두 딸을 기르면서 육아에 지쳤던 시간을. 끊임없이 약해지기도 하고, 작은 아이에게 미친 듯이 분노하기도 하고, 옳지 않음을 알면서도 감정이 폭발하기도 하고, 정말 괜찮은 걸까 의구심을 품기도 하고.
그런 레다를 니나도 바라본다. 이미 아이들을 다 키우고, 자기 일에서도 뚜렷한 성취를 했고, 지적이고 우아한 모습으로 해변에서 혼자만의 휴가를 즐기고 있는 레다를 보며, 니나는 애쓰고 버티다가 흘러나온 진심을 레다 앞에서는 털어놓는다. 지금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이 마음이, 지나가기는 하는 것인지 궁금해 하며.
얼핏 보면 이미 육아를 마친 여성과, 육아의 한복판에 놓인 여성의 다정한 대화 같지만. 육아에 지친 얼굴, 도망칠 곳을 찾는 마음, 그런 것들이 젊은 시절의 레다와 니나 사이의 공통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두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훈훈하게 풀어놓는 대화가 아닌, 자신이 잃어버린lost 것에 대한 대화가 된다. 레다는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을 두고 떠났던 날의 이야기를, 그래서 자신을 찾은 듯한 느낌에 행복했던 이야기를, 그러나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게 된 이야기를 한다.
니나는 레다가 아이들 곁으로 돌아갔다는 결론에서 안심할 지푸라기를 계속 잡으려 하지만, 죽고 못 사는 아름다운 사랑만이 모성의 얼굴이 아니라는 것을, 레다는 이미 알고 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그 모성의 다양한 얼굴을 너무나도 예리하게 구현해 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제시 버클리가 연기하는 젊은 레다가 너무 지쳐서 영혼마저 없는 상태의 엄마를 연기하는 힘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끊임없이 종알거리면서 말하고 놀고 움직이는 아이들의 존재는 육아 경험이 없는 사람들까지 그 공기를 맡을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전달된다. 아이들은 단순하게 "엄마의 손길을 기다리는 천사"가 아니라는 것. 육아는 단순히 아이들과 "노는" 게 아니라는 걸. 육아 속에서 왜 사람의 에너지가 그토록 빠져나가는지 누구라도 느낄 수 있을 만큼 명확하게 펼쳐낸다.
그 안에는 아이를 사랑하면서, 아이와 자신만의 언어를 구현하면서,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따뜻한 눈빛을 주고받는 엄마의 모습도 있지만. 갑자기 아이가 머리카락을 삐죽 당길 때 자기도 모르게 비명이 나와 버리는 순간도 있다. 아꼈던 인형을 아이에게 주었는데 아이가 조금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서 자기 거라고는 주장할 때, 그 작은 아이가 너무나 못됐다는 생각이 솟아오르고 순간적인 분노가 폭발해 인형을 집어던지게 되는 모습도 있다.
이 영화에서 드러내는 날것의 모성은, 호수처럼 잔잔하게 반짝이는 물보다 파도에 가깝다. 다정하기엔 너무 잔인한 인력과, 잔인하기엔 너무 다정한 척력이 동시에 작용하는 공간. 모순적인 감정들이 수도 없이 오가는 해변가의 파도 같은 것. 그 파도에 몸을 담그다 이따금 서로를 바라보는 레다와 니나 같은 존재들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세상 곳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모성은 모 아니면 도 식의 거친 프레임에 갇힌다. 피붙이에 대해 한없이 끌리는 인력 혹은 '모체를 뜯어먹는 악마'에 대한 척력. 그 안에서 여성은 숭배의 대상 혹은 혐오의 대상 자리에 쉽사리 내쳐진다. 사실 파도의 같은 감정들이, 다양한 인력과 척력에 이리저리 밀리고 있는데. 일방향의 말로 정리할 수 없는 감정들인데. 한없이 사랑하지만, 함께 있을 때 더없이 행복하지만, 이따금 모든 걸 벗어던지고 도망치고 싶다는 말도 거짓은 아닌데.
수많은 이들이 느끼는 감정임에도, 거친 프레임에 갇혀 있는 세밀한 감정들을 터놓고 이야기할 광장 하나가 없다. 니나는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도망치고 싶다는 말을 풀어놓는 것조차 어렵사리 해내고, 레다는 도망쳤지만 아주 도망치지 못해 그 감정의 편린을 여전히 안고 있다. 이들은 여전히 광장을 찾지 못하고, 인력과 척력에 이리저리 휘몰린다.
그러나 영화는 광장으로 가는 문을 열어둔다. 영화의 첫 장면으로 다시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마지막 대사는, 원작 소설에서 가장 크게 각색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올리비아 콜먼의 놀라운 표정과 파도 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한 마디 말을 통해, 이 영화는 규정에 갇히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향한다.
그곳에서 파도 소리가 편안하게 들려온다. 이 잔인한 인력과 다정한 척력 속에서, 새로운 소통의 소리가 들려온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을 통해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로스트 도터>는 7월 12일부터 극장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다소 뒤쪽에서 감상하시길 추천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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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멘토 모리 -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넷플릭스 <아이리시맨>, 마틴 스콜세지
오래되고 고된 무언가를 마무리하는 기분은 나쁘지 않다. 나는 어느 해가 됐든 연말을 맞이할 때 가족-따스함-파티 분위기보다는 올드 랭 사인을 부르며 무언가를 떠나보내는 쓸쓸한 기분을 더 좋아한다. 그 한 해에 만족하든 안 하든, 좋았던 나빴던 어쨌든 한 해를 살아냈으니 맞이하는 마지막 달이다. 남들이야 어찌 평가하든지 어쨌든 나는 내 인생에 1년 치의 무언가를 또 적립했고 살아내야 할 한 해를 마친 것이다. '끝'은 두렵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한다.
<아이리시 맨>의 200분이나 되는 러닝 타임을 어찌어찌 견뎌내고 영화의 마지막 결말 부분에 이르면 실제로 1년 정도는 산 기분이 든다. 영화에서 내내 보여주는 길고 자세한 마피아 생활의 묘사는 실제로 아일랜드 출신 백인 범죄자의 인생을 함께 살아온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함께 늙어버린 듯 지친 기분이 들 때쯤 왜 스콜세지가 작정하고 영화를 이렇게 길게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양로원에 홀로 앉아 있는,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으로 분장한 로버트 드니로의 모습을 보며 드는 복잡한 감정은 노쇠하고 힘이 없어진 주인공에 대한 연민은 아니다. 그를 동정하기엔 우리는 그 남자가 저지른 너무 많은 죄악을 200분 내내 목격했다. 인간에게 늙고 초라해졌기 때문에 사함 받을 수 있는 죄란 건 없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노인의 얼굴 위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이며 그 순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정당화했던 그의 젊은 날 마피아의 모습이 겹쳐질 때 우리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의 정체는 의문이다. 그 모든 잔인함과 비인간성은 뭘 위한 것이었을까? 자신의 딸들에게 너희들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자기가 그런 선택을 했기 때문에 지금의 모든 것이 있다고 변명하는 노인의 모습을 보면 짙은 회의감이 느껴진다. 진심으로 모든 순간 그렇게 믿었을까? 이제 와서 변명하는 것처럼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일까? 선택에 의한 득과 실은 결국 인생의 말년에 이르자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우리는 인생을 살며 순간순간 가장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순간은 지나간다. 무엇이 ‘좋은’ 선택이었을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공포의 이반'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뎀얀유크라는 남자가 있다. 같은 제목의 넷플릭스 미니 시리즈를 보고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뎀얀유크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가담해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는 데에 동참했다. <아이리시맨> 속 프랭크 시런은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가족들에게 외면받는 말년을 맞이했지만 뎀얀유크는 실제로 전범 재판을 받으며 끔찍한 악행이 까발려지면서도 가족들의 무조건적이고 따듯한 사랑을 받았다. 말년까지 그는 가족들의 보호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선하고 가난한 삶,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삶, 학살자의 삶, 부귀영화를 위해 타인을 서슴지 않고 짓밟는 삶, 이 모든 선택지는 서로 대립하거나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 모든 종류의 삶은 각각 독립되어 있고 권선징악 같은 인과관계는 실제로 필연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더욱 어려워진다.
분명한 것은 단 한 가지뿐이다.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살면서 저지른 악행들에 대해 갑작스러운 두려움을 느껴도 이미 때는 늦었다. 죽음은 목전에 와 있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회개의 기도문을 중얼거려 보는 것 밖에는 없다. 역으로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해 왔지만 그 대신 타인에게 짓밟힌 가여운 인생들에게도 딱히 그에 대한 보상 같은 것은 없다. 사후 세계를 믿는다면, 죽음이 안식이란 것을 믿는다면 또 모르겠지만. 우리는 훗날의 무언가를 임의로 상상하며 선택할 수 없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 살아가는 도중의 모든 선택에 대한 기준은 결국 단 한 가지의 확실한 사실, 죽음을 전제로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설령 존재한다 해도 인간의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으므로 인간은 그 존재에 대해 알 수도 없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 그걸 기억하는 수밖에 없다. 온 시내가 루미나리에로 반짝거리고 울려 퍼지는 캐럴로 가득 차 있을 때, 모두가 쓸쓸함과 설렘과 자신의 삶에서 밀려오는 각종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 내가 끝나가는 한 해를 보내며 생각하는 것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다. 죽음을 기억하라. 이 문장은 전혀 슬프거나 허무하지도, 동시에 위로가 되지도 않는다. 굳이 나의 느낌을 묘사하자면 ‘고요하다’ – 나는 연말의 고요 속에서 되뇐다. 언젠가 반드시,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온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Good night and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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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씨네픽입니다! :)
4월의 둘째 주도 벌써 지나갔네요.날씨도 따뜻해지고, 꽃도 만개해서봄나들이 가기 딱 적당한 날이 될 것 같습니다.(봄나들이도 가고! 영화도 보고!)씨네픽과 함께 하는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과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씨네픽 예측 이벤트인'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콘텐츠'도 같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럼 시작해 볼까요?...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1. <수퍼 소닉2> (NEW)▶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과 확장된 세계관으로 화제를 모은 <수퍼 소닉2>가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는데요. 대부분의 시리즈물 영화는 전편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어내기 어려운데,
<수퍼 소닉2>는 전편보다 뛰어난 속편을 만들어 내면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주말 동안 (4월 8일~10일) 관객 수 11만 109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12만 9741명을 돌파하였습니다.이번 주 수요일인 13일에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이 개봉해, 1위를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줄거리도시의 악당들을 물리치며 바쁘게 지구를 지키고 있는 초특급 히어로 ‘소닉’.버섯 행성으로 쫓겨나 ‘소닉’에게 복수를 계획하던 천재 악당 ‘로보트닉’은엄청난 힘을 지닌 신비의 에메랄드를 차지해 세상을 지배할 야망을 꿈꾸며 지구로 돌아온다!최강 파워로 업그레이드된 ‘로보트닉’과 강력한 펀치 파워 ‘너클즈’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소닉’은하늘을 나는 꼬리를 가진 귀여운 파트너 ‘테일즈’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되는데…2. <모비우스> (▼1)
▶ <수퍼 소닉2>가 개봉하면서 <모비우스>가 1위에서 2위로 하락하였습니다.
4월 첫째 주와 저번 주의 주말 관객 수를 비교했을 때, 약 3분의 1일 줄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말 동안 (4월 8일~10일) 관객 수 6만 249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42만 549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3. <앰뷸런스> (NEW)
▶ 액션 영화 마스터 마이클 베이 감독이 새로운 액션 영화 <앰뷸런스>로 돌아오면서 기대를 높였는데요.
배우들의 연기와 마이클 베이 감독의 연출이 만나 강력한 시너지를 뽐낸 작품인 것 같습니다.
주말 동안 (4월 8일~10일) 관객 수 5만 326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8만 1516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줄거리인생 역전을 위해 완벽한 범죄를 설계한 형 '대니'와 아내의 수술비를 마련해야만 하는 동생 '윌',
함께 자랐지만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온 두 형제는 각기 다른 목적을 위해 인생을 바꿀 위험한 계획에 뛰어들게 된다.
그러나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틀어지게 된 두 형제는
구급대원 '캠'과 부상당한 경찰이 탑승한 앰뷸런스를 탈취해 LA 역사상 가장 위험한 질주를 하게 되는데...▶ 씨네픽의 이번 주 95회 예측 이벤트는 4월 2주 차 박스오피스(순위) 예측입니다. 한 주동안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는데요.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주신 4월 2주 차 박스오피스 순위의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씨네픽 유저 예측 결과
정답자 비율(%)
▶ 한 주 동안 많은 씨네픽 유저분들이 박스오피스 순위를 예측해 주셨는데요. 박스오피스 3위 순위를 가장 많은 분들이 맞혀주셨고,
그다음으로 2위, 1위 순으로 많이 맞춰주셨습니다. 이번 예측은 조금 어려웠는지, 전체적으로 예측율이 좀 떨어졌습니다.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씨네픽은 다음 주에 더 재밌고 유익한 제96회 씨네픽 이벤트로 인사드리겠습니다! :)
4. <스텔라> (NEW)
▶ 박스오피스 TOP5 중 유일한 한국 영화 <스텔라>가 4위를 차지했습니다.
유쾌한 웃음과 따뜻한 감성의 영화로 가족과 함께 보러 가기 좋을 영화입니다.
주말 동안 (4월 8일~10일) 관객 수 3만 9275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5만 878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줄거리막다른 인생 제대로 한 번 달려본 적 없는 차량담보업계 에이스 ‘영배’(손호준). 보스 ‘서사장’(허성태)이하룻밤 맡긴 슈퍼카가 절친 ‘동식’(이규형)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지고 영배는 범인으로 몰려 서사장 일당에게 쫓기기 시작한다.믿을 사람 하나 없고, 도망칠 곳도 없는 그의 앞에 나타난 건 바로 1987년식 오래된 자동차 ‘스텔라’.
최대 시속 50km, 남은 시간은 3시간…
유일한 희망인 스텔라와 함께 보스의 슈퍼카를 반드시 찾아야만 한다!4.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 (NEW)
▶ 박스오피스 5위는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루이스 웨인: 사랑을 그린 고양이 화가>가 차지했습니다.
색감이 예쁘고, 영상미가 좋다고 호평을 받은 작품입니다.
주말 동안 (4월 8일~10일) 관객 수 1만 6092명을 동원했으며, 총 누적 관객 수는 2만 6623명을 돌파하였습니다.| 줄거리모든 동물이 행복해지길 바랐던 엉뚱한 천재 화가 ‘루이스’(베네딕트 컴버배치).
그림 말고는 모든 게 서툴렀던 그의 앞에 어느 날 운명 같은 사랑이 찾아온다.
그의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삶의 전부,
‘에밀리’(클레어 포이) 그리고 고양이 ‘피터’.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 <Sonic the Hedgehog 2>와 <Ambulance>가 개봉하면서 새롭게 순위에 등극했고,
<The Batman>이 개봉 후 한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박스오피스 TOP5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주말 동안(8일~10일) <Sonic the Hedgehog 2> 북미 기준 주말 매출액 $71,000,000 (한화 약 871억)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며, 누적 매출액은 동일합니다.<북미 박스오피스 TOP 5> (2022년 3월 25일 ~ 2022년 3월 27일)1. <수퍼 소닉2> 7100만 달러 (누적 7100만 달러)2. <모비우스> 1020만 달러 (누적 5707만 달러)3. <로스트 시티> 916만 달러 (누적 6885만 달러)4. <앰뷸런스> 870만 달러 (누적 870만 달러)5. <더 배트맨> 655만 달러 (누적 3억 5905만 달러)...씨네픽의 4월 둘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감사합니다!-!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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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치게 영리했던 <로키>가 범한 MCU다운 실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벤져스: 엔드 게임>에서 2012년 시점의 뉴욕으로 시간여행을 한 어벤져스 덕분에 어부지리로 테서랙트를 손에 넣은 '로키(톰 히들스턴)'. 그는 꼼짝없이 아스가르드에 죄인으로 송환될 위기 상황에서 테서랙트를 이용해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멀티버스가 충돌하는 일이 없도록 우주의 시간선을 관리하는 조직인 TVA는 탈출한 로키를 즉시 체포하고, TVA 요원인 '뫼비우스(오언 윌슨)'는 로키에게 TVA와 함께 움직여 달라고 요청한다. 다른 우주의 로키인 '실비(소피아 디 마티노)'가 우주의 타임라인을 어지럽히고 있기에 로키에게 그녀의 계획을 알아내고 막아달라는 것이다. 요청을 받아들인 로키는 실비를 쫓아 다양한 세계를 오가기 시작하고, TVA가 숨기고 있던 진실에도 한 발짝씩 다가간다.
캐릭터쇼라고 불릴 정도로 매력적이고 친근한 캐릭터를 선보여 왔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그중에서도 로키는 가장 독특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빌런으로 등장했으나 마냥 미움을 사지는 않았고, 토르와의 애증 넘치는 관계성을 바탕으로 든든한 조력자로 변해가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역경 앞에서도 끝끝내 살아남아 왔다. 심지어 완전히 퇴장했다고 생각한 와중에도 로키는 평행세계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설정으로 다시금 모습을 보였다.
이를 가능케 한 결정적 이유로 로키가 변수를 만들어내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전투 중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환영을 만들어 내었듯이, 그의 행동은 항상 눈에 보이는 목적과 그렇지 않은 목적이 혼재되어 있었다. 특히 본인만 아는 진짜 목적은 더 큰 혼란을 유발하면서 관객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토르: 다크 월드>에서는 죽은 듯했지만 살아남아 아스가르드의 왕이 되었고, <토르: 라그나로크>에서도 토르 몰래 테서랙트를 훔쳐 나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서막을 열었다. 이처럼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끌고 가는 변수라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기에 로키는 사랑받을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사건들을 만들어 내는 종잡을 수 없는 바로 그 매력 때문에 로키의 첫 단독 작품인 디즈니+의 드라마 <로키>는 만족스러움과 실망이 교차한다. <엔드게임>에서 사라진 로키를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준다는 아이디어까지는 로키스러운 콘셉트였지만, 그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는 로키다운 재기 발랄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로키>의 에피소드 6개는 그의 첫 단독 작품을 접한 만족감이 MCU의 설명서를 보는 실망감으로 변하는 시간이 된다.
<로키>를 독립된 작품으로 보면 드라마의 전반부는 예상외의 고민과 성찰을 선사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한다. <어벤져스> 1편 시점에서 평행세계로 도망친 로키는 우주의 시간선을 관리하고 멀티버스의 출현을 막는 TVA에서 그가 살았어야 할 미래와 그의 인생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운다. 이때 드라마는 마치 마블 스타일의 <테넷> 마냥 로키가 느끼는 회의감과 허무함, 그리고 새로운 삶의 의지를 세심히 살핀다.
로키는 이미 인생의 행보가 결정되어 있다면 오딘의 양자이자 두 번째 왕자로서 왕이 될 수 없는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던 자신에게 자유의지는 무슨 의미가 있고, 스스로의 존재는 어떤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특히 그가 <인피니티 워>에서 장난의 신으로 죽어가면서 타노스에게 "너는 결코 신이 될 수 없다"는 유언을 남긴 점을 고려하면 그의 회의와 고뇌는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세상을 파괴하고 자신의 뜻대로 다시 창조하며 신의 행세를 하려고 한 타노스가 실패할 것을 확신했던 신조차도 그저 정해진 운명선을 착실히 걷고 있었을 뿐이라는 역설적인 전개가 아이러니함을 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을 담아내면서 로키의 이야기는 시청자가 이미 알고 있던 것 이상으로 확장되며, 왜 그의 스핀오프 작품이 필요했는지를 증명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이전까지 <로키>가 이룬 성과는 빛이 바랜다. 마블 세계관을 구성하는 조각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지면서 정작 주인공이어야 할 로키의 존재감과 이야기의 비중은 급격히 낮아진 결과다. TVA를 탈출하려 하고 진통 끝에 모비우스와의 협력을 약속하던 때와 달리, 실비가 등장 이후 로키는 철저히 수동적인 존재로 기능한다. 수사물처럼 TVA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대부분의 사건은 실비가 주도하며, 핵심적인 이슈에 대한 결정 역시 그녀의 손에 달려 있다. 특히 마지막 순간 멀티버스의 시작을 알리는, 그 이전에 운명에 종속되지 않는 존재임을 어필할 기회 역시 로키가 아닌 실비에게 주어지며 로키는 단지 그 여파에 휩쓸리는 데 그친다. 특히 빌런부터 토르의 조력자까지 정체성이 거듭 변화하는 와중에 단 한순간도 사건의 주도권을 놓지 않은 캐릭터가 바로 로키였다는 점에서 드라마는 큰 괴리감을 유발한다.
이처럼 로키가 멀티버스로 인해 자신의 서사와 정체성, 그리고 일관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로키>와 마블 페이즈 4의 설정집으로서의 <로키>가 충돌하는 지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로키마저 예상치 못한 속임수를 보여주는 실비나 아스가르드의 환영을 만들 정도로 강력한 마법을 선보이는 클래식 로키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장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로키의 단독 이야기로 멀티버스를 소개한다는 선택은 역으로 로키라는 캐릭터를 희미하게 만들어 버렸고, 지나치게 영리한 꾀에 스스로 넘어가 버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로키>는 여러 한계점을 노출한다. 우선 야심 차게 막을 연 멀티버스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양날의 검이 될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 멀티버스는 또 다른 마블의 드라마인 <왓 이프...?>처럼 다양한 상상을 현실화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지만, 후속작이 개연성이 떨어지는 무리한 전개를 남발하더라도 이를 합리화해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페이즈 3에서부터 줄곧 지적되었던, 하나의 영화나 드라마로서의 완성도보다는 시리즈로서의 완성도를 우선시해 점점 더 많은 배경지식을 요구할 것이라는 우려를 키운다.
한편 <이터널스>에서도 본 것처럼 MCU의 새로운 지향점으로 설정된 다양성을 녹여내는 방식도 아쉬움을 남긴다. 사실 로키는 젠더 이슈와 관련하여 정치적으로 올바른 기제를 펼쳐 보이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신화와 전승에서 엄연히 여신과 결혼한 몸이지만 암말로 변신하여 오딘이 타고 다니는 다리가 8개 달린 말 슬레이프니르를 낳기도 하는 등 분명 양성애자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는 과감한 시도를 하는 데 인색하다. 세 번째 에피소드 속 실비와의 대화와 그 대화를 장식하는 무지갯빛 조명에서 성적 정체성을 암시할 뿐이다. 또 결국 실비와 로키의 관계가 이성 간의 로맨스로 이어지다 보니 그 진의마저 의심스러워진다.
<로키>를 멀티버스의 시작점으로 삼은 것은 분명 영리한 한 수였다. 우주의 균형이 무너지는 대사건을 풀어내기에 존재 자체가 속임수, 변수, 반동분자인 로키는 멀티버스라는 설정을 확립하고 세계관을 확장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최적의 주인공이었다. 또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중 하나를 복귀시키고 추가적인 등장 여지도 남기면서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선택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늘 로키의 잔꾀와 속임수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불러왔듯이, <로키>의 결과물 역시 지나치게 영리했다. 이전까지의 시리즈와 새로운 시리즈의 간격을 가능한 한 좁혀 놓겠다는 선택은 로키를 주인공으로서 서사의 중심에 놓는 대신 거대한 세계관을 지켜보기에 급급한 목격자로 만들었다. 페이즈 4에서 단독 작품보다는 하나의 부속품에 가까운 작품을 선보이는 실수를 반복하던 마블의 고질병이 또 도진 셈이다. 이에 더해 부수적으로는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지향성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남겼다.
과거 케빈 파이기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구축하는 비법을 묻는 언론의 질문에 대해 "세계관을 걱정하지 마라. 영화를 걱정하라( don't worry about the universe. Worry about the movie")"라고 답한 바 있다. 과연 현재 마블은 페이즈 4와 그 이후를 전개함에 있어서 하나의 작품을 걱정하고 있을까? 시즌 2를 확정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로키>는 우려를 달랠만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듯 보인다.
P(Poor, 형편없음)
팬들은 계속해서 MCU를 좋아하겠지만, 영화팬도 앞으로 그럴지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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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을 굉장히 잘 타는 캐릭터, 라푼젤
라푼젤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그 작품은 제대로 봐본적이 없었다. 영화 <라푼젤>은 머리가 긴 공주라는 소재만 알고 있었을 뿐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도 몰라서 궁금했던 작품이었다. 궁금했던 만큼 새로웠고 즐거웠던 영화였다.
영화 <라푼젤> 시놉시스누구도 상상못한 위대한 가출(?)이 시작된다.
올드보이도 못 견뎠을 장장18년을 탑 안에서만 지낸 끈기만점의 소녀 라푼젤. 어느 날 자신의 탑에 침입한 왕국 최고의 대도를 한방에 때려잡는다. 그리고 그를 협박해 꿈에도 그리던 집밖으로의 모험을 단행한다. 과잉보호 모친의 영향으로 세상을 험난한 곳으로만 상상하던 라푼젤. 그런 그녀 앞에 군기 빡 쎈 왕실 경비마 맥시머스의 추격, 라이더에게 복수의 칼날을 가는 스태빙턴 형제의 위협, 라푼젤의 가짜 엄마 고델의 무서운 음모 등이 얽히고 설켜 점점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터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세상물정 깜깜한 우리의 라푼젤은 자신 앞에 펼쳐진 스릴 넘치는 세상을 맘껏 즐긴다.
*해당 내용은 네이버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라푼젤>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세상에 라푼젤이 마법을 부릴 수 있는 존재였다니
나는 몰랐다. 라푼젤이 마법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니!!! 마법의 꽃을 먹고 가까스로 태어난 라푼젤이 그 꽃의 영향을 받아서 젊음을 유지하고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는 마법을 지녔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항상 궁금했었다. 왜 머리를 자르지 않을까? 그냥 탑에서 왕자님 기다리느라 그런건가..?하는 아둔한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 마법의 머리카락이어서 그걸 자르면 마법의 힘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계속 길렀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이토록 천진난만한 공주를 만들다니
아름다운 공주는 멋있는 왕자님과 만나 결혼을 하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디즈니 신화다. 라푼젤을 보는 내내 굉장히 디즈니와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라고 생각이 들었다. 현대에 들어 여성인권이라는 시류를 반영해서 조금씩 디즈니가 자신들의 신화와 문법을 깨고 수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라푼젤은 그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다분히 가부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런 것은 아니어서 굉장히 놀랐고, 그래서 디즈니와 어울리지 않느나든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신발도 신지 않고 이리저리 쏘다니는 라푼젤과 그리고 라푼젤과 결혼을 하는 이는 왕자님이 아닌 대도이자 고아 출신인 필린/유진이고, 위기에 처한 필린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쓸 줄 아는 약간 여장부같은 스타일의 캐릭터여서 당시 디즈니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선을 참 잘타는 라푼젤
라푼젤이라는 캐릭터가 디즈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감정 이후에 든 생각은 '선을 참 잘 탄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선은 주체와 대상이라는 그 사이의 선이다. 페미니즘이 크게 대두되지 않은 당시에도 라푼젤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필린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그를 구출한다. 이 때 라푼젤은 자신의 능력을 천방지축의 소녀스러움으로 잘 포장을 해서 내가 나의 능력으로 너를 구하고야 말 것이다 이런 느낌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능력을 발휘해서 필린을 구하는 상황으로 구현이 된다.
그리고 힘든 상황이 찾아올 때면 보호본능을 일으키며 꼭 지켜줘야 할 것 같지만 또 스스로 일어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장면들이 계속되면서 라푼젤이 주체인 듯 하면서도 대상인 것 같기도 하고 그 사이에서 선을 굉장히 잘 타서 어느 누가 봐도 크게 불편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은 캐릭터로 다가갈 수 있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전략이 라푼젤 영화의 성공에 기여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어른이 돼서 본 영화 <라푼젤>은 꽤나 새롭고 즐겁게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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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소희 한 사람의 죽음이 드러낸 현실
?Rabbitgumi 입니다!
영화 다음 소희가 개봉했어요.
과거 전주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요.
가슴아픈 현실을 볼 수 있는 영화에요.
많은 분들이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콜센터 직원들의 노동 현실과 고등학교 현장 실습의 현실이 잘 표현되어 있어요.
누가 죽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지금의 현실이 무척 답답하게 느껴지는 영화에요.
이 영화가 어땠을지 저의 간단한 리뷰를 영상에서 말씀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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